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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k 님의 서재입니다.

하트의 반(VAN)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명인k
작품등록일 :
2013.02.04 17:06
최근연재일 :
2019.02.10 23:08
연재수 :
298 회
조회수 :
979,689
추천수 :
28,216
글자수 :
2,269,960

작성
13.04.29 21:47
조회
9,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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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글자
21쪽

하트의 반(VAN) - 1-22.

DUMMY

숲은 마을 뒤에서 시작해 끝도 없이 뻗어 있다. 엘리어트는 이미 숲의 여러 곳을 가봤지만 그 이상 넓은 곳이 많았다.


“익숙한 곳은 재미가 없으니..”

숲의 입구로 들어온 락터드는 나무 위로 올라가 눈으로 가늠할 수 있는 범위에서 숲의 대략적인 외형을 파악하고 있었다. 옆 가지에 올라와 있는 엘리어트를 향해 그는 말했다.

“일단 돌아다녀볼까? 뭐가 있는지 확인 좀 해보게.”

말을 하며 락터드는 어깨를 풀 듯이 팔을 좌우로 돌렸다.

“날쌘 편이니 빨리 가도 되겠지?”

“네?”

“쫓아와라.”

머리 위의 가지를 손으로 잡으며 락터드는 등을 뒤로 활처럼 뺐다.

“무리하지는 말고.”

반동을 이용해 그가 반대쪽 나무 가지 위로 뛰어 넘었다.


엘리어트는 한 번에 나무 반대쪽으로 뛰어 넘어가는 그를 쳐다보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는 평소 충분히 건너 갈 수 있는 너비기는 했지만 저런 짓은 해 본 적 없다.

“뭐하니?”

이쪽을 향해 락터드가 말하자 숨을 한 번 고르고는 엘리어트는 그 자리에서 락터드가 있는 쪽으로 뛰어 넘었다.



이전에 돌아다녔던 곳을 벗어나 엘리어트로도 처음 와 보는 숲의 어느 곳까지 도달하자 이미 마을에서는 상당히 멀리까지 떨어져 나와 있었다. 사람 손이 닿지 않은 곳이어선지 처음 보는 종류의 나무들과 식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건너 뛰면서 락터드는 살짝 뒤를 보았다. 엘리어트는 그와 대 여섯 그루쯤 뒤에 있는 나무에 있다. 처음보다 뒤처지긴 했지만 생각보다 잘 따라오고 있었다.


수풀이 우거지고 나무들이 가지를 겹친 채 무성하게 자라 엉켜 있는 곳이 나오자 나무를 뛰어 넘는 것을 멈추고 락터드는 눈 앞을 막고 있는 길다란 잎사귀를 겉어냈다. 크고 작은 풀들이 무성해 발 딛을 틈도 없는 아래를 발견한 그는 바닥을 확인하고는 거기서 아래로 내려갔다.


허리까지 오는 풀들이 무성했고 그 사이에 키가 작은 풀들이 드문드문 다시 섞여 있었다. 수풀을 헤치고 걷다가 멈춰서서는 락터드는 그 중 하나를 뜯어 손으로 문질러 보았다.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할 수 있니?”

뒤이어 따라 내려 온 엘리어트를 향해 그가 물었다.

“대충이요.”

아버지가 알려 준 종류도 있고 함부로 먹었다가 몇 번 복통을 일으킨 경험도 있어 엘리어트도 숲에 있는 것 중 독초는 대략 구분할 줄 알았다.

“알아두면 유용한 종류도 몇 개 보이는구나.”

상처에 바르면 유용한 풀과 마비 효과가 있는 독초도 눈에 띄었다.

“여긴 나중에 약초 공부를 할 때 오면 되겠다.”

혼자말로 중얼거리고는 락터드는 다시 나무에 손을 댔다.

“다시 가볼까.”

일단 오늘은 숲 전체를 파악하는 게 목표였으니 여기 계속 있을 필요는 없었다. 락터드가 나무 위로 오르자 곧 엘리어트도 그 뒤를 쫓아갔다.



약초를 발견한 장소를 기점으로 방향을 틀어 계속 가다보니 지난 번 암반 지대 입구까지 오게 됐다. 연속성이 끊기는 나무까지 뛰어 넘어와서 락터드는 또 멈추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창을 든 성의 병사 몇 명과 인부들 그리고 기사들이 움직이고 있는 게 보였다. 그 가운데 베사리우스 경도 있었다.

“무슨 일인지 잠깐 보고 가자.”

그쪽을 쳐다보며 락터드는 이제 막 이쪽 나무까지 따라온 엘리어트에게 말했다.



방금 전 지도에 표시된 곳을 확인하고 온 병사들에게 들은 숲의 상황을 적으며 베사리우스는 심각한 얼굴로 지도를 보고 있었다.

“베사리우스 경.”

지도와 실제 숲의 상황이 차이가 많은 곳을 유심히 보고 있는데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락터드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락터드 경.”

“무슨 일 있습니까?”

병사들이 숲 여기저기를 확인하고 있는 것을 보며 락터드는 물었다.

"웬 병사들입니까?"

“이쪽으로 길을 낼 계획이어서요.”

갑자기 나타난 게 뜻밖일 법 했지만 별로 놀라지 않은 기색으로 베사리우스가 말했다.

“경께선 여기 웬 일이십니까?”

“숲을 좀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락터드는 병사들이 움직이고 있는 주변을 보았다.

“숲을 이용할 한 방편 인가보군요.”

지난 번에 카이렌에게 들었던 얘기를 떠올리며 그가 말했다.

“네.”

들고있던 지도를 반으로 접으며 베사리우스는 팔을 내렸다.

“숲을 심하게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길을 낼 예정인데, 표시된 내용과 실제가 좀 차이가 있어서 골치가 좀 아픕니다.”

실제로 꽤 머리가 아프다는 얼굴이었다.

“길을 내는 거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이 숲을 다 확인하려면, 거기서 시간을 좀 잡아먹을 것 같아서.”

“어디로 이어지는 겁니까?”

“웨번입니다.”

윌더른에서 큰 마을로 가려면 꼭 이웃 마을로 나가야 했는데 이쪽으로 길을 내면 돌아가지 않고 이동할 수 있다.

“웨번이면 헬렌까지도 가까워 지겠군요.”

“그렇죠.”

오니트 영주는 헬렌과 작물 거래를 한다.

“도와드릴까요?”

잠깐 생각하며 락터드는 말했다.

“지도와 다른 곳을 파악하는 게 급선무면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이요? 그래주신다면 저야 감사하죠.”

마침 잘됐단 얼굴로 베사리우스가 대꾸했다.




엘리어트는 위로 높이 솟아있는 깍아지른 듯한 절벽을 올려다 보았다. 아래에서 보니 그 높이가 더 장대했다. 락터드나 카이렌이나 지난 번에 힘들이지 않고 어떻게 저런 곳에서 내려왔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뭘 보고 있니?”

락터드가 그에게 다가왔다.

“이쪽으로 길을 낸다는 구나.”

주변을 둘러보며 그는 말했다.

“뭐부터 할까 했는데 할 일이 좀 생긴 것 같다.”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는 엘리어트를 향해 락터드는 다시 말했다.

“해가 지는구나.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

예의 태평한 기색으로 말을 하며 그가 다시 나무 위로 올랐다. 뒤에 있던 엘리어트 역시 그를 쫓아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 숲이 수련 장소야?”

오후 내내 락터드와 숲에 있다가 돌아오니 데비가 빵집에 와 있었다. 옷자락으로 뺨을 문지르며 뒷마당에 나 있는 수도 앞으로 가는 엘리어트를 데비가 따라갔다.

“위험하지 않아? 지난 번에 그런 곳도 많다며?”

“위치만 알고 있으면 괜찮아.”

수도를 열어 엘리어트는 들통에 물을 받았다.

“들짐승도 많잖아.”

“그야.. 그래도 이쪽에서 자극하지 않으면 먼저 공격하는 건 드무니까.”

“드문 게 주로 위험한 거 같은데. 사자나 호랑이가 덤비는 데 무슨 수로 이겨?”

그 말에 엘리어트가 무심코 피식했다.

“그런 건 없어. 곰은, 있지만..”

“곰이 제일 무서워.”

데비는 어깨를 으쓱하며 눈을 조금 위로 떴다.

“어쨌든 폐쇄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인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조심해 엘리어트.”

들통에 손을 담그는 엘리어트를 향해 그녀가 다시 말했다.






별 다른 일 없이 첫 주가 지나갔다. 그 다음 주가 되자 해야 할 일이 조금 늘어났긴 했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아침에 빵집에 가서 락터드와 데이먼을 돕고 점심 식사를 한 뒤 엘리어트는 락터드가 시킨대로 지도에 표시된 곳과 다른 곳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숲 여기 저기를 돌아다녔다. 반 정도는 락터드와 동행했고 웬만큼 괜찮은 곳은 혼자 다니기도 했다.


엘리어트가 숲을 확인하는 동안 빵집에도 변화가 있었다. 밖에서 삐거덕거리던 빵집 간판 대신 포도주가 표시된 나무 간판이 새로 내걸렸다. 거래하는 농장과 아는 사이었는지 당분간 그곳에서 받아온 포도주를 숙성시켜 판매를 할 거라고 했다. 아직 시험삼아 해보는 거라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 데이먼은 말했다.

며칠 뒤 다른 마을에 있는 포도 농장에서 담은 포도주통이 가게 지하 창고로 내려왔다. 숙성 될 때까지 몇 달 기다려야 했으니 그럴거면 가게 간판은 너무 빨리 바꾼 거 아니냐면서 락터드가 핀잔을 주는 것을 들었다. 일종의 선전을 위해서라고 투덜거리며 데이먼이 응수했지만 그 말과는 달리 가게에 찾아오는 사람은 여전히 없었다.



나무가 끝나는 곳까지 건너와 엘리어트는 주변을 둘러 보았다. 얕고 작은 늪지가 여기저기 여러 개 형성되어 있었다. 지도상에는 늪지 표시가 없다. 나뭇가지에 자리잡고 앉아 그는 주머니에서 지도와 목탄을 꺼냈다. 지도 보는 법과 그리는 법을 배우고 그러면서 며칠 동안 그것을 실제와 일일이 비교하다보니 지도 보는 법을 꽤 잘 익히 되었다. 특히 지도에서 표시된 거리가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줄 알게 되었다. 목탄을 입에 물고 엘리어트는 제대로 표시했는지 지도와 실제를 다시 한 번 비교했다.

대략 정확히 표시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지도를 접어들며 엘리어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날이 밝긴 했지만 혼자 돌아다닐 때는 반드시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오라고 했기 때문에 오늘은 이 이상 가보지는 못할 것 같았다. 지도와 목탄을 주머니에 집어 넣고 빵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엘리어트는 몸을 돌렸다.











부엌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레사는 데비가 부엌 한 쪽에서 열심히 뭔가를 만들고 있는 걸 보았다.

“뭐하세요?”

“버섯 수프 좀 만들려고.”

“기버 할아버지 갔다 드리게요?”

“응.”

대꾸하며 데비는 커다란 놋쇠 냄비 안에 잘게 썰은 버섯을 한움큼 집어 넣었다. 나이가 많은 정원사 기버 영감이 이제 기력이 쇠했는지 요즘 도통 기운이 없어 보였다. 버섯을 좋아하는 영감에게 데비는 가끔씩 음식을 만들어 가져가곤 했다.


성안 사람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부엌은 본관에 있었고 이곳은 좀 떨어진 별관의 작은 부엌이었다. 레사나 식재료를 손질하는 하인들 몇 명만 여기를 드나들지 사람이 많이 오가는데가 아니라 데비는 필요할 때 가끔 여기 와서 요리를 만들었다.

“맛 좀 봐.”

국자를 들어 올리며 데비는 말했다. 손재주가 좋은 그녀는 요리도 곧잘 했다.

“맛있어요.”

보지도 않고 하는 소리에 그녀가 찡그렸다.

“먹어 보지도 않고?”

“아가씨 요리 한 두 번인가요 뭐. 맛있어요 맛있어.”


대충 대꾸하고는 레사는 양 팔에 잔뜩 들고온 완두콩대를 내려 놓으며 구석 한 쪽에 자리 잡고 앉아 완두콩을 까기 시작했다.

“벌써 가을이네요.”

콩을 까서 옆에 둔 놋쇠 그릇에 던져 넣으며 중년 아줌마같은 말투로 레사가 말했다.

“다들 바빠지겠어요.”

“응.”

건성으로 데비가 대꾸했다.

“그나저나 앤 아가씨도 결혼하면 이제 자주 못 오시게 되겠죠?”

아쉬운 듯 레사가 중얼거렸다.

“아가씨가 절 많이 도와주셨는데.”

목을 길게 빼 레사는 데비쪽으로 고개를 꺾었다.

“결혼하면 역시 수도로 가시겠죠?”

“몰라.”

대꾸하는 목소리가 별로 좋지 않게 들렸다.

“서운하세요?”

“서운하다기보다 마음에 안 들어서.”

“왜요?”

레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음에 안 드세요? 카이렌 나이더 님. 멋지시잖아요?”

“누가 뭐래?”

데비의 목소리는 계속 시큰둥했다.

“하지만 사귄지도 별로 안됐는데 청혼하고, 게다가 언니까지 그걸 받아들이다니 이해가 안 가서 그래.”

두 사람이 만나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달 전이었는데 최근 카이렌이 앤에게 청혼하여 급하게 혼사가 결정되었다.

“카이렌 님 아버님이신 나이더 자작께서 이제 집으로 돌아오시라고 하신다면서요.”


카이렌은 수도 근경 소영주국 라이버른 출신으로 오니트 남작과 절친한 나이더 자작의 뜻에 따라 오스티아에 와서 기사 수업을 받고 기사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작이 왕성에서 직책을 맡게 됨에 따라 아들을 다시 불러들인 상황이었다.

“이대로 라이버른으로 돌아가시면 그럼 앤 아가씨하고 떨어져 지내야 하는데...”

콩을 다 떨궈냈는지 확인하기 위해 콩대를 몇 번 털며 레사는 수다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러기 싫으니까 청혼하셨겠죠. 그 정도로 앤 아가씨한테 빠지신 거 아닐까요?”

양 뺨에 손을 얹어 레사가 부끄러운 듯 웃었다.

“부러워요 정말.”

“부럽긴 뭐가.”

신이 난 레사를 내버려 둔 채 데비가 한숨을 내쉬었다. 혼자말로 그녀가 중얼거렸다.

“아저씨가 룻사에만 가지 않았어도..”

사실 그녀는 내심 앤이 락터드와 잘 되길 바랬기 때문에 카이렌에 대해서는 살짝 심술이 나 있는 상태였다.

“뭐야 정말.”

생각을 하니 새삼 다시 심통이 났는지 데비는 국자를 세게 휘저었다. 그 모습을 이상하다는 듯 보다가 그냥 입을 다물고는 레사는 다시 완두콩 까기에 열중했다.


버섯 스프 만들기를 끝내고 접시에 예쁘게 담았다. 기버 할아버지에게 가져다 줄 것과 또 한 그릇은 엘리어트 몫이었다. 서고를 오가면서 엘리어트가 그녀가 만들어 놓은 새집 몇 개를 다시 나무 위에 올려 주었기 때문에 오늘 오면 감사의 뜻으로 대접할 생각이었다.

천으로 접시 위를 덮어 놓은 채 엘리어트가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부엌 문을 빠져 나와 데비는 샛길로 들어섰다. 별관 샛길에서 서고가 있는 탑은 중간에 연결되어 있는 쪽문을 통과하면 금방이었다.


서고로 갔으나 탑은 잠겨 있다. 이 시간에 없으면 오늘은 안 올수도 있었다.

‘안 오려나.’

굳게 닫힌 문을 다시 한 번 잡아 당겨 보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녀는 몸을 돌렸다.



다시 중간에 연결 되 있는 작은 쪽문을 밀고 나오는데 마침 성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오는 말 한 필이 보였다. 마중을 나왔는지 앤이 성문 안쪽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잠깐 자리에 서서 데비는 그쪽을 응시했다. 앤을 발견한 카이렌이 말에서 내려 그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두 사람이 마주서서 뭐라고 말을 한 뒤에 한 손에 말고삐를 쥔 카이렌과 앤이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카이렌이 진지한 얼굴로 무슨 말인가를 하고 앤은 조용히 미소를 띤 채 그 말을 듣고 있었다.


잠깐 서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다가 데비는 몸을 돌려 별관 부엌으로 다시 들어갔다. 레사의 말대로 카이렌과 결혼하면 앤은 수도로 떠난다. 수도에 가지 않더라도 어쨌든 결혼하면 이제 여기 자주 올 수는 없을 것이다. 물끄러미 접시를 내려다 보다가 고개를 한 번 세차게 흔들고는 그녀는 접시를 들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기버 할아버지는 마굿간 옆에 나 있는 작은 창고방에서 지냈다. 별관에 하인들이 거주하는 방들이 따로 있었는데 정원에서 가까운 쪽에 있는 게 일하기가 수월하다면서 굳이 따로 지내고 있었다.

접시를 들고 잰 걸음으로 걸어가다가 성벽 가장자리를 돌아가던 그녀는 마침 마굿간에서 나오는 사람을 못보고 옆에서 쿵하고 부딪쳤다. 서둘러 걷다 부딪치는 바람에 손을 놓쳐 들고 있던 접시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엎어졌다.


부딪친 이마에 손을 대며 데비는 바닥에 엎어진 접시를 쳐다보았다.

“아, 이런..”

그녀와 부딪친 뭔가가 소리를 냈다.

“괜찮아?”

데비는 고개를 들어 앞에 서 있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미안. 내가 미처 못 봐서.”

앤과 잠깐 얘기하고 난 뒤 마굿간에 말을 매어 두고 나오다 데비와 부딪친 카이렌은 접시가 바닥을 나뒹구는 것을 보고는 난감한 얼굴이 되고 있었다.

“어쩌지 이거.”

엎어진 접시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데비를 향해 난감한 얼굴로 그가 다시 말했다.


데비는 엎어진 접시를 보았다. 수프는 바닥에 쏟아져 흐르고 있다. 엘리어트에게도 주려고 했기 때문에 정성을 다해서 만든 거였다. 기버 할아버지한테도 꼭 오늘 전해 주고 싶었던 거였다.

“아저씨.”

낮게 그녀는 말했다.

“미워요.”

챙겨둔 버섯도 이제 없어서 다시 만들수도 없다.

“제 접시 엎은 것도. 앤 언니를 데려가는 것도..”

그녀는 카이렌을 노려 보았다.

“애초에 언니는 락터드 아저씨 좋아했는데.”

노려보며 하는 말에 카이렌은 좀 당황한 기색이 되었다.

"그래..?"

접시를 엎지른 것에 비해 소녀는 좀 과하게 화가 나있어 보였다. 게다가 가만보니 수프를 엎은 것보다 앤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 마지막 말을 하고 뭔가 대답을 요구하는 눈으로 그녀는 계속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초리에 잠시 망설이다가 카이렌은 말했다.

“그런데도 내 청혼을 받아준 거면, 고맙다고 생각해.”

머리를 긁적이며 그는 다시 말했다.

“접시 엎은 건 정말 미안하다. 보상할 방법이 없을까?”

“됐어요. 요리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샐쭉한 얼굴로 다시 접시로 시선을 돌리는 데비가 어쩐지 조금 울먹거리는 것 같아 카이렌은 더욱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애들을 대하는 건 그로서는 숲을 탐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난감한 기색으로 서 있는 그를 내버려 둔 채 데비는 몸을 숙여 떨어진 접시를 들어 올렸다.





“저녁 내내 어디 있었어?”

밤이 되자 데비의 방으로 들어온 앤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낮부터 성안에서 데비를 보지 못했다. 저녁 식사 후 카이렌이 성 안채에 따로 있는 기사들의 숙소로 돌아간 뒤 그녀도 본관으로 돌아왔다.

“나도 바빠.”

침대 위에 웅크려 앉아 있던 데비가 그녀는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러셔?”

찡그리며 웃고는 앤은 가져온 물병을 데비의 침대 옆에 내려 놓았다. 그 모습을 보다가 데비는 침대를 기어가 앤의 옆으로 다가갔다.

“정말 결혼하는 거야?”

그녀는 물었다.

“그래서 로안을 떠날거야?”

앤이 돌아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마.”

짧은 대답에 데비는 더욱 찡그렸다.

“마음에 안 들어.”

그녀가 중얼거렸다.

“락터드 아저씨랑 잘됐으면, 그랬으면 안 가도 됐잖아.”

그 말에 앤이 쳐다보자 데비는 못마땅한 듯 덧붙였다.

“나도 알아.”

앤이 쓴웃음을 지었다.

“알긴 네가 뭘 알아?”

“어리다고 눈치 없는 거 아냐.”

무릎을 감싸 안고 무릎에 턱을 대며 데비는 생각했다.

“오히려 눈치는 나이더 아저씨가 더 없어보여. 언니가 락터드 아저씨 좋아한다고 했더니 고맙다고나 하고. 그게 무슨 말이야 대체.”

시큰둥히 중얼대는 그녀를 앤은 잠시 쳐다보았다.

“카이렌한테 그런 말을 했어?”

“응.”

갑자기 좀 생각에 잠기는 얼굴을 하는 앤을 보고 데비는 물었다.

“무슨 생각해?”

앤은 그녀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손을 뻗어 그녀는 데비의 귀를 잡아 당겼다.

“쬐끄만게. 별 일에 다 끼어 들어.”

“아아, 아파.”

“또 그러면 혼나.”

찌푸리며 자신의 귀를 어루만지는 데비를 보며 앤은 침대 한 쪽에 걸터 앉았다. 다정한 얼굴로 그녀는 사촌 동생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여기 오스티아에, 락터드 경과 장래를 약속했던 분이 있으셨대.”

미간을 찌푸린 채 귀를 매만지고 있던 데비가 눈을 들었다.

“아저씨한테?”

앤은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셨대, 예전에.”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가끔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그리고 그렇게 변하지 않는 게 있다는 게 언니는 좋았어.”

잠시 앤은 말을 멈추었다. 데비의 말대로 그녀는 락터드에게 호감이 있었다. 그러나 또 말한 대로 그 마음을 발전시키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네가 생각하는 거랑은 좀 다른 의미로 그 분을 좋아하고 존경했어.”

밝은 얼굴로 앤은 말을 이었다.

“난 지금 카이렌을 사랑해. 거기엔 어떤 다른 뜻도 없어. 알겠니?”

데비는 그녀를 올려다보다가 뭔가 조금 생각하는 얼굴을 하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중얼거리는 소리에 앤이 조금 웃었다.

“그러니까 데비 너 괜히 카이렌한테 심술부리지 마.”

주의 주듯 그녀는 말했다.

“그는 너 같은 애들을 다루는 법을 잘 모르는 것 같으니까.”

“다루다니 뭘. 내가 말이야?”

작게 투덜대는 그녀를 보고 다시 좀 웃고는 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늦었어. 그만 자.”

여전히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 데비를 한 번 더 보고 램프에 불을 줄이고는 앤은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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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하트의 반(VAN) - 2-2 이에넨(5) +8 13.12.15 4,224 126 17쪽
83 하트의 반(VAN) - 2-2 이에넨(4) +1 13.12.12 3,850 130 12쪽
82 하트의 반(VAN) - 2-2 이에넨(3) +1 13.12.10 4,050 124 18쪽
81 하트의 반(VAN) - 2-2 이에넨(2) +5 13.12.08 4,211 126 11쪽
80 하트의 반(VAN) - 2-2 이에넨(1) +10 13.12.05 4,357 120 20쪽
79 하트의 반(VAN) - 2-1 헬렌(4) +9 13.12.03 4,322 118 15쪽
78 하트의 반(VAN) - 2-1 헬렌(3) +3 13.12.01 3,578 118 20쪽
77 하트의 반(VAN) - 2-1 헬렌(2) +12 13.11.28 3,832 111 17쪽
76 하트의 반(VAN) - 2-1 헬렌(1) +3 13.11.26 4,018 120 9쪽
75 하트의 반(VAN) - 2-0 엘소(2) +8 13.11.26 4,066 137 11쪽
74 하트의 반(VAN) - 2-0 엘소(1) +15 13.11.24 4,196 140 14쪽
73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5) +10 13.11.21 3,222 96 19쪽
72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4) +9 13.11.20 3,186 91 26쪽
71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3) +3 13.11.17 2,962 92 18쪽
70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2) +3 13.11.15 3,407 97 14쪽
69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1) +11 13.11.11 4,062 101 14쪽
68 하트의 반(VAN) - 1-67. +19 13.09.18 5,307 162 16쪽
67 하트의 반(VAN) - 1-66. +11 13.09.17 6,937 154 22쪽
66 하트의 반(VAN) - 1-65. +4 13.09.16 4,120 154 10쪽
65 하트의 반(VAN) - 1-64. +3 13.09.14 5,764 157 13쪽
64 하트의 반(VAN) - 1-63. +2 13.09.12 4,049 138 10쪽
63 하트의 반(VAN) - 1-62. +16 13.09.09 6,180 155 15쪽
62 하트의 반(VAN) - 1-61. +7 13.09.06 4,361 157 14쪽
61 하트의 반(VAN) - 1-60. +2 13.09.04 4,289 170 17쪽
60 하트의 반(VAN) - 1-59. +17 13.09.02 7,252 160 23쪽
59 하트의 반(VAN) - 1-58. +21 13.08.30 4,648 158 21쪽
58 하트의 반(VAN) - 1-57. +9 13.08.28 4,058 150 12쪽
57 하트의 반(VAN) - 1-56. +33 13.08.26 4,737 153 17쪽
56 하트의 반(VAN) - 1-55. +13 13.08.23 5,020 168 16쪽
55 하트의 반(VAN) - 1-54. +10 13.08.21 7,902 168 19쪽
54 하트의 반(VAN) - 1-53. +7 13.08.19 5,246 160 11쪽
53 하트의 반(VAN) - 1-52. +5 13.08.16 6,038 157 10쪽
52 하트의 반(VAN) - 1-51. +5 13.08.15 5,376 165 16쪽
51 하트의 반(VAN) - 1-50. +16 13.08.12 6,528 179 15쪽
50 하트의 반(VAN) - 1-49. +7 13.08.10 6,231 168 18쪽
49 하트의 반(VAN) - 1-48. +4 13.08.08 5,734 165 22쪽
48 하트의 반(VAN) - 1-47. +15 13.08.06 5,212 161 16쪽
47 하트의 반(VAN) - 1-46. +8 13.08.05 4,831 168 12쪽
46 하트의 반(VAN) - 1-45. +7 13.08.02 5,133 172 11쪽
45 하트의 반(VAN) - 1-44. +6 13.08.01 4,774 166 9쪽
44 하트의 반(VAN) - 1-43. +9 13.07.29 5,468 169 15쪽
43 하트의 반(VAN) - 1-42. +8 13.07.25 5,013 179 12쪽
42 하트의 반(VAN) - 1-41. +11 13.07.22 4,803 171 16쪽
41 하트의 반(VAN) - 1-40. +6 13.07.18 5,178 180 18쪽
40 하트의 반(VAN) - 1-39. +4 13.07.15 4,727 186 22쪽
39 하트의 반(VAN) - 1-38. +9 13.07.11 6,738 166 13쪽
38 하트의 반(VAN) - 1-37. +13 13.07.08 5,225 165 19쪽
37 하트의 반(VAN) - 1-36. +2 13.07.05 6,459 170 24쪽
36 하트의 반(VAN) - 1-35. +6 13.07.01 6,041 164 17쪽
35 하트의 반(VAN) - 1-34. +25 13.06.13 5,893 181 11쪽
34 하트의 반(VAN) - 1-33. +5 13.06.10 8,205 191 21쪽
33 하트의 반(VAN) - 1-32. +9 13.06.06 6,926 166 17쪽
32 하트의 반(VAN) - 1-31. +3 13.06.03 6,942 178 17쪽
31 하트의 반(VAN) - 1-30. +13 13.05.31 8,836 188 26쪽
30 하트의 반(VAN) - 1-29. +17 13.05.27 7,429 196 19쪽
29 하트의 반(VAN) - 1-28. +7 13.05.23 7,359 181 12쪽
28 하트의 반(VAN) - 1-27. +10 13.05.20 8,235 176 19쪽
27 하트의 반(VAN) - 1-26. +3 13.05.16 8,545 181 13쪽
26 하트의 반(VAN) - 1-25. +3 13.05.14 8,319 184 27쪽
25 하트의 반(VAN) - 1-24. +15 13.05.09 8,367 232 24쪽
24 하트의 반(VAN) - 1-23. +7 13.05.03 10,464 289 25쪽
» 하트의 반(VAN) - 1-22. +9 13.04.29 9,084 201 21쪽
22 하트의 반(VAN) - 1-21. +1 13.04.25 8,406 209 12쪽
21 하트의 반(VAN) - 1-20. +9 13.04.21 9,478 215 21쪽
20 하트의 반(VAN) - 1-19. +29 13.04.07 9,110 242 19쪽
19 하트의 반(VAN) - 1-18. +10 13.04.04 8,448 220 24쪽
18 하트의 반(VAN) - 1-17. +7 13.04.02 8,160 209 21쪽
17 하트의 반(VAN) - 1-16. +7 13.03.28 9,020 197 15쪽
16 하트의 반(VAN) - 1-15. +6 13.03.25 10,206 200 15쪽
15 하트의 반(VAN) - 1-14. +6 13.03.21 8,955 223 24쪽
14 하트의 반(VAN) - 1-13. +7 13.03.17 9,495 228 12쪽
13 하트의 반(VAN) - 1-12. +8 13.03.11 9,218 222 16쪽
12 하트의 반(VAN) - 1-11. +6 13.03.07 9,542 230 16쪽
11 하트의 반(VAN) - 1-10. +6 13.03.04 10,136 251 18쪽
10 하트의 반(VAN) - 1-9. +2 13.02.28 10,107 235 19쪽
9 하트의 반(VAN) - 1-8. +6 13.02.26 10,646 256 14쪽
8 하트의 반(VAN) - 1-7. +6 13.02.25 11,245 271 15쪽
7 하트의 반(VAN) - 1-6. +19 13.02.21 11,296 282 16쪽
6 하트의 반(VAN) - 1-5. +14 13.02.19 13,172 277 20쪽
5 하트의 반(VAN) - 1-4. +13 13.02.17 14,301 330 15쪽
4 하트의 반(VAN) - 1-3. +9 13.02.17 15,198 327 13쪽
3 하트의 반(VAN) - 1-2. +15 13.02.11 16,472 350 13쪽
2 하트의 반(VAN) - 1-1. +15 13.02.10 21,877 403 12쪽
1 하트의 반(VAN) - 0. +15 13.02.04 29,032 44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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