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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굴P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3.05.08 18:05
연재수 :
2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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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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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9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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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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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16쪽

욕망 시대(6) - 정복자

DUMMY

#1


알산나와 황제 기사. 뒤이어 세 번째로 마주친 눈앞의 용은 다시 한 번 산에게 새로운 충격을 선사하는 존재였다.


황제 기사와는 비교도 안 되는 몸집. 파충류 특유의 차갑고 사나운 눈동자. 지금까지와는 결이 다른 색다른 위압감이 묵직하게 산을 짓눌렀다.


만약 짐승의 심장을 먹은 게 아니었다면 산은 이 자리에서 자신이 졸도했으리라 생각했다. 이 용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건 그런 수준이었다.


알산나와는 차원이 다른 포식자의 기세.


{ 더러운 냄새가 나는군. }


사람의 것이 아니면서 사람의 언어를 흉내 내는 음성이 피 안개 속에서 울렸다. 산은 가슴 속까지 울리는 목소리에 식은땀을 흘렸다.


{ 사람의 피 냄새. 짐승의 체취. 혼돈의 비린내. 고작 한 마리 인간에게서 이런 냄새를 맡는 건 처음이다. }


“···.”


{ 넌 인간이냐? 짐승이냐? }


용이 물었다. 산은 들리지 않게 심호흡을 한 뒤,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모르스 웅골라. 인간이다.”


산의 당당한 대답이 먹혔는지 용의 동공이 조금 커졌다.


상대는 크고, 압도적이다. 그렇다고 산은 이 용에게 넙죽 고개를 숙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용의 오만함은 끝을 모르는 법이다.


{ 배짱은 있군. 하지만 인간이 용에게 이름을 밝히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것이냐? }


“몰라.”


{ 네 이름을 안 이상, 나는 말 한마디로 네놈을 죽일 수도, 영원히 노예로 부릴 수도 있다. 안일한 판단이었구나. 애송아. }


용의 낮은 웃음이 가슴을 두드렸다. 하지만 산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가? 여기 틀어박혀서 아무것도 못 하는 용에게 그 정도 힘은 남아있구나?”


{ 네놈 눈에는 그렇게 보이느냐? }


“움직일 수 있어? 그럼 당장 날개를 펴고 날아봐. 이런 망가진 땅에 누워있지만 말고.”


{ ···. }


‘정답이다. 이놈 못 움직여.’


땅에 배어든 용의 피. 이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터졌다는 백사병 바이러스와 이곳에 꿈쩍도 않는 용. 레토 신부가 말했던 ‘걸쳐 있다.’ 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한 산이었다.


그렇게 어설픈 추측 끝에 던져본 도박은 확실하게 용의 입을 다물게 했다. 산은 기세를 몰아 용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며 말했다.


“여기까지 사람이 온 건 오랜만이지? 아니면 처음인가? 내가 왜 여기 왔을 것 같아?”


{ ···. }


대답 없는 용의 눈이 아래를 향했다. 그곳에선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는 알산나가 있었다.


{ 알산나. 이 가여운 반쪽짜리 뱀이 이곳까지 네놈을 데려온 거로군. }


“난 용이야. 뱀이 아니야.”


대답은 알산나였다. 그녀의 날이 선 목소리에 용이 또다시 웃었다.


{ 인간에게 굴복해 용의 모습을 잃은 네년을 뱀이라 하지 무어라 하겠느냐? }


“난 네 피를 가졌어.”


{ 내 피를 가진 자식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내 자식들 중 살아남은 건 용으로 남은 것들뿐이다. 네년처럼 용도, 인간도 되지 못한 덜떨어진 뱀들은 더 이상 내 자식이 아니다. }


{ 네년이 정녕 나의 딸이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날개를 펴고 날아올라 불을 뿜어라. 이 곯아 터진 땅을 잿더미로 만들고, 내 입에 망할 멜리더스 놈들을 집어넣어 이 아비를 일으켜 보아라. }


“···.”


알산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날개는 날아오를 것처럼 펄럭거렸지만 알산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뜨거운 숨결이 불이 되는 일은 없었다.


{ 불을 다스리지 못하는 용은 용이라 할 수 없다. 그러니 네년은 반쪽짜리 뱀이다. 새보다도 못한 그 날개를 당장 내 눈앞에서 치워라. }


“···.”


{ 그리고 인간. 네놈이 여기까지 무사히 도달한 건 등에 있는 그 더러운 멜리더스 계집의 덕분이겠지. }


용의 눈길에 산의 등에 업혀 있던 헤카테는 산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의 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 네놈이 왜 여기까지 왔는지 난 모른다. 하지만 아무런 용건도 없이 온 건 아닐 테지. 그 멜리더스 계집을 내 입에 넣어라. 그렇다면 원하는 것을 내어주마. 뭐든지. }


“마음에 안 드는데.”


참수도를 거꾸로 쥔 산이 말했다. 용의 눈이 참수도를 노려보았다.


“내 용을 뱀이라고 까내리는 걸로도 모자라서, 유일하게 날 용사님이라 불러주는 꼬맹이까지 내놓으라고?”


{ 아니면 네놈이 내 입에 들어올 테냐? }


“그래도 돼? 대신 조건이 있는데.”

“요, 용사님!”


헤카테가 소리쳤다. 산은 피식 웃으며 여전히 어깨에 얼굴을 묻은 헤카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난 네 피가 필요해.”


{ 구시대의 용 사냥꾼들과 전혀 다를 것 없는 이유로구나. 내 피, 가죽, 비늘, 뼈를 원하던 놈들은 수도 없이 많았지. 모두 잿더미가 되었지만 말이다. }


“크게 한 방울만 가져가면 될 것 같은데. 나눠주면 안 될까? 대신 내가 그 입속에 들어갈 테니까. 배고프잖아?”


{ ···좋다. }


씨익 미소 지은 산은 매달려 있던 헤카테를 조심스럽게 내려주었다. 어떻게든 용의 시선을 피하려 등을 돌리고 선 헤카테는 산을 향해 잔뜩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용사님···. 그러면 안 돼요. 저, 저 용은 끝도 없이 먹는 폭식룡(暴食龍)이에요. 한 번이라도 저 입에 들어가면 절대 돌아 나올 수 없어요···!”

“그래? 어쩐지 알산나의 식욕이 어디서 왔나 했는데, 아빠 닮았구나.”


산은 참수도를 어깨에 걸치곤 툭툭 두드렸다.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겼던 산이지만 이내 그는 용을 향해 돌아섰다.


“용사님!”

“네가 들은 예언에선 내가 용한테 먹혀 죽었어?”

“그건 아닌데···.”

“그럼 안 죽어. 이건 기 싸움이야. 살면서 용이랑 기 싸움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내가 기 싸움엔 또 자신 있거든.”


산의 자신만만한 미소에 용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크게 흔들렸다. 이내 머리를 움직인 용이 그 거대한 입을 열었다. 산이 보기엔 입이라기보단 말도 안 되게 커다란 동굴처럼 느껴졌다.


“알산나. 너 뭐든 먹을 수 있지?”


용의 입으로 들어가기 전, 산은 알산나를 향해 말했다.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알산나가 그를 보았다.


“뭐든?”

“동족이라던지, 용의 불이라던지.”


잠시 그런 산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알산나의 눈이 휘둥그렇게 커졌다. 눈을 빛내며 알산나가 끄덕였다.


“좋아. 해본다.”


산은 어딘가 음흉한 눈웃음을 지으며 거침없이 용의 입속으로 향했다.



#2


용의 입속은 생각보다 메마르고 뜨거웠다. 푸석푸석하게 밟히는 바닥은 아마 혓바닥이겠지만, 마치 조금 단단한 모래 위를 걷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난 혀를 지나 놈의 목구멍에 들어섰다. 여기까지 들어오면 이빨로 씹어대진 못하겠지.


{ 네놈은 이제 돌아갈 수 없다. }


목구멍 안쪽에서부터 웅장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래? 이대로 계속 안으로 들어가면 돼?”


{ 어디에 있든 상관없다. 내 체내에 들어온 순간부터 네놈은 내게 먹힌 것이다. 약속대로 피는 내어주지. 가지고 나갈 순 없겠지만. }


용암이 끓는 듯한 웃음소리. 높은 천장(아마 목구멍의 위쪽)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피조차도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어 만질 수 없었다.


난 곧바로 참수도를 거꾸로 쥐어 힘차게 바닥에 내리꽂았다. 부글거리는 피 거품과 함께 참수도가 깊숙이 박혔지만 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런 몸집이니 이 정도 상처야 별거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최대 출력은 어떨까?


“델라리온.”


{ !!!!! }


이름을 불러 참수도의 압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자 내 몸도 덩달아 무릎이 살짝 굽혀졌다. 동시에 용의 목구멍이 꿈틀거리며 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무리 거대한 용이라도, 단단한 비늘로 뒤덮인 표면이 아니라 살점뿐인 목구멍 안쪽에서 이런 압력을 터뜨리면 영향은 받기 마련이다.


{ 고작, 그 정도 저항으로 될 것 같으냐···! }


놈은 애써 태연하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난 참수도가 압력을 계속 뿜어내도록 두고 카르마 나이프를 꺼내 바닥을 슥 훑었다.


“내가 예전에 회 뜨는 일을 좀 했거든.”


살점은 아주 부드럽게, 그리고 반듯하게 카르마 나이프에 썰렸다.


“근데 용으로도 회를 떠보게 될 줄은 몰랐네.”


속도를 붙여 카르마 나이프를 움직이기 시작하자 용의 살점이 휙휙 날아다녔다. 그래도 나름 용이라고 베어낸 살점이 금방 재생됐지만 속도를 더 올리면 될 일이었다. 녀석의 회복 속도는 내 칼질 속도를 전혀 따라오지 못했다.


{ 엎드려라! 모르스 웅골라! }


기어코 용은 아까 내가 알려준 이름으로 명령하듯 말했다.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는 뜻이다. 아쉽게도 내 이름은 저게 아니지만.


“그거 내 이름 아닌데! 아하하!”


{ 이 벌레 같은 놈이―! }


용의 살점이 쌓일수록 목구멍의 진동이 커졌다. 어두컴컴한 안쪽에선 용암이 끓어오르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가 계속됐다. 그래도 손을 멈추진 않았다.


{ ― !!!!! }


기어코 고통에 찬 포효가 목구멍 안쪽에서부터 터짐과 동시에 후끈한 열기가 들이닥쳤다. 서둘러 방호 코트로 얼굴을 가렸지만 코트 너머로도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온다!’


부글부글 끓는 소리가 코앞까지 들이쳤다. 난 재빨리 검을 챙겨 목구멍에서 반대 방향으로 속도를 냈다. 피로 미끈거리던 혀 위가 뜨거웠다.


그리고 예상대로 꽉 닫혀 있던 놈의 주둥이가 열려 빛이 들어왔다.


“입 다물고 불을 뱉을 순 없지!”


참수도의 압력으로 몸을 날려 놈의 이빨을 지나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데굴데굴 지면을 구르는 몸을 참수도를 내리찍어 가까스로 멈췄다.


“알산나!”


그리고 곧바로 외쳤다.


쩍 벌어진 용의 주둥이. 그곳에서 토해내는 용암처럼 끓는 불. 그리고 그 앞에서 작은 입을 벌린 반쪽짜리 용.


“전부 먹어!”


눈 앞에서 반쪽짜리 덜떨어진 뱀이란 소리를 들었다.


용이란 놈들은 모두 오만하고 콧대가 높다. 하물며 내가 아는 알산나라면 그런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을 녀석이 아니다.


이건 알산나에게도 자신을 증명할 기회일 것이다.


빨간색과 오렌지색이 섞인 용암 같은 불길이 알산나를 덮쳤다. 그 너머에 불그스름하게 물든 거대한 용의 눈동자가 똑같은 불꽃을 머금고 이글거렸다.


아주 잠깐이지만, 난 알산나가 저 불에 잡아먹혔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용이라지만 저 거대한 용에 비하면 알산나는 너무나 작았고, 쏟아지는 불의 양은 지나치게 많았다. 거대한 불의 폭포 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서 있는 꼴이었다.


{ ― !!! }


불을 뿜던 용의 동공이 날카로워졌다. 열기에 얼굴을 가린 나도 불길 속 그림자를 발견했다. 입꼬리가 히죽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역시 내가 고른 용이다.



#3


‘난 뱀이 아니야.’


쏟아지는 불의 폭포의 아래에서, 알산나는 그것을 전부 삼키고 있었다.


고작 몇 초에 불과했지만 벌써부터 주변의 피 안개와 지면의 피가 지글지글 끓었다. 방호 코트를 완전히 벗어 몸을 낮추고 헤카테와 뒤집어쓴 산이 알산나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끓어오르는 공기. 타들어 가는 날개.

알산나는 자신의 눈마저도 불에 그슬리는 고통을 느꼈지만 삼키는 걸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불을 견디는 알산나를 내려다보며 용은 긴 발톱으로 지면을 긁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더욱 많은 불을 쏟아부었다. 알산나의 입술과 혀, 목구멍이 바싹 타들어 갔다.


{ 난 뱀이 아니야! }


열기에 짓이겨진 눈이 회복되었다. 알산나는 용의 눈으로 불을 토하는 용의 눈을 정면으로 노려보았다. 듬성듬성 구멍이 난 날개도 전에 없이 크게 펼쳤고, 꼬리의 가시가 빳빳하게 일어났다.


뼈까지 파고드는 불의 열기. 짓누르는 듯한 용의 시선.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진짜 용의 기세 앞에서도 알산나는 자신이 용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 ···! }


시간이 더 지나자 용의 불길은 더 이상 알산나를 태울 수 없었다. 그녀의 포식은 엄청난 기세로 쏟아지는 불의 폭포를 거뜬하게 삼키고도 남았다.


이윽고 알산나는 삼키는 것을 그만두고, 반대로 불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용의 거대한 눈이 당혹감으로 흔들렸다. 반쪽짜리 뱀이라고 멸시당하던 현대 문명의 용이 아버지의 불과 피를 삼키고 스스로 불을 뿜어내고 있었다.


알산나가 뱉는 불은 점점 몸집을 불려 이젠 용의 불과 정면으로 맞붙어도 밀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흔들리던 용의 눈이 다시금 날카롭게 빛나는 순간, 불길을 뚫고 빙글빙글 날아온 참수도가 용의 눈에 박혔다.


{ 끄, 아― 아아아― 아아아악―――!!!!! }


“윽!”


산과 헤카테는 귀를 틀어막았다. 머리가 아플 정도의 괴성에 가슴이 울리고 귀가 먹먹했다.


눈에 박혀 압력을 뿜어내는 참수도에 용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다 피를 쏟았다. 기회를 놓치지 않은 알산나의 불이 용의 불을 집어삼키고 용의 머리로 번졌다.


마침내 용은 불을 뿜는 걸 멈추고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마다 세상이 뒤집힐 기세로 땅이 흔들렸다. 알산나는 뿜어내는 불을 멈추고 비틀비틀 몸이 기울어졌다. 재빠르게 움직인 산이 쓰러지는 알산나를 받았다.


“나··· 난 용이야···.”

“그래. 너 용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알산나가 히죽 웃었다. 불을 뿜으며 체력을 다 썼는지 알산나는 잠들 것처럼 눈을 감았다 뜨길 반복했다.


{ 이 벌레 놈들―!! }


“질기네···.”


고개를 든 용은 사납게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용의 목구멍에서부터 또다시 부글부글 끓는 용암이 올라오고 있었다. 산은 어느새 용의 눈에서 빠져 떨어진 참수도를 다시 손에 쥐었다.


‘살짝 위험한데.’


알산나는 잠들어버렸고, 산과 헤카테로선 저 용의 불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헤카테와 알산나를 들쳐멘 산은 재빠르게 도망칠 길을 훑었다. 주변의 피 안개가 아까보다 훨씬 자욱하게 시야를 가렸다.


{ 전부 잿더미로 만들―!? }


불을 뿜으려던 용의 머리가 지면에 처박혔다. 입이 닫혀 열리지 않아 용은 목구멍까지 끌어올린 불을 다시 삼켰다.


하늘에선 용의 머리를 찍어누른 사내가 천천히 내려왔다. 검은 후드 아래, 얼굴 없는 검은 시선이 냉랭하게 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델라리온 머스칼···! }


뒤이어 성가(聖歌)처럼 울리는 기도문과 함께 붉은 피 안개를 걷으며 천사가 날개를 펼쳤다.


“레토 신부···. 참 빨리도 오네.”

“발이 빠르셔서 좀 늦었습니다.”


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승리를 확신했다. 여전히 머리가 짓눌린 용의 눈이 그들을 노려보며 분노로 물들었다.


“신부. 피 얼마나 받아가야 해?”

“양은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 용의 피를 담을만한 잔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레토 신부의 말에 산은 가늘게 뜬 눈으로 신부를 노려보았다.


“제가 말씀드렸죠. 이곳에 있는 물건은 위험한 물건이라고. 그러니 저 탐욕스러운 용에게서 무언가를 빼앗기 위해선 그만한 각오와 대가가 필요합니다. 과거 짐승들의 대제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하, 그 소리였구나.”


그의 말을 이해한 산이 끄덕였다.


산은 성큼성큼 용을 향해 다가갔다. 여전히 용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피는 용암처럼 뜨겁게 끓어올랐고 이 피를 머금은 땅도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 네놈은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 아무것도! }


“입 다물고 대가리 숙여. 대제의 어전이다!”


{ 뭐라? }


“이건 달라는 거 아니야. 빼앗는 거지.”


나이프도, 참수도도 아닌 맨손에 힘을 준 산이 짐승처럼 손톱을 세웠다. 그 손은 단번에 용의 비늘을 괴력으로 찢고 살점을 파고들었다.


“정복자는 원래 그런 놈들이야.”


짐승 대제 크루아틀은 황제 기사의 끓어오르는 피를 마시고, 그 피로 몸을 적셨다.


그러니 그 짐승들의 대제를 먹어치운 산이 해야 할 건 이미 정해져 있었다.


“흣!”


짧은 기합과 함께 산의 손이 용의 비늘을 크게 찢었다. 그리고 살점을 크게 뜯어낸 산이 그 살점을 머리 위에서 움켜쥐었다.


쏟아지는 뜨거운 용의 피가 산의 입으로 들어갔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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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욕망 시대(完) +3 23.05.08 204 9 24쪽
263 마법사의 보답 +2 23.05.05 153 10 13쪽
262 광야(曠野) 헤이카 미켈런 +2 23.05.04 174 12 15쪽
261 재회 +1 23.05.03 166 11 15쪽
260 사막, 괴물, 어린 칼잡이들 +3 23.05.02 161 11 12쪽
259 라푸스 벤데르드 +2 23.05.01 168 9 20쪽
258 욕망 시대(13) - 사무엘(Samuel) +2 23.04.28 169 8 17쪽
257 욕망 시대(12) - 눈 내리는 날 +1 23.04.27 162 8 15쪽
256 욕망 시대(11) - 죽음이 아닌 삶을 바라게 될 때까지 +1 23.04.26 157 7 14쪽
255 욕망 시대(10) - 강철의 기사 23.04.25 154 9 15쪽
254 욕망 시대(9) - 소리 없는 침식 +1 23.04.24 165 9 11쪽
253 욕망 시대(8) - 일방적 계약 +1 23.04.21 169 9 20쪽
252 욕망 시대(7) - 길을 잃고 +1 23.04.20 164 9 15쪽
» 욕망 시대(6) - 정복자 23.04.19 163 9 16쪽
250 욕망 시대(5) - 악룡과 용사 +1 23.04.18 159 9 17쪽
249 욕망 시대(4) - 오염구역 탐사 +2 23.04.17 158 8 14쪽
248 욕망 시대(3) - 죽음의 땅 +2 23.04.14 171 9 13쪽
247 욕망 시대(2) - 위험한 여행 +1 23.04.13 155 9 13쪽
246 욕망 시대(1) - 탐욕의 바르바로사 +1 23.04.12 178 9 13쪽
245 죄인 +2 23.04.11 157 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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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삼류 악당 +2 23.04.07 180 10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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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 에콰(4) - 핏덩이 +1 23.04.04 178 9 17쪽
239 에콰(3) - 욕망죄화(欲望罪花) +1 23.04.03 184 10 27쪽
238 에콰(2) - 모르스 에콰 +1 23.03.31 168 9 13쪽
237 에콰(1) - 소녀 +1 23.03.30 166 9 14쪽
236 개벽(35) - 문을 닫다. +1 23.03.29 169 9 15쪽
235 개벽(34) - 찾아온 영웅, 떠나는 영웅 +1 23.03.28 173 9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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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개벽(17) - 친구인가 적인가 23.03.03 183 10 16쪽
217 개벽(16) - 습격 23.03.02 183 1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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