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먼 우주에서 돌아오는 중 ☽

굴참나무의 기억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완결

이웃별
작품등록일 :
2016.01.25 14:04
최근연재일 :
2016.02.09 18:39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6,074
추천수 :
276
글자수 :
205,656

작성
16.02.09 18:32
조회
371
추천
6
글자
27쪽

18. 향기가 보여준 것(1)

DUMMY


신 선생님은 나와 재이를 거실로 안내한다. 안내한다기보다는, 현관문을 열자 바로 안마당과의 통로 역할을 하는 개방된 거실이 나왔다. 카펫 하나 없는 바닥에는 윤이 나는 타일이 깔려 있다. 옷차림이나 머리모양은 남루해도 신 선생님은 할머니만큼 청결을 강조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흰색 바탕에 박혀있는 여러 가지 연한 색상의 타일들은 상하좌우로 대칭이 이루어지도록 기하학적으로 수놓아져 있다. 커다란 마름모의 꼭짓점이 터키석으로 장식된 벽난로에 닿아있고 양쪽으로는 S자를 변형시킨 여러 형태의 문양이 점차로 작아지면서 바닥 전체에 흩어져 있다. 이제는 유명해져버린 카두베오족의 전통 문양을 모방한 것인데, 두 눈이 정상인 사람들에게는 문양의 대칭과 비례관계 때문에 착시현상을 일으켜 바닥을 렌즈처럼 볼록하게 보이게 할 게 분명하다.


돌출된 벽 옆에는 침엽수 한그루가 커다란 화분 속에서 자라고 있다. 학교 연구실에는 고무나무였는데 여기에는 정 반대 느낌의 분비나무이다. 균형이 잘 잡혀있는 그 분비나무 때문인지 벽난로 옆에는 원형 테이블이 하나 놓여있을 뿐 진열장 같은 수납공간은 어디에도 눈에 띄지 않는 텅 빈 홀인데도 휑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벽감은 옅은 파란색 계열의 페브릭이고 곳곳에 통나무로 만든 카누, 토기, 가면, 가죽 옷, 화살촉 등 사학자들이 좋아할만한 물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벽 중앙의 가장 높은 곳에는 박제된 물소 머리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입을 벌리고 있다. 물소가 괴로운 소리를 내며 울부짖는 것 같아 나는 얼른 시선을 돌린다. 어느 구석을 봐도 신경심리학자보다는 인류학자나 민속학자 취향의 거실이었다. 무슨 상관인가. 직업과 취미가 같을 필요는 없다. 실험실에서 희생된 고양이나 개, 쥐들의 머리가 전시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누딘이 있는 올리비아의 이렐리가 매우 아프리카적이라면 신 선생님의 거실은 단순하고도 반복적인 패턴 속에 모든 대륙을 압축해 넣은 듯하다. 서구적인 질감, 동서양이 맞닿는 곳에서 나온 색감, 북아프리카의 냄새, 아메리카 인디언의 전통이 가미된 거실은 잔디가 깔린 잘 정돈된 안마당과의 통로로써 매우 훌륭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나를 압도하는 것은 이런 무게 있는 장신구며 타일의 상징적인 문양이 아니라 냄새이다. 이곳은 마음을 흩트리는 어지러운 냄새들로 가득 차 있다.

바닥과 비슷한 모양의 타일로 장식된 원형 테이블에 세 사람 분이 세팅되어있고 신 선생님은 우리를 그 곳으로 안내한다. 소파라고 해야 할까, 자수정 색으로 염색된 가죽커버가 씌워진 2~3인용 긴 의자 3개가 원형 테이블에 맞춰 둥글게 배치되어있다. 타일이 깔려있는 딱딱한 테이블과 폭신하고 긴 보라색 의자. 이상한 조합이다. 재이가 긴 의자 하나에 먼저 앉았고 나는 세팅에 맞춰 같은 의자의 한쪽 끝에 앉는다. 신 선생님은 돌출된 벽 뒤에 교묘하게 가려진 간이주방으로 들어간다. 입구에서는 분비나무 때문에 눈치 채지 못했는데 매우 세련된 오픈 형 주방이다.


후각계를 자극하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냄새의 출처는 벽의 네 모서리에서 타오르고 있는 향유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이 매캐한 향기는 재이를 통해 이미 알고 있다. 나는 곤두서는 신경을 달래며, 신 선생님을 좀 더 객관적으로 대하는 것이 옳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신 선생님은 샐러드와 라자냐를 샴페인과 몇 종류의 과일, 올리브 등이 간단하게 차려져 있는 테이블에 내온다. 테이블 중앙에는 불을 켤 준비를 마친 램프가 놓여있다. 테이블과 똑같은 높이에서 시작되는 창문 덕분에 그나마 시선을 둘 곳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창은 밀폐되어 있지만 정원에서 자라는 수십 종류의 허브와 야생화들의 향기가 보이는 듯하다. 이런 계절엔 정원에서 이야기를 하는 편이 훨씬 기분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날씨가 좋아도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신 선생님은 이 냄새에 의지해 뭔가를 하려 할 테니까.


“나는 독신이고, 채식 주의자가 된지도 벌써 6년째 되었지. 그래서 내가 와인을 마시지 않는다고 하면 혹시 금욕주의자가 아니냐는 눈초리를 보내오는데, 오, 그건 절대 아니지. 그 증거가 바로 이 샴페인이라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


나는 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별로 감동을 받지는 않지만 준비한 샴페인은 매우 고급인 모양이다. 신 선생님의 오른쪽 뺨에는 만족스러운 듯 깊은 볼우물이 파인다. 많은 사람들이 얼굴에 나타나는 자신의 연륜을 숨기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 신 선생님은 젊었을 때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자신감이 생기는 타입이다.


“산야가 특별손님인가 봐요?”


재이에게서는 오늘 축축하게 이끼가 낀 숲에 오랫동안 살고 있는 늙은 고양이 같은 냄새가 난다. 지난번의 플로럴 부케보다는 이게 좀 더 재이의 체취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향수를 뿌리지 않는 게 제일 낫지만.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여기 오는 손님은 모두 특별손님이니까. 내가 자네들 둘을 한꺼번에 부른 이유는, 두 사람의 성향이 매우 대치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야. 그런 사람들이 더 재미있는 토론장을 만들 수 있지. 서로가 너무나도 다르면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도 커지는 거니까. 배려라기보다는 존중이라고 해야 할까? 너무나도 다르니까, 이해를 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거지. 그러다보면 아무리 다른 사람이어도 결국 비슷한 감정을 지닌 인간이라는 사실을 저절로 깨닫게 되는 거야. 또 이렇게 함으로써 사적인 일은 될 수 있으면 거론하지 않게 되고, 토론에 제약이 생기는 만큼 표면적인 즐거움에 도취될 수 있기 때문이라네. 인간이라는 동물은 원래 욕심꾸러기에다가 소심하고 상처입기 쉬워서 깊이 알아갈 수록 서로를 구속하고 할퀴고 싶어 하는 법이니까.”


신 선생님은 정직하지 않다. 단순히 토론을 위해 내키지 않는 학생을 강제로 집으로 초대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사적인 일을 거론하지 않기 위함이라니, 1차면담 때부터 그렇게 사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으면서. 신 선생님은 세 개의 글라스에 샴페인을 따른다. 이미 취해 버린 듯한 기포가 흔들흔들 올라온다.


“그러니까 표면적으로만 알고 지내면 된다, 이 말씀인가요? 깊은 대화보다는 추론에 의지해 상대방을 평가하는 위험에 노출되는 게 상처 입는 것보다는 낫다, 그거로군요? 그렇다면 선생님은 잘못 택하셨어요. 저는 이 애를 보자마자 사적인 얘기가 하고 싶어지는데 어떻게 하죠?”


재이는 벌써 신 선생님과 친하게 지내고 있는 듯하다. 주인에게 발톱을 드러낸 고양이처럼 가르릉거리지만 애교스러울 뿐 전혀 해를 끼칠 태세는 아니다.


나는 무엇을 위한 토론인지도 모른 채 두 사람의 변화를 지켜본다. 재이는 확실히 취하고 있다. 샴페인을 마시고 있지만 재이를 취하게 하는 것은 샴페인이 아니다. 호박마차에서 만났을 때 취한 듯 느껴졌던 그 느낌이다. 이 방의 네 귀퉁이에서 흘러나오는 향유가 그녀를 취하게 하는 것이다. 신 선생님도 평소와는 달리 그다지 안정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짧은 턱수염을 손으로 빈번하게 문지르고 샴페인을 조금씩 자주 마시고 있다. 한마디로 두 사람 다 조금 불안정해보이고 들떠있다. 그리고 나의 상태를 점검하자면, 나 역시 재이만큼은 아니지만 조금씩 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샴페인을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이건 식물들을 짠 즙인데 한번 마셔볼 텐가? 한 모금 마시면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쓰지만, 몸에 좋은 약은 쓰다는 말이 있지.”


신 선생님은 머그컵에 걸쭉한 초록색 액체를 따르며 말한다. 재이는 그걸 보자 토하는 흉내를 낸다.


“저도 사양하겠습니다. 제게 왜 초를 보내셨고 왜 이곳으로 불러들였는지를 먼저 알고 싶습니다.”


내가 취했다는 증거는 이런 것이다. 이런 식으로 누군가의 눈을 똑바로 보며 거절할 수 있고 질문할 수 있다는 것은 평소의 내가 아니라는 뜻이다.


“왜냐고? 자네는 이미 그 향초의 위력을 체험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나의 초대에 응한 게 아닌가?”


“향초의 위력이요? 저는 아닙니다, 할머니가 하셨죠, 돌아가시던 날. 저는 그걸 병원 쓰레기통에 넣었을 뿐입니다. 아마 방사능물질들을 처리하는 병원 폐기장으로 들어갔겠지요. 할머니는 말기 암환자였으니까요.”


“오, 아쉽군. 하지만 실망은 이르네. 이제 곧 그 향의 진짜 위력을 체험하게 될 거야.”


신 선생님은 기묘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왼쪽 입꼬리만 치켜 올라가 불균형을 이루며 일그러지는 얼굴은 우현을 보는 것처럼 기분이 나쁘다.


“긴장을 풀어. 너는 너무 긴장을 하고 있어. 그런 상태로는 아무도 네게 다가가지 못할 거야. 단 한 사람에게만 다가가는 걸 허락한 사람 같다고. 그걸로 만족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세상은 그렇게 혼자서 혹은 둘이서만 살아가는 곳이 아니잖아.”


재이가 ‘단 한 사람’을 강조하며, 의도적으로 가슴을 앞으로 내민다. 그게 누구인지는 물어볼 것도 없다. 뛰어난 관찰력을 지니지 않았더라도, 재이 정도의 관심만 있다면 수업이 끝날 때 강의실에 찾아오는 미류를 얼마든지 볼 수 있었을 테고 타이밍이 맞으면 아침에 함께 등교하는 것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미류는 지난주에 4번이나 할머니 집 소파 신세를 졌다. 올리비아에게 남자친구가 생겼으니 집에 안 들어가 주는 게 효도하는 거라나.


“단 한 사람이라?”

신 선생님은 재이의 잔에 샴페인을 채워 주고 각각의 앞접시에 샐러드와 라자냐를 조금씩 덜어준다.


“그런 애가 있어요. 둘이 어떻게 친구가 됐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산야와는 정 반대의, 저와 산야의 차이 정도가 아니라, 고양이와 퓨마 정도의 차이가 느껴지는, 그런 애가 있는데 얘를 바라보는 눈빛이 마치 새끼를 돌보는 어미사자나, 조금 더 나아가 연인 같다는 느낌마저 들죠. 뭐, 둘이 잘 어울려요. 두 사람이 함께 다니는 걸 보면 누구라도 비슷한 생각을 할 거예요. 설사 산야가 남자라는 걸 안다고 해도 말이죠.”


재이가 뭐라고 하든 마음을 닫아 건 내게는 귀울림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신 선생님이 일러준 주소지에서 택시를 타고 재이는 나를 이곳까지 데리고 왔다. 무슨 이유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빙빙 돌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게 말이든 뭐든. 수줍어서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하는 것과, 그것을 완곡하게 말하려고 혹은 감추려고 의도적으로 말을 돌리는 것은 다르다. 이미 온 몸이 말을 하고 있는데, 말을 만들어내기도 전에 체온이 말해주고 분비물이 말해주는데, 거짓말을 듣고 있으면 언제나 고독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진짜 약속장소를 숨기니 비밀스럽고 스릴이 있지 않아?”

택시 안에서 재이가 말했다.

“전혀.” 나는 그때 벌써 기분이 상한 것이다.


“흥미롭군. 그 학생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는 걸?”

신 선생님이 나를 보며 말한다.


“이게 무슨 토론인지는 모르지만, 저는 이런 잡담을 나누기 위해 온 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제 사생활을 공개할 생각도 없습니다. 교환할 만큼 두 분의 사생활에 관심이 있지도 않으니 이제 일어서야할 것 같네요.”


“오, 너무 서두르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실은 7~8년 쯤 전까지만 해도, 나는 가끔 법무병원에 청이 씨를 만나러 내려가곤 했지. 그때 청이 씨에게 가끔 면회를 오는 아이가 있었다고 하더군. 면회라기보다는 병실 밖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가버리곤 하는 정도였는데 모두들 그 애가 산야 자네, 바로 청이 씨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지. 간호사에게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으니까. 유정휘 씨가 아니었다면 병원의 모든 관계자들이 오랫동안 속았을 거야. 차마 엄마를 직접 만날 용기가 없는, 버림받은 아들로 말이야. 처음 듣나 보지? 유정휘 씨는 자네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많나보군. 그 애가 어떻게 그곳까지 찾아갔는지는 모르지만 왜 거기에 갔는지는 짐작하고 있네.”


신 선생님은 테이블 중앙에 있는 램프를 켠다.


“궁금한 건 그 애에게 직접 물어보면 되니까, 더 이상의 용무가 없으시다면 저는 이 악의적인 분위기에서 그만 나가고 싶습니다.”


“왜 항상 그렇게 피하려고만 하고 도망가려고만 하는 거지? 네가 게이면 어떻고 동성애자면 어떻고 암사내면 어떻다는 거야? 태아일 적에 안드로겐의 노출을 적게 받은 게 어째서 죄라는 거야? 어째서 받아들이지 못할 운명처럼 거부해야 하는 거지? 가장 나쁜 사람은 약자를 궁지에 내모는 비겁한 사람이야. 네가 뭐든, 너는 너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잖아. 그거면 된 거 아니야?”


재이의 목소리는 또렷하지만 어딘가 어색하다. 거실의 공기는 점점 탁해지고 동시에 무겁게 두통이 밀려오고 있다. 몸의 분비물과 섞인 재이의 향수 냄새가 향유와 뒤섞여 공기 중에서 취한 듯 흔들거린다.


“어쨌든 난 그런 얘기를 하러 여기에 온 건 아니야.”


“그렇다면 왜? 자네는 내가 불러들였다고 했지만, 선택은 어디까지나 자네가 한 거야. 전화로 거절해도 될 텐데 일부러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신 선생님은 끈질기게 묻는다. 내가 오겠다고 한 이유를 이미 알고 있고 그 답을 자신이 쥐고 있다는 듯 오만한 표정이다. 그렇다. 나도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엄마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어쩌면 엄마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조금 자신이 생겼기 때문에 왔는지도 모른다. 이젠 사람들이 엄마 이야기를 꺼내도 귀를 막거나 피하지 않을 자신이 생겼기 때문에. 식물로 가득한 엄마의 집은, 집이라고 하는 내 고정관념을 깨트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모든 사실들에 의문을 품게 해주었다. 엄마는 정말 어떤 사람이었을까? 정말 나를 버린 게 맞을까? 그 대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을 신 선생님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이상하지? 그토록 분석을 좋아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의 내부는 조금도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 내부가 너무 혼란스러워서인가? 양자의 세계에서처럼 관찰하는 행위 자체가 자네의 내부를 교란시키는가? 아니면 자네의 의식이 자네의 감각을 따라가지 못하는가? 그럴지도 모르지. 의식이라는 것은 경험에 보편적인 지식이 결부된 산물이니, 결국 자네의 정신세계도 보편성에서 그렇게 멀리 벗어날 수는 없는 법이지. 그래서 요동치는 자네의 감각을 표현할 방법 또한 익힐 수 없었겠지. 자네가 여기에 온 이유 또한 그 때문이 아닐까 하네. 자네가 그 유전자를 물려받은 청이 씨가 그랬듯, 그녀의 쌍둥이 자매가 그랬듯 그 요동치는 감각들이 자네의 의식을 지배할까봐 두려워서 말이야. 내가 우울증의 망령에 시달리는 것처럼 자네 역시 얼마간의 확률로 잠재되어 있을, DNA의 저주에 시달리고 있는 거라고.”


신 선생님의 회색 눈에서 나오는 광채는 광기에 가깝다. 눈빛이라는 것은 보통 눈동자에서 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눈을 덮고 있는 눈꺼풀과 근육들, 속눈썹 등에 의한 착각일 뿐이다. 안구는 하나같이 무표정하고 놀란 듯 둥글게 열려있을 뿐이니까. 하지만 홍채가 가느다랗게 조이고 있는 신 선생님의 동공에서는 정말로 뇌에서 전달되어 온 의지가 광섬유처럼 빛나고 있다. 그 광기어린 눈빛은 질식할 것만 같은 향유 냄새와 함께 내 목과 가슴을 휘어 감는다.


머릿속이 울렁거린다. 속이 좋지 않은 것과는 다르게 사물들이 약간씩 일그러져 보이고 몸의 균형 감각이 떨어지는 것 같다. 사물들처럼, 냄새들도 일그러지고 확대 해석된다.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는 향유 때문이다. 이 냄새들이 후각뇌를 자극하고 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는 않았지만 갈고리이랑발작(측두엽간질의 하나)의 전조가 바로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이런, 이런. 그런 우울한 표정들은 짓지 마세요.”


나는 신 선생님에게 거의 기대다시피 몸을 눕히는 재이를 바라보며 창문을 좀 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겁쟁이예요. 우울증의 망령이니 DNA의 저주니 하는 것은 진짜 겁쟁이들이나 하는 얘기죠. 얼마간의 확률이라니, 그렇게 생각한다면 더욱 괜찮은 것 아닌가요? 목석같은 선생님이 무슨 우울증의 망령에 시달린다고 그러세요. 차라리 새들의 군무 얘길 해요, 우리.”


“목석도 우울증에 시달리곤 한다는 걸 모르나보지? 하긴, 자연의 무작위성 앞에서 나무들은 초연하다고, 침묵으로 일관하며 운명을 받아들일 줄 안다고 노래 부르는 시인들에게 다들 쇠뇌를 당한 거야. 목소리 큰 새들의 말뜻도 알아듣지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피가 붉지 않은 목석의 기분을 알아챌 수 있겠나? 차라리 등대해파리를 노래하는 편이 낫겠지.”


“등대해파리요?”


“지구상에서 가장 불행한 불멸의 등대해파리 말이야.”


“선생님은 자살의 유혹에 시달리고 계시는군요?” 내가 묻는다.


“이것은 일종의 두려움이야. 파기되고 해체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 모든 기력이 소멸된 뒤에는 죽음 앞에서 초연해질 수 있겠지만, 지금은 우울증 따위에 지고 싶진 않아.”


“선생님은 결코 자살할 분이 아니에요. 그러니 그런 괜한 두려움 따윈 버리시는 게 옳아요. 그런 것이 정말 두렵다면 종교를 가지세요.”


그리고 잠시 부자연스러운 침묵이 흘렀고 ‘그날은 미안했어.’ 라는 말로 재이가 침묵의 얇은 표층을 두드린다.


“새들의 군무, 그 얘길 좀 해도 되겠지? 여기, 이런 분위기니까 그런 얘기도 가능할 것 같잖아. 그 군무를 주도한 사람이 너희 엄마였다니, 솔직히 나는 매우 놀랐어. 너와는 이미지가 너무 맞지 않아서 말이야······. 그래서 내 스스로도 많이 당황했나봐. 잘못한 건 나였는데 너에게 화까지 내고.”


재이는 삐딱하게 기울어진 몸을 일으켜 똑바로 앉으려고 노력한다.


“나는 그 사건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신비롭게 받아들이고 있어. 설마 새들이 자기 의지로 그곳에 모여 군무를 추고 흩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인터넷을 뒤져봐. 배후에 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압도적이야. 그건 이상한 사건이라고 생각해. 새들의 군무를 직접 본 사람들이, 너도 직접 보았지? 그날 넌 수업시간에 조용히 나갔어. 너답지 않게 말이야. 분자생물학시간이었지. 그래, 어쨌든 군무를 직접 본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들어보면 그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 다른 광경을 보았음을 알 수 있어. 그날 네가 본 건 뭐였니? 어떤 사람은 거기에서 삶을 보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과거의 가장 수치스러운 장면을 보았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냥 새들이 까맣게 모여들었던 것뿐이라고 주장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도 잊고 있었던 기억이 불꽃처럼 흔들리며 지나갔다고도 해. 검은 색 옷을 입고 춤추는 여인의 동영상을 보면 분명 새들을 지휘하고 있는 듯 보여.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새들을, 아니면 새들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뇌를 조정했던 걸지도 모르는 일이지.”


“사람들의 뇌를 조정하는 건 대중이지. 희생자는 마녀가 되어 처형당하는 거고.”


“그렇게 생각해? 그럼 좀 더 흥미로운 얘기를 해줄게. 그 여인에 대해 떠돌고 있는 정보야. 자신의 어린 아들을 산 채로 땅 속에 묻었다지. 그보다 더한 이슈가 어디 있겠니? 미안, 너희 엄마였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 나는 벌써 이 모든 정보들을 수집하고 있었어. 그녀의 버려진 아이가 너였다니, 정말 놀라워. 그래서 네가 특별하게 느껴졌던 걸까? 너에게서는, 과장을 조금 보태서, 천상의 아름다움 같은 것이 느껴져. 그것은 겉모습 때문이 아니라 네가 산 채로 죽음을 맛보았기 때문일 거야. 그리고 살아남았기 때문에. 그래서 모든 저속한 것들은 네게 다가가지 못하게 된 거야.”


재이는 반 정도 남아있는 샴페인을 단숨에 마셔버린다. 신 선생님은 재이의 잔을 채워주고 자신은 머그컵에 녹즙을 따라 마신다.


“그리고 유정휘 씨, 그 분은 춤추는 여인을 좀 질투했던 게 아닐까? 이건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은 아니고 그냥 내 생각일 뿐이야. 유정휘 씨는 63세 때까지 공연을 했던 분이고, 안무가로서도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지. 무용수가 독립적으로 그토록 길게 반짝일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성공이겠지. 하지만 더 젊었을 때는, 아무리 당시에 천재적인 무용수로서 명성이 자자했다고 해도, 그래서 더욱 불안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딸이긴 하지만 춤의 신동이 나타나 세상이 떠들썩해지자 그 명성이 전설적인 무용수에서 그저 신동을 발굴한 안무가로 한 단계 하락하는 걸 걱정했을지도 모를 일이지. 물론 그걸 하락이라고 말하는 건 옳지 않을 거야. 하지만 본인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는 거지. 그렇지 않고서야 그 여인이 그렇게 오랫동안 병원에서 지낼 이유가 없었을 것 같아. 아무리 정신 병력이 있는 ‘존비’살인미수범이라고 해도 말이지. TV에서 본 대로 그녀는 오래도록 병원에 갇혀있으면서 정신능력을 키웠던 게 아닐까? 그래서 새들과 사람들의 뇌까지 조정할 수 있게 된 걸지도 몰라. 물론 어디까지나 낭만적인 내 추측일 뿐이지만.”


재이가 이번에는 내 쪽으로 바싹 다가왔다. 나는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뒤로 물러설 곳도 없다. 재이의 가슴에는 작은 점들이 돋아있고 윤기가 흐르는 피부는 탈피한 직후의 파충류처럼 축축하고 부드럽고 연약해 보인다.


“네 머릿속으로 말도 안 되는 추측을 하든 말든 그건 네 맘이지만 함부로 말하지는 마. 생각은 네 안에서만 힘을 발휘하지만, 말은, 그것을 듣는 사람 모두에게 영향을 미쳐. 생각은 네 것이지만 말은 네 것만은 아니란 말이야. 할머니는 그런 분이 아니셨어. 그래, 나는 성정체성이 모호한, 그래, 그런 표현을 하고 싶다면, 암사내에 불과할지도 몰라. 그런데, 거기에다가, 나는, 나라고 하는 정체성도 못 찾겠다. 나는 평생 동안 중심을 잃고 휘청거려왔어. 생각해봐. 중심이 없으면 어떻게 살겠니? 지구가 없으면 달이 떠나듯, 태양이 없으면 행성들이 흩어지듯, 나를 잡아둘 중심이 없으니 나는 어딘가로 끝없이 흩어질 것만 같은 거야. 나에게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걸 잡아주고 있는 것이 할머니였어.”


내가 그런 말을 재이에게 했다. 한 번도 엿보려고 하지 않은, 두려움의 방 속에 있는 무엇인가가 꿈틀거린다. 재이의 눈은 풀어져있다. 긴장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없어서인지 내가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몸의 중심을 잃을 것 같다. 그런데도 무언가 집요하게 잡고 놓지 않는 끈이 있다. 다른 부분들이 취해서 흐느적거릴수록 의식의 어떤 부분만큼은 점점 팽팽하게 긴장한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아픔이 있어. 하지만 그게 견딜 수 없을 만큼은 아니라고 봐. 나 역시 찢어질 듯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며 나름대로 아픔은 있었어. 장마철이면 물이 고이고 곰팡이가 피는 반지하 생활, 그것도 월세 때문에 쫓기듯 이사를 다녔지. 엄마는 부업으로 와펜을 만들거나 구슬 같은 걸 꿰곤 했어. 그걸 수작업 목걸이라고 해서 몇 천원 몇 만원씩에 파는지는 모르지만 엄마는 하나에 4원, 5원씩 받으며 하루 종일 구슬을 꿰시더라. 넌 그렇게 삐까뻔쩍한 주상복합아파트에 살면서 한 팩에 2,3만원 씩 하는 딸기를 먹고, 생일 땐 근처 레스토랑에 가서 6, 7만원 짜리 코스를 먹지만, 나는 그런 생활 상상도 못해. 하지만 나는 그 가난을 견딜 수 없는 무엇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 그냥 언젠가는 바뀔 유연한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을 뿐.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야. 어떤 사람은 내가 생각해도 끔찍할 정도의 고통을 겪고 있는데, 그걸 견딜 수 없는 정도의 무엇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럴 수도 있단 말이야. 견딜 수 없다고 말하며 마음의 문을 닫는 사람은 겁쟁이들이야.”


재이가 샴페인을 마시고 다시 입을 연다.


“너는 엄살쟁이야. 그 남자애는 너에게 어떤 존재인 거야? 친구? 애인? 친구든 애인이든 어느 쪽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너는 여자인 내가 봐도 예쁘장하거든. 마음이 설렐 정도로. 그렇지만 여전히 의문이 생겨. 갑자기 네 얼굴이 밝아진 건 반가운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왜 그렇게 밀어내는 거니? 정말 너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을 뿐이야. 너는 얌전한 들고양이 같잖아. 그런 소리 들어봤니? 처음 들었니? 얌전하지만 아무도 너를 길들일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래서 다가가보고 싶었어. 너에게는 버림받았다는 상처가 무엇보다도 크고, 그만큼 말 못할 고뇌도 있겠지만, 그냥 마음을 조금 나누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거니? 너만 특별하고 너만 견딜 수 없는 아픔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말라고. 사람들은 모두 크든 작든 나름대로 상처와 고뇌를 가지고 있는 거야.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저기 앉아있는 바로 저 아저씨야. 저 우울증의 망령에 시달리는 목석같은 아저씨, 도저히 속을 알 수 없는 저 망할 영감탱이······.”


꼬부라지는 혀만큼이나 통제가 안 되는 손가락으로 재이는 신 선생님을 가리킨다. 망할 영감탱이라는 말을 듣고도 신 선생님은 히죽히죽 웃고 있다. 담배연기에 휩싸인 코와 뺨은 노랗게도 보이고 파랗게도 보인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흙빛이 감도는 치아가 빛난다. 사물들이 고유한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경계선이 허물어지는 걸 느낀다. 얼굴에서는 열이 난다. 신 선생님은 팔짱을 낀 채로 엄지손가락을 세워 턱을 만지고 있다. 온통 냄새의 소용돌이이다. 촛불과 향유와 알코올램프 그리고 재이로부터 발산되는 강한 페로몬 냄새,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저돌적이고 자신만만한 암컷 냄새. 신 선생님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자리를 만든 것일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0

  • 작성자
    Lv.23 tulip642..
    작성일
    16.05.13 22:22
    No. 1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16.05.13 23:02
    No. 2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23 tulip642..
    작성일
    16.05.15 06:12
    No. 3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16.05.15 11:42
    No. 4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79 서백호
    작성일
    16.08.31 05:44
    No. 5

    공개 댓글입니다.
    그리고 저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아요.
    단 좋은 사람을 만나면 가끔 마시죠.
    담배는 2010년 생일에 맞춰서 끊었고요. ㅎㅎ
    어떻든 긴 글 읽고 갑니다. 건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16.08.31 18:41
    No. 6

    아! 그러시군요^^ 감사합니다. 호랑이님.
    그럼 건강하게 건필이요!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7.04.26 18:27
    No. 7

    여하튼 재이가 션션해서 좋네요.
    산야는 별님을 많이 닮은 듯~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17.04.27 17:40
    No. 8

    제 동생도 그런 말을 했는데, 전 별로 모르겠어요 xD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5 희망녀
    작성일
    17.05.28 06:56
    No. 9

    처음 만나자마자 사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려면 도대체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죠? 정말이지 부럽네요. 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17.05.29 23:56
    No. 10

    희망님. 산야의 매력은 진실됨이 아닐까 해요. ^^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굴참나무의 기억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2 기억의 원소 #10 +18 16.02.09 396 9 5쪽
31 22. 시간의 색깔 (3) +9 16.02.09 500 6 17쪽
30 21. 시간의 색깔 (2) +2 16.02.09 539 7 12쪽
29 20. 시간의 색깔 (1) +8 16.02.09 346 6 16쪽
28 19. 향기가 보여준 것(2) +10 16.02.09 575 6 13쪽
» 18. 향기가 보여준 것(1) +10 16.02.09 372 6 27쪽
26 기억의 원소 #9 +6 16.02.07 342 6 10쪽
25 17. 최초의 기억 (2) +6 16.02.06 537 6 17쪽
24 16. 최초의 기억 (1) +8 16.02.06 409 6 15쪽
23 15. 공중의 방 (2) +6 16.02.04 522 6 7쪽
22 기억의 원소 #8 +6 16.02.04 828 6 10쪽
21 14. 공중의 방 (1) +4 16.02.03 425 5 12쪽
20 기억의 원소 #7 +6 16.02.03 450 6 10쪽
19 13. 진실의 파편들 (3) +8 16.02.03 409 7 23쪽
18 12. 진실의 파편들 (2) +10 16.02.02 433 7 26쪽
17 기억의 원소 #6 +10 16.02.02 518 7 10쪽
16 11. 진실의 파편들 (1) +10 16.02.02 382 7 24쪽
15 기억의 원소 #5 +8 16.02.02 405 6 12쪽
14 10. 목각인형의 비밀 (5) +8 16.02.01 436 8 29쪽
13 기억의 원소 #4 +8 16.02.01 609 9 10쪽
12 9. 목각인형의 비밀 (4) +9 16.01.30 423 10 13쪽
11 기억의 원소 #3 +12 16.01.30 334 8 10쪽
10 8. 목각인형의 비밀 (3) +11 16.01.28 363 8 13쪽
9 7. 목각인형의 비밀 (2) +12 16.01.27 522 8 14쪽
8 6. 목각인형의 비밀 (1) +6 16.01.27 288 9 9쪽
7 기억의 원소 #2 +14 16.01.27 437 8 9쪽
6 5. 재회 (2) +10 16.01.26 438 9 15쪽
5 4. 재회 (1) +11 16.01.26 429 12 21쪽
4 기억의 원소 #1 +10 16.01.25 536 11 4쪽
3 3. 새들의 군무 (3) +16 16.01.25 406 11 17쪽
2 2. 새들의 군무 (2) +8 16.01.25 760 12 20쪽
1 1. 새들의 군무 (1) +14 16.01.25 1,345 18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