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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P

욕망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굴P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3.05.08 18:05
연재수 :
2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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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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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2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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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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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18쪽

개벽(31) - 데이케트람

DUMMY

#1


오래된.. 아니, 어쩌면 그다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잊고 있던 기억이 있었다.


“그 의수의 이름은 데이케트람(신의 오른팔). 쓰는 법은.. 이렇게 쓴다.”


헤이카로부터 의수를 받고, 출장에서 돌아온 머스칼은 내게 오른팔 의수에 대해 더 자세한 것들을 설명했다.


가장 먼저 그는 공책에 무언가를 휘갈겨 쓰며 그걸 데이케트람이라고 했다. 당연하게도 내가 전혀 모르는 언어였다. 고대인들의 상형문자처럼 지렁이가 기어가는 수준의 글자였다.


“머스칼은 교정 좀 받아야겠는데요. 뭐라 쓴 겁니까?”

“음. 악필이란 소리는 못 들어봤는데. 이쪽 언어가 아니라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어.”

“그럼 어디 언어예요?”

“신들이 쓰는 언어.”

“...”


더 캐물었다간 머스칼의 지루한 설명을 몇 시간 내내 들을 것 같다는 위기감에 난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머스칼은 마찬가지로 내가 못 알아보는 언어로 세 단어를 더 써내려갔다.


“헤이카에게 들었겠지만 데이케트람은 평범한 보조기구가 아니다. 그건 사용하기에 따라 강력한 방패가 되기도 하고, 검이 되기도 하며, 마공품이 되기도 해.”

“되게 낡아빠진 비유네.”

“현대식으로 설명하자면 방공호, 전차, 미사일이 되겠지.”

“오른팔에 미사일을 달고 다닌단 소리네요. 하, 좋아요. 그래서 다음은?”

“데이케트람은 인공 유물이다. 유물이란 이름을 부르는 걸로 깨울 수 있어.”

“그러니까 이름을 부르면 차에 시동을 건다는 느낌인가?”


머스칼은 고개를 저었다.


“보통은 그렇지만 데이케트람은 항상 시동이 걸려 있어. 하지만 반쯤 잠들어 있는 상태지. 꿈을 꾸고 있는 상태라고 보면 돼. 네가 이름을 부르면 잠에서 완전히 깰 거다. 너와 별개로 살아있는 오른팔이라 생각해.”

“알겠어요.”

“다만 이름을 부르는 것과 별개로 데이케트람에 세 개의 새로운 식을 새겨놨다. 일종의 안전장치야. 기억해둬.”


머스칼은 공책에 휘갈긴 세 단어를 가리켰다.


“각각 순환, 응집, 해방이라는 의미가 있어. 이건 그 팔에 새겨진 식을 발동시키는.. 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주문이자 명령어다. 입으로 말하면 데이케트람이 인식하고 알아서 식을 실행해.”

“식?”

“그 팔은 마법의 기본인 ‘식’ 을 성유물 위로 수천 개를 엮어 만든 덩어리다. 식들을 전부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니 최대한 세 개로 함축한 거야. 그러니 다른 식은 제쳐놓더라도 이 세 단계의 식만큼은 네가 이해하고 있어야 해.”

“흐음. 뭐라고 발음하는데요?”

“첫 번째, ‘순환’ 부터 하지.”




...




“트리스.”


순환.

일종의 ‘회로’ 라고 부르는 것이 모두 닫혀 있는 의수에게 회로를 열고, 내부에 있는 마력을 움직이도록 하는 주문.


지상으로 뻗었던 오른팔에 빠르게 감각이 돌아왔다. 손가락이 움직인다. 주먹을 쥘 수도, 펼 수도 있다. 손목을 비틀 수도 있다. 팔을 굽히고 방향을 꺾는 것도 가능했다.


이 시대에 와서 완전히 멈춰버린 의수 데이케트람이 다시금 나와 연결됐다. 무겁게만 느껴지던 팔이 지금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그러는 와중에도 지상은 점점 가까워졌다. 시시각각 엄습해오는 죽음의 압박감에 난 주저할 것도 없이 두 번째 주문을 읊었다.


“메일럼.”


응집.

회로가 전부 열린 의수엔 그저 회로를 따라 마력이 흐르기만 한다. 그 마력을 의수의 중요한 부분으로 응집시키는 주문이다.


마력이 뭉치는 곳은 내가 정할 수 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손가락의 마디마다, 그리고 손목과 팔꿈치. 더 뻗어 내 몸인 어깨까지 마력의 갈고리를 상상해 걸어 고정한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실로 묶인 의수가 팽팽하게 당겨지는 감각이다. 응집된 마력이 빛을 내고 의수는 사람의 피부를 벗어던지고 잔잔한 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가볍기만 하던 팔에 다시금 무게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그 무게감이 밸런스를 잡아주고 힘을 더한다. 난 매고 있던 참수도를 오른손으로 거침없이 뽑아들었다.


이곳에 와서 참수도는 기능을 잃었다. 그 작동 원리는 모르지만, 마법과 관련된 물건이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마법으로 움직이는 의수로 쥐고 참수도의 멈춘 기능을 강제로 활성화한다.


실제론 복잡한 과정을 거쳤겠지만,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의수는 내가 원하는 걸 해냈다. 참수도의 기능이 일부 되돌아와 주변 공기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 정도가 아니었다. 여전히 이 시대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머스칼의 말이 떠올랐다.


“유물은 이름을 불러 깨울 수 있다..”


난 참수도를 비틀어 쥐었다. 회로의 순서대로, 먼저 팔을 깨운다.


“데이케트람.”


팔의 은빛이 더욱 반짝거렸다. 마치 금속처럼 변한 의수가 주변의 공기를 휘감았다. 감응자가 파장을 터뜨리는 듯한 일그러짐이 계속해서 터져나갔다.


‘..그러고보니 참수도는 이름이 없었지.’


짧은 고민 끝에 입꼬리가 히죽 올라갔다. 이 참수도의 능력을 쏙 빼닮은 그가 떠올랐다.


“델라리온. 넌 이제부터 델라리온이다.”


예상했던대로 이름을 지어주자 참수도는 그에 반응하듯 어마어마한 힘을 뿜어냈다. 아래로 당기는 중력의 힘이 훨씬 강해져 이제 우린 엄청난 속도로 지상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코앞에 시커먼 바닥이 보였다.


난 그대로 참수도를 휙 꺾었다. 당기던 힘이 재빠르게 줄어들고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지상까진 불과 3~4m를 남겨둔 높이였다.


“으.. 으아.. 아아... 아빠.. 나도 가요..”


옆에선 노트북은 꽉 껴안은 엠마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얼빠진 소릴 하고 있었다. 그래도 시카는 여전히 무뚝뚝했다. 오히려 그녀의 눈은 벌써 주변을 훑고 있었다.


우웅- 하는 드론의 구동음. 하늘 위에 있던 드론들이 지상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드론뿐만이 아니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쓰레기통처럼 생긴 바퀴 달린 원통형 로봇들이 비에 젖은 거리를 질주하며 달려왔다. 놈들의 머리통이 열리자 총구가 드러났다.


참수도를 꺾어 지상에 착지했다. 엠마는 나자빠졌지만, 그래도 앓는 소리를 내는 걸 보니 무사하다.


그런 우리에게 몰려드는 드론과 로봇들은 거침없이 총을 갈겼다. 참수도를 재빠르게 휘두르자 날아들던 총알이 보이지 않는 힘에 짓눌려 전부 지면으로 내리꽂혔다.


참수도 델라리온을 지면에 힘껏 내리꽂았다. 콘크리트인지, 쇳덩어린지 모를 바닥에 푹 박힌 참수도가 힘을 퍼뜨렸다. 드론과 깡통 로봇들이 죄다 바닥으로 끌려와 들러붙듯 납작해졌다.


그때, 하늘에서 마치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에선 새빨간 불빛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강하했다. 곧, 땅을 흔들며 또 다른 로봇이 착지했다.


“몬스터 리바이어?!”


나자빠져있던 엠마가 기겁했다. 몬스터 리바이어라면 레베스타에서 폐기된 프로젝트일 텐데.. 저것도 역시 헤이카가 가로챘던 모양이다. 나 몰래 이것저것 많이도 해먹었네.


붉은색. 사람처럼 두 다리로 서고, 두 팔을 쭉 뻗은 놈이다. 놈의 양손에는 새까맣고 커다란 칼날이 툭 튀어나와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카르마?’


오랫동안 써온 물건이기에 저놈의 팔에 달린 커다란 칼날이 내 카르마 나이프와 닮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난 지면에 박아놓은 참수도를 놓고 오른손에 카르마 나이프를 쥐어 칼날을 최대 길이로 늘렸다.


밤의 어둠을 뚫고 가로등의 불빛이 놈과 내 칼날을 모두 비췄다. 비를 맞아 번들거리는 칼날은 천둥소리와 함께 움직였다.


동시에 난 마지막 주문을 읊조렸다.


“아렘.”


해방.

은빛의 팔에 휘감겨있던 공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갔다. 그 풍압에 달려들던 쇳덩어리가 크게 기우뚱했다. 이젠 팔에서 그치지 않고 내 전신으로 뻗어 나가는 데이케트람의 회로가 확실하게 느껴졌다.


잃었던 속도를 되찾았다. 시야가 길게 늘어지고, 그 끝에서 기울어진 쇳덩어리를 향해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카르마 나이프가 새까만 궤적을 그리며 쇳덩어리를 난도질했다.


찰나라고 부를 시간을 또다시 수백, 수천 단위로 쪼갠 극한의 속도. 그동안 카르마 나이프가 그린 궤적은 시야를 새까맣게 물들일 정도였다. 여태껏 내본 적 없던 속도였음에도 몸은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그림을 그리듯 휘두르던 나이프를 당겨 거두자 뒤늦게 쇳덩어리가 조각조각 썰려 후두둑 무너졌다. 잘린 단면은 붉게 달아올라 탄내가 났다. 오른손에 쥔 카르마 나이프의 칼날도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도시 전체에 사이렌이 울렸다. 하늘을 새까맣게 물들인 드론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시가 뿌리던 인공호우가 뚝 멎었다. 드론들의 불빛이 일제히 날 비췄다.


난 뚜벅뚜벅 걸어가 카르마를 갈무리하고 다시 참수도를 쥐었다. 지면 깊숙이 박혀 있던 참수도를 뽑아내자 공기가 울렸다. 오른팔의 은빛이 잔잔하게 진동했다.


“흡!”


하늘을 향해 참수도를 휘둘렀다. 허공에 휘두른 꼴이지만, 저 높이 날던 드론들이 빈 깡통처럼 구겨져 우수수 추락했다. 상상하던 대로 머스칼의 능력을 완전히 구사할 수 있었다.


“더, 더 몰려와요! 엄청난 수... 대체 도시 어디에 이런 것들을 숨겨놨던 거지..”


노트북을 들여다보던 엠마가 말했다. 난 참수도를 다시 지면에 박아두고 오른손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눈을 감았다.


이 의수를 타고 내 몸 구석구석 뻗은 회로를 느낀다. 머스칼이 말했던 ‘식’ 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이게 진짜 기적이자, 마법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식에 휘감겨 있는 깊숙한 것을 들여다본다.


수많은 쇠사슬에 묶여 구속된 남자가 보였다. 헤이카가 말하길, 한때 신이라 불리던 남자.


‘크로테크스.’


그의 오른팔에 덧씌워진 마법은 전부 해방했다. 이제 남은 건 그 안에 있는 신성뿐이다. 지금까지 봐왔고, 느낀 게 있었다. 그리고 회로가 연결되며 이 팔에 담긴 기억도 흘러들어왔다. 이제 뭘 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성역 선포.’


하늘에 뻗었던 오른손을 움켜쥔다. 하늘을, 세상을 움켜쥔다는 감각으로.


모든 의식이 확장된다. 팔에서 내 몸으로, 다리로 뻗은 회로가 발바닥 아래 지면을 타고 거미줄을 뻗듯이 도시 전체로 뻗어 나간다.


눈을 감아 시야는 캄캄했지만 그 어둠 속에서 난 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었다. 하늘에 부유해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이 도시의 구석구석을 훤히 꿸 수 있었다.


어디에 무엇이 있고, 지형은 어떻고, 그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팔에서 뻗어 나간 회로로 이 도시 전체가 내 영역이 됐음을 느낀다.


브레인 코팅을 당한 이 도시의 주민들은 공허했다. 욕망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억제하는 힘은 일정하다. 그러니 애매하게 억눌린 욕망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많았던 것이다.


이젠 모두 이해가 됐다. 이 시대가 얼마나 잘못되어있는지. 베르나데트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동시에 의문은 커진다. 이게 정말 헤이카가 바라던 세상인지.


‘찾았다.’


엠마가 말하던 ‘서버실’ 이라 불리는 공간으로 의식을 옮겼다. 그곳엔 거대한 기계 장치가 있었다.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공급받고, 뿜어내며 지금도 복잡한 연산을 쉬지 않는 그건 베르나데트와 아베스타 드라이브의 메인 서버였다.


세계 전역에 있는 도시를 생각하면, 이곳에 있는 베르나데트와 아베스타 드라이브는 극히 일부다. 하지만 지금은 그거면 충분했다. 내 목적은 이 시대를 구하는 게 아니라, 아주 이기적인 거니까.


확장한 감각을 돌린다. 시야를 돌리듯 감각이 빠르게 이동했다. 난 그곳에서 잠들어 있는 알산나를 확인하고 회로를 뻗었다. 거미줄처럼 엮인 회로가 알산나의 몸을 뒤덮었다.


{ !!!! }


알산나의 의식이 각성했다.


간단하게 생각했다. 그녀도, 이 팔도, 참수도도 모두 똑같다고. 마력의 공급이 끊겨버리니 스스로 기능을 멈춘 것이다. 그 마력을 주입하면 깨어난다. 참수도와 카르마 나이프로 그건 증명됐다.


그렇다면 알산나도 다르지 않겠지. 난 그녀에게 뻗은 회로로 마력을 공급했다.


“이리 와. 알산나.”


그 뒤는 짧은 명령. 각성한 알산나는 유리창을 깨부수고 날개를 뻗었다. 그녀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 ─ !!!!!! }


“뭐, 뭐예요!?”

“내 애완 드래곤이요.”


밤하늘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용의 울음소리에 도시가 진동했다. 난 천천히 눈을 떴다. 확장된 감각으로 지금 도시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엠마의 말처럼 어마어마한 수의 기계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모두 날 잡으러 오는 것이다. 그것들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의 거리에서 놈들은 마치 전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진을 갖췄다.


‘전차 같은 것도 있네.’


가까이 접근하면 죄다 짓눌린다는 걸 알고 있으니 거리를 둔 것이다. 인공지능답게 학습하고 그 학습의 결과대로 움직인다. 하지만 여전히 학습이 부족했다.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용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으니까.


{ !!! }


괴성을 내지르며 내리꽂힌 알산나가 날개를 활짝 펼쳤다. 섬뜩하게 돋은 가시들이 로봇들을 짓이기고 꿰뚫었다. 용의 꼬리와 용의 발톱이 놈들의 진형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다급하게 놈들은 알산나에게 공격을 퍼부었지만, 머리끝까지 피가 치솟은 용을 막기란 역부족이었다. 알산나는 여기 와서 내 피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미칠 듯한 허기에 상당히 심기가 좋지 않았다.


‘여긴 알산나에 대한 정보가 없어.’


이유는 모르지만 베르나데트의 서버에 내 정보는 있어도, 알산나는 없었다. 그래서 알산나는 검문에서도 아무런 의심을 받지 않았고 아베스타 서버를 해킹해서 쓰는 엠마의 닐도 알산나만큼은 정체를 알지 못했다.


미지의 적이야말로 최고의 카드다. 난 알산나의 목줄을 완전히 풀고, 마구잡이로 날뛰도록 두었다.


“산 팀장. 노페이스가 오고 있습니다.”


휴대용 단말기를 든 시카가 말했다. 난 끄덕이곤 알산나에게 뻗은 회로로 그 정보를 흘렸다. ‘살 붙은 먹이가 오고 있어.’


“당신 대체 뭐한 거예요..?”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엠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에겐 모든 게 믿기 어려운 일이겠지. 마법을 모르는 인간이 마법을 처음 보았을 때 느끼는 기분은 나도 안다.


그리고 이 대사는 꼭 해보고 싶었다.


“사실 난 마법사거든요.”


엠마는 입을 벌린 채 날 쳐다보기만 했다. 난 꽂아두었던 참수도를 다시 뽑아들고 어깨에 걸쳤다.


“베르나데트의 위치는 확인했어요. 서버실이 어딨는지 알아요. 베르나데트의 병력은 계속 움직이고 있지만 문제없어요. 우리 근처엔 오지도 못할..”

“오, 오, 온다! 오고 있어요! 미사일!!”

“엉?”


엠마는 노트북 화면을 돌려 내게 보여주었다. 확실히 무언가 날아오고 있었다. 도시 바깥이다.


“다른 도시에서 지원? 미사일을 쏘면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다 휘말릴 텐데..”

“베르나데트가 이 정도의 ‘인류 손실’ 을 감수하고도 당신을 제거해야 한다고 판단한 거예요! 어, 어떡하지? 어떡하지!?”

“걱정 마요. 말했잖아요. 나 마법사라고.”

“마법사가 세상에 어딨어요! 일단 도망치죠! 차를 구해서.. 도, 도망칠 수 있나..?”


역시 마법은 안 믿는구나. 저게 정상적인 반응이다. 씁쓸하게 끄덕이며 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확장된 감각으로 밤하늘 저 멀리서부터 날아오는 불길을 확인했다.


“여기 있어봐요.”


참수도를 비틀어 몸을 하늘 높이 날렸다. 총알처럼 튀어 오르는 동안 두 눈으로 날아오는 미사일을 재차 확인했다.


‘머스칼이라면 이렇게 했겠지.’


연방에서도 사람들을 지킨답시고 우주까지 날아가 피해를 최소화하던 자칭 평화주의자를 떠올린다. 물론, 난 우주까지 날아갈 생각은 없다. 날아오는 미사일을 우주로 날려버릴 셈이다.


참수도로 길게 호를 그렸다. 그 궤적이 미사일와 교차했다. 이번에도 역시 허공을 가른 셈이지만, 저 미사일은 이미 참수도의 영향을 받았다. 검으로 하늘을 가리키듯 치켜들자 날아오던 미사일이 위로 휙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미사일은 하늘 높이 올라갔다. 날아가고, 또 날아가고, 그러다 견디지 못했는지 번쩍 빛을 내며 폭발했다. 한 박자 늦게 무시무시한 폭음과 충격파가 내 몸을 흔들었다. 머리칼이 마구 휘날렸다.


“저런 걸 도시에 떨구려 했다니.. 정신 나간 인공지능 같으니라고.”


밤하늘이 번쩍번쩍 빛나며 어두운 도시를 비췄다. 날뛰는 알산나와 움직이는 베르나데트의 병력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그리고 그들 사이로 바쁘게 움직이는 병력들이 있었다. 많지는 않지만, 확실하게 무장하고 있는 자들이다.


노페이스? 아니다. 베르나데트의 병력이라기엔 베르나데트의 로봇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문득 엠마가 말했던 ‘해방군’ 의 존재를 떠올렸다. 다 박살 난 줄 알았는데, 남아있긴 한 모양이다.


아군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 난 잠시 하늘에 떠서 생각을 정리했다.


‘오른팔이 열쇠. 아마 이 팔로 거울 연못도 열 수 있을 텐데.’


사무엘이 보여줬던 미래에서 난 메마른 흙바닥을 파내고 있었다. 아마 거긴 거울 연못이 말라버린 곳이겠지. 도시 전역이 뻗은 회로로 최대한 비슷한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하. 이것 봐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게 서버실 아래에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발밑에 숨겨두겠다는 베르나데트의 의지는 아주 잘 알겠다. 결국, 끝장을 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작전에 대해 고민하던 난 생각을 멈췄다. 생각이 많아 봤자 연산과 예측으로 움직이는 베르나데트에겐 오히려 좋은 일이다.


무계획. 될 대로 되라.


“작전명은 혼돈이다.”


이 규칙과 계획으로 가득한 도시엔 잘 어울리는 결말이다. 잘난 인공지능의 연산으로는 도저히 따라오지 못하겠지. 규칙도, 계산도, 계획도 없으니까.


“정신 나간 인간의 맛을 보여주마.”


입꼬리가 히죽거렸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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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광야(曠野) 헤이카 미켈런 +2 23.05.04 175 12 15쪽
261 재회 +1 23.05.03 167 11 15쪽
260 사막, 괴물, 어린 칼잡이들 +3 23.05.02 162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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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벽(31) - 데이케트람 23.03.23 169 9 18쪽
231 개벽(30) - 행복을 쫓던 사내 +1 23.03.22 169 8 21쪽
230 개벽(29) - 침묵의 도시 23.03.21 166 8 17쪽
229 개벽(28) - 가능성 +1 23.03.20 172 9 17쪽
228 개벽(27) - 시카 23.03.17 166 9 17쪽
227 개벽(26) - 36년 +1 23.03.16 234 9 17쪽
226 개벽(25) - 빛바랜 세상 +1 23.03.15 168 9 13쪽
225 개벽(24) - 문 23.03.14 175 9 18쪽
224 개벽(23) - 본보기 +1 23.03.13 167 9 16쪽
223 개벽(22) - 옛 동료 +1 23.03.10 177 10 16쪽
222 개벽(21) - 마지막 조각 +1 23.03.09 182 10 21쪽
221 개벽(20) - 흐름 23.03.08 174 10 16쪽
220 개벽(19) - 시라비아의 햇빛 23.03.07 180 10 15쪽
219 개벽(18) - 영웅 증후군 23.03.06 205 10 16쪽
218 개벽(17) - 친구인가 적인가 23.03.03 184 10 16쪽
217 개벽(16) - 습격 23.03.02 184 10 14쪽
216 개벽(15) - 헤르그부르 23.02.28 192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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