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부(歸附)
038화 – 귀부(歸附)
극동군에게 무단장을 점령하라고 한 것은 랴오둥반도 다롄을 수월하게 공략하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김 알렉세이는 양동작전의 일부가 아닌 성과를 내는 단독작전으로 전환할 것을 원했고, 놓칠 수 없는 기회로 인식하고 있었다.
OSS 극동군 김 알렉세이 사령관은 진격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헤이룽장성 동부를 깔끔하게 잘라내어 점령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성공한다면 전쟁의 승기는 물론, 전략적으로 매우 유리한 전선이 만들어진다.
헤이룽장성 동부와 랴오둥반도를 점령하게 되면 U자 모양으로 만주를 협공하는 모양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북한과 더불어 삼면을 협공하는 형세지만 그 위쪽은 내몽골 자치주였기에 사실상 동북3성의 중국인민군이 포위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되면 바닷길은 OSS 해군과 랴오둥반도에 막히게 된 상태이고, 고립무원인 만주의 중국군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내몽골의 모래폭풍을 뚫고 육로로 와야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마냥 좋은 전략만은 아니었다.
만약 지린성의 중국 인민군이 이를 간파하고, 극동군과 만주군 사이의 전력 공백을 파고들게 되면.
OSS 극동군이 고립되는 것은 물론. 이제 막 창설한 만주군까지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도상으로 판단한 우려였고. 모험 없이 승리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모험이 가능하게 한 것은 OSSIA에서 보내온 정보보고서의 내용도 한몫했다.
정보보고서에서는 발견한 것은 중국 인민군 동북방면 사령관에 대한 사소한 인물평이었다.
‘뛰어난 군인이지만 군단을 이끌기엔 전략적 사고력이 부족하다. 장점으로는 자기 휘하의 부하와 부대를 끔찍이 아낀다.’ 라는 구절이었다.
그런 인물이라면 전투가 아닌 전쟁 전체의 전황을 판단해서, 필요한 모험을 하진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마치, 고려와 거란 간의 전쟁에서 양규 장군이 거란군의 배후를 끊는 것 같은 용감한 전술을 쓰진 못할 것이란 판단이었다.
만약 그가 그런 판단을 해서 만주군과 극동군 사이를 파고 든다면, 그의 애국심과 판단을 높게 평가하고 한발 물러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단장시와 지시시는 이제 막 점령한 중국 땅이었다. 극동군이 전투 없이 주둔하는 것 역시, 큰 이점이 없었다. 주저하다가 스스로 교착상태를 만들 수도 있는 일이었다.
더우기, 현장의 판단을 지도만 보고 있는 내가 부정하는 것 또한 온당한 일이 아니었다. 사기도 그만큼 중요했다.
그를 믿어주고 만약의 실패에 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음 ··· 사령관님!”
“네. 원수님.”
“현장 지휘관인 사령관님의 판단이 그렇다면 한 번 더 믿어보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원수님.”
“준비는 잘 되었습니까? 작전을 간략히 설명해주세요.”
“철저히 준비되어 있습니다. 본대가 지시 시에서 북상하고 극동군 2군단이 하바롭스크에서 아무르강에서 송화강을 따라 서진하여 자무쓰시를 점령할 예정입니다.”
“...”
“또한, 동시에 극동공화국군이 달레네첸스크에서 진군하여 사이의 소도시들을 장악하도록 계획되어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단순 점령 전쟁이 아니라 ···.”
“...”
“만주 땅을 독립시키는 전쟁입니다. 민사작전에도 각별히 신경 쓰면서 진군하시길 바랍니다.”
“네. 명심하고 있습니다. 극동군이 미처 챙기지 못하는 부분은 OSSIA에서 파견된 요원들이 신경 써주고 있습니다.”
...
김 알렉세이 사령관이 이야기한 땅은 도끼날처럼 극동공화국으로 들어온 중국 땅이었다.
오래전 아무르강을 기점으로 자연스럽게 국경이 정해진 것이었지만 송화강 역시 물줄기는 아무르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둘로 갈라지는 물줄기의 위쪽은 아무르강이라 이름 지어졌고, 아래쪽 물길은 송화강이라 불리면서 중국과 러시아국경을 뒤집힌 C자 모양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걸 끊어내겠다는 것이, 김 알렉세이 사령관의 계획이었다. 대륙에서 300km란 거리는 짧아 보였지만, 직선거리로는 서울에서 부산과 같은 거리였다.
만만한 일은 아닐 것 같았다. 특전여단의 리철민 사령관에게 연락했다.
그에게 진군하는 극동군의 배후를 지키고, 만주군 창설과 함께 만주군이 군으로서 체계를 갖추는 일을 독려했다.
극동군의 작전은 순조로웠지만, 랴오둥반도로 상륙한 북방군은 다롄시를 앞두고 진격을 멈춘 상태였다.
다롄시는 무단장시와 다르게 대도시였고 인구밀도도 높았다. 점령이야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시가전이 벌어지거나 중국 민병대가 생겨나서 도시 게릴라로 변질하면, 골치 아픈 구석이 한둘이 아니었다.
근심을 달래고자 갑판에서 홀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멀리서 진민규 장관이 몇몇 수행원과 함께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진 장관의 표정이 밝아졌다.
“원수님! 좋은 소식입니다.”
“그래요? 어서요.”
“다롄시가 항복했습니다.”
“네? 벌써요?”
“그렇습니다. 뜻하지 않았지만, 일이 잘 풀렸습니다.”
“오!”
“다롄시가 공식적으로 OSS군의 진주를 허락했고, 남은 병력의 무장해제도 선언했습니다.”
랴오둥반도 상륙과 진격은 순조롭게 이어졌지만. 다롄시 정부는 중국군의 지원이 올 때까지 결사 항전을 선언한 상태였다.
“아 ··· 내심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어찌 그리 된 건가요?”
“그 선언이 독이 된 것 같습니다.”
“?”
“다롄시 정부가 마땅한 병력도 전무한 상태인 데다가. 중국군의 지원도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결사 항전을 선언하니, 일종의 시민 쿠데타가 일어난 것입니다.”
“오~ OSSIA의 작품인가요?”
“하하. 아닙니다. 자생적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그래요?”
“다롄시 공안국과 생존한 중국군의 몇몇이 시 정부 인사를 구금하고 행정권을 장악했습니다. 그러자 나머지 공안과 인민군도 그에 따르는 성명을 발표하였고요.”
“오오, 정말! 잘되었습니다.”
“다만, 무조건 항복은 아니고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
“다롄시의 치안과 행정은 자체적으로 유지하겠다고 합니다.”
“그건, 도리어 고마운 일이죠.”
다롄시는 랴오닝성에서 2번째로 큰 도시였다.
다롄의 항복은 지금껏 해온 전쟁의 양상을 다르게 만들어주는 신호탄이 될 것 같았다.
중국의 지방정부가 OSS에 항복하면서, 현재의 행정과 치안을 유지하는 것은 의미가 남달랐다.
마치 고대의 전쟁에서 새로운 세력에게 귀부하는 모양이 만들어진 것이다.
* 귀부(歸附) : 스스로 와서 복종함
지배세력이 중국공산당에서 OSS로 바뀌는 것을 의미했고, 중국의 수많은 지방 세력에게 던지는 시사점이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도 북쪽 랴오둥만으로 상륙한 북방 2군은 가이저우시와 바위취완 구를 점령했고, 이로써 랴오둥반도 전체를 OSS가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중국 랴오닝성의 최대 전략요충지를 우리 땅으로 만든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중국 황해의 한 가운데로 찔려 들어가 있는 다롄이 OSS의 지배에 들어감에 따라서. 진저우, 텐진, 옌타이, 칭다오, 상하이까지 이르는 바닷길이 막히게 된 것이다.
다롄에서 베이징(북경)까지는 450km 남짓이었다. 우리는 다롄 저우수이쯔 공항에 전투비행단을 주둔시킬 수 있었다.
다롄은 동북아시아의 심장부에 박힌 불침의 항공모함이 되었고, 제1 항모전단을 동해로 이동시켜 극동군을 지원하도록 했다.
그리고 북방 2군은 잉커우시를 압박하고, 중신기전 자주포전함 2대를 모두 랴오둥만으로 집결시켜 잉커우시를 향하게 했다.
자주포전함은 전술적 이점도 있었지만, 그 기이한 모습에 대중에게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우리 정보부는 자주포전함의 108개의 포문이 불을 뿜고, 포탄이 떨어진 일대가 초토화되는 영상을 만들어 언론은 물론, 중국의 인터넷망에도 살포했다.
중국 공안 당국도 그것을 지우기에 바빴지만, 3백만 개의 실명 계정을 사들인 OSSIA는 쉬지 않았다.
중국공산당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한때 위챗(카카오톡 같은)을 통째로 차단하기까지 했으나, 그것은 되려 공산당과 인민군에게 대혼돈을 가져다주어 다시 복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OSSIA는 다롄시 정부가 항복한 사실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알리기 시작했다.
다롄은 외세에 항복한 것이 아니라, 능력 있는 새로운 정부를 선택한 것이라는 논리였다.
즉, 중국공산당의 무능과 부패에 지친 지방정부가 OSS를 주체적으로 선택했다는 내용이었다.
OSS를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일자리와 원조 정책으로 인민의 삶이 나아지고 있는 구체적인 내용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그 심리전의 내용에는 OSS 만주군이 창설되었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직접 밝히진 앉았지만, 소수민족이 주요세력인 만주군이 전투에 투입되고 만주군에게 점령당한 도시는 상당히 폭압적인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암시가 담겨있었다.
그것은 어차피 이기지 못할 바에는 신사적인 OSS 군에게 항복하는 것이,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에 유리하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설득하고 있었다.
그리고,
북진과 남하를 동시에 진행하던 OSS 극동군은 극동공화국으로 찔러 들어온 만주 땅을 모두 점령하였다.
다만, 아쉬운 것은 빠른 진격과 점령의 부작용으로 오폭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자가 다수 나왔고. 극동군의 점령에 항거하여 체포되는 민간인도 상당했다.
우리 극동군도 수십 명의 전사자와 수백의 부상자가 나왔다.
김 알렉세이 사령관을 질책하진 않았다.
어려운 작전을 수행하면서 모든 것이 완벽할 순 없었다.
하지만 그는 완전한 작전을 수행했고, 순식간에 남한 영토와 맞먹는 땅을 점령했다.
우리의 압도적인 전력과 OSSIA의 심리전 그리고 중국공산당의 무능한 대응이 어우러진 효과가 나타나 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북방 2군이 대치하고 있는 잉커우시, OSS 만주군과 특전여단의 주둔지와 가까운 펑청시 그리고 랴오둥반도 내륙의 중소 도시들이 잇달아 OSS에 귀부한 것이다.
진민규 장관이 전황을 정리하여 찾아왔다.
“원수님! 요동 반도를 손에 넣으셨습니다.”
“아, 요동 반도라고 지칭하니 왠지 뿌듯하군요.”
고조선, 고구려의 옛땅이자. 흥료국과 대발해 등 발해 부흥 운동이 끊이지 않았던 요동 반도였다.
“이제 슬슬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뭘요?”
“건국 준비 말입니다.”
“아 ··· 건국은 표현이 좀 그렇고, 독립을 시켜야죠. 현지인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그게 간단치 않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죠.”
“이 부장과 상의를 해보았는데. 현지인들이 주체적으로 독립할 역량이 안됩니다.”
...
* 대발해 : 발해가 멸망 후 유민인 고영창(高永昌)이 1116년 건국했지만 실패했다. 발해부흥운동으로 건국된 마지막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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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온의 집무실에서 화상회의 중인 이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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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롄시 청사에서 항복을 발표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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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상상한 대발해의 건국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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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공화국 영토와 현 전선 - 우측 붉은 선이 김 알렉세이 사령관이 주장하는 진격지점이다.
* 지도 차트를 그리기 위해 다양한 툴을 확인해보니 - 동해와 일본해가 병기되어 있거나, 일본해로 표기된 지도가 많아서 당황했습니다. 또 서해를 중국식 황해로 표기된 지도도 많더군요. 불가피하게 표기내용을 가려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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