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주인공 야마타노 오로치 시점 29 [빠른 퇴장]
전황이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의연 파티도 이미 야마토의 '다이묘'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정보로 알고 있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컸다.
쎄엑!
"흣!"
루시아가 미코의 검을 가까스로 피하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아무리 미래를 본다 하더라도 미코의 움직임이 루시아의 속도를 상회하니, 피할 수 있는 여유가 점점 줄어들었다.
'미래를 볼 수 있는 존재를 상대한다는 것이 이렇게 귀찮을 줄은 몰랐네요.'
'생각보다 너무 위험하네요... 쇼군이란 자의 신체 능력을 그대로 받았다곤 하나 검을 사용하지 않던 자가 이렇게 날카로운 검술을 구사하게 되다니...'
이미 아까의 여유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4명 모두가 만능성과 비등하게 겨루는 야마토의 육체 능력을 지니고 쿠사나기의 검에선 전부 뱀의 형상이 튀어나와 극심한 고통을 줄 수 있는 독니를 뻗을 준비를 하고 있다.
루시아만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선지의 눈을 통해 겨우겨우 공격을 피하고 있고, 화향은 검을 휘두르는 스즈란을 상대로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 채, 천아의 손에 이끌리며 이리저리 도망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남은 한 명의 일행이자 화향과 마찬가지로 천아에게 이끌리고 있는 운룡은,
쎄에엑!!
"미, 미안해! 운룡!"
퍼버벅! 카앙!
"... 상황이 상황인 만큼 참겠지만, 기분만큼은 정말 더럽군..."
분신의 물량과 하늘에서 쏟아지는 우박 때문에 피할 공간을 완벽하게 차단될 때, 화향이 천아에게 건넨 제안으로, 운룡은 동료를 지키는 고기 방패로 이용되었다.
"이번은 칭찬해주마. 너는 지금 확실히 동료를 위한 1인분의 역할을 해내고 있느니라."
"그러는 넌 아무것도 못하고 있잖아...!"
"미안! 미안해! 내, 내가 좀 더 완벽하게 도망쳤다면!"
"아니, 무리잖아."
"도망칠 길 자체가 없는 걸 어떻게 해."
3명은 위기의 순간에서 벗어나며 각자 한 마디씩 했다.
"정녕 인간이 맞소?! 이건 이미 괴물이지 않소이까! 도대체 몸이 어떻게 된 것이냔 말이오!"
"쿠사나기의 검에 베이질 않아... 뱀의 독도 안 들어... 괴물..."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운룡의 육체 스펙에 한조와 마이가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이쪽도 루시아와 마찬가지로 외줄 타기나 마찬가지. 순간의 실수로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철컥! 철컥!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조금 전부터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이상하고 소름 끼치는 소리.
"... 언데드?"
하늘을 날아다니던 루시아가 멀리서 몰려오는 엄청난 물량의 언데드를 발견했다.
"언데드? 어찌하여 서울 한복판에 몬스터가 나타난다는 것이냐."
"어~ 아, 아마도 불살공 아닐까?"
"불살공은 분명히 무적공께서 맡기로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장관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언데드 대군의 행진.
그리고 그런 언데드가 있는 공간에는 전혀 떨어지지 않는 우박.
"적이에요! 언데드에게도 보정이 적용되고 있어요!"
그 모습을 확인한 루시아의 외침에 분위기가 더욱 안 좋아졌다.
"... 본녀의 주술로 막을 수 있을지..."
"내가 나설 때군. 멍청한 언데드 정도는 전부 쓸어버릴 수 있어."
화향은 자신의 주술로는 감당할 수 있는 양이 아니라 걱정했고, 운룡은 오히려 단순무식해 보이는 물량을 보며 자신의 차례가 왔다고 생각했다.
"저, 저기... 지금 운룡이 그쪽으로 가버리면, 이쪽이 너무 위험한대...!"
하지만 지금까지 운룡이 방패막이 역할을 해준 덕분에 겨우겨우 도망다니고 있다보니 천아가 그가 개인 행동을 하는 순간 큰일이 날 거라 생각했다.
"... 민의연 어딨어. 그 녀석 좀 오라고 해."
"메리가 의연은 아직 미국에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가능한 걸 바라거라."
"칫, 그 녀석은 어딜 싸돌아다니는 건데."
타개책이 전혀 보이지 않자 운룡이 짜증이 가득 담긴 한탄을 했다.
"유리한 건 저놈들인데 왜 계속 저쪽만 지원군이 오는 거냐."
중얼거리는 사이에 언데드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루시아를 발견했는지 그녀를 향해 활을 겨눴다.
"화살 같은 건..."
핑!
콰우우!
"...!"
평범한 화살에선 날 리 없는, 공기를 찢어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루시아는 언데드가 우박에 맞지 않는다는 보정만 걸렸다고 착각했지만, 사실은 이미 조연으로서 능력치 5배의 보정을 받은 상태.
평범과는 거리가 먼 화살을 보고 루시아가 일행이 있는 방향으로 급히 선회했다.
띠링.
[투사체가 필중합니다.]
루시아를 노리는 화살에 추가 보정이 적용되었다.
알림창을 본 루시아가 급히 깃털을 흩뿌리며 재밍을 걸었지만, 날아온 화살의 수가 너무 많았다.
루시아가 선지의 눈이 자신의 머리와 심장을 관통하는 화살을 봤다.
"큭!"
루시아가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고 몸을 비틀었다.
푹! 푸푹!
심장과 머리로 향하던 화살이 날개에 3발, 몸통에 2발 관통했다.
"아악!!"
즉사는 아니지만, 충분히 목숨이 위험할 공격을 허용한 루시아가 총에 맞은 새처럼 땅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루시아!"
억지로 유지하고 있던 전황이 순식간에 흔들렸다. 땅으로 추락하는 루시아를 본 천아가 비명을 지르며 그녀에게 뛰어갔다.
오로치 파티의 한조와 마이도 루시아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몸을 날렸다.
'기회! 하늘을 나는 능력은 없으니 땅으로 떨어지기 전에는 동료를 회수하여 도망칠 수 없을 터!'
'추락 지점에 '연옥화'를 미리 사용해 두면, 둘 중 하나는 확실히 처리할 수 있어...'
천아의 능력이 한조와 마이의 속도보다 우위다 하더라도 상황이 너무나 불리했다.
'루시아가 떨어지기 전에 공격받겠는데?!
고, 공격해볼까?
공격이 안 통하는 건 이미 알고 있잖아!
그래도 방해라도 해야지!
방해를 어떻게 하지?
몸으로 막아?
그러나 내가 공격받을 거야.
그것도 문제잖아.
안전하게 방해하려면 어떻게 하지?'
너무나 다급한 상황. 그 누구도 도와주지 못할 한 순간의 전투.
'놔두고 도망치자.
뭘?
단검! 단검 놔두고 도망쳐!
어디에?
한조와 마이의 눈앞에!'
그러나 그 덕분에 번뜩하고 떠오른 기발한 한 수.
천아의 생각을 이해한 다른 천아들이 이미 움직였다.
천아의 능력은 속도가 아니기에, 한조와 마이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사이에 그들의 눈앞에 갔다 오는 건 너무나 쉬웠다.
그리고 눈앞에 간 순간, 그들의 눈 바로 앞에 자신이 들고 있던 단검을 그대로 놔두고 돌아온다.
당연히 그냥 놔둔 단검은 땅으로 떨어지겠지만, 그것보다 빠른 속도로 한조와 마이가 단검을 향해 달려들었다.
힘의 공식에서 문제였던 속도가 해결된 것이다.
푹! 푹!
"아악!"
"아읏...?!"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단검에 반응하지 못한 둘이 스스로 단검에 달려들었다. 둘의 눈에 단검이 찔렸다.
한조와 마이가 자신의 눈을 붙잡고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기회다! 운룡! 저것들을 쓸어버려라!"
"명령하지 않아도 그 정돈 나도 알아!"
뿌드득!
분신이 한조의 충격에 잠시 멈칫한 순간, 운룡이 떨어져 내리는 우박 마저 전부 무시하며 쓰러진 한조와 마이를 향해 불괴를 휘둘렀다.
투과앙!
극강의 무력으로 쏘아진 강대한 충격파. 그 위력은 '잠룡의 일격'과 비등하거나 그 이상. 누가 봐도 평범한 공격은 아니었다.
"한조!"
"위험합니다!"
미코와 스즈란이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한조와 마이를 구하기 위해 그들의 앞을 막아서며 운룡의 공격을 막아냈다.
키기기깅!!
두 자루의 쿠사나기의 검이 운룡의 충격파를 비스듬히 받아내며 충격파의 방향을 비틀어 흘려넘겼다.
"... 너무 약했나?"
"약해 빠졌구나. 도움도 안 되는 것."
"시끄러워."
이번에도 운룡은 큰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이용해 천아가 10여 명으로 분열하여 추락하는 루시아를 겨우 받아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단숨에 일행들의 곁으로 돌아갔다.
충격파를 무력화시킨 미코와 스즈란도 일단은 동료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그들의 곁으로 이동했다.
"크윽... 도대체가 이게 말이 되는 능력이오?!"
"눈 아파..."
한조와 마이는 전투 중에 받았던 '평범한 공격 무효'의 보정 덕분에 눈을 잃는 치명상은 입지 않았다.
그러나 루시아 쪽은 상당히 문제가 컸다.
"어, 어떻게 해?! 치료할 수 있어?!"
날개의 3발은 그나마 치명적이진 않았지만, 오른쪽 어깨의 구멍과 옆구리가 뜯겨나간듯한 구멍은 확실하게 위험해 보였다.
"본녀는 사용할 수 있는 치료 주술이 없느니라. 피가 흐르지 않게 상처 부위를 얼려두는 것밖에 할 수 없느니라."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출혈사를 하는 것만 막을 뿐, 그 이상의 대처를 할 상황이 아니었다.
"죄... 송해요. 너무 방심을..."
"말하지 말거라. 일단은 이 상태로 버티는 수밖에 없느니라."
버티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버틸수록, 상황은 나빠져 간다. 화살로 원거리 요격을 했던 언데드 대군이 근처까지 도착했다.
너무나 편파적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래서였을까.
팅!
청아한 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콰과가가가각!
그리고 의연 파티를 향해 달려오던 언데드들의 한가운데에 거대한 검상이 나타나며 터져나갔다.
"이 소리는."
"단절공?! 단절공의 '찰나의 방울 소리'다!"
"도와주러 온 건가?!"
의연 파티를 공격하는 걸 목표로 움직인 언데드를 쫓아온 단절공이 의연 파티가 있는 곳으로 오는 건 필연적 우연이었다.
마룡제와 함께 하늘을 날아온 단절공이 언데드를 공격하다 의연 파티를 발견했다.
"... 저게 무슨 상황이야..."
루시아가 창백한 얼굴로 쓰러져 있는 걸 본 단절공이 중얼거렸다.
"단절공! 도와주세요!!"
단절공이 자신을 보고 있는 걸 본 천아가 손을 흔들며 도움을 구했다.
"어? 으음... 어..."
단절공이 천아의 물음에 깔끔하게 확답하지 못했다.
지금 단절공과 마룡제가 이곳에 온 건 순전히 언데드를 처리하라는 무적공의 명령을 위해서였다. 더군다나 오로치 파티와 의연 파티의 싸움에 끼어들지 않기로 약속을 한 이상, 아무리 눈앞에서 그들이 위험하다 해도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단절공~!"
"언니, 괜찮다고 생각해요. 상황이 너무 심각해요."
"... 그래. 상황이 이 지경인데. 오히려 무시하는 게 말도 안 되지."
마룡제의 말에 생각을 굳힌 단절공이 의연 파티에게 접근하려 했다.
띠링!
하지만, 신들은 언데드의 난입과 달리 공의회의 난입은 허락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주인과 멀리 떨어진 일부 언데드들이 지배에서 벗어나 본능에 따라 행동합니다.]
꺄아악!!!
근처에서 갑자기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상황인지 확인하기 위해 마룡제가 주변을 탐색하자 의연 파티를 향해 곧장 달려가던 언데드 일부가 근처 건물에 숨어있던 일반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게... 이게 뭔 엿 같은 상황인데!"
"[Summon Queen(여왕 재림)]! 언니! 일반인의 구조를!"
꺄아아악!
갑작스런 선택의 기로에 빠진 단절공이 눈알을 굴리며 의연 파티와 습격을 받는 일반인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리고 결국,
"미안해! 지금 너흴 도울 여력이 없어!"
아무런 힘도 없이 언데드의 손에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일반인들을 선택했다.
"에에! 루, 루시아가 많이 위험해요! 저희도 구해주세요!!"
천아가 단절공에게 필사적으로 소리쳤지만, 목숨이 위험한 건 루시아뿐만이 아니었다.
"으으...! 회생공! 회생공을 찾아가!! 그분은 어떤 상황이라도 환자가 우선이신 분이야! 아마 도와달라고 말하면 루시아도 치료해 줄 거야! 미안! 우린 이 이상 도와줄 수 없어!!"
결국, 단절공과 마룡제는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그대로 '이야기'의 바깥으로 퇴장하고 말았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