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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P

욕망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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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굴P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3.05.08 18:05
연재수 :
2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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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0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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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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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에콰(4) - 핏덩이

DUMMY

#1


비를 쏟아붓던 잿빛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하얀 눈발을 뿌리며 변덕을 부렸다. 시라비아의 날씨는 늘 변덕스러웠기에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젖은 땅 위로 눈이 내려앉아 질척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거리는 죽은 듯 고요했다. 비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거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런 거리를 시끄럽게 하는 소리가 있었다. 우렁찬 아기의 울음소리였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 울음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놀란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맨발의 소녀가 걷고 있었다. 비틀비틀, 위태로운 걸음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그 소녀로부터 나는 것이었다.


으슥한 곳에 몸을 감췄던 거리의 이웃들까지 고개를 내밀고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다들 소녀를 걱정하기보단 먼저 겁을 먹었다. 누구도 소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건 이곳이 시라비아라서가 아니었다. 소녀는 피투성이였고, 품 안에 안은 아기도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철퍽. 철퍽. 질척한 바닥을 내딛는 소녀의 맨발이 쉬지 않고 나아갔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커질수록 소녀는 아기에게 더 가까이 속삭였다.


“괜찮아.. 아가.. 괜찮아... 내가 여기 있으니까..”


피투성이 소녀와 피투성이 아기. 누구도 섣불리 다가가지 않았고, 입을 여는 사람도 없었다. 아기의 울음소리와 소녀의 속삭임을 빼면 거리는 여전히 적막함을 머금고 있었다.


그때, 골목 으슥한 곳에 있던 한 노인이 기어나왔다. 그는 정신이 온전치 않은 거리의 이웃이었다. 누구도 노인에겐 관심을 주지 않았지만, 노인은 소녀와 아기를 향해 황홀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신의 아이..! 신의 아이가 태어났다..!”


희열로 가득 찬 노인이 중얼거렸다.




...




“쟈토 님. 라가토니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에콰를 보내달라는군요.”


사무실에서 막 나갈 채비를 하던 쟈토는 어딘가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카밀을 바라보았다. 잠시 뒤, 쟈토는 다시 자리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베르몬드에 플뤼테를 보내놨건만, 이젠 라가토니아에서 에콰를 달라고? 누가 그러던가? 스토커는 아니겠지?”

“...”

“맙소사. 그 소문이 진짜인가 보군.”


월교의 파급력은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거리의 이웃, 시라비아의 주민, 더 나아가 마피아 조직원들 사이에서도 퍼지기 시작한 그들의 교리는 조직 내부를 뿌리부터 뒤흔들고 있었다.


갑자기 이렇게 다른 지역에서 인력난을 겪고 있는 이유도 결국은 월교 때문이었다. 조직 내에서 월교의 신자들을 잘라내던 시라비아 마피아는 이젠 스스로 제 살을 깎아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의 교리가 대체 무엇이길래 시라비아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마피아들까지 월교의 신자로 만들어버리는지 쟈토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행여나 그 교리를 접하게 되면서 자신조차 변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한참 고민에 빠진 쟈토를 향해 카밀이 물었다.


“쟈토 님. 어떻게 전달할까요?”

“안 된다고 하게. 우리도 사람이 부족해. 에올렉이 오코넬까지 데려가 버렸으니 미다스에 쓸만한 칼 정도는 남겨놔야지.”

“쓸만한 칼..”


쟈토는 심기 불편한 한숨을 내쉬며 등받이에 기댔다. 카밀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곤 돌아섰다. 그렇게 쟈토의 사무실을 나서려던 그녀는 다급하게 복도를 달려오는 발소리에 멈춰 섰다.


“쟈, 쟈, 쟈토님! 잠깐 나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건 또 다른 조직원이었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에콰가 돌아왔는데.. 그.. 그게...”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터졌음을 직감한 쟈토가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을 나섰다. 카밀도 그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1층 계단으로 내려간 쟈토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이게 무슨...”


카밀도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1층에 모인 조직원들의 표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동안 쟈토의 사무실은 정적에 잠겼다.



#2


조직과 규율.

이 둘이 어떤 경우에서든 떼어놓기 어려운 관계라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시라비아 마피아는 특히나 규율에 대해 더욱 까다롭다. 온갖 범죄가 들끓는 시라비아의 땅을 힘과 공포로 다스리는 그들이기에 자신들이 정한 틀 안에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선 규율은 항상 최우선 사항이었다.


하지만 에콰가 돌아온 지 몇 주 째, 쟈토는 그 규율에 거스르고 있었다. 누구보다 바르바로사에게 신뢰받고, 규율을 지켜오던 그였기에 조직의 분위기는 그만큼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흘렀다.


쟈토의 행동에 가장 불안감을 느끼는 건 카밀이었다. 그녀는 조직의 낚시꾼이기 때문이다. 낚시꾼은 늘 조직에게 있어 해가 되는 일과 득이 되는 일을 판가름해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 쟈토의 판단은 조직에게 있어 득이라고 부를 일이 전혀 아니었다.


“쟈토 님. 들어가겠습니다.”


카밀은 쟈토의 사무실에 들어섰다. 그녀는 어두운 창밖을 내다보는 쟈토에 뒷모습에 고개를 숙였다.


“늦은 밤까지 고생하는군.”

“아닙니다.”


쟈토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말없이 창밖을 보기만 했다. 카밀이 말했다.


“멜리더스 선교사들의 활동은 더 이상 보고되지 않고 있습니다. 교주 블라다카를 목격했다는 이야기도 최근엔 전혀 없습니다.”

“흠.”

“축복의 아이와 신도들을 색출하는 작업도 막바지에 들어섰습니다. 사실상 상황은 거의 마무리 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쉽게 물러갈 거였으면 왜 그리 끈질기게 포교 활동을 했던 건지 모르겠군.”


극단적인 방법을 취할 정도로 마피아들은 궁지에 몰렸었다. 만약 그들이 여기서 물러나지 않고 선교사를 계속 보냈다면 결국 시라비아엔 멜리더스의 교리가 걷잡을 수 없이 퍼졌을 터였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그들의 활동이 뚝 끊겨버렸다. 당연히 카밀도 그 점에 대해선 신경을 쓰고 있었고, 그녀 나름의 추측도 있었다.


“목적을 이뤘다. 혹은 원하는 것을 얻었다. 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시라비아에 멜리더스 교리를 퍼뜨리는 건 주된 목적이 아니었다는 소린가?”

“네.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쟈토는 짧은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끄덕였다.


“그렇군. 수고했네. 돌아가서 쉬어.”

“..그런데 쟈토 님. 언제까지 에콰와 아이를 숨겨두실 거죠?”


고민하던 카밀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쟈토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아직 제대로 밝혀진 건 없지 않나?”

“정황상 에콰는 축복의 아이가 된 게 분명합니다.”

“어떻게 확신하지?”

“그 아기는 에콰의 아이가 맞습니다. 에콰에게 출산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루 만에 아이를 낳는 건 불가능한 일이죠.”


그 당연한 지적에 쟈토는 작은 신음을 흘렸다. 그의 한숨이 땅에 쩍쩍 들러붙었다.


“그래서? 자네는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에콰를 처형하셔야 합니다.”


그 잔인한 결론은 결국 조직의 규율을 따른 것이었다. 쟈토는 미간을 짚었다.


“목격자가 많습니다. 이리저리 뜬소문도 많이 돌고 있습니다. 이 일이 바르바로사의 귀에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고, 알게 되는 날엔 크게 노하실 겁니다. 지금이라도 조용히 처리하고 덮어두는 게 최선입니다.”

“..이보게. 카밀.”


마침내 쟈토가 몸을 돌렸다. 그는 얼마 전 돌아온 에콰를 봤을 때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핏덩이가 핏덩이를 안고 돌아왔네.”

“쟈토 님..”

“알고 있어. 나 같은 놈이 이런 감상을 품는 건 어울리지 않지. 사람 목이나 베고, 어린애한테 같은 짓을 시키는 내가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하겠나. 후.. 나도 늙은 모양이군.”


쟈토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얼굴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하지만 단순히 연민 때문만은 아니야. 녀석을 처음 보자마자 난 알 수 있었어. 그건 원석이라고. 다음어주기만 한다면 이 미다스에서.. 아니, 시라비아에서 가장 화려한 보석이 될 거란 걸 단번에 알았지.”


카밀은 쟈토에게 동의했다. 그가 조직에서 일하는 동안, 조직 내에서 인재를 발굴하는 능력으론 쟈토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가 데려온 에콰는 무려 1년 만에 보스에게조차 인정받는 행동파가 되었다.


게다가 그녀는 아직 어렸다. 성장의 기회가 많다는 의미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에콰는 쟈토의 말처럼 보석이 될 터였다. 겉으로 말하고 있진 않지만, 쟈토는 이미 에콰를 훗날 미다스의 주인이 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평생을 쓰레기들에게 희롱당하며 사느니,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차라리 보석으로 자라나는 편이 훨씬 좋지. 그래서 데려온 거다. 그래서 키우던 거고.”

“쟈토 님. 하지만 에콰는..”

“알아. 다 알아. 빌어먹을. 축복의 아이가 대체 뭐라고.”


긴 한숨을 내쉰 쟈토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걸어놓은 외투를 걸치고 모자를 썼다.


“어디 가십니까?”

“보스를 뵈어야겠다. 그리고 전부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선처를 구해야지.”


선처. 마피아와는 전혀 연이 없는 단어였다. 그들은 선처보단 응징을, 그리고 대가를 요구하는 자들이다. 마피아 최고 간부인 쟈토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쟈토 님. 안 됩니다!”

“카밀. 난 재능 있는 놈들을 내다 버리는 걸 가장 싫어해. 에콰를 봐. 깎다 보니 드디어 빛이 보이기 시작했어. 그런데 이제 와서 버리라고? 절대 그럴 순 없지. 에콰는 훗날 조직에 분명 큰 기둥이 될 것이야. 보스께서도 알아주실 거다.”

“하지만 쟈토 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자네도 있고.”


카밀의 눈이 휘둥그렇게 커졌다.


“잠시 에콰를 맡기마.”


쟈토는 사무실을 나섰다. 한동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카밀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3


카밀은 에콰가 지내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건 미다스 구석진 곳에 있는 쟈토의 개인 별장이었다.


에콰가 아기를 데리고 돌아온 그날 이후, 쟈토는 자신의 개인 별장에 에콰를 쭉 숨겨놓았다. 지금 그녀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쟈토와 카밀 두 사람뿐이었다.


‘축복의 아이..’


에콰는 축복의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시라비아엔 축복의 아이를 모조리 처형하라는 바르바로사의 엄령이 내려와 있는 상태였다. 그 지시대로라면 카밀은 에콰를 처리해야만 했다.


‘득이 될 게 없어.’


쟈토가 아무리 뭐라고 말하든 카밀은 결국 조직의 낚시꾼이었다.


설령 에콰가 정말 재능이 있더라도 지금 쟈토에게 문제를 만들면서까지 그녀를 살리는 건 위험이 너무 컸다. 재능 있는 아이들은 많다. 굳이 에콰가 아니어도 될 것이다.


쟈토의 별장에 도착한 카밀은 총을 꺼내 쥐었다. 새까만 권총을 내려다보던 카밀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현관문이 아닌 별장의 뒤쪽으로 향했다.


기왕이라면 알아차리기도 전에, 빠르게 끝내는 것이 그녀를 위한 자비였다. 에콰가 있을 방을 알고 있던 카밀은 어둡게 불이 꺼진 창문을 노려보았다.


‘없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기다려보았지만 에콰는 돌아오지 않았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카밀은 재빠르게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때, 작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카밀은 소리를 쫓아 저택의 뒷마당으로 향했다. 그곳엔 정원이 있을 터였다. 카밀은 여전히 발소리를 죽인 채 정원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에콰를 발견했다.


“...”


화단 앞 작은 의자에 앉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에콰. 그녀의 부드러운 자장가는 이 냉혹한 땅과는 영 어울리지 않았지만 에콰의 품에 안긴 아기는 작게 미소 지으며 곤히 잠들어있었다.


카밀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에서 넋두리 같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득이 될 리가...”


카밀은 이젠 소리를 죽이는 것도 잊고 걸음을 내디뎠다. 그녀의 발소리가 정원에 울려 퍼졌지만 에콰의 콧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카밀은 에콰의 앞에 서서 총구를 겨눴다.


그제야 노래를 멈춘 에콰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이 카밀과 마주쳤다.


“미안해요.. 에콰. 이럴 수밖에 없습니다.”

“알고 있어요.”


에콰가 담담히 말했다. 그녀도 조직이 하고 있는 것과 지금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었다. 쟈토가 자신을 이곳에 숨겨주는 것 자체가 조직의 규율에 어긋난다는 것도.


에콰는 아기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저만 사라지면 이 아이는 무사하겠죠?”


카밀은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에콰는 축복의 아이라고 불리는 처형 대상이지만, 그런 에콰가 낳은 아기의 처지는 애매했다. 그 아기를 축복의 아이라고 봐야 하는지 그녀로선 판단할 수 없었다.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솔직하게 말했다. 에콰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 아이 이름은 ‘산’ 이에요.”

“...”

“앤이 말한 적 있어요. 만약 자기 아이가 남자아이였다면 그렇게 지었을 거라고. 앤의 아이는 여자아이였어요. 그래서 산이라는 이름은 이 아이에게 줬어요.”


카밀은 그녀가 말하는 앤에 대해서도, 그 이름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었다. 하지만 어렴풋이 에콰가 어째서 이 아이를 가지게 됐는지는 조금씩 알 것 같았다.


축복의 아이. 교주 블라다카. 그리고 선물.


멜리더스의 교리는 사람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들이고, 시라비아의 아이들에게 블라다카가 나눠준 선물이란 아이들의 욕망을 실현시키는 일이었다.


처형당한 축복의 아이들 중에선 감응자처럼 특별한 힘을 가진 아이도 있었고, 갑자기 먹을 걸 잔뜩 갖게 된 아이나 돈을 가지게 된 아이도 있었다. 절대 망가지지 않는 인형, 장난감, 심지어 없던 부모가 생긴 것처럼 환각을 보는 아이도 있었다.


상식적으론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아이들의 욕망이 실현된 결과가 그것이라면 축복의 아이는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바르바로사가 축복의 아이를 전부 처형하라는 극단적인 지시를 내린 것도 모두 그런 이유였다.


그리고 에콰에겐 진짜 아이가 생겼다. 지금 그녀의 품 안에 있는 산이라는 이름의 아기는 환각도 뭣도 아닌 그녀의 욕망이 생생하게 빚어낸 결과였다.


가장 깔끔한 건 에콰와 아기를 모두 정리하는 것이었다. 카밀도 그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 아이는 축복의 아이가 아니에요. 산은 살려주세요.”


에콰가 말했다. 카밀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난 낚시꾼이야.’ ‘조직의 도움이 되어야 해.’ 조직에 들어오고부터 힘든 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그녀는 이렇게 스스로를 등 떠밀었다.


그때, 카밀의 휴대전화가 웅웅 울렸다. 카밀은 떨리는 숨을 내뱉었다. 여전히 차가운 권총은 에콰의 머리를 겨누고 있었고 휴대전화의 진동은 마음을 다잡으려는 그녀의 신경을 긁어댔다.


“젠장..!”


카밀은 신경질적으로 총을 내렸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받았다. 휴대전화 너머에선 쟈토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이내 카밀의 얼굴에선 당혹감이 피어났다. 그리고 대답했다. ‘말씀하신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집어넣고 에콰를 바라보았다.


“쟈토 님께서 당신을 버릴 순 없다는군요..”


에콰의 눈이 커졌다. 희망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말이지만, 에콰는 그렇게 생각이 짧지 않았다. 그녀는 아기를 더욱 품에 안았다.


“안 돼요.”

“쟈토.. 아니, 보스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이건 보스의 마지막 자비입니다.”

“이 아이는 내..!”


카밀은 총을 거두고 에콰의 어깨를 쥐었다.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에콰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기엔 힘이 부족했다.


“당신에겐 아무 일도 없던 겁니다. 그 아이는.. 예. 태어날 때부터 부모를 모르고 버려진 시라비아의 흔한 아이 중 하나입니다.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

“그렇지 않으면 전 그 아이를 바다에 던져야만 합니다.”


에콰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그녀는 품에 안은 아기를 내려다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5분.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그녀를 놓아준 카밀은 물러났다. 화단 앞에 주저앉은 에콰는 울음을 터뜨리며 아기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눈물에 잠에서 깬 아기가 눈을 깜빡거렸다.


아기의 손이 에콰의 얼굴을 만졌다. 에콰는 떨리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사랑해. 아가.. 세상 무엇보다 널 사랑해.”


그녀는 조심스럽게 아기의 손을 잡았다.


“그러니 반드시 찾아낼 거야.”


절망으로 물들었던 에콰의 눈엔 잠들어 있던 독기가 되살아났다.


“내 모든 걸 버리더라도 너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않아.”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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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마법사의 보답 +2 23.05.05 154 10 13쪽
262 광야(曠野) 헤이카 미켈런 +2 23.05.04 175 12 15쪽
261 재회 +1 23.05.03 167 11 15쪽
260 사막, 괴물, 어린 칼잡이들 +3 23.05.02 162 11 12쪽
259 라푸스 벤데르드 +2 23.05.01 169 9 20쪽
258 욕망 시대(13) - 사무엘(Samuel) +2 23.04.28 169 8 17쪽
257 욕망 시대(12) - 눈 내리는 날 +1 23.04.27 163 8 15쪽
256 욕망 시대(11) - 죽음이 아닌 삶을 바라게 될 때까지 +1 23.04.26 158 7 14쪽
255 욕망 시대(10) - 강철의 기사 23.04.25 155 9 15쪽
254 욕망 시대(9) - 소리 없는 침식 +1 23.04.24 166 9 11쪽
253 욕망 시대(8) - 일방적 계약 +1 23.04.21 170 9 20쪽
252 욕망 시대(7) - 길을 잃고 +1 23.04.20 165 9 15쪽
251 욕망 시대(6) - 정복자 23.04.19 163 9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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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욕망 시대(2) - 위험한 여행 +1 23.04.13 156 9 13쪽
246 욕망 시대(1) - 탐욕의 바르바로사 +1 23.04.12 179 9 13쪽
245 죄인 +2 23.04.11 158 8 15쪽
244 급류(急流) +2 23.04.10 177 9 13쪽
243 삼류 악당 +2 23.04.07 180 10 23쪽
242 우는 아이 +1 23.04.06 162 8 15쪽
241 에콰(5) - 일그러진 미소 아래 +2 23.04.05 184 9 15쪽
» 에콰(4) - 핏덩이 +1 23.04.04 179 9 17쪽
239 에콰(3) - 욕망죄화(欲望罪花) +1 23.04.03 185 10 27쪽
238 에콰(2) - 모르스 에콰 +1 23.03.31 168 9 13쪽
237 에콰(1) - 소녀 +1 23.03.30 167 9 14쪽
236 개벽(35) - 문을 닫다. +1 23.03.29 170 9 15쪽
235 개벽(34) - 찾아온 영웅, 떠나는 영웅 +1 23.03.28 174 9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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