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데드들의 등장
“아저씨, 아저씨는 나 덕분에 산거야. 밤의 숲이 얼마나 위험한데”
내 옆을 걷고 있던 피아가 자신이 없었다면 엘프들이 나를 구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지금처럼 같이 동행하는 것도 불가능 했을 거라며 생색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담한 키에 금빛 머리, 옆에서 걷고 있는 엘프가 생색을 내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엘프는 엘프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모에서 모든 것이 호감으로 느껴지니 말이다.
“그래 고맙다. 고마워”
엘프들로부터 구조 된 후 엘프들을 따라 그들의 마을로 향한지 꽤 시간이 지났다. 피아는 내 옆에서 걸으며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고 편하게 반말을 하라고 해서 말을 놓은 터였다. 피아는 지난번 베라딘 성 전투 이후 엘프 마을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고 한다.
“그럼 지금 다른 곳이 어떤지는 모르겠네”
“응 엘프들은 페쇄적인 편이라 다른 곳과 잘 교류를 안 해, 마침 베라딘 성에 있었던 이 피아라는 엘프가 특이한 경우라고 하더라고 인간 세상을 알고자 튀쳐 나간 엘프라고 할까. 엘프마을에 왔을 때는 외부에서 엘프가 왔다는 사실에 마을 사람들 모두가 깜짝 놀라더라고”
피아는 자신의 캐릭터인 엘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수소문 끝에 이곳에 찾아왔다고 한다. 피아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 출신의 엘프였고 이곳의 엘프들은 외부인이지만 엘프인 피아를 구성원으로 받아들였고 한다. 피아는 지금은 마을의 일원으로서 살고 있다고 했다. 내가 시나리오를 클리어 해 나가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피아는 순수하게 이곳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 무리는 뭐야? 마치 순찰대 같은 느낌인데?”
나와 동행하고 있는 엘프들은 무장을 갖춘채 주변을 경계하며 걷고 있었고 복면을 쓴데다 밤이 되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아얏
내 발이 나무뿌리에 부딪쳤다.
“아저씨 내가 밟은 곳만 밟으면서 조심히 따라와”
엘프들은 밤눈이 밝은지 횃불 하나 켜지 않았으면서도 울퉁불퉁한 숲길을 잘 걷고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인 나는 걸으면서 계속 이곳저곳에 부딪쳤다.
“순찰대라 그 표현도 맞아 최근에 이 숲속에 몬스터들이 대규모로 이동하는 일이 있었거든, 우리는 그 이유를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부대이고 지금 그 보고를 위해 돌아 가던 길이야”
몬스터의 대규모 이동, 아마 나는 그 이동하던 몬스터 무리 중 일부를 만났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대규모로 이동하던 이유는 알아냈어?”
“응, 그건...”
순간 일행에게 긴장감이 돌았다.
대장처럼 보이던 갈색머리 엘프가 갑자기 활을 쐈고 활은 무언가에 맞았다. 대장의 행동에 맞춰 엘프들 중 몇몇은 활을 쏘고 몇몇을 빠르게 표적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갑작스런 상황 변화를 따라가려고 이곳저곳 시선을 돌려보았지만 주변이 어두운데다 나무에 가려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말로 설명하기보다 직접 보는 편이 낫겠네. 따라와봐”
피아의 뒤를 쫓아 엘프들이 활을 쏜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는 먼저 뛰어간 엘프들이 이미 싸움을 끝내고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품속에서 병을 꺼내 그 속에 든 물을 자신들이 죽인 시체에 뿌리고 있었다. 시체에 물이 닿자 시체에는 마치 타는 것처럼 연기가 피어올랐다.
“산?”
“아니야 저건 성수야”
“성수?”
“응... 이리와서 보면 알게 될 거야”
피아의 안내에 따라 시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시체에 다가가자 역한 냄새가 코를 덮쳐왔다. 그리고 시체 주변에 모여든 날파리들이 피부에 닿았다. 시체를 보자 시체는 이미 몸 이곳저곳이 썩어 있었다. 방금 죽은 시체치고는 이상할 정도로 부패 정도가 심했다.
“혹시······.”
“맞아, 언데드야”
나는 아까 전 엘프들에 의해 구조되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나에게 쓰러졌던 놀도 어딘가 이상하기는 했다. 방금 죽은 시체의 피가 굳어서 덩어리 져 있던 것도 그렇고 시체 썩는 냄새가 너무 심했었다.
“언데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어 몬스터들은 언데드들을 피해 도망갔던 거고 우리는 이 상황을 보고 하기 위해 마을로 서둘러 가던 중이야”
피아가 끔찍한 냄새에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퀘스트 알림]
[새로운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피아의 설명을 듣고 있는데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피오드 숲의 엘프]
게이트랜드 서쪽에 위치한 피오드 숲은 오랜 시간 엘프들이 거주 한 곳입니다. 이곳의 엘프들은 숲에서 태어나 숲에서 죽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엘프들은 자연과 함께 살며 자연에 순종합니다. 죽음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그들은 자연스러운 죽음을 원합니다. 이곳에 등장한 언데드들이 어디서부터 나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자연의 뜻에 역행하는 언데드를 엘프들은 혐오합니다. 피오드 숲의 순찰대를 도와 엘프들에게 언데드들이 등장한 사실을 알리세요
클리어시 보상 :
피오드 숲의 엘프2 퀘스트 진행
엘프 종족의 호감도 +10
반가운 인연과의 재회
실패시 :
엘프 마을의 멸망
※ 해당 퀘스트는 연계 퀘스트입니다. 퀘스트 클리어하면 다음 퀘스트를 수행하실 수 있습니다.
이번 접속에서 목표가 정해졌다.
***
“선배!!!”
“나 바뻐!!!”
드림픽쳐스의 복도
사람들은 채현의 외침에 빠르게 걷고 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
도린은 어딘가로 빠르게 걷고 있었고 채현은 그런 도린의 뒤를 쫓고 있었다.
둘은 한참을 회사 이곳 저곳에서 쫓고 쫓았다.
“선배 이번 만큼은 절대로 그냥 못 넘어가 얘기 좀 해”
“하아 알겠어 일단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닐 듯 하니 사무실에서 얘기하자”
도린은 회사 내부를 이리저리 계속 돌며 채현과 대화하기를 피했지만 술래잡기가 끝날 기미가 없어 보이자 포기하고 채현과 함께 사무실로 향했다.
“그래서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건데?”
“나 방금 병원에 갔다오는 길이야 그런데, 지난 테스터들의 면회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어. 그리고 그것은 드림픽쳐스 대표의 요청이었다고 하고 말이야 바로 신. 도. 린.씨 당신의 요청 말이야”
채현은 잔뜩 화가나 도린이 입고 있던 흰 가운의 옷깃을 붙잡고 몰아 붙였다.
쿵
도린의 등이 벽에 부딪쳤다.
“야 그렇게 화내지마. 그게 내 요청이기도 하지만 환자들의 요청이기도 했어”
“환자들의 요청??”
“그래, 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면회 금지를 해달라고 했다고 너도 알잖아 요새는 가족도 환자의 동의가 없으면 면회 못하는 거, 나도 어쩔 수 없었어”
“그래도 나는 면회가 가능해야 하는 거 아니야?”
“서류상으로만 가능할 뿐이지 환자들이 아무도 만나고 싶어하지 않아서 나도 면회를 못하는데 너라고 가능할 리가 없잖아”
“흐음 그래?”
채현의 손의 힘이 살짝 풀렸다.
“그래서 그 사람들 상태는 괜찮아?”
“아니야 회복되는 듯 하다가 최근에는 혼란스러운지 자신관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하지 않고 있어, 담당의도 한동안은 아무도 안 만나는 게 좋다고 하고 있고 이게 다야”
어딘가 미심쩍었지만 납득할만 했기에 채현은 손의 힘을 풀었다.
도린은 채현이 힘을 풀자 옷 매무새를 고쳤다.
“그래 알았어 그 사람들 케어 잘 부탁할게 나는 우리 회사가 비도덕적인 기업이 되지 않았으면 하거든.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한 기업들 말이야. 지금은 현장을 떠났지만 그래도 의사잖아 우리? 산재로 병원에 온 환자들도 많이 치료했고 말이야. 그리고 정말 나한테 숨기는 다른 게 있는 건 아니지?”
“알아. 너만 의사냐 나도 의사야. 그 부분을 내가 잘 할게. 나 꽤 실력 좋았던 거 알잖아? 그리고 내가 숨기긴 뭘 숨겨. 모든 실무도 다 너가 보고 있는데 내가 무언가를 숨길 수 있겠어? 애당초 너한테 뭔가 숨기는 게 가능하기는 해? 바로 들킬걸?”
“그건 그래”
자신에 대한 이야기에 채현은 빠르게 수긍했다.
“그럼 김현수 씨, 김현수 씨에 관해서는 숨기는 거 없겠지?”
“너 자꾸 왜그래? 김현수 씨는 그냥 테스터 중 한 명일 뿐이야, 우연히 시사회에 당첨돼 호라이즌을 플레이 했고 지금은 테스터로 선발돼 플레이 하는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너가 직접 선발했으니 잘 알잖아. 물론 플레이 결과가 좋아 우리가 주목하고 있으니 중요 인물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의문이 계속 남지만 도린은 정말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채현은 어디까지나 의문일 뿐이고 더이상 추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았어. 하지만 나중에 나한테 무언가 숨겼다는 걸 알게 되면 그때는 각오해”
“없어, 없어 숨기는 것 없어 너는 왜 자꾸 김현수 씨한테 관심을 갖는 건데, 지난번에 직원들이 너가 김현수씨와 같이 밥을 나눠 먹었다는 이야기도 들리던데 너... 설마..”
“뭐?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내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잘 알잖아. 그건 절대 말도 안돼”
황당함에 채현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건 그렇지”
도린은 채현이 김현수를 좋아할리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채현의 고백을 차버린 게 다름 아님 자신이었으니까 김현수는 채현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밥을 나눠 먹다니? 그건 또 무슨 얘기야?”
채현이 다시 도린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섰다. 무서운 채현의 표정에 도린은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씻고 나온 너가 김현수 씨 식판에 있는 음식을 먹으려 친밀하게 대화를 나눴다는 소문이 있던대?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너가 유혹하는 것 같았다고 소문이 파다해. 그리고 다른 테스터들과 다르게 김현수 씨는 너가 전담마크하기도 하고 단 둘이 얘기하는 경우도 많고 말이야”
황당함에 입을 벌리고 이야기를 듣던 채현은 이내 악마같은 표정을 지으며 씨익 웃기 시작했다.
“어머? 또 남 이야기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얘기를 하고 있나보네 호호호. 다들 요새 일이 너무 없었나 봐 쓸데없는 이야기할 시간들도 있고 말이야”
얼굴은 분명 웃고 있지만 잔뜩 화가 나 있는 채현의 모습에 도린은 직원들의 안부가 걱정되었다. 하지만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이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선배, 정말로 위험한 일하거나 하는 건 아니지?”
관심이 다른 곳으로 간 채현이 사무실을 나가려고 하자 도린이 안심할 때였다. 채현이 재차 물었다.
“걱정마, 지금은 나보다 네 이미지부터 걱정할 때인 것 같은데? 우리 얼음 마녀께서 이러다 사랑꾼으로 별명이 바뀌겠어”
“진짜!! 내가 그 별명 안 좋아하는 거 알잖아”
“그래 그래 미안하다 가봐”
“선배 뭐가 됐든 너무 혼자 짊어지지 말고 가끔은 얘기도 해줘”
“그래 알았어. 진짜 지금은 그런거 없어, 김현수 씨 덕분에 개발이 순조롭기도 하고 말이야”
“알았어”
대화가 마무리 되고 채현이 방에서 나갔다.
도린은 채현을 떠나보내고 한동안 말없이 문을 쳐다보았다.
무은 아무 미동 없이 그대로였다.
도린은 진짜 채현이 갔다는 실감이 나자 한 숨돌리며 자신의 의자에 털썩 앉았다.
도린은 가만히 창 밖을 바라보았다.
얼음마녀...
냉철해 보이는 채현의 별명이었다.
채현이 감정의 변화를 보이는 것은 자신의 앞에서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채현은 공과사를 확실히 구분하는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멋있는 커리어 우먼으로 여기지만 누군가는 마녀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린은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잠들어 있는 수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들을 재우기도 깨우기도 하고 있는 채현을 생각하면 문득 유명한 서양의 동화가 생각났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
마녀에 의해 잠들어 버린 한 명의 공주를 깨우기 위해 용감히 마녀와 싸우는 사람들 등장하는 이야기
흥미진진하고 아름다운 동화지만 현실은 동화와 다르다.
만약 공주가 스스로 잠이 들기 원했다면?
공주를 구하기 위해 도전하고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희생이 헛된 것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면서도 그것들을 외면한 채 계속 잠들어 있고 싶어하는 공주
파티에 초대 받지 못해 화를 낸 말레피센트보다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심에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을 모르는 척하는 공주가 더 마녀에 어울릴지도 모른다.
도린은 어쩌면 현실에서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보다 잠자는 숲속의 마녀라는 제목이 어울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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