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원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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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의 원소 #1
너는 그곳으로 간다. 꿈이 거울처럼 반사되는 전설의 고향마을, 세상과 자유롭게 소통하면서도 그렇게 하는 것이 결코 특별하지 않았던 그 시절로. 그곳은 네 안의 모든 시간이 흐르기를 멈춘 곳, 찬란한 빛이 고여 있는 존재의 근원지이며 별이 질 때마다, 그리고 계절이 지나갈 때마다 마음속에 만져지던 뭉클한 덩어리였고 밤마다 안개처럼 스며들어와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까지 너를 감싸곤 했던 그리움이었다.
바람만큼 가벼워진 너의 몸은 잿빛 도시를 빠져나와 들판을 가로질러 바다 건너, 해초 냄새 짙은 항구도시를 지나, 산을 넘고 다시 산을 넘어 너의 내부의 나침반이 가리켜온 바로 그 곳으로 간다. 산허리를 깎아 만든 붉은 길 가장자리로 위태롭게 서 있는 나무들, 산등성이 사이사이의 그늘진 습지에 숨결처럼 남아있는 푸른 안개, 구름 한 점 없는 투명한 하늘을 헤엄치듯 나는 새들, 작은 언덕배기를 끼고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 들려오는 집 몇 채가 모여 있는 산마을이 너의 착한 눈동자에 투영된다.
고향마을로의 문턱을 넘자 너의 내부가 끊임없이 속삭여 온 기억 저편의 나날들이 너울너울 춤을 춘다. 눈을 흐리게 했던 불투명한 비늘이 한꺼번에 떨어져 나간 것처럼 너는 눈이 부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박테리아처럼 번식하는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이 너를 휘청거리게 한다. 오랫동안 안개와도 같은 세계에서, 의식의 흐름조차 안개에 흡수된 채 희뿌연 정신으로 살다가 이제 막 아침 햇살을 받고 깨어난 사람처럼 너의 영혼은 놀라움과 기쁨으로 흐느낀다. 이곳에는 네 반쪽의 웃음소리가 언제나 시냇물 소리처럼 고여 있었다. 까르르르, 바위에 납작하게 몸을 숙이며 온 몸으로 웃던 그 웃음소리만 생각하면 어머니의 자궁 속까지도 기억해 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막막한 공간 속에서 천천히 육의 옷을 입고 있는, 그러나 아직 영靈에 가까운 두 작은 생명체가 행성처럼 떠있는 모습을.
너는 제일 먼저 굴참나무에게로 달려간다. 그 때로부터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지만 변함없이 위풍당당한 풍채로 주변의 풍경을 압도하고 있는 그를 보자 안도하여 맥이 풀린다. 굴참나무도 온 몸으로 너를 맞이한다. 그의 몸짓은 화려하고, 달콤하다. 육신을 내려놓으니 모든 것들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굴참나무는 너에게 일어난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고 있다.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다.
이곳에서 기도를 올리는 사람은 이제 없지만 여전히 흔적을 알아볼 수 있는 이끼 낀 돌 더미는 굴참나무가 신령한 당제목으로서 위상을 떨치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너는 튼튼하고 잘생긴 나뭇가지 하나를 골라 앉는다. 새들이 날아든다. 너는 두 다리를 나무 아래로 늘어트리고, 앉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너의 육신은 병원에 나무토막처럼 누워있고 여기까지 날아온 것은 육신과 분리된 무엇이니까. 의식일까? 영혼일까? 그러나 참 이상하게도 여전히 너는 두 다리를 느낀다. 그리고 두 손을, 손가락을, 심장을 느낀다. 버드나무 잎사귀처럼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을 느낀다. 뒷목 언저리가 약간 가렵다고도 느낀다. 손가락으로 목을 긁는다. 시원한 것 같다. 그러니까 너는 두 다리를 늘어트리고 여기, 굴참나무 위에 앉아있는 것이 맞다. 너는 굴참나무 위에 앉아 조용히 잠들어 있는 시간을 바라본다. 이것은 너의 내부를 흘러가는 시간이다. 너는 얼마나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던 것일까? 얼마나 오랫동안 내부에 몰입한 채 멈춰있었던 것일까? 굴참나무가 이것들을 흔들어 깨우고 있지만, 멈춰선 너의 시간은 여전히 바위덩어리처럼 무겁기만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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