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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P

욕망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굴P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3.05.08 18:05
연재수 :
2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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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2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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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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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개벽(32) - 자유를 향해

DUMMY

#1


“쏴! 쏴!”


얼굴에 자잘한 흉터가 많은 중년 남자가 소리치며 방아쇠를 당겼다. 시커먼 총구가 파직거리는 푸른 스파크를 터뜨리며 철탄을 토해냈다.


투두둑! 재빠르게 박힌 철탄에 원통형 로봇이 기우뚱 쓰러졌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로봇의 틈새에서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금세 다른 로봇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로봇들이 포위망을 좁혀오는 곳은 굳게 닫힌 도시의 메인 게이트였다. 코핀 서버에서 내려오는 명령이 없으면 절대 열릴 리 없는 문이지만, 해방군이란 명패를 걸고 싸우는 그들은 치열하게 메인 게이트를 사수하고 있었다.


“라스! 해킹 멀었나?!”

“조금만 더 시간을 벌어주세요! 5분.. 아니! 3분만!”


고글을 쓴 남자가 소리쳤다. 중년 남자는 다시 전방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그와 비슷한 복장을 한 이들도 남자와 똑같이 로봇을 향해 총을 갈겼다.


‘이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중년의 남자. ‘케임’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는 이 해방군 무리를 이끄는 리더였다.


수십년 전부터 인류의 해방을 이루자는 원대한 목표로 일어선 해방군은 지금도 세계 이곳저곳에서 베르나데트와 싸우고 있다. 이 도시의 해방군도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곳에 머무는 노페이스 팀과 베르나데트의 압도적인 병력에 이곳의 해방군은 사실상 진압된 지 오래였다. 남은 이들은 숨을 죽이고 도시 안쪽에, 도시 바깥에 숨어 지금까지 기회를 노리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시간이 흐르며 다들 지쳐가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동료. 부족한 지원. 자신들이 정말 베르나데트로부터 도시를 해방시킬 수 있을지 그런 불길한 의문은 나날이 커졌다. 이미 누군가의 마음은 꺾였고 남은 이들도 꺾이기 직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작스레 터진 도시의 비상경보에 주저앉았던 사람들이 눈을 빛냈다. 도시가 경보음을 흘리는 건 상당히 드문 일이고, 하물며 도시 전체의 병력이 움직인다는 건 무언가가 베르나데트를 공격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 용감한 바보를 돕기 위해 케임은 일어섰다. 그를 따라 이곳저곳에 숨어 있던 해방의 의지를 가진 자들도 함께 거리로 나섰다. 이날을 위해 줄곧 숨겨두었던 총을 꺼내고, 자유를 향한 의지를 불태웠다.


전 세계의 베르나데트로부터 인류를 구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이 도시만큼은 해방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마지막 기회였고 절대 물러설 수도 없었다.


‘이 문만 열린다면..!’


도시 바깥에서 달려온 해방군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그들은 이 메인 게이트를 사수하고 열어야 했다. 물론, 항상 인간보다 몇 수 앞을 내다보는 베르나데트는 메인 게이트를 순순히 열어줄 생각이 없었다.


“이런 빌어먹을!”


고글을 쓴 남자의 얼굴이 구겨졌다. 해킹이 계속 실패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의 능력 부족을 탓할 순 없었다. 어떤 공격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베르나데트는 스스로 진화해왔다. 그 말도 안 되는 연산 속도를 인간이 따라가기란 쉽지 않았다.


케임은 이를 악물며 마지막 탄창을 갈아 끼웠다. 지금은 동료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하늘의 굉음에 케임은 고개를 들었다. 붉은 빛줄기들이 긴 꼬리를 그리며 날아와 그들 앞에 차례차례 착지했다. 쇳덩어리가 내려앉는 묵직한 충격음에 그들의 심장도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마치 사람의 몸 위로 쇳덩어리 갑옷을 둘둘 두른 듯한 검은 기계들이 붉은 렌즈를 빛냈다. 그것들을 본 케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몬스터 리바이어...”

“사라세니아 5급이 셋. 4급이 둘이군요. EMP탄도 이제 얼마 없는데. 젠장.”


대원들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베르나데트가 부리는 최고 전력인 몬스터 리바이어는 어지간한 무기로는 흠집조차 낼 수 없는 괴물들이었다. 수많은 동료가 저 차가운 기계들에게 갈가리 찢겨나간 걸 떠올린 케임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 !!!!!!!!! }


그런 절망에 공포가 더해졌다. 도시 전체를 흔드는 거대한 소리에 케임은 하늘 이곳저곳을 살폈다. 검은 밤하늘에서도 훨씬 새까만 날개를 휘두르던 무언가가 지상으로 내리꽂혔다.


직후 해방군 대원들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던 몬스터 리바이어는 순식간에 짓밟혔다. 그들이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하자 날개를 가진 괴물은 발톱을 휘둘렀다.


“용..?”


케임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용이라 부르기엔 사람을 닮고, 사람이라기엔 용을 닮은 미지의 존재는 첨단 기술로 똘똘 뭉친 살인 기계들을 거침없이 파괴했다. 몬스터 리바이어 뿐만 아니라 해방군을 시시각각 압박해오던 로봇들도 순식간에 고철 쓰레기가 되어버렸다.


{ .... }


쇳덩어리를 으적으적 씹던 용이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건 가녀린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눈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그 시선에 모두가 공포로 얼어붙었다. 파충류. 아니, 저건 그런 것보다 훨씬 높고 신비에 가까운 옛 종족의 눈이었다. 누구도 말은 하지 못했지만, 다들 머릿속으론 여자의 눈을 보고 환상 속 용을 생각하고 있었다.


“초, 총 내려..”


가까스로 움직인 케임이 대원들을 향해 말했다. 겁에 질린 대원들은 덜덜 떨며 총을 내렸다.


{ 배고파... }


“!!”


굶주린 용의 중얼거림에 그들은 숨을 삼켰다. 고철 덩어리를 퉤 뱉어낸 용의 입에서 침이 질질 흘렀다.


{ ...문? ...알았어.. }


하지만 용은 혼잣말을 중얼이더니 침을 닦으며 날개를 휘둘렀다. 그녀의 몸이 총알처럼 튀어 나가 굳게 닫혀 있던 메인 게이트에 꽂혔다.


“히익!”


겁에 질려 굳어 있던 고글 남자는 해킹이 한창이던 노트북을 떨어뜨렸다. 공교롭게도 닫혀 있던 문을 열려던 그의 노력을 이젠 용이 대신하고 있었다.


메인 게이트의 두꺼운 벽이 쭉 찢어졌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용은 날개와 꼬리, 이빨을 이용해 문을 마구잡이로 뜯었다. 이윽고 메인 게이트라 불리던 이 도시의 성문은 이젠 문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무너졌다.


신호를 받고 문 너머에서 대기하고 있던 해방군 동료들도 무식하게 열린 메인 게이트에 당황했고 그 문을 뜯어버린 용을 마주하고 재차 굳어버렸다. 용은 그들을 보자 또 침을 질질 흘렸다.


하지만 굶주린 용은 그들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감았다. 꾹 감긴 눈꺼풀에 공포로 굳어 있는 해방군의 몸은 마치 마법처럼 자유를 되찾았다.


“대장은 누구?”


눈을 감은 용이 물었다.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던 케임이 움찔하며 답했다.


“내, 내가 이 해방군의 리더인 케임이다! 그쪽은..”

“알산나.”

“알산나..?”

“말을 전해 달래. ‘마음껏 날뛰어주세요.’ 라고.”


케임의 눈썹이 움찔했다. 그는 물었다.


“누가 그런 말을..?”

“산.”


알산나의 대답은 해방군의 의문을 더욱 크게 할 뿐이었지만, 그녀의 전언은 그게 끝이었다. 다시금 날개를 크게 움직인 알산나가 훌쩍 날아올랐다.


곧 용의 모습은 도시의 마천루 너머로 사라졌다.



#2


‘해방군은 됐고.’


아군은 많을수록 좋다. 사실, 아군이 아니어도 좋다. 그냥 베르나데트가 생각해야 할 혼란이 늘어나기만 해도 충분하다.


도시 바깥에서 접근해오는 해방군의 존재를 깨달은 건 운이 좋았다. 도시의 정문을 열어주고 말도 전했으니 이제 해방군은 알아서 날뛰어줄 거다.


참수도의 힘을 거두자 내 몸은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높이였지만 내 몸은 가볍게 착지했다.


“당신 사람 맞죠..?”


그런 날 쭉 지켜보던 엠마가 물었다. 뭐라고 대답할까 고민했다.


“나도 내가 사람이면 좋겠네요.”

“그.. 그 오른팔이 열쇠라고 했죠? 그 팔이 역시 뭔가 이상한 거죠? 그러고 보니 기억났어요.. 노페이스 산 팀장의 오른팔은 공업제 의수라고. 설마 그 팔에 공업의 엄청난 기술력이 들어갔을 줄이야..”


과학 기술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지만, 마법 같은 얘길 해봤자 엠마는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지금 벌어진 이변들이 내 오른팔에 있는 기술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따지고보면 틀린 것도 아니다. 어찌 됐든 오른팔이 한 건 맞으니까. 난 그녀를 향해 끄덕였다.


“거울 연못의 위치는 찾았어요. 베르나데트가 있는 서버실 아래. 그러니까 도시 중앙에 있는 엄청 큰 빌딩 지하예요.”

“도시 지하에 그런 게 있을 줄이야.. 그 팔로 정말 열 수 있는 거예요?”

“몰라요. 사무엘이 보여준 미래를 믿는 수밖에.”


엠마는 내 대답이 썩 만족스럽지 않아 보였다. 내가 생각해도 조금 무책임한 대답 같기도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무엘이 보여준 미래는 내가 마른 연못을 파고 있는 곳에서 끊겼다.


연못을 파내더라도 문을 열지 못할 가능성은 여전히 있었다. 그래도 사무엘은 내가 되돌아가 무언가를 해주길 원했다. 그렇기에 과거와 미래의 일들을 한 번에 보여준 것이다.


그러니 믿는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 돌아가는 게 최우선입니다. 해방군이니, 베르나데트니 관심도 없어요. 애초에 당신 아버지의 연구는 거울 연못 너머에서 영웅인지 뭔지 불러서 해결하는 거였잖아요? 전 거울 연못을 열기만 할 거예요. 이해했죠?”

“알고 있어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솔직히 영웅은 아직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서버실까지 데려다 주기만 해줘요.”


엠마는 무언가 결심한 얼굴로 말했다. 아버지와 다른 길을 택하고 그녀가 만든 바이러스가 정말 베르나데트를 무너뜨릴진 모르겠지만, 어차피 가는 길이니 서버실까진 데려가 줄 셈이다.


소리 없이 매끄러운 차량이 다가왔다. 차를 가지러 간 시카가 돌아온 것이다. 엠마는 내게 끄덕이곤 조수석에 올라탔고 난 참수도를 조작해 하늘로 올라갔다.


그렇게 우리는 도시 중앙에 있는 빌딩으로 향했다. 다른 빌딩들도 엄청난 높이를 자랑하지만, 그곳에 있는 빌딩은 빌딩이라기보단 ‘탑’ 이라고 부르는 게 어울릴 정도로 더 높았다.


예상대로 그곳엔 엄청난 수의 전력이 모여있었다. 괴상한 로봇들과 전차, 하늘을 날아다니는 쇳덩어리들도 많았다. 전부 우릴 막기 위해 베르나데트가 끌어모은 놈들이었다.


난 속도를 내 놈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적들 한복판에 착지했다. 수백 개의 총구가 날 겨눴다.


참수도를 뒤집자 베르나데트가 긁어모은 전력들이 모조리 깡통처럼 구겨지며 폭발했다. 그 여파로 이곳저곳 불길이 치솟았다. 하늘에서 무언가를 쏘아대던 놈들도 참수도를 휘두르자 모조리 추락했다.


“...”


세삼 델라리온 머스칼이 인류 멸종 병기라고 불리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검을 휘두르는 것도 간단한 일인데, 머스칼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할 수 있었다.


그런 머스칼을 죽인 건 이 시대의 나였다.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고작 헤이카를 뺏으려고?’


머스칼을 죽이도록 부추긴 하얀 남자. 그건 월교의 교주인 블라다카다. 하지만 원래 시대의 나는 블라다카의 이름만 들어봤지, 한 번도 직접 마주한 적은 없었다.


누군가 막아주던 건가? 아니면 아직 때가 아니었나? 지금으로선 알 방법이 없지만 블라다카가 내게 있어 위협적인 존재라는 것 하나는 확실했다.


하긴 월교 사도들을 몇 명이나 박살 내고, 이젠 부하로까지 부리고 있으니 교주가 직접 움직이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돌아가는 대로 블라다카를 향한 대비책도 생각해야겠다.


{ 산 팀장님. }


“음?”


웬 드론 하나가 슬쩍 내려오더니 목소리를 냈다. 베르나데트의 음성이었다.


{ 이 이상의 파괴 행위를 멈춰주십시오. }


“내가 왜? 그보다 왜 이제 나와? 앞마당까지 들어오니까 쫄려?”


{ 산 팀장님. 이 도시는 헤이카 박사님이 바라던.. }


“헤이카는 이 세상을 보기 전에 죽었어. 이게 정말 헤이카가 원하던 세상인지 이젠 모르는 거야.”


{ ... }


드론은 빨간 불빛을 깜빡거리기만 했다. 인공지능도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하는 건가. 아니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계산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조금 기다리자 베르나데트는 다시 말했다.


{ 산. 나야. }


“...”


드론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이 바뀌었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 나 여기 있어. 산. }


이 목소린 베르나데트가 아니라 헤이카였다. 난 얼굴을 찌푸렸다.


“무슨 개수작이야?”


{ 네가 믿지 않을 거란 건 알아. 하지만 산. 나는 여기 살아있어. 헤이카 미켈런이라는 내 몸은 사라졌지만 내 의식은 베르나데트와 함께 있어. 그리고 지금 이 세상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


“...”


{ 베르나데트가 하는 일들은 모두 내가 지시한 것들이야. 여전히 최종 명령권은 내게 있으니까. 다들 베르나데트가 날 대체했다고 생각했겠지만, 베르나데트는 내 명령을 수행하는 인공지능일 뿐이야. 그러니 이 세상을 만든 건 나야. 헤이카 미켈런이지. }


{ 네가 방금 말했지? 이게 정말 내가 원하던 세상인진 모르는 거라고. 확실히 헤이카 미켈런은 이 세상을 보기 전에 죽었지. 하지만 의식으로 남은 난 이 세상의 발전을 보았고, 확실하게 대답해줄 수 있어. }


{ 난 지금 세상에 만족해. 이게 내가 바라던 세상이고, 이게 네게 해줄 수 있는 대답이야. }


말을 마친 드론은 웅웅거리며 내 대답을 기다렸다.


“..헤이카? 정말 거기 있는 거예요?”


{ 응. 산. 나 여기 있어. }


“이 세상도 전부 헤이카가 바라던 세상이고..?”


{ 맞아. }


“이게 헤이카가 말하던 인류를 위한 세상이에요?”


{ 그래. 인류는 이 시대에서 모두 행복해. 근심도 걱정도 없이 살 수 있어. 그러니 다시 한 번 말할게. 지금 이 시대는 내가 바라던 세상이야. }


“그럼 저 바깥에서 얼어 죽는 사람들은요? 왜 도시의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죠? 헤이카는 그 사람들을 구해줄 생각은 없어요?”


{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도 대책을 마련할게. 그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던 건 항상 효율을 생각하는 베르나데트의 방침 때문이었으니까. 베르나데트에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면.. }


“재미없다. 베르나데트.”


드론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드론의 붉은빛이 점멸했다.


“너 정작 네 주인에 대해선 학습이 덜 됐구나? 헤이카가 너무 빨리 가버려서 그런가?”


{ 산. 이해해. 의심하겠지. 그래도 나는... }


“멍청하긴. 헤이카는 내가 아는 최악의 인류 혐오가야.”


점멸하는 빛이 더 빨라졌다. 인공지능도 당황하긴 하는 건가. 인간을 보고 학습한 인공지능이니 인간을 닮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인간의 허점을 닮는 것도 당연하다.


“진짜 헤이카였다면 그 사람들을 구해줄 생각 따윈 안 해. ‘내가 왜 그 사람들을 구해야 해?’ 라고 태연하게 되묻겠지. 헤이카는 네 생각처럼 고상한 여자가 아니거든.”


{ .... }


참수도를 휘두르자 반으로 쪼개진 드론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붉은빛이 사라진 드론의 구동음이 사라졌다. 난 파직거리며 스파크가 튀는 드론을 내려다보다 짓밟았다.


“헤이카는 설령 인류가 멸종하더라도 이 세상만 멀쩡히 굴러가면 만족할 여자라고.”


{ 그렇군요. }


우우웅, 하는 구동음에 고개를 들었다. 탑처럼 솟은 빌딩에서 우수수 쏟아져 나온 드론들이 머리 위를 새까맣게 뒤덮었다. 그곳에서 다시 베르나데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학습이 부족했습니다. 인정합니다. 산 팀장님. }


“응. 그래. 알았으면 됐다. 이제 어쩌려고? 날 막기 어렵다는 건 알고 있겠지?”


{ 아뇨. 사실 당신에 대한 대비책은 이미 있습니다. ‘이쪽’ 의 산 팀장님이 공업을 떠날 때, 그가 변수가 될 것이란 계산 결과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 이쪽의 산 팀장님을 ‘처리’ 하려고 했습니다. }


“퇴직자 대우 죽이네. 그래서?”


{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산 팀장님이 돌아올 것에 대비했습니다. 돌아온 게 다른 시대의 산 팀장님이라는 건 계산 밖이지만, 전 당신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습니다. }


드론에 섞여 하늘을 찢어 가르는 굉음이 울렸다. 마치 전투기가 머리 위를 지나는 기분이었다.


{ 마지막 제안입니다. 산 팀장님. 당신은 훌륭한 인재입니다. 인류를 위한 헌신을 약속한다면 베르나데트는 당신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


“엿 먹어.”


{ 유감입니다. }


굉음이 가까워졌다. 하늘을 덮은 드론이 재빠르게 움직여 구멍을 냈다. 그러자 그 틈으로 새하얀 것이 내려왔다.


“윽..!”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자극적인 굉음에 귀를 틀어막았다.


‘천사?’


새하얀 슈트가 딱 붙어 매끄럽게 드러난 여성의 몸. 그 위로 머리에 있는 건 투박한 하얀 헬멧. 등에 달린 깃털 달린 순백의 날개와 머리 위의 빛나는 고리는 옛 종교에서 언급되던 천사의 모습을 모방하고 있었다.


문득 조디악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조디악을 헤이카에게 선물로 줬던 게 기억났다. 베네딕트 회장의 몬스터 리바이어까지 살려내 알차게 쓰는 헤이카와 베르나데트가 조디악에 담긴 기술을 내다 버리진 않았을 거다.


마침내 천사는 지면에 발을 디뎠다. 바닥에 쩍하고 금이 가며 돌풍이 몰아쳤다. 자극적인 굉음은 이젠 물리적인 파괴력을 지니고 내 몸을 두드렸다.


천사의 헬멧 한 귀퉁이에 새겨진 작은 문자가 보였다.


- Angel Dust


퍽이나 어울리는 이름이네.


{ 안녕히 가십시오. 산 팀장님. }


천사의 모습을 한 베르나데트가 날개를 털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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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마법사의 보답 +2 23.05.05 154 10 13쪽
262 광야(曠野) 헤이카 미켈런 +2 23.05.04 174 12 15쪽
261 재회 +1 23.05.03 166 11 15쪽
260 사막, 괴물, 어린 칼잡이들 +3 23.05.02 161 11 12쪽
259 라푸스 벤데르드 +2 23.05.01 168 9 20쪽
258 욕망 시대(13) - 사무엘(Samuel) +2 23.04.28 169 8 17쪽
257 욕망 시대(12) - 눈 내리는 날 +1 23.04.27 163 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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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욕망 시대(7) - 길을 잃고 +1 23.04.20 164 9 15쪽
251 욕망 시대(6) - 정복자 23.04.19 163 9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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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욕망 시대(2) - 위험한 여행 +1 23.04.13 155 9 13쪽
246 욕망 시대(1) - 탐욕의 바르바로사 +1 23.04.12 178 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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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급류(急流) +2 23.04.10 177 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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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에콰(5) - 일그러진 미소 아래 +2 23.04.05 183 9 15쪽
240 에콰(4) - 핏덩이 +1 23.04.04 178 9 17쪽
239 에콰(3) - 욕망죄화(欲望罪花) +1 23.04.03 184 10 27쪽
238 에콰(2) - 모르스 에콰 +1 23.03.31 168 9 13쪽
237 에콰(1) - 소녀 +1 23.03.30 166 9 14쪽
236 개벽(35) - 문을 닫다. +1 23.03.29 169 9 15쪽
235 개벽(34) - 찾아온 영웅, 떠나는 영웅 +1 23.03.28 173 9 21쪽
234 개벽(33) - 베르나데트 23.03.27 163 9 20쪽
» 개벽(32) - 자유를 향해 +2 23.03.24 164 9 18쪽
232 개벽(31) - 데이케트람 23.03.23 168 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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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개벽(29) - 침묵의 도시 23.03.21 166 8 17쪽
229 개벽(28) - 가능성 +1 23.03.20 171 9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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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개벽(21) - 마지막 조각 +1 23.03.09 182 10 21쪽
221 개벽(20) - 흐름 23.03.08 173 10 16쪽
220 개벽(19) - 시라비아의 햇빛 23.03.07 179 10 15쪽
219 개벽(18) - 영웅 증후군 23.03.06 205 10 16쪽
218 개벽(17) - 친구인가 적인가 23.03.03 184 10 16쪽
217 개벽(16) - 습격 23.03.02 183 10 14쪽
216 개벽(15) - 헤르그부르 23.02.28 191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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