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01 [소설 속 전개]
눈앞에 보이는 것은 그저 붉은 하늘이며 그건 전혀 아름다운 색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내 눈을 감싸고 있던 눈물이 아닌 나의 피였기에... 아...
"아아..... 파...!"
머릿속으로만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내 목소리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다.
"이, 이걸 어떻게 해야...! 1,119에 전화를! 이, 이보게! 괜찮아?!"
처음 들어보는 중년의 남성 목소리와 주변에서의 비명,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차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어떤 상황인지를 정확히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설마... 내가...
"머리에서 피가!! 이, 일단! 지혈을!! 그러니까 왜 이런 위험한 날에 밖을 나와서 그래!"
태풍이 오는 오늘 편의점에 가기 위해 잠시 나왔다가 편의점 앞에서 날아온 대형 가판대를 맞았던 게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이... 게 무슨 말도..."
더 이상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게 되고 붉게 물들었던 눈앞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정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인생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저 하라는 것만 해오다 취직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백수로 부모님의 피를 빨아먹고 산지 어언
27년... 딱히 후회조차 없는 삶이었다.
그저 지금까지 키워준 부모님에게 폐가 되지 않게 보험금이나 좀 많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과 고통에서 빨리 해방되고 싶다는 마음만이 남아있었다.
아프다... 제발 빨리 그냥 죽게 해 줘...미련조차 남지 않은 이런 인생. 그저 순간순간의 즐거움만을 위해 살다가 가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 이보게
죽음이란 이런 느낌이구나.
생각보다 남는 시간이 많네. 죽기 직전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게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네...
-이봐 젊은이.
이제 몸에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고통도 없어졌다. 생각보다 죽는다는 게 무섭지도 않았다.
-이봐 눈 좀 떠보는 게 어떻겠나?
그런데 왜 계속 목소리가 들려오는지 모르겠네.
나는 지금 들려오는 목소리가 아까의 당황하던 편의점 주인으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아닌 완전히 다른 목소리임을 깨닫고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껴 목소리의 요청대로 눈을 뜨기 시작했다.
"어?"
-이제야 눈을 떴구먼. 정말이지 요즘 아이들은 반응이 느려서 안 되겠어.
눈을 감기 전과는 다른 푸른 하늘.
그리고 집 주변과는 다른 아무것도 없는 전경. 그리고.
"일단 자기소개부터 하지. 시간이 없네. 나는 간단히 말해 자네가 알고 있는 '신'이라는 존재 중 한 명일세."
자칭 신이라는 할아버지 한 명이 서 있었다.
****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보고 신은 눈앞으로 손을 흔들었다.
-정신 좀 차리는 게 어떻겠나. 젊은이.
자네에게 알려줄 수 있는 시간은 별로 없네.
"... 여기가 어디죠?"
내가 꺼낼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그 말에 신은 피곤한 듯 웃으며 그런 질문을 할 거로 생각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간단히 말해 자네의 다음 생에 관해 설명해 줄 인포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겠군. 자네가 죽은 건 당연히 알고 있겠지?
"잘... 모르겠는데요."
-상관없네. 자네는 죽은 게 맞아 그리고 다시 살아날 예정이지. 이번 아이도 이런 상황에 잘 적응하는 거 같구먼. 만화나 소설이라는 게 참 도움이 된다니까.
신은 곧바로 뒤를 돌아 뒷짐을 진 채 걸어가기 시작했다.
"자, 잠시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니, 기다릴 시간 없네. 움직이면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따라오게.
산책하듯 걸어가는 신을 쫓아 바로 뒤에 붙자 신은 입을 열었다.
-세상은 자네가 사는 세상뿐만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세상에서 수많은 존재가 살아가고 있다네. 그리고 그 세상은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움직이고 있지.
"이야기... 말씀이신가요?"
뜬금없이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신이 말하는 내용은 상당히 진부하면서 평범한 사람은 들을 수 없을 거 같은 말이었다.
-이미 '이야기'가 끝난 세상이 있는가 하면 '이야기'가 진행 중인 곳도 있고 '이야기'가 시작도 하지 않은 세상도 존재한다네.
신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자네가 살던 '태양계 지구'는 이미 이야기가 끝난 세상 중 한 곳이지
"이야기... 라는 건 정확히 뭘 말하는 거죠? 제가 알고 있는 소설 같은 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신의 말대로 걸으며 이야기하다 보니 조금씩 정신을 차린 나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 세상이 생긴 이유. 그리고 신들의 작품. 이라고 할 수 있겠지.
"신들의 작품이요?"
-그쪽은 신경 쓰지 말게 자네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닐세. 그런 것보다 더 궁금한 게 있을 거 같은데 아닌가?
신의 물음에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멍청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한숨을 쉬며 신은 말하였다.
-자네가 환생하는 이유.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
"아. 확실히... 제가 선택 되어 이곳에 있는 건가요?"
-선택이라기보다 그저 그 타이밍에 죽은 게 자네였을 뿐이네. 누구든지 상관없었지.
내가 환생하는 이유에 뭔가 큰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한 건 아니었지만 역시 너무나 사소한 이유에 맥이 빠지고 말았다.
"그럼 그다음. 제가 가는 곳은 어딘가요?"
-그게 자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지. 바로 '중간계 지구'라는 곳일세. 자네가 살고 있던 '태양계 지구'와 매우 닮았던 곳이지.
"닮았던 곳?"
신을 따라 걸어가던 나는 어느샌가 절벽처럼 보이는 곳에 도착하여 걸음을 멈추며 되물었다.
-'중간계 지구'는 '이야기'가 시작하지 못한 지 300년이 된 세상일세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주인공이 탄생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이야기'가 시작하기 위해선 그 '이야기'에 합당한 주인공이 필요하지만, 그곳은 주인공으로서 자질을 가진 존재가 오랫동안 나타나질 않았네.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없네. 하지만 주인공이 없어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았지. 그래서 신들이 머리를 굴려 도달한 결론이 바로 다른 세상에서 불러오는 것이라네.
"다른 세상이요?"
무슨 소린지 순간 이해가 되질 않아 되묻고 말았다.
-그래. 자네가 사는 '태양계 지구'는 물론, 그 외에 여러 이야기가 끝난 세상에서 환생, 전생, 소환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이용해 주인공이 될지도 모를 존재들을 불러오는 게지.
신은 갑자기 한숨을 푹 쉬었다.
-이렇게 다른 세상의 존재들을 불러들인 지 벌써 100년째이지. 아직도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다른 세상의 존재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걸세. 그리고 자네도 그중 한 명이 되는 거라네.
말을 마친 신은 절벽의 아래를 내려다보았고, 나 역시 그 시선을 따라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자 그 아래는 내가 살던 지구와 똑같이 생긴 별의 전경이 펼쳐졌다.
"저기가 중간계 지구인가요?"
-그래. 자네가 살아갈 세계지. 가기 전에 자네에게 줄 것과 선택해야 할 게 있네.
신은 처음으로 자신이 평범한 할아버지가 아닌 걸 보여주겠다는 듯이 펼쳐진 손 위에 빛나는 사각형의 틀이 떠올랐다.
-손을 가져다 대게나.
살짝 위험한 거 아닐까 생각도 들지만 이미 이런 광경까지 본 이상 멈출 수도 없으니 아주 조심히 손을 가져다 대었다.
파아앗!
손을 가져다 댐과 동시에 빛은 더욱 밝게 빛났고 잠시 후 신의 손에 머물러 있어야 할 빛나는 사각형의 틀은 나의 손에 자리 잡았다.
-우선 줄 것은 크리시아의 창일세.
"크리시아의 창?"
-그냥 상태창일세 편히 부르게.
"... 게임인가요."
-뭘 그리 정색하며 쳐다보나. 내가 알기론 '태양계 지구' 인간들은 분명 그런 걸 좋아한다고 들었내만?
"그야 뭐 그렇긴 하지만."
생각과는 다른 선물을 받아서인지 더 이상 머라 말하지 못하고 내 손에 떠 있는 상태 창을 보았다.
[이름: ]
[칭호: ]
[이명: ]
[출신: ]
[상태: ]
"이게 끝이에요? 내용이 아무것도 없는데요?"
상태창이라 불린 크리시아의 창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단순하게 생기고 심지어 내용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아직 자네가 환생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네. 가까이 오게나 마지막으로 줄 것이 있으니.
"잠시만요. 저는 아직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데요."
이야기를 끝내려고 하는 신에게 당황하며 말을 건네지만.
-자네는 저번 생의 육체가 죽었으니 소환은 불가능하고 환생과 영혼의 이 세계 전이가 가능하다네.
-환생은 갓난아이로 '중간계 지구'의 인간들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방식이고 이 세계 전이는 신들이 준비해 준 평범한 육체로 곧바로 성인의 육체부터 시작할 수 있다네.
신은 나의 말을 무시하며 머리에 손을 얹고 준비된 말을 했다.
신의 태도에 나는 더 이상 질문을 포기하고 고민하고는 이 세계 전이를 하겠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이 세계 전이라 해도 아는 것도 없고 돈도 없을 텐데요?"
-걱정 말거라. 그 정도 안배는 당연히 해놓았노라.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듯 저지하고는 신은 눈을 감고 말했다.
-그대에게 새로운 세상의 이야기가 될 수 있기를 빌며, 신들의 손길이...
"...?"
무언가 중얼거리더니 중간에 말을 멈춘 채 미동도 하지 않아 뭔가 잘못되었나 싶어 얼굴을 살짝 들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네?"
-이름. 앞으로 살아가면서 사용할 네 이름 말이다. 원하는 대로 말하거라.
내 이름? 확실히... 딱히 좋아하는 이름은 아니었지.
멋있지도 않고 눈에 띄지도 않고 그저 그런 이름.
물론 눈에 띄는 이름이었다고 해도 좋아하지 않았겠지만.
어떤 이름으로 할까.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멋진 이름? 서양적인 이름?
내가 살던 세상에 이름을 떨친 유명인들의 이름?
나는 잠깐 고민하고 이내 답을 했다.
"... 민의연. 민의연으로 할게요."
-흐음... 자신의 이름을 정한다는 건 꽤 특별한 기회일 텐데 전생의 이름 그대로 쓸 게냐.
"네. 그냥 평범한 게 좋을 거 같아서요."
만약 나중에 중간계 지구에 가서 이름이 머냐고 물었는데 '칸' 이라거나 '루시퍼' 같은 서양 이름을 대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니 절대 절대 미친 짓이란 걸 깨달아버렸다.
나는 그냥 그대로 이름을 정했다.
-좋다. 그대에게 새로운 세상의 이야기가 될 수 있기를 빌며, 신들의 손길이 민의연에게 닿기를....
머리에 놓여있는 손에서 포근한 기운을 느끼며 약간의 어지러움과 함께 눈앞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툭.
머리에 놓여있던 손에 약간의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지며 나의 몸은 버티지 못하고 뒤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잠깐만.
지금 내 뒤는 절벽이었는데?!
"으아아아아아!"
나의 몸은 바닥을 항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
-... 이번 아이는 과연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지.....
신은 비명을 지르면 떨어지던 아이를 머릿속에 떠올려보고는
-음. 무리겠군.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아이에 불과했지...'이야기'의 조연만 된다고 해도 대단히 큰일이겠어.
잠시 걷던 노인은 다시 고개를 절래 저었다.
-아니. 그것도 안 되겠지. '이야기'의 조연을 구하는 약간 중요한 엑스트라 정도 겠구만.
신은 귀찮다는 듯이 휘적거리며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자. 다음은 어디에서 오는 아이 일런지..... 이제 이 일도 그만하고 싶구만. 언제까지 이렇게 끝난 '이야기'의 세상 아이들을 데려와야 하는지 쯧쯧쯧.
신은 자신이 맡은 일보다 더욱 위에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을 신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누구든지 상관없다. '이야기'를 어서 시작하거라.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을 것이야.
허공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노인은 상관없다는 듯이 또다시 눈앞에 나타난 새로운 존재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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