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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k 님의 서재입니다.

하트의 반(VAN)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명인k
작품등록일 :
2013.02.04 17:06
최근연재일 :
2019.02.10 23:08
연재수 :
29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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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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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16
글자수 :
2,269,960

작성
13.12.25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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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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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글자
20쪽

하트의 반(VAN) - 2-2 이에넨(10)

DUMMY

2.2 이에넨(10)



먼저 들어간 손님으로 인해 가볍게 흔들리는 여닫이 문을 한 손으로 밀며 아비크는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정오가 되기 전인데 아까 전에 비해 술집 안은 사람들로 제법 차 있었다.

왁자지껄한 소리와 테이블 사이를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는 종업원들을 피해 그는 술집 한 구석에 놓여 있는 테이블 앞으로 걸어갔다.

“가슈.”

테이블 쪽에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아비크가 그를 불렀다. 여자들 틈에 앉아 있던 가슈가 고개를 들었다. 아비크를 보고 그가 마침 잘됐다는 얼굴이 됐다.

“왔냐? 앉아.”

“그래서 온 거 아냐.”

무뚝뚝하게 아비크는 말했다.

“잠깐 나와봐.”

금발의 곱슬머리를 한껏 치장한 여자의 옆에 앉아 있던 길더가 그 말에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왜요?”

“그래 왜? 지금 한창 좋은데.”

“중요한 일이야.”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더 이상 말하기 귀찮다는 듯 아비크가 몸을 돌렸다. 걸어가는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곧 의자를 뒤로 밀며 가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례. 아가씨들.”

그 모습에 어쩔 수 없는 얼굴로 길더 역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는 거에요? 정말.”

자리를 떠나는 그들을 향해 여자들이 볼멘소리를 냈다.

“아, 미안. 돈은 우리가 낼 테니까 마저 놀아요.”

두 사람의 뒤를 쫓아 걸음을 옮기던 길더가 미안한 듯 웃으며 여자들을 향해 손을 반쯤 들어 보였다.





“갑자기 왜 끌고 나와?”

문을 나서자마자 가슈가 말했다. 술집 밖에 서서 뭐라고 얘길 하고 있던 레이와 시즈가 두 사람이 나오자 가까이 걸어왔다.

“그래요. 한창 재밌었는데..”

불만이었는지 뒤따라 오던 길더도 약간 투덜거렸다.


“레이 덕에 뭘 좀 알았는데 거기에 대해 판단할 건 우리 중 너같아서.”

말하며 아비크는 레이를 쳐다봤다. 가슈의 시선이 그를 따라 이쪽을 향하자 별로 내키지 않는 기색으로 레이는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베닛사가 라제크와 동맹을 맺기 위해 움직이는 것 같아.”

가슈가 멈칫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그게 정말이야?”

되묻는 소리에 레이는 끄덕였다.

“아마 확실할거야.”

지금까지 그 말지기 입에서 나온 소식이 틀린 적 없다.


“무슨 얘기에요?”

길더가 물었다. 시마르 출신이 아니기도 했지만 정치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어 그는 왜 분위기가 심각해지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에넨처럼 베닛사도 시마르 혈맹국 중 하나야.”

옆에서 아비크가 설명했다.

“시마르에서 이에넨보다 훨씬 더 중요한 곳이고.”

의아한 눈으로 길더는 한 손가락을 턱 끝에 댔다.

“그런데요? 어차피 필요하면 혈맹국도 가차 없이 등 돌리는 게 여기 아니에요?”

“그렇다고 해도 이에넨과 달리 베닛사가 시마르에서 빠져 나간다는 건 다들 생각도 못하고 있거든.”

방대한 라곤의 북쪽은 수백 개의 영주국이 있고 그 영주국들은 그들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각각의 혈맹을 형성하고 있다. 시마르는 네바렌을 비롯해 셀딘, 이에넨과 베닛사 아슈르 바롭 등이 소속된 곳으로 그 중 베닛사는 네바렌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지정학적으로 유리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 그 사실만으로도 시마르 혈맹에서 큰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좌우간 우리가 놀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대꾸해주는 아비크의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길더는 중얼거렸다. 그러는 동안 아비크는 가슈를 쳐다보았다.

“어쩔래?”

그는 말했다.

“우리 일도 끝났겠다 난 솔직히 그냥 모른척 해도 그만이라고 보는데.”

“그랬으면 얘길 해주러 여기 오지도 않았겠지.”

잠깐 생각하다가 어쩔 수 없는 얼굴로 가슈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자.”

그는 나머지 네 사람을 쳐다보았다.

“사실이면 그냥 있을 순 없어. 어쨌든 네바렌으로 돌아가서 알려야 돼.”

그렇게 말하며 그가 먼저 말이 있는 쪽으로 몸을 틀었다. 별 수 없다는 듯 또는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게 아쉽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나머지 사람들도 그 뒤를 따랐다.













밤 새 말을 달려 라제크에 도착하자 이미 한밤중이었다. 영주의 성으로 바로 가지 않고 남자는 근처 여관으로 향했다. 그대로 하루 밤 묶고 아침이 되자 일어나 그는 여관 1층 식당으로 가 그 한 쪽에 자리 잡고 앉았다. 그리고 얼마간 그곳에서 꼼짝을 안했다.


남자는 베닛사 영주의 뜻을 라제크에 전하기 위해 몰래 이곳에 온 밀사로, 동시에 영주의 막내 아들이기도 했다. 그런 그는 지금 성으로 가는 것을 좀 망설이고 있는 중이다.


이곳에 와 라제크와 혈맹을 맺는 것까지는 비밀로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 상황에 대해서는 베닛사도 생각을 잘해야 하는 문제였다.


시마르에게서 떨어져 나온 베닛사가 시마르 혈맹국으로 둘러 싸인 한 가운데서 제대로 버틸 수 있는가. 믿는 구석이 확실하지 않으면 쉽게 진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 믿는 구석이 과연 정말 믿을 만한지 그는 명확하게 확신을 못하고 있었다.

‘어쩐다..’

그로 말하자면 권력이나 영주의 자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막내 아들이었고 아버지인 베닛사 영주가 결정한대로 영주의 성에 가 준비해온 문서에 서명만 받아오면 되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생각과 그의 생각은 차이가 있고 곧 한 장의 종이에 서명하는 것에 베닛사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니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 참이었다.


어제, 그런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 나루터에서 미적미적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우연히 그 용병들을 만났고 그리고 이런 갈등 때문에 그들을 따라갔던 거였다.


베닛사와 달리 이에넨이 라제크와 협정을 맺을 거란 건 큰 비밀은 아니다. 애초에 이에넨이 시마르에서 빠져 나간다 해도 시마르로서도 타격이 크지 않았고.

오히려 이에넨 입장에서 과연 득이 될지 확실치 않아 보여 그래서 이에넨에 호의적인 누군가가 이에넨을 말릴 지도 모른단 생각은 했지만 설마 그게 시마르에서도 영향력이 막강한 네바렌일줄은.


네바렌은 이제 앞으로 베닛사의 ‘믿는 구석’이 될지 모를 영주국 못지 않은 강국이었으니 이에넨이 어떻게 나올지 조금이라도 지켜보고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 것도 확인 못하고 들키고 말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다가와 그의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남자가 입을 뗐다.

“아무 것도 아니오.”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공자는 테이블 위에 있던 잔을 들어 올렸다.

“오다가 이에넨 영주를 따라가는 네바렌 용병들을 봤소.”

브롤렌을 지나는 게 염려스러웠던 건 사실이라 그들에게 한 말이 완전히 거짓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 앞에서 보인 모습만큼 그는 그렇게 겁쟁이는 아니었고 오히려 경우에 따라서는 겁쟁이로 보여도 자존심 상해하지 않는 나름 비범한 면이 있는 자였다.


“아마 오래 전에 네바렌과 체결한 협정서를 보여주려고 했을 겁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가 생각을 떠올리는 얼굴로 말했다.

“그걸 보여주면 이에넨 영주가 마음을 돌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겠죠.”

누군지는 몰라도 그는 제법 많은 걸 아는 듯 했다.

“하지만 그런 걸 본다고 해도 어차피 이에넨 영주는 라제크의 손을 잡을 겁니다. 그럴 수밖에 없고요.”

“어째서?”

“라제크의 뒤에 있는 랭더발 때문이죠. 우리와 마찬가지로.”


북쪽 지방에 자리하고 있는 수많은 영주국 중 세력이 막강한 영주국이 몇 개 있다. 예전에는 아스드나 파비앙, 아드리엥, 기튼 등이었으나 지금은 아드리엥과 파비앙을 제외한 아스드나 기튼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고 대신 네바렌 그리고 랭더발이 신흥 세력으로서 그 자리를 차지하는 중이었다. 특히 랭더발이 무서운 기세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공자님.”

나직히 남자는 다시 말했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랭더발이 지금 북쪽 지역 전역에 있는 영주국을 조금씩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있어요. 이 시류에 편승하는 것이 베닛사에게는 기회가 될 겁니다.”

남자의 말에 반박할 생각은 없었는지 공자는 조용히 그 말을 듣고 있었다.


“이에넨 영주도 그래서 움직이는 거고요.”

말을 마치고 남자는 우울한 얼굴의 공자를 쳐다보았다.

“공자님도 이제 확신을 가지셔야 합니다.”

유약하지만 나름 강단 있고 그리고 의리가 있는 공자였기에 지금 상황이 그다지 달갑지는 않을 거라는 걸 남자도 잘 알고 있다.

“어쩌시겠습니까?”


“어차피 내게 선택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공자는 말했다.

“아버님 지시에 반기를 들 생각은 없소. 그저 잠시 생각을 정리한 것 뿐이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선뜻 발이 떨어지지는 않았는지 잠시 더 자리에 있다가 이윽고 공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시다.”

그러나 말한대로 그는 지시 받은대로 행할 것이다.

“이제.”

결심을 굳히며 술집 밖으로 나가기 위해 그가 자리에서 몸을 틀었다.








옆을 지나쳐 공자가 술집 밖으로 나가는 동안 엘리어트는 조용히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나가자 천천히 엘리어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매가 정확히 이 여관까지 날아온 뒤 그대로 하늘 저쪽으로 사라졌다. 운이 좋았는지 1층으로 내려와 있는 공자를 발견한 뒤 또 다른 남자가 나타나기 전부터 엘리어트는 공자의 앞 자리에 등을 돌린 채 앉아 있었다.


밖으로 나와 여관 밖에 서서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조금 전 두 사람이 한 대화를 떠올렸다.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아마 가메인 공작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자신도 네바렌으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정치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고 때문에 베닛사가 시마르를 떠나려 한다는 것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까지는 파악하지 못한다.

지금 들은 얘기를 공작에게 전하면 가메인 공작이 판단하고 움직일 것이다. 그러려면 조금이라도 빨리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으나 남자의 입에서 나온 한 영주국 때문에 그는 바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랭더발.


센볼린으로 떠나기 전 네바렌에서 지낸 6년 동안 랭더발에 대한 얘기는 전혀 들려 오는 게 없었다. 스승이 이끌던 아스드와의 싸움에서 패한 뒤 랭더발은 줄곧 조용했다. 그러나 그가 없던 지난 5년 동안 랭더발은 다시 변화한 듯 했다.


자리에 서서 엘리어트는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는 라제크의 성이 그의 눈에 보인다.












집무실 한 쪽에서 방금 전 베닛사의 밀사가 서명한 문서를 확인하고 문서를 밀봉하기 위해 밀랍과 인장을 꺼내던 행정관은 뭔가가 목에 닿자 멈칫하며 손을 멈추었다. 턱 끝에 닿는 날카로운 감각이 뭔지는 익히 알기에 침착하게 그는 말했다.

"웬 놈이냐?"

“움직이면 베겠어.”

고개를 조금 움직여 뒤를 보려하자 목에 칼이 더 깊이 들어오며 등 뒤에 있는 남자가 말하고 있었다. 치미는 화를 겨우 억누르며 그는 입을 열었다.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누군지는 잘 알고 있어. 라제크의 행정관 나리.”

움직이지 못하게 남자의 턱 아래 바로 칼 끝을 갔다 댄 채 엘리어트는 말했다.

“시마르 영주들을 이쪽으로 끌어들이는 이유가 뭐지?”


방금 전 베닛사에서 온 밀사와 행정관이 얘기를 다 끝낼 때까지 숨어 있다가 소리 없이 엘리어트는 여기 나타났다.

“무슨 일을 꾸미는 거야?”

그러나 이를 갈 뿐 대꾸가 없다. 엘리어트는 다시 말했다.

“다시 묻지.”

들리는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니었는지 칼끝이 묵직하게 목 안으로 밀려 들어오자 행정관은 움찔했다. 목 언저리에서 피가 베어 나온다.

“모, 모른다.”

더 버틸 재간은 없었는지 행정관이 그제야 입을 뗐다.

“끌어들일 수 있는 적당한 나라들과 동맹 관계를 맺어 두라는 말을 들었을 뿐이야.”

“그 지시는 랭더발로부터인가?”

대답이 없다. 그러나 대답을 듣지 않아도 되는 질문이었다.

"무슨 이유로?"

칼 끝을 더욱 행정관의 목에 찔러 넣으며 엘리어트는 다시 물었다.

"이유 같은 건 없어. 세력을 키우는데 그만한 일도 못한다는 건가?!"

분노가 느껴졌지만 곧 목을 뚫을 것 같은 칼날에 대답할 수 밖에 없었는지 마지막은 화를 내며 행정관이 말했다.


엘리어트는 생각했다. 라제크도 약한 영주국이 아니다. 그런 곳을 좌지우지 할 정도의 힘을 랭더발이 가지고 있다.


“이 놈.. 어디서 왔는지는 몰라도 무사히 여기서 빠져 나가지는..”

분에 못 이겨 이제 이를 가는 행정관의 말을 다 듣고 있을 생각은 없었는지 엘리어트가 그를 앞으로 밀쳤다. 그대로 바닥으로 넘어진 행정관이 몸을 일으키며 뒤를 돌아보았을 때 엘리어트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라제크에서 빠져 나온 엘리어트가 말을 달려 다시 네바렌으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나흘 뒤였다.

“베닛사가 라제크로 밀사를 보냈습니다.”

돌아오자마자 가메인 공작을 향해 엘리어트는 곧장 말했다.

“그리고 그 뒤에서 랭더발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가메인 공작은 고개를 들어 그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확실하냐?”

엘리어트가 끄덕이는 것을 보고 가메인은 생각했다.

“시마르에서 중요한 위치기도 하지만 베닛사 영주는 왕실과 인척 관계이기도 하다. 함부로 말을 꺼내 시마르의 배신자로 몰수는 없는 일이야. 게다가, 랭더발이라니.."

잠시 공작이 입을 다물었다. 엘리어트는 그가 다시 말하기를 기다렸다.


“영주들에게 일단 이 사실을 알려야 겠구나.”

이윽고 공작은 말했다. 이것은 국외에 눈을 돌리고 있는 네바렌보다는 시마르의 전통 있는 영주국들에게 더 중요한 문제다.

“네.”

엘리어트가 끄덕였다.




가메인 영주와 말을 끝내고 엘리어트는 집무실 밖으로 나왔다. 복도에 서서 그는 생각했다. 가메인 공작은 일련의 상황들이 시마르 혈맹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엘리어트의 머리속에 있는 건 지금 단 하나였다.

생각에 골몰해 있는데 발소리가 났다. 고개를 드니 복도 저쪽에서 가슈들이 오고 있었다.

“어?”

제일 앞에서 엘리어트를 발견한 시즈가 그를 향해 뛰어왔다.

“엘리어트.”

그 앞에 서며 시즈가 반색했다. 사흘 전 출발해 그들은 지금 막 네바렌에 도착했다.

“빨리 왔네요?”

엘리어트의 앞으로 나머지 사람들도 다가왔다.

“쫓아간 녀석은, 누군지 확인했어요?”

남자를 쫓은 엘리어트가 지금 여기 와 있는 걸 보고 가슈가 물었다.

“그래.”

엘리어트는 말했다.

“너희도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는데.”

“우린, 어쩌다 뜻밖의 얘길 들어서요.”

잠깐 생각하다가 가슈는 이내 말했다.

“라제크와 동맹을 맺으려던 게 이에넨이 다가 아니었던 모양이에요.”

아직 영주에게 보고 전이긴 해도 엘리어트에게 못할 말은 아니다.

“베닛사 얘길 들었어요.”

말하던 그는 엘리어트가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잠잠하자 그를 힐끔 보았다.

“혹시 알았어요?”

엘리어트가 끄덕였다.

“따라간 남자, 베닛사에서 온 밀사였어.”

“정말이요?”

놀라웠는지 가슈는 눈썹을 살짝 치켜 올렸다.

‘진짜 꼬이네.’


“너흰 그걸 어떻게 알았어?”

엘리어트가 물었다.

“이 녀석이요.”

가슈가 레이를 가리켰다.

“돈 좀 썼죠.”

쳐다보는 시선에 레이가 대꾸했다.

“그럼 굳이 보고할 것도 없네요.”

괜히 일찍 왔다는 듯 중얼거리며 아비크는 엘리어트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한데요?”

“글쎄.”

엘리어트는 말했다.

“시마르에 알리고 일단 지켜보겠지.”

“하긴.. 네바렌이 먼저 나설 일은 아니죠.”

시마르에 속해있고 영향력은 막강해도 여러 면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네바렌의 입장을 떠올리며 가슈가 중얼거렸다.










며칠 뒤, 네바렌의 전서구를 받은 몇 몇 영주들이 조용히 시마르로 모여 들었다. 가메인 공작의 지시로 엘리어트도 함께 시마르로 들어와 있었다.


시마르의 의장국 역할을 하는 셀딘의 영주를 비롯해 아슈르와 바롭, 모베톤과 오르안 등 연락이 간 믿을 만한 영주들 몇 명이 회의실 중앙에 놓여 있는 커다란 원형 테이블에 둘러 앉았다. 가메인 공작의 한 발 뒤에 서서 엘리어트도 회의가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메인 공작으로부터 베닛사가 라제크와 혈맹을 맺고 그리고 그 뒤에 랭더발이 있다는 말을 듣자 영주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혈맹국을 대표하는 영주국은 시마르에서는 셀딘과 네바렌, 그 뒤로 베닛사와 오르안이었다. 힘은 있지만 네바렌은 정치적인 면에서는 한 발 뒤로 물러나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셀딘과 베닛사가 시마르의 대표로 여겨지곤 했다. 그런 위치에 있던 영주국이 갑자기 시마르에서 빠져 나간다는 것은 상당히 충격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시마르에서 나가 아쉬로 들어가겠다니.. 이유가 뭐랍니까?”

랭더발이나 라제크는 아쉬 혈맹국에 속해 있다. 랭더발과 손을 잡는다는 것은 곧 아쉬 혈맹으로 들어가겠단 뜻으로 볼 수 밖에 없다.


“그야.. 아직 알 수 없지 않겠소.”

오르안 영주의 질문에 셀딘 영주가 나직히 대꾸했다.

“우리가 이렇게 모여 있는 것도 아직 베닛사는 모를거요.”

“이해가 안갑니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기가 막힌 얼굴로 델비스 영주도 말했다.

“여기서 나가 아쉬로 간다고 해도 무슨 이득이 있다고.. 아무리 지금 랭더발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베닛사 영주의 생각을 우리가 다 알 순 없지 않겠소.”

셀딘 영주는 말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베닛사에서 먼저 행동을 취할 때까지 지금은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났다. 문이 열리고 셀딘의 기사 한 명이 급히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영주님.”

영주들을 향해 허리를 굽혀 보이고는 서둘러 그가 셀딘 영주의 옆으로 걸어갔다. 그의 귀에 대고 낮게 무슨 말인가를 속삭이는 것을 엘리어트는 가만히 지켜 보고 있었다.


잠시 후 기사가 옆으로 한 발 물러서자 고개를 돌려 셀딘의 영주가 방안에 모여 있는 영주들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이쪽을 보고 있는 시선을 마주하며 곧 그가 입을 뗐다.

“랭더발이 전쟁을 일으켰소.”

그는 말했다.

“지금, 자드로 쳐들어갔다고 하오.”

아무런 낌새 없이, 그야말로 갑작스러운 소식에 영주들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가메인 공작의 뒤에 서 있던 엘리어트는 셀딘 영주에게 소식을 전한 뒤 한 발 물러나 서 있는 기사 쪽을 힐끔 보았다. 다소 뜻밖의 소식에 말을 전한 기사 역시 좀 당황하고 있는 듯 했다.

엘리어트는 랭더발을 떠올렸다. 그로서도 생각지도 못한 전쟁 소식이었다. 지난 11년 간 어느 영주국이든 안팎으로 크고 작은 싸움은 있었지만 영주국 간의 전쟁이 일어난 적은 없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이게”

갑자기 찾아온 전쟁 소식에 영주들은 놀라고 있었다. 베닛사보다 이건 아무도 예상 못한 소식이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자세한 건 아직 모르오. 어느 정도 규모로 발한 전쟁인지도 아직 모르고.”

셀딘 영주는 말했다.

“상황은 이제 알아봐야지.”

그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자 영주들은 다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일이 어렵게 돌아가는구나.”

갑작스러운 전쟁 소식에 놀라기도 했지만 어쨌든 이 모든 일에 있어서는 아직 다른 영주국들보다는 한 발 물러나 있는 가메인 공작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십 수년 간 조용했던 이 북쪽 지방에 전쟁이라니."

엘리어트는 테이블을 빙 둘러 앉은 채 근심어린 얼굴로 얘기를 나누고 있는 영주들 쪽을 응시했다.


베닛사나 이에넨, 그리고 전쟁까지. 그 모든 일을 랭더발이 아무 계획없이 시작했을 거란 생각은 이 순간 들지 않는다. 그런 생각과 함께 영주들이 나누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 채 엘리어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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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하트의 반(VAN) - 2-2 이에넨(2) +5 13.12.08 4,211 126 11쪽
80 하트의 반(VAN) - 2-2 이에넨(1) +10 13.12.05 4,355 120 20쪽
79 하트의 반(VAN) - 2-1 헬렌(4) +9 13.12.03 4,321 118 15쪽
78 하트의 반(VAN) - 2-1 헬렌(3) +3 13.12.01 3,578 118 20쪽
77 하트의 반(VAN) - 2-1 헬렌(2) +12 13.11.28 3,831 111 17쪽
76 하트의 반(VAN) - 2-1 헬렌(1) +3 13.11.26 4,018 120 9쪽
75 하트의 반(VAN) - 2-0 엘소(2) +8 13.11.26 4,066 137 11쪽
74 하트의 반(VAN) - 2-0 엘소(1) +15 13.11.24 4,194 140 14쪽
73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5) +10 13.11.21 3,222 96 19쪽
72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4) +9 13.11.20 3,186 91 26쪽
71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3) +3 13.11.17 2,961 92 18쪽
70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2) +3 13.11.15 3,407 97 14쪽
69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1) +11 13.11.11 4,060 101 14쪽
68 하트의 반(VAN) - 1-67. +19 13.09.18 5,306 162 16쪽
67 하트의 반(VAN) - 1-66. +11 13.09.17 6,937 154 22쪽
66 하트의 반(VAN) - 1-65. +4 13.09.16 4,120 154 10쪽
65 하트의 반(VAN) - 1-64. +3 13.09.14 5,764 157 13쪽
64 하트의 반(VAN) - 1-63. +2 13.09.12 4,048 138 10쪽
63 하트의 반(VAN) - 1-62. +16 13.09.09 6,178 155 15쪽
62 하트의 반(VAN) - 1-61. +7 13.09.06 4,361 157 14쪽
61 하트의 반(VAN) - 1-60. +2 13.09.04 4,287 170 17쪽
60 하트의 반(VAN) - 1-59. +17 13.09.02 7,252 160 23쪽
59 하트의 반(VAN) - 1-58. +21 13.08.30 4,647 158 21쪽
58 하트의 반(VAN) - 1-57. +9 13.08.28 4,058 150 12쪽
57 하트의 반(VAN) - 1-56. +33 13.08.26 4,737 153 17쪽
56 하트의 반(VAN) - 1-55. +13 13.08.23 5,020 168 16쪽
55 하트의 반(VAN) - 1-54. +10 13.08.21 7,902 168 19쪽
54 하트의 반(VAN) - 1-53. +7 13.08.19 5,245 160 11쪽
53 하트의 반(VAN) - 1-52. +5 13.08.16 6,038 157 10쪽
52 하트의 반(VAN) - 1-51. +5 13.08.15 5,375 165 16쪽
51 하트의 반(VAN) - 1-50. +16 13.08.12 6,528 179 15쪽
50 하트의 반(VAN) - 1-49. +7 13.08.10 6,230 168 18쪽
49 하트의 반(VAN) - 1-48. +4 13.08.08 5,734 165 22쪽
48 하트의 반(VAN) - 1-47. +15 13.08.06 5,212 161 16쪽
47 하트의 반(VAN) - 1-46. +8 13.08.05 4,831 168 12쪽
46 하트의 반(VAN) - 1-45. +7 13.08.02 5,132 172 11쪽
45 하트의 반(VAN) - 1-44. +6 13.08.01 4,774 166 9쪽
44 하트의 반(VAN) - 1-43. +9 13.07.29 5,468 169 15쪽
43 하트의 반(VAN) - 1-42. +8 13.07.25 5,012 179 12쪽
42 하트의 반(VAN) - 1-41. +11 13.07.22 4,802 171 16쪽
41 하트의 반(VAN) - 1-40. +6 13.07.18 5,177 180 18쪽
40 하트의 반(VAN) - 1-39. +4 13.07.15 4,726 186 22쪽
39 하트의 반(VAN) - 1-38. +9 13.07.11 6,738 166 13쪽
38 하트의 반(VAN) - 1-37. +13 13.07.08 5,224 165 19쪽
37 하트의 반(VAN) - 1-36. +2 13.07.05 6,458 170 24쪽
36 하트의 반(VAN) - 1-35. +6 13.07.01 6,041 164 17쪽
35 하트의 반(VAN) - 1-34. +25 13.06.13 5,893 181 11쪽
34 하트의 반(VAN) - 1-33. +5 13.06.10 8,205 191 21쪽
33 하트의 반(VAN) - 1-32. +9 13.06.06 6,924 166 17쪽
32 하트의 반(VAN) - 1-31. +3 13.06.03 6,941 178 17쪽
31 하트의 반(VAN) - 1-30. +13 13.05.31 8,835 188 26쪽
30 하트의 반(VAN) - 1-29. +17 13.05.27 7,428 196 19쪽
29 하트의 반(VAN) - 1-28. +7 13.05.23 7,359 181 12쪽
28 하트의 반(VAN) - 1-27. +10 13.05.20 8,234 176 19쪽
27 하트의 반(VAN) - 1-26. +3 13.05.16 8,544 181 13쪽
26 하트의 반(VAN) - 1-25. +3 13.05.14 8,319 184 27쪽
25 하트의 반(VAN) - 1-24. +15 13.05.09 8,367 232 24쪽
24 하트의 반(VAN) - 1-23. +7 13.05.03 10,464 289 25쪽
23 하트의 반(VAN) - 1-22. +9 13.04.29 9,083 201 21쪽
22 하트의 반(VAN) - 1-21. +1 13.04.25 8,406 209 12쪽
21 하트의 반(VAN) - 1-20. +9 13.04.21 9,478 215 21쪽
20 하트의 반(VAN) - 1-19. +29 13.04.07 9,110 242 19쪽
19 하트의 반(VAN) - 1-18. +10 13.04.04 8,448 220 24쪽
18 하트의 반(VAN) - 1-17. +7 13.04.02 8,159 209 21쪽
17 하트의 반(VAN) - 1-16. +7 13.03.28 9,019 197 15쪽
16 하트의 반(VAN) - 1-15. +6 13.03.25 10,205 200 15쪽
15 하트의 반(VAN) - 1-14. +6 13.03.21 8,955 223 24쪽
14 하트의 반(VAN) - 1-13. +7 13.03.17 9,495 228 12쪽
13 하트의 반(VAN) - 1-12. +8 13.03.11 9,218 222 16쪽
12 하트의 반(VAN) - 1-11. +6 13.03.07 9,542 230 16쪽
11 하트의 반(VAN) - 1-10. +6 13.03.04 10,136 251 18쪽
10 하트의 반(VAN) - 1-9. +2 13.02.28 10,107 235 19쪽
9 하트의 반(VAN) - 1-8. +6 13.02.26 10,646 256 14쪽
8 하트의 반(VAN) - 1-7. +6 13.02.25 11,244 271 15쪽
7 하트의 반(VAN) - 1-6. +19 13.02.21 11,296 282 16쪽
6 하트의 반(VAN) - 1-5. +14 13.02.19 13,170 277 20쪽
5 하트의 반(VAN) - 1-4. +13 13.02.17 14,300 330 15쪽
4 하트의 반(VAN) - 1-3. +9 13.02.17 15,197 327 13쪽
3 하트의 반(VAN) - 1-2. +15 13.02.11 16,471 350 13쪽
2 하트의 반(VAN) - 1-1. +15 13.02.10 21,877 403 12쪽
1 하트의 반(VAN) - 0. +15 13.02.04 29,032 44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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