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공주와 왕자 (2)
“선배!!”
채현이 사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간다.
“아! 또 왜? 너 근신처분으로는 성이 안 차냐? 나 그래도 사장이야? 이렇게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건 해고 시켜달라 그거지?”
“아니, 그건 안돼! 지금 일은 안하는데 돈은 들어와서 얼마나 좋은데”
채현이 살짝 비꼬면서 이야기한다.
“하아, 그래 이번에 또 무슨 일이야?”
말싸움에 해봐야 무슨 소용이겠냐는 생각에 도린은 채현의 방문 이유를 물었다.
“김현수 씨가 다시 접속한다며?”
“응? 아 그렇게 됐어 투자자 측의 요구도 있었고, 본인의 요청도 있어서”
탕
채현이 도린의 책상을 치며 말한다.
“그걸 말이라고 해, 김현수 씨 건강상태 제대로 체크했어? 정말로 접속해도 되는 상태인 거 맞아?”
채현의 행동에 도린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말했지, 본인의 요청이 있었다고······. 마치, 내가 테스터를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듯이 얘기하지마”
“그럼 아니야?”
“뭐?”
“김현수 씨, 선배의 조카가 겪은 화재 사건의 범인이던데? 그거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야?”
“너!!! 그동안 웬만한거는 넘어가줬지만 이번 것은 선을 조금 세게 넘는다? 그리고 그 사실은 어떻게 알았어?”
도린의 강한 반응에 자신이 조금 심했나 싶었지만 채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어떻게 알았는지 뭐가 중요해? 어쨓든 그런 거 아니야?”
“아니야! 나를 뭘로 보고 그리고 너 제대로 안 알아봤나본데 김현수 씨는 범인이 아니야”
“응?”
“범인이 아니라고 범인은 따로 있어, 그리고 그 사람은 이미 자신의 죄에 따른 처벌을 받았어”
“정말?”
의외의 말에 채현이 멍하니 있는데 도린이 화를 내며 말한다.
“이 얘기는 이제 그만해! 그리고 너 앞으로 사장실 출입금지야, 그리고 이제 팀장도 아니면서 김현수 씨일에 간섭하는 일도 그만하고, 도대체 김현수 씨일만 관련되면 왜 그러는 거야? 나 이번에 진짜 화났다!”
쾅
도린이 채현을 문 밖으로 내보내고 문을 쾅 닫는다.
의외의 말에 당황한 채현은 한동안 닫힌 사장실 문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다.
병원으로 가는 길, 채현은 스마트폰을 꺼내 옛날 뉴스를 검색해 보았다.
뉴스에 화재 사건의 범인은 김현수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범인이 아니라니?
이번 방문으로 단단히 화가 난 도린은 회사 내에서 채현의 방문이나 요청이 있을 경우 자신에게 보고하도록 했고 채현은 김현수를 만나러 갈 수도 없었다.
결국, 채현은 이 진실을 알 수 있는 인물을 만나러 병원에 갔다.
김현수 씨의 어머니...
그러고보니 지난번 방문때 김현수 씨의 어머니 반응이 묘하게 이상했었다.
그리고 지난 번 현수의 플레이 영상에서 현수가 했던 말...
설마, 싶기는 하지만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김현수 씨의 어머니를 만나야 했다.
“어머? 지난번에 오셨던 그분 이시네요? 현수는 잘 지내고 있나요?”
현수의 어머니 김은숙 씨가 반가운 얼굴로 채현을 맞이했다.
채현은 김은숙 씨에게 바로 본론을 얘기했다.
“어머님, 김현수 씨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은게 있어서 왔습니다. 부디, 진실을 말씀해주세요”
김은숙 씨의 눈동자가 불안으로 흔들린다.
“지난번에도 그렇고 아가씨는 현수와 어떤 관계이신가요?”
“네? 저는...”
“음.. 고민하시는 걸보니 그렇게 깊은 사이나 친한 사이는 아니신가 보군요. 하지만, 나쁜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아요. 우리 잠깐 걸을까요?”
김은숙 씨는 일어나 병실에서 나와 병원 앞에 있는 정원을 걸었다.
이동하며 긴 침묵이 이어지고 김은숙 씨가 마침내 침묵을 깼다.
“얼마전 의사 선생님께서 앞으로 길어야 한달 살 수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런...”
갑작스런 말에 채현이 말을 아낀다. 채현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라지만 이렇게 은숙을 찾아온게 잘한 것일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현수가 연락을 해왔어요. 현우를 찾았다고”
“김현우 씨를요?”
“네... 죽기 전에 현우를 보고 죽을 수는 있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제 삶을 돌이켜보다가 문득 현수가 걱정되더군요. 제 잘못된 애정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그애가 혼자 남겨질 생각을 하니 편하게 갈 수 없겠더군요.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아가씨께 부탁드릴게요. 아가씨가 알고 싶어하는 것 답변해드릴게요. 대신 우리 현수 잘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아가씨와 우리 현수가 잘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거는 아줌마의 주책 같고 현수가 외롭지 않게 가끔씩 연락하며 안부도 물어보며 지내주실 수 있을까요?”
“네, 자신은 없지만 노력해볼게요”
사실 부담스럽웠지만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솔직한 아가씨네요, 그정도만 해주셔도 될 것 같아요. 욕심 부리면 항상 될 것도 안 되더라고요. 우리 현수 아니, 현우 참 착한 아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김은숙씨가 고개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한다.
“역시, 김현수 씨가 김현우 인거죠?”
“네 맞아요. 옛날일이네요,”
김은숙 씨가 생각에 잠긴다.
“아가씨가 알고 싶어하는 진실을 말씀드릴게요, 쌍둥이인 현우, 현수를 낳고 얼마 안가 애들 아빠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죠. 혼자 남은 저는 얘들을 키울 방법이 없어 막막했고 이것저것 일을 하다보니 애들을 잘 돌보지 못했었죠. 현우는 몇 분 먼저 태어났지만 그래도 본인이 형이라고 현수를 챙기고 의젓하게 굴려고 노력하던 착한아이였죠. 반면에 현수는 제가 돌보지 못한 탓에 방황하며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담배와 술을 하며 질이 나쁜 사람들과 어울렸죠. 그러던 어느날 현수가 학교에서 IQ 검사를 했는데 IQ가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왔고 천재라는 것이 밝혀 졌습니다. 그동안 공부를 하지 않아 제대로 된 성적을 받아 본적이 없어서 몰랐던 거죠. 그리고 그때 저는 희망을 봤다는 생각을 했어요. 현수만 있으면 이 고생을 끝낼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게 제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것을 지금에 와서야 알게됐네요. 그 날 이후 저는 현수에게 집착하기 시작했어요. 과외도 시키고 간섭하기 시작했죠. 원래부터 자유분방하게 살던 아이였는데 제가 과하게 관심을 갖자 갑갑해 했던 것 같아요 현수는 옛날에 같이 놀던 친구들과 몰래 만나 술을 마시며 담배를 폈고 하필 제대로 끄지 않은 담뱃불이 옮겨 붙어 화재가 났죠. 그리고 저는 그 때 절대 해서는 안되는 선택을 했습니다.”
김은숙 씨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설마...”
“네 현수와 현우를 바꿔치기 했죠. 어차피 초범에 소년범이니 큰 처벌을 받지 않을 거다. 그렇다면 앞으로 장래가 창창한 현수보다 현우 너가 한걸로 하는 게 어떻겠냐고 현우를 설득했습니다. 현우 그 착한아이는 그말을 따랐고요. 둘은 쌍둥이였던 데다가 담뱃불로 인한 사고 였기 때문에 목격정보와 CCTV가 증거였죠 외양이 같은 둘은 외양이 같았기 때문에 경찰은 현우를 현수로 알고 잡아갔습니다.”
“자식한테 어떻게 그럴 실 수 있죠? 김현우 씨의 기분은 생각 안 하셨나요?”
말도 안되는 진실에 채현이 김은숙을 나무랐다.
“그때는 제가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간단한 처벌을 받을 줄 알았던 현우는 당시 여론이 악화되면서 큰 처벌을 받았고 자기 대신 형이 처벌을 받는 것을 본 현수는 저와 현우 둘다 미쳤다며 가족과의 연을 끊고 가출해 버렸죠. 그게 진실입니다. 우리 현우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도, 억울한 누명으로 주변 사람들의 사랑도 제대로 받지 못한 불쌍한 아이입니다. 제가 죽고 나서 현우가 외롭지 않게 잘 부탁드릴게요”
김은숙 씨가 무릎을 꿇는다.
“어머니 이러지 마세요”
채현은 곤란해 하며 김은숙 씨를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김은숙 씨는 요지부동이었다.
“제 잘못으로 인해 현우가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부탁드려요. 그 아이 지난번에 회사의 팀장님 이야기를 하더군요. 여자 팀장님이라는데 그 팀장님이 아가씨이죠? 그 아이가 조금 서툴더라도 아가씨께서 먼저 밀어내지는 말아 주셨으면해요 연인사이가 되줬으면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친구가 되어주세요”
김은숙씨가 눈물을 계속해서 흘린다.
주변에서 수군대기 시작하고 채현은 다시 김은숙 씨를 일으켜 세우려고 힘을 주었다.
“아 알겠어요. 어머니 그러니 일어서세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
계속해서 채현에게 약속을 받던 김은숙 씨가 잠들고 채현은 간신히 병실에서 나왔다.
“김현수 아니 김현우라고 해야하나. 김현우 이 인간은 정말 보면 볼수록 짜증이 나고 불쾌한 인간이었다. 인간이 도대체 얼마나 착해야······.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거지? 동생 대신에 처벌을 받은 것도 말도 안되는데 아니 엄마한테 그런 일을 당하고도 엄마 병원비까지 내며 돌보고 있었단 말이야?”
채현은 말도 안되는 진실에 하영을 불러 냈다.
취한 채현은 하영에게 모든 진실을 얘기하며 답답한 속을 풀어냈다.
***
“현수야...”
김현우와 어머니 김은숙이 잠들어 있는 김현수를 바라보았다.
김은숙 씨는 누워있는 김현수를 보며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 했고 건강상태를 고려해 나중에 다시 보기로 하고 병실로 돌려 보냈다.
“현수.. 아니 현우는 왜 저렇게 누워 있는 거죠?”
김현우가 묻는다.
“원인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만 과로와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의 사무실에서 피흘리고 쓰러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누워 있습니다. 모든 생체 신호는 정상인데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담당의가 현우의 말에 답변해준다.
이사장의 지시로 실시된 갑작스런 면회였지만 의사는 반가운 눈치였다.
“그런데 이 환자분 여자친구분 말고 면회 오신 분은 처음이네요. 최근에는 여자친구분도 오시지 않아 환자분이 많이 쓸쓸해 보였거든요”
옆에 있던 간호사가 말한다.
“여자친구요?”
“네? 모르셨나요? 자주 찾아오시던 여자 분이 계세요. 그 분도 우리병원 환자 분이라 기억해요. 자주 찾아와서 애틋하게 바라보시는 모습에 여자친구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신가요? 그분도 최근에는 병실에서 잘 안 나오시는 것 같지만요”
“저 그분을 뵐 수 있을까요?”
간호사와 의사가 동행한 해용의 눈치를 본다.
“흠흠 부탁드립니다. 비공식적으로요”
해용이 말한다.
간호사의 안내를 따라 찾아간 병실은 VIP룸 이었다. 하루 숙박에도 많은 돈이 들어가는 VIP룸의 장기 투숙객이 현수를 찾는 여자의 병실이었다. 병실의 명패에는 신유화라고 적혀있었다.
“아.. 이 여성분! 드림픽쳐스의 신도린 씨 조카로 기억합니다. 예전에 호라이즌의 투자를 하며 협력관계가 되면서 애물단지였던 VIP룸 중 하나를 싼 금액에 장기 대여 해드렸던 것 기억이 나요. 그때 수연이가 호라이즌의 테스터로 참여하는 조건으로 이분도 호라이즌의 테스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기를 들여 놨던걸로 기억합니다. 이 분이 아마 병명이······.”
“전신화상······.”
김현우가 작게 중얼거린다.
“네 맞아요 어떻게 아셨죠?”
“이 사람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신유화는 병실에 있는 기계를 통해 호라이즌에 접속해 있었고 대화를 할 수 없었지만 김현우는 이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 아니, 현수가 저질렀던 범죄의 피해자
신유화였다.
김현우는 자신이 이곳 호라이즌의 테스터가 된 것이 누군가가 의도를 가지고 한 일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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