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장. 주인공 민의연 시점 10 [용]
의지.
어떠한 일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
어떠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내적 욕구.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게 한다.
어느 세상의 '이야기'에선 자신의 부하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잘린 머리를 들고 미친 듯이 뛰어갔던 장수가 있었다.
어느 '이야기'에선 박해받던 순교자가 자신의 잘린 머리를 들고 8천 보를 걸어가 독실한 신도에게 자기 머리를 맡기고 그 자리에서 쓰러진 성인이 있었다.
그리고 중간계에선, 전신을 검에 찔린 채 자신의 스승과 어린아이들을 구한다는 일념으로 한계를 초월했던, 멈춰버린 '이야기'의 어떤 주인공이 있었다.
그 어떠한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오리지 자신의 의지로 기적이라고 불릴 일을 실현 시키는 존재들.
그들은 초월자라고 불린다.
****
잠운룡이 계획한 것은 과거에 '운룡을 일격'을 생각했던 것과 같을 정도로 단순무식했다.
기절해도 자력으로 깨어나는 것처럼 죽더라도 1초 정도는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정말 미친놈이냐.라는 말이 입에서 멋대로 튀어나올 거 같은 말도 안 되는 계획.
계획같지도 않은 계획 하나만을 생각하고 자신의 오른팔에 아주 작은 여력만 남긴 채 '운룡의 일격'을 날렸다.
'죽으면 움직인다. 죽으면 움직인다. 죽으면 움직인다. 죽으면 움직인다. 죽으면 움직인다. 죽으면 움직인다. 죽으면 움직인다. 죽으면 움직인다.'
자신의 체중조차 지탱할 수 없어 땅으로 쓰러지며 목숨이 꺼져가는 순간에도 죽음에 대한 공포를 전혀 느끼지 않을 정도의 불굴의 정신력.
오로지 자신의 오른팔을 움직이겠다는 필생의 의지.
약간의 문제라고 한다면, 생사를 몇 번이나 오갔던 운룡이라 하더라도 완전한 죽음을은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 한 것이었다.
생각을 하고 있는 본인이 지금 죽은 건지, 아직 죽지 않은 건지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육체는 이미 죽었음에도 죽었다는 확신이 없기에 움직이지 않았던 운룡의 오른팔.
그러나 이런 '작은 착오'는 마찬가지로 '작은 계기'로 해결되었다.
"운~! 룡~!"
동료의 부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운룡의 육체가 멋대로 반응했다.
팔을 들어 올렸다. 고작 1초 정도 움직일 수 있는 여력을 전부 끌어모았다.
그리고 가슴을 후려쳤다.
멈춰버린 심장에 자신의 의지를 억지로 쑤셔 박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야 도달했다. 이제야 같은 선상에 섰다. 움직여라. 일어나라. 눈을 떠라. 깨어나라. 깨어나라!'
두근.
그의 의지는 죽음 저편에 잠들어 있던 용을 깨웠다.
****
쿠웅...!
땅이 흔들렸다. 기분 탓 같은 게 아니었다. 심장 박동 같은 소리가 들릴 때마다 서 있는 땅이 울려 의연 일행이 비틀거렸다.
콰득! 콰드득!
뼈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99층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들은 메리와 천아는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쿠웅..! 쿠웅..!
속도가 빨라졌다. 방금까진 잠들어 있는 상태였다면, 방금 막 잠에서 깬 것처럼 주기가 점점 짧아졌다.
그리고,
'진룡', 잠운룡이 천천히 눈을 떴다.
용龍.
중간계와 태양계 지구에선 소설에나 나오는 허구의 짐승.
론과 루시아가 살던 에니시아에서는 실물을 본 사람이 없다고 알려진 전설의 몬스터.
운룡과 화향이 살던 풍림천 대륙에선 전설로 내려오는 환상의 동물.
여러 세상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용'은 모두 다른 외형과 다른 특징을 지녔지만, 모든 '이야기'에서 똑같이 표현되는 것이 있다.
결코 범접할 수 없고, 그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규격 외의 존재이자 모든 생명체의 정점에 위치한 유일 포식자.
지금 막 잠에서 깨어나 상체를 일으킨 잠운룡이 바로 '용'이었다.
"......"
아직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운룡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고, 몸을 이리저리 만져보며 자신의 상태를 확인해봤다.
"... 아담이나 의연처럼 개인기로 할 순 없겠군."
평소처럼 실없는 소리를 했지만, 지금 그의 근처엔 그 장난에 어울려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근처에 있는 거라곤 이미 한참 전에 2페이즈에 돌입하여 전투 준비를 끝냈었던 마더, 그러나 지금은 그 거대한 몸으로 똬리를 뜬 채 자신의 눈곱보다 작은 운룡을 보며 어떻게든 위협적이게 보이기 위해 코브라처럼 몸을 부풀리고 있는 마더 뿐이었다.
마더는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분명 눈곱만 한 인간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신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게 됐고 그 후에는 자신과 싸울 정도로 위협적인 존재가 됐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보다 먹이 사슬의 위치가 더욱 높아졌다.
마더는 자신보다 작은 체구의 운룡이 아니라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신보다 더 거대하고 흉포한 기운을 보고 있었다.
운룡이 마더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걸 느끼고 눈을 마주쳤다.
"이 뱀 자식은 왜 나한테 눈을 부라리고 있는 거야."
너무 거대해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마더의 눈을 보며 운룡이 짜증을 냈다.
그러자,
-쿠아아아아아!!!
마더는 몸을 일으키며 필사적으로 운룡을 위협했다.
"뭐야, 지금 나랑 해보자고?"
자신을 보며 소리를 지르는 마더를 보자 운룡은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졌다. 느낌이 웬 강아지가 자신에게 대드는 것처럼 너무나 건방지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똑같이 해주겠다는 생각을 했다.
왠지 모르게 전보다 더 커진 폐활량으로 숨을 최대한 들이쉬고, 단전에 있는 힘껏 힘을 주고, 소리쳤다.
"갈!!!!"
콰가가각!
소리 지르는 것만으로 그의 목소리는 충격파로 변하며 날아갔고 운룡이 서 있던 장소가 통째로 흔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를, 운룡의 짜증과 적의를 정면으로 받은 마더는,
쿠우우웅!!
방금까지 하늘을 뚫을 것처럼 세웠던 자신의 머리를 땅에 처박으며 머리를 조아리며 방금까지 자신이 벌인 행동을 후회했다.
본능에 저항하지 않고 처음부터 고개를 숙이거나 도망쳤어야 했다고 바빌론 99층의 지배자이자 월드 보스급 몬스터인 마더 우로보로스가 생각했다.
"호오. 생각보다 내가 많이 세진 거 같은데."
그런 마더의 모습에 운룡이 특별할 것 없는 건조한 반응을 보이며 자신의 무기인 불괴를 쥐었다.
"일단, 이 뱀을 처리하는 게 제일 먼저니까... 응?"
불괴를 잡는 감각이 평소랑 달라 손을 확인하니 분명 평소처럼 쥔 불괴가 마치 잘 녹인 설탕처럼 운룡의 손 모양대로 찌그러졌다.
'운룡의 일격'을 마구 사용했을 때도 휘는 것에 그쳤던 불괴가 휘두르기도 전에 부서지는 것을 보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 나중에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해야겠군."
그냥 너무 험하게 다뤄서 그런 거로 대충 생각을 끝내버린 운룡이 잠시 고민했다.
자신 앞에서 도망도 치지 못하고 그저 머리를 처박고 눈에 보일 정도로 떨고 있는 마더를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지 생각하던 운룡은 기발한 생각이 난 것처럼 활짝 웃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꼭 한번 해보고 싶었지."
그가 생각한 것은, 예전에 바빌론의 층 하나를 박살 냈던 중국 지배자, 황룡의 필살기인 '초시황제 군림보'.
황룡처럼 특별한 내공 운용법은 전혀 모르지만, 지금의 자신이라면 대충 비슷하게 따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거기다 지금은 전력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쓰러지지 않던 99층 월드 보스라는 좋은 발판도 있다.
"뭐, '일격'을 사용할 때처럼 다리에 전력을 다 실어서 발을 구르면 되겠지."
운룡은 황룡이 했던 것을 떠올리며 가볍게 한 발자국 나아갔다.
사뿐... 으지직!!
운룡이 딛고 있는 대지가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는 것처럼 즉시 비명을 질렀다. 내디딘 발을 기준으로 대지가 거미줄처럼 금이 가기 시작했다.
쿠웅!
운룡이 가볍게 발돋움하여 아직도 벌벌 떨고만 있는 마더의 머리를 향해 점프했다.
금이 갔던 땅은 그것 만으로 산산조각 났다.
순식간에 머리에 도착한 운룡의 오른 다리는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크큭! [초시황제군림보 - 일보]."
꿈꾸던 일을 직접 할 수 있게 됐다는 즐거움에 호쾌한 웃을을 띈 운룡이 황룡을 따라 마더의 머리를 향해 오른 다리를 있는 힘껏 내디뎠다.
무의 진수를 담아 만들었던 극의였던 황룡의 '초시황제군림보'와 다르게 그저 육체 능력만으로 그것을 실현하려는 잠운룡의 아둔함.
쿠과가가가...!
지금의 운룡은 그것을 가능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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