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의 반(VAN) -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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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판에 길을 제외하고는 드문드문 나무 한 두 그루가 서 있을 뿐, 있는 것이라고는 여기 있는 빈 집 몇 채가 다였다. 길게 여행하다보면 밤을 보낼 수 있는 숙소가 필요하기도 하고 또 볼 일도 봐야했으니 여행자들이나 행상인들에게는 이런 곳이 있는 게 큰 도움이 되었다.
말을 쉬게 한 뒤 락터드와 엘리어트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실제로 여관으로 쓰였던 곳이었는지 생각보다 크고 여러 층으로 되어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거쳐 갔기 때문인지 안 쓰는 집 치고는 온기도 남아 있다.
혹시 누구 사람이 있나 싶어 락터드가 1층의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는 동안 엘리어트는 거실 한 가운데 서서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아까 긴에게 들은 바로는 행상인들끼리 마주치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집이 커서 누가 있어도 여간해서는 모를 것도 같았다. 높이 이어져 있는 계단을 보다가 엘리어트는 계단 위로 올라 갔다. 오를 때마다 삐거덕거리는 발아래를 느끼며 그는 2층 복도로 올라섰다.
먼지투성이인 복도 양쪽으로 문이 세 개씩 나 있었고 여기저기로 발자국이 흩어져 있다. 확실히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간 듯 보였다. 발자국을 보다가 엘리어트는 그중 가장 위에 선명하게 나 있는 발자국이 이어지는 곳을 보았다. 가장 최근에 생긴 듯한 발자국은 가운데 있는 문으로 이어졌다.
혹시 누가 거기 있을까 싶어 엘리어트는 그쪽으로 걸어가 방문을 밀었다. 삐그덕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돌아가는데 그 순간 방의 가장 안쪽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기색이 느껴져 반사적으로 엘리어트는 그 쪽을 보았다. 그 구석에 서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엘리어트는 잠시 가만히 있었다.
숨어 있었던 건지 구석 한 쪽에서 이쪽을 보고 있는 청년은 엘리어트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굳어지고 있었다.
“소리 내지 말고 문 닫아.”
말을 하면서 위협하듯 청년이 그를 향해 단검을 내보였다. 잠시 가만히 있다가 엘리어트는 그가 시키는 대로 문을 닫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별 반항 없이 가만히 이쪽을 보고 있는 소년의 모습에 청년은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엘리어트가 청년의 말대로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있는 것은 단검으로 위협했기 때문만이라기 보다 자신을 보고 있는 청년의 눈동자가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었다. 눈동자가 붉은 색으로 반짝이고 있다. 그런 눈 색깔은 엘리어트로서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엘리어트가 가만히 있자 일단 위협에 성공했다고 생각했는지 청년은 이제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그 모습을 보다 엘리어트의 시선이 그의 뒤쪽을 향했다. 조금 전부터 보고 있지만 청년은 혼자가 아니다.
뒤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엘리어트는 다시 청년을 보았다. 시선이 움직이는 걸 알았는지 엘리어트를 경계하며 뚫어져라 보고 있는 청년의 눈동자가 피처럼 붉다. 무섭다기보다는 좀 기괴한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엘리어트는 청년의 팔이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을 알았다. 다쳤는지 바닥에도 피가 좀 떨어져 있다.
“엘리어트.”
엘리어트가 내려오지 않자 아래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청년이 움찔했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저 엘리어트를 향해 위협하듯 다시 단검을 내보이며 그는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엘리어트.”
여러 번 불렀는데도 대꾸가 없자 2층으로 올라와 락터드가 문을 열었다.
닫아 두어도 엘리어트가 어디 있는지 정도는 대번 알 수 있는 그가 벌컥 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 밀자 그 기세에 청년이 다시 움찔거렸다.
문을 연 채 방안으로 들어오려던 락터드는 방의 양쪽에 서 있는 두 사람이 동시에 자신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을 보았다. 엘리어트 외에 맞은편에서 단검을 든 채 이쪽을 보고 있는 청년의 붉은 눈을 보는 순간, 그는 상황을 깨달았다.
“조, 조용히 하시오.”
이번에는 락터드를 향해 단검을 내보이며 청년이 말했다. 그러나 위협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단검을 쥐고 있는 모양새가 엘리어트보다도 어설픈 게 검이라고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것처럼 보였다.
락터드는 다시 청년을 보았다. 검문소 경비가 철저했거나 근처에 기사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은 아마 이 청년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사람, 다쳤어요.”
엘리어트의 말을 들으며 락터드는 성큼 방안으로 들어와 엘리어트보다 조금 더 청년의 가까이로 다가 섰다.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기색에 청년의 뒤에서 웅크리고 있던 두 사람 중 한 명이 공포에 질린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청년의 뒤에 있는 두 사람의 존재는 물론 문을 열자 마자 알아챘다.
몇 발작 떨어진 곳에 멈춰서 락터드는 다시 그를 보았다. 눈이 붉은 청년은 그가 움직이자 움찔거렸으나 그 자신도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르는 듯 그저 락터드를 쳐다본 채 계속 단검만 앞세우고 있었다.
“무슨 짓을 했나?”
거기에 개의치 않으며 락터드가 곧장 물었다. 그를 공격해야 할지 망설임 가득한 얼굴로 청년은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앞에 서 있는 남자는 단검 따윈 안중에도 없는 기색이었다.
“아무 것도....”
입술을 깨물며 청년은 락터드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아무 것도 한 거 없소.”
기하의 붉은 눈 족. 눈이 붉어지면 악마의 힘을 보인다고 하여 라곤에서는 천민으로 취급받는 이들이었다. 각 지방의 영주들은 자신들의 영토에 있는 기하 족을 농노로 부리며 그들을 감시했고 가족 중 누군가가 눈이 붉게 변하는 이가 나온다면 일가족 전부를 잡아서 몰살시키곤 했다.
오스티아에서는 아주 드문 일이었으나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오니트 영주도 이것만큼은 다른 영주국과 마찬가지로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락터드는 예전에 그 때문에 무고한 자들이 죽는 것을 본 적 있었다. 어설픈 기색으로 단검을 쥔 채, 청년은 자신의 뒤에 있는 노인과 어린 아이를 지키려는 듯 막아 서 있었다.
“아이고.. 나으리.”
갑자기 뒤에 있던 몸집이 왜소한 노인이 울음 섞인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왔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우리 애는 아무 잘못 없습니다. 그저 소작질 하던 주인이 이 어린 핏덩이를 해하려고 해서....”
노인은 겁에 질려 꼼짝도 못하고 있는 예닐곱 살 된 손녀를 끌어 안았다.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눈이 변한 것 뿐이에요.”
노인이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살려 주십시오. 제발 살려 주세요, 나으리.”
할머니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청년이 숨을 들이 마셨다.
“진정해요 할머니.”
노인을 잡으며 안심시키려는 듯 그가 말했다.
“난 상관없어. 하지만 티아랑 할머니는 내가 꼭 지켜줄 거니까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요.”
“아이구 그게 무슨 소리니? 얘야....”
여전히 눈물을 흘리는 노인을 진정시키는 청년을 락터드는 잠시 보았다. 이제 스무살이나 되었을까. 막 소년티를 벗은 것 같았지만 아직도 엣된 얼굴이었다.
“검문소까지는 이미 병사들이 깔려 있네.”
이윽고 락터드는 말했다. 그가 말을 하자 청년이 이쪽을 보았다.
“빠져 나가기는 불가능할 거야.”
상처 때문인지 이미 하얬던 청년의 얼굴이 그 말에 더욱 창백해졌다.
“아이고 어쩌니?”
락터드의 말에 노인이 다시 울음 섞인 소리를 냈다.
“이제 꼼짝 없이..”
“할머니.”
그러나 자신도 막막했는지 할머니를 한 번 불렀을 뿐 청년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서쪽 검문소를 빠져 나가 도망치려고 했다. 거기가 막혔다면 어떻게 해야할 지.. 할머니와 어린 동생을 데리고 여기까지도 간신히 올 수 있었다. 혼자 힘으로 이 이상 가는 건 자신이 생각해도 불가능했다.
갑자기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침을 꿀꺽 삼키며 청년은 락터드를 보았다.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남자는 이쪽을 보고 있었다. 병사들이 깔렸다고 말해주는 걸 보아 고발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애초에 자신의 붉은 눈을 보고도 겁을 내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이판사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부탁해 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그는 말했다.
“도, 도와주시오 우리를.”
입술을 깨물며 겨우 말하는 청년을 락터드는 잠시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곧 창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벽에 몸을 숨긴 채 밖을 내다보니 멀리 있던 기사들이 아까보다 좀 더 가까이 와 있었다. 이제 빈 집을 확인하러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락터드는 창에서 떨어졌다.
몸을 숨겨 벗어나기엔 허허 벌판에 시야를 가릴 만한 게 없다. 기사들이 언제 이곳을 수색할지 모르니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리기도 어려웠다.
잠깐 생각하다가 그가 청년을 향해 이쪽으로 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움찔하던 청년은, 조금 머뭇거리는 것 같았으나 곧 그를 향해 걸어왔다.
“빠져 나갈 방법이 많지가 않으니..”
뒤에서 이쪽을 보고 있는 노인과 아이를 보고는 목소리를 조금 낮추며 락터드는 말했다.
“미끼가 되서 기사들을 유인하게.”
위험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잡히면 자네는 살아남기 어려워.”
락터드가 말하는 동안 걸어와 창밖으로 가만히 밖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던 엘리어트는 마지막 말에 고개를 돌려 락터드를 보았다.
“할 수 있겠나?”
질문에 잠시 가만히 있다가 청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변했다고 할머니와 티아까지 죽게 할 순 없다. 두 사람만 살릴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었다.
마음을 먹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청년을 보다가 락터드는 노인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빠져 나갈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겁을 먹은 노인과 아이를 향해 부드럽게 말을 하고는 락터드는 손을 내밀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 손을 잡고 일어난 노인을 등에 업고 락터드는 아이를 팔에 안아 들었다.
“여기 있어라 엘리어트.”
창 근처에 있는 엘리어트를 향해 말하고는 락터드는 문을 열었다. 밖을 확인하고 그와 청년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방안에 남아 엘리어트가 가만히 보고 있었다.
1층으로 내려와 제일 끝에 있는 창으로 밖을 보니 기사들은 어느새 근처까지 와 있었다. 바로 옆에 비어 있는 집을 확인하려는 지 말을 묶어 놓고 그들은 이제 집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서둘러 몸을 돌려 락터드는 아까 확인했던 뒷문 쪽으로 향했다. 부엌을 통과해 뒤로 나 있는 작은 쪽문을 열었다. 인기척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그는 가야할 방향을 생각했다. 청년이 생각한대로 국경을 넘는 수밖에 없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건 서쪽 검문소였지만 말한대로 이미 경비가 삼엄해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니 그러니 그 다음 생각할 수 있는 남쪽 검문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청년이 기사들의 발을 묶고 있는 동안 그쪽으로 뛰어야 한다.
“만약에 잡히면 반항하려 하지 말게.”
이제 뛰어 나가 미끼가 되려는 청년을 향해 마지막으로 당부하고는 락터드는 밖을 확인했다. 그가 손짓을 하자 침을 꿀꺽 삼키고는 청년이 밖으로 뛰어 나갔다.
뒷곁에서 집앞으로 돌아나와 청년은 기사들의 말이 묶여 있는 쪽으로 뛰었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는 묶어둔 말고삐를 풀러내면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는 2층을 올려다 보았다. 그런데 말들이 히잉거리는 소리를 내자 무슨 일인가 해서 창밖을 내다보던 기사 한 명과 바로 눈이 마주쳤다.
“어이!”
그를 발견한 기사가 소리치며 창에서 바로 사라졌다. 서둘러 말들을 반대쪽으로 쫓고는 조금씩 뒷걸음질 치며 이내 청년이 뛰기 시작했다.
집 뒤에서 벽 뒤에 몸을 숨긴 채 기색을 살피고 있던 락터드는 시끄러운 소리가 한바탕 지나가자 잠시 후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왔다. 노인과 아이를 한 번 확인하고 이내 그도 뛰기 시작했다.
락터드와 청년이 나가고 2층 창을 통해 엘리어트는 조심스럽게 밖을 내다 보고 있었다. 말이 묶여 있는 곳으로 와 고삐를 풀러낸 청년이 뛰기 시작하자 잠시 후 집 안에서 나온 기사 중 한 명이 청년을 쫓는 게 보였다. 나머지 한 명은 말이 도망친 방향으로 따라 갔다.
기사들 둘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엘리어트는 창밖으로 몸을 조금 더 내밀었다. 멀리서 청년이 저쪽 어디로 뛰어가고 있는 게 보였다. 최대한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 했다. 발은 좀 날랜 편이었는지 다행히 뒤쫓아 가고 있는 기사와 점점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잡히지 않길 바라며 엘리어트는 창에 더욱 가까이 붙었다.
노인과 아이를 업은 채 길을 따라 락터드는 한참을 달려갔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 마주친 사람이 없는 게 이번에는 다행이었다. 그러나 마차로 꼬박 하루가 걸리는 거리니 이대로 검문소까지 뛰어 갈 순 없었다.
생각하는 게 맞다면 멀지 않은 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얻을 수도 있을 거라고 락터드는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그것만이 당장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다행히 그 생각이 맞았는지 한참을 뛰다가 드디어 길 가장자리에 서 있는 마차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락터드는 마차 앞에 나와 앉아 있는 남자를 향해 다시 뛰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마차 앞에 나와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던 남자는 앞으로 뛰어온 락터드를 보고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고 있었다.
“도움을 좀 얻을 수 있을까 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를 향해 곧 락터드가 말했다.
고쳐진 마차로 한참을 가다가 잠깐 쉬어가자고 하는 바람에 마차는 또 멈춰서 있었다. 빨리 갔으면 좋겠는데 아버지는 전혀 서둘 기색이 아니다.
“적당히 쉰 거 같은데 그만 가죠 이제.”
불만스럽게 말하며 마차에서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데 아버지 옆에 누가 있는 게 보였다.
“어? 아저씨?”
마차 밖으로 얼굴을 내민 긴이 락터드를 발견하고는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짧게 사정 얘기를 전하고는 락터드는 남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쫓기는 두 사람을 동반해 검문소를 통과해 달라는 것은 쉽게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 아니다. 지금으로서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지만 거절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잠시 후 그러나 의외로 침착하게 남자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알겠습니다.”
마차 안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긴을 향해 그는 말했다.
“두 사람을 어서 마차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라 긴.”
아버지의 말에 좀 어리둥절해 하다가 서둘러 밖으로 내려와 긴은 아이를 등에 업고는 노인을 부축해 마차 위로 올라 섰다.
두 사람이 마차에 오르는 것을 보며 락터드는 다시 말했다.
“검문소를 통과할 때 문제가 될 겁니다.”
들어오고 나갈 때 외부인은 검문소에서 재확인한다. 들어왔던 서쪽 검문소는 이미 검문이 철저했지만 남쪽 검문소는 아직 어떤지 모른다.
“노인과 아이라고 적어 두었을테니 운이 좋으면 대충 둘러 댈 수도 있을 겁니다.”
꼼꼼하게 인원수를 파악해 두었을 수도 있지만 대략적으로 적어 두는 경우도 있었다. 며칠 전 웨번에 들어올 때 보았던 병사들은 그다지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으니 그랬길 바랄 수 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초면에..”
남자로서도 상당히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다. 락터드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느긋한 말투였다. 하지만 상황의 위험성을 몰라서 느긋한 건 아니었다.
“당장 출발해야 겠습니다.”
쉬엄쉬엄 가서 내일 점심때쯤 도착하려 했지만 부지런히 가서 한밤중이나 새벽에 도착하는 게 지금은 더 나을 것이다.
마차 뒤로 가 마차 안 한 구석에 겁에 질린 채 앉아 있는 노인과 어린 아이를 확인하고는 그는 휘장을 내렸다.
“가보겠습니다 그럼.”
마부석으로 가 자리에 오르며 그가 락터드를 향해 말했다. 락터드가 고개를 끄덕해 보이자 이내 마차가 출발했다. 길을 따라 움직이는 마차를 뒤에서 잠시 보고 있다가 곧 락터드도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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