18. 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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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재즈가 흘러나오는 조용한 칵테일 바.
칵테일 바로 위장한 흥신소로 조성수가 주로 이용하는 곳이었다.
이전까지는 주로 관심 있는 여자의 뒷조사 같은 걸 부탁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조성수 앞으로 칵테일 한잔이 놓였다.
“색이 예쁘네.”
“맛도 환상적일 거예요.”
그에게 칵테일을 전한 바텐더의 이름은 최아리, 기프트는 ‘포션 제조’였다.
조성수에게 전한 칵테일에는 대상의 긴장을 풀어주는 효능이 있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조성수는 가볍게 칵테일을 마셨다.
진한 알코올의 역한 자극 없이 부드럽게 입안에 감도는 향기, 하지만 그보다 정신을 황홀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칵테일에 있었다.
“좋군. 이 맛에 여길 못 끊는다니까.”
“만족하셨다니 다행이에요.”
무심코 속마음을 털어놓은 그는 급히 무심한 듯 얼굴을 굳혔다.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 잔 밑에 있던 냅킨을 집어 주머니에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시게요?”
“크흠. 대표님이 자리를 비운 탓에 내가 좀 일이 많아.”
“그러시군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그러자고.”
조성수는 그녀가 더 붙잡을 줄 알았다.
그러면 못 이기는 척 다시 앉으려 했다.
그동안 자신이 팔아준 칵테일이 몇 잔이고, 의뢰가 몇 개인데.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옆에 있는 손님과 웃으며 대화했다.
자신에겐 절대 보여준 적 없는 표정이었다.
‘저년이···!’
그렇다고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이곳은 한국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정보 길드였다.
자존심이 상한 조성수는 그대로 바를 나섰다.
지하에서 올라온 그를 기다린 비서를 무심히 물리치고 홀로 차에 올랐다.
그리고 핸드폰을 열어 냅킨에 적힌 주소와 비번을 치고 들어갔다.
‘군대 동기와 함께 헌터 사무실을 차렸다? 동기 아버지가 구성 스마트팜의 대표이사라. 새끼, 잘 나가네.’
그 외에도 강진혁의 입대 전부터 전역 후까지의 일이 제법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다만 길드에서도 강진혁이 중국에서의 일까지는 알지 못했는지, 단순히 한상진과 여행을 갔고 구성 부회장과 같이 한국에 들어왔다고만 적혀 있었다.
그가 자체 해석하길, 친구 아버지 따라 꼽사리 구성 1팀의 보호로 탈출한 모습이었다.
‘그런 식으로 구성 그룹과 인연이 이어졌어? 새끼 운도 좋네.’
조성수는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다.
한성 길드에서 강진혁의 사무실을 방해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에 구성이 발을 걸치며 사이즈가 커졌다.
자칫 구성과 한성의 싸움이 될 수도 있었다.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길드 대표인 조진호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야 한성 그룹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문제는 그의 아버지가 강중건 부자를 건드는 걸 원치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예전엔 안 그러더니, 최근 들어 아빠는 왜 강중건 눈치를 보는 거야?’
그는 모르지만, 강중건이 들고 있는 한성 길드 지분이 30%가 넘었다.
그것 말고도 강준건을 따르는 우호지분이 상당했다.
처음 한성 길드가 만들어질 때, 그 중심은 현 한성 길드 대표인 조진호가 아닌 강중건이었다.
혼란하던 시절, 한성 그룹의 역할은 헌터의 보급을 지원하는 자금줄 역할이면 충분했다.
그랬던 것이 세상이 안정되고 길드는 사업의 영역이 됐다.
그때 필요한 건 전문 경영인, 강중건은 길드 마스터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비각성자인 조진호에게 길드 대표직을 부탁했다.
그간 물자 보급과 몬스터 부산물 판매를 전담하며 길드의 외연을 확장하며 보인 탁월한 경영 능력을 인정한 덕분이었다.
그리고 이는 그가 길드 마스터가 아닌, 길드 대표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런 역사를 가진 한성 길드인 만큼, 강중건이 한성 길드와 갈라설 때 하마터면 길드가 둘로 쪼개질 뻔한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지분 이상으로 길드에서 강중건이 가진 영향력은 컸던 탓이다.
무엇보다 그가 한성 길드를 대표하는 S등급 헌터였던 만큼 그를 따르는 길드원이 상당했다.
하지만 강중건은 자신이 젊음을 바친 한성 길드가 자신 때문에 둘로 쪼개지는 걸 원치 않았다.
무엇보다 이제는 현장에서 물러나 쉬고 싶다는 마음이 더 앞섰다.
그런 의미에서 형식적이지만 자신이 가진 길드 지분을 둘로 쪼개 하나는 한성 유족 재단에, 하나는 이거려의 이름으로 된 투자회사에 위탁했다.
유족 재단은 한성 길드 소속 헌터의 유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강중건이 설립한 재단이었고, 투자회사는 정보 길드의 다른 이름이었다.
조성수는 일단 지난 6년간 강진혁 행적에 대해서 알아낸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는 자신이 한성 길드의 꼭대기에 앉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 여겼다.
때문에 강진혁에 대한 처분은 그때 가서 진행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당장 급한 건 아니니까. 새꺄, 그때까지 죽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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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돌원숭이 무리가 재앙 2급이었다며.”
“그래? 아쉽게 됐네.”
롄윈강시 돌원숭이 사태가 수습되는 데 40일 가까이 걸렸다.
두 달 넘게 걸렸던 회귀 전보다는 짧았지만, 여튼 상당한 시간이 걸린 건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재앙 2급?
너무 안일한 결정이 아닌가 싶다.
어제 그 소식을 듣고 너무 황당해 나름 찾아보니, 중국은 돌원숭이 무리 전체에 대한 등급이 아닌, 돌원숭이 하나하나에 대한 등급만 제시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정작 위험한 건 그 무리 전체가 가진 파괴력인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그런 건가?
차라리 몬스터 등급을 부풀려서 불가항력이었음을 알리는 게 낫지 않을까?
‘괜히 국민들이 불안하게 느낄까 그랬나?’
이러나 저러나 정치는 모르겠다.
뭔 생각으로 하는지.
하지만 이런 안일한 사고방식은 언제고 큰일을 치르게 할 것이다.
‘뭐, 이미 내 손을 떠난 일, 내 알 바 아니지.’
“아쉽긴 뭐가? 난 아직도 심장 떨려 죽겠는데?”
“... 왜?”
“도시 하나가 지워졌어! 그 중심에 우리가 있었다는 거잖아! 근데 아쉽다는 말이 나오냐?”
“그 도시에서 널 구한 게 나야.”
“어? 아. 그건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아버지도 가끔 네 녀석 안부 묻더라. 소영이도.”
“그래?”
그때 딱 한 번밖에 안 본 소영이가 왜 내 안부를 물을까?
여튼 미래에는 재앙급 괴물이 심심찮게 등장해 재앙 2급 마수는 일상이었다.
그만큼 헌터의 실력도 지금보다 상향되니 충분히 상대할 여력이 됐다.
문제는 멸망급 괴수였다.
세계는 곳곳에 등장하는 멸망급 괴수를 해결하지 못한 채 숱한 헌터의 희생만 초래했다.
이런 희생이 계속되자 결국 헌터 전체적인 전력은 급격히 추락했다.
기껏 끌어올린 헌터 전력이 줄어드는 것도 그때부터였다.
이것만 막아도 헌터의 전체적인 전력은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내가 할 일이지.’
난 먹거리 풍족한 세상이 좀 더 오래 지속됐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거 알아? 너 영웅 됐더라.”
“영웅? 내가? 갑자기?”
“응, 중국에서 너 영웅 됐어.”
“걔들은 내 존재를 알아?”
딱히 비공개로 하지 않았지만, 구성에서는 알아서 내 존재를 비밀에 부쳤다.
물론 한성의 두 년놈들이 중간에 끼어들어 살짝 문제가 됐지만, 두 놈은 이미 죽고 없었다.
다만 안효성 인사팀장이 윗선에 언질을 줬다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 않을까 싶다.
‘그 윗선이 중국에 정보를 흘린 거면 귀찮아지겠는데.’
알아도 크게 상관은 없지만, 귀찮은 건 질색이었다.
“봐라. 이걸 보면 역시 중국이란 생각만 들 거다.”
상진이 내민 건 국제뉴스 기사였다.
그곳 실린 소식은 롄윈강시를 구한 영웅의 존재를 파헤친 기사였다.
마치 대단한 걸 파헤친 기사처럼 거창하게도 써 재꼈놨다.
근데 알맹이는 어디 있지?
“이 기사, 중국 정부에서 꾸민 거겠지?”
“이 언론사 뒤에 중국 정부가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니까.”
롄윈강시와 주변 도시의 피해가 너무 컸다.
이에 중국 정부는 인민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있지도 않은 영웅을 만들어 전면에 내세웠다.
누가 봐도 뻔히 보이는 수작이지만, 사람들은 중국 정부의 언론 통제에 금방 넘어갔다.
덕분에 난, 인민을 구하고 도시를 구한 영웅이 됐다.
‘여기까지만 보면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
당연하겠지만 그들이 앞세운 영웅은 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영웅의 행보라며 내세운 영상 속 주인공은 분명 나였다.
어디서 날 닮은 헌터 하나 찾아 영웅 퍼포먼스를 한 것이다.
상진이 말처럼 역시 중국, 짝퉁 클라스가 어디 가는 게 아니었다.
“안 억울하냐? 그 자리, 네 자리잖아.”
중국 가서 영웅 대접받을 것도 아니라 딱히 억울할 건 없었다.
오히려 내게 향할 시선을 모두 끌고 가서 고마웠으면 고마웠지.
다만 영웅 흉내 내는 헌터가 나보다 많이 못생겼다는 것, 그건 좀 기분 나빴다.
이왕이면 잘생긴 놈으로 하지.
“딱히. 못생긴 것 빼고.”
“못생겨? 농담이지? 너보다 훨 잘생겼는데?”
“아닌데? 이 녀석 나보다 엄청 못생겼거든?”
근데 녀석, 표정이 많이 불순한데, 한 대 때릴까?
“미ㅊ···. 그, 그런가?”
“누가 봐도 그렇거든.”
“... 근데 이거 봐봐. 어디서 찾았는지, 영상 속 영웅이 네가 아니냐고 막 DM 보내는 거 있지.”
말 돌리기는, 하는 행동이 곰 같아서 적당히 넘어가기로 했다.
“세상에 똑똑한 놈들 많네.”
“이거 봐. 이런 DM이 한두 개가 아니야. 그래서 내가 SNS에 한마디 했지.”
중국 갔을 때 찍은 사진을 상진이가 SNS에 올린 걸 본 이들이었다.
“뭐라고?”
“너 이제 각성한 지 두 달 좀 넘었다고. 그리고 그 당시에는 각성하고 한 달밖에 안 됐다고.”
상식적으로 각성 한 달 막 넘은 헌터가 재앙급 괴물을 상대한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안 믿는 게 당연했다.
“말해도 상관없는데.”
“진짜 말해도 돼?”
“말해도 안 믿을걸?”
“하긴, 오히려 중국에서 적극적으로 아니라고 하겠지.”
내 쪽에서 긍정하는 순간 자신들이 거짓말한 게 되니까.
‘그렇지 않아도 요즘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놈들이 몇 있던데.’
중국에서 보낸 놈들인가?
아니면 한성?
아직 어디에서 온 놈인지 모르니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여차하면 정리할 생각도 있었다.
분신의 위력도 테스트하고, 분신 재료도 수급하고.
솔직히 안효성 같은 일반인이 아닌, 헌터를 베이스로 한 분신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더 정확할 것이다.
각성한 지 얼만 안 된 장한나의 뼈로 만든 분신이 일반인인 안효성의 것보다는 능력 면에서 뛰어나긴 했지만, 크게 두드러진 차이점은 없었다.
그러니 현장에서 오래 활동한 육체 계열 기프트를 지닌 빌런의 뼈로 분신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것들은 지금 가진 분신들보다는 훨씬 강할 게 분명했다.
‘이거 보면 나도 확실히 정상은 아니야.’
그나마 불굴이 있어 이 정도지, 20년간 마모된 정신이 회귀했다고 바로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것도 이상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몬스터를 향한 두려움도,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도 들지 않은 지금이 나을 수도 있었다.
‘사는 데 불편함만 없다면 말이지.’
지금이 딱 그랬다.
언제나처럼 지금 같은 날이 계속되길 바랐다.
- 작가의말
하루 쉬고 월요일에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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