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대
“이봐!!! 이봐!!!”
“이제 정신이 좀 드는가? 정신이 들었으면 어서 내려가서 치료받게 부상병은 이곳에 있어봤자 방해만 될 뿐이야”
백부장이 화살비를 방패로 막으며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이전에 나대신 죽어가는 모습을 봐서였을까 백부장이 너무나 반갑게 느껴졌다. 하지만 반가운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백부장에게 나는 방금까지 옆에서 싸우던 병사였다. 갑자기 다른 행동을 보인다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반가운 마음을 접고 백부장의 지시대로 야전병원으로 내려갔다.
야전병원...
나는 야전병원에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서 내부를 보았다. 이곳은 곧 적의 공격으로 무너진다. 이곳이 무너지는 것으로 인해 성의 사제들이 대거 죽었고 전황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야전병원이 무너지지 않게 이곳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지금 이들에게 도망치라고 얘기해봤자 미친X 취급을 받을 것이다. 내가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딘이 멀리서 다가왔다.
“앗 아저씨 다리 괜찮으신가요? 어서 빨리 안으로 들어오세요”
딘은 순진한 얼굴로 죽음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이제 곧 여기가 무너진다는 사실을 알면서 이곳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내가 아무말 없이 돌아서려는데 딘이 나를 붙잡았다. 나는 딘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발의 통증 때문에 그러지 못했고 딘과 실랑이를 벌이다 다른 사제들까지 합세해 결국 침대에 눕게 되었다. 그렇게 야전병원에 날아오는 불구정이를 다시한번 보았고 나는 회귀했다.
다시 야전병원...
딘이 나를 붙잡으려고 하고 있었다.
“꼬마야, 백부장께서 도와줄 사람을 찾던데 가서 도와줄 수 있겠니? 병원에는 내가 들어갈게”
거짓말이었지만 이렇게하면 지난번과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고 딘의 목숨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네! 아저씨도 빨리 치료받으세요”
딘은 한치의 의심도 없는 순진한 표정으로 대답하고는 백부장에게 갔다. 나는 다른 사제들이 바빠서 나를 신경쓰지 않는 틈을 타 야전병원에서 멀어졌고 전투지역 근처에서 병사들을 치료하던 사제에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이후 야전병원에 투석기가 던진 불타는 돌이 떨어지고 많은 이들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병원이 무너지자 딘은 나에게 찾아와 덕분에 살았다고 감사 인사를 했다. 역시 순진하고 착한 아이였다.
나는 당면한 문제가 해결되자 그때부터 이곳의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곳의 이름은 베라딘 성으로 성지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사제들과 여행객들이 오는 곳이었고 지금에 와서는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과 사제들이 늘어 북방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이곳은 몬스터들이 살고 있는 북쪽 숲 근처에 있어서 위험하지만 사제들의 신성력에 기반한 방어력을 갖추고 있어서 공성전을 장기전으로 이끌고 가는데 유리하였고 난공불락의 요새로 유명했다고 한다. 얼마전까지는...
최근 백전노장이었던 전임 성주가 갑작스럽게 죽은 후 많은게 바뀌었다. 후임자로 온 성주는 무능한 인물로 북쪽 숲 몬스터들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는 측근들의 만류에도 성지의 축제를 지원해야 한다는 이유로 성안의 병사들과 사제들, 각종 식량을 성지로 보내버렸다. 난공불락인 이 성이 무너질리 없지 않겠겠냐며 보냈다고 하는데 그 결과 적을 칠 병력이 부족해 공성만 지속하고 있었고 식량이 매우 부족해 주민들의 식량까지 공출하고 있었다. 그나마 장기간 버틸 수 있던 것은 유능한 병사들과 사제들의 활약 덕분이었다. 치료소가 불타자 나에게 사형을 내렸던 인물들 중 하나도 성주였다.
“전형적인 무능한 성주의 얼굴이었지...”
나는 성주의 얼굴을 떠올렸다. 지난번 백부장이 죽었을 때도 원군을 요청하러 보내는 병사에 자신의 아들을 끼워넣어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근에는 성주의 무능함에 전임 성주를 지금의 성주가 살해했다는 의혹마저 퍼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자네 이름과 소속을 밝혀라”
경비대원들과 경비대장으로 보이는 인물이 나를 찾아왔다. 경비대원들은 창을 나에게 향한채 경계를 하고 있었고 수상하다는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이곳저곳에서 이곳에 대해 묻고 다니는 것이 수상하게 보였던 것이다.
“아... 저...”
나는 당당하게 내 소속과 이름을 밝히려다가 큰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나는 나의 소속과 이름을 몰랐다. 아니 정확히는 내 캐릭터의 소속과 이름을 몰랐다. 이런 똥망겜... 기본적인 정보 하나 알려주는 것이 없었다. 이럴때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다.
“앗! 성주님!!”
경비대는 그대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핫하, 잘못봤나 보네요”
경비대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도망치려고 했지만 경비대장은 눈하나 깜박이지 않고 있었고 무표정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민망함도 잠시... 날카로운 금속이 내 살을 베었고 비릿한 피냄새가 퍼졌다. 나는 그대로 잡혀 감옥에 갇혔고 첩자로 몰려 온갖 고문을 당하다 회귀했다.
나 자신의 정보를 얻는게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내 캐릭터는 이상하리만치 아는 사람이 없었고 이름을 불리는 일조차 별로 없었다. 대충 아무나 붙잡고 내 이름을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다가는 미침X 취급 당하겠지... 하지만 지난번처럼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행동을 조심하면서 정보를 모으기는 어려웠고 나는 한 가지 각오를 굳혔다. 그래 한 번만 미친X이 되자. 나는 옆에 있던 병사를 붙잡고 물어보았다.
“저기 내 이름이 뭐지?”
어김없이 경비대장이 나를 찾아왔고 이번에는 감옥이 아닌 치료소에 구속된 채 붙잡혔다.
“아저씨 어서 빨리 정신을 찾기 바랄게요”
딘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내가 미친 것 같다고 경비대에 고한 게 딘이었다고 한다. 보고를 들은 경비대장은 계속된 전투로 인해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하고 나를 구속한 채 사제들에게 넘겼다. 딘이 착한 아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그 행동이 계속해서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있었다. 딘의 순진무구한 표정을 보고 있는데 가끔은 무척이나 얄밉게 느껴졌다. 똥망겜... 정말이지 무엇하나 도움 되는게 없구나. 그보다 최악은 지금 내가 묶여 있는 치료소가 곧 불에 타는 치료소라는 점이었다. 나는 그렇게 또다시 회귀하였다. 누군가 불에 타죽는 것이 가장 끔직한 죽음이라고 했던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이전에 수 차례 죽음을 경험했던 것이 아니었다면 정신을 놓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정보를 수집하는 나와 경비대의 실랑이가 몇 차례 반복되었다.
“저기 혹시, 손자라고 아시나요?”
“손자??”
“네, 손자”
“그게 자네의 소속과 이름인가?”
“아뇨 그 손자라는 분이 유명한 말을 남겨는데요 혹시 아실려나 모르겠네요”
“말? 무슨말?”
“바로 삼십육계 줄행랑이요”
도망치다 붙잡히고
“에잇 이판사판이다. 덤벼!!”
한번은 경비대장에게 덤벼보기도 했지만 몇 차례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
경비대장은 올곧고 엄격한 원리원칙 주의자로 융통성 없는 행동으로 인해 귀족들의 미움을 산 인물이었다. 실력을 따지면 더 높은 곳에 있어야 했지만 난동 부리는 성주의 아들을 체포했던 일이 문제가 되어 좌천되었다고 한다. 백부장에 경비대장까지 이곳이 왜 난공불락으로 불렸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덕분에 많은 방해를 받고 있었다. 내가 조금만 튀는 행동을 해도 어김없이 경비대장이 나타나 나를 방해했다. 이제와서는 한 가지 믿음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내가 이곳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면 반드시 경비대장이 나타난다는... 그리고 그 중 몇 번은 딘의 신고로 인해 경비대에 붙잡혔다. 하아... 딘... 딘이 많이 방해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딘을 죽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그래도 회귀를 반복한 끝에 이곳에 대해 기본적인 것들은 어느정도 알게 되었다. 내 캐릭터의 대해서도 기본적인 것은 알게 되었는데 내 캐릭터의 이름은 장이었고 가톤 남작의 동쪽 방위대 소속이었다. 나는 더 이상 특이한 행동을 한 이유가 없었다. 이제는 앞으로 나아갈 차례였다. 다시금 치료소가 불타던 밤이 되었다.
수상한 무리가 치료소 쪽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뒤를 밟았고 예상대로 그들은 치료소에 불을 지르려 하고 있었다.
“그만둬!!”
내가 갑작스럽게 등장하자 수상한 무리는 단검을 꺼내들고 나를 경계했다. 순간 단검 하나가 날아가 내 뺨을 스쳤고 뺨에서 살짝 피가 베어나왔다. 빠른 동작이었고 이들이 숙련된 자들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제 내 캐릭터를 움직이는데 문제가 없다고 해도 전투는 다른 이야기였다. 애초에 나는 누군가와 싸워본 적도 몇 번 없었다. 내가 그들을 세운 것은 한가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수상한 무리를 목격하였고 이번에는 일부러 아직 교대를 하지 않았다. 내 다음번 근무자는 전임 근무자가 없는 상황을 마주할 것이고 결과는...
“거기 누구냐!!”
역시 경비대장이 등장하였다.
Commen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