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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k 님의 서재입니다.

하트의 반(VAN)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명인k
작품등록일 :
2013.02.04 17:06
최근연재일 :
2019.02.10 23:08
연재수 :
298 회
조회수 :
979,662
추천수 :
28,216
글자수 :
2,269,960

작성
13.02.19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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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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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
글자
20쪽

하트의 반(VAN) - 1-5.

DUMMY

“그래, 친구는 만났소?”

방 한가운데 놓인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들여다보며 지나가는 말투로 오니트 남작이 물었다.

“네.”

미소를 지으며 락터드는 대답했다. 락터드가 오스티아에 온지도 벌써 열 흘이 지났다. 그 사이 남작이 헬렌에 갔다가 어제 돌아오는 바람에 지난 번 연회에서 만난 뒤 5일 만에 만나는 중이었다.

창가에 서 있던 락터드는 물끄러미 밖을 내려다 보았다. 오니트 경의 집무실에선 대정원이 한 눈에 들여다보였다.

“저 아이들은......”

화원 한 쪽의 돌바닥으로 된 서너 평 남짓 공간에서 나무로 만든 봉을 가지고 연습을 하고 있는 대 여섯 명의 소년들을 보고 그가 물었다.


“기사 견습생들입니까?”

“그렇소.”

여전히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오니트 남작이 대꾸했다.

“아마 베사리우스의 학생들일 거요.”

“기사 한 명이 견습 기사를 저렇게 많이 두는 것은 처음 보는 군요.”

락터드는 봉술을 익히기 위해 열심히 인 아이들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모두 열 살 이상은 되 보였으나 그 정도면 견습 기사로서 어린 축이었다.

“베사리우스는 다른 이들보다 인재 양성에 관심이 많은 편이오. 그와 뜻이 맞는 몇 몇 기사들이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오.”

그 점을 흐뭇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투였다.

“알다시피 오스티아 비롯해 이 근처 영주국에서는 용맹한 기사들을 많이 배출하기로 유명하지. 그건 다 후배 양성에 관심이 많은 그 같은 기사들 때문 아니겠소.”

남작은 그를 향해 시선을 주며 가볍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을 가르칠 생각은 없소? 당신이라면 좋은 스승이 될텐데.”

“아직까지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미소를 지으며 그가 대꾸했다. 그 대답에 오니트 남작이 다시 말했다.

“그럼 생각을 한 번 해보는 건 어떻소?”

락터드는 무슨 뜻이냐는 얼굴을 했다.

“사실 나는 그러므로서 당신이 이곳에서 지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소. 아, 물론 왕실 기사단으로 돌아간다면 나도 할 말이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말이오.”

남작의 호의어린 시선을 보다가 락터드는 입을 열었다.

“이렇게까지 마음을 써 주시다니 무슨 말로 감사를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난감한 듯 그는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저는 당장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뭐... 지금 대답을 바란 건 아니오.”

미소를 지으며 남작은 말했다.

“다음 주부터 난 또 작물 유통 건 때문에 헬렌에 가야하오. 그러니 그 동안 한 번 생각해 보시오.”

온화한 얼굴을 보며 락터드는 잠자코 공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남작과 대화를 끝낸 뒤 문을 열고 락터드는 집무실에서 밖으로 나왔다. 복도에 선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곧 다시 걸음을 옮겼다.





시장 중간쯤에 있는 크란 잡화상 안에서 엘리어트는 선반 위에 올려져 있는 촛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중간 크기 촛대로 저 정도면 일주일만 더 일하면 식비를 유지할 수 있다. 손을 뻗어 그는 촛대와 작은 양초를 집어 들었다.

“감사합니다, 또 오십시오.”

뭔가 비싼 물건이라도 팔았는지 가게 주인인 크란 씨는 싱글벙글하며 문을 열고 막 밖으로 나가는 부인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 뒤로 걸어가 엘리어트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계산대 위에 올려 놓았다.


점심이 되기 전에 광장으로 온 엘리어트는 광장 끝에 있는 공사장으로 걸어갔다. 안료를 이용해 광장 한 쪽 벽을 칠하는 일을 며칠 전부터 하고 있다. 원래는 어른들이 해야할 일이었으나 일꾼 한 명이 갑자기 일을 못하게 돼 운 좋게 그가 맡게 된 것이다.

들고 있던 붓을 하얀색 안료가 담겨 있는 나무통에 담그고는 엘리어트는 통 안에서 몇 번 위아래로 움직였다. 붓을 들어 한 쪽 벽면을 다 칠하고 그는 다시 붓을 통에 담갔다.



공사장 감독관인 헤인 버네드는 광장 입구에서부터 건물 뒤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매일 사람들을 감시하고 일이 잘 되고 있는 지 꼼꼼히 체크하는 게 그의 일이었으나 잔소리를 해대는 것도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눈에 거슬리는 부분을 대충 넘어가지도 못하는 성격이라는 게 문제였다. 다행인 건 공사는 거의 마무리 되고 이제 몇 가지 부수적인 일들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걸음을 옮기던 그는 귀가 따갑도록 쾅쾅거리며 울타리에 못을 박아 대고 있는 인부 한 명을 쳐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당최 적성이 아니다.


공사장의 거의 끝까지 걸어와 그는 마지막으로 끝에 있는 벽에 한 번 시선을 주었다. 눈에 잘 안 띠는 곳이었고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정작 중요한 중앙 벽보다 칠이 더 깨끗이 되어 있었다. 버네드는 벽 앞에서 서서 나무통에 붓을 담그고 있는 소년을 쳐다보았다.

“여기 네가 했냐?”

무뚝뚝한 음성으로 그가 말을 걸었다. 엘리어트는 손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다.

“네.”

잠시 가만히 있다가 조용히 엘리어트는 물었다.

“뭐가, 잘못됐어요?”

“잘못된 거 없다. 꾸물거리지 말고 시간 안에 해 놔라.”

퉁명스럽게 대꾸하고는 몸을 돌리며 그는 성큼 걸음을 옮겼다.


점심 시간이 되자 엘리어트는 공사장 입구에 있는 나무쪽으로 걸어갔다. 나뭇가지 위에 놓아 두었던 작은 보따리를 풀러 그는 그 안에서 빵 한 덩어리를 꺼냈다.

“아, 저기 있다. 야!”

등 뒤에서 큰 목소리가 날아와 그는 고개를 들었다. 잡화상 주인 크란이 성큼 그에게 걸어왔다.

“너 이 녀석!”

사나운 기색으로 그가 엘리어트의 팔을 움켜 잡았다. 점심을 먹기 위해 근처 여기 저기에 흩어져 앉아 있던 인부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향했다.

“네가 가져갔지? 내 돈.”

팔을 잡고 흔드는 통에 정신을 차릴 틈이 없었다.

“얼른 말하지 못해! 어디다 놨어?!”

그 기색에 엘리어트의 옆에 있던 공사장 인부 중 한 명이 의아한 기색으로 물었다.

“아 무슨 일이요?”

“물건 판 돈이 없어 졌소.”

크란은 엘리어트를 노려보았다.

“이 애가 가져간 게 분명해. 돈 받는 걸 본 게 이 애 뿐이니까.”

그 말에 인부가 엘리어트를 힐끔 쳐다보았다. 말리기에는 소년과 얘기 한 번 해 본 적 없고 크란의 기세가 워낙 살벌해 괜히 끼어들었다가는 골치 아파질 것 같았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마지못한 기색으로 그가 한 발 물러났다.


“어디, 어디다 뒀어?”

엘리어트는 입을 꾹 다문채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져 스스로 찾는 게 낫겠다 싶었는지 그는 엘리어트의 옆에 놓여 있던 작은 꾸러미를 풀어 헤쳐 뒤지기 시작했다. 안에 들어 있던 촛대가 튀어 나와 쨍그랑거리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샅샅이 뒤져 아무 것도 없는 걸 확인하고도 씩씩 거리며 그가 엘리어트를 쳐다보았다.

“빨리 내놓지 못하겠냐?”

“제가 상점에서 나온 건 점심시간 전이에요.”

그제야 엘리어트가 입을 열었다. 주변에서 멀뚱멀뚱 크란의 행동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그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러니까 그 때 내가 돈을 받는 걸 봤잖아? 그 다음에 와서 가져 간 거겠지!”

“그 다음엔 곧장 광장에 와서 칠을 했는걸요. 다시 간 적 없어요.”

“이 꼬마 놈이...!”

조용한 목소리에 더 화가 났는지 크란이 윽박질렀다.

“그걸 누가 믿어?! 빨리 바른 대로 말하지 못해?!”

“그건 그 애 말이 맞아.”

육중한 목소리가 옆에서 날아왔다. 고개를 돌리니 버네드가 두 사람이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이 앤 제일 끝 구역 담당이라 줄 곧 여기 있었어. 거기까지 왔다 갔을 만큼 자리를 비웠 던 적도 없고.”

평소 알고 지내던 버네드의 말에 크란은 조금 머뭇거렸으나 곧 다시 목소리를 크게 했다.

“자네도 확신하는 건 아니잖아?”

버네드는 씩씩거리고 있는 그를 보다가 무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입구에서 감독하고 있었는데 나갔다면 분명히 내 눈에 띄었을 거야. 게다가 그 시간에 거기 갔다 왔으면 저 만큼 일 못했어. 어른이 해도 빠듯한 분량을 해 놨으니까.”

딱 부러진 대꾸에 크란은 움찔했다. 당장은 증거가 없으니 반박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화가 가라앉질 않았다.

“됐어. 자네 말 못 믿어.”

그는 엘리어트를 노려보았다.

“지금은 그냥 가겠지만 두고 보자, 영주님께 말해 내 찾아 낼 거다.”

여전히 분이 안 풀린 기색으로 그가 몸을 돌리며 소리쳤다.

“되바라진 꼬맹이 같으니라구. 너 다신 우리 가게 올 생각 마라.”

등을 돌려 뚱뚱한 몸을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크란의 모습을 보며 엘리어트는 잠시 가만히 있었다.

“뭣들 해? 점심시간 끝나면 바로 일 해야 돼. 얼른 식사들 끝내라고.”

버네드가 소리치자 그제야 부스스 움직이며 일꾼들이 다시 자리로 돌아 가기 시작했다. 엘리어트는 버네드를 쳐다보았다.

“감사합니다. 버네드 씨.”

버네드는 소년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겁을 집어 먹었거나 당황한 기색이 없다. 어린 녀석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법을 알고 있었다.

“감사할 거 없다. 특별히 편들어 준 것도 아니고 사실을 말한 것뿐이니까.”

퉁명스럽게 그는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오늘 삯 계산해 줄테니 이따 나한테 와라. 어린애가 할 만한 일은 오늘로 다 끝났으니까 내일부턴 안 와도 돼.”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몸을 돌렸다. 성큼 저쪽으로 걸어가는 그를 보다가 엘리어트는 곧 몸을 숙여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는 촛대를 집어 들었다.



집에 돌아온 엘리어트는 공사장 일로 받은 삯을 항아리 안에 넣고는 촛대를 꺼내 벽난로 위에 올려 놓고 양초에 불을 밝혔다. 타고 있는 양초의 작은 빛이 주위를 더욱 고요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오늘로 1년이 되었어요, 아버지.”

촛불을 응시하며 그가 중얼거렸다.






물을 마시러 잠깐 부엌 안으로 들어왔다가 락터드는 안에 있는 사람을 보고 웃으며 말을 건냈다.

“오늘은 요리니?”

그러면서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물병과 컵을 들어 올렸다.

앞치마와 머릿수건을 한 채 화로 앞에 서서, 걸려 있는 커다란 솥 안에 들어 있는 것을 국자로 휘휘 젓고 있던 데비는 매케한 연기에 고개를 옆으로 해 조금 콜록거리며 대꾸했다.

“그냥 도와주는 거에요. 레사가 힘들다고 우는 소리 해서....”

개수대 옆에서 야채를 다듬고 있던 허름한 옷차림의 소녀가 항의하듯 볼멘소리를 했다.

“그냥 도와주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데비가 눈을 흘기자 소녀가 움찔했으나 여전히 작게 중얼댔다.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맨날 귀찮게 하시면서.”

“그래서 도와주는 거잖아. 자꾸 이러면 저번에 화병 깬 거 집사한테 이른다.”

의미심장한 목소리에 레사가 움찔했다.

“너무해요, 아가씨.”

우는 소리에 데비가 짐짓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러니까 서로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자구.”

어느 정도 국이 끓자 그녀는 앞치마를 벗어 들었다.

“다 했어.”

데비는 레사의 앞으로 걸어가 손을 내밀었다.

“줘, 이제.”

레사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엉덩이를 툭툭 털어댔다. 투덜거리는 기색으로 그녀가 부엌 뒤로 통하는 문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을 빤히 보고 있다가 데비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공연히 한 번 더 사람 피곤하게 한다니까요.”

테이블 앞에 서서 먹는데 열중하고 있던 락터드가 가볍게 웃었다. 데비는 그런 그를 향해 말했다.

“외곽으로 나가면 큰 숲이 하나 있어요. 아세요?”

“아니, 모르는데.”

멀뚱한 얼굴로 그가 대꾸했다.


“이웃 마을로 통하는 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굉장히 큰 숲이라 사람들이 잘 안가서 그런지 동물하고 새들이 많이 살아요. 성으로 내려오는 동물들도 그곳에서 오는 거에요.”

부엌 창문 한 켠을 통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요즘엔 밀렵꾼들이 생긴데다가 게다가 누군지 거기서 예전에 설치해 놓은 함정에 걸려 다치는 바람에 숲을 아예 폐쇄하자는 얘기가 나왔나 봐요.”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숲은 아빠 영지지만 사람들이 반대하면 폐쇄하실 거에요.”

데비는 손을 뒤로 올려 머릿수건을 풀었다.

“그 편이 낫지 않겠니? 사람들이 함부로 짐승들을 잡아대지 못할 텐데.”

그의 말에 데비는 탐탁지 않은 얼굴이 되었다.

“꼭 그런 것도 아니에요. 어차피 웬만해선 아무도 안 가는데다 밀렵꾼들이야 어차피 폐쇄된 후에도 밀렵꾼이잖아요.”

그녀의 예쁘장한 눈썹이 팔자로 휘어졌다.

“공연히 애꿎은 저만 못 들어가게 될까봐 걱정이에요.”

밖으로 나갔던 레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 있어요, 아씨.”

그녀가 테이블 위에 작은 꾸러미 하나를 내려 놓았다.

“고마워.”

데비는 그것을 들어 올리며 살피듯 쳐다보았다.

“저번 보다 작아졌어.”

“그 만큼 모으는 것도 힘들었다구요.”

미간 사이를 찌푸리며 레사가 항의하자 데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알았어.”

그녀는 락터드를 향해 몸을 돌리며 말했다.

“같이 가요, 아저씨. 좋은 거 보여드릴 게요.”

락터드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

“어딜?”

“뻔하죠.”

데비는 부엌 한 쪽에 있는 작은 문을 열었다.

“정말로 폐쇄된다면 그러기 전에 실컷 제 흔적을 남겨 놓을 거에요.”

성큼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그녀를 보다가 락터드는 난감한 웃음을 지었다. 별 수 없다는 듯 그는 데비를 따라 밖으로 향했다.





숲 안 쪽 길로 들어서려다가 데비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나무 사이에서 방금 누군가의 그림자를 본 것 같다.

“왜 그러니?”

서너 걸음 뒤에서 따라 오던 락터드가 그녀를 향해 물었다.

“아니에요.”

데비는 어깨를 조금 움츠러 뜨렸다.

“가요, 아저씨.”


길을 따라 데비는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발견한 숲 안쪽으로 통하는 길이었다. 길이라고는 해도 어린 아이 하나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폭이었다.

“여기가 전쟁터였던 적도 있대요. 지금 이렇게 평화로운데, 안 믿겨지지만요.”

걸어가며 데비는 말했다. 길 끝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그녀는 오른쪽에 서 있는 나무 틈새로 몸을 비집고 들어갔다.

“이쪽으로 들어가야 되요.”

락터드는 그녀를 따라 나뭇가지를 밀어 젖히며 안으로 들어갔다.

‘이거 참.....’

큰 호흡을 한 번 하며 나무 사이를 겨우 빠져 나와 락터드는 걸음을 멈춘 그녀의 옆으로 갔다. 그리고는 데비가 보고 있는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여기에요.”

그곳에는 주변이 온통 나무로 둘러 싸인 커다란 공터가 있었다. 마을 광장만큼 넓은 장소였다. 그 한가운데 나무 한그루가 우뚝 서 있다. 다른 나무들을 압도하는 웅장한 크기의 백 년을 넘긴 듯한 교목이었다.

바람이 불자 수 천개의 나뭇잎들이 사스락 거리는 소리를 냈다. 맑고 적당히 시원한 공기가 기분을 상쾌하게 해 주었다.

“확실히 좋구나.”

미소 지으며 락터드는 말했다.

“쉬기에 좋은 장소야.”

“역시 나이 드신 분은 다르네요. 쉬는 게 뭐가 좋다고.”

데비는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좋은 건 이거에요.”

쓴웃음을 짓는 그에게 아랑곳하지 않으며 데비는 들고 있던 꾸러미를 풀었다. 그리고는 안에 들어 있던 것을 한 움큼 쥐어 내어 나무 아래쪽에다 그것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고소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자 갑자기 나뭇가지 사이에서 수십 마리의 새들이 날아 올랐다. 바닥에 내려 앉아 새들이 그녀가 뿌려놓은 참깨 찌꺼기를 쪼아 대기 시작했다.


“예쁘죠?”

다양한 깃털색을 가진 새들을 보며 뿌듯한 듯 데비가 말했다.

“저 정도면 참깨찌꺼기 모으는 것 때문에 레사랑 실랑이 할 가치는 있어요.”

“그렇구나.”

락터드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데비, 이건 위험한 짓이란다. 냄새가 새들 뿐 아니라 다른 짐승들도 끌어 들이게 돼.”

데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긴 숲 깊은 곳도 아니고 공터라 괜찮지 않아요?”

락터드는 눈을 돌려 나무들을 주의 깊게 쳐다보았다. 다행히 들짐승의 발톱 자국 같은 영역 표시는 없는 듯 했다. 데비의 말처럼 사람 냄새가 베어 있을 경우 야생 짐승들이 잘 나타나지 않는 것은 사실이었다. 가볍게 그는 말을 이었다.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단다.”

“전 조심해요, 항상.”

가볍게 대꾸하며 데비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했다.

“저기, 더 안으로 들어가 보실래요?.”

그는 말문이 막힌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혼자 어디까지 가 봤니?”


데비가 대답하려는 순간 수풀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두 사람이 그쪽을 쳐다보자 카이렌 나이더가 나뭇가지를 헤치며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락터드 경.”

걸어오며 그가 입을 열었다.

“나이더 경.”

락터드 경은 뜻밖이라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경도 여기 오십니까?”

“예?”

그의 질문에 어리둥절해 하다가 곧 카이렌이 말했다.

“정원사한테 숲 쪽으로 가시는 걸 봤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나저나 이게 무슨 냄샙니까? 그 덕에 찾을 수 있긴 했지만.”

"그게.."

락터드는 데비쪽을 쳐다보았다. 데비는 갑자기 나타난 카이렌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지만 그 질문에 대답하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자신의 엉뚱한 물음과 그의 질문을 얼버무리려는 듯 락터드는 머쓱하게 웃었다. 그 기색을 눈치 못챈 채 뭔가 서두르는 기색으로 카이렌이 말을 이었다.

“국경지역에서 헤쉬드 군과 대치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의외의 말에 락터드의 표정이 좀 진지해졌다.

“무슨 일로.. 아, 그것보다 심각합니까?”

“큰 문제는 아닙니다.”

말뜻을 알아채고 카이렌은 서둘러 말했다.

“일이 커지진 않을 겁니다. 다만 타협안을 마련하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미묘한 사안이 걸려 있어서. 게다가 헬렌에 서언을 보내긴 했습니다만 남작님이 돌아오시려면 좀 시간이 걸릴 것 같고요.”

헤쉬드는 오스티아의 접경국으로 오스티아와는 오랫동안 친선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영주국이었다. 진지한 음성으로 카이렌이 말을 계속했다.

“같이 그곳으로 가주시지 않겠습니까? 경의 의견을 들었으면 합니다.”

“그렇습니까?”

그 말에 잠깐 생각하다가 락터드는 말했다.

“알겠습니다. 도움이 된다면 저도 가보죠.”

고개를 끄덕하는 카이렌을 보다가 락터드는 데비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네. 알아요.”

하고 싶은 말을 알겠다는 듯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그녀가 대꾸했다.

“전 그만 돌아 갈게요.”


수풀을 비집고 큰 길로 나오자 카이렌이 가져온 말 두 필이 묶여져 있는 게 보였다. 두 사람이 고삐를 풀었다. 말에 올라탄 락터드는 바닥에 서 있는 데비를 내려다보며 당부했다.

“곧장 돌아 가야한다, 데비.”

“네.”

데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말고삐를 잡아 당기자 말들이 앞 발을 들어 올리더니 이내 길을 달려가기 시작했다. 흙먼지와 함께 말발굽 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할 수 없다는 듯 숨을 한 번 내쉬며 데비는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뭔가가 떠올랐는지 문득 걸음을 멈추고는 그녀가 숲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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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하트의 반(VAN) - 2-1 헬렌(3) +3 13.12.01 3,578 118 20쪽
77 하트의 반(VAN) - 2-1 헬렌(2) +12 13.11.28 3,832 111 17쪽
76 하트의 반(VAN) - 2-1 헬렌(1) +3 13.11.26 4,018 120 9쪽
75 하트의 반(VAN) - 2-0 엘소(2) +8 13.11.26 4,066 137 11쪽
74 하트의 반(VAN) - 2-0 엘소(1) +15 13.11.24 4,195 140 14쪽
73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5) +10 13.11.21 3,222 96 19쪽
72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4) +9 13.11.20 3,186 91 26쪽
71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3) +3 13.11.17 2,962 92 18쪽
70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2) +3 13.11.15 3,407 97 14쪽
69 하트의 반(VAN) - 번외. 반 네쉬하트(1) +11 13.11.11 4,062 101 14쪽
68 하트의 반(VAN) - 1-67. +19 13.09.18 5,307 162 16쪽
67 하트의 반(VAN) - 1-66. +11 13.09.17 6,937 154 22쪽
66 하트의 반(VAN) - 1-65. +4 13.09.16 4,120 154 10쪽
65 하트의 반(VAN) - 1-64. +3 13.09.14 5,764 157 13쪽
64 하트의 반(VAN) - 1-63. +2 13.09.12 4,049 138 10쪽
63 하트의 반(VAN) - 1-62. +16 13.09.09 6,180 155 15쪽
62 하트의 반(VAN) - 1-61. +7 13.09.06 4,361 157 14쪽
61 하트의 반(VAN) - 1-60. +2 13.09.04 4,288 170 17쪽
60 하트의 반(VAN) - 1-59. +17 13.09.02 7,252 160 23쪽
59 하트의 반(VAN) - 1-58. +21 13.08.30 4,648 158 21쪽
58 하트의 반(VAN) - 1-57. +9 13.08.28 4,058 150 12쪽
57 하트의 반(VAN) - 1-56. +33 13.08.26 4,737 153 17쪽
56 하트의 반(VAN) - 1-55. +13 13.08.23 5,020 168 16쪽
55 하트의 반(VAN) - 1-54. +10 13.08.21 7,902 168 19쪽
54 하트의 반(VAN) - 1-53. +7 13.08.19 5,246 160 11쪽
53 하트의 반(VAN) - 1-52. +5 13.08.16 6,038 157 10쪽
52 하트의 반(VAN) - 1-51. +5 13.08.15 5,376 165 16쪽
51 하트의 반(VAN) - 1-50. +16 13.08.12 6,528 179 15쪽
50 하트의 반(VAN) - 1-49. +7 13.08.10 6,231 168 18쪽
49 하트의 반(VAN) - 1-48. +4 13.08.08 5,734 165 22쪽
48 하트의 반(VAN) - 1-47. +15 13.08.06 5,212 161 16쪽
47 하트의 반(VAN) - 1-46. +8 13.08.05 4,831 168 12쪽
46 하트의 반(VAN) - 1-45. +7 13.08.02 5,133 172 11쪽
45 하트의 반(VAN) - 1-44. +6 13.08.01 4,774 166 9쪽
44 하트의 반(VAN) - 1-43. +9 13.07.29 5,468 169 15쪽
43 하트의 반(VAN) - 1-42. +8 13.07.25 5,012 179 12쪽
42 하트의 반(VAN) - 1-41. +11 13.07.22 4,803 171 16쪽
41 하트의 반(VAN) - 1-40. +6 13.07.18 5,177 180 18쪽
40 하트의 반(VAN) - 1-39. +4 13.07.15 4,727 186 22쪽
39 하트의 반(VAN) - 1-38. +9 13.07.11 6,738 166 13쪽
38 하트의 반(VAN) - 1-37. +13 13.07.08 5,225 165 19쪽
37 하트의 반(VAN) - 1-36. +2 13.07.05 6,459 170 24쪽
36 하트의 반(VAN) - 1-35. +6 13.07.01 6,041 164 17쪽
35 하트의 반(VAN) - 1-34. +25 13.06.13 5,893 181 11쪽
34 하트의 반(VAN) - 1-33. +5 13.06.10 8,205 191 21쪽
33 하트의 반(VAN) - 1-32. +9 13.06.06 6,925 166 17쪽
32 하트의 반(VAN) - 1-31. +3 13.06.03 6,942 178 17쪽
31 하트의 반(VAN) - 1-30. +13 13.05.31 8,836 188 26쪽
30 하트의 반(VAN) - 1-29. +17 13.05.27 7,429 196 19쪽
29 하트의 반(VAN) - 1-28. +7 13.05.23 7,359 181 12쪽
28 하트의 반(VAN) - 1-27. +10 13.05.20 8,235 176 19쪽
27 하트의 반(VAN) - 1-26. +3 13.05.16 8,545 181 13쪽
26 하트의 반(VAN) - 1-25. +3 13.05.14 8,319 184 27쪽
25 하트의 반(VAN) - 1-24. +15 13.05.09 8,367 232 24쪽
24 하트의 반(VAN) - 1-23. +7 13.05.03 10,464 289 25쪽
23 하트의 반(VAN) - 1-22. +9 13.04.29 9,083 201 21쪽
22 하트의 반(VAN) - 1-21. +1 13.04.25 8,406 209 12쪽
21 하트의 반(VAN) - 1-20. +9 13.04.21 9,478 215 21쪽
20 하트의 반(VAN) - 1-19. +29 13.04.07 9,110 242 19쪽
19 하트의 반(VAN) - 1-18. +10 13.04.04 8,448 220 24쪽
18 하트의 반(VAN) - 1-17. +7 13.04.02 8,160 209 21쪽
17 하트의 반(VAN) - 1-16. +7 13.03.28 9,019 197 15쪽
16 하트의 반(VAN) - 1-15. +6 13.03.25 10,206 200 15쪽
15 하트의 반(VAN) - 1-14. +6 13.03.21 8,955 223 24쪽
14 하트의 반(VAN) - 1-13. +7 13.03.17 9,495 228 12쪽
13 하트의 반(VAN) - 1-12. +8 13.03.11 9,218 222 16쪽
12 하트의 반(VAN) - 1-11. +6 13.03.07 9,542 230 16쪽
11 하트의 반(VAN) - 1-10. +6 13.03.04 10,136 251 18쪽
10 하트의 반(VAN) - 1-9. +2 13.02.28 10,107 235 19쪽
9 하트의 반(VAN) - 1-8. +6 13.02.26 10,646 256 14쪽
8 하트의 반(VAN) - 1-7. +6 13.02.25 11,245 271 15쪽
7 하트의 반(VAN) - 1-6. +19 13.02.21 11,296 282 16쪽
» 하트의 반(VAN) - 1-5. +14 13.02.19 13,171 277 20쪽
5 하트의 반(VAN) - 1-4. +13 13.02.17 14,301 330 15쪽
4 하트의 반(VAN) - 1-3. +9 13.02.17 15,198 327 13쪽
3 하트의 반(VAN) - 1-2. +15 13.02.11 16,472 350 13쪽
2 하트의 반(VAN) - 1-1. +15 13.02.10 21,877 403 12쪽
1 하트의 반(VAN) - 0. +15 13.02.04 29,032 44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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