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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k 님의 서재입니다.

하트의 반(VAN)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명인k
작품등록일 :
2013.02.04 17:06
최근연재일 :
2019.02.10 23:08
연재수 :
298 회
조회수 :
979,472
추천수 :
28,216
글자수 :
2,269,960

작성
13.04.02 07:53
조회
8,157
추천
209
글자
21쪽

하트의 반(VAN) - 1-17.

DUMMY

어두운 밤에 말도 가지고 나오지 않은 채 락터드는 성문을 빠져 나오고 있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는 길가에 있는 가게 지붕위로 뛰어 올라갔다. 지붕 위를 도약해 그가 단숨에 왕성에서 멀어졌다.


수도의 한가운데쯤까지 내려오자 멈춰 서서는 무릎을 굽혀 그가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수도 한복판 광장. 여기서부터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뉜다. 가장 오른쪽으로 이어진 길을 확인하고 반대편 지붕으로 건너간 그가 달리기 시작했다. 수백 개 지붕을 뛰어 넘고 거의 끝쯤 다달해 마지막 지붕에 도착하자 그가 다시 멈춰섰다.


민가가 끝나고 거기부터는 귀족들의 성이 널찍널찍 떨어져서 몇 채 놓여 있다. 영지가 있는 영주들이 가지고 있는 이를테면 별장 같은 곳이었다. 락터드는 그 중 제일 가운데 달빛을 받으며 우뚝 서 있는 성을 쳐다보았다.



오늘밤 혼자서 루더 백작의 성에 숨어 들 것이다.

자신은 왕의 신하였고 왕께 여왕의 신하가 되기로 약속하고 이곳에 온 거였기에 여왕의 명령이라면 따를 것이다. 그러나 설령 그렇대도 그는 무고한 사람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여왕에게 대답한 것은 말 그대로 반란을 일으킨다면 그들을 제압하겠다는 뜻이지 무턱대고 사람을 죽이겠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니 일단 상황을 살핀 후에 그러고 나서 어떻게 할지를 정할 생각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왕은 백작이 정말 반란을 도모할 것인지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지만 자신 뿐 아니라 그들에게도 그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달이 구름에 가려 주변이 암흑으로 변했다. 구름 속에서 달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락터드의 모습은 지붕 위에서 사라져 있었다.







수도 광장에서 오른쪽 길로 마차 한 대가 달려갔다. 한참을 그 길을 따라 달려가다 루더 백작의 성에 다다르자 마차가 화려한 정문 앞에서 멈추고 곧 열린 문을 통해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성의 입구로 이어진 돌 계단 앞에서 마차가 멈춰서자 마차에서 내린 남자가 주위를 향해 한 번 시선을 주고는 서둘러 돌계단 위를 걸어 올라갔다. 밤인데다 두건을 쓰고 있어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계단을 올라 집 안으로 들어간 남자는 곧장 2층으로 향했다. 루더 백작이 자주 쓰는 서재는 2층 제일 끝에 놓여 있었다. 잠기지 않은 문을 열고 서재 안으로 들어서자 루더 백작이 그 한 쪽에 놓인 책장 앞에 서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두건을 쓴 남자를 보고 그가 잠시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왠 일이오? 연락도 없이.”

두건을 벗으며 반하드 공작이 그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큰 일 났소. 여왕이 의심하기 시작했소.”

그 말에 공작을 보다가 루더 백작은 들고 있던 책을 덮었다.

“그러길래 내 뭐랬소?”

초조한 기색으로 공작은 방안을 잠시 서성였다.

“그런 짓은 위험하다니까.”

외곽 창고에서 왕성의 무기들을 빼돌린 건 지금 생각해도 살떨리는 짓이었다. 그런 짓을 꾸미다 들켰는데도 태연한 루더 백작이 그는 점점 더 정신이 나갔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제 어쩔 거요?”

“글세.”

조용히 루더 백작이 대답했다.

“생각해보는 중이오.”

그다지 동요하지 않는 음성이었으나 그에게 목숨을 건거나 다름없는 반하드 공작의 입장에서는 입이 바짝 마르는 대답이었다.

“대책도 없단 말이오?”

“누가 그랬는지 알 길이 없으니 걱정할 거 없다는 뜻이오.”

반하드 공작은 침을 삼켜 목을 축였다. 조금 진정하려고 애를 쓰며 그는 다시 물었다.

“왕성에는 왜 안 오는 거요?”

지난 몇 달간 백작은 왕성에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더 여왕의 노여움을 사고 있소.”

“매일같이 왕성을 드나들었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 거요.”

백작은 말했다.

“여왕이 내 목을 치고 싶어한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는 사실 아니오? 새삼스럽게.”

책상 앞으로 걸어가 루더 백작은 책을 그 위에 내려 놓았다.

“어떻게든 권위를 세울 만한 계기를 찾고 있으니 누가 되더라도 한 번은 피를 볼 작정이겠지.”

“그게 우리가 될 필요는 없지 않소?”

기가 막혀서 반하드 공작은 백작을 보았다.

“이러려고 난 당신 편에 선 게 아니오.”

겁도 많고 욕심도 많은 반하드 공작의 말에 백작은 소리없이 숨을 들이마셨다. 이런 자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을 만큼 룻사에는 인물이 없었다.

“여왕에게 말을 좀 들었다고 이렇게 찾아오는 거야 말로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는 거요.”

담담히 백작은 말했다.

“그만 돌아가시고 쓸데없는 행보는 삼가시오.”

그 말에 뭔가 말을 더하려다 참으며 반하드는 입을 다물었다.



성 탑 꼭대기의 조각상 옆에서 락터드는 한참이 지나 반하드 공작이 다시 성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어딜 또 가려는지 마차가 반하드 공작의 성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보다가 락터드가 아래로 뛰어 내렸다.







반하드 공작이 찾아오고 하루가 더 지났다. 루더 백작은 집무실 한 쪽에 서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어차피 이대로 시간을 끌어봤자 좋을 게 없다. 반하드 공작이 나댈 때부터 안좋은 예감이 들었지만 이미 물러설 수 없었다. 이렇게 된 거 일을 치루려면 이제 최대한 빨리 진행하는 게 여왕이 준비할 틈을 줄여주는 길이었다.


에리안 자작에게는 지난 번에 만났을 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을 지시했다. 전서구가 날아가면 언제든지 병사들이 왕성으로 진격할 수 있게. 창을 열고 백작은 새장에 있던 전서구 한 마리를 꺼내 창밖으로 날렸다. 공중을 날아가는 새를 그는 잠깐 보고 있었다. 며칠 안에 왕성으로 진격 할 것이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앞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창을 닫았다.














깊은 밤. 백작의 성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어둠속에서 성 주변으로 무언가가 조금씩 움직였다. 수레가 끌리며 바닥을 가는 소리가 났다. 성문 옆 경비 초소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병사 한 명이 무슨 소리가 나나 싶어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데 어둠 속에서 화살 하나가 날아가 그의 가슴에 꽂혔다.

보초병이 쓰러지고 잠시 후 하나 둘 씩 횃불이 어둠을 밝히기 시작했다. 불덩이 하나가 투석기 위에서 성문을 향해 쏘아지는 것을 선두로 여러 개의 불덩이들이 성문을 향해 연이어 날아가기 시작했다.




무언가 시끄러운 소리에 카빌은 잠에서 깼다. 눈을 뜨니 성의 외벽이 환해져 있다. 어지러운 그림자와 함께 성벽이 붉게 번지는 게 보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있다가 옷을 입고 갑옷을 걸치며 그는 검을 손에 잡았다. 뭔가 일이 틀어졌다는 걸 직감하며 문을 열고 그는 밖으로 나갔다.



왕성의 병사들이 백작의 성을 기습한 건 새벽이 되기 전. 동이 터오며 날이 조금씩 밝아왔다. 성문이 공격을 받으면서 나는 소리에 잠귀가 밝은 병사 몇 명이 벌떡 일어났다. 성문이 다 부서지기 전에 돌아다니며 그들이 성안 전체를 흔들어 깨웠다.


성문이 완전히 부서짐과 거의 동시에 급하게 준비하고 쏟아져 나온 성안의 병사들 중 일부는 곧 자신들이 여왕의 군대에 의해 포위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병사들 틈을 해치며 앞으로 나온 카빌은 그 선두에 서 있는 수비 대장과 그 옆에 서 있는 기사를 알아 보았다.


“왕실 쥐새끼였다니...”

잠시 후 상트를 향해 카빌은 입을 열었다.

“진작 그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어줄걸 그랬어.”

그의 입가에 일그러진 미소가 지나갔다.

“그 계집애 같은 얼굴을 말이야.”

상트는 손에 든 검을 앞으로 세웠다.

“서둘 거 없어.”

담담히 그가 말했다.

“그러지 않아도 넌 곧 죽을 테니.”

카빌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칼을 뽑아 들고는 괴성과 함께 그가 상트를 향해 달려듬과 동시에 그의 뒤에 있던 병사들도 뒤 따라 여왕의 병사들을 향해 달려 들었다.



루더 백작의 군대는 4천여. 룻사에 있는 모든 귀족 중 가장 많은 병사 수였다. 절반은 이 성에, 나머지 절반은 여기서 반대 방향에 있는 반하드 공작의 성에서 왕성쪽으로 움직일 예정이라고 했다. 하루 전 잡아들인 공작을 통해 이미 계획의 전모를 들었다. 반란에 가담하기로 한 에리안 자작의 성에도 이미 병사들을 보내 두었다.


성 바깥과 성 안까지 여왕의 병사들과 백작의 병사들이 여기저기서 맞붙었다. 기습에 대비하지 못한 병사들이었으나 훈련이 웬만큼 잘 되어 있는지 의외로 쉽게 백기를 들지 않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비린내가 점점 더 깊게 성안에 피어올랐다. 락터드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기사를 향해 검을 내리 꽂았다. 그리고 곧바로 그 뒤를 따라 오던 다른 한 명의 팔을 내리쳤다. 사방에서 칼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피냄새가 진동을 했다.


아비규환 같은 싸움터에 서서 피묻은 검을 쥔 채 그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조금 전 성의 가장 안쪽 성탑으로 올라가는 백작의 모습을 얼핏 보았다. 덤벼드는 병사의 창을 막아내며 락터드는 성탑 쪽으로 달려갔다.



탑의 입구로 들어가자 비어 있는 가운데를 중심으로 빙빙 돌아 나선형으로 꼭대기까지 길게 이어진 계단이 보였다. 계단을 발판삼아 공중을 지그재그로 뛰어올라 락터드는 곧 꼭대기까지 올라섰다.

꼭대기에 있는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서고 있는 백작의 뒷자락이 살짝 보였다. 락터드 역시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으나 백작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방 안 맞은편에 다른 문이 있다.


문을 향해 돌진하는데 갑자기 옆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반사적으로 뒤로 한 발 물러나는 그의 눈앞을 스치며, 날아온 검이 콱-하고 벽에 박혔다. 벽에 박혀 흔들거리고 있는 검의 뒤에서, 락터드의 시선이 힐끔 옆을 향했다.

“또 보는 군.”

구석에서 저벅저벅 걸어나오며 로거 리겐이 입을 열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락터드는 그를 쳐다보았다.

“지난 번에 만났을 때 내가 한 말 기억하는지 모르겠소.”

검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락터드는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여기서 시간을 끌면 백작을 놓친다.

“내가 한 말도 기억하길 바라지.”

나직히 응수하고 그가 먼저 로거를 향해 달려갔다.


단숨에 로거의 앞까지 뛰어온 락터드가 검을 날렸다. 두 사람의 검이 쨍소리와 함께 부딪쳤다. 지난 번보다 훨씬 강하고 날카로워진 검들이 불꽃을 튀며 연속적으로 부딪쳤다. 정면으로 들어온 검을 사력을 다해 막으며 로거는 양 손에 힘을 주었다. 맞닿은 검이 점점 락터드쪽으로 기울었다. 이번에는 승리를 확신하는 순간..

“아니...!”

그의 눈동자가 커졌다. 갑자기 로거의 검이 산산조각 나면서 반동으로 그의 몸이 저 만큼 뒤로 날아갔다. 바닥에 나가 떨어진 로거에게 다시 달려온 락터드의 검이 그의 어깨에 내리 꽂히자 로거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락터드는 바닥에 쓰러진 채 신음하고 있는 그를 내려다보고는 곧 몸을 돌려 백작이 사라진 문으로 갔다.



문으로 나오자 문밖은 탑의 가장자리였다. 성 밖 전체가 환히 내려다보였고 거기에는 맞은 편에 있는 다른 성탑으로 연결된 도르레가 있었다. 그 도르레를 이용해 반대편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어 있는 듯 했다.

도르레에 달려 있는 발판을 쳐다보다가 락터드는 그 도르레 끝을 곧장 검으로 내리쳤다. 끊긴 줄이 빠른 기세로 성탑 밖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그가 잠시 응시했다.


“눈치가 빠르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날아왔다. 락터드의 시선이 그대로 옆을 향했다. 그늘진 구석에서 루더 백작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속임수라는 걸 알았소?”

왠만하면 도르레를 이용해 맞은 편 성탑으로 도망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도르레를 등지고 서서 락터드는 루더 백작을 쳐다보았다. 그림자로 숨어 있는 걸 이미 알았기 때문에 도망치지 못하게 하기위해 도르레를 끊은 것뿐이다. 사방의 미세한 기색도 그는 놓치는 법이 없었다.

“그 장치는 정말 사용할 수 있는 거요.”

대꾸가 없는 그를 보다가 백작은 끊어진 도르레 끝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도망칠 생각이 없어서 쓰지 않은 거 뿐이지.”

루더 백작은 가만히 있는 그를 쳐다보았다.

“여왕은 백성에게 관심이 없소. 머릿속에는, 어떡하면 자신의 권력을 굳건히 할까 그 생각 뿐이지. 그런 자가 과연 평화로운 통치를 할까.”

락터드는 백작을 초상화로 밖에 본 적 없었으나 이국에서 온 경비 대장의 행보를 백작은 익히 알고 있었다.

“당신 같은 기사가 그런데도 여왕에게 충성을 다할 생각이오?”


대꾸가 없는 락터드를 보다가 여유로운 얼굴로 백작은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긴 하오. 힘을 갖고 싶어 여기까지 왔고,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난 부하들을 버리고 혼자 살아남을 생각은 없단 말이지.”

문득 락터드가 멈칫했다. 낮은 음성으로 백작이 중얼거렸다.

“아깝지만 여기서 멈추게 되는군. 하지만 여왕의 승리의 전리품이 되고 싶진 않으니.”

탑의 가장자리로 조금씩 뒷걸음질 치는 백작을 보고 락터드가 순간 그를 향해 거리를 좁혀 들어갔다. 탑에서 떨어지려는 그를 향해 손을 뻗었으나 간발의 차이로 닿지 않았다. 백작의 몸이 성탑 위에서 사라졌다.


혼자 남은 성탑 위에서 락터드는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문득, 나직히 그가 중얼거렸다.



벌컥 문이 열리고 켈리머스가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대장님..!”

그가 락터드의 옆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되었냐는 시선에 락터드는 말했다.

“투신했네.”

켈리머스는 성탑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아래를 쳐다보았다.

“시신을 수습해 성으로 이송하지.”

켈리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반군은 서서히 진압되었다. 여기 저기 룻사의 병사들과 기사들이 칼을 든 채 바닥에 쓰러진 이들을 보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자들은 왕성의 병사들이 많았고 루더 백작의 병사들은 더 많았다.

살아 남은 백작의 사병들은 한 쪽에 사로잡혀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꿇어앉고 있었다.

“대장님.”

성벽 앞쪽에 서 있던 케이그와 상트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두 사람의 손에 들려 있는 검에도 여기 저기 붉은 액체가 말라 붙어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케이그가 물었다.

“아, 그래.”

담담히 대꾸하며 락터드는 말했다.

“자작의 성으로 가지, 케이그.”

그는 다시 한 번 바닥에 쓰러져 있는 병사들의 시신을 쳐다보았다.

“여길 부탁하네 상트.”

상트가 고개를 끄덕해 보였다.

락터드는 아수라장이 된 성 안을 다시 쳐다보고는 곧 몸을 돌렸다. 에리안 자작의 성을 확인하기 위해 케이그와 기사들 몇 명이 그를 따라 나섰다.








모반은 진압 되었다. 전모가 드러나고 하루가 지나자 여왕은 자신이 말 한대로 그 즉시 루더 백작가와 에리안 자작가를 모두 참수, 루더 백작과 에리안 자작 그리고 그의 식솔들의 목을 내걸고 이미 머리가 깨진 루더 백작의 시신까지도 모아서 성문 밖에 걸어 두었다. 반하드 공작가는 그나마 참수는 면했으나 영지와 재산을 몰수당하고 룻사 밖으로 추방되었다.


수도 전체에 갑자기 스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성안에서도 밖에서도 거침없는 여왕의 행보에 다들 눈치를 살피고 있는 듯 보였다. 여왕이 의도한대로 대신들에 대한 왕실의 권위는 확실히 높아진 것 같았다.



성문 초소에서 켈리머스 들과 이것저것 처리할 일에 대해 논의하다가 왕성 안으로 들어온 락터드는 고개를 돌려 성문 밖 쪽을 응시했다. 목이 내걸린지 이제 삼 일이 지나고 있다. 잠시 그 쪽을 응시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말을 걸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가?”

돌아보니 에스터 공작이 서 있었다.

“공작님.”

옆으로 걸어오며 에스터 공작이 미소를 지었다.

“잠시 가세.”

그가 말했다.

“자네에게 할 말이 있네.”

락터드는 앞장서는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잠자코 걸음을 옮겼다.



“이번일로 여왕께서 자네에게 상당히 고마워하고 계시네.”

작은 회의실 안으로 들어온 에스터 공작이 그를 보며 곧장 말했다.

“자네와 자네의 기사들에게 섭섭지 않은 포상이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예의 대꾸하던 락터드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입을 열었다.

“저 역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에스터 공작이 고개를 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이제 더 이상 저희가 이 곳에 있어선 안 될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

“많은 사람이 죽었고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이국에서 온 저희들이 이 이상 나선다면 백성들의 반감을 사게 됩니다.”

진지하게 락터드는 말했다.

“그건 왕실의 권위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겁니다.”

에스터 공작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럴 수도 있지.”

잠시 생각하다가 공작은 말을 이었다.

“그래 알겠네. 처음 약속한 기한보다 늦어지기도 했고 말이야. 여왕께 말씀드려 보겠네.”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그는 다시 말했다.

“그런데 말일세.”

공작의 말투는 상냥했다.

“자네는 여기 남는 게 어떤가?”

락터드는 공작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여왕께서 라곤 국왕 전하께 부탁드린다면 자네가 이곳에 남는 일에 문제될 건 없을거야.”

그는 말을 이었다.

“우리 룻사는 작지만 부유한 나라일세. 자네의 공로에 서운하지 않을 정도의 영지와 지위를 주겠네.”

가식 없는 솔직한 말투였다.

“어떤가?”

“뜻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공작님.”

곧 락터드가 대답했다.

“하지만 제 나라를 떠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라곤은 저의 고향이니까요.”

에스터 공작이 눈을 조금 크게 떴다.

“단 번에 거절이군. 한 번 쯤 생각이라도 해 본다 할 줄 알았는데...”

락터드는 자신이 속마음을 너무 곧장 드러냈음을 깨달았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난감한 기색으로 그가 말했다.

“아니야. 억지로 권할 일도 아니고 자네 뜻이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어딘지 서운한 듯한 얼굴로 공작이 머리를 긁적였다.

“어쩔 수 없구먼. 알겠네.”

애써 미소지으며 그가 다시 말했다.




다시 며칠이 지났다. 상황이 대충 마무리 되자 며칠 전 라곤으로 돌아갈 뜻을 비춘 뒤 락터드는 직위를 반납하고 이제 막 여왕께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대장님.”

집무실 밖으로 나오자 리얀 케이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벽에 기대 서 있던 그는 락터드가 나오자 그 앞으로 걸어갔다. 망설이는 얼굴로 그가 물었다.

“돌아가시는 겁니까?”

락터드는 그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아, 그래. 내일 돌아가.”

락터드가 말했다.

“신경써야 할 일들은 적어 두었으니 잘 좀 부탁하네.”

룻사에서 마무리 하지 못한 일들을 정리해 케이그에게 서류로 넘겼다. 북문 밖 빈촌에 대한 일도 그 안에 들어있다. 에스터 공작으로부터 포상금으로 받은 돈으로 곡식과 가축 몇 마리를 사서 그곳에 보냈다. 그걸로 당분간은 괜찮겠지만 근본적으로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할 것이다. 책임감이 강한 케이그라면 믿고 맏길 수 있다고 락터드는 생각했다.


“지금까지 고마웠네, 리얀.”

미소를 지으며 그가 덧붙였다.

“아니, 공자님.”

케이그는 멈칫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제 난 자네 상급자가 아니니 예의를 갖추어야지.”

농담에 케이그가 펄쩍 뛰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락터드는 잠시 웃었다.

“이국에서 온 나를 믿고 따라준 자네들한텐 고맙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군.”

그는 말을 했다.

“고마웠네. 여러 가지로.”

“아닙니다. 저희들이야 말로..”

그 말에 숙연해져서 케이그는 말했다.

“줄곧 대장님께서 이곳에 남아 주시길 바랬습니다.”

혼자말처럼 그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역시 그건 어렵겠죠.”

말을 하는 그를 보고 있다가 락터드는 대꾸했다.

“라곤은 강력하고 부유한 나라지. 수도도 물론 좋은 곳이네.”

케이그는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런 곳에 있어도 나쁠 거 없지만 돌아가면 난 조용한 곳에서 평범히 살고 싶다네.”

평화로운 얼굴로 락터드는 말을 이었다.

“여기선 앞으로 해야 될 일이 많겠지. 자네가 바빠지겠군.”

그는 덧붙였다.

“후임자를 물으시길래 자넬 추천했어. 아마 곧 지명이 있을 거야.”

케이그의 표정이 얼떨떨해졌다.

“예?”

“난 이제 돌아갈 여정을 상의하러 가야 돼.”

락터드는 리얀의 어깨를 한 번 탁 쳤다.

“송별회 기대하지. 저녁 때 보자고.”

할 말을 잃은 얼굴로, 부관은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응시했다. 락터드는 지난 반 년 동안 지내왔던 왕궁의 긴 복도를 천천히 걸어갔다. 여기서의 생활은 이제 이것으로 끝이다. 걸어가는 그의 전신에 피곤함이 몰려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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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하트의 반(VAN) - 2-2 이에넨(8) +12 13.12.22 3,892 115 13쪽
86 하트의 반(VAN) - 2-2 이에넨(7) +7 13.12.20 4,357 124 20쪽
85 하트의 반(VAN) - 2-2 이에넨(6) +3 13.12.19 4,086 124 19쪽
84 하트의 반(VAN) - 2-2 이에넨(5) +8 13.12.15 4,221 126 17쪽
83 하트의 반(VAN) - 2-2 이에넨(4) +1 13.12.12 3,849 130 12쪽
82 하트의 반(VAN) - 2-2 이에넨(3) +1 13.12.10 4,050 124 18쪽
81 하트의 반(VAN) - 2-2 이에넨(2) +5 13.12.08 4,211 126 11쪽
80 하트의 반(VAN) - 2-2 이에넨(1) +10 13.12.05 4,355 120 20쪽
79 하트의 반(VAN) - 2-1 헬렌(4) +9 13.12.03 4,320 118 15쪽
78 하트의 반(VAN) - 2-1 헬렌(3) +3 13.12.01 3,578 118 20쪽
77 하트의 반(VAN) - 2-1 헬렌(2) +12 13.11.28 3,831 111 17쪽
76 하트의 반(VAN) - 2-1 헬렌(1) +3 13.11.26 4,018 120 9쪽
75 하트의 반(VAN) - 2-0 엘소(2) +8 13.11.26 4,066 137 11쪽
74 하트의 반(VAN) - 2-0 엘소(1) +15 13.11.24 4,194 140 14쪽
73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5) +10 13.11.21 3,221 96 19쪽
72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4) +9 13.11.20 3,186 91 26쪽
71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3) +3 13.11.17 2,961 92 18쪽
70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2) +3 13.11.15 3,407 97 14쪽
69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1) +11 13.11.11 4,060 101 14쪽
68 하트의 반(VAN) - 1-67. +19 13.09.18 5,305 162 16쪽
67 하트의 반(VAN) - 1-66. +11 13.09.17 6,936 154 22쪽
66 하트의 반(VAN) - 1-65. +4 13.09.16 4,120 154 10쪽
65 하트의 반(VAN) - 1-64. +3 13.09.14 5,764 157 13쪽
64 하트의 반(VAN) - 1-63. +2 13.09.12 4,048 138 10쪽
63 하트의 반(VAN) - 1-62. +16 13.09.09 6,178 155 15쪽
62 하트의 반(VAN) - 1-61. +7 13.09.06 4,360 157 14쪽
61 하트의 반(VAN) - 1-60. +2 13.09.04 4,286 170 17쪽
60 하트의 반(VAN) - 1-59. +17 13.09.02 7,252 160 23쪽
59 하트의 반(VAN) - 1-58. +21 13.08.30 4,646 158 21쪽
58 하트의 반(VAN) - 1-57. +9 13.08.28 4,058 150 12쪽
57 하트의 반(VAN) - 1-56. +33 13.08.26 4,737 153 17쪽
56 하트의 반(VAN) - 1-55. +13 13.08.23 5,020 168 16쪽
55 하트의 반(VAN) - 1-54. +10 13.08.21 7,901 168 19쪽
54 하트의 반(VAN) - 1-53. +7 13.08.19 5,245 160 11쪽
53 하트의 반(VAN) - 1-52. +5 13.08.16 6,038 157 10쪽
52 하트의 반(VAN) - 1-51. +5 13.08.15 5,375 165 16쪽
51 하트의 반(VAN) - 1-50. +16 13.08.12 6,527 179 15쪽
50 하트의 반(VAN) - 1-49. +7 13.08.10 6,228 168 18쪽
49 하트의 반(VAN) - 1-48. +4 13.08.08 5,734 165 22쪽
48 하트의 반(VAN) - 1-47. +15 13.08.06 5,212 161 16쪽
47 하트의 반(VAN) - 1-46. +8 13.08.05 4,830 168 12쪽
46 하트의 반(VAN) - 1-45. +7 13.08.02 5,132 172 11쪽
45 하트의 반(VAN) - 1-44. +6 13.08.01 4,774 166 9쪽
44 하트의 반(VAN) - 1-43. +9 13.07.29 5,468 169 15쪽
43 하트의 반(VAN) - 1-42. +8 13.07.25 5,012 179 12쪽
42 하트의 반(VAN) - 1-41. +11 13.07.22 4,801 171 16쪽
41 하트의 반(VAN) - 1-40. +6 13.07.18 5,175 180 18쪽
40 하트의 반(VAN) - 1-39. +4 13.07.15 4,726 186 22쪽
39 하트의 반(VAN) - 1-38. +9 13.07.11 6,738 166 13쪽
38 하트의 반(VAN) - 1-37. +13 13.07.08 5,223 165 19쪽
37 하트의 반(VAN) - 1-36. +2 13.07.05 6,458 170 24쪽
36 하트의 반(VAN) - 1-35. +6 13.07.01 6,039 164 17쪽
35 하트의 반(VAN) - 1-34. +25 13.06.13 5,892 181 11쪽
34 하트의 반(VAN) - 1-33. +5 13.06.10 8,205 191 21쪽
33 하트의 반(VAN) - 1-32. +9 13.06.06 6,924 166 17쪽
32 하트의 반(VAN) - 1-31. +3 13.06.03 6,940 178 17쪽
31 하트의 반(VAN) - 1-30. +13 13.05.31 8,834 188 26쪽
30 하트의 반(VAN) - 1-29. +17 13.05.27 7,425 196 19쪽
29 하트의 반(VAN) - 1-28. +7 13.05.23 7,359 181 12쪽
28 하트의 반(VAN) - 1-27. +10 13.05.20 8,232 176 19쪽
27 하트의 반(VAN) - 1-26. +3 13.05.16 8,543 181 13쪽
26 하트의 반(VAN) - 1-25. +3 13.05.14 8,319 184 27쪽
25 하트의 반(VAN) - 1-24. +15 13.05.09 8,367 232 24쪽
24 하트의 반(VAN) - 1-23. +7 13.05.03 10,464 289 25쪽
23 하트의 반(VAN) - 1-22. +9 13.04.29 9,083 201 21쪽
22 하트의 반(VAN) - 1-21. +1 13.04.25 8,406 209 12쪽
21 하트의 반(VAN) - 1-20. +9 13.04.21 9,478 215 21쪽
20 하트의 반(VAN) - 1-19. +29 13.04.07 9,109 242 19쪽
19 하트의 반(VAN) - 1-18. +10 13.04.04 8,447 220 24쪽
» 하트의 반(VAN) - 1-17. +7 13.04.02 8,158 209 21쪽
17 하트의 반(VAN) - 1-16. +7 13.03.28 9,018 197 15쪽
16 하트의 반(VAN) - 1-15. +6 13.03.25 10,205 200 15쪽
15 하트의 반(VAN) - 1-14. +6 13.03.21 8,954 223 24쪽
14 하트의 반(VAN) - 1-13. +7 13.03.17 9,494 228 12쪽
13 하트의 반(VAN) - 1-12. +8 13.03.11 9,217 222 16쪽
12 하트의 반(VAN) - 1-11. +6 13.03.07 9,541 230 16쪽
11 하트의 반(VAN) - 1-10. +6 13.03.04 10,136 251 18쪽
10 하트의 반(VAN) - 1-9. +2 13.02.28 10,106 235 19쪽
9 하트의 반(VAN) - 1-8. +6 13.02.26 10,644 256 14쪽
8 하트의 반(VAN) - 1-7. +6 13.02.25 11,241 271 15쪽
7 하트의 반(VAN) - 1-6. +19 13.02.21 11,296 282 16쪽
6 하트의 반(VAN) - 1-5. +14 13.02.19 13,169 277 20쪽
5 하트의 반(VAN) - 1-4. +13 13.02.17 14,299 330 15쪽
4 하트의 반(VAN) - 1-3. +9 13.02.17 15,196 327 13쪽
3 하트의 반(VAN) - 1-2. +15 13.02.11 16,470 350 13쪽
2 하트의 반(VAN) - 1-1. +15 13.02.10 21,873 403 12쪽
1 하트의 반(VAN) - 0. +15 13.02.04 29,030 44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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