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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번 님의 서재입니다.

마음을 울리는 음악

웹소설 > 작가연재 > 팬픽·패러디, 현대판타지

김현우
작품등록일 :
2015.04.16 13:27
최근연재일 :
2015.06.0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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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16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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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397쪽

마음을 울리는 음악 37장-39장

DUMMY

제37장 연말




어이없는 해프닝을 그렇게 끝맺고, 창현은 본래 일상으로 복귀를 할 수 있었다.

뜻하지 않은 오해 때문에 스케줄이 지연 되었지만 창현은 곧장 처리해나가기 시작했다.

이번 일로 창현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조금 더 자기관리에 철저해졌다는 점이다.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없지만 예전이라면 간과하고 넘어질 법한 사소한 것들을 곧잘 챙기고는 하였다. 달라진 점이라면 그게 달라진 점이었다.

본격적인 재킷 촬영과 뮤직비디오 촬영으로 무척 일정이 바빴다.

이번 앨범으로 창현이 준비하는 것은 무척 많았다.

정규 3집 앨범 이름은 [1년]으로 결정되었는데, 수록곡은 총 스물다섯 개였고, 그중 열두 개가 일 년의 각각의 달을 기록한 것으로, 1월인 January부터 시작하여 12월인 December까지 열두 개의 곡을 수록하였다. 각각의 달에 자신이 느꼈던 감정과 느낌을 담아냈다. 그리고 열세 번째부터 스물네 번째까지는 각각의 달에 그려낸 사랑 이야기를 담아냈고, 마지막 스물다섯 번째 수록곡은 <One Year>이란 곡으로, January부터 December까지의 느낌과 한편의 이야기를 풀어낸 곡이다. 스물네 개의 곡을 동시에 담아낸 이 곡은 이번 앨범의 타이틀 곡임과 동시에 그간 창현이 깨달은 깨달음이 집약된 곡이기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손발이 근질거릴 정도였다.

뮤직비디오는 열두 개월의 변화를 담아내는 것이었기에 들이는 비용에서부터 시나리오의 수정까지 몇 번이나 뒤집으면서 가다듬었고, 촬영 기간 또한 며칠 동안 이어졌기에 웬만하면 하루 내로 해결하는 창현이 얼마나 공을 들였는가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면서 재킷 촬영을 마친 창현은 티저 영상부터 제작하여 공개하기에 이른다.

세계를 제패한 뒤 한국에서 내는 첫 앨범이었기에 그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티저 영상 공개를 하자마자 가볍게 다운건수가 1만을 넘어섰고, 현의 앨범에 대한 반응이 폭발적으로 치솟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반응이 생각보다 좋자 창현의 입에도, 석규의 입에도 미소가 걸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느껴서 그런지도 모른다.

뮤직비디오 촬영을 모두 끝내고, 창현은 세희에게 새로운 스케줄을 전달받는다.

“창현이 너, 며칠 뒤에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야 할 것 같아.”

“라디오 방송이요? 아, 그거 말이죠?”

세희의 말에 창현은 무언가 깨달은 듯 세희를 바라보며 묻는다.

본래 창현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지 않는다. 당장 TV프로그램에서 그를 모셔가기 위해 방송사에서 눈에 불을 키고 있는데 굳이 라디오에 출연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라디오에 출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얼마 전에 일어났던 해프닝 때문이다.

창현이 노래방에서 <애인 있어요.>를 부르면서 그 파일이 인터넷으로 유출 되면서 본의 아니게 원곡의 주인인 가수 이은미에게 만만치 않은 피해를 끼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이것은 관점의 차이였다.

창현이 부른 탓에 노래가 무척 유명해졌다는 장점이 있으나 그로 인해 가창력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원곡의 가수들을 압도적인 가창력으로 눌러버린다고 하여 송 브레이커라는 별명까지 얻은 창현이 아니던가.

자신의 가창력을 인정해주는 것이기에 명예로운 별명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하였다.

사실 창현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애인 있어요.>란 곡을 이은미보다 잘 부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고작 몇 번 듣고 느낌을 살려 부른 것과 그 곡을 부르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 가수와 실력이 같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랬기에 창현은 칭찬은 감사하지만 아직 그 아성까지는 넘보지 못하고 있다고 짧게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그것으로 인해 창현의 겸손함을 부각시킴과 동시에 이은미의 가창력을 다시 한 번 띄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누구나 인정하는 이은미의 가창력은 창현과 다른 의미로 절정에 달했다고 볼 수 있어서 그렇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어서 라디오에 함께 출연하여 각각 한 번씩 불러보기로 합의를 한 상태였다. 사과의 의미도 있고, 창현이 한 번쯤 꼭 라이브로 듣고 싶다고 하였기에 정해진 스케줄이었다.

창현은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그거 좋네요. 언제 하기로 했어요? 시간은요?”

“슈퍼주니어가 진행하는 ‘KISS THE RADIO’라고 알지? 거기에 출연하기로 되었어.”

세희의 대답에 창현의 표정이 묘해진다.

그가 세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요? 근데 거길 고른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아무래도 네가 라디오에 출연한다고 하니까 그쪽에서 제의를 가장 먼저 해오더라고. 아무래도 ‘KISS THE RADIO’가 슈퍼주니어 두 명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그게 좋다고 생각하셨나봐. 그래서 거기에 나가기로 한 거야.”

아무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듯이, 이왕 출연할 거라면 안면이 있는 곳에 출연하는 것이 나쁘지 않을 터였다.

창현 또한 ‘KISS THE RADIO'를 진행하는 이특, 은혁과 안면이 있었기에 나쁠 것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면…….

“아, 그 라디오 밤 10시부터 12시까지 하잖아요. 늦게 자면 키 안 크는데…….”

아직 키 욕심이 많은 창현이었기에 그 점을 염려하고 있었다.

그런 창현의 말에 세희가 잠시 어이없는 표정을 짓다가 피식 웃음을 짓는다.

창현의 키가 무럭무럭 자라서 어느덧 175cm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아직 만족을 못하나보다. 요즘 남자 연예인들은 대부분 키가 180cm가 넘는 만큼 그 고지에 다다르고 싶었다.

하지만 키가 어디 자기 마음대로 자라던가? 제아무리 자신이 무공을 익히고 있다고 하나 내공이 만능은 아니었기에 키 문제만큼은 그저 일반론을 지키는 것이 최고라 생각하였다.

일반론이라 봤자 일찍 자고, 뛰는 운동을 많이 해주며, 키 크는데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중에서 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수면이라 생각하였기에 창현이 일말의 불안함을 드러낸 것이다.

세희가 웃음을 참으면서 말한다.

“하루 가지고 키가 안 크거나 그러지 않을 테니 그러지 말아. 아참, 그리고 사장님이 몇 가지 상의할 게 있다고 하셨거든. 회사에 도착하면 사장실로 찾아가보는 게 좋을 거야.”

예전에는 석규에게 직접 전달을 받곤 하였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역할이 분담된 상태였다.

석규랑 만날 때는 확정되지 않은 스케줄이나 CF 같은 것들을 논의할 때였고, 세희와 이야기를 나눌 때는 확정된 스케줄에 관한 것이었다.

즉, 석규와 만나라는 것은 상의할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알겠어요.”

창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벤은 AA엔터테인먼트를 향하고 있었다.


AA엔터테인먼트에 도착한 창현은 곧장 사장실로 향했다. 오늘 스케줄은 끝이었지만 석규가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여 회사로 온 것이다. 창현의 머릿속에는 온통 얼른 이야기를 끝내고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사장실에 도착한 창현은 석규를 찾는다.

그런 창현을 맞이하면서 석규가 입을 열었다.

“고생 좀 했다더니 팔팔해 보이는구나.”

“으, 어서 가서 쉬고 싶은 생각밖에 없는 걸요? 그보다 하실 이야기가 있으시다면서요.”

곧장 용건으로 들어가는 창현이었다.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창현의 모습에 석규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소파를 가리킨다.

“뭘 그리 급하게 그러는 것이냐. 우선 앉아라. 할 이야기가 여러 가지라서 그렇다.”

“그래요? 에구! 일찍 돌아가고 싶었는데…….”

중얼거리면서 소파에 앉는 창현이었다.

비서에게 일러 생강차 두 잔을 주문한 석규는 곧이어 생강차가 나오자 한모금 마시면서 입을 연다.

“우선 세희 양에게 들어서 알고 있지? 라디오 출연 말이다.”

“물론이죠. 원곡을 눈앞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기쁜 걸요?”

“그렇군. 어쨌든 그 방송은 잘하도록 하여라. 네 가창력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 자리를 가지고 나면 비교는 당연히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야. 네 모든 실력을 발휘하되 오만해보이면 안 되니 잘 신경 쓰도록 하여라.”

“알겠어요.”

창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석규가 본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내가 널 부른 이유는 간단하다. 너에게 뮤직비디오 출연 제의가 들어온 것 때문에 불렀다.

“뮤직비디오요? 의외네요.”

창현이 정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신에게 뮤직비디오 출연 제의라니? 여태까지 그런 제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석규가 모조리 거절하였기에 창현에게 제의한 적은 없었다.

그런 창현의 반응에 석규가 모호한 지으며 말했다.

“보통 때처럼 거절하려고 했지만 너와 연관이 있어서 말이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고개를 갸웃하였다. 자신과 연관이 있다니?

도무지 모르겠다는 창현의 표정에 석규가 웃음을 지었다.

“네가 받은 뮤직비디오는 바로 소녀시대의 뮤직비디오라서 그렇다.”

“에, 저라고요?”

석규의 말에 창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소녀시대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라니. 창현으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놀란 표정을 짓는 창현을 보며 석규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한다.

“뭘 그거 가지고 그러느냐? 뮤직비디오에서 남자배우가 필요하다기에 요청한 것뿐인데.”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창현의 물음에 석규는 피식 웃음을 짓는다. 그가 무엇을 염려하는지 알고 있는 탓이다.

석규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가 문제 된단 말이냐? 네가 소녀시대와 함께하는 것 때문에?”

“그렇죠.”

창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석규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생강차를 한모금 마신다.

“문제가 될 것 없다. 창현이 네가 아직 사회 경험이 부족해서 잘 모르지만 네가 SM엔터테인먼트와 계약 관계에 있지 않느냐?”

“네. 정작 일은 별로 안하지만요.”

프로듀서로서 계약을 하긴 했지만 창현은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 그것을 SM엔터테인먼트에서 별로 말하지 않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계약 관계 자체가 창현과 이어주는 실 같은 역할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창현의 대답에 석규가 찬찬히 말을 해나가기 시작한다.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영리한 줄 아느냐? 네가 출연을 한다고 하면 그런 삐딱한 시선이 아닌, 너의 출연으로 인지도를 끌어 모으려 한다는 것으로 알아차릴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는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테지. 사회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이 세상이 학벌, 지연, 지역에 의해 좌우된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너는 SM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한 상태이기에 뮤직비디오에 출연한다는 것 자체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네가 염려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지만 팬들을 너무 무시하지 마라. 네가 염려하지 않아도 그 정도쯤은 쉽게 알아차릴 테니까.”

석규의 말은 충고임과 동시에 조언이었다.

흔히 한국 사람들은 개인이면 똑똑하지만 군중이 되면 바보가 된다고 한다. 허나, 그것은 일반론일 뿐이고, 사람 하나하나의 역량이 뛰어난 만큼 창현이 뮤직비디오에 출연하여도 이렇다 문제가 될 확률은 거의 없었다. 그 정도 의도도 이해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창현도 납득한 표정이었다.

이런 경우에 SM엔터테인먼트와 맺은 계약이 유용한 변명거리가 될 줄 몰랐다.

창현도 한동안 석규의 말에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네요. 그럴 수도 있겠어요. 요즘 워낙 사건이 많이 터지다 보니 제가 조금 예민해졌네요.”

“그럴 수도 있지.”

창현의 말을 이해하는 석규였다. 그도 그럴 것이 11월 중순에 세실리아와 키스신 파문이 일어났고, 12월 초에 세실리아의 귀국과 함께 또 다시 염문설이 휘말렸다. 그리고 12월 중순에 지영의 일로 오해를 빚었으니 창현으로서는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문제가 안될까요?”

창현도 아무래도 뮤직비디오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 보다.

하기야, 외국 쪽을 제외하면 거의 전멸에 가까운 인맥을 자랑하는 창현이 아닌가. 아는 사람이고 친하다 보니 도움을 주고 싶으리라.

석규는 문제가 될 것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상관없을 거다. 이미 네가 소녀시대와 친한 건 다 알고 있지 않느냐? 오해 살 만한 행동만 하지 않으면 될 게다.”

그의 말은 뼈 아픈 충고를 담고 있었다.

오해 살 만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뜻은 스캔들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창현은 알아들었기에 일순간 멈칫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물론이죠. 저도 깨달은 바가 있다고요.”

“그럼 다행이지. 스캔들이 나면 지금 상황에서 너가 아닌 저쪽만 손해 보게 된다는 걸 알고 있어라.”

“물론이에요.”

그렇게 소녀시대 뮤직비디오에 대한 이야기가 일단락을 맺었다.

한 주제를 끝맺게 되자 석규가 서류를 뒤적거리며 입을 연다.

“자, 이제 뮤직비디오 이야기를 끝맺었으니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하, 이제 하나 끝났네요?”

석규의 진지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일까.

평소보다 훨씬 길게 이야기를 나눈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 창현의 모습에 피식 웃은 석규가 말한다.

“다른 이야기는 그렇게 길지 않으니 그런 표정 지을 거 없다.”

“길지 않으면 저야 좋죠. 다른 건 뭐죠?”

창현의 물음에 서류를 뒤적거리던 석규가 말한다.

“음, 오래 기다렸다. 네 녹음실 준비가 다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건 창현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그래서일까. 그의 눈이 크게 뜨인다.

믿기지 않는 듯한 반응이다.

창현이 석규에게 되물었다.

“그거 정말이에요, 아버지? 녹음실이 다 되었다고요?”

“그래. 명색이 세계적인 스타 아니더냐? 이런 초라한 녹음실을 졸업할 때가 되었지. 아주 어마어마하게 돈을 들였으니 기대해도 좋다.”

“어마어마한 돈이요?”

석규의 말에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던 창현이 순간 고개를 갸웃한다.

자신이 앞으로 녹음할 곳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분명…….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에 창현이 황급히 묻는다.

“자, 잠깐만요. 그 녹음실 전부 제 돈으로 만드는 것 아니었나요?”

그렇다. 녹음실을 오픈하는데 들이는 돈은 모두 창현이 부담하기로 했던 것이다.

음반이나 각종 CF를 하면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지만 창현은 제대로 된 돈 관리가 불가능하였기에 석규에게 전담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어차피 그가 쓸 돈은 넉넉했으니 돈 문제에 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많이 썼다는 말은 그냥 넘길 수 없는 성질이었다.

석규의 말을 들어보면 녹음실을 만드는데 자신의 돈을 어마어마하게 들였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정곡을 찌르는 창현의 말에 석규가 움찔한다. 그러다가 이내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하하! 이왕 하는 거 최고급 장비로 하는 것이 좋지 않으냐? 그러니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마라.”

그 말에 창현은 자신이 순간 과민반응 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사과를 한다.

“아, 죄송해요. 순간 울컥해서요. 제가 아버지를 못 믿거나 그런 게 아니니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그걸 가지고 뭘 그러느냐. 부자 관계라고 해도 아니, 아무리 친한 관계라고 하여도 돈 관계만큼은 확실하게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전에 동의를 구하지 않은 내 잘못도 있는 셈이지.”

“아니에요. 절 위해서 그런 거잖아요? 전 신경 쓰지 않아요.”

“이해해주니 고맙구나.”

창현의 말에 석규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할 뿐이었다.

그렇게 돈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끝맺자, 석규가 녹음실에 관해 이야기를 꺼낸다.

“조만간 녹음실로 데려가도록 하마. 지문으로 출입이 가능하게 해놓았으니 나와 너만 설정하면 되겠지.”

“그 정도면 충분하겠죠.”

아직 창현이 녹음실을 보지 않았기에 이야기는 거기서 끝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녹음실 이야기를 일단락 한 석규는 마지막 사항을 꺼냈다.

“음, 이건 마지막 이야기다. 네 앨범에 관한 이야기인데…….”

“앨범이요? 문제라도 있나요?”

앨범 이야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창현이었다. 그간 기울인 노력이 있는 만큼 앨범이 확실하게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랬기에 석규의 말에 순간 반응을 보인 것이다.

창현의 물음에 석규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아니라, 네 쇼 케이스 무대 때문에 말이다.”

“아, 쇼 케이스요.”

앨범을 발매하면 대부분 쇼 케이스를 하기에 창현은 무슨 말인지 깨닫고 고개를 끄덕이며 석규를 바라본다.

하지만 자신은 조금 특별 케이스라서 쇼 케이스를 안 하리라 생각했는데 조금 의외였다.

의문 섞인 창현의 시선에 석규가 자신의 할 말을 꺼내놓았다.

“네 앨범이 발매 되면서 방송 3사에서 섭외 요구가 들어오더구나.”

3월말에 활동을 접은 창현이 9개월 만에 한국에서 컴백하는 무대였다.

그동안 가히 현의 신드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섭외 요청이 빗발치는 것은 애교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당장 티저 영상만 해도 초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상황이고, 연일 앨범 주문이 물밀 듯이 밀려오고 있는 실정이었으니 말이다. 과연 현재 음반 시장이 불황이라 불리는 것인지 의문이 일 정도로 엄청난 양의 주문이 매일 같이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만약 이 여세를 몰아 창현이 무대에 선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대박이 터질 것이다.

그랬기에 방송 3사 음악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섭외 요청이 밀려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보통 가수라면 PR을 위해 나가는 것이 좋지만 되도록 출연을 자제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곧 있으면 졸업인 만큼 졸업 후 본격적인 활동을 할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창현이 라이브 무대를 성공적으로 치러 낸다면 앨범 판매에 탄력을 받을 것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차에 석규는 한 가지 방법을 구상하게 된다.

바로 방송 3사에서 주최하는 가요대전에 현의 신곡을 발표하는 것이다.

연말, 한해동안 활약한 가수들이 총 출동하는 만큼 시청률이 보장된 곳이 아니던가? 게다가 기존의 음악 프로그램과 스케일을 달리하는 무대인만큼 이보다 더 큰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기회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가요대전에서 성공적인 무대를 치러낼 경우 십만 장 정도의 앨범 판매 차이가 날 것이라 전망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석규로서는 놓치기 싫은 기회였고, 방송국에서도 현의 출연인 만큼 놓치기 싫은 제안이리라.

“그래서 쇼 케이스 무대를 가요대전에서 하는 게 어떨까 싶구나.”

“가요대전이요? 연말에 하는?”

창현이 잘못 들은 게 아니냐는 듯 석규에게 묻자, 석규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거 말하는 것이다.”

“허, 엄청난 규모의 쇼 케이스네요.”

혀를 내두르며 감탄하는 창현이었다. 설마하니 그 방송을 쇼 케이스로 삼게 될 줄이야. 아마 가수 중에서는 처음이 아닐까 싶었다.

감탄하는 창현의 모습에 석규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이 애비의 능력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지. 어떠냐?”

“저야 좋죠. 그런 큰 무대를 컴백 무대로 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고요.”

“그래, 그럼 승낙한 것으로 알겠다.”

창현이 쉽게 승낙해주자 한시름 놓은 석규였다. 큰 무대에 서 본지 오래 되었다는 핑계로 행여 거절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였으니 말이다.

어쩌면 창현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무대 체질인지도 모르겠다.

‘하기야, 저 녀석이 무대 체질이 아니라고 하면 다른 가수들은 일반인이지.’

그렇게 정의를 내리는 석규였다.

이야기가 모두 끝난 듯하자 남은 생강차를 모두 들이키며 창현이 물었다.

“그럼 이야기는 모두 끝난 거죠?”

“그래, 내 할 이야기는 모두 끝났다.”

석규의 대답을 들은 창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기지개를 키며 중얼거렸다.

“읏차, 그러면 연말에는 라디오 출연을 하고, 앨범 발매를 시작하면 곧장 이어지는 가요대전 방송 3사 무대와 아차차, 녹음실 방문도 함께 하고, 이거면 되네요. 맞죠? 아, 뮤직비디오 촬영은 언제죠?”

간단하게 할 일을 정리하던 창현이 묻자, 석규가 서류를 뒤적이더니 말한다.

“그건 내년 초에 하는 걸로 잡혀있구나. 날짜는 아직 구체적이지 않아.”

“그럼 이것들만 하면 되는군요. 네, 일단 이번년도를 뜻 깊게 마무리하려고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아버지도 너무 일하지 마시고 어머니 좀 찾아가시고 그러세요.”

지선과 좀 더 정을 쌓으라고 말하는 창현의 말에 석규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네가 그런 말 안해도 알아서 잘 하고 있으니 너나 잘해라.”

“저야 잘하고 있어요.”

한 마디도 지지 않는 두 사람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끝맺고, 창현은 회사를 나와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재킷 촬영과 뮤직비디오 촬영까지 모두 끝내고, 앨범 발매를 앞에 둔 창현은 라디오 스케줄을 위해 KBS로 향하고 있었다.

벤에서 탑승한 창현은 어느새 아홉시가 넘은 시계를 보며 중얼거린다.

“늦게 자면 키가 안 크는데…….”

라디오 스케줄을 알려준 후부터 끊임없이 키 이야기 가지고 중얼거리는 창현의 모습에 세희가 머리 아픈 듯 이마를 짚으며 말한다.

“어휴! 창현이 넌 겨우 하루 가지고 그래. 하루 가지고 키에 영향 그렇게 안 끼치니까 방송에나 신경 써.”

“알았다고요. 하지만 오늘이 키가 엄청 크는 날일 수도 있는데…….”

아쉬움을 금치 못하던 창현의 중얼거림은 방송국에 도착해서야 끝이 났다.

방송국에 들어선 창현은 당연히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고 있었다.

메이크업을 하자는 코디의 말이 있었지만 라디오 방송에서 무슨 메이크업이냐고 하지 않겠다는 창현의 완강한 버팀이 있었지만 연예인의 프로 정신에 입각한 코디의 마르크스 변증법적 유물론(?)에 입각한 설교에 철저하게 무너져 내린 창현은 마지막 자존심으로 최소한의 메이크업만 하고 나타난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창현의 외모는 방송국에서 빛이 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무엇보다 방송 활동이 극히 적은 창현이었기에 방송국에서도 그를 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창현은 방송국을 걷다가 아는 연예인을 만나면 인사를 하였고, 간간히 인사를 건네 오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라디오 방송이 하는 곳에 도착하였다.

“안녕하세요!”

안으로 들어선 창현이 먼저 한 것은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안으로 들어선 사람이 큰 소리로 인사를 하자 사람들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창현이 아차! 하는 기색으로 조심스럽게 묻는다.

“에… 제가 실수 한 건가요?”

어리둥절한 창현의 표정에 사람들이 고개를 젓는다.

그에 안심한 창현이 담당 PD와 작가들,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작가가 건네주는 이온 음료를 감사하게 받아들이며 오늘 대본을 보면서 의자에 앉아 기다린다. DJ를 한다는 양반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창현은 무척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입구 쪽이 시끌시끌하더니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슈퍼주니어의 멤버이자 ‘KISS THE RADIO'를 진행하는 이특과 은혁이었다.

대본을 보고 있던 창현은 두 사람을 보고는 반가운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형들.”

“어?”

창현의 인사에 앞서 걷고 있던 이특이 창현을 보고는 멈칫한다.

“어어?”

그리고 뒤이어 들어오던 은혁도 창현을 발견하고는 이특과 똑같은 소리를 흘리며 동작을 멈춘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창현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형들 어색하게 왜 그래요.”

SM엔터테인먼트에서 여러 번 마주친 적이 있기에 창현은 슈퍼주니어는 물론이고 동방신기와도 사적으로 형 동생 하는 사이였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을 보고 굳어버리니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창현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것은 이특이었다.

그는 창현을 보고는 반가운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다가온다.

“이야! 이거 보기 힘든 얼굴이 왔잖아? 작가 누나가 온다고 하긴 했지만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 왔네?”

“내가 왜 거짓말을 해. 애초에 말해도 믿지 않은 건 너잖아.”

이특의 말에 졸지에 거짓말쟁이가 될 뻔한 작가가 톡 쏘아대자 이특이 머쓱한 미소를 짓는다.

잠시 후, 은혁이 창현에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말한다.

“세계적인 스타 분께서 이렇게 누추한(?) 곳에 올 줄이야. 이거 영광입니다, 그려.”

하지만 그 말을 받은 것은 창현이 아니었다.

대답은 창현이 아닌, 뒤에서 들려왔다.

“누추해서 미안하다.”

중후한 목소리가 들리자 은혁이 흠칫하면서 뒤를 돌아본다. 그러자 그곳에는 담당 PD가 표정을 굳힌 채 은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굳어 있는 PD의 표정에 은혁은 아차! 한 표정으로 서둘러 변명한다.

“하하! 화려한 스포라이트를 받아온 현에게는 누추할 수도 있단 거예요. 저는 절대 누추하다고 생각 안해요. 이 정도면 대궐이죠. 암요!”

그러면서 창현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내자 창현이 짧게 한숨을 내쉬면서 도움의 한마디를 건넨다.

“저도 누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정감있는 걸요.”

“흠!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창현의 말이 있자 눈빛이 누그러지는 담당 PD였다.

그렇게 담당 PD가 나가자 은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후우! 살았다. 너 때문에 살았어, 고맙다. 하마터면 짤릴 뻔했네.”

“고맙게 여기라고요.”

“그래, 고맙게 여기마. 그런 의미에서 내가 한턱 쏘마. 음료수 한 개!”

무언가 대단한 걸 사줄 듯이 말하던 은혁의 입에서 음료수 한 개가 언급하자 창현이 맥 빠진 표정을 지었다.

“에이, 한 개가 뭐에요. 그것도 음료수라니.”

“야야, 넌 혼자 다 벌지만 우리는 열세 명이 나눈다고. 오히려 너가 날 사줘야 해.”

“네네, 알겠습니다. 어휴!”

돈 이야기가 나오자 바로 항복하는 창현이었다. 열세 명인 슈퍼주니어와 혼자 활동하는 창현, 둘 중에 벌이가 누가 좋을지 뻔한 결과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은혁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이특이 다가오며 창현에게 말한다.

“현이가 왔으니 오늘 라이브를 들을 수 있겠네. 기왕이면 새로 나올 앨범 곡을 불러주는 게 어때? 그럼 청취율이 확 올라갈 텐데.”

“저 나오는 것만으로도 올라갈 텐데 뭘 그러세요.”

창현의 말에 이특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와! 너도 그런 말을 할 줄 아는구나. 매일 겸손한 모습만 보여서 절대 그런 말을 안 할 줄 알았는데.”

“때로는 잘난 척 해야 할 때가 있더라고요. 세상 경험을 하게 되니 자연히 터득해야 된다고 할까?”

어른이 한다면 모를까, 창현이 하니 뭔가 어이가 없는 두 사람이었다.

은혁이 창현에게 장난스레 헤드락을 걸며 흔들었다.

“요 녀석이! 이제 열일곱이 되면서 벌써부터 세상 경험 다한 것처럼 굴어!”

“머, 머리 망가져요!”

“은혁아, 그러지 마라. 오늘 우리를 빛내주러 온 후배님인데 그러면 안 되지.”

“아차차, 그렇지.”

그러면서 창현에게 걸었던 헤드락을 푸는 은혁이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정돈하던 창현은 이특의 말을 듣고는 눈을 빛내며 물었다.

“잠깐만요, 왜 제가 후배에요. 형들이 제 후배 아니에요?”

창현의 말에 두 사람이 멈칫한다.

지금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이특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그게 무슨 말이야. 현이 너 2월에 데뷔했잖아. 우리는 재작년에 데뷔했다고요.”

“저도 재작년에 음반 냈는데요? 형들 언제 음반 냈는데요?”

갑자기 불거진 선후배 사이 가르기.

창현의 질문에 이특이 순간 당황하며 대답했다.

“우리? 2005년 11월 6일인데…….”

그 말에 창현이 갑자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그래요? 그럼 제가 선배네요. 전 2005년 9월 18일에 첫 미니 앨범을 발매했거든요.”

창현의 말에 이특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장난스럽게 말하면서 후배라 칭한 것인데 실은 창현의 앨범 발매가 자신들보다 빨랐던 것이다.

졸지에 후배로 추락할 기세. 이특과 창현의 나이 차이가 아홉 살인 걸 감안하면 쉽게 물러설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앨범 발매일이 명확한 이상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공황에 빠져있던 이특을 구원한 것은 은혁이었다.

“하지만 창현이 넌 이번년도에 방송 데뷔 했잖아. 그러니 우리가 선배지.”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음반은 제가 먼저 냈는걸요? 가수로서 제가 선배죠.”

창현도 쉽사리 물러나지 않았다. 분명 방송 데뷔로는 자신이 후배였지만 가수로서는 선배였다.

가수 이야기가 먼저 나오자 이특과 은혁은 다시 한 번 궁지에 몰렸다.

그때, 시간을 확인한 이특이 말한다.

“아차! 녹화 시작할 시간이네. 오늘 보이는 라디오인 거 알지? 먼저 준비해야 돼. 은혁아 들어가자.”

“어? 그러네! 알았어, 형!”

은혁은 순간적인 이특의 재치에 감탄하며 재빨리 라디오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재빠르게 도주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창현이 붙잡으려고 했지만 춤으로 단련된 두 사람의 행동이 한 발자국 더 빨랐다.

창현이 붙잡기 전에 부스 안으로 들어간 그들은 재빨리 문을 닫았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메롱하는 은혁의 모습을 보면서 창현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죠? 그렇다면 저도 쉽게 물러설 수 없지요.”

두 사람의 행동은 창현의 승부욕에 불을 질렀다.


“진행은 잘하네.”

광고를 틀고, 사연을 읽어주기도 하면서 카메라 앞에서 예쁜 척(?)하는 것을 보면서 창현이 중얼거렸다.

처음이라서 그런 걸까.

큰 무대 경험이 무척 많았지만 창현은 가슴이 떨리는 걸 느꼈다. 아무래도 녹음이 아니라 생방송이라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보이는 라디오라고, 방송하는 장면이 그대로 보이는 것을 모르고 있었기에 창현은 하마터면 생얼로 방송에 나갈 뻔한 것을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신은 생얼로 나가도 상관이 없지만 그렇게 되면 괜히 애꿎은 코디만 석규에게 깨질 테니 말이다. 게다가 연예인이란 자각이 부족하다면서 혼날 것이 분명했기에 최소한이지만 그래도 메이크업을 받은 걸 잘했다고 생각하는 창현이었다.

그렇게 촬영하는 장면을 구경하던 창현은 큰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다.

바로 오늘 함께 출연하기로 한 이은미가 도착한 것이다.

이은미가 도착했다는 말에 창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현이라고 합니다.”

“반가워, 네가 현이구나. 이거 TV에서 볼 때보다 더 잘생겼네?”

매몰차게 자신을 대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일까.

예상과 달리 자신을 친근하게 대해주자 창현은 긴장감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하하! 감사합니다. 저번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한 바람에…….”

창현은 곧바로 사과를 하였다. 이미 AA엔터테인먼트에서 공식적인 사과를 한 상태였지만 창현이 개인적으로 한 사과가 아니었다.

그의 사과를 들은 이은미는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내 노래가 더욱 유명해졌는데 뭘 그래. 그리고 실제로 들어보니까 잘하기도 하더만.”

“감사합니다. 무척 좋아하는 노래라서요.”

자신의 실력을 인정해주는 말에 창현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고, 생각보다 훨씬 예의바른 창현의 모습에 이은미도 흡족한 표정이었다.

간단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친해진 두 사람은 선배님과 후배님이란 호칭은 조금 어색하니 이모와 조카라 부르기로 하였다.

간단한 근황을 이야기 나누기도 하고,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할 무렵, 어느새 게스트로 등장할 시간이 되었다.

작가의 사인을 받은 창현과 이은미가 부스 안으로 들어서자 이특과 은혁이 환호성을 지르며 두 사람을 맞이한다.

“와! ‘KISS THE RADIO' 역사상 가장 화려한 엔트리입니다. 바로 절정의 가창력을 보유하신 두 분이 이곳에 방문하셨습니다. 대한민국 여성 가수 중에서 그야 말로 최고봉에 이른 분! 이은미 씨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인 싱어송라이터죠! 현 씨가 이곳에 방문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은미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청취자 여러분들.”

“반갑습니다. 현이에요. 라디오 첫 출연이니 실수를 하더라도 너그러이 봐주세요, 하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방송에 합류하는 이은미와 창현이었다.

짬밥이 만만치 않은 이특과 은혁의 진행 하에 서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창현은 라디오 방송 속으로 녹아들 수 있었다.

이특이 쇄도하는 문자 중에 눈에 띄는 것을 보고는 말한다.

“이야, 현 씨 때문인가요? 청취율이 어마어마하게 올라가고 있는데요? 아, 어떻게 알았냐고요? 쇄도하는 문자 때문이죠. 그중에 눈에 띄는 질문이 있네요. 9812님, 현군의 생얼이 무척 유명하다고 하던데 그게 정말 사실인가요? 라고 물으셨네요. 이건 제가 대답해드릴 수 있겠네요. 현 씨의 생얼은 그야 말로 괴물급이라 할 수 있습니다. 메이크업을 하면 뭐랄까, 조금 선이 강해져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 되지만 생얼은 그야 말로 조각이죠, 조각. 엇,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묻는데요. 아무래도 현 씨의 소속사와 저희 슈퍼주니어 소속사가 계약 관계이다 보니 몇 번 마주칠 기회가 있었습니다. 현 씨는 평소에 메이크업을 하고 다니지 않거든요. 물론! 사진은 갖고 있습니다.”

그러자 문자가 폭주하기 시작한다. 대부분이 그 사진을 보고 싶다, 진실을 규명해달라는 식의 말이었다.

그걸 본 이특이 당황한 표정을 짓자, 은혁이 황급히 수습한다.

“이거, 정말 엄청나네요. 에, 그러니까… 알겠습니다! 현 씨의 결정에 맡기도록 할게요. 현 씨! 생얼 사진 공개해도 됩니까, 안 됩니까?”

갑자기 결정권이 자신에게 오자 창현이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 이내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한다.

“저야 상관없습니다. 생얼 사진이야 뭐… 하지만 저 혼자 공개하기는 뭐하니 같이 공개하는 건 어떤가요? 제 생얼 사진을 공개하면 이특 씨나 은혁 씨 생얼 사진을 공개하는 거예요.”

“그, 그건…….”

결정권을 슬그머니 창현에게 미루려던 은혁은 창현의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짓자, 문자가 다시 한 번 몰려들기 시작한다. 현의 생얼을 보고 싶으니 어서 결정을 내리라는 이야기였다.

은혁은 이특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지만 네가 저지른 일은 네가 수습하라는 식인 듯 매몰차게 은혁의 구원 요청을 거절하였다.

결국 은혁은 고개를 푹 떨구며 청취자들이 원하는 결과를 낼 수밖에 없었다.

“크흑! 알겠습니다. 제 한 몸 불살라! 현 씨와 제 생얼 사진을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조회수 너무 차이 나면 제가 슬퍼지니까 제것도 많이 클릭해주세요. 아셨죠?”

하하하하!

은혁의 애드리브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그의 결정에 잘했다는 식의 문자와 함께 은혁을 격려하는 문자가 줄을 이었다.

그렇게 은혁의 희생으로 창현의 생얼을 공개할 수 있게 되었다.

생얼 해프닝이 끝나자, 이특이 화제를 전환한다.

“자, 오늘 오신 분들이 또 가창력에서 둘째가라 하면 서러운 분들 아닙니까? 각자 노하우가 있을 듯한데 그 노하우 좀 공유받을 수 있을까요?”

창현에게 너무 쏠리는 듯하자 이특이 이은미를 보며 물었다.

그에 이은미가 눈인사를 보내며 자신의 노하우를 털어놓았다. 우선 물을 마시지 않고, 탄산음료나 술 같은 것을 최대한 자제한다는 일반적인 이야기였다.

이은미의 대답이 끝나자 이특이 창현에게 물었다.

“그럼 현 씨는 어떤가요?”

“음, 저는 일단 많이 먹지를 않아요. 소식을 합니다. 하루에 한 끼 정도? 그리고 물을 수시로 일정량 마십니다. 활동 기간에는 대부분 이렇게 하는 것 같네요.”

창현의 말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이특도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한 끼만 드신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옛말에 그런 말이 있잖아요.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제 노래가 대부분 고음 위주다 보니 아무래도 몸을 비워놓을 필요가 있더라고요.”

“아, 그 비유가 이곳에서 나오나요. 웃기긴 한데 웃음 포인트를 잡지 못하겠는데요?”

이특이 창현의 개그(?)를 날카롭게 비평하자 창현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볼을 긁적인다.

“에… 이거 NG하고 다시 하면 안 될까요? 다시 하면 웃길 수 있을 것 같은데.”

“푸하하하!”

어벙해 보이는 창현의 태도에 웃음을 터뜨리는 은혁이었다.

이특도 웃음을 지은 채 창현에게 말했다.

“에이, 현 씨, 생방송에 NG가 어디 있어요.”

“그렇죠? 웃기려고 한 거예요. 결과적으로 은혁 씨가 웃었으니 성공한 거죠, 뭐.”

“은혁 씨가 현 씨를 살려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은혁 씨.”

그리고 라디오는 대부분 현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 창현이 중간에 이은미를 바라보았지만, 오히려 이것이 편하다는 제스처를 받고 나서야 어느 정도 편안하게 방송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 오는 문자는 현에 관련된 것이었다.

아무래도 팬들이 현에 대해 알고 싶지만 허심탄회하게 물어볼 기회가 없다 보니, 오늘이 기회라 여기고 물어보는 듯했다.

그러다 보니 처음 시작하는 질문들은 아무래도 상투적인 질문일 수밖에 없었다.

은혁이 문자를 확인하고는 묻는다.

“8824님의 질문입니다. 역시 이걸 빼놓을 수 없겠죠. 현 씨는 여태까지 이성 친구를 사귀어본 적이 있나요? 라고 물으셨는데요. 만약 사귀지 않으셨다면 어떤 스타일이 좋으세요? 라고 추가 질문까지 덧붙여져 있습니다. 이 질문에 현 씨는 솔직히 대답해주실 수 있나요?”

“어려울 게 뭐가 있다고요. 제 나이가 이제 곧 있으면 열일곱이 되는데, 숨길 과거랄 것도 거의 없잖습니까. 이성 친구라… 사귀어본 적이 없네요. 사귀고 싶긴 한데… 아직 그쪽에 관심이 별로 없어서요. 그러다 보니 좋아하는 스타일도 잘 모르겠네요. 우선 전제 조건이라면… 절 이해해주고, 제 음악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네요.”

“에이, 그렇게 말하면 한 트럭은 넘게 나올 걸요?”

창현의 대답에 야유를 보내는 은혁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자신의 생각이었기에 창현은 멋쩍은 미소만을 지을 뿐이었다.

그때, 이특이 문자를 확인하고는 질문한다.

“아, 이건 조금 특이한 질문인데요. 1092님께서 보내신 문자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앨범을 제작하고 있는 만큼 녹음실이 어떨지 궁금한데요. 저도 작곡을 공부하고 있는 만큼 최고의 싱어송라이터인 현 씨는 어떻게 작곡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라고 보내주셨는데요, 이거 저도 궁금한데요? 어떻게 하시나요, 현 씨?”

“아, 우선 최고의 싱어송라이터라고 칭해주신 점에 대해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에 조금 과분한 감이 없지 않아 있네요. 우선 제가 작곡하는 포인트는 주제입니다. 앨범에 수록할 곡의 주제가 뚜렷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이번에 발매할 앨범의 이름은 <One Year>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데요, 각각의 달마다 제가 느꼈던 느낌을 곡에 담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뚜렷한 주제가 있으면 표현하는 느낌이 미숙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곡이라 생각되고요. 녹음실은 여태까지 제 개인 녹음실이 없어서 회사에 가서 녹음을 했습니다. 그게 보기 안쓰러우셨는지 저희 아버지이시자 사장님이 이번에 제 개인 녹음실을 만들어주셨습니다. 많이 놀러와주… 아, 이건 아니구나. 죄송합니다. 장소는 비밀이에요. 실은 저도 모르지만요. 하하! 장비는 아직 확인을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좋은 곡을 만들기 위해서는 뚜렷한 주제의 선정과 함께 자신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멋진 말씀 감사합니다. 답이 되셨죠, 1092님? 덕분에 저도 조언을 얻은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하하!”

그 후로도 세 개의 질문을 더 받은 창현은 잘 대답을 함으로써 무난하게 넘길 수 있었다.

어느덧 질문 코너가 끝이 나고, 잠시 쉬어가기 위해 노래를 틀었을 때, 이특이 창현에게 말을 건네왔다.

“녹음실 오픈했으면 환영식 한 번 해야지? 언제 한 번 초대해줘! 스케줄 없으면 갈 테니까.”

그 말에 창현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와서 막 곡 달라고 하는 건 아니죠?”

“이런 들켰네, 노래 하나 강탈하려고 했더만.”

뜨끔하는 표정을 짓는 이특의 모습에 창현이 웃음을 지었다.

“그건 절도라고요.”

“우리 사이에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래.”

“혼내고 혼나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죠.”

대수롭지 않게 정리해버리는 창현의 말에 이특이 손을 절레절레 젓는다.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슈퍼주니어로서 체면이 있지.”

“형 하는 걸 봐서요.”

그렇게 웃음을 짓던 이특은 노래가 끝나자 문자를 확인하고는 말한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기에 그렇게 웃으시나요? 라고 2491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잠시 노래가 나오는 사이에 제가 현 씨에게 녹음실에 초대해달라고 하니 매정하게 거절하지 않습니까? 참 매정한 후배님입니다. 흑흑!”

이특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창현의 눈이 빛났다.

그는 손을 들고는 입을 연다.

“잠깐만요, 여기서 청취자 분들이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예정에 없던 창현의 난입에 모두의 시선이 창현에게 향한다.

그러자 창현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스쳐 지나가더니 입을 연다.

“방송을 시작하기 전에 이야기를 나눴던 건데요. 글쎄, 이특 씨가 저보고 후배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 이게 참 이해가 가지 않더라고요. 슈퍼주니어는 2005년 11월 6일에 데뷔를 하였고, 저의 첫 앨범은 2005년 9월 18일에 발매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후배 소리를 들어야 할까요? 과연 누가 후배라고 생각하십니까, 청취자 여러분들? 저는 청취자 여러분들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창현의 발언에 이특과 은혁이 아뿔싸! 하는 표정을 지었다.

슈퍼주니어와 현의 선후배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창현이 생방송에서 공개적으로 터뜨려버린 것이다.

두 사람이 당황한 사이 문자는 쇄도하기 시작하였다.

대부분의 반응은, 현이 먼저 음반을 냈으니 현이 선배가 아니냐? 라는 반응이었다.

아무래도 가수는 먼저 음반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 그런 듯했다.

문자가 쌓여갈수록 이특과 은혁의 표정은 침울하게 변해갔다.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지은 창현이 말한다.

“두 분 표정이 왜 그러세요? 설마 문자에 제가 선배라고 와서 그런 표정을 지으시는 건가요?”

“그, 그럴 리가요.”

“저희는 그렇게 속 좁은 사람들 아닙니다. 하하!”

애써 웃음을 짓는 두 사람이었지만 그것이 진실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노래가 있지 않은가. <내가 웃는 게 아니야>

아주 지금 상황에 딱 들어맞는 말이었다.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창현이 결정타를 날린다.

“그럼 제가 선배인 걸 인정하시는 건가요?”

“그, 그건…….”

창현이 이특을 보며 묻자 말끝을 흐린다. 차마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창현이 은혁을 보며 묻는다.

“은혁 씨는요?”

“이, 이건 리더께서 정할 일이라…….”

이특이 리더인 것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선택권을 넘겨버리는 은혁이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행동에 이특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자 다시 한 번 창현의 재촉이 이어진다.

“이특 씨, 수많은 청취자 분들이 답을 기다리고 있어요. 어서 답을 내려주세요.”

그런 창현의 모습이 악마처럼 보이는 이특이었다.

평소에는 사근사근하고 무척 착한 동생이었는데…….

선배 후배를 가르는 흑백논리에 휩싸이다니.

창현의 변화에 무척 섭섭한 이특이었다. 자신이 한 행동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얘들아, 미안하다. 슈퍼주니어는 현의 후배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다른 멤버들에게 사과를 하며 고개를 푹 떨군 이특이 인정하고야 만다.

“마, 맞습니다. 슈퍼주니어의 데뷔가 더 늦었으니 후배가 맞지요. 크윽…….”

“으으…….”

이특의 인정에 은혁도 괴로운 표정이었다.

설마 이렇게 판가름이 날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이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슈퍼주니어 후배님들. 후후후!”

속으로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이특이 인정하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창현이었다.

그렇게 선후배 관계를 명확하게 한 뒤, 여러 가지 코너를 한 뒤, 은혁이 창현을 보며 질문하였다.

“오늘 이렇게 이은미 씨와 현 씨를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요. 좀처럼 보기 힘든 아니,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두 분이 함께 하게 되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대답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얼마 전에 일어났던 오해에 대해서 언급할 수밖에 없겠네요. 제가 제 여동생 친구들과 밥을 사주고 함께 노래방을 갔다가 여기 이은미 선배님의 <애인 있어요>란 곡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것이 실수로 유출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제가 선배님께 피해를 끼친 것 같아 너무 죄송해서요. 게다가 가당찮은 가창력 논란까지 나오게 되어 마음이 무척 복잡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한다 한들 이은미 선배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논란이 무척 죄송해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자칫 현 씨 스스로의 가창력을 비하한다고 볼 수도 있는데요. 그렇게 생각은 안 하시나요?”

이특의 말은 사실이었다. 창현이 스스로를 낮추었기에 자신을 비하한다고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현을 좋아하는 팬들을 무시하는 행위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 질문에 창현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저도 나름대로 제 실력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이 곡에 있어서 만큼은 제가 이은미 선배님보다 못하다는 걸 솔직하게 인정한다는 이야기죠. 저도 제 나름대로의 스타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제 스타일에 맡는 곡을 준비해왔으니, 들어보시면 청취자분들도 제가 말한 게 무엇인지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

“말보다는 역시 행동이 앞서는 현 씨입니다. 그럼 우선 원곡부터 들어봐야겠지요? 이은미 씨가 먼저 부릅니다. <애인 있어요>.”

그 말에 이은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헤드셋을 끼고 마이크를 든다.

그와 함께 흘러나오는 MR.

마이크를 든 이은미가 <애인 있어요>를 열창하기 시작하였다.

특유의 걸걸한 느낌이 드는 목소리와 함께 절묘하게 컨트롤 되는 음의 조절과 감정 이입은 누구도 쫓아가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수준에 이른 라이브였다.

이 라이브를 들으면 누가 감히 가창력 논란을 제기할 수 있겠는가.

노래를 듣는 창현의 눈이 절로 감겼다.

정말 자신이 그 상황에 처하게 된 듯한 몰입감은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들 정도로 강렬한 마력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고음 처리까지 완벽하게 해내자 박수가 절로 터져 나왔다.

“와! 정말 대단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최고의 가창력이죠.”

“감탄이 절로 나오네요.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와!”

“정말 감탄 밖에 안 나오네요.”

창현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컴퓨터로 라이브 동영상을 봤지만 직접 듣는 감동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자, 감동의 라이브 이은미 씨의 <애인 있어요>였습니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대단한 가창력이었습니다. 이번에는 현 씨가 할 차례죠? 현 씨도 <애인 있어요>를 부르는 건가요?”

“아무래도 가창력 논란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니까요. 부담감이 정말 크네요. 제가 부를 것은 <애인 있어요>지만 기존의 곡을 제가 편곡한 것입니다. 그래서 원곡과는 느낌이 다른 곡입니다.”

“어떤 곡인지 기대가 되네요. 그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현 씨가 부르는 새로운 버전의 <애인 있어요>입니다.”

그러면서 자리에서 일어난 창현이 헤드셋을 쓰고 마이크를 들었다. 그리고 사전에 전달한 새로운 버전의 <애인 있어요> MR이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기존의 곡과는 약간 다른 느낌이 나는 MR이었다.

그에 창현이 설명을 덧붙인다.

“원곡이 애절한 느낌이 든다면 제 느낌은 밝은 느낌의, 희망찬 느낌이라 할 수 있는 곡입니다. 원곡과는 다소 다른 느낌이지만 제 나름대로 노래 느낌을 살려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그 말과 함께 창현이 노래를 시작한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그의 말처럼 밝은 분위기를 담아낸 곡이었다.

전혀 다른 분위기에, 전혀 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무엇보다 창현이 살려낸 것은 고음 부분이다.

가사에서 ‘알고 있죠.’란 부분을 꺾지만 그대로 올려버린 것.

특히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 올린 고음 부분은 보는 사람이 절로 숨을 들이킬 만큼 높은 영역에 속해 있었다.

그야 말로 압도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가창력.

“…….”

창현이 숨을 몰아쉬면서 노래를 끝내자 모두가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 모습에 창현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원곡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새로운 버전의 <애인 있어요> 많이 기대해주세요.”

창현의 말을 들은 이특과 은혁, 이은미가 박수를 쳤다.

이은미는 감탄한 표정으로 말한다.

“정말 잘하네요. 이 정도면 본래 버전으로 불러도 될 텐데?”

그 말에 창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애절한 느낌은 제가 가장 못 살리는 것 중 하나라서요. 그래서 노래를 저에게 맞게 편곡한 거고요.”

“정말 뛰어난 두 분의 라이브였습니다. 누가 우위라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감동적인 라이브였고요. 이렇게 탑 클래스 가창력을 보유하신 두분의 라이브를 들으니 좀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만 드네요.”

이특의 멘트에 은혁이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후우! 자괴감이 느껴지네요. 아무래도 춤을 더욱 연마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수가 노래를 해야지! NG낸 건가요?”

“아차차, 죄송합니다. 노래를 더욱 연습해야겠습니다.”

“이렇게 와주신 이은미 씨와 현 씨에게 정말 감사의 인사드리고요. 다음에도 꼭 와주셨으면 합니다.”

두 DJ의 익살스러운 멘트로 잡음 없이 끝을 맺을 수 있었다.

이은미와 현에 관해 정말 사기적인 가창력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애절한 느낌을 제대로 살린 이은미와 밝은 분위기의 새로운 버전을 선보인 현의 편곡 능력과 가창력이 호평을 받으면서 방송을 무사히 끝맺을 수 있었다.

은혁에게 기어코 음료수 하나를 얻어먹은 창현은 언제고 녹음실에 한 번 놀러오라는 말과 함께 방송국을 나섰다. 오랜만에 방송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느낌에 긴장감이 풀리는 걸 느끼면서 창현이 눈을 감고는 곧장 숙소로 향했다.


현과 이은미의 라디오 출연은 방송 시작 전부터 엄청난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이제는 해프닝이라 할 수 있는 <애인 있어요> 음원 유출로 인해 불거진 가창력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계획된 이번 라디오 방송 출연은 그야 말로 대박을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기 다른 느낌의 <애인 있어요>를 부른 두 사람의 라이브는 누가 더 잘 불렀다는 식의 흑백논리보다, 두 사람 모두 사람을 감동시키는 가창력을 지녔다는데 중점을 두었다.

현의 팬들은 당연히 현이 더 잘 불렀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버전이 다른 노래였기에 비교하기가 어려웠고, 유출된 음원 파일이 그리 고음질이 아니기에 라이브로 직접 부른 것과 비교하기에 무리가 따랐다. 그랬기에 사람들은 두 사람 모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라고 하면서 뛰어난 가창력에 박수를 보냈다.

그와 함께 곧 있으면 창현이 발매할 정규 3집 앨범과 새로운 버전의 <애인 있어요> 싱글 앨범에 대해 관심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창현으로서는 제대로 앨범 PR을 한 셈이다.

라디오 방송을 성공리에 끝마친 창현은 석규의 호출을 받는다.

오늘은 녹음실을 오픈하는 날이기에 창현은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앞으로 자신이 작업을 하게 될 곳. 어떤 곳일까.

부푼 기대감 속에 창현은 녹음실로 향하고 있었다.

창현의 녹음실은 숙소에서 걸어서 십 분 내로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앞으로 음반 작업을 녹음실에서 주로 할 것인 만큼 가까운 곳에 녹음실을 마련한 것이다. 이미 사생팬들을 피하는데 도가 튼 창현이었기에 이런 일을 도모할 수 있던 것이다.

지문 인식을 끝마친 석규가 창현을 보며 말한다.

“앞으로 이곳이 너의 녹음실이다. 그러니 알아서 잘 관리를 하도록 해라.”

그 말과 함께 석규는 회사로 돌아갔고, 창현은 녹음실에 홀로 남아 둘러볼 수 있었다.

정말 넓었다. 이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30평은 넘어 보이는 거대한 공간은 이른바 휴게실 용도로, 컴퓨터나 TV, 각종 가구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면 녹음을 하는 곳인데, 각종 악기들은 물론 최신장비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딱 봐도 엄청나게 돈을 들였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돈이 많이 들기는 했지만 그 값을 하네, 뭐.”

소파에 앉은 창현은 할 일이 없자 심심한 걸 느꼈다.

녹음실에 이렇게 왔는데 바로 돌아가는 건 뭔가 아니지 않은가.

심심해서 이리저리 뒤척이던 창현은 핸드폰을 꺼내든다.

“녹음실 오픈한다고 했으니 한 번 연락해봐야지.”

슈퍼주니어는 연말이라 안 되고 내년에 오겠다고 했으니, 대상은 소녀시대였다.

신인인 만큼 다소 한가하길 바라며 창현은 단체 문자를 찍었다.

잠시 후, 핸드폰이 웅웅거리며 답장이 오기 시작했다.

반가운 마음에 핸드폰을 펼치는 창현.

하지만 온 답장은 가관이었다.

[죽을래?] 얼음공주 제시카

“…….”

답장을 본 순간 할 말을 잃은 창현이었다.

순수한 선의로 문자를 보냈건만 날아온 대답은 죽을래? 라니.

황당한 마음이 그대로 반영되기라도 하듯 창현의 얼굴에 황당함이 서렸다.

“뭐, 뭐지.”

그러면서 창현은 다른 문자들도 확인해보기 시작한다. 핸드폰이 울리는 걸로 보아서는 온 문자가 하나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온 문자도 가관이었다.

[그렇게 살면 안 되지-!] 음식 파괴자 티파니

[나랑 원한 사고 싶은 거?] -17cm 태연

[창현아, 남자는 그럼 안 돼.] 엘리베이터ㅠ 유리

[넌 이제 죽었다.] 리얼 초딩 효연

[아무리 급해도 이럼 안 돼.] 고기 흡입기 수영

[창현이 너 어디야? 죽었어!] 이슬 먹는 사슴 윤아

[시카랑 윤아 열폭 중. 넌 죽었다.] 관광버스 탑승객 순규

“도, 도대체 내가 뭘 어쨌다고.”

문자 내용을 확인한 창현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된 건가?

해답은 마지막에 보낸 주현의 문자에 있었다.

[지금 단체 문자 때문에 언니들 화났어.] 착한 선배 주현

그걸 본 창현은 갑자기 왜 그런 문자를 보냈는지 알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몇몇 소녀들의 협박은 단체 문자 때문이었던 것이다.

“아, 단체 문자 때문에?”

그렇게 말하던 창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왜 단체 문자로 화를 낸단 말인가?

평소 단체 문자를 사용해본 적도 없고, 단체 문자를 받은 적도 없었기에 창현은 그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창현은 주현에게 답장을 보냈다. 단체 문자가 뭐가 어쨌냐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자 바로 날아오는 답장.

내용을 확인한 창현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단체 문자 보내면 성의가 없게 느껴지거든. 그래서 언니들이 화낸 거야. 소홀한 느낌이 들잖아. 얼른 사과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언니들 기색이 심상치 않거든.] 착한 선배 주현

“그럴 수도 있겠네. 으음…….”

주현의 말을 들으니 납득이 되는 창현이었다.

사과의 의미를 담아 문자를 작성한 창현은 또 다시 한차례 단체 문자 충동에 시달렸지만 이내 힘겹게 그것을 극복하고는 각자 한통씩 진심(?)을 담아 사과의 문자를 보낸다.

그에 다행히도 이해심이 담긴 답장을 받게 된다.

앞으로는 단체 문자를 보내면 가만 안 두겠다는 말과 함께.

화가 풀린 듯 싶자 창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한통의 전화가 온다.

전화 한 사람을 보니 수영이었다.

갑자기 무슨 전화?

고개를 갸웃한 창현이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헤이! 요 맨! 단체 문자 투척한 용자여! 무슨 일로 문자를 보낸 거여?

다짜고짜 쏟아내는 수영의 말에 창현은 순간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의 말에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은 것이다.

“헐, 그 저질 영어는 뭐죠? 순간 소름이 돋았어요.”

-끙! 내 발음이 좀 안 좋은가봐. 아, 다름이 아니라, 무슨 일 때문에 문자 보낸 거야?

자신에게 문자를 보낸 이유를 묻자 창현이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한다.

“아, 일단 누나 발음 좀 안 좋네요. 나중에 교정 좀 하시고요. 제가 문자 보낸 건 누나들 스케줄이 있나 없나 궁금해서 보낸 거예요. 지금 스케줄 중이에요?”

-엉? 발음은 나중에 고치도록 하고… 스케줄 없어. 우리 지금 곧 있으면 나올 앨범 녹음하고 안무 연습하거든. 이번 주까지 그럴 것 같고 다음 주부터는 조금 바빠질 것 같아.

그 말을 들은 창현의 표정이 밝아지며 물었다.

“그래요? 그럼 누나들 언제 끝나는데요?”

-무슨 일인데 그래?

수영의 물음에 창현이 자신의 용건을 털어놓았다.

“제가 오늘 녹음실을 오픈했거든요. 그래서 혼자 놀기 뭐해서 손님들 좀 초대하려고 했죠. 슈퍼주니어 형들은 스케줄 때문에 바쁘다고 해서 누나들한테 연락한 거예요.”

그 말에 수영이 잠시 침묵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스산한 기운을 담은 수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우리가 한가할 것 같아서 연락했다는 거네?

“하하! 그런 게 아니라, 슈퍼주니어 형들한테 연락한 담에 바로 누나들한테 연락한 거예요. 절대 신인이라서 한가할 것 같기에 연락한 거 아니에요. 정말요.”

아니라고 강조를 하는데 왜 그거 맞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건너편에서 이를 부득 가는 소리가 여러 개 들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창현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은 이상 뭐라고 말하기에도 뭐하리라.

-그렇다면 가줘야겠지! 이거 녹음실 개업하는 건가? 우리는 뭐 사가야 하지 않아?

“사오긴요. 그냥 몸만 오세요. 놀러오는 건데요, 뭐.”

-그래도 돼? 그럼 우리야 좋지!

몸만 오라는 창현의 말을 아주 반갑게 받아들이는 수영이었다.

분명 창현의 녹음실을 가면 떨어지는 콩고물들이 있을 터.

수영은 기대감 가득한 목소리로 창현에게 말한다.

-창현아! 우리가 가면 맛있는 거 사줄 거지?

어째 녹음실보다 먹을 것에 관심이 더 가 있다고 느껴진다랄까?

창현은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된 수영의 별명을 떠올리며 살짝 경계하는 마음으로 말했다.

“먹을 거야 주문할 수는 있어요. 나가서는 못 먹는 거 알죠?”

-그래?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또 한우 꽃등심을 사달라고 하려고 했나보다.

그걸 사면 최소한 몇십만 원은 우습게 깨지기에 창현이 미리 차단한 것이다. 수영에게는 아쉬운 순간이었다.

수영의 야망을 차단한 창현이 승자의 웃음을 지으면서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그런데 왜 누나가 저한테 전화한 거예요?”

아무래도 자신과 문자를 주고받던 주현이 전화를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어서 조금 의아한 창현이었다.

그 말에 수영이 키득키득 웃음을 지었다.

-아! 그거? 실은 누가 전화할지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내가 이겨서 전화한 거야. 큭큭!

“엥? 이겼는데 전화를 했다고요? 뭔가 이상한데…….”

의문 섞인 창현의 말에 수영이 웃음기 섞인 말을 한다.

-그게… 너한테 전화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여럿 있더라고. 그래서 가위바위보로 하기로 했는데 내가 이긴 거지. 큭큭! 어이구, 전화를 무척이나 하고 싶어하던 J양이 날 노려보네. 어이구! 두 T양도 날 노려보는 걸? Y양도 날 노려보고… 킥킥! S양도 은연중에 날 노려보고 있네.

장난스러운 어조로 다 말하는 수영이었다.

아마 J양은 제시카의 J를 뜻하는 것일 테고, 두 T는 티파니와 태연을 뜻하리라. 그리고 Y양은 아마도 윤아일 테고 S양은 수영이 아니니 서현을 뜻하는 이니셜이리라.

수영의 만행(?)에 태연의 버럭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야! 최수영! 우리가 언제 전화하고 싶어 했다고 그러는 거야! 듣는 사람이 오해하잖아!

-그럼 전화하고 싶지 않았다고? 그럼 왜 자꾸 전화기를 힐끔힐끔 보는데? 그게 전화하고 싶어 했다는 거지.

그러면서 귀에 들려온 것은 티격태격하는 소리.

졸지에 전화를 건 창현은 잊혀진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에 창현이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한다.

“하아! 그래서 수영 누나, 연습은 언제 끝날 것 같아요?”

-응? 우리 지금 끝나고 숙소로 가는 중인데? 녹음 작업 다 끝나서 오늘 일찍 돌아가는 중이야.

그 말에 창현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스케줄이 없다고 해서 회사에 있을 줄 알았는데 설마하니 벌써 돌아오고 있는 중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엑, 그래요? 어디인데요?”

-우리 이제 출발했어. 왜?

“그럼 바로 제 녹음실로 오세요. 여기 그 아파트 단지 앞에 있는 상가 근처에 있는 빌딩인데요…….”

그러면서 창현은 수영에게 녹음실의 위치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듣던 수영은 알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고, 창현은 잠바를 입고 목도리와 털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나온다. 바로 옆이 상가인 만큼 슈퍼에 가서 간단하게 마실 것들을 사올 생각이었던 것이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창현처럼 완전무장을 한 사람이 여럿 있었기에 이상한 사람 취급 받지 않고 무사히 음료수를 사올 수 있었다.

“이 짓도 하다 보니 느네.”

그렇게 중얼거린 창현은 음료수를 냉장고에 다 넣어둘 무렵, 핸드폰이 웅웅거린다.

액정을 확인하니 이번에 전화한 건 주현이다.

“설마 또 가위바위보 한 건가?”

고개를 갸웃한 창현은 전화를 받아든다. 시간상 이곳에 거의 다 왔을 법했기에 그렇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창현아, 나 주현인데. 우리 지금 상가 앞까지 왔거든. 여기서 어떻게 가야 돼?

“아, 그래요? 그럼 제가 나갈게요. 바로 앞이거든요.”

간단하게 통화를 끝낸 창현이 녹음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익숙한 벤이 눈에 들어왔고, 창현은 그리로 향했다.

창현은 반가운 표정으로 손을 들어 인사를 하였다.

“누나들 하이요!”

덜컹!

창현의 인사와 함께 벤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무슨 군인이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벤에서 완전 중무장으로 얼굴을 가린 소녀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는 윤아와 수연으로 추정되는 두 사람이 창현의 양옆으로 다가오더니 창현을 포박한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창현은 수영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다.

“전군 슈퍼로 돌격하라! 창현이가 먹고 싶은 거 다 사준다고 하니 마음껏 골라라!”

“Yes, Sir!”

한 마음, 한 목소리로 외친 소녀들이 슈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창현이 놀라서 소리친다.

갑자기 물주라니?

놀라서 외치던 창현은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솥뚜껑…은 아니고 하얗고 곱지만 그 내면에는 백만 차지 위력에 해당하는 파워가 내재 되어 있는 윤아의 손이 창현의 잎을 덮어버린 것이다.

졸지에 창현은 완전 포박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읍읍!”

그렇게 양팔과 입을 봉인 당한 창현은 그대로 슈퍼마켓 안으로 끌려들어갔고, 과자 한 아름씩 사온 소녀들의 것들을 꼼짝없이 계산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게 웬 봉변이지.”

그리 큰 금액이 아니었기에 창현은 순순히 계산하면서 중얼거렸다.

그런 창현의 중얼거림에 수연이 팔꿈치로 창현을 툭 치며 말한다.

“단체 문자 보낸 대가라고 생각해.”

수연의 말에 창현이 그녀에게 시선을 주면서 고개를 갸웃하고는 묻는다.

“단체 문자가 그렇게 잘못된 거예요?”

자신을 바라보는 눈에 수연이 차마 정면으로 받아내지 못하고 고개를 살짝 돌리고는 말한다.

“여, 여자들은 보통 단체 문자 같은 거 싫어해. 그러니까 알아두도록 해.”

갑자기 자신의 시선을 외면하는 수연의 모습에 창현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알겠어요.”

어마어마한 양의 과자를 모두 계산한 창현은 수영을 바라보며 묻는다.

“근데 이렇게 많이 사서 어떻게 하려고요? 이걸로 끼니 대신 하려고요?”

“우리를 무시하지 말란 말씀! 이건 애피타이저에 불과하지. 본방은 녹음실을 구경한 뒤에 생각해보자고, 후후!”

웃음을 짓는 수영의 모습이 그렇게 대단해보일 수 없었다.

창현은 감탄사를 터뜨렸다.

“헐! 이게 애피타이저라고요? 대단하네요.”

“우리가 좀 대단하지, 하하하!”

어째 칭찬이 칭찬 같지 않지만 웃음을 짓는 수영이었다.

그렇게 과자가 한가득 담긴 봉투 다섯 개 중 두 개를 창현이 들었고, 수영, 윤아, 주현이 각기 봉투 하나를 든 채 창현의 녹음실로 향한다.

워낙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기에 녹음실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고, 지문 인식으로 문을 열면서 창현이 외쳤다.

“자, 그럼 오늘부터 제 녹음실이 된 곳을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개봉박두!”

그와 함께 창현이 녹음실 문을 활짝 열었다.


“와아!”

녹음실에 들어선 소녀들이 처음 흘린 소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은 돈을 들인 만큼 내부가 화려하지 않던가?

우르르 안으로 들어선 소녀들은 신기한 듯 이리저리 둘러보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진짜 좋다. 여기서 살아도 될 것 같아.”

“TV도 있고, 냉장고도 있고 소파도 있으니 진짜 여기서 살아도 되겠다. 우와!”

그러면서 이것저것 건드리는 소녀들을 보며 창현이 제동을 걸었다.

“그만! 누나들 좀 차분하게 행동해요.”

창현이 제일 신나 하는 효연을 보며 말하자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한다.

“아, 미안. 신기해서.”

“우리 다른 사람 녹음실에 온 건 처음이거든. 그래서 그런 거야.”

친절한 태연의 설명에 창현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일단 과자들부터 좀 풀어놓죠.”

그러면서 창현은 봉지를 소파 앞에 있는 탁자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과자를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그런 창현의 행동을 도와 소녀들도 과자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그러자 탁자에 과자가 산더미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그 양을 보면서 창현이 질린 표정을 짓는다.

“이게 애피타이저라고요? 와 정말…….”

질색하는 듯한 창현의 말에 다른 소녀들은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들이 보기에도 엄청나게 많은 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직 한 사람만이 당당했으니, 바로 수영이었다.

그녀는 창현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이거 이렇게 많아보여도 실제로 열 명이 먹으면 얼마 안 돼.”

“…누나가 짱이에요.”

이 많은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하니 그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창현의 칭찬에 수영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한다.

“내가 원래 좀 짱이야. 그걸 이제 알았다니 조금 섭섭하네.”

“어이구!”

못살겠다는 듯 이마를 부여잡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창현은 냉장고를 열어 음료수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신나게 과자 봉지를 개봉하는 수영을 보며 창현이 말한다.

“아참, 가실 때 정리하는 거 함께 해야 해요? 알았죠?”

그 말에 몇몇 소녀들의 어깨가 움찔한다. 분명 슬쩍 가려고 했던 것일 거야…….

창현의 눈이 예리하게 변하자 주현이 대답한다.

“물론이지! 우리가 철없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그렇게 경우가 없진 않다고!”

상당한 파워를 보유한 주현의 말에 또 몇몇 소녀들의 어깨가 움찔한다. 그녀의 말에 큰 데미지를 입은 듯했다.

“설마 돕지 않으려고 했던 건가요?”

그의 물음에 태연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너, 너! 우리를 뭘로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제일 유난히 어깨를 들썩였던 것이 태연이었다.

창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바라보자 태연이 고개를 푹 숙인다. 양심이 콕콕 찔려 창현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었던 것이다.

리더가 가장 먼저 침몰해버렸으니 별 수 있겠는가.

주현을 제외한 여덟 명을 발라버린(?) 창현은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자, 그럼 다 먹고 나서 사이좋게 치우죠. 다 먹은 뒤에 녹음실 보여드릴게요.”

“알았어.”

그렇게 과자와 음료수로 애피타이저를 해결한 창현은 소녀들과 함께 과자 봉지를 모두 치웠다.

그리고는 소녀들에게 말했다.

“자, 수영 누나가 말한 애피타이저를 해결했으니 녹음실 구경해야죠.”

“그래그래! 녹음실 궁금하다, 가보자.”

유리가 제일 궁금했던 듯 벌떡 일어나며 말하자 다른 소녀들도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난다.

제일 선두에 선 창현이 그런 소녀들을 이끌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드러나는 녹음실.

“와우! 전부 최신 기계네?”

최신 기기들을 보면서 소녀들이 감탄사를 터뜨린다. 그녀들도 앨범 작업을 하느라 녹음실을 드나드는 만큼 녹음하는 기계가 최신인지 아닌지 구분할 정도의 안목은 지니고 있다.

유리가 가장 앞장 서서 기기들을 둘러보다가 창현에게 묻는다.

“이거 잘 작동 돼?”

창현이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요.”

“헐! 기계들을 구입해놓고 사용해보지도 않았다고?”

“아, 그것도 그러네요.”

어이가 없다는 유리의 말에 창현은 자신의 실수를 자각했다. 자신의 녹음실을 가졌다는 기쁨에 미처 기기들을 확인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창현은 소녀들을 보면서 묘한 지소를 지은 채 말한다.

“그럼 여기서 확인해보죠, 뭐. 가수분들 많은데.”

“엑? 우리보고 하라고?”

창현의 말에 몇몇 소녀들이 질겁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한 소녀만큼은 달랐다.

그녀는 손을 들며 즐거운 표정으로 말한다.

“그래그래! 해보자. 재미있겠다.”

“역시 미영 누나! 저에게 도움을 주려고 그러는 거죠?”

모두가 예 할 때 아니오 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런 사람의 특징은 눈에 띈다는 점이다.

그 말에 미영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이지! 창현이의 일인 걸! 내가 힘 닿는 데까지 도와줄게. 그리고… 같이 팝송도 불러보고 싶고.”

미영의 말에 감동 받은 표정을 짓는 창현.

그래, 이렇게 악독한(?) 무리에도 천사는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창현에게 악마급으로 구는 사람들은 몇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악마들의 존재감이 워낙 컸기에 미영의 행동이 부각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지도 몰랐다.

“미영 누나! 완전 땡큐! 부르고 싶은 거 얼마든지 같이 불러드릴게요.”

“정말? 와! 창현이 짱!”

창현과 미영의 화기애애한 구도가 성립되자 몇몇 소녀들의 가슴에 위험 신호가 울려 퍼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미영의 독주가 우려되었기에 그녀들은 곧장 행동으로 옮겼다.

좌 윤아 우 주현으로 이루어진 미영 포박대는 미영의 양팔을 붙든 채 그대로 부스 안으로 들어선다.

갑자기 자신을 납치하는 두 사람을 보며 미영이 소리친다.

“뭐, 뭐야? 창현아 구해줘!”

“저거 뭐하는 거죠?”

창현이 황당하다는 시선으로 묻자, 유리가 어깨를 으쓱한다.

“먼저 목 풀려는 거 같은데?”

“그, 그런가요?”

창현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러려니 하였다. 아무래도 개성이 다양한 아홉 소녀가 모이다 보니 저렇게 티격태격하는 장면도 연출되는 것이리라.

최신 기기답게 다양한 노래가 수록되어 있었고, 졸지에 소녀들은 창현의 프로듀스 하에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윤아와 주현에게 끌려들어간 미영은 울상을 지으면서 셋이서 함께 노래를 불러야 했고, 뒤이어 들이닥친 수연에 의해 한곡을 더 불러야만 했다.

그렇게 무려 다섯 곡이나 연달아 부른 미영은 목이 턱턱 막혀오는 것을 느끼고는 울상을 지었다.

“이 나쁜 것들. 히잉…….”

아무래도 가수이다 보니 노래에 소홀히 할 수 없어 열창을 하다 보니 목소리가 고갈된 느낌이었다.

그런 미영의 모습에 창현이 위로의 한마디를 건넨다.

“누나, 좀 쉬다가 같이 불러요. 물 좀 마실래요?”

“응! 땡큐!”

창현의 말에 급격히 밝아지는 미영이었다.

잠시 후, 창현과 미영이 부스 안으로 들어설 무렵 멀찍이서 상황을 지켜보던 두 사람은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태연이 순규를 보면서 말했다.

“이보게, 순규 양.”

“순규라고 부르지 말게나, 탱구 보이.”

“내가 왜 탱구 보이야!”

배 맛 나는 탱크 보이를 패러디한 이름으로 부르자 태연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탱구 보이라고 불리면 뭐랄까, 자신이 배 맛 나는 아이스크림이 된 기분과 동시에 남자가 된 기분이 느껴졌기에 근래 들어 가장 신경 쓰이는 별명 중 하나였다.

격한 태연의 반응에 순규가 어깨를 으쓱한다.

“그러니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것 아니겠는가? 그대가 나에게 친절하게 써니 양이라고 하면 나도 호칭을 고치겠네.”

“알겠소, 써니 양. 내 한 가지 제안할 게 있소이다.”

“말하시오, 태연 양.”

사소한 다툼을 일단락 한 태연이 테이블을 바라보며 순규에게 말한다.

“우리 창현이의 핸드폰이 궁금하지 않소이까?”

“창현이의 핸드폰?”

순규의 시선이 절로 테이블로 향한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창현의 핸드폰. 마치 자신을 열어달라고, 낱낱이 파헤쳐 달라고 하는 듯한 환청이 들리는 건 그녀의 착각일까.

핸드폰을 바라보는 순규의 눈에 서서히 빛이 서리기 시작한다.

그것은 틀림없는 호기심이었다.

서서히 입가에 맺히는 웃음.

순규가 태연을 보며 말한다.

“오랜만에 아주 좋은 건수를 잡아냈구려, 탱구 탐정.”

“후후! 먹음직스러운 먹이가 있기에 제안을 한 것이외다.”

“먹이가 놓여있으면 먼저 먹는 게 임자 아니겠소? 자, 우리 함께 탐독해봅시다.”

그러면서 창현의 핸드폰에 손을 뻗는 순규였다.

누구의 제지도 없이 간단하게 핸드폰을 손에 넣은 순규는 곧장 핸드폰을 펼쳐든다. 그리고는 이리저리 조작하다가 모두 잠금이 되어 있자 실망한 표정을 짓는다. 옆에서 눈을 빛내고 있던 태연도 실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철두철미하게 다 막아놨네. 쩝. 아쉽지만 저장된 이름만 알아보는 걸로 만족합시다.”

“그럽시다.”

그러면서 순규는 자신의 번호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다섯 자리를 입력하자 저장된 자신의 이름이 뜬다.

기대되는 눈으로 저장된 이름을 확인하던 순규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창현의 핸드폰에 저장된 순규의 이름은 그야 말로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핸드폰 액정에 떠 있는 이름은 이러했다.

관광버스 탑승객 순규

이 얼마나 충격적인 이름이란 말인가.

관광버스 탑승객이라니!

이는 분명 스타크래프트로 매일 자신을 물 먹이는 것을 빗대어 말하는 것이리라.

순규의 분노 게이지가 단숨에 Max로 치닫기 시작했다.

“이, 이 녀석을…….”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태연이 혀를 찬다.

“쯧쯧, 그러니 평소에 착하게 살았어야지.”

평소에 자신처럼 착하게 살지, 왜 못되게 굴어서 저런 수모를 당할까 혀를 차는 태연이었다.

참 착각도 자유였다.

순규에게서 핸드폰을 빼앗은 태연은 자신의 번호를 입력해본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들어온 저장된 이름은 그녀의 분노를 사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심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저장된 이름.

-17cm

이걸 보는 순간 태연은 얼마 전 키가 175cm가 되었다고 자랑하던 창현의 모습이 떠올랐다.

175cm에서 -17cm를 하면? 158cm다.

158cm는 다름 아닌 자신의 키.

즉, 키로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런 사약 먹일…….”

부들부들 떨리는 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동급의 높이에서 놀던 녀석이! 감히! 키가 컸다고 이런 식으로 배신을 하다니!

태연이 느끼는 배신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단신에서 벗어났다고 이런 식으로 배신을 때릴 수 있단 말인가!

순간 허공에서 부딪친 순규의 시선에서 태연은 형용할 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다.

그것은 함께 제거해야 할 공공의 적이 생겼을 때 느낄 법한 동료의식이었다.

두 소녀의 시선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창현에게 향했다.

그녀들의 눈에 노래를 부르는 창현은 최후의 만찬이 아닌, 최후의 무대를 선보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후아!”

노래를 끝낸 창현이 가볍게 숨을 몰아쉰다.

과자와 음료수를 함께 했기 때문일까. 생각보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창현은 자신과 함께 듀엣 곡을 부른 미영을 보면서 말한다.

“누나 목소리가 매력적인데요?”

그토록 갈망하던 창현과의 듀엣 곡이었기에 만족의 표정을 짓고 있던 미영이 창현의 말에 반색한다.

“정말?”

“네. 나중에 제 앨범에 수록될 곡에 피처링 하나 안 해주실래요? 탐나네요.”

그 말에 미영의 얼굴이 환하게 변한다.

누구의 제안이라고 거절할까!

미영은 완전 대환영이었다.

“나야 좋지! 완전 환영!”

의욕이 넘쳐보이는 미영의 모습에 창현은 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대신에 보컬 트레이닝 해야 하는 거 알죠?”

매력적인 목소리라고 해도 창현이 원하는 형태로 가공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피처링에 참가하려면 어느 정도 보컬 트레이닝은 반드시 필요했다.

창현의 말에 순간 움찔한 미영이지만 이것은 기회였다.

그 어떤 가수가 현의 앨범 피처링 작업 기회를 놓치고 싶겠는가!

미영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응, 물론이지.”

“어차피 나중에 할 거니까 지금은 그냥 이야기만 꺼내놓은 거예요.”

그렇게 말하면서 창현과 미영이 부스를 나선다.

그런데 부스를 나선 창현을 반긴 것은 살벌한 표정을 지은 두 명의 단신이었다.

이제는 내려다 봐야 하는 두 사람을 보며 창현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응? 누나들 왜 그래요.”

아무것도 모른다는 창현의 표정.

그 모습을 보면서 태연과 순규는 한 번 더 발끈하고 만다.

이렇게 가증스러운 모습이라니!

순규가 창현을 보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창현이 너!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이건 마치 범인을 알아낸 명탐정의 모습 같았다.

“에? 뭐가요?”

순식간에 범죄자가 되어 버린 창현은 순규의 외침에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순규의 외침 때문인지 모든 시선이 창현에게 쏠려 있었다.

하지만 정작 창현도 사정을 모르고 있었기에 어깨를 으쓱할 분이었다.

그런 창현을 보며 순규가 말한다.

“창현이 네 핸드폰에 저장된 이름 이게 뭐야!”

그러면서 순규가 자신의 번호를 입력한 채 창현에게 내민다.

그러자 핸드폰 액정에는 ‘관광버스 탑승객 순규’ 라고 적혀 있었다.

그걸 확인한 창현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 그걸… 아니, 그보다 남의 핸드폰을 왜 만져요?”

창현의 말에 순규와 태연이 움찔한다. 남의 핸드폰을 허락도 없이 만진 것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으니 말이다.

“미, 미안.”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다. 태연과 순규는 창현에게 사과를 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순규가 이내 어깨를 쭉 피며 말한다.

“그건 미안하다 치고… 핸드폰에 저장된 이름이 뭐야! 우리를 놀리려는 거지?”

“에… 그러니까… 어쨌든 사실이잖아요.”

창현이 할 말은 이것밖에 없었다.

순규가 관광버스 탑승객인 건 사실이지 않은가? 매일 자신이 운전하는 관광버스에 실려 처참하게 관광을 당하니 말이다. 사실만 적었기에 창현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었다.

그러나 창현은 이걸 알까.

그렇게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더 밉다는 것을 말이다. 옛말이 있지 않는가. 혼내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밉다고. 지금이 딱 그 상황이었다.

“이익!”

아니나 다를까, 그런 창현의 말에 순규의 얼굴에 붉으락푸르락 한다. 단단히 약이 오른 듯했다.

허나, 공격 거리가 없었기에 태연에게 바통터치를 한다.

순규를 대신 하여 앞으로 나선 태연이 창현을 째려보며 말한다.

“강창현! 우리가 작년 초만 해도 비슷한 키였던 거 기억하지?”

“기, 기억하죠.”

초반부터 강렬한 공격을 해오자 창현이 움찔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창현에게 있어서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그런 한편, 태연과 비슷한 키에서 어느새 자신이 내려다보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개가 무량한 창현이었다. 이 정도라도 커서 다행이다. 이제 조금만 더 크면 된다는 사실이 안심이었다.

내심 안도하는 창현을 보며 태연이 톡 쏘아붙인다.

“그래서 같은 단신으로서 동병상련의 슬픔을 간직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나의 상처를 후벼 파?”

“그, 그건…….”

태연의 강렬한 일격에 창현이 말을 잇지 못했다. 태연의 말이 창현의 가슴을 파고들었던 것이다.

자신의 핸드폰에 분명 태연의 이름 저장이 -17cm로 되어 있다.

그걸 해석한 태연이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자신은 단신을 탈출했지만 태연은 이미 성장호르몬이 말라버렸는지 더 키가 크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본인은 이 키에 만족한다고, 오히려 아담해서 남자들이 좋아한다고 외치기는 하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안쓰러워 보일 수 없었다. 키에 만족한다고 하면 할수록 딱해 보였으니 말이다.

자신도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태연의 격한 반응이 뭐라 말할 수 없는 창현이었다.

미안한 건 미안한 것이다.

그는 태연에게 솔직하게 사과했다.

“끄응, 미안해요.”

순순히 사과하는 창현의 반응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태연이었다.

이렇게 순순히 사과를 하다니?

그녀는 좀 더 격한 반응을 하리라 생각하던 창현이 예상과 달리 너무나 순순히 사과하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미처 준비한 멘트를 해보지도 못한 채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으응? 응…….”

얼떨떨한 안색을 한 태연이 그냥저냥 넘어가자 옆에 있던 순규는 분통 터지는 표정을 지었지만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창현은 자신의 재치 있는(?) 행동으로 무사히 넘어가는 듯하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복병은 따로 있었다.

바로 그 사이에 다른 멤버들이 창현의 핸드폰을 가지고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음! 리얼 초딩이라… 별로 강렬하지는 않군.”

가장 먼저 핸드폰을 받아 자신의 번호를 확인한 효연은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초딩이란 별명이 익숙해서 그런 듯했다.

“엘리베이터? 아, 그때 그거 때문인가? 그래도 별명은 좀 그런데…….”

유리도 자신의 이름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착한 선배나 얼음 공주로 저장되어 있는 주현과 수연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도 창현이 이상한 이름으로 저장하지 않은 듯했다.

그 다음으로 확인한 미영은 달랐다.

그녀는 음식 파괴자라고 적혀 있자 고개를 갸웃했다.

“파괴자? 얘들아, 파괴자가 뭐지? Creator? Destroyer?”

아무래도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아 헷갈리는 듯했다.

미영이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효연이 억눌린 웃음을 흘리며 말한다.

“큭큭! 미영아, 파괴자는 Creator야. 새로운 맛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

“응? 그런 거야? 그럼 칭찬이네. 역시 창현이는 착하네.”

“그래그래, 참 착하고말고.”

유리의 지원 사격이 이어지자 완전히 믿어버리는 미영이었다.

그렇게 미영이 파괴자가 무슨 뜻인지 몰라 헷갈려하고 있을 무렵, 표정이 굳는 두 사람이 있었다.

바로 수영과 윤아였다.

미영 다음으로 핸드폰을 확인한 수영은 고기 흡입기라 적혀 있는 별명을 보고는 표정을 찡그렸다.

“감히 날 고기 흡입기라 칭하다니…….”

“풉! 맞는 말인데 뭘 그래요.”

윤아는 창현이 지어준 별명이 무척이나 어울린다고 생각하면서 핸드폰을 받아든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번호를 입력해본다.

그러자 핸드폰에 뜨는 자신의 이름!

그걸 확인한 순간 윤아의 표정도 굳을 수밖에 없었다.

창현의 핸드폰에 적힌 자신의 이름은 이슬 먹는 사슴이었던 것이다.

이슬 먹는 사슴이라니!

설마 소주 이름 중 참이슬을 가리키는 것이란 말인가.

이들이 확인하는 사이 창현은 태연과 순규의 열폭을 막을 수 있었지만 더 강력하다 할 수 있는 두 사람의 적을 만들게 되었다.

창현에게 다가간 수영이 외친다.

“창현이 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고기 흡입기가 뭐야.”

단신 듀오를 무찌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창현은 수영의 외침에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헉! 설마 누나도 봤어요?”

“봤으니까 이러는 거지! 고기 흡입기라니!”

“그러니까 그건…….”

‘사실인데 뭐라고 말을 해야 되는 거야.’

창현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머리가 아파오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강적 수영을 수습해야 하는 상황에서 창현은 또 다른 강적을 맞이해야만 했던 것이다.

“나도 있어.”

그의 귀에 들려오는 스산한 소리.

창현의 고개가 소리의 진원지로 향했고, 그곳에는 윤아가 서 있었다.

‘아차!’

소녀시대 전원이 봤다면 몇 명은 분명 난리를 칠 터.

창현은 윤아가 봤다는 것을 깨닫고는 실수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슬 먹는 사슴이라는 창의적인(?) 별명을 봤다면 분명 윤아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슬 먹는 사슴이 뭐야. 난 술 마시지도 못하는데…….”

“하하하! 그게 그러니까요…….”

음울하게 말하는 윤아의 모습에서 검은색 아우라가 느껴지고 있었다.

창현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서면서 웃음을 지으며 뭐라고 말해보려 하였다.

하지만 평소 잘 돌아가는 머리가 지금은 도움이 되질 않았다.

뭐라 말해서 위기를 모면해야 하는데 이렇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맞아맞아,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우리도 충격이 크다고.”

수세에 몰린 창현을 보고 기회라 여긴 것일까.

할 말을 잃은 채 뒤로 물러나 있던 태연과 순규가 기회를 틈 타 재참전한다.

네 명의 소녀들에게 폭격을 맞게 된 창현은 순식간에 궁지에 몰렸다.

그러면서 그는 굳어버린 머리를 최대한 가동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지금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까.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창현.

그가 내린 결론은 한 가지다.

변명을 해서는 현 사태를 무사히 넘길 수 없다.

당장 저 흉흉한 기색을 띠고 있는 윤아를 보아라. 자칫 잘못하다가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 소문으로 전해지던 철권을 몸으로 실감하게 될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창현의 머리가 갑자기 팽팽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는 게 사람이라고.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창현이 한 가지 방안을 생각해낸다.

씨익.

그의 입가에 갑자기 번지는 미소.

절망에 가득 차야 할 그가 도리어 미소를 짓고 있자 태연과 순규, 수영은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심지어 윤아마저도 창현을 황당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창현은 그런 시선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당당하게 가슴을 쭉 핀 채 말한다.

“그럼 누나들 핸드폰도 공개해보시죠? 제 이름을 뭐라고 저장했는지 말이죠.”

자신이 이렇게 저장했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할 터!

이것이 창현이 내민 회심의 한 수였다.

창현의 입가에 짙은 웃음이 자리하기 시작한다.


“…….”

창현은 웃음을 지었지만 소녀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창현이 이렇게 치고 들어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소녀들의 당황하는 표정에 창현이 한 층 더 의기양양해진 표정으로 말한다.

“왜 대답을 못하세요. 설마 저를 이렇게 몰아붙이셔놓고 본인의 핸드폰은 공개 못한다는 것은 아니겠죠?”

그러면서 창현은 지금의 사태 반전을 일으킨 수영을 바라보자 수영이 헛기침을 흘리며 시선을 돌린다.

“흠흠!”

자신을 외면하는 수영을 보며 창현이 한쪽 입 꼬리를 말아 올린다.

한건 잡았다는 표정.

창현은 태연과 순규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한다.

“누나들도 마찬가지에요. 다른 사람의 핸드폰을 열어볼 용기를 가졌던 만큼 본인의 핸드폰을 공개 할 의향이 있겠죠. 자, 제게 보여주시지요.”

“그, 그건…….”

태연과 순규가 표정을 굳히며 뒤로 슬금슬금 물러난다. 자신의 말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 켕기는 게 있는 듯했다.

그러자 창현은 더욱 더 궁금해진다.

처음에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물었던 것이지만 저렇게 과민 반응을 보이니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반응을 보이니 더 궁금하네요. 보여주시겠어요?”

“크, 크윽! 지금 와서 안된다고 하면 우리가 너무 나쁜 거겠지?”

가슴에 손을 올리며 말하는 태연의 모습에 창현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이죠. 나빠도 아주 나쁜 거죠.”

“조, 좋아. 공개하겠어. 하지만… 우리보다 수영이가 먼저 공개해야 한다.”

“왜 하필 나야!”

자신을 선두주자로 내세우는 태연의 말에 버럭 소리를 지르는 수영이었다.

왜 하필 자신부터란 말인가!

뭐든지 첫 주자는 고달픈 법이다.

그 진리를 잘 알고 있는 수영으로서는 당연히 거리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가장 앞장 서서 창현을 핍박(?)하던 윤아조차 어느새 수영에게 돌아선 채 먼저 하라고 은연 중 압박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졸지에 멤버들에게 배신 당하게 된 수영이 신음을 흘렸다.

“크윽! 너희들의 의리가 이것 밖에 되지 않았다니…….”

동정표를 사고자 연기에 들어갔지만 순규의 한마디에 무너지고 말았다.

“너 연기 어색해.”

“흐흑!”

비운의 여주인공을 재연하는 수영에게 창현이 다가간다.

여기서 손을 뻗으며 감동적인 말을 하면 영락없는 남 주인공의 모습일 테지만 그런 로맨틱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손을 뻗기는 했다. 하지만 그 의미는 상당히 달랐다.

“자, 핸드폰 주시지요.”

“너까지 결국… 그래, 받아라, 받아.”

그러면서 창현에게 핸드폰을 건네는 수영이었다.

그것을 받은 창현은 핸드폰을 열었다. 그리고는 곧장 자신의 번호를 입력해보기 시작했다.

딱 다섯 자리를 입력하자 자신의 번호가 뜬다.

그와 함께 뜨는 자신의 이름.

자신의 이름을 확인한 창현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핸드폰을 쥔 손이 당장이라도 핸드폰을 놓칠 듯 위태롭게 떨리기 시작한다.

“이, 이게 뭐야…….”

창현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수영의 핸드폰에 뜬 창현의 이름이 다름 아닌 ‘꽃등심 셔틀’ 이었던 것이다.

이런 충격적인 이름이라니!

셔틀! 이른 바 왕따들에게 지어주는 별명 아닌가? 대표적으로 빵 셔틀이란 단어가 있다.

수영은 빵이란 단어에 꽃등심이란 단어를 넣은 것이다.

자신은 그저 꽃등심을 조달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던 것인가?

창현은 충격에 비틀거렸고, 다른 소녀들은 수영을 바라본다.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꽂히자 수영이 머쓱한 얼굴로 웃음을 짓는다.

“창현이가 꽃등심을 많이 사주다 보니 예뻐서 그런 별명을 지은 거야. 헤헤!”

숨겨두었던 필살기, 귀여운 웃음으로 사태를 모면하려 했지만 분위기는 더욱 냉각될 뿐이었다.

“흑! 그래! 내가 나쁜 년이다. 다 내 잘못이여.”

그렇게 수영은 침몰하고 말았다.

수영의 침몰에 만족한 창현은 타겟을 옮긴다.

이번 타겟은 태연이었다.

이미 한차례 침몰한 경력이 있는데 너무나 빠르게 부활하여 자신을 공격했단 말이지.

“나, 나 말이야?”

태연은 자신이 지목되자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 모습을 보니 창현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더욱 짙어진다.

“자, 어서 핸드폰을 내놓으시지요.”

“나 혼자 죽을 수 없는 노릇이지. 어서 핸드폰을 반납해.”

어느새 부활한 수영이 태연을 압박하자 삽시간에 궁지에 몰린 태연이 앓는 소리를 내다가 이내 항복한다.

“으으… 알았어, 여기…….”

모든 것을 체념한 얼굴.

도대체 어떻게 지정해놓았기에 그런 것일까.

창현은 불안한 마음에 서둘러 번호를 입력해보았다.

그리고 이름이 나오는 순간 창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신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단어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랑 키 비슷한 애라니…….”

어이가 없는 나머지 창현이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이건 누구에게 뭐라고 할 것이 못 되지 않는가? 피장파장 서로가 키에 대해 언급을 했으니 말이다.

왠지 패배한 듯한 느낌에 태연이 고개를 푹 숙인다. 자신이 창현의 이름을 저렇게 적어놓은 것을 들키니 영락없는 패배자의 몸부림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렇게 태연이 침몰하자, 창현의 다음 목표는 순규였다.

창현이 순규에게 시선을 옮기는 순간,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야했다.

1층으로 도주를 시도하던 그녀는 유리와 효연에게 포박되어 끌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거 놓으라고!”

바동거려보지만 두 사람의 힘을 이겨낼 수 없는 노릇.

결국 순규는 창현의 앞에 대령하게 된다.

창현은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순규의 모습에 승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으며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핸드폰이요.”

“으으…….”

고개를 푹 떨구며 핸드폰을 건네는 순규.

창현은 앞서 두 번의 일처럼 핸드폰을 연 채 번호를 입력해나간다.

액정에 뜬 번호를 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

“뭐, 뭐기에 그러는 거야?”

창현의 모습을 본 소녀들은 순규의 핸드폰에 입력된 창현의 이름이 기존의 것과 비교도 안 되는 위력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호기심에 모여든다.

그리고 액정에 뜬 번호를 본 그녀들도 할 말을 잃어야만 했다.

순규의 핸드폰에 입력된 창현의 이름은 그야 말로 간단하면서 강렬한 이펙트를 주는 것이었다.


이것이다.

이보다 더 강렬할 수 있을까?

창현은 물론이고 소녀들도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은 채 순규를 바라본다.

아홉 쌍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순규는 애써 고개를 돌린다.

자신도 무안했으리라.

창현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순규를 바라보다가 말한다.

“허, 이거 정말… 뭐라고 말이 안 나오네요.”

충격이 너무 크면 말도 나오지 않는 법이다.

순규에게 뭐라고 말을 하고 싶은 창현이었지만 선뜻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를 긁적인 창현의 시선이 최종 보스인 윤아에게 향한다.

윤아는 창현의 시선을 받자 움찔한다.

창현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손을 내미려던 찰나, 윤아가 먼저 창현에게 말한다.

양손을 모은 그녀가 간절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창현아 난 정말 공개하면 안 되는데… 봐주면 안 돼?”

“안 된다고요?”

창현의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공개했는데 혼자서 공개를 안 하겠다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

하지만…….

윤아의 표정이 무척이나 간절하였다.

절대 공개하면 안 되는 이유가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랄까?

그 진심이 창현에게 전해졌기에 멈칫한 것이다.

창현은 윤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공개하면 안 될 이유가 존재하는 거예요?”

그의 눈이 거짓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 윤아의 눈을 응시한다.

시선을 정면으로 받은 윤아는 그 시선을 피하지 못한 채 창현의 눈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으응…….”

“그럼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정말 사정이 존재한다면 말이죠. 누나들도 이해하죠?”

갑자기 분위기가 심각해졌기에 창현이 주변을 둘러보며 묻자 소녀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분위기가 이상해졌네요. 어쨌든 피장파장이니까 저한테 뭐라고 하지 마세요. 알았죠? 자, 그럼 내려가서 놀아요.”

화제 전환을 위해 창현이 소녀들을 이끌고 1층으로 내려갔다.

순규에게만큼은 반드시 이름을 바꾸라는 말을 첨부한 채 말이다.


“후우…….”

창현의 녹음실에서 두 시간 가량 시간을 보낸 소녀들은 숙소로 돌아왔다.

윤아는 자신의 방에서 핸드폰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위험천만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다른 언니들은 장난스럽게 이름을 저장했기에 공개할 수 있었지만 자신은 달랐다.

그랬기에 들키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강제로 보려고 하면 필사적으로 저항할 생각까지 하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창현은 자신을 이해해주었고, 염려하던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무척 심각한 표정을 지은 덕분인지 언니들도 더 말하지 않았다.

“다행이야, 정말.”

침대에 몸을 묻으면서 윤아가 중얼거린다. 혹시라도 창현이 재촉했으면 어쨌을지 아찔했다.

설사 창현의 재촉일지라도… 대답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연신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그만큼 위험한 순간이었다.

룸메이트인 수영과 태연이 씻고 들어오고, 화장실에 씻으러 가는 도중에도 윤아의 표정은 밝았다.

씻고 나온 뒤 모두가 TV를 보기 위해 거실에 나갔을 때, 윤아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닿아있는 핸드폰 액정에는 현♡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비춰지고 있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 사이 창현의 녹음실이 오픈했다는 소식이 퍼져 나갔지만 그의 녹음실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창현의 녹음실 위치는 철저하게 비밀로 부쳐졌던 것이다.

그와 함께 현의 정규 3집 앨범인 [One Year]의 뮤직비디오가 공개 되었다.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오른 뒤 처음으로 공개하는 앨범이었기에 사람들의 관심은 그야 말로 대단하였다.

이미 티저 영상에서 대박의 조짐이 보였기에 현의 곡들은 그야 말로 정상 가도를 달리기 시작하였다.

뒤이어 음원 공개가 이루어지자 수록곡 중 여덟 곡이 디지털 음원 차트 1위에서 10위 중 그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다. 그리고 50위 안에 스물다섯 개의 곡이 모두 들어가는 기염을 토하면서 새로운 신드롬을 예고하였다.

현의 새 앨범인 [One Year]는 새로운 트렌드의 곡이었다.

1년이라는 주제로 각 달에 알맞은 느낌의 멜로디를 살리면서 곡의 느낌을, 그리고 각 달에서 느껴질 법한 사랑 이야기를 담아낸 곡들은 들이닥친 사람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고, 타이틀 곡인 <One Year>에서는 1년 12달의 다채로운 느낌을 느낄 수 있었기에 사람들이 열광하였다.

게다가 겨울은 발라드의 계절이라고 하지 않은가.

감미로운 봄의 느낌과 열정정인 여름의 느낌, 우수에 젖은 듯한 가을의 느낌과 쌀쌀하고 차가운 겨울의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곡은 사계절의 변화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다채롭게 만드는 마력을 담아내고 있었다.

많은 변화를 담아낸 만큼 노래 또한 5분 37초라는 긴 시간이었고, 중간 가을로의 분위기 전환에서 시원하게 올라가는 고음은 사람들의 답답한 마음을 뻥 뚫어놓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현의 노래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의 노래 실력이 아이돌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뮤지션, 아니, 뮤지션 중에서도 탑 클래스에 들었기에 그렇고, 사람들의 공감을 살 수 있는 멜로디를 바탕으로 하였기에 가능하다. 그러면서 현 특유의 다채로우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느낌이 살아 있었기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이란 동물은 참으로 간사하다.

처음 자극에 움찔하지만 계속해서 같은 자극이 주어지면 어느덧 그 자극에 담담해진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현은 때로는 사람의 마음을 풀어놓았다가 때로는 사람의 마음을 절묘하게 조인다. 소설을 쓰는 작가들 중에서도 정말 잘 쓰는 사람은 뻔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은 대작을 집필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예상할 법한 스토리를 가지고 사람들의 기대를 자아내고, 사람들에게 통쾌한 만족을 주니 말이다.

현의 노래가 기존의 곡들과 다르다고 평가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목소리가 답답한 현실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는 시원함을 선사하기에 그렇다.

그의 앨범 수록곡 중에서 타이틀 곡 <One Year>만큼 인기 있는 곡이 있다. 바로 8월을 상징하는 <August>가 그것이다. 8월을 뜻하는 <August>는 현의 첫 미니 앨범인 <Go&Stop>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강렬한 느낌을 주는 곡이었다.

고음을 훌륭히 소화하면 가창력 있는 가수로 인정하는 한국 사람들을 경악시키게 만든 이 곡은 고음 부분과 가사 전달력을 동시에 지니면서 대중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세 가지 요소를 충족 시켰기에 오히려 타이틀곡보다 매니아 층이 더 두터워질 정도였다.

초 고음을 넘나드는 넓은 음역과 절묘한 호흡 배분이 함께 하지 않으면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곡이었던 것이다.

그 곡이 어찌나 어려운지 가창력으로 인정받은 현이 이것만큼은 부르지 못할 것이라는 가창력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만큼 시원하게 내지르는 <August>는 답답한 사람들의 마음을 뻥 뚫어주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음원 공개와 함께 대박이 터지자 앨범 주문도 잇달아 밀려들고 있는 실정이었다.

음반 판매 불황이라는 말이 우습게 선주문 30만장이 들어온 상태였고, 음반 발매 일주일만에 30만장이 모두 팔리는 기염을 토한다. 추가분 20만장이 더 풀린 상태지만 그것도 곧 있으면 매진될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로 현의 상승세는 두려울 정도였다.

게다가 한폭의 화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재킷 사진은 여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어서, 앨범 판매의 가속화를 돕는 중이었다.

앨범 판매의 순풍의 주역은 또 있었다.

바로 케이블 방송인 Mnet에서 방송된 ‘천의 매력 현玄’이 그것이다.

이 방송은 이미 사전에 부지런히 떡밥을 흘려 수많은 팬들을 낚아놓는데 성공했다.

바로 인터넷 기사란에 ‘현의 여장?’이라는 타이틀로 수많은 기사들이 올라온 것이다.

현이라면 일단 클릭하고 보는 네티즌들은 호기심에 기사를 클릭하였고, 그곳에서 Mnet에서 방영되는 방송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딱 한 장 공개된 현의 여장 사진은 그야 말로 인터넷을 들썩이게 만들기 충분했다.

아직 수염도 나지 않았기 때문일까.

현의 여장은 놀라울 정도의 싱크로율을 보이며 여성 팬들의 마음을 뒤흔든 것이다.

어릴 적부터 바비 인형을 가지고 놀면서 인형에게 옷을 입히고 놀던 여성들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발견하면 자신이 코디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직감적으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방송은 순전히 여성 팬들의 대리만족을 채우는 방송이었는데, 그런 여성 팬들이 보낸 것 중 일각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여장이었던 것이다. 현의 노래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의 비주얼에도 열광하는 여성 팬들은 그가 여장하는 모습을 반드시 보고 싶어 하던 차였다.

하지만 여장이 채택 되었다는 이야기가 없어서 내심 실망하던 차였는데 여장을 했다고 하니 눈에 불을 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친절하게도 기자들은 단 한 장 유출된 현의 여장 사진을 기사로 첨부하였고, 그로 인해 놀라운 변신이라면서 ‘현데렐라’라는 새로운 별명까지 등장하던 차였다.

현의 여성 팬들은 본방 사수를 외치며 방송을 관람하였고, 이날 방송은 케이블 방송 역사상 손에 꼽힐 정도로 높은 9.7%의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방영된 것이 한창 연인들이나 친구들을 만나 바쁠 때인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시간 대였는데도 말이다.

방송 이후 현의 여성 팬들은 오히려 소녀시대에서 나온 세 멤버들을 향해 ‘훌륭한 임무를 완수하였다.’ 라는 식으로 세 소녀의 공을 칭찬(?)하였고, 현의 여장으로 인해 오히려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케이블 방송으로 마음을 졸이던 창현으로서는 한시름 놓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마음을 놓았더니 여장 사진 캡처 사진이 아주 인터넷을 뒤덮듯이 하여 창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였다.

하지만 그걸 내색할 수 없었기에 그저 다크 스타 게시판에다가 우는 시늉을 할 뿐이었다.

바람이 있다면 여장을 즐기는 변태로 오해하지 말아달라는 부탁 뿐…….

그렇게 크리스마스 이브가 지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전체문자로 메리 솔로 크리스마스라고 단체 문자를 찍었다. 크리스마스 문자야 뭐, 단체 문자를 자주 보내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의미로 욕을 먹어야만 했으니, 바로 메리 솔로 크리스마스 부분에서였다.

그러는 너는 커플이냐부터 시작하여 온갖 음해(?) 문자를 받아야만 했다.

장난기가 가득한 문자에 창현은 피식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이제 남은 건 연말 가요 프로그램뿐인데.”

앨범은 순조롭게 판매되고 있지만 석규는 여기에서 앨범 판매가 한차례 더 탄력받기를 원하고 있었다.

바로 연말 가요 프로그램을 통해 압도적인 현의 무대를 선보임으로써 앨범 판매가 본 궤도에 오르길 원하는 것이다.

이번 앨범 판매 목표가 150만장 돌파라는 이야기를 들은 창현은 아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번 2007년을 통해 형성된 이름값으로 가능할 거란 말에 믿어보기로 하며 다가오는 가요 프로그램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한 상태였다.

올해에 발표한 곡이 현재 발매한 정규 3집 앨범 [One Year] 밖에 없었기에 퍼포먼스에 참여하기보다는 타이틀곡인 <One Year>와 졸지에 가창력 논란에 휩싸이게 된 8월을 상징하는 <August>를 부르기로 하였다.

<August>를 생각하자 창현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이 곡은 나의 야욕이었나.”

사람들이 가창력 논란을 일으킬 만큼 <August>란 곡은 창현에게 있어서도 쉬운 곡이 아니었다. 목 상태가 엉망이면 고음 부분이 제대로 올라가지 않을 정도로 높은 음역을 자랑하고 있었기에 철저하게 목을 풀고 관리를 해줘야 소화가 가능했던 곡이다.

설마 이것이 구설수에 휩싸일 줄은 몰랐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기에 훌륭한 무대를 선보임으로써 구설수를 잠재워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나저나 요즘 다 바쁘네.”

연말이라 그런 걸까.

석규도 요즘 눈코 뜰 사이도 없이 바빠 보였고, 알고 지내는 연예인들도 바쁜 듯했다. 올해 초 데뷔하여 <Tell Me>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원더걸스는 정신없이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실정이었고, 소녀시대 또한 <다시 만난 세계>와 <소녀시대> 두 곡으로 상당수 팬 층을 확보 하였기에 새 앨범 준비와 맞물려 상당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에 반해 창현은 연말에 바쁠 것이라 하였지만 하루에 한 개에서 많아 봤자 두 개의 스케줄만 소화하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바쁘다고 말하기 상당히 난감할 정도였다.

혼자 빈둥거리면 그것도 꽤나 꼴불견이기에 창현은 시간이 남으면 녹음실로 향하여 노래 연습에 매진하였다.

아직 자신의 나이가 어리기에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근래 들어 음향총서의 새로운 깨달음도 함께하고 있었기에 그것을 파고드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어느 날부터인가 창현은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음향총서를 다 익혔는데 너무 빠르게 익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명 음공이라 할 수 있는 음향총서인데 이것이 과연 습득한지 2년 만에 모든 것을 깨달을 정도로 얕은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자 창현은 자신이 음향총서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익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걸 어렴풋 알게 된 것은 유럽 투어 콘서트를 마치고, 미국에서 정규 앨범을 낸 후였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

창현은 음향총서를 재 탐독하면서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기교, 노래에 담아내는 감정, 그 기법 안에 수십 가지의 뜻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창현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현의 노래가 조금 더 쉽게 귀에 들어오고, 쉽게 감정을 자극한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지금 앨범 판매 성과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음향총서의 무서움을 느꼈다.

음향총서의 궁극적인 목표는 음악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창현은 이 음향총서를 나쁘게 사용하면 사람의 마음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들어갔으면 어땠을지 마음이 철렁하는 한편, 자신의 손에 들어왔다는 것에 안도를 해야만 했다.

며칠간의 남는 시간을 오로지 음향총서를 연구하고, 자신을 개발하는데 시간을 투자한 창현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넓은 공간에 홀로 있게 되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먼 곳을 멍하니 응시하다가 새로운 악상이 떠오를 수 있고, 불현 듯 자신이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보는 눈이 넓어지고, 본격적으로 자신이 가진 것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자 그것은 창현에게 이롭게 작용하였고, 기존에 자신이 지니고 있던 것들을 한 층 더 깊이 익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것들을 갖는 것만이 좋은 일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것을 되돌아보고, 연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듯이 너무 많이 가져도 좋을 것이 없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것을 더욱 개발하면서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줄여나가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다.

깊게 생각에 잠겨 있는 창현의 모습.

무언가에 빠져 있는 그의 모습은 결코 인위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 그러한 모습이 아니었다.

만약 팬들이 보면 한폭의 화보라고 하면서 찬양을 했으리라.

녹음실 의자에 앉아있던 창현의 입가에 미소가 맺힌다.

“좋았어.”

자신의 실력이 늘어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2007년 12월 29일.

올해가 이틀 남은 가운데 현의 팬 사이트인 다크 스타는 물론 인터넷 기사가 후끈 달아올랐다.

29일 아침 6시경에 창현이 올린 게시글 때문이다.

아직 성장기라 키가 크기 위해서 밤 10시에 자서 6시에 일어난다고 한 창현은 오늘 S본부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데 아침부터 목이 막혀서 걱정이다, 부르기로 한 노래가 <One Year>와 <August>인데 잘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라는 게시글을 남겼는데 이것이 화제가 된 것이다.

실어서 퍼 나르기에 상당히 조예가 깊은 기사들은 아침 7시가 되기도 전에 기사를 작성했고, 오늘 현이 S본부 가요대전에 참가한다는 말과 함께 그가 부르는 곡들을 적어놓았다.

화제가 된 것은 현이 부르는 노래 때문이다.

그가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것은 팬들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팬들 사이에서 설왕설래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그가 부를 노래 때문이었다.

현의 위치가 위치인 만큼 두 곡에서 세 곡 정도를 부를 것임이 분명했다.

우선 확정적인 것은 <One Year>였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인 만큼 반드시 부를 것이라 예상이 되었지만 나머지 곡들에 관심 여부가 쏠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지금의 현을 있게 만들어준 <Minus>를 부를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하였고, 처음으로 세계 정상에 우뚝 서게 해준 <Shield&Spear>를 부를 것이라고도 예상하였다. 그의 데뷔곡인 <Go&Stop>도 수면 위에 올랐고, 첫 100만장 돌파한 <Bad Boy>를 부를 것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면서 몇몇 사람들은 이번에 논란이 된 <August>를 부르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그 의견은 그리 힘을 받지 못했다.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곡인 <August>는 이미 잠정적으로 기계의 힘을 빌렸다는 생각이 강했기에 그렇다.

그런데 모든 예상을 뒤엎고 현이 <August>를 부르겠다고 한 것이다.

그에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기계의 힘을 빌려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이 많은 만큼 현 또한 기계의 힘을 빌려 <August>란 노래를 완성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만큼 난이도가 높고 소화해내기 어려운 다양한 음역의 곡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이 곡을 들은 사람들은 역시 현이다! 라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에게 실망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어려운 곡은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무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헌데 현이 직접 라이브로 <August>를 부르겠다고 게시글로 올려놓았다.

이 말은 즉, 라이브로 소화가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사실을 전해들은 현의 팬들은 들뜬 기색이었다.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August>란 곡을 직접 라이브로 소화하겠다고 하니 역시 현이라고 하면서 그의 가창력은 세계 제일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몇몇 사람들은 현이 허세를 부린다고 하였지만 이미 여론은 현의 찬양으로 기운 상태였다.

그런 인터넷의 분위기를 모른 채 아침에 게시글 하나를 작성한 창현은 연습을 해보는 중이었다.

훨씬 더 자유자재로 다루게 된 음은 창현을 만족스럽게 하였고, 자신이 들어도 수월하게 전달되는 감정 이입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좋아, 이 정도면 만전의 상태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발전의 기회를 잡게 된 창현은 예전엔 힘겹게 불렀던 곡이 한층 더 수월하게 소화해낼 수 있게 되자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었기에 창현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도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곧 있으면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 창현은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 결코 나쁜 기분이 아니었다.

다른 가수들처럼 창현은 리허설을 하지 않기에 시간적으로 무척 넉넉하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현은 리허설을 하면 무대에서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이상한 루머가 돌아서 그가 리허설을 하지 않아도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가 방송국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형성해놓았을 뿐만 아니라 여태까지 무대에서 완벽하게 라이브와 안무를 소화했기에 형성이 가능한 소문이었다. 그만큼 자신의 일에 있어서는 완벽한 처리를 하였기에 그렇다.

하지만 혼자서 시간을 죽이는 것도 심심하였기에 창현은 일찍 촬영장으로 향했다. 오늘 방송에서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지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며칠 동안 사람 없는 녹음실에서 혼자 있다 보니 사람이 그립기도 하였다.

로드 매니저와 세희, 두 사람과 함께 점심을 해결한 창현은 촬영장으로 향한다.

점심 식사 때 창현이 너무나 조금 먹었기에 걱정하는 기색을 보이는 두 사람이지만, 노래를 부를 때 소식을 해야 더 나은 무대가 나온다는 창현의 말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염려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로드 매니저는 그렇다 쳐도 매니저인 세희는 알고 있던 것이다. 매니저다 보니 창현과 하루종일 같이 있을 때가 있었고, 그가 라이브를 하는 날이면 하루에 한 끼, 그것도 보통 사람이 먹는 한 끼에 절반도 되지 않는 양을 섭취한다는 것을 말이다.

저러다가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너무나 생생한 창현의 모습에 뭐라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자기 관리에 있어서는 철저한 창현이었으니 말이다.

그녀가 창현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옆에서 조언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차를 타고 촬영장에 창현이 도착하자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몰린다.

오늘 무대의 마지막을 장식해줄 인물의 등장인 만큼 시선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행이라면 사인을 해달라고 달려드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랄까.

메이크업도 하지 않은 채 생얼로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 창현이 세희에게 말한다.

“그럼 누나, 인사하러 가죠.”

“그래.”

현이 방송에서 이미지가 좋은 까닭은 그의 인사성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야 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음에도 겸손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고 있으니 말이다.

그 밑바탕에는 인사성에 있다.

가정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것도 있지만 창현이 이렇게 방송국 인물들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것은 석규의 말이 컸다.

아무리 실력이 있다고 하여도 사람에게 있어서 인맥은 중요한 것이었다.

석규는 늘 앞장서서 뭘 말하려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배려를 망설이지 말라 했다. 자신의 작은 호의가 상대방에게 너무나 큰 호의로 다가올 수 있고, 그것은 나중에 돌고 돌아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하였다.

인생 경험이 짧은 창현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구체적으로 몰랐지만 나쁜 말은 아니라고 하였다. 석규는 자신의 아버지이자 소속사의 사장님이었으므로 자신에게 손해가 될 말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남이 먼저 나서서 자신에게 인사를 하면 무척 기분이 좋다는 것을 알기에 창현은 촬영장에 도착하면 꼭 먼저 인사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것이 차곡차곡 쌓여 방송에서 현의 이미지가 나빠지려고 해도 나빠질 수가 없는 것이다. 현과 함께 방송을 해본 사람들 중에서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말이다.

세희는 창현이 위치에 걸맞게 조금 도도하길 바랐으나 포기한 지 오래였다. 오히려 포기하니 편하다고 할까? 먼저 인사를 하고, PD들이나 스태프들이 창현을 대하는 모습을 본 뒤로는 이게 더 낫다고 생각되었으니 그런가보다.

창현이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인사를 하자 그들은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이다가 그가 현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허둥지둥 인사를 받는다. 그러면서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한다. 현이 무척 예의 바르다는 말은 그냥 소문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몇마디 섞어 보면 그가 무척 예의 바른 소년이라는 것이 느껴졌던 것이다. 때문에 현과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은 하나같이 ‘역시 세계적으로 노는 사람들은 다르구나.’라는 눈빛을 하였다. 될 사람은 대화를 나눠보기만 해도 느껴진다고 하더니 그 말이 참인 듯하였다.

대충 인사를 모두 한 창현은 조용히 무대를 바라본다. 무대에는 한창 리허설 중인 빅뱅과 원더걸스의 모습이 보인다.

<거짓말>로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한 빅뱅과 <Tell Me>로 인기몰이를 한 원더걸스는 떠오르는 아이돌 스타다. 게다가 같은 5인조인 만큼 숫자도 잘 맞고 숫자가 맞는 만큼 다채로운 퍼포먼스 구사도 가능하여 파트너를 이뤄서 여러 퍼포먼스를 펼치는 듯하였다.

“우와! 재미있겠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창현은 눈을 빛낸다. 오랜만에 사람 구경하는 맛도 맛이지만 멋진 퍼포먼스를 보니 눈이 즐거웠다.

게다가 리허설임에도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역시 프로는 프로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빅뱅 완전 멋있다.”

옆에서 무대를 바라보던 세희는 빅뱅을 보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역시 그녀도 여자다 보니 남자 아이돌 그룹에게 끌리는가보다. 생각해보니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난다.

눈에 하트가 뿅뿅 생겨난 세희를 보며 창현이 퉁명스러운 음성으로 말한다.

“뭐에요, 누나는 옆에 슈퍼스타가 옆에 있는데 다른 남자한테 눈 주기에요? 실망인데…….”

“헛!”

창현의 말에 세희가 정신을 차리고는 얼굴을 붉힌다. 재기발랄한 남자 아이돌을 보니 한순간 정신을 놓은 것이다.

그녀는 창현의 말에 고개를 슬쩍 돌리고는 말한다.

“나, 나는 뭐 남자 아이돌을 좋아하면 안 되나…….”

“그게 그 말이 아니잖아요. 어쨌든 누나 실망이에요.”

그러면서 창현이 정말 실망한 표정을 짓자 세희는 다급한 표정으로 변명하듯 말한다.

“에… 너와 함께 있다고 해도 나이 차이도 차이고… 무엇보다 넌 가까이서 지내다 보니 슈퍼스타라기보다는 그냥 말 안 듣는 사춘기에 접어든 남동생 같은 느낌이 드는데…….”

어째 변명을 하다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세희의 말을 들은 창현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사, 사춘기에 든 남동생이요?”

“아,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우물쭈물하는 세희의 모습이 너무나 귀엽다.

그 모습을 즐기듯 바라보던 창현이 피식 웃음을 짓는다.

“장난 좀 친걸 가지고 뭘 그렇게 심각해져요. 괜히 장난 친 내가 다 미안하게…….”

장난이었다는 말에 세희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창현을 노려본다.

“뭐, 뭐라고? 너…….”

“하하! 진정하세요, 릴렉스.”

그 기세가 사뭇 날카로웠기에 창현이 뒷걸음질 치며 말한다.

“감히 누나를 놀리다니! 버릇을 고쳐주겠어.”

하지만 세희가 그냥 넘어갈 기세가 아니었다.

난감한 표정을 지은 창현이 연신 뒷걸음질 쳤지만, 세희의 접근이 더 빨랐다.

그렇게 창현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구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창현의 뒤에 나타난 한 사람이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아는 척을 한 것이다.

“요! 네가 현이구나?”

자신을 치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았던 창현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부른 사람을 향해 눈을 크게 뜬다.

무척 의외의 인물이 자신에게 말을 건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뻣뻣하게 굳는 것을 느꼈다.

“아, 안녕하세요?”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으며 인사를 하는 창현. 그 모습이 사뭇 우습다.

“…아!”

세희는 갑자기 창현이 굳은 채 인사를 하자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그에게 말을 건 사람을 보고는 탄성을 흘린다.

창현에게 말을 건 사람은 다름 아닌 이효리였던 것이다.

국민요정 그룹이라 불리던 핑클로 활동하다가 솔로로 전향한 이후, <10 Minutes>란 곡으로 단번에 섹시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지금도 어리지만 그야 말로 창현이 꼬맹이일 때부터 정상의 인기를 누려온 인물이 바로 이효리인 것이다.

자신을 보고는 굳어버린 창현의 모습에 효리는 피식 웃음을 짓는다.

“풋! 뭘 그렇게 긴장하는 거야. 내가 잡아먹기라도 할까봐?”

그 말에 창현은 멋쩍은 표정을 짓는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요. 하하!”

본인도 스타이긴 하지만 창현은 옛날부터 동경하던 연예인을 만나면 마치 팬으로서 연예인을 만난 듯한 기분이 들곤 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창현이 꼬맹이일 때부터 핑클이란 그룹을 무척 좋아했고, 그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던 멤버는 이효리였다.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굳은 채 인사를 한 것이리라.

창현의 표정을 본 효리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말한다.

“이거 좀처럼 보기 힘든 슈퍼스타가 왔기에 인사를 하러 온 건데 너무 굳어 있잖아. 재석 오빠한테 듣기로는 완전 능글능글 맞다고 하던데. 설마 내가 싫어서 그러는 거야?”

자신을 싫어해서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님에도 창현에게 장난 식으로 농담을 건네는 효리였다.

싫어하냐는 말을 들은 창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워낙 갑작스럽고 뜻밖의 만남이어서 굳었던 것뿐인데.

“그럴 리가요. 그게 아니라 원래 제가 핑클 팬이었고, 그중에서 선배님을 가장 좋아했거든요. 그런 거 있잖아요. 팬이 연예인을 만난 그 느낌. 순간 그 느낌을 받아서 굳었던 거예요, 하하!”

효리의 친근한 모습 때문일까.

서서히 긴장한 모습을 푼 채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창현이었다.

창현의 말을 들은 효리가 눈을 살짝 크게 뜬다.

“정말 내 팬이었다고? 와우! 이거 영광인데? 세계적인 스타가 내 팬이었다니! 이거 자랑해도 되는 거지?”

과하게 반응하며 좋아하는 그녀의 모습에 창현이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다.

“자, 자랑감인가요?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저도 좋고요.”

“몇마디 안 해봤지만 너 진짜 마음에 든다! 아참, 내가 초면인데 말 놓아서 기분 나쁜 건 아니지? 재석 오빠한테 이야기를 들었더니 친근하게 여겨져서 말이야.”

초면인데 말을 놓았던 것이 마음에 걸리는지 효리가 묻는다. 선배이고, 나이도 더 많지만 창현의 인기가 워낙 대단했기에 그녀도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은근히 소심한 면도 있는 것 같다.

그 물음에 창현이 빙긋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기분 나쁘긴요. 오히려 친근하게 대해주셔서 기분이 좋은데요?”

“그래? 그렇다니 다행이다. 좋아! 내가 큰 인심 썼다! 앞으로 누나라고 불러! 내가 특별히 허락해줄게. 이거 아무한테나 허락해주는 거 아니야.”

슬쩍 누나라고 부르라고 말하는 효리.

하지만 나이 차이를 감안하면 누나라기에는 조금 어폐가 있다.

현재 효리의 나이가 스물아홉이고 창현의 나이가 열여섯이 아닌가?

누나라기보다는 이모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 나이 차이를 자각하고 있는지 효리가 은연중 힐끗 창현을 바라보고 있다. 창현의 입에서 뭐라 나올지 약간 걱정이 되는 듯하다. 방송에서는 있는대로 쿨한 모습을 보여주더니 정말 소심한 면이 있긴 한가 보다.

창현은 그런 효리의 염려를 저버리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다.

“저야, 좋죠. 그럼 앞으로 효리 누나라고 부르면 되죠? 잘 부탁드려요.”

너무나 흔쾌히 허락하는 창현의 모습에 감동한 탓일까?

효리는 창현을 와락 껴안는다.

“너 정말 마음에 든다! 앞으로 내가 격하게 아껴줄게!”

“커, 커컥! 누나, 진정을…….”

갑자기 효리가 껴안는 바람에 가슴에 닿는 감촉에 창현은 화들짝 놀라며 말한다.

그에 효리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창현을 놓아준다.

“하하! 미안. 내가 기쁜 나머지 실수를 했네. 그런데 생각보다 쿨하게 승낙하네? 난 또 이모라고 부른다고 할까봐 조마조마했는데.”

아무래도 창현과 자신의 나이 차이를 염려했나보다.

효리의 말에 창현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 그건요. 재석 형이 말씀해주시더라고요. 방송계에서 너보다 나이 많은 여자는 전부 누나라고요. 저도 그게 더 친근하고 좋은 것 같고요.”

창현의 말을 들은 효리의 입가에 미소가 맺힌다.

재석이 창현과 나이 차이 때문에 그런 말을 했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하기야, 재석과 창현의 나이 차이가 정확히 스물인 만큼 형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재석의 성격상 창현에게 삼촌이라 불리기 싫었을 테고, 그런 바람직한(?) 거짓말을 한 것이리라.

그것이 지금 효리에게 유익하게 작용했지만 말이다.

“오호! 재석 오빠가 오랜만에 유익한 걸 가르쳐줬네. 그렇고말고! 누나지. 현이 너 내가 앞으로 격하게 아껴줄 테니 나한테 누나라고 부르기다. 알았지?”

방금 전 누나 소리를 들은 것으로 안심이 안 되던 탓일까.

창현에게 확실한 답을 구하는 효리였다.

그것이 어려운 일도 아니었기에 창현은 별로 생각할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야 상관없죠. 잘 부탁드려요, 누나.”

“누나 소리 듣는 게 이렇게 좋은 줄 처음 알았네. 후후후!”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지 입가에 미소를 짓는 효리였다.

상대방이 자신의 말에 기분을 좋아하니 창현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고 보니 누나가 오늘 MC 보시죠? 저도 오늘 무대에 서기로 했는데 잘 부탁드려요.”

“동생인데 당연하지! 나만 믿으라고.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거든?”

어느덧 몇 년 동안 알고 지낸 동생 대하듯이 하며 효리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창현을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갑자기 변한 그녀의 모습에 창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네, 뭔데요? 곤란한 것만 아니면 괜찮아요.”

“아, 나도 오늘 나오기 전에 기사를 봤거든? 근데 부르는 노래 중에 <August>도 있다며?”

그녀의 언급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섹시한 댄스로 남자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고 하여 가창력에 있어 저평가를 받지만 효리도 엄연한 가수다. 당연히 근래 나오는 노래에 관심이 많았고, 그중에서 창현의 노래도 관심에 빗겨나갈 수 없었다.

가수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것이 바로 <August>였다. 과연 그것이 라이브로 소화가 될 수 있을지 상당수 가수들이 회의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다.

효리도 그것이 궁금하였기에 조심스럽게 물어본 것이다.

창현은 별 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네, 부르기로 했는데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 아니. 그냥… 그거 엄청 어렵다고 하던데 부른다고 하니 궁금해서 말이야. 가능하겠어?”

어떻게 보면 창현에게 굉장히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다.

라이브로 소화가 가능하냐고 묻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상당히 친해졌다고 생각하기에 묻는 것이었다.

창현은 효리의 물음에서 그녀가 무엇을 묻고자 하는 것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의 질문을 대답해주었다.

“아… 그거였군요. 글쎄요, 아무래도 가능하니까 부른다고 했겠죠?”

심각한 질문에 장난식으로 대답하는 창현이었다.

그에 효리의 눈이 살짝 크게 뜨였다. 설마 창현이 장난이 가미된 식으로 대답할 줄 몰랐던 것이다.

그녀는 심각한 분위기를 털어내고 웃음을 터뜨린다.

“하하! 역시 재석 오빠 말대로네. 진짜 능구렁이네? 처음에 볼 땐 영락없는 순둥이더니. 원래 사교성이 좋아?”

창현이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정말 사교성은 눈꼽만큼도 없어요. 아무래도 누나가 사교성이 좋아서 그런 것 같아요.”

“나도 사교성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닌데? 남들은 좋아 보인다고 하지만 은근히 낯을 가리거든.”

“음, 그러면 서로 첫 인상이 좋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저는 어릴 적부터 누나 팬이었잖아요. 그래서 동경 비슷한 마음도 있었고, 누나가 저를 대해줄 때도 친근하게 대해줬으니까요.”

“그런가?”

창현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면서 생각에 잠기는 효리였다.

그러면서 그의 말이 맞다는 것을 느낀다.

그녀가 처음 창현에 대해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 재석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였고, 그에게 들은 창현은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음에도 예의가 바른 소년이라고 전해 들었으니 말이다.

재석의 말이라면 일종의 보증수표와 같았기에 호감을 갖고 창현을 대한 것 같았다.

생각에 잠겨있던 효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네. 그러고 보니 재석 오빠가 네 칭찬을 많이 했거든. 게다가 코드가 잘 맞는 것 같고. 그런 것 같네.”

“네,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사람의 사이에는 코드란 것이 존재한다. 그 코드가 맞아야 사람이 쉽게 친해질 수 있다. 서로 봤을 때 불편한 느낌이 들면 사이가 쉽게 친해질 수 없는데 반해 보는 순간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면 금방 친해질 수 있다. 그것이 일종의 코드였고, 그런 면에서 창현과 효리는 코드가 잘 맞는다고 할 수 있다.

효리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창현에게 핸드폰을 내민다.

“오늘 마음이 잘 맞는 동생을 만나서 기분이 좋네. 자, 이거 내 핸드폰인데 번호 좀 찍어줄래? 아참, 그 정도는 가능하지?”

사생활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몇몇 가수들은 핸드폰마저 관리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효리가 핸드폰을 내밀다가 순간 멈칫하며 세희를 본다.

그에 창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녀의 핸드폰을 받아든다.

“가능하고말고요. 저처럼 풀어두는 소속사는 없어요. 그러니 그런 걱정 마세요.”

그 말과 함께 번호를 입력한 창현은 통화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자신의 핸드폰에 효리 번호가 찍혔고, 종료 버튼을 누른 뒤 그녀에게 내민다.

효리는 핸드폰을 받아들며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땡큐! 아싸, 나도 세계적인 스타의 번호를 땄구나. 돈이 필요할 때 연락하면 되는 거야?”

장난스럽게 말하는 그녀의 말에 창현이 어깨를 으쓱하며 살짝 턱을 치켜 든다.

“저는 십억 이상 아니면 취급 안하니까 필요하실 때 전화하세요.”

“헉! 십억? 그러고 보니 이번 해에 가장 돈을 많이 번 연예인이 현이 너였지?”

장난스럽게 던진 창현의 멘트에 갑자기 심각한 표정을 짓는 효리였다.

그에 저도 모르게 분위기에 휩쓸린 창현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선다.

그의 눈에 들어온 효리의 모습은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무엇 때문인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가 창현에게 시선을 준다.

뜨거운 열망이 담겨 있는 그녀의 눈빛은 모든 것을 녹여버릴 듯한 용암과도 같았다.

슬금 뒤로 한 걸음 물러서는 창현의 어깨를 턱! 하니 붙잡는 효리.

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창현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현이 너! 나한테 장가오지 않을래?”

“…….”

순간 할 말을 잃은 창현이었다.

“아, 내가 너무 앞서 나갔나? 아하하!”

창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효리는 멋쩍은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린다.

그에 창현이 한마디를 첨부한다.

“나이 차이도 있고요.”

“…이 정도 차이면 가능하지 않아? 괜찮아! 사랑은 모든 걸 극복할 수 있어.”

“지금 누나는 사랑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돈 이야기 듣고 그러는 거잖아요.”

날카로운 창현의 말에 움찔하는 효리였다.

이내 그녀는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쳇! 그래, 포기다, 포기. 겪어보니 너도 은근히 쉬워 보이면서 철저하구나. 그건 나이에 맞지 않네.”

“에이, 누나가 농담으로 한 거니까 저도 그런 거죠.”

“하, 그래그래.”

창현이 웃으면서 말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는 효리였다.

잠시 후, 한가한(?) 창현과 달리 바쁜 효리는 짧은 인사와 함께 사라졌고, 창현은 또 다시 홀로 남아 리허설 무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리허설 무대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면서 미리미리 친분을 터둬야 한다는 세희의 말에 창현은 빅뱅과 인사를 나눠야 했다. 그러면서 원더걸스와도 인사를 나누었는데 저번 MKMF 이후로 원더걸스는 창현을 유난히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걸 창현도 느꼈지만 이미 상황은 벌어졌고, 어쩔 수 없는 일이기에 그도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었다. 사람간의 인연의 실타래가 꼬이면 풀기 힘들지 않은가? 그걸 느끼고 있었다.

원더걸스 다음으로 인사를 하기 위해 방문한 곳은 소녀시대 대기실이었다.

창현은 가볍게 노크를 한 뒤 안으로 들어가면서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만약 혼자 찾아갔으면 이런 환대는 받지 못했으리라.

안으로 들어선 창현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어라, 사람이 왜 이렇게 적어요?”

소녀시대는 멤버가 아홉 명이다 보니 대기실 같은 곳이 항상 꽉 찬 느낌을 준다. 그래서 절반가량이 없다보니 무척 휑하게 느껴졌다.

창현의 물음에 윤아가 모니터를 가리키더니 말한다.

“다른 언니들은 퍼포먼스 리허설 하러 갔어.”

“아, 그렇군요.”

그러면서 모니터를 보던 창현은 돌연 피식 웃음을 짓는다.

왜? 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는 윤아를 보면서 창현이 모니터를 가리킨다.

“풉! 왜 유리 누나는 메이크업을 하다 말고 나간 거예요?”

창현이 가리킨 곳에는 얼굴 절반 정도만 메이크업이 된 채 춤을 추고 있는 유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질문에 윤아가 킥킥! 웃음으 짓더니 말한다.

“아, 우리 인원이 워낙 많잖아. 그래서 메이크업을 하고 있는데 리허설 시간이 된 거야. 근데 하필 그 시간이 유리 언니 메이크업 할 시간이어서 끝마치지 못하고 간 거야. 그래서 저 모습이지.”

“푸흐흐! 이거 잘못하면 유리 누나 굴욕으로 남겠는데요? 차라리 화장을 안 하면 모르겠는데 절반만 메이크업이라니.”

“그 말 유리 언니한테 하면 맞을지도 몰라. 유리 언니는 진짜 심각하더라고.”

그렇게 유리를 두고 창현은 윤아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이 부러워서일까.

순규가 창현을 지나치는 척하면서 그를 툭 치고 간다.

누군가가 자신을 건드리는 느낌에 창현은 고개를 돌렸고, 거기에는 순규가 있자 피식 웃음을 짓는 창현이었다.

그러다가 아! 하는 표정을 지은 창현이 순규를 보며 말한다.

“맞다, 순규 누나.”

“순규 말고 써니라 불러주지 않을래?”

온화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하지만 말속에 가시가 숨어 있었다.

그에 창현이 움찔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연다.

“알았어요. 써니 누나,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요.”

“뭔데? 물어보면 특별히 내가 대답해주도록 하지.”

순규에서 써니로 고쳐 부르자 순규가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창현을 본다.

그러자 창현이 묘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더니 입을 연다.

“그거 있잖아요. 핸드폰 저장 이름. 바꾸셨죠?”

“…응.”

약간의 시간 차이를 두고 대답하는 순규였다.

그 모습에 창현의 표정이 기괴하게 변했다. 힘겹게 대답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숨길 수 없는 어색함을 느낀 것이다.

창현은 당연히 그 점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잠깐의 그 침묵은 뭐죠? 누나 안 바꾼 거죠?”

“내가 왜 안 바꿔? 바꿨다니까?”

강렬하게 치고 들어오는 창현의 질문에 마찬가지로 당당한 모습으로 대응하는 순규였다.

하지만 창현은 그런 순규의 모습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왜, 그런 속담이 있지 않은가.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지금 소리치는 순규의 모습은 필요 이상으로 큰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창현의 의심을 한 층 더 깊어지게 만들었다.

눈을 가늘게 뜬 창현이 순규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핸드폰 좀 줘보실래요? 제가 확인해보게요.”

수영의 ‘꽃등심 셔틀’까지는 어찌어찌 버텼지만 순규의 凸을 보는 순간 견뎌낼 수 없는 심각한 데미지를 입었기에 바꾸기를 요구한 상태였다.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알아서 바꿨으리라 믿고 있었는데 순규의 태도는 창현의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아니나 다를까, 창현이 손을 내밀자 순규는 격렬하게 반발한다.

“야, 야 내가 바꿨다니까 왜 못 믿는 건데. 정말 바꿨다니까? 정말로! 진실로! 바꿨다고.”

순규의 모습에 눈이 가늘어지는 창현이었다. 그냥 쿨하게 주면 되는 것 가지고 버럭 소리 지르는 것으로 보아 얼추 감이 온 것이다.

“바꾸긴 바꾸되 이상하게 바꾼 것 같은데요.”

정곡이었을까.

움찔! 하며 몸을 떠는 순규였다.

확실하게 정황을 포착했기에 창현은 순규 앞으로 다가가 다시 한 번 손을 내민다.

그에 으으! 하고 신음을 흘리던 순규는 이내 포기한 얼굴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든다.

그러던 차, 갑자기 순규의 몸이 번개같이 돌아감과 동시에 문 쪽으로 달리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을 실현하려는 듯 그야 말로 전광석화 같이 문으로 튀어나가는 순규의 신형.

창현마저 갑작스러운 순규의 모습에 놀라 그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순규에게 서글픈 사실이 있다면, 바로 창현의 반사 신경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순한 신체 반사 신경으로 펌프의 나이트매어를 클리어 한 창현이 아닌가?

순규의 신형이 앞으로 튀어나가는 순간 창현의 손이 그녀의 목덜미를 붙들고 있었다.

그야 말로 필사의 의지로 탈주를 감행하던 순규의 시도는 제대로 성사되기도 전에 차단된 것이다.

“허억!”

자신의 목덜미가 잡히는 느낌과 함께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자 순규가 숨을 크게 들이쉼과 동시에 뒤로 끌려왔다.

그리고 뻣뻣하게 고개를 돌린 그녀는 자신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창현의 얼굴과 마주해야만 했다.

“하하하! 그러니까 그게…….”

웃음과 함께 사태를 얼버무려보려고 하지만 창현은 시종일관 무표정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하아! 하는 긴 한숨과 함께 순규가 창현의 손에 핸드폰을 얹어주었다.

핸드폰을 받은 창현은 그대로 핸드폰을 연다. 그리고 자신의 번호를 입력하기 시작한다.

번호가 하나씩 입력될수록 고개를 푹 숙인 순규의 눈이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

다섯 개의 번호를 입력하고 자신의 이름이 뜨는 순간, 창현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뭐, 뭐야. 도대체 뭐로 바뀌었기에 그러는 거야?”

창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의 주변으로 태연과 미영, 윤아가 모여든다.

그리고 그녀들의 시선이 순규의 핸드폰 액정으로 향한다.

그녀들도 핸드폰 액정을 확인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확실히 순규의 핸드폰에 저장된 창현의 이름이 바뀌긴 바뀌었다.

하지만…….

순규의 핸드폰에 저장된 이름이 바뀌었을 뿐, 뜻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凸에서 ㅗ로 바뀐 것이다.

창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순규를 바라보자 그녀는 이마에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메이크업이 지워지는 것도 느끼지 못한 채 그녀가 마지막 발악하듯 소리친다.

“그, 그래도 바뀌었잖아!”

그렇게 외쳐보았자 작아지는 건 그녀뿐이었다.

어깨가 점점 움츠러들던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말한다.

“아, 알았어. 미안해. 그러니 핸드폰 돌려줘.”

“…이번에는 꼭 바꿔요.”

당부의 말과 함께 핸드폰을 건네주는 순규였다.

순규를 제압하는 신위를 발휘한 창현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입을 연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누나들 오늘 열심히 하시고요.”

“벌써 가려고? 다른 멤버들이랑 인사 안했잖아.”

윤아가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창현은 조금 어색한 표정을 지은 채 말한다.

“아, 오히려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유리 누나가 지금 상태로 절 보면 왠지 경악할 것 같은 느낌이 나서요.”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있잖아? 그러니까 조금만 더 있다가. 아쉽게 왜 그래.”

윤아는 창현의 팔을 잡은 채 애교를 부리며 말한다.

“아, 알았어요. 그럼 조금만 더 있다가 누나들 오면 인사하고 갈게요.”

애교까지 떨며 말하니 차마 매몰차게 말할 수 없는 창현이었다.

그렇게 창현이 대기실에 남게 되자 태연이 궁금한 게 있는 듯 그에게 물어왔다.

“그러고 보니 오늘 라이브로 <August>를 부른다면서? 정말이야?”

태연도 아침에 인터넷 기사를 보고 온 듯했다. 아까 효리도 그렇고 그것이 꽤나 궁금하긴 한가 보다.

그 질문에 창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타이틀곡 부르고, 그것도 부를 것 같아요. 이거, 왠지 타이틀곡보다 그게 더 뜨는 느낌이라서 조금 싱숭생숭하네요. 사실 <August>는 제 야욕이라 할 수 있는 곡이었는데 말이죠.”

“그럴 수밖에 없지. 그게 정말 소화가 가능해? 내가 불러보려고 해도 엄두가 안 나던데. 더군다나 난 여자 키잖아. 그런데도 힘들어서 안 되던데.”

창현이 부르겠다고 하니 호들갑스러운 모습으로 말하는 태연이었다. 아무래도 노래에 관심이 많다 보니 창현이 부르는 곡이 얼마나 어려운 곡인지 알고 있는 듯했다.

태연은 창현이 그 곡을 부르겠다고 하니 놀라운 한편 그와의 실력 차이가 피부로 느껴지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정말 양파와도 같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새로운 면이 드러나는 것 같다. 앞으로 전진 하면 전진할수록 가야 할 길이 더욱 멀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다랄까. 그 점이 조금 심란했다.

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것이 앨범으로 넘어갔다.

앨범 이야기가 나오자 바로 싸인 앨범을 달라는 주문의 쇄도.

창현은 알겠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왜 누나들도 앨범 나오면 안 주냐는 창현의 응수에 할 말을 잃어야만 했다.

사실 그것은 창현이 몰라서 하는 소리인데, 그녀들도 어찌 앨범을 창현에게 주고 싶지 아니 하겠는가. 다만 창현에게 주기에 아직 자신들의 수준이 미흡하다는 걸 느끼기에 그러는 것이다. 즉, 부끄러워서 그러는 것이다.

어쨌든 앨범을 교환하기로 합의를 끝낼 무렵, 리허설 무대를 끝냈는지 대기실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열심히 춤을 췄다는 것을 증명하기로 하듯, 추운 겨울에 얇은 무대 의상만 입고 있었음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창현은 안으로 들어서는 그녀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그녀들은 창현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면서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하였다.

제일 마지막에 들어온 것은 유리였다.

그녀는 대기실 안에 있는 창현을 보고는 반가운 표정으로 손을 흔든다.

“응? 어라, 창현이 네가 여기 웬일이야?”

그러면서 다가오는데, 메이크업을 하다 만 그녀의 얼굴을 본 창현은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결국 창현은 유리를 보며 웃음을 터뜨린다.

“푸하하! 아이고, 저도 반가워요, 유리 누나. 특히 메이크업 상태가 아주 예술인데요?”

“응? 아…….”

창현의 말에 무슨 말이지? 하던 유리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무대 위에서 격렬한 안무를 하고 온 탓에 까먹고 있던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메이크업을 하다가 끝마치지 못하고 무대 위에 올라가지 않았던가?

석상처럼 굳어버린 유리의 고개가 삐끄덕거리며 거울로 향한다.

그러자 눈에 들어오는 자신의 얼굴.

얼굴 전체 화장은 어떻게든 됐다 쳐도 눈 화장이 한쪽만 되어 있는 것은 언밸런스함의 극치였다.

서, 설마 자신이 이런 모습을 창현에게 보였단 말인가?

하얗게 질린 유리의 얼굴이 다시 창현에게 향한다.

창현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오 마이 갓! 주여!’

유리는 생전 찾지 않던 주님을 찾았다. 그녀는 지금 상황이 꿈이길 바랐다. 하지만 꿈일 리가 없다. 지금 이곳에 서 있는 자신은 엄연한 현실을 겪고 있다.

너무나 피하고 싶은 현실에 눈을 질끈 감는 유리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멤버들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연예인에게 메이크업이란 무척 서글픈 것이다.

때로는 멀쩡한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기도 하니 말이다.

/

“이것 참.”

창현은 소녀시대 대기실을 나서면서 난감한 듯 볼을 긁적였다.

옆에 있던 세희가 그런 창현을 보며 말한다.

“소녀시대는 매일 시끌시끌한 것 같네. 사람이 많아서 그런 건가?”

방금 전 일어났던 일을 떠올리며 세희가 말한다.

유리의 하프 메이크업(?) 사태로 그녀는 정신을 붙잡고 있던 끈을 놓음으로써 기절을 시도하였다. 자신의 이런 모습을 노출하게 되었으니 정신을 잃어야 편하겠다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그에 멤버들은 놀라서 유리에게 달려들며 그녀를 제지하였고, 결국 창현은 못본 걸로 치겠다고 하며 허겁지겁 대기실을 나서야만 했다.

여자 연예인에게 있어서 우스꽝스러운 얼굴은 그만큼 치욕적인 듯했다.

“그래도 시끌시끌한 게 좋죠. 너무 조용한 것보다는요.”

창현의 말에 세희가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원래 사람은 자신이 갖지 못한 걸 동경하는 법이야. 저 아이들은 네가 가진 조용함을 부러워할 수 있는 거고.”

“그거야 그렇죠."

세희의 말은 창현도 동감하는 바였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동경하는 법이니 말이다. 오죽하면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속담이 있을까. 서로 의지할 수 있고 즐겁게 웃고 떠들 수 있는 동료의 존재. 분명 단점도 있겠지만 창현에게 있어서는 장점이 더 크게 보였다.

그 후로도 여러 가수들에게 인사를 한 창현은 자신의 대기실로 향했다.

긴 리허설을 끝으로 저녁 시간이 지난 뒤에 본격적인 가요대전이 시작되었다.

창현의 순서는 그의 인지도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제일 마지막 순서로 배정되어 있었다.

대기실에서 가수들이 준비한 퍼포먼스를 펼치는 걸 보면서 창현은 살짝 눈을 감았다.

점심도 무척 조금 먹었고, 저녁은 걸러서일까. 움직이기만 해도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무대를 위해서는 에너지를 비축해야 했기에 의자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있는다.

“…….”

그런 창현의 모습을 세희는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창현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세희는 그의 그런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기 위해 준비하는 창현의 모습은 어린 나이 소년이라 볼 수 없는 철저함을 담아낸다.

배에 든 것이 많으면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고 말하며 라이브를 할 날이 있으면 음식을 거의 섭취하지 않으며 신경을 날카롭게 벼려놓는다. 본인 스스로가 예민한 상태로 몰아넣는 것이다. 그래야 감정 이입이 더욱 잘 된다는 이유로 말이다.

하지만 매니저인 세희는 그런 창현의 모습을 보면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극도로 벼려진 검은 무엇이든 벨 수 있는 예기를 지니지만 동시에 쉽게 부러질 수 있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세희는 창현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벼려놓다가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본인은 스스로가 괜찮다고 하지만 어떤 사람이 스스로가 안 괜찮다고 하겠는가? 자신의 몸 상태는 알아서 잘 체크하고 있다고 하기에 사장님인 석규도 창현이 하는대로 내버려두라는 말을 하였지만 세희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미 창현 그 자체가 걸어 다니는 거대한 콘텐츠인 만큼 그가 쓰러진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여파를 일으킬 수 있다.

무엇보다 세희가 처음 입사하고 처음으로 맡은 연예인이 아닌가?

더 잘하고 싶고, 더 잘 챙겨주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창현은 매정하게도 그런 세희의 걱정에도 매번 괜찮다로 일축하고 있지만 말이다.

모니터를 바라보며 가수들이 열심히 준비한 무대를 관람한다.

세희는 그런 창현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말을 건넨다.

“창현아, 다음 다음이 네 차례야.”

멍한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던 창현의 눈에 빛이 서린다.

“그래요? 아, 그러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었기에 미처 자신의 차례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창현이 힐끗 시계를 본다. 벌써 11시가 넘었다.

“늦게 자면 키가 안 크는데, 이거 삼 일 동안 늦게 자게 되어서 좀 고생하겠네요.”

그러면서 자리에서 일어서는 창현이었다. 방금 전까지 느껴졌던 무기력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세희는 그런 창현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

자신 같으면 힘이 하나도 없을 텐데 이렇게 힘이 넘치는 그의 모습을 볼 때면 신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대에 서기 직전 모습을 볼 때면 프로다운 모습이 느껴진다고 할까.

역시 창현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세희였다.

창현은 몇 시간 동안 에너지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인 뒤 신경을 날카롭게 벼려놓는 습관이 있다. 이렇게 하면 극도로 예민해진 신경 덕택에 더욱 더 만족스러운 라이브가 이루어지고, 그나마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았기에 움직이는데 어려움이 없다. 대신 라이브가 끝난 뒤에는 음식을 마구 먹어줘야 하는 부작용이 있지만 말이다.

자리에 일어선 창현이 그대로 대기실을 나서자 세희가 그 뒤를 따라 나선다.

여기까지 온 이상 자신이 할 것은 없었다.

그녀는 앞으로 나아가는 창현을 보며 말한다.

“최선을 다하도록 해.”

그 말에 창현은 대답 대신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 듬으로써 대답을 대신하였다.

마침내 창현의 차례가 다가오고 있었다.

2007 S본부 가요대전 MC를 맡은 것은 이휘재와 이효리였다. 이휘재는 간편한 복장을 하고 있는 데 반해 효리는 섹시 스타로서 매력을 한껏 뽐낼 수 있는 파격적인 드레스를 입고 있는 상태였다.

마지막을 향하고 있는 가요대전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린 빅뱅의 무대가 끝나자 효리가 감탄한 어조로 입을 연다.

“와! 역시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가 않는데요. 2007년을 뜨겁게 강타한 빅뱅답다고 할 수 있네요.”

옆에 있던 이휘재가 그런 효리를 보며 짓궂은 멘트를 날린다.

“효리 씨 너무 흐뭇한 미소 짓고 있는 것 아닌가요? 후배들에게 눈독 들이면 안 됩니다.”

그 말에 효리가 이휘재를 슬쩍 노려보더니 반격을 가한다.

“그건 제가 할 말 아닌가요? 휘재 씨야 말로 여자 아이돌이 나올 때 눈빛이 변하던데요. 설마 조카뻘 아이들에게 흑심을 품는 건 아니겠죠?”

효리의 말에 이휘재가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제, 제가 언제 그랬다고 그러시는 겁니까. 자칫하다가 생사람 잡을 수 있어요.”

“흐음! 그래요? 하지만 정말 눈빛이…….”

“험험! 효리 씨, 제가 다 잘못했으니 그 이야기는 그만 하도록 합시다. 저 이러다가 생매장 당합니다.”

무조건 항복을 외치는 이휘재의 모습에 효리가 웃음을 짓는다. 그러게 왜 자신에게 공격성 멘트를 날린단 말인가. 결국에는 본전도 못 찾을 거면서.

승리자의 미소를 지은 효리는 대본을 슬쩍 확인한다.

벌써 마지막 출연자 차례가 오게 되었다.

“자, 벌써 마지막 출연자 순서가 되었네요. 정말 모시기 어려운 분을 모셨죠?”

효리의 말에 이휘재가 대본을 보더니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죠. 설마 이분이 오실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고 싶은데 워낙 모습을 잘 보이지 않는 분이라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레전드로 통하죠.”

이휘재의 말에 효리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그런가요? 전 아까 만나서 인사도 하고 그랬는데.”

놀란 표정을 짓는 이휘재를 보며 효리는 승자의 미소를 짓는다. 다른 사람이 그토록 원하던 것을 자신이 지니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승리자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럼요. 아까 오니까 리허설 무대를 보고 계시기에 직접 말도 걸고 이야기도 하면서 친분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참 부럽군요, 저도 끝나면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만 과연 될지 모르겠네요. 여러분! 제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그리고 여러분들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분입니다. 목소리 하나만으로 세계를 울린 대한민국이 낳은 월드스타, 현입니다.”

와아아아아아!

화려한 이휘재의 멘트에 모여 있던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푸쉬!

그와 함께 자욱하게 뿜어지는 연기.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연기가 무대를 뒤덮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그 속에서 걸어 나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걸어 나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창현이었다.

그가 나온다는 것을 듣고는 S본부에서 특별히 준비한 무대 장치였다.

사전에 전해들은 탓에 창현은 당황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연기 때문인지 무대는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새하얗게 되었고, 위에서는 조명이 비춰졌기에 보는 사람들은 검은색 그림자가 앞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서서히 연기를 헤치고 나타나는 한 사람.

깔끔한 턱시도를 입고 군더더기 없는 절제된 몸놀림으로 모습을 드러낸 인물은 창현이었다.

와아아아아!

입가에 미소를 띤 그가 무대 앞에 등장하자 지켜보던 관객들이 함성을 지른다.

그가 등장한다는 멘트와 함께 <One Year>의 MR이 은은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잔잔하게 무대를 지배하고 있던 MR은 창현이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무대를 뒤덮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창현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간다. 마치 북풍한설이 휘몰아치는 듯한 얼굴이다.

<One Year>은 1년의 흐름을 표현한 곡이다. 당연히 처음 시작하는 것은 1월이기에 겨울 중에서도 가장 추운 시절을 표현해야 한다. 그것은 노래 뿐만 아니라 표정 또한 마찬가지다.

노래를 부름에 있어 감정을 이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외에 표정 연기도 무척 중요하다. 듣기도 전에 가수를 먼저 보는 만큼 라이브를 함에 있어 표정 연기도 무척 중요했던 것이다.

1월의 가장 추운 시기를 표현하자 보는 사람들도 순간 가슴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창현의 표정은 그들의 감정을 조정하는 무언가가 있던 것이다.

그와 함께 본격적인 라이브가 시작된다.

겨울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차가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그의 음성은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차갑게 식히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표정에서, 목소리에서 사람의 마음을 차갑게 얼어 붙이는 강렬한 마력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겨울이 마음을 차갑게 얼게 만드는 계절이라면 봄은 그 마음을 녹여주고 따뜻함과 훈훈함을 안겨다주는 계절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노래를 부르는 창현의 얼굴에 훈훈한 미소가 감돌기 시작하더니, 차갑던 그의 목소리가 어느덧 따뜻함이 감도는 목소리였다.

모든 세상은 주는 게 있으면 오는 것이 있고, 밀면 당기고,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존재한다.

처음 오프닝으로 차갑게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은 창현의 따뜻한 음색이 더욱 빛을 발하게 해주었다.

그의 따뜻함은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주었고, 관객석을 훈훈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의 음색은 타오르는 불꽃처럼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보는 사람이, 듣는 사람이 뜨겁다고 느껴질 정도로, 겨울의 차가운 날씨를 잊을 정도로 열정적인 창현의 목소리가 무대를 뒤흔든다.

짧은 시간에 느끼는 여러 번의 변화.

그 뜨거움이 극에 달했을 무렵, 창현의 고개가 뒤로 넘어가면서 동시에 사람의 마음을 뻥 뚫어놓는 고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와 함께 짧은 간주가 흘러나온다.

마이크에서 입을 뗀 창현이 살짝 머리를 만지자 지켜보던 관중들이 함성을 터뜨린다.

와아아아아아!

관중들의 함성에 창현이 싱긋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든다. 그리고는 간주가 끝나자 다시 노래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풍요를 상징하고, 고독한 느낌을 주는 가을 파트로 넘어가는 노래는 쌀쌀함을 남기면서 끝을 맺는다. 네버 엔딩의 느낌을 물씬 풍기며 말이다. 마지막 산뜻함을 주면서 끝을 맺지만 다음 곡을 위해 약간 다른 방향으로 끝을 맺은 것이다.

노래가 끝났음에도 관중들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노래가 끝났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곧이어 흘러나오는 MR에 관중들은 환호성을 질러야만 했다.

최근 현으로 하여금 가창력 논란에 휩싸이게 만들었던 곡, <August>가 흘러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폭 넓은 음역과 소화하기 힘든 고음이 난무하는 <August>는 사람들의 최고 관심사 중 하나였다.

과연 이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라고 의문을 심어준 곡이니 말이다.

그만큼 곡의 난이도도 난이도지만 완벽한 음의 컨트롤이 있어야만 소화해낼 수 있는 고난이도의 곡이기도 하였다.

8월을 뜻하는 <August>는 절정에 달한 더위를 표현함과 동시에 그 더위를 타파할 수 있는 시원함이 함께 공존한다. 즉, 모든 것을 꿰뚫는 창과 모든 것을 막아내는 방패처럼 서로 다른 성질을 지닌 두 가지 특징을 모두 소화해내야 하는 곡인 것이다.

폭발적인 고음으로 시작하는 노래는 사람들의 마음을 뻥 뚫어주는 마력을 담아내고 있었다.

방금 전 노래로 차갑게 언 사람들의 마음은 창현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뻥 뚫린 듯한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그와 함께 시작된 창현의 노래.

절정에 달한 뜨거움은 서늘하게 가라앉은 사람들의 마음을 덥혀주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절정에 달한 여름을 재현하기라도 하듯 사람들의 마음을 후끈하게 덥힌다.

창현의 눈에 열기를 띠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온다.

그 모습을 보면서 창현은 형언할 수 없는 만족감에 차오른다.

수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이 자신의 노래에 움직인다.

이 얼마나 가슴이 벅찬 순간이란 말인가.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이 자만에 빠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그대로 그 성취에 만족하고 노래를 불렀다면 지금 같은 노래는 절대 불가능 했을 것이다.

그저 커다란 줄기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만족했을 테지.

하지만 근래 들어 새로 얻게 된 깨달음은 창현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고, 그가 발전할 수 계기를 주었다.

단순히 고음이 더 올라간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노래를 부름에 있어 감정을 한층 세밀하게 실을 수 있게 되었고, 그 감정이 듣는 사람들에게 더욱 친근감 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여태까지 자신은 노래를 부르면서 큰 줄기를 놓고 부르면 그것으로 사람들이 충분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실제로 사실이기도 하여서 자신이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알 수 있었다.

큰 줄기를 제공하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지만 절대적인 공감을 이끌어낼 수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Agust>는 뜨거움과 시원함을 동시에 지닌 곡이다. 단순히 뜨거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뜨거움을 전하는 것이다. 이 노래에 뜨거운 열정을 실으면 듣는 사람은 자신의 열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주변 온도가 뜨겁다는 걸 전달하면 사람들도 그 열기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파앗!

입고 있던 상의를 벗은 창현이 더욱 앞으로 나선다. 노래를 부르는 본인도 덥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의 얼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노래가 힘들기도 하지만 자신의 노래에 스스로가 뜨겁다고 느끼고 있기에 그렇다. 본인 스스로가 그렇게 느끼고 있고, 그 열기는 보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다.

창현은 노래를 부르면서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열기를 느꼈다. 그리고 그것을 참지 못한 채 손에 쥔 상의를 관객들에게 던진다.

갑작스러운 창현의 퍼포먼스에 관중들은 함성을 지르면서 한편으로는 난리가 난다.

와아아아아!

내 거야! 내 거!

자그마치 현이 던진 것이 아닌가! 상의가 날아간 곳은 그야 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 저거 협찬인데.’

던지면서 창현은 그것이 협찬 받은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뭐, 물어달라고 하면 쿨하게 물어주기로 하면서 노래에 집중하게 된다.

오랜만에 무대에 섰기에 느끼는 그런 희열감이 아니었다.

창현은 지금 노래를 부르면서 예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느낌을 받고 있었다.

바로 무대와 자신이 하나가 되었다는 일체감, 그리고 자신과 관중들이 한 기분을 느끼고 있다는 일체감이 전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노래가 이렇게 즐거운 것이라니.

여태까지 창현은 노래라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그 느낌을 전달한다는 것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착각이었다. 가수란 것은 단순히 노래에 실린 느낌을 듣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닌, 부르는 사람 본인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사람들과 소통을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런 느낌을 왜 여태까지 받지 못했던 것일까.

억울하기도 하고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창현은 노래에 점점 몰입해나간다.

전신에 땀이 맺힐 정도로 뜨거운 열정을 발산하며 노래를 부르는 그의 노래에 지켜보는 사람들도 어느새 손에 땀을 쥐며 바라본다. <August>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주변의 추위 따위를 말끔하게 소멸시키고 있었다.

여름은 더운 계절이다.

그 뜨거움이 점점 극에 달하다가 어느 순간 그 열기가 풀썩 꺾인다.

창현의 노래에도 당연히 그러한 구간이 존재한다.

점점 열기를 더해가던 노래는 초월의 영역이라 부르는 십여 초간의 고음으로 더위를 말끔하게 뚫어버린다.

서서히 그 구간이 다가오고 있기에 창현은 마음으로도, 목으로도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막 마음으로도, 몸으로도 준비를 마치고 입을 열 무렵, 갑자기 이상이 발생한다.

……!

돌연 마이크가 꺼진 것이다.

음향 시설에 문제가 생긴 것이란 말인가?

창현의 얼굴에 당황의 감정이 서린다.

이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현의 마이크가 갑자기 꺼진 것은 엄청난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혼란을 느낀 것은 창현만이 아니었다. 음향을 담당하고 있는 스태프들도, 무대를 지켜보고 있던 가수들과 관중들 모두가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의 노래를 조금이라도 들어보았다면 모두 알 것이다.

그의 노래인 <August>가 이제 막 클라이막스 부분으로 접어드는 것을 말이다.

이 부분 때문에 현이 가창력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난이도가 높다. 그런데 난데없이 음향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여기에서 만약 음향 시설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S본부는 물론이고 현에게 큰 타격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이미 다크 스타에다가 <August>를 부르겠다고 한 만큼, 갑작스러운 음향 문제는 고의가 아니냐는 말이 나올 소지가 있었던 것이다.

빠르게 방송 일정을 잡아 노래를 부름으로써 가창력 논란을 잠재우면 되겠지만 그 사이 받을 피해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창현은 갑자기 마이크가 나오지 않자 당황했지만 그 표정이 사라진 건 순식간이었다. 표정 연기 또한 노래의 일종이라 생각하였기에 겉으로 계속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해야 되지.’

고민에 잠긴 창현은 고민에 잠겼다.

짧은 시간이지만 수만 가지 생각에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마이크가 나오지 않는 이상 그냥 부르는 것은 불가능에 그야 말로 자살행위다. 자신 스스로가 부른다 하여도 사람들에게 들릴 리가 없었고, 무엇보다 같은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던 것이다.

직접 부르는 것과 마이크를 대고 부르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으니 말이다.

고민에 잠겨있던 창현의 눈에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관중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당혹한 모습을 보니 창현은 이대로 그만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순간, 갑작스러운 상황이다 보니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당장 마이크가 되지 않아, 이 무대가 끝난 후에 어떤 여파가 미칠지 생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마이크를 핑계로 포기하기에는 자신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태까지 모든 무대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그리고 유럽 투어 콘서트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음향 시설에 문제가 생기거나 돌발상황이 생겼을 때도 멋지게 극복을 해냈다.

이대로 포기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부른다! 나의 노래를.’

결심은 순식간이었다.

창현은 음향 팀이 있는 곳을 향해 눈짓을 하면서 방금 전 노래 부르던 표정을 유지한 채 부르려고 한다.

그때, 왜 창현의 뇌리에 죽은 듯이 잠자고 있던 음향총서의 한 구절이 떠오르는 걸까.

그걸 떠올린 창현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자신은 남이 가지지 못한 다양한 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것을 활용하면 될 것이다.

창현이 다시 노래를 이어나가기 시작하였다.


“뭐야! 무슨 일이야!”

갑자기 현의 마이크가 커지자 음향 감독은 당황한 표정을 지은 채 소리친다.

연말 가요 프로그램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이 바로 음향 문제였다. 워낙 큰 무대고, 복잡한 음향 시설을 갖추다 보니 종종 음향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다. 꼼꼼하게 체크를 하고 있지만 예견치 못한 사건이 매년 일어나기에 음향 팀은 항상 전시체제를 방불케 할 정도로 예민해져 있는 상황이다.

마지막까지 특별한 음향 문제없이 잘 이어졌기에 방심한 것일까.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해 무대에 선 현의 마이크에 무대가 생긴 것이다.

당연히 음향 팀은 발칵 뒤집혔다.

이 무슨 공든 탑이 무너지는 상황이란 말인가.

아무리 문제가 없이 잘 이끌어왔다고 하여도 마지막에 문제가 발생하면 도로 아미타불이다.

그것도 현의 무대가 아닌가?

85만에 달하는 다크 스타의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단하다. 지금 문제가 일어났다는 것은 현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고, 그리 되면 다크 스타가 움직일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의 앨범을 산 사람 만이 가입이 가능한 다크 스타인만큼 그 결집력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크 스타에게 뭇매를 맞게 된다면 온전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음향 시설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감독님.”

하얗게 질린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음향 감독에게 사색이 된 얼굴로 대답하는 스태프였다.

그 말에 음향 감독이 표정을 찡그리며 소리친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문제가 발생했으면 어서 고치도록 해! 그리고…….”

어떻게든 조치를 취하려던 음향 감독은 순간 무대 위에 선 창현과 시선이 마주쳤다.

베테랑이어서 그런 걸까.

음향 감독은 창현이 눈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차렸다.

그 뜻을 알아차린 음향 감독이 스태프에게 외친다.

“우선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까 이유 파악 하도록 하고, 막내 너, 되는 마이크 들고 전해줘. 어서.”

음향 감독에게 호명된 스태프가 사색이 되어 자신을 가리킨다.

“예? 제, 제가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어쩌겠는가. 감독이 까라고 하면 까야지.

막내 스태프는 울상이 된 채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마이크를 들고 무대 위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창현이 사용하기로 한 방법은 음악강론에 서술되어 있는 심향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깊게 울린다는 뜻을 지닌 심향은 마이크 같이 음을 증폭해주는 시설이 없던 시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노래를 들려주기 위한 비기 중 하나였다.

심향이란 것은 소리를 증폭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마치 무협에서 내공을 실어 말하는 것처럼 옆에서 직접 노래를 불러주는 듯한 느낌을 주는 비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이크 같은 것이 있는 지금 시대에서 별로 사용할 필요가 없었고, 무엇보다 내공을 많이 필요로 하기에 사용한 적이 없는 방법이었다.

마이크가 나오지 않는 이상 지금 이 순간은 심향의 방법으로 버텨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자신의 눈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음향 감독이 알아들은 눈치였다.

곧 있으면 마이크가 준비될 것이기에 창현은 나오지 않는 마이크를 대고 노래를 이어나간다.

심향의 기법을 이용하여 말이다.

잘 들리지 않던 창현의 목소리가 서서히 무대에 들려오기 시작하자 지켜보던 사람들은 화들짝 놀란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만큼, 지금 창현이 마이크가 아닌 이른 바 생목으로 부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마이크로 인해 울려 퍼지는 것이 아닌, 다른 느낌으로 울리고 있었다. 방금 전 보다 더욱 또렷하고, 명확하게 들려오는 것이, 오히려 지금이 더 낫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와아아아!

생목으로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노래를 부르자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 엄청난 성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도저히 인간의 수준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소리인데 그 속에 불필요한 떨림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노래를 부르는 창현이 힘겨워하는 모습이 사람들 눈에 들어왔기에 사람들의 감동은 더욱 컸다.

하지만 점점 클라이막스로 치닫고 있는 노래는 곧 있으면 파격적인 고음을 내야만 했다. 그 부분은 도저히 생목으로 소화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제대로 하지 못하면 노래를 망치는 셈이니 말이다.

그것은 부르는 창현 또한 느끼고 있었다.

처음 시전 해본 심향은 그에게 새로운 느낌을 가져다 주었다.

마치 듣는 사람의 옆에서 속삭이는 느낌이랄까.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소모되는 내공은 그야 말로 무지막지하였다. 가뜩이나 일천하기 그지없는 양인데, 내공 소모가 큰 심향을 시전 하려니 채 15초 이상 이어나갈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곧 있으면 고음 부분이다.

창현은 슬그머니 손을 뒤로 하여 뛰어오는 음향 스태프를 재촉한다.

그 손짓을 본 것인지 뒤에서 스태프가 더 빠르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마침내 마이크가 전해졌을 때, 창현은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동시에 심향을 거둬들이며 마이크를 입에 대고 속 시원하게 고음을 내지른다.

매끄럽고 깨끗하게 올라가는 창현의 고음.

끝없이 올라가는 고음이 5초 이상 이어지는 걸 감안하면 그야 말로 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와아아아아!

꺄아아아아!

현! 현! 현!

고음 부분을 무사히 끝맺자, 관중들은 비명과도 같은 함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한계점에 다다른 듯 싶었을 때, 등장한 마이크로 인하여 문제없이 클라이막스 부분을 소화해낸 것이다.

그 누가 이렇게 멋지게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을까.

완벽하다 못해 경외감이 절로 일어나는 창현의 라이브에 사람들은 함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가 않는다.

하아! 하아!

마지막 부분까지 무사히 마무리 한 창현이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성공적인 라이브를 했기 때문일까.

긴장했던 마음이 풀림과 동시에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을 내색할 수 없었다.

풀리려고 하는 다리에 애써 힘을 주며 창현은 고개를 숙인 뒤 무대 뒤로 물러난다.

무대 뒤로 향하자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하는 음향 스태프들에게 괜찮다는 말을 하면서 창현은 어찌어찌 대기실로 오는데 성공한다.

그러자 세희가 환한 얼굴로 창현을 반긴다.

“창현아! 정말 대단한 무대였… 차, 창현아!”

정말 소름이 끼치도록 대단한 무대를 선보인 창현을 칭찬하기 위해 다가가던 세희는 땀범벅에 비틀거리는 창현을 보면서 비명을 지르려고 한다.

그런 세희의 반응에 창현은 검지 손가락을 들어올려 쉿! 하고 말한 다음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다.

“힘들어서 그런 거니까 괜찮아요. 너무 소리를 질러서 그런지 힘이 풀린 것 같거든요. 조금 죄송하지만 저 좀 부축해줄 수 있겠어요? 몸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네요.”

“아, 알았어. 아니다. 그러지 말고 그냥 돌아가자. 어차피 모두가 나오는 자리에 나갈 필요는 없으니까.”

그러면서 세희는 창현의 한 팔을 목에 두르고 그를 부축한다. 165cm라는 작지 않은 키였지만 창현의 키는 175cm에 거의 5cm에 달하는 마법의 도구를 착용한 상태였기에 세희의 몸이 쏙 들어갈 수 있었다.

가급적이면 세희에게 신세를 끼치지 않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창현이었지만 긴장과 함께 몸도 풀려버린 탓에 세희의 부축으로 어찌어찌 벤에 탑승할 수 있었다. 창현을 부축하면서 세희가 로드 매니저에게 연락을 하였기에 낑낑 대다가 쓰러질 뻔한 위기를 넘긴 것은 여담이었다.

힘겹게 벤에 탑승한 창현은 그대로 의자에 눕고는 잠이 들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걱정 되어 세희는 병원에 가봐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지만 창현은 자신이 생목으로 부르느라 체력을 과도하게 소진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대로 죽은 듯이 잠들었다. 그리고 로드 매니저에게 부축을 받아 숙소에 도착하여 그대로 잠에 들었다.

앞으로 일어날 파란을 예상하지 못한 채 창현은 과도하게 소모한 체력을 회복하겠다는 듯 죽은 듯이 잠에 빠져들었다.




제38장 창현의 생일, 별들의 전쟁




현의 라이브는 사회에 커다란 물결을 일으켰다.

일명 ‘현의 생목 라이브’ 라 불리며 하나의 전설을 만들어낸 것이다.

12월 29일 S본부에서 벌어진 가요대전은 그야 말로 파란의 무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창력 논란을 일으켰던 <August>를 가요대전에서 부르겠다고 선언하자 당일 날 이슈가 되면서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창현이었다.

그런 논란 속에서 창현은 노래를 부르게 되었고, 정규 3집 앨범의 타이틀곡인 <One Year>을 성공적으로 부르고 마침내 논란이 되었던 <August>를 부르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의 기대 속에서 노래를 부르게 된 현의 가창력은 그야 말로 절정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래 잘하기도 했지만 무언가 달라진 점이 느껴졌던 것이다.

목소리에서, 손짓 하나에서 뿜어지는 듯한 마력이 마음에 스며든다고 해야 할까. 현의 열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노래는 그야 말로 극에 다다른 감정의 전달이 어떤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보는 사람 모두가 그의 노래에 추위를 잊고 가슴 속에서 치솟아 오르는 뜨거움을 느껴야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노래가 점점 클라이막스로 다다를 때 사고가 일어났다.

돌연 현의 마이크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기에 한순간 현의 얼굴에 당황이라는 감정이 스쳐지나갔고, 지켜보던 관중들도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절정에 도달하기 직전에 음향 사고가 일어났으니 그럴 만도 하였다.

하지만 돌발 상황은 거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마이크가 나오지 않자 당황하던 현은 곧장 표정을 수습하더니, 이내 소위 말하는 생목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현의 성량은 놀라울 정도로 대단하여, 마이크로 부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아니, 오히려 마이크로 부르는 것보다 더 잘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뛰어난 가창력을 선보였다. 오히려 마이크가 그의 가창력을 살려내지 못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노래를 부르는 현은 너무나 힘겨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어찌 안 그러하겠는가.

마이크도 없이 마이크와 맞먹을 정도의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현이 인간이 아니라고 질린 안색을 지을 정도였다.

음향 장비에 단단히 문제가 있었는지 마이크가 고쳐지는 게 아닌, 스태프 한 명이 무대 위로 올라와 현에게 마이크를 건넸고, 마이크를 받은 현은 무사히 <August>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초 고음 부분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면모를 보였다.

뜨겁게 타오르던 관중들의, 시청자들의 마음이 한순간 뻥 뚫리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현이 선보인 무대는 그야 말로 최고의 라이브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부터 현에 대한 찬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연말 가요대전이라 함은 보통 가십거리가 되기 쉬운 아이돌 그룹에 대한 기사가 주로 나오기 마련인데 현의 라이브가 워낙 대단했던 탓에 그 내용에 주를 잇는 내용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온 것이다.

음향 기기의 잘못된 관리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당연히 나왔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현의 라이브 무대가 완전히 망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무대가 워낙 대단했던 탓일까?

음향 기기에 관한 비판의 목소리도 현의 완벽한 라이브 찬양에 묻히는 감이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그에 대한 목소리가 불거진 것은 어디선가 흘러나온 현의 탈진설 때문이다.

<August>가 끝난 직후 현은 무척 힘든 모습을 보였다. 전신에는 땀이 가득하였고, 얼굴에는 숨기려고 하여도 지친 표정이 역력하였다.

원래 노래를 부르면서 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표정은 무척 밝았다. 여태까지 현의 무대를 보면 그는 노래 뿐만 아니라 표정 연기까지 완벽하게 소화하기로 유명했다. 단순한 손짓 하나가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노래가 끝난 직후 보는 사람들이 힘들다고 느낄 정도였다면 내색하지 않던 현이 느꼈던 피로는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보는 사람들이 믿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성량을 선보였는데 말이다. 그걸 아무렇지 않게 해내면 오히려 그게 괴물이다. 사람들은 현이 생목으로 라이브를 해냈기에 엄청난 체력을 소모하였다고 하였고, 현이 라이브를 끝낸 직후 살짝이지만 한순간 휘청이는 증세를 본 사람들의 증언이 이어짐에 따라 그 내용은 신빙성을 더해나갔다.

거기에 증거가 하나 더해졌다.

누가 촬영했는지 모르지만 무대 뒤로 걸어 나가던 현이 한순간 휘청거리는 모습이 동영상으로 올라온 것이다. 스태프였는지 아니면 지켜보던 관중이 찍은 것인지 출처는 불가능하였다.

그 영상으로 인해 현의 탈진설은 탄력을 받았다.

단순히 힘들어서 그런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미심쩍은 면이 너무나 많았다.

가요대전이 끝난 직후 참여했던 가수들이 모두 나와서 함께 인사를 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현은 불참하였고, 그를 태운 벤이 허겁지겁 떠났다는 제보도 이어짐에 따라 의혹은 증폭되었다.

마지막으로 가해진 결정적인 제보가 이어지자 인터넷은 발칵 뒤집혔다.

현의 숙소로 알려진 곳에서 한 사생팬이 말하길, 현이 로드 매니저의 부축을 받아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그로 인해 현의 탈진설과 함께 음향 기기 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S본부는 맹렬한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해마다 종종 일어나는 실수이긴 하지만 현이 연관되자 사태는 어마어마하게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현의 팬 사이트인 다크 스타마저 움직일 조짐을 보이자, 사태 진화에 나선 것은 S본부가 아니라, AA엔터테인먼트였다.

탈진설이 급격하게 치고 올라오자 조기 진화를 위해 현의 상태에 대해 발표를 한 것이다.

AA엔터테인먼트에서는 현이 어제 다소 무리를 하였고, 편안하게 숙면을 취하는 그를 깨우지 못하고 로드 매니저가 부축을 하여 숙소로 바래다주었다고 발표하였다. 현의 몸 상태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며, K본부와 M본부의 가요대전 무대에도 설 예정이라고 말이다.

그런 발표로 인하여 S본부는 성난 네티즌들의 공격을 덜 받게 되었지만 두고두고 씹힐 거리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오늘 가요대전을 주최하게 된 K본부는 바짝 긴장한 채 음향 기기를 철저하게 점검하는 면모를 보였다. 모난 돌에 정 맞듯이 네티즌들의 집중 포화를 맞는 것은 사양이었던 것이다.

S본부 가요대전은 현의 등장으로 인하여 그 시청률이 절정에 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해 평균 20%를 넘나들던 시청률은 현의 존재 하나만으로 30%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고, 현의 무대가 이어질 때 분당 시청률 최고치 56.2%를 달성하는 대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현의 엄청난 활약으로 인하여 앨범 판매는 탄력에 탄력을 거듭하여, 순식간에 재고 물량이 모두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음원 차트 2위를 차지하고 있던 <August>는 1위를 차지하고 있던 <One Year>를 누르는 면모를 보였다.

그야 말로 가요대전을 최고의 쇼 케이스 무대로 펼쳐낸 것이다.

이렇듯 현의 효과를 톡톡하게 보자 남은 가요대전을 치러내야 하는 K본부와 M본부의 고민은 깊어졌다. 현의 인기 하나만으로 시청률의 대폭 상승이 가능하다는 것을 본 지금, 현의 특별 무대로 편성 시간을 늘려야 할지 고민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당장 AA엔터테인먼트에서 이렇다 할 답변이 없는 상태였기에 고민은 고민에 그치고야 말았다.

현은 무려 14시간이나 잠들고 나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엄청난 양의 소리를 내고 내공을 소모하였기에 모처럼 몸에 과부하가 걸렸던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창현은 시간이 오후 2시임을 확인하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뭐야, 왜 이렇게 오래 잔 거지?”

그렇게 중얼거리던 창현은 핸드폰이 웅웅거리는 걸 보고는 핸드폰을 열어 확인해본다.

그러자 수십 통이 넘게 와 있는 부재중 전화와 백여 개가 넘게 와 있는 문자를 보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이건 또 뭐야.”

확인해보니 문자를 보낸 사람도 다양했다. 회사 번호부터 시작하여 석규의 번호와 지영의 번호, 그리고 아는 연예인들은 죄다 문자를 보낸 듯했다.

대부분 몸이 괜찮냐는 식의 문자였다.

그에 창현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자신은 괜찮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석규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난리가 났다는 말에 다크 스타에 괜찮다는 글을 올리고, 오늘도 멋진 무대를 보이겠다는 말을 남기고 무대에 설 수 있었다.

K본부 무대는 주최 측의 요청으로 인해 <One Year>와 <Minus>, 그리고 <August>를 불렀고, M본부는 <Minus>가 아닌 <Shield&Spear>를 부르기로 하였다.

전날 깨달은 게 있었기에 K본부의 무대는 절정에 달한 가창력을 뽐내며 끝을 낼 수 있었고, M본부의 무대는 하는 도중 새해를 맞이하였기에 창현은 자신이 한 살 더 먹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16살이 아닌, 17살의 현으로서 한 층 성숙된 모습을 보이며 무대를 끝마칠 수 있었다.

와아아아아아!

마지막 무대를 끝마치며 관중들의 숨 막힐 정도로 어마어마한 함성소리를 들으며 창현이 빙긋 웃으며 말한다.

“모두 Happy New Year, 행복한 한해를 시작하시길.”

립 서비스도 이 정도면 절정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2007년도를 끝낸 창현은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행사를 하게 된다.

바로 1월 2일, 창현의 생일을 맞아 깜짝 생일 미팅을 개최하기로 한 것이다.


M본부 가요대전을 성공리에 끝마친 창현은 세희에게 뜻밖의 말을 듣게 된다.

“생일 파티를 기념해서 팬 미팅을 한다고요?”

황당한 표정을 지은 창현이 말한다.

뜬금없이 생일 파티라니?

어이가 없는 나머지 창현의 표정이 기괴하게 변한다.

그런 창현의 모습에 세희가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몰랐어? 사장님이 말하신 줄 알았는데.”

“저 그런 거 전혀 못 들었는걸요? 다만 1월 2일 날 스케줄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좋아했을 뿐인데…….”

현의 생일은 1월 2일이다. 때문에 그날 스케줄이 없다는 이야기에 모처럼 편하게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세희가 그날 생일 파티를 하기 위해 팬 미팅이 있다고 하는 게 아닌가?

갑작스러운 말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던 창현은 앨범을 제작할 때 석규가 스치듯이 했던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처음 앨범을 30만 제작하면서 석규는 그 안에 500개 정도의 이벤트 앨범을 장만하여 파티를 하는 것이 어떠냐고 하였다.

창현은 제법 기발한 생각인 것 같아 흔쾌히 그 말을 승낙하였다.

설마 그것이 생일 파티였단 말인가?

그제야 생각이 난 듯 창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 그거구나.”

“기억 난 거야?”

“네, 생각나네요. 워낙 스쳐지나가듯이 말해서 이제야 생각났어요. 이것 참.”

머리를 긁적이는 창현이었다.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지면 말을 해줄 줄 알았는데 이렇게 깜짝 파티 형식으로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창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세희는 안심하는 표정을 짓는다.

“생일 파티 형식 팬 미팅은 한 다섯 시간 정도 할 거야. 정오에 모여서 같이 점심식사를 하고, 질문도 받고 이야기도 하는 형식으로 진행하려고 하거든.”

“누나는 알고 있으셨던 거예요?”

제법 자세히 알고 있자, 창현이 세희를 보며 묻는다.

그에 세희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하지. 네 스케줄을 관리하는 매니저인데 그것도 모르겠어? 다만 네가 알고 있는 줄 알고 여태까지 말을 안 했던 거였어.”

“그렇군요. 에구, 전 이제 알았지만 뭐, 어떻게 되겠죠. 그날 몸만 가면 되는 거고요?”

“메이크업은 하고 가야지.

세희는 창현이 메이크업을 별로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에 그걸 언급하였다.

그에 창현은 윽! 하는 소리를 흘리며 말한다.

“누나도 참 꼼꼼하다니까요. 제 의도를 간파하다니.”

“네가 싫어하는 건 너무 뻔하니까 의도가 보인다고.”

창현의 반응이 재미있어서 세희가 웃음을 지었다.

그때, 창현을 향해 다가오는 수많은 그림자가 있었다.

“창현아!”

“응? 아, 누나들.”

창현에게 다가온 것은 소녀시대였다. 무대가 모두 끝났는데 돌아가지 않은 듯했다.

순간 창현은 유리와 눈이 마주쳤는데, 유리는 그런 창현을 보면서 주현의 뒤로 숨었다. 반 메이크업 상태로 창현과 만났던 충격을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에 창현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연다.

“시간이 늦었는데 안 돌아갔네요? 괜찮은 거예요?”

“응. 이제 곧 가려고. 근데 할 말이 있어서 온 거야.”

“할 말이라뇨?”

태연의 말에 창현이 고개를 갸웃한다. 할 말이라니? 무슨 말을 할지 몰라 고개를 갸웃하는 창현에게 태연이 말한다.

“우리가 1월 5일에 일일카페를 하게 되었거든. 그때 와 줄 수 있나 싶어서.”

“일일카페요? 뭐, 이벤트 방송 같은 건가요?”

일일카페라는 말에 창현은 자신이 Mnet에서 했던 방송을 떠올리고는 묻는다.

그러자 태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맞아. 마린 보이 박태환 선수랑 같이 일일카페를 오픈하기로 했거든. 수익금은 모두 태안에 기부금으로 보내려고 생각 중이고. 좋은 일인 만큼 꼭 와주면 해서 말하는 거야.”

“오! 좋은 일이라니 꼭 가야겠네요. 아, 그런데 잠시만요. 스케줄이 있는지 몰라서요. 세희 누나, 1월 5일날 스케줄 어때요?”

“스케줄? 잠시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세희가 다이어리를 펼친다. 창현의 스케줄을 기록하고 다니는 다이어리였다.

창현의 스케줄을 확인하는 세희의 모습에 소녀들은 조마조마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일일카페를 기획하고 있는 입장에서 현이 꼭 와줬으면 하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조마조마한 소녀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세희의 입에서 무심하기 그지없는 대답이 흘러나온다.

“1월 5일에 스케줄 있어…….”

“아…….”

탄식이 절로 흘러나오는 소녀들이다.

스케줄이 있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무리해서라도 와달라고 하는 것은 나쁜 짓이다.

소녀들의 얼굴에 짙은 아쉬움이 서렸다.

창현은 세희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갸웃한다.

“스케줄이 있다고요? 이상하네.”

자신이 알기로는 그날 스케줄이 없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있었단 말인가?

그런 창현의 물음에 세희가 대답한다.

“있어. 그런데 오전 스케줄이라 괜찮을 듯 싶기도 하고… 일일카페라는 게 오후에 하면 참가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네! 오후에 합니다. 오후에 해요!”

오후에는 시간이 된다는 말이 흘러나오자 단번에 표정이 밝아지며 외치는 태연이었다.

창현이 참가할 수 있을 듯하자 다른 소녀들의 얼굴도 밝아진다.

순식간에 급변하는 소녀들의 표정을 보면서 창현은 피식 웃음을 지으면서 콧대를 높게 세운다.

“그럼 가도록 하죠. 좋은 일을 한다고 하는데 그 자리에 제가 빠지면 안 되죠. 에헴.”

“허… 그래, 정말 고맙다. 참가해줘서. 아참! 올 때 앨범 한 장만 가지고 와주면 안 돼?”

갑자기 앨범이라니? 무슨 쓸 일이라도 있는 것인가?

고개를 갸웃하며 창현이 물었다.

“앨범은 왜요?”

“우리가 일일카페를 하면서 친분 있는 가수들의 앨범도 즉석 경매를 통해 판매를 하려고 하거든. 그것도 기부금으로 들어가는 거고…….”

S본부에서 엄청난 무대를 선보인 직후 현의 앨범이 모두 판매가 되어 현재 재고가 없다는 말을 들었기에 조심스럽게 묻는 태연이었다. 혹 창현이 몇 개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어 묻는 것이었다.

그 물음에 창현은 상관없다는 듯 대답한다.

“그래요? 그럼 상관없죠. 좋은 일에 쓰는 건데 당연히 드려야죠. 그런데 지금은 없고, 다음에 만나거나 제가 그 일하는 곳에 가면 드릴게요. 그럼 되는 거죠?”

“응. 되고말고. 땡큐!”

이야기가 수월하게 풀리자 밝은 표정으로 대답하는 태연이었다.

그런 태연의 모습에 창현은 순간 속으로 의문을 들었다.

‘이 누나들이 내 생일을 잊어버리고 있는 건가…….’

작년에는 자신의 생일에 축하한다는 문자라도 보내주었기에 내심 자신의 생일을 언급하길 기대한 창현이었지만 아무도 언급하지 않자 조금 서운한 마음이 일었다. 하지만 소녀들도 바쁜 만큼 잊어버릴 수도 있다고 스스로 납득을 하며 생각을 지워나갔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 하게 되고,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고 하면서 소녀들이 우르르 몰려 나간다.

“꼭 와줘야 해!”

마지막 당부의 한마디를 남기면서 말이다.

창현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그런 소녀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런 창현의 모습을 보면서 세희가 툭 치며 말한다.

“섭섭한 거 아니야?”

“뭐가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창현은 뜨끔하여 세희에게 시선을 준다. 표정으로 전혀 내색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린 걸까.

궁금했지만 자신이 그런 감정을 가졌다는 걸 들키기 싫었기에 창현은 담담한 안색을 하고 있었다.

그에 세희가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알 수 있지. 현이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다섯 손가락 안에 내가 충분히 들어갈 걸? 네 매니저를 하고 있기에 표정은 변하지 않아도 마음 변화는 어느 정도 눈치 챌 수 있다는 말씀.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 같은데 말이지.”

“아니에요.”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하면 그런 거겠지.”

창현의 부인에 세희가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 말을 들은 창현은 괜히 자신이 잘못한 것 같아 고개를 돌린다. 세희의 말처럼 섭섭한 마음도 존재하였고, 자신의 마음 상태를 다른 사람에게 들킨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것이 아니기에 뭐라 위로의 말을 꺼내기 힘들었다.

“그래도 소녀시대는 현이 너에게 있어서 무척 친한 사람들이잖아? 저 아이들이 네 생일을 모르고 지나친다면 나는 무척 실망할 것 같아.”

“누나들도 바쁘죠. 일일카페라는 것도 해야 되고 곧 있으면 뮤직비디오도 촬영해야 할 테니까요. 바빠서 잊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말을 하지만 세희의 말에 동감하는 창현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원래 간사하지 않은가. 이해를 한다고 말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섭섭함을 느끼고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도 슬슬 가도록 하죠.”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는 마음이 싱숭생숭해질 것 같아 창현이 세희를 보며 말한다.

“그래.”

세희는 아니라고 말을 했지만 창현의 심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기에 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그와 함께 벤으로 향한다.


“…….”

집으로 돌아온 창현은 씻은 뒤 침대에 누워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깊은 새벽이었기에 잠을 자야 무리없이 움직일 수 있을 텐데 머리가 무척 복잡하였다.

특히 자신의 상태를 꿰뚫어보는 듯한 세희의 말은 창현에게 다소 충격적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데 누구보다 능숙하다고 생각하던 창현이었기에 더욱 충격이 컸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렇게 파악하기 쉬운 사람이었나.”

어릴 때부터 감정을 숨기고 억누르며 살아왔기에 창현은 누구도 자신의 감정 상태를 알아차릴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세희는 자신의 감정 상태를 단번에 알아냈다.

세희가 자신과 지낸 시간이 결코 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창현이 받은 충격은 더욱 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녀의 말에 생각하게 된다.

자신이 섭섭하다고 느끼는 이 감정.

이것은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다가 그 기대가 어긋날 경우에야 섭섭한 감정을 느낄 테니 말이다.

“내가 누나들을 그렇게 친하다고 생각한 건가?”

확실히 작년 한해 창현이 가장 친하게 지낸 인물이라고 하면 소녀시대 누나들이라 할 수 있다. 석규는 가족이고, 지선과 지영도 곧 가족이 될 사이였으니 말이다. 세희도 친하기는 하지만 알고 지낸지는 그리 길지 않다.

친구가 없는 창현으로서는 학교 선배인 주현을 시작으로 알게 된 소녀시대 누나들과 가장 깊은 교류를 하고 지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의지하는 면이 어느 정도 있었나보다.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주길 원하고, 축하한다는 말을 듣길 바라고 있었으니 말이다.

“복잡하네. 휴우!”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기에 그런지 창현은 혼란스러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될 정도로 친한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 신기했다. 여태까지 제대로 친구를 사귄 적이 없는 만큼 이것은 생경하면서도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으니까. 친한 친구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 것 같다고 창현은 생각했다.

복잡한 생각을 지우고 싶은 듯 창현은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썼다. 눈을 꼭 감고 베개에 얼굴을 묻고는 곧이어 잠이 든다.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 깊은 새벽이었다.


푹 자고 일어난 창현은 잠을 깨기 위해 씻은 뒤 시리얼로 아침을 대신하였다. 그리고는 인터넷을 키고 연예 뉴스를 둘러보기 시작한다.

연예 뉴스란은 흐뭇(?)하게도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하였다. 대부분이 호평 일색이었기에 창현의 입가에 미소가 맺힌다. 네티즌들의 반응도 호의적인 만큼 이번 앨범은 순항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게 인터넷 뉴스를 둘러본 창현이 접속한 곳은 다크 스타였다. 그리고 이벤트란에 들어가니 아니나 다를까, 1월 2일 현의 생일을 맞이하여 작은 팬 미팅이 개최되었다는 것이 적혀 있었다. 평소 이 게시판에는 잘 접속하지 않고, 자신이 게시글을 작성하는 곳에만 관심을 기울였기에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생일 파티에 참석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운이라 할 수 있다.

앨범 30만장을 제작하면서 거기에 500장의 팬 미팅 초대권을 넣었다. 즉, 초대권을 획득한 사람들은 1/600의 확률로 당첨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개인 선물 증정식 때 3만원 이상의 선물은 받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그것을 본 창현은 석규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떠오른다.

자신이 무심코 팬들에게 비싼 선물을 받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마음만 받겠다고 했던 말을 말이다. 이미 돈이야 구애받지 않을 정도로 넉넉하니 물질적인 것보다는 정성을 받겠다는 것이 창현의 생각이었다.

그때 기억을 떠올린 창현은 미소를 지었다. 다른 연예인들에게 엄청나게 비싼 선물들을 준다고 해서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했던 말인데 그게 반영 되었다고 하니 흐뭇했다.

역시 선물은 정성이고 말고, 암.

그렇게 다크 스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내내 창현은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역시, 팬 카페라 그런지 찬양글이 많이 올라와 있다.

힘들고 고된 일, 쓴 말보다는 쉽고 달콤한 말을 좋아하는 만큼 창현도 그 글들을 보니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꼈다. S본부에서 라이브를 하면서 스스로가 한단계 성장했다고 느꼈기에 그러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리저리 둘러보던 창현은 공지글 중에 하나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내 생일 선물 마련이라고?”

현의 생일을 맞이하여 자신의 이름으로 기부금을 내겠다는 게시글을 본 창현은 놀라야만 했다. 차곡차곡 쌓인 기부금의 금액이 천만 단위에 이르렀던 것이다. 현이라면 돈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 팬들이 현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것을 본 창현은 마음이 짠해지는 걸 느꼈다. 이런 배려를 해주다니.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현은 전화를 들어 석규에게 전화를 한다.

자신의 생일을 맞아 다크 스타 회원들과 함께 기부를 하고 싶다고. 괜히 좋은 일을 했다는 것을 밝히고 싶지 않으니 조용히 기부를 하고 싶다고 말이다.

한순간의 충동이긴 하지만 창현은 후회하지 않았다.

그가 석규에게 말한 기부금은 1억이다.

한국 사회에서 1억이란 돈은 무척 큰 금액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들은 창현을 보면서 손가락질을 할지도 모른다. 짧은 순간에 든 충동으로 거금을 기부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창현의 생각은 달랐다.

다달이 100만원씩 버는 사람이 1억을 기부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다달이 10억씩 버는 사람이 1억을 기부하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다.

자신의 생일인 만큼 남들에게 축복받는 것도 좋지만, 좀 더 많은 것을 가진 자신이 남에게 베푸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크 스타를 다 둘러본 창현은 오랜만에 게임하기 위해 스타크래프트를 켰다.

게임에 접속한 창현이 친구 리스트를 입력하는 순간 반가운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순규가 게임에 접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창현은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였다.

<To:DarkSword>:누나 하이! 오늘 스케줄 없나 봐요?

말을 걸자 답장이 곧장 날아온다.

<From:SNSD)SunNy>:오전 스케줄은 없고 오후 스케줄은 있어. 아직 시간 좀 남았는데 한 게임 콜?

<To:DarkSword>:저야 언제든지 대환영입니다. 관광버스 기사 창현이라 불러주시지요. 흐흐!

<From:SNSD)SunNy>:님 살기 싫음? 설마 아직도 핸드폰 이름이 관광버스 탑승객이라고 되어 있는 건 아니지?

살기가 깃든 것이 느껴졌다. 채팅 글에 감정이 실려오다니, 참으로 대단한 실력이다.

창현은 움찔하며 반격하였다.

<To:DarkSword>:당연히 바꿨죠. 그러는 누나도 바꿨겠죠?

<From:SNSD)SunNy>:당연하지. 그럼 나 지금 나가니까, 방 만들어.

<To:DarkSword>:알았어요. 그런데 누나 내일도 스케줄 있어요?

정말 자신의 스케줄을 모르는 것일까 궁금했던 탓일까.

창현은 순규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From:SNSD)SunNy>:응. 내일 오후까지 스케줄 있어. 왜?

“하아…….”

그 이야기를 보는 순간 한숨이 나왔다. 뭐랄까, 왠지 모르게 섭섭한 기분이랄까.

길게 한숨을 내쉰 창현은 순규에게 급한 일이 생겨서 게임을 못할 것 같다고 말을 한 뒤 게임을 껐다. 뭐랄까, 갑자기 기분이 심란해져서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정말 모르는 걸까.”

기분이 뒤숭숭했다.

사람들이 이럴 때 담배를 피는 걸까.

창현은 문득 담배 생각이 났지만 고개를 저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에게 담배는 최악의 적이다.

냉장고로 걸어가 주스를 따라 마신 창현은 거실로 걸어가 TV를 보기 시작한다. 때마침 설특집 짱구 데이라고 하여 하루종일 짱구만 하는 날이었다.

그래, 생각이 복잡하게 얽히는 이런 순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만화가 최고다.

창현은 짱구는 못 말려에 몰두하기 시작하였다.


1월 2일이 되었다.

생일이지만 창현은 별로 들뜨거나 그러지 않았다.

뭐랄까, 착 가라앉은 느낌이랄까. 그런 느낌이 났다.

기계적으로 일어나 씻은 뒤 간단하게 시리얼로 아침을 대신한다. 그리고 오늘 12시에 있을 팬 미팅을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다.

10시가 되자 세희에게서 연락이 온다. 10분 뒤 지하주창으로 내려오라는 내용이었다. 어제 10시까지 준비를 해놓으라고 한 상태였기에 창현은 세희의 문자를 받자, 준비를 하고는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나이스 타이밍으로 벤이 안으로 들어선다.

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창현이 매니저인 세희와 로드 매니저, 코디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짧게 인사를 한 뒤 의자에 몸을 기댄다. 그리고 간단하게 메이크업을 하면서 팬 미팅을 하는 곳을 향하기 시작한다.

팬 미팅을 하는 곳은 저번에 팬 미팅을 했던 그곳이었다.

참가할 수 있는 숫자가 500이라고 했지만 창현은 절반 정도가 참가할까 말까라고 생각했기에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참석률이 어느 정도일지도 모르는데 너무 큰 곳을 빌린 거 아니에요?”

“참가자 많던데? 400명 정도가 참가한다고 했어. 아마 400명 전후가 될 거야.”

세희의 말에 창현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설마 그렇게 많이 참가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래요? 많네요.”

창현은 모르고 있었지만 팬 미팅 참가권은 암거래로 돌아다닐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방송 3사에서 그야 말로 압도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가창력을 선보인 뒤로 현의 팬이 다시 한 번 급증하는 증세를 보인 것이다. 그리고 현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나자 사람들이 그 기회를 붙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특히 극성팬의 경우가 더욱 그러하였다.

때문에 팬 미팅 입장권은 비싼 돈으로 거래가 되고 있는 실정이었고, 참석률이 80%가 넘나들고 있었다.

“그런데 MC 있어요?”

사람 숫자가 적다면 창현 혼자서 어떻게 진행할 수 있겠지만 그 정도 숫자라면 사회를 보는 MC도 있지 않겠는가?

창현의 질문에 세희는 웃음을 지은 채 어깨를 으쓱한다.

“글쎄… 있지 않을까? 그건 네가 알아맞춰봐.”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있나보네요. 누굴지 궁금한데…….”

저번에 주최된 공식 팬 미팅 같은 형식이 아닌 만큼 재석이 올 확률은 적었다. 그렇다면 다른 MC라는 건데 누구일지 궁금했다.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MC들 중에 유쾌하고 인간성이 괜찮은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모른다.

그 사이 팬 미팅을 여는 곳에 도착하였고, 벤에서 내린 창현은 팬 미팅 준비를 위해 움직이는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하기 시작한다. 이 정도면 몸에 밴 습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한동안 인사를 하던 창현은 오늘 팬 미팅이 어떻게 진행되나 진행표를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팬 미팅이라 하여도 생일 파티 성격을 띤 만큼 전과 같이 게스트는 없고, 오로지 자신 위주로만 진행을 할 예정인 듯하였다.

“흠, 보니까 라이브 한두 곡 정도하고, 선물 증정식이랑… 이놈의 프리 허그는 매일 있네. 에 또…….”

진행표를 숙지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창현은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톡톡치는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자신을 친 사람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창현이 소리를 내는 이유는 간단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 서 있었던 것이다.

놀란 창현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그를 톡톡 쳤던 사람이 정중하게 자기 소개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현 씨.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붐입니다.”

그렇다. 창현의 생일 파티 팬 미팅의 MC를 보기 위해 온 사람은 다름 아닌 붐이었던 것이다.

2008년을 기점으로 27살이 되어 창현보다 열 살이나 많은 붐이지만 바짝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그에게 있어 현이란 존재는 대한민국을 빛나게 한 슈퍼스타이며, 쉽게 범접하지 못할 인물이었던 것이다.

아직 열일곱 살밖에 되지 않은 현이지만 만인에게 자신의 실력을 각인 시킨 슈퍼스타 현 앞에서 나이는 무의미 했다.

바짝 긴장한 채 자신에게 인사를 하며 손을 내미는 붐을 보며 창현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다가 그가 내민 손을 맞잡는다.

“안녕하세요, 현이라고 해요. 오늘 MC를 봐주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하하!”

창현의 물음에 웃음을 지으며 대답하는 붐이었다.

사실 창현의 생일 파티는 무척 애매한 시기에 잡혀 있다고 볼 수 있다. 1월 2일이란 날은 신정 바로 다음 날이기에 본격적으로 팬 미팅을 잡아도 그걸 진행해줄 MC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현의 팬 미팅인 만큼 소홀히 할 수도 없었기에 MC를 선정하는데 무척 어려움이 많았다. 첫 팬 미팅 때는 국민 MC라는 유재석을 섭외하는데 성공했지만 1월 2일이라는 날짜 특성상 다시 재석을 섭외하는데 어려움이 따랐다. 그러다가 한창 떠오르는 MC인 붐을 섭외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붐을 섭외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섭외 부탁을 하자마자 바로 OK사인이 떨어진 것이다.

이것은 붐도 나름대로의 계산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붙임성이 좋기로 유명한 붐이 근래 들어 가장 알며 지내고 싶어하는 사람이 바로 현이었다. 유명한 것도 유명하거니와 현의 성격이 무척 좋다는 것을 소문으로 듣고 있었기에 그렇다. 소녀시대가 본격적으로 데뷔하기 전부터 알고 지냈기에 붐은 현에 대해 어느 정도 들을 수 있었고, 그가 무척 성격 좋고 예의 바른 소년이라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그리고 현이 유재석, 이효리와도 친하다는 이야기를 듣자, 인간으로서 매력을 느꼈다. 그들과 친하다는 것은 현의 인간적인 면에 결점이 없다는 걸 뜻했던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대인관계가 좋기로 유명하지만 한편으로는 친해지기가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붐은 현의 노래를 무척 좋아하였다.

스케줄로 인해 바쁜 와중에도 붐은 현의 노래를 종종 듣곤 하였던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자신에게 섭외가 들어왔고, 개인적으로 현을 만나고 싶었던 붐은 단번에 OK를 한 것이다.

그리고 S본부에서 했던 현의 소름 끼치는 생목 라이브를 보고는 자신의 선택이 정말 옳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만큼 현의 팬인 붐이었던 것이다.

현은 자신을 보며 미소 짓는 붐의 모습에 웃음을 지었다.

얼핏 보면 경박하게 느껴지기도 한데 참 밉지 않은 경박함이었다. 오히려 사람에게 친근함을 가져다 준다랄까? 그런 느낌이 들었다.

“1월 2일이라는 날짜 특성상 곤란하실 수도 있으셨을 텐데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뭘요. 저도 현 씨의 팬이어서 팬 미팅에 꼭 한 번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MC를 보게 되면 팬 미팅에 무료로 참가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죠.”

방송에서는 싼티라고 해서 저렴한 멘트나 행동을 보여서 현실에서도 그렇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진정성이 엿보여서 좋았다.

“감사합니다. 아, 그것도 그러네요. 오늘 진행 잘 부탁드릴게요.”

“물론입니다. 하하!”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신보다 열 살이나 많은 붐이 자신에게 존댓말을 하는 게 불편했는지 창현은 말을 놓아달라고 하였고, 편안하게 대하기로 하였다. 만약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계속해서 존댓말을 하며 관계에 거리를 두겠지만 붐은 인간성도 괜찮고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것 같아서 참 좋은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형으로 부르겠다는 창현의 말에 붐은 뛸 듯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월드 스타 동생이 생겼다고 막 기뻐하는 그의 모습에 창현은 멋쩍은 미소를 지어야만 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다가 팬 미팅이 시작할 시간이 되자 창현과 붐은 무대 뒤로 향한다.

곧이어 사람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현의 팬클럽 색이기도 한 다크블랙 풍선을 든 채 들어선다.

오백 좌석 중에 사백이 넘는 좌석이 찬다. 무려 80%가 넘는 참가율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이 모두 안으로 들어서자 푸쉬! 하는 소리와 함께 붐이 등장한다.

본격적으로 팬 미팅이 시작되자 붐은 거침없이 입담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오늘 팬 미팅 진행을 맡기로 한 붐이에요!”

와아아아!

손을 내밀며 특유의 인사를 하는 붐의 모습에 사람들이 함성을 지른다. 붐이라면 제법 인지도가 있는 MC였다.

마이크를 든 붐은 관객들의 함성소리에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너스레를 떤다.

“하하! 오늘 관중들이 저를 유난히 반겨주시는 군요. 좋습니다! 기분이 무척 좋네요. 이 자리에 서게 되어 무척 영광입니다. 년초라 무척 바쁘셔서 섭외가 되지 않으신 유재석 씨와 강호동 씨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두 사람이 섭외되지 않았기에 자신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붐의 이야기에 관중석에서 웃음이 흘러 나왔다.

특유의 재치와 입담으로 자신의 소개와 팬 미팅의 일정을 이야기한 붐이 입을 연다.

“자, 이제 팬 분들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시던 주인공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정규 3집으로 돌아온 음반계의 마이더스 손! 천상의 목소리! 생목 라이브로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던 최고의 가창력 소유자! 현 씨입니다.”

와아아아아!

마침내 현을 소개하자 함성이 터져 나온다.

그와 함께 무대 뒤에서 현이 천천히 걸어 나오면서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현입니다. 오늘 이렇게 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네, 언제나 예의 바르기로 소문이 나 있는 현 씨의 인사였습니다. 아까 팬 미팅이 시작하기 전에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방송에 나올 때랑 하나도 다른 게 없더라고요.”

붐의 칭찬에 창현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예? 그런가요? 저는 잘 모르겠던데. 제가 딱히 뭐라 컨셉이 잡혀 있는 것도 없고, 굳이 컨셉을 잡아서 팬 분들에게 거리감을 생기게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그냥 평소 하던 것 그대로 행동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그것 때문인가 보네요. 하하.”

“얼굴도 잘생겼고, 노래도 잘 부르고, 돈도 많고! 게다가 작다고 지적 받던 키도 이제는 훌쩍 자라서 모자람이 없는 키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나이도 어려요! 누님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로망이에요! 안 그런가요?”

맞아요!

현이는 누나들의 로망이야!

붐의 유도에 따라 격하게 외치는 여성 팬들이었다.

대부분 누나 팬들이었기에 호응은 대단하다 못해 광기가 흐를 정도였다.

그 모습에 창현과 붐은 동시에 땀을 흘릴 정도였다.

“자, 그럼 인사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고, 본격적인 팬 미팅을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와 함께 붐의 능수능란한 진행 하에 팬 미팅이 본격적으로 시작 되었다.

먼저 시작된 것은 현의 즉석 라이브였다.

무반주로 부르는 생 라이브였는데, 부르는 곡은 얼마 전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던 <애인 있어요>였다. 이은미가 불렀던 버전으로 그대로 듣고 싶다는 팬들의 바람에 즉석에서 한곡을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 창현은 약간 민망한 표정을 지으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며칠 전보다 한단계 더 발전한 창현의 가창력이었기에 그의 느낌이 팬들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고, 붐도 옆에서 호들갑을 털며 특유의 싼티 멘트로 분위기를 띄워놓았다.

그러다가 문득 붐이 생각난 게 있는 듯 창현에게 말한다.

“그러고 보니 현 씨가 성대모사를 그렇게 잘한다면서요? 잠깐 들어볼 수 있을까요?”

그에 창현이 피식 웃음을 지으면서 마이크를 입에 대고 말하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현 씨가 성대모사를 그렇게 잘한다면서요? 잠깐 들어볼 수 있을까요?”

“…….”

장내는 한순간 침묵에 잠겼다. 현이 붐의 목소리와 억양을 그대로 재현해낸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붐도 화들짝 놀란 표정이었다.

그는 창현을 보면서 말을 더듬었다.

“지, 지금 말한 거 나 아니죠? 현 씨죠?”

그에 창현이 히죽 웃으면서 입을 연다.

“지, 지금 말한 거 나 아니죠? 현 씨죠?”

붐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마, 말도 안 돼! 완전 똑같잖아!

“마, 말도 안 돼! 완전 똑같잖아!”

“아, 알겠습니다. 알았어요. 완전 항복입니다. 제말 그만해주세요.”

자신의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창현에게 위기감을 느낀 듯 붐이 항복을 선언하듯 말한다.

그에 창현은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죠. 제가 다른 사람 목소리를 따라하는데 재능이 있는 편이라서요.”

“이거 잘못하다가 현 씨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예능 프로그램이 초토화 되는 거 아닐까요? 저 같은 사람들은 완전히 설 자리가 없어지겠는데요?”

“과찬이십니다.”

붐의 극찬에 낯간지러운 듯 볼을 긁적이며 말하는 창현이었다.

팬들과 붐의 경악을 뒤로 하고 계속해서 팬 미팅이 지속되었다.

예전에 했던 것처럼 팬 미팅 참가자들의 이름을 뽑아 질문하는 것들도 하였다.

이번에도 역시 나온 것은 이성에 관한 질문이었다.

호감이 가는 여성이 있느냐부터 시작하여 친하게 지내는 여자 연예인은? 심지어 MKMF에서 같이 퍼포먼스를 했던 세실리아와 무슨 관계냐는 질문도 있었다.

이에 창현은 성실하게 대답해주었다.

이성으로 호감이 가는 여자 연예인은 없다고 하였고, 친하게 지내는 연예인은, 연락하는 거로는 유재석과 종종 문자를 한다고 하였고, 만나는 것은 슈퍼주니어와 소녀시대를 종종 본다고 하였다. 소녀시대는 여성그룹이지만 아홉 명이나 되는 만큼 별다른 말은 나오지 않았다.

붐의 주도로 인한 팬들의 요청으로 라이브도 몇 곡 해야 했다.

특히 미영과 함께 찍은 음료수 광고 CM송을 불러달라고 할 때는 난감한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약간 낯간지러운 곡이었기에 그렇다.

그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어가자 붐이 창현을 보면서 말한다.

“현 씨! 제가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있는데 한 가지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네, 얼마든지요.”

흔쾌히 승낙하는 창현의 모습에 붐은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짓더니 창현에게 말한다.

“보통 작곡가분들은 한 번 영감이 오면 곡을 금방 만들어낸다고 하지 않습니까? 최고의 가창력을 지니셨지만 동시에 최고의 작곡 능력도 지닌 현 씨는 어떻습니까? 정말 필이 오면 금세 곡이 뚝딱 만들어지나요?”

작곡가들이 종종 듣는 질문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개 작곡가들은 무슨 자존심 싸움을 하기라도 하듯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는 몇분만에 만든다고 이야기를 한다.

창현은 그 질문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일단 끄덕인다.

“예, 그렇긴 합니다.”

“어느 정도 걸리는지요?”

어느 정도 걸렸는지 생각해보던 창현이 대답했다.

“음… 저 같은 경우는 한 십 분 정도 걸리더라고요. 하지만 솔직히 그 이야기는 조금 거짓이 많이 섞여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붐의 반응에 창현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순식간에 곡을 써냈다 하더라도 다듬을 곳이 많거든요. 강조해야 할 부분이 있고, 완급을 조절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곡은 십분만에 만들었지만 그것을 다듬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지요.”

“아! 그렇군요. 어쨌든 곡을 만드는데 십분 정도가 걸린다는 거네요?”

어째 질분 방향이 이상해지는 걸 느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이는 창현이었다.

“에… 다듬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그 정도 시간에 만들 수 있죠.”

“좋습니다. 여러분!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현 씨가 지금부터 작곡을 시작하여 오늘 생일 축하를 위해 와준 팬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담은 곡을 즉석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 말에 창현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에에?”

와아아아아!

그런 창현의 반응과 달리 팬들은 함성을 지르며 좋아할 뿐이다.

즉석 작곡이라니!

어떤 곡이 나올지 정말 기대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뭐라 말을 하려던 창현은 기대감에 가득 찬 팬들을 보고는 멈칫한다.

그리고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한다.

“기타 좀 주시겠어요?”

기대감에 찬 팬들의 눈을 거절 할 수 없는 창현이었다.

스태프가 기타를 가져오자 창현은 그 기타를 받아든다. 그리고는 공책과 펜도 가져다 달라고 한다.

디링디링.

기타의 음을 맞춰보면서 조절에 들어간다.

그리고는 잠시 눈을 감더니, 붐과 팬들을 보면서 말합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 말과 함께 창현은 기타를 디링 치면서 작곡과 동시에 작사를 해나가기 시작한다.

“…….”

붐과 팬들은 그 모습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반쯤 농담식으로 했던 말인데 창현이 정말 작곡을 하자 붐은 당황한 표정이었고, 팬들은 설마 십분 정도의 시간을 두고 한곡을 만들 수 있나 의구심 반 호기심 반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만 가고, 수백 명이 모여 있는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이따금 들리는 디링! 하는 소리와 글자를 적는 슥슥! 하는 소리뿐이었다.

십 분이 조금 넘었을까?

손에서 펜을 놓은 창현이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워낙 짧은 시간이라 다듬을 시간도 없었고, 여타 다른 곡들처럼 길게 할 필요도 없기에 짤막하게 했어요. 부담 없이 들어주시길…….”

그 말과 함께 창현은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기타 소리와 함께 창현이 즉석에서 작곡한 멜로디와 함께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흡사 <마법의 성>을 연상케 하는 부드러운 멜로디였다.

즉석 작곡이었기에 분량은 일분을 조금 넘기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 안에 어렵게 찾아와준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면서 지금 자신이 어떤 기분인지, 어떤 느낌을 받고 있는지 생생하게 전달하였다.

창현의 말처럼 즉석에서 하였기에 확 뛰어나다는 느낌이 오지는 않았지만 감미롭고 부드럽게 들려오는 멜로디와 조화된 창현의 달콤한 목소리는 듣는 사람들을 매료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지닌 노래가 끝나자 관중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온다.

짝짝짝짝!

“감사합니다.”

노래를 끝낸 후 창현도 제법 느낌이 잘 살아있는 것 같아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붐은 놀란 안색을 지우지 못한 채 말한다.

“이야! 정말 대단합니다! 즉석에서 작곡한 것도 그 정도라니! 언제 한 번 제게 곡 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현 씨의 곡이라면 대박 낼 자신이 있어요!”

“제목은 <1999>로 하고요?”

“그, 그건… 으윽!”

창현의 예상 밖 일격에 가슴을 움켜쥐며 뒤로 물러나는 붐이었다.

그에 웃음바다가 되는 객석. 붐이 가장 많이 외치고 다니는 단어가 1999이다 보니 그런가 보다.

그렇게 즉석 작곡 능력으로 팬들의 놀라움을 산 창현은 붐의 주도로 인해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그 다음은 본격적인 선물 증정식이었다.

현의 생일인 만큼 팬들이 선물을 준비해온 것이다.

앞줄부터 나오라는 말에 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현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선물을 받으면서 악수와 함께 포옹을 해주었다.

앨범을 가지고 온 팬들에게는 싸인을 해주었고, 하나씩 포옹을 하면서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대부분이 여성 팬이었기에 창현의 포옹에 꺄아! 거리면서 좋아하였고, 창현 또한 소소한 선물들을 받으면서 십자수로 된 지갑이나 십자수로 된 시계를 받고 기뻐하였다. 정성이 담긴 선물은 언제나 그러하듯이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

그렇게 선물 증정식은 한시간이나 걸려서 끝이 났다. 한 명 한 명 소홀히 대하지 않았기에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이다.

마지막 팬까지 친절하게 대한 창현이 마이크를 들어 입을 연다.

“저는 다른 연예인처럼 스케줄이 많은 날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크 스타에 자주 들려 글을 읽곤 하는데요. 거기에서 선물을 왜 3만원 이하로 하냐고 하는 글을 봤기에 말을 하고자 합니다. 사실 여러분들의 사랑으로 제가 버는 돈의 액수는 무척 많습니다. 때문에 과분하게도 돈에 구애를 받지 않는 단계에 이르렀지요. 그런 제가 팬 분들에게 받고 싶은 것은 당신의 정성입니다. 저를 좋아해준다는 팬들의 마음, 그것이 저를 더욱 힘내게 만들어주고, 저에게 더욱 의욕을 불어다 넣어줍니다. 제게 있어서 팬 분들이 무리해서 산 10만원 상당의 선물보다 정성이 들어간 학 천 마리가 더 귀합니다. 왜냐고요? 그것을 볼 때마다 팬 분들께서 저를 얼마나 사랑해주시는지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팬 분들의 과분한 사랑에 감사의 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오늘 팬 미팅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세상에 태어난 걸 축복해주는 분들이 많기에 정말 감사하다는 느낌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느낌을 저는 다른 분들에게도 전하고 싶어 다음부터는 봉사활동을 하고자 합니다. 언제나 팬 분들의 사랑을 자각하고, 잊지 않으며, 받은 만큼 남에게 베풀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엄청 긴 연설과도 같은 말이었다.

그런 창현의 말을 듣고 있던 팬들은 말이 끝나자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와아아아아아아!

현이 짱! 현이 짱!

팬들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을, 그리고 자신이 느낀 바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창현에게 진심으로 환호하는 것이다.

현은 특별한 존재다.

그의 말에는 진솔함이 묻어 나오고, 그것은 사람의 마음에 깊게 스며든다.

팬들은 그런 창현의 말에서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하는 팬들에게 고개를 숙인 창현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말한다.

“감사의 의미를 담아 한때 제 야욕으로 인해 앨범에 수록되었다가, 이번에 가요대전이라는 큰 무대를 통하여 저를 한꺼풀 벗게 만들어준 노래, <August>를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MR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곧장 이어지는 생생한 현의 라이브.

팬들은 창현의 라이브에 열광하였고, 그의 노래에 하나가 되어 동화되기 시작하였다.

그야 말로 최고의 무대를 선보이고 있는 창현은 자신과 하나가 되어 환호하고 즐거워하는 팬들을 보며 벅찬 마음을 느꼈다.

자신의 생일을 몰라주는 듯한 소녀시대의 마음에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자신의 생일을 축복해주는 팬들 덕분에 그 기분이 말끔하게 가셨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창현은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발휘하여 최고의 무대를 선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였고, 그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오늘 팬 미팅에 참석한 사람은 평생 잊지 못할 최고의 무대를 보았으리라.

팬 미팅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녹음실에 내려주세요.”

팬 미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던 창현이 로드 매니저에게 한 말이다.

그 뒤에 일정이 없었기에 창현은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가족끼리 오붓하게 저녁을 먹자는 석규의 제안이 있었지만 어제 마음이 복잡한 상태였기에 창현은 거절하고 말았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좋다고 하기도 뭐했기에 창현은 집에서 조용히 쉴 생각이었지만 팬 미팅을 하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팬들에게 감사한 마음, 그걸 담아내고자 하는 마음이 든 것이다.

그걸 위해 곧장 작업에 들어가기 위해 녹음실로 가겠다고 한 것이다.

창현의 갑작스러운 말에 로드 매니저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변함없는 그의 표정을 보고는 이내 체념한 표정을 짓고서는 녹음실에 내려주었다.

“잘 들어가도록 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여차하면 녹음실에서 그냥 잘 테니까요.”

말이 녹음실이지, 그냥 녹음실에서 살아도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혼자 누워도 넉넉하게 남는 소파도 있고, 담요도 있으니 그냥 거기에서 자도 되었으니 말이다. 음식을 해먹을 부엌도 있고, 바로 앞에 슈퍼도 있으니 오히려 살고 있는 곳보다 좋다고 할 수 있다.

창현의 말에 로드 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돌아갔고, 녹음실 안으로 들어선 창현은 곧장 녹음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아까 전 작곡했던 곡의 느낌을 살려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즉석에서 만들었다는 말 때문일까?

그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별다른 수정작업을 거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곡을 만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곡을 만든 뒤 창현은 곧장 녹음에 착수하였다. 녹음도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지금 느끼고 있는 그 느낌을 그대로 살려서 부르니 딱 세 번 부르자, 곡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약간 시간을 늘렸기에 일분이 조금 넘던 곡은 삼분대로 늘어났다.

게다가 즉석으로 만든 것치고 느낌이 좋았기에 창현은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곡을 모두 만든 창현은 일층으로 내려와 소파에 벌러덩 누웠다. 곡을 만들었으니 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소파에 몸을 묻으면서 천장을 바라본다.

정신이 멍했다.

“저녁을 먹어야 하나…….”

저녁 시간이 되었지만 그리 배가 고프지 않았다.

멍하니 누워 있다 보니 불현 듯 생각이 든다.

정말 소녀시대 누나들은 자신의 생일을 잊어버린 것일까?

그러고 보니 순규가 스케줄이 있다고 한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스케줄이 있어도 생일 축하한다는 문자 정도는 보내줄 수 있을 텐데?

그런 문자가 하나도 없는 걸 보면 정말 까먹은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그렇지, 설마 한두 명도 아니고 전부 까먹을 줄이야.

그걸 생각하자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한 명이라도 축하한다는 문자를 보내줬으면 이런 기분이 들지는 않았을 텐데.

괜히 싱숭생숭한 마음이 들었다.

이대로 한숨 잘까 싶어 막 눈을 감으려던 차였다.

띵동! 띵동!

갑자기 벨이 울린다.

그 말은 누가 왔다는 이야기인데?

의아한 기색으로 자리에 일어선 창현이 녹음실 입구로 향한다.

그리고는 밖을 향해 입을 열었다.

“누구세요?”

“나야, 창현아!”

“어라, 누나?”

녹음실에 찾아온 사람은 다름 아닌 세희였던 것이다.

돌아간 줄 알았건만 녹음실로 찾아오다니?

창현은 의아한 기색을 띠면서 세희를 맞이하였다. 아니, 그보다 비상용 카드가 있을 텐데? 자신이 있는 걸 알아서 안 쓴 건가?

의심이 들었지만 세희가 카드를 가지고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하면서 방문 목적을 물었다.

“어서 와요.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응? 아, 그게… 실은 내가 저번에 너희 집에 하루 머문 적이 있잖아.”

“네, 있죠.”

수연이 소녀시대 내에서 갈등을 겪었을 때를 말하는 것이리라.

창현이 기억난다는 듯, 대답하자 세희가 조금 머뭇거리는 기색을 띠다가 말한다.

“거기에다가 두고 간 게 있거든. 그래서…….”

“아, 그래요? 그럼 진즉에 말씀하셔야죠. 제가 찾아서 드렸을 텐데. 지금 당장 필요한 거예요?”

창현의 물음에 세희가 고개를 끄덕인다.

“응. 그래서 찾아온 거야.”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집으로 가요.”

선뜻 응해주자 세희의 표정이 밝아진다.

“고마워. 그런데 괜찮을까?”

밖에 나가면 창현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어 세희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에 창현은 웃음을 지으면서 어깨를 으쓱한다.

“제가 그쪽으로 내공이 좀 있다니까요? 그건 저만 믿어요.”

그러면서 옷을 챙겨 입는 창현. 밖으로 나가서 얼굴을 들키면 안 되기에 옷을 입고 털모자를 쓴 뒤 목도리로 빙빙 감아 얼굴을 가렸다. 그러자 얼굴 대부분이 가려져서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준비를 모두 갖춘 창현이 세희를 보며 말한다.

“준비 다했어요. 가요, 누나.”

창현의 말에 밖으로 나가려던 세희가 순간 멈칫했다.

그녀는 창현을 바라보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응. 근데 창현이 너 2층 녹음실 문 잠근 놓은 상태지?”

뜬금없다고 할 수 있는 세희의 질문에 창현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대답을 하였다.

“갑자기 녹음실은 왜요? 당연히 잠근 상태죠. 제가 사용하지 않을 때는 무조건 잠근 상태에요. 무슨 일이 벌어질 줄 모르니까요.”

창현의 녹음실에는 가수들의 보물 창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소에 그가 타 가수들에게 받은 싸인 앨범이 차곡차곡 쌓여있을 뿐만 아니라, 작사를 하는데 적합한 책들도 많았다. 게다가 그가 앨범에 사용할 곡들이 저장되어 있었기에 잘못 유출되다가는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갑자기 세희가 녹음실 문을 잠근 것에 대해 묻자 의아한 창현이었지만 보안에 대해 확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대답했다.

“그래? 다행이네. 그럼 가자.”

그에 세희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녹음실을 나선다. 창현도 그 뒤를 따라 나섰다.

창현의 녹음실에서 사는 집까지 거리는 느리게 걸으면 십 분 정도 걸리고, 빠르게 걸으면 오 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거리다.

찾을 물건이 있다는 세희의 말을 들은 창현이 빨리 걸으려 했지만 세희가 뛰어오느라 힘들었다고 말하는 통에 천천히 걷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 분이 지나자 창현과 세희는 사는 집 앞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세희는 아파트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선 채 창현이 사는 라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창현아, 저거 어떻게 들어가?”

창현이 사는 집 라인 앞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생팬들이 득실득실하였다. 도대체 어떻게 자신의 숙소를 알고 찾아오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염려 섞인 세희의 말에 창현은 웃음을 지으면서 말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다 방법이 있으니까요.”

그 말과 함께 창현이 세희를 이끌고 경비실로 향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신분을 확인시켜주면서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부득이하게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겠다고 하였다. 매일 벤으로 지하 주차장에 내려 엘리베이터를 탑승하는 만큼 걸어서 지하 주차장으로 간 뒤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는 것이다. 다만 관리가 철저하였기에 안으로 들어가려면 매번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며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도 몇 번 그러다 보니 경비원은 창현이 얼굴을 드러내면 그러려니 하는 기색을 보였다.

“가요.”

경비원의 허락을 얻어낸 창현이 세희와 함께 지하 주차장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엘리베이터를 탑승하여 집으로 올라간다.

“찾아보세요. 제가 저번에 찾아볼 땐 없었던 것 같은데 좀 이상하네요.”

“기다려봐.”

집 문을 열면서 창현이 의아한 기색을 비추자 세희가 재빨리 집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는 그녀가 그때 머물던 방안으로 들어가면서 문을 닫는다.

뒤이어 안으로 들어온 창현은 급해 보이는 세희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한다. 오늘 세희의 모습은 뭐랄까. 의아함의 연속이랄까. 계속 이상한 행동만 거듭하고 있다.

“뭐, 사정이 있겠지.”

그러면서 모자를 벗고, 목도리를 풀은 창현은 겉옷을 벗어두고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는 TV를 켰다.

그리고 TV를 보던 창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방안으로 들어간 세희가 십 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고 있던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창현이 문을 두들기며 말했다.

“누나, 두고 간 거 아직도 못 찾으셨어요?”

“으응.”

세희의 대답에 창현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혹시 가져갔는데 다른 데에 두고 온 거 아니에요? 제가 정리할 때 못 본 걸 감안하면 여기에 없는 것 같은데…….”

“조금만 더 찾아볼게. 그래도 없으면 내가 다른 곳에 두고온 거겠지.”

“그러세요, 그럼.”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기에 창현은 다시 소파에 앉는다.

그리고 십 분이 더 지났을까.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세희가 밖으로 나온다.

그녀는 어색한 표정을 지은 채 창현에게 말한다.

“미안해, 창현아. 아무래도 내가 다른 곳에 두고 왔나봐. 찾아봐도 없네.”

“그렇죠? 제가 찾아봐도 없더라고요. 아무래도 누나가 다른 곳에 두고 간 것 같아요. 중요한 거예요?”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조금 아끼는 거였거든.”

아끼는 것을 잃어버린 듯한 세희의 모습에 안쓰러워지는 창현이었다.

“안타깝네요. 혹시 벤에 떨어뜨린 게 아닐까요? 타는 시간이 많다 보니 거기에 두고 왔을 수도 있잖아요.”

세희가 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렸다는 말에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하는 창현이었기에 물건을 떨어뜨릴 만한 장소를 언급하였다.

하지만 세희가 고개를 젓는다.

“벤은 아까 찾아봤거든. 없더라고. 없으니 돌아가야겠네.”

“네, 안녕히 가세요. 배웅 해드릴게요.”

“창현이 넌 안 가려고……?”

자신을 배웅하겠다는 말에 세희가 움찔하며 묻는다. 그 말은 집에 있겠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세희의 물음에 창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가 집인데 당연히 집에 있어야죠. 왜요?”

“그, 그게 그러니까… 녹음실에 핸드백을 두고 왔거든.”

우물쭈물 말하며 대답하는 세희였다.

그 말에 창현이 다소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핸드백을 두고 왔다고요? 하아… 누나 비상용 카드는 어쩌시고요?”

창현의 녹음실의 지문 인식은 창현과 석규만 되어 있고, 세희와 로드 매니저에게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녹음실 안으로 들어설 수 있는 비상용 카드를 주었다.

그 물음에 세희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그게 그러니까… 비, 비상용 카드 핸드백 안에 있거든. 그래서…….”

결국 녹음실 문을 열 수 있다는 것은 자신 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창현은 신음을 흘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으,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제가 가는 수밖에.”

“미, 미안해.”

창현을 귀찮게 만든 것이 미안한지 사과하는 세희였다.

그 사과에 창현은 피식 웃음을 지으면서 겉옷과 목도리, 털모자를 집어 든다.

“미안하면 커피라도 한잔 사세요. 이런 날은 따뜻한 걸 먹어줘야 하거든요.”

“응. 알았어. 그런데 어떻게 나가려고?”

올 때는 주차장으로 들어올 수 있었지만 나가는 건 무척 위험하다. 차가 안으로 들어서는 형식이기에 자칫 잘못하다는 사고가 날 수도 있다.

그에 창현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저한테 다 방법이 있어요. 저만 따라오시면 되요.”

그렇게 말을 한 창현은 다시 완전 무장을 한 채 가장 높은 층으로 향한다. 그리고 수연과 함께 아파트를 벗어난 것처럼 같은 방법을 실행한다. 옥상으로 간 뒤 옆 동으로 건너가서 옆 동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리고는 앞에 우글거리는 사생팬들을 피해 아파트를 벗어날 수 있었다.

옆에 서 있던 세희는 그것을 보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완전 대단한데? 이 방법을 도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야?”

“우연찮게 옥상이 이어졌다는 걸 알아내서 제가 경비 아저씨한테 부탁해서 열쇠를 얻어냈어요. 그래서 저 혼자 외출할 땐 대부분 이렇게 하고 나가요. 어때요, 제법 괜찮은 방법이죠?”

“그래. 안심 할 수 있겠네. 외출한다고 할 때 어떻게 하는 지 몰라서 불안했는데 이런 방법이면 들키지도 않고 좋네.”

“하하, 매니저 인정을 받으니까 좋네요. 앞으로 자주 외출해야겠다.”

세희의 인정을 받자 웃음을 짓는 창현이었다.

그렇게 십 분여를 걸은 끝에 녹음실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창현이 녹음실로 향하려던 찰나, 세희가 그의 옷을 잡아 끌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창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요, 누나.”

“커피 사달라며. 저기서 사줄게.”

세희가 가리킨 곳은 슈퍼마켓이었다.

그녀의 손을 따라 시선을 옮긴 창현은 황당한 표정으로 세희를 바라보았다.

“뭐, 뭐라고요? 누나가 사주겠다는 커피가 설마 슈퍼에서 파는 캔 커피?”

“맞는데?”

“…….”

너무나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순간 할 말을 잃은 창현이었다.

설마 캔 커피를 산다고 할 줄이야…….

어이가 없어 하는 창현의 모습에 세희가 웃음을 짓는다.

“먹기 싫어? 그럼 사준다는 말 취소할…….”

“아니에요! 먹죠! 먹어요! 아주 많이 먹어주겠어요.”

부득 이를 갈며 말하는 창현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주 커피를 통째로 입에 부어주겠다고 벼르면서 창현은 앞장서서 슈퍼마켓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후우!”

그런 창현의 뒷모습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세희였다.

슈퍼마켓에서 창현이 산 커피의 숫자는 무려 열 개가 넘었다. 세희에게 복수라도 하려는 듯 캔 커피를 왕창 쓸어담은 것이다. 하지만 쓸어담은 숫자가 고작 열 개에 불과한 걸 감안하면 창현의 마음도 그리 독하지 못한 듯하다.

왕창 사겠다고 해놓고 열 개만 갖고 오는 창현의 모습에 세희가 웃음을 짓자 발끈하는 창현이었지만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찌 되었건 자신이 얻어먹는 것인데 여기서 더 가져오면 모양새가 좀 빠지는 것 같았기에 그렇다. 게다가 돈은 자신이 더 잘 벌기에 그런 마음이 더 강했다.

그렇게 캔 커피를 계산한 창현은 세희와 함께 녹음실로 향했다.

바로 앞에 위치해 있기에 녹음실에 도착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창현은 계속해서 핸드폰을 보는 세희를 보며 물었다.

“누나 무슨 급한 일 있는 거예요? 왜 자꾸 시계를 보시는 거예요?”

“응? 아, 아니야. 그냥 시간이 궁금해서. 자, 가자.”

“네.”

아까 전부터 세희의 모습이 계속 의아하다고 생각하면서 창현은 녹음실로 향했다.

띠딕!

“들어와요, 누나.”

지문 인식을 한 뒤 문이 열렸다는 신호가 뜨자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던 창현이 순간 멈칫했다.

텅 비어 있어야 할 녹음실이 가득 찬 느낌이 든 것이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 한둘이 아니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창현이 안으로 들어서자 우르르 달려오면서 무언가를 내민다. 폭죽이었다.

퍼벙! 펑!

폭죽이 요란한 소리로 터지면서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와 함께 전혀 뜻밖의 아홉 소녀들이 동시에 외쳤다.

“창현이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창현은 어안이 벙벙하여 할 말을 잃은 상태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자 창현을 축하해주던 소녀들이 도리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깜짝 파티를 해줬으면 뭐라도 반응을 보여야 하는데 창현은 무반응이었던 것이다.

뒤에서 들어온 세희는 창현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창현아, 놀라지 않은 거야?”

그 물음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있던 창현이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아, 아니오, 놀랐어요. 워낙 뜻밖이어서 그런지 반응할 타이밍을 놓쳤네요. 하하! 그럼 누나가 저를 밖으로 데리고 간 것도 다 파티를 준비할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겠네요?”

창현의 말에 세희가 손을 모아 잘못을 빈다.

“응. 미안. 다른 이유가 딱히 생각나지 않아서.”

“녹음실 문 잠근 걸 물은 것도 같은 맥락이겠네요?”

“응. 쟤들을 믿고 있지만 그래도 확실히 해야 할 건 확실히 해야 할 것 같아서. 화난 거야?”

말하는 세희는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의도가 어찌 되었건 창현을 속여서 밖으로 데리고 간 셈이니 행여 그가 화가 나지 않았을까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그에 창현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화가 나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화 안 났어요. 제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한 건데 어찌 화가 나겠어요.”

왜 세희가 자신을 집으로 데리고 간 건지, 그리고 틈틈이 시간을 확인하고 시간을 끌려고 했는지 이해가 가는 창현이었다. 소녀들이 파티 준비 할 시간을 벌기 위해 그랬던 것이다.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한 자리가 아닌가?

창현은 자신을 속였다는 것으로 꽁할 정도로 속이 좁지 않았다. 어쨌든 좋은 의도였으니 말이다.

“이해해줘서 고마워.”

창현이 자신을 이해해주는 것 같아 마냥 고마운 세희였다.

그런 세희에게 웃음을 지어준 창현이 안으로 들어서면서 말한다.

“누나는 안 들어오고 뭐하세요?”

“난 됐어. 젊은 애들은 젊은 애들끼리 놀아야지. 그리고 저녁 약속도 있거든.”

그러면서 앞에 놓여있는 핸드백을 챙긴 세희가 말한다.

사정이 있다는 말에 창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잘 들어가세요, 누나.”

“그래. 너도 너무 늦게까지 놀지 말고.”

“물론이죠.”

흔쾌히 대답하는 창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세희였다. 자신이 다르게 당부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하는 창현이었으니 말이다.

“그럼 믿고 들어갈게.”

“네, 믿으세요.”

그 말을 끝으로 세희는 돌아갔고, 창현은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소녀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요, 누나들. 설마 이렇게 파티를 준비해주리라고는 생각도 했어요.”

창현의 말에 수영이 콧대를 높이 세우면서 손으로 자신을 가리킨다.

“에헴! 이 몸이 파티를 하자고 제안했지. 그러니 얘들 말고 나에게 고마워하도록!”

“고마워요, 수영 누나.”

그 말이 자극이 되었음일까. 아니면 진실을 밝히기 위함일까.

잠자코 있던 효연이 앞으로 나서면서 수영을 비난했다.

“야! 너 왜 혼자 공을 다 가로채려고 하냐! 원래 다 같이 의견을 나누었다가 네 의견이 제일 나은 것 같아서 된 거잖아! 이런 의리도 없는 것 같으니!”

거기에 유리가 지원 사격을 날렸다.

“그러게! 슈퍼가 가까워서 과자를 구하는데 용이하다고 추천했잖아! 결국에는 창현이 생일을 이용하여 먹을 것을 왕창 먹으려는 거겠지! 돼지 같으니라고. 지방님들은 뭐하시나 몰라. 쟤 몸에 좀 달라 붙어주지 않고.”

“이, 이것이!”

강력한 일격을 무려 두 번이나 맞게 되자 수영이 얼굴을 붉히며 방방 날뛰었다. 진실이 밝혀지자 무안했던 것이다.

그 모습에 창현은 조용히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누나들 마음 다 알아요. 저는 아무 말도 없기에 혹시 잊어버린 게 아닐까 싶었거든요. 게다가 오늘 스케줄도 있다고 하기에 바쁜 나머지 까먹은 줄 알았죠.”

창현의 말에 주현이 나서면서 강하게 반박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창현이 네가 우리 생일 다 챙겨줬는데! 잊어버리면 우리가 나쁜 거지.”

옆에서 윤아도 거들었다.

“맞아! 우리가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고!”

“역시 그렇죠? 고마워요, 주현 누나, 윤아 누나. 약간 섭섭한 마음이 있었는데 누나가 이렇게 와주니 마음이 확 풀리네요.”

빙긋, 진심으로 기쁜 미소를 짓는 창현의 얼굴에 소녀들의 얼굴이 벌겋게 변한다.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미소랄까, 창현의 미소에는 강렬한 마력이 담겨져 있었다.

그런 소녀들의 표정을 보지 못한 채 창현은 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건 뭐에요?”

창현의 질문에 얼굴이 빨개져 있던 수연이 한숨을 내쉬면서 한심하다는 듯 말한다.

“뭐긴 뭐겠어. 파티 음식이지. 아니, 파티를 빙자한 수영이의 개인 취향 식단이라고 할까나. 이 말도 딱히 틀리지 않네.”

“내가 뭘! 그리고 저거 내가 다 고른 거 아니야. 윤아도 같이 골랐어. 안 그래?”

수영이 윤아에게 화살을 돌리자 창현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한다.

그러자 얼굴이 빨개져 있던 윤아는 한층 더 얼굴이 붉어졌다. 수영의 말로 인해 자칫 자신이 먹을 것을 탐하는 사람으로 비춰질 판이었던 것이다. 물론 소녀시대 내에서는 그런 편이기는 하지만 좋아하는 남자에게 그런 이미지를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윤아는 연기의 내공을 발판삼아 수영에게 반발했다.

“제, 제가 언제요. 다 언니가 좋다고 해서 옆에서 저도 좋다고 한 거밖에 없는데요.”

오순도순 즐겁게 함께 고르던 것이 언제 자신 혼자 고르게 된 것인가?

수영으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와! 윤아 너 정말 이러기야? 이러면 나만 돼지 되잖아!”

팔짝 뛰는 수영에게 톡 쏘아붙인 것은 순규와 미영이었다.

“너 돼지 맞거든!”

“수영이 너 돼지 맞아.”

“나 돼지 아니거든!”

음식 먹는 것 가지고 서로가 돼지니 아니니 투닥거리는 그녀들이다.

창현은 그 모습을 미소 지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점점 다툼이 심화되려고 하자 중재에 나섰다.

“누나들 싸우지 마세요. 오늘 제 생일 축하해주시러 와놓고 싸우시면 어떻게 해요. 즐겁게 즐겨요. 네?”

“아, 알았어. 난 창현이 말 때문에 멈춘 거지 너희들 용서한 거 아니야. 각오해!”

“흥! 무서울 것 없거든?”

“수영이는 돼지.”

“이익! 참자 참어! 너희들보다 정신 연령이 훨씬! 더 높은 내가 참아야지.”

다시 화를 내려고 하던 수영은 자신을 바라보는 창현의 시선을 느끼고는 대범함을 보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너희들 숙소에 돌아가면 죽었어를 연발하고 있었다.

“그래요, 잘 참으셨어요. 자, 그럼 파티를 해야지요. 누나들도 저녁 안 드셨어요?”

수영이 대인배 면모를 보이자 창현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러자 소녀들이 안먹었어를 연발하면서 준비해온 음식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소녀들이 사온 음식은 족발과 보쌈이었다. 창현이 저녁을 안 먹었을 것 같았기에 오는 길에 족발집에 들려 족발과 보쌈, 그리고 케이크를 사들고 온 것이다.

먼저 한 것은 케이크를 꼽은 것.

그리고 열 살을 뜻하는 큰 초 하나와 한 살을 뜻하는 일곱 개의 작은 초를 꽂은 그녀들은 초에 불을 붙인 채 불을 끈다.

그러자 작은 케이크에 촛불이 아름답게 빛난다.

“자, 하나 둘 셋. 생일 축하 합니다.”

태연이 스타트를 끊자 소녀들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기 시작한다.

“후!”

노래가 끝나자 창현이 입 바람으로 촛불을 모두 껐다.

짝짝짝!

“창현아 생일 축하해.”

촛불이 모두 꺼지자 박수를 치며 축하해주는 소녀들이었다.

창현은 그녀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축하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 기쁘네요, 하하!”

“자, 그럼 저녁 먹자! 우리도 먹지 못해서 배고팠거든.”

수영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가운데 족발과 보쌈 포장을 풀기 시작했다.

엄청난 열량을 자랑하는 것들이지만 열심히 열량을 소모하면 된다는 말에 묻히고 말았다.

그렇게 족발과 보쌈을 먹었는데, 신기하게도 딱 아홉 명이 배부르다고 포기할 무렵, 사온 족발과 보쌈이 모두 동이났다.

마지막 남은 보쌈을 수영이 모두 처리함으로써 끝을 맺은 것이다.

깔끔하게 뒷정리를 모두 끝내자 모두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었다.

뭔가 해야 하긴 하겠는데 마땅히 생각 나는 게 없나보다.

그럴 때 나선 것이 바로 효연이었다.

그녀는 훗훗훗! 하고 웃음을 짓더니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며 말한다.

“모두 심심한가 보군. 그래서 내가 심심타파를 위해 이걸 준비해왔지!”

그러면서 품속에서 꺼낸 것을 내미는 효연.

그 정체를 확인한 창현과 소녀들은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효연이 꺼낸 것은 다름 아닌 고스톱이었던 것이다.

설마 이걸 준비해올 줄이야.

모두가 놀란 시선을 하자 효연은 고스톱을 들어보이며 미소 짓는다.

“원래 생일 때는 고스톱이 제 맛 아니겠어? 그래서 아까 슈퍼에서 구매했지.”

“아까 커피 좀 사러 가겠다고 하던 게 그거 사러 갔던 거였어? 우와! 효연이 너 좀 짱인 듯.”

수영의 감탄사에 효연은 웃음을 지으며 콧대를 세운다.

“훗! 내가 좀 짱이지. 그래서? 어때. 할 맘이 있는가, 현군?”

도도하게 턱을 치켜 세우며 창현을 도발하는 효연이었다.

그 모습에 창현은 어이없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 누나가 아직 자신을 잘 모르는가 보다.

진정한 도신을 눈앞에 두고 말이다.

창현은 효연과 같은 모습으로 턱을 치켜 드며 자신감에 가득 찬 미소를 지어 보인다.

“누나가 잘 모르는가 보네요. 제가 고스톱에 있어서는 도신이라 불렸거든요? 오늘 누나들은 임자 만난 겁니다. 후후후!”

창현의 강한 모습에 효연이 흠칫한다. 그러다가 이내 웃음을 짓는다.

꼭 이런 사람이 있지 않은가?

자신은 어디어디에서 도신이라 불렸다고.

그런 사람들은 소녀시대 내에서도 존재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정확히 네 분류로 실력 층이 나눠졌지.

“그래? 좋아. 어디 한 본 해보자고. 그 자신감 어디까지 갈지 두고 보자고.”

“후회할 겁니다, 누나.”

본격적인 고스톱 대전이 막을 올렸다.

준비는 그야 말로 순식간이었다.

이불 대용으로 사용되던 담요는 본격적인 고스톱 대전을 위해 바닥에 깔렸고, 그 주변에 창현을 필두로 윤아와 미영, 태연이 둘러앉았다.

효연은 둘러앉은 소녀들을 보며 창현에게 말했다.

“얘들이 소녀시대 내에서 3군으로 불리거든? 어디 한 번 보자고.”

창현은 그 말을 듣고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3군이라니.

“3군? 그럼 2군도 있고, 1군도 있어요?”

“물론이지. 2군도 있고, 1군도 있어. 그리고 얘들이 3군인 건 한 마디로 얘네가 제일 못한다는 이야기야.”

효연의 말이 자극이 된 걸까?

앉아 있던 태연이 발끈해서 외친다.

“야! 우리가 왜 3군이야? 그냥 조금 못할 뿐인데!”

“못하니까 3군이라는 거야! 태연이 넌 그래도 어느 정도 괜찮다 쳐도 미영이랑 윤아는 완전 봉이던데 뭐.”

보아하니 미영과 윤아는 그야 말로 선수들의 자금을 대주는 봉인 듯하였고, 태연은 그 중에서도 그나마 괜찮은 듯하였으나 소위 말하는 오십보 백보 수준인 듯하였다.

태연은 그런 효연의 말이 분한 듯 이를 간다.

“너 두고 봐! 얘네 돈 다 딴 다음에 네 돈도 다 따버릴 테니까.”

“훗! 얼마나 버티나 구경해주겠으.”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는 효연이었다. 한편, 앉아 있던 윤아는 불안한 시선으로 유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언니, 전 점수 셀 줄 모르는데 어떻게 하죠?”

“내가 도와줄게. 윤아 너는 패 정리만 해.”

점수를 볼 줄 모른다는 윤아의 말에 선뜻 나서는 유리였다.

그 모습을 보던 미영은 손을 들며 말한다.

“제시! 나도 점수 볼 줄 몰라. 도와줘.”

“점수도 볼 줄 몰라? 으이구! 알았어.”

국민(?) 게임인 고스톱의 점수를 볼 줄 모른다니!

수연은 한심한 표정을 지었지만 구박하다가는 자칫 돈줄(?)인 미영이 삐져서 고스톱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녀의 옆에 앉는다.

태연은 그래도 3군 중에서 엘리트인 듯 점수를 볼 줄 아나보다.

본격적으로 판이 시작되려 하자 게임에 임하지 않는 소녀들도 빙 둘러 앉아 흥미로운 눈으로 판을 보기 시작한다.

창현이 패를 섞으면서 말한다.

“점당 100원이죠?”

“으응.”

“좀 센데…….”

소녀들의 밑천은 각각 만원이다. 월초이기에 회사에서 주는 용돈이 빵빵한 상태였지만 창현의 생일을 위해 돈을 걷어서 족발과 보쌈 케이크를 샀기에 이번 달 용돈은 무척 빡빡했다. 그랬기에 고스톱을 통해 용돈을 증진시키겠다는 야망과 함께 자칫하다가는 피같은 만원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불안하게 떨리는 미영의 눈과 이를 악 물고 있는 윤아, 그리고 창현이 섞고 있는 패를 노려보는 태연의 모습이 창현의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 창현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이런 건 어때요?”

“어떤 거?”

창현이 입을 열자 윤아가 그를 보며 묻는다. 그러자 창현은 능숙하게 패를 섞으면서 말한다.

“하다 보면 분명 올인 되는 사람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근데 분명 올인이 되면 마이너스가 되는 사람도 있겠죠. 마이너스 천원 이상이 되면 그 돈을 딴 사람의 부탁 하나를 들어주는 거 어때요?”

그의 말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모든 소녀들, 심지어 가장 무관심하던 주현까지 반응을 보인 것이다.

특히나 이들 중에서 주동자 격이라 할 수 있는 효연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부탁이라… 호오! 재미있겠는데? 너희들은 어때?”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윤아의 대답이었다. 그녀는 창현의 부탁으로 인해 얻어낼 것을 생각하자 두 눈에 강렬한 욕망이 생겨났다. 저번에 여장이라는 터무니없는 부탁을 해버렸지만 다시 킵해놓으면 분명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으리라.

다른 사람들도 별다른 이의가 없어 보였다. 그녀들의 눈은 흡사 일확천금에 눈이 멀어버린 도박꾼의 모습과도 같았다.

‘창현이라면…….’

대부분 창현의 부탁을 얻어냈을 경우를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경우 대다수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얻을 수 있는 것이 큰 만큼 자신이 잃을 수 있는 것도 크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 모두 승낙한 거죠?”

모두가 승낙을 하자 창현의 입가에 미소가 서린다.

도신을 몰라본 죄, 파산으로서 깨닫게 되리라.

착착- 패를 섞던 창현의 손놀림이 전문가의 그것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뒤바뀐 창현의 모습에 모두가 놀란 눈으로 보는 가운데, 창현이 입을 연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본격적인 고스톱 대전의 시작이었다.


“쓰리고에 광박, 그리고 아! 멍따까지 되었네요. 에 그러니까, 쓰리고가 4천원이면 광박에 멍따까지 더하면… 총 16000원이 되네요, 태연 누나.”

쿠궁!

창현의 말에 가뜩이나 하얀 얼굴이 더 하얗게 질리는 태연이었다.

3군과 창현의 대결은 일방적인 창현의 우세였다.

세 명이서 하는 고스톱에서 쓰리고로 순식간에 윤아와 미영을 올인 시켜버린 창현은 마이너스 이천 원을 기록하면서 두 사람에게 각각 부탁 하나를 얻어내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3군 중에서 가장 강력한 태연과 맞고로 대전을 한 끝에, 쓰리고에 광박, 멍따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맞고에 임하던 태연에게 남은 잔고는 천이백 원.

그것을 밑천으로 창현을 꺾고 재기를 하려고 했지만 실력이 차이 나도 너무나 차이났다.

3군과의 대결에서 창현은 마치 양떼 속에 뛰어든 늑대마냥 종횡무진 그녀들을 꺾은 것이다.

결국 태연은 마이너스 만사천팔백 원을 기록하며 처참하게 침몰하였고, 떨리는 손으로 천이백 원을 창현에게 건네는 수밖에 없었다.

태연을 무너뜨린 창현이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다음은 누구인가요? 2군인가요?”

효연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웃음을 짓는 창현이었다.

예상보다 훨씬 가공할 실력을 지닌 창현의 모습에 놀란 표정을 짓고 있던 효연은 창현의 말에 정신을 차린다.

“큼큼! 제법인데? 하지만 2군은 만만치 않을 거야. 여기서부터는 전부 N게임 오천만 원 이상의 보유자들이거든. 순규, 유리, 수영아. 부탁한다. 창현에게 소녀시대의 실력을 뼈저리게 각인 시켜줘.”

마치 게임의 보스처럼 말을 하는 효연이었다.

그에 무언가 불만이 있던 것일까. 순규가 효연에게 한마디 한다.

“야, 내가 순규라고 하지 말랬지? 데뷔 초니까 그것 좀 고치라니까. 평소에도 순규 말고 써니라고 불러! 알았지?”

“아, 알았어. 미안해, 써니야.”

이름에 민감한 순규의 외침이었기에 효연은 한걸음 뒤로 물러선 채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흥! 앞으로 조심하도록 해. 그리고 창현이 너. 잘 걸렸다. 맨날 스타크래프트로 날 관광 보내더니, 이번에는 네가 관광 당할 준비를 하셔.”

창현을 노려보며 강렬한 전의를 불태우는 순규였다. 창현과 스타크래프트를 할 때마다 처참하게 관광 보내던 그였기에 종목은 다르지만 국민(?) 게임 고스톱으로 그를 관광 보내버릴 계획을 세우는 순규였다.

그런 순규의 말에 창현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훗! 누나도 방금 전 태연 누나와 같은 모습으로 올인 되고 제 부탁 하나 들어줘야 할 걸요?”

창현의 말에 피 같은 만원을 잃고 실의에 빠져있던 태연이 움찔했지만 더 이상 반응하지 않았다.

순규는 그런 창현의 도발에 표정을 찡그리며 그의 맞은 편에 털썩 앉았다.

“어디 한 번 해보자고! 최후에 웃는 건 나일 테니까.”

“그래요, 어디 한 번 해보죠.”

본격적인 제2라운드가 막을 올리게 되었다.

과연 효연이 2군이라고 한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세 사람은 각각의 고유 스타일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공세는 제법 매서웠다.

순규는 그야 말로 정석 교본을 보는 듯하였다.

피를 중점적으로 확보하면서 광박을 면하기 위해 반드시 광을 하나 먹었고, 상대방의 점수 따내는 것을 방해하면서 자신의 점수를 쌓아나갔다.

유리는 초단, 홍단, 청단 같은 깃발류를 은밀하게 노리는 플레이를 하였다. 하지만 견제가 워낙 강력하였기에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고도리를 시도하고는 하였지만 그것도 무리수였다.

수영은 광을 확보하는 플레이를 하였다. 하지만 반드시 광을 확보하는 순규와 창현의 방해로 인하여 번번이 실패하였다.

2군과의 대결은 제법 치열하였다. 3군과 창현의 대결은 순식간에 난데 비해 2군과는 접전에 접전을 벌인 것이다.

그러다가 차츰 전황이 기울기 시작하였다. 준비해온 전략이 완전히 어긋난 유리가 창현에 의해 올인을 당하면서 안타깝게도 포기를 선언하는 수밖에 없었고, 뒤이어 올인을 당한 것은 수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순규였다. 태연처럼 천이백 원 남은 암울한 상황이 아닌, 본전보다 많은 만오천 원이나 있는 상태에서 맞고 상태가 된 것이다.

방금 전 창현이 수영을 올인 시켰기에 패를 섞는 것은 창현이었다.

그는 순규를 보면서 웃음을 지었다.

“일대일 상황이네요. 이제 누나가 올인 당할 때가 되었어요.”

창현의 말에 순규가 도끼 눈을 뜨며 말한다.

“내 주 종목이 맞고거든? 창현이 네 눈에서 피눈물이 나오게 해주겠어!”

그 말과 함께 힘차게 맞고에 임하는 순규였다.

정석 스타일로 밀어붙이는 순규는 한방에 올인 시키기 무척 까다로운 스타일이었다. 멍따는 물론이고, 광박과 피박을 먹이는 것도 무척 힘겨웠으니 말이다. 한방에 털어먹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 창현은 야금야금 순규의 돈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스타크래프트를 하면서 느낀 것은 순규가 무척 급한 성격을 지니고 있고, 승부욕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적은 점수로 꾸준히 돈을 잃다 보면 짜증이 유발될 수밖에 없고, 그리 되면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패를 남발하게 될 것이다.

창현의 의도는 제대로 적중하였다.

딱 7점이 되면 칼같이 스톱하는 창현의 플레이에 의해 순규의 얼굴에 점점 짜증이 어리기 시작했고, 침착하여 최소한의 점수 밖에 낼 수 없던 판에 점점 빈틈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틈을 파고들어 쓰리고와 함께 광박으로 순규의 돈을 한 번에 올인 시키는데 성공한다.

돈을 모두 쓸어담은 창현은 승자의 웃음을 짓는다.

“제법 강했지만 좀 더 연습해야 할 것 같네요.”

“이익! 두고 봐, 너!”

악당이나 할 법한 진부한 대사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순규의 처지였다.

그렇게 2군을 모조리 털어먹은 창현이 효연을 바라본다.

설마 2군까지 맥없이 털릴 줄 몰랐는지 그녀는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가 그녀의 시선이 수연에게 향한다. 수연도 효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친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시대 내에서 최강의 고스톱 실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바로 두 사람이었다.

“후후! 네가 소녀시대 2대 마후 중 하나인 청단마후 나 효연과 오광마후 제시카를 불러낼 줄은 몰랐다. 아주 제법이야.”

퍽!

“내가 그 별명으로 부르지 말랬지?”

효연이 말한 별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인상을 찡그리며 그녀의 등을 때리는 수연이었다.

그런 수연의 말에 움찔하는 효연이었지만 이내 오연한 시선으로 창현을 바라본다.

효연과 수연을 보면서 창현은 한순간 만만치 않은 강자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었다.

이 누나들… 조금 쳐봤다 수준이 아니었다.

강자는 강자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자리에 앉는 폼부터 시작하여 패를 기다리는 모습까지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창현은 침중한 안색으로 고스톱 패를 들고 섞기 시작한다.

“어디 한 번 해보죠.”

소녀시대 최강 라인인 1군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

단순히 패를 돌리는 것임에도 창현의 얼굴에는 긴장이 가득하였다.

1군이라 불리는 두 사람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던 것이다.

심상치 않은 느낌에 창현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고, 한층 신중한 모습으로 임하기 시작했다.

짝! 짝!

과연 1군이라 불리는 멤버답게 패를 맞출 때도 맛깔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치열하게 패를 내밀며 나기 위해 필사적인 세 사람의 모습을 소녀들이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점점 인기를 얻게 되면서 숙소 밖에 사생팬이 생겨날 정도가 된 소녀시대는 휴일이 되어도 외출이 통제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컴퓨터가 있기는 하지만 특별히 하는 게임이 없는 그녀들이 가장 즐기는 것이 바로 고스톱이었다.

그중에서도 수연과 효연은 소녀시대 내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자랑하였다. 상대의 맥을 끊어놓는 플레이와 치밀한 두뇌 싸움은 스타크래프트로 단련이 된 순규조차 맥을 못출 정도였던 것이다.

그랬기에 항상 주현을 제외한 여덟 명이 돌아가면서 하다 보면 마지막에 남는 것은 수연과 효연이었다. 그리고 둘의 실력은 거의 막상막하여서 고하를 가리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 그에 비견되는 실력자 창현이 나타난 것이다.

첫 판의 승리를 거머쥔 것은 수연이었다.

짝!

“스톱!”

팔광을 먹은 수연이 손을 내밀며 스톱을 외친다.

그리고 패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일광, 팔광, 똥광을 먹은 수연이 3점으로 난 것이다.

비광을 먹은 창현은 광박을 면했지만 효연은 광을 먹지 못했기에 광박을 쓰게 되었다.

300원을 건네면서 창현은 마른 침을 삼켰다.

‘과연 오광마후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었어. 광으로 순식간에 점수를 내다니. 방심하면 안 되겠다.’

그 다음 판의 승리를 거머쥔 것은 효연이었다.

패 두장이 붙는 소리와 함께 효연의 입에 미소가 걸린 것이다.

“스톱! 홍단, 났어. 후후! 4점이야.”

자신을 청단마후라고 해놓고 홍단으로 점수를 낸 효연이었다.

창현은 효연에게 400원을 건네면서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

‘이 누나들 진짜 실력자네. 방심하면 올인 되겠다.’

능숙하게 패를 섞는 효연을 보면서 표정을 굳히는 창현이었다. 그리고는 적당히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적당히 한 적도 없지만 3군과 2군을 무찌르면서 약간 풀어진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다.

마음을 다잡은 창현은 본격적으로 게임에 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벌어진 접전은 그야 말로 치열함 그 자체였다.

효연이 청단을 노리면 수연이 청단을 먹어버렸고, 수연이 광을 노리면 창현이 광을 먹었다. 그리고 창현이 피로 점수를 내려고 하면 그가 가지고 있을 법한 패를 두 사람이 일찌감치 선점하였다.

그야 말로 용호상박 막상막하 난형난제 등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는 수식어를 사용해도 아깝지 않은 대결이었다.

“앗!”

그러다가 효연이 실책을 범하고 만다. 승부의 분기점이라 할 수 있는 곳에서 가장 중요한 똥을 싸버린 것이다. 이걸 먹어야 효연이 광박과 피박을 면할 수 있는데 말이다.

순간 창현의 눈이 빛났다. 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수연에게 깔려 있는 것은 현재 조커 한 장뿐이었기에 이걸 먹으면 쌍피를 얻게 된다.

‘먹는다!’

결정을 내린 창현이 손에 쥐고 있는 똥을 먹는다.

“아!”

“…윽!”

그러자 효연과 수연의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 나온다. 효연이 똥을 싸버리는 바람에 이번 판이 창현에게 원사이드 하게 흘러가버린 것이다.

거기에 뒤집은 패가 일광이어서, 순식간에 삼광으로 나버린 창현이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효연을 바라보았다.

“후후! 누나 아쉽게도 이번 판으로 바이바이네요. 원 고!”

효연에게 Game Over를 선언하는 창현이었다.

그리고 쓰리고 까지 간 창현은 스톱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포 고와 함께 피를 먹지 않고 있는 수연이 피를 먹게 해주고 싶었지만 현재 수연이 청단 두 개를 먹은 상태였고, 자신 다음이 수연의 차례였기에 자칫 고박을 쓸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든 것이다.

창현이 스톱을 선언하자 효연은 쓰리고와 피박, 광박으로 인하여 한방에 파산을 하였다.

순식간에 알거지가 된 효연을 보며 창현은 웃음을 지었다.

“후후후! 저의 승리로군요.”

“…분하다. 다음에는 반드시 널 꺾어주겠다.”

훗날 복수를 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무너지는 효연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수연뿐이었다.

그녀도 피박을 쓰지 않았을 뿐이지 남은 돈이 얼마 되지 않았다.

창현은 수연을 보면서 물었다.

“수연 누나, 계속 하겠어요? 포기하지 않고?”

이미 일곱 명을 올인 시키고 수연까지 올인 직전. 창현이 딴 돈은 무려 칠만팔천 원이나 되었다.

이천 원 밖에 남지 않았지만 수연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녀는 담담한 얼굴로 창현에게 말한다.

“난 고스톱보다 맞고를 더 잘해. 상관없으니까 계속 하자.”

“좋아요. 저도 맞고가 더 자신 있거든요.”

본격적인 맞고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흔들고 피박. 2800원이야.”

차가운 수연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진다.

그에 창현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크윽, 이럴 수가…….”

벌써 연속 네 판이나 창현이 패배하였다.

그리고 네 판만에 창현이 잃은 돈은 무려 17200원!

수연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맞고의 진정한 강자였던 것이다.

행운의 여신이 그녀의 손을 들어주듯 조커가 족족 그녀의 손에 들어가기 일쑤였고, 창현이 의도하던 것들이 번번이 어긋남에 따라 창현은 삽시간에 궁지에 몰렸다.

이 정도 기세라니.

창현은 이를 지그시 깨물며 수연의 상승세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지더라도 7점에서 끊어내기 위해 고도리나 홍단, 청단, 삼광 등 갖가지 위험 요소를 배치하였지만 수연은 그야 말로 과단성과 절제가 무엇인지 보여주면서 과감할 땐 고를 외쳤고, 멈춰야 할 때는 단호하게 잘라버리는 면모를 보였다.

그로 인해 창현은 4800원을 잃어야만 했다.

순식간에 22000원을 잃은 것이다.

“큭…….”

피(?) 같은 돈이 수연에게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창현이 신음을 흘렸다.

그런 창현을 보며 수연은 훗! 하고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에 발끈하는 창현. 갑자기 전의에 불타올랐다.

그래, 반드시 꺾고 말아주겠다.

분명이 흐름은 자신에게 올 테니까.

그걸 기다리며 창현은 이른 바 거북이 작전을 실행하였다.

맞고를 하다 보면 어느 특정 상대의 기세가 한 번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를 때가 있다.

그때를 잘 견뎌내야 한다. 그걸 잘 견뎌내기만 하면 분명 흐름은 다시 한 번 자신에게 올 테니까 말이다.

창현은 모든 패를 동원하여 수연을 10점 안으로 끊어내는데 주력하였다.

그렇게 세 판 정도가 되었을까, 창현의 예상처럼 흐름이 서서히 창현에게로 넘어오기 시작하였다.

수연에게 집중되다시피 하던 조커가 창현에게 점점 넘어오면서 흐름이 뒤집히기 시작한 것이다.

“10점에 누나 피박이네요. 2000원이요.”

수연의 패배를 기점으로 흐름은 창현에게 넘어왔다.

그리고 기회는 왔다.

조커 세 장이 창현에게 모두 깔린 것이다.

그리고 구쌍피와 똥쌍피를 먹은 창현은 단번에 2점이 된다.

그에 반해 수연은 아직 깔린 것조차 없는 상태.

수연의 눈에 잔떨림이 일어났고, 창현의 눈이 빛났다.

이 판이 기회다, 이번 판으로 잃은 돈을 한 번에 복구하자.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창현의 기세를 꺾고자 수연은 분전하였지만 이미 흐름은 창현에게 넘어온 상태였고, 운까지 따르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비쌍피를 먹어 피박을 면하려다가 싸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창현이 가지고 있으면서, 단번에 나버린 창현은 고를 외친다.

그렇게 승승장구한 끝에 창현이 이룩한 것은 전설의 5고였다.

“24점에 원고, 투고, 더하면 26점이고… 쓰리고를 했으니까 54점에… 포고 110점, 파이브 고 222점이네요. 거기에 피박이니까 44400원이네요.”

“…….”

엄청난 금액에 수연은 할 말을 잃었다. 이 판 하나로 올인을 당해버린 것이다.

처음 맞고를 할 때 그녀가 가지고 있던 돈은 2천원이었고, 창현에게 연승을 거두면서 27800원으로 늘어난 상태였다. 하지만 굴욕의 5고를 당하게 되면서 모든 돈을 잃게 된 것이다.

“와아…….”

지켜보고 있던 소녀들도 감탄사를 터뜨렸다. 설마 저 점수가 나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것이다.

창현은 수연이 내미는 돈을 쓸어담으면서 미소 지으며 말한다.

“누나도 마이너스 1천원이 넘으니까 부탁 하나 킵 해둘게요.”

그러면서 창현이 주변을 둘러본다. 그의 얼굴에는 승리자의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 모습이 그렇게 얄밉게 느껴지는 소녀들이었다.

“이제 끝이네요.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누나들.”

창현의 말에 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소녀들. 정말 분했다. 이렇게 관광 당할 줄이야.

이대로 물러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수연이 앞으로 나서면서 말한다.

“아직 승부가 끝난 게 아니야.”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창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끝이 아니라니, 설마 더 하겠다는 이야기인가?

그런 창현의 의문을 풀어주기라도 하듯, 수연이 손을 들어 한 사람을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사람. 그 사람의 정체는 바로…….

“소녀시대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나와라 서로로!”

“에?”

유일하게 참전하지 않은 주현이었다.

창현은 주현을 보면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주현이 고스톱을 칠 줄 알고 있었단 말인가?

그 놀라운 감정은 그대로 말이 되어 흘러 나왔다.

“주현 누나도 고스톱 칠 줄 알았어요?”

“나, 난 할 줄 몰라.”

주현은 창현이 자신을 발랑 까진(?) 여자로 볼까봐 서둘러 부인하였다. 언니들이 고스톱 치는 걸 본 적은 많지만 쳐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도박은 남의 돈을 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돈을 잃을 수도 있다는 리스크가 있기에 주현은 매번 구경만 하였다.

그런 주현의 팔목을 잡으면서 수연이 말했다.

“주현아 언니 말 믿고 한 번 해봐.”

주현이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다.

“저, 전 도박 같은 거 안 해요. 게다가 창현이는 엄청 잘하는 것 같은데 전 잘하지도 못하고요.”

방금 전 보지 않았던가. 창현이 놀라울 정도의 실력으로 멤버들을 하나하나 격침시키는 것을 말이다.

엄청난 실력을 지닌 창현과 자신이 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고개를 젓는 주현을 보면서 수연이 설득한다.

“주현아, 한 번만 해보라니까? 내가 돈 대줄 테니까 해봐. 알았지?”

돈을 대주겠다는 수연의 말이 갑자기 끌리는 걸 느끼는 주현이었다. 다른 언니들도 재미있게 즐기고 있는 게임이지 않는가? 그런데 자신은 매번 할 줄 모른다는 걸 핑계로 미뤄왔지만 솔직히 언니들이 하는 것을 보고 재미있어 보인 건 사실이다.

게다가 뭐에 뭐를 맞춰야 하는지도 하도 보다 보니 익혀놓은 상황이다.

자신이 가장 도박을 경계하는 이유가 돈 때문이 아닌가?

그런 시점에서 수연이 돈을 대주겠다고 하는 건 자신이 염려하던 것이 사라진다는 걸 뜻했다.

결국 수연의 말에 주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아, 알았어요. 대신 전 그림만 맞출 줄 아는데 언니가 좀 봐주세요.”

“알았어. 그 정도야 뭐.”

수연은 흔쾌히 승낙을 한다.

그렇게 창현과 주현의 맞고 대결이 성립되려던 차, 창현이 말한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때요. 돈을 걸지 말고 부탁 하나만 걸고 하는 거예요. 주현 누나가 하길 꺼려하는 건 돈이 오가는 거여서 그런 거 아닌가요?”

주현의 후배답게 그녀가 무엇을 염려하는지 파악한 창현이었다.

창현의 말에 주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돈이 걸린 게임이기에 하기를 머뭇거린 것이지, 다른 언니들이 즐겁게 하던 고스톱을 그녀 또한 해보고 싶었다. 돈만 걸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럼 돈을 걸지 말고 부탁하는 걸로 해요. 대신 이런 거 어때요. 10점 이하는 간단한 심부름 이하의 부탁만 해야 되고 50점 이하는 여기저기 와달라는 부탁을, 그리고 100점 이하는 있는 힘껏 도와주는 부탁이고 100점 이상은 말하는 모든 걸 들어줘야 하는 거죠.”

‘뭐든지… 들어줘?’

순간 번뜩이는 주현의 눈이었다. 창현의 제안을 듣는 순간 머리에 강렬한 충격이 강타한 것이다.

뭐든지 들어준다니! 이보다 더 매력적인 부탁이 어디 있는가.

창현의 말에 번쩍인 것은 주현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소녀들도 창현의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든 표정을 지은 것이다.

이러다가 만에 하나 주현이 이기게 되면?

그렇게 생각하자 다급해졌다.

하지만 주현은 이미 선수를 쳤다.

창현의 말에 재빠르게 대답한 거였다.

“좋아… 대신 두 말하기 없기다?”

이것도 결국에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무언가를 걸어야 하는 것이지만 주현은 단호하게 도박을 해보기로 결심하였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걸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눈을 번뜩이며 게임에 임하는 주현이었다.

그런 주현을 보면서 창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패를 섞기 시작했다.

능숙하게 패를 섞으면서 창현은 주현에게 말한다.

“후후! 주현 누나 웰컴 투 헬입니다. 부탁 하나 잘 받아갈게요.”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하였다.

우선 선을 정하기 위해 여덟 장을 깔아두었다. 여기에서 더 높은 숫자를 선택하게 되면 선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창현은 엎어놓은 여덟 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더 높은 숫자가 나오면 먼저 하는 거예요. 누나부터 하실래요?”

그 말에 주현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초보니까 창현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할 생각이었다.

“아니, 창현이 너부터 해봐.”

“알았어요. 그럼 제가 먼저 뒤집을게요.”

고개를 끄덕인 창현이 여덟 장 중 하나를 뒤집었다.

그리고 드러난 패를 보면서 창현은 환호성을 질렀다.

“아싸! 똥! 이거 아무래도 제가 이기겠는데요, 후후후!”

똥은 12월까지 있는 고스톱 패 중에서 두 번째로 높은 11월이다. 즉, 주현이 12월인 비를 뽑지 않는 이상 창현이 선을 선점해놓았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선을 점하면 무척이나 좋다. 우선 깔려 있는 여덟 장 중 조커가 있을 수 있기에 그렇다. 게다가 심리적으로 우위에 서서 들어가는 면이 있지 않은가? 그것 때문에 창현은 선이 되길 원하는 것이다.

창현이 좋아하자 주현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남아있는 일곱 장 중 한곳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것을 뒤집었다.

“나는 이게 나왔는데… 좋은 건가?”

“…….”

주현이 뒤집은 것을 본 창현의 웃음이 뚝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소녀들에게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 이거 비야 비! 비는 12월이니까 주현이 너가 선이야!”

그렇다. 주현이 뒤집은 것은 공교롭게도 가장 높은 12월인 비였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현이 가장 높은 것을 뽑았으므로 그녀가 선을 점하게 되었다.

자신이 선을 점하게 되었다고 좋아하던 창현의 표정이 시무룩하게 변했다.

무언가… 예감이 좋질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 여섯 장이 뒤집기 시작하는데, 창현의 입에서 헛바람이 흘러나왔다.

“헉! 이, 이건…….”

남은 여섯 장 중에서 쌍피인 조커가 두 장이나 존재했던 것이다.

설마 조커가 두 장이나 깔려 있을 줄이야.

이로 인해 주현은 피 네 장을 우위에 두고 시작하게 된 셈이었다.

소녀들은 게임의 운이 주현에게 쏠리는 것을 느끼고는 주현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주현아 힘내! 힘내서 저 악랄한 악마를 무찔러버려!”

“저 전귀는 막내의 순수함으로 무찌르는 거다! 가라 서로로!”

피 같은 용돈을 따갔기 때문일까.

어느덧 창현은 소녀들 사이에서 악마가 되어 있었다.

소녀들의 격렬한 응원에 창현은 2002년 월드컵에서 압도적인 실력의 우위가 있음에도 결국 패배한 유럽의 강호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들도 이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 정도로 응원은 일방적이었으며, 창현에게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불리한 상황에 불을 지른 것이 있었다.

주현이 패 한 장을 내려놓으며 입을 연 것이다.

“에… 그러니까, 이건 이렇게 하는 게 맞나.”

그러면서 주현이 내려놓은 것은 다름 아닌 조커였다.

“컥!”

그걸 본 창현은 목이 막힌 소리를 냈다. 설마 주현이 시작부터 모든 조커를 선점하고 시작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불길해도 너무 불길했다.

한 장 가져간 주현이 구쌍피를 먹는다. 순식간에 피가 아홉 장이 되어 점수를 내기 직전이다.

창현은 그걸 보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자신의 승리가 어렵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래도 있는 힘껏 임해보기로 마음 먹는다.

‘똥이 없으니까, 비 쌍피로 피를 확보한다.’

비 쌍피를 먹어서 비광을 확보하는 창현이었다.

그때, 주현의 뒤에서 수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주현아, 이거 내. 이렇게 해서.”

“이, 이렇게요?”

수연의 조언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주현이 이내 그녀가 시킨대로 세 장을 쥐더니, 패 하나에 내리친다. 바로 똥에 폭탄을 내리친 것이다.

“켁!”

주현이 폭탄을 하자 창현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폭탄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것이다.

그로 인해 창현은 비 쌍피를 빼앗기게 되었고, 주현은 순식간에 피로 5점을 내게 되었다.

상황이 절망적이게 된 것이다.

‘주현 누나는 점수를 더 내기 위해 고를 할 가능성이 높다. 피는 이미 무리야. 피를 버리고 다른 걸로 점수를 낸다.’

그와 함께 주현과 창현의 대결이 지속되었다.

7점으로 나게 된 주현은 예상대로 고를 외쳤고, 창현은 광을 확보하면서 고도리와 청단, 홍단, 초단을 노리기 시작하였다. 가급적 점수를 많이 내야 양질의 점수를 얻어낼 수 있는 만큼 주현은 수연의 조언 하에 고를 외치고 있었다.

“스톱.”

그러다가 창현이 4광을 함과 동시에 청단을 할 기회가 생기자 거침없이 스톱하는 주현이었다.

옆에 있던 수연은 그런 주현의 점수를 세주기 시작하였다.

“쓰리고까지 했으니까 24점에 창현이는 피박이니까 48점이네. 그리고 흔든 것까지… 96점이네. 아깝다. 100점 못 넘겼어, 주현아.”

“그, 그래요?”

100점을 넘기지 못했다는 말에 주현이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100점을 넘기면 뭐든지 다 이루어주는 부탁인데… 정말 아까운 노릇이었다.

“후우!”

창현은 주현이 96점에서 멈추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농담으로 했던 말인데 하마터면 주현에게 휘말려 처참한 패배를 겪을 뻔한 것이다. 고수는 고수끼리 하면 서로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있기에 유연하게 대처를 할 수 있는데 주현은 초보자라 그런지 창현이 대처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결국 주현을 효과적으로 막아내지 못했기에 쓰리고까지 당했고 말이다.

“어휴! 주현 누나가 복병이었네요. 이거 참.”

주현까지 이겼으면 소녀시대 전체에게 부탁을 얻어낼 수 있었을 텐데 참으로 아쉬웠다.

그렇게 고스톱을 끝내고 나니 시간이 밤 10시가 되어 있었다.

태연은 멤버들을 둘러보면서 입을 열었다.

“얘들아, 이제 그만 가자. 우리 내일 오전에 스케줄 있어. 가서 일찍 자야지.”

“그래, 알았어.”

그녀의 말에 오전에 스케줄이 있는 걸 상기했는지 자리에서 일어서는 소녀들이었다.

창현은 그런 소녀들을 보며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제 생일 축해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누나들. 그리고 이거 받으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창현은 소녀들에게 땄던 돈을 돌려준다.

갑자기 돈을 돌려주는 창현의 모습에 소녀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 창현을 바라본다.

그러자 창현이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용돈을 타서 쓰는 누나들이랑 저랑은 다르잖아요. 전 부탁 하나씩 얻은 걸로 충분하니까 받아요. 뭐, 만원보다 비싼 부탁거리를 얻었으니까 만족해요.”

“어이구 말하는 것도 참 기특하네.”

자존심이 상해서 돈을 돌려줄 수도 있겠지만 용돈이 넉넉하게 않았기에 거절하지 않은 채 챙기는 소녀들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창현은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여기서 숙소까지 가실 수 있겠어요?

“우리도 나름대로 방법이 있다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어. 여기서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고.”

“그것도 그러네요.”

태연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는 창현이었다. 자신도 나름대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는 만큼 누나들도 방법이 있으리라.

“오늘 정말 고마웠고요, 1월 5일에 꼭 찾아가도록 할 테니 음식 맛있게 하고 기다리세요. 아셨죠?”

“알았어. 우리만 믿어.”

1월 5일에 하는 소녀들의 일일 카페를 찾아가기로 약속한 창현이었기에 그걸 언급하자 자신들만 믿으라며 가슴을 탕탕 두드리는 소녀들이었다. 솔직히 작년 발렌타인 데이 때 겪은 것이 있었기에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뭐, 믿어줘야 기분이 좋을 것 같았기에 고개를 끄덕여준다.

그렇게 소녀들이 인사를 하면서 녹음실을 나섰고, 혼자 남게 된 창현은 소파에 누웠다.

뭐랄까, 아까 전만 해도 세상에 홀로 동 떨어진 듯한 공허함이 있었는데 지금은 매우 충만한 기분이었다.

소녀시대가 와주었기에 그런 걸까?

창현의 입가에 미소가 맺힌다.

“그 정도로 소중하다는 이야기겠지.”

아까 전과 달리 무척 홀가분한 표정을 짓는 창현이었다./




제39장 일일 카페




2008년 새해로 접어들면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바로 현의 앨범 판매가 세계에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던 것이다.

2007년 12월 24일에 한국에서 앨범 발매가 된 현의 정규 3집 앨범은 당초 동시 발매 계획을 조금 미뤄둔 채 뒤늦게 외국에서 발매되었다.

이는 차별 정책이 아니라, 석규의 사업 방식이었다.

12월 24일에 동시 발매를 하여도 상관은 없지만 며칠 뒤 연말 가요대전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곳에서 성공적인 쇼 케이스 무대를 치르게 되면 한 층 더 탄력을 받아 판매가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보통 같은 경우 신경도 쓰지 않았겠지만 현이 출연하기에 챙겨보는 사람이 있을 테고, 그 사람들로 인하여 분명 상당한 파급력을 얻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렇다.

한국 사람들이 유감스럽게 들을지 모르지만 이미 세계적인 레벨에 오른 현의 경우 앨범 판매가 한국보다 외국에서 판매하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수익을 가져다준다.

미국이나 일본 같은 경우 한국보다 인구가 훨씬 많았기에 판매도 훨씬 더 많이 되었던 것이다.

일본은 쟈니스라는, 미국은 자이브라는 거대 기획사와 연줄이 생겼기에 음반을 발매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유럽 각지에서도 음반을 발매할 예정이니 쇼 케이스를 성공적으로 치러내기만 하면 대박은 따놓은 당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던 중 가요 프로그램에서 현이 대박을 넘어서 초대박을 터뜨리자, 해외에서의 앨범 판매는 그야 말로 초대박 행진이었다.

미국은 물론이고, 그동안 정식으로 앨범 발매가 되지 않았던 일본에서도 발매가 시작되자 그야 말로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 몰이를 하며 앨범이 판매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세 달이 조금 넘었지만 그 기간 동안 준비한 현의 새 앨범이 어느 정도일지 사람들의 기대는 대단하였다. 동양인 최초로 빌보드 차트를 제패했을 뿐만 아니라 유럽 투어 콘서트도 성공리에 끝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러던 중에 연말 가요대전에서 현이 생목 라이브를 부른 것이 퍼져 나가면서 엄청난 이슈 몰이를 하였다. 그러자 특별한 마케팅 없이도 소위 없어서 못 파는 지경에 이르게 될 정도였다.

이런 소식이 한국에 잇달아 전해짐에 따라 한국에서 큰 기대 몰이를 하게 된다. 어쩌면 현의 정규 3집 앨범이 일본의 오리콘 차트와 미국의 빌보드 차트 동시 제패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갱신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증폭되었던 것이다. 이는 여태까지 누구도 하지 못했던 전대미문의 기록인 만큼 사람들의 기대는 그야 말로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그리고 라샤가 동남아시아를 돌면서 프로모션을 갖게 되자, 선풍적인 인기몰이와 함께 현의 앨범이 동남아시아에도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현의 앨범이 들어가지 않는 곳은 중국 뿐이었다.

중국에서 현의 앨범을 들여놓고 싶어 난리가 났지만 AA엔터테인먼트의 태도는 그야 말로 완고하였다. TTS기획사가 존재하는 한, 중국에는 어떠한 활동도 보이지 않을 것이라 선언하였기에 그렇다. 중국 자체가 어마어마한 시장이지만 그를 대체할 시장이 있었기에 AA엔터테인먼트는 아쉬울 것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에 중국인들은 불법 복제를 통하여 현의 앨범을 들여놓았지만 그건 인식이 부족한 사람들이나 좋아하는 것이지, 정말 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의 정식 앨범, 그것도 중국어로 녹음된 앨범을 갖고 싶어 하였다.

그런 중국인들의 성원에도 불구하고 AA엔터테인먼트는 아무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그 여론은 TTS기획사로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별달리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현의 인지도가 세계적으로 올라감에 따라 생겨난 그의 팬들은 과거 TTS기획사와 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고, 그들로 인하여 현과 라샤가 중국에서 어떠한 활동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기에 더욱 그렇다.

가뜩이나 악화일로를 걷던 TTS기획사는 현의 정규 3집 앨범 발매를 계기로 완전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현의 앨범 판매권을 따내기 위해서인지 대형 기획사들까지 TTS기획사를 공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소식을 접한 석규는 조만간 중국에 한 번 출장을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TTS기획사가 무너지기 전에 확실한 사과를 받아내고 여건이 된다면 중국 측 기획사를 인수할 생각이었다. 만약 TTS기획사를 인수하는데 성공한다면 중국에서 프로모션만 하는 것이 아닌, 본격적인 사업 활로를 뚫고 한국에서 기획사 규모를 키움과 동시에 중국 시장 진출을 노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폭발적인 관심 속에서 창현은 비교적 순탄한 나날을 보냈다.

깜짝 생일 파티 이후 하루에 한두 개 정도의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창현이 편안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꼬웠던 것일까?

석규는 매일같이 창현에게 전화를 해서 앓는 소리를 하였다. 네 녀석을 원하는 방송국이 많은데 왜 활동을 하지 않아서 자신을 힘들게 만드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석규의 결혼식이 1월 중에 있기에 요즘 광속으로 일처리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10박 12일로 유럽 신혼 여행을 가겠다는 아주 거창한 계획을 세워놓은 채 말이다. 덕분에 직원들을 많이 뽑아놓았음에도 석규의 일 처리량은 예전보다 더 많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루에 한두 개의 스케줄만 소화해서일까?

창현은 뭔가 열심히 움직이는 연예인들과 자신은 사뭇 다르다는 괴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당장 소녀시대가 자신보다 더 많은 스케줄을 소화해내고 있기에 그렇다.

“나도 정신없이 스케줄을 소화해볼까?”

사실 근래 들어 창현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매주 방송하는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할지에 대해서이다.

이번 앨범을 발매하면서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창현의 말에 많은 팬들이 왜! 하는 의문을 내놓았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창현도 왜? 라는 의문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석규의 말로는 1위 선정 방식이 그리 공평하지 못하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것 말고도 더 있는 듯하였다. 하지만 그걸 알지 못하기에 정작 당사자인 창현도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것 때문에 창현은 앨범을 발매하였음에도 자신의 노래를 부를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저 매일 함께 이동하는 로드 매니저와 세희만 귀 호강을 할 뿐이다.

“지영이 보컬 트레이닝이나 봐줄 걸 그랬나.”

앨범 발매 이후 지영이와 통화했던 내용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지영이가 노래를 더 잘하고 싶다고 자신에게 말하면서 가끔 자신의 노래를 봐달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창현은 어이없는 오해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던 지영이가 다시 밝아진 것 같아서 흔쾌히 수락을 하였지만 막상 활동을 하다 보니 시간이 상당히 남는다는 걸 알아버렸다. 이 남은 시간은 어쩌란 말인가.

“조만간 바빠질 테니, 뭐.”

스케줄이 한두 개여서 시간이 남아돈다는 투정은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이 지나고 나면 본격적으로 바빠질 테니 말이다.

석규가 말하길 쇼 케이스가 너무 대박이 나서 오히려 더 바빠졌다나? 밀려드는 CF 제의와 화보 제의 같은 것 중에서 이미지에 알맞은 것들을 추려내는 것만으로도 고되다고 우는 소리를 하는 석규의 모습을 떠올리며 창현은 웃었다.

매일 전화를 해도 창현이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결국에는 남자의 생명인 허리를 언급하면서 창현의 반응을 유도하던 석규의 모습이 떠올랐기에 그렇다.

“일을 그렇게 좋아하셨으니 고생하세요. 곧 결혼도 하시면서 앓는 소리를 내시기는.”

그 말과 함께 창현은 시계를 보았다. 점심시간이 막 지나고 있었다.

오늘 날짜는 1월 5일이다. 소녀시대가 일일 카페를 한다고 자신을 초대했던 날이기도 하다.

오전에 인터뷰를 하는 스케줄이 있었는데, 의외로 일찍 끝났기에 창현은 잠깐 녹음실에 들려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잠시 후면 오후 스케줄이라 할 수 있는 일일 카페 가는 것을 위해 로드 매니저가 데리러 오리라.

점심시간이 지났지만 창현은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였다.

일일 카페에서 소녀들이 직접 한 음식도 판다는 말에 점심을 비우고 일일 카페에서 배를 채우려는 위험한(?) 계획을 세워놓은 상태였던 것이다.

그래도 설마, 다른 사람들도 먹는 건데 제대로 음식을 만들겠지 싶은 창현이었다. 설마, 방송에 나오는 건데 먹으면 이승과 저승을 오락가락 헤매게 만들 만한 음식을 만들겠는가.

“음식에 관해서는 믿기 힘들지만… 그래도 방송이니 잘하겠지.”

그렇게 자기 위안을 삼는 창현이었다.

그리고 약속 시간이 되어서 옷을 챙겨 입던 창현은 세희의 갑작스런 연락을 받고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인터뷰 스케줄이 하나 더 생겼다고요? 아니, 갑자기 잡으시면 어떻게 해요.”

-미안, 어쩔 수 없었어. 내일로 잡혀 있었는데 갑자기 안 된다고 하더라고. 대신에 일찍 끝내기로 했으니까 이해해줘.

“늦으면 어떻게 하라고요.”

이미 일일 카페에 가기로 한 상태인데 어쩌란 말인가.

창현의 말에 날이 서 있었다.

그 말에 세희가 대답해주었다.

-일찍 끝난다니까 괜찮을 거야. 일일 카페 하는 시간도 들어보니 충분히 가서 즐길 수 있어. 그러니 변동된 스케줄에 따라줘. 미안해, 창현아.

“후! 어쩔 수 없죠. 원래 주인공은 조금 늦는 법이라고 하니 누나 말에 따를게요.”

일일 카페가 언제까지 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창현은 납득했다.

오히려 주인공은 늦게 등장한다는 불변의 법칙(?)을 들먹이며 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할 뿐이었다.

잠시 후, 로드 매니저가 벤을 몰고 오자 창현은 급하게 잡힌 인터뷰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녹음실을 나섰다.


한편, 창현이 갑자기 잡힌 인터뷰 스케줄을 하러간 사이 소녀시대는 마린 보이라 불리는 기대주, 박태환과 함께 일일 카페를 개시하기 시작하였다.

일일 카페로 벌어들인 돈은 태안 기름 유출 사건의 복구비용으로 보내기로 하였다. 좋은 취지에서 하는 만큼 소녀들은 자신들의 인맥을 총 동원하여 아는 사람들에게 시간이 비면 찾아와달라고 부탁을 해놓은 상태였다.

오프닝에 앞서 오늘 하루 장사하게 된 장소 앞에 모인 소녀들과 박태환이었다.

리더답게 태연이 앞으로 나서면서 말한다.

“오늘 열심히 해보자.”

“알았어!”

“그래, 열심히 하자.”

태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힘차게 파이팅을 하는 소녀들이었다.

그런 소녀들을 보면서 태연이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능률을 올리기 위해서 팀을 두 개로 나누어서 경쟁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때? 나랑 태환이가 각각 멤버들을 뽑아서 마린팀 대 소녀팀으로 하는 거야.”

“좋네. 좋다.”

“경쟁이 필요해. 맞아, 좋다.”

그와 함께 본격적으로 팀을 뽑기 위해 가위 바위 보가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정해진 팀은 이러했다.

태연을 중심으로 한 소녀팀은 태연, 수연, 효연, 서현 네 명으로 이루어졌고, 박태환을 중심으로 한 팀은 박태환, 미영, 유리, 수영, 윤아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순규는 참여하지 못하였다. 갑작스러운 감기로 인하여 미처 참여하지 못한 것이다. 그로 인해 박태환은 물론 소녀들도 아쉬워하였지만 그래도 건강이 우선 아니겠는가? 건강을 챙기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순규의 빈자리를 훌륭히 채워 마음 편히 쉴 수 있게 해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팀이 정해지자 두 팀은 시작 전부터 치열하게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이긴 팀 이름으로 기부가 된다는 PD의 말에 시작 전부터 신경전을 벌이고 있던 것이다.

“이기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겠지만 열심히 해보자고.”

그래도 일단 많은 돈을 벌어야 했기에 건투를 기원하는 말과 함께 다 같이 파이팅을 하였다.

카페 오픈 2시간 전, 소녀들은 본격적인 홍보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우선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많은 홍보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각자 인맥이 닿는 연예인들을 초대한 상태였지만 장사를 할 때 손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렇기에 우선 밖에 나가 홍보를 하기로 하였다.

날씨가 제법 추웠기에 소녀들은 밖으로 나가려들지 않았다.

결국 서로 미루다가 마린팀이 정한 것은 가위 바위 보였다. 모두 나가기 싫어하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가위 바위 보로 가려내는 수밖에.

결과는 금방 나왔다.

모두가 보자기를 냈을 때 미영 혼자 주먹을 낸 것이다.

자신 혼자 걸리게 되자 미영은 울상을 지었다.

“아, 뭐야. 흑흑!”

카메라를 보며 귀엽게 우는 시늉을 하던 미영이 확 고개를 든다. 그리고 원한(?)이 가득한 눈으로 자신의 팀을 바라보면서 입을 연다.

“그럼 함께 홍보할 인물을 제가 정하도록 할게요. 유리야!”

“넌 뭐야! 하하하…….”

시큰둥하게 말하던 유리는 웃음을 짓고 있는 미영의 모습에 같이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껴안았다.

그렇게 마린팀의 홍보대사 두 명이 정해졌다.

반면 소녀팀의 홍보대사는 순식간에 정해졌다.

바로 효연과 주현이 당첨된 것이다.

효연은 카메라를 보면서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홍보하면 저 효연이죠. 후후!”

하지만 주현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효연 옆에 서 있던 주현은 울상을 지으며 말한다.

“아아, 에, 저라고요?”

나가기 싫어하는 주현이었다. 추위 때문인가, 아니면 효연 때문인가.

칭얼거리는 주현의 모습에 효연이 발끈한 표정을 짓는다. 아무래도 후자로 생각을 했나보다.

“너 지금 언니랑 가기 싫다는 거야?”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는 효연을 보며 주현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에요. 가요, 가요.”

그 사이 미영과 유리는 확성기를 든 채 카메라를 바라보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었다.

“티파니, 유리, 마린팀 파이팅!”

“소녀팀 파이팅!”

갑자기 중간에 난입하며 소녀팀 파이팅을 외치는 효연이었다.

홍보를 위해 확성기와 광고 포스터를 준비한 두 팀 홍보대사들이 밖으로 나갔다.

그 사이 두 팀은 서빙 역할을 정하고 있었다.

수영이 주방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저희 양다리 걸치면 안 되요?”

요리와 서빙을 같이 하자는 것이었다.

그 말에 태연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아무래도 서빙은 손님들에게 호감을 줘야 하니까 호감형이 가야 하지 않을까? 내 생각에는 윤아가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첫 인상이 중요하니까.”

그러면서 수영을 바라보는 태연이었다. 즉, 수영보고 첫 인상이 좋지 않다는 말이었다.

태연의 말에 발끈한 수영이 원두를 갈아내는 기계를 보면서 말한다.

“이거 뜨겁죠?”

뜨겁다고 하면 확 들이부을 기세였다.

수영의 행동에 주방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지었다.

“들이 붓고 싶은데, 말이지.”

그렇게 서빙 역할을 정한 주방팀은 박태환이 잠시 인터뷰를 하는 사이, 주방 이곳저곳을 둘러보기에 바빴다. 밥통을 열고 냄새를 맡는 수영의 모습은 그녀의 식탐이 강하다는 것을 방송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증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주방 이곳 저곳을 둘러보던 주방팀은 본격적인 요리 실습을 위해 손을 씻고, 음식을 가르치기 위해 온 선생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주먹밥을 하는 비법을 전수받기 시작하였다. 요리에 있어서는 거의 젬병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기에 그렇다.

실습 삼아 수영이 주먹밥을 만드는데, 주먹밥 안에 넣은 참치의 양이 달라 크기가 달라지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주방에서 음식을 배우는 동안, 홍보를 하러 떠난 소녀들은 일일 카페의 존재를 알리기도 하고, 기부금을 받으면서 무사히 홍보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리고 커피가 나오는 기계 앞에서 유리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수영을 보며 말한다.

“어머, 수영이 너 이거 모르니?”

종종 깝친다는 이유로 깝율이라 불리는 유리의 본성이 나오는 것일까?

수영을 보면서 옆에서 자신감이 가득한 웃음을 짓는 유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소녀시대 데뷔곡인 <다시 만난 세계> 뮤직비디오에서 유리는 바리스타로 나오면서 이 기계를 직접 다루는 장면을 찍었기에 소녀들 중에서 남다른 조예(?)를 지니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기계를 만져보려고 하니 바짝 언 모습을 보이며 요리 보조 선생님에게 묻는다.

“해도 되죠?”

아무래도 비싼 기계라서 그런지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조심스럽게 다루는 유리를 보면서 그 모습이 신기했는지 수영이 다가가며 기계를 만진다.

“이렇게 하면 빠지는구나.”

푸핫!

무슨 버튼을 눌렀는지 갑자기 기계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면서 커피가 왕창 쏟아졌다.

유리가 그 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지었다.

“이것 봐요. 이게 바로 배운 사람과 배우지 않은 사람의 차이라니까요?”

“죄, 죄송해요!”

저지른 일 때문인지 수영은 유리의 말에 반응하지 못한 채 선생님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할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서빙을 해야 할 때 주의할 점에 대해서 단독 샷을 잡은 채 인터뷰를 하던 수영은 갑작스러운 윤아의 난입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래, 윤아야.”

“수영 언니! V.O.S 온데!”

“거짓말?”

놀랐기 때문인지 윤아는 물론 수영까지 놀란 반응을 보인다.

단독 샷 찬스 때문인지 수영은 인터뷰를 계속하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V.O.S 생각 때문인지 인터뷰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만다.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주문을 미리 받아보는 리허설까지 하는 철두철미함을 보였다.

그렇게 리허설을 모두 끝내고, 마침내 일일 카페가 오픈 되었다.

일일 카페 첫 손님으로 온 사람들은 다름 아닌 다이나믹 듀오였다.

첫 손님의 등장에 양팀 에이스가 각각 출전하였다. 더 많은 매출을 올려야 하는 만큼 경쟁이 치열하였던 것이다.

마린팀의 에이스로 출전한 것은 얼굴마담 윤아였고, 소녀팀의 에이스로 출전한 것은 수연이었다.

2층에 자리 한 다이나믹 듀오를 향해 광속의 속도로 달려오면서 서로에게 견제구를 날린 두 소녀는 거의 동시에 다가가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주문을 받기 위하 영업용 미소를 방긋 지으며 주문을 받기 시작하였다.

수연과 윤아는 동시에 메뉴판을 내밀고 주문을 유도하기 시작하였다.

앞서 주문을 받기 전에 윤아는 사전에 수영에게 강력한 세뇌를 받은 상태였다.

요리하는 것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이 계시지만 그 짧은 시간에 배울 수 있는 음식이 몇가지가 되겠는가?

때문에 수영은 사전에 윤아에게 행동 지침을 일러둔 상태였다.

“윤아야! 우리는 배운 게 별로 없으니까 주먹밥을 시키게 유도를 해야 돼. 알았지? 주먹밥 하나는 자신 있으니까.”

“알았어요, 언니.”

착한(?) 윤아는 그런 수영의 지시를 착실하게 따랐다. 사실 자신도 요리 실력이 바닥인 만큼 서빙에 있어서 만큼은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윤아는 자신이 내민 메뉴판의 한곳을 가리키며 말한다.

“여기 윤아 얼굴 만한 주먹밥이 있습니다. 이게 제일 야심작이에요.”

주먹밥 하나 가지고 야심작이라고 하는 것도 낯 뜨거웠지만 서빙의 조건은 바로 철면이었다. 윤아는 방긋 웃는 얼굴로 야심작 ‘윤아 얼굴 만한 주먹밥’을 강력 추천하였다.

“분홍색 메뉴판에 주문을 해주시면 됩니다.”

“아니에요, 노랑색 메뉴판에 주문을 해주시면 됩니다.”

윤아가 갑자기 치고 들어오자 제동을 거는 수연이었다.

그러자 주문을 받는 사람이 오히려 난감해지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무엇을 할지 고민이 되었던 것이다.

수연은 고민하는 다이나믹 듀오를 향해 강력한 일격을 날린다.

“노랑색이라서 메뉴판이 더 잘 들어오실 거예요.”

그 말 때문일까?

고개를 갸웃하던 다이나믹 듀오 중 개코가 말한다.

“여기 노랑색 메뉴판에도 주먹밥이 있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윤아 얼굴만한 주먹밥’ 이 마이너스가 된 듯하다.

소녀팀에게 전황이 기울자 윤아가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아니에요, 분홍색 메뉴판으로 해주세요. 언니들 도와주세요!”

자신 혼자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지원을 요청하는 윤아였다.

그러자 양팀 멤버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주문 받는 멤버를 돕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결말이 나지 않자 결국 가위 바위 보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로 나선 수연과 윤아는 가위 바위 보를 하였다.

수연은 주먹을 내고 윤아는 가위를 냄으로써 소녀팀이 첫 기선제압을 하게 되었다.

윤아는 좋아하는 수연을 보면서 속이 쓰린 듯 배를 움켜쥐며 말한다.

“윽! 언니 두고 봐요. 다음에는 내가 승리하겠어.”

그렇게 본격적으로 일일 카페가 시작되었다.


익숙하지 않은 서빙이었기에 실수를 연발하곤 하였지만 좋은 일을 하는 것이기에 주문을 받는 수연과 윤아의 얼굴에는 미소가 서려 있었다. 모든 계산은 선불로 하는 것인데 주문을 받는데 급급한 나머지 돈을 받지 못한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지만 점점 일이 익숙해짐에 따라 무난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첫 손님인 다이나믹 듀오 이후로 손님들이 오기 시작하였다.

실력파 가수인 V.O.S가 스케줄을 마치고 방문을 하였고, 그중 V.O.S 멤버 중 리더인 박지헌이 장난기 있는 목소리로 “아줌마! 떡 많이 주세요. 아줌마!” 라고 하는 통에 졸지에 종업원 아줌마가 된 수연은 엄청난 충격을 받은 채 비틀거려야만 했다.

꽃다운 소녀에게 있어 아줌마란 단어는 적이지 않은가!

아줌마란 단어 때문에 수연은 주방에 들어간 채 꿍얼거려야만 했다.

그 외에도 해프닝은 다양했다.

힘들게 완성된 서현 표 떡라면은 싱겁다는 혹평을 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지적은 ‘윤아 얼굴만한 주먹밥’ 이었다.

윤아 얼굴이 이렇게 작나? 라는 지적이 들어온 것이다.

그 의혹에 함께 음식을 서빙한 유리가 당혹한 얼굴로 해명에 나섰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다.

결국 윤아는 주먹밥 전부 합친 거랑 크기가 비슷하다고 말을 함으로써 자폭을 하였다. 자신이 말해도 부끄러웠던지 윤아의 얼굴이 빨갛게 변해 있었다.

그래도 주먹밥은 이름 때문에 그런 거지, 맛은 호평을 받았다. 사실, 주먹밥이라고 해봤자 미리 준비해둔 양념들로 만드는 것이니 요리 솜씨가 없더라도 손쉽게 만들 수 있던 것이다.

“라면 누가 만들었어!”

100점 만점 중 45점이라는 낮은 점수를 받자 소녀들의 분노는 라면 제작자에게 쏠렸다. 하지만 라면 제작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후후후! 가게 하나 차려야 하나?” 그에 비해 호평을 받은 주먹밥의 제작자 태연은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안 해서 요리를 못하는 것이지 하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요리사는 저리가라 할 정도의 스펙이 있다고 평소 자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멤버들 누구도 믿어주지 않았는데 이렇게 일일 카페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게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그 사이 카운터를 접수한 윤아는 돈 계산에 바빴다.

주먹밥을 만들던 태연이 그런 윤아에게 한마디 한다.

“돈 계산 잘하라구! 알았지?”

“예예, 물론이죠.”

그 사이 효연이 몰래 구워놓은 빵을 미영이 훔쳐 먹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그것을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V.O.S 이후로 온 손님은 SeeYa였다.

첫 여자 연예인의 등장 때문일까.

마린 보이 박태환이 이제껏 보이지 않은 현란한 몸놀림으로 SeeYa를 맞이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그리고 앞을 다투어 메뉴를 소개하는 소녀들 사이에서 어느덧 태연은 주먹밥의 달인이 되어 있었다.

SeeYa가 주문을 마치자 선불이라는 수연의 말에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쏜살같이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가방을 가지고 오겠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서빙 하느라 SeeYa가 도망친 것을 모르는 박태환에게 있어서 조금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유리의 바리스타 장면이 부러웠던 윤아는 자신도 시도를 해봤지만 두 번 연속 실패라는 전적을 남기고 포기해야만 했다.

뒤이어 도전한 것은 주현이었다. 주현도 바리스타 장면이 부러웠나보다. 두 번의 실패 이후 설거지 역할로 밀려난 윤아는 뒤에서 주현에게 실패하라는 악담을 퍼부었다. 그러자 그 악담이 이루어졌는지 주현 또한 실패의 쓴잔을 맛보게 되었다.

주현의 실패 이후 윤아가 다시 한 번 시도를 해보았지만 역시나 실패. 결국 설거지 담당으로 낙점되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손님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아무래도 홍보할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기에 그런가 보다.

손님이 줄어들자 쉴 틈 없이 주먹밥을 줄곧 만들어야 했던 주먹밥의 달인 태연도 잠시 쉴 시간이 생겨났다.

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던 태연의 핸드폰에 연락이 온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창현의 전화였다.

태연은 반색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창현이야?”

-네, 누나 저에요. 창현이.

매상을 올려야 한다는 중압감에 너무 열심히 주먹밥을 만든 탓일까. 피곤에 젖어 있던 태연은 창현의 목소리를 듣자 피곤이 말끔히 가시는 기분이었다.

“응, 무슨 일이야. 아니, 그보다 오늘 온다고 했잖아. 언제 오려고?”

-전 일찍 가려고 했는데 누나가 세희 누나한테 늦게까지 한다고 말했다면서요? 그래서 약간 늦어도 된다고 해서 급하게 당겨진 인터뷰 스케줄 소화하고 있어요.

“윽! 세희 언니가 그랬다고?”

창현의 말에 가슴을 움켜쥐며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태연이었다. 세희에게 전화가 와서 일일 카페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하냐고 묻기에 성실하게 대답한 전적이 있다. 창현이 시간에 맞춰서 올 것이라 물어본 건 줄 안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 급하게 당겨진 인터뷰를 소화하기 위해 그런 것인가보다.

-네, 그것 때문에 약간 늦을 것 같아요. 손님은 많아요?

그 말에 순간 움찔하는 태연이었다. 하지만 그 반응이 창현이 볼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이내 표정을 회복하고는 당당하게 말한다.

“응, 물론이지. 손님 무척 많아.”

괜한 자존심의 발동이었다. 왠지 손님이 없다고 하면 없어 보일 것 같아서 거짓말을 해버린 태연이었다. 말을 하면서 그녀는 속으로 조금 있으면 많아지겠지를 연발하고 있었다.

그런 태연의 말에 창현이 의아한 듯 묻는다.

-그래요? 주변에 소리가 아무것도 안들려서 손님 없는 줄 알았죠. 그래도 다행이네요. 손님이 많으면 시간이 금방 갈 테니까요. 저도 잠시 쉬는 시간인데 금방 끝내고 가도록 할게요. 장사하는데 방해가 될 것 같으니 끊을게요. 열심히 장사하세요.

“으응. 아, 알았어.”

그 말과 함께 끊어진 통화였다.

통화가 끊긴 핸드폰을 보면서 태연은 안타까운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모처럼 이어진 통화고, 길게 할 수 있는 찬스였는데 괜한 자존심의 발동으로 끊겨버린 것이다.

“에휴! 내가 그렇지, 뭐.”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멤버들에게 다가가는 태연이었다.

그녀가 다가가자 무언가 결정을 내린 게 있는 듯, 미영이 태연에게 말한다.

“태연아, 사람이 없으니까 홍보에 나서기로 했어.”

“그래? 알았어. 아참, 그리고 방금 창현이한테 전화 왔는데 갑자기 인터뷰 스케줄이 잡혀서 조금 있다가 끝날 것 같다네.”

“그래?”

태연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미영이었다. 안 그래도 열심히 일을 하면서 미영은 속으로 창현이 언제 오나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던 차였다.

‘창현이가 늦다니… 아쉽네, 히잉.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일단 온다고 하니 그걸로 만족할 수밖에.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점수를 따야지.’

창현이 늦는다는 사실에 아쉬워하면서 한편으로는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서 점수를 따겠다고 결심을 다진다.

그렇게 2차 홍보에 나선 소녀들이었다.


“에휴!”

전화를 끊은 창현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랄까, 통화를 끝냈지만 아쉬움이 생겼다.

지금 그의 마음 상태는 싱숭생숭한 상태였다. 소녀들이 한다는 일일 카페에 가기로 했는데 갑자기 잡힌 인터뷰로 인해 프로페셔널한 그답지 않게 답답한 마음을 한 상태였던 것이다.

인터뷰를 요청한 리포터는 처음 창현을 보면서 무척 죄송하다는 말을 하였다. 간신히 사정해서 잡은 인터뷰인데 갑자기 일정을 당기게 되었으니 말이다.

창현도 뭐랄까, 다소 언짢은 상태였기에 평소였다면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을 테지만 고개를 끄덕이면서 사과를 받아들임으로써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렸다.

그것은 비단 리포터 뿐만 아니라 세희 또한 그러했다.

스케줄 변경을 요청한 것은 리포터지만 그것을 조정한 것은 세희였다.

평소에 스케줄을 정할 때 창현의 의견을 구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아무래도 창현이 자신을 잘 따라주고, 태연에게 전화 통화를 하여 일일 카페 시간을 안 후였기에 갑작스레 사정이 있다 하여 오늘 되지 않겠냐는 리포터의 말에 응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녀의 계산으로는 충분히 스케줄을 바꿔도 괜찮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창현의 기분이 계속 가라앉아 있자 그녀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창현이 오늘 일일 카페에 가는 것을 무척 기대하고 있었던 것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무엇보다 창현의 인기를 그녀가 제대로 실감하지 못한 채 그의 의견을 구하지 않았던 것이 컸다.

결국 세희는 창현에게 거듭 사과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괜찮다고 판단을 했어도 창현에게는 괜찮지 않을 수 있는데 그것을 독단으로 결정 내린 것은 성급한 판단이었던 것이다. 그 상황에서는 먼저 창현에게 묻거나 아니면 인터뷰 스케줄을 취소하는 것이 옳았다.

세희가 하는 사과를 받아들였지만 창현의 답답한 마음은 풀리지 않는 듯했다. 그로 인해 평소보다 약간 더디게 진행되는 인터뷰는 세희의 마음을 바짝 타게 만들었다. 풀어진 듯한 모습을 보였기에 다소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다 풀어진 것이 아니었나 보다.

그것은 세희의 착각이었다.

응어리진 창현의 마음은 거의 다 풀어진 상태였다. 이미 인터뷰도 절반 이상 진행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태연과의 전화에서 뭐랄까, 살짝 서운한 느낌이 들었기에 그렇다.

자신이 없음에도 정신없이 바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뭐랄까, 자신의 존재감이 한없이 작아지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랄까.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그런 느낌을 받았기에 창현의 기분이 급격히 가라앉았던 것이다.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려 버렸네.’

자신의 존재감이 타인에게 적게 미친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것도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말이다.

아까 전보다 더 답답한 마음에 창현은 5분간의 휴식을 요청했고,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음료수를 마시며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런 창현에게 세희가 다가가다가 멈칫하고, 다가가다가 멈칫하였다. 창현에게 말을 걸고 싶었지만 그의 분위기 때문인지 말을 걸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고민을 얼마나 했을까. 머뭇거리던 세희는 이내 용기를 내어 창현에게 말을 걸었다.

“창현아 괜찮아?”

“…….”

세희의 말에 창현은 감았던 눈을 떴다. 불쾌한 기분을 날려버리기 위해 잠깐이지만 마음을 비우기 위해 내공을 이용하였다. 그리고 그 성과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창현은 세희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나쁘지 않네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미안해. 너무 경솔했어.”

아직까지 인터뷰 건으로 창현의 안색이 굳어 있다고 생각하나보다.

그에 창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다 풀었어요. 다만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하지 않으시면 될 것 같네요. 제가 그랬던 건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니까 그렇게 아시면 되요. 알았죠?”

“으응.”

더 이상 파고들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 주어지자 세희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지은 창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가죠. 인터뷰를 얼른 끝내야 일일 카페에 놀러가죠.”

“그래.”

자리에서 일어선 창현은 인터뷰를 위해 걸음을 옮겼다.

마음을 가라앉힌 효과가 있었는지 인터뷰는 빠른 시간 안에 끝낼 수 있었다.

입가에 미소를 지은 창현이 벤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일일 카페가 열리는 장소를 향하기 시작하였다.

“기다려요. 매상 팍팍 올려줄게요.”

두 팀의 경쟁을 한 층 더 심화 시켜줄 물주(?) 창현의 행보였다.


손님들을 더욱 끌어 모으기 위해 2차 홍보를 끝내고 돌아올 무렵, 홍보 효과 때문인지 수많은 사람들이 카페에 모여든 상태였다.

그 때문인지 주문이 많이 밀려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밥솥은 텅텅 비었고, 무엇보다 주먹밥의 달인으로 등극(?)한 태연이 홍보팀으로 나가 있었기에 그렇다.

그래도 많은 손님이 온 것 때문일까.

소녀들의 얼굴은 밝았다.

그런 와중에 프로 야구팀인 두산 베어스 선수들이 방문한 상태였고, 운동선수답게 많은 양의 주문을 하여 재빨리 주문에 임한 수연을 기쁘게 하였다.

주먹밥의 달인 태연의 합류로 인하여 일일 카페는 다시 원활하게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바빠지니 가장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소녀시대의 막내 주현이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주현이 설거지 담당이 되어 있던 것이다.

손님들이 많아짐에 따라 식기의 사용도 늘어났고, 그로 인해 주현은 설거지 지옥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카메라가 다가오자, 주현은 카메라를 보며 울상을 지었다.

“허억! 너무 힘들어요. 커피나 만들걸.”

“왜 설거지를 하게 된 거예요?”

죽도록 설거지만 하는 주현이 안쓰러웠는지 스태프가 설거지를 하게 된 영문을 묻자, 주현이 설거지를 열심히 하면서 대답한다.

“저보고 잠깐 설거지 하라고 하더니 이거 잠깐이 아니라 계속하게 되었어요. 그릇이 계속 와서 어쩔 수가 없어요.”

아무래도 설거지는 밖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역할이다 보니 모두가 기피해서 그런가보다.

그 뒤로도 주현은 계속해서 설거지만 해야 했다.

이래서 막내는 고달픈 법이다.


일일 카페는 무척 친절하여 배달 서비스까지 겸업하고 있다.

바로 인근에 배달 주문이 들어오자 미영과 유리가 음식을 들고 배달을 간 것이다.

그녀들이 배달을 간 곳은 바로 남자 아이돌 그룹 초신성의 연습실이었다. 연습 중 허기를 달래고자 주문 배달을 신청한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미영은 왜 티파니가 숙성시킨 치즈라면을 시키지 않았냐는 질문에 아주 냉혹한 대답을 들어야만 했다.

바로 네가 숙성시킨 거니까! 라는 대답을 들은 것이다.

요리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많던 미영에게 있어 뼈 아픈 말이 아닐 수 없었다.

토라진 미영을 달래기 위해 초신성이 사과를 하는 둥 하자 미영이 충격(?) 고백(?)을 하였다.

“저 솔직히 말할게요. 요리 못해요. 하지만 여자가 요리를 잘해야 되요?”

여자가 요리를 잘해야 한다는 편견을 버려라!

그렇게라도 말을 해서 자기 위로를 하고 싶은 미영이었다.

하지만 그런 미영의 말에 곧장 반박이 들어왔다.

그녀가 해외파인 걸 들먹이면서 한국 남자들은 요리를 잘하는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과, 시집을 가려면 요리를 잘해야 한다는 말이 들어온 것이다.

그에 미영은 요리를 잘할 필요 없어요! 라고 말을 하지만 은근히 상처가 된 듯하다.

그래도 어쩌랴.

현실은 요리를 못하는데 말이다.

냉혹한 현실의 벽을 만난 미영이었다.


배달이 끝난 직후 중간 점검을 할 시간이 되었다.

마린팀과 소녀팀으로 나누어 진 만큼 중간 집계로 누가 우세를 점하고 있는지 알아둘 필요가 있던 것이다.

카운터를 선점한 유리의 주도 하에 중간 점검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린팀이 이기고 있었는데 과연 어떨지 모르겠네요.”

그 말과 함께 유리가 마린팀이 번 돈을 세보기 시작하였다.

세본 결과 마린팀은 25만 4천원을 벌어들였다. 제법 큰 돈이었기에 유리가 만족한 듯 미소를 짓는다. 그녀는 마린팀 소속이었으니 말이다.

“마린팀은 25만 4천원입니다.”

그러면서 유리는 소녀팀의 돈을 세보기 시작하였다.

하나 둘 셋…….

돈을 세면 셀수록 유리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갔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한다.

“다시, 다시. 믿을 수 없어.”

그 말과 함께 재차 돈을 세보는 유리였다. 하지만 그런다고 현실이 바뀔 리가 없었다.

몇 번이고 돈을 세던 유리가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믿을 수 없어. 하아! 소녀팀은 41만 4천원이네요. 중간 점검은 소녀팀 승리입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우위를 점하고 있던 마린팀을 제치고 소녀팀이 41만 4천원이라는 금액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던 것이다. 이로써 소녀팀이 확실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중간 점검이 끝났을 무렵, 태연은 창현에게서 연락을 받고 있었다.

인터뷰가 끝난 창현이 곧 있으면 도착한다는 이야기를 전한 것이다.

“얼마나 걸릴 것 같아?”

태연의 물음에 창현이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대답한다.

-한 삼십 분 정도? 그 정도 걸릴 것 같네요.

“알았어! 열심히 준비하면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어서 오도록 해.”

그 말에 건너편에서 창현이 키득키득 웃음을 짓더니 말한다.

-매상 많이 올려줄게요. 오늘 거기 가려고 한 끼도 안 먹었거든요? 저 가면 음식 다 싹쓸이 할 수도 있으니까 미리미리 준비해두는 걸 추천할게요.

창현의 말에 태연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이미 몇 번의 회식으로 다 알고 있던 것이다. 창현이 먹는 양을 말이다.

“너 많이 못 먹는 거 다 알거든! 아참, 부탁한 앨범은 준비했어?”

일일 카페에서는 소녀들이 스타들의 앨범과 애장품을 받아서 경매를 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었다. 이것들도 전부 기부가 되는 만큼 많은 스타들이 앨범을 기부한 상태였다.

-아, 물론이죠. 앨범 준비해뒀어요.

“고마워. 아참, 혹시 애장품 같은 거 하나도 줄 수 있어? 그것도 경매를 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

저번에 언급을 했어야 했는데 미처 언급하지 못했기에 그렇다.

그 말에 창현이 의아한 목소리로 묻는다.

-애장품도 팔아요? 그런 거 없는데. 무슨 목도리 같은 거 말하는 거예요?

“목도리도 좋지! 좋고 말고.”

-그건 그때 가서 보도록 하죠. 어쨌건 조금 있다가 봐요.

“그래, 조심해서 와.”

애장품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던 터였기에 단번에 수락을 얻기 힘들었다.

그렇게 통화가 끝나자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던 태연이 화들짝 놀란다.

어느새 주변에 수연과 미영, 윤아와 주현이 몰려있던 것이다.

수연이 태연을 보며 묻는다.

“너 방금 그거 창현이 전화지?”

“그, 그런데?”

수연의 묘한 박력에 밀려 고개를 끄덕이는 태연이었다.

그런 태연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수연이 물었다.

“언제 온다는데?”

분명 창현이 전화를 했다는 것은 이곳에 온다는 소식일 터. 수연은 창현이 언제 올지 궁금했기에 태연에게 물은 것이다.

미영과 윤아, 주현도 태연에게 어서 대답하라는 압박을 눈빛으로 보내고 있었다.

그에 태연은 통화 내용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삼십 분 후에 도착한다고 하던데?”

“삼십 분? 얼마 안 남았네.”

이것저것 일을 하다 보면 삼십 분은 금방이었다.

창현이 온다는 말 때문일까.

소녀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태연은 그녀들의 표정을 보고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자, 말해뒀으니 어서 일들 하자고. 아직 할 일이 많잖아?”

“알았어.”

이럴 땐 리더가 맞는지 상황을 빠르게 정리하는 태연이었다.

시간이 점점 밤을 향해 달려감에 따라 약속했던 연예인들이 속속 오기 시작하였다.

슈퍼주니어 멤버들이 카페에 방문한 것이다. 인원수가 많은 만큼 매상에 확실한 도움을 줄 수 있기에 환하게 웃으면서 반기는 소녀시대였다.

중간에 강인과 박태환의 팔씨름 해프닝이 있었고, 단체 손님을 환영하는 바인 만큼 미션으로 한 가지 서비스를 하고자 했는데, 장난기 넘치는 슈퍼주니어의 행동으로 소녀시대 댄스 무한 반복을 하게 된 유리와 윤아였다. 그러다가 슈퍼주니어 멤버인 희철을 데리고 온 수연까지 합류하여 무한 소녀시대 춤을 추게 되었다. 단체 손님 왔다가 죽도록 소녀시대 춤만 추게 된 것이다.

그 사이 타이거JK도 방문하게 되자 가장 좋아하는 것은 미영이었다. 평소 타이거JK 팬이었기에 그런 것이다. 게다가 타이거JK도 소녀시대의 팬이라고 하자 더욱 좋아하는 미영이었다.

자리를 안내해주고, 주문을 받던 타이거JK도 미션지를 받게 되었는데, 뽑은 것은 다름 아닌 원하는 스타와 러브샷. 타이거JK와 콜라를 러브샷 하게 되자 너무나 좋아하는 미영이었다.

그 사이 해물라면에 조개는 없고 조개껍질만 있다고 하여 불평하는 희철의 행동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라면보다 단무지가 더 맛있다는 굴욕적인 평가를 얻게 되었다.

그 사이 가요계의 큰손(?)이라 불리는 SG워너비의 방문도 이어졌다.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만큼 소녀들이 우르르 나가 맞이하였다.

어느새 가게 앞은 하나의 존을 이루고 있었다. 일일 카페가 열린지 어느 정도 시간이 됨에 따라 스타들이 속속 등장하자 그걸 신기하게 여긴 사람들이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등장하는 스타들을 구경하고 있던 것이다. 게다가 가게 앞에서는 이수영의 앨범, 빅뱅의 앨범, 그리고 슈퍼주니어의 앨범과 소녀시대의 앨범까지 경매하였기에 사람들은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떠날 줄을 몰랐다.

SG워너비는 소박하게도 소녀시대의 싸인을 원하였기에 소녀들은 까마득한 후배인 자신들의 싸인을 원하는 SG워너비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면서 한편으로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는 싸인을 하였다. 오늘 몸이 아파서 오지 못한 순규를 대신하여 박태환이 아홉 번째 멤버를 대신하라는 말에 해프닝이 일어났지만 그것은 여담이었다.

그렇게 올 만한 사람들이 다 오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소녀들의 얼굴에 기대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태연이 창현과 통화한 내용을 알렸기에 그런 것이다.

현재 시간은 태연과 창현이 통화를 한 지 거의 삼십 분이 되어가는 시간이다.

그렇다는 건 창현이 올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는 뜻이 된다.

그걸 감지한 것일까.

가게 앞에 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두터운 팬덤을 지니고 있는 창현인 만큼 그의 스케줄을 꿰고 있는 팬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런 만큼 그들은 오늘 늦은 오후에 창현이 이곳에 등장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원래 더 많은 숫자가 모여들 예정이었지만 갑작스럽게 창현의 스케줄이 변동 되는 바람에 조금 덜 모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숫자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현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기대하고 있는 것은 그의 싸인 앨범 경매였다.

현의 실물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싸인 앨범을 얻을 수 있고, 어느 샌가 현의 애장품 판매(?)가 이루어진다는 은밀한 소문도 돌고 있었기에 팬들의 기대를 한껏 부풀게 만들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등장했다.

현이 타고 있는 스타크래프트 벤은 팬들에게 무척 널리 알려져 있었다. 새하얀 색상은 물론이고, 벤 옆에는 현의 한자인 ‘玄’ 이란 단어가 새겨져 있던 것이다.

벤이 우뚝 서고 시동을 끈다. 그와 함께 문이 열리면서 먼저 나온 것은 매니저인 세희였다.

우와아!

세희 또한 상당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기에 남자들의 탄성이 절로 흘러나온다.

그 뒤를 이어 나온 것은 창현이었다.

창현이 등장하자 사람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기 시작한다.

와아아아아!

현이다! 현!

흡사 무슨 스케줄을 소화하는 장소에 나타난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에 창현은 살짝 당황하던 표정을 짓다가 이내 안으로 들어선다. 팬들에게 둘러싸이면 앞으로 가기가 힘들어지니 말이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왔기에 창현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던 창현은 멈칫하였다. 밖에서 난 함성소리를 들었는지 소녀들이 우르르 몰려나온 것을 본 것이다.

그걸 보면서 창현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어깨를 쭉 피더니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험! 여기 웨이트리스 없나? 자리로 안내 하도록.”

“…….”

창현의 말에 반갑게 맞이하려던 소녀들은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본래 가게에 가면 손님은 왕이지 않은가?

창현은 한껏 왕 기분을 내기 위해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소녀들을 보며 웃음을 짓고 있었다.

“…….”

반면 소녀들은 할 말을 잃은 상태였다. 밖에서 들려온 함성소리로 인하여 창현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을 알아서 반가운 마음에 달려온 것인데 반가운(?) 창현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웨이트리스 취급하는 것이다.

황당한 분위기가 감도는 가운데 앞으로 나선 것은 역시, 리더 태연이었다.

그녀는 창현을 보면서 당당하게 말한다.

“우리 웨이트리스 아니거든? 모두가 사장님이거든!”

사장님이라는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창현을 바라본다.

감히 사장님인 자신들을 웨이트리스 취급하다니!

멋지게 반박한 태연에게 잘했다고 하면서 창현을 바라보는 소녀들이었다.

그 모습에 창현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한 마디에 이렇게 발끈한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어쨌거나 태연의 말이 사실이기도 하기에 창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한다.

“그렇다고 치죠. 그런데 사장님이건 웨이트리스건 어쨌거나 전 손님이잖아요. 손님에게 친절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거, 오늘 여기에 오려고 아침부터 굶고 왔는데.”

창현의 강력한 반박에 소녀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들은 일제히 태연을 바라보았다. 창현에게 한 마디 쏘아붙인 것이 태연이었으니 수습하는 것도 그녀의 몫이었던 것이다.

멤버들의 시선 포화에 태연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웨이트리스 취급하는 창현의 말에 반발했을 뿐인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던 것이다.

뭐랄까,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멤버들의 입장을 대변해서 창현과 맞상대를 하고 있다랄까?

지금 이 순간 태연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어쨌거나 창현은 자신들의 매상을 올려줄 ‘손님’ 이었으니 말이다.

결국 태연은 눈물을 머금고 창현에게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합니다, 손님. 으으…….”

“사과하셨으니 됐습니다, 사장님. 후후!”

태연의 사과에 빙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창현이었다.

“으으, 태연이가 졌어.”

그 모습을 보며 소녀들은 침음을 흘렸다. 태연의 패배는 곧 자신들의 패배였기에 괴로워하는 것이었다.

소녀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에 창현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뭔가 꿍한 기분이었는데 어느새 사르르 풀리고 없어진 상태였다.

“안으로 들어가죠. 안내 부탁합니다, 사장님들.”

“예이, 들어오십쇼, 손님.”

그 말과 함께 안으로 들어서는 창현이었다.

세희는 창현과 소녀들이 나누는 대화를 보고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벤을 타고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뭐랄까, 다소 어두운 분위기를 보이고 있던 창현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온 뒤로 밝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혹여 창현의 기분이 우울해진 게 아닐까 싶던 세희로서는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고마워 해야 하나?’

냉정하지만 창현의 기분 변화 하나로 제대로 스케줄 펑크 날 경우 그 손해가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다.

창현의 매니저인 만큼 그의 기분 상태나 몸 상태를 체크하고 있는 세희로서는 우울했던 창현의 기분을 풀어준 소녀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선 창현은 문가에 자리하고 있는 타이거JK를 볼 수 있었다.

까마득한 선배인 만큼 창현은 재빨리 다가가 인사를 하였다.

타이거JK도 창현을 보자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려던 창현은 뒤에 앉은 슈퍼주니어 멤버들을 발견한다.

게다가 창현이 눈을 마주친 것은 다름 아닌 이특!

창현이 안으로 들어선 것을 알고는 고개를 숙인 채 라면을 먹기 바빴는데, 호기심에 그만 고개를 들었다가 시선을 마주친 것이다.

눈을 마주친 이특이 움찔하며 고개를 숙였지만 이미 게임은 끝났다.

씨익 웃음을 지은 창현이 성큼성큼 슈퍼주니어에게 다가간다.

그리고는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후배님들.”

후배라는 단어에 악센트를 주는 창현이었다.

그 단어를 들은 슈퍼주니어 멤버들이 움찔한다. 창현이 말한 후배란 단어가 적지 않게 자극을 준 것이다.

“그, 그래, 창현아 안녕.”

“후배님들도 오셨네요. 후후후!”

웃음을 짓는 창현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음일까.

바쁜 스케줄로 인해 슈퍼주니어가 현의 후배가 된 사연을 모르는 강인은 인상을 찌푸리며 이특을 향해 물었다.

“특 형, 왜 우리가 후배야?”

“후! 창현이가 우리보다 앨범을 먼저 발매 했잖냐? 그것 때문에 후배가 됐다.”

라디오 방송 때의 악몽이 떠올랐음일까.

이특은 절망적인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맞은 편에 있던 은혁도 한숨을 내쉰다.

그 말에 강인이 펄쩍 뛰며 말한다.

“아니! 형은 그걸 보고만 있던 거예요? 본때를 보여줬어야죠!”

“창현이가 말한 게 라디오 방송이었어. 그리고 창현이의 팬덤에 완전히 밀려버렸지. 예상치 못한 일이어서 그냥 완벽하게 밀려버렸다.”

침통한 안색으로 말하는 이특이었다.

그에 창현이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후후! 그렇게 되었어요, 강인 형.”

창현의 웃음에 발끈한 강인이 외친다.

“난 이거 인정 못해! 내가 저 녀석의 후배라니! 나이 차이가 몇인데.”

창현과 강인은 7살이나 차이가 난다.

그런데 후배라니! 한두 살도 아니고 이건 좀 심했다.

강인이 인정하지 않으려 들자 앞에서 라면을 먹고 있던 희철이 쿨하게 말한다.

“야, 뭘 그거 가지고 그러냐. 연예계에서 먼저 데뷔했으면 선배인 건 당연하지. 그거 가지고 그래.”

“하지만 형! 창현이는 형보다 아홉 살이나 어리다고요. 선배라고 하고 싶어요?”

“그게 뭐가 어렵다고. 선배면 선배라 부르면 되지 뭐.”

“으으…….”

쿨한 희철의 모습에 신음을 흘리는 강인이었다.

그런 강인을 보면서 예성이 제안을 하였다.

“강인아, 그러지 말고 창현이랑 내기를 해보는 게 어때? 내기를 해서 이기면 선배 그런 거 따지지 말고 그냥 지내는 거고 내기에서 지면 창현이가 원해주는 거 하나 하는 걸로. 어때?”

예성도 창현이 선배라는 것이 은근히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

그 말을 들은 강인이 화색을 띠었다.

“그거 좋지! 창현이 넌 어때? 내기 콜?”

강인의 말에 창현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내기라면 자신도 어디에서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무슨 내기를 할지 몰랐기에 우선 종목을 물었다.

“무슨 내기를 하려고요?”

“음! 팔씨름 어때?”

강인이 무언가 고민을 하는 듯하더니 팔씨름을 언급한다.

그에 슈퍼주니어 멤버들 전체가 눈을 빛냈다. 팔씨름하면 강인이지 않은가. 마린 보이 박태환을 상대로 팔씨름을 승리한 강인이라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호리호리한 창현의 체구를 보면 도저히 힘을 쓸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창현이 팔씨름에 임하느냐가 문제다.

덩치가 큰 강인에 비해 창현은 왜소해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잠시 고민에 잠겨있던 창현이 입을 열었다.

“나쁘지 않네요. 제가 이길 경우 간단해요. 밖에 있는 분들 있죠? 추운데 있는 걸 보니 안쓰럽더라고요. 제가 이기면 형들이 돈 거둬서 저분들에게 커피 한 잔씩 사는 거예요.”

그러면서 창현은 소녀들을 힐끗 보더니 말한다.

“물론 매출을 올려주는 걸로요.”

창현의 말은 소녀들의 큰 반응을 일으켰다.

밖에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대충 오십여 명이었으니 만약 창현이 이기면 순식간에 25만원이라는 매출이 생겨나는 것이다.

“오오! 좋다!”

“창현이 이겨라! 파이팅!”

매출 폭증을 눈앞에 둔 소녀들은 힘껏 창현을 응원했다.

그에 가볍게 미소를 지은 창현이 강인을 보며 말한다.

“어때요?”

강인이 멤버들을 본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강인이 이길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멤버들의 반응에 힘입어 강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어디 해보자.”

그렇게 창현과 강인의 팔씨름 판이 만들어졌다.

강인이 이길 경우 슈퍼주니어는 창현의 후배 신세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창현이 이길 경우 슈퍼주니어는 자체적으로 돈을 걷어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커피를 한잔씩 돌려야 한다.

슈퍼주니어 멤버들은 당연히 강인을 응원하였고, 소녀들은 매출을 올려야 하고, 개인적인 사심이 살짝 들어가 창현을 응원하였다.

하지만… 서로 손을 붙잡고 팔씨름 준비를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무게추가 한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창현이가 못 이길 것 같은데…….”

강인의 큰 손에 푹 파묻힌 창현의 손을 보면서 윤아가 중얼거린다. 도저히 창현이 이길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 윤아의 말에 옆에 서 있던 주현이 말한다.

“아마 창현이가 이길 거예요.”

주현은 제작년에 갔던 수학여행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보다 더 작은 키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훨씬 큰 남학생들을 팔씨름으로 꺾어버렸던 것을 말이다. 게다가 공주님 안기로 버틸 때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지 않았던가.

호리호리하지만 그 속에 내재한 힘은 대단하다고 생각하기에 주현은 창현이 이길 것이라 생각했다.

“창현이가 이길 거라고?”

확신이 깃든 주현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 윤아였다.

그에 주현이 윤아에게 시선을 주며 말한다.

“재작년에 창현이랑 같이 수학여행을 갔는데 거기에서 자기보다 큰 애들을 쉽게 꺾었거든요.”

“그래? 그래도 강인 오빠인데…….”

중학생과 강인을 비교한다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윤아는 더 말하지 않았다. 확신에 찬 주현의 모습에서 더 말해봤자 소용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긴가민가하는 윤아에게 들려온 것은 태연의 한마디였다.

“아마 창현이가 이길 거야.”

“에, 태연 언니?”

윤아가 반문했지만 태연은 대답하지 않은 채 팔씨름에 임하는 창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현이 알고 있는 것처럼 태연 또한 창현이 겉모습과 달리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전에 같이 커플 게임을 한 적이 있지 않은가? 거기에서 보여준 창현의 완력은 웬만한 성인을 능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불가사의 할 정도로 대단한 체력까지 지니고 있다. 그것만으로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는 않지만… 뭐랄까, 여태까지 실망을 시킨 적이 없는 창현인 만큼 반드시 이길 것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자신들에게 대들 때(?)만을 제외하고는 모든 승부에서 승리하는 면모를 보였으니 말이다.

그 사이 팔씨름은 시작을 향하고 있었다.

심판을 맡게 된 이특은 두 사람의 손을 잡더니 입을 연다.

“하나 둘 셋 하면 시작하는 거다. 자, 하나… 둘… 셋! 시작!”

이특의 외침과 함께 팔씨름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두 사람이 힘을 꽉 주면서 서로 넘기기 위해 힘을 주기 시작했다.

“오오오!”

팔씨름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팽팽한 대결을 펼치자 감탄사를 터뜨린다.

창현이 바로 넘어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선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가 이변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사람들이 팔씨름 장면을 흥미롭게 바라본다.

‘이 녀석 뭐야.’

강인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있지만 지금 모든 힘을 다해 팔씨름에 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느낌은 무엇이란 말인가.

마치 절대 넘어가지 않는 돌덩이를 붙잡고 넘기려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무리 힘을 써도 넘어가지 않을 듯한 느낌이랄까.

강인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창현에게 말했다.

“창현이 너… 상당히 센데?”

그 말에 창현도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형도 세네요. 나름 자신 있었는데, 하하!”

창현도 나름대로 필사적이었다. 내공을 사용하지 않은 채 순수 근력만으로 버티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운동을 많이 안해서 그런 것일까. 버티는 것은 가능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이 승리하기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공을 써야 하나?’

내공을 쓴다면 당장에 넘길 자신이 있다.

하지만… 뭐랄까, 내공을 쓰기보다는 자신의 의지로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이를 악 물고 팔씨름에 임한다.

시작한지 3분여가 흘렀을까.

이쯤 되면 힘보다는 정신력 싸움이다.

창현은 물론 강인도 얼굴에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질 수 없다는 자존심이, 이겨야 한다는 승부욕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다.

“큭!”

강인의 입에서 바람 흘러나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주르륵 무너지기 시작한다.

쿵!

“후아! 정말 힘들었어요, 형.”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며 창현이 한 말이다.

그런 창현의 모습을 보면서 이특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창현의 승리를 선언한다.

“차, 창현이 승!”

“와아아아아!”

“창현이가 이겼다! 짱!”

창현의 승리 소식에 소녀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최종보스(?) 강인을 꺾고 창현이 승리를 한 것이다.

이로써 매출 25만원 증가라는 어마어마한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세희가 건네주는 손수건을 받아 땀을 닦은 창현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슈퍼주니어 멤버들을 보며 말한다.

“그럼 형들 약속 잘 지켜주세요. 저는 올라가볼게요.”

그 말과 함께 창현이 올라갔고, 세희와 로드 매니저가 뒤따라 올라갔다.

태연이 수연을 보면서 말했다.

“수연아! 우리는 오빠들이 산 커피를 밖에 있는 분들에게 전달할 테니까 넌 어서 가서 주문을 받아.”

태연의 말에 수연이 눈을 번뜩인다. 그러고 보니 창현의 주문을 받을 사람이 없지 않은가?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수연이 재빨리 뒤로 올라간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런 수연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수영이었다.

수영은 소녀시대의 얼굴마담 윤아를 소환(?)했다.

“가라! 윤아야! 수연이를 물리치고 창현이의 주문을 받아와.”

윤아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보니 수연이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 알았어요, 언니.”

대답과 함께 윤아가 광속으로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그리고는 나머지 소녀들이 미소를 지으며 침통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슈퍼주니어 멤버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특별히 할인을 해드릴게요. 25만원만 내세요, 손님.”

슈퍼주니어에게 그 미소는 악마의 미소였다.


2층으로 올라간 창현은 SG워너비에게 인사를 한 뒤 창문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뒤따라 올라온 수연이 창현을 부른다.

“창현아! 주문해야지!”

자리에 앉은 창현의 시선이 수연에게 향한다. 그러고 보니 메뉴판을 깜빡하고 있었다.

“아, 수연 누나. 메뉴판 주세요.”

“알았어.”

대답과 함께 수연이 창현에게 노란색 메뉴판을 내미려던 찰나, 윤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 스탑!”

“어라? 윤아 누나는 무슨 일이에요?”

고개를 갸웃하는 창현에게 윤아가 분홍색 메뉴판을 내민다. 그리고 속사포로 말했다.

“창현아, 이 분홍색 메뉴판은 우리 마린팀 메뉴판이야. 보고 많이많이 주문해줘.”

늦게 왔는데 도리어 선수를 치는 윤아를 보고는 수연이 발끈하며 노랑색 메뉴판을 내민다.

“잠깐만! 창현아 이 노랑색 메뉴판은 소녀팀 메뉴판이거든? 아무래도 남자가 속한 마린팀보다 여자로만 이루어진 우리가 더 낫지 않겠어?”

수연의 말에 윤아가 대경하며 반박한다. 남자가 속한 팀이라니! 자칫 잘못하다가는 오해할 수 있지 않은가?

“언니! 남자라고 말하지 말아요! 태환 오빠는 오늘 같이 팀을 이룬 것뿐인데 그렇게 말하면 창현이가 오해하잖아요.”

“그래? 그럼 뭐 그런 거겠지. 어쨌든 창현이 넌 돈 많으니까 많이 시켜줘.”

“우리도 많이 시켜줘. 사양하지 않을게.”

수연과 윤아의 신경전이 보통이 아니었다. 각팀의 주문을 맡고 있다 보니 그 신경전이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창현을 두고 그 대립은 절정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눈싸움을 하고 있던 찰나, 갑자기 창현이 손을 들었다.

“잠깐만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창현이 손으로 메뉴판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니까… 팀이 있는 걸로 보아서는 서로 매출 경쟁을 하고 있나 보네요? 맞죠? 가령 누가 이기면 이긴 팀 이름으로 기부하거나?”

어쩐지 묻는 모양새가 불길하다. 하지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으응. 맞아. 서로 매출 경쟁을 하기로 했어.”

“그래요? 매출 경쟁이라? 후후후후!”

수연의 대답에 창현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린다.

그걸 본 수연과 윤아가 움찔한다. 불길한 예감이… 사실로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창현은 움찔하는 두 소녀를 향해 상냥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한다.

“누나들 왜 갑자기 움찔해요. 제가 나쁜 사람처럼 느껴지게. 전 그런 사람 아니니까 안심해요. 알았죠?”

그렇게 말을 하지만 입 꼬리 하나가 말려 올라간 것이 여간 불안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창현은 손님이 왕이라는 말처럼 왕과도 같은 입장이었다.

수연과 윤아는 고개를 끄덕여 창현의 말에 동의한다.

“그, 그렇지. 창현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고마워요, 누나들 그런 의미에서…….”

말끝을 흐리며 창현은 두 사람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애교, 누나들의 애교를 보고 싶네요. 애교가 어떻냐에 따라 주문을 정하도록 할게요. 괜찮죠?”

여태까지 했던 공격 중에 가장 강력한 공격을 감행하는 창현이었다.

“…….”

창현의 말에 수연과 윤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설마 창현이 이런 요구를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제아무리 손님이 왕이라고 하나 애교를 피우라고 할 줄이야!

수연은 물론이고 윤아는 일생일대 최고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두 소녀가 위기라고 느끼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소녀시대 내에서 두 사람의 캐릭터는 애교와 전혀 상관이 없는 역할이었던 것이다.

수연 같은 경우 대외적으로 도도하고 차가운 이미지를 풍김으로써 얼음공주라는 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당연히 방송에서 애교와는 거리가 먼 캐릭터였고, 실제 성격은 틱틱대면서도 소심한 편이기에 실제 성격과도 애교와는 거리가 멀다.

‘이럴 때 내가 순규였다면.’

멤버들에게는 애교가 존재하지 않지만 방송에서 보여주는 애교는 그야 말로 절정에 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순규였다면 필살의 애교로 창현에게 점수를 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빠르게 머리를 굴리면서 수연은 힐끔 윤아를 본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경쟁 상대가 다른 멤버도 아닌 윤아라는 점이다.

평소 언니들에게 애교를 잘 피우지만 남자와 함께 있게 되면 묘하게 무뚝뚝해지는 걸 알고 있기에 수연은 속으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내가 윤아보다 나을 거야. 반드시 승리하겠어.’

주문도 따내고, 창현에게서 점수도 따내겠다고 결심하는 수연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연의 생각에 불과했다.

윤아는 소녀시대의 얼굴 마담으로서 실제 성격과 방송 속 캐릭터가 거의 비슷하다. 언니들에게 장난치는 걸 좋아하면서 곧잘 애교를 피우기도 하지만 문제는 창현의 앞이라는 점이다.

평상시 언니들에게 장난으로 애교를 피우기도 하지만 지금은 엄연히 상황이 다른 것이다.

동생으로서 좋아하는 것이 아닌, 이성으로서 좋아하는 창현이 자신에게 애교를 피워보라고 한다. 그가 장난으로 애교를 원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 입장에서는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창현에게 마이너스를 받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위험 부담이 있는 만큼 장점도 존재한다.

창현의 마음에 쏙 부합하는 애교를 보일 경우 그에게서 높은 점수를 딸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자신의 경쟁 상대는 수연이 아닌가?

아무리 애교가 없어도 수연보다는 자신이 애교에 있어서 한 수 위라고 생각하는 윤아였다.

‘상대가 순규 언니가 아니라 수연 언니라서 다행이에요, 후후후!’

서로가 서로를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고 여기는 두 소녀였다.

그렇게 순식간에 엄청난 생각이 흘러갈 무렵, 창현은 생각에 잠겨있는 두 소녀를 보면서 물었다.

“누나들? 싫은 거예요?”

아무 말없이 생각에 잠긴 두 소녀를 보면서 자신이 실수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드는 창현이었다.

손님이 왕이라는 생각 하에 당당하게 요구한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두 사람이 아무 반응도 없자 창현은 자신이 실수한 게 아닐까 싶었다.

장난으로 말한 것인데 두 사람 모두 표정을 굳힌 채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였으니 말이다.

“아니, 괜찮아. 그걸로 판가름을 내릴 수 있다면.”

“나도 마찬가지야. 승부를 봐주겠어.”

창현의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는 두 소녀였다.

그러다가 수연과 윤아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그녀들의 눈에서는 첫 손님에게 주문을 받을 때 미처 가리지 못한 승부를 지금 가려내겠다는 의지가 가득하였다.

창현은 자신의 예상과 달리 의욕적(?)으로 대답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반색하며 입을 열었다.

“정말요? 기대 되네요. 누나들의 애교라니, 후후후!”

“…….”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창현의 모습에 침묵하는 수연과 윤아였다.

창현의 말에 순간적으로 반응은 했지만 애교라고 하니 까마득해진 것이다.

수연이나 윤아나 상대방이 자신에게 못 미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결국 오십보 백보인 것을 모르고 있다.

그저 내가 상대보다 더 잘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만 가지고 있을 뿐.

입가에 미소를 지은 창현은 수연과 윤아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럼 누구부터 할 거예요? 수연 누나부터? 아니면 윤아 누나부터?”

그 말에 수연과 윤아가 동시에 대답했다.

“윤아부터 할…….”

“수연 언니부터…….”

말을 꺼내던 두 사람은 멈칫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보이지 않는 전투가 시작되었다.

“윤아야, 네가 동생이니 네가 먼저 해야 하지 않겠니?”

소녀시대 내에서 태연 다음으로 최고령(?)을 자랑하는 수연이 한국에 와서 가장 멤버들에게 많이 사용하는 수법인 나이로 밀어붙이기가 나왔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하라면 하라는 무언의 압박이 윤아의 전신을 강력하게 휘감고 있었다.

“으읏!”

강력한 수연의 일격에 흠칫 뒤로 물러서는 윤아였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 없는 노릇. 한 번 밀리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밀리게 된다.

웬만한 일이라면 수연의 말에 납득했을 테지만 지금 상황은 그럴 수가 없다.

그야 말로 한 치의 양보도 용납되지 않는 상황!

윤아는 방금 전 입은 데미지가 존재하지 않는 듯,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수연에게 말한다.

“아무래도 제가 더 어리다 보니 언니보다 미숙하지 않겠어요? 언니가 먼저 하시는 걸 보고 싶어요. 언니시잖아요. 한국에는 장유유서라는 말이 있거든요. 이 말은 어른과 아이는 순서가 있다는 이야기로서, 나이가 많은 분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이야기죠.”

해외파인 수연에게 삼강오륜 중 오륜의 장유유서를 들먹이며 강력한 일격을 가하는 윤아였다.

그런 윤아의 말에 수연이 흠칫하며 뒤로 물러선다.

그녀는 방금 전 윤아의 말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윤아가 자신의 취약점을 파고들었다는 것이고, 결론은 나이가 월등히(?) 더 많은 자신보고 하라는 것이었다.

윤아를 바라보는 수연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윤아야, 정말 해보자는 거야?’

수연의 눈에서 뿜어지는 얼음 레이저에 윤아가 당당히 맞대응하였다.

‘저도 물러설 수 없다고요.’

분위기가 점점 치열해지자 중간에 있던 창현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자세한 연유는 알 수 없었지만 무언가 말이 오고가는 걸 보아 순서를 정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던 것이다.

창현이 조심스럽게 끼어들면서 입을 열었다.

“저기… 누나들 지금 순서를 정하는 거라면 그냥 가위 바위 보로 정하는 게…….”

순서를 정하는 것 가지고 이렇게 치열한 다툼을 펼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창현은 과연 자신의 주문이 잘된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만 했다.

창현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하라고 은연중에 분위기를 풍기는 것보다 창현의 말처럼 속 시원하게 가위 바위 보로 정하는 것이 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연과 윤아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고, 두 사람은 오른손을 뒤로 숨기더니 입을 열기 시작한다.

“안내면 술래, 가위 바위 보!”

합창하듯 말을 맞추면서 두 사람의 오른손이 허공을 가른다.

그리고 두 사람간의 희비가 교차한다.

“아싸! 이겼다!”

“아아…….”

승자는 다름 아닌 수연이었고, 패자는 윤아였다.

수연은 손을 활짝 펼친 보자기를 낸 상태였고, 윤아는 상당한 파괴력을 지닌 듯한 굳건한 주먹을 낸 것이다.

가위 바위 보에서 승리하자 수연은 자신이 창현의 주문을 따낸 것 마냥 기뻐하였고, 윤아는 패배에서 오는 절망감에 몸을 비틀거려야만 했다.

“윤아야, 먼저 하렴. 후후!”

“이익……”

웃음 짓는 수연의 모습이 얄미웠음일까.

윤아가 수연을 째려보았지만 이내 눈길을 거두었다. 소녀시대 내 먹이사슬 최상위권에 속하는 수연에게 반란을 시도할 만큼 윤아의 파워가 따라주지 못했다.

결국 고개를 푹 떨군 윤아가 창현에게 다가간다.

창현은 그런 윤아를 보면서 그녀에게 더욱 부담감을 안겨주는 한 마디를 한다.

“기대할게요, 윤아 누나. 파이팅.”

“…….”

그 말이 더 부담을 준다는 것을 창현은 알기나 할까.

창현의 말에 윤아가 입술을 질끈 깨문다. 그리고는 전의를 다지기 시작한다.

그래 해보는 것이다! 어차피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는가! 이참에 확실한 애교 of 애교를 보여서 창현의 점수를 확실하게 따내는 것이다!

그렇게 결심을 굳히자 윤아의 주변에 심상치 않은 아우라가 흐르기 시작했다.

애교 하나에 전신에서 아우라가 발산되다니.

지켜보고 있던 창현은 물론이고 윤아가 어떤 식으로 애교를 부릴지 기대하던 수연조차 긴장감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윤아는 행동에 나선다.

성큼 한걸음 앞으로 나간 그녀가 창현의 팔을 덥썩 껴안은 것이다.

그 모습에 창현은 물론이고, 지켜보던 수연과 세희, 로드 매니저까지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윤아는 당황하는 창현의 눈을 마주하면서 생긋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연다.

“아이잉! 옵하! 여기 맛난 음식들 좀 사주면 안 되여? 이거 좋은 일에 쓰는 건데… 옵하가 능력 좀 보여주세요. 응? 아이잉! 부탁해요, 옵하!”

썩션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로 과도한 콧소리와 윤아의 귀여운 표정이 절정으로 조합된 최강의 애교가 작렬하였다.

핵폭탄급 윤아의 애교를 직접 대면하게 된 창현은 입을 열지 못한 채 어버버를 연발하고 있었다.

윤아의 애교 포인트는 과도한 콧소리가 섞여서 발출된 ‘옵하’ 라는 단어였다. 윤아의 나이가 창현보다 두 살이나 많은 걸 감안하면 엄청나게 파격(?)을 준 애교인 것이다. 두 살이나 어린 창현에게 옵하라니! 게다가 능력을 보여 달라는 말로 인하여 우회적으로 창현에게 음식을 적게 시키지 못하게 만드는 능력을 발휘하였다.

과도한 콧소리와 귀여운 표정, 그리고 단어 선정과 우회적인 표현으로 애교 포인트와 의외성, 매상이라는 세 마리의 토끼를 한 번에 잡았다고 볼 수 있다.

“…….”

이를 지켜보고 있던 수연은 할 말을 잃은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녀 또한 윤아의 저 애교에서 담겨진 여러 가지 뜻을 간파할 수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윤아의 애교는 목적과 주제, 창의적인 면이라는 삼박자가 골고루 갖춰져 있던 것이다.

애교를 받는 창현의 입장에서는 그저 살인적인 애교로 보였겠지만 애교를 보는데 전문가(?)의 경지에 도달한 수연은 윤아의 애교 하나에 얼마나 많은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헤헷!”

수연을 보며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혀를 쏙 내미는 윤아였다.

그녀가 애교를 부린 시점에서 이미 전쟁은 시작된 것이다. 전쟁에 나이 따위는 필요 없다.

오로지 승리를 향한 갈망만이 있을 뿐.

수연은 혀를 날름거리는 윤아를 보며 이를 꽉 물었다.

강력한 일격에 전의가 식어가고 있는데 감히 자신에게 혀를 날름거리다니.

아직도 윤아의 애교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창현을 향해 수연이 한 걸음 내딛었다.

윤아의 애교보다 더 파격적이고 더욱 강렬한 애교를 선보이는 것.

그것만이 승리로 향할 수 있는 길이다.

창현에게 향하는 수연의 모습은 사뭇 비장하기까지 하였다.

그런 수연의 모습을 윤아는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끌어낸 자신의 애교는 그야 말로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과연 수연은 어떨까.

그녀가 애교 없는 것은 멤버들은 물론이고 창현도 알고 있을 것이다. 성격이 소심하면서 무뚝뚝한 편이기에 애교에 있어서 가장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과연 그녀가 어떤 애교를 보일 것인가.

어느덧 윤아의 강력한 애교의 여파에서 헤어 나온 창현은 수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현에게 다가간 수연은 순간 머뭇하다가 이내 결심을 굳힌 듯 메뉴판을 펼치고는 창현에게 내민다. 그리고 왼손으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리면서 한껏 귀여운 표정을 지은 채 말한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다 사주면 안되요? 히잉.”

수연의 필살기가 여기서 터져 나온다. 이른 바 절대 애교라 할 수 있는 ‘히잉’ 이 튀어나온 것이다. 윤아처럼 과도한 콧소리를 넣지 않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욱 플러스가 되었다. 과도하지 않기에 오버했다는 느낌이 덜 들 뿐만 아니라 메뉴판을 펼치고 직접적으로 구매를 요구함으로써 피할 수 없는 상황조성과 살인적이라 할 수 있는 ‘히잉’ 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거세게 흔들기에 부족함이 없던 것이다.

창현의 맞은 편에 앉아 있던 로드 매니저는 윤아에서 수연으로 이어진 애교 2단 콤보에 무너진 상태였다. 아주 히죽이는 모습이, 세희의 점수를 깎아먹기에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이는 남자로서 당연한 반응이었다. 창현조차 애교에 강력한 일격을 받아 눈이 흔들리고 있던 것이다.

이 정도로 강력한 애교라니.

좀 전에 윤아가 했던 애교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 애교였다. 윤아에 비해 훨씬 짧았지만 오히려 짧음으로 인하여 그 여운은 길었다.

두 애교를 보았으니 이제 결정을 내릴 시간이었다.

수연과 윤아는 기대감 어린 시선으로 창현을 바라보았다.

이제 누구의 애교가 더 강력했는지 흑백을 가릴 시간이었다. 여기서 승리하게 되면 창현의 점수를 딸 수 있음과 동시에 주문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

두 사람의 시선을 받은 창현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누구의 애교가 더 뛰어난지 판단을 내려야 하다니. 참으로 행복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던 창현은 입가에 웃음을 띤 채 입을 연다.

“하하! 미안해요, 누가 더 뛰어나다고 말을 못하겠네요. 무승부는 안 될까요?”

“에에?”

“무승부야?”

창현의 말에 두 사람은 실망한 표정을 짓는다.

기껏 적성에 맞지 않은 애교를 펼쳐냈건만 무승부라니!

수연과 윤아의 불퉁한 표정에도 불구하고 창현은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정말 우열을 가리기 힘들고요… 게다가 제가 누구를 고르건 간에 한 사람은 실망할 게 뻔하잖아요. 어차피 윤아 누나가 속한 마린팀은 식사류이고, 수연 누나가 속한 곳은 마시는 종류니까… 골고루 주문할게요. 괜찮죠?”

난처한 웃음을 띠는 창현의 모습에 수연과 윤아는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창현도 나름대로 생각을 하고 내린 결정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여기서 패하기라도 했으면 만만치 않은 타격을 입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면서 아쉬운 마음도 드는 것이,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는 말이 떠오르는 두 사람이었다.

“알았어. 창현이 네가 그렇다니까 어쩔 수 없지.”

“나도 이해해.”

넓은 대인배의 마음씨(?)를 보여주는 두 사람에게 창현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고마워요. 그럼 메뉴판 주시겠어요? 메뉴판을 보아야 음식을 고를 수 있을 테니까요.”

“응! 마음껏 골라봐.”

수연과 윤아가 창현에게 메뉴판을 내밀었다.

먼저 수연이 내민 소녀팀의 메뉴는 이러하였다.


소녀팀 메뉴


제시카가 미쿡에서 가져 온 아메리카노 5000원

유리가 직접 짠 오렌지주스 5000원

수영이처럼 달~콤한 초코라떼 5000원

태연이가 달달볶은 원두의 카페라떼 5000원

효연이가 보성에서 재배해 온 녹차라떼 6000원

서현이가 살살 녹인 카라멜 마끼야또 6000원

인천 앞바다의 사이다 3000원

그리고 콜라 3000원


주로 커피나 음료수 종류를 판매하고 있었다.

반면, 마린팀의 메뉴는 이러하였다.


마린팀 메뉴


티파니가 숙성시킨 치즈라면 5000원

태환이가 헤엄친 해물라면 5000원

소녀시대가 반죽한 떡라면 5000원

윤아 얼굴만 한 주먹밥 3000원

써니가 직접 재배한 토마토 스파게티&커피 10000원


일일 카페이고, 그 목적이 기부여서 그런 것일까?

가격이 상당히 센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창현은 메뉴판을 보면서 흠! 하며 고심하다가 문득 윤아에게 묻는다.

“그런데 윤아 얼굴만 한 주먹밥은 도대체 얼마나 큰 거죠? 이만하나요?”

“아, 아니거든!”

그러면서 창현은 양손으로 엄청 크게 원을 그리자 윤아가 발끈하며 외친다.

그에 창현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쿡쿡! 농담이에요. 주먹밥은 몇 개가 나오죠?”

창현의 말에 윤아는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쉰다.

자꾸 창현이 장난을 치자 그에 발끈하는 자신의 모습에 마음을 식히려고 하는 것이다. 지금 창현은 손님이고, 손님은 왕이다. 그러니 참아야 한다. 이렇게 수없이 되 뇌이며 윤아가 창현의 물음에 답했다.

“세 개가 나와.”

“그래요? 음! 윤아 누나 얼굴만 한 거면 한 개만 먹어도 배부를 테지만… 오늘 제가 무척 배고픈 상태니까 주먹밥 세 개에 형하고 누나는 뭐 드실래요? 제가 살 테니 넉넉하게 시켜도 되요.”

일단 기본으로 주먹밥을 한 명씩 깔아놓는 창현이었다.

그 물음에 로드 매니저가 메뉴판을 바라보더니 말한다.

“나는 소녀시대가 반죽한 떡라면을 하지.”

“난 태환이가 헤엄친 해물라면.”

로드 매니저는 남자라는 것을 숨기지 않는 듯, 소녀시대 전체를 겨냥한 메뉴를 골랐고, 세희는 유일한 청일점인 박태환의 이름이 언급된 해물라면을 골랐다.

창현은 메뉴판을 보고 잠시 고민하다가 큰 결단을 내린다.

그 결단은 바로…….

“저는 티파니가 숙성시킨 치즈라면이요. 이거 실제로 미영 누나가 끓이는 거 아니죠?”

미영의 음식 실력을 알기에 창현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윤아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매정하게도 현실적인 대답을 한다.

“맞는데?”

아무래도 상당한 마음 각오를 해야 할 듯하다. 하지만 창현은 도시남자답게(?) 주문을 번복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 도시남자는 한 번 고른 메뉴로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 미덕이다!

자칫 그 미덕이 사망으로 이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도시남자가 되려면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큭! 그래도 결정을 내렸으니 어쩔 수 없죠. 전 티파니가 숙성시킨 치즈라면이요. 그리고 수연 누나, 유리가 직접 짠 오렌지 주스랑 제시카가 미쿡에서 가져온 아메리카노 2잔 주세요. 콜라 세 개도요.”

“OK.”

창현의 주문에 분주히 체크하며 돈을 계산하는 수연이었다.

그 사이, 먼저 계산을 끝낸 윤아가 창현에게 말한다.

“윤아 얼굴만 한 주먹밥 세 개랑 소녀시대가 반죽한 떡라면 하나, 태환이가 헤엄친 해물라면 하나, 그리고 티파니가 숙성시킨 치즈라면 하나 시키셨습니다. 다 합쳐서 24000원입니다.”

“여기요.”

지갑을 꺼내 주섬주섬 돈을 꺼내 윤아에게 건네는 창현이었다.

돈을 받은 윤아가 잔돈을 거슬러주고는 말한다.

“그럼 잠시 기다리세요.”

그렇게 말한 윤아가 내려갔고, 뒤이어서 수연이 계산을 하였다.

“유리가 직접 짠 오렌지 주스와 제시카가 미쿡에서 가져온 아메리카노 2잔, 그리고 콜라 3개 주문하셨습니다. 다 합쳐서 24000원입니다.”

공교롭게도 양팀에 똑같은 금액으로 주문을 한 창현이었다.

“여기요.”

수연에게 돈을 건넨 창현의 잔돈을 건네받았다. 그런데 돈을 건네면서 수연이 갑자기 얼굴을 붉히는 것이 아닌가?

“왜 그래요, 누나?”

의아한 마음에 창현이 묻자, 수연은 빠르게 고개를 젓는다.

“아, 아니야. 주문 전하고 올게.”

절대 손이 살짝 닿은 것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없는 수연이었다. 그러기에는 너무나 사소한 스킨십이었고, 부끄러웠으니까.

후다닥하고 아래로 내려가는 수연을 보며 창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 아픈 건가.”

안 그러면 갑자기 얼굴이 붉어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오늘 하루 종일 일했다고 하던데 혹 감기가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창현이 걱정할 때, 갑자기 아래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소녀들이 우르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파서 오늘 참여하지 못한 순규를 제외한 여덟 명 전원이 말이다.

창현은 그런 소녀들을 보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어라? 바쁠 텐데 이렇게 다 와도 되는 거예요?”

“방금 전에 밖에 있는 분들에게 커피 다 돌렸어. 매출 올려줘서 고마워, 창현아.”

돈은 슈퍼주니어가 냈지만 감사의 인사는 창현이 받고 있었다.

그에 창현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한껏 콧대를 세운다.

“후후! 제가 좀 한 힘 하죠. 그런데 왜 갑자기 다 오신 거예요?”

창현의 물음이 미영이 앞으로 나서면서 알록달록 여러 색의 종이를 펼쳐들며 말한다.

“짜잔! 저희 일일 카페는 손님에게 특별히 한 가지 서비스를 들어드린 답니다. 저희에게 있어 일종의 미션지인데요. 하나를 뽑으시고 펼치면 저희가 최선을 다해 서비스를 해드린답니다.”

미영의 설명에 창현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오오! 멋진데요? 그러니까 저도 하나 뽑을 수 있다는 이야기죠?”

“Yes! 좋은 것도 있고 별 거 아닌 것도 있으니 잘 뽑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후후! 제가 이런 뽑기는 또 한 운하죠.”

입가에 미소를 지은 창현이 손을 뻗어 미영이 내민 미션지를 고르기 시작한다.

“…….”

그 모습에 소녀들이 숨을 죽인 채 바라보고 있다.

저 다섯 개의 미션지 중에서 두 개는 합법적으로 므흣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나머지 세 개는 그야 말로 그냥 막노동 수준의 것들이다.

장난기가 많은 창현의 손에 그것들이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당장 슈퍼주니어가 뽑은 소녀시대 안무 보기 때문에 소녀시대 안무만 몇 번을 했는지 까마득할 정도였다.

‘제발……!’

우선 소녀들은 한 마음으로 창현이 무난한 것을 뽑길 기도하였다.

미션지를 바라보고 있던 창현이 결정을 내린 듯, 분홍색 미션지를 뽑아든다.

“으음! 전 이걸로 할 게요!”

창현이 미션지를 뽑자 모두가 긴장한 시선으로 창현을 바라본다.

그런 시선을 받는 가운데 창현은 미션지를 펼쳐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미션지를 펼친 창현은 안에 적힌 글자를 읽다가 고개를 갸웃한다.

“응? 마음에 드는 사람이랑 커플로 스파게티 먹기? 이건 뭐죠?”

그렇게 말하며 창현이 소녀들에게 미션지를 펼쳐 보였다.

“……!”

눈에 들어오는 미션지에 소녀들의 눈빛이 확 뒤바뀌었다.

저것은 스파게티를 함께 먹을 수 있는 특권 중 특권이 아닌가?

지금 이중에서 아침부터 제대로 식사를 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연히 몹시 허기진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스파게티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소녀들에게 있어 가장 바라던 미션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만약에… 만약에 마지막에 면발이 하나만 남게 된다면?

그렇고 그런 장면을 연출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몇몇 사람들의 뇌리에 스쳐 지나갔나보다.

창현이 뽑은 미션지는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랑 커플로 먹는다는 건 저 혼자서 먹는 게 아니네요?”

창현이 소녀들을 보며 묻는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는 소녀들. 역시 한 명을 지정해서 같이 먹는 듯했다.

“흐음! 그러면 제 마음에 드는 거네요. 그럼 누굴 고르지.”

고민에 잠기는 창현이었다.

순규가 감기로 인해서 참가하지 못했기에 현재 이곳에 있는 소녀는 도합 여덟 명이다.

그렇다면 여덟 명 중에서 한 명을 뽑아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는 것은 한 명은 빼고 일곱 명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평상시 창현이었다면 장난을 쳤겠지만… 그의 행동을 머뭇거리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바로 눈을 부릅 뜨고 있는 소녀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스파게티란 소리를 듣자마자 입가에 침이 고이는 모습이 창현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무척 배가 고픈 듯한데, 이중에서 한 명을 뽑는다는 건 조금 잔인한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창현은 소녀들을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는 이미 충분할 정도로 많은 양을 시켰으니 스파게티를 누나들이 나눠먹는 건 어때요?”

달콤한 제안이었다. 창현의 말을 듣는 순간 몇몇 소녀들의 눈에 붉은 기운이 서렸다가 이내 고개를 젓는다.

창현의 말은 분명 달콤함을 담아내고 있지만 결국 그것은 스파게티에 남은 면 한가닥의 로망을 실현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렇게 합법적인 기회가 생겼는데 그것을 단순히 경쟁이 싫다하여 저버리다니!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오디션에 합격하고, 소녀시대 멤버로 발탁된 소녀들인 만큼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있는 힘껏 부딪쳐서 맞서 싸울 뿐.

“아니야! 창현이 넌 가만히 있어. 우리가 자체적으로 뽑을게.”

강력하게 반발하며 창현을 제지하는 수연이었다.

뒤이어 태연이 창현을 바라보면서 말한다.

“한 명 뽑기 난감해서 그런 거지? 그럼 우리가 자체적으로 뽑도록 할게. 그래도 되지?”

다른 말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기세였다.

그 모습에 압도된 창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다 같이 나눠먹는 게 바람직해보였지만 워낙 흉흉한 기세였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왠지 모르게… 선택권은 자신에게 있는데 모든 자유를 박탈 당한 느낌이랄까.

“그, 그러세요.”

결국 용납하는 창현이었다.

“…….”

말없이 지켜보던 주현은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미션이 나왔을 때부터 주현은 내심 창현과 같이 먹는 것을 노리고 있었다. 오늘 일일 카페에서 숨은 일등 공신은 바로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남들이 모두 꺼리는 설거지부터 시작하여 온갖 잡일을 자신이 도맡아 해야만 했다.

막내라는 이유로 말이다.

그랬기에 창현과의 커플 스파게티 먹기는 반드시 자신이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언니들 모두가 창현과 먹는 스파게티 자리를 노리고 있던 것이다.

무려 팔대 일의 경쟁률이다. 여기에서 자신이 승리할 가능성은 단순한 숫자로 계산해보면 12.5%라는 터무니없는 낮은 숫자가 나온다.

과연 이 가능성을 뚫고 자신이 승리할 수 있을까?

대답은 No였다.

워낙 기라성 같은 언니들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이 이길 확률은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인데…….

‘아!’

그때 주현의 머리에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다.

그녀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 그것은 바로 창현의 생일 때 했던 고스톱이었다.

거기에서 이기면 부탁을 하나 들어주기로 하지 않았던가? 생각해보니 그때 승리한 것이 바로 자신이고 말이다.

그렇다면 그 부탁을 여기에 사용하면?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사용하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어떻게 얻어낸 부탁인데 이 자리에서 사용한단 말인가.

그야 말로 신이 내려주신 운을 사용하여 얻어낸 것인데, 그에 어울리게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아껴두다가는 그대로 창현이 다른 사람과 스파게티를 먹는 모습을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 주현의 머릿속에 다른 언니와 함께 스파게티를 먹는 창현의 모습이 떠오른다.

먹다 보니 점점 면이 줄어들고, 마침내 면이 하나만 남았을 때, 점점 줄어드는 면과 함께 점점 좁혀지는 입술과 입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주현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면서 맹렬하게 흔들린다.

‘안 돼! 그것만은!’

자신이 눈을 버젓이 뜨고 있는데 그런 행위라니!

아니, 눈이 닿지 않는 곳이라도 그런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러자 주현은 심각한 위기감에 휩싸였다.

자신이 생각했다면 분명 다른 언니들도 그럴 수 있기에.

그렇게 생각이 들자 주현은 마침내 마음을 굳힌다.

뒤를 내다보기에는 자신의 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중보다 당장에 충실해야 한다.

지금부터 잘해야 미래를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

결심을 굳힐 무렵, 창현의 승낙을 얻어낸 태연이 멤버들을 둘러보며 말한다.

“자, 들었지? 창현이가 승낙했어. 그러니까 간단하게 가위 바위 보로 정하자. 어때?”

“잠깐만요!”

태연의 말에 제동을 거는 주현이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제법 컸기에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창현 또한 주현을 바라보았다.

주현은 앞으로 성큼 나서더니 창현의 앞에 선다. 그리고는 창현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창현이 그거 기억해? 네 생일에 있던 날.”

“…기, 기억하죠.”

주현의 말에 창현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어찌 잊을 수 있으랴. 도신이라 불리던 자신이 초보자인 주현에게 처참하게 고스톱으로 털린 날인데 말이다.

그것 때문에 주현에게 부탁을 들어줘야 하지 않았던가.

‘응, 부탁?’

부탁이란 단어에 창현이 흠칫한다. 그리고는 주현에게 시선을 준다.

주현은 창현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듯하자 입가에 미소를 짓고는 말한다.

“맞아. 그때 그 부탁 얻은 거 사용할게. 나랑 같이 스파게티 먹자.”

그녀의 그 말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가위 바위 보로 결정을 내려던 소녀들에게 있어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던 것이다.

소녀들이 주현을 보면서 소리쳤다.

“서주현!”

“막냉이 너!”

“부탁은 부탁이니까요. 약속을 잘 지키는 창현이가 설마 제 부탁을 안 들어줄까요? 포기하세요, 언니들.”

침착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서 멤버들을 침몰시키는 주현이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시선이 창현에게 향했다. 결정을 내리라는 재촉의 의미였다.

“흐음! 알았어요. 어려운 것도 아닌데요, 뭐.”

창현은 별다른 고민 없이 주현의 요구를 승낙하였다. 제법 센 부탁을 할 수 있는 권리였는데 이렇게 간단한 요구를 하다니 창현으로서는 감지덕지였다. 아직 소녀들이 스파게티로 어떠한 일을 상상하고 있는지 모르는 창현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창현이 결정을 내리자 주현의 입가에 미소가 어린다. 그리고는 분해하는 언니들을 향해 고운 미소를 날려준다.

“후후후! 이미 결정되었네요, 언니들.”

“이익! 막냉이 너…….”

“당했다. 막내가 이런 식으로 선수를 칠 줄이야.”

승리자의 웃음을 짓는 주현의 모습에 허탈한 표정을 짓는 소녀들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창현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목숨을 거는 거지? 아, 누나들이 그렇게 배가 고픈 거였나.’

그렇게 정리를 내리는 창현이었다. 소녀들의 머릿속을 드나들지 않는 이상 알아차리기는 불가능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잠시 후, 스파게티가 나왔다. 면에다가 소스를 붓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완성하는 것은 그야 말로 눈 깜빡할 사이였다.

스파게티가 테이블 위에 올라오고, 창현과 주현이 마주보며 앉았다.

주현은 도끼눈을 뜬 채 자신을 바라보는 언니들에게 말했다.

“언니들 일 하러 안 가나요?”

요컨대 작업(?)에 방해가 되니 사라져 달라는 요청이었다.

주현의 강력한 일격에 태연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아니, 그냥 어떻게 먹나 보려고. 배도 고픈데 눈으로 요기해야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감시를 해줘야 해.’

겉으로 하는 말과 속내가 다른 태연이었다. 그리고 다른 소녀들 또한 비슷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런 태연의 속내를 모를 주현이 아니었다.

쌓여있는 주문을 처리하지 않고 훼방을 놓기 위해 구경하는 언니들의 모습에 그녀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속전속결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잘 먹겠습니다.”

“맛있게 먹겠습니다.”

포크를 들면서 나란히 인사하는 창현과 주현이었다.

그리고는 스파게티를 먹기 시작했다.

스파게티는 많지 않은 양이었다. 양을 적게 하고 비싸게 받는 것이 상술의 기본이 아닌가! 게다가 주현의 선수로 인해 스파게티를 가져온 윤아의 사심이 듬뿍 작용했기에 스파게티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랬기에 창현과 주현이 먹자 스파게티의 양이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

양이 적어짐에 따라 소녀들의 눈에 긴장감이 서리기 시작하였다.

점점 줄어드는 면발. 그리고 점점 줄어들던 면발이 마침내 적어질 무렵, 드라마 속 한 장면과 같이 마지막 남은 면발 하나가 운명처럼 창현과 주현의 입에 연결되었다.

그걸 확인한 주현의 눈이 빛난다. 면발이 이어진 순간 주현의 뇌리에 2002 월드컵 4강전에서의 ‘꿈은☆이루어진다’ 라는 단어가 스쳐지나갔다.

‘됐어! 이거야.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마지막 남은 한가닥의 면발이 자신과 창현 사이에 이어지자 주현은 신에게까지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눈을 꼭 감는다. 그리고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뒤 맹렬하게 돌진을 하기 시작한다.

이대로 눈 딱 감고 창현의 입술과 충돌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주현은 위험 요소를 너무나 많이 배치해두고 있었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주현의 입술이 순간 3배속이 되어 돌격할 무렵, 그야 말로 섬광을 방불케 하는 움직임이 면 하나로 이어진 창현과 주현의 중앙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그리고는…….

투둑!

둘 사이를 연결해주던 면발이 힘없이 떨어지고 만다.

“아아…….”

자신과 창현을 연결해주던 면발이 힘없이 끊어져 나가자 주현의 입에서 신음이 절로 흘러 나왔다. 그녀가 순간 느낀 모든 참담한 마음이 한데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원망스러움을 담은 주현의 시선이 면을 끊어놓은 사람에게 향한다.

그곳에는… 해맑게 눈웃음을 짓고 있는 미영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원망을 가득 담은 주현의 시선을 보더니,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손에 든 가위를 찰칵찰칵! 쥐었다 피며 말한다.

“불편할 것 같아서 잘라줬어. 나 잘했지?”

평소라면 눈부셨을 웃음이… 지금 주현의 눈에는 더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오싹한 의미를 담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주현의 스파게티 후루룩 하다가 입 맞추고 데헷☆ 하는 작전은 미영의 쾌검에 의해 처참한 결말을 보이고 말았다.

눈에서 레이저라도 뿜어낼 듯이 노려보던 소녀들을 어느새 한결 밝아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는 음식을 하기 위해 내려간 소녀들은 어느새 완성된 주먹밥과 라면, 커피와 콜라를 가지고 올라왔다.

“수고하셨어요, 누나들.”

음식을 모두 내온 소녀들을 보면서 창현은 수고했다는 말을 하였다.

그러자 소녀들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자신의 말이 기분 좋은 걸까. 자신의 한마디에 기분 좋은 표정을 짓는 소녀들을 보니 창현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꼈다.

그때, 태연이 창현에게 다가오더니 말했다.

“음식 이렇게 많이 시켜줘서 고마워, 창현아.”

“뭘요. 아침부터 안 먹어서 그래요. 아마 더 시킬지도 몰라요.”

창현의 말에 태연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더 많이 먹기를 기도해야겠네.”

“그런데 왜요? 무슨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그의 물음에 태연은 생긋 미소를 짓더니 창현에게 말한다.

“응. 창현이 네가 먹는 동안 주기로 한 싸인 CD를 경매로 해볼까 생각 중인데, 어때? 지금쯤이면 사람들이 커피로 몸을 데웠을 것 같아서 적절하다고 생각되거든.”

아무래도 보통 사람들은 식사를 하는 도중에는 번거롭게 구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가?

그걸 알았기에 소녀들은 창현이 식사를 하는 동안 그가 주기로 한 싸인 CD를 받아서 경매를 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하면 시간을 보낼 수 있음과 동시에 창현을 배려하는 행동이 가능하니 말이다.

그런 의도를 알아차렸기에 창현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군요. 그렇게 하는 게 낫겠네요. 잠시만요. 세희 누나.”

“알았어, 여기.”

그러면서 창현이 세희에게 말하자, 세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백을 열어 앨범 한 장을 꺼내든다.

그걸 받은 창현이 태연에게 건넸다.

“이번 앨범 CD에요. 싸인은 해놓았고요.”

태연이 그걸 받아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약속 지켜줘서 고마워.”

“뭘요,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었는데.”

그저 앨범 한 장만 건넸을 뿐인데 고맙다는 인사를 들으니 쑥스러운 창현이었다. 자신에게 있어서 별로 큰 일이 아닌데 상대방이 필요 이상으로 고마워하면 약간 머쓱하다.

CD를 받아든 태연이 창현을 바라보면서 말한다.

“그것도 그렇고… 애장품 같은 것도 하나만 줄 수 없을까? 그걸 팔면 돈이 좀 될 것 같은데.”

애장품이란 말에 창현이 고개를 갸웃한다. 아까 전에 듣기는 했지만 딱히 애장품 같은 건 없었다.

“애장품이요? 딱히 애장품이랄 건 없는데.”

“그래? 음… 저건 어때? 비싼 거야?”

태연이 한쪽에 놓인 창현의 목도리를 가리키며 묻는다. 그곳에는 푸른색 목도리가 곱게 접혀 있었다.

그녀의 손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옮긴 창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아, 저거요? 저거 좀 비싼 거예요.”

“그, 그래? 그럼 안 되겠네. 얼마나 하는데?”

비싸다는 말에 태연이 주춤한다. 그녀가 목도리를 가리킨 이유는 그렇게 비싸보이지 않아서 그런 건데 창현이 비싸다고 하자 본능적으로 움찔한 것이다.

창현이 비싸다고 할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하는 것일까.

막 공이 여덟 개가 되고 그런 것은 아니겠지?

순간 소름이 쫙 돋는 태연이었다.

그녀가 가격을 묻자, 창현은 싱긋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좀 비싸죠. 제가 아끼는 목도리인데, 2만원이나 하는 거예요.”

“…….”

창현의 말에 태연은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들은 것이 착각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

2만원이라니? 그것이 비싼 것이란 말인가?

물론 평범한 사람 입장에서는 제법 센 가격이라 할 수 있지만 창현에게 있어서 별로 비싼 가격은 아니지 않은가? 아니, 껌 값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연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창현에게 되물었다.

“…뭐라고? 얼마?”

“2만원이요. 저희 집에 목도리가 한 다섯 개 정도 있는데 저게 제일 비싼 거예요. 음, 생각해보니 애장품이라면 애장품일 수도 있겠네요. 아무래도 겨울에 가장 많이 하고 다닌 게 저거니까요. 저걸 드리면 되는 거예요?”

“그, 그래.”

저게 비싼 거냐! 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려던 태연은 창현이 장난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비싸다고 생각하는 걸 알아차리고는 맥 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창현은 힘없이 대답하는 태연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우선 그녀가 원하는 것이 목도리였기에 목도리를 집어들고는 태연에게 건넨다.

“여기요.”

“그래, 고마워. 하아! 그럼 가볼게. 조금 있다가 봐.”

한숨을 내쉬며 목도리를 받아든 태연은 무언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는 아래로 내려간다.

그에 창현은 조금 있다가 보려는 것이겠지, 하고 납득하며 손을 흔들어주고는 본격적으로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창현이 먼저 집어든 것은 윤아 얼굴만 한 주먹밥이었다.

주먹밥을 집어든 창현이 불만어린 표정을 지었다.

“뭐야, 이게 무슨 윤아 누나 얼굴만 해? 이거 한 열 개는 합쳐야 윤아 누나 얼굴만 할 것 같은데.”

열 개를 합치면 강호동 얼굴보다 크지만 지금 이 자리에는 윤아가 없지 않은가! 원래 뒷담은 당사자가 없는 데서 까야 제 맛이지만 무엇보다 근처에 있음에도 듣지 못하는데서 까야 제 맛이다. 윤아는 현재 경매를 위해 밖으로 나간 상태였다.

밖에서 갑자기 우와아아아아아!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창현은 그걸 무시한 채 주먹밥을 먹기 시작한다.

“이거 맛있는데?”

주먹밥의 맛은 훌륭했다. 당연하다. 오늘부로 주먹밥의 달인이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얻은 태연이 심혈을 기울여서 제작한 주먹밥이었으니 말이다.

맛있게 주먹밥을 먹은 창현이 눈앞에 닥친 난관을 바라본다.

피할 수 없는 난관이 창현의 앞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크, 이제 이건가.”

창현의 눈앞에 모락모락 김을 피워 올리고 있는 음식!

그것은 다름 아닌 전설의 티파니가 숙성시킨 치즈라면인 것이다.

평범한 치즈라면이라면 창현이 이렇게 굳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 라면은 다름 아닌 티파니! 어떤 면에서 요리의 마술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미영의 손을 거쳐 탄생한 것이다.

미영의 손을 거치면 평범한 샌드위치도 수십 가지 조미료의 맛이 느껴지는 복합적인 맛으로 탄생하기도 하고, 달달한 초콜릿을 핵폭탄 쓰나미 눈물 줄줄 초콜릿으로 변하기도 한다.

과연 이 라면은 어떤 화학 작용을 일으킨단 말인가.

긴장감이 가득한 눈으로 창현이 젓가락을 잡아든다.

부들부들.

젓가락을 잡는 창현의 손놀림이 그야 말로 사형대 앞에 서기 전 사형수의 모습과도 비슷하였다.

도시남자로서 주문을 번복하지 않는 행위를 하였지만 그 후폭풍을 지금에서야 맞이하게 되었다.

과연 이 난관을 넘길 수 있을까.

진정하려고 애를 쓰지만 그럼에도 진정되지 않는 젓가락이 부들부들 떨리며 라면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들어가지 않는 힘을 억지로 쥐고는 라면을 집어 든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라면을 입에 넣는다.

“……!”

라면을 입에 넣은 창현의 눈이 부릅 뜨인다. 그리고는 이내 온몸을 강타하는 감동에 눈물이 맺힐 뻔한다.

이 라면은… 그래, 이 라면의 맛은 그야 말로…….

“밍밍해. 하지만 다행이야. 정상적인 범주의 맛이라서.”

그렇다. 티파니가 숙성시킨 치즈라면은 물의 양 조절 실패로 인하여 밍밍한 맛을 자아내고 있던 것이다.

이번에는 또 다시 어떤 맛을 창조해냈을지 잔뜩 긴장하던 창현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밍밍하다고 해서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야 말로 평범한 맛에서 조금 밍밍한 정도였다. 그랬기에 창현은 라면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밖에서는 또 다시 우와아아아아! 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음식을 먹느라 바쁜 창현의 귀에 들려오지 않는 소리였다.

“이 정도면 훌륭해. 미영 누나, 요리 실력이 많이 늘었구나. 다행이야, 정말 다행.”

라면을 먹으면서 이렇게 감동을 느끼는 것은 처음인 듯하다.

그야 말로 걸신들린 듯이 라면을 먹은 창현은 벌써 배부른 듯 주먹밥을 다 먹지 못하고 있는 세희의 주먹밥까지 처리해나간다.

그러자 제법 포만감이 들었지만 오늘 본격적으로 발동을 걸겠다고 다짐한 창현에게는 아직 부족한 상태.

어서 누나들이 경매를 끝내고 와야 음식을 더 주문할 수 있을 텐데, 하면서 올라오기를 기다리던 창현은 또 다시 우와아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잠시 후, 소녀들이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쿵쾅쿵쾅.

발자국 소리를 요란하게 내면서 올라오는 소녀들.

창현은 그녀들을 보며 반갑게 맞이하였다.

“어라, 일찍 끝냈네요. 누나…….”

음식을 추가주문 하려던 창현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성큼성큼 다가온 수영이 다짜고짜 창현의 팔을 덥썩 잡아든 것이다.

“응?”

영문 모를 표정을 지은 창현이 수영의 힘에 이끌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반대편에는 유리가 창현의 팔을 덥썩 잡아든다.

이것은 마치 경찰이 범인을 체포하는 듯한 자세였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창현이 우물쭈물하는 태연을 향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건 뭐죠?”

창현의 물음에 태연이 순간 멈칫하다가 이내 후욱! 하고 숨을 들이쉬다가 창현에게 입을 연다.

“창현아 도와줘!”

“에?”

뜬금없이 도와달라는 태연의 말에 머리 위 물음표 모양이 그려지는 창현이었다.

돕다니 뭘?

앞을 다 잘라내고 다짜고짜 도와달라니? 그러면 자신이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잠시만요.”

그렇게 말한 창현이 팔을 움직여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수영과 유리에게서 빠져나온다.

겉모습은 호리호리하지만 보이는 모습과 달리 창현의 힘은 제법 세다. 여자인 유리와 수영이 당해낼 리가 없다.

두 사람의 속박에서 벗어난 창현이 태연을 바라보며 묻는다.

“뭘 도와달라는 건데요? 자세한 연유를 알아야 제가 돕거나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그, 그게 그러니까…….”

직통으로 묻는 창현의 말에 태연이 다소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뭐랄까, 지금 창현의 모습은 제법 차가워보였기에 그런 것이다.

다른 소녀들도 마찬가지였다. 창현의 모습이 차갑다고 느낀 것인지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창현의 모습에 나선 것은 수연이었다.

“내가 설명할게.”

수연의 설명은 태연이 창현에게서 싸인 앨범 CD와 목도리를 가지고 나간 것에서 시작이 되었다.


창현에게 싸인 앨범 CD와 무진장하게 비싼 목도리를 가지고 나온 태연은 곧장 경매를 시작하였다.

밖에 마련된 테이블 위에 싸인 앨범 CD와 목도리를 놓은 태연이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모두 따뜻한 커피로 몸 좀 녹이셨죠?”

네에!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밖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현의 승리로 슈퍼주니어가 사비를 걷어서 산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있는 상태였다. 맛에 상관없이 쌀쌀한 날씨에 따뜻한 커피는 무척 궁합이 좋아서, 사람들은 그것이 현이 산 것이란 말에 환호성을 터뜨렸다.

그렇게 커피로 몸을 녹일 무렵, 태연이 물건을 가지고 나온 것이다.

일일 카페를 하는 도중에 드문드문 싸인 앨범 CD나 스타의 애장품을 판매하기도 하였다. 당장 판매된 앨범 중에서는 이수영의 앨범과 빅뱅의 앨범, 그리고 슈퍼주니어의 앨범과 소녀시대의 앨범을 판매하였으니 말이다. 그중에서 최고가는 소녀시대의 앨범이었고, 앨범 구매를 하면 전 멤버의 포옹을 미끼로 건 결과 7만원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앨범 경매의 주인공은 당연히 현의 것이었다.

싸인회 같은 것을 따로 하지 않는 현이었기에 그의 싸인 앨범을 구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당장 이번 그의 앨범 판매가 50만장을 돌파한 상태였지만 싸인 앨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의 생일 파티 팬 미팅에 초대된 사백여 명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만큼 창현이 원치 않았지만 본의 아니게 그의 싸인 앨범은 유니크 아이템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랬기에 사람들은 직감적으로 태연이 들고 나온 앨범이 현의 것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들고 온 목도리는 아까 전 가게 안으로 들어설 때 현이 하고 있던 목도리였다는 것을 그의 팬들은 기억하고 있었기에 그렇다.

진행에 나선 태연은 테이블 위에 놓인 앨범을 들며 말했다.

“이 앨범은 여러분들도 예상하고 계시겠지만 다름 아닌 이번에 새 앨범을 들고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 보인 현 씨의 정규 3집 앨범입니다.”

우와아아아아!

태연의 말이 나옴과 동시에 환호성이 동시에 터져 나온다.

예상은 했지만 그녀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 그 느낌이 사뭇 틀렸던 것이다.

사람들의 열렬한 환호에 소녀들은 창현의 인기가 대단하다고 실감하였다.

환호성이 서서히 잦아들 무렵, 태연이 다시 진행을 시도한다.

“자, 현 씨의 정규 3집 앨범. 대외적인 활동을 많이 하지 않는 현 씨인 만큼 싸인 앨범 CD를 구하기가 상당히 힘든데요. 여기에서 낙찰된 금액의 전액은 기름 유출 사건으로 복구 작업이 한창인 태안에 기부할 예정입니다. 그럼 만원부터 시작할게요.”

“만오천 원!”

태연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쪽에서 외침이 터져 나온다. 보통 천원 단위로 올라가던 것과 사뭇 다르게 처음부터 오천 원이나 올라가는 면모를 보인다.

과연! 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칠 무렵, 시간 차이를 두고 두 개의 외침이 들려온다.

“만팔천 원!”

“이만 원!”

“네, 이만 원 나왔습니다.”

순식간에 다른 가수들이 낙찰 되었던 금액을 뛰어넘어버리자 소녀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뒤이어서도 계속해서 가격을 올리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오늘 단단히 작정하고 온 사람들이 많은 듯했다.

“이만오천 원!”

“삼만 원!”

“사만 원!”

차곡차곡 올라가는 금액. 급기야 오만 원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보통 정규 앨범 가격이 1만 5천원을 넘지 않은 걸 감안하면 무시무시한 상승세였다. 단순히 싸인 하나가 들어갔을 뿐인데 그 가치는 무시무시하게 상승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오만 원에서 잠시 주춤하는 기색을 보였다.

선뜻 손을 드는 사람이 없자, 태연은 카운트 다운을 세기 시작한다.

“오만 원! 더 없으신가요? 그럼, 셋, 둘 하나…….”

막 낙찰이 되었다고 외칠 무렵, 뒤쪽에서 손을 번쩍 들며 외친다.

“육만 원!”

“육만 원! 에, 육만 원이 나왔습니다.”

오만 원의 한계를 깨버리자 태연이 놀라며 외친다.

그러나 그것이 시작이었다.

오만 원이라는 벽이 깨지자 다시 경매의 향방은 알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휩싸이기 시작한 것이다.

칠만 원, 팔만 원. 구만 원.

앨범 경매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앨범은…….

“십만 원!”

“…….”

마침내 여섯 자리 숫자로 넘어가게 되자 순간 침묵이 감돌았다.

뭐랄까, 마의 벽을 넘긴 느낌이랄까.

설마 십만 원까지 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사람들은 물론이고 소녀들도 놀란 표정이었다.

태연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입을 연다.

“십만 원 나왔습니다. 더 없으신가요? 셋, 둘, 하나, 낙찰 되었습니다. 축하드려요.”

짝짝짝짝.

십만 원이라는 가격에 당첨되자 소녀들이 모두 박수를 친다.

앨범을 낙찰 받은 사람은 이십대 중반의 여자였는데, 추위 때문인지 앨범을 손에 넣었다는 성취감 때문인지 얼굴이 붉어진 상태였다.

“축하드려요.”

돈을 건네고 앨범을 받은 여자가 자리로 돌아간다.

생각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낙찰이 되자 태연도 상기된 얼굴로 말을 한다.

“현 씨의 정규 3집 앨범이 십만 원이라는 가격에 낙찰되었습니다. 감사드리고요, 이제 마지막 경매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태연이 목도리를 집어 든다. 그걸 본 몇몇 사람들이 꺄아! 하며 소리를 질렀고, 소녀들도 눈에 빛을 냈다.

태연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목도리를 가리켰다.

“여러분, 이 목도리가 누구 것인지 아십니까? 바로 방금 전 앨범을 주신 현 씨의 것입니다. 제가 부탁에 부탁을 거듭하여 현 씨의 목도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이 목도리는 현 씨가 이번 겨울에 가장 많이 하고 다닌, 현 씨의 체취가 듬뿍! 담긴 목도리입니다.”

그 말은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다름 아닌 현의 애장품이라니! 저 목도리가 그저 평범한 것으로 보고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저 목도리의 주변에서 은은한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느꼈다.

태연의 말이 사실이라면 저것은 유니크를 뛰어넘은 신급의 아이템이기에!

사람들의 입에서 함성이 절로 흘러 나왔다.

우와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아!

“최고가를 기록한 현 씨의 정규 3집 앨범 만큼 많은 관심을 부탁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현 씨의 애장품인 목도리 경매를…….”

“잠깐만요!”

경매를 시작하려던 태연은 갑자기 마이크를 들고 난입한 윤아에 의해 끝을 맺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윤아의 끼어들기에 태연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응?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윤아 씨.”

“저, 저거 혹시 저희도 경매에 참가할 수 없을까요? 사비로요!”

목도리를 바라보는 윤아의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소녀들의 눈도 이글이글 타오르며 목도리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태연의 허락이 떨어지면 당장이라도 편의점에 달려가 돈을 찾아와서 경매에 참가할 기세였다. 아무래도 체취가 듬뿍 담겼다는 말이 주효한 듯했다.

윤아의 말에 태연이 말을 하지 못할 무렵, 앞쪽에서 경매에 참가하려는 사람들의 야유가 터져 나왔다.

“우우우! 안 된다! 연예인은 참석하지 말라!”

사람들이 그렇게 외치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연예인들과 자신들의 금전 감각은 차원이 틀리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렇다.

자신들과 경쟁이 붙게 되면 십중팔구 패배할 것임이 분명했기에 경각심이 든 것이다.

거센 사람들의 야유에 소녀들이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눈은 태연을 향하고 있었다. 허락만 떨어지면 정말 참가할 기세였다.

‘이것들이.’

사람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면 알아서 접어야지 은연중에 기회를 노리는 모습을 보고는 태연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녀의 심기가 불편해진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자신도 은연중에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멤버들이 있다니!

괜히 기분이 나빠지는 태연이었다.

그리고 그 나쁜 기분으로 인해 목도리를 선점하고 싶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그와 함께 멤버들에게도 일말의 희망을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갖지 못하는 것을 남이 갖게 해줄 수 없지 않은가!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태연이었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으며 그녀가 마이크를 들고는 싱긋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안 됩니다. 우리들은 엄연히 경매 진행자들이잖아요? 탐이 나는 물건이 있어도 욕심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해요. 알았죠?”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쩔 수 없죠.”

아쉬움을 금치 못하면서 목도리를 힐끗 본 윤아가 힘없이 대답한다.

윤아를 격퇴한 태연의 행동은 사람들의 큰 호응을 샀다.

와아아아! 태연 짱!

우유빛깔 태연 짱!

사람들의 응원에 태연은 왠지 모르게 저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편이 된 것 같아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현 씨의 애장품인 목도리 경매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경매 시작가는 1만원이고요. 목도리를 사 가시는 분에게는 한 가지 서비스를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서비스라니, 도대체 무엇을 말한단 말인가.

쉽게 짐작이 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얼굴에 묘한 기대감이 서렸다. 태연이 말한 서비스가 무엇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싱긋 웃음을 지은 태연이 말한다.

“목도리를 사시는 분에게 제가 저 안에서 식사를 하고 계시는 현 씨에게 부탁하여 직접 목도리를 해드리는 것과 프리 허그를 할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어떤가요?”

와아아아아아!

태연의 말에 함성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내심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어 포기하는 마음을 가지던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놓는 계기가 되었다.

그럼 전쟁이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일일 카페에서 유난히 전쟁이 많이 일어나는 듯하다.

“그럼 경매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붙인 태연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경매 시작을 알렸다.

그것은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태연의 시작 소리와 함께 터져 나오는 소리들.

“이만 원!”

“이만오천 원!”

“삼만 원!”

순식간에 상승하는 가격들이었다. 태연이 언급한 체취 듬뿍과 직접 목도리를 둘러주는 것, 그리고 프리 허그까지 삼박자를 갖추어 사람들의 엄청난 호응을 얻어내고 있었다.

호응을 얻은 목도리의 경매가는 순식간에 삼만 원을 돌파하여 오만 원대로 육박하고 있었다.

매몰찬 태연의 거절로 인해 입술을 삐죽이고 있던 윤아와 실망을 금치 못하던 소녀들도 가격이 올라가는 모습에 흥미로운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칠만 원!”

“팔만 원!”

싸인 앨범 같은 경우 오만 원에서 한차례 고비를 겪었지만 목도리는 그걸 무시라도 하듯 꾸준히 수직 상승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구만 원까지 올랐을 때, 망설임 없이 튀어나온 십만 원이 가격의 벽을 깨버렸다.

“십오만 원!”

현금을 이렇게 많이 들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그 때문일까.

어느 순간부터인가 개인 구매자는 모두 나가떨어진 상태였고, 남은 사람들은 몇 명씩 팀을 이루고 있었다. 서로의 현금을 최대한 끌어내서 합치기로 한 듯하다.

남은 팀은 두 팀. 각각 여자 네 명과 여자 세 명으로 이루어진 그룹이었는데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었다.

“십구만 원!”

“이십만 원!”

아주 작정하고 가격을 올리고 있는 두 팀이었다.

이십만 원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올라가는 목도리.

오늘 앨범 CD를 다 판 금액을 합친 것과 맞먹는 금액을 향하고 있었다.

어느덧 이십오만 원을 돌파하고 있는 목도리.

이십육만 원에 오르고, 마침내…….

“이십칠만 원!”

“…….”

네 명으로 이루어진 팀이 이십칠만 원을 외쳤다.

그러자 다른 팀은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래도 세 명이서 합친 현금이 이십육만 원이 한계였나보다.

그걸 본 태연이 카운트 다운을 세기 시작한다.

“이십칠만 원! 더 없나요? 셋, 둘, 하나… 현 씨의 애장품 목도리가 이십칠만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짝짝짝짝!

이십칠만 원이라는 큰 금액에 낙찰되자 소녀들이 모두 박수를 친다. 이는 앨범을 판 가격을 모두 합친 것보다 큰 금액이었다.

“그럼 안으로 들어가서 현 씨를 모셔오겠습니다. 낙찰하신 분들은 잠시 기다려주세요.”

그 말과 함께 태연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고, 다른 소녀들도 우르르 안으로 들어간다.

그것이 바로 사건의 전말이었다.


수연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창현은 황당한 표정을 지은 채 말한다.

“그러니까 제 의견도 없이 그렇게 했다는 거네요?”

창현의 말은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수연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게 그러니까…….”

그러면서 수연의 시선이 태연에게 향한다.

일을 저지른 것은 다름 아닌 태연이었으니 말이다.

그러자 창현의 시선도 태연에게 향한다. 수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태연이 이야기를 꺼냈으니 그녀의 독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게… 저…….”

태연은 자신을 바라보는 창현의 시선에 당황한다. 자신의 의견도 없이 멋대로 한 태연에게 책망의 시선을 보낸 것이다.

그런 시선은 처음이었기에 태연이 느끼는 감정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것이었다. 뭐랄까, 늘 다정다감한 모습만 보았기에 그런 것일까. 창현의 모습이 적응되지 않는 태연이었다.

결국 태연은 고개를 푹 숙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창현에게 사과를 한다.

“미안. 내가 성급했어.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

고개를 숙인 태연의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꽤나 서러웠나보다.

창현은 손을 뻗어 태연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그러자 자신을 바라보는 물기 어린 태연의 눈을 보며 창현이 말한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세요. 좋은 일이라도 막상 제 의사가 들어가지 않으면 기분이 나쁘잖아요. 누나가 제 입장이었으면 어떻겠어요?”

그 말을 들은 태연은 자신이 창현의 입장이었으면 어떨지 생각해보았다.

분명 좋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의사는 배제된 채 모든 일이 진행되었으니 말이다.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걸 깨달았기에 태연은 창현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한다.

“미안해. 내가 생각이 짧았어.”

“알아주셨으면 된 거예요. 다음부터 그러지 않으리라 생각하니까요. 그럼 밖으로 나가죠. 이번에는 누나가 말한 것처럼 하겠지만 다음부터는 아니에요. 알았죠?”

“응, 미안. 그리고 고마워.”

거듭 사과하는 태연의 모습에 피식 웃으면서 옷을 입고는 성큼성큼 걸어가는 창현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소녀들이 조용히 뒤를 따른다.

창현이 마냥 물렁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안녕하세요, 현입니다.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와아아아아!

밖으로 나온 창현은 가게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고는 고개 숙여 인사를 하였다.

사람들은 그런 창현에게 함성으로서 화답해주었다.

반갑게 맞아주자 창현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여자들이 꺄악거리며 함성을 연신 지른다.

그 사이, 마이크를 잡은 수영이 진행을 한다. 태연이 진행을 해야겠지만 방금 전 일로 앞에 나서서 말을 하기 조금 뭐한 상황이었다.

“방금 전 목도리를 낙찰하신 분은 앞으로 나와 주세요. 태연 씨가 공언했던 것처럼 현 씨가 직접 목도리를 해드리고 격하게! 포옹 한 번 해드릴 겁니다.”

수영의 말에 목도리를 낙찰한 팀에서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목도리를 해주고, 포옹을 받을 사람은 한 사람인데 목도리를 낙찰한 사람은 네 명이었으니 말이다.

결국 그 사람들이 택한 방법은 가위 바위 보였고, 치열한 접전 끝에 한 사람이 환호성을 지르며 창현에게 다가왔다.

이십대 초반의 여성이 다가오자 창현은 싱긋 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자신의 목도리를 감아주었다.

자신의 목에 팔을 두른 창현의 모습에 여성은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푹 숙였고,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부럽다는 눈길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목도리를 감아준 창현이 여성을 살짝 포옹하였는데, 그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여성아 창현의 품을 파고들며 거세게 껴안는다.

꺄아아아아!

부러워어어어어!

격한 포옹(?)에 보는 사람들이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지르는 가운데 당사자인 창현도 다소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포옹을 푼 여성은 얼굴을 붉힌 채 목도리 금액을 치르고는 도망치듯 후다닥 자리를 벗어난다.

“하하하…….”

마치 뒤통수 한 대 맞고 때린 사람이 도망친 것 같은 느낌에 창현은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벤트를 끝낸 뒤 가게 안으로 들어온 창현은 소녀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배가 고픈 기색을 보이는 소녀들에게 자신이 계산을 하겠다고 하면서 굶주린 소녀들에게 한 턱 쏘는 면모를 보인 것이다.

거하게(?) 쏘는 창현의 면모에 소녀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주방으로 달려가 주방에 남은 식재료들을 탈탈 털어서 먹기 시작한다.

그와 함께 창현에게 날아온 계산서는 무려 213000원!

식신을 방불케 하는 소녀들의 식성에 창현은 혀를 내두르며 215000원을 내밀어 2000원을 팁으로 주는 도시남자의 화끈한 면모를 보인다.

그렇게 모든 식사가 끝나고 일일 카페를 마감할 시간이 되자 창현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일일 카페가 끝난 이상 더 있을 이유가 없고, 자신이 있게 되면 세희와 로드 매니저도 계속 있어야 했기에 자리를 뜬 것이다.

창현이 떠나자 소녀들은 뒷정리를 하기 시작하였고, 뒷정리를 모두 끝낸 뒤 승부를 가리기 위해 마린팀과 소녀팀의 매출을 비교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난 결과는 마린팀의 승리였다.

이긴 팀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기로 한 만큼 소녀팀의 분위기는 초상집을 연상시키는 듯하였지만 처음에 계획했던 것처럼 다 함께 이름을 올리기로 하여 기부를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기부금은 감기를 털어내고 제 건강을 회복한 순규와 미영, 주현이 함께 내기로 하였다.

일일 카페로 그녀들이 벌어들인 돈은 488만 660원이었다. 그중에서 재료비 50만원과 수수로 3천원을 제외한 437만 7660원을 기부하기로 하였다.

은행을 찾아간 그녀들은 성공리에 입금을 끝마칠 수 있었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성공적으로 입금을 성공할 수 있었기에 그녀들에게 있어 무척 뜻 깊은 시간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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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2화 +9 15.04.20 4,516 91 11쪽
38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1화 +10 15.04.17 7,376 95 10쪽
37 ▲▲▲▲▲시즌2 시작!▲▲▲▲▲ +5 15.04.17 5,425 65 1쪽
36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6장-108장 +8 15.04.16 6,414 106 230쪽
35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3장-105장 +1 15.04.16 4,244 82 314쪽
34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0장-102장 +2 15.04.16 4,413 68 229쪽
33 마음을 울리는 음악 97장-99장 +1 15.04.16 4,389 63 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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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마음을 울리는 음악 85장-87장 +1 15.04.16 4,711 83 270쪽
28 마음을 울리는 음악 82장-84장 +2 15.04.16 4,913 85 261쪽
27 마음을 울리는 음악 79장-81장 +1 15.04.16 4,580 87 241쪽
26 마음을 울리는 음악 76장-78장 +1 15.04.16 4,752 74 244쪽
25 마음을 울리는 음악 73장-75장 +1 15.04.16 4,939 111 327쪽
24 마음을 울리는 음악 70장-72장 +1 15.04.16 4,755 82 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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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마음을 울리는 음악 43장-45장 +1 15.04.16 7,122 129 198쪽
14 마음을 울리는 음악 40장-42장 +3 15.04.16 8,909 183 320쪽
» 마음을 울리는 음악 37장-39장 +2 15.04.16 9,614 224 397쪽
12 마음을 울리는 음악 34장-36장 +8 15.04.16 9,524 189 322쪽
11 마음을 울리는 음악 31장-33장 +8 15.04.16 10,355 261 345쪽
10 마음을 울리는 음악 28장-30장 +5 15.04.16 10,659 260 277쪽
9 마음을 울리는 음악 25장-27장 +7 15.04.16 11,040 267 233쪽
8 마음을 울리는 음악 22장-24장 +4 15.04.16 10,924 261 198쪽
7 마음을 울리는 음악 19장-21장 +4 15.04.16 11,492 270 216쪽
6 마음을 울리는 음악 16장-18장 +5 15.04.16 11,543 242 163쪽
5 마음을 울리는 음악 13장-15장 +5 15.04.16 14,535 297 237쪽
4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장-12장 +8 15.04.16 13,737 352 171쪽
3 마음을 울리는 음악 7장-9장 +10 15.04.16 14,552 362 142쪽
2 마음을 울리는 음악 4장-6장 +11 15.04.16 16,835 421 120쪽
1 마음을 울리는 음악 프롤로그-3장 +47 15.04.16 29,898 545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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