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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P

욕망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굴P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3.05.08 18:0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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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1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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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협상

DUMMY

#1


“피노?”


거리낄 것 없이 나아가던 차량의 급정거에 사무엘은 감고 있던 눈꺼풀을 열었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젊은 남자, ‘피노’ 라 불린 그가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핸들러.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무엘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창 밖의 풍경을 확인했다. 칙칙한 색의 하늘과 차갑게 마른 사막의 지평선이 보이는 곳, 아마 시라비아 국경을 코앞에 둔 장소였다.


“비켜줄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피노는 정면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시선 끝에는 국도를 꽉 틀어막은 군용 바리케이드와 그 너머에 늘어선 군복 차림의 사내들이 있었다.


“회색에 검은 무늬 군복.. 게르파 군단이군요.”

“게르파 군단?”

“전직 군인들로 이루어진 마피아라 보면 됩니다. 옛 시라비아 정규군 출신들로 이루어져 있고 현재는 시라비아 마피아와 동맹 관계죠.”


거기에 사무엘은 ‘형식뿐인 동맹’ 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피노는 그 말뜻을 곧바로 이해했다.


제아무리 전직 군인 출신의 베테랑들이라고 해도 시라비아의 거대한 땅덩어리를 전부 집어삼킨 시라비아 마피아들에겐 상대가 되지 않는다.

저들도 결국은 마피아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그들의 사냥개나 마찬가지였다.


“검문을 요구하는 걸 수도 있습니다.”

“검문이라니.. 저흰 연합의 외교관 신분이지 않습니까? 시라비아 측에도 이미 전달했을 텐데..”

“흠. 시라비아 마피아들답지 않군요. 이건 설마..”


바리케이드 너머를 바라보던 사무엘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의 무뚝뚝한 얼굴에서 아주 짧은 미소가 떠올랐다.


“내립시다.”

“예?”

“검문에 응해주는 게 좋겠습니다. 주란. 도착했습니다.”


사무엘은 옆자리에서 드르렁 코를 골며 곯아떨어진 여자를 흔들어 깨웠다. 졸린 눈을 비비적거리며 깨어난 그녀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 고개를 기우뚱했다.


“아직 사막 보이는데?”

“거짓말입니다. 내리시죠.”


태연하게 말하는 사무엘을 향해 눈을 치켜뜬 그녀였지만 곧 험악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불청객들을 발견하곤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렸다.


벌써부터 주변엔 시라비아 특유의 차가운 공기가 내리깔려 있었다. 쭈뼛거리며 내린 주란은 조심스럽게 사무엘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사무엘은 평소처럼 정장 코트의 옷깃을 가다듬곤 아무렇지도 않게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피노와 주란은 서로 눈치를 보다 그 뒤를 따랐다.


“피노. 무슨 일이 있어도 능력 사용은 금지입니다. 주란은 조용히만 있으면 됩니다.”


앞서 걷던 사무엘이 말했다. 피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알겠노라 대답했고 주란도 똑같이 대답했다.


곧, 바리케이드를 지키던 군인의 정지 신호에 세 사람은 멈춰 섰다. 바리케이드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거리였다.


“킁.”


그들을 멈춰 세운 군인이 코를 훌쩍이더니 옆으로 비켰다. 그러자 그 사이로 한 쌍의 남녀가 걸어나왔다.


바리케이드를 지나 사무엘 일행의 앞에서 멈춰선 여자. 그리고 그녀를 지키듯 바로 옆에 선 남자.

그 두 사람의 모습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사무엘이 아니라 주란이었다.


“어? 너, 너..!”

“응? 저 여자 아직도 살아있네? 가짜 화련.”


주란의 당황한 얼굴을 보며 야차가 히죽 웃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주란의 시선은 야차의 옆에 선 시카를 향했다.


“내 호텔 날려버린 년까지 있잖아..?”

“...”


시카는 ‘아직도 그런 걸 신경 쓰나.’ 싶은 눈빛으로 주란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주란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만. 싸우러 온 게 아닙니다.”


사무엘은 주란을 향해 말했다. 과거 피안파의 화련으로 이름을 날리던 주란의 입장에선 시카와 야차는 모두 탐탁지 않은 상대들이지만, 지금은 어찌 됐든 지난 악연에 불과했다.


“다시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시카, 그리고 야차. 지난번 라이카에선 경황이 없어서 배웅도 못 해드렸군요.”

“...괜찮아요. 이거부터 받으세요.”


한 박자 늦게 대답한 시카는 사무엘에게 작은 통신용 이어폰 세 개를 건넸다.

그냥 보기엔 평범한 물건이었지만, 슬쩍 하늘을 확인한 사무엘은 이 물건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아베스타로군.’


사무엘은 이어폰을 받아 한쪽에 끼웠다. 그리고 나머지도 피노와 주란에게 하나씩 건넸다.

마침내 세 사람이 모두 이어폰을 착용한 뒤에야 시카는 말을 이어갔다.


“이제부터 그건 빼면 안 돼요.”

“역시 폭탄입니까?”

“네.”


아무 생각 없이 이어폰을 낀 피노와 주란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사무엘을 보았다.

정작 사무엘은 귀에 폭탄을 끼운 사람치고는 태평한 얼굴이었다.


“음. 이건 전부 산 팀장의 지시인가요?”


시카는 잠깐 뜸을 들이다 끄덕였다.


“좌표를 전송했으니 그쪽으로 이동해주세요.”


시카의 말이 끝나자마자 세 사람의 눈앞엔 홀로그램처럼 투명한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건 시카의 말대로 어딘가를 가리키는 좌표였다. 거리는 여기서 그다지 멀지 않았다.


“잠깐.. 기다..!”


주란의 애절한 목소리에도 시카는 홱 돌아서 바리케이드 너머로 돌아갔다. 그 뒤를 따라가는 야차가 주란을 향해 비웃으며 ‘꼴 좋다.’ 라는 입 모양을 했다.


“해, 핸들러..? 저희 지금 혹시..?”

“예. 인질이 된 겁니다. 반항하면 머리가 터지겠군요.”


사무엘의 무덤덤한 반응에 피노는 아연실색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주란은 안절부절못하며 귀에 찬 이어폰에 부들부들 손을 뻗으면서도 차마 건드리진 못했다.


“나, 나, 나 죽는 거야? 사무엘!?”

“아뇨. 안 죽습니다.”


사무엘이 먼저 차를 향해 돌아섰다.


“절대로 안 죽을 겁니다.”


어째선지 그의 목소리엔 확신이 차있었다.



#2


“나이스.”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던 산이 입꼬리를 늘어뜨리며 웃었다.


그의 미소에 맞은편에 앉아 담배 연기를 흘리는 오코넬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역시 달라졌군.”

“예?”

“너 말이야. 달라졌다고.”


물끄러미 오코넬의 하나뿐인 눈을 마주 보던 산은 어깨를 으쓱했다.


“저도 나이를 먹으니 달라져야죠. 언제까지 열다섯 꼬맹이도 아니고.”

“그래도 이렇게 깨작깨작 잔머리 쓰는 놈은 아니었는데. 어디서 배운 거냐?”

“음..”


확실히 이전까진 지시대로 행동하고, 어지간하면 칼과 총으로만 해결하던 산이었다.

그렇다고 ‘언제부터 바뀌었느냐’ 는 물음에는 딱히 생각나는 대답은 없었다. 고민 끝에 산이 말했다.


“아마도.. 헤이카?”

“나 참. 살면서 남자가 제일 조심해야 하는 게 뭔지 아냐?”

“뭔데요?”

“여자. 사내자식이 갑자기 바보짓 하는 거 열에 여덟은 여자 때문이야. 여자 하나 때문에 사람이 막 바뀌고 그러는 건 별로 좋지 않..”

“아이고,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곧장 본론으로 가시죠. 서로 바쁜 몸이니까.”


영업용 미소를 걸친 산은 재빨리 테이블 위에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다. 물끄러미 봉투를 바라보는 오코넬이 의아하다는 눈으로 담배 연기를 뿜었다.


“너 어디 아프냐?”

“예? 갑자기 뭔 소리래요?”

“전직 처형인이었던 놈이 멀쩡한 대가리 달고 나한테 돈으로 협상할 리가 없잖아.”

“그렇게 치면 그쪽도 꽤 바뀐 것 같네요. 처형인은 협상 따위 안 하던 거 아닌가?”


오코넬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 그것도 맞지. 이 테이블에 나온 것부터가 이상하긴 해.”

“제가 요구하는 건 하납니다. 플뤼테의 처형을 멈춰주시죠.”

“싫은데.”


오코넬은 조소와 함께 즉답했다. 입맛을 다시던 산은 테이블 위에 있던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시간을 끌었다.


에콰와 플뤼테의 충돌은 어떻게든 멈췄다지만 에콰가 눈을 뜨면 다시 플뤼테를 제거하려 들건 뻔했다.

그리고 에콰의 지시로 플뤼테를 ‘처형 대상’ 으로 인지한 오코넬과 그의 처형인들도 결국 플뤼테의 목을 떨구기 전까진 멈출 리가 없었다.


시라비아 마피아의 법대로라면 처형 대상을 살리는 구제법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필요한 건 오로지 예외와 우연. 그리고 기적을 만들어낼 편법뿐이었다.


“오코넬. 제가 지금 어떤 위치인지는 알고 있죠?”

“중재자.”

“예. 만약 제 제안을 무시하면..”

“널 중재자로 세운 플뤼테와 스토커도 우리와 전쟁을 하게 되겠지. 당연히 우릴 움직인 에콰도 마찬가지고.”


오코넬은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며 말을 이어갔다.


“최고 간부 사이의 싸움은 내전으로 크게 번질 거다. 보스까지 없는 이 상황에서 내전? 십중팔구 시라비아 마피아의 근간이 흔들리겠지. 시라비아 전체가 혼란에 빠질 테고, 이 틈을 노려 세계 연합의 평화 유지군이 너희 공업을 잡으러 들어올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 밑에서 고분고분 일하던 조직들도 기회를 노릴 게 뻔해. 그러다 허를 찔리기라도 하면 상황은 최악으로 흘러갈 테고.. 그 뒤에 벌어질 일은 두말할 것도 없지.”

“마피아와 기사들의 전쟁. 그 ‘황제 기사’ 는 아직 우릴 용서하지 않았으니까.”


오코넬이 늘어놓은 얘기는 모두 산이 예상하던 그대로였다. 말 그대로 조직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는 최악의 사태다.

어쩌면 이는 시라비아의 패권 다툼으로 번져 그 악몽 같던 마피아와 기사들의 전쟁을 다시 불러올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산 혼자만이 아니라 오코넬도 예상하고 있다는 건, 그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때문에 산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여기서 멈추는 게 정답인데.. 에콰와 오코넬은 왜 계속 이 싸움을 하려는 거죠?”

“필요한 일이라서.”


‘후-’ 하며 오코넬이 담배 연기를 뿜었다. 익숙한 냄새에 코를 훌쩍인 산이 돈 봉투를 가리켰다.


“이거 두 배로 줘도?”

“산아. 돈으로는 자유를 살 수 없다.”

“어째 예전에 해줬던 말이랑 다르네요.”


오코넬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이내 놀란 눈으로 산을 바라보았다.


“너.. 설마 내가 그날 해준 얘길 아직도 기억하는 거냐?”

“잊을 리가요. 부자가 되면 제 마음대로 살 수 있다면서요? 돈이 곧 자유라고. 구질구질한 칼잡이 생활이 질리면 돈부터 아득바득 모으라고. 오코넬이 그랬잖아요.”

“.....”


오코넬을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했지만, 다시 입을 닫았다. 그의 얼굴에서 착잡한 심정이 뚝뚝 흘러나왔다.


“뭡니까? 설마 이제 와서 그냥 해본 소리라고 하는 건 아니겠죠?”

“난 헛바람 넣는 소린 안 한다.”

“그럼 뭐가 문제예요? 왜 그런 표정을 짓느냐고요.”

“너 잘되라고 한 소리는 맞아. 근데 네가 조금 잘못 이해했어.”


산이 눈살을 찌푸렸다. 오코넬은 다 타들어 가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며 말했다.


“네가 나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길 바랐다. 시라비아에서 도망치는 게 아니라.”

“..뭐요?”

“시라비아에서 돈이 별로 쓸모없다 말하는 건 거리에 나앉은 놈들 얘기야. 얼추 벌어 먹고사는 놈들.. 특히 우리 ‘마피아’ 에겐 돈이 전부다.”


그렇게 말하며 오코넬은 연이어 새 담배를 꺼내 물었다.

‘팅’ 하는 맑은소리를 내며 그의 라이터가 담배 끝을 빨갛게 물들였다.


“조직에서 나 같은 칼잡이가 내세울 실적은 얼마나 머리를 많이 베었느냐다. 하지만 최고 간부쯤 되는 양반들이 내세우는 실적은 달라. ‘얼마나 조직을 키우느냐.’ 지. 쉽게 말하면, 얼마나 많이 벌어들이느냐는 소리다.”

“..하지만 플뤼테나 에콰는...”


산의 의문은 타당했다. 그러나 오코넬은 고개를 저었다.


“에콰와 플뤼테는 무력으로 최고 간부 자리에 올랐지. 그렇다고 그 두 사람이 매일같이 칼질이랑 총질만 할 것 같냐?”

“..아닌가?”

“당연히 아니지. 미다스와 베르몬드. 각자의 지역을 ‘관리’ 한다는 건 단순히 말썽 피우는 놈들 담그기만 해서 될 일이 아니야. 네가 모르는 곳에서 에콰와 플뤼테는 어떻게든 그 지역을 관리하고, 조직의 돈벌이에 기여하고 있었다.”

“...”


산은 슬슬 오코넬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그다지 기분 좋은 건 아니었다.


“돈을 아득바득 벌어서 최고 간부나 되라는 얘기였습니까? 그럼 시라비아 바깥 얘기는 왜 해줬대요?”

“말단 놈들이나 시라비아에 묶여 사는 거야. 간부쯤 되면 밖으로도 많이 돌아다니거든. 아예 밖에 사는 놈들도 있어. 시라비아에서만 박혀 있다간 조직도 뒤처지니까.”


당연한 얘기였다. 그리고 그 당연한 얘기를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산은 상당한 불쾌함을 느꼈다. 입안에 쓴맛이 도는 기분이었다.

그런 산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오코넬의 하나뿐인 눈이 무언가를 결심한 듯 단호한 기세를 머금었다.


“내 생각에.. 에콰는 널 새로운 보스로 키울 셈인 것 같다.”

“..예? 보스? 바르바로사?”


오코넬이 끄덕였다. 산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하게 웃었다.


“하. 말이 되는 소릴..”

“얼마 전 죽은 보스도 한때는 칼잡이였어. 그 전대도 싸움을 꽤 잘했다지. 그전은 쿠스카처럼 머리만 쓰는 부류였지만.. 어쨌든 역대 바르바로사들은 모두 그랬다. 처음부터 위에 섰던 인간은 없었어.”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쉰 산은 레모네이드를 마저 싹 비웠다. 투명한 유리잔 속, 남은 얼음이 달그락거렸다.

그 얼음이 녹고 빈 잔의 바닥에 다시 물이 고일 때쯤, 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설마 지금 에콰와 오코넬이 멈추지 않는 게 그거 때문은 아니죠?”

“솔직히 난 몰라. 에콰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거니까. 처형인은 처형에 이유를 따지지 않는다. 하지만 뭐, 눈치껏 보자면 네 말이 맞지.”

“..이봐요. 전 이미 시라비아를 등지고 떠난 배신잔데요? 이제 와서 돌아와 보스를 하라고? 보스를 죽이고 플뤼테에게 그 죄를 뒤집어씌워서 깨끗하게 자리를 마련해놨으니 돌아와라?”

“에콰가 직접 말한 적은 없어. 하지만 난 오랫동안 에콰의 곁에서 일했다. 내가 느낀 대로라면 틀림없어. 에콰는 널..”

“됐습니다.”


산은 남은 얼음마저 입에 털어 넣고 우적우적 씹었다. 그리곤 테이블 위에 내놓았던 돈 봉투를 냉큼 낚아채 코트 안주머니로 쑤셔 넣었다.


“에콰는 네가 시라비아를 떠난 8년간 계속 준비했다. 한 번도 널 포기한 적 없었어. 네 생사조차 모를 때도, 혹시나 모른다며 차곡차곡 계단을 쌓아올렸지.”

“그럼 그 잘난 에콰더러 보스 하라고 하십쇼. 왜 남의 인생을 자기들이 설계하는 건지 모르겠네. 젠장.”

“네가 납득하지 못하는 건 당연해. 나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나도 알겠더군.”


코트에 손을 넣은 오코넬은 낡은 시라비아제 권총을 꺼내 들었다. 산도 그 모습에 곧바로 주머니 속 카르마 나이프를 쥐며 벌떡 일어났다.


“세상은 시시각각 바뀌고 있고, 앞으로 더 큰 변화를 겪을 거다. 그리고 시대에 뒤처지는 건 곧 죽음이야.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선 시라비아 또한 바뀌어야만 한다.”


오코넬은 자신의 권총을 테이블 위에 내밀었다. 나이프를 뽑고 경계하던 산도 오코넬이 방아쇠를 당길 의사가 전혀 없다는 걸 깨닫곤 칼을 내렸다.


아직도 잘 작동하는 게 신기할 정도인 구식 시라비아제 권총.

그야말로 골동품이나 다름없는 그 총을 쓰는 남자의 입에서 ‘변화’ 라는 단어가 나오다니, 산은 그게 영 어울리지 않다고 느꼈다.

그 점은 오코넬 본인도 잘 알고 있으리라.


“총과 칼만으로는 이젠 시라비아를 바꿀 수 없어.”

“..그럼요?”

“새로운 게 필요해. 새로운 지도자, 새로운 기술, 혹은 혁명. 마피아들이 오래 해먹긴 했으니까. 바뀌는 것도 나쁘지 않지.”


누군가 듣는다면 당장 처형 대상으로 낙인이 찍힐지도 모를 위험한 발언이다.

그 말을 마피아 처형인들의 꼭대기에 선 남자가 직접 한 것이다. 산은 오코넬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그 속내를 읽으려 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오코넬은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고 갖고 노는 부류는 아니었다. 그는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다.


“자, 난 카드를 냈다. 협상을 더 이어가려면 너도 뭐든 내놔봐. 그런 푼돈 말고.”

“...”


다시 자리에 앉은 산이 팔짱을 꼈다. 그 고심 가득한 얼굴을 보던 오코넬이 피식 웃으며 담배를 내밀었다.


“됐습니다.”

“..그래. 낼 수 있는 패가 당장 없다면..”

“대가를 내죠.”

“뭐?”


오코넬의 하나뿐인 눈이 휘둥그렇게 뜨였다.


“뭐라고 했냐?”

“대가. 에콰가 절 구제한 것처럼 저도 대가를 내고 플뤼테의 처형을 막겠습니다. 어때요?”

“너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하는 소리냐?”

“뭐든 하나 내면 되잖습니까? 돈이든, 물건이든, 콥스 바탈리온 대원들 몇 명도 괜찮고, 콩팥도 두 개니까 하나쯤은..”


쾅!

테이블을 내려친 오코넬의 주먹에 요란한 소음이 났다. 가게에 다른 손님은 없었지만, 유일하게 남아 있던 바텐더도 놀란 눈을 끔뻑거리며 오코넬을 보았다.


“에콰가 뭘 위해서, 뭘 바쳤는지 정말 모르는 거냐?”

“예?”

“내 이 눈깔이 왜 없어졌는지도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냔 말이다.”


오코넬은 꽃무늬가 들어간 자신의 안대를 가리키며 말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산에겐 알 수 없는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의 남은 눈은 불타오르는 것처럼 이글거렸다. 참수도로 사람의 목을 썰어대던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노기였다.


“젠장. 에콰는 이런 멍청한 새끼 때문에..!”

“대체 뭐라는...”

“됐다.”


오코넬은 거칠게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3일.”

“예?”

“네가 다른 패를 낼 수 있도록 생각할 시간. 3일 뒤에 다시 플뤼테의 목을 치러 움직이마.”


그런 말을 남긴 오코넬은 산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메마른 구둣발 소리를 내며 자리를 떴다.

덩그러니 남은 빈자리, 그 앞에 반쯤 남은 술잔을 바라보며 산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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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마법사의 보답 +2 23.05.05 153 10 13쪽
262 광야(曠野) 헤이카 미켈런 +2 23.05.04 174 12 15쪽
261 재회 +1 23.05.03 166 11 15쪽
260 사막, 괴물, 어린 칼잡이들 +3 23.05.02 161 11 12쪽
259 라푸스 벤데르드 +2 23.05.01 168 9 20쪽
258 욕망 시대(13) - 사무엘(Samuel) +2 23.04.28 169 8 17쪽
257 욕망 시대(12) - 눈 내리는 날 +1 23.04.27 162 8 15쪽
256 욕망 시대(11) - 죽음이 아닌 삶을 바라게 될 때까지 +1 23.04.26 157 7 14쪽
255 욕망 시대(10) - 강철의 기사 23.04.25 154 9 15쪽
254 욕망 시대(9) - 소리 없는 침식 +1 23.04.24 165 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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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욕망 시대(7) - 길을 잃고 +1 23.04.20 164 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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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개벽(27) - 시카 23.03.17 165 9 17쪽
227 개벽(26) - 36년 +1 23.03.16 233 9 17쪽
226 개벽(25) - 빛바랜 세상 +1 23.03.15 167 9 13쪽
225 개벽(24) - 문 23.03.14 174 9 18쪽
224 개벽(23) - 본보기 +1 23.03.13 166 9 16쪽
223 개벽(22) - 옛 동료 +1 23.03.10 176 10 16쪽
222 개벽(21) - 마지막 조각 +1 23.03.09 181 10 21쪽
221 개벽(20) - 흐름 23.03.08 173 10 16쪽
220 개벽(19) - 시라비아의 햇빛 23.03.07 179 10 15쪽
219 개벽(18) - 영웅 증후군 23.03.06 204 10 16쪽
218 개벽(17) - 친구인가 적인가 23.03.03 183 10 16쪽
217 개벽(16) - 습격 23.03.02 182 10 14쪽
216 개벽(15) - 헤르그부르 23.02.28 190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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