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주인공 야마타노 오로치 시점 10 [과거 덮어쓰기]
늦은 밤.
심부. 독설화의 집무실.
퍼억!
"아야. 아파요. 설화 누님."
방금 전까지 오클라호마주의 한 마을에 있다가 심부로 돌아온 의연이 독설화에게 정강이를 걷어차이고 있었다.
"멍청이! 본녀가 절대로! 웃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웃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죄송합니다. 순간 메리의 어릴 때 모습이 떠올라서..."
"그딴 건! 변명이! 되지! 않느니라!!"
불과 5분 전만 해도 평범한 사람들은 감히 말조차 걸지 못하고 고개도 들지 못하는 그런 존재였던 민의연이 독설화에게 마구 까이고 있었다.
"네놈은 첫 등장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것이냐!"
퍽! 퍽! 뻑!
"알아요. 알고 있으니까 그만 차세요. 피멍 들겠어요."
끝없이 정강이를 걷어차는 설화의 다리를 의연이 어떻게든 양팔로 붙잡았다.
그러자 이번엔 독설화가 의연의 멱살을 붙잡아 올렸다.
"아니! 네놈은 아직도 지금 네가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느니라! 그러니 그딴 짓을 하지!"
"으윽... 나... 는 왜 매번 이렇게 멱살을 붙잡히는 거지..."
공중에 떴다간 오히려 더 맞을 거라고 생각한 의연이 신세 한탄을 했고 설화는 노기 어린 표정으로 계속 소리 질렀다.
"공과 사를 구분 하거라! 자신의 행동이 미래에 얼마나 큰 영향이 갈지 확실히 머릿속에 각인시키거라! 네놈의 행동으로 화향이의 미래가 결정된단 말이다!! 멍청한 것! 시킨 것도 못하는 녀석!"
설화가 의연을 인형처럼 마구 흔들어댔다.
"으엑... 죄, 송, 합니... 다~"
설화의 힘에 맥없이 흔들리던 의연의 겨우겨우 사죄하자 설화가 그를 약간 난폭하게 내려놓았다.
그래도 집어 던지진 않아서 넘어지진 않았다.
미친듯이 흔들렸더니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던 의연이 정신을 차리기 위해 머리를 살짝 흔들었다.
퍽.
멱살을 붙잡혀 구겨진 옷매무새를 정리하는 의연을 설화가 거칠게 밀어 의자에 강제로 앉혔다.
"다시 한 번 설명해 주마! 똑바로 새겨듣거라!"
"넵."
"이 세상은 이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네 말대로라면, 과거에 신들의 도구로써 이용되었던 야마타노 오로치 파티가 신의 명령을 수행하는 신의 사자. 즉, 주인공이며 네놈은 그런 '이야기'의 빌런. 이 세상을 어지럽히려는 악마에게 이용당한 사악한 사교도. 즉, 사이비니라!"
"사이비..."
설화의 노골적인 말에 의연이 볼을 긁적였다.
"신들도 그런대로 잘 판단한 것이지. 본녀가 봐도 네 녀석의 이명. 구원망의 메시아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완벽한 사이비 교주가 될 수 있는 능력이니 말이다."
"딱히 저는 종교인도 아닌데요."
"그것도 문제니라. 네놈이 그렇게 말해도 가지고 있는 능력은 이 세상의 신들의 것과 유사하지 않느냐."
설화의 말은 사실이었다.
민의연의 능력은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아주 익숙한 것들임과 동시에 특별한 것이었다.
민의연이 이명의 능력으로 지금 사용할 수 있는 상징은 3가지.
'순교의 십자가'는 의연이 입는 피해와 죄를 흡수하는 기적과 시선 집중, 언령의 기적을 행사한다.
'구리 뱀'은 보는 자로 하여금 믿음에 따른 강력한 치유의 기적을 일으킨다.
'가시 면류관'은 세상의 이치를 비트는 기적을 일으키며 물을 가르거나, 물 위에 뜨게 하거나, 물질의 양을 늘리거나, 변환시키는 기적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세뇌에 가까운 힘. 죽여도 죽지 않는 피해 무효. 상황에 따라 치유교를 뛰어넘는 치유력. 마법으로도 막아내기 힘든 재앙을 소멸시키고 불가능한 현상을 일으키는 기적까지.
"심지어 그런 능력을 얻은 자가 한국에서 유명한 악마 계약자이자 쾌락 살인마인 희대의 악당."
"끄응~"
"신들이 사교도라 몰아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사교도로 몰릴 수 있는 상황이니라."
"그건 이유가..."
"알고 있다. 당연히 이유가 있겠지. 악마를 소환했던 걸 뭐라 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죽인 것도 뭐라 하는 게 아니다. 허나 그런 일을 벌이려면 완벽하게, 절대로 들키지 않게 했어야지. 대놓고 그런 짓을 벌이니 이런 불리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니라."
"... 네."
"그러니 네 녀석은 완전히 다시 태어나야 한다. 완전히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독설화는 민의연이란 빌런의 과거를 뒤덮으려 했다.
"네 녀석에 대한 악명이 거의 전해지지 않은 이 미국에서."
과거의 악명을 뛰어넘을 명성으로.
"네 녀석은 정말로 선택받은 존재여야 한다. 이 세상에서 구원을 바라나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구세주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주인공들이 네놈을 사악한 사교도라 칭해도 널 직접 목격한 자들은 너를 사교도가 아닌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한 능력은 충분했다.
아니. 충분하다 못해 아주 적합했다.
"주인공까지는..."
찌릿!
독설화가 의연을 '생각 안 하고 말하면 또 쥐어 터질 것이다.'라며 노려봤다.
"해야죠. 주인공을 이기려면 당연히 주인공이 돼야죠."
"... 그러려면 과거의 모습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 그러기 위한 연기다. 신성하고 완벽하고 인간의 탈을 썼으나 인간이 아닌 고고한 존재. 그게 바로 네가 이 '이야기'에서 연기해야 할 존재란 말이다! 알겠느냐!"
"넵."
"좋다."
전력으로 계획에 대해 설파한 독설화가 힘을 다한 것처럼 자신의 의자에 몸을 날렸다.
"후우~ 화향이가 바빌론을 나오는 그날까지 네놈은 쉴 시간도 없을 것이다. 이 나라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전부 해결하고 다녀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시간도 아깝다."
"네. 저는 괜찮아요. 그런데 이동 마법진은 괜찮은 건가요? 아까 보니까 사용되는 자원이 엄청나던데..."
사람을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마법은 이 세상에서도 극히 희귀한 종류의 마법이다.
당연히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는 한정적이고 무한한 마나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신의 축복인 '마나 하트'를 지니고 있는 이치공 정도가 아니라면, 사용 자체가 비효율을 넘어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본녀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미국의 지배자죠."
"......"
의연의 답변에 진심이냐는 표정으로 의연을 쳐다보던 설화는 고개를 저어댔다.
"그냥 조언자일 뿐이니라. 아무튼, 마법진에 들어가는 마력은 걱정할 필요 없느니라. 그래 봐야 한 달 정도. 그리고 후를 생각한다면, 망가질 때까지 써도 상관없느니라."
심부에서 미국 각지로.
미국 각지에서 심부로.
안 그래도 믿을 수 없는 기적을 뿌리는 민의연에게 독설화는 신도 쫓을 수 없는 신출귀몰한 다리까지 달아주었다.
그리고 심부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가는 민의연이 미코의 예지에 걸리지 않기 위한 방법도 준비되어 있었다.
"어서 주사위나 굴리거라. 이 나라에는 대응할 수 없는 재난이 차고 넘치느니라."
"네."
운명의 길을 비틀어 버리는 의연이 직접 던지고 그 결과를 독설화만이 아는 계산식으로 해석하는 주사위 던지기.
의연이 설화에게 받은 13개의 각기 다른 모양의 주사위를 한꺼번에 던졌다.
뎃, 데구루루~
"... 274인가."
대충 흘깃거린 것으로 계산을 끝낸 독설화가 274의 숫자에 걸려있는 위치를 지도를 통해 확인했다.
"그거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
13개나 되는 주사위를 간단히 계산해내는 독설화를 보며 궁금증이 샘솟은 의연이 별생각 없이 중얼거렸다.
"알 필요 없느니라."
설화는 알려줄 생각 없는지 즉답했다.
"록. 밖에 있느냐."
그리고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 록을 불렀다.
철컥-
"불렀어?"
"호놀룰루로 보낼 준비를 하거라. 사고가 발생하면 곧바로 보내면 된다. 아마도 해상사고겠지."
"오케이~ 가자. 의연."
"네."
의연이 록을 따라서 방을 나섰다.
"민의연."
"넵?"
뒤에서 부르는 설화 때문에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봤다.
"앞으로는 절대로 완벽한 연기를 해야하느니라. 알겠느냐!"
척!
의연이 독설화에게 과장되게 경례했다.
"넵."
그리고는 다시 록을 따라 집무실을 나갔다.
"... 하아~ 걱정이 사라질 생각을 안 하는구나."
독설화는 여전히 근심어린 표정으로 곰방대를 물고 중얼거렸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