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의 반(VAN) - 2-4 재회(2)
2.4 재회(2)
아비크는, 자신이 나타나자 흠짓 하는 기색에 그녀를 놀라게 한 것 같아 눈썹을 살짝 긁적였다.
“이런 곳에 웬 일입니까?”
마차 앞으로 걸어가 그는 방금 전 급하게 내려진 마차 짐칸의 천막을 힐끔 보았다. 후다닥 안으로 들어가는 통에 누군지 자세히 보지 못했다.
“일이.. 있어서요.”
침착하려고 애쓰며 셰릴은 헬렌에서 만난 적 있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려 했다.
“렌케이 씨는 어쩐 일이세요? 이런 곳에.”
간신히 떠오른 그의 이름을 소리내 말하며 그녀가 물었다.
“나도 일이 있어서요.”
대꾸하는 아비크의 시선은 여전히 마차 뒤쪽으로 향해 있었다. 마차 뒤는 조용했지만 그냥 느끼기에도 인기척이 강했다.
“혼자 여기 있는 겁니까?”
그의 시선이 마차 짐칸을 향해 있는 것을 보고 셰릴은 서둘러 말했다.
“그게..”
놀라서 화들짝 움직이는 걸 봤을 테니 수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천이 살짝 다시 옆으로 들어 올려졌다.
고개를 내미는 디에나를 보고 아비크는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이 되었다.
“역시..”
“역시 뭐요?”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내민 뒤 마차 옆에 서 있는 그를 발견하고는 뚱하게 디에나는 응수했다. 짐칸에서 마부석 앞으로 그녀가 걸어 나왔다.
“두 사람 오스티아로 돌아간 거 아니었어요?”
여기 있는 게 아무래도 이해가 안 갔는지 묻다가 그가 마차 뒤로 턱짓을 했다.
“안에 웬 애들이고요.”
디에나가 고개를 내밀 때 살짝이지만 어린 아이 소리가 나는 걸 들었다. 기척으로 보아 한 두명은 아니다.
셰릴과 디에나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헬렌에서 봤을 때 그는 신뢰가 가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이런 일을 쉽게 털어 놓을 수는 없다. 지금 너무 갑자기 만나기도 했고.
‘왜들 이래?’
두 사람 다 표정에 망설이는 기색이 드러나 있어 의아한 듯 아비크는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우연히 만난 아이들이에요.”
조심스럽게 셰릴은 말했다.
“사정이 있어서 집에 데려다 주려고... 오스티아로는 그 다음에 돌아가려고요.”
거짓말을 해서인지 목소리가 살짝 흔들렸다.
“그래요?”
그러나 의심하지 않고 아비크는 다시 묻고 있었다.
“집이 어딘데요?”
셰릴은 잠시 그를 보았다. 기색이 좀 이상해 보이긴 했겠지만 크게 수상하다고 여기는 것 같지는 않다.
“나본이요.”
지도에서 페이테드로 가기 전 중간에 쓰여 있는 이름을 대며 그녀는 말했다.
“나본?”
여기서 더 서쪽으로 위치한 곳이다. 잠깐 생각하다가 그는 물었다.
“거기까지 두 사람만요?”
그렇게 먼 곳은 아니지만 여자 둘이서는 어딜 돌아다녀도 위험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네."
나직히 셰릴이 대꾸했다.
“지금까지도 어쨌든 왔는데요 뭐.”
다소 경직된 듯한 셰릴과 달리 옆에서 말하는 디에나는 크게 걱정이 없는 얼굴이었다.
“아마 문제없을 거에요.”
그녀의 말에 아비크는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저렇게 생각하는 게 제일 걱정이란 말이야.
“있어 봐요.”
잠깐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곧 그는 말했다.
“우리 대장하고 말 좀 하고 오게.”
무슨 뜻인가 싶어 쳐다보는 두 사람을 내버려 둔 채 그는 몸을 돌렸다.
“가지 말고 기다리십쇼.”
덧붙이며 잰 걸음으로 아비크는 다시 아까왔던 나무 사이로 들어갔다.
다시 호수 앞으로 가니 엘리어트들은 이미 돌아와 있었다.
“아는 사람 만났다면서?”
시즈한테 들었는지 가슈가 그를 향해 물었다.
“응.”
대충 대답하며 그는 물었다.
“길은?”
“동쪽으로. 호수를 크게 돌아야 되지만.”
대꾸하는 소리에 잠깐 생각하다 그는 곧 엘리어트 앞으로 걸어갔다.
“근처에, 헬렌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 와 있어요.”
내키지 않는 어조로 아비크는 말했다.
“나본까지 여자들 둘이 애들 몇 명 데리고 가는 것 같은데..”
안은 못 보았어도 적어도 대여섯 이상은 있을 거란 건 알 수 있었다.
“우리도 지체할 시간 없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는지 엘리어트가 말했다.
“그건 나도 아는데요. 그렇다고 그냥 두고 가기도 좀 그래서...”
그는 말했다.
“호수를 끼고 동쪽으로 간다면서요. 그럼 반대로 돌아서 키실라로 가면...”
일행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싫지만 그렇다고 여자들을 그냥 둘 수도 없어 부탁하기 떨떠름한 얼굴로 아비크는 다시 말했다.
“오래 지체하진 않을 거에요.”
영 신경 쓰인다는 얼굴의 그를 보다가 곧 엘리어트는 말했다.
“정 그렇다면 가봐. 오래 기다릴 순 없으니까 키실라에서 도착해 반나절 뒤까진 돌아와 그리고.”
그 말에 한시름 놨다는 얼굴로 아비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반나절 정도면 충분히 나본에서 돌아올 수 있다.
“나본에서 키실라로 오려면 닙센을 거쳐서 와.”
그쪽 방면을 지도에서 확인하며 레이는 말했다.
“운 좋으면 반나절 안되서 돌아 올 수도 있을 거야.”
그가 덧붙였다.
“그 때쯤 닙센으로 매를 보낼 테니까.”
“바로 돌아 올 거니까 늦지 않게 보내.”
그렇게 말하며 아비크는 몸을 돌렸다.
“갔다 올께요.”
그가 나무 사이로 들어갔다. 아비크가 사라지자 엘리어트는 몸을 돌려 가슈들을 향해 말했다.
“우리도 출발하자.”
끄덕이며 나머지 네 사람도 각자 말에 오르기 위해 다시 말고삐를 손에 쥐었다.
“같이 가죠 나본까지.”
다시 마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두 사람의 앞에 서며 아비크가 말했다.
“허락 떨어졌으니까.”
마부석에 앉아 있던 셰릴과 짐칸 안에 서 있던 디에나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자신들만 움직이는 것보다 잠깐이라도 그가 동행해 준다면 안심이 되는 건 사실이다. 마차 뒤를.. 확인하지만 않는다면.
“왜요?”
대꾸없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는 두 사람의 기색에 아비크가 물었다.
“아니에요.”
서둘러 셰릴은 말했다.
“그럼 부탁드려요.”
그렇게 보는 시선에 좀 의아해졌지만 크게 물어볼 생각은 하지 않고 아비크는 그대로 마차 가까이 다가갔다.
만난 건 우연이었지만 아비크가 동행해주는 것이 든든한 것은 사실이다. 숲을 빠져 나온 뒤 이제 호수를 끼고 서쪽으로 내려가는 마차 위에서 아비크는 마차를 모는 셰릴의 옆에 앉아 있었다.
마차 뒤는 조용하다. 아이들을 봐야한다면서 짐칸으로 들어간 디에나 쪽에서는 크게 소란스러운 소리는 나지 않았다.
‘의외네.’
아이들하고 어울리는 성격일 거라고는 생각 안했다.
“렌케이 씨는 어디로 가는 중이세요?”
목적한 일 외에는 주변에 크게 관심은 두지 않는 성격이었는지 다행히 여태까지 마차 뒤에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다가 이제 슬슬 뒤를 돌아보는 그를 향해 서둘러 셰릴이 물었다.
“자드로요.”
시선을 앞으로 돌리며 그 말에 대꾸하다가 그는 문득 생각난 얼굴로 덧붙였다.
“자드와 랭더발이 전쟁 중이니까 행여나 여기서 더 그쪽으로 갈 일은 없는 게 좋을 겁니다.”
“네.”
설마 그렇게까지 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셰릴은 대답했다.
호수를 돌아 길을 빠져 나와 다시 한참을 가 마차는 슬슬 나본으로 이어지는 길로 접어 들었다. 옆에서 눈치 채지 않게 조심하며 셰릴은 이따금씩 뒤를 확인했다. 뒤따라 오는 기척들은 없다. 여기까지 왔으면 안심할 수 있을까? 마차를 바꾸는 것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긴 했지만 아젠에서는 이제 이틀 가까운 거리로 멀어져 있다.
“뭘 그렇게 봅니까?”
옆에서 목소리가 날아왔다. 셰릴이 고개를 돌리자 아비크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비크는, 사실 아까부터 반복적으로 셰릴이 뒤를 확인하는 걸 눈치 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긴장하고 있는 듯 보이긴 했지만 별 신경 안썼는데 계속 뒤를 확인하는 게 지금 보니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그녀가 말했다.
“누구한테 쫓기기라도 해요?”
생각하고 있던 걸 곧장 그가 물었다.
“아뇨..”
눈을 피하며 말을 흐리는 그녀를 아비크는 빤히 보았다. 이상하다는 느낌이 그 기색을 보아하니 이제 점점 수상한 쪽으로 간다.
문득 마차 짐칸이 생각났다. 그러고보니 뒤에 타고 있는 애들. 정말 애들 맞나. 말만 듣고 확인해 보지 않아서 마차에 누가 타고 있는지 아직 못 봤다.
“안에 잠깐 봐도 됩니까?”
그 말에 흠짓하는 것을 보고 대답을 기다릴 것도 없이 아비크는 몸을 뒤로 돌렸다.
“실례.”
셰릴이 말릴 새도 없이 그가 마차 안을 가리고 있던 장막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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