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Project.P

욕망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굴P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3.05.08 18:05
연재수 :
264 회
조회수 :
83,087
추천수 :
3,417
글자수 :
1,991,941

작성
23.04.28 14:05
조회
169
추천
8
글자
17쪽

욕망 시대(13) - 사무엘(Samuel)

DUMMY

#1


“혜니! 혜니!!”


혜니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사무엘은 천천히 뜨이는 그녀의 눈에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론 초조함을 감출 수 없었다.


“아··· 사무엘···.”

“혜니. 괜찮은 겁니까?”

“···내가 어떻게 된 거예요?”


품에서 벗어나 앉은 혜니는 현기증에 비틀거리며 바닥을 짚었다.


“쓰러져계셨습니다. 혜니. 무슨 일이 있었죠?”

“······누가 찾아왔어요. 산··· 보스의 목소리가 들려서 열었는데··· 열고 보니 다른···”


혜니의 표정은 급격히 안 좋아졌다. 그녀는 헛구역질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누가, 누가 찾아온 겁니까? 헤이카 미켈런을 데려간 게 누굽니까?”

“···헤이카를 데려갔다고요?”


혜니는 놀란 눈을 치켜뜨고 벌떡 일어섰다. 현기증에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그녀가 위태롭게 계단을 오르자 사무엘이 재빨리 그녀를 부축했다.


그렇게 혜니는 헤이카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그곳엔 헤이카도, 그녀가 타던 휠체어도 없었다. 단지 침대 위에 놓인 건 작은 죄화가 한 송이.


“아···.”


혜니는 탄식하며 주저앉았다. 그녀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헤, 헤이카가··· 아아··· 제가, 제가 대신 곁에 있어주기로 약속했는데···!”


산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헤이카가 사라졌다는 충격에 그녀는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혜니의 어깨를 잡으며 사무엘은 진지한 눈을 했다.


“혜니. 누가 찾아왔습니까? 차림새는?”

“하얀 옷··· 하얀 가면이랑, 하얀 머리··· 맞아요···. 블라다카! 자길 블라다카라고 했어요!”


사무엘은 숨을 들이켰다.


결국 그가 예상하는 최악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상황이 현실로 벌어져 있었다. 사무엘은 낙담하며 고개를 떨궜다.


“블라다카···.”


지금까지 그가 보고 들었던 괴물 같은 사도들을 부리는 월교의 우두머리.


세계 연합의 에이전트를 끌어모아도 끝내 잡지 못한 규격 외의 위험인물.


‘왜 헤이카 미켈런을?’


연신 머리를 굴리고 있었지만 명확하게 짚이는 건 없었다. 사무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은 동기가 중요한 게 아니다.’


헤이카 미켈런을 찾아야만 했다.


만약 그녀의 목숨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데려갈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 저택에서 그녀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었으면 됐을 터. 그럼에도 그녀를 데려갔다면 이유는 하나였다.


‘산을 끌어내기 위해서.’


그녀는 산이라는 남자에게 있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람이고, 가장 큰 약점이니까.


“죄송해요··· 죄송해요···!”


혜니는 흐느끼며 자기 팔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손톱이 피를 낼 것처럼 살을 찌르고 있었다.


그녀에게 있는 건 자신의 일을 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뿐만은 아니었다. 소중한 친구를 빼앗기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이 한심했고, 화가 났다.


그런 혜니의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보며 사무엘은 긴 숨을 토했다.


“혜니에겐 잘못이 없습니다. 무사한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제가, 제가 문을 열어주지만 않았더라면···!”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혜니에겐 잘못이 없습니다.”


사무엘은 혜니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그리고 보스··· 산도 분명 저랑 똑같이 말할 겁니다. 그에겐 혜니도 소중한 친구니까요.”

“···.”

“제가 가서 그녀를 되찾아오겠습니다.”


사무엘이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저, 전 어디로 간지도 모르겠어요.”

“찾아낼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눈을 감고 파장을 터뜨렸다.


닫힌 눈꺼풀 너머는 어둠. 그 답답한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눈꺼풀을 뜨는 감각으로 사무엘은 관측을 시작했다.


현재를 본다. 조금 더 나아간다. 1분? 2분?


‘여기가 아니다.’


사무엘은 관측의 궤도를 바꾸었다. 미래가 아닌 과거로. 이 저택에 찾아온 불청객을 쫓는 눈이 된다.


시간을 거스른다. 몇 초, 몇 분, 혹은 몇 시간일지도 모를 시간이 뒤죽박죽으로 사무엘의 눈앞에 나타났다.


‘보인다.’


하얀 남자가 문턱을 넘는다. 입을 틀어막고 주저앉은 혜니는 정신을 잃었다. 남자는 그런 혜니를 지나쳐 계단을 오르고, 2층의 방으로 향했다.


방문이 열리고 남자가 들어선다. 헤이카는 남자를 돌아본다. 그녀의 얼굴엔 당혹감이 피어났지만, 곧 그녀는 체념한 듯 쓴웃음을 지었다.


블라다카와 헤이카 미켈런.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됐지만 사무엘은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블라다카는 태연하게 헤이카의 휠체어 뒤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얼굴이 웃는다.


“···!”


사무엘은 입을 틀어막았다.


생에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극도의 혐오감이 그를 지배했다.


블라다카라는 남자는 그런 존재였다.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있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래서는 안 되는 남자다.


그를 향한 혐오감은 살인의 충동으로 번졌다.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끔찍한 존재를 죽여서라도 이 혐오감을, 역겨움을 벗겨 내야만 했다. 사무엘의 머릿속이 핑 돌았다.


끔찍한 환청에 사무엘은 관측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머릿 속에서 울리는 미친 자들의 목소리가 그를 괴롭혔다.


‘이대론 안 돼.’


자신의 망가짐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상태론 헤이카를 찾을 수 없고, 산의 미래가 블라다카로 인해 망가질 터였다.


‘헤이카 미켈런을 찾아내야 한다.’


사무엘은 그 한 가지 목표 의식을 머릿속에 몇 번이고 되뇌며 주입했다. 그것이 자신의 욕망이라고 착각하도록. 그리고 아까 전 챙겼던 약병을 꺼냈다.


죄화의 즙으로 만든 약. 그렘린과 닮았지만, 짐승으로는 변하지 않는 대신 월교를 향한 세뇌에 가까운 종복을 갖게 되는 그들의 독약.


그 약을 노려보던 사무엘은 몸을 홱 돌렸다. 헤이카의 침대 위에 덩그러니 놓인 죄화 한 송이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


약병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은 사무엘이 침대 위 죄화를 집어들었다. 야릇하고 달콤한 향을 내는 즙이 활짝 핀 꽃잎을 타고 맺혀있었다.


‘죄화는 사람의 욕망을 부추기고, 그 욕망을 이룰 힘을 준다. 그렇게 커진 사람의 욕망은 죄화의 양분이 된다.’


비록 그 끝은 파멸이지만, 사무엘에겐 그것보다 두려운 것이 있었다. 자신의 만에 하나뿐인 행복의 가능성이 망가져 버리는 것을 그는 두고 볼 수 없었다.


어쩌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사무엘의 고민은 거기서 끊겼다.


사무엘은 죄화의 꽃을 입에 가져갔다. 희석하지 않은 순수한 죄화의 즙이 그의 입으로, 혀로, 목을 타고 넘어갔다.


세상이 이런 극상의 진미가 있던가?

그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감이 끓어올랐다. 어쩌면 지금까지 찾던 행복이 이 작은 꽃 한 송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죄화의 순수한 힘이 그에게 준 것은 강렬하고 또한 위험했다.


“아니야···!”


하지만 사무엘은 스스로 그 행복감에서 벗어났다.


이건 자신이 바라던 행복도, 욕망도 아니었다.


죄화가 주는 일시적인 착각.

약에 취한 중독자들이 느끼는 가짜 감정에 불과하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머릿속이 타들어 가는 느낌을 받으며 사무엘은 몸을 크게 구부렸다.


그의 입에선 침이 질질 흘렀고 눈에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죄화가 주는 쾌락이 사무엘을 계속해서 붙잡았다.


“아니야!!”


사무엘은 이를 악물었다. 그의 눈엔 시뻘겋게 핏발이 섰다. 동시에, 사무엘은 파장을 터뜨렸다. 그의 눈동자에 빛나는 고리가 회전했다.


다시 한 번 관측.

눈꺼풀을 닫지 않고, 생생한 이 시대를 관측하며 동시에 자신의 세계를 확장한다.


‘찾아내라!’


코피가 뚝뚝 흘러내렸지만 사무엘은 관측을 멈추지 않았다. 놀란 혜니가 그를 멈추려 해도 사무엘은 애써 그녀의 외침을 무시했다.


여기서 멈출 순 없었다.


결국, 죄화는 그의 강렬한 욕망에 답했다.


“바다···.”


사무엘의 중얼거림에 혜니가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떨리는 눈이 사무엘과 마주쳤다.


“···반드시 되찾아오겠습니다. 혜니.”


사무엘은 엉망이 된 얼굴로 말했다.



#2


기억이 일정하지 않다. 아니, 제대로 이어지질 않았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 귀로 듣는 것, 손이 만지는 것, 냄새, 느낌, 분위기, 기분. ‘나’ 라는 사람을 이루는 모든 것이 혼돈 그 자체였다.


그런 혼돈을 쳐내기라도 하려는 듯, 액셀을 콱 밟았다. 요란한 굉음을 내며 차량이 나아갔다. 미다스의 도시를 벗어나 황량한 땅으로, 그 너머에 있는 바다로.


관리가 되지 않은 탓에 시라비아의 도시 바깥은 난장판이었지만 오늘따라 사무엘의 눈에는 더 기괴한 것들이 보였다.


하늘을 나는 말이나, 아홉 개의 다리를 가진 거인이나, 눈앞에서 앵앵거리는 날개 달린 중년 남자 따위였다. 눈을 뿌리느라 칙칙한 구름 사이로 거대한 눈알이 굴러다녔다.


“···이런 느낌이었군요.”


차량의 앞쪽 룸미러에 비친 남자의 모습을 본다. 아아, 온통 하얗구나. 머리칼도, 눈동자도. 흔해빠진 백사병 감염자의 모습이다.


이름을 말하라.

머릿속에서 울렸다.


“박민욱.”


또 하나의 이름은?


“사무엘.”


그리고 하나가 더 있었지. 사냥꾼으로서의 이름.


“핸들러.”


그건 모두 한 남자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멍청하게도 죄화의 생즙을 마셔버린 남자. 그로 인해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인간.


또 한 번 관측의 눈이 세상을 지켜본다. 마치 신이 되어 황성이라는 이 행성을 내려다보는 느낌이었다.


세상은 여전히 괴물 탓에 고통받고, 가난과 굶주림, 분쟁으로 인해 또 고통받고 있었다.


전속력으로 멸망을 향해 나아가는 세상.

들끓는 욕망으로 가득한 욕망 시대.


남자는 그 시대를 관측하며 눈물을 흘렸고 폭소했다.


나는 이런 끔찍한 세상에 발을 디디고 살아왔던가? 이런 세상에 진정한 행복이란 게 과연 존재는 하는 것인가?


‘그래서 그의 세상에 기대를 걸고 있었지.’


남자는 스스로에게 답하며 또한 납득했다.


곧, 눈앞의 세상이 일그러졌다. 어떤 규칙성도 없이 섞이지 못하는 형형색색의 물감을 마구 휘젓는 것처럼.


이것은 혼돈이다.


“당신들은 어디에서 온 겁니까?”


일그러진 세계를 내려다보던 남자가 물었다.

그에 혼돈은 그의 눈에 갈고리를 걸어 끌어당겼다.


이윽고 남자는 새까만 바다에 빠졌다. 잿빛 바다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무겁고 역한 비린내가 나는 바다였다.


이건 바다가 아니다.


남자는 단번에 깨달았다. 이건 바다가 아닌 혼돈이며 인류가 부르길, 백사 바이러스였다.


쌓이고 쌓인 좋지 않은 것이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긴 억겁의 세월을 거쳐 한 곳에 고였고 그것이 바다처럼 되어버렸다.


이 바다의 깊숙한 곳엔 무엇이 있나? 남자의 관측은 바닷속을 계속 내려갔다.


열 둘의 혼돈. 거기에 있을 리 없는 열세 번째의 혼돈.

그들은 이 혼돈의 바다 밑바닥에 들러붙어 몸부림치고 있었다.


자신을 꺼내달라며 절규하는 목소리는 애처롭다기보단 광기가 느껴졌다. 당연한 것이다. 그들은 광기로 인해 이곳에 떨어졌고 그들의 광기로 인해 이 세상엔 혼돈이 태어났다.


남자는 그들 중 가장 깊숙한 곳에 웅크린 첫 번째와 눈이 마주쳤다.

새하얗고 긴 머리를 가진 아이.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몸을 감싸 안았다. 그 아이가 흘린 눈물은 세계에 쏟아진다.


“이게 비군요.”


아이가 흘린 눈물이 빗줄기가 되었다. ‘비는 좋지 않은 것이 흘리는 눈물이다.’ 누군가 말하는 것 같았다.


- !


급히 밟은 브레이크에 남자의 세상은 다시 작아졌다. 핸들러로, 사무엘로, 박민욱이라는 남자로 되돌아온 그는 관측의 눈을 감고 사람의 눈을 떴다.


차에서 내리자 바닷가의 모래가 구두를 푹 잡아먹었다. 사무엘은 신경 쓰지 않고 나아갔다. 어느샌가 그는 달리고 있었다.


바닷바람에 오염된 그의 새하얀 머리칼이 휘날렸다. 광기어린 환청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환각들이 그의 세상을 물들였다.


그렇게 그는 도착했다.


“조금 놀랐습니다. 에이전트 핸들러.”


새하얀 남자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는 모래사장 위에 있었다.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그 휠체어에는 헤이카가 앉아 놀란 얼굴로 사무엘을 보고 있었다.


“죄화는 인간의 욕망을 주체할 수 없게 키우고 그걸 양분으로 삼는 생물. 그런데 당신은 욕망을 억제하면서 죄화에게 먹이를 주었군요. 길들였다? 지배? 비슷한 단어가 잘 생각나지 않네요.”

“거래.”


사무엘이 말했다. 블라다카가 끄덕였다.


“그렇군요. 거래. 당신의 것을 주고, 헤이카 미켈런을 찾으러 오셨습니까?”

“예.”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죠? 당신은 지금 죽어가고 있어요.”


블라다카의 말에 사무엘은 현기증을 느꼈다. 비틀거리던 그였지만, 넘어지진 않았다.

기침을 하자 하얀 가루가 섞인 피가 바닷가의 모래에 쏟아졌다. 코에서도, 귀에서도, 눈에서도, 그를 쥐어짜듯이 피가 새어나왔다.


“사무엘···!”


휠체어에서 그 광경을 보던 헤이카가 입을 열었다. 사무엘은 그녀를 보며 안도했다.


“무사, 하셔서, 다행입니다.”


사무엘이 손을 내밀었다.


“돌아··· 가시죠. 혜니도, 보, 보스··· 산이 곧 도착, 합니다. 그가··· 당신을 낫게, 낫게 하려고···”


사무엘은 어느새 자신의 가슴팍에 피어나는 죄화를 발견했다. ‘당신들은 이렇게 죽어갔습니까?’ 죽었던 죄화의 피해자들이 어떤 느낌으로 최후를 맞이했는지 알 것 같았다.


“산이라는 남자가 당신에게 행복한 미래를 준다고 어떻게 확신하죠? 어째서 그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당신의 욕망을 그에게 전부 맡기는 겁니까?”


블라다카는 물었다. 그를 책망하는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저 새하얀 괴물은 오로지 호기심과 흥미로만 가득했다. 그러니 지금도 그의 눈엔 사무엘이 흥미롭게 비칠 뿐이었다.


어째서 한 인간이 저렇게까지 할 수 있는가? 블라다카는 그게 궁금했다.


사무엘은 긴 숨을 토하며 생각에 잠겼다.


자신은 끝내 행복하지 못했기에 자식에게만큼은 행복한 삶을 바라며 죽은 어머니.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어머니의 유언은 저주가 되어 아들의 삶을 옥죄었다.


그렇게 정처 없이 행복이란 것을 찾아 쫓던 남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설령 그릇된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행복할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실패하고, 산이라는 남자가 만들 미래에 마지막 기대를 걸었다.


그는 세상에선 악당이라 불릴 인간이지만, 그가 바라던 욕망은 늘 이루어졌기에.


“그가 만들, 세상이···.”


그의 눈은 또다시 미래를 관측하고 있었다.

멀고도 먼, 아주 먼 미래. 즐겁게 흥얼거리고, 편안하게 웃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자신의 모습.


그런 남자의 곁에 함께 술잔을 부딪쳐주는 사람이 있었다. 산인가? 헤이카인가? 두 사람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사무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런 꾸밈없는 미소를 지어 본 적이 언제던가? 아무렴 상관없었다.


“기대··· 되니까요.”


블라다카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목에서 흔들리는 월교의 펜던트가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를 냈다.


“당신은 그를 왕으로 만들 셈이군요.”

“그게 저의······ 행복···”


미소지은 사무엘의 몸이 기울어졌다. 헤이카는 손을 뻗었지만 그에겐 닿을 수 없었다.


그렇게 쓰러지는 사무엘의 몸을 누군가가 받았다.


어떤 전조도 없이 갑자기 그 자리에 나타난 검은 머리의 남자.

뒤늦게 남자를 뒤따라온 바람이 그가 걸어온 길에 희미한 소용돌이를 남겼다.


그리고 남자는 거침없이 사무엘의 가슴을 뚫고 피어난 죄화를 움켜쥐어 뜯어냈다.


뿌리째로 뽑힌 죄화가 남자의 손에 붙잡혀 핏물 같은 즙을 뚝뚝 흘렸고, 사무엘은 가쁜 호흡을 몰아쉬며 축 늘어졌다.


“그 죄화는 사무엘이 피워낸 어린 꽃입니다. 조금 더 부드럽게···”

“엿 먹어.”


남자의 손이 죄화를 으깼고, 그걸로도 모자라 바닥에 내던져 구두로 짓밟았다. 가차 없이 짓밟히는 어린 죄화의 죽음에 블라다카는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쿵 ― !!


뒤따라 남자의 등 뒤로 육중한 무언가가 내리꽂히며 모래가 솟구쳤다.

가시 돋친 새까만 날개가 쏟아지는 모래를 걷어냈고 그 속에서 살벌한 눈을 뜬 용이 으르렁거렸다.


“수고했어요. 사무엘.”


조심스럽게 사무엘을 내려놓은 남자는 흉흉한 참수도를 꺼내 쥐었다. 섬뜩하게 흐른 궤적 너머로 남자가 독기와 욕망으로 가득한 눈을 빛냈다.


“네가 블라다카지?”

“그렇습니다. 이렇게 직접 뵙는 건 처음··· ······!!”


참수도를 비틀자 뒤집힌 공기가 블라다카의 몸을 무너뜨렸다. 모래사장 위에 무릎을 꿇은 블라다카의 머리가 짓눌리는 압력에 아래로 내려갔다.


“그럼 대가리부터 숙여야지.”


그런 블라다카를 내려다보는 산의 눈에선 전에 없던 분노가 넘실거렸다.


“여긴 내 땅이다.”


작가의말

 오늘도 일찍!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욕망 시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완결 공지 +3 23.05.08 147 0 -
264 욕망 시대(完) +3 23.05.08 204 9 24쪽
263 마법사의 보답 +2 23.05.05 154 10 13쪽
262 광야(曠野) 헤이카 미켈런 +2 23.05.04 175 12 15쪽
261 재회 +1 23.05.03 167 11 15쪽
260 사막, 괴물, 어린 칼잡이들 +3 23.05.02 162 11 12쪽
259 라푸스 벤데르드 +2 23.05.01 169 9 20쪽
» 욕망 시대(13) - 사무엘(Samuel) +2 23.04.28 170 8 17쪽
257 욕망 시대(12) - 눈 내리는 날 +1 23.04.27 163 8 15쪽
256 욕망 시대(11) - 죽음이 아닌 삶을 바라게 될 때까지 +1 23.04.26 158 7 14쪽
255 욕망 시대(10) - 강철의 기사 23.04.25 155 9 15쪽
254 욕망 시대(9) - 소리 없는 침식 +1 23.04.24 166 9 11쪽
253 욕망 시대(8) - 일방적 계약 +1 23.04.21 170 9 20쪽
252 욕망 시대(7) - 길을 잃고 +1 23.04.20 165 9 15쪽
251 욕망 시대(6) - 정복자 23.04.19 163 9 16쪽
250 욕망 시대(5) - 악룡과 용사 +1 23.04.18 160 9 17쪽
249 욕망 시대(4) - 오염구역 탐사 +2 23.04.17 159 8 14쪽
248 욕망 시대(3) - 죽음의 땅 +2 23.04.14 172 9 13쪽
247 욕망 시대(2) - 위험한 여행 +1 23.04.13 156 9 13쪽
246 욕망 시대(1) - 탐욕의 바르바로사 +1 23.04.12 179 9 13쪽
245 죄인 +2 23.04.11 158 8 15쪽
244 급류(急流) +2 23.04.10 177 9 13쪽
243 삼류 악당 +2 23.04.07 180 10 23쪽
242 우는 아이 +1 23.04.06 162 8 15쪽
241 에콰(5) - 일그러진 미소 아래 +2 23.04.05 184 9 15쪽
240 에콰(4) - 핏덩이 +1 23.04.04 179 9 17쪽
239 에콰(3) - 욕망죄화(欲望罪花) +1 23.04.03 185 10 27쪽
238 에콰(2) - 모르스 에콰 +1 23.03.31 168 9 13쪽
237 에콰(1) - 소녀 +1 23.03.30 167 9 14쪽
236 개벽(35) - 문을 닫다. +1 23.03.29 170 9 15쪽
235 개벽(34) - 찾아온 영웅, 떠나는 영웅 +1 23.03.28 174 9 21쪽
234 개벽(33) - 베르나데트 23.03.27 164 9 20쪽
233 개벽(32) - 자유를 향해 +2 23.03.24 164 9 18쪽
232 개벽(31) - 데이케트람 23.03.23 169 9 18쪽
231 개벽(30) - 행복을 쫓던 사내 +1 23.03.22 169 8 21쪽
230 개벽(29) - 침묵의 도시 23.03.21 166 8 17쪽
229 개벽(28) - 가능성 +1 23.03.20 172 9 17쪽
228 개벽(27) - 시카 23.03.17 166 9 17쪽
227 개벽(26) - 36년 +1 23.03.16 234 9 17쪽
226 개벽(25) - 빛바랜 세상 +1 23.03.15 168 9 13쪽
225 개벽(24) - 문 23.03.14 175 9 18쪽
224 개벽(23) - 본보기 +1 23.03.13 167 9 16쪽
223 개벽(22) - 옛 동료 +1 23.03.10 177 10 16쪽
222 개벽(21) - 마지막 조각 +1 23.03.09 182 10 21쪽
221 개벽(20) - 흐름 23.03.08 174 10 16쪽
220 개벽(19) - 시라비아의 햇빛 23.03.07 180 10 15쪽
219 개벽(18) - 영웅 증후군 23.03.06 205 10 16쪽
218 개벽(17) - 친구인가 적인가 23.03.03 184 10 16쪽
217 개벽(16) - 습격 23.03.02 184 10 14쪽
216 개벽(15) - 헤르그부르 23.02.28 192 10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