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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k 님의 서재입니다.

하트의 반(VAN)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명인k
작품등록일 :
2013.02.04 17:06
최근연재일 :
2019.02.10 23:08
연재수 :
29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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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473
추천수 :
28,216
글자수 :
2,269,960

작성
13.05.20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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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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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글자
19쪽

하트의 반(VAN) - 1-27.

DUMMY

성벽으로 둘러싸인 채 비어 있는 성안 한 가운데는 풀 한 포기 안 심겨진 빈 터였다. 지금은 두꺼운 통나무로 만들어진 울타리가 성인 보폭 기준 대략 서른 발작 정도 길이로 둘러쳐져 있었다. 통나무는 두께가 두껍고 간격이 가까워 울타리는 웬만한 충격에는 끄덕도 하지 않을 정도로 튼튼해 보였다.




약속된 시합 시간은 다음날 정오. 날은 쌀쌀했지만 성벽으로 바람이 차단되어 움직임이 둔해 질 정도는 아니었다.

“말했지만 사람 발길이 닿은 곳은 거의 가 보았어요.”

마차를 몰고 가고 있는 라일러의 옆에 앉아 그녀는 마차 짐칸에 있는 락터드와 서너 명의 일행들을 향해 말했다.

“가보지 않은 건 지하실이랑 성벽 초소 근처에 있는 방 몇 군데뿐이에요.”

나머지 사람들은 데이먼의 마차로 앞서 가고 있다.

“알겠습니다.”

락터드는 끄덕였다. 어제 상의한대로 오히라가 가보지 않았다는 장소를 먼저 확인할 것이다. 그는 마차 안에 같이 있는 서너 명의 일행들을 보았다. 그와 라일러가 시합을 하는 동안 청년 한 두 명이 성안을 살핀다. 이쪽 일행이 많지 않은데다가 이미 성주가 청년들의 얼굴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이상 움직이는 건 위험했다.


“테즈와 메이가 눈이 좋고 움직임이 빠르니까 적당합니다.”

마차를 몰면서 라일러가 말했다. 락터드는 안에 있는 청년 둘을 쳐다보았다.

“경비들 눈을 피해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말하자 두 청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만에 하나 성에서 아무 것도 찾지 못하면, 그 땐 어쩌죠?”

뒤를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오히라가 물었다.

“그 땐 시합에서 이기는 걸 생각해야죠.”

세 사람을 찾아 성주의 죄를 밝히는 게 이왕이면 좋지만 그러지 못하면 일단 일행이 더 이상 위험에 빠지는 것만이라도 막아야 한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고개는 끄덕이지만 안색이 흐려지는 오히라를 향해 락터드는 말을 이었다.

“내 생각에 아마 둘 중 하나는 가능할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동안 마차는 들판을 가로질러 성주의 성문 앞에 도착하고 있었다.





성문 안을 통과해 마차가 성안으로 들어섰다. 마차에서 내려선 엘리어트는 자리에 서서 잠깐 위를 올려다 보았다. 성벽 근처에 있는 대 여섯 명의 경비병들이 성 안으로 들어오는 마차를 주시하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성의 규모가 작아선지 생각보다 성벽 쪽에 보초가 많지 않아 보였다.


서너 걸음 쯤 떨어진 곳에 멈춰선 마차에서 이미 내려선 데이먼과 일행들이 마차를 묶어 두고는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시합장은 저쪽입니다.”

라일러를 선두로 해 다들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대로 안으로 걸어가 성 중간에 칸막이처럼 걸려 있는 벽 한 쪽 커다란 나무 문을 밀어내자 그 안에 그대로 넓은 빈 터가 보였다.


안으로 들어선 일행은 사각의 울타리와 이미 시합 구경을 위해 나와 있던 병사들을 보았다. 병사들은 여기저기 흩어진 채 울타리에 기대거나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상황을 잘 모르는지(아니면 알고서 그런지는 몰라도) 다들 느긋한 얼굴이었다.


“어서 오시오.”

울타리 한 쪽에 서 있던 성주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락터드 일행을 향해 말했다.

“큰 소리 친 만큼 재밌는 구경이 되길 바라겠소.”

그 말에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락터드가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검과 방패를 확인하고 있는데 갑옷을 입은 두 명의 기사가 락터드 일행이 서 있는 반대편 울타리 쪽에서 나타났다. 지금까지는 한 명만 상대해왔다고 들었다.

“시합은 공평해야 하지 않소?”

울타리 밖에 있던 성주가 그 기색을 눈치 챘는지 조용히 말했다.

“지금까지 같았다간 어쩐지 우리한테 불리할 것 같아 말이오.”


락터드는 울타리를 뛰어 넘어 앞으로 나오는 두 사람을 보았다. 오른쪽에 긴 창과 방패를 들고 있는 기사는 키는 작았지만 체격이 건장했다. 반면 왼쪽에 있는 자는 키는 좀 더 컸지만 어깨가 좁고 전체적으로 왜소해 보였다. 손에는 검과 방패를 들고 있다.

“싸웠던 자가 누구입니까?”

“왼 쪽에 있는 남자가 같은 체격입니다.”

갑옷의 기사들을 보고 경계하는 빛을 띠며 라일러가 대답했다. 갑옷을 입고 투구를 써서 상대의 모습은 전혀 파악할 수 없다. 두 사람 다 체격만 놓고 봤을 땐 좋은 조건은 아니다.

“왼쪽은 그럼 내가 상대해 보겠습니다.”

방패와 검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통나무를 짚으며 락터드가 먼저 울타리를 뛰어 넘었다.




울타리 너머에서 엘리어트는 시합이 시작 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이쪽 일행을 제외하고 주변에는 서른 명 이상의 병사들이 울타리를 둘러 싸고 안을 보고 있다. 다들 관람을 위해 모인 건지 부담 있는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시합을 가볍게 여기는 것 같지도 않았다. 마을에서 시합이 있었을 때와 달리 가볍게 말을 나누는 소리는 들렸지만 큰 함성이나 야유는 없었다.


엘리어트는 락터드와 라일러 쪽을 보았다. 상대편 기사들은 갑옷에 투구까지 쓴 상태였으나 두 사람은 보호구가 없다.

“괜찮을까요?”

“익숙하지 않으면 지금은 걸리적거릴 뿐이다.”

옆에서 대꾸하고는 데이먼은 덧붙였다.

“그러고보니 스승이 싸우는 건 처음 보지?”

엘리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지켜 봐라. 도움이 될 거다.”

진지한 음성을 들으며 엘리어트는 시합장 가운데로 나서고 있는 락터드와 라일러 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특별한 시합 개시를 알리는 신호 없이 무기 점검을 끝내고 먼저 나와 있는 기사들의 맞은편에서 락터드와 라일러가 앞으로 나왔다. 두 사람을 주시했으나 기사들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검투 시합이었으나 특이하게 한 쪽은 긴 창을 들고 있다. 접근해서 하는 공격에 제약이 있을 것이다.

‘일단 어느 정도인지 볼까.’

검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락터드가 먼저 키가 큰 기사를 향해 달려 들었다.



공중으로 뛰어 올라 위에서 아래로 검을 내려치자 기사의 검이 그것을 막았다. 순간 강철에라도 부딪친 것 같은 충격이 검을 통해 전해왔다. 락터드는 멈칫했다. 동시에 연이어 들어온 기사의 검을 피해 그가 큰 폭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오며 기사가 락터드에게 달려 들었다.

갑옷의 무게를 생각했을 때 웬만한 기사라면 절대 낼 수 없는 속도였다.

방패로 검을 막으며 위로 뛰어 오른 락터드가 머리 위에서 기사를 향해 검을 휘둘렀고 기사의 검이 다시 그것을 막았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기사가 뒤로 물러났다. 물러설 때도 움직임이 가볍다.


다시 들어올 공격에 대비해 맞은편에 서 있는 상대를 주시하며 그는 검을 옆으로 한 번 털어냈다. 방금 전 공격 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라일러의 예상이 맞다. 웬만한 자가 상대해서 이길 수 있는 기사들이 아니다.

락터드는 문득 갑옷 너머에 누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 정도 실력자가 이런 시골의 이름 없는 성주의 기사라는 건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



조금 전 공격에 기사도 락터드에 대해 비슷하게 생각했는지 그는 바로 다시 다음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자신의 상대를 경계하며 락터드는 옆에서 다른 한 명의 기사를 상대하고 있는 라일러 쪽을 확인했다.


방패를 들고 라일러가 남자의 창을 막고 있었다. 그러나 힘에서 밀렸는지 방패 일부를 깨뜨리며 남자의 창이 앞으로 튀어 나왔다. 라일러가 좀 당황하는 사이 빠른 속도로 창이 방향을 바꿨다. 긴 창의 방향을 그렇게 빨리 전환할 수 있는 것도 쉬운 게 아니다.

다시 날아온 창이 라일러의 목을 꿰뚫으려는 찰나 락터드의 검이 창을 쳐내며 옆으로 튕겨냈다.

간신히 창을 피한 라일러가 바닥을 구르며 뒤로 물러나는 걸 보던 락터드는 자신의 상대가 찰나를 놓치지 않고 공격해 들어오는 것을 알고 그 검을 피해 가까스로 뒤로 물러났다. 다시 공격해 들어올 것을 대비해 검을 앞으로 내세우며 그는 힐끔 라일러 쪽을 보았다. 다행히 바로 일어서서 그도 다음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옆으로 한 발 더 이동하며 락터드는 갑옷의 두 남자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양 쪽 다 정말 보통 실력자가 아니다. 예리한 눈으로 락터드는 그들의 다음 움직임을 주시했다.





시합이 진행됨에 따라 구경하고 있던 병사들의 눈빛이 조금씩 변했다. 단순히 시합을 구경하는 구경꾼이 아니라 모여 있는 사람들은 실력을 파악하는 눈이 조금이라도 있는 병사들이었다. 마을에서 검술시합에 쉽게 들을 수 있던 함성소리는 없었지만 조금 웅성거리며 그들은 다들 네 사람의 경기를 흥미로운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방금 전의 빠르고 강한 공격들을 보고 그들 몇 명이 휘파람을 불었다.

“대단한데.”


그들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엘리어트는 경기장 안에 있는 네 사람을 각각 보고 있었다. 갑옷의 기사들은 외양에 비해 빠르고 강했다.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라일러 쪽이 밀리는 느낌이었다. 엘리어트는 울타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락터드를 보았다. 기사들은 강했다. 하지만 스승의 실력도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수준이었다.


“네 스승이 망설이는 건 오랜만에 보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는데 옆에서 데이먼이 중얼거렸다.

“제법 하는 놈들인가 보네.”

엘리어트는 락터드가 다시 기사를 향해 달려 드는 것을 보았다. 갑옷의 기사들과는 달리 락터드와 라일러는 시간을 끄는 시합을 하고 있다. 어느 쪽이 불리한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걱정할 거 없다.”

그가 생각하는 걸 알았는지 시합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데이먼이 말하고 있었다.

“이 라곤에서 새디를 이길만한 자는 아무도 없으니까.”

나직히 중얼대는 소리를 들으며 엘리어트도 울타리 너머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조금씩 시간이 흘렀다. 시합을 보고 있던 엘리어트는 문득 옆을 보았다. 테즈 일행은 어느새 옆에서 슬며시 사라져 있다. 그들이 빨리 움직일수록 시합도 빨리 끝날 것이다.

엘리어트는 성벽 위에 있는 초소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시합이 궁금했는지 초소에 있던 사람들도 나와서 성벽 밖으로 얼굴을 내민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무심코 다시 주위를 보는데 그러다가 저쪽에서 오히라가 성안 쪽으로 급히 들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급하게 서두르는 기색을 보고는 엘리어트는 잠시 그쪽을 응시했다.







한낮에 머리 바로 위에 있던 태양이 조금씩 옆으로 가며 그림자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재미있는 시합이라고 해도 시간이 흘러 시합이 점점 길어짐에 따라 구경하던 사람들 사이에 조금씩 무료해 하는 분위기가 흘렀다. 물론 시합 중인 네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락터드는 방금 전 공격으로 바닥에 넘어진 갑옷의 남자를 보았다. 넘어지자마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기사가 옆으로 물러 서고 있다.

이쪽에서 백기를 들 일은 없다. 그러나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이렇게 되면 예상과는 달리 시합은 어느 한 쪽이 죽어야 끝나는 흐름으로 가게 된다.

‘곤란하게 됐군.’

락터드는 옆 눈으로 라일러 쪽을 보았다. 경기가 길어지면 체력이 승부처일 수밖에 없는데 자신도 체력 소모가 상당했지만 옆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라일러는 이미 꽤 지쳐 있었다. 여기 있는 네 사람 중 아마 가장 심각한 상태일 것이다.

실력이나 체력이 없는 청년이 아니다. 하지만 보통 기사 이상 되는 자가 나가떨어질 정도로 상대가 뛰어났다.

테즈 일행이 일을 끝낼 때까지 정신력으로라도 버티길 바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검을 옆으로 한 번 털어내고는 그는 다시 갑옷의 기사에게 달려들었다.







성의 서쪽 동 끝은 사람이 전혀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오히라가 처음 왔을 때도 이곳은 폐쇄되서 쓰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에 락터드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깜박 잊고 말을 하지 않았다.

테즈들은 지금 지하의 안 쓰는 창고와 감옥 쪽을 뒤지고 있다. 말을 하면 이쪽으로 오겠지만 그녀가 보기에 조금이나마 시간을 줄여주는 게 지금 시합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을 위한 길이었다.


서쪽 동으로 들어서서 어두컴컴하고 음침한 기운이 감도는 복도 입구를 보고 그녀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안 쓰는 곳이라 경비도 없기 때문에 크게 위험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용기를 내며 그녀는 발을 뗐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쓰지 않았는지 벽에 먼지가 뽀얬다.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은 곳이어서 천장이나 바닥 여기저기 거미줄이 쳐 있었고 바닥 돌 사이에는 잡초까지 올라와 있었다. 아무도 없지만 발소리를 최대한 줄이며 그녀는 돌바닥 위를 걸어갔다.

정오가 지났는데도 간간히 나 있는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이 복도 중간 중간에 조금씩 비쳐 들어오고 있는 곳을 제외하고 복도는 어두웠다.


복도 중간까지 걸어가자 첫 번째 문이 보였다. 문 앞에 서서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조심스럽게 그녀는 걸려있는 나무 빗장을 옆으로 돌려냈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먼지가 일어나며 빗장이 옆으로 돌아갔다. 오래된 성이어선지 열쇠가 아니라 나무 빗장을 사용했다.

삐그덕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동굴 같은 방안이 입을 벌리자 오히라는 또 망설였다. 들어가기가 좀 겁이 났다.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여기서 뭐 해요?”

깜짝 놀라 돌아본 오히라는 뒤에 서 있는 엘리어트를 보고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 엘리어트구나.”

안도하는 그녀를 엘리어트가 물끄러미 보았다.

“나 혼자 가만 있는 것도 그래서.”

그 시선에 오히라는 대꾸했다.

“도움이 될까 하고.”

엘리어트는 어두컴컴한 복도 저쪽을 쳐다보았다.

“그렇지만 함부로 움직였다간 오히려 위험할 거에요.”

“응. 그건 나도 알아.”

오히라는 망설였다.

“하지만 다들 지금 정신 없는데 나만 가만 있는 것도 그래.”

그녀는 열려 있는 문의 안쪽을 다시 쳐다보았다.

“이왕 연 거 여기 있는 방 몇 개만 확인해 보고 돌아가게.”

그녀는 말했다.

“나 괜찮으니까 그러니까 먼저 가 엘리어트.”

그렇게 말하고는 숨을 훅 하고 들이마시며 오히라는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방안이 깜깜한 줄 알았으나 문 뒤쪽으로 창이 하나 나 있어 거기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오히라는 너저분한 방안을 둘러 보았다. 누군가가 살던 방이었는지 작은 침대 하나와 가재도구 몇 가지가 놓여 있었다. 한 쪽 벽에는 책이 꽉 차 있는 책장이 놓여 있다. 오랫동안 사용을 안 했는지 전부 먼지가 가득했다.

“이런 데는 없겠지?”

오히라가 중얼거렸다. 그녀가 안으로 들어가자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온 엘리어트는 오히라가 하는 말을 들으며 안을 둘러 보았다. 방은 컸으나 작은 물건들이 많았고 침대도 작아서 그 아래나 어디라도 사람 셋을 숨길 수 있을 만한 공간은 없어 보였다.


책장 아래 있는 길다란 서랍 장을 오히라는 조심스럽게 열어 보았다. 이런 데 숨기기도 어렵겠지만 막상 발견한다 생각하는 것도 무서웠다.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그녀는 서둘러 다음 칸을 열었다.

“여기에는 없을 것 같...”

엘리어트가 말을 하는데 갑자기 문 뒤쪽에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났다. 엘리어트와 오히라가 동시에 행동을 멈추었다. 다시 무슨 소리가 날까 싶어 그대로 꼼짝 않고 있는데 더 이상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문 앞으로 걸어가 문에 귀를 대고 엘리어트는 밖의 기척을 살폈다. 특별한 인기척이나 소리는 느껴지지 않는다.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엘리어트가 천천히 문을 밀어 보았다. 그런데 밖에서 걸렸는지 꼼짝도 안했다.

“잠겼어요.”

다시 밀어 보았으나 요지부동. 그 말에 화들짝 놀란 오히라가 뛰어 왔다.

“정말이네.”

두어 번 밀어보고는 꿈쩍 안 하는 문에 그녀가 당황했다.

“어쩌지?”


오히라가 다시 문을 밀어 보는 동안 엘리어트는 창으로 다가갔다. 밖을 내다보니 울타리로 된 시합장이 중간에 세워져 있는 성벽 위 다리를 지나 저쪽에서 보였다. 고개를 밖으로 내밀어 엘리어트는 옆으로 이어진 돌벽을 확인해 보았다. 바짝 붙어 가면 겨우 걸을 수 있을 만한 턱이 있어 미끄럽지만 않으면 옆으로 건너갈 수 있을 것 같다. 창으로 올라서는 엘리어트를 보고 오히라가 깜짝 놀랐다.

“왜?”

“옆으로 넘어가서 문 열께요.”

“거기로? 위험해.”

“괜찮아요.”

오히라가 말릴 틈도 없이 손으로 벽을 짚은 채 옆으로 움직여 그대로 엘리어트는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와 튀어 나와 있는 턱을 밟고 매달린 채 엘리어트는 다시 주위를 살폈다. 옆으로 갈수록 서쪽 초소에 가까워지는데 바로 아래 가려지는 사각이라 위에서는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 벽에 붙은 채 엘리어트는 잠시 기다렸다. 시합에 정신이 팔려있는지 이쪽을 보고 있는 시선은 느껴지지 않았고 별다른 소리 없이 조용하자 엘리어트는 곧 조금씩 옆으로 움직였다.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그러면서도 보초병들의 눈에 띠기 전에 최대한 빨리 옆으로 움직여 한참을 가 잠시 후 겨우 다음 창을 발견했다. 창 옆에 바짝 붙어 고개를 조금 들이 밀고는 엘리어트는 안을 살폈다. 복도로 이어진 창이다. 어두웠지만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가 엘리어트는 곧 복도 아래로 내려섰다.


복도로 내려와 손을 몇 번 털고는 오히라가 갇혀 있는 방으로 가려다가 문득 복도 저쪽에서 느껴지는 기색에 엘리어트는 고개를 돌렸다. 모퉁이를 돌아 뭔가가 막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남아 있었다. 엘리어트는 잠시 그쪽을 보았다. 모퉁이 너머에서 누군가 걸어가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왜 문이 잠겼을까. 옆으로 돌리는 빗장이라 저절로 채워질 리는 없다. 자신들이 있는 걸 알았다면 지금처럼 조용할리 없고 모르고 채웠다고 해도 혹시나 해서 한 번쯤 방안을 확인하고 문을 잠그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엘리어트는 잠시 복도 저 끝을 가만히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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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하트의 반(VAN) - 1-65. +4 13.09.16 4,120 154 10쪽
65 하트의 반(VAN) - 1-64. +3 13.09.14 5,764 157 13쪽
64 하트의 반(VAN) - 1-63. +2 13.09.12 4,048 138 10쪽
63 하트의 반(VAN) - 1-62. +16 13.09.09 6,178 155 15쪽
62 하트의 반(VAN) - 1-61. +7 13.09.06 4,360 157 14쪽
61 하트의 반(VAN) - 1-60. +2 13.09.04 4,286 170 17쪽
60 하트의 반(VAN) - 1-59. +17 13.09.02 7,252 160 23쪽
59 하트의 반(VAN) - 1-58. +21 13.08.30 4,646 158 21쪽
58 하트의 반(VAN) - 1-57. +9 13.08.28 4,058 150 12쪽
57 하트의 반(VAN) - 1-56. +33 13.08.26 4,737 153 17쪽
56 하트의 반(VAN) - 1-55. +13 13.08.23 5,020 168 16쪽
55 하트의 반(VAN) - 1-54. +10 13.08.21 7,901 168 19쪽
54 하트의 반(VAN) - 1-53. +7 13.08.19 5,245 160 11쪽
53 하트의 반(VAN) - 1-52. +5 13.08.16 6,038 157 10쪽
52 하트의 반(VAN) - 1-51. +5 13.08.15 5,375 165 16쪽
51 하트의 반(VAN) - 1-50. +16 13.08.12 6,527 179 15쪽
50 하트의 반(VAN) - 1-49. +7 13.08.10 6,228 168 18쪽
49 하트의 반(VAN) - 1-48. +4 13.08.08 5,734 165 22쪽
48 하트의 반(VAN) - 1-47. +15 13.08.06 5,212 161 16쪽
47 하트의 반(VAN) - 1-46. +8 13.08.05 4,830 168 12쪽
46 하트의 반(VAN) - 1-45. +7 13.08.02 5,132 172 11쪽
45 하트의 반(VAN) - 1-44. +6 13.08.01 4,774 166 9쪽
44 하트의 반(VAN) - 1-43. +9 13.07.29 5,468 169 15쪽
43 하트의 반(VAN) - 1-42. +8 13.07.25 5,012 179 12쪽
42 하트의 반(VAN) - 1-41. +11 13.07.22 4,801 171 16쪽
41 하트의 반(VAN) - 1-40. +6 13.07.18 5,175 180 18쪽
40 하트의 반(VAN) - 1-39. +4 13.07.15 4,726 186 22쪽
39 하트의 반(VAN) - 1-38. +9 13.07.11 6,738 166 13쪽
38 하트의 반(VAN) - 1-37. +13 13.07.08 5,223 165 19쪽
37 하트의 반(VAN) - 1-36. +2 13.07.05 6,458 170 24쪽
36 하트의 반(VAN) - 1-35. +6 13.07.01 6,039 164 17쪽
35 하트의 반(VAN) - 1-34. +25 13.06.13 5,892 181 11쪽
34 하트의 반(VAN) - 1-33. +5 13.06.10 8,205 191 21쪽
33 하트의 반(VAN) - 1-32. +9 13.06.06 6,924 166 17쪽
32 하트의 반(VAN) - 1-31. +3 13.06.03 6,940 178 17쪽
31 하트의 반(VAN) - 1-30. +13 13.05.31 8,834 188 26쪽
30 하트의 반(VAN) - 1-29. +17 13.05.27 7,425 196 19쪽
29 하트의 반(VAN) - 1-28. +7 13.05.23 7,359 181 12쪽
» 하트의 반(VAN) - 1-27. +10 13.05.20 8,233 176 19쪽
27 하트의 반(VAN) - 1-26. +3 13.05.16 8,543 181 13쪽
26 하트의 반(VAN) - 1-25. +3 13.05.14 8,319 184 27쪽
25 하트의 반(VAN) - 1-24. +15 13.05.09 8,367 232 24쪽
24 하트의 반(VAN) - 1-23. +7 13.05.03 10,464 289 25쪽
23 하트의 반(VAN) - 1-22. +9 13.04.29 9,083 201 21쪽
22 하트의 반(VAN) - 1-21. +1 13.04.25 8,406 209 12쪽
21 하트의 반(VAN) - 1-20. +9 13.04.21 9,478 215 21쪽
20 하트의 반(VAN) - 1-19. +29 13.04.07 9,109 242 19쪽
19 하트의 반(VAN) - 1-18. +10 13.04.04 8,447 220 24쪽
18 하트의 반(VAN) - 1-17. +7 13.04.02 8,158 209 21쪽
17 하트의 반(VAN) - 1-16. +7 13.03.28 9,018 197 15쪽
16 하트의 반(VAN) - 1-15. +6 13.03.25 10,205 200 15쪽
15 하트의 반(VAN) - 1-14. +6 13.03.21 8,954 223 24쪽
14 하트의 반(VAN) - 1-13. +7 13.03.17 9,494 228 12쪽
13 하트의 반(VAN) - 1-12. +8 13.03.11 9,217 222 16쪽
12 하트의 반(VAN) - 1-11. +6 13.03.07 9,541 230 16쪽
11 하트의 반(VAN) - 1-10. +6 13.03.04 10,136 251 18쪽
10 하트의 반(VAN) - 1-9. +2 13.02.28 10,106 235 19쪽
9 하트의 반(VAN) - 1-8. +6 13.02.26 10,644 256 14쪽
8 하트의 반(VAN) - 1-7. +6 13.02.25 11,241 271 15쪽
7 하트의 반(VAN) - 1-6. +19 13.02.21 11,296 282 16쪽
6 하트의 반(VAN) - 1-5. +14 13.02.19 13,169 277 20쪽
5 하트의 반(VAN) - 1-4. +13 13.02.17 14,299 330 15쪽
4 하트의 반(VAN) - 1-3. +9 13.02.17 15,196 327 13쪽
3 하트의 반(VAN) - 1-2. +15 13.02.11 16,470 350 13쪽
2 하트의 반(VAN) - 1-1. +15 13.02.10 21,873 403 12쪽
1 하트의 반(VAN) - 0. +15 13.02.04 29,030 44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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