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중국 여행.
내겐 상진이 아버지를 구할 명분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준비했다.
플랜은 간단하다.
중국 여행을 떠난다.
여행 중이던 아들이 우연히 출장 중인 아버지를 만난다.
그리고 몬스터가 나타나 혼란한 상황에서 아들 친구의 도움으로 탈출한다.
이 정도면 우연을 가장한 것치고 완벽한 플랜 아닌가?
아니면 말고.
‘아저씨도 우리가 롄윈강시에 온 것에 대해서 별 의심 안 하실 거야.’
일단 여행 루트는 베이징을 거쳐, 칭따오, 롄윈강시를 생각하고 있었다.
미래에는 사라질 게 분명한 먹거리들 이번에 가서 최대한 많이 먹어 볼 계획이었다.
“그래서 언제 출발할 건데?”
“내일.”
“뭐, 미친놈아?!”
왜 이렇게 놀라?
내가 준비 안 했을까 그러나?
“내 짐은 뒤에 있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작은 짐가방이었다.
부족한 건 가서 사도 됐다.
그 정도 돈은 남겨 뒀다.
“내가 그걸 왜 걱정해! 내가 걱정이지. 내일 당장 어떻게 출발해!”
“비행기 표도 다 끊고 호텔 예약도 마쳤어. 넌 그냥 몸만 챙겨. 근데 여권은 있지?”
“와 나 돌아버리겠네. 내가 어쩌다 이 미친 새끼랑 동기가 됐지? 시간만 되돌릴 수 있다면···. 아오! 진짜!”
왜 저 진짜라는 말에 진심이 느껴지지?
근데 시간을 돌리고 싶다고?
나중에 불사조라도 소개해줘야겠네.
그땐 잡는 건 네가 해라.
놈한테 한 번 죽어봐서 아는데, 진짜 뜨겁더라.
그 고통 너도 한 번 당해봐야지.
우린 친구니까.
**
“어머, 아들~! 무슨 꽃다발이야?”
“어? 오다가 엄마 생각나서 하나 샀어. 예쁘지?”
“그래, 예쁘다. 군대 제대하더니 철들었네. 우리 아들.”
상진이를 껴안은 어머니께서 녀석의 엉덩이를 톡톡 두드리신다.
젊은 시절 배우로 활동하셔 그런지 중년에 다다른 지금도 곱다.
물론 주연급은 아니고 조연급으로 잠깐 활동하다 은퇴한 걸로 안다.
“아 쫌, 친구도 있는데.”
“어머, 내 정신 좀 봐. 함께 온 친구는 누구니?”
“있어, 웬수라고.”
“이렇게 잘생긴 친구에게 웬수라니!”
짝!
그래, 너 맞을 줄 알았다.
내 속이 다 시원했다.
“아오, 아파!”
“호호. 우리 아들이 이렇게 엄살이 심해.”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 처음 뵙겠습니다. 상진이 친구, 강진혁입니다.”
“어머, 네가 진혁이구나. 상진이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어. 반가워. 어서 와.”
지금은 평일 낮, 직장인인 아버님과 고3 수험생인 소영이는 집에 없었다.
“이게 다 뭐니?”
“빈손으로 오기 그래서 가족분들 선물 좀 샀습니다.”
“좀이 아닌데? 고마워. 과일 잘 먹을게.”
‘전생에 귀한 아들을 죽인 것에 대한 사죄입니다.’
물론 이 말은 속으로만 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 벌어지지 않을 일이었다.
내가 더는 미칠 일 없을 테니 말이다.
상진이 어머니가 차려주신 점심을 얻어먹고 저녁까지 녀석의 방에서 뒹굴었다.
그러고 보니, 방안 가득 여자 아이돌 사진이 있었다.
앨범도 여럿 있고.
‘맞다. 녀석 여자 아이돌 좋아했지?’
슬쩍 물어보니 나이도 소영이보다 어린 애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돌, 미래에는 사라지는 직업이었다.
그만큼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었다.
뒹굴다 보니 저녁이 됐고, 자연스럽게 녀석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대격변 이후 해가 떨어지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세상이 됐다.
그래서 대부분 학교와 회사가 해가 있을 때 업무를 마쳤다.
“이거 그리즐리 웅담즙 아닌가? 꽤 비쌀 텐데.”
“괜찮습니다. 그 정도는.”
“아빠, 이 녀석 헌터야, 헌터. 돈 잘 벌어.”
상진이가 은근히 밑밥을 잘 깐다.
눈치가 빨랐다.
“그래도 그리즐리가 얼마나 귀한 놈인데.”
“고작 재앙 1급 몬스터인데요.”
몬스터는 시간 차를 두고 등장했는데 그게 재난, 재앙, 멸망 순이다.
그리고 각각은 3등급으로 구분해, 최종적으로 총 9단계로 구분했다.
세상에 처음 등장한 몬스터는 재난 단계로, 이 단계의 몬스터는 총기나 화기로 사냥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후 세상이 몬스터에 적응할 때쯤 나타나 다시 한번 세상을 혼란에 빠트린 재앙 단계부터는 화기는 통하지 않고 헌터의 마력으로만 사냥이 가능했다.
참고로 현재 단계에선 멸망 등급 같은 건 없었다.
아직 등장하지 않은 탓이다.
멸망 등급 괴수가 최초로 등장하는 곳이 중국이었다.
그게 다음 주였다.
“재앙 1급이 어디 보통이야? 총도 안 통하는 놈들이잖아.”
상진이 아버지께 드린 선물은 우리 집 창고에 있는 것 좀 털어왔다.
위급환자가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 치료를 책임지는 아버지에게 목숨을 구한 헌터가 한둘이 아니었다.
대가도 겨우 밥값 정도만 받았기에 고맙다며 개인적으로 들고 온 선물들이 창고에 가득했다.
어머님께 드린 트롤 재생 크림도 창고에 쌓인 선물 중 하나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창고에 어떤 선물이 사라졌는지 모를 것이다.
애초 선물에는 관심이 없었다.
있다면, 나중에 쌓아둘 데 없으면 단체에 기부하는 정도가 아버지가 보이는 관심의 전부였다.
‘유통기한 지나 버려지는 것보다 이렇게 선물로 사용하는 것이 낫지.’
그렇다고 유통기한 지난 걸 드린 건 아니다.
그래도 상진이 부모님께 드릴 선물인데, 최근에 들어온 걸로 유통기한까지 꼼꼼히 챙겼다.
“우와, 색깔 봐. 부드럽기는 또 얼마나 부드러워. 고마워요. 누구랑은 정말 다르네요. 진혁 오빠는.”
“야, 내가 어때서? 네가 잘했으면···.”
“난 너라고 말 안 했는데?”
응?
이건 내가 알던 둘의 관계가 아닌데?
내가 아는 둘은 지금처럼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이가 아니었다.
‘데면데면하기는 했지.’
상진이 가족과의 인연은 상진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장례식장에서부터 시작이었기에 조금 우울한 분위기가 있었다.
지금처럼 밝지 않았다.
아까 차를 타고 오면서 동생을 보고 ‘웬수’라고 했던 상진이를 보고 깨달아야 했는데 그걸 눈치 못 챘다.
그렇다고 지금 분위기가 싫다는 건 아니었다.
조금 조용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던 소영이의 밝은 모습이 썩 나쁘지 않았다.
“뭐, 좀 다른 것 같긴 하네.”
“아빠가 봐도 그렇지? 아빠 아들이랑 확실히 다르지?”
“흠흠···. 네 엄마 아들이 좀 그렇지.”
“당신 아들이라 그렇죠.”
뭔가 이상하게 이어지는 대화지만, 좀처럼 끊기지 않는다.
신기하게.
‘너 집에서 이렇게 사는구나? 불쌍한 자식, 형이 좀 더 신경 쓸게.’
그나저나 소영이는 악마양의 붉은 털로 만든 캐시미어 코트가 마음에 드나 보다.
하긴, 내가 보는 눈이 좀 있지.
참고로 선물 중 유일하게 내 돈 들여 산 거다.
그래서 생색 좀 냈다.
“안에 영수증 있으니, 마음에 안 들면 교환해도 돼.”
“아니에요. 정열의 붉은색 마음에 들어요. 근데 이제 8월이라, 나중에 수능 끝나고 입고 다닐게요.”
“그래, 아직 8월이라 악마양은 좀 더울 거야.”
한여름에 악마양털로 짠 코트라니, 너무 앞서간 면이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저걸로 끝, 악마양 코트는 더 생산되지 않는다.
다음 악마양은 내년에나 등장할 테니까.
흔치 않은 몬스터라 그랬다.
“근데 이거 악마양이요? 그거 재난 3급 몬스터 아니에요? 엄청 비싸다던데?”
“재난 3급 몬스터의 털이라 쉽게 해지지도 않으니, 아끼지 말고 입어.”
총알도 막을 수 있는데, 어지간해서는 헤지지 않았다.
“아, 네!”
선물이 먼저 오가서 그런지 저녁 식사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불쑥 찾아온 날 불편해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뇌물도 순조롭게 줬겠다, 이제 이곳에 온 목적을 말해야 할 때가 됐다.
상진이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
“흠흠, 아빠. 저 해외여행 좀 갔다 올게요.”
“갑자기?”
“네. 복학 전까지 시간 좀 있잖아요.”
아, 이 녀석 대학생이구나.
그걸 계산 못 했네.
앞으로 함께 일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겠다.
솔직히 앞으로 대학 타이틀 아무 쓸모도 없는데 때려치우라고 하면 욕먹겠지?
“그래, 나쁘지 않네. 그래서 언제 출발할 건데?”
“내일이요.”
“뭐?”
“일단···. 중국이라고 했지?”
상진이 날 보며 묻는다.
내가 물주라 그런가?
“응.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고 먹거리도 많잖아.”
“그렇다네요.”
“이 시국에 해외여행 하려면 돈이 많이 들지 않을까?”
당연한 걱정이었다.
하지만 녀석에게는 나라는 헌터 카드가 있었다.
제법 든든할 거다.
“얘 헌터야. 아빠.”
“그게 왜? 여행 경비는 너랑 반반해야지.”
“아닙니다. 군 생활하며 상진이에게 받은 게 많아 이번에 보답하려고 합니다.”
“내가?”
“우리 상진이가?”
“우리 오빠가?”
“이 녀석이 그럴 리가 없는데?”
다들 반응이 왜 이래?
너 그렇게 믿음을 못 주는 아들이고 오빠였냐?
아까 이상하게 이어지는 대화를 보면 그런 것 같긴 했지만.
근데 나한텐 왜 그런 거냐?
목숨까지 버려가며.
‘설마, 너 이 새끼, 불순한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지?’
그런 거면 진짜 죽인다. 너.
“뭐, 뭐야? 다들 왜 그렇게 봐? 나 상진이야! 한상진!”
“네가 한상진이라 그렇지.”
“사람이 저렇게 뻔뻔해서야.”
“나 저런 거 드라마에서 본 것 같아.”
“엄만, 저런 저급한 드라마 본 적 없는데?”
“20년 전에는 저런 대본 심심찮게 돌지 않았어?”
“없었다니까요.”
집안에서 상진이 위치 잘 알았다.
힘내라. 서열 꼴찌.
과연 반등의 기회가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가정의 행복을 위해 네 한 몸 희생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긴 하다.
‘어차피 고생은 네가 하지, 내가 하는 게 아니니까.’
**
베이징은 생각보다 더웠다.
공기는 회귀 전보다 더 안 좋았고.
시야가 온통 뿌옇기만 했다.
길을 걷는 사람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을 정도였다.
저기, 어떤 놈은 얼굴 전체를 가리는 방독면을 쓰고 있었다.
‘살려면 뭔 짓을 못 해.’
몬스터가 등장한 후 사람들은 도시로, 도시로 밀려들었다.
그건 공장 시설도 마찬가지였다.
도시를 중심으로 많은 공장이 들어서며 삶은 질은 하락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살기 위해서는 공산품이 필요했으니까.
‘베이징에는 마력 발전소가 없나?’
마력 발전, 아직 등장 안 했나?
그러고 보니 멸망급 몬스터가 등장한 후부터 마력 발전과 관련해서 이야기가 들렸던 것 같다.
공기가 이럴 줄 알았으면 베이징 안 오는 건데, 조사가 미흡했다.
그냥 마카오 거쳐서 상하이 들렀다가 롄윈강시로 갈걸.
거긴 여기보다 공기도 좋고 볼거리도 먹을거리도 많다고 들었는데.
“으, 숨 막혀. 여기 공기 왜 이러냐?”
“그러게, 좀 그렇네.”
“넌 괜찮아?”
“헌터잖아.”
이런 미세먼지쯤은 불괴로 해결 가능했다.
역시 멸망급 기프트 불괴가 있어 든든했다.
“묘하게 수긍되는 게 재수 없네. 전역하면 헌터 부러워할 일 없을 줄 알았는데. 바로 옆에 떡하니 헌터가 있으니.”
“너한테 재수 없다는 말은 부럽다는 말이구나. 잘 알았다.”
“알긴 뭘 잘 알아. 재수 없다는 말이 왜 그런 식이 되는데!”
군대에서 하도 헌터 뒤치다꺼리만 해서 그렇다.
도축작업을 할 때면 몬스터를 잡았을 헌터들을 싸잡아 욕하고는 했다.
나도 그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군인인 우리는 현장 뒷정리나 하면서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는데, 헌터들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돈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시샘.
물론 몬스터 사냥이 현장 뒷정리보다 훨씬 위험했지만, 어디 사람 감정이 그러나.
‘감정하니 생각나네.’
헌터의 사냥이 끝나서 현장에 도착하면 마물 사체를 수거하는 우리를 보고 비웃음을 날리는 헌터가 상당했다.
서로 사는 처지가 다르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니 모든 군인이 헌터를 재수 없게 여기는 거다.
‘그게 다 질투지. 질투.’
전역했다고 이런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 작가의말
3편에서 상진이와 소영이의 관계성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상진이 말이 맞을 것이다.
난 녀석에게 여동생이 있다는 걸 그의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처음 알았다.
군대라는 특수성을 생각했을 때, 소영이처럼 예쁜 여동생이라면 존재 자체를 숨기는 게 현명했다.
근데 소영이를 ‘웬수년’, ‘동생년’이라고 부를 정도였나 싶다.
소영이가 조금 조용하고 우울한 얼굴을 하고는 했지만, 둘의 사이는 썩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했다.
내 기억이 틀린 건가?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수정 전엔 현실 남매 사이로 적었는데, 위의 문장으로 수정했습니다.
(이전 문장은 저장하지 않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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