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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P

욕망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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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굴P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3.05.0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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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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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잿빛의 고향(6) - 희미한 그리움 속에서

DUMMY

#1


시라비아의 칙칙한 새벽이 지나고 동이 트는 시간.

배가 드나드는 부둣가의 한 창고 앞에서 싸구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있던 오코넬은 일출을 감상하며 물고 있던 담배를 까딱거렸다.


밤중에 있던 총성과 칼부림, 비명과 누군가의 피는 그렇게 떠오르는 태양에 밀려 자리를 내어주는 밤과 같이 조용히 묻혀 사라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른 부둣가의 사람들은 누구도 지난밤의 소란에 대해선 떠들지 않았다. 시라비아에선 자연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간밤에 들어오지 않은 가족이 영영 돌아오지 않는 일도, 바로 옆에서 신문지를 덮고 자던 길거리 이웃이 해가 뜨니 없어져 있던 일도.

모두 시라비아에선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총성에 잠에서 깨긴 하더라도 그들은 다시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할 뿐,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오코넬.”


그리고 그런 밤을 이곳에서 꼬박 새운 오코넬은 자신을 부르는 소년의 목소리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 끝에는 검은 머리와 검은 눈을 가진 소년이 있었다.


“꼴을 보니 못 찾은 모양이군. 이반.”


시라비아 마피아의 앳된 처형인, 이반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떨궜다. 분한 듯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찾긴 했습니다.”

“그럼 못 잡았다는 게 되는 건가. 흠. 플뤼테가 성가시긴 하지.”

“플뤼테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지난번 아시리아에서 봤던 그 검은 슈트 놈들이..!”

“콥스 바탈리온?”


이반은 애매한 얼굴로 끄덕였다.


“그, 그런 것 같습니다. 그때 거기서 본 놈들이 분명합니다. 공업 소속이던..”

“그놈들은 공업 소속이 아니다. 공업이 고용한 외부 무장 세력이지. 용병이야. 그나저나 콥스 바탈리온이란 이름도 모르다니. 이 바닥에선 잘 알려진 이름인데.”

“...”

“딱히 나무라는 건 아니다. 이반. 고개 들어.”


이반은 오코넬의 말대로 고개를 들었다. 그는 여전히 담배 연기를 흘리며 시선은 수평선에 떠오르는 태양에 고정한 채 말했다.


“콥스 바탈리온 혹은 D.A.B(Dead Army Battalion)라고 불리지. 겉보기엔 레베스타 출신 용병 부대 같지만, 놈들의 무장은 레베스타제가 아니야.”

“그럼..?”

“아무도 몰라. 레베스타의 누구도 콥스 바탈리온에게 기술적 지원을 했다는 얘긴 없었고, 진짜 레베스타 용병인 파스트라스조차 놈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라고만 말했지. 어설프게 레베스타 용병을 연기할 뿐인 수상쩍은 놈들이다.”


간밤에 마주쳤던 콥스 바탈리온을 떠올린 이반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시라비아의 처형인들을 상대로도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은 그들의 화력은 이미 진짜 군대나 다름이 없었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춘 처형인이라 한들, 오코넬 수준이 아닌 이상 그들의 화력을 뚫고 플뤼테를 잡는 건 어려웠다.


“그런데 콥스 바탈리온이 우리를 방해했다는 건 공업이 플뤼테랑 붙어먹었다는 소린데..”

“...”


오코넬은 이반의 분위기가 날카로워지는 걸 느꼈는지 눈을 끔뻑거리며 그의 얼굴을 살폈다. 독기로 가득한 소년의 눈이 매섭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이반.”

“예.”

“절대로 산에게 덤비지 마라.”


정곡을 찔렸는지 이반의 얼굴에선 복잡한 감정이 드러났다. 이반은 대답도 없이 입술을 깨물기만 했다.


“네가 산에게 악감정이 있는 건 안다. 하지만 산은 네가 잡을만한 놈이 아니야. 게다가 잡아서도 안 돼.”

“..놈은 배신자입니다. 왜 살려두시는 겁니까?”

“보스의 의지니까.”


이미 죽은 바르바로사의 명령을 지킬 이유가 무엇인가. 이반은 그 점을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낼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죽은 자라고 한들 이 시라비아를 지배하는 마피아들의 우두머리가 남긴 것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바르바로사는 이미 시라비아에선 신적인 존재나 다름이 없었다. 그를 모욕하거나 그의 의지에 의문을 가지는 것 자체가 조직 내에선 사실상 금기시된 일이었다.


“그리고 보스가 아니더라도 네가 산을 건드리는 순간 넌 죽는 결과밖에 안 나와.”

“제가 그 배신자에게 죽을 거란 말입니까?”

“그럴 수도 있고. 만약 산에게서 살아남더라도 넌 죽어. 모르스 에콰가 널 죽일 테니까.”


에콰의 이름에 이반은 흠칫했다. 이름만으로도 그 두려움을 흩뿌릴 수 있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정도로 시라비아에서 에콰라는 이름이 가진 힘은 강대했다.

오코넬은 담배 연기를 뭉게뭉게 피워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 목적은 플뤼테다. 명심해라. 딴 길로 새지 마.”

“예. 하지만 그 플뤼테를 공업이 지키고 있는데, 이대로는 놓칠 겁니다.”

“다 방법이 있지.”


마침내 오코넬이 몸을 일으켰다. 그의 그림자가 떠오른 태양을 정면으로 맞아 늘어졌다.


“플뤼테는 분신을 만들 수 있다. 그건 알고 있지?”

“예.”

“그 분신에도 단점이 있어. 본체와 모든 감각,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한 번 만들어낸 분신은 ‘죽음’ 에 이르지 않는 이상 스스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거다.”


그건 이미 알고 있는 얘기였다. 이반은 오코넬의 말에서 여전히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지금도 플뤼테의 분신은 여기 있는 하나가 전부는 아니라는 소리야.”


오코넬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2


“37명.”


‘지금 몇 명이나 있느냐.’ 라는 산의 질문에 되돌아온 플뤼테의 대답은 산을 당황하게 하기엔 충분했다.


“서른일곱이나 있다고요? 본체 포함?”

“제외하고.”

“나머지 어딨습니까?”

“이곳저곳에 퍼져있어.”

“아, 이런.”


산은 쓰디쓴 한숨을 내뱉었다. 정작 플뤼테는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는 눈으로 산을 보았다.


“뭔데?”

“제가 그쪽을..”

“누님이라 부르라고 했지.”

“..누님을 지키려면 지금 여기 있는 누님만 지켜서 될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거든요. 오코넬이 다른 분신을 노려버리면 그만이니까.”


플뤼테도 그제야 산의 고민을 이해했다. 그건 그녀가 걱정하고 있는 것과도 똑같았다.


분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건 분명 강력한 능력이다. 하지만 그 능력의 단점은 죽음에 이르지 않는 이상 분신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님. 그냥 나머지 분신 싹 자결시키면 안 됩니까?”

“안 돼. 만약 싹 없애버렸다가 ‘진짜’ 가 궁지에 몰리면 그땐 어쩌려고?”

“그땐 다시 분신을 만들면 되잖아요.”

“그렇게 쉽게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야. 체력을 엄청나게 쓴다니까? 애 낳는 게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을 정도거든.”


플뤼테의 비유가 적절했는진 모르겠지만, 산은 그녀가 자유롭게 분신을 양산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산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했다.

플뤼테가 그런 산에게 말했다.


“상관없어. 잡힐 것 같으면 죽어버리면 되니까.”

“그걸 아는 사람이 아홉 번이나 잡혀서 고문을 당했단 거는..”

“오코넬이 움직이는 건 어쩔 수 없었거든. 그 자식은 내가 죽는 것도 마음대로 못 하게 해. 전혀 대응할 수 없어.”


오코넬이 그 정도의 사내라는 건 산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당장 이 상황에서 최적의 수는 분신의 수를 줄이는 것이었다. 산은 그녀를 설득해보기로 했다.


“저랑 제 팀은 무한으로 양산되는 게 아닙니다. 지킬 수 있는 누님은 한계가 있어요. 한 번에 서른 일곱 명을 지킬 순 없다고요. 머릿수라도 좀 줄여봐요.”

“흐음..”

“아니면 그냥 본체 위치를 알려주던지.”

“안 돼.”


여기까지 와서도 산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 플뤼테의 모습에 산은 답답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가 그토록 경계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자신의 목숨이 걸린 일이니 말이다.


“혹시 그 엄청난 정신력으로 서른 일곱 번 더 고문당하더라도 위치 안 불 자신 있습니까?”

“...”


플뤼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눈만 깜빡거렸다. 아무리 조직의 최고 간부라 한들 결국은 인간이다.

피를 흘리고, 고통을 느끼는 사람에 있어서 오코넬의 고문은 신분을 따지지 않을 것이다. 산은 그녀의 정신력에 대해선 그다지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아홉 번이나 견뎌낸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러면 역으로 우리가 치고 들어가는 편이 좋겠는데..”

“아니. 그 전에 네가 내 혐의를 벗겨 내면 되잖아? 내가 무고하다는 걸 에콰에게 증명하는 거야. 그럼 에콰도 오코넬을 물리겠지.”


플뤼테는 말하면서도 자기 생각이 꽤 그럴듯하다고 느꼈는지 어딘가 뿌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산은 가차 없이 고개를 저었다.


“혐의를 벗긴다고 누님이 안 죽을 것 같진 않은데요.”

“뭔데? 왜?”

“보스가 암살당했고, 최고 간부들 사이에선 내분이 일어났죠. 그 발단이 뭔지는 이미 관계없는 거 아닙니까? 평소에 성가시던 상대를 잘라낼 수 있다는 게 중요하지.”

“그러니까 네 말은.. 내 무고함을 증명해도 에콰가 멈추지 않을 거란 소리야?”


산이 끄덕였다. 플뤼테는 뚱한 표정으로 몸을 축 늘어뜨렸다.


“그럼 별수 없네. 마지막 수단을 써야겠어.”

“..왠지 불안한데요.”

“전쟁을 피할 수 없으면 이쪽에서 먼저 박살을 내버리면 돼.”


그녀의 입가에 위험한 미소가 떠올랐다.



#3


그날 오후, 도화선에 불이 붙은 듯 한 번 시작된 총성과 칼부림은 쉴 새 없이 시라비아를 흔들었다.


라가토니아는 물론이며, 구 루마니아 북부로 넘어가는 베르몬드 구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보기엔 처형인에게 저항하는 플뤼테의 모습이겠지만, 그 규모를 따지자면 결국 처형인을 움직인 에콰와 플뤼테의 전쟁이나 마찬가지였다.


시라비아의 주민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곤 익숙한 듯 문과 창문을 단단히 걸어잠그고, 그 뒤에 철판을 끼웠다. 행여나 눈먼 총알이 튀어들어 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시작된 마피아의 세력 다툼은 꽤 치열했지만, 어느 한 쪽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진 않았다. 공업이 사실상 방관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닐라. 찾았어요?”

“아직입니다.”


쥬스를 쭉 빨아 마시며 차에 올라탄 산이 물었다. 비서실장 닐라는 차량 뒷좌석 구석에 앉아 쉴 새 없이 노트북과 휴대용 단말기를 두들기고 있었다.


아랫사람을 시키면 되는 일 아닐까 싶었지만, 지금 이 시라비아에 온 공업 인원의 대부분은 전투 요원이었다. 저렇게 자판을 두드리며 정보를 잡아내는 건 순전히 닐라의 몫이었다.


물론,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 연결된 곳은 있는지 종종 어딘가 연락을 취해 도움을 받곤 했다. 산은 묵묵히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플뤼테의 본체만 찾으면 돼. 그리고 공장 부수면 끝이고.’


스토커의 말대로 플뤼테를 지켜준다곤 했지만 산은 마피아들의 내전에 휘말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니 본격적으로 시작된 플뤼테와 처형인들의 충돌에 산은 직접 끼어들진 않았다. 콥스 바탈리온으로 최소한의 화력 지원은 해주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싸우는 시늉을 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리고 같은 시각, 시라비아 상공엔 공업의 드론이 날기 시작했다. 모두 아베스타의 기술로 움직이는 드론이었다.


"저걸로 진짜 찾을 수 있는 거죠?"

"찾을 수 있습니다. 감응자의 파장만 찾아내면 되니까요."


플뤼테의 본체를 찾을 단 하나의 단서. 그건 그녀의 본체에서밖에 나오지 않는 파장이었다.

감응자인 이상 능력 사용 시 관측되는 파장을 숨길 순 없다. 그 점을 아는 닐라는 공업의 기술인 아베스타를 이용해 시라비아 전역에서 파장을 관측하는 방식으로 플뤼테를 찾아내려는 중이었다.


"찾았습니다.”


그렇게 초조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던 산이 반가운 소식에 고개를 돌렸다. 닐라는 단말기 화면을 산에게 보여주었다.


“응? 미다스?”

“..네. 플뤼테의 본체가 미다스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미다스엔 에콰가 있는데요?”

“하지만 오코넬과 처형인들은 다 빠져나온 상태죠. 아마 그걸 노리는 것 같습니다.”


산은 탄식에 가까운 신음을 흘렸다. 플뤼테의 머릿속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다.


“분신을 잡으려고 처형인들이 다 미다스에서 빠져나왔으니.. 이 틈에 혼자 남은 에콰를 잡으러 본체가 직접 갔다는 얘깁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근데 왜 본체가 가??”

“..자존심 같은 게 아닐까 싶군요.”


‘빌어먹을 자존심.’ 산은 그렇게 되뇌며 귀에 끼웠던 소형 단말로 아베스타에 접속했다.

눈앞에 홀로그램처럼 반투명한 화면들이 나타났다. 그곳엔 닐라가 찾아낸 ‘진짜’ 플뤼테의 모습도 함께였다. 그녀가 탄 차량이 미다스 지역에 막 들어선 상태였다.


“에콰의 위치는요?”

“이미 찾았습니다. 모르스 에콰는 현재 자택에 머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플뤼테도 그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산은 다시 한 번 고민에 잠겼다.

여기서 플뤼테를 지키기 위해 미다스로 대원들을 끌고 이동하는 것. 아니면 플뤼테를 지켜달라는 스토커의 의뢰를 포기하고 이대로 베르몬드의 공장을 파괴하고 끝내는 것.


사실상 안전의 위험이 없는 건 후자였다. 스토커의 수상쩍은 사업 제안에 목숨을 걸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산이었으니 후자를 택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산은 문득 한 가지를 떠올렸다.


‘에콰의 건강이 좋지 않다.’


만약 에콰가 멀쩡하다면 플뤼테에게 승산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건강 이상이 화두로 떠오르는 지금, 승기는 플뤼테에게 기울어질지도 모른다.


‘플뤼테가 에콰를 처리하면?’


플뤼테가 무사할 테니 스토커의 의뢰도 실패는 아니게 된다. 즉, 이대로 플뤼테를 내버려 둬도 상관없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팀장님?”

“...”


산은 닐라의 부름에 그녀를 보았다. 닐라는 여기선 산의 판단에 따르겠다는 듯 전 대원들을 향해 채널을 연결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자가 죽을지도 모르지.’


단 한 번도 어머니라 생각하지 않았던 여자.

인생을 송두리째 지옥으로 만들어버린 여자.


그녀가 사라질 수도 있다. 산은 그녀가 없는 세상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과연 어떤 기분일까? 아직 찾지 못한 진정한 ‘자유’ 를 찾을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산은 입을 열었다.


“미다스로 이동합니다.”


산은 자신이 말하고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닐라는 벌써 아베스타의 통신 기능으로 전 대원에게 미다스의 좌표를 찍어 보내고 있었다.


‘내가 그 여자를 걱정하는 건.. 가?’


산은 자신의 복잡한 마음을 제대로 해석할 수 없었다. ‘스토커의 의뢰를 위해서야.’ 산은 그렇게도 생각해봤지만,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선 이미 다른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상상할 수조차 없던 것이다.


“이동하겠습니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공업의 특수팀 대원이 말했다. 부웅 하며 앞으로 쭉 나아가기 시작한 차량에 바깥의 풍경이 휙휙 지나가기 시작했다.

산은 그런 창 밖을 바라보며, 한 손으론 아베스타의 화면을 조작했다. 어렵지 않게 최종 좌표의 실시간 영상이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저택이었다. 시라비아에선 보기 드문 마당이 딸린 고급 저택.

저택의 마당은 잔디로 뒤덮여 푸르렀고, 구석엔 작은 연못과 그 옆으로 정원이 있었다. 정원에 꽤 많은 꽃이 있었음을 떠올린 산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익숙한 저택이었고, 익숙한 것투성이였다. 산이 시라비아를 떠난 지 8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에콰의 저택은 그때와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저 마당에서 즐겁게 뛰놀던 풋풋한 기억은 없었다. 항상 머리를 덜렁덜렁 들고 돌아와 잔디밭에 피를 묻힌 기억뿐이었다.


하지만 산은 저곳을 좋아했다.

물고기 하나 없는 연못을 보는 걸 좋아했고, 별 볼 일 없는 초록색 잔디를 보는 걸 좋아했으며, 정원에 핀 꽃들을 보는 것도 좋아했다.


“...”


어린 나이에 느꼈던 작은 동심이리라.

산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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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재회 +1 23.05.03 166 11 15쪽
260 사막, 괴물, 어린 칼잡이들 +3 23.05.02 161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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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개벽(17) - 친구인가 적인가 23.03.03 183 1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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