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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우주에서 돌아오는 중 ☽

굴참나무의 기억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완결

이웃별
작품등록일 :
2016.01.25 14:04
최근연재일 :
2016.02.09 18:39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6,072
추천수 :
276
글자수 :
205,656

작성
16.01.25 17:47
조회
535
추천
11
글자
4쪽

기억의 원소 #1

DUMMY

♔♔ 기억의 원소 #1


너는 그곳으로 간다. 꿈이 거울처럼 반사되는 전설의 고향마을, 세상과 자유롭게 소통하면서도 그렇게 하는 것이 결코 특별하지 않았던 그 시절로. 그곳은 네 안의 모든 시간이 흐르기를 멈춘 곳, 찬란한 빛이 고여 있는 존재의 근원지이며 별이 질 때마다, 그리고 계절이 지나갈 때마다 마음속에 만져지던 뭉클한 덩어리였고 밤마다 안개처럼 스며들어와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까지 너를 감싸곤 했던 그리움이었다.

바람만큼 가벼워진 너의 몸은 잿빛 도시를 빠져나와 들판을 가로질러 바다 건너, 해초 냄새 짙은 항구도시를 지나, 산을 넘고 다시 산을 넘어 너의 내부의 나침반이 가리켜온 바로 그 곳으로 간다. 산허리를 깎아 만든 붉은 길 가장자리로 위태롭게 서 있는 나무들, 산등성이 사이사이의 그늘진 습지에 숨결처럼 남아있는 푸른 안개, 구름 한 점 없는 투명한 하늘을 헤엄치듯 나는 새들, 작은 언덕배기를 끼고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 들려오는 집 몇 채가 모여 있는 산마을이 너의 착한 눈동자에 투영된다.

고향마을로의 문턱을 넘자 너의 내부가 끊임없이 속삭여 온 기억 저편의 나날들이 너울너울 춤을 춘다. 눈을 흐리게 했던 불투명한 비늘이 한꺼번에 떨어져 나간 것처럼 너는 눈이 부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박테리아처럼 번식하는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이 너를 휘청거리게 한다. 오랫동안 안개와도 같은 세계에서, 의식의 흐름조차 안개에 흡수된 채 희뿌연 정신으로 살다가 이제 막 아침 햇살을 받고 깨어난 사람처럼 너의 영혼은 놀라움과 기쁨으로 흐느낀다. 이곳에는 네 반쪽의 웃음소리가 언제나 시냇물 소리처럼 고여 있었다. 까르르르, 바위에 납작하게 몸을 숙이며 온 몸으로 웃던 그 웃음소리만 생각하면 어머니의 자궁 속까지도 기억해 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막막한 공간 속에서 천천히 육의 옷을 입고 있는, 그러나 아직 영靈에 가까운 두 작은 생명체가 행성처럼 떠있는 모습을.


너는 제일 먼저 굴참나무에게로 달려간다. 그 때로부터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지만 변함없이 위풍당당한 풍채로 주변의 풍경을 압도하고 있는 그를 보자 안도하여 맥이 풀린다. 굴참나무도 온 몸으로 너를 맞이한다. 그의 몸짓은 화려하고, 달콤하다. 육신을 내려놓으니 모든 것들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굴참나무는 너에게 일어난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고 있다.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다.

이곳에서 기도를 올리는 사람은 이제 없지만 여전히 흔적을 알아볼 수 있는 이끼 낀 돌 더미는 굴참나무가 신령한 당제목으로서 위상을 떨치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너는 튼튼하고 잘생긴 나뭇가지 하나를 골라 앉는다. 새들이 날아든다. 너는 두 다리를 나무 아래로 늘어트리고, 앉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너의 육신은 병원에 나무토막처럼 누워있고 여기까지 날아온 것은 육신과 분리된 무엇이니까. 의식일까? 영혼일까? 그러나 참 이상하게도 여전히 너는 두 다리를 느낀다. 그리고 두 손을, 손가락을, 심장을 느낀다. 버드나무 잎사귀처럼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을 느낀다. 뒷목 언저리가 약간 가렵다고도 느낀다. 손가락으로 목을 긁는다. 시원한 것 같다. 그러니까 너는 두 다리를 늘어트리고 여기, 굴참나무 위에 앉아있는 것이 맞다. 너는 굴참나무 위에 앉아 조용히 잠들어 있는 시간을 바라본다. 이것은 너의 내부를 흘러가는 시간이다. 너는 얼마나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던 것일까? 얼마나 오랫동안 내부에 몰입한 채 멈춰있었던 것일까? 굴참나무가 이것들을 흔들어 깨우고 있지만, 멈춰선 너의 시간은 여전히 바위덩어리처럼 무겁기만 하구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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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0

  • 작성자
    Lv.49 난정(蘭亭)
    작성일
    16.01.30 11:21
    No. 1

    아, 기억의 원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3 tulip642..
    작성일
    16.04.18 20:28
    No. 2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16.04.19 00:14
    No. 3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22 셀폽티콘
    작성일
    16.04.22 02:23
    No. 4

    처음 세 문단만 묶어서 신춘문예 시 부분에 내도 되겠는데요.
    첫 문단의 '너는 그곳으로 간다'를 두번째 문단의 앞에 반복, 세번째 문단의 앞에서 각각 반복 시켜서(혹은 세번째만 '너는 그곳에 선다' 정도로 약간의 파격을 넣어서) 약간의 운율만 숨겨놓으면 그것 자체로 시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문단은 이인칭 소설을 쓰셨네요.
    아, 진짜 손발이 찌릿하네요.
    아무런 줄거리 없이 그냥 이 부분만 읽어도 심장이 벌렁 거리네요.
    이건 소설에서 작가를 떼어놓고 읽을 수가 없는 부분인데... 쓰실 때 우셨나요?
    지금 제가 느끼는 것처럼 펜을 들고, 혹은 자판 앞에서 손발을 벌벌 떠셨나요?
    .........
    혹시 신춘문예 두드려 보신 적 있으신가요?
    국내에서, 아니 세계적으로 2인칭 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요?
    사실, 신경숙의 '외딴방' 읽고 나서 저도 몇 번 2인칭 소설을 써보려고 발버둥을 쳤는데,...웃기지도 않을 글이 되더라고요.
    제가 돈 있으면 출판사 차려서 님을 스카웃하고 싶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9 서백호
    작성일
    16.08.04 19:18
    No. 5

    별님의 글은 이때에도 지금도 아름답군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16.08.04 22:08
    No. 6

    호랑이님. 감사합니다^^
    아름다움 저 너머의 것도 보아 주세요 ^ㅁ^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5 희망녀
    작성일
    17.05.05 05:13
    No. 7

    님의 생각을 알기까지는 저는 시간이 많이 걸릴것 같네요. 그건 제 이해력이나 감수성이 부족해서겠죠? 또 올게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17.05.05 16:50
    No. 8

    처음에는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조금 지나면 곧 알게 되실 거예요. 희망녀님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1 토이월드
    작성일
    17.05.13 17:40
    No. 9

    기억의 원소... 정말 의식일까요? 영일까요? ^^
    저와 비슷한 느낌을 받으신 분들이 많으시네요.
    댓글들을 보니 ㅎㅎ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17.05.17 23:42
    No. 10

    행복님.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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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참나무의 기억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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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기억의 원소 #10 +18 16.02.09 396 9 5쪽
31 22. 시간의 색깔 (3) +9 16.02.09 500 6 17쪽
30 21. 시간의 색깔 (2) +2 16.02.09 539 7 12쪽
29 20. 시간의 색깔 (1) +8 16.02.09 346 6 16쪽
28 19. 향기가 보여준 것(2) +10 16.02.09 575 6 13쪽
27 18. 향기가 보여준 것(1) +10 16.02.09 371 6 27쪽
26 기억의 원소 #9 +6 16.02.07 342 6 10쪽
25 17. 최초의 기억 (2) +6 16.02.06 537 6 17쪽
24 16. 최초의 기억 (1) +8 16.02.06 409 6 15쪽
23 15. 공중의 방 (2) +6 16.02.04 522 6 7쪽
22 기억의 원소 #8 +6 16.02.04 828 6 10쪽
21 14. 공중의 방 (1) +4 16.02.03 425 5 12쪽
20 기억의 원소 #7 +6 16.02.03 450 6 10쪽
19 13. 진실의 파편들 (3) +8 16.02.03 409 7 23쪽
18 12. 진실의 파편들 (2) +10 16.02.02 433 7 26쪽
17 기억의 원소 #6 +10 16.02.02 517 7 10쪽
16 11. 진실의 파편들 (1) +10 16.02.02 382 7 24쪽
15 기억의 원소 #5 +8 16.02.02 405 6 12쪽
14 10. 목각인형의 비밀 (5) +8 16.02.01 436 8 29쪽
13 기억의 원소 #4 +8 16.02.01 609 9 10쪽
12 9. 목각인형의 비밀 (4) +9 16.01.30 423 10 13쪽
11 기억의 원소 #3 +12 16.01.30 334 8 10쪽
10 8. 목각인형의 비밀 (3) +11 16.01.28 363 8 13쪽
9 7. 목각인형의 비밀 (2) +12 16.01.27 522 8 14쪽
8 6. 목각인형의 비밀 (1) +6 16.01.27 288 9 9쪽
7 기억의 원소 #2 +14 16.01.27 437 8 9쪽
6 5. 재회 (2) +10 16.01.26 438 9 15쪽
5 4. 재회 (1) +11 16.01.26 429 12 21쪽
» 기억의 원소 #1 +10 16.01.25 536 11 4쪽
3 3. 새들의 군무 (3) +16 16.01.25 406 11 17쪽
2 2. 새들의 군무 (2) +8 16.01.25 760 12 20쪽
1 1. 새들의 군무 (1) +14 16.01.25 1,345 18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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