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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P

욕망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굴P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3.05.08 18:05
연재수 :
2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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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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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91,941

작성
22.10.1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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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추천
11
글자
17쪽

그의 욕망

DUMMY

#1


“도착했습니다.. 핸들러..”


머리를 터뜨릴지도 모를 폭탄을 귀에 꽂고 운전을 한다는 게 피노에겐 꽤 힘든 일이었는지, 그는 녹초가 된 상태로 말했다.


사무엘은 그런 피노에게 끄덕여주며 차에서 내렸다. 그 뒤를 서둘러 따라 내리는 주란이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항구 도시였다. 그것도 바다가 보이는 부둣가였다.

쉴 새 없이 배가 드나드는 곳이라 오가는 사람도 많았고, 그만큼 보는 눈도 많았다. 사람들은 한눈에 봐도 외지인처럼 보이는 사무엘 일행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경계하는 눈초리였다.


“꺄악! 히아아악!!”

“뭐, 뭡니까!?”

“방금 소리 났어! 소리! ‘삑’ 하는 소리 났다고!”


연신 자기 귀를 가리키며 주란이 소리쳤다. 그녀는 이미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인 얼굴이었다.


“...아직 안 터지니까 오세요.”


그런 사무엘 일행을 향해 말한 것은 시카였다. 주란은 그녀를 보더니 ‘아직?’ 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더 창백해졌다.


사무엘은 묵묵히 시카를 따라갔다. 피노는 덜덜 떠는 주란을 붙잡아 겨우 사무엘의 뒤꽁무니를 쫓았다. 이따금 또 ‘삑’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지 그때마다 주란은 비명을 지르곤 했다.


그들이 부둣가 구석을 향해 이동할수록 사람도 적어졌다. 무언가 상자를 가득 쌓아놓은 창고들이 줄지어 늘어선 곳이었다.

그런 구석진 부둣가 귀퉁이를 돌자마자 시카가 멈춰 섰다. 사무엘 일행도 그녀를 따라 멈췄다.


“오, 왔냐?”


그 안쪽, 박스에 걸터앉아 곤봉을 만지작거리던 야차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사무엘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두 사람 외엔 다른 공업 직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야차, 시카. 여러분이 전부입니까?”

“일단은. 그렇다고 덤벼들 생각은 하지 마라. 그 폭탄 진짜거든.”

“싸우려고 온 게 아닙니다. 저흰 외교관 신분이니까요.”

“말은 잘하네.”


야차가 박스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리곤 곤봉에 무언가를 칭칭 감더니 그 끝에 달린 버튼을 누르자 곤봉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가 곤봉에 휘감은 게 작은 전구 장식이라는 걸 깨달은 사무엘은 의아한 얼굴로 그의 행동을 살폈다. 야차는 빛나는 곤봉을 하늘로 치켜들곤 휘적거렸다.


그 행동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하던 사무엘은 멀리서 들려오는 굉음에 하늘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수송선..”


어지간하면 무뚝뚝하던 사무엘조차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피노와 주란은 자기 귀에 꽂힌 폭탄에 대한 것도 까맣게 잊고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내 야차의 곤봉 불빛을 따라 다가온 이클립스의 수송선이 고도를 낮춰 바다와 지면의 경계에 걸쳤다. 수송선 옆문이 벌컥 열리며 검은 슈트들이 우르르 내렸다.


“코, 콥스 바탈리온..!”


피노가 경악하는 동안, 완전 무장 상태의 콥스 바탈리온 대원들은 사무엘 일행을 빙 둘러싸며 포위했다. 그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에 사무엘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마지막으로 수송선에서 내린 산이 검은 코트를 탁탁 털며 사무엘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그가 이미 나이프를 뽑은 상태라는 걸 깨달은 피노가 사무엘의 눈치를 살폈다.


“능력 사용은 금지입니다.”


사무엘은 피노에게 다시 한번 말했다. 피노는 불안한 얼굴로 끄덕였다.


“음. 다시 봐서 반갑고. 이런 식으로 재회한 건 아쉽네요. 사무엘? 아니면 박민욱 씨?”


산은 느긋하게 말하며 그의 앞에 섰다. 사무엘이 대답했다.


“지금은 사무엘의 신분으로 왔습니다.”

“그럼 사무엘로 하죠. 거기 ‘가짜 화련’ 도 오랜만이네. 원래 이름이 뭐더라?”

“..꺼져.”


주란이 노골적으로 싫다는 티를 냈다. 그러자 산이 히죽 웃으며 자기 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제야 귀에 폭탄이 달려 있다는 걸 다시 떠올린 주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는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


“주.. 주란...”

“맞아. 주란. 그쪽 아저씨는 처음 보네요?”

“이쪽은 피노라고 합니다. 저와 같은 레베스타 에이전트입니다.”

“아아, 에이전트구나. 능력은 뭐?”

“기밀입니다.”


사무엘의 단호한 대답에 산은 대충 끄덕였다. 사무엘은 주변을 에워싼 콥스 바탈리온을 바라보며 산을 향해 물었다.


“산 팀장님. 먼저 묻겠습니다. 저희가 세계 연합의 외교관 신분으로 온 건 알고 계시겠죠?”

“알죠. 이런 짓 했다간 곱게 끝나지 않을 거란 것도 알고요.”


산이 휘릭거리며 카르마 나이프를 손안에서 돌렸다. 찰칵거리며 칼날이 번쩍일 때마다 주란이 움찔했다.


“세계 연합에서 뭐랍니까? 시라비아 마피아랑 교섭해서 저희 끌어내랍니까?”

“예.”


사무엘은 순순히 대답했다. 산은 만족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근데 마피아랑 교섭 같은 게 통할 거라 생각했으면 오산일 텐데.”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무조건 하라더군요. 역시 세계 연합의 윗대가리는 모두 멍청한 노인네들뿐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의 적나라한 비판에 산은 웃음을 터뜨렸다. 사무엘도 그를 향해 미소 지었다.


“연합 외교관이자 레베스타 에이전트들인 당신네를 버리는 패로 쓴 거겠네요?”

“그렇겠죠. 마피아에게 저희를 던져주고, 저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걸 빌미로 평화 유지군이 쳐들어오려는 것 같더군요.”

“크게 나왔네. 세계 연합은 시라비아 마피아랑 전쟁을 하려는 겁니까? 쉽지 않을 텐데.”

“그 정도로 헤이카 미켈런을 막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산의 웃음기 섞인 표정이 서서히 메말랐다.


산과 사무엘.

두 사람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마치 서로의 속내를 탐색하듯, 두 눈동자가 조금씩 뒤섞였다.


이따금 들이치는 파도 소리, 멀리서 울리는 뱃고동이 세 번쯤 울렸을 때쯤 산이 머리 위로 손을 저었다.

사무엘 일행을 둘러싼 콥스 바탈리온이 뒤로 물러났다.


“자리를 옮기죠.”


사무엘이 끄덕였다.



#2


산과 사무엘은 부둣가 구석의 창고로 들어섰다.


안에선 퀴퀴한 곰팡내와 그 속에 슬그머니 섞여든 생선 비린내가 났다. 오랫동안 쓰지 않았는지, 창고 내부엔 먼지가 쌓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런 장소에서 산은 녹슨 의자 두 개를 끌고 왔다. 산이 앉자 맞은편에 사무엘이 앉았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창고의 철문이 닫혔다. 그리고 낡은 전구에 불이 들어와 창고 내부를 밝혔다.


“...”


이 창고 안에 있는 건 오로지 산과 사무엘뿐이었다. 사무엘은 게슴츠레한 시선을 산에 옮기며 물었다.


“팀장님. 에이전트의 위험성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알고 있죠.”

“그런데 이렇게 위험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건 제가 얕보인 건가요? 제가 지금 능력이라도 쓰면..”

“애초에 나 잡을 생각 없잖아요?”


사무엘의 놀란 얼굴이 스쳐 지나가듯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내 사무엘의 입가엔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역시 산 팀장님껜 숨길 수가 없군요. 많이 티가 났나 봅니다.”

“엄청 티 나거든요. 애초에 당신 그렇게 머리 나쁜 타입도 아니고. 뭔가 꿍꿍이가 있으니 여기 온 거 아닙니까?”

“예. 맞습니다. 전 제 의지로 세계 연합의 외교관으로 지원했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산 팀장님을 만나뵐 수 있게 됐군요.”


사무엘의 목소리가 묘하게 들떠있었다. 산은 그럴수록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가장 성가신 상대는 단순히 무력으로 짓누르는 상대가 아니다. 무력과 머리를 모두 사용할 줄 아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성가시고, 위험했다. 그리고 사무엘은 딱 그런 타입이었다.


“사실 전 팀장님께 조금 건설적인 이야기를 하러 왔습니다.”

“설마 또 사업 제안은 아니겠지..”

“이미 받으신 제안도 있는 모양이군요. 비슷합니다만, 전 사업 파트너가 아니라 공업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엉?"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사무엘의 주변 공기가 일그러지며 파장이 터졌다. 동시에 눈을 부릅뜬 산의 카르마 나이프가 섬뜩한 빛을 뿜어냈다.


산은 사무엘의 능력을 알지 못했다.

지난번 캔들 회수 팀으로 함께 일했을 때도 몇 번이나 사무엘이 능력을 사용하는 걸 봤지만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공업에 돌아와 따로 조사를 요청했음에도 사무엘의 능력에 대해선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에이전트는 경우에 따라 국가의 병기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그 능력의 정체가 극비에 부쳐져 어지간해선 알 수 없다는 건 그만큼 강력한 능력이라는 의미기도 했다.


때문에 산은 망설이지 않았다. 카르마 나이프가 매섭게 바람을 갈랐다.


“어?”


산은 얼빠진 얼굴로 허공을 가르는 카르마 나이프를 보았다. 재빨리 고개를 돌렸지만 사무엘의 모습은 없었고, 애초에 주변은 더 이상 먼지 쌓인 창고도 아니었다.


“!”


갑작스러운 총성에 산은 몸을 낮췄다. 하지만 총성의 방향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사방에서 울렸기 때문이다.

그때, 한 남자가 몸을 낮춘 산의 옆을 뛰쳐 지나갔다. 움찔한 산이 그를 올려다보았지만, 남자는 산을 신경도 쓰지 않고 달렸다.


‘군인?‘


군복 차림의 남자는 철모를 쓰고, 소총을 든 채 뛰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얼마 가지 못해 총을 맞고 쓰러졌다.

커다란 포성에 산은 귀를 막았다. 바로 근처에서 흙더미가 하늘로 치솟았다.


“여긴..”

“전쟁터입니다. 정확히 36년 전, 연방과 피스칼이 멘두스 강의 소유권을 두고 다툰 전쟁이었죠. 정작 멘두스 강은 이 전쟁의 여파로 오염됐지만요.”


산은 재빠르게 나이프를 내밀었다. 그의 나이프를 내려다보면서도 사무엘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능력?”

“제 능력은 말로 설명하기엔 조금 복잡합니다. 다만 지금 이 전쟁터는 산 팀장님께 아무런 위해도 가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산 팀장님도 개입할 수 없죠.”

“환각이란 겁니까?”

“비슷합니다. 팀장님과 다툴 생각은 없습니다. 이건 제가 팀장님께 개인적으로 보여 드리고 싶은 시대의 역사입니다.”


‘역사’ 라는 단어에 산은 눈살을 찌푸리며 전쟁터를 천천히 훑었다.

처참하게 찢겨나간 사람들, 무너진 건물, 으스러진 지반에 깔려 비명을 지르는 군인들의 모습이 생생했다.


“현재 황성 인류는 약 15억에 조금 못 미칩니다. 대재앙 직전을 기준으로 100억 명에 가깝던 옛 지구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습니다.”


그런 전장을 천천히 걸으며 사무엘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바로 옆에서 울부짖다 숨이 끊어진 군인을 바라보던 산이 터덜터덜 사무엘을 뒤따랐다.


“그리고 인구수가 너무 많아 골칫거리였던 지구와 달리 지금은 오히려 수가 계속 감소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줄어들기만 하죠.”

“..그래서?”

“이대로 가다간 머지않아 인류는 다시 멸망합니다. 농담처럼 나오던 인류 멸종이 다가오는 겁니다.”


어느새 전쟁터의 풍경은 바뀌었다. 산은 이젠 놀랍지도 않다는 듯 다시 주변을 훑어보았다.

이번엔 전쟁터가 아니라 시라비아의 빈민가였다. 그것도 훨씬 옛날로 추정되는 풍경이었다.


말라 비틀어 죽은 부랑자의 시신 위로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구석의 판잣집에선 그나마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의 살점을 넣고 고깃국을 끓이고 있었다.

젖이 나오지 않아 죽은 갓난아기를 끌어안고 울던 어머니는 아이의 시신을 빼앗겼다. 어린아이는 먹기 편하다는 이유였다.


“...”


산은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다. 다 쓰러져가는 시라비아 빈민가의 풍경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 모든 것은 ‘지옥’ 이라는 한 단어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세상은 변화가 필요합니다.”


사무엘의 말에 산은 그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걸었다. 그리고 오코넬도 비슷한 말을 했음을 떠올린 산이 물었다.


“다들 변화. 변화. 그 소리만 하는데.. 뭐 요즘 유행하는 거랍니까?”

“다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던 겁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점 세상으로 나오기 시작했죠. 계기는 공업의 행보였습니다.”

“음?"

“하늘 탈환.”


산은 ‘아’ 하는 소리를 내며 끄덕였다.


“괴물에게 빼앗긴 하늘을 되찾는 것도 하나의 변화죠. 하지만 헤이카 미켈런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이상의 변화를 향해 움직일 겁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죠? 공업에선 아직 아무런 발표도 없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시대를 이끌어가는 공업의 주인이 단순히 하늘만 되찾고 만족할 거라곤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욕망이란 끝이 없으니까요.”


사무엘의 걸음이 멈춰선 곳은 사막이었다. 그제야 주변 풍경이 황량한 사막으로 뒤바뀐 걸 깨달은 산이었다.


사막엔 옛 문명이 모래를 뒤집어쓴 채 죽어있었다.

기술력의 수준은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겠지만, 이 모래 아래 잠든 것의 규모는 지금까지 복원한 문명의 수백 배는 될 것이다.


그리고 사막은 계속해서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새로운 인류가 쌓아올리는 것보다 사막이 문명을 잡아먹는 속도가 압도적으로 빨랐다.


"산 팀장님. 사람은 저마다 기본적인 욕구 외에도 크게 갈구하는 욕망을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돈이고, 누군가는 먹는 것이며, 누군가는 하늘을 향한 갈망이기도 하죠.”

"그리고 제가 바라는 욕망은 행복입니다."


산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행복은 누구나 원하는 거잖아요? 안 행복하고 싶은 사람이 어딨습니까?"

"그렇죠. 하지만 전 남들보다 훨씬 더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

"누군가 저주를 걸었습니다. '넌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라고 말입니다. 그건 그 사람의 유언이었고, 전 거부권도 없이 그 유언을 위해 살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손짓하자 주변은 계속 바뀌었다.

마치 영화 속 장면들이 스쳐 가듯 세상 곳곳에서 벌어진 불행과 부조리의 역사들이 계속됐다.


"그런데 행복하게 살기엔 세상이 이런 모양이더군요. 썩어 문드러지고, 계속 망가지고 있습니다. 시시각각 멸망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가고 있는 겁니다.”

“이것저것 많은 일을 해보았지만 이런 세상에선 어떻게 해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전 세상을 바꾸고자 여러 시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에이전트가 된 것, 레베스타에 간 것, 베네딕트 의장을 도와 캔들과 몬스터 리바이어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도 모두 그런 이유였습니다.”


그 모든 시도는 실패했다. 산은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지만, 사무엘의 침울한 얼굴엔 그런 실패의 절망감이 아직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내 사무엘의 눈빛에 알 수 없는 희열이 나타났다. 그의 입가가 기쁨을 주체할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실패뿐이었지만, 결국 찾아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세상을 바꿔버릴 수 있는 인간이 있었단 말입니다. 제가 상상할 수도 없는 규모로, 힘으로, 말도 안 되는 배짱으로 세상을 뒤바꿀 괴물이 있었습니다.”


바뀌던 풍경은 갑자기 높은 산의 정상에서 멈췄다.


하늘이 코앞에 있는 것처럼 가까웠다. 거칠게 들이치는 칼바람에 산이 얼굴을 가렸다.


{ !!!!! }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짐승의 울음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요동쳤다. 괴수의 포효에 산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기 시작했다.


“...!”


그런 산의 눈에 누군가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산 정상의 가파른 가장자리에 우두커니 선 여자. 검은 머리칼이 바람에 마구 나부껴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그녀는 물끄러미 하늘의 전쟁을 바라보고 있었다.


‘헤이카.’


산은 속으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걸음 나아갔다. 그리고 또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조금씩 가까워지는 헤이카의 뒷모습에 산은 어느샌가 달리고 있었다.


그의 발소리를 들었는지, 멍하니 하늘만 향하던 헤이카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등 뒤로 거대한 아가레스의 주둥이가 쩍 벌어졌다.


“헤이카!”


당황한 산이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했다.


그렇게 뻗은 손은 허공을 움켜쥐었다.


“...”


주변은 어느새 처음의 먼지 쌓인 창고로 되돌아와 있었다.


퀴퀴한 먼지와 곰팡내. 옅은 생선 비린내.

칙칙한 전구의 불빛이 내리깔린 창고에서 산은 앞으로 뻗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산 팀장님.”


온갖 감정에 휩싸여 멍하니 있던 산은 사무엘의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왔다.

사무엘은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는 갑자기 깍듯하게 허리를 숙였다.


“당신의 에이전트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헤이카가 아니라?”

“아뇨. 당신이어야만 합니다.”

“이유는?”

“아직은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믿어주십시오.”


산은 사무엘의 정수리를 노려보다 한숨을 쉬었다.


“그쪽의 뭘 믿으라는 겁니까? 연합의 외교관이 날 낚아서 함정에 빠뜨리려는 걸지도 모르는데.”

“그렇담 신뢰를 얻는 게 가장 먼저겠군요. 지금 오코넬과의 협상 결렬로 곤란한 상황이시죠?”


산은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라는 얼굴로 사무엘을 노려보았다.


사무엘은 천천히 고개를 들며 미소 지었다.


“제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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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52 K.S
    작성일
    22.10.12 19:39
    No. 1

    언뜻 보면 헤이카가 검집이고 산이 검인 듯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반대일 것이라고 믿거나, 그렇게 되길 소망하는 것 같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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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광야(曠野) 헤이카 미켈런 +2 23.05.04 173 12 15쪽
261 재회 +1 23.05.03 165 11 15쪽
260 사막, 괴물, 어린 칼잡이들 +3 23.05.02 160 11 12쪽
259 라푸스 벤데르드 +2 23.05.01 167 9 20쪽
258 욕망 시대(13) - 사무엘(Samuel) +2 23.04.28 168 8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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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개벽(22) - 옛 동료 +1 23.03.10 175 10 16쪽
222 개벽(21) - 마지막 조각 +1 23.03.09 180 10 21쪽
221 개벽(20) - 흐름 23.03.08 172 10 16쪽
220 개벽(19) - 시라비아의 햇빛 23.03.07 178 10 15쪽
219 개벽(18) - 영웅 증후군 23.03.06 203 10 16쪽
218 개벽(17) - 친구인가 적인가 23.03.03 182 10 16쪽
217 개벽(16) - 습격 23.03.02 181 10 14쪽
216 개벽(15) - 헤르그부르 23.02.28 189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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