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의 반(VAN) - 1-6.
나무를 내리 찍는 소리가 깊은 숲에 울려 퍼졌다.
숲이 울창해 서 있는 곳을 제외하고 주변에 나무가 빼곡하다. 그 사이로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 잠시 도끼를 내리찍던 손을 멈추고 엘리어트는 턱 끝에 고여 있는 땀을 손등으로 문질러 냈다.
조금 쉴 생각에 그는 도끼 자루를 나무 한 쪽에 기대 놓았다. 땅 위로 튀어 올라와 있는 나무 뿌리를 건너 나뭇가지 사이로 한 줄기 빛이 비치고 있는 곳까지 가 엘리어트는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렇게 앉아 그는 잠시 나무 사이로 보이는 손바닥 만한 하늘을 응시했다.
숲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었다. 울창한 나무로 인해 빛도 들어 오지 않는 곳과 적당히 자란 나무들이 한산히 자라 있는 곳이 번갈아 겹을 이루며 숲을 이어 나갔다.
여기에는 간간히 예전에 설치해 놓은 트랩 같은 것도 남아 있다. 잘 모르고 움직였다간 위험해지기가 쉬웠으니 이런 곳에 오는 사람은 밀렵꾼 말고는 아마 없을 것이다.
웬만큼 좋은 나무를 구할 곳은 이미 다른 나뭇꾼들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낄 수가 없었고 그래서 엘리어트는 여기 와서 가끔 나무를 해가곤 했다. 위험한 곳이지만,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이곳이 엘리어트는 그다지 무섭지만은 않았다.
나무에 등을 기댄 채 비스듬히 앉아 엘리어트는 잠시 눈을 감았다. 주변이 고즈넉했다. 햇빛으로 봤을 때, 아마 조금 있으면 해가 질 것이다. 어두워지면 길 찾기가 어려워 조금 있다가는 이 장소에서 나가야 한다.
잠깐 있다가 엘리어트는 이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문득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무언가에 시선이 갔다. 그대로 시선을 고정한 채 엘리어트는 그것을 바라 보았다. 조용한 장소에서 죽은 새 한 마리를 바라보고 있자니 무섭기보다는 어쩐지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죽는 편이 더 나은지도 모른다.
“얘?”
그러고 있는데 문득 등 뒤에서 고음의 선명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엘리어트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옆을 보았다.
“왜 그러고 있어? 여기서.”
의아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소녀가 자신을 향해 말을 하고 있었다.
“설마 했는데. 더구나 여긴 나도 처음 와보는 곳인데....”
나무 사이에서 갑자기 나타난 자기 또래의 여자애를 보고 멍하니 그는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너 누구니? 여기서 뭐하는 거야?”
거침없는 어조로 데비는 숲 한 가운데 앉아 있는 소년에게 말을 건냈다. 아까 얼핏 그림자를 보고 혹시나 해서 들어와 봤는데 정말로 누가 있을 줄은 몰랐다.
“혼자 이런데 오면 위험해.”
초점 없는 눈동자로 자신을 보고 있는 소년은 입을 열진 않고 있었다. 그 기색이 좀 이상해서 데비는 말을 멈추고는 그가 보고 있던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새 한 마리가 거기에 죽어 있었다.
“불쌍해서 그래?”
잠시 망설이다가 데비는 말했다.
“어쩔 수 없는 일도 생기는 법이래.”
그러나 여전히 소년은 입을 열지 않았고 지나치게 조용해 보이는 눈동자와 묘한 기색에 데비 역시 잠시 가만히 그를 응시하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잠깐...”
그녀가 눈살을 찌푸렸다. 예쁘장한 눈썹을 구부린 채 뭔가 탐탁치 않은 듯 미심쩍은 눈으로 데비는 소년을 쳐다보았다.
“설마 너, 이상한 생각이라도 하고 여기 온 거 아니지?”
그녀가 말했다. 여전히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소년의 모습에 데비의 눈썹이 더욱 휘어졌다. 그렇게 잠깐 자신을 보고 있던 소년이 갑자기 몸을 돌려 고목이 울창한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기다려 봐.”
얼결에 데비가 그를 불러 세웠다. 소년이 뒤돌아 자신을 쳐다보았다. 무슨 말을 할지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특별히 할 말이 없어 눈살을 찌푸리며 내키지 않는 어조로 데비는 말했다.
“혹시 정말 그런 거라면 제발 참아줘. 그렇잖아도 폐쇄시키고 싶어 하는데. 더 이상 문제가 생기면 좋을 게 없단 말이야.”
가만히 있던 그가 그녀의 말이 끝나자 곧 다시 돌아섰다. 대꾸도 없이 걸어가려는 기색에 데비의 표정이 못마땅해졌다.
“얘..!”
조금 큰 소리에 새들이 푸드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소년도 좀 머뭇하더니 자리에 서서 뒤돌아보았다.
“걱정 되서 말하는 거야. 그럼 뭐라고 한 마디는 해 줄 수 있잖아. 만에 하나 무서운 생각이라도 하고 왔거나 아님 밀렵이라도 하러 왔다고 해도 타당한 이유가 있으면 무조건 뜯어 말리진 않는다구.”
무서운 기세로 쏘아 대고는 그를 쳐다보았으나 소년은 여전히 무응답.
그녀의 미간이 더욱 꿈틀댔다.
‘왜 말을 안하는 거야..? 대체.’
그녀가 입을 다물자 이내 다시 몸을 돌려 걸어 가려는 그를 보고 데비도 화가 나서 몸을 돌렸다. 나도 몰라. 어떻게 되도.
그렇게 생각하며 들판이 있는 쪽으로 성큼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뒤에서 엘리어트가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화가 난 얼굴로 그녀는 나무 사이를 걸어 나갔다. 그러나 천천히 그녀의 걸음이 느려졌다.
화가 나서 쏘아 대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숲에 혼자 그냥 둘 수는 없었다. 밀렵이라도 하러 왔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하지만 밀렵꾼이라고 보기엔 자기 또래의 어린애였다. 그 다음 떠오른 무서운 생각이라도 실행하러 왔다면.. 눈썹을 마구 찌푸리며 그녀는 자리에서 멈춰섰다. 역시 그냥 모른 척 지나칠 순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서서 다시 걸어가려는데 갑자기 몸이 바닥으로 푹 꺼졌다. 엉겁결에 데비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눈을 질끈 감은 채 엉덩방아를 찧고는 데비는 천천히 눈을 떴다.
“뭐야..?”
눈을 뜨고 보니 구덩이 같은 곳에 빠져 있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손에 묻은 흙을 털며 데비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위와 마찬가지로 잔풀들이 바닥에 무성히 자라 있어서 이런 틈새가 있다는 걸 알아 채지 못했다.
걸어 왔었던 길에서 살짝 옆으로 비켜나있어서 올 때는 빠지지 않았던 것 같다. 구덩은 그녀의 키보다 한 배 반 정도 깊은 정도로 파여 있었다. 팔을 쭉 뻗어 위에 있는 풀을 잡을 수 있었으나 손목 힘으로 올라 설 만큼 그녀가 힘이 세지는 않았다.
‘어쩌지......’
가만히 위를 쳐다보며 생각을 하려는데 다음 순간 누군가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데비는, 넘어져서 당황한 데다 아까 그 소년이 갑자기 나타나자 어리둥절한 채 그의 시선을 마주 대했다. 그녀를 내려다 보고 있다가 몸을 숙이며 그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멀뚱히 데비가 쳐다보았다.
“올려 줄게.”
처음으로 소년이 입을 열었다.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그녀가 갑자기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싫어.”
데비는 말했다.
“아까 대답 안 해줬잖아. 분명히 말해 줄때까지 나도 도움 안 받아.”
엘리어트는 그녀를 응시했다. 정말 안 올라오려는 생각인지 소녀는 아예 돌아서서 바닥에 앉고 있었다. 엉뚱한 여자애다. 이 상황에.
잠시 그녀를 보고 있다가 엘리어트는 주머니에서 나무단을 묶으려고 가져온 새끼줄을 꺼내 가까이 있는 나무 기둥에 묶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고랑 아래로 늘어 뜨렸다. 데비는 자신의 옆으로 내려오는 새끼줄을 쳐다보았다. 줄을 내리고는 걸어와 엘리어트는 구덩이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주저 앉아 있던 데비는 위에서 뛰어 내려온 그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별로 생각한 거 없어. 뭘 하려던 것도 아니고. 그냥 보고 있던 거뿐이야.”
담담히 말을 하며 그가 바닥에 양 손을 집고 몸을 숙여 엎드렸다.
“줄을 잡아 당기면서 올라가.”
데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뭐라고 한마디 하려고 하다가 엎드려 있는 그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신발을 벗어 들어 위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는 앞으로 걸어가 그의 등을 밟고 올라서서 새끼줄을 잡았다. 흙더미를 발로 지탱하며 그녀가 서너 번 발을 움직여 위로 올라 갔다.
“휴..”
겨우 올라와 길게 숨을 한 번 내쉬고는 데비는 아래를 내려다 보며 말했다.
“줄 잡을 게, 너도 올...”
말을 하던 그녀는 양 손으로 고랑의 턱을 잡고 위로 올라서는 그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단하다.”
위로 올라앉은 엘리어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보고 있는 그녀를 한 번 쳐다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무쪽으로 걸어가는 그의 뒤를 따라가며 데비는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올라와?”
엘리어트는 나무에 묶어놓은 새끼줄의 매듭을 풀었다.
“그냥. 나도 몇 번 빠진 적 있어.”
빠지는 것과 빠져 나올 수 있는 건 전혀 다른 문제 같았지만 그건 일단 넘어가고 소년이 또 입을 다물기 전에 그녀는 서둘러 다시 물었다.
“밀렵도 아닌데 여기 그럼 왜 온 거야?”
“나무하러.”
“나무?”
“응.”
“왜?”
“제재소에 팔아야 해서.”
탐탁지 않은 일이라도 생각난 듯 데비가 다시 미간을 찡그렸다.
“피어드 제재소에?”
마을에 하나 밖에 없는 제재소는 피어드였는데 주인이 악랄하기로 소문 나 있었다.
엘리어트는 잠시 주위를 둘러 보았다. 어둠이 어느새 사방에 조용히 내려앉고 있다. 그는 숲에서 마을로 통하는, 자신이 표식으로 만들어 놓은 길을 쳐다보았다. 날이 점점 어두워져서 그 길의 끝이 희미하게 보였다.
“숲을 제일 잘 아는 건 나라고 생각했는데...”
혼자말로 중얼거리던 데비는 뭔가 생각이 난 듯 그를 향해 물었다.
“아, 나 왜 따라 왔어?”
“길이 아닌 쪽으로 가는 것 같아서. 마을로 가려면 저리로 가야 돼.”
그는 한 손으로 나무 사이의 작은 틈새를 가리켰다. 조금 망설이다가 엘리어트는 그녀를 향해 다시 말했다.
“이제 그만 가는 게... 더 어두워지면 위험해.”
“넌?”
“나도 갈 거야.”
대꾸하며 엘리어트는 아까 왔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간다매?”
뒤에서 데비가 길게 외치며 물었다. 엘리어트는 그녀를 다시 돌아 보고는 대꾸없이 안으로 걸어들어 갔다. 혼자 남겨진 데비의 눈썹이 다시 또 찌긋이 구겨졌다. 관자놀이를 한 번 긁적이고는 그 자리에서 양 팔을 팔짱껴 잡은 채 데비는 그대로 서 있었다.
소년이 사라지자 주변은 다시 또 조용해 졌다. 그 상태로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
한참이 지나 숲 안에서 새끼줄로 묶은 나뭇가지들을 양 손 한 아름 들고 소년이 걸어 나왔다. 여전히 데비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엘리어트가 자리에 섰다.
“같이 가는 게 더 안전할 것 같아서.”
새침한 얼굴로 그녀가 말했다.
“여기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앞서 가고 있는 엘리어트를 뒤따라 걸으며 데비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울창한 나무들이 곧게 뻗어 있었다.
“이런 데 처음이야.”
조금 조바심이 난 듯 그녀가 앞을 보며 물었다.
“저기... 제대로 가고 있는 거니? 어쩐지 나무들이 더 커지는 거 같아.”
“응. 괜찮아.”
“어떻게 괜찮은 건지 구체적으로 말해 줄래?”
엘리어트는 한 손으로 자신이 만들어 놓은 표시가 있는 나뭇가지를 밀어냈다.
“내가 표시해 놓은 걸 따라가고 있으니까.”
데비는 나뭇가지에 그어진 선명한 표식에 시선을 주었다.
“그래?”
아무런 동요 없이 곧장 가고 있는 엘리어트의 뒷모습을 보다가 문득 데비는 물었다.
“저기, 이름 물어봐도 돼?”
데비가 말하는 동안 엘리어트는 어둠 속에서 뭔가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느끼고는 자리에 섰다.
“난....”
말을 하려던 그녀는 뭔가가 머리에 스치는 느낌에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엘리어트는 그녀를 자신 쪽으로 잡아 당기며 한 손으로 머리위로 날아온 뭔가를 쳐냈다. 그 바람에
장작이 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흩어지는 소리를 냈다.
“뭐야?”
당황해서 얼떨떨해진 기색으로 그녀가 중얼거렸다.
“새야.”
엘리어트는 새가 다시 공격하지 않을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기색을 살폈다. 다행히 그대로 날아간 듯 했다.
“발소리 때문에 위협을 느꼈나봐. 여기 새들은, 꽤 크거든.”
데비는 기가 막힌 얼굴이 되었다.
“여기 너무 위험한 거 아니니? 난 새 좋아해. 새한테서 공격받고 싶진 않다구.”
그녀가 말하는 동안 엘리어트는 떨어진 장작으로 시선을 주었다. 날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니 주워 모을 시간은 없다. 새벽 서리를 맞아 젖어버린 장작은 팔지 못한다.
"도대체 어떤 새길래..."
한참 말하다가 듣고 있지 않은 기색에 입을 다물며 데비는 그가 시선을 주고 있는 쪽을 따라갔다. 사방에 떨어진 장작을 보고 짚히는 바에 데비는 멈칫했다. 목소리를 낮추며 곧 그녀가 말했다.
“미안..”
엘리어트가 고개를 저었다.
“내일 와서 가져가면 돼.”
그는 말했다.
“가자.”
이번에는 순순히 데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뭇가지를 하나 더 젖히자 그제야 익숙한 길이 눈에 보였다. 몇 시간 전 새 모이를 주던 공터로 연결된 길이었다. 데비는 그제야 길게 숨을 한 번 내쉬었다. 그녀는 뒤돌아 자신이 빠져 나온 숲 속을 쳐다보았다. 시커먼 어둠이 나무 사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계속 길을 따라 내려갔다. 숲을 완전히 빠져 나와 큰 길에 이르자 날은 완전히 컴컴해져 있었다. 마을과 성으로 통하는 갈림길에 서서 데비는 흙먼지로 엉망이 된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았다.
‘보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다.’
한 숨을 내쉬며 그녀가 생각했다. 그 때 저쪽에서 길게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데비 아씨.”
고개를 드니 횃불 한 개가 이쪽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정원사인 기버와 레사가 그녀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아가씨~”
레사가 앞에서 그녀를 발견하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뛰어 왔다. 그녀가 데비의 팔을 잡았다.
“여기서 뭐하시는 거에요?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아.. 괜찮아, 난.”
데비가 레사의 손을 잡으며 서둘러 대꾸했다. 60이 다 된 정원사 기버 영감도 그제야 안심이 된 듯 나지막한 어조로 입을 뗐다.
“여태 여기 계셨습니까? 레사한테 여태 안 돌아오셨단 말 듣고 걱정했습니다요.”
“죄송해요, 기버 할아버지.”
“아가씨. 정말 전, 놀랐단 말이에요.”
여전히 그녀의 팔에 매달린 채 레사가 눈물을 글썽였다.
“아가씨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제가 얼마나 혼날 줄 아세요?”
“그래, 미안해.”
“이제 다신 참깨 찌꺼기 안 모아 드릴래요.”
“어휴. 별 일 없었는데 유난은.....”
말을 하던 데비는 문득 뒤돌아 소년이 서 있던 쪽을 보았다. 소년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 저쪽에서 사람 그림자가 비치는 듯 했다. 잠시 그쪽을 응시하다가 양 손을 입가에 대며 그녀가 큰 소리로 말을 했다.
“고마워.”
그림자가 희미하게 이쪽을 돌아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누구랑 같이 계셨습니까?”
의아한 듯 기버 영감이 물었다.
“아니에요.”
데비는 서둘러 말했다.
“그만 가요, 할아버지.”
그녀의 말에 잠자코 기버 영감이 앞장을 섰다. 데비는 여전히 훌쩍이고 있는 레사의 손을 잡아 끌며 이스릴 성으로 통하는 길로 걸음을 옮겼다.
정오가 되자 엘리어트는 어제 그 장소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팔 수는 없었지만 집에서 쓰는 데에는 문제없었다. 숲 가운데 도착하자 해가 머리 한가운데 올라 있었다. 나무짐을 떨어뜨린 곳으로 간 그는 장작들이 작은 나무 아래 가지런히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잠시 자리에 멈춰 섰다가 그쪽으로 걸어갔다. 장작더미 위에 쪽지가 놓여 있었다.
-어젠 고마웠어. 그리고 이건 미안.
엘리어트는 잠시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어제 꽤 놀라는 것 같았는데. 이렇게 금방 다시 여길 왔다 갈 줄은 몰랐다. 쪽지를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그는 새끼줄을 꺼내 나무를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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