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주인공 야마타노 오로치 시점 31 [만능. 허나 불가능.]
'회생공이 어디 있을까.
치유교로 가는 건 어때?
전투 중에 다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니, 그러다 공격받으면 어떻게 해.
애초에 치유교가 우릴 받아줄까?
도대체 어디 계시는 걸까.
회생공도 전투직은 아니니까 안전한 곳으로 가 계시지 않을까?'
천아는 계속해서 달렸다.
루시아를 업고 시간과 공간을 접으며 달렸다.
그녀에게 보이는 길에 따라 짧게는 100m를 한 걸음으로, 길게는 1km를 한 걸음으로 만들며 달렸다.
'조금, 힘드네.
이렇게 오래 뛴 건 처음이야.
틈새에서는 아무리 뛰어도 지치질 않았으니까.
거기선 늙지도 죽지도 않으니까.
힘들다는 건 오랜만이야.'
그러나 그녀 본인은 평범한 여인.
천천히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서울 끄트머리에서 서울 중심에 있는 공의회 본부까지 자신의 다리로 움직였다.
앞으로 얼마나 더 움직여야 할지 모르지만, 회생공을 찾아 계속 달렸다.
그리고.
목에서 계속 느껴지는 옅은 열기.
'나 그때 베인 거 맞지?
베이긴 무슨, 살짝 닿았을 뿐이야.
피가 좀 나긴 했지만, 무적공이 곧바로 치료해 줬잖아.
목에서 화끈거리는 건 기분 탓이야.
... 죽을 뻔했네.'
틈새에 갇혀 있을 땐 죽고 싶다고 미친 듯이 발광했던 천아.
그러나 죽지 못하고 결국 미쳐버려 죽음에 대한 공포도 없어진 지 오래였다.
... 그러나.
의연의 도움으로 중간계에 오고, 꿈에 그리던 생활을 지내다 보니 그녀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생에 처음으로.
정말로 죽을 뻔했다는 것을 이제 와서 자각하기 시작했다.
덜덜...
다리가 아주 조금, 떨렸다.
평범한 여인에 불과한 천아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가 마음 한 쪽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건,
"어? 뭐야, 이 메뚜기들은?"
"으으, 벌레는 좀..."
"왜 모여 있는 거지?"
그녀에게 최악의 상황을 야기 시켰다.
****
분수 광장.
자신의 능력인 '다이묘'를 사용한 후에 오로지 방어만을 전념하며 만능성의 공격을 버티고 있는 야마토.
그리고 그런 야마토를 보며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그를 쓰러트리기 위해 전력으로 공격하고 있는 만능성.
공의회 본부의 무적공과 불살공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전심전력을 쏟아붓고 있는 상황.
"아! 만능성! 만능성도 회복 마법 사용할 수 있었지!"
"만능성! 도와줘!!"
"루시아가 다쳤어!"
그곳에 갑자기 천아가 난입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야마토와 만능성에게 닿았다.
둘의 시선이 천아에게 향했다.
'사교도의 동료?! 도대체 어떻게 이곳에!'
'천아?! 왜 여기 있는 거지?!'
야마토와 만능성의 움직임은 동시에 멈추고, 사고는 맹렬히 돌아갔다.
'지원온 건가?! 설마 동료를 쓰러트리고... 아니, 아니다. 분명 도와달라고 말했어. 그렇다면, 지원 온 것이 아닌 구조 요청.'
'도와달라니 갑자기 무슨 소리지?'
그리고 둘 다 천아의 등 뒤에 업혀 있는 루시아를 발견했다.
'부상자. 동료가 승기를 잡았나. 치료를 위한 지원 요청? 하지만 지금 만능성은 분명 마나가 전혀 없을 터.'
'루시아?! 다친 건가!'
그리고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의 결정.
'이건 기회다! 내가 처리할 기회! 절대로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돼!'
야마토는 만능성이 아닌 갑자기 나타난 천아와 루시아의 처리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회복 마법은... 잠깐! 나 지금 마나가 없는데?!'
하지만 만능성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불가능하다고 깨달았다.
그 한순간의 지체.
탓!
야마토가 만능성보다 약간 더 빨리 움직였다.
"처, 천아! 일단 도망쳐!"
"어?!"
"도망치래!"
"도망쳐!"
만능성의 말에 천아는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일말의 고민조차 하지 않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
그녀가 한 걸음 옮기면 그것으로 도주의 성공.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도주.
'절대 죽인다!!!'
오싹!!
그러나 등 뒤로 느껴지는, 평소라면 알아채지 못했을 강렬한 살기.
무의식적으로 뒤돌아 본 시선을 가득 채우는, 자신을 죽이기 위한 야마토의 의지.
그리고 그것을 실천에 옮길 크고 날카로운 흉기.
이곳에 오기 전까지 제대로 느껴본 적 없었던, 자신을 진심으로 죽여버리겠다는 잔혹한 살의가 천아를 붙잡았다.
"아."
태어나서 처음으로 체감한 죽음의 공포.
포식자 앞에 선 피식자처럼 움츠러든 전신.
거기다 피로가 축적되어 경직된 근육.
타,닷.
"어."
결국, 그녀의 발이 꼬였다.
천아가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도망치지 못했다.
당연하게도, 야마토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순식간에 천아의 앞에 도착한 야마토의 쿠사나기의 검이 비틀거리는 천아의 목을 노렸다.
쎄에엑!
전력을 다한 횡 베기. 천아의 눈에 들어온 날카로운, 자신의 목숨을 끊을 날붙이. 발이 걸려 넘어지고 있는 천아로선 피할 수 없는 참격.
'죽는다!
위험해!
피해!'
피하라는 자신들의 외침이 있음에도 천아는 본능에 따라 눈을 감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쿠사나기의 검은 천아의 목 지척에 도달했다.
'베어냈...!'
그러나,
쭈욱!
야마토의 검이 천아의 목에 닿기 직전.
그녀의 몸이 갑자기 땅으로 꺼지듯 예상보다 빨리 넘어졌다.
쿠사나기의 검이 천아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 움직일 수 있었던 건가!'
야마토가 분한 표정으로 천아의 뒤쪽을 노려봤다.
넘어지는 천아의 몸을 끌어 당긴 것은 다름 아닌 그녀에게 업혀 있던 루시아.
선지의 눈을 통해 자신을 업고 있는 천아의 목이 떨어져 나가는 걸 보고 억지로 팔을 움직여 그녀의 몸을 잡아당긴 것이다.
'아직...! 아직 남았다!'
허나, 야마토의 공격은 언제나 두 번째 공격이 존재했다.
쉬이익!
쿠사나기의 검에서 보랏빛 뱀이 2마리가 튀어나왔다.
쿠당!
넘어진 천아와 루시아. 그리고 목표를 노리는 뱀의 독니.
루시아가 어떻게든 천아만이라도 지키려고 날개를 펼쳐 막아보려 했지만,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날개는 그녀를 지키기엔 너무나 느렸다.
콰악! 콰즉!
"아악!"
"으윽..."
결국, 뱀의 독니가 루시아와 천아를 깨물었다.
"멈춰!"
한 발 늦은 만능성이 야마토를 걷어찼다.
쾅!
천아와 루시아를 죽이는 것만 생각하고 있어, 그 이후의 대응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야마토는 만능성의 다리에 걷어차이며 그대로 분수에 처박혔다.
"커헉!"
큰 충격을 받은 야마토가 쓰러진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만능성은 그대로 천아와 루시아의 상태를 확인했다.
루시아는 날개. 천아는 쇄골 부분을 물렸다.
물린 부위로부터 보라색의 독이 전신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아아... 아, 아파... 아아악!"
천아가 순식간에 퍼져 나가는 독에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끄흐.... 윽! 흑..."
루시아는 이미 한계에 도달한 건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만능성은 곧바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마, 마법. 회복 마법을... 다시 '전능의 권능'으로 수명과 마나를 교환.'
'아니, 아직 메뚜기 떼가 남아있어. 회복 마법을 사용할 수 없어'
'애초에 내 회복 마법으론 절대 이 독을 해독할 수 없어.'
'어떻게... 어떻게 해야...'
만능성은 눈앞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천아와 루시아를 놔두고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 일단 메뚜기 떼가 없는 곳으로 이동을.'
'움직이는 사이에 둘이 죽는다면?'
'차라리 수명을 전부 바쳐서 일단 메뚜기 떼의 처리를...'
'불가능 해. 너무 많아. 그럴 시간이 있을까?'
'그럼 그냥 마나를 갉아 먹히면서 회복 마법 사용은...'
'효과가 나타나기도 전에 마나를 전부 먹히고 말거야.'
"아파! 아파! 아파!! 누, 누가 좀...!"
"처, 천아......"
5초도 되지 않는 사이에 끝없이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 끝에 도달한 것은.
'내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절망적인 결론밖에 없었다.
'할 수 있는 게... 나는, 만능성인데... 어째서,'
붉게 충혈된 눈으로 동료를 바라봤다.
바로 눈 앞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동료.
자신도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이미 경험해서 알고 있는데.
그런데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극도의 무력감, 절망감이 전신을 짓눌렀다.
'뭐가, 만능성이냐. 뭐가... 뭐가 신도 무릎 꿇릴 수 있다는 거냐. 동료 하나 구하지 못하면서. 뭐가 잘났다고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어떻게... 어떻게 해야... 나는 어떻게 해야..."
눈물이 흘러내렸다.
전신이 무력감에 덜덜 떨려왔다.
그저 지켜 보고 있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 아..."
"으......"
천아와 루시아의 비명이 점점 잦아들었다.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보랏빛으로 물든 몸이 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생명이 꺼져갔다.
"아... 아... 누가 좀..."
빌지 않을 수 없었다.
"제발... 제발..."
"[고통받는 자여.]"
귓속을 파고드는, 시선을 끌어당기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우웨엑!!"
"... 미코 양?"
미쿠니 미코. 미래를 예지하는 무녀가 갑자기 땅을 짚으며 구토했다.
"하늘이..."
어두웠던 하늘이, 순백의 빛을 내리쬐기 시작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