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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P

욕망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굴P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3.05.08 18:05
연재수 :
2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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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018
추천수 :
3,417
글자수 :
1,991,941

작성
22.10.0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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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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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
19쪽

잿빛의 고향(7) - 두 여인

DUMMY

#1


다섯 대의 검은 차량이 줄지어 거리를 질주했다.

좁은 길목에서 내기엔 다소 난폭한 속도였지만 그들은 속도를 내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이윽고 차량이 차례대로 멈춰선 곳은 으리으리한 저택의 대문 앞이었다. 대문 안쪽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차량을 향해 총을 겨눴다.


시커먼 기관단총의 총구가 검은 차량을 겨눈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차량의 반대편 문이 열리며 그 안에서도 검은 옷의 사람들이 내려 차량 뒤쪽에 엄폐했다.


흑과 흑의 대치.

그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이 내리깔린 이곳은 시라비아 미다스에 위치한 에콰의 자택 앞이었다.


이어지던 대치가 지겹다는 듯, 얼굴의 흉터를 일그러뜨리며 플뤼테가 걸어나왔다.

당당하게 엄폐물을 버리고 뚜벅뚜벅 걷는 그녀의 모습에 총을 겨누고 있던 이들이 식은땀을 흘렸다.


“한 번만 말한다.”


플뤼테가 목소리를 높여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이쪽에 붙는 놈은 모두 내 아우고, 우리 형제다. 다섯 새는 동안 선택해.”

“하나.”


그녀의 카운트에 대문을 지키는 이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둘.”

“...”

“세..”


투다다당!!

셋을 미처 끝내기 전에 플뤼테를 향해 총알이 쏟아졌다.


수십 발에 이르는 총알 세례를 한 번에 받은 플뤼테는 차량까지 밀려나 몸이 뒤로 꺾였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총성이 멈추자 희뿌연 초연 너머로 걸레짝이 된 플뤼테가 쓰러졌다. ‘철퍽’ 하는 소리와 함께 보기 흉한 것들이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내 플뤼테의 시신은 마치 고장 난 TV 화면처럼 지직거리다 사라졌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핏자국도 마찬가지였다.


“전부 죽여!”


차량 뒤편에서 또다시 플뤼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엄폐하고 있던 플뤼테의 부하들이 기관단총을 갈겨대기 시작했다.

동시에 대문을 지키던 이들도 방아쇠를 당겼다. 좁은 길거리의 쓰레기통이나 낮은 화단에 몸을 숨기며, 흑과 흑은 서로를 쏴죽였다.


총알이 빗발치는 그 사이로 여러 명의 플뤼테가 튀어나왔다. 그녀들은 무서울 정도의 속도로 대문을 향해 내달려 양손에 든 기관단총을 마구 갈겨댔다.

한 손으로 쏘기에 그녀의 총은 다소 컸다. 때문에 반동으로 총알이 사방팔방 튀었지만 플뤼테는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쏜 총알이 누구에게 박히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아하하하!!”


플뤼테들이 피에 젖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총알 사이로 춤추듯 움직였다.

첫 번째 플뤼테가 걸레짝이 되어 쓰러졌고, 두 번째 플뤼테가 머리가 터져나갔지만, 아직 플뤼테는 네 명이나 남아있었다. 그녀들은 ‘또 다른 자신’ 의 죽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엄폐물을 뛰어넘어 침투한 네 명의 플뤼테에게 대문 앞을 지키던 자들은 몰살당했다. 피범벅이 된 플뤼테들이 입꼬리를 늘어뜨렸고 그녀의 입에서 뿌연 입김이 흘러나왔다.


“멍청한 새끼들.”

“바로 들어가!”

“안에 있는 새끼들도 다 쓸어버려!”


플뤼테들이 저마다 소리를 쳤다. 그게 익숙하다는 듯 플뤼테를 따라온 그녀의 부하들은 그녀의 지시대로 대문을 열고 저택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다시 총을 갈겨댔다.

네 명의 플뤼테도 그 뒤를 따라갔다.


“별거 없네.”


차량 뒤에 엄폐하고 있던 마지막 플뤼테가 느릿하게 걸어나오며 말했다. 그녀를 뒤따라 나온 깍두기 머리의 남자가 끄덕였다.


“누님. 근데 오코넬이 돌아오면 어떡하죠?”

“그놈은 내 분신들 잡으려고 라가토니아에서 뛰고 있어. 이미 눈치는 챘겠지만, 여기까지 오려면 하루는 족히 걸리니까 상관없어.”

“흐음.”

“그런데 볼드. 너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거 맞지?”


플뤼테의 물음에 깍두기 머리의 남자, 볼드는 인상을 구겼다.


“에이 쌍! 누님! 제가 언제 누님한테 거짓말한 적 있습니까?!”

“음. 없긴 하지.”

“그게 월교 새끼들 공장이라는 거 저도 전혀 몰랐다고요! 폐수 처리 공장이니 뭐니 그딴 걸로 등록이 돼 있었고, 공장주도 분명 우리 쪽에 얼굴도장까지 찍은 놈이었다니까요!”


볼드는 정말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가만히 그의 얘기를 듣던 플뤼테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 알았어. 아니면 아닌 거지, 사내새끼가 되게 땍땍거리네.”

“누님이 자꾸 의심하니까 그렇죠! 제가 누님 밑에서 몇 년을 일했는데!”

“미안해. 미안하다고. 됐지? 다 끝나면 술 사줄 테니까 화 풀어.”

“...하아..”


볼드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뒷춤에 꽂아넣은 큼지막한 권총을 뽑아들었다. 플뤼테도 기관단총을 까딱거리며 활짝 열린 대문으로 들어갔다.


안쪽 마당은 이미 정리가 끝나있었다. 에콰의 부하들은 누구 하나 숨이 붙어있지 않았다. 그 사이엔 네 명이었던 플뤼테가 둘이 되어있었다.


“빨리도 죽네.”


뒤늦게 마당에 들어선 플뤼테는 남은 분신을 확인하더니 파장을 터뜨렸다.

공기가 일그러지며 그녀의 양옆으로 각각 한 명씩, 총 두 명의 플뤼테가 추가로 만들어졌다.


“..또 나불거리네.”


플뤼테는 기관단총으로 자기 머리를 두들겼다. 그 모습을 보던 볼드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누님. 요즘 따라 심해진 거 아닙니까? 능력 쓸 때마다 이러잖아요.”

“다 그 오코넬 때문이야. 후.. 어차피 환청은 무시하면 그만이야. 헛것만 안 보이면 돼.”


볼드는 여전히 걱정된다는 눈초리를 했지만 플뤼테는 도리질 몇 번을 끝으로 성큼성큼 잔디밭을 가로질렀다.

그녀의 부하들이 저택의 정문을 걷어찼다. 문이 활짝 열리고 그 너머, 텅 빈 내부가 보였다.


플뤼테가 재빠르게 손짓하자 다시 네 명이 된 플뤼테가 먼저 진입하고, 그 뒤를 따라 그녀의 부하들이 들어섰다. 진짜 플뤼테와 볼드는 항상 꼬리에 붙어 가장 마지막으로 움직였다.


“방금 게 끝이었나?”


안쪽에서 더 이상 에콰의 부하들이 총질을 해대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플뤼테는 지그시 2층 구석의 방문을 노려보았다.


부자들 사는 저택이면서도 구조 자체는 꽤나 고리타분한 이 저택은 중간에 널찍한 계단을 두고 2층 가장자리를 방들이 에워싼 형태였다.

플뤼테는 그중에서도 2층 구석, 에콰의 방을 가리켰다.


그녀의 부하들과 분신들이 우르르 계단을 타고 올라가 방문 앞에 모였다. 그리고 플뤼테의 분신 중 하나가 문을 거칠게 걷어찼다.

요란한 소음을 내며 문이 열리자 첫 번째 플뤼테가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는 방 가장자리, 창가 앞에 의자를 두고 앉은 여자를 발견했다.

플뤼테의 입가가 히죽 웃었다.



#2


“...”


에콰는 말없이 자신의 방으로 우르르 들어오는 플뤼테들과 그녀의 부하들을 바라만 보았다.

시커먼 총구 수십 개가 자신을 겨누었지만 에콰는 동요하지 않았다. 여전히 낡은 목제 의자에 앉은 채, 바로 옆 티 테이블 위에 있던 술잔을 집어들어 한 모금 넘겼다.


에콰의 여유로운 모습을 플뤼테는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생각했다. 분신 플뤼테가 가장 먼저 에콰에게 다가갔다.


‘아무도 없어.’


방 안 어디에도 에콰의 다른 경호원은 없었다. 에콰의 세력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을 리가 없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지만 플뤼테는 그 이상은 고려하지 않았다.

만약 에콰가 무언가를 숨겨두고 있다고 해도 지금 눈앞에 있는 건 진짜 에콰였다. 승기를 쥐고 있는 건 플뤼테였다.


“에콰. 포기한 거야?”


다가가던 플뤼테가 물었다. 술잔을 내려놓은 에콰는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녀의 눈빛에 플뤼테의 부하들은 몸을 떨었다.


차가운 강철.

겨울의 냉기를 머금은 얼어붙은 날붙이 같은 눈.


플뤼테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실력 하나만으로 시라비아 마피아의 최고 간부가 된 여자.

시라비아에서 가장 성가신 미다스의 여주인.


모르스 에콰가 가진 위상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이 시라비아에서 쌓아올린 공적이 지금의 굳건한 시라비아 마피아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때문에 그녀는 죽은 바르바로사의 가장 큰 신임을 얻던 최고 간부이기도 했다.


‘그 오코넬조차 어쩔 수 없는 여자랬지.’


문턱을 막 넘어선 볼드는 침을 꿀떡 넘기며 생각했다. 물론, 소문에 불과한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탕 - !


갑자기 터진 큰 총성에 볼드가 화들짝 놀랐다. 다른 이들도 움찔하며 총성의 주인을 찾으려고 눈알을 움직였다.

하지만 다들 예상했다시피, 총을 쏜 것은 에콰였다. 그녀는 자리에 앉은 그대로 다가오는 플뤼테에게 권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플뤼테는 휘청거리다 풀썩 쓰러졌다. 곧, 그녀의 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에콰가 피식 웃었다.


“플뤼테. 이게 뭐지? 약속을 깬 건가?”


에콰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자 나머지 플뤼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난 널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날 찾아올 땐 이깟 가짜가 아니라, 진짜 몸이 오기로 약속하지 않았던가?”


에콰의 차가운 눈이 플뤼테들을 훑어보았다. 그러던 그녀의 시선이 한 플뤼테에게 꽂혔다.

그녀의 시선을 받은 플뤼테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분신이 아닌 진짜 플뤼테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진짜 나’ 를 단번에 알아보는 건지 역시 모르겠어.”

“우리가 몇 년 지기인데, 그걸 모르겠어.”


에콰는 권총을 내렸다. 그 무방비함에도 플뤼테의 부하들은 도저히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너희 전부 나가 있어.”


그때, 플뤼테가 말했다. 볼드는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누님..?”

“얘기 좀 할 테니까 나가 있으란 거야.”

“...가자.”


볼드는 불안했지만 플뤼테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건 누구보다 그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볼드와 함께 플뤼테의 부하들이 전부 나가자 방 안에는 몇 명의 플뤼테만 남게 되었다. 본체가 하나. 분신이 셋이었다.


에콰는 그것까지 지적하진 않았다. 결국, 이 방 안에 있는 건 타인이 아닌 전부 플뤼테 본인이기 때문이다.


플뤼테는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그러자 테이블 위 술잔을 맑은 술로 가득 채운 에콰가 플뤼테에게 술잔을 건넸다.

잔을 받아든 플뤼테는 잔 속에 든 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치 물처럼 맑기만 했다.


“내가 독이라도 탔을까 봐?”


마시진 않고 망설이는 플뤼테를 향해 에콰가 웃으며 물었다. 플뤼테는 입맛을 다시더니 맑은 술을 한 모금 넘겼다.


“오?”


술 맛을 본 플뤼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에콰는 그녀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괜찮지? 스토커가 구해다 준 술이야. 귀한 거라던데. ‘알비다스 카즈’ 라고 하던가.”

“알비다스.. 뭐? 처음 듣는 술인데.”

“스토커가 설명하길 이쪽 말로 풀면 ‘마곡인의 술’ 이라더군. 정작 마곡인이 어디 사람들을 말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에콰도 자신의 잔에 든 투명하고 맑은 술을 마셨다. 플뤼테도 몇 번 더 홀짝이더니 금세 잔 안의 술이 반이나 줄었다.


“에콰. 네가 정말 날 죽이라고 오코넬을 보낸 거야?”


술잔을 아쉽다는 눈으로 내려다보던 플뤼테가 지나가듯 물었다. 에콰는 의자의 팔걸이를 손톱으로 두드리며 고민하던 끝에 말했다.


“그래.”


플뤼테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한숨을 쉬었다.


“왜?”

“그럴 이유가 있었어.”

“죽는 건 난데, 내가 그 이유를 알면 안 된다는 거야?”

“...”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에콰는 무릎 위에 놓아둔 권총을 만지작거렸다. 그걸 들어 방아쇠를 당기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

하지만 반대로 플뤼테가 에콰를 벌집으로 만드는 것도 손쉬운 일이었다. 지금 두 여자는 손가락만 까딱하면 서로를 죽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에콰. 보스를 죽인 건 너지?”

“왜 나라고 생각해?”

“너한테서 보스의 피 냄새가 나.”


에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플뤼테에게 말했다.


“보스는 독을 먹고 죽었어. 나한테 목이 베인 게 아니라.”

“나도 알아. 즐겨 드시던 콩 수프에 든 독을 먹고 피를 토하면서 죽었다지. 근데 내가 한 가지 더 아는 게 있어.”


플뤼테의 눈이 날카롭게 에콰를 주시했다.


“보스의 마지막 식사 자리. 그 맞은편에 앉아있던 사람이 너였다는 거.”

“...”

“그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심문했다지. 하지만 단 한 사람은 건너뛰었어. 에콰. 그게 너야. 보스의 마지막은 어땠지?”

“...”


에콰는 허공을 바라보며 그때를 떠올리는 듯했다. 플뤼테는 잠자코 그녀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처음엔 기침을 했고. 그다음엔 옆으로 쓰러졌고. 내 쪽으로 기어왔지. 그리곤 바짓단을 붙잡고 올라오더니 마지막엔 내 멱살을 잡았어.”

“..너...”

“얼굴이 신기했어. ‘대체 왜?’ 라는 얼굴이었거든. 제아무리 시라비아를 수십 년간 지배한 바르바로사라고 해도, 죽을 땐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게 없었어. 의문. 분노. 두려움. 그런 것들로 가득했지.”

“보스를 죽인 건 너야?”


플뤼테는 다시 물었다. 에콰는 술을 한 모금 넘기고 말했다.


“맞아.”


이번엔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민의 여지도 없다는 듯 그녀의 대답은 시원했다.

하지만 에콰의 자백에 플뤼테의 얼굴은 더욱 복잡해졌다.


“왜 죽인 거야? 보스는 널 누구보다 믿고 아꼈잖아?”

“충분히 오래 살았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보스가.. 음... 105살이면 오래 살긴 했다지만, 그래도 죽일만한 이유는 안 되는 것 같은데?”


에콰는 플뤼테의 눈을 마주 보며 웃었다. 그 오묘한 미소에 담긴 의미를 알 수 없는 플뤼테는 도저히 따라 웃을 수 없었다.


“내 말은 진작에 죽었어야 했다는 거야. 그렇게 오래 살 사람이 아니었다는 거지.”

“..역시 잘 모르겠는데.”

“보스에겐 남다른 장수의 비결이 있었어.”


에콰는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플뤼테에게 보여주었다. 작고 검은빛을 띄는 그것은 완벽한 구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이걸 드셨지.”

“이게 뭐야?”

“욕망의 씨앗.”


플뤼테는 여전히 그녀의 말을 따라갈 수 없었다. 슬슬 이 상황 자체가 답답하다 느낀 그녀는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기관단총을 두드렸다.


“어쨌든 네가 보스를 죽이고 내게 그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건 맞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네겐 미안하게 생각해. 플뤼테. 난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어.”


에콰는 잔을 내밀었다. 그녀의 결의로 다져진 얼굴을 마주 보며 플뤼테도 잔을 들었다.


“에콰. 난 널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친구 맞아.”


마침내 두 술잔이 부딪치며 맑은소리가 났다. 에콰와 플뤼테는 남은 술을 단번에 들이켰다.


빈 술잔이 바닥에 떨어지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총구가 올라왔다.

에콰의 권총이 커다란 총성과 함께 총알을 뱉어냈다. 바로 앞에 있던 플뤼테가 재빨리 몸을 날려 기관단총을 들었다.


본체를 포함한 네 명의 플뤼테가 양손에 든 기관단총을 갈겼다.

총구만 해도 여덟 개. 게다가 쉴 새 없이 총알을 쏟아붓는 기관단총은 순식간에 에콰의 방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에콰는 침대를 훌쩍 뛰어넘어 그 뒤로 몸을 숨기곤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때, 에콰의 바로 옆으로 플뤼테가 뛰쳐 들어왔다.


탕!

에콰의 권총이 플뤼테의 머리를 터뜨렸다. 직후, 에콰는 곧바로 머리 위로 권총을 옮기고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탕!

미끼로 던진 플뤼테를 틈타 위에서 총알을 쏟아부으려면 두 번째 플뤼테도 가슴팍에 구멍이 뚫리며 벽에 처박혔다. 에콰는 침대 밑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칫!”


혀를 찬 플뤼테가 공기를 일그러뜨렸다. 터져 나온 파장과 함께 그녀의 등 뒤로 두 명의 플뤼테가 더 나타났다.


하지만 분신이 완성됨과 동시에 그녀의 남은 분신은 한 명이 되었다. 에콰는 플뤼테의 분신들을 순식간에 제거하며 날쌘 움직임으로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마지막 분신을 방패로 앞세운 플뤼테는 또다시 공기를 터뜨렸다.

그 순간, 플뤼테는 끔찍한 현기증에 휘청거렸다. 머리를 무언가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빌어먹을..!”


더 이상 분신을 쥐어짜는 것도 불가능했다. 방패가 되어주던 분신마저 머리가 터져나갔고 그 너머로 에콰의 차가운 눈이 스르륵 나타났다.


에콰의 권총이 플뤼테를 노렸다. 분신을 모두 잃은 플뤼테는 휘청거리는 와중에도 양손의 기관단총을 앞으로 내밀었다.


“...!”


별안간 에콰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더니 그녀가 피를 토했다. 플뤼테는 갑작스러운 에콰의 모습에 당황했다.


그녀도 에콰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오코넬과 처형인들이 미다스에서 빠져나간 이 시기를 노려 에콰를 치러 온 것이기도 했다.


만전의 상태인 에콰라면 몰라도, 지금의 에콰라면 어쩌면 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그 판단을 옳았다.

지금 눈앞에선 피를 토하는 에콰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플뤼테는 기관단총을 에콰에게 겨누었다.


“...”


하지만 방아쇠울에 걸린 플뤼테의 손가락이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에콰의 잔재주가 아닐까 싶었지만 플뤼테는 그게 자신의 망설임 때문이란 걸 이내 깨달았다.


‘뭘 망설여?’


플뤼테는 입술을 깨물었다. 눈앞에서 무너진 에콰의 모습에 머릿속에서 요동치는 환청이 더욱 커졌다.

그 환청에는 에콰의 목소리도 있었다. 지금의 에콰가 아니라, 과거의 그녀였다.


부모도, 친인척도 없는 어린 소녀들이 이 척박한 시라비아를 살아가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살아남았다. 비록 이전에 걸어온 길은 달랐지만, 조직에 몸을 담기 시작할 때부터 플뤼테와 에콰는 서로를 의지했다.


굳게 믿었기에 자신의 등을 기꺼이 내주었던 두 소녀였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지금에 이르러서 여인이 된 소녀들은 서로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플뤼테는 이 상황 자체가 끔찍하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님!”


그때,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선 것은 볼드였다. 그의 뒤로도 플뤼테의 부하들이 우르르 밀려 들어왔다.


그들은 무릎을 꿇고 쿨럭거리는 에콰와 그녀에게 총을 겨누고 선 플뤼테를 발견했다. 상황으로 보아 누가 봐도 이 구도는 플뤼테의 승리였다.


정작 플뤼테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있었고, 반대로 에콰는 기침이 멈추면 플뤼테를 주저 없이 쏴버릴 생각이었지만 그런 속내를 플뤼테의 부하들이 알 리가 없었다.


“왜 들어와? 들어오지 말라고 했잖..”


플뤼테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별안간 에콰의 방에 있던 창문을 깨부수며 시커먼 무언가가 들이닥쳤다. 플뤼테와 그녀의 부하들은 그가 오코넬이라고 생각했는지 숨을 삼켰다.


‘벌써 올 리가..!’


다행히 그건 오코넬이 아니었다.


검은 코트를 늘어뜨리며 몸에 묻은 유리조각을 대충 털어낸 젊은 청년이 허리를 곧추세웠다. 그의 손에는 새까만 칼날이 번들거리며 서늘한 기운을 내뿜었다.


시라비아에서도 보기 드문 독기로 가득한 눈이 난장판이 된 방 안을 훑었다.

창 밖에선 요란한 굉음을 내는 수송선이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흠. 개판이네.”


산이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주말 편히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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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에콰(5) - 일그러진 미소 아래 +2 23.04.05 183 9 15쪽
240 에콰(4) - 핏덩이 +1 23.04.04 178 9 17쪽
239 에콰(3) - 욕망죄화(欲望罪花) +1 23.04.03 184 10 27쪽
238 에콰(2) - 모르스 에콰 +1 23.03.31 167 9 13쪽
237 에콰(1) - 소녀 +1 23.03.30 166 9 14쪽
236 개벽(35) - 문을 닫다. +1 23.03.29 169 9 15쪽
235 개벽(34) - 찾아온 영웅, 떠나는 영웅 +1 23.03.28 173 9 21쪽
234 개벽(33) - 베르나데트 23.03.27 163 9 20쪽
233 개벽(32) - 자유를 향해 +2 23.03.24 163 9 18쪽
232 개벽(31) - 데이케트람 23.03.23 168 9 18쪽
231 개벽(30) - 행복을 쫓던 사내 +1 23.03.22 168 8 21쪽
230 개벽(29) - 침묵의 도시 23.03.21 165 8 17쪽
229 개벽(28) - 가능성 +1 23.03.20 171 9 17쪽
228 개벽(27) - 시카 23.03.17 165 9 17쪽
227 개벽(26) - 36년 +1 23.03.16 233 9 17쪽
226 개벽(25) - 빛바랜 세상 +1 23.03.15 167 9 13쪽
225 개벽(24) - 문 23.03.14 174 9 18쪽
224 개벽(23) - 본보기 +1 23.03.13 166 9 16쪽
223 개벽(22) - 옛 동료 +1 23.03.10 176 10 16쪽
222 개벽(21) - 마지막 조각 +1 23.03.09 181 10 21쪽
221 개벽(20) - 흐름 23.03.08 173 10 16쪽
220 개벽(19) - 시라비아의 햇빛 23.03.07 179 10 15쪽
219 개벽(18) - 영웅 증후군 23.03.06 204 10 16쪽
218 개벽(17) - 친구인가 적인가 23.03.03 183 10 16쪽
217 개벽(16) - 습격 23.03.02 182 10 14쪽
216 개벽(15) - 헤르그부르 23.02.28 190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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