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테라 (MariTerra)
043화 - 마리테라 (MariTerra)
만주의 복잡한 상황을 생각하면 이 부장의 의견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발해공화국 초대 대통령의 임기는 적어도 7년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단임을 못 박을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
“7년 후 정상적인 대선을 치르면서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 ······ 알겠습니다.”
팔자에도 없던 대통령을 하게 생겼다.
“그럼, 원수님의 만주 방문을 조금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네? 갑자기 또 왜요?”
“독립선포에 맞추어서 무단장시에 필요한 준비를 하고, 원수님이 직접 발해공화국의 독립을 선포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
일이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저 힘 있는 은둔자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막연하게 ‘이왕 이렇게 된 거 한민족의 고토를 되찾겠다’라고 생각했을 뿐 그 뒤의 일은 생각지 않았다.
이 부장과 발해공화국 건국에 관한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문득 머리를 식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함교 꼭대기의 섬(Island)이라고 불리는 항공교통관제탑으로 갔다. 바스티온 호의 가장 높은 곳이었고 그곳엔 나만의 비밀? 장소가 있었다.
나를 발견한 관제탑 요원들의 경례를 가벼운 손짓으로 화답하고, 가끔 찾는 나의 비밀 발코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홀로 조용히 시간을 보낼 터이니 각자들 할 일을 하라는 무언의 표시였다.
초거대 항공모함인 바스티온의 높이는 30층 건물과 맞먹었고, 그중 가장 높은 함교 꼭대기는 수면에서 100m 이상 높은 곳이었다.
발코니로 향하는 문을 열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바다 풍경은 세상만사를 잠시 잊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늘 그렇듯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였다.
숨 가쁜 시절을 보내왔다. 그런데 문득 그것의 끝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가진 것을 잃지 않기 위해 힘을 키웠고, 힘을 쓰지 않으면 새로운 위협이 다가오리라 생각해 전쟁도 불사했다.
겉으로는 조직과 사람을 위해서라지만. 실은 나 자신, 개인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시절에 떠밀려 오다 보니 이제는 한 나라를 아니, 여러 국가를 책임지는 연방의 수장까지 떠맡게 되었다.
그것은 가족이나 친구를 지키는 일과는 다른 의미란 것을 알고 있었고. 또 수많은 억측과 오해에 나 자신을 던져야 하는 일이었다.
타인의 비난엔 둔감한 체질이지만, 스스로 선택이 비극을 가져올 때는 타격이 제법 되었다.
주변의 모두가 나를 왕처럼 따르지만, 그것이 사기업이었을 때와 국가를 이루는 것은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을 직감했다.
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을 내 사람으로 들여야 한다.
그런 모든 사람의 요구에 직면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큰 압박이 되어 돌아왔다.
시쳇말로. 가뭄이어도 홍수가 나도 왕 탓, 흉년이 들어도 왕이 부덕한 일인 것이다.
멈추면 넘어지는 자전거에 짐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끝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멈출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담배가 필터 끝까지 타들어 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상념에 빠져있는 사이, 보안터미널이 누군가가 나를 찾고 있음을 알려왔다.
‘아~ 한시도 쉬질 못하는군 ···.’
터미널을 확인해보니 두 사람이 보고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는 메시지였다. 한규동 해양부 장관과 OSS-ART의 김범준 박사였다.
일순간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 두 사람은 주로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김범준 박사에게 먼저 연락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이유는 맛있는 건 나중에 먹고 싶은 치기 어린 마음에서였다.
그런 나의 근심을 마치 예견이라도 한 듯 김범준 박사가 연락을 해왔다.
“오! 박사님. 그렇지 않아도 한번 연락드리려 했는데.”
“원수님, 좋아하실 만한 걸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래요?”
“새로운 형태의 대전차 무기입니다.”
“야아~ 그렇지 않아도, 고민이 있었는데. 하하. 들어봅시다.”
“주석탄을 만들었습니다.”
“주석탄요?”
“기존의 대전차 무기는 전차를 파괴하는 데 목적을 두었습니다.”
“그렇죠.”
“네, 그러므로 상당한 재원과 고도의 기술 그리고 조작성 또한 좋지 못했습니다.”
“호오... 뭔가, 뭔가 기대가 됩니다.”
“새로 만든 대전차 무기는 전차를 파괴하는 것이 아닌 전자의 기능을 무력화시키고, 기존 전투체계에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오~~~”
“주석탄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 주석의 물질적 특성을 활용한 것입니다.”
“?”
“주석은 녹는점이 231.9°C로 매우 낮은 금속입니다. 이것을 네이팜과 함께 섞어서 폭발시키면 녹은 금속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지면서 흘러내리도록 만들었습니다.”
“아 ··· 그렇게 되면 전차 외부의 ···.”
“네, 그렇습니다. 전차 외부의 각종 센서, 잠망경, 조준기 등이 못쓰게 되는 겁니다.”
“야아~ 게다가 초 저렴하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재블린 한 발에 3억, 현궁도 2억은 하는데, 주석탄은 한발에 몇만 원도 안 합니다.”
“하하하.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 주석탄에 전차를 못 쓰게 만들면 ··· 정말 재미난 무기입니다.”
“저도 만들고 시험하면서 스스로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발사체는 어떻게 됩니까?”
“RPG-7용 탄두, 60mm와 80mm 박격포탄부터 만들었습니다.”
“오, 박격포탄이면 소형드론으로 떨어뜨리는 것도 가능하겠네요.”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정확히 맞지 않아도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이번에 시험테스트를 하면서 확인해보니, 현대 전차는 사방에 각종 센서가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렇죠.”
“후방은 엔진계통이, 전방은 조준과 조향 관련 센서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리고 네이팜에 붙은 불을 꺼도, 주석이 말라붙게 되니 충분한 효과가 있습니다.”
“대단합니다.”
“여러 가지 상황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자폭 드론보다 훨씬 효과적입니다.”
“...”
“자폭 드론은 폭발 후 결과 확인이 안 되지만, 주석탄은 떨어뜨리거나 RPG로 발사하는 것이니 드론에서 표적을 확인하고 재공격이 가능합니다.”
“하하하. 초 가성비의 대전차 무기가 되겠군요. 박사님 수고하셨습니다.”
그는 바리티움으로 만든 바리타이탄 장갑차의 차륜형 버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OSS의 1호 차량이었고, 내가 지상 이동 시 사용할 차량이라고 했다.
김범준 박사의 화상 보고를 마치고, 곧바로 한규동 해양부 장관에게 연락했다. 기다리고 있던 이야기를 해줄 것 같아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장관님!”
“네, 원수님. 해양도시가 완성되었습니다.”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아직 미비한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외형은 모두 갖추었습니다.”
“오~”
“모든 항공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공항이 갖추었으니 운행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 있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입니다.”
“이제 도시의 기능을 갖추기 위한 사람과 조직을 채울 차례입니다. 그 부분에 대한 원수님의 생각을 듣고자 연락을 요청했습니다.”
“새로 만들어지는 연방국의 수도로 사용했으면 합니다.”
“아 ··· 정말 우리의 연방국이 만들어지는 것입니까?”
“네.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네요.”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해양도시가 수도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반 사항을 갖추겠습니다. 그런데 ···.”
“??”
“이름을 지어야 합니다.”
“아~ 그렇죠.”
“아무래도 원수님이 지어주셔야!”
“음 ······ 그냥 라틴어로 마리테라 (Mariterra)로 하죠.”
“바다의 땅이란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럼 아무래도 수도이니 도시(city)를 붙이는 건 어떻습니까?”
“좋네요. 선박이랑 구분되는 게 좋으니 그렇게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방공시설과 호위 전단만 갖추면, 원수님이 바로 쓰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요. 최종 크기가 어떻게 됩니까? 수용 인구도 얼마나 될지 궁금하네요.”
“아, 따로 자세한 보고서를 올리겠지만. 길이 5.9km 폭 3.5km입니다. 최대 수용 인구는 25만 명입니다.”
“네. 25만 명이요? 너무 빡빡한 거 아닙니까?”
“하하. 아주 넉넉하게 계산한 것입니다.”
“이번에 만들어진, 해상도시 마리테라는 33층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연면적이 689㎢로 평수로는 2억 843만 평입니다.”
“아 ······.”
“25만 명이 가득 차더라도, 마리테라의 인구밀도는 ㎢당 362명으로 1인당 약 833평을 차지하게 됩니다. 서울의 인구밀도가 16,000명입니다.”
“...”
“물론, 도시의 인구밀도는 연면적이 아닌 단위면적이지만. 마리테라가 비교적 쾌적한 도시가 될 것은 분명합니다.”
“아~ 일반 건물처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덩어리가 되니 연면적이 커지는 것이군요. 배수량도 어마어마하겠습니다.”
“각 구조물의 배수량을 모두 합치면 약 15.5억 톤입니다.”
“네에? 항공모함이 10만 톤인데 그럼 항공모함 1,500척 크기라고요?”
“원수님이 밀어붙이셨으면서 ···. 하하하.”
“그래도 ···.”
“항공모함은 완편 된 하나의 배이지만, 마리테라는 동력 선체 5척을 제외하고는 항공모함 크기의 블록 모듈을 연결한 것이니 가능했습니다. 이제 그 안을 채워야 할 차례입니다.”
“대단합니다. 속도는 얼마나 됩니까?”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속도는 조금 손해를 보았습니다. 7.6노트(시속 14km) 정도 나옵니다.”
“그 큰 덩치를 움직이는데 그 정도만 나와도 다행이지요.”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자체적인 방공망과 대잠수함 능력을 갖추긴 했습니다만. 호위 전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만약 바스티온과 함께 움직인다면 한 달 안에 가능합니다.”
“음, 바스티온을 당장 뺄 순 없으니···. 준비를 따로 해야겠군요. 하여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장관님.”
“네. 원수님 덕분에 이런 역사적인 물건을 만들 수 있게 되어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감사합니다.”
...
진짜 방주를 만들고 말았다.
처음엔 나와 지인 몇몇이 대피할 잠수함을 만들기를 원했고, 그 잠수함이 비좁아 세계최대의 타이푼급 잠수함을 개조했다.
그 와중에 군사력을 키우게 되었고, 미국의 항공모함 2척을 인수하게 이른 것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679m 나 되는 바스티온을 건조했다. 그리고 25만 명이 거주 가능한 해상도시를 만든 것이다.
처음 이 계획을 말했을 때 ‘떠다니는 거대한 표적이 될 것’이라면서 반대가 많았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고, 몇몇 측근들을 통해서 계획을 밀어붙였다.
그 생각의 근간은 도시는 고정된 적의 계획좌표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되려 해군력에 집중된 OSS의 군사력을 생각하면, 육상 도시보다 해상도시를 더욱 방어하기 수월하리라 판단했다.
머릿속으로 진정한 의미의 해상왕국의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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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온 함교의 비밀장소?!에서 상념에 빠져있는 이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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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주석탄을 떨어뜨리는 드론
(사실 본래 의도란 그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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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주선탄에 직격당한 전차. 네이팜의 불길이 꺼진다해도 전차는 못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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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탄에 직격당한 전차는 마치 물엿에 빠진 기계장치처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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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테라 시티.
(외형은 의도한 것과 상당히 다르게 나왔지만, 그 웅장함이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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