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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k 님의 서재입니다.

하트의 반(VAN)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명인k
작품등록일 :
2013.02.04 17:06
최근연재일 :
2019.02.10 23:08
연재수 :
298 회
조회수 :
979,524
추천수 :
28,216
글자수 :
2,269,960

작성
13.04.07 20:33
조회
9,109
추천
242
글자
19쪽

하트의 반(VAN) - 1-19.

DUMMY

대회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을 일으키는 성인부 시합과 그보다는 못하지만 나름 인기가 있는 소년부 시합이 계속된 지 반나절이 지났다. 정오가 훨씬 지나 이제 마지막 준결승과 결승전만을 각각 남겨놓은 채 대회는 막바지로 치닫았다.




락터드는 준결승 시합이 시작되는 단상 위를 보고 있었다.


첫 시합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소년은 그다지 큰 차이로 상대를 이기지는 않았지만 시합이 계속되어 더 강한 상대가 나타날수록 조금씩 실력을 드러냈고 그것은 아직 끝이 아니었다.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인가 체력을 아끼려는 전략인가. 어느 쪽인지에 따라 소년의 성품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아마 둘 다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락터드는 준결승이 진행되고 있는 단상 위를 응시했다.




조금 거친 숨을 내쉬며 엘리어트는 상대의 공격에 주의를 기울였다. 예상치 못한 공격을 당해서 망설이긴 했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빠르진 않다. 충분히 따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는 상대에게 집중했다.



히스 리보크는 자신의 특기인 측면 찌르기에도 당황하지 않고 받아 치는 엘리어트의 모습에 약이 올랐다. 자기보다 덩치도 작고 나이도 어린 녀석이었다. 더구나 기사 수업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다. 그런데도 도저히 공격이 먹혀들지가 않았다.

바로 달려드는 엘리어트의 공격을 피하려고 물러서다가 발을 헛딛고 뒤로 넘어지면서 그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다행히 검을 떨어뜨리진 않았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는 엘리어트를 올려다보았다.


몇 발 뒤에 서서 엘리어트는 자신이 일어나길 기다려주고 있었다. 분한 마음이 솟구쳐 올랐다. 검은 든 손에 모래를 같이 움켜쥐고는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바로 엘리어트에게 덤벼들면서 손을 흩뿌렸다. 멈칫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수업 한 번 받지 않은 평민 따위에게 지고 싶진 않다. 목검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며 히스는 엘리어트를 향해 다시 달려 들었다.




락터드는 다시 일어난 소년의 손에서 뿌려지는 뭔가 때문에 엘리어트가 순간적으로 머뭇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이제 됐다고 생각했는지 상대는 조금 방심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저 아이는 아마 공격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의 경기에서 락터드는 눈을 떼지 않았다.




모래와 눈물 때문에 한 쪽 눈을 뜨기가 어려웠지만 상대의 움직임은 파악할 수 있었다. 히스가 자신에게 달려들며 공격을 가했으나 엘리어트의 검이 그 검을 전부 막아내었다. 엘리어트는 좀 희미하지만 히스의 움직임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고 얼마든지 반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쯤은 문제없다.


공격이 먹히지 않자 한 발 뒤로 물러났던 히스는 엘리어트가 가만히 있자 다시 한 번 그에게 달려 들었다. 엘리어트의 목검과 그의 목검이 부딪쳤다. 자신보다 덩치도 작은 녀석인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밀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봐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엘리어트는 태연했다.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반칙까지 했는데 도저히 물러서질 않는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자 히스는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이기면 결승전에서 니겔과 만나게 된다. 몇 달 동안 매일같이 검술 연습을 해댄 것은 모두 그 재수없는 니겔을 쓰러뜨리기 위해서였다. 죽을 힘을 다하며 그는 다시 엘리어트에게 덤볐다.



히스의 검을 막아 내던 엘리어트는 잠깐 머뭇했다. 순간 히스의 얼굴이 뚜렷하게 보였다. 절대로 지지 않으려는 듯 아니 질 수 없다는 듯 그는 정말 사력을 다해 시합을 하고 있다. 그것을 본 순간 엘리어트는 갑자기 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저렇게까지 절실히 이기고 싶은 걸까. 비틀거리며 여전히 히스가 자신에게 덤벼들었고 엘리어트 역시 계속 공격을 막아 내었다.


엘리어트는, 역시 지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 자신에게 공격을 하고 있는 히스만큼은 아니었고 그러한 히스의 기색은 어쩐지 지고 싶지 않다는 자신의 의욕을 좀 꺾이게 만들고 있었다.


한 순간 검을 든 엘리어트의 손이 좀 느려지는 느낌에 이를 악물고 히스가 그에게 덤벼들었다. 엘리어트가 넘어지며 손에서 검을 놓쳤다. 떨어진 검이 바닥을 굴러가는 소리를 들으며 히스는 넘어진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히스 리보크. 결승 진출!”

사회자의 선언에 히스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됐어....!”

양 손을 불끈 움켜 쥐던 그는 문득 바닥에 넘어져 있는 엘리어트를 힐끔 쳐다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는 한 손으로 옷에 묻은 흙은 툭툭 털어내고 있었다. 자신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가 이쪽을 쳐다보자 움찔거리며 히스는 고개를 돌렸다. 어쨌든 이겼고 이걸로 니겔과 싸울 수 있다. 그 사실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히스는 애써 그 시선을 외면했다.





관중석에서, 락터드는 의아한 눈으로 단상 위를 보고 있었다. 분명히 반격할 거라고 생각했다. 실력을 보아도 그러했지만 조금 전까지 시합을 하던 소년의 기색으로 보아도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승자를 가리는 사회자의 선언이 끝나자 소년은 천천히 단상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어느새 평소의 기색으로 돌아온 소년을 보며 어려운 문제라도 만난 듯 락터드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별수 없다는 듯 미소 지었다.

“이거 참.”

여전히 소년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혼자말로 그가 중얼거렸다.

“엘리어트 네쉬라..”

그의 시선이 여전히 시합장 밖으로 나가고 있는 소년의 뒷모습을 향하고 있었다.






“소년부 결승전 시작합니다.”

울려 퍼지는 함성을 뒤로 하며 사람들 틈을 겨우 헤치고 빠져나와 시합장 밖에서 데비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어디 갔지?’

걸음을 옮기며 엘리어트를 찾아 그녀는 광장 쪽으로 걸어갔다.









관중석에서 밖으로 나간 락터드는 광장 가장자리에 있는 개수대 아래 몸을 숙인 채 서 있는 소년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손에 묻은 흙을 털어내던 소년은 마침 지나가던 고양이가 그를 향해 다가오자 손을 뻗어 고양이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아깝게 됐구나.”

머리위에서 날아온 목소리에 엘리어트는 고개를 들었다. 고양이는 그가 손을 멈추자 힐끔 그를 올려다보더니 이내 흥미를 잃고는 어슬렁거리며 걸어갔다. 옆으로 걸어온 남자를 보다가 엘리어트는 수도를 돌렸다. 세찬 물줄기가 바닥으로 쏟아졌다.


“왜 말하지 않았니?”

물줄기에 손을 대는 그를 보며 락터드는 물었다.

“반칙 말이다. 말했으면 지지 않았을 텐데.”

그 말에 엘리어트의 시선이 잠깐 그를 향했다.

“별로, 이기고 싶지 않았어요.”

짧게 대답하고 고개를 돌리며 그는 손으로 물을 받았다.

“그래?”

락터드는 생각을 떠올렸다.

“전 시합까지만 해도 넌 이길 생각인 것 같던데..”


얼굴을 닦아내는 그를 향해 락터드는 다시 물었다.

“검은 누구한테 배운 거냐?”

담담한 음성이었다.

“너도 여기 학원에 다니고 있니?”

“학원 같은 데 가본 적 없어요.”

물을 받으며 엘리어트는 말했다.

“예전에 아버지한테...”

차가운 물이 손을 넘쳐 바닥으로 떨어졌다.

“잠깐이지만요.”

연거푸 물을 끼얹고는 떨어져 내리는 물을 응시하며 그는 얼굴에서 흘러 내리는 물을 훔쳐냈다.

“잠깐인 것 치곤 실력이 좋더구나.”


곰곰이 생각하는 얼굴로 말을 하다가 락터드는 수도를 잠그고 있는 엘리어트를 잠깐 보았다. 잠시 후 그가 조금 미소를 지었다.

“어떠냐?”

락터드는 말했다.

“그럼 나머진 나한테 배워보지 않겠니?”

수도를 돌리던 엘리어트의 손이 멈췄다. 고개를 들어 그는 락터드를 올려다보았다. 곤란한 얼굴로 남자는 손가락으로 턱을 긁적이고 있었다.

“누굴 가르쳐 본 적이 없어서 아직 자신은 없지만 말이다.”


말을 하며 락터드는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소년의 대답을 잠시 기다리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한 번 생각 해 보렴.”

말을 하고 몸을 돌리는 그를 엘리어트는 보고만 있었다.

“왜요?”

그러다가 입을 열었다.

“왜 저를 가르치시겠단 건데요?”

락터드가 다시 돌아섰다. 자신을 보는 소년의 눈동자가 진지했다.

“그냥 그러고 싶단 마음이 들었다.”


미소 띤 얼굴로 락터드는 말했다.

“너도 심각하게 생각 안 해도 된다. 검에 대해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오라는 거니까. 아, 물론 시작한다면 쉽지 않을 거란 각오는 해야겠지만 말이야.”


엘리어트는 자신을 향해 말을 잇는 그를 물끄러미 보았다.

“아마 난 하루 이틀은 이스릴 성에 있을 거다. 그러니 생각이 결정되면 그곳으로 오렴.”


말을 마치고 락터드는 몸을 돌렸다. 엘리어트는 그가 발을 돌려 왔던 길로 걸어갈 때까지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완전히 사라지자 엘리어트는 얼굴에서 아직 턱으로 흘러내리던 물방울을 쓱 한 번 문질러 내며 눈을 내리 떴다. 이제 그가 한 말이 와 닿았는지 예상치 못한 말에 그 표정에 그제서야 살짝 동요하는 기색이 일고 있었다.






수도가에서 나와 다시 광장 안으로 들어오는데 광장 한 가운데 있는 조각상 앞에 걸터앉아 있던 데비가 걸어 오는 엘리어트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져서 속상해?”

엘리어트가 앞으로 걸어오자 데비가 곧장 물었다.

“화났어?”

엘리어트는 그녀를 만나면 가끔 듣게 되는 거두절미한 질문에 잠시 있다가 곧 대꾸했다.

“별로 난, 상관없어.”

데비는 미소를 지었다. 엘리어트가 언제나 솔직하고 가식 없이 자신의 말에 대답해 주고 있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좀 있으면 강가에서 불꽃놀이를 한대.”

싱긋 웃으며 그녀는 말했다.

“보러 가자.”

엘리어트가 망설이자 데비는 그의 팔을 잡고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응? 가자 엘리어트.”

앞으로 잡아 끄는 손에 이끌려 엘리어트가 걸음을 뗐다.















아침이 되자 엘리어트는 눈을 떴다. 어제 밤 깜박 잊고 창문을 닫지 않았다. 창문을 통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그는 잠깐 창쪽을 응시했다. 그리고 창을 통해 안으로 불어 들어오는 가벼운 바람을 느끼면서 잠시 가만히 있었다.


어떻게 하고 싶냐면, 잘 모르겠다. 남자는 영주를 구한 적이 있는 기사라고 했다. 그런 사람에게 배운다는 건 역시 기사의 수업이라는 뜻일 것이다. 기사 수업을 받는다는 건, 기사가 된다는 건 엘리어트로서는 한 번도 생각 못해본 일이었다.


하지만 기사에 대한 건 역시 모르겠지만 검에 대해서라면..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는 검에 대해 배우고 싶다면 오라고 했다.

시합 때 자신은 어땠나. 사실은 재밌었다. 이기는 것도, 좋았고. 그럼 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

조금 더 창밖을 보고 있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엘리어트는 바닥으로 내려섰다.









“축제도 좋지만 뒤처리가 더 문제라니까.”

아침 일찍 밖으로 나온 버네드는 이틀간의 축제 뒤에 길가에 온통 떨어져 있는 축제 잔유물을 보며 찡그렸다.

“으... 귀찮아.”

투덜거리며 그는 상자에 폭죽의 잔유물을 담아 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침 길 아래에서 시장을 가로질러 걸어오고 있는 사람을 알아보고는 손을 멈추었다. 가게 안쪽을 향해 천둥같은 목소리로 그가 소리쳤다.

“이봐, 크란! 당장 나와 봐!”

버네드는 앞을 지나가는 엘리어트를 향해 말을 건냈다.

“야, 꼬마야.”

그가 말을 걸자 엘리어트가 멈춰서서 버네드를 올려다 보았다.

“어이! 뭐해? 안 나와?!”

고개를 돌리며 버네드 씨가 또 안을 향해 소리쳤다. 무슨 일인가 해서 밖으로 뛰어 나온 잡화상 주인 크란은 가게 앞 길가에 서 있는 엘리어트를 보고는 자리에 섰다. 그런 그를 향해 버네드가 퉁명스럽게 말을 했다.

“뭐하고 있어? 얘한테 할 말 있잖아.”


어딘지 껄끄러운 기색으로 문 앞에 어정쩡하게 서 있던 크란은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 모습에 잡화상 주인보다 더 인상을 쓰며 버네드가 그를 앞으로 툭 밀쳤다. 얼결에 한 발 앞으로 나온 그는 여전히 껄끄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가 엘리어트를 향해 내키지 않은 어조로 입을 열었다.

“예전에 그 돈, 찾았다.”

빤히 이쪽을 보는 시선에 조금 눈을 피한 채 그가 대충 말을 흐렸다.

“어디서 찾았는지도 말해야지.”

등 뒤에서 몰아부치는 버네드의 기세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어쩔 수 없었는지 크란이 다시 말했다.

“가게 안에서...”

축제 전에 열 달 만에 가게 대청소를 하다가 서랍 뒤에 끼어 있는 돈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가 또 입을 다물자 버네드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리고오?!”

“아, 뭘?!”

붉어진 얼굴로 크란도 목소리를 높였다.

“더 이상 뭘 말하라고?! 난 할 말 다 했어. 그리고 너 우리 가게 다시 오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라.”

몸을 휙 돌리며 가게 안으로 성큼 다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버네드는 눈살을 찌푸렸다.

“며칠 전에 가게 대청소하다 찾더라.”

못마땅한 듯 그는 말했다.

“마침 내가 옆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님 그대로 입 다물고 있었을 거야”

가게 안으로 뒤뚱거리며 들어가는 크란을 보던 엘리어트가 입을 열었다.

“고맙습니다.”

그가 말하자 버네드가 소년을 쳐다봤다.

“버네드 씨.”

조용한 목소리만큼 차분한 눈동자를 보며 버네드는 미간을 찡그렸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어린 녀석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법을 알고 있다. 그 만큼 많은 일을 겪었단 뜻이란 걸 느낄 때마다 버네드는 왠지 모르게 못마땅한 기분이 들었다.


“그냥 사실을 전해준거야.”

그래서인지 항상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나왔다. 크란이 들어간 가게 안쪽으로 시선을 주며 그가 말을 이었다.

“나중에 저 녀석 가게에나 한 번 가봐라. 잣이나 호두를 너한텐 싸게 주겠다고 했으니까.”

대충 넘어가려는 크란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 댔던 것을 떠올리며 그가 말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그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 말이다. 그러지 않아도 내 좀 만나려고 했다.”

내키지 않는 말인 듯 버네드는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이번에 공사장 일 관두고 제재소를 열게 됐다. 좋은 목재가 필요한데 너 피어드 영감한테 목재 대줬지?”

그는 말했다.

“그러지 말고 우리 가게와 거래하는 건 어떠냐.”

대답 없이 엘리어트가 가만히 있자 그는 한 발 더 가까이 나왔다.

“섭섭지 않게 쳐 줄게.”

흥정하듯 말을 하는 버네드를 엘리어트가 가만히 올려다 보았다.







버네드 씨와 이야기를 마무리 하고 가려던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 엘리어트는 영주의 성 입구에 도달했다.

그는 잠시 다리 너머에 있는 성에 시선을 주었다. 영주의 성인 이스릴은 호수 한가운데에 다리로 연결된 채 우뚝 솟아 있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아름다운 성을 잠시 보다가 그쪽으로 걸어가 다리로 들어서려는데 다리로 들어가기 전 길가에 길게 늘어 세워진 나무 앞에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엘리어트는 자리에 섰다. 나무 앞에 서서 목을 뒤로 꺾은 채 남자는 위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자신이 쳐다보는 걸 알았는지 남자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보았다. 그 시선에 엘리어트는 다시 좀 머뭇했다.


“새들 말이다.”

기색에 개의치 않고 다시 하늘을 올려다 보며 락터드는 말했다.

“여기서 거리가 얼마쯤 일거라고 생각하니?”

질문을 하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그의 옆으로 소년이 조금 더 가까이 걸어왔다.



그의 손끝을 따라간 엘리어트는 갈색 빛을 띠는 새 대 여섯 마리가 머리 위에서 원을 그리듯 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걸 보았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어느 건지 알겠니?”

하늘을 올려다 본 채 엘리어트가 대답했다.

“제일 오른쪽에 있는 게 제일 높아요.”

“거리는?”

“제 키의 여섯 배 정도요.”

“왜 그렇게 생각했지?”

락터드가 반문했다.

“감으로 맞추었니?”

“그림자가 가장 작거든요.”

바닥을 향해 시선을 주며 엘리어트는 대꾸했다.

“그리고 높이는 나무 길이 두 배 정도 위에 있으니까..”

거리감도 좋은 아이라고 생각하며 좀 미소를 지은채 락터드는 말했다.

“높이 날수록 그림자가 작아진다는 건 사소한 사실이지만 대답하기 전에 한 번쯤 주위를 돌아 봐야 알 수 있지.”

밝은 얼굴로 그는 말을 이었다.

“뭐든 겉으로 봐서 분명할 거라고 여겨지는 것도 실제 입에 담으려면 근거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신중해서 좋구나.”

칭찬에 처음으로 엘리어트가 조금 머쓱한 표정이 되었다.


락터드는 말했다.

“결정을 했으니 여기 온 거지 않니.”

그 말에 다시금 머뭇거리는 듯 했으나 소년은 입을 열지 않았다.

“네 성품이면 어설프게 결심한 건 아닐 거라고 믿는다. 수업이 시작되면, 이래뵈도 난 아마 좀 까다로울 것 같거든.”

락터드는 잠시 생각했다.

“그래도 발을 들여 놓기로 했으니...”

진지한 시선이 엘리어트를 향했다.

“이제 물러서면 안된다. 알겠니?”

엘리어트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왜, 겁나냐?”

그 시선에 락터드가 가볍게 물었다.

“아뇨.”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망설이며 엘리어트는 말했다.

“잔일이나 시키시는 건, 전 뭐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가진 돈은 아주 조금 뿐이에요.”

그는 또 말을 멈추었다. 무슨 말을 하나 싶어 락터드는 엘리어트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리고 만약 괜찮다면 저는 제가 있는 곳에서 살고 싶어요. 그건 안 되는 건가요?”


자신이 시선을 주자 소년은 스스로가 한 말에 자신이 없어졌는지 얼굴을 붉혔지만 눈은 여전히 자신을 보고 있었다. 예전에도 느꼈지만 수줍었지만 당당했고 조용하지만 거짓이 없는 눈동자를 가진 아이였다.

“안될 거 없다.”

락터드는 말했다.

“그러길 원한다면 그렇게 하렴. 하지만 난 너한테 잔심부름이나 일을 시킬 생각은 없단다. 하하. 돈을 받고 가르칠 생각은 더욱 없고 말이야.”

그가 웃었다.

“난 네가 마음에 든다 엘리어트.”


말을 하는 그를 엘리어트는 가만히 응시했다.

“새디 락터드 반 네쉬하트다. 이제야 통성명을 하는구나.”

락터드는 눈썹 옆을 손가락으로 긁적였다.

“어찌보면 우리 둘 다 처음부터 시작하는 셈이니..”

다정히 그는 말을 이었다.

“앞으로 서로 잘해보자. 알겠지?”

엘리어트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엘리어트의 시선을 마주 대하던 락터드는 곧 눈을 들어 하늘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아침 햇살이 반짝거리며 내리 쬐는 하늘에서 새들이 여전히 원을 그리며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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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하트의 반(VAN) - 2-0 엘소(2) +8 13.11.26 4,066 137 11쪽
74 하트의 반(VAN) - 2-0 엘소(1) +15 13.11.24 4,194 140 14쪽
73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5) +10 13.11.21 3,222 96 19쪽
72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4) +9 13.11.20 3,186 91 26쪽
71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3) +3 13.11.17 2,961 92 18쪽
70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2) +3 13.11.15 3,407 97 14쪽
69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1) +11 13.11.11 4,060 101 14쪽
68 하트의 반(VAN) - 1-67. +19 13.09.18 5,305 162 16쪽
67 하트의 반(VAN) - 1-66. +11 13.09.17 6,937 154 22쪽
66 하트의 반(VAN) - 1-65. +4 13.09.16 4,120 154 10쪽
65 하트의 반(VAN) - 1-64. +3 13.09.14 5,764 157 13쪽
64 하트의 반(VAN) - 1-63. +2 13.09.12 4,048 138 10쪽
63 하트의 반(VAN) - 1-62. +16 13.09.09 6,178 155 15쪽
62 하트의 반(VAN) - 1-61. +7 13.09.06 4,361 157 14쪽
61 하트의 반(VAN) - 1-60. +2 13.09.04 4,287 170 17쪽
60 하트의 반(VAN) - 1-59. +17 13.09.02 7,252 160 23쪽
59 하트의 반(VAN) - 1-58. +21 13.08.30 4,646 158 21쪽
58 하트의 반(VAN) - 1-57. +9 13.08.28 4,058 150 12쪽
57 하트의 반(VAN) - 1-56. +33 13.08.26 4,737 153 17쪽
56 하트의 반(VAN) - 1-55. +13 13.08.23 5,020 168 16쪽
55 하트의 반(VAN) - 1-54. +10 13.08.21 7,901 168 19쪽
54 하트의 반(VAN) - 1-53. +7 13.08.19 5,245 160 11쪽
53 하트의 반(VAN) - 1-52. +5 13.08.16 6,038 157 10쪽
52 하트의 반(VAN) - 1-51. +5 13.08.15 5,375 165 16쪽
51 하트의 반(VAN) - 1-50. +16 13.08.12 6,527 179 15쪽
50 하트의 반(VAN) - 1-49. +7 13.08.10 6,229 168 18쪽
49 하트의 반(VAN) - 1-48. +4 13.08.08 5,734 165 22쪽
48 하트의 반(VAN) - 1-47. +15 13.08.06 5,212 161 16쪽
47 하트의 반(VAN) - 1-46. +8 13.08.05 4,831 168 12쪽
46 하트의 반(VAN) - 1-45. +7 13.08.02 5,132 172 11쪽
45 하트의 반(VAN) - 1-44. +6 13.08.01 4,774 166 9쪽
44 하트의 반(VAN) - 1-43. +9 13.07.29 5,468 169 15쪽
43 하트의 반(VAN) - 1-42. +8 13.07.25 5,012 179 12쪽
42 하트의 반(VAN) - 1-41. +11 13.07.22 4,801 171 16쪽
41 하트의 반(VAN) - 1-40. +6 13.07.18 5,177 180 18쪽
40 하트의 반(VAN) - 1-39. +4 13.07.15 4,726 186 22쪽
39 하트의 반(VAN) - 1-38. +9 13.07.11 6,738 166 13쪽
38 하트의 반(VAN) - 1-37. +13 13.07.08 5,223 165 19쪽
37 하트의 반(VAN) - 1-36. +2 13.07.05 6,458 170 24쪽
36 하트의 반(VAN) - 1-35. +6 13.07.01 6,040 164 17쪽
35 하트의 반(VAN) - 1-34. +25 13.06.13 5,893 181 11쪽
34 하트의 반(VAN) - 1-33. +5 13.06.10 8,205 191 21쪽
33 하트의 반(VAN) - 1-32. +9 13.06.06 6,924 166 17쪽
32 하트의 반(VAN) - 1-31. +3 13.06.03 6,940 178 17쪽
31 하트의 반(VAN) - 1-30. +13 13.05.31 8,834 188 26쪽
30 하트의 반(VAN) - 1-29. +17 13.05.27 7,426 196 19쪽
29 하트의 반(VAN) - 1-28. +7 13.05.23 7,359 181 12쪽
28 하트의 반(VAN) - 1-27. +10 13.05.20 8,233 176 19쪽
27 하트의 반(VAN) - 1-26. +3 13.05.16 8,544 181 13쪽
26 하트의 반(VAN) - 1-25. +3 13.05.14 8,319 184 27쪽
25 하트의 반(VAN) - 1-24. +15 13.05.09 8,367 232 24쪽
24 하트의 반(VAN) - 1-23. +7 13.05.03 10,464 289 25쪽
23 하트의 반(VAN) - 1-22. +9 13.04.29 9,083 201 21쪽
22 하트의 반(VAN) - 1-21. +1 13.04.25 8,406 209 12쪽
21 하트의 반(VAN) - 1-20. +9 13.04.21 9,478 215 21쪽
» 하트의 반(VAN) - 1-19. +29 13.04.07 9,110 242 19쪽
19 하트의 반(VAN) - 1-18. +10 13.04.04 8,447 220 24쪽
18 하트의 반(VAN) - 1-17. +7 13.04.02 8,158 209 21쪽
17 하트의 반(VAN) - 1-16. +7 13.03.28 9,018 197 15쪽
16 하트의 반(VAN) - 1-15. +6 13.03.25 10,205 200 15쪽
15 하트의 반(VAN) - 1-14. +6 13.03.21 8,954 223 24쪽
14 하트의 반(VAN) - 1-13. +7 13.03.17 9,494 228 12쪽
13 하트의 반(VAN) - 1-12. +8 13.03.11 9,217 222 16쪽
12 하트의 반(VAN) - 1-11. +6 13.03.07 9,542 230 16쪽
11 하트의 반(VAN) - 1-10. +6 13.03.04 10,136 251 18쪽
10 하트의 반(VAN) - 1-9. +2 13.02.28 10,107 235 19쪽
9 하트의 반(VAN) - 1-8. +6 13.02.26 10,645 256 14쪽
8 하트의 반(VAN) - 1-7. +6 13.02.25 11,243 271 15쪽
7 하트의 반(VAN) - 1-6. +19 13.02.21 11,296 282 16쪽
6 하트의 반(VAN) - 1-5. +14 13.02.19 13,170 277 20쪽
5 하트의 반(VAN) - 1-4. +13 13.02.17 14,300 330 15쪽
4 하트의 반(VAN) - 1-3. +9 13.02.17 15,197 327 13쪽
3 하트의 반(VAN) - 1-2. +15 13.02.11 16,471 350 13쪽
2 하트의 반(VAN) - 1-1. +15 13.02.10 21,876 403 12쪽
1 하트의 반(VAN) - 0. +15 13.02.04 29,032 44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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