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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k 님의 서재입니다.

하트의 반(VAN)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명인k
작품등록일 :
2013.02.04 17:06
최근연재일 :
2019.02.10 23:08
연재수 :
29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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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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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16
글자수 :
2,269,960

작성
13.12.05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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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하트의 반(VAN) - 2-2 이에넨(1)

DUMMY

2.2 이에넨(1)



네바렌 영주의 성 중앙 집무실.

연회장과 같은 크기의 커다란 방 한쪽에 놓인 원형의 탁자 앞에서 한 남자가 그 위에 놓여 있던 서류를 들어 올리고 있다. 귀족으로서의 품위가 몸에 베어있는 고상한 움직임이었다.


노크 소리가 울렸다.

“들어오게.”

대꾸에 그와 반대편에 있는 화려한 무늬가 새겨진 적갈색의 문이 활짝 열렸다. 육중한 크기에 맞지 않게 매끄럽게 문이 열리고 곧 두 남자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공이라도 크게 세웠는지 앞장 서 걸어오는 남자는 사뭇 기세가 등등해 보였다. 공작의 앞까지 걸어와 그 자리에 서서 한쪽 다리를 굽히며 그가 몸을 숙였다.

“원정을 끝내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공작님.”

말하는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쳤다.


가메인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정의 성과는 릴을 통해 전해 들었지.”

공작이 말하는 동안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고했네. 발지크.”

“감사합니다.”

발지크라고 불린 기사가 더욱 등을 꼿꼿히 폈다.

“오랫동안 고생했으니 자네 공로에 섭섭지 않을 포상이 있을 거야.”

공작은 말을 이었다.

“그 동안의 고생에 보답이 되었으면 하는군.”

“감사합니다, 공작님.”

여전히 등을 쫙 편 채 그가 대답했다.

“보고는 이만하면 됐으니 그만 가서 쉬게.”

공작은 말을 이었다.

“아직 휴식이 충분치 않을테니.”

"아닙니다."

"사양하지 않아도 돼. 원정에서 막 돌아온 그대를 계속 붙잡고 있을만큼 속이 없진 않으니까."

다시 말하는 소리에 더 사양하는 게 실례인 걸 아는지 이번에는 순순히 남자가 허리를 굽혔다.

“그럼 분부대로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벗어나려는 그를 향해 공작이 덧붙였다.

“먼저 나가보게. 부관하고는 잠깐 할 말이 있어서 말이야.”

가볍게 한 말이었으나 그 말에 지금까지 기세가 등등하던 발지크의 안색이 조금 변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으려 애를 쓰는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그가 대답했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그대로 돌아서는 그의 안색이 좀 전에 안으로 들어왔을 때와 달리 굳어져 있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공작은 남아 있는 다른 청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발지크 롯이 방을 나가자 남아 있던 다른 한 명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공작님.”

중저음의 조용한 목소리였다. 가메인 공작은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너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 남으라고 했다.”

공작은 말했다.

“원정에서 네가 올린 성과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고.”

가메인은 미소를 지었다.

“무엇보다 오랜만이구나, 엘리어트.”

그 말에 남자가 고개를 조금 숙여 보였다.

“그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가메인 공작님.”


1년의 반 이상이 겨울인 센볼린에서 돌아왔는데도 피부는 그을려 있다.

키는 컸으나 체격은 그다지 건장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피부에 닿고 있는 가슴께 옷 부위가 탄탄한 것으로 보아 꽤 잘 발달된 근육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메인 공작의 집무실에, 오스티아의 소년은 어느덧 청년이 되어 이제 이 자리에 서 있었다.

“하실 말씀은 혹시 시마르에 관한 겁니까?”

칭찬의 말이라도 기대할 법 한데 곧장 용건을 묻는 엘리어트를 보고 가메인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맞다.”

그가 끄덕이자 엘리어트는 공작이 서 있는 테이블 가까이로 한 발 더 다가섰다.




원정을 나갔던 네바렌의 군대가 센볼린에서 돌아온지는 일주일이 지났지만 그 동안에는 공작이 네바렌에 없었기 때문에 이제야 그에게 돌아왔다는 보고를 하게 된 참이다.


공작은 네바렌 혈맹국 간의 연례 회의에 갔다 오늘 아침에 돌아왔다. 그것은 네바렌을 비롯한 혈맹 12개국의 연례 회의로 혈맹국 중 제일 중앙에 위치한 시마르에서 열려 시마르 회의라 칭했다.


“혈맹안에서도 혈맹국 간 관계에 따라 다시 세력이 나뉜다는 것은 너도 알고 있겠지.”

질문이 아니었기에 대꾸 없이 엘리어트는 잠자코 있었다.


“그 혈맹이라는 게 인척 관계가 아니면 지리적으로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곳에 자리한 영주국간들이지. 나 역시도 그런 잇점 때문에 시마르에 속하게 된 거고.”

귀를 기울이고 있는 엘리어트를 보며 공작은 말을 이었다.

“그렇더라도 뜻이 통하는 자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야. 아주 예전에, 내게 있어서는 뜻이

맞았던 단 한 명이 이에넨의 영주였다. 그런 그가 죽고 그의 아들이 영주의 자리에 오른 게 몇 달 전이고.”

그의 목소리는 조용히 방안에 흘러갔다.

“원정도 그렇고 이것 저것 다른 일에 신경 쓰느라 몰랐는데 그 이에넨이 이제 시마르에서 빠져 나가 새로 라제크와 혈맹관계를 맺을 작정이더구나.”


같은 시마르였어도 이례적으로 이에넨이 혈맹국들과 조금은 동떨어진 곳에 위치했기 때문에 소외된 느낌을 받았는지 아니면 새로 이에넨의 영주가 된 젊은 백작의 치기어린 행동인지 몰라도 이에넨은 이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노리고 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낡은 관계는 청산하고 젊은 영주국인 라제크와 손을 잡으려는 하고 있었다.


“라제크 영주는 보통 야심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런 자와 함부로 손을 잡는 건 의외로 위험한 짓이야. 이에넨의 젊은 영주는 아직 모르는 것 같지만.”


조용히 말하는 것 같지만 가메인 공작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진중했다.


“선대 영주 때문에 그냥 있을 수 없기도 하고, 거기에 나 역시 이에넨이 라제크와 손을 잡으면 그 방향으로의 교역에 지장이 생기니 그렇게 되는 건 막았으면 한다. 물론 드러내놓고 두 영주국이 손을 잡는 걸 방해할 수는 없으니 어디까지나 비밀리에 말이야.”


조금씩 본론으로 들어가자 엘리어트는 자신이 할 일이 나올 거란 걸 알고 공작에게 한 발 더 다가섰다.

그러는 동안 책상 서랍을 열고 공작은 그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협정서다."

엘리어트를 향해 서류 한 장을 건내며 공작은 말을 이었다.

"그 옛날 이에넨의 선대 영주와 내가 체결한. 이번 회의에 참석한다면 새영주에게 보여주려 했지만 오지 않더군.”

공작이 건낸 서류를 엘리어트는 눈으로 읽어내려 갔다. 그것은 십 수년도 더 전에 씌여진 협정서로 네바렌과 이에넨 중 어느 한쪽이 먼저 동맹을 파기할 시 각자에 대한 어마어마한 배상액이 적혀 있는 서류였다.

뜻이 통하는 친구간에 주고받을 내용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러기에 더 확실히 해둔 것일 것이다.


다 낡은데다 군데군데 먼지가 묻어 있는 상태로 보아 오랫동안 한 번도 꺼내진 적 없는 협정서를 지금 이순간 꺼내든 것은 이미 말로는 새 영주를 설득할 수 없다고 판단했단 뜻이고 그러기에 원론적인 방법으로 밀고 나가기로 공작은 마음 먹은 듯 했다.


“이에넨 영주는 이 달 안에 라제크로 떠난다.”

엘리어트가 잠시 생각하는 동안 가메인 공작은 말을 이었다.

“말만 전해서는 못 믿을 것 같으니 닷새 안에 도착해서 이 협정서를 영주에게 보여주고 라제크와 손을 잡는 걸 단념시켜다오.”

"알겠습니다."


협정서를 둘둘 말아 엘리어트는 다시 공작에게 건냈다. 서랍 안에서 밀랍을 꺼내 공작은 협정서에 옆에 떨어 뜨리고 인장을 찍어 밀봉했다.


“라제크 영주가 나와 이에넨 영주와의 관계를 알고 있으니 우리가 움직이는 걸 예상하고 방해하려 들지 모른다. 그러니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처리해야 한다.”

“네.”

밀봉된 협정서를 받아들며 엘리어트는 대답했다.

“돌아오자마자 이런 일을 시켜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대꾸하는 소리에 문득 생각난 얼굴로 공작은 다시 말했다.

“키욘 드팔가가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했지?”


엘리어트가 함께 할 사람이 필요할 때 종종 같이 움직이곤 했던 키욘 드팔가가 이제 고향으로 내려가겠다는 뜻을 비치고 엘리어트가 찾아오기 전 공작을 만나고 갔다. 십 년 넘게 용병일 하고 모은 돈이 이제 제법 되어서 더 이상 궂은 일에서는 손 떼고 편히 살고 싶다고 말한 참이다.


“함께 갈 다른 녀석들을 붙여줄테니 만나서 일정을...”

공작이 말하는데 노크 소리가 났다. 문이 열리고 릴이 안으로 걸어들어 왔다. 아우드 릴은 공작과 함께 방에 있는 엘리어트를 보았다.

“엘리어트.”

반가운 얼굴로 걸어온 릴을 향해 엘리어트가 허리를 굽혔다.

“릴 님.”

“오랜만이구나.”

아우드 릴이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건강해 보여 다행이다.”

그도 공작과 마찬가지로 회의에 참석했다 돌아왔다.

“염려해주셔 감사합니다.”

공손히 말하며 엘리어트는 다시 공작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릴이 이 방에 들어왔다는 건 공작에게 용건이 있단 뜻이니 자리를 비켜줘야 했다.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두 사람을 향해 허리를 굽혀 보이고는 엘리어트는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는 엘리어트를 보다가 그의 손에 들린 문서를 알아본 릴은 고개를 돌려 공작을 쳐다보았다.

“이에넨에 관한 일을 저 아이에게 시키셨습니까?”

“그래.”

그 상황에 대해서는 릴도 알고 있다. 공작의 대답에 릴은 새삼 다시 닫혀진 문쪽을 쳐다보았다.

“뭘 그리 보나?”

그의 시선에 공작이 가볍게 물었다.

“이번 원정에서 엘리어트가 꽤나 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잠시 후 잠깐 시선을 돌리며 릴이 공작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알고 있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듯 대꾸하는 소리를 들으며 잠시 생각하는 얼굴로 릴은 말을 이었다.

“따르는 자들도 제법인 것 같더군요. 병사들 뿐 아니라 이제 기사들까지.”


가메인 공작의 뜻으로 용병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엘리어트는 이번 원정에 기사단의 부관 자격으로 다녀왔다. 실력으로만 보자면 이상할 일이 아니지만 기사가 아닌 자가 병사들을 통솔하는 건 지휘 체계에 위배 되니 나름 복잡한 문제였다.


“저 아이는 일을 맡을 때마다 계속 두각을 나타내지.”

그걸 모르지 않을텐데 대꾸하는 공작의 목소리는 태평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잖나?”

“그렇긴 하지만 이번처럼 크게 드러난 적은 처음입니다.”

“뭘 말하고 싶은 겐가, 아우드.”

느긋한 얼굴로 공작은 책상 위에 놓인 또 다른 서류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이번 원정이 규모가 큰 데다 중요한 일이긴 했지만 그런 걸 생각하고 움직일 아이는 아니란 걸 알텐데?”

“물론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릴은 잠시 사이를 두었다.

“실은 조금 걱정이 됩니다.”

진지한 얼굴로 그가 다시 말했다.

“병사들 중에서는 이미 따르는 자들이 제법이고 젊은 기사들 사이에서도 꽤 신망을 얻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만 중견 기사나 귀족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역시나 그의 출신을 문제 삼으니까요.”

무슨 얘길 하려는 건지 이쪽을 빤히 보는 시선에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릴은 말을 이었다.

“공작님께서, 아마 염두해 두고 계시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용한 어조로 릴은 말했다.

“엘리어트를.”

공작의 시선이 지금까지 중 가장 묵직하게 그를 향했다.


드안 가메인 공작은 독신이다. 뒤를 잇게 할 자손이 없었으니 네바렌의 귀족들 사이에서 그의 자리가 누구에게로 넘겨질까 하는 것은 가끔씩 좋은 뒷담화 꺼리가 되곤 했다.


삼십만이 넘는 병대와 함께 많은 주변 국가와의 오랜 교역으로 엄청난 부를 거머쥐어 네바렌은 이제 라곤 전체를 통털어 손에 꼽을 만한 막강한 영주국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런 곳의 영주가 된다는 건 부와 권력을 동시에 차지하는 자가 된다는 뜻이었다.


물론 아직은 먼 훗날의 이야기였으니 거기에 대해 심각하게 이야기가 나온 적은 없다. 하지만 릴이 보기에 공작이 거기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철저했고 그런 만큼 그가 일으켜 놓은 이 네바렌을 누구에게 넘겨줄 것인가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만한 사람은 아니다.


한평생 상인으로 살아온 드안 가메인 공작은 공정한 사람이다. 그는 배경보다는 사람을 볼 줄 알았고 그러면서 제대로 볼 줄 알았다. 그런 그의 의중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 엘리어트일 거라고 오랫동안 그를 보좌해온 릴은 생각하고 있었다.



“거기에 대해서는 나는 아직 할 말이 없네.”

그 말에 어떤 의사표시도 하지 않은 채 공작은 말했다.

“지금 저 아이 위치에서 말도 안되는 얘기라는 걸 자네도 알테니 말이야. 더군다나 저 아이는 기사가 되는 것도 거절하지 않았나.”

물론 지금 상황에서는 누가 들어도 말도 안 되는 얘기겠지만 공작은 마음 먹으면 어떤 일이라도 뜻대로 해치우는 인물이었으니 지금은 불가능해보여도 원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통하게 할 것 또한 분명했다.


“이대로 네바렌 귀족들이나 기사들이 엘리어트를 주시하게 되면, 지금의 상황에서는 안 좋은 일에 휘말리게 될 가능성이 더 클겁니다.”


공작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했고 그렇다면 그냥 입을 다물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으며 릴은 그대로 말을 계속했다.


“그러니 지금 저 애가 눈에 띄는 건 아직 시기상조입니다.”


이렇게 말을 계속 하는 건 릴 역시 엘리어트를 아끼기 때문이었다.

몇 년 지켜본바 엘리어트은 실력과 인성을 모두 갖춘, 기사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좋은 청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릴이 보기에 지금의 상황은 염려스러운 감이 없지 않았다.

그것은 엘리어트가 세우는 공이 커질수록 더 실체를 갖춘 위험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만에 하나 그런 위험에 넘어간다면 그건 저 아이 역량이 거기까지란 뜻이고 그렇다면 내가 사람을 잘못 봤단 거겠지.”

대꾸하는 목소리가 심각하지 않고 가볍다.

“뭘 걱정하는 겐가 아우드.”

공작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미 얘기했지 않은가. 난 아직 아무것도 정해두지 않았다고.”

잠시 사이를 두었다 그는 덧붙였다.

"그저 지금은 지켜볼 뿐이야. 당분간 내가 하려는 건 그것 뿐일세.”


그렇게 말하고 공작은 입을 다물었다. 이번에는 대화를 끝내고자 하는 뜻이 확고해 이 이상 원하는 말을 들을 수 없다는 걸 알며 잠시 후 릴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 역시 이제 대화를 끝냈다.










공작의 집무실에서 나와 엘리어트는 성안의 긴 복도를 걸어갔다. 문서는 품안에 잘 간수했다. 돌아온지 일주일이 지나 그도 슬슬 다음 일을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원정은 5년이나 걸렸지만 그로서는 용병으로서 주어진 하나의 일이 끝난 것과 다름없다. 발지크 대장처럼 특별한 포상을 기대하거나 피로감에 쉬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이제 다시 다음에 맡게 될 일에 대해 생각할 뿐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며 걸어가는데 복도 가운데 나 있는 계단 근처에 누군가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를 알아 보고는 엘리어트는 곧 그쪽으로 걸어갔다.

“키욘.”

복도 중간에 나 있는 계단 옆에서 키욘은 난간에 기댄 채 서 있었다.

“뭐해요? 여기서.”

“너 보려고 기다렸다.”

그는 말했다.

“공작님께 갔다길래..”

이제 마흔을 막 넘긴 그가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가기 전에 인사나 하려고 말이야.”

그 말에 엘리어트가 그를 잠시 응시했다.

“지금 가려고요?”

공작이 말한 것처럼 키욘은 이제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러나 언제 간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했다.

“결심했으면 꾸물거릴거 있어?”

끄덕이며 키욘은 말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또 때를 놓치면 안 되니까.”

몇 년 전부터 진작에 고향에 내려가고 싶어하던 그였다.


그 옆으로 가 엘리어트는 계단 난간에 몸을 기대고 섰다.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엘리어트는 말했다.

“벌써 십 년 넘었죠?”

“네바렌에 있던 것만 치면 그렇지. 11년 전에 널 만났으니.”

키욘은 잠시 옛날을 떠올렸다.

“좌우간 쓸데없이 나서던 꼬마가 벌써 그 때 내 나이 비슷하게 컸다니..”

연이 될려고 그랬는지 그날 센볼린의 성에서 우연히 함께 싸우던 꼬마와 지금까지 같이 네바렌에서 지냈다.

“세월 빨라.”

조금은 감개무량하다는 듯 키욘이 중얼거렸다.

“너하고 지금까지 이렇게 같이 지냈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말이야.”

“난 키욘이 그 때 나랑 비슷한 나이였다는 게 더 놀라운데요.”

농담에 키욘이 코웃음쳤다.

“그 얼굴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 않냐. 그럼 손해 보는 건 아니다.”

“젊을 때 크게 손해 본 것 같지는 않고요?”

“뭐라고?”

기막힌 듯 대꾸하는 소리를 들으며 엘리어트는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둘 다 이제 입을 다물었다. 주변이 조용해졌다.

“넌 이제 어쩔거냐?”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키욘은 물었다.

“뭘요?”

“그냥 이대로 계속 지낼 거냐?”

답답해하는 기색이 말투에서 느껴진다.

“가메인 님이 서임식을 해주겠다고 얘기를 꺼내신 게 벌써 몇 년인데.”

말하는 기색이 진중하다.

“거절하는 건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냐?”

“별 이유 없어요.”

평소의 담담한 음성으로 엘리어트는 대꾸했다.

“그냥 기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무슨 소리야?”

키욘은 혀를 찼다.

“그럴 거면 용병 생활은 왜 하고 있냐? 싸움을 즐기지도 않는 녀석이.”


지난 십 일 년 간 숱한 공을 세우면서도 엘리어트가 그 공에 걸맞는 대우를 받지 못한 건 기사가 아니라는 그의 위치 때문이었다. 기사였다면 이 네바렌에서 벌써 중요한 자리까지 차고 올라갔을 것이다.

공으로만 보자면 일세롯이나 키에드보다도 먼저 기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공작이 그에게 가진 호의에 비해 엘리어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늘 거기서 한 발 비켜나고 있었다.


“잘 생각해라.”

진지하게 키욘은 말했다.

“용병이 기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건 쉬운 게 아니야.”

11년 간 그와 함께 한 동료이자 친구로서 마지막으로 그에게 하는 애정 어린 충고였다.

“그걸 깨닫지 못하고 언제까지 이 생활만 하며 지내다간 결국 나처럼 될 거다. 그러기 전에 네게 걸 맞는 옷을 입는 게 좋을 거고.”

“난 키욘처럼 사는 것도 나쁠 거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엘리어트.”

“알았어요.”

정색을 하며 부르는 소리에 엘리어트는 곧 말했다.

“생각해 볼게요. 진짜로.”

그러나 대답은 그렇게 하지만 아마 그의 결정은 변함이 없을 거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며 키욘은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잔소리 다 했으니 난 이제 진짜 가봐야 겠다.”

그가 난간에서 몸을 뗐다.

“잘 지내라.”

그를 응시한 채 엘리어트는 조용히 말했다.

“잘 지내요 키욘. 나중에 만나러 갈 테니까.”

“그럴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만, 그래 놀러 와라.”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키욘은 발을 돌렸다.

“간다. 엘리어트.”

머리 위로 손을 흔들어 보이며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그를 엘리어트는 뒤에 남은 채 그대로 물끄러미 응시했다.














카쉬르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으나 거기서부터 다른 영주국으로 이어진 길이 수도 없이 나 있다. 그러나 중간에 거쳐갈만한 여관이나 술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근처에 있는 다른 마을에도 길은 충분히 나 있어 이곳은 여행객 하나 없이 한적하고 조용했다.


어느 오두막 창가 근처에 걸터 앉아 창밖으로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새들을 보고 있던 시즈는 길게 하품을 했다.

“왜 안와?”

입맛을 다시며 고인 눈물을 닦아 내고는 방 안에 있던 사람을 향해 그가 물었다.

“왜 안 오지?”

“좀 기다려 봐,”

안에 있던 다른 한 명이 대꾸했다.

“느긋하게.”

그렇게 기다리기를 벌써 한 나절 째라 언제까지 더 기다려야 하는가 싶은 얼굴로 알아 들을 수 없게 투덜대며 별 수 없다는 듯 시즈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창밖으로 지저귀는 새소리만 끊이지 않고 들릴만큼 따분하고 평화로운 오후의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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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하트의 반(VAN) - 2-2 이에넨(2) +5 13.12.08 4,211 126 11쪽
» 하트의 반(VAN) - 2-2 이에넨(1) +10 13.12.05 4,356 120 20쪽
79 하트의 반(VAN) - 2-1 헬렌(4) +9 13.12.03 4,321 118 15쪽
78 하트의 반(VAN) - 2-1 헬렌(3) +3 13.12.01 3,578 118 20쪽
77 하트의 반(VAN) - 2-1 헬렌(2) +12 13.11.28 3,832 111 17쪽
76 하트의 반(VAN) - 2-1 헬렌(1) +3 13.11.26 4,018 120 9쪽
75 하트의 반(VAN) - 2-0 엘소(2) +8 13.11.26 4,066 137 11쪽
74 하트의 반(VAN) - 2-0 엘소(1) +15 13.11.24 4,195 140 14쪽
73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5) +10 13.11.21 3,222 96 19쪽
72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4) +9 13.11.20 3,186 91 26쪽
71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3) +3 13.11.17 2,961 92 18쪽
70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2) +3 13.11.15 3,407 97 14쪽
69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1) +11 13.11.11 4,061 101 14쪽
68 하트의 반(VAN) - 1-67. +19 13.09.18 5,306 162 16쪽
67 하트의 반(VAN) - 1-66. +11 13.09.17 6,937 154 22쪽
66 하트의 반(VAN) - 1-65. +4 13.09.16 4,120 154 10쪽
65 하트의 반(VAN) - 1-64. +3 13.09.14 5,764 157 13쪽
64 하트의 반(VAN) - 1-63. +2 13.09.12 4,048 138 10쪽
63 하트의 반(VAN) - 1-62. +16 13.09.09 6,179 155 15쪽
62 하트의 반(VAN) - 1-61. +7 13.09.06 4,361 157 14쪽
61 하트의 반(VAN) - 1-60. +2 13.09.04 4,288 170 17쪽
60 하트의 반(VAN) - 1-59. +17 13.09.02 7,252 160 23쪽
59 하트의 반(VAN) - 1-58. +21 13.08.30 4,648 158 21쪽
58 하트의 반(VAN) - 1-57. +9 13.08.28 4,058 150 12쪽
57 하트의 반(VAN) - 1-56. +33 13.08.26 4,737 153 17쪽
56 하트의 반(VAN) - 1-55. +13 13.08.23 5,020 168 16쪽
55 하트의 반(VAN) - 1-54. +10 13.08.21 7,902 168 19쪽
54 하트의 반(VAN) - 1-53. +7 13.08.19 5,245 160 11쪽
53 하트의 반(VAN) - 1-52. +5 13.08.16 6,038 157 10쪽
52 하트의 반(VAN) - 1-51. +5 13.08.15 5,376 165 16쪽
51 하트의 반(VAN) - 1-50. +16 13.08.12 6,528 179 15쪽
50 하트의 반(VAN) - 1-49. +7 13.08.10 6,230 168 18쪽
49 하트의 반(VAN) - 1-48. +4 13.08.08 5,734 165 22쪽
48 하트의 반(VAN) - 1-47. +15 13.08.06 5,212 161 16쪽
47 하트의 반(VAN) - 1-46. +8 13.08.05 4,831 168 12쪽
46 하트의 반(VAN) - 1-45. +7 13.08.02 5,132 172 11쪽
45 하트의 반(VAN) - 1-44. +6 13.08.01 4,774 166 9쪽
44 하트의 반(VAN) - 1-43. +9 13.07.29 5,468 169 15쪽
43 하트의 반(VAN) - 1-42. +8 13.07.25 5,012 179 12쪽
42 하트의 반(VAN) - 1-41. +11 13.07.22 4,802 171 16쪽
41 하트의 반(VAN) - 1-40. +6 13.07.18 5,177 180 18쪽
40 하트의 반(VAN) - 1-39. +4 13.07.15 4,726 186 22쪽
39 하트의 반(VAN) - 1-38. +9 13.07.11 6,738 166 13쪽
38 하트의 반(VAN) - 1-37. +13 13.07.08 5,225 165 19쪽
37 하트의 반(VAN) - 1-36. +2 13.07.05 6,458 170 24쪽
36 하트의 반(VAN) - 1-35. +6 13.07.01 6,041 164 17쪽
35 하트의 반(VAN) - 1-34. +25 13.06.13 5,893 181 11쪽
34 하트의 반(VAN) - 1-33. +5 13.06.10 8,205 191 21쪽
33 하트의 반(VAN) - 1-32. +9 13.06.06 6,925 166 17쪽
32 하트의 반(VAN) - 1-31. +3 13.06.03 6,941 178 17쪽
31 하트의 반(VAN) - 1-30. +13 13.05.31 8,835 188 26쪽
30 하트의 반(VAN) - 1-29. +17 13.05.27 7,428 196 19쪽
29 하트의 반(VAN) - 1-28. +7 13.05.23 7,359 181 12쪽
28 하트의 반(VAN) - 1-27. +10 13.05.20 8,234 176 19쪽
27 하트의 반(VAN) - 1-26. +3 13.05.16 8,544 181 13쪽
26 하트의 반(VAN) - 1-25. +3 13.05.14 8,319 184 27쪽
25 하트의 반(VAN) - 1-24. +15 13.05.09 8,367 232 24쪽
24 하트의 반(VAN) - 1-23. +7 13.05.03 10,464 289 25쪽
23 하트의 반(VAN) - 1-22. +9 13.04.29 9,083 201 21쪽
22 하트의 반(VAN) - 1-21. +1 13.04.25 8,406 209 12쪽
21 하트의 반(VAN) - 1-20. +9 13.04.21 9,478 215 21쪽
20 하트의 반(VAN) - 1-19. +29 13.04.07 9,110 242 19쪽
19 하트의 반(VAN) - 1-18. +10 13.04.04 8,448 220 24쪽
18 하트의 반(VAN) - 1-17. +7 13.04.02 8,159 209 21쪽
17 하트의 반(VAN) - 1-16. +7 13.03.28 9,019 197 15쪽
16 하트의 반(VAN) - 1-15. +6 13.03.25 10,206 200 15쪽
15 하트의 반(VAN) - 1-14. +6 13.03.21 8,955 223 24쪽
14 하트의 반(VAN) - 1-13. +7 13.03.17 9,495 228 12쪽
13 하트의 반(VAN) - 1-12. +8 13.03.11 9,218 222 16쪽
12 하트의 반(VAN) - 1-11. +6 13.03.07 9,542 230 16쪽
11 하트의 반(VAN) - 1-10. +6 13.03.04 10,136 251 18쪽
10 하트의 반(VAN) - 1-9. +2 13.02.28 10,107 235 19쪽
9 하트의 반(VAN) - 1-8. +6 13.02.26 10,646 256 14쪽
8 하트의 반(VAN) - 1-7. +6 13.02.25 11,244 271 15쪽
7 하트의 반(VAN) - 1-6. +19 13.02.21 11,296 282 16쪽
6 하트의 반(VAN) - 1-5. +14 13.02.19 13,170 277 20쪽
5 하트의 반(VAN) - 1-4. +13 13.02.17 14,300 330 15쪽
4 하트의 반(VAN) - 1-3. +9 13.02.17 15,197 327 13쪽
3 하트의 반(VAN) - 1-2. +15 13.02.11 16,471 350 13쪽
2 하트의 반(VAN) - 1-1. +15 13.02.10 21,877 403 12쪽
1 하트의 반(VAN) - 0. +15 13.02.04 29,032 44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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