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13화
잠결에 미영의 샌드위치를 먹었던 윤아는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TV를 보고 있던 멤버들에게 실상을 고스란히 일러바쳤다.
미영이 만든(?) 샌드위치를 먹었다는 말을 듣고 멤버들은 윤아에게 애도를 보내며 위로를 해주었다. 하마터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저 먼 세계로 보내버릴 뻔했던 것이다.
이렇듯 다시 한 번 미영의 요리 실력이 증명된 가운데, 창현에게 샌드위치를 선물 받고 호의로 윤아에게 나눠줬다가 누명을 뒤집어 쓰게 된 미영은 미칠 노릇이었다.
하지만 멤버들의 반응을 고스란히 보관해놓았다.
‘두고 봐, 나중에 창현이한테 다 말할 테니까.’
창현이가 만든 샌드위치라는 걸 알았다면 과연 멤버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까? 절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기에 미영은 이 사안을 보관해두고 나중에 필요할 때 써먹기로 결심했다.
묵묵히 자신에게 가해지는 비난을 감수한 미영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분명 자신이 먹었을 때 샌드위치는 맛이 있었는데 윤아가 먹었을 때는 반응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왜 그러지? 이상할 리가 없는데.”
“그야 당연하지. 네 손이 닿았는데.”
뒤에서 들려온 태연의 목소리에 미영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야. 파니 너, 손만 닿으면 요리가 맛이 없어지는 거 잊었어? 우리가 연습생 시절에도 음식에 손대지 못하게 했었잖아.”
“어차피 맛이 있으면 내 손은 상관이 없잖아.”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을 해봤지만 태연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세계에는 자신과 맞지 않는 파장을 가진 게 종종 있어. 미영이 넌 음식과 파장이 맞지 않아. 그러니 절대 음식을 만들어선 안 돼.”
“만들고 싶은데…….”
“안 돼!”
“히잉!”
딱 잘라 말하니, 미영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저 표정에 넘어갔다가 생각하기에도 끔찍한 음식을 먹을 수 있기에 태연은 확실하게 삭초제근에 나섰다.
“음식을 즐겁게 만드는 건 상관이 없어.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하지 마. 네가 만든 건 너만 먹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간을 봐주는 것도 안 돼?”
“희생자는 네가 알아서 골라! 하지만 나는 절대 안 돼!”
“알았어.”
절대 먹어줄 수 없다는 표현에 미영은 고개를 끄덕인 뒤 다른 상대를 알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자느라 굶주린 윤아에게 다가가 은근히 말했다.
“윤아야, 배고프지? 라면 끓여줄까?”
“라면이요? 좋긴 한데 언니가 끓이는 거죠?”
“응! 라면이 부담되면 웰빙 샌드위치도 상관없는데.”
“싫어요! 방금 제가 어떻게 됐는지 옆에서 봤잖아요? 언니 샌드위치를 먹으면 내일 꼼짝없이 앓아누워야 한다고요! 차라리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차라리 나를 때려요, 죽어도 언니가 만든 음식은 절대 먹지 않을 거야.”
“칫! 네가 먹은 샌드위치는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선물 받은 거다, 뭐.”
“누구한테 받았는데요?”
“그야 물론…… 팬이지.”
욱하는 마음에 창현이라고 대답할 뻔한 미영은 가까스로 말을 멈추고 다른 핑계로 선회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걸 다 먹었고요?”
“으응, 선물을 거절할 수는 없잖아.”
“언니, 윤호 오빠 사건을 잊은 거예요? 회사에서도 팬이 주는 음식은 가급적 먹지 말라고 했잖아요! 다음에는 절대 먹지 않고 버려요! 오늘 먹은 맛만 생각해도 소름이 돋을 지경이라고요!”
“…….”
“알았죠?”
“아, 알았어.”
차마 창현이 만든 거라고 언급할 수 없는 미영이었다.
“이제부터 배가 고프면 시켜 먹어요. 저는 샐러드로 저녁 때울 테니까 행여나 음식해주겠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마요!”
신신당부를 한 윤아가 멀어졌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미영은 울상을 지었다.
“내 미각이 이상해진 거야?”
자신이 먹을 때 맛있었던 샌드위치를 윤아는 치를 떨고 있었다. 과연 어느 것이 잘못된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
며칠 뒤, 미영은 지영의 초대로 AA엔터테인먼트로 향하게 되었다. 녹음 스케줄이 있는 지영을 응원하기에 위해 미영은 피크닉 가방을 가지고 갔다.
“오랜만이야, 지영아.”
“언니!”
쪼르르 달려온 지영이 미영을 안았고, 미영 또한 안았다. 한동안 서로 껴안고 있는 상태로 있다가 떨어진 둘은 눈을 마주보다가 피식 웃었다.
“녹음 힘들지?”
“지금 휴식시간이에요. 목이 쉴 수 있어서 넉넉하게 휴식시간을 배정받기는 한데 이래저래 힘든 건 어쩔 수 없어요.”
“그럴수록 잠도 푹 자고 먹을 것도 챙겨먹는 게 좋아. 아직 점심 먹지 않았지? 그래서 내가 먹을 걸 준비했어.”
“……언니가요?”
“왜?”
“아, 아니에요.”
이미 미영이 요리 못하는 건 지영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이곳까지 찾아오고 음식까지 만들었으니 감히 거절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뭔데요?”
“샌드위치. 특별한 레시피로 만들었으니 나쁘지 않을 거야.”
분홍색 피크닉 가방을 개봉하자, 가지런히 놓여있는 샌드위치가 눈에 들어왔다. 좀 더 해괴한 모양일 거라 생각했던 지영은 멈칫하더니 이내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일단 모양은 예쁘네요.”
“물론이지!”
“먹어볼게요.”
한 조각 꺼내든 지영은 거침없이 한 입 베어물었다. 만약 맛이 없으면 따끔하게 일침을 가해서 두 번 다시 요리를 하지 않도록 주의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입속에 들어가는 순간 지영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맛있어?”
“맛있지? 내가 맛있을 거라 생각했잖아!”
“정말 언니가 만든 거 맞아요? 진짜 맛있는데요?”
“그렇다니깐? 헤헤!”
지영의 칭찬에 미영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멤버들은 자신을 구박했지만 창현의 샌드위치 레시피를 습득하고 블루베리와 햄 등, 무난한 재료를 추가해서 만드니 지영의 칭찬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뭐 넣은 거예요?”
“특별한 건 없어. 싱싱한 양상추랑 토마토, 베이컨하고 슬라이스 햄, 치즈랑 블루베리, 그리고 특제 소스가 들어갔어. 청결을 위해 특별히 비닐장갑까지 끼고 만들었지!”
“맛있어요, 누가 언니한테 요리를 못한다고 했는지 모르겠네요.”
“그렇다니깐? 내가 실험정신으로 만든 요리를 먹고 날 무시하기만 해.”
“맞아요, 맞아.”
배가 고팠던 미영은 샌드위치를 단숨에 먹어치웠다. 그 모습을 보며 미영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
“룰룰루.”
샌드위치 만드는 걸 성공으로, 미영은 이 기세를 이어나가 창현에게 음식을 선물하기로 했다.
“그동안 내가 요리를 못한다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맛있는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주면 이게 바로 반전 매력이야.”
마침 선물할 명분도 존재했다. 저번에 받은 보답으로 포장할 수 있고, 성공적인 무대에 대한 의미도 부여할 수 있다. 오늘도 <쇼! 음악중심>에 따라가기로 한 미영은 분주한 손놀림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어? 장갑이 없네.”
위생장갑을 찾던 미영은 청결한 상태로 만들 준비물이 없자 미간을 좁혔다. 마트에 사러 나가기에는 시간이 촉박했기에 그녀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손을 깨끗하게 씻으면 되겠지.”
세면대에서 몇 번이나 손을 깨끗하게 씻은 미영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재료들을 차곡차곡 쌓아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특제소스와 상큼함을 더해줄 블루베리, 그리고 고소함을 곁들이고자 체다치즈까지 얹었다.
자로 잰 것처럼 차곡차곡 쌓인 샌드위치를 보며 미영은 미소지었다.
“완벽해.”
이제 남은 것은 창현에게 가져다주는 거였다.
함께 따라온 대기실에서 유리, 수영, 주현에게 예의상 샌드위치를 먼저 권했지만 질겁하면서 후다닥 도망쳤다.
자신의 실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멤버들의 모습에 입술을 삐죽였지만 오늘의 목표는 창현이었다. 그가 있는 대기실로 향하니 지영과 함께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게 뭐에요?”
“선물이야.”
“선물?”
“응, 샌드위치를 만들어봤어.”
“…….”
미영의 말에 창현의 표정이 굳었다. 몇 년 전, 미영과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만든 샌드위치를 먹고 몸부림쳤던 순간이 떠오른 것이다.
미영과 수연은 음식의 맛을 극악으로 이끄는 천부적인 재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저는 괜찮은데…….”
“맛도 괜찮아. 저번에 지영이도 먹었어. 맞지?”
“맞아, 오빠. 언니가 한 번 만들어줬는데 맛있더라고. 고마운 마음을 보답하고자 정성스럽게 만들었으니 거절하면 안 돼.”
“……알았어.”
못미더웠지만 지영의 강권에 창현은 못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이고 피크닉 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가지런히 정리된 샌드위치를 보자, 저도 모르게 감탄하며 미영을 바라보았다.
“맛은 더 훌륭하다고!”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도네요. 하나만 먹을게요.”
“응응!”
무대 위에 서기 전, 창현은 음식을 입에 데지 않는 걸 알고 있기에 미영은 그것도 큰 배려로 받아들였다. 한 조각 잡아든 그는 기본에 충실한 샌드위치를 보며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짓만 하지 않았다면 맛이 이상할 일은 없었다.
무엇보다 입맛이 까다로운 지영도 극찬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생각하고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창현은 일그러질 뻔한 표정을 간신히 다잡을 수 있었다.
“어때? 맛있지?”
“언니가 잘 만들어요. 맛있을 거예요.”
기대감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미영과 추임새를 넣는 지영.
차마 두 얼굴을 보며 맛이 이상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맛, 있, 네, 요.”
필사적으로 감정을 억누르며 대답하니, 미영이 환하게 웃었다.
“헤헤! 위생장갑이 없어서 고민했는데 다행이다. 많이 만들었으니 무대 끝내고 먹어.”
“그럴게요.”
얼핏 봐도 가방 안을 가득 채울 만큼 양이 많았기에 창현의 얼굴에 암울한 빛이 드리웠다.
미영의 요리 실력이 무엇에 따라 달라지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작가의말
미영의 요리 테러가 발현되는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입니다!
863편만에 밝혀지는 비밀 공개!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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