랴오둥반도
027화 – 랴오둥반도
서로의 수가 뻔히 보이는 상황에 닥치게 되면, 그 수를 따르기 싫은 것이 인간의 본성인가 보다.
상대가 예상한 대로 행동하는 것이 왠지 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면, 그 수를 따라야 한다.
때때로, 대책 없는 변칙이 먹히기도 한다. 그것은 인생에서 어쩌다 생기는 우연의 행운이다.
그런 행운이 한 두 번 겹치게 되면, 아집은 소신이 되고, 변덕스러운 사고방식을 창의성으로 착각하게 된다.
권력은 그것을 반복하게 만들고, 맹목적인 긍정과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 상태에서 존엄을 잃은 자존심이 추가되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드는 것이다.
그 일이 중국에서 벌어졌다.
중국 해군은 OSS에게 완벽히 궤멸 되었고 복구되려면 수년의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동북 3성에서 공군력과 포병전력마저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중국공산당은 군부의 의견을 무시하고 진격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하지만,
중국 인민해방군의 일선 장교와 병사들은 헌신적인 충성을 다하고 있었다. 자신들을 사지로 내몬 지도부를 원망하기 전에 전투력을 보존하고 최대의 성과를 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 것이었다.
그들은 마치 6.25 전쟁에 참전한 항미원조(抗美援朝) 군의 사례를 그대로 따라 했다.
전 전선에서 야간행군과 주간엄폐를 반복하며 극동공화국 국경까지 두 다리로 행군한 것이었다.
6.25 전쟁 당시 미군은 수많은 항공정찰을 하고, 중공군 포로까지 잡았지만. 중국이 참전한 것을 확인하지 못했었다.
미국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즈음엔 이미 수십만의 중공군이 한반도에 들어온 상태였고, 유서 깊은 미 해병대 1사단조차 함경도 장진호에 포위되는 일까지 벌어진 것이었다.
그 당시,
미 해병대는 필사의 탈출과 후퇴작전을 결행하였다.
하지만, 중공군은 후퇴로 곳곳에 이미 매복군까지 배치해 놓은 상태였다.
그런 일사불란한 행군과 부대 통제를 통한 포위섬멸 작전을 실행한 중공군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미군이었다.
장진호에 포위된 미 해병대 1사단은 완전한 덫에 걸린 꼴이었다. 그렇지만 미 해병대는 그곳을 탈출하여 곳곳의 매복지역을 뚫고, 그 유명한 흥남철수작전에 동참한 것이었다.
지금껏 중국 해군과 공군은 우리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지상군은 이야기가 달랐다.
병사 개개인의 전투력이나 정신무장은 차이가 나지 않았다.
우리에게 유리한 것은 보급상황이 미군보다 월등하고, 최전선 병사들에게 바리티늄 방탄 플레이트와 방탄모를 지급한 것뿐이었다.
우리가 우위인 포병전력을 써보기도 전에 중국 인민해방군 보병군단이 극동공화국의 국경까지 밀어닥친 것이었다.
그것도 150만 명에 육박하는 병력으로 말이다.
이제 수많은 인명이 살상될 것이다.
그 전쟁을 시작한 것은 바로 나였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 갑작스럽게 엄청난 중압감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참혹한 전장의 상황이 눈 앞에 펼쳐진 것 같았다.
내가 칼을 먹거나, 총 한 방 맞는 것은 허세 가득한 웃음으로 감출 수 있었지만.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모니터 위의 숫자로 확인하는 일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그것이 적군이라고 해도 괴로움은 한치도 덜어지지 않았다.
작전 상황실의 지도화면 위에는 일진일퇴하는 전선이 수시로 바뀌고 있었고, SCS 화면은 주요 전선의 전투장면이 보이었다.
‘역시, 병력의 열세인가?’
몇몇 요충지에서 OSS 극동군과 극동공화국이 후퇴하는 모습이 SCS 화면에 비치었고, 상황 패널의 지도에는 전선이 지그재그로 어지럽게 바뀌고 있었다.
중국과 극동공화국의 전선이 S자를 여러 개 연결한 것처럼 요철이 생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 저러면, 방어 전선이 더 길어지는 것과 다름없는데 ···.’
조바심과 노파심이 나의 인내를 넘어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OSS 극동군 사령관인 김 알렉세이를 통신 호출했다.
“네. 원수님.”
“사령관님 전선의 상황이 궁금해서 ···. 전투 중인 걸 알고도 통신을 연결했습니다.”
“아,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보고드리려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조금 위안이 됩니다.”
“먼저, 전선을 보시고 걱정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
“최초의 방어선은 ‘거짓 방어선’입니다. 현 전선의 후퇴와 탈출은 작전상 부대 이동일 뿐입니다.”
“아! 그래요?”
“현재, 최전선엔 발키리와 워리어트랙 같은 무인화 장비만 남기고 전투병력은 모두 철수시킨 상태입니다.”
“음 ···.”
“사실 갑작스러운 교전이라 놀라긴 했습니다만, 이럴 경우를 대비해 제2선을 실질 방어선으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렇다면, 포격좌표를 ···.”
“네. 그렇습니다. 적을 거짓 방어선으로 끌어들인 후 우리 포병의 포격전이 있을 예정입니다.”
“아 ······.”
김 알렉세이 장군은 압도적인 숫자의 중국군을 충분히 끌어들여 섬멸하기 위해 전략적인 인내를 선택한 것이었다.
“이미 OSS 포병사단과 극동공화국 포병이 계획된 좌표를 향해 방열을 끝내놓은 상태입니다. 관측병 대신할 드론도 모두 배치하여두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타박하는 건 아니고, 미리 알려주셨더라면 ···.”
“그게 ··· 혹여 작전을 그르칠까 조심하는 마음에서 직접적인 계획은 말씀을 못 드렸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원수님.”
“아, 압니다. 그때 전선이 요동치더라도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던 게 기억나는군요. 제가 눈치를 채지 못한 것 같습니다.”
“...”
“알겠습니다. 바쁘실 터이니 이만 통신 종료하겠습니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통신 끝.”
김 알렉세이 사령관의 설명을 듣고 나서 다시 작전상황 패널을 보았다.
그의 말 그대로였다. 그것은 전선이 요동치는 것이 아니라, 적을 사지로 몰아넣는 함정이었던 것이었다.
병력의 열세를 우수한 장비로 극복하기 위한, 작전상 후퇴였던 것이었다. 변명으로 쓰이는 ‘작전상 후퇴’가 아닌 진짜 작전이었다.
달리 보이는 지도위의 전선을 유심히 살펴보는 사이에, SCS 화면엔 각 포병여단의 모습이 보이었다. 화면을 가득 채운 방열한 포대의 모습은 웅장함 그 자체였다.
155mm 자주 곡사포(K-9A4)와 120mm 비격 자주 박격포(KSM-120)였다.
K-9A4 자주포는 최대 분당 12발을 발사할 수 있었고, 지속 사격도 분당 10발이 가능했다.
적재한 탄약 48발을 5분이면 모두 쏠 수 있는 성능이었다. 사거리는 5~60km에 이르렀고 활공탄을 쓰면 100km까지 날아갔다.
155mm 포탄 한 발의 살상반경은 50m 이상이었다. 그런 포탄을 무지막지하게 쏠 수 있는 자주포 수백 대가 포문을 열고 대기 중이었다.
그런 K-9 자주포의 성능을 뒷받침 하기 위해 K-10 탄약 보급 장갑차가 꼬리를 물 듯 자주포 뒤에 붙어있다.
비격 자주 박격포는 자동화된 박격포를 K200 장갑차에 이식하여, 기계화 보병의 근간이 되는 무기체계였다.
또한, 기존 4.2인치 박격포와 비교하면 사거리와 화력이 2배 이상 늘어났고, 분당 3~8발을 발사할 수 있었다.
한국산 포병 장비뿐만 아니라 구 러시아 동부군관구 제165 포병여단의 각종 포가 모두 방열한 모습이 SCS 화면에 보이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2S35 코알리치야-SV 152mm 자주포와 2S7 피온 203mm 자주 평사포였다.
공중에서 드론이 촬영해서 전송하는 SCS 화면은 마치, 포병부대를 사열하는 장엄한 화면이었다.
그 전열에 감탄하는 사이에 포격이 시작되었다.
- 쿠쿵 ··· 쿠쿵, 쿠쿠쿵, 쿠쿠쿠쿵 ...
좌표 수정을 위한 기준포가 발사되고 나자, 잇달아 모든 자주포와 곡사포가 연기와 불을 토해내고 있었다.
포성은 점점 빨라지는 드럼 소리 같았다. 오래전 드럼연주자를 다룬 영화 ‘위 플래시’의 한 장면이 떠오를 정도였다.
- 쿠쿠쿠쿠쿠쿠쿠쿵, 쿠쿠쿵, 쿠쿠쿠쿠쿵.
포병의 포대 진지가 포연으로 자욱하게 가려지기 시작했다. 포연이 연막탄을 터트린 것처럼 시야를 가렸지만, 포성은 계속 전달되고 있었다.
포성이 끊이지 않았다.
‘얼마나 쏴 갈기는 거지?’
작전 장교를 불러세워서 물었다.
“금일 계획된 포격 양과 비축된 탄약을 한번 확인해주세요.”
“네.”
작전 장교는 전술 터미널(태블릿)을 뒤지며 몇 군데 통신을 취하고는 돌아왔다.
“보고드리겠습니다.”
“네.”
“금일 오전에 계획된 포격 양은 155mm와 120mm를 기준으로 했을 때 ···. 150,000발이며, 비축된 탄약은 2,500,000발입니다.”
“네? 15만 발이요?”
“작전상 AF(지역 포격)와 BF(포화 포격)을 계획하였다고 합니다.”
“아주 불바다를 만들 생각이군 ···.”
* AF (Area Fire) : 특정 지역을 향한 광범위한 포격.
* BF (Barrage Fire) : 적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한 집중포격.
“그리고 ···.”
“?”
“적이 퇴출하지 못하도록 AF는 사실상 퇴로포격이라고 합니다.”
작전상 필요한 일이지만, 끔찍한 포격전이었다. 중국군을 함정에 빠뜨리고, 오도 가도 못 하게 만든 상황에 15만 발의 포탄을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동북 3성의 중국군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치더라도, 살상반경 수십 미터의 포탄을 10명당 1발씩 떨어뜨리는 셈이었다.
우리의 포격이 어떤 효과를 보이는지는 작전상황 패널에서도 확연히 드러나고 있었다.
마치 파도처럼 밀려오던 중국군의 기세가 꺾이고, 전선의 정리되면서 몇 곳이 뒤집힌 C자 모양으로 바뀌었다. C자의 열린 부분이 먹이를 기다리는 맹수의 입처럼 보였다.
포격은 계속되는 가운데 정보장교가 보안 단말기를 들고 찾아왔다.
“북 1호의 통신 요청입니다.”
김정은이었다. ‘전쟁이 시작되니 근질근질한가 보군’
“원수님!”
“네.”
“먼저 말씀드렸던 걸 시작하기 전에 연락드렸시오.”
“?”
“아, 그. 단둥시를 우리 공화국이 점령하는 일 말이디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원수님이 허락하셨으니 북진 하갔습네다.”
“위원장님!”
“말씀하시라요. 원수님.”
“단둥시까지만 가시길 바랍니다. 너무 깊게 들어가면, 우리가 지원해드리기 어렵습니다.”
“기럼요. 길티요. 걱정마시라요.”
“그리고 OSS 함대의 포격 지원을 잘 협의가 이뤄지었습니까? 제가 이쪽 일이 바빠서 확인을 못 했습니다.”
“기럼요. 그기 없으면 뭔 배짱으로 올라가겠시오. 공화국 무력부장이랑 OSS 동아시아 방면군사령관이랑 다 협의가 마쳤습네다.”
“알겠습니다. 단둥시 점령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명심 하갔습네다. 원수님.”
발해가 미스터리한 이유로 멸망한 이후,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한민족이 압록강을 넘어 진격한 적은 없었다.
김정은이 그것을 치적으로 써먹을 것이 눈에 선하였지만, 그것을 허락해줄 이유는 충분했다.
...
야간 행군중인 중국 인민해방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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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당시 장진호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미 해병대 1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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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를 탈출중인 미 해병대 1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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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병대 1사단 마크. 과달카날이란 글씨가 선명하다.
태평양 전쟁의 과달카날과, 오키나와 전투에 참전했고, 6.25때는 인천상륙작전과 장진호 전투를 치른 유서깊은 부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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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S 극공군의 대량 포격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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