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특별지구
057화 – 평화 특별지구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는 문제는 화산폭발이나 지진에 비하면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재난이었다.
그렇기에 인류가 충분히 그것을 극복하리라 생각했고, 또 일면 그렇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나 예측할 수 있고, 대비할 수 있는 재난적 상황은 다른 형태의 환난을 불러오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경제적으로 융성한 도시들은 바다와 가깝거나 강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 해변과 강변 같은 전망 좋은, 비싼 부동산이 위치한 곳이 해수면 상승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서울만 해도, 한강 변의 비싼 아파트들은 수년 내에 기반 시설들이 모두 물에 잠길 형편이었고, 부산의 거대 주상복합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정치적으로도 부동산 경제에 민감한 대한민국은 곪은 것이 터진 셈이었다.
대한민국 정치는 부동산 거품을 미봉책으로 매번 겨우겨우 막아가며, 정권이 유지되었거나 혹은 바뀌어 왔다.
그런데, 미증유의 대 재난 앞에서. 그동안 키워온 거품이 일순간에 꺼져버린 것이었다.
큰일이었다.
게다가, 기존의 땅을 쓸 수 없으니 새로운 땅을 개발해야 했고. 그것은 새로운 거품과 환상을 가져왔다. 또 그것은 전 국민이 새로운 부동산 개발이란 도박의 병증에 중독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새로운 거품 역시, 새로운 욕망의 농간에 불과한 것이었고 더 큰 비극을 잉태할 뿐이었다.
진 장관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장관님. 아니 한국 정부는 그동안 뭐 했답니까?”
“나름 할 일은 한 모양입니다. 저지대의 침수 방지책들 속속 내놓았고, 또 효과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오히려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가 사람들을 더 불안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
“물에 잠기지 않게 하려고 뭔가를 한다는 것은 결국 침수 지역이란 것을 공인하게 되는 셈이니까요.”
“아 ··· ···”
“또, 그런 활동을 비밀리에 할 수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으니 ···.”
“...”
“게다가, 해수면 상승이 어느 지점에서 끝이 날것에 대해서 ...”
“...”
“누구도, 어떤 기관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니 사람들이 불안해하기 시작했고 ···.”
“그 불안이 중첩되면, 아 ···.”
“네. 한번 불안해진 사람들은 너도나도 부동산을 내놓기 시작했고 ··· 그러나 사는 사람은 없고 ···.”
“그렇게 도미노처럼 무너져버린 것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시겠지만, 한국의 특성상 부동산으로 끝이 난 게 아닙니다.”
“...”
“또 눈치 빠른 국외 자본들이 순식간에 빠져나갔고, 증시까지 무너진 상황입니다.”
“네? 부동산과 증시가 동시 폭락했다고요?”
“그렇습니다. 다른 나라 같았으면 폭동이 일어날 상황입니다. 지금 한국 정부는 IMF에 다시 손을 벌려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란 전언입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부동산, 증시 폭락했다고 한국이 다시 IMF를?”
“그게 ···. 부동산과 증시의 동반 폭락을 막겠다고.”
“?”
“연기금부터 다양한 자금을 편법으로 증시에 쏟아부은 상황에 한국증시가 폭락했고 ··· 알고 보니 ···.”
“뭐, 더 큰 게 있었나요?”
“한국의 군수산업이 호황이었지 않습니까?”
“그랬죠.”
“그 물량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정부고 기업이고 할 것 없이 단기 외채를 좀 끌어다 쓴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욕심을 부리다가 ···.”
“네. 게다가 수출 수익을 높이기 위해 환율방어에, 또 상당한 외화를 쓴 상황까지 겹치게 되었습니다.”
“아이고.”
“결국, 또다시 외환위기를 겪을지도 모를 상황에 몰렸습니다.”
“음, 그래서 IMF 대신 우리에게 줄을 대고 싶어 한다. 이 말씀입니까?”
“꼭, 그렇다기보다 IMF를 겪어 본 한국으로서는 다른 대안이 있는지 확인하는 차원 같습니다.”
“음 ···. 그건 단지 돈을 빌리는 차원이 아닌데 ···.”
“어떤?”
“우리가 IMF 대신 한국 정부를 지원해주면 ···.”
“?”
“그것은 ‘대한민국이 미국 주도의 경제 질서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라는 신호를 줄 수도 있습니다. 또, OSSA가 미국의 잠재적 경쟁자임을 자인하는 셈이고요.”
“네. 미국 정계에서 그런 기류가 조금씩 감지되긴 합니다.”
“아, 역시 ···.”
“하지만, 역설적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반대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요?”
“총통님과 OSSA를 미국의 최대 고객으로 봅니다.”
“사실 그렇긴 하네요. 무기도 사주는데 전쟁도 대신해준 형국이니 ···.”
“미국 눈치는 안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한국이 필요한 자금의 규모는 어느 정도 될 것으로 예상합니까?”
“급한 불 끄는 데는 70억 달러(10조) 그 외 국내 문제까지 생각하면 추산이 어렵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급한 불 먼저 끄고 천천히 생각해 보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그럼 조건은?”
“단기 차입이 문제이니 우리 돈을 넣어주고 그걸 중장기로 바꿔주면 될 거 아닙니까?”
“...”
“그저 한국이 모국이니 호혜적인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으로 해두죠.”
“네. 알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외환위기 보다. 사람들이 걱정되었다.
이번 부동산 폭락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같은 금융위기로 인한 것이 아니어서, 더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단지 집값이 내려간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대출금 같은 가계부채 문제는 정량적이고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문제이다.
역시 정부가 선제적으로 충분히 대응하여, 연착륙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각자 개인의 판단에 따라. 물에 잠기기 전까지만 살 것이지 혹은 미리 처분할 것이지 결정할 선택지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한국의 전세라는 독특한 계약방식이 만들어내는 연쇄반응과 주택 부족 사태가 동시에 일어날 것이 눈이 보이는 듯했다.
전세보증금을 임차인에게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어찌어찌해서 다시 돈은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냥 집값만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집이 물에 잠겨 사라지면, 주택의 공급이 부족해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가지고 있는 집은 사라지고, 새집은 더 비싸지는 기형적인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선진국인 대한민국에 수백만의 주택 난민이 발생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될 것이 뻔했다.
당장엔 수년 안에 물에 잠길 것을 알고, 그 기간만이라도 눌러앉아 살아야 하겠지만. 그것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기업도 상권도 모두 이전 열풍이 불 것이고 그러면 지역적 공동화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정에서는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해서 가족이 떨어져 지내는 선택을 하는 가정도 늘어날 것이 눈에 선했다.
그런 사회적 패닉이 경제 심리를 더욱 얼어붙게 할 것이고, 중산층은 붕괴할 것이다.
부동산 가격의 붕괴는 부자에겐 그저 돈을 손해 보는 선에서 끝나겠지만.
평생을 일구어 번듯한 집 한 채를 마련한, 평범한 중산층이 졸지에 주택 난민이 되는 것이었다.
내가 그 모든 것을 해결할 순 없겠지만, 뭔가 도움이 되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OSSA 연방국으로 이민을 독려하는 것도 마땅치가 않았다. 지도를 펼쳐놓고 이런저런 궁리 끝에 개성에 눈길이 가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과거 고려의 왕도였지만 큰 강이 없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지대도 높았다.
뭔가 번득이듯 떠오르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북한 김정일에게 연락을 넣도록 지시했다.
“원수님! 아, 아니디 총통님 연결했습네다.”
“위원장님 오랜만입니다.”
“이렇게 연락해주시니 기쁨네다. 연방 선포식 때는 너무 정신없으신 것 같아서 긴요한 말씀을 나누지 못했습네다.”
“아! 뭔가 하실 말씀이 있었던가요?”
“그렇습네다. 길티 않아두 상의 드릴게 있었습네다.”
“그렇군요. 먼저 말씀하시죠.”
“지금 대동강물이 넘쳐서리 피양 시내가 물바다가 되었습네다.”
“아, 그곳도 예외가 없군요.”
“동해 쪽은 별 탈 없지만 서두 서해 특히 남포는 아주 난리났습네다. 기런걸 보며는 ...”
“?”
“원수님 아니 아니, 총통님의 선견지명에 다시 한번 놀라고 있습네다. 어찌 바다위에 수도를 건설할 생각을 다하셨는 지! 정말 탄복했습네다.”
“꼭, 그런 이유는 아닙니다만. 혜택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길티요, 기럼요. 아! 다른게 아니고···.”
“...”
“이게 물을 막아서 될 일이 아닌 것 같습네다.”
“그럴겁니다. 당장은 해결이 되겠지만, 그게 3년이 갈지 1년 만에 넘칠지 알 길이 없으니까요.”
“기래서. 도시를 통째로 옮겨보려고 하는데. 부족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어서, 부탁을 좀 드리려고 했습네다.”
“아, 그렇군요. 뭐가 필요하십니까?”
“우선은 건설에 필요한 중장비와 시멘트가 태부족 입네다.”
“그렇군요. 발해는 피해가 거의 없으니, 장비와 물자를 지원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네다. 총통님!”
“저도 같은 이유로 제안할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시라요.”
“개성 공업지구 근처에 신도시를 건설했으면 합니다.”
“아, 아. 알갔습네다. 이 난리 통에 남조선에서 출퇴근하기도 쉽지 않갔디요.”
“그 이상의 도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월매나 큰 걸 생각하십네까?”
“최소 인구 3, 4백만 이상의 중형도시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헤엑~”
“또, 이게 성사되면 북한에 남측 장비와 물자를 지원하는 것도 수월할 것 같습니다.”
“길타믄 개성공단 직원을 위한 게 아니구먼요?”
“그렇습니다. 이번 물난리에 부족해진 주택을 공급하려는 목적입니다. 남한과 북한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그런 도시를 생각해 봅니다.”
“총통님 기건 좀 그렇습네다.”
“어떤 게요?”
“북조선과 남조선 인민이 섞이는 건 아직까진 어려울 것 같습네다.”
“음, 그러면 외국인이 거주하는 특별지구로 만들어 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기 좋겠습네다. 어차피 개성공업지구는 남조선 기업들이 들어와 있으니 깨니 ...”
“좋습니다. 그러면 한발 더 나아가 주시지요.”
“기건 어떤?”
“개성과 평화리 일대를 평화 특별지구로 만들어주시고, 남측 사람들이 검문검색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지역으로 만들어 주시죠.”
“아무리 그래도, 기건 좀 ···.”
“대신, 발해와 극동공화국에서 외화벌이가 가능한 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원수님! 아 자꾸 ··· 입에 붙어서리 ···.”
“괜찮습니다. 둘이 대화할 땐 편하게 호칭하셔도 됩니다.”
“기럼 기것보다. 그 뭐시기 ······.”
“네. 말씀하시죠.”
“그 총통님이 수십 척 가지고 계시는 그 ··· 크루즈선을 한 척 주시면 좋갔습네다.”
“아, 네 그러지요. 그런데 그건 왜?”
...
서울 강남 물난리 사진.
해수면이 상승하면, 조수 간만의 차이를 한강에서 느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만조와 간조에 맞춰서 차수벽을 올려야 할 지도 모른다.
.
일상화 되면 모두가 이런 멘탈을 가지게 될 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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