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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k 님의 서재입니다.

하트의 반(VAN)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명인k
작품등록일 :
2013.02.04 17:06
최근연재일 :
2019.02.10 23:08
연재수 :
29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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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525
추천수 :
28,216
글자수 :
2,269,960

작성
13.05.27 22:12
조회
7,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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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글자
19쪽

하트의 반(VAN) - 1-29.

DUMMY

겨울의 중간으로 접어들었다. 포도 묘목이 뿌리 내리고 자라는 걸 지켜 봄에 따라 가게는 다시 한가해졌다. 계절이 계절이니 만큼 마을도 이전보다는 조용해졌고 사람들의 움직임도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가게 안에서 진열장을 정리하고 있던 락터드가 고개를 들었다.

“벌써 왔나?”

“그래.”

안으로 들어선 데이먼의 음성을 들으며 락터드는 밖으로 나갔다. 지난 번에 말한 바뀐 오크통에 담아온 포도주가 밖에 서있는 마차에 실려 있었다. 짐칸에서 오크통을 내려 들고 창고로 운반하기 위해 락터드는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어트는?”

가지고 들어왔던 포도주 한 통을 지하 창고에 내려다 놓고 올라오며 데이먼이 물었다.

“제재소 가는 날이잖나. 오늘은 안 올거야.”


락터드는 오크통을 든 채 지하 창고로 내려갔다. 창고에 내려 갔다 올라오니 오크통을 들여오지 않고 진열장 옆에 있는 벽장 앞에 서서 데이먼이 벽장문을 열고 있었다.

“그건 왜 따로 두나?”

포도주 두 병을 따로 벽장 속에 집어 넣는 것을 보며 락터드가 물었다.

“시음하기 위해 만든 건 따로 보관하려고.”

저 벽장에서 가끔씩 포도주를 꺼내 마시는 걸 본 적이 있다. 가만 보니 정말 좋은 건 따로 챙겨 뒀다 먹는 느낌이었다.

“장사를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양이 얼마 안되서 팔기도 뭐해서 그래.”

핀잔 주는 소리에 데이먼은 대꾸했다.

“게다가 이 정도 포도주 맛을 알아채는 사람도 드물고.”

“갖다 붙이긴.”

“정말이야. 농장에서도 맛이나 보라고 보내 준거라고.”

“퍽도 그렇겠네.”

쓴웃음으로 대꾸하고는 문득 생각이 난 얼굴로 락터드는 물었다.

“농장은 어때?”


그 날, 시합이 끝나고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마을에서는 그냥 그렇게 돌아왔다. 지난 번 일이 있은 이후 농장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별 문제는 없고?”

라일러나 오히라가 괜찮은지 안부를 묻는 소리에 데이먼은 대꾸했다.

“없어 보였네. 아가씨나 청년이나 다 잘 지내는 것 같았고.”

포도주 병을 챙겨 넣다가 손을 멈추고는 데이먼이 잠깐 사이를 두었다.

“농장에는 별 문제가 없는데, 그런데 성주 말이야.”

별 일 없다고 말하는 거에 비해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목을 맸다는구만. 성안에서.”


뜻밖의 얘기에 락터드가 데이먼을 보았다.

“없어진 세 사람 시체도 같이 발견됐는데 유서에는 세 사람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진다고 적혀 있었다더군.”

“... 그래?”

락터드는 성주를 떠올렸다. 역시 짐작이 맞다. 하지만 시합 전 찾아 갔을 때까지만 해도 성주가 특별히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거나 죄책감을 갖는 기색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사람 마음이야 알 수 없는 거지만 그런 자가 목을 매다니, 의외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병사들은?”

그 때 싸웠던 기사들이 떠올리며 락터드는 다시 물었다.

“거기까진 듣지 못했어. 뭐 성주가 없으니 뿔뿔이 흩어지지 않았을까 싶은데.”


성주가 없어졌으니 당연히 병사들도 성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락터드는 성주가 자신을 보던 눈빛을 떠올렸다. 무례한 자신의 부탁을 들어줬으니 썩 나쁜 인간이라고 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 셋을 죽이고도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면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니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어도.

“결국 그렇게 일단락 되는건가 싶더군.”

말을 하는 데이먼의 목소리가 무뚝뚝했다.

“죄짓고는 못사는 법이야 역시 사람은.”

“그런가 보네.”

그 소리에 대꾸하며 잠시 가만 있던 락터드는 이내 생각에서 벗어나며 나머지 오크통을 가져오기 위해 몸을 돌렸다.







날이 추워짐에 따라 목재가 팔리는 양도 많아져 제재소에서도 좋은 목재가 많이 필요해졌다. 버네드 씨의 제재소는 시장 제일 안쪽에 있었는데 단순 뗄감용에서부터 목제품을 만드는데 쓰이거나 집을 짓는데 쓰이는 것까지 다양하게 많은 종류를 다뤘다. 공사장 일을 했던 이력이 있어선지 손재주가 좋고 꼼꼼한 버네드의 제재소는 금방 피어드 제재소를 따라잡고 있었다.


엘리어트는 삼 일에 한 번 제재소에 목재를 가져다 주었고 그 중 하루는 거기서 버네드 씨를 도왔는데 오늘이 제재소 일을 도와주는 날이었다.

“기사 수업은 할만 하냐?”

창고에 손질된 널빤지를 내려 놓는 엘리어트를 보며 버네드가 물었다.

“그냥요.”

널빤지가 기울어지지 않게 중심을 잡아 기대 놓으며 널빤지가 잘 세워지자 다른 걸 가져오기 위해 엘리어트는 몸을 틀었다. 그 모습을 보다가 손질하고 있던 커다란 나무 판자를 뒤집으며 버네드가 혼자말처럼 중얼댔다.

“기사라.....”


널빤지를 다 정리하고 엘리어트는 걸어와 그가 손질하고 있는 커다란 판자를 잡았다. 움직이지 않게 엘리어트가 목재를 잡아주자 버네드는 그 위를 대패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기사가 되면 좋기야 하지만 여기저기서 전쟁이다 뭐다 뒤숭숭한 판에 꼭 그럴 필요가 있나?”

오전부터 벌써 열 장째 판자를 손질하고 있다. 옆 마을에서 주문이 들어온 거라 오늘은 이것만 끝내고 오후에는 배달을 갈 것이다.

“그런데 끼어들었다간 괜한 호기에 목숨 잃기나 십상이지.”


“엘리어트가 전쟁에 나갈 정도로 어른이 되려면 멀었어요.”

마침 새참을 가지고 집에서 나와 제재소 안으로 들어오던 아넷이 그가 하는 소리에 참견하듯 말했다.

“괜한 소린 하여간..”

“아 왜? 어쨌든 그럴 수 있잖아.”

그녀의 기세에 조금 기가 죽은 듯한 얼굴로 버네드 씨가 항의했다.

“물론 공을 세워 왕 앞에 서게 되면 평민이라도 성주가 될 수 있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열에 하나 있을까 말까야. 아, 그렇게 되면 물론 좋지.”

갑자기 대패질을 멈추더니 혼자 생각에 빠진 얼굴이 되어 버네드는 중얼거렸다.

“성주라.. 엘리어트. 네가 성주가 되면 말이야..”

“아이구, 혼자 앞서갔다 뒷서갔다...”

못 말리겠다는 듯 한숨을 한 번 내쉬고 아넷은 엘리어트를 내려다보며 기운차게 말했다.

“망상은 혼자 하게 내버려 두고 우린 새참이나 먹을까, 엘리어트.”

“아, 나도.”

생각에서 빠져 나오며 버네드가 서둘러 끼어들었다.





새참을 먹고 다시 일을 시작해 점심 때가 조금 지나 엘리어트는 제재소에서 나왔다. 원래는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하지만 오후에는 배달을 하러 가야 되서 굳이 있을 필요 없다고 버네드 씨가 말하는 바람에 그냥 나오게 되었다.

일찍 끝난 김에 오늘 아침 말 손질을 할 때 돌보던 말 중 한 마리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아 다시 한 번 가볼 생각으로 엘리어트는 종마장쪽으로 발을 돌리고 있었다.


마구간에는 매일 아침 일찍과 저녁 시간 전에 갔다 왔다. 아침에 말을 손질하고 여물을 준다. 저녁때 다시 가서는 마찬가지로 여물을 주고 말의 상태를 확인했다. 구드프 씨나 다른 마구간 사람들이 말을 어떻게 확인하는지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엘리어트도 조금은 말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제재소나 종마장에서 일한지도 어느덧 넉 달이 지나고 있다. 여러 가지로 변화가 많았던 한 해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종마장 앞으로 들어선 엘리어트는 마침 마구간 안에서 말 두 마리가 줄을 지어 끌려 나와 짐마차 뒤에 실리는 것을 보았다.

그 앞으로 그가 가까이 걸어갔다.


“웬 일이냐?”

마차 앞에서 말이 실리는 걸 확인하고 있던 구드프는 앞으로 걸어온 엘리어트를 발견하고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

“아직 저녁 시간 안됐는데.”

“그냥 왔어요.”

엘리어트는 대답했다.

“아침에 말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말 돌보는 아이가 때도 안 됐는데 나타난 건 처음이라 구드프는 엘리어트를 한 번 보았다.

“그러냐?”

그러나 별 반응없이 응수하고는 그는 이제 막 출발하려는 마차를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말, 팔렸어요?”

그 모습을 보며 엘리어트가 물었다.

“팔렸다.”

퉁명스러운 대꾸를 들으며 엘리어트는 자신이 돌보던 검은 말을 떠올렸다. 예전에 구드프 씨가 혈통이 아주 좋은 말이라고도 했고 잘 모르는 자신이 보기에도 잘생긴 말이어서 어쩌면 그 말이 팔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을 돌려 엘리어트는 마구간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말우리 앞까지 가자 역시 그 중 한 칸이 비어 있었다. 한동안 돌보던 말이라 사실 좀 정이 들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없어질 줄은 몰랐다.

“뭐하냐?”

빈 우리 앞에 서 있는 그를 향해 구드프가 뒤에서 걸어오며 말을 걸었다. 돌아보니 구드프의 손에 고삐를 잡힌 채 말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문이나 열어라.”

옆으로 비켜서며 엘리어트는 빗장을 풀러냈다. 구드프가 우리 안으로 말을 끌어다 넣어 놓고 나오자 엘리어트가 다시 빗장을 걸었다.

“이 말이 팔린 줄 알았냐?”

우리 안에 얌전히 있는 말을 보고 약간 안도하는 기색이 되는 그를 향해 시큰둥하게 말하며 구드프는 걸어 놓은 빗장 위에 팔을 걸쳤다. 말 상태가 좋지 않아 편자를 갈아주고 다른데다 잠깐 매어 놓았다가 끌고온 참이었다.


“하긴 혈통도 좋고, 빠르기로 치자면 이 녀석이 우리 마구간에서 최고긴 하지.”

말을 쳐다보며 혼자말처럼 하는 소리에 엘리어트가 그를 보았다.

“그런데 어째서 팔리지 않았어요?”

엘리어트는 물었다.

“말은 빠르면 좋을 텐데..”

구드프는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꼬맹이 넌 기사 수업을 받는다면서 그런 것도 모르냐?”

퉁명스럽게 응수하고는 몸을 숙여 그는 말에게 줄 건초 더미가 들어 있는 들통 하나를 들어 올렸다.

“말이라고 다 똑같은 게 아냐. 제 역할이 있는 거다. 기사가 탈 말이라면 적어도 강해야 하지 않겠냐.”

“그럼 이 말은 강한 게 아니에요?”

엘리어트가 다시 묻자 구드프는 혀를 끌끌 찼다.

“꼬맹이 너 전혀 모르는 구나.”

한심하다는 듯 중얼대며 그는 들통에서 적당히 건초를 꺼내 바로 앞에 있는 말구유에 놓았다. 그가 일을 시작하자 엘리어트도 들통을 들어 올리며 구유로 걸어갔다.


“역용마로 쓸거면 힘이 강해야 하니 이 놈처럼 가슴이 깊고 골격이 굵은 것이 좋지.”

앞에 있는 말을 가리키며 말하고는 구드프는 한 칸 옆으로 가 구유에 남아 있던 건초들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눅눅해져서 먹지 않은 건초 더미를 밖으로 털어내고는 구유에 건초를 한움큼 집어 넣으며 그는 다시 바로 앞에 있는 다른 말을 가리켰다.


“농사짓는데 쓸거면 힘도 좋아야 하지만 어느 정도 속력도 필요하니 그런 놈들은 여기 이 놈처럼 가슴 폭이 좁고 몸통이 짧으면서 다리가 약간 길어야 한다. 하지만 기사가 탈 말이라면 말이야.”


구유를 정리하고 들통에 든 건초를 올려 놓으며 엘리어트는 구드프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네 말처럼 빠른 말을 타는 건 유리하지만 기사처럼 싸울 의지가 있는 쪽이라면 강한 말을 타는 게 좋을테니 그런 놈들은 다리가 길고 근육과 힘줄이 잘 발달되어 있어야 하는 거다.”

건초를 나눠 주던 손을 멈추고는 구드프는 길게 줄지어 있는 말 우리들을 쓱 한 번 둘러봤다.


“어떠냐? 네가 보기엔.”

무슨 뜻이냐는 듯 쳐다보는 엘리어트의 시선에 퉁명스럽게 구드프는 다시 말했다.

“어느 말이 강해 보이냔 말이야.”

그 질문에 잠깐 망설이다가 엘리어트는 말들을 한 번 천천히 훑어 보았다. 그리고는 중간쯤 있는 말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거요?”

그 말을 쳐다보더니 곧 구드프가 대꾸했다.

“그 말은 몸집에 비해 골격이 가늘고 다리가 기니 강하다기 보다 빠른 말이다.”

엘리어트는 다시 말들을 둘러 보았다.

“그럼 이거요?”

“야, 야~ 아무리 강한 게 좋다고 했기로서니...”

엘리어트가 가리키는 말을 보고 구드프는 기가 막힌 듯 혀를 찼다.

“덩치를 봐라. 느려 터진 말을 어디에 쓰겠냐?”


엘리어트는 자신이 고른 말을 한 번 쳐다보았다.

“괜히 내가 한 말에 정신 팔지 말고 그냥 한 마리 골라봐, 마음에 드는 걸로. 너라면 어떤 말을 타고 싸움터에 나가겠냐?”


구드프의 말을 들으며 엘리어트는 말들을 다시 한 번 천천히 둘러 보았다. 말들은 다들 비슷해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미묘하게 생김새가 달랐다. 그 중 서 있는데서 옆으로 세 번째 있는 말의 앞으로 걸어가 그 앞에 서서 엘리어트는 말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 녀석 어미는 어느 부자 영주의 눈에 들어 수도로 팔려갔지. 혈통이 아주 좋은 말이다.”

손을 뻗어 그 말을 쓰다듬는 엘리어트를 보며 구드프는 어깨를 으쓱했다.

“제대로 골랐구나.”

“알고 고른 건 아니에요. 그냥 생김새가 마음에 들어서...”

머쓱한 얼굴로 엘리어트가 대꾸했다.

“모양새도 중요해. 성질이 온순해야 주인에게 잘 복종하니까.”

엘리어트의 옆으로 가 구드프는 말의 귀를 가리켰다.

“눈 모양이 얌전하고 귀가 뒤로 향해 있어야 유순한 말이다. 사람을 경계하는 말을 골라선 안돼. 뭐, 길들여보인다 어쩐다, 괜한 호기 부리는 기사들도 있다마는 그럴 시간에 훈련이나 더 받을 것이지..”

못마땅한 듯 콧방귀를 뀌며 그는 말을 이었다.

“네가 먼저 고른 말은 짐 싣는데 쓰는 말이야. 봐라. 등이 강하면서 목의 위치가 낮지.”

엘리어트는 자신이 먼저 고른 말을 찬찬히 살펴 보았다. 과연 구드프 씨의 말 그대로의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빨리 달릴 말을 고른다면 속력이 필요하니 다리가 길면서 골격이 가늘고 잘 발달된 걸 골라야 하지.”

구드프는 말했다.

“속력도 있고 강한 말은 빠른 말의 생김새를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근육과 힘줄이 잘 발달되어 있다.”

말을 하던 그는 너무 당연한 말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조금 미간을 찌푸렸다.

“뭐, 말이야 지극히 당연하지만 어떤 말이 어느 정도로 강한지는 한 번에 알아보긴 어려운 법이니까. 오래 동안 말하고 같이 지낸 기사들이나 가능하달까.”

성의 없이 그는 덧붙였다.

“좌우간 네가 고른 말 생김새를 잘 봐둬라. 이 마을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좋은 말이니까.”

엘리어트는 자신이 고른 말을 다시 쳐다보았다. 말은 여전히 고개를 수그린 채 자신을 쓰다듬고 있는 엘리어트를 향해 가만히 서 있었다. 구드프는 좀 기쁜 기색으로 말을 쓰다듬고 있는 엘리어트를 보았다.


‘어린 녀석이 여간 성실한 게 아니란 말이야.’

오늘 일찍 온 것도 그렇지만 평소에도 엘리어트가 돌보는 말은 다른 말보다 건강했고 갈기는 손질이 잘 되어 윤기가 흘렀다. 구드프는 처음에는 소년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점점 더 눈이 갔다.


여전히 말을 쓰다듬고 있는 그를 보다가 구드프는 눈을 살짝 찡그렸다. 원한다면 다음엔 편자를 박는 법이나 운동을 시키는 법 등 이것저것 말해 줄 요량이다. 그러나 오늘은 일단 해야 될 일이 있었다.

“계속 말만 쓰다듬고 있을 거냐? 이제 일 해야지.”

“네.”

우렁찬 목소리에 손을 멈추고는 엘리어트가 서둘러 발을 돌렸다.







마굿간에서 청소와 말 손질을 끝내고 나자 평소보다 일찍 일이 끝났다. 할 일은 다 했으니까 굳이 저녁 때 다시 오지 된다고 구드프 씨에게 말을 듣고 엘리어트는 마굿간 밖으로 나왔다.

오늘따라 시간이 남는다. 가게로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데이먼 아저씨가 농장에 갔다 아직 안돌아왔다면 금방 저녁이 될 텐데 공연히 락터드를 귀찮게 하는 셈이 될 수도 있었다.

잠깐 망설이다가 이제 해가 지기 전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서고에 가서 책을 읽자 생각하며 엘리어트는 발을 돌려 이스릴 성으로 향했다.




데비가 준 작은 은열쇠로 문을 열고 엘리어트는 서고 안으로 들어왔다. 수업을 시작하면서 여기 서고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엘리어트로서는 아직도 얼떨떨한 일이었다. 물론 좋은 쪽으로. 지난 번에 읽다 만 책을 책장에서 꺼내 들고는 바닥에 그대로 자리 잡고 앉아 엘리어트는 곧 책에 빠져들었다.


“...어트. 엘리어트.”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옆에서 부르는 소리에 엘리어트는 고개를 들었다. 언제 들어왔는지 바로 앞에 데비가 서 있었다.

“세 번이나 불렀어.”

고개를 들고 쳐다보자 그렇게 못 듣는 게 신기하다는 얼굴로 데비가 말을 했다.

“미안.”

머쓱한 얼굴로 사과하는 소리에 괜찮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데비는 창가 근처로 걸어갔다.

“혹시나 해서 와 봤는데.. 근데 글자 보여?”


어느새 날이 저물었는지 서고 안은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 데비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램프에 불을 붙였다. 서고가 순식간에 환해지자 근처에 있던 책 한 권을 집어 들고는 걸어가 그녀는 책장 앞에 놓인 발받침대에 걸터 앉았다.

거기 앉아 책을 펼치는 그녀를 엘리어트가 물끄러미 응시했다. 시선을 느꼈는지 데비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자신을 보고 있는 엘리어트를 향해 반문했다.

“왜?”

“....아냐.”

의아한 듯 데비가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다시 책에 시선을 돌렸다. 곧 책에 몰두한 얼굴이 되는 그녀를 잠깐 보다가 엘리어트도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역시 엘리어트가 가져다 주는 목재가 좋아. 가장 먼저 팔린다니까.”

저녁이 되어 책상 앞에 앉아 장부를 정리하던 버네드가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목재를 배달하고 받은 돈과 요 며칠 벌어들인 돈과 나간 돈을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괜히 더 부탁하지 말아요.”

침대 맡에 걸터 앉아 빨래감을 개키고 있던 아넷이 주의를 주듯 말했다.

“애 고생해요.”

“내가 그런 소릴 하겠어?”

투덜대듯 대꾸하는 소리를 들으며 한숨처럼 그녀는 다시 중얼거렸다.

“아직 어린데 혼자서 저리 사느라 얼마나 힘들겠어요. 기사 수업 받는 것도, 괜히 더 고생하는 것 같아서 난 안쓰러워요.”

빨래를 개던 손을 멈추고 아넷은 타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는 장작불을 향해 무심히 시선을 주었다.

“심성도 착하고 성실한 앤데. 또래처럼 조금만 더 밝으면 좋으련만.”

“엘리어트가 어디가 어두운가?”

걱정스러운 음성을 알아채지 못하며 여전히 장부를 정리하고 있던 버네드가 무심코 대꾸했다.

“저렇게 눈치가 없어.”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젓고는 아넷은 다시 빨래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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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4) +9 13.11.20 3,186 91 26쪽
71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3) +3 13.11.17 2,961 92 18쪽
70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2) +3 13.11.15 3,407 97 14쪽
69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1) +11 13.11.11 4,060 101 14쪽
68 하트의 반(VAN) - 1-67. +19 13.09.18 5,305 162 16쪽
67 하트의 반(VAN) - 1-66. +11 13.09.17 6,937 154 22쪽
66 하트의 반(VAN) - 1-65. +4 13.09.16 4,120 154 10쪽
65 하트의 반(VAN) - 1-64. +3 13.09.14 5,764 157 13쪽
64 하트의 반(VAN) - 1-63. +2 13.09.12 4,048 138 10쪽
63 하트의 반(VAN) - 1-62. +16 13.09.09 6,178 155 15쪽
62 하트의 반(VAN) - 1-61. +7 13.09.06 4,361 157 14쪽
61 하트의 반(VAN) - 1-60. +2 13.09.04 4,287 170 17쪽
60 하트의 반(VAN) - 1-59. +17 13.09.02 7,252 160 23쪽
59 하트의 반(VAN) - 1-58. +21 13.08.30 4,646 158 21쪽
58 하트의 반(VAN) - 1-57. +9 13.08.28 4,058 150 12쪽
57 하트의 반(VAN) - 1-56. +33 13.08.26 4,737 153 17쪽
56 하트의 반(VAN) - 1-55. +13 13.08.23 5,020 168 16쪽
55 하트의 반(VAN) - 1-54. +10 13.08.21 7,901 168 19쪽
54 하트의 반(VAN) - 1-53. +7 13.08.19 5,245 160 11쪽
53 하트의 반(VAN) - 1-52. +5 13.08.16 6,038 157 10쪽
52 하트의 반(VAN) - 1-51. +5 13.08.15 5,375 165 16쪽
51 하트의 반(VAN) - 1-50. +16 13.08.12 6,527 179 15쪽
50 하트의 반(VAN) - 1-49. +7 13.08.10 6,229 168 18쪽
49 하트의 반(VAN) - 1-48. +4 13.08.08 5,734 165 22쪽
48 하트의 반(VAN) - 1-47. +15 13.08.06 5,212 161 16쪽
47 하트의 반(VAN) - 1-46. +8 13.08.05 4,831 168 12쪽
46 하트의 반(VAN) - 1-45. +7 13.08.02 5,132 172 11쪽
45 하트의 반(VAN) - 1-44. +6 13.08.01 4,774 166 9쪽
44 하트의 반(VAN) - 1-43. +9 13.07.29 5,468 169 15쪽
43 하트의 반(VAN) - 1-42. +8 13.07.25 5,012 179 12쪽
42 하트의 반(VAN) - 1-41. +11 13.07.22 4,801 171 16쪽
41 하트의 반(VAN) - 1-40. +6 13.07.18 5,177 180 18쪽
40 하트의 반(VAN) - 1-39. +4 13.07.15 4,726 186 22쪽
39 하트의 반(VAN) - 1-38. +9 13.07.11 6,738 166 13쪽
38 하트의 반(VAN) - 1-37. +13 13.07.08 5,223 165 19쪽
37 하트의 반(VAN) - 1-36. +2 13.07.05 6,458 170 24쪽
36 하트의 반(VAN) - 1-35. +6 13.07.01 6,040 164 17쪽
35 하트의 반(VAN) - 1-34. +25 13.06.13 5,893 181 11쪽
34 하트의 반(VAN) - 1-33. +5 13.06.10 8,205 191 21쪽
33 하트의 반(VAN) - 1-32. +9 13.06.06 6,924 166 17쪽
32 하트의 반(VAN) - 1-31. +3 13.06.03 6,940 178 17쪽
31 하트의 반(VAN) - 1-30. +13 13.05.31 8,834 188 26쪽
» 하트의 반(VAN) - 1-29. +17 13.05.27 7,427 196 19쪽
29 하트의 반(VAN) - 1-28. +7 13.05.23 7,359 181 12쪽
28 하트의 반(VAN) - 1-27. +10 13.05.20 8,233 176 19쪽
27 하트의 반(VAN) - 1-26. +3 13.05.16 8,544 181 13쪽
26 하트의 반(VAN) - 1-25. +3 13.05.14 8,319 184 27쪽
25 하트의 반(VAN) - 1-24. +15 13.05.09 8,367 232 24쪽
24 하트의 반(VAN) - 1-23. +7 13.05.03 10,464 289 25쪽
23 하트의 반(VAN) - 1-22. +9 13.04.29 9,083 201 21쪽
22 하트의 반(VAN) - 1-21. +1 13.04.25 8,406 209 12쪽
21 하트의 반(VAN) - 1-20. +9 13.04.21 9,478 215 21쪽
20 하트의 반(VAN) - 1-19. +29 13.04.07 9,110 242 19쪽
19 하트의 반(VAN) - 1-18. +10 13.04.04 8,447 220 24쪽
18 하트의 반(VAN) - 1-17. +7 13.04.02 8,158 209 21쪽
17 하트의 반(VAN) - 1-16. +7 13.03.28 9,018 197 15쪽
16 하트의 반(VAN) - 1-15. +6 13.03.25 10,205 200 15쪽
15 하트의 반(VAN) - 1-14. +6 13.03.21 8,954 223 24쪽
14 하트의 반(VAN) - 1-13. +7 13.03.17 9,494 228 12쪽
13 하트의 반(VAN) - 1-12. +8 13.03.11 9,217 222 16쪽
12 하트의 반(VAN) - 1-11. +6 13.03.07 9,542 230 16쪽
11 하트의 반(VAN) - 1-10. +6 13.03.04 10,136 251 18쪽
10 하트의 반(VAN) - 1-9. +2 13.02.28 10,107 235 19쪽
9 하트의 반(VAN) - 1-8. +6 13.02.26 10,645 256 14쪽
8 하트의 반(VAN) - 1-7. +6 13.02.25 11,243 271 15쪽
7 하트의 반(VAN) - 1-6. +19 13.02.21 11,296 282 16쪽
6 하트의 반(VAN) - 1-5. +14 13.02.19 13,170 277 20쪽
5 하트의 반(VAN) - 1-4. +13 13.02.17 14,300 330 15쪽
4 하트의 반(VAN) - 1-3. +9 13.02.17 15,197 327 13쪽
3 하트의 반(VAN) - 1-2. +15 13.02.11 16,471 350 13쪽
2 하트의 반(VAN) - 1-1. +15 13.02.10 21,876 403 12쪽
1 하트의 반(VAN) - 0. +15 13.02.04 29,032 44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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