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의 반(VAN) - 2-1 헬렌(2)
2.1 헬렌(2)
저녁이 다 되어 해가 질 무렵 삐그덕 소리와 함께 여관 1층에 있는 식당 문이 열렸다. 가게 안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와 술청 앞에 놓여 있는 의자에 털썩 앉는 남자를 보고 여관 주인 마틸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헬렌은 부두가 있는 마을이어서 여행자들이 많았기에 오랫동안 사람들을 상대해 온 그녀는 넉넉한 덩치에 맞게 사람 다루는 데에는 도가 터있었지만 늘상 싸움만 해대는 아비크를 보면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또 싸웠다면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심드렁하게 아비크가 대꾸했다.
“네에..”
방금 전 재판을 받고 성에서 풀려나 돌아온 그를 향해 마틸다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참 운도 좋아. 영주 아들한테 손대고 무죄 방면되는 녀석은 세상천지 너 하나 일거다.”
“아.. 나와서도 시끄럽네.”
한심스러운 얼굴을 하는 마틸다를 향해 골치아픈 얼굴로 중얼거리며 아비크는 다시 말했다.
“적당히 하고 술이나 한 잔 줘요.”
마틸다의 얼굴이 더욱 찌푸려졌다.
“나오자마자 술타령이야?”
“목이 말라서 그래요.”
“그럼 물 마셔. 술이나 퍼마시고 또 싸우면 그 책임은 누가 져? 내가?”
긴 잔소리에 귀가 따가워 아비크가 얼굴을 한 번 쓸어 내렸다.
“마틸다.”
“너한텐 술 안 팔아. 괜히 나까지 평 안 좋아지면 어쩔건데?”
몸을 돌려 그녀는 찬장에서 컵 하나를 꺼냈다. 옆에 놓인 물통에서 찬물을 따라 그녀는 잔을 그에게 내밀었다.
“정신나게 물이나 마셔.”
목을 뒤로 꺾어 소리 없이 한 번 기함하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아비크는 잔을 들어 올렸다.
마틸다는 잔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그를 보았다. 이 지역 청년들 중에서도 준수한 외모였다. 싸움에 정신이 팔려 있지 않았다면 여자들께나 따라 다녔을 것이다.
“멀쩡한 생김새로, 대체 이건 허구헛날...”
혀를 끌끌 차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왜, 반하셨수?”
농담에 마틸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말버릇 봐라. 우리 남편한테 그 잘생긴 얼굴 엉망으로 만들게 하고 싶어?”
퉁명스러운 소리에 피식하며 아비크는 다시 잔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 있는데 등 뒤에서 가게 문이 삐그덕 소리를 내며 다시 열렸다.
“아이구. 이제들 오우?”
반색 하는 마틸다의 기색에 아비크는 힐끔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가게 안으로 여자 두 명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둘 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 중 한 명은 얼핏 봐도 이 지방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미모 아니, 어느 지방에서든 흔히 볼 수 없는 미인이었다.
“어떻게 됐수?”
서로 아는 사이였는지 좀 전에 자신을 대할 때와는 사뭇 다르게 두 사람을 맞이하며 마틸다가 말했다.
“성주님이 안 계셔서 오늘은 일단 그냥 돌아 왔어요. 내일 다시 가보려고요.”
그녀를 향해 눈에 띄는 외모의 여자가 말했다.
“아직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요.”
“그렇게 말하면 안되죠.”
옆에 있던 다른 여자 한 명이 그 말에 끼어 들었다. 옅은 갈색 머리칼과 잘 어울리는 동그란 갈색의 눈동자가 다른 한 명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예쁘다는 인상을 주는 여자였다.
“집사 말로는 성주가 예전부터 염색 직물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고 집사도 보고 꽤 마음에 들어했으니까 아마 문제 없을 거에요.”
그녀가 옆 사람을 향해 덧붙였다.
“이렇게 말해야 하는 거라구요. 희망적으로.”
“아이구 그거 잘 됐네.”
낯빛을 밝히며 마틸다가 말했다.
“하루 종일 수고했수. 올라가 쉬어요. 내, 금방 저녁 준비하리다.”
녹색 눈동자의 여자가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이 몸을 돌려 2층으로 통하는 계단으로 올라섰다 계단이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사라지자 아비크가 그쪽으로 턱짓을 했다.
“누구에요?”
“오스티아에서 온 아가씨들이야."
저녁을 뭘 대접할까 생각하는 얼굴로 마틸다가 대꾸했다.
"너 잡혀 갔을 때 오셨지.”
“보아하니 귀족 같은데..”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가 사라지는 것을 들으며 그가 무심히 물었다.
“여긴 무슨 일로?”
“포목점 일 때문에.”
헬렌은 오스티아에서 생산하는 직물 거래를 같이 하고 있다.
대꾸하던 그녀가 문득 생각난 얼굴로 덧붙였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아비크, 괜히 저 아가씨들한테 행패 부리거나 말 함부로 할 생각은 말어.”
그 말에 아비크가 으쓱했다.
“그 말 들으니까 괜히 그러고 싶어지네.”
“뭐야?”
“근데 진짜 무슨 생각으로 여기 와 있는 거래요. 그런 일에 굳이 신경쓸 얼굴들이 아닌 것 같은데.”
탁자 위에 팔을 올리며 상체를 앞으로 숙여 아비크는 몸을 기댔다.
“선심이라도 베풀어서 존경이라도 받으려고 오신 건가..”
“아비크.”
마틸다의 큰 목소리에 그는 다시 어깨를 으쓱했다.
“네. 네. 입 다뭅죠.”
말을 멈추며 그가 다시 잔에 입을 댔다.
계단을 오른 셰릴과 디에나는 복도 왼편 끝에 있는 방문을 열고 안으로 걸어들어 갔다.
“아침부터 움직였더니 배고파....”
외투를 벗어 벽에 걸자마자 침대에 털썩 주저앉으며 디에나가 중얼거렸다.
“그러게 나 혼자 간다고 했잖아요.”
뒤따라 들어온 셰릴이 그녀를 향해 말했다.
“그건 싫네요. 나도 일 돌아가는 상황은 알고 싶다구요. 억지로 쫓아왔는데 빈둥거리면서 천덕꾸러기 되는 것도 싫고.”
“아무 것도 안한다고 천덕꾸러기라고 생각 안 해요.”
대꾸하며 셰릴은 걸어가 창밖을 살짝 내다보았다. 좀 전에 타고 온 마차가 아직 가지 않고 자리에 있다.
“잠깐 혼자 있을 수 있어요?”
털썩 드러 누웠던 디에나가 침대를 짚으며 몸을 반쯤 일으켜 그녀 쪽을 보았다.
“왜요? 어디, 또 가게요?”
보니까 그녀는 외투를 벗지 않은 상태였다.
“숙모님 댁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여전히 창밖으로 시선을 둔 채 셰릴은 대답했다.
“여기 있다는 기별을 했지만 역시 걱정하실 것 같아서요.”
아버지와 막역한 친구였기에 원래대로면 헬렌 영주의 성에 머물러야 했지만 이번에 거래를 틀 생각인 곳과 거리가 멀어서 아무래도 왕래가 불편할 것 같아 그녀는 영주에게 이곳에 머물겠다고 청했다. 헬렌 영주에게는 요즘 골치 아픈 개인적 문제가 있어서, 그래서인지 더 권하지 않고 영주도 그녀의 뜻대로 하게 해주었다.
며칠 전 숙모에게 그런 상황을 얘기했는데 아무래도 걱정하고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 그녀는 디에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아니면 같이 갈래요?”
디에나가 한 손을 반쯤 흔들어 보였다.
“힘들어서 그냥 있을래요.”
마차를 확인하고 창가에서 한 발 물러나 셰릴은 침대옆으로 걸어왔다. 좀 망설이는 얼굴로 그녀는 다시 디에나를 쳐다봤다.
“괜찮겠어요?”
“나 애 아니에요.”
셰릴은 잠시 생각했다.
“내일이면 돌아오겠지만 그래도...”
“진짜 괜찮아요."
디에나는 말을 이었다.
"혹처럼 달려 있을 거면 셰릴 쫓아오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정말 피곤하기도 하구요.”
잠깐 망설이던 셰릴은 굳이 안 가겠다는 그녀를 억지로 데려갈 수도 없어서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심히 있어요.”
“여기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걱정 붙들어 매요.”
그렇게 대꾸하며 디에나는 무심히 손을 흔들어 보였다.
“잘 갔다 와요 그럼.”
잠깐 다시 그녀를 보다가 셰릴은 끄덕였다.
“가급적 빨리 올게요.”
“네.”
길게 대답하는 디에나를 다시 보다가 곧 그녀가 문손잡이에 손을 댔다.
여관에서 이어진 길을 따라 말 두 필이 이끄는 마차가 마을을 잇는 다리를 건너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갔다. 마차 안에 앉아 있던 셰릴은 창밖을 내다보며 저 멀리 보이는 바다에 시선을 주었다. 바닷물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여 눈이 부시자 살짝 눈을 찡그렸지만 마차가 가는 동안 그녀는 계속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로안에 있는 숙부의 성은 장미로 아름답게 치장된 성벽으로 둘러 싸인 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철문이 열리자 마차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
녹색 드레스를 입은 화려해 보이는 여자가 마차가 성 안으로 들어오자 중앙의 넓은 계단 위에 서 있다가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을 보고 반색을 하며 아래로 내려왔다.
“데비...!”
마차에서 내리던 셰릴은 앞으로 걸어오는 숙모를 보고 고개를 들었다.
“숙모님.”
마차에서 내려와 그녀는 서둘러 숙모를 향해 걸어갔다.
“언제 오나 했다.”
애정 어린 눈으로 조카를 보며 노라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기다리셨던 거에요? 죄송해요.”
“그래, 너무 하는구나.”
사촌 앤의 모친인 그녀가 서운하다는 듯 셰릴의 어깨를 다시금 다독였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
“네.”
숙모의 호위를 받으며 셰릴은 곧 성 안으로 통하는 계단에 발을 올렸다.
“대체 헬렌은 왜 들른 거니? 왔으면 곧장 이리로 오지 않구.”
셰릴은 코트를 벗어 들었다. 봄이지만 날은 아직 좀 쌀쌀하다. 옆에 서 있던 하녀 아이가 익숙한 몸놀림으로 그녀의 코트를 받아 주었다.
“고마워요.”
그녀의 말에 하녀 아이가 상냥히 미소를 지었다.
“장사꾼들이 판을 치는 곳이야. 정신이 없어서 원...”
가져다 준 따듯한 차에 손을 대며 노라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재밌는 것도 많아요.”
“재미는..”
이해할 수 없는 얼굴로 대꾸하며 노라는 그녀를 향해 손짓했다.
“와서 마시고 몸 좀 녹이렴.”
그 말에 셰릴은 그녀 옆으로 걸어갔다.
“그런 데 가지 말고, 여기나 좀 자주자주 와주면 안되겠니.”
지난 번에 로안에 왔을 때부터 반 년이 지나 있었지만 1년에 두 번은 로안을 방문하고 있었다. 그래도 숙모는 더 자주 그녀를 보고 싶어 했다.
“너라도 와 줘야 내가 그나마...”
걸어와 찻잔에 손을 대는 그녀를 보고 있다가 한숨을 섞어 노라는 말했다.
“남편과 수도로 간 다음부터 앤은 아예 볼 수도 없으니 말야.”
따듯한 차를 마시자 몸에 온기가 도는 것을 느끼며 셰릴은 말했다.
“지난번에 수도에 갔을 때 앤 언니를 만났어요.”
“그랬니?”
그 말에 오히려 시름이 깊어진 얼굴로 한숨처럼 대꾸하는 숙모를 그녀는 가만히 보았다.
사촌 앤이 수도로 간 건 3년 전이었다. 그 전에도 친정인 로안에 자주 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수도로 간 다음부터는 지금껏 한 번도 오지 못했다. 그 점을 딸에 대한 애정이 깊은 숙모가 서운해하고 있다는 것을 셰릴도 알고 있었다.
걸어가 숙모의 옆에 무릎을 굽혀 앉으며 위로하듯 셰릴은 그녀의 팔에 다정하게 손을 얹었다.
“형부는 이제 왕실 기사단에서도 아주 높은 위치에 있으세요. 그 정도로 출세하는 건 어렵다고들 하는데 기쁘지 않으세요?”
“나는 잘 모르겠다.”
길게 한숨을 내쉬며 기운 없이 노라가 대꾸했다.
“사람은 그저 원하는 곳에서 보고 싶은 사람 보면서 마음 편히 사는 게 제일이야.”
어쩐지 늙어 버린 듯 한숨짓는 숙모를 보고 셰릴은 상냥한 어조로 말했다.
“생각하기 나름이에요.”
조카딸의 위로에 노라는 조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나저나 데비.”
그러다가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그녀가 의자에서 등을 떼며 셰릴이 있는 쪽으로 얼굴을 디밀었다.
“너도 이제 결혼을 생각해야 되지 않니?”
그녀는 말했다.
“실은 에스코바 가에서 너한테 혼담이 들어왔단다.”
방금 전과는 사뭇 딴 판으로 목소리에 생기가 돌고 있었다.
“작은 아들이 어디서 널 봤는지 매파가 나한테 찾아 왔어. 네가 오면 얘기해 주려고 진작 벼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기분이 좋아 졌는지 노라는 웃음 지었다.
“에스코바 가는 왕의 사촌이기도 하지. 좋은 기회 아니겠니?”
“기분을 망치긴 싫지만요 숙모님.”
난감한 듯 미소 지으며 셰릴은 말했다.
“죄송해요. 그건 거절해 주세요.”
노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째서? 혹시 정해둔 사람이라도 있는 거니?”
“그런 거 아니에요.”
어깨를 움츠리며 다시 난감히 미소지어 보이는 것을 보고 노라는 기가 막힌 얼굴을 했다.
“그럼 왜?”
그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앤 봐라. 그 애도 스물 둘에 결혼하지 않았니. 혼인하기에 이미 이른 나이가 아니야 너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목소리를 높이는 숙모를 향해 어쩔 수 없이 셰릴은 다시 웃어 보였다.
“죄송해요.”
뜻을 거스르는 게 조심스러웠는지 공손히 말하는 조카딸을 보고 노라는 답답한 얼굴이 되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니?”
이렇게 된 데는 딸자식 시집 보내는데 도통 관심이 없는 시숙 어른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목소리를 높였다.
“언제까지 풀이나 키우면서 살게? 여자는 그저 좋은 남자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게 제일이야.”
숙모는 이제 앤 언니의 일은 머리속에서 떠난 듯 보였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셰릴은 미소 지었다.
“아직도 저를 데비라고 부르시면서요.”
“그야 나한테야 늘 귀여운 데비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너를 옆에 둘 수야 없지 않니.”
달래듯 그녀를 향해 노라는 다시 말했다.
“한 번 더 생각 해 보렴. 이 숙모를 위해서.”
그 말에 어쩔 수 없는 기색으로 셰릴은 다시 미소지었다.
“네. 그럴게요.”
그대로 상냥히 대꾸하며 그녀는 다시 숙모의 팔에 손을 얹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식당 문이 다시 열렸다.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아침 첫손님을 보고 마틸다가 활짝 웃어 보였다.
“어서 와요. 일찍 일어났네.”
앞으로 걸어와 디에나는 그녀가 서 있는 술청 앞으로 걸어갔다.
“왜 혼자요? 다른 한 분은...”
잔을 행주로 닦으며 마틸다가 물었다.
“친척 집에 갔어요.”
디에나는 카운터 앞에 몸을 기대 서며 중얼거렸다.
“귀족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요. 한시도 가족 품을 못 벗어나요.”
“아이구.. 아가씬 귀족이 아닌 것처럼 말하는 구랴.”
“저야 다르죠.”
마틸다가 내려 놓는 물잔을 손에 들며 그녀는 잔을 손가락으로 빙빙 돌렸다.
“전 누구처럼 품안의 새가 아니거든요.”
물을 다 마시고 난 뒤 디에나는 고개를 들었다.
“셰릴이 없으니까 오늘 포목 손질은 저 혼자 도와드릴께요.”
“굳이 안 도와줘도 되는데...”
미안한 듯 마틸다가 말하자 디에나는 으쓱했다.
“숙박비도 안 받으시잖아요. 이 정도는 해야 염치가 있죠.”
그 말에 쿡 웃으며 마틸다가 기운차게 말했다.
“식사 금방 되니 먹고 바로 갑시다 그럼.”
“도와드려요?”
“이것까지 도와달라는 건 내가 염치가 없는 거니...”
사람 좋은 얼굴로 마틸다는 말했다.
“그냥 앉아서 조금만 기다려요.”
식사를 내오기 위해 몸을 돌리는 그녀를 보다가 디에나가 간단히 대꾸했다.
“그럼 사양 않고.”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자리에 앉았다.
딸랑 소리와 함께 식당 문이 다시 열렸다.
“아이구. 웬 일이야? 이 시간에.”
주방으로 나 있는 작은 덧문쪽에서 반색하는 마틸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에요..? 지붕 고쳐 놓으라고 잔소리 한 게 누군데.”
반색하는 음성에 대꾸하며 남자는 잠이 덜 깬 듯 손으로 머리를 쓱쓱 문질렀다.
“기억 못 할 줄 알았으면 잠이나 더 잘 걸 그랬네.”
문득 생각이 난 듯 그는 물었다.
“이런 일엔 왜 맨날 날 불러요? 아저씬 어쩌고.”
“그 이야 장사 다니느라 바빠서 이런 일까지 시키는 건 미안해서.”
웃으며 넉살 좋게 하는 소리에 그가 투덜댔다.
“잔소리는 있는대로 하면서 너무 부려먹는 거 아니에요?”
“대신 우리 집에서 끼니 해결하게 해 주잖아.”
그를 달래며 사람 좋은 얼굴로 그녀는 말했다.
“들어가 앉아서 잠깐 기다려.”
그 말에 귀찮은 얼굴로 미간을 찌푸리며 아비크는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테이블 쪽으로 걸어간 그는 안에 있는 유일한 사람쪽을 무심히 한 번 쳐다보았다.
주위는 전혀 안중에도 없는 얼굴로 턱을 괸 채 앉아 있는 디에나의 옆을 지나쳐 그 역시 그녀와 하나 정도 떨어진 테이블 앞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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