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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P

욕망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굴P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3.05.08 18:05
연재수 :
2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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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065
추천수 :
3,417
글자수 :
1,991,941

작성
23.03.2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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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17쪽

개벽(28) - 가능성

DUMMY

#1


손목에는 수갑이, 그걸로도 모자라 처음에 풀어줬던 구속구가 다시 상체를 꽉 조이고 있었다. 그나마 다리가 자유로운 건 배려가 아닌 내가 스스로 걷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혹시 나한테 악감정 있어요?”

“없어요.”


껴안고 대성통곡하던 여자는 어디 가고 내 뒤에 바짝 붙어 따라 걷는 시카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냉랭한 시선이 뒤통수를 쿡쿡 찌르는 게 느껴졌다.


“그럼 이것 좀 풀어줘요.”

“...”


시카는 대답 대신 어서 걸으라는 듯 내 등을 밀었다. 죄인은 죄인답게. 하는 수 없이 난 계속 걸었다.


‘이제 어쩌지?’


엠마 얘기를 꺼낸 게 실수였나? 시카는 이대로 엠마까지 잡을 셈인 모양인지 내게 안내를 지시했다. 하지만 엠마를 잡는 거라면 자기 부하들을 시켜도 됐을 텐데, 왜 굳이 직접 나서지?


예나지금이나 여전히 시카의 속내는 잘 모르겠다. 묻는다고 대답해주지도 않는다. 이대로 엠마까지 붙잡히면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린 그 도시로 끌려가서 베르나데트에게 브레인 코팅이란 걸 당하는 건가?


욕구가 억제된다는 건 쉽사리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당하는 건 썩 내키지 않았다. 고민 끝에 난 걸음을 우뚝 멈추고 말했다.


“아! 이거 길 잃은 것 같은데!?”

“산 팀장은 거짓말하는 법을 배워야겠어요.”

“진짜로 잃었는데요?”

“당신은 거짓말할 때 늘 상대의 눈을 피해요. 그리고 말끝에 힘이 들어가요. 표정이나 행동도 부자연스럽고요.”


그래. 난 거짓말을 더럽게 못 했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냥 안내하기 싫다고 하면요?”

“엠마 노리스의 구속은 포기할게요.”

“그렇게 쉽게?”

“대신 청소를 해야 해요. 이 일대는 무인 지대로 되어있으니, 폭격이 떨어져도 상관없겠죠.”


겉모습은 바뀌지 않아도 역시 세월에 사람은 바뀌나 보다.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엠마가 말한 ‘지하실’ 이 폭격에도 견딜 방공호라면 모를까, 그 낡아빠진 폐가에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했다. 시카가 말하는 청소는 절대 안 된다. 엠마는 둘째치고 알산나가 아직 그곳에 있었다.


일단 화제를 돌리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아, 아깐 왜 그런 거예요? 내가 그렇게 그리웠어요? 울고불고 껴안을 정도로?”


시카는 다시 걸으라는 듯 내 등을 쿡 찔렀다. 난 어깨를 으쓱하곤 걸음을 이어갔다.


“근데 나한테 뭐 물어볼 거 없어요? 왜 이런 얼굴로 여기 있는지 안 궁금해요?”

“거울 연못에서 넘어온 거잖아요. 아마 과거에서.”


시카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베르나데트가 거울 연못 반응을 확인하고 노페이스 팀을 보낸 거니까요. 거울 연못은 지금 이 시대에, 베르나데트가 가장 경계하는 변수예요. 원래대로라면 열릴 리가 없으니까.”

“..정말 단 하나도 안 남겼어요? 베르나데트가 숨겨둔 거울 연못이라던지..”

“없어요. 헤이카가 준비한 계획의 첫 단계는 하늘 청소였고, 두 번째가 전 세계의 거울 연못을 닫는 거였으니까요.”


그 헤이카다. 만약이라는 변수를 남겨둘 리가 없지. 이젠 정말로 체념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알산나의 말만 들었더라면. 그 절망이라는 놈이 부추기지만 않았더라면.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결국 모든 게 내 책임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알산나의 말을 듣지 않은 것도 나였고, 절망이라는 놈이 부추기지 않았더라도 난 거울 연못에 발을 들였을 거다.


거듭되는 후회에 한숨만 푹푹 나왔다. 속으로 내 욕을 해봐도 후련해질 리가 없었다.


“..핸들러가 말한 게 생각났어요.”


그렇게 터덜터덜 걷고 있는 내게 시카가 말했다. 난 걸으며 그녀를 슬쩍 돌아보았다.


“무슨 말이에요?”

“언젠가 핸들러가 그랬어요. ‘문이 열리고 가능성이 찾아온다.’ 라고요. 문이 거울 연못이라면, 가능성은 당신을 말하는 건가 봐요.”

“어.. 잘 모르겠는데, 그보다 사무엘이 살아있어요?”

“핸들러.. 사무엘은 지금 병원에 있어요. 캔들 후유증 때문에 상태가 안 좋아요. 나이도 있으니 얼마 못 갈 거예요.”


사무엘도 아직 있구나. 문득 다른 팀원들이 떠올랐다.


“야차는요?”

“죽었어요. 베르나데트한테 덤볐다가.”

“..자리만은?”

“떠났어요. 어디로 간진 몰라요. 언제 떠났는지도 기억 안 나요.”


야차는 죽고, 자리만과 콥스 바탈리온은 떠났다. 그리고 사무엘은 늙고 병들어 병원 신세. 실감은 안 되지만 모두 사실일 것이다. 여긴 어찌 됐든 미래니까. 받아들여야 했다.


“머스칼은 어떻게 됐죠?”


난 가장 중요한 걸 물었다. 아직도 머스칼이 있을까? 마법을 쓸 수 있나? 머스칼의 마법으로 날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 줄 수 있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시카는 잠시 뜸을 들였다. 대답을 머릿속으로 고민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이 길었던 것치고 시카의 답은 간결했다.


“몰라요.”

“모른다니..”

“언제부턴가 사라졌어요. 아마 헤이카 회장이 문을 닫으러 아시리아로 간 이후.. 였던 것 같아요. 회장은 머스칼과의 계약이 아시리아에서 끝났다고 했어요.”

“계약이 끝나요?”

“잘.. 기억은 안 나요. 너무 오래전이니까. 하지만 그 이후로 머스칼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어요. 헤이카 회장이 죽을 때도, 죽은 뒤에도.”


헤이카가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니. 헤이카와 머스칼이 모종의 계약 관계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머스칼이 그렇게 냉담할 줄은 몰랐다. 적어도 헤이카의 마지막은 곁에서 지켜볼 줄 알았는데.


“시카는.. 어쩌다 아직도 그런 모습이에요?”

“...아직도 초재생이 있으니까요.”

“초재생에 노화 방지도 있던가? 아니, 지금 여긴 감응자가 사라졌잖아요. 어떻게 초재생이 남았어요?”


시카는 우울한 표정을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난 더 캐묻길 포기했다.

그렇게 한동안 조용하던 시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은 왜 나타난 거죠? 혼자 도망쳐놓고..”


마치 질책하는 듯한 말이었다. 이쪽의 나는 공업을 떠났다고 했다. 시카는 그걸 도망쳤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물론, 실제로 도망친 게 맞을 수도 있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공업을 떠난 지는 전혀 모르겠으니까. 헤이카가 죽은 뒤에 떠났다면 그럴 듯하기도 하다. 돈은 돈대로 모았을 테고, 헤이카도 없으니 공업에 더 이상 남아있을 필요도 없었겠지.


난 시카에게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을 이야기했다. 시라비아의 구멍, 거울 연못, 그리고 왜 멍청하게 그곳에 뛰어들었는지. 내 이야기가 끝나자 시카는 내 어깨를 붙잡아 세웠다.


“가능성..”

“예?”

“당신은 헤이카가 문을 닫기 전에 온 거죠?”


거울 연못이라면 내가 들어갈 때도 멀쩡하게 열려있었으니, 그렇다고 할 수 있었다. 난 시카에게 끄덕였다.


“문이 열리고 가능성이 찾아온다.. 돌이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사무엘이 그랬어요?”

“..헛소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정신이 온전치 않아요. 그래서 아무 의미도 없는 말들을 자주 하곤 했어요.”

“그럼 그것도 그냥 헛소리 아닌가.. 난 돌아갈 방법이 없는데요.”

“엠마 노리스.”


갑자기 엠마의 이름을 말하는 시카였다. 난 고개를 갸우뚱했다.


“베르나데트가 그녀를 찾으려는 이유는 그녀가 로봇을 훔쳐 달아나서가 아니에요. 과거 헤이카 회장을 돕던 케니 박사의 연구 자료를 엠마 노리스 가지고 도망쳤기 때문이에요.”

“음.. 그래서 그게 왜요?”

“케니 박사는 거울 연못을 되살릴 연구를 하고 있었어요. 그의 연구 자료는 베르나데트가 가장 경계하는 변수였죠.”


시카가 하려는 말을 단번에 이해했다. 그렇담 엠마가 가진 연구 자료엔 거울 연못을 열 수 있는 단서가 있다는 얘기였다.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에 가슴이 쿵쿵 뛰었다. 하지만 난 여전히 수갑을 차고 있고, 이곳에선 무력하다.


“시카는 어쩌고 싶어요?”


지금은 그녀의 대답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2


돌아와 보니 엠마의 집은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아마 시카의 부하들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간 듯했다.


“벌써 잡혔나?”

“알산나와 엠마 노리스를 확보했다는 보고는 없었어요.”

“그럼..”


지하실이라고 했었다. 난 집을 구석구석 뒤졌다. 솔직히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하실 입구로 보이는 건 적어도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입구가 외부에 있는 건가? 고민하고 있었더니 벽난로 옆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곳엔 시카가 물끄러미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 터뜨리기 전에 말 좀 해줘요. 놀랐네.”

“여기예요.”


난 눈 씻고 찾아봐도 안 보이는 지하실 입구를 시카는 잘도 찾아냈다. 시카는 소형 폭탄에 구겨진 지하실 문의 틈새에 손을 넣어 당겼다. 마룻바닥이 덜컥 열렸다.


그것과 동시에 불쑥 튀어나온 총구가 시카를 겨눴다. 시카는 총구의 움직임에 맞춰 천천히 물러났고 열린 지하실 입구에선 굳은 얼굴의 엠마가 나왔다.


“엠마. 그 사람은..”

“당신 미쳤어요!?”


엠마가 소리쳤다. 그렇게 경계하는 노페이스의 팀장과 함께 돌아왔으니 저런 반응도 이해할 순 있었다.


“엠마. 시카는 그쪽 잡으려고 온 게 아니에요.”

“무슨 말이에요! 지금까지 이 여자 손에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요!?”

“쏴요.”


시카가 말했다. 식은땀까지 흘리던 엠마는 눈살을 찌푸렸다.


“뭐라고요?”

“머리를 쏴요. 어차피 안 죽을 거 알고 있잖아요? 쏘고 도망치는 게 더 나을 거예요.”

“...”

“쏘지도 못할 총은 겨누는 거 아니에요.”


시카는 순식간에 엠마의 손에 들려 있던 총을 낚아챘다. 코앞의 거리. 총이라곤 쏴본 적도 없어 보이는 엉성한 모양새였으니 저렇게 빼앗기는 건 당연했다.


총을 뺏긴 엠마는 이를 악물며 뒷걸음질쳤다. 그런 엠마의 앞에 시카가 무언가를 툭 던졌다. 폭탄인 줄 알았는지 움찔한 엠마였지만 그건 폭탄이 아니라 리모컨이었다. 아마 기폭 장치일 것이다.


“줄게요.”

“이게 뭐..”

“기폭 스위치예요. 노페이스 팀원들의 목줄에 연결되어 있어요.”

“모, 목줄?”

“누르고 싶으면 다 눌러요. 제 목에도 있으니.. 도망갈 시간은 벌겠죠.”


시카는 자기 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엠마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기폭 장치를 집어들었다.


“거짓말이라면요..?”

“눌러보면 알 텐데요.”


고민하는 듯 보이던 엠마는 긴 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기폭 장치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난 당신 같은 살인자랑 달라.”

“...”

“무슨 꿍꿍이에요? 옛 동료라서 뛰쳐나간 거예요? 그리고 공업에 다시 붙어먹으려고?”


엠마는 날 쏘아보며 물었다. 시카를 보자마자 뛰쳐나간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몸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어쩌면 시카를 만나는 게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시카는 지금 내 구속을 풀어줬고, 나와 함께 여기까지 왔다. 그녀는 날 도와주기로 했다.


“그럴 생각 없습니다. 난 돌아가는 걸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거든요. 시카는 아군이에요.”

“아군..? 하아.. 말했잖아요. 거울 연못은 더 이상 없다고. 베르나데트가 숨긴 것도 없어요. 이 여자한테 무슨 소릴 들은 거예요?”

“엠마. 당신 아버지인 케니 박사는 거울 연못을 되살리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면서요?”


엠마는 휘둥그렇게 뜬 눈으로 나와 시카를 번갈아 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곧 어두워졌다.


“하필 그걸 들었나 보네요.”

“왜 말 안 했어요? 거울 연못을 다시 열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못 열어요. 아버지의 연구 자료를 가지고 도망쳐 나오긴 했지만, 내팽개친 지 오래예요.”

“왜..”

“불가능하니까요.”


기껏 희망을 보았다 싶었는데, 엠마의 대답에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게 느껴졌다.


“그럼 어떻게 베르나데트를 막겠다는 거예요..? 아버지의 연구를 이은 거 아니었어요?”

“아버지의 연구는 거울 연못을 되살려서 그 너머의 영웅으로 베르나데트를 막는다는 허무맹랑한 연구였어요. 연구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망상이었죠. 그래서 전 아버지가 추구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연구를 진행했어요. 자세한 건 말 못해요. 이 여자가 있으니까.”


엠마는 시카를 가리키며 말했다.


“엠마. 시카는 날 돕기로 했어요. 그러니까..”

“산 팀장이 베르나데트를 막아주기로 약속했어요.”


시카가 말했다. 엠마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이에요..?”

“산 팀장은 거울 연못이 닫히기 전에 왔어요. 그곳으로 돌려보내서 헤이카 회장을 막아주기로 했어요. 세상이 이렇게 되지 않도록.”

“..몇 번을 말해요. 거울 연못은 닫혔다고. 아버지의 연구는 망상에 불과하다고요.”

“모든 거울 연못은 연결되어 있어요. 헤이카 회장은 그런 거울 연못을 전부 닫아버렸죠. 다른 시대에서 이곳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고립시키려고요. 그런데 여기 있는 산 팀장은 어떻게 여기 왔죠?”

“그건 거울 연못으로... 어..?”


엠마는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헤이카가 모든 거울 연못을 닫아버린 이유는 더 이상 다른 시대의 간섭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 황성을 완전히 고립시킨다면 적어도 베르나데트가 학습하지 못한 외부의 변수는 더 없을 테니까.


그러니 시카의 말대로라면 원래대로라면 거울 연못으로 이 시대에 오는 것조차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이 고립된 시대에 온 것 자체가 이상하단 뜻이었다.


“왜 생각을 못 했지.. 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거울 연못이 열릴 리가 없어요. 이렇게 쉽게 외부에서 열고 들어올 정도라면 진작에..!”

“시카가 추측하기엔 내가 특별하대요. 그래서 뭐 때문인지 확인하러 도시에 들어가려고요. 어떻게 내가 여기 왔는지 알면 반대로 나갈 수도 있을 테니까.”

“도시로 들어간다고요? 제정신이에요? 거긴 베르나데트가 있어요!”


알고 있다. 난 지금 적진 한복판에 들어간다는 정신 나간 소리를 하고 있는 거다. 하지만 이곳에 남아봤자 별로 달라질 건 없어 보였다.


사방은 폐허와 얼어붙은 눈. 살인적인 추위뿐이다. 알산나는 계속 약해지고 있고 나도 그렇다. 이러다 움직이지도 못하게 되기 전에 뭐든 해야 했다.


“도시 안에 있는 내 옛 동료를 만나보려고요.”

“옛 동료?”

“핸들러. 그도 시카처럼 미래를 보는 능력이 남아있어요. 그라면 뭔가 알지도 모르죠. 같이 갈래요?”


엠마는 의심쩍은 눈으로 날 노려보았다. 나도 안다. 내가 여기서 포기하고 이곳에 정착해 살 생각을 한다면, 공업에 다시 돌아가는 게 그나마 제일 편한 길이다.


재입사 선물로 엠마 노리스를 데려간다면 베르나데트는 좋아하겠지. 아마 정말 남은 수단이 없었다면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게 현재로선 가장 최선의 선택이니까.


하지만 가능성이 남아있다. 열릴 리 없는 거울 연못을 열고 들어온 나였다. 사무엘이 내가 올 걸 미리 봤었다면, 떠나는 것도 봤을지도 모른다. 도시 안에 있다는 그를 만나야만 했다.


“내가 같이 간다고 뭐가 바뀌죠?”

“혹시 모르죠. 당신 아버지가 하던 연구가 허무맹랑한 망상이 아니라 진짜일지도. 그럴 경우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거울 연못을 다시 여는 건 어쨌든 우리 같은 싸움꾼이 아니라 머리 좋은 인재가 있어야죠.”


엠마는 시카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도 알고는 있을 거다. 닐이라는 로봇까지 잃은 이상 어쨌든 이미 도망치긴 늦었다. 우리와 협력하거나, 붙잡혀 베르나데트에게 넘겨지거나. 둘 중 하나다.


“..들어가자마자 베르나데트에게 브레인 코팅을 당할 거예요. 아베스타의 감시가 있으니까. 그건 어쩌려고요? 만약 거울 연못을 다시 열려고 생각하고 있어도, 브레인 코팅을 당해서 그럴 생각마저 사라지면..”

“그건 제 초재생으로 해결할 거예요.”


시카는 엠마에게서 빼앗은 권총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곧 총구가 내 이마에 맞닿았다. 차가운 감촉에 얼굴이 움찔거렸다. 이미 얘기해둔 거지만, 역시 나름의 각오가 필요했다. 난 이를 악물었다.


“뭐, 뭐 하는 거예요!?”

“시체엔 브레인 코팅을 하지 않아요.”


눈을 질끈 감자 총성과 함께 내 세상이 끝났다.


깔끔한 두 번째 죽음이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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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욕망 시대(完) +3 23.05.08 204 9 24쪽
263 마법사의 보답 +2 23.05.05 154 10 13쪽
262 광야(曠野) 헤이카 미켈런 +2 23.05.04 174 12 15쪽
261 재회 +1 23.05.03 166 11 15쪽
260 사막, 괴물, 어린 칼잡이들 +3 23.05.02 161 11 12쪽
259 라푸스 벤데르드 +2 23.05.01 169 9 20쪽
258 욕망 시대(13) - 사무엘(Samuel) +2 23.04.28 169 8 17쪽
257 욕망 시대(12) - 눈 내리는 날 +1 23.04.27 163 8 15쪽
256 욕망 시대(11) - 죽음이 아닌 삶을 바라게 될 때까지 +1 23.04.26 157 7 14쪽
255 욕망 시대(10) - 강철의 기사 23.04.25 155 9 15쪽
254 욕망 시대(9) - 소리 없는 침식 +1 23.04.24 166 9 11쪽
253 욕망 시대(8) - 일방적 계약 +1 23.04.21 169 9 20쪽
252 욕망 시대(7) - 길을 잃고 +1 23.04.20 164 9 15쪽
251 욕망 시대(6) - 정복자 23.04.19 163 9 16쪽
250 욕망 시대(5) - 악룡과 용사 +1 23.04.18 160 9 17쪽
249 욕망 시대(4) - 오염구역 탐사 +2 23.04.17 159 8 14쪽
248 욕망 시대(3) - 죽음의 땅 +2 23.04.14 172 9 13쪽
247 욕망 시대(2) - 위험한 여행 +1 23.04.13 155 9 13쪽
246 욕망 시대(1) - 탐욕의 바르바로사 +1 23.04.12 178 9 13쪽
245 죄인 +2 23.04.11 158 8 15쪽
244 급류(急流) +2 23.04.10 177 9 13쪽
243 삼류 악당 +2 23.04.07 180 10 23쪽
242 우는 아이 +1 23.04.06 161 8 15쪽
241 에콰(5) - 일그러진 미소 아래 +2 23.04.05 184 9 15쪽
240 에콰(4) - 핏덩이 +1 23.04.04 178 9 17쪽
239 에콰(3) - 욕망죄화(欲望罪花) +1 23.04.03 184 10 27쪽
238 에콰(2) - 모르스 에콰 +1 23.03.31 168 9 13쪽
237 에콰(1) - 소녀 +1 23.03.30 166 9 14쪽
236 개벽(35) - 문을 닫다. +1 23.03.29 169 9 15쪽
235 개벽(34) - 찾아온 영웅, 떠나는 영웅 +1 23.03.28 174 9 21쪽
234 개벽(33) - 베르나데트 23.03.27 163 9 20쪽
233 개벽(32) - 자유를 향해 +2 23.03.24 164 9 18쪽
232 개벽(31) - 데이케트람 23.03.23 168 9 18쪽
231 개벽(30) - 행복을 쫓던 사내 +1 23.03.22 168 8 21쪽
230 개벽(29) - 침묵의 도시 23.03.21 166 8 17쪽
» 개벽(28) - 가능성 +1 23.03.20 172 9 17쪽
228 개벽(27) - 시카 23.03.17 166 9 17쪽
227 개벽(26) - 36년 +1 23.03.16 234 9 17쪽
226 개벽(25) - 빛바랜 세상 +1 23.03.15 167 9 13쪽
225 개벽(24) - 문 23.03.14 175 9 18쪽
224 개벽(23) - 본보기 +1 23.03.13 166 9 16쪽
223 개벽(22) - 옛 동료 +1 23.03.10 177 10 16쪽
222 개벽(21) - 마지막 조각 +1 23.03.09 182 10 21쪽
221 개벽(20) - 흐름 23.03.08 173 10 16쪽
220 개벽(19) - 시라비아의 햇빛 23.03.07 180 10 15쪽
219 개벽(18) - 영웅 증후군 23.03.06 205 10 16쪽
218 개벽(17) - 친구인가 적인가 23.03.03 184 10 16쪽
217 개벽(16) - 습격 23.03.02 183 10 14쪽
216 개벽(15) - 헤르그부르 23.02.28 191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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