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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번 님의 서재입니다.

마음을 울리는 음악

웹소설 > 작가연재 > 팬픽·패러디, 현대판타지

김현우
작품등록일 :
2015.04.16 13:27
최근연재일 :
2015.06.0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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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1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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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3쪽

마음을 울리는 음악 16장-18장

DUMMY

제16장 달콤한 밀회




1집 정규 앨범의 대성공 이후 한국과 일본에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성공한 라샤는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 이유는 그녀들의 공식 발표가 있었고, 현의 작곡과 프로듀싱으로 곡이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러서이다.

라샤의 공식 팬 사이트인 다크 레이디스는 무려 삼십만이 넘는 회원을 거느리고 있었고, 일본에서도 다크 레이디스란 이름으로 팬 사이트가 개설되어 무려 이십만에 육박하는 팬을 보유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라샤의 행보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유는 하나다. 바로 그녀들의 후속곡이 어떠한 결과를 만드느냐에 따라 그녀들이 진정한 한류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을지, 아니면 국내에서 좀 더 인지도를 쌓아나갈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흔히 첫 곡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런 가수들 상당수가 후속곡을 발표함으로써 점차 인기를 잃는다. 첫 곡으로 인하여 얻은 엄청난 관심과 인기는 그들로 하여금 더욱 뛰어난 것을 내놓길 대중들은 바라고 있어서이다. 그만큼 그들의 기대치는 높고, 그것을 충족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미 한국과 일본에서 거대한 돌풍을 일으킨 라샤였기에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 컸고, 더욱 뛰어난 곡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하였다. 최고의 가수이자 작곡가이며 프로듀서인 현이 라샤를 보조하였기에 더욱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의 기대 속에 마침내 라샤의 미니 앨범 타이틀 곡 <가면의 기사> 뮤직비디오 티저 영상이 공개 되었다.

예전과 달리 라샤의 뮤직비디오는 자체적인 홍보가 필요 없었다. 그저 뮤직비디오 티저 영상을 공개한다는 발표 하나만으로 수많은 연예 언론들이 비중있게 다루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AA엔터테인먼트 공식 사이트를 방문하였다.

라샤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았기 때문일까.

일각에서는 라샤가 그 기대에 부흥하지 못할 것이란 말이 돌 정도였다. 그만큼 대중들이 라샤에게 거는 기대는 컸다.

그러나 그런 염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라샤의 뮤직비디오 티저 영상은 대박이 났다. 정규 1집 앨범의 수록곡이던 <Yesterday>와 <Laser>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초대박이 터진 것이다.

처음 뮤직비디오를 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 했다. 라샤의 뮤직비디오라기에 봤는데 라샤가 아닌 한편의 드라마를 뮤직비디오로 제작했던 것이다. 처음 그들을 잡아끈 것은 라샤의 슬픈 음색이 묻어나오는 노래였다. 그녀들의 노래는 자연스럽게 뮤직비디오의 배경음이 되었고, 그 배경음을 음미하며 사람들은 뮤직비디오를 보게 되었다.

슬프면서 한편으로는 희망을 주는, 그러면서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그려내는 뮤직비디오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서서히 사로잡아나갔다.

힘들지만 언제나 밝게 웃으려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은 힘든 서민의 모습을 그려낸 듯하였고,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타나는 가면의 기사는 현실 속에서 구원을 바라는 서민들의 바람을 현상화 시켜놓은 듯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여주인공이 쓰러질 때 보는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하였다. 힘든 상황에서도 밝고 활기찬 모습을 보이는 그녀가 잘되길 바랐건만,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힘들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들은 어느덧 여주인공에게 자신의 모습을 대입시키고 있었다.

여주인공이 쓰러지고 나타난 가면의 기사. 얼굴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가면 사이로 드러난 그의 눈빛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녀를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감과 후회, 그리고 미안함.

마지막으로 가면의 기사가 그녀를 안아들 때 노래는 끝났지만 사람들은 뮤직비디오에 몰입하고 있었다.

가면의 기사를 용서하는 그녀.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

힘들게 손을 뻗은 그녀의 손은 가면을 벗겨내고, 결국 목숨을 잃은 그녀를 향해 낮게 명복을 빌어주며 싸늘하게 식어가는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해주는 키스 장면.

사람들은 뮤직비디오를 보고 열광했다.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어느덧 몰입되는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뮤직비디오 주인공들의 연기에 빠져들어 슬퍼하던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음에 완전히 감정을 입힌 라샤의 가창력은 엄청난 호응을 얻어 선주문 십오만 장이라는 기염을 토해낸다.

그와 함께 사람들은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배우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여자 배역을 맡은 윤아의 연기는 사람들에게 활기를 불어다 넣어주었고, 가면의 기사를 맡은 창현의 연기는 드라마와 같은 로맨티스트를 꿈꾸는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주요 포탈 사이트에 한동안 윤아란 이름과 가면의 기사란 단어가 상위 검색어에 오를 정도였다.

사람들은 가면의 기사가 어떻게 생겼는가에 대해서 궁금함을 표했다. 코와 눈부분이 가려져 있지만 여성처럼 가느다란 턱선과 입술은 가리지 않았다. 그것만 보아도 그가 상당한 미남일 거란 추측이 가능했는데, 뮤직비디오 마지막 장면에서 얼핏 가면이 벗겨지면서 드러난 왼쪽 얼굴선이 한동안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가면의 기사역을 누가 맡았는지 궁금해 하였고, AA엔터테인먼트에 연일 질문을 올렸지만 그 정체를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그에 반해 여주인공역을 맡은 윤아는 단번에 유명세를 탔다. 어린 나이지만 탁월한 연기를 보인 그녀를 호평하는 말이 쏟아짐과 동시에 그녀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뮤직비디오를 하기 전에 했던 수만의 예측이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윤아에 대한 관심은 그대로 소녀시대로 이어졌고, 라샤의 팬들 상당수가 소녀시대란 그룹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각양각색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그녀들의 팬이 되는 사람도 늘어났다. 소녀시대로서는 윤아의 유명세가 엄청난 득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소녀들은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관심에 기뻐하는 한편, 윤아를 심문하기에 바빴다.

그것은 요즘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이슈거리이기도 하였다.

태연이 윤아를 추궁했다.

“죄인 윤아는 어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라! 정말 키스를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바로 뮤직비디오 마지막 장면이었다.

마지막 장면은 여주인공에게 키스를 하는 가면의 기사의 모습인데, 이것이 입술에 거의 닿을 듯 말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는 그대로 끝을 맺는다.

분명 뮤직비디오에서 하지 않았건만 상상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어 논란거리가 되고 있었다.

윤아는 멤버들의 그런 심문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부정 의사를 보였다.

“절대로 안했다니까요! 정말 안했어요!”

하지만 연기가 능숙한 윤아의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고, 추궁은 매일같이 이어졌다.

며칠 후 AA엔터테인먼트에서 키스를 하지 않았다고 공식 발표를 하자 그 질문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윤아는 다른 질문에 시달려야만 했다.

“자! 가면의 기사는 어떤 외모를 하고 있었나. 어서 말해보시지.”

윤아는 대답하지 않으려 하였지만 이것은 큰 비밀거리가 아니었기에 결국 실토하는 수밖에 없었다.

“으으, 잘생겼어요! 잘생겼다고요!”

“호오! 그렇단 말이지. 다음에 사진 하나 찍어오시게나.”

“아, 알았어요!”

결국 사진 하나 찍어오겠다는 말을 하고 나서야 그녀는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나날이 집중되는 관심 속은 그녀들에게 활력을 불어다넣어주고 있었고, 내년 중순부터 활동을 시작하여 중하순에 본격적인 데뷔를 시켜주겠다는 수만의 말을 듣자 그녀들은 한층 연습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점점 많아지는 관심은 그녀들에게 좋게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관심이 커질수록, 눈에 띄게 안색이 어두워지는 한 사람이 있었다.


“이거, 생각보다 골치 아파졌네.”

창현은 라샤의 뮤직비디오가 대박이 터짐에 따라 나날이 집중되는 관심에 인상을 찌푸렸다.

가면을 쓴 그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아직 녹음이 다 되지 않아 AA엔터테인먼트에 출입을 해야 하는데 전보다 훨씬 많이 모여든 팬들로 인하여 출입하기가 한 층 더 까다로워진 것이다.

라샤의 타이틀 곡 <가면의 기사>가 끝나고 다른 곡들의 녹음도 거의 다 끝났기에 녹음은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며칠 동안 산뜻하게 녹음을 하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건만 그놈의 뮤직비디오가 대박이 터짐에 따라 상당히 골치가 아파진 것이다.

대박이 터져도 골치 아프다고 하는 사람은 창현 밖에 없으리라.

생각보다 뮤직비디오 반응이 좋자 석규도 앨범 발매를 위해 정신없이 일을 추진하고 있었다. 평소 창현에게 느긋하게 하라고 하다가 갑자기 빨리빨리 하라고 말할 정도였다.

사실 석규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분명 창현의 곡은 최고였지만 인기의 흐름이란 것이 알기가 어려워 내심 라샤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뮤직비디오 반응이 좋으면서 앨범 선주문도 당초 예상했던 십만 장보다 많은 십오만 장을 달성하고 싶었다. 사업자의 입장에서 지금 이 여세를 몰아치고 나가고 싶었기에 석규가 창현을 재촉하는 것이다.

남은 곡은 단 하나뿐이었기에 빠르면 하루, 늦으면 삼 일 정도가 걸릴 터였다.

그리고 라샤도 자신들의 인기를 끌어가고 싶었는지, 열심히 노력하여 하루라는 짧은 시간만에 녹음을 끝낸다.

밤 열시.

“으으! 드디어 녹음이 다 끝났나.”

늦은 시간이었지만 창현은 라샤의 녹음이 모두 끝난 것이 주는 해방감에 미소를 지으며 기지개를 켰다. 밤공기가 차가웠지만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맺혀 있었다.

“확실히 라샤 누나들도 발전하고 있단 말이야. 전보다 훨씬 가창력이 좋아졌어. 이번에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거야.”

무엇보다 내일은 놀토였다. 황금 주말이 자신을 기다린다고 생각하자 창현의 입가에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실컷 노는 거다. 게임도 하고, 밀린 애니메이션도 감상하고. 후후후!”

알차게 보낼 주말을 기대하는 창현이 웃음을 짓고 있을 때였다.

♩♪♬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

늦은 밤이다. 그런데 전화가 오다니?

창현은 핸드폰을 꺼내들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버지인가?”

그러면서 핸드폰을 꺼내들며 번호를 확인하는 창현.

그의 눈에 이채가 스쳐지나간다. 핸드폰에 적혀있는 번호는 그의 예상과 한참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얼음공주 제시카.

“수연 누나가? 왜 이 밤에……?”

수연이 왜 이 밤에 자신에게 전화를 한단 말인가?

의문을 느끼면서 창현은 전화를 받아들었다.

“여보세요, 수연 누나?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창현아…….

핸드폰 너머 들리는 그녀의 음성은 낮고 우울했다.

창현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 있으신 거예요? 무슨 일이에요? 목소리가 왜 그러세요.”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나 지금 너무 우울한데 내일 좀 만날 수 있을까?

그녀의 말처럼 그녀의 음색은 무척 우울하게 느껴졌다.

처음으로 자신의 정체를 알아내고도 비밀로 해준 수연이었다.

어떠한 요구라도 들어줄 각오가 되었을 때 비밀로 해주겠다는 말이 얼마나 고마웠던가.

창현은 내일 보낼 계획들을 다 잊어버린 채 대답했다.

“네, 되고 말고요. 내일 언제 만날까요?”

-일찍 만나고 싶어…….

그 말에 빠르게 생각에 잠기는 창현. 일찍 만나는 것은 문제가 안 되나 아침부터 만날 곳은 별로 없다.

‘오늘도 아버지가 집에 안 들어오시니까…….’

요 며칠 동안 집에 안들어오는 석규를 떠올리며 창현이 말했다.

“혹시 누나 우성 아파트 아세요? 누나가 살고 있는 삼호 아파트에서 버스 타고 한 십 분정도 걸리는 곳인데…….”

-응, 알아. 그런데 그것은 왜……?

다행히 알고 있는 듯했다. 창현이 말했다.

“그럼 우성 아파트 309동 1506호로 오실래요? 저희집인데 아침 일찍부터 갈 곳 없잖아요. 아침 같이 먹고 저랑 같이 밖에 나가요. 제가 아침 식사 대접할게요.”

-폐가 되지 않을까?

머뭇거림이 담겨 있는 그녀의 음성. 창현은 그녀가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말했다.

“집에 저밖에 없어요. 아버지는 요즘 바쁘셔서 집에 안들어 오시거든요. 정 부담스럽다면 밖에서 만날까요?”

-아니야. 내가 갈게. 고마워. 갑자기 전화해서 이런 부탁을 해가지고… 요즘 바쁠 텐데.

창현의 정체를 알고 있는 만큼 그녀가 라샤의 녹음으로 바쁜 것을 알고 있는 그녀였다. 그럼에도 창현에게 전화를 건 것은 그녀에게 무언가 일이 있음을 뜻했다.

그녀가 미안해하자 창현이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아니에요. 녹음 오늘 다 끝났거든요. 그럼 내일 꼭 오세요. 알았죠?”

-응. 고마워.

그 말과 함께 통화가 끝났고, 창현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걷다가 멈칫한다.

“내일 아침 식사를 대접하려면 재료 좀 사가지고 가야겠네.”

집으로 향하던 창현의 발걸음이 대형마트로 향하고 있었다.


딸칵.

통화가 끝나고, 수연은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런 수연에게 다가가는 인영이 있었다. 바로 태연이었다.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는 수연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니, 수연아?”

“응? 응… 괜찮아.”

자신을 걱정해주는 태연의 물음에 수연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라샤의 뮤직비디오가 대박이 터지면서 윤아를 중심으로 소녀시대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였다.

이미 다방면으로 뮤직비디오, CF, 교복 촬영 등 여러 활동으로 이름을 알려왔기에 소녀시대란 이름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그녀들의 활동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아졌다.

데뷔를 꿈꾸는 그녀들에게 있어 사람들의 관심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였다. 집중되는 사람들의 관심은 그녀들에게 있어 활력소가 되었고, 힘이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관심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한 사람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일이 있었으니, 바로 그 대상은 다름 아닌 수연이었다.

SM엔터테인먼트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형 기획사인 만큼 기라성 같은 아이돌 그룹들을 거느리고 있다. 특히 남성 그룹으로는 동방신기와 슈퍼주니어가 소속되어 있는데, 두 그룹 모두 국내를 넘어서 아시아 각국에서 정상을 달리는 남자 아이돌 그룹이다.

그런 만큼 당연히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으며, 소위 빠순이라 불리는 여성 팬들은 가히 엄청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았다. 그들의 얼굴 한 번 보겠다고 기획사 사무실은 물론 심지어 숙소까지 찾아가 기다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데뷔하기 전, 같은 연습생 신분이었던 만큼 지금의 동방신기, 슈퍼주니어와 소녀시대 멤버들은 개인적으로 매우 친한 사이였다. 같은 힘든 처지인 만큼 서로를 의지하고 믿으며 불투명한 연습생 시절을 보내곤 하였는데,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당시 친하게 지내던 연습생 오빠들이 지금에 이르러서는 한국은 물론 아시아 각국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대형 스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과 데뷔 전 나누었던 친분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거기에서 가장 집중 폭격을 받은 것이 바로 수연이었다.

어쩌면 생각이 없다고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친분 과시를 위해 같이 사진을 찍은 것이 당시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문제가 불거졌으니 말이다.

아이돌은 단어 그 자체만으로 성스러운 뜻을 지닌다. 우상이란 뜻을 지닌 아이돌은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고 따르며 이상향으로 삼는다. 특히 뛰어난 비주얼로 팬들을 사로잡는 젊은 아이돌들은 이성들에게 확실하게 매력을 어필하면 이른바 빠돌이, 빠순이들이 생겨난다. 그만큼 그들에게 빠져드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는 뜻이다.

비록 과거지만 그들에게 있어 자신들의 아이돌이 그러한 과거를 있다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였다. 비록 힘든 시절이 있었겠지만 그들은 언제나 빛나는 존재여야 했고, 언제나 정상 위에 있는 존재여야만 했다.

그들은 대형 스타였지만 수연은 연습생이다.

엄청난 신분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비록 사진만 찍은 것이었지만 그것은 와전되고 와전되어 며칠을 사귀었다느니, 누가 차고 누가 누구의 뺨을 때렸냐느니 수많은 억측을 내놓으며 수연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대한민국이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가장 심각한 것이 여론 몰이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수연은 누군가와 사귀게 되었고, 누군가와 키스를 했으며, 누군가를 감히 차버렸다는 둥 많은 소문에 연류 되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루머들이야 감당해낼 수 있다. 쉽지 않지만 인터넷을 끊고 무시하면 되니까.

하지만 그녀를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소속사 앞에서 줄곧 아이돌을 기다리는 골수 팬들이었다.

대다수가 여성인 그들은 수연이 SM엔터테인먼트를 출입할 때마다 그녀를 욕하고 비난하였다.

피륙으로 이루어진 사람인 이상 마음이 강철일 리가 없다.

수연은 그런 소녀 팬들의 욕과 비난에 마음 속 큰 상처를 입었고, 근래 들어 무척 우울해 하였다.

무엇보다 그녀가 더욱 우울해하는 것은 멤버들의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들뜬 분위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향하는 욕과 비난은 점점 거세지는데 멤버들은 높아지는 관심 속에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우울한 기분을 함부로 내색할 수가 없었다.

그걸 속으로 간직하고 있다 보니 마음의 상처는 점점 곪아갔고, 터지기 직전에 이르렀다.

“난 괜찮으니 걱정 하지마.”

태연의 걱정에 수연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방금 전까지만 하여도 죽을 것 같이 우울했던 기분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기대감이 가득 찬 멤버들의 기분을 깨고 싶지 않아서 혼자서 안고 가던 상처였다.

세상에 자신의 슬픔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녀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고,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 그녀는 창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하면서 그녀는 기대하지 않았다. 창현이 라샤의 앨범 녹음 작업으로 바쁘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었다. 힘들고 괴롭지만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괜찮아질 것 같았기에… 자신보다 세 살이나 어리지만 누구보다 든든하고 버팀목 같은 창현이었기에 수연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 무리다 싶을 정도의 부탁을 하였다.

그런데 승낙을 해주었다. 녹음이 끝났다는, 그런 말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귀에는 창현의 승낙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듯한 우울함은 상당히 가라앉아 있었다.

모든 연습이 끝났기에 묵묵히 숙소로 귀환한 그녀는 내일을 기다리며 잠이 든다. 우성 아파트 309동 1506호라고 했지…….


짹짹짹.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눈부신 햇살이 창문 너머로 스며들어온다.

따가울 정도로 환한 햇살이 얼굴을 비추자 눈을 감고 있던 수연의 눈이 뜨인다.

반짝.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맑은 정신을 유지하며 눈을 뜬다. 아침잠이 많아 늘 일어나기가 어려웠는데 오늘은 놀라울 정도로 정신이 말짱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시간을 확인해본다. 아직 이른 일곱시였다.

지금 시간에 일어서는 사람은 없다. 룸메이트들도 고된 연습에 지쳤는지 곤히 자고 있다.

살며시 자리에 일어난 수연은 발걸음을 죽인 채 조용히 화장실로 향했다.

지나치게 빨리 일어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외출을 앞둔 여성은 변신을 위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평소랑 비교될 만큼 공들여서 씻은 그녀는 머리까지 말끔하게 말린 뒤 너무 튀지 않는 수수한 옷을 갖춰 입은 뒤 시간을 슬쩍 보았다. 여덟시였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그녀는 일찍 나서기로 하였다. 부지런한 주현이나 태연, 효연은 휴일에도 곧잘 일어나기에 조금이라도 지체하다가는 자신의 외출을 들킬 수 있다.

숙소를 나서서 창현이 살고 있는 우성 아파트로 향하는 버스를 탄다. 버스 정류장까지 약 오 분여가 걸렸고, 십 분 정도 기다리자 버스가 왔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우성 아파트단지에 내리자 여덟시 반이었다.

빈손으로 가는 것이 조금 뭐하여 슈퍼에 들려 오렌지 주스와 딸기 주스 한통씩 사고는 309동을 찾았다.

309동은 아파트 단지에서 조금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1층에 주차되어 있는 엘리베이터를 탄 수연은 곧장 15층을 누른다. 그리고 15층에 도착하여 시간을 보니 여덟시 사십분이다. 무려 이십 분이나 일찍온 것이다.

1506호 앞에 도착한 수연은 조금 머뭇하였다.

‘어떻게 하지.’

약속시간에 일찍 도착한 것은 문제가 되질 않는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약속 장소가 창현의 집이라는 점이다.

잠시 고민하던 수연은 이내 결심을 굳힌다. 부지런한 창현이라면 이미 준비를 다했을 거라 믿으며 말이다.

초인종으로 손을 내미는데 왜 이렇게 떨리는 걸까.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수연은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초인종 소리와 함께 잠깐의 정적이 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구세요?”

창현의 목소리에 수연은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는 입을 연다.

“나, 나야, 창현아.”

수연의 대답에 안쪽에서 대답이 들려온다.

“아! 일찍 오셨네요. 잠시만요.”

약 삼십여 초가 흐르고,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그리고 창현이 모습을 드러내며 수연을 반긴다.

“아침 일찍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

하지만 수연은 바짝 얼어붙은 상태였다.

창현의 복장이 그녀를 굳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창현의 복장은 신혼부부 새댁이 할 법한 복장이었다.

프릴이 달린 분홍색 앞치마와 분홍색 두건이라니. 남자가 착용하기에는 무척이나 부적합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경악스러운 것은 창현이 착용한 모습이 무척 잘 어울린다는 점이었다.

그런 수연의 시선을 느낀 창현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하기야 남자인 자신이 봐도 손발이 오그라드는데 수연이라면 징그럽게 느껴지리라.

“아, 저희 집에 이 앞치마 밖에 없어서요. 음식 다 되었으니 벗을게요.”

그러면서 앞치마와 두건을 벗으려고 하는 창현.

수연이 손을 들어 그런 창현을 제지했다.

“잠깐만!”

“네?”

수연의 말에 창현이 멈칫한 순간이었다. 수연의 왼손에 들린 핸드폰에서 플래쉬가 터져나왔다.

찰칵!

갑자기 사진이라니. 창현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수연을 보며 물었다.

“누나 지금 무슨…….”

“응? 아… 미안. 창현이 네 모습을 담아두고 싶어서…….”

“담아두다니 무슨…….”

“응? 아냐, 삭제했어.”

그러면서 핸드폰을 황급히 주머니에 넣는 수연. 빠른 동작으로 저장까지 했지만 그런 그녀의 민첩한 행동을 모르는 창현에게는 갑자기 사진을 찍었다가 덮은 것처럼 보였다. 저러면 저장을 못했으리라.

죽을 것처럼 아프고 우울했는데 왜 창현의 얼굴을 보니 웃음이 맺히는 걸까.

그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창현은 여태까지 그녀가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문을 열고 수연에게 말했다.

“여태까지 세워뒀네요. 들어오세요.”

“응. 실례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조심스럽게 수연이 집안으로 들어선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런 모습을 보이는 수연의 모습에 창현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창현은 멀거니 서 있는 그녀에게 말했다.

“아침상 차리려면 한 오 분 정도 걸리거든요. 제 방 구경해보실래요?”

“응? 아, 응.”

우두커니 서 있던 그녀는 창현의 말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창현의 안내에 따라 그의 방에 들어선다.

방으로 들어서기 전 수연이 묻는다.

“창현아, 혹시 태연이나 주현이랑 집에 온 적 있어?”

“그럴 리가요. 여자는 누나가 처음이에요.”

창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창현의 말에 그녀는 묘한 승리감에 휩싸인다. 그리고 창현의 방에 살짝 들어간다.

창현의 방은 깔끔했다. 이불이 깔끔하게 개어져 있는 침대와 마찬가지로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책상. 책꽂이 위쪽은 음악 전문 책부터 시작하여 일본어 회화, 중국어 회화 등 각양각색의 책이 꽂혀 있었고, 그 아래에는 온통 CD케이스가 자리하고 있었다.

호기심이 동한 그녀는 CD케이스를 살짝 열어보았는데, 깜짝 놀라고 만다. 무려 수십 장의 CD가 한가득 들어있었고, 음원1, 음원2 등 여러 가지 숫자가 쓰여 있던 것이다.

직감적으로 그것이 창현의 작곡한 곡임을 알아차린 그녀는 CD케이스를 덮고는 새삼스레 방을 한 번 둘러본다.

이리저리 어질러져 있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깨끗한 방이었다. 손님을 맞이할 때 급하게 이리저리 치워본 경력이 있는 그녀로서는 창현의 방이 자신을 맞이하기 위해 급하게 정리한 것이 아닌 평소부터 깨끗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슨 남자 방이 이렇게 깨끗하지?’

주변을 둘러보니 기타와 전자 피아노, 금 등 여러 가지 악기가 놓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불. 푹신푹신 해보이는 이불을 보니 그녀는 저도 모르게 침대에 걸터앉는다. 그러더니 슬쩍 문 쪽을 바라보더니 그대로 침대에 눕는다.

‘달콤한 향기.’

침대에 이렇게 누워 있으니 창현의 체향이 전해져오는 듯했다. 우울한 기분도 어느 정도 가시는 것 같았다.

‘이대로 잠들고 싶어.’

“누나 상 다 차렸어요.”

눈을 감고 침대에 몸을 묻고 있던 그녀는 방밖에서 들려온 창현의 말에 벌떡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행여 창현이 들어올까 싶어 그녀는 구겨진 이불을 정리한 뒤 방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거실에 차려져 있는 푸짐한 상차림을 보고 그녀가 감탄한다.

“와! 이거 다 창현이 네가 한 거야?”

그녀가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치찌개와 계란말이, 계란찜과 두부조림, 삼치와 여러 반찬은 결코 숙소에서 볼 수 없는 구성이었다. 반찬들이야 많지만 직접 손을 거쳐야 하는 반찬들은 가히 절망스러운 수준이어서이다.

창현이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녀의 감탄이 쑥쓰러웠던 탓이다.

“차린 건 별로 없어요. 그래도 자신 있는 것들만 했으니 맛있게 드세요.”

“응. 잘 먹을게.”

수연이 자리에 앉고 수저를 들자, 창현도 마주 앉아 수저를 들었다.

먼저 김치찌개를 한 번 맛본 수연이 감탄사를 터뜨린다.

“와! 맛있어. 참치 김치찌개?”

“네. 아침부터 푹푹 끓였어요. 다른 것도 맛 보세요.”

그러면서 창현은 계란말이를 수연의 수저 위에 얹어준다. 그에 수연이 얼굴을 살짝 붉히더니 그대로 계란말이를 먹는다.

연이어 터져 나오는 감탄사. 계란찜과 두부조림도 모두 그녀의 입맛에 맞는 듯했다.

오늘 아침식사를 대접하겠다는 말을 듣고 어제 야식도 먹지 않은 그녀였기에 밥 한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창현이 그녀를 보며 조심스레 묻는다.

“누나 한 그릇 더 드실래요?”

“응? 아…….”

그제야 자신이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깨닫고는 얼굴을 붉힌 수연. 창현이 눈앞에 있는데 그것도 모른 채 정신없이 밥을 먹은 것이다.

‘맛있는 걸 어떻게 하라고.’

이미지 망가질대로 다 망가졌을 것이라.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창현에게 빈 공기를 내밀었다.

“한 그릇 더!”

“하하! 알겠습니다.”

창현은 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밥을 다시 담아 그녀에게 내밀었다.

밥을 다 먹자 창현은 그릇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수연이 일어나며 말했다.

“창현아 나도 도울게.”

창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손님에게 일을 시킬 수 없잖아요.”

“그래도 맛있게 얻어먹었잖아. 돕게 해줘.”

그런 수연의 모습에 창현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럼 반찬 통들을 저기로 옮겨서 뚜껑 닫은 뒤 김치냉장고에 넣어주세요.”

“응, 알았어.”

그렇게 부지런히 치우고, 창현은 빠르게 그릇을 설거지를 하면서 커피를 탔다. 그리고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그녀에게 커피를 내밀었다.

“자, 드세요.”

“응, 고마워.”

그러면서 커피를 조심스럽게 마시는 수연. 입가에 부드럽게 넘어오는 커피 맛에 놀란 표정을 짓는다.

“이, 이거…….”

“맛 괜찮죠? 좋은 원두랑 연유를 조금 넣었어요. 부드럽게 넘어갈 거예요.”

요리부터 시작해서 커피 타는 것까지. 도대체 못하는 것이 없었다.

“응. 정말 맛있다.”

“하하! 천천히 드세요. 전 설거지를 마무리하고 올게요.”

다시 주방으로 향하는 창현. 커피를 홀짝이며 수연은 그런 창현의 모습을 쫓고 있었다.

누구보다 뛰어난 노래 실력도 모자라 작곡, 프로듀싱 실력까지. 얼굴도 부족함이 없고 성격도 좋으며 가정적이기까지 하다.

어떻게 하면 저런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창현의 존재는 경이적이었다.

약 오 분 정도가 흘렀을 때 창현이 설거지를 마쳤다.

그릇과 과도를 가져온 창현은 김치 냉장고에 보관된 사과를 꺼내오며 수연의 맞은 편에 앉으며 물었다. 그녀는 이미 커피를 모두 마신 상태였다.

“많이 기다리셨죠?”

“응? 아니야. 그런데 사과도 깎을 줄 알아?”

“혼자서 집에 오래 있으면 여러 가지를 할 수 있게 되요.”

창현이 조금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런 창현의 얼굴에 살짝 드리운 슬픔을 보았기에 수연은 당황하며 사과했다.

“미, 미안.”

“아니에요.”

웃으면서 살짝 고개를 저은 창현이 능숙하게 사과를 깎아서 먹기 좋게 깎은 뒤 접시에 올린다. 두 개의 사과를 모두 깎은 창현은 접시를 소파 앞 테이블에 올려놓은 뒤 입을 열었다.

“누나 요즘 무슨 일 있으세요? 어제 전화할 때 음색이 많이 어둡던데…….”

“…….”

창현의 물음에 수연의 안색이 살짝 굳었다./

안색이 안 좋아지고, 눈빛이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창현은 그런 수연의 모습에 살짝 당황하며 조금 큰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수연 누나! 괜찮으세요? 진정하세요!”

“응? 아아…….”

창백하게 질린 그녀의 안색은 정말 상태가 안 좋아보였다.

다급한 음성으로 창현이 그녀를 부르자 수연이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리는 모습을 보인다.

“휴우! 정말 다행…….”

제 정신을 찾아가는 그녀의 모습에 창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쉴 무렵이었다.

갑자기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져 흘러내리는 것이 아닌가?

“왜 그래요, 누나? 왜…….”

창현은 당황한 창현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갑자기 수연이 그의 품안에 안겨왔던 것이다.

품안에 안긴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서럽게 말한다.

“모두 날 싫어해. 기획사에 연습하러 갈 때도 날 보고 욕하고, 손가락질 하고… 정말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서 가수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러면서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 그동안 쌓인 것이 정말 많았던 듯 하나하나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울먹인다.

창현은 품안에 안긴 수연을 감싸 안아주며 그녀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어주었다. 외관으로 보았을 땐 도도하고 차갑게 보이지만 그것은 여리디 여린 마음을 보호하기 위한 가면에 불과하였다.

섬세한 그녀는 상처받기 쉬운 여자였고, 그동안 각종 루머들로 인하여 마음의 상처를 받은 상태였다.

많은 상처를 받았지만 그것을 그녀는 내색할 수 없었다. 내색했다가는 지난 시간 쌓아온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져내릴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창현의 다정한 음성에, 그의 믿음직한 모습에 그녀의 마지막 방어선이 무너져 내렸다. 그와 함께 그동안 쌓였던 설움이 강둑의 제방처럼 터져 나왔다.

창현은 그런 그녀를 품에 안은 채 손으로 그녀의 등을 토닥여줬다. 그 또한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녀가 악성 루머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이럴 때 말없이 토닥여주는 것이 제일이었다.

울먹이며 수연은 많은 이야기를 창현에게 했다. 루머가 왜 생겨났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들어주며 창현은 호응을 해주고 대답을 해주며 그녀를 위로해주었다.

그렇게 수연이 창현의 품안에 안긴지 삼십여 분이 흘렀다. 서럽게 울먹이던 그녀는 울음을 거의 그친 상태였고, 그동안 답답하게 억눌러왔던 이야기도 모두 털어놓았다.

후련한 기분이었다. 멤버들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것들을 모두 털어놓으니 그녀는 한쪽 가슴이 꽉 막혔던 것이 뻥 뚫린 느낌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창현의 품안에서 어떻게 빠져나올지 고민되었던 것이다.

‘어떻게 해.’

서러웠던 감정이 모두 사라지자 창피한 마음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모든 것을 털어놓은 것이 후회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창피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창현은 그런 수연의 기색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모르겠지만 창현이 그녀를 품에 안고 있으면서 위에서 그녀의 표정 변화를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이다.

안절부절 못하는 그녀를 위로하고자 창현이 말했다.

“누나? 진정이 되었어요?”

“응? 으응…….”

창현의 말에 화들짝 놀라다가 대답하는 수연.

그녀의 대답을 듣자 창현이 품안에서 그녀를 놓아준다.

부끄러웠던 탓인지 수연이 후다닥 뒤로 물러서면서 소파에 앉는다.

창현은 그녀의 마음이 어느 정도 풀어진 것 같아서 웃음을 지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요.”

수연에게 양해를 구한 창현은 방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나온 것은 기타였다.

기타를 가지고 나온 창현을 보는 수연의 눈에 왜…? 라는 감정이 스치는 걸 보자 창현이 사과 한조각을 와삭 먹으며 수연에게 말했다.

“자, 오늘은 저희 집 처음 여자 손님인 수연 누나를 위해 개인 콘서트를 열어드리겠습니다. 원하는 곡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먼저 제가 한곡 들려드려도 될까요?”

“응.”

창현의 말에 얼떨떨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대답하는 수연이었다.

그런 수연을 보며 피식 웃으며 창현이 기타를 켰다.

딩! 딩! 디링!

음을 조절한 창현은 적절하게 조정이 되자 본격적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에이브릴라빈의 Sk8er boi였다. 소년과 소녀의 어긋한 운명을 풀어낸 노래로서, 소년은 소녀를 좋아했지만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훗날 소년은 대 스타가 되는 노래였다.

밝고 경쾌한 이 노래는 팝송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노래였다.

여자 노래였지만 창현에게 그것이 문제가 되겠는가. 그는 아시아 각국을 휩쓴 가수 현이었다.

밝고 경쾌한 기타 음과 함께 창현의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수연은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노래에 빠져들고 있었다. 미국에서 살았고, 팝송을 좋아하는 그녀가 이 노래를 모를 리 없었다. 그리고 이 노래의 내용도 모를 리가 없다.

창현은 지금 노래로서 그녀를 위로해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평범할지라도 훗날 대 스타가 될 거라는. 지금 상황을 그녀에게 모두 전해들은 창현이었기에 이 노래가 전해주는 위로는 오직 그녀만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짝짝짝.

노래가 끝나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창현은 미소를 지으며 그 박수에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고마워. 갑자기 찾아온 내 투정도 받아주고 노래까지 불러줘서.”

창현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뭘요. 자, 누나를 위한 콘서트는 아직 진행 중입니다. 신청곡 있나요?”

“갑자기 신청할 곡이 너무 많아지는데… Sweet Box의 Life so Cool 될까?”

“물론입니다.”

미소를 지은 채 창현은 연주와 노래를 시작한다. 그 뒤로 몇가지 곡을 더 불러주었고, 수연은 기분이 완전히 나아진 것처럼 보였다.

Sk8er boi를 시작으로 다섯 곡을 부른 창현이 물을 마시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수연에게 말했다.

“그런데 수연 누나는 붓기가 잘 안 빠지나봐요? 눈 부은 게 여전하네요.”

“응? 꺄, 꺄악!”

창현의 말에 수연이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비명과 함께 화장실로 향한다. 그 모습을 보며 창현이 유쾌하게 웃는다.

잠시 후, 화장실에서 나온 수연의 붓기는 완벽하게 빠져 있었다.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던 거야? 진작에 말해줬어야지.”

그녀는 새침한 눈으로 창현을 노려보았다.

그런 그녀의 눈길에 창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모르다가 방금 전에 알았어요. 정말이에요.”

그래도 노려보는 눈길이 여전하자 창현은 양손을 모으며 빌었다.

“알았어요, 미안해요. 눈 부은 모습이 너무 예뻐서요.”

“부, 부은 모습이 뭐가 예쁘다고…….”

예쁘다는 말 때문인지 살짝 얼굴이 붉어지며 말을 더듬는 수연. 노려보는 눈길은 사라진 상태였다.

창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제 방 구경 해보실래요? 이번에 라샤 누나들 곡이 완성되어서 최종 점검 해볼 생각이었거든요.”

그 말에 끌리는지 수연이 혹하는 반응을 보였다. 한창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라샤이고, 이번에 가창력이 많이 좋아졌다고 호평을 얻고 있으니 궁금할 만도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에는 머뭇거림이 존재하였다.

“내가 들어도 되는 거야? 난 관계자도 아니고…….”

창현이 고개를 저었다.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죠. 누나는 제 비밀을 지켜주셨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렇게까지 말해주니 거절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마음이 없다면 모를까 내심 듣고 싶었던 차였으니 말이다.

“그럼 실례할게…….”

“이 정도 가지고 뭘요.”

방에 들어간 창현은 녹음이 완료된 라샤의 노래를 틀어본다.

타이틀 곡 <가면의 기사>가 나오기 시작한다.

곡이 끝나자 창현이 수연에게 물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듣기엔 어때요, 수연 누나?”

“…….”

수연은 노래의 여운에 빠져 있었다. <가면의 기사>에서 느껴지는 라샤의 가창력에 묻어나오는 감정이 그녀의 가슴을 뒤흔든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보았던 뮤직비디오가 드라마처럼 펼쳐지며 한편의 감동으로 이끌었다.

“완전 잘 부르는 것 같아. 노래에 슬픔이 묻어나오는 것 같고…….”

제3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그녀가 이런 느낌을 받았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럴 확률이 높았다. 자신이 의도한 것이 정확하게 먹혀든 것이다.

창현은 미소를 지었다.

“잘 되었네요. 그 느낌으로 녹음을 했거든요. 다른 곡도 부탁드릴게요.”

라샤의 노래를 하나하나 틀어주며 감상을 묻는 창현. 수연도 처음에는 어색해 했으나 이내 적응하고는 자신이 느낀 바를 창현에게 말해주었다. 창현은 그런 수연의 평가에 고개를 끄덕이고, 때로는 고개를 젓기도 하면서 마침내 이번 앨범에 들어갈 곡을 모두 체크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럽네요. 수연 누나가 해준 감상이 제가 의도한 거랑 거의 일치하네요. 고마워요.”

“고맙긴… 아직 공개되지 않은 라샤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내가 영광인 걸. 그런데 너무 잘한다. 뒤처지지 않게 노력해야겠어.”

“하하! 라샤 누나들이 워낙 열심히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무리인 줄 알지만 나도 창현이 너한테 도움을 받으면 안 될까?”

어렵게 말을 꺼내는 수연. 창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도 가창력에 욕심이 많거든. 하지만 요즘 도통 실력이 늘지 않아서… 그래서 창현이 너한테 조금 도움을 받고 싶어서…….”

조금은 무리한 부탁이라면 무리한 부탁이었다. 수연은 자신이 부탁하고도 무리한 부탁이라고 생각했다. 초일류 보컬 트레이너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실력을 지닌 창현의 도움은 결코 쉽게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창현도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 선에서 도움을 주는 것은 상관없었지만 그 이상은 음향총서에서 얻은 것과 자신만의 노하우가 집결된 것이기에 함부로 베풀 수 없던 것이었다.

하지만 근래 들어 창현의 생각은 바뀌었다.

음향총서를 익히고, 음악강론의 대부분 이론을 터득하면서 창현이 깨달은 것은 자신이 얻은 것은 그저 음악강론의 이론 일부분을 체득했다는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음악이란 것은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심오한 것이어서 마치 끝없는 바다와 같이 광활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즉, 음악강론의 이론을 모드 익힌 지금, 그것들로 깨달음을 얻어 자신만의 것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여러 방법이 존재 한다. 그 중 창현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깨달은 것이 바로 남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다. 창현은 라샤의 녹음을 도우면서 그녀들이 막히는 점을 지적해주고, 어려워하는 점을 들어주면서 기존에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 라샤 멤버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합쳐져 전혀 새로운 것으로 승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가르치면서 자신 또한 배우는 것이다.

그런 범주에서 보면 창현이 수연을 가르치는 것도 그에게 있어서 나쁠 것이 없는 제안이었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오랫 동안 연습한 그녀는 분명 SM엔터테인먼트만의 집약된 노하우로 연습을 했을 것이고, 어느 정도 자신의 방법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것을 공유하면서 그녀에게 도움을 준다면 자신 또한 상당한 것을 얻어낼 수 있으리라.

어찌 보면 이것은 핑계일지도 모른다. 오늘 그녀가 무척 슬퍼하는 모습을 보았고, 힘들어하는 것을 보았기에 도움을 주고 싶어서 이러는 것일 수도 있다. 서럽게 눈물을 흘리던 그녀의 모습은 정말 애처로웠으니까.

잠시 고민하던 창현은 간절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수연의 시선에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럼 일주일에 한 번씩. 그래도 괜찮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창현의 승낙. 내심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거절 당할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하던 수연은 전혀 예상과 다른 창현의 대답에 눈이 크게 뜨였다.

“저, 정말 승낙해준 거야?”

믿기지가 않았는지 말까지 더듬는다. 창현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생각해보면 누나랑 저랑 보통 사이가 아니잖아요? 제 가장 큰 비밀을 지켜주셨는데 저도 이 정도쯤은 해드려야죠. 대신 제 정체를 아무한테도 말하시면 안되요? 하하!”

“응, 물론이지. 정말 고마워, 창현아.”

밝은 표정을 짓는 수연. 그 모습이 예쁘다고 생각하여 창현도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화기애애할 때였다.

창현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띵동♪

“……!”

갑자기 들린 초인종 소리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 창현. 수연도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 창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현은 손을 들어 입가에 대며 말했다.

“잠시만요. 교회에서 온 사람일 수도 있어요. 누난 잠시 방에 계세요.”

“응.”

방을 나온 창현은 조용히 인터폰으로 향한다. 집에 온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인터폰을 확인한 순간 창현은 그만 다리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을 뻔하였다.

인터폰에 비춰지는 사람은 다름 아닌 석규였던 것이다.

이걸 어쩐다. 지금 집에 수연 누나가 있는데.

창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일단 석규가 찾아왔으니 안 받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창현은 떨리는 손으로 인터폰을 잡아들며 물었다. 갑작스러운 석규의 방문으로 인하여 심장이 쿵! 하고 떨어져 내리는 듯했지만 애써 태연을 가장하였다.

“아버지세요? 갑자기 어쩐 일이세요? 열쇠는 어쩌시고요?”

자연스럽게 묻는다. 그러면서 창현은 방문 틈으로 상황을 보고 있던 수연에게 눈짓을 한다.

수연은 집을 방문한 사람이 석규라는 사실에 대경하였다. 그리고 창현의 눈짓을 받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닫는다.

창현의 물음에 건너편 석규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분명 열쇠를 가지고 갔는데 서류 더미에 파묻혀서 찾을 수가 없더구나. 어차피 네가 집에 있을 줄 알고 온 게다. 갈아 입을 옷을 가지러 왔으니 준비해놓아라. 커피도 한잔 타주고.”

순간 창현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라샤가 대 히트를 친 뒤 한 달에 서너 번 빼고 석규는 대부분 사무실에 마련된 방에서 생활을 한다. 라샤의 섭외 프로그램이나 스케줄 조정 등을 홀로 맡아서 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업무가 무척 바쁜 석규는 간간이 집에 들리곤 하는데, 그 이유는 대부분 옷을 가지러 오는 것이다. 집에 오더라도 밀린 업무 때문인지 옷을 챙긴 뒤 금방 가곤 하였다.

잘만 하면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식간에 생각을 정리한 창현이 대답했다.

“알았어요.”

대답과 함께 창현은 문으로 향하면서 수연의 신발을 신발장에 넣었다. 그리고 문을 열며 아무렇지도 않게 석규를 맞이했다.

“어서오세요, 아버지. 오랜만에 오셨네요.”

“하하! 자주 오지 못해서 미안하다, 창현아.”

석규는 창현을 보면서 미안한 미소를 지었다. 업무 때문이라지만 집에 자주 들리지 못하는 게 못내 미안한 듯했다. 창현이 나이에 비해 의젓하지만 아직은 관심이 필요한 나이였다.

창현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아버지가 바쁘신 건 다 아는데요, 뭘. 하지만 사원을 늘리는 게 좋다고 봐요. 이대로 가다가는 아버지의 몸이 축날 것 같으니까요. 돈 많이 버셨잖아요.”

라샤가 대박을 터뜨리고, 창현도 대박이 터지면서 AA엔터테인먼트에서는 100억이 넘는 순수이익을 냈다. 이 정도면 회사를 확장하고 직원도 늘릴 법한데 석규는 섣불리 그러하지 않았다. 아직 라샤의 뒤를 이을 연습생들을 확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석규에게 들어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창현은 석규가 혼자서 과중한 업무를 맡고 있는 것이 못내 안쓰러웠다.

걱정 어린 창현의 말에 석규가 미소를 지어주었다. 자신을 걱정해주는 사람은 역시 창현뿐이었다.

“그래야지. 하지만 아직 현역이니 이 정도는 거뜬하다. 게다가 네가 있기에 선택의 폭이 무척 넓기도 하고.”

석규에게 있어 창현의 존재는 엄청난 비장의 카드였다.

현재 AA엔터테인먼트에는 현과 라샤 두 가수밖에 없지만 두 가수의 존재는 엄청난 비장의 카드였다. 특히 석규는 창현이 내년 초에 데뷔할 거란 말을 들은 직후 은밀하게 방송사에 정보를 흘렸는데, 대표 방송 3사가 앞을 다투며 가수 현의 데뷔 무대를 자신들의 방송에 출연시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시기로 따지면 최소 세 달이나 남았음에도 말이다.

무엇보다 창현은 가수로서도 엄청나지만 작곡가와 프로듀서로서도 엄청난 가치를 발한다. 당장 그에게서 곡을 받고 싶다고 의중을 비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히트 곡 제조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창현의 입지는 높았고, 그의 몸값 또한 엄청나게 상승해 있었다.

이런 와중에 AA엔터테인먼트에서는 굳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석규가 꿈꾸는 것은 국내를 아우르는 대형 기획사를 만드는 것이 아닌, 구성원 하나하나가 실력 있고, 인성까지 겸비한 연예인들이 소속된 소수정예 기획사가 목표였다. 그러니 굳이 사업 확장에 목을 맬 이유가 없었다. 엄청난 여유자금을 끌어안고 있으니 모든 일을 함에 있어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지루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라샤의 녹음 곡들은 어떻더냐?”

석규의 물음에 창현이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성공적이에요. 1집 때보다 훨씬 실력이 향상되기도 했고요.”

긍정적인 창현의 반응에 석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잘 되었나보구나. 이번 앨범을 통해서 라샤 아이들도 확실히 입지를 굳힐 수 있겠지. 하지만 슬픈 발라드라서 1위는 오래 하지 못할 것 같더구나.”

연예계에 오랫동안 종사한 석규의 안목은 거의 정확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샤가 뛰어난 가창력으로 입지를 굳히는데 성공은 하겠지만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가수들이 많으므로 오랫동안 정상을 유지하기 힘들 것 같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창현도 그것은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였지만 석규와는 조금 달랐다.

“분명 <Yesterday> 때보다는 적겠지만 그래도 일취월장한 누나들의 실력으로 보면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차아현의 말에 석규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랬으면 나도 좋겠다. 하하! 오랜만에 집에 오니 좋구나. 옷을 챙기고 바로 가려고 했는데 오랜만에 네가 타주는 커피가 먹고 싶구나. 옷을 챙기는 동안 커피 한잔 타주지 않겠느냐?”

창현의 예상대로였다. 석규는 업무가 많이 밀린 탓인지 옷을 챙기고 바로 가려는 기미가 보였다. 내심 석규가 일찍 가길 바랐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아버지를 매몰차게 쫓아낼 수 없었다. 하다못해 커피라도 한잔 대접하여 부자간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네. 알았어요.”

“그래.”

그러면서 안방으로 향하는 석규는 거실을 보더니 고개를 살짝 갸웃한다. 창현은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안방으로 가서 옷을 챙기고 창현은 커피를 탄다.

석규가 옷을 챙겨서 거실 소파에 앉자, 창현이 커피를 석규에게 내민다.

커피를 살짝 맛본 석규가 미소를 짓는다.

“역시 네가 만든 커피를 마셔야 집에 왔다는 게 실감되는구나. 크, 이것이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인가.”

“농담도, 참. 사무실에 같은 재료만 갖춰놓으면 언제든지 타드릴 수 있어요.”

“하하! 그것도 좋은 생각인데? 그러고 보니 우리 기획사의 보물인 현군이 녹음실도 제대로 없구나. 이참에 녹음실 하나 장만하는 게 어떠냐?”

커피를 후르륵 마시며 석규가 말한다. 창현이 적당하게 물 온도를 조절하였기에 기다릴 필요없이 따뜻하게 마실 수 있었다.

창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솔깃한 말이지만 아직은 괜찮아요. 제가 자체적으로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하고 기획사 안에 있는 녹음실을 이용하면 되니까요. 나중에 데뷔하게 되고, 본격적으로 바빠지게 되면 그때 부탁드릴게요.”

“네가 그렇다고 말하면 어쩔 수 없지.”

커피를 단번에 들이키며 석규가 말한다. 언제나 느끼지만 창현이 타준 커피는 입에 착 감기면서 커피의 향이 입가에 은은하게 퍼진다. 그리고 전신에 거미줄 같이 퍼져 있던 피로가 말끔하게 사라지는 기분이다.

커피를 다 마신 석규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제 가봐야겠구나. 네가 괜찮다고 했으니 곧장 앨범으로 발매를 해야겠지. 너와 라샤 아이들이 힘내줘서 앨범 발매도 상당히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겠어.”

“잘된 일이죠. 반응도 좋던데.”

창현의 대답에 석규가 음흉하게 웃어보인다.

“그러게 말이다. 특히 우리 쪽으로 가면의 기사 역할을 맡은 소년이 누군지 집요하게 묻더구나. 아마 알려지면 꽤 귀찮아질게다.”

석규의 말에 창현이 골머리 썩는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끙! 그건 아버지가 최대한 도와주세요. 지금 그걸로 유명세를 타면 당장 데뷔하는 거랑 다를 게 없잖아요. 무엇보다 전 배우가 아니라 가수로서 데뷔를 하고 싶고요.”

석규가 웃음을 지우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들의 그정도 바람은 들어줄 수 있다.

“알았다. 네 말대로 해줄 테니 내년까지 열심히 우유나 마시고 있어라. 네 데뷔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팬들에게 네 첫 무대가 무진장 깔고 등장했다는 걸 알리기 싫으면 말이다.”

창현의 표정이 팍, 하고 일그러졌다.

“알았어요. 요즘 키 커서 167.5cm에요. 내년까지 충분히 170cm까지 클 거예요. 5cm 정도면 사람들도 이해해줄 겁니다.”

“그 정도라면야 뭐…….”

이야기를 나누면서 석규와 창현은 복도로 나왔다. 그리고 15층에 머물러 있는 엘리베이터를 막 잡으려는 순간, 갑자기 아래로 내려간다.

“아…….”

창현이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그에 석규가 돌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창현에게 말한다.

“그렇게 이 아비를 일찍 보내고 싶은 게냐?”

순간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석규의 저 표정.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창현은 가슴이 답답해져왔지만 짐짓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후후, 창현이 네가 제법 속이려고 애를 썼다만 내 눈을 속일 수는 없다. 신발은 어떻게 숨긴 듯하지만 거실에 남은 향수 냄새와 탁자에 놓인 과일 포크 두 개를 치우지 못했더구나.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겠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석규의 말. 창현의 등뒤로 식은땀이 흘렸다.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석규는 이미 알고 있던 것이었다.

어느새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가 다시 올라오고 있다.

석규는 창현을 보면서 말했다.

“너도 나름 공인이지 않느냐? 네가 가진 가능성을 고려하면 어느 소속사 사장이건 간에 반대를 했을 테지. 하지만 난 네가 좋다면 상관없다. 네가 책임질 수 있다고 확신을 하면 인사를 시키거라. 오늘은 그 준비가 안 된 것 같았기에 캐묻지 않은 것이다.”

그 사이 엘리베이터가 15층에 도착하며 땡! 하는 소리가 난다.

석규가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며 말한다.

“우리 아들이 벌써 집안에 여자를 끌어들일 정도로 성장하다니. 이거 윤아 양이 제법 슬퍼하겠구나, 후후!”

장난이 섞인 석규의 말. 하지만 이미 굳어버린 창현은 그의 말에 반응할 수 없었다.

그런 창현의 모습을 보면서 석규는 유쾌한 미소를 지은 채 사라졌다. 창현은 한동안 그 자리에서 굳어 망부석처럼 서 있어야 했다./

한동안 굳어있던 창현은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설마 알고 계셨다니.”

제법 머리를 굴렸지만 한계가 있었나보다. 신발을 감추었지만 워낙 급하게 하느라 수연이 뿌리고 온 향수 냄새를 제거하지 못했고, 과일 먹던 것도 그대로 남겨 두었으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들키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석규에게 제법 놀림을 받을 것이다. 집안에 여자를 들였다는 것 자체가 큰 떡밥이었으니 말이다.

“한동안 놀림 당하겠네. 후우!”

그래도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 창현은 집으로 들어가 신발장에 넣어놓은 수연의 신발을 꺼내든다.

꺼내든 신발을 내려놓는 순간, 창현은 보면 안될 것을 보고 말았다.

“으음!”

신발 안에 무언가가 있던 것이다. 그것을 어찌 모르겠는가. 키가 작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한 번쯤 착용해봤을 법한 물건인데.

조금 충격을 받았지만 창현은 못본 척하기로 마음 먹었다.

“수연 누나도 프라이버시가 있으니까…….”

애써 못본 척하며 과일 먹은 접시와 커피 잔을 싱크대에 넣어둔 뒤 창현이 방문을 조용히 열었다.

그러자 침대 위에 걸터앉아 있던 수연이 바짝 얼어 있다가 깜짝 놀라며 창현을 바라본다.

창현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버지 가셨어요. 다행히 들키지 않았네요.”

들키기는 했지만 수연이 온 것을 들키지는 않았으니 엄연히 반쪽으로 들킨 것이다. 완전히 들킨 것은 아니다.

“그래? 다행이다.”

수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정말 위험한 순간이었다.

그동안 루머에 시달리긴 했지만 진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버텨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차원이 달랐다.

얼굴없는 가수이긴 하나 창현은 국내에서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가수다. 그에 반해 자신은 아직까지 연습생에 불과하다. 들켜도 도저히 발뺌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창현의 아버지는 AA엔터테인먼트 사장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기획사에 소속된 창현이 집에 여자를 끌어들이는 행위를 용서할 리가 없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수연에게 있어서는 몸 안의 피가 바싹 마르는 순간이었다. 창현이 조금 더 늦었으면 빈혈로 쓰러졌을 정도로 말이다.

창현은 수연을 보며 말했다.

“이제 어느 정도 시간을 보냈으니 나가볼까요?”

시간을 보니 어느덧 열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창현의 말에 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가자.”

“잠시만요. 저 옷 좀 갈아입어야 돼서요. 커피 한잔 드실래요?”

“응? 응.”

옷을 갈아입는다는 창현의 말에 수연이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승낙을 한다. 커피를 연달아 마시는 것이 좋지 않지만 창현이 타준 커피는 상당히 맛있었으니까.

수연의 승낙에 창현은 커피 포트에서 식어버린 물을 다시 끓여 커피를 타서 수연에게 건네고는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였다.

커피를 다 마실 무렵, 옷을 모두 갈아입은 창현이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빈 잔을 만지작거리는 수연을 보며 말했다.

“전 준비 다했어요. 나가볼까요?”

“응. 가자.”

수연은 창현을 보며 밝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스 불을 껐나, 화장실 불은 꺼져 있나 꼼꼼하게 확인한 창현이 수연에게 말했다.

“아차, 잠시만요.”

창현은 작은 방에서 코 자고 있는 아기 고양이를 안아들었다. 외출할 것이니 만큼 고양이를 확실하게 해결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행히도 창현의 옆집에는 이제 갓 결혼한 신혼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고양이를 무척 좋아하여 흔쾌히 고양이를 맡아주었다.

고양이 문제를 해결한 창현은 밝은 표정으로 수연에게 말했다.

“자, 이제 가요. 오늘 제가 기분 확실히 풀어드릴게요.”

그렇게 말하는 창현의 모습에 수연이 예쁘게 웃었다. 정말 고맙고, 미안하고… 복합적인 마음이 들었다.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 해주는 것이다. 미안한 마음을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응. 기대할게.”

“좋아요! 그럼 가봅시다.”

창현이 수연을 이끌고 본격적으로 기분 풀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우선 영화관에 들려 영화를 본 뒤 점심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내친 김에 노래방으로 가서 그녀가 원하던 보컬 트레이닝을 조금 봐주기도 하고, 같이 노래를 부르며 시간을 보냈다.

노래방에서 나오니 약간 이른 저녁 시간이었다.

창현은 수연을 보면서 물었다.

“누나 제가 가려고 한 곳이 있는데 여기 갔다가 오면 조금 늦을 수도 있는데 괜찮을까요?”

“나야 상관없어.”

수연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멤버들에게 말해놓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잘됐네요.”

그에 창현이 밝은 표정을 지었다. 사실 수연이 여자인 만큼 통금 시간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괜찮다고 하니 자신이 계획했던대로 움직일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수연에게 통금 시간이 없을 리 없다. 데뷔를 앞둔 아이돌 그룹의 멤버로서 어느 정도 통제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수연은 오늘 그것을 과감하게 어기기로 마음 먹었다. 창현이 자신을 위해서 계획한 곳이다. 자신이 거의 억지를 부려서 만나기로 했고, 그런 자신을 위한 곳이었으니 그녀의 머리에 통금 시간 같은 것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창현은 수연을 이끌고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보아하니 창현이 계획한 곳이 조금 떨어진 곳인 듯했다.

약 삼십여 분 동안 지하철을 타서 내리고, 버스를 타고 이십여 분을 타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디보자, 아! 저긴가? 누나 저기 보이죠? 저기서 놀려고요.”

수연도 창현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한국에 왔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었다.

“야시장?”

“네. 오늘 저기서 야시장을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거든요. 아직 시간은 이르지만 저녁 먹으면서 시간을 조금 보내면 활성화 될 거예요.”

“응. 기대된다.”

수연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야시장은 말만 들어봐서 가보고 싶었지만 가본 적은 없었다.

버스에서 내렸지만 야시장은 제법 먼 곳에 위치해 있었기에 약 십분 여를 걸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저녁시간이 되어서 그런지 방문하는 손님들을 유치하기 위해 음식을 파는 곳은 벌써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음식점에 앉은 창현과 수연은 해물파전과 음료수를 시켜 간단하게 요기를 하였다. 야시장의 묘미는 바로 노점상에서 파는 음식들이다. 이곳에서 배를 가득 채우면 노점상에서 파는 음식들 맛을 못 본다. 그것은 야시장을 즐기기 위한 자세로서 잘못된 것이다.

느긋하게 해물파전을 먹으면서 서서히 가게들이 열자 값을 치른 창현과 수연은 본격적으로 야시장을 즐기기 시작하였다.

야시장의 묘미는 당연히 다양한 게임과 각종 먹거리였다.

창현은 야구공으로 나무토막들을 쓰러뜨리는 게임 앞에 다가가 수연에게 공을 건넸다.

“자, 수연 누나 이걸 던져서 스트레스 푸세요. 못 맞춰도 되니까요.”

“응.”

공을 받아든 그녀는 나무토막을 원수처럼 노려보더니 던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제구력은 제로. 나무토막은 하나도 맞지 않았고, 결국 참가 상품이랍시고 딸기맛 츄파춥스 하나를 받았다.

그 외에도 백원짜리 동전을 던져서 작은 사각형 안에 넣는 돈 놓고 돈 먹기란 게임도 했으며, 각설이가 춤추는 것을 보면서 호박엿도 먹었다.

그렇게 한바퀴를 빙 돌았는데, 수연이 갑자기 창현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왜 그러세요?”

창현이 수연을 바라보니, 아까 전 나무토막을 넘어뜨리는 게임이 눈에 들어왔다.

수연은 경품으로 걸려있는 큰 곰 인형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갖고 싶은데…….”

“곰 인형이요? 좋아요, 해보죠.”

흔쾌히 나서는 창현의 모습에 수연이 손을 가로저었다.

“아, 아니 꼭 해달라는 게 아니고…….”

저 곰 인형은 1등 경품이었다. 그만큼 타내기가 힘든 상품이란 뜻이다. 수연은 공연히 자신이 창현에게 부담감을 심어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창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일단 저를 믿어보세요.”

그러면서 돈을 치르고 다섯 개의 공을 받아든다. 다섯 개의 공으로 여섯 개의 나무토막을 모두 쓰러뜨려야 한다. 그래야 저 곰 인형을 탈 수 있으리라. 하지만 제법 멀리 떨어져 있고, 공을 던져본 적도 없는 창현이었다.

공을 던지니 나무토막에 스치지도 못한다. 창현의 입가에 허탈한 미소가 서렸고, 수연의 입가에 미소가 서린다.

이 애도 못하는 게 있었구나.

두 번째, 세 번째 공도 모두 빗나갔다. 하지만 창현의 적응력은 놀라웠다.

네 번째 공이 나무토막을 강타한 것이다.

빠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공이 나무토막에 작렬한다.

“와아! 에?”

공이 나무토막을 맞추자 환호하던 수연의 얼굴에 황당함이 서린다. 위에 한 개만 넘어간 것이다.

창현도 황당한 표정을 짓다가 가게 주인을 슬쩍 본다. 가게 주인은 당혹한 기색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 나무토막에 무언가 수작을 부렸음이라.

‘수작을 부렸다면 그것도 모두 부숴주겠다.’

정당한 게임이었다면 그저 즐기는 수준에서 하하, 거렸을 텐데.

어떻게 던질지 감을 잡았기에 창현은 마지막 공을 잡고는 공을 잡은 손에 내공을 싣는다. 이러면 위력은 몇배 상승이 된다.

내공으로 인해 엄청난 힘을 담은 공이 나무토막으로 향한다. 그리고 정중앙을 정확하게 강타한다.

빠아악!

수작을 부려놓은 나무토막이 모두 넘어갔다. 아니, 공에 담긴 힘에 산산조각이 났다고 할 수 있다.

“와! 넘어갔다.”

그냥 나무토막이 넘어간 것만 본 수연이 환호했다.

창현은 미소를 머금은 채 가게 주인에게 말했다.

“여섯 개 다 쓰러뜨렸네요. 당연히 1등이겠죠? 저 곰 인형을 갖고 싶네요.”

“크흠흠!”

가게 주인은 넘기다 못해 아예 나무토막을 부숴버린 창현을 보며 심기 불편한 기침을 토해냈지만 창현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정정당당하게 했으면 이쪽도 정정당당했을 것이다.

야시장에서 즐겁게 놀다보니 어느덧 열시가 되었다.

정신없이 놀던 창현과 수연은 생각보다 시간이 늦어 깜짝 놀랐다.

더 놀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시간이 상당히 늦었기에 창현과 수연은 아쉬운 마음을 접어두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숙소 근처 역에 도착하니 어느덧 열한시 반이었다.

시계를 본 창현이 수연에게 말했다.

“지금 시간이면 버스도 끊겼겠네요. 제가 숙소까지 바래다드릴게요.”

수연이 양팔을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괜찮아.”

“괜찮긴요. 저번에 태연 누나 못 보셨어요? 데뷔는 안 했지만 누나들 상당히 유명하다고요. 제가 숙소 앞까지 데려다드릴게요.”

태연의 일이 흘러나오자 수연은 입을 다물었다. 숙소 앞에서 스토커가 출몰했던 것은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무엇보다 창현이 이렇게 호의를 보이는데 거절하는 건 더욱 아니었다.

결국 창현과 수연은 숙소까지 나란히 걸어갔다. 조금 어색한 분위기였기에 수연은 아까 전 받았던 딸기맛 츄파춥스를 먹으며 길을 걸었다.

십오 분 정도 걷자 숙소가 나왔다. 아파트 단지에 들어선 창현은 숙소 바로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창현이 수연에게 물었다.

“우울하던 거 많이 풀렸죠?”

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늘 정말 고마워. 내 투정 받아줘서… 그리고 곰 인형도…….”

창현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뭘요, 친한 누나에게 이 정도는 해드려야죠.”

순간 수연은 질투심이 확 타오르는 걸 느꼈다. 자신이 특별해서 이렇게 해주는 것인 줄 알았는데. 친한 누나라면 누구든지 해줄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그럼 태연이에게도? 주현이에게도? 친한 누나라면 누구든지 이렇게 자상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

찰나지간에 치솟은 질투심은 그녀를 충동적으로 만들었다. 어떻게든 도장을 찍어놓고 싶었다. 넌 내 것이라고. 이제부터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말라고.

그리고 그것은 곧장 행동으로 나타났다. 갑자기 창현의 앞으로 다가간 그녀가 살짝 까치발을 들어 창현의 입에 자신의 입을 맞춘 것이다.

“……!”

창현의 두눈이 크게 뜨였다.

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창현은 순간 정신이 멍해지는 걸 느꼈다.

수연의 입과 자신의 입이 맞닿았다. 이것은 흔히 세간에서 말하는 키스가 아닌가?

약 3초 정도 짧은 순간 입을 맞춘 수연이 창현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살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고맙다는 아메리카식 인사야. 오늘 정말 고마웠어. 그럼 난 이만 가볼게.”

멍한 창현을 놔두고 그녀는 엘리베이터로 후다닥 달려간다. 창현은 그런 뒷모습을 쫓을 겨를도 없이 방금 전 수연의 행동에 얼이 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동안 멍해있던 창현이 손을 들어 자신의 입가를 매만진다.

촉촉하고 부드러웠던 그 감촉이 생생했다.

무엇보다 느껴졌던 그 달콤함은…….

“딸기맛이었어.”

아직도 입가에 맴돌고 있는 향긋한 딸기향.

그 자리에서 창현은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어야만 했다.


“내, 내가 무슨 행동을 한 거야.”

엘리베이터에 탄 수연은 방금 전 자신의 행동을 떠올리고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한순간의 충동이었다. 자신을 그저 친한 누나라 해주는 창현의 행동에, 태연이나 주현에게도 이렇게 해줄 수 있다는 생각은 그녀의 질투심을 유발 시켰고, 그녀로 하여금 이런 행동을 하게 되었다.

남자가 해주는 것도 아닌 자신이 직접 해버리다니. 창현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게다가 그걸 아메리카식이라고 해버리다니…….”

창현의 얼굴을 어떻게 본단 말인가?

그녀는 너무나 부끄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용기가 생겨났다.

어찌 보면 이미 저지른 일이 아닌가?

자신이 당당하게 행동한다면 이성 관계에 있어 약간 지식이 부족한 창현은 자신이 했던 아메리카식이란 것을 그러려니 할 것이다.

“창현이의 입술… 정말 부드러웠지.”

남자답지 않게 부드러운 입술. 야시장에서 그가 마셨던 파인애플 향이 자신이 먹었던 딸기맛 츄파춥스 향과 어우러져 묘한 맛으로 다가왔다.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매만지는 수연.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우울한 기분은 모두 날아간 지 오래였다.




제17장 미행, 발각!




내년 중순에 활동을 시작하여 중하순에 데뷔라는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되자 소녀들은 본격적인 데뷔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소녀시대가 아홉 명의 소녀로 이루어진 9인조 그룹이다. 그녀들은 가수 활동과 더불어 각각 여러 방면의 진출을 노리고 있다.

아홉 명으로 이루어진 만큼 그중에서 각자 맡은 역할이 있는데, 태연과 수연이 맡은 것은 바로 메인보컬이다.

메인 보컬은 말 그대로 중앙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으로, 가장 가창력이 나은 사람이 맡는 역할이었다. 그것으로 보아 태연과 수연이 소녀시대 내에서 가장 가창력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얼마 전 주현이 리드 보컬을 맡게 되었다. 즉, 소녀시대 내에서 태연과 수연, 주현이 노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맡았다고 할 수 있다.

아홉 명이라는 대인원인 만큼 그녀들은 각각 나뉘어 보컬 트레이닝과 몸매 관리 등을 받고, 안무는 단체로 모여서 연습을 하곤 한다.

태연과 수연, 주현은 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만큼 같이 보컬 트레이닝을 받곤 한다.

그녀들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한사람씩 나서서 노래를 부르고 장단점을 지적받으며 다음 트레이닝까지 고쳐야 할 점 등을 듣는다.

먼저 태연이 노래를 부른다. SM 청소년 베스트 선발대회에서 우승한 만큼 그 가창력은 가수에 비하여 부족함이 없다.

그런 그녀에게도 고칠 점은 있었나보다.

그녀의 노래가 끝나자 보컬 트레이너는 그녀가 불렀던 몇몇 부분을 지적하였고, 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보컬 트레이너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그 다음은 수연이었다.

차분한 안색으로 나선 그녀는 조용히 목을 가다듬고는 노래를 부른다.

소녀시대 내에서 태연이 파워풀한 음성을 지녔다면 수연은 섬세하고 넓은 음역을 포괄하는 음성을 지니고 있다. 감미로운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노래가 끝나자 보컬 트레이너는 감탄한 표정으로 엄지를 치켜든다. 이전보다 훨씬 감정이 풍부하게 담겼다는 것이 칭찬 포인트였다.

실로 오랜만에 듣는 칭찬이었기에 수연은 밝은 표정을 지으며 태연의 옆으로 왔다.

태연은 수연을 보면서 물었다.

“수연아! 너 무슨 좋은 일 있었어?”

“응? 아니.”

태연의 물음에 고개를 젓는 수연.

하지만 태연은 그런 수연의 말을 쉽게 믿지 않았다.

그녀는 표정 하나도 변하지 않은 채 자신의 물음에 대답한 수연을 바라보았다.

‘뭔가 수상해.’

자신을 비롯하여 아홉 명의 소녀들을 이끄는 리더 자리를 맡다보니 그녀는 알게 모르게 멤버들의 변화에 무척 민감했다.

그녀는 저번주만 하여도 수연이 무척 우울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같은 룸메이트이기도 하고, 같이 보컬 트레이닝을 받아오면서 함께 한 시간도 결코 적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녀가 근래 들어 멤버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소위 빠순이라 불리는 극성팬들에게 시달리며 밤잠을 설칠 정도로 괴로워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런데 저번주 주말에 갑자기 밝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토요일 이른 아침에 사라진 그녀는 열두 시가 다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왔는데, 나갈 때 달랑 나간다는 말 한마디와 도중 늦는다는 말 한마디만 남겼기에 그녀의 늦은 귀환을 멤버들이 무척 걱정하였다. 그리고 숙소로 도착한 그녀에게 얼마나 많은 질문들을 퍼부었던가.

거대한 곰 인형을 가지고 숙소로 돌아온 그녀는 피곤하다는 말과 함께 멤버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씻고 잠이 들었고, 이후 토요일에 있었던 일에 대한 질문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멤버들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태연은 토요일 날 수연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 멤버들의 고민 상담을 곧잘 들어주던 그녀가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할 정도로 우울해하던 수연의 모습이었다. 그녀가 왜 우울해하는지 어렴풋 알고 있었고, 이미 곪을대로 곪은 상처였기에 자칫하면 터질 수도 있어 함부로 위로를 할 수 없던 문제였다.

그 문제가 어느 날 갑자기 뚝딱 해결되었다. 당연히 의아함이 느껴지지 않겠는가?

태연은 다시 한 번 수연에게 물었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수연아?”

“별일 없어. 토요일에 바람 좀 쐬고 왔더니 괜찮아졌어. 걱정해줘서 고마워, 태연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을 하는 수연이었다.

“으응. 알았어. 나아졌다니 다행이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니 태연은 더 이상 수연을 추궁할 수 없었다.

그 후로 태연은 더 이상 수연에게 물음을 건네지 않았고, 수연도 묵묵히 보컬 트레이닝을 받을 뿐이었다.

보컬 트레이닝이 끝나고 휴식시간이 되었다.

삼십 분간 휴식을 취한 뒤 안무 연습을 하러가야 한다.

수연은 안무 연습을 할 옷을 갈아입기 위해 연습실로 향했고, 태연과 주현이 멀찌감치 뒤떨어져 느긋하게 연습실로 향했다.

태연은 주현에게 물었다.

“주현아, 수연이가 조금 달라진 것 같지 않아?”

주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 것 같아요. 저번 연습 때만 해도 수연 언니가 많이 우울해 하셨는데 지금은 괜찮아 보이네요. 정말 다행이에요.”

아직 어린 막내였지만 그렇다고 눈치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저번주만 하여도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던 수연이 상당히 밝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현도 그걸 느끼고 있는 듯하자 태연의 눈이 가늘어졌다.

“뭔가 수상해. 뭔가 냄새가 난단 말이야.”

“무슨 냄새가 나요? 아무 냄새도 안나는데.”

그러면서 순진하게 주변 냄새를 맡는 주현. 그녀 말대로 아무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런 주현의 모습에 태연이 코를 찡긋했다.

“으이구! 우리 순진한 막내 같으니. 내 말은 그게 아니잖아!”

“그럼 뭔데요?”

“내 말은 무언가 수상한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토요일 갑자기 나갔던 수연이가 느닷없이 곰 인형을 가지고 들어와서 밝은 표정을 짓고 있어. 과연 수연이가 혼자서 기분을 풀었을까?”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 혼자서 울적한 기분을 푸는 것이 가능하긴 하지만 그걸 알았다면 수연이 그동안 울적해 했을 리가 없다. 그렇다는 건 당연히 누군가와 함께 했다는 이유가 되고, 굳이 말하려 하지 않는 걸로 보아 여자가 아닌 남자일 확률이 높았다.

거기까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태연이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한 주현이 나직이 감탄사를 흘렸다.

“아…….”

“이해가 갔지? 그러니까 수상하다는 거야. 흐음!”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기는 태연의 모습에 주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수연 언니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는데 너무 깊게 들어가는 게 아닐까요?”

태연이 주현을 보며 말했다.

“아니, 내 예감은 정확해. 네가 창현이랑 부적절한 만남을 할 때도 이런 예감이 들었거든.”

“그, 그게 무슨 부적절한 만남이에요!”

태연의 말에 주현이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얼핏 들으면 무척 의심이 가는 말이 아닌가?

주현의 외침에 태연이 웃으며 말했다.

“후후! 나의 존재 덕택에 건전한 만남이 되었지. 어쨌든 지금도 그때 같은 느낌이 나. 나의 예민한 코가 반응하고 있어.”

“그냥 예민한 걸 수도…….”

하지만 이미 자신의 세계에 빠진 태연은 그런 주현의 말을 듣고 있지 않고 있었다.

“난 소녀시대의 리더로서 구성원이 부적절하게 숨기는 비밀을 알 권리가 있다! 우선 협력자를 구해야겠어. 호기심이 많은 유리와 순규라면 기꺼이 협력하겠지. 후후후, 정수연 너는 내가 물어보았을 때 순순히 대답했어야 했다. 후후후!”

웃음을 짓던 태연의 웃음은 점차 음산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런 태연의 모습에 주현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냥 언니가 궁금한 것뿐이잖아요…….”

그 말이 태연에게 들릴 리가 없다.


태연이 가장 먼저 착수한 작업은 바로 주변 인물의 포섭이었다.

그녀는 우선 자신의 힘이 되어줄 법한 인물들을 노렸다.

아무리 그녀가 리더라고 하나 수연이란 존재는 만만치가 않다. 혼자서는 버겁다는 걸 알기에 주변의 도움을 이용하여 이번 일의 출처를 알아내려 하였다.

가장 먼저 그녀는 유리를 공략했다.

태연은 유리에게 다가가 슬쩍 떡밥을 뿌렸다.

“유리야, 요즘 수연이가 좀 이상하지 않아?”

“이상하다니? 어디가?

유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하지만 태연은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 서리는 호기심을 말이다.

속으로 미소를 지은 태연이 말했다.

“갑자기 수연이가 밝아졌잖아. 유리 너도 알지?”

“당연하지.”

유리가 그걸 모를 리가 없다. 멤버들 모두 함부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수연이 근래 들어 무척 우울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몇 년 동안 함께 땀을 흘리지 않았던가. 그 정도 변화는 당연히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런데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밝아졌으면 좋은 거지.”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유리. 그에 태연은 혀를 차며 다시 한 번 떡밥을 뿌렸다.

“수연이가 토요일 날 외출하더니 늦게 왔잖아? 그때 이후로 갑자기 괜찮아 보이더라고.”

“그래? 그러고 보니 그렇구나. 갑자기 궁금해지네.”

태연의 낚시질이 먹혔다.

유리가 호기심을 보이자 태연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치, 궁금하지? 그래서 내가 몇가지 계획을 세웠는데…….”

“오호! 이거 이미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구만.”

눈치가 빠른 유리는 태연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끌어들였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 가지고 뭐라 하지는 않았다. 태연의 행동이 제법 약오르기는 했지만 그녀 또한 갑자기 밝아진 수연의 모습에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수연은 모르겠지만 멤버들은 알게 모르게 그녀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윤아가 라샤의 뮤직비디오에 참가하여 대박이 터지고, 소녀시대에 관심이 쏠리자 무척 들뜬 분위기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수연의 루머가 불거져서 더욱 우울해 했는데, 그것도 모른 채 한동안 들뜬 분위기를 보여주었으니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수연의 기분이 한결 나아진 걸 확인한 멤버들은 마음 속으로나마 기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기쁜 것은 기쁜 것이고 궁금한 것은 궁금한 것이다.

유리는 왜 수연의 기분이 갑자기 풀렸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태연은 유리의 말을 듣고는 웃었다.

“후후! 계획을 세워두었고, 너의 도움이 필요해서 이렇게 말하는 거야. 솔직히 수연이는 혼자서 조금 버겁잖아?”

“그거야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는 유리. 태연의 말에 공감하는 듯했다.

솔직히 수연은 그녀들이 각각 일대일로 부담하기에는 조금 강력했다.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을 마주하게 되면 저도 모르게 한수 접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서이다.

하지만 이대일이라면 다르다. 태연과 유리도 제법 만만치 않기에 철저한 계획을 세워놓는다면 충분히 수연을 공략할 수 있을 것이다.

유리는 둘이지만 조금 불안한 듯, 태연에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 둘이서는 조금 힘들지 않을까?”

그에 태연이 씨익 웃는다.

“두 명이서 조금 버거운 감이 없지 않아 있지. 그래서 순규도 포섭하려고 생각 중이야.”

유리의 표정이 밝아졌다.

“순규가 있다면 괜찮겠지. 하지만 뭔 수로 끌어들이려고?”

순규는 요즘 연습이 끝나면 줄곧 방으로 들어가 게임 하기에 바쁘다. 호기심이 유리 못지않지만 웬만한 떡밥으로는 끄떡도 하지 않을 것이다.

태연이 웃음을 지어보였다.

“후후! 나만 믿으라고.”

떡밥은 넉넉했다.


유리를 설득하는데 성공한 태연은 곧장 순규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순규는 스타크래프트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저번에 자신을 꺾은 어린 녀석의 콧대를 눌러주겠다고 요즘 들어 집에 오면 곧장 연습에 몰두한다.

“으으!”

태연이 방안으로 들어서자 순규가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을 흘리고 있다. 보아하니 게임에서 또 졌나보다.

“순규야 잠시 시간 있어?”

“태연이? 나 지금 바빠. 전략 전술 연구해야 돼. 다크 소드 녀석! 도대체 어떻게 공략해야 되는 거지!”

요즘 들어 순규는 말 그대로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배틀넷 유명 클랜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지닌 그녀였다. 가수 연습생이란 신분 때문에 많은 연습을 하지 못하지만 타고난 게임 감각이 있었기에 아마추어 중에서는 가히 최상위권에 속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거대한 벽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길드 내에서 가장 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길드 마스터의 아는 동생 다크 소드와의 만남이었다.

팀 배틀에서 한 번 패한 그녀는 다크 소드에게 엄청난 승부욕을 불태웠다. 그리고 그를 꺾기 위해 연습에 몰두하였다. 그 때문인지 주말마다 하는 길드 랭킹 전에서 그녀는 No.5에서 No.3까지 올라서는 기염을 토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이 전혀 기쁘지 않았다.

왜냐? 자신만만하게 실력을 길러 다시 도전 했다가 또 다시 형편없이 깨진 것이다.

게임에서 뼈 아픈 패배를 당하니 그것이 현실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요즘 들어 자꾸 노래가 잘 되지 않는 것이었다.

이래저래 현실과 게임에서 슬럼프를 겪자 요즘 그녀는 신경이 무척 날카로운 상태였다.

태연은 그런 순규에게 떡밥을 던졌다.

“순규야, 요즘 노래 때문에 걱정이 많지? 그거 해결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러는데…….”

순규에게 있어 정신이 퍼뜩 드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는 머리를 감싸고 괴로워 했다는 게 언제였냐는 듯 고개를 들고 태연을 바라보았다. 더 말해보라는 눈빛이었다.

단번에 떡밥을 물어버리는 순규의 모습에 태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비록 내 예상일 뿐이지만 거의 확실할 거야. 일단 말이지…….”

태연은 유리에게 해주었던 말을 그대로 순규에게 말했다.

순규 또한 수연이 근래 우울해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여러모로 걱정하고 있었던 차였다.

그녀는 자신에게 찾아온 슬럼프 때문에 수연이 미처 우울함을 회복한지 모르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그녀의 변화를 듣자 눈에 호기심을 띠었다.

그 모습을 보며 태연이 미소를 지었다. 순규의 모습을 보니 완전히 넘어온 것 같았다.

‘후후! 두 아군을 포섭했다. 이제 실행만 남은 건가?’

그녀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유리와 순규를 포섭한 태연은 순규의 조언을 얻어 곧장 작전을 개시하였다.

우선 둘의 도움이 한꺼번에 필요한 경우는 없었다. 작전을 구상한 순규는 다시 전략전술을 짜는데 골몰하였고, 태연과 유리가 작전 개시에 나섰다.

연습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씻기 위해 수연이 화장실로 들어서자 태연이 살그머니 수연의 핸드폰을 잡아든다. 그리고 연락목록을 보려고 한다.

그러자 자신을 풀어달라고 유혹하는 잠금장치.

“역시, 장금장치를 해두었군. 하지만 난 네가 비밀번호를 무엇으로 하는지 리스트를 꿰고 있다고. 후후후!”

잠금장치 정도는 예상했던 바였다. 태연은 수연이 평소 해놓는 비밀번호를 떠올리며 번호를 입력한다. 하지만 틀렸다고 나온다.

‘한 번에 맞으면 재미가 없지.’

태연은 눈을 빛내며 비밀번호를 다시 입력한다. 그녀가 알고 있는 수연의 애용 비밀번호는 약 오십여 개. 그중에 하나는 반드시 있으리라.

한 열 개까지 실패를 했을 때, 화장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수연이 다 씻고 나오는 길이었다.

태연은 수연이 예상보다 빨리 나오자 당황하면서 대기하고 있던 유리에게 눈짓을 했다. 시간을 끌어달라는 뜻이었다.

유리는 고개를 나직이 끄덕이며 수연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방금 씻어서 그런지 무척 뽀송뽀송한 수연에게 다가가며 눈을 빛낸다.

“와! 수연아 너 무슨 비누 쓰는 거야? 피부 완전 하얗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맨날 너도 같은 비누 쓰잖아.”

수연은 의아한 표정으로 유리를 보며 말한다. 그러자 유리가 속으로 움찔했다. 그랬었지. 하지만 그녀는 굴하지 않고 말한다.

“머릿결 좋아진 거 같은데? 샴푸는 뭐 쓰고 있어?”

유리는 미리 준비해둔 질문들을 수연에게 퍼부으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그 사이 태연은 비밀번호를 계속해서 입력하고 있었다.

스무 개 정도가 틀리고 거의 삼십 개에 다다랐을 무렵, 태연은 마침내 핸드폰 장금장치를 풀 수 있었다.

태연의 눈이 빛났다.

‘푸, 풀렸다.’

그러면서 그녀는 통화목록을 쭈욱 아래로 내려본다. 토요일이다, 토요일.

통화, 문자 목록을 아래로 내리던 그녀는 마침내 원하던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금요일 밤 열시. 그녀가 찾고 있던 통화기록을 발견한 것이다.

‘역시! 내 예상대로였어.’

자신의 예상이 맞아떨어지자 그녀는 자신의 추리에 감탄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가슴이 쓰렸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일 줄이야.

어쨌든 통화기록을 확인한 그녀는 핸드폰을 덮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거실로 나왔다. 그때까지 유리는 충실하게 수연을 붙잡고 있었다.

태연이 유리에게 작게 미소를 지어 보여주자, 유리가 어색하게 웃으며 뒤로 물러난다.

“하하! 뭐 그렇다는 거지.”

수연은 그런 유리의 모습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다가 한마디 한다.

“너 오늘따라 뭔가 이상해.”

“그, 그런가? 난 TV 보러…….”

유리는 거실 소파로 달려가 앉았고, 옆에 앉은 태연에게 나직하게 물었다.

“어때?”

태연도 소리를 죽여서 대답했다.

“내 예상대로야. 일단 주말에 지켜보자. 내 예상이 맞다면 주말에 움직임을 보일 거야.”

“오케이.”

유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태연의 가설이 사실로 맞아떨어지자 그녀의 눈이 더더욱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하루하루 흘러 마침내 토요일이 되었다.

모두 아침 식사를 함께 하고 각자 시간을 보냈다.

순규는 여전히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고, 태연과 유리는 밥을 먹고 죽은 듯이 잠에 빠져 있었다.

아침을 먹은 수연은 씻고 옷을 차려입었다.

외출 준비를 갖춘 그녀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 윤아와 주현을 보며 말했다.

“아는 사람이랑 점심 먹고 오후까지 놀다올게. 저녁 전에 들어올 거야.”

“시간 잘 확인하셔서 저번처럼 늦으면 안되요.”

“네, 언니, 너무 늦지마세요.”

두 사람은 별 의심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연도 두 사람이 걱정을 담아서 해주는 말이라는 걸 알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집을 나선다.

쿵!

문이 닫히자 그때까지 죽은 듯이 침대에 누워있던 태연과 유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마치 변신이라도 하듯 일분 사이에 후다닥 외출 준비를 마친다. 경이로운 속도가 아닐 수 없다.

건넛방을 보니 순규도 어느새 외출복 차림을 하고 있었다.

태연은 윤아와 주현을 보며 말했다.

“우리는 같은 멤버가 어찌하여 활력을 되찾았는지 알아내기 위해 여행을 떠나겠다. 그대들은 집을 잘 지키고 있으라.”

그런 태연의 말에 주현이 대문을 슬쩍 보더니 말한다.

“언니 설마…….”

“헛헛!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주현 양. 우리가 확실하게 알아 와서 그대에게도 알려주겠네. 그럼 가자!”

힘차게 문을 열며 밖으로 나서는 태연과 유리, 순규.

밖으로 나서는 그녀들에게 주현의 목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온다.

“너무 늦지 마시고, 일찍 오세요! 점심 거르지 말고요!”


아파트 단지를 벗어난 세 사람은 부지런히 수연의 뒤를 쫓았다.

자신들이 쫓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지 수연은 그리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길을 걷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태연이 입술을 삐죽였다.

“완전 신났구만.”

“수연이가 도대체 누구 만나러 가는 거야?”

옆에있던 유리가 묻자 순규도 태연을 바라본다.

여전히 입술을 내민 채, 태연이 말한다.

“유리는 보면 알 거야. 순규는 처음이겠지만.”

“왜 너희는 아는데 나는 몰라?”

순규의 의문에 태연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에잇! 설명해주기 귀찮아. 그냥 따라오면 알게 돼.”

그 말과 함께 태연이 수연의 뒤를 부지런히 따랐고, 유리는 태연이 말한 것이 누군가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순규는 두 사람은 아는데 자신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자 기분이 나쁜 듯 눈살을 찌푸린 채 코를 찡긋하고 있었다.

세 사람이 수연의 뒤를 쫓아 도착한 곳은 분수대광장이었다.

태연은 언젠가 한 번 미행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허탈하게 웃었다.

“정말 약속 장소가 그렇게 없나. 왜 맨날 여기야.”

“야! 김태연! 내가 아는 사람이라는 게 도대체 누구야?”

“보면 안다니까!”

크게 소리내는 두 사람을 보며 순규가 손을 입가에 대며 말했다.

“쉿. 크게 말하면 들킬 수 있어. 조용히 해.”

“쳇!”

그렇게 세 사람은 인파에 묻혀 조용히 관측하였고, 수연이 한 남자와 만나는 모습이 보였다.

그걸 보며 세 사람이 눈을 빛냈다.

“역시! 내 예상대로였어.”

태연은 자신의 예상대로 전개되자 중얼거렸고, 유리는 남자의 정체를 알아보고는 소리를 쳤다.

“앗! 창현이잖아! 설마 수연이가 창현이랑 아는 사이?”

“창현이가 누구야? 와우! 엄청 잘생겼다.”

순규는 창현을 처음 봤기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서 창현의 얼굴을 보고 감탄사를 흘렸다.

유리가 순규에게 창현에 대해 설명해줬다.

“그때 아파트 앞에서 만났다는 주현이 후배 있잖아. 윤아에게 라샤랑 현의 싸인이 담긴 CD 전해준 애.”

유리의 설명에 순규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한다.

“아! 주현이 후배? 그럼 열다섯 살? 와! 어린데 완전 잘생겼다. 삼촌한테 말해서 스카웃 하라고 해볼까?”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로 창현의 비주얼은 뛰어났다.

순규는 길에서 노다지를 발견한 기분으로 창현을 바라보았다.

유리가 옆에 있는 태연을 보며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수연이가 누굴 만나는지 확인한 이상 목적을 달성한 거 아니야?”

“어떻게 할 생각이야?”

선택의 순간. 이럴 때는 리더의 의견이 중요했다.

태연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대답한다.

“누굴 만나는지만 확인한 거야.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지. 뒤따르면서 무얼 하는지 확인해보자. 그리고 조용히 수연이를 불러서 추궁하자.”

“우리 셋이서 가능할까?”

추궁이란 말에 유리가 멈칫하며 말했다. 순규도 비슷한 눈치였다.

태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안 그럼? 멤버들에게 남자 만난다고 알려지고 싶어할까? 일단 쫓아가서 우리 선에서 끝을 보자. 수연이가 왜 창현이를 만나는지 확실한 이유도 알아야 하니까.”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의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수연이가 자신에게 말을 안 해줘서 그런 게 아니다.

둘이 친근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졌다.

태연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유리와 순규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이 어디론가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

태연과 유리, 순규는 그 뒤를 따랐다.

창현과 수연이 도착한 곳은 노래방이었다.

두 사람이 들어서고, 약간의 시간 차를 둬서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유리와 순규는 밝은 표정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 번쯤 노래방 가고 싶었는데 마침 잘됐네.”

“그러게. 이참에 스트레스나 팍팍 풀자.”

그러면서 창현과 수연이 들어간 방 옆을 잡아놓고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두 사람은 아까부터 표정이 좋지 않은 태연을 보며 말한다.

“태연아 넌 노래 안해?”

“둘이서 번갈아 부르려니 힘들다.”

태연은 그녀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으휴! 음료수 사올 테니 천천히 부르고 있어.”

그러면서 방을 나선 그녀는 옆방을 슬쩍 들여다본다. 창현과 수연의 다정한 모습이 보인다.

수연이 노래를 부르고, 창현이 무언가를 지적해주는데, 수연의 모습이 무척 진지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태연은 요즘 부쩍 실력이 좋아져 보컬 트레이너 선생님에게 칭찬받던 수연의 모습이 떠올랐다.

“설마?”

의혹을 가진 채 다시 지켜본다. 창현은 수연에게 무언가를 설명해주는 얼굴이었고, 수연은 그 말을 듣고 경청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선생님과 학생 같은 모습이었다.

믿기지 않는 사실이지만 수연이 창현에게 무언가를 배우는 듯한 모습이었다.

음료수를 사가지고 방으로 들어간 태연은 시시각각 옆방을 관찰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정말 창현에게 수연이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보컬 트레이닝일 확률이 높다는 것까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확실해. 수연이는 창현이한테 보컬 트레이닝을 배우고 있던 거야.”

이런 능력까지 있었다니. 새삼 창현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그걸 가르쳐주지 않은 것이 서운했다.

두 시간 정도 노래를 부르자 창현과 수연이 밖으로 나왔고, 태연은 노래 삼매경에 빠져있는 두 사람을 이끌고 뒤를 따랐다.

그 뒤는 간단했다. 창현과 수연은 같이 점심을 먹고 헤어진 것이다.

수연은 웬지 모를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창현과 헤어졌고, 갈곳도 없기에 곧장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막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서려던 그녀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세 인영과 마주해야했다. 바로 수연을 미행했던 삼인조였다.

태연은 입가에 살기가 감도는 음산한 미소를 띄운 채 수연에게 말했다.

“자, 창현 군과 오붓한 데이트를 한 수연 양. 우리 할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태연의 모습에 수연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수연이 차가운 음성으로 물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평소 친한 사람에게는 무척 다정하고 사근사근한 수연이지만 정말 얼음 같은 표정을 지을 때 풍겨 나오는 포스는 장난이 아니었다.

태연은 수연의 굳은 표정을 보고는 자신이 압도되는 것을 느꼈다.

‘윽! 역시, 수연. 하지만 나에게는 지원군이 있다고.’

움츠러든 어깨를 쭉 피며 태연이 말했다.

“우리가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 오히려 질문해야 하는 것은 우리야.”

“……!”

강력하게 나오는 태연의 말에 순간 할 말을 잃은 수연. 그녀가 날카로운 눈으로 태연을 노려본다. 하지만 태연은 그런 수연의 눈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태연의 뒤에 있던 유리와 순규가 그런 태연의 모습에 감탄을 터뜨린다.

‘오오! 과연 리더!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오는 수연이의 얼음 레이저를 견뎌내다니!’

‘태연이 의외로 강한데? 역시 리더다워!’

감탄과 존경, 선망의 시선을 받고 있는 태연이었지만 정작 수연과 마주하고 있는 그녀는 죽을 맛이었다. 당장이라도 수연의 눈빛을 피해 뒤로 물러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물러나면 뒤에 있는 유리와 순규도 추풍낙엽처럼 무너질 것이다. 자신이 그녀들의 버팀목이지 않은가?

속으로는 ‘오늘 난 죽었다.’를 느끼면서도 태연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미 기호지세였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이상 떨어지면 잡아먹힐 뿐이었다.

태연은 오히려 그런 수연의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

“그런 눈으로 봐도 소용없어. 나를 비롯해서 유리와 순규도 모든 것을 지켜봤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태연이 말없이 수연을 바라보았다. 수연도 그런 태연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시선을 주고 받았을까.

먼저 패배를 시인한 것은 수연이었다.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후우! 그래, 내가 졌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정녕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리더이긴 하지만 덩치부터 시작하여 모든 전투 스펙이 최하위에 속하는 태연이 소녀시대 멤버 중 먹이사슬 최상위에 놓인 수연과 정면대결을 하여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 뒤를 유리와 순규가 받쳐주고 있었지만 일대일 구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기념비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태연이 입가에 미소가 싱긋 맺혔다. 승자의 웃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속으로 안도에 안도를 거듭하고 있었다.

‘휴! 잘못했으면 밀릴 뻔했어. 과연 수연이. 두 사람이 내 뒤를 받쳐주고 있음에도 이 정도라니. 하지만 나도 예전의 내가 아니라고.’

지금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여 숙소로 돌아간 뒤 참혹한 결말을 맞이할 것은 변하지 않지만 그녀는 그것에 굴하지 않은 채 지금의 승리를 만끽하며 수연에게 물음을 던졌다.

“좋아, 질문을 할게. 내가 먼저 묻고 싶은 것은 네가 노래방에서 창현에게 무언가를 가르침 받았던 부분이야. 수연이 넌 창현이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있었지?”

“……!”

태연의 말에 수연은 물론 유리와 순규도 놀라고 말았다. 물론 그 놀라움의 종류는 달랐다.

수연은 설마 태연이가 자신이 창현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 장면을 들킬 줄 몰랐다.

어찌 보면 창현의 보컬 트레이닝 부분은 비밀의 일부분이 아니던가? 수연은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유리와 순규가 놀란 이유는 바로 창현에게 수연이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는 부분이다. 유리에게 있어 창현은 그저 귀여운 주현의 후배였고, 순규는 오늘 처음 본 창현이란 소년이 수연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시켜 줄 정도로 뛰어난 음악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데 놀랐다.

“잠깐! 그렇다는 건…….”

눈치 빠른 유리는 창현이 보컬 트레이너로서 상당한 수준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자 하나의 상황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수연을 보며 말했다.

“갑자기 등장한 보컬 트레이닝 실력.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가창력의 고질적 문제점을 극복한 주현이와 윤아. 무언가 연결점이 느껴지는데… 설마 주현이와 윤아의 가창력을 손봐준 게 창현이?”

“…….”

“뭐? 윤아랑 주현이가 갑자기 약점을 극복한 게 그 애 때문이라고?”

유리의 추측성 발언에 수연은 침묵을 하였고, 순규는 그럴 듯한 유리의 말에 놀라며 탄성을 터뜨리고는 수연에게 시선을 준다.

수연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이 부분이 비밀로 해야 할 부분이란 걸 느꼈기에 입을 열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슴 속에서 오락가락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따지고 보면 주현과 윤아도 알고 있는 사실이고, 들킨다고 해도 창현이 현이라는 것을 들키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복잡한 고민에 빠진 수연에게 태연이 결정적인 말을 한다.

“무엇보다 저번주에 창현이를 만난 수연이의 가창력이 눈에 띄게 나아져 보컬 트레이너 선생님들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점이지. 그게 반드시 지켜야 할 비밀이라면 말컬 트레아도 돼. 하지만 꼭 지켜야 할 비밀이 아니라면 대답해줬으면 좋겠어.”

이미 수연의 침묵은 대답을 한 것과 다름없었다. 허나, 그녀는 수연에게서 직접 대답을 듣고 싶었다.

한참동안 침묵하던 수연이 결심을 굳힌 듯 입을 열었다.

“태연이 네 말이 맞아. 난 창현이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있었어. 그리고 유리의 추측도 맞아. 윤아와 주현이도 창현이한테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지.”

“역시…….”

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함께 영화를 보기 위해 CGV를 찾았던 그날, 함께 듀엣 곡을 부르면서 느끼지 않았던가. 그 가창력을… 그런데 그 내막에는 뛰어난 보컬 트레이너로서의 실력이 숨어 있었다.

주현과 윤아의 보컬 트레이닝을 맡았던 예민은 초일류 보컬 트레이너가 주현에게 도움을 줬다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창현에게 트레이닝을 받으니 수연의 실력이 일취월장 할 수밖에.

‘나도 도움을 받고 싶은데.’

태연의 눈에 순간 부러움이 스쳐지나갔다.

가창력 욕심이라면 누구에게 지지 않는 그녀였다. 지금도 충분히 잘한다는 평을 듣고 있지만 좀 더, 누구나 인정할 법한 실력파 가수가 되는 게 그녀의 목표였다.

유리와 순규의 눈에도 비슷한 빛이 서렸다. 가수로서 데뷔를 목표로 하는 만큼 그녀들도 누구보다 노래를 잘하고 싶었다.

태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도 그 보컬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한 태연은 스스로 말하고도 놀랐다. 너무나 터무니없고 어이가 없는 말이었던 것이다.

유리와 순규도 태연의 말에 놀란 표정이었다. 설마하니 태연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

태연의 말을 들은 수연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다. 만약 태연이 부탁한다면 창현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기꺼이 승낙해줄 것이란 것을. 연습생 생활로 인하여 Give&Take에 익숙해진 그녀들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창현은 단순한 친분 하나만으로도 누구나 다 바라던 것을 이뤄주곤 한다.

단둘이 받게되던 보컬 트레이닝을 여러 사람과 함께 받게 되는 건 무척 유감이다. 하지만 수연은 싫은 내색을 할 수 없었다.

그녀들이 왜 자신의 뒤를 쫓아왔는지 어렴풋 이유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수연이 물었다.

“그런데 왜 내 뒤를 쫓아온 거야? 설마 장난으로 쫓아왔을 리는 없을 테고…….”

그 말에 태연이 작게 움찔한다. 워낙 작은 반응이라 수연이 미처 그 모습을 보지 못한다.

호기심 반 장난 반이 섞여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녀가 걱정되어 뒤를 쫓은 것이다. 그래도 이 이유를 안다면 숙소에서 피 바람이 불 것은 자명했다. 유리와 순규가 태연에게 눈짓을 보냈지만 앞에 있어서 그녀들의 눈빛을 받을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녀도 바보가 아니었다.

태연은 앞의 내용을 일절 생략한 채 말했다.

“우리는 그저 수연이 네가 어째서 기분이 풀렸나 궁금했거든. 그래서 알게 되었어.”

“그래……?”

나쁘지 않은 반응이다.

유리와 순규는 그런 수연의 반응에 알게 모르게 한숨을 내쉰다. 태연이 적절하게 말해주어 수연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는데 성공했다. 태연도 수연의 반응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수연.

자신을 주목하는 세 쌍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 채 생각에 잠겨있던 그녀가 이윽고 입을 연다.

“좋아. 창현이한테 말해보자. 아마 승낙해줄 거야.”

“저, 정말?”

눈이 왕방울만하게 커지며 되묻는 태연.

그런 태연의 모습에 수연이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래. 창현이는 생각보다 그런 걸 따지는 사람이 아니거든. 잘 말해주며 수락해줄 거야.”

수연의 말에 조금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소녀들이었지만 수연은 개의치 않았다. 만약 거절을 당해도 자신에게 나쁜 일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말한 수연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태연에게 성큼성큼 다가온다.

갑작스러운 수연의 접근에 태연이 몸을 움찔 떨고는 한발자국 물러선다.

“왜, 왜 그래?”

그런 태연의 어깨를 덥썩 잡는 수연. 그녀의 입가에 좀처럼 볼 수 없던 섬뜩하고 차가운 미소가 태연의 시야에 들어온다.

“용건은 끝났으니 이제 우리 볼일을 봐야겠지? 자, 우리 사이 좋은 룸메이트답게 함께 방으로 돌아가요.”

“…헉!”

완벽하게 생포당하고 나서야 방금 전 자신이 했던 행동들을 떠올리는 태연.

살기 위해 그녀는 바동거리며 수연에게 벗어나려 하였다.

그 저항에 제법 거셌기에 수연이 인상을 찡그리며 유리와 순규를 바라본다.

“유리야, 순규야. 너희들에게는 아무 말도 안 할 테니 태연이 옮기는 거 협조 좀 해줘.”

수연의 말에 태연이 웃으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헹! 유리랑 순규는 내 편이거든요? 내 덕에 보컬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게 될 테니… 어엇?”

말을 하던 태연은 자신의 왼팔을 붙잡는 유리를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유리가 미안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미안, 태연아!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

“유, 유리야! 네가 어떻게… 수, 순규야 날 도와줘!”

태연의 외침에 싱긋 웃음을 지으며 태연에게 다가오는 순규. 의리없는 유리와 달리 순규는 의리란 것이 있었다. 평소 멤버들 중에서 키가 작은 고통을 함께 하던 사이였기에 자신의 도움 요청을 거절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순규가 태연에게 다가와 한 행동은 그녀의 오른팔을 붙잡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순규를 바라보니 그녀가 미소를 짓는다.

“도와줄게, 태연아. 네 방까지 가는 걸.”

태연의 얼굴에 절망이 드리워진다.

그녀는 분개한 나머지 소리를 빽빽 지른다.

“야! 권유리! 이순규! 너희가 어째서 날… 읍읍!”

소리치던 태연은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어느새 양손이 자유로워진 수연이 태연의 입을 막아버린 것이다.

그리고 유리와 순규에게 눈짓을 한다.

“연행해.”

수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태연을 옮기는 두 소녀.

이미 수연의 승낙을 얻은 순간 떡밥은 모두 사라졌다는 것을 모르는 태연이었다.

결국 숙소로 끌려간 태연은 수연에 의하여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위 스펙을 가진 태연은 이렇다 할 저항도 못한 채 침몰하였고, 수연은 반동분자 태연을 잔혹하게 진압함으로써 소녀시대 먹이사슬 최상위에 위치함을 다시 한 번 숙소 내에 널리 알릴 수 있었다.


일주일은 빠르게 흘러갔다.

토요일 열한 시인 지금 창현은 무척 황당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바로 약속 장소에 나온 사람들을 보고 나서이다.

“안녕, 창현아!”

창현은 자신을 향해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드는 유리를 보고는 기괴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아?”

창현은 수연에게 시선을 주었다.

수연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창현에게 양손을 모았다.

“미안, 창현아. 들켜버렸어.”

그 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안 들켰다면 오늘도 혼자 나왔을 테니 말이다.

“그런 것 같네요. 어떻게 들킨 거예요?”

“그건 수연이가 우리 가족이기 때문이야.”

태연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얼마 전 창현이 과거의 트라우마에게서 구함을 받은 탓일까? 태연의 어조는 다른 때처럼 통통 튀는 게 아닌 사근사근했다.

창현이 살짝 고개를 갸웃하자 태연이 설명을 덧붙였다.

“몇 년 동안 함께 연습해왔기에 우리는 모두 가족처럼 생각해. 창현이 너도 알겠지만 요 이주 전에 수연이가 무척 우울해 했거든.”

“그건 저도 알아요.”

직접 보고 위로까지 해줬으니 모를 리가 없다. 그리고… 달콤한 보답도 받았었지.

그때 일이 떠올라서인지 창현의 표정이 살짝 상기된다. 창현의 표정을 살피고 있던 수연도 얼굴이 화끈해지는 걸 느끼고는 고개를 살며시 돌린다.

그걸 모르는 태연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는 갑자기 기운을 차린 수연이를 보고 의아함을 느꼈지. 그래서 미안하지만 미행을 좀 했어. 그리고 너랑 수연이랑 만난 것을 본 거지.”

태연의 말에 창현의 눈이 게슴츠레 변했다.

“어째 누나는 매번 미행을 하는 것 같네요. 주현 누나와의 일 때도 그렇고…….”

창현의 말에 태연의 얼굴이 붉어졌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미행한 걸 들켰으니 창현이 그런 반응을 보일 만도 하였다.

그걸 부인이라도 하듯 태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쨌든! 우린 수연이랑 같이 있는 너를 볼 수 있었어. 그래서 수연이랑 이야기를 하고, 오늘 이렇게 나오게 된 거야.”

“그렇게 되었군요. 음! 확실히 미행은 잘못 되었지만 수연 누나를 위한다는 대목이 마음에 드네요. 정말 가족 같은 것 같아서 부러워요.”

창현의 말에 유리와 순규의 입에 미소가 떠올랐고, 수연도 마찬가지였다.

태연도 입가에 미소를 띠더니, 갑자기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이제부터 본론이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 창현이 네가 수연이의 보컬 트레이닝을 도와주고 윤아랑 주현이에게도 도움을 줬다고 하던데… 진짜야?”

그녀는 무척 조심스러웠다. 어떠한 방면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의 자존심이 무척 높듯이, 창현은 국내 대형 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 일류 보컬 트레이너조차 인정한 초일류 실력을 지닌 보컬 트레이너였다. 어찌 보면 예민한 부분일 수도 있었기에 물어보는 그녀의 태도는 극도로 소심했다.

그런 태연의 모습에 창현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생각과 달리 창현은 별로 비밀로 여기는 일이 아니었다.

“네. 맞아요. 제가 부족하지만 도움을 조금 드렸어요. 그런데 그건 왜요?”

너무나 쉽게 인정하는 창현의 모습에 도리어 태연이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그, 그래? 그렇구나. 흠흠! 그래서 말인데… 혹시…….”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우물쭈물하는 태연.

그 모습만 봐도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창현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혹시 누나들도 보컬 트레이닝을 도와 달라는 그런 이야기인가요?”

“응? 아, 으응. 그 이야기야…….”

너무나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는 자신과 달리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창현의 모습에 당황한 모습을 보이는 태연.

그에 창현이 짐짓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으음! 이거 조금 곤란한데요.”

“역시 그렇지……?”

창현의 말에 축 늘어지는 태연. 그 모습을 보면서 창현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부정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실제로 그에게는 곤란한 것은 없었다. 다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너무 쉽게 승낙하면 자신의 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어서 그러는 것이다.

사람의 성격이란 것은 교활하여서, 아무리 대단한 것이라도 서슴없이 내놓으면 그 다음에는 더 큰 것을 원하게 된다.

그 정도 이치쯤은 창현도 알고 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창현의 보컬 트레이닝 수준은 대단한 것일 것이다. 어찌 보면 창현의 수법은 고대에 잊혀진 수법이니까. 창현은 그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꾸준한 연습을 쌓아온 사람이라면 한단계 도약을 꿈꿀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것은 오로지 창현에 의해서만 나올 수 있고, 그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자신만의 것인 만큼 창현은 너무 쉽게 베풀 생각은 없었다. 물론 지금은 달랐다. 수연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소녀들의 모습에 조금은 감동했으니 말이다. 다만 너무 쉽게 베풀 의사가 없음을 알리기 위해 튕겨본 것이다.

네 소녀 중에서 그래도 가장 여유가 있는 수연은 창현이 그리 싫어하는 기색만을 보이지 않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창현에게 말했다.

“어떻게 안 될까, 창현아? 맨입으로 가르쳐달라고 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지, 얘들아?”

“응! 물론이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태연의 모습에 창현은 피식 웃었다.

“좋아요. 대신 다른 사람들한테 비밀로 해주셔야 하고요. 나중에 제 부탁 하나를 들어주시면 저도 도와드릴게요, 어때요?”

의외의 말이었다. 창현이 돈을 바라는 게 아니라는 건 어렴풋 알았지만 그에 준하는 걸 원할 줄 알았는데 너무나 간단한 요구에 오히려 그녀들이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창현은 그런 태연의 표정을 보면서 말했다.

“이거 설마… 누나는 제가 돈이나 그런 걸 바랄 줄 안 거예요? 그럼 실망이에요.”

섭섭함이 가득 담긴 창현의 말에 태연이 외쳤다.

“아, 아니야! 너무 요구 조건이 간단해서 그런 거였어. 정말 그거면 되는 거야?”

“뭐, 더 해주고 싶으면 저야 상관없죠.”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는 창현의 모습에 태연이 말한다.

“그럼 이걸로 계약 성립! 앞으로 잘 부탁해, 선생.”

태연이 모든 협상을 끝내자, 유리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나도 잘 부탁해, 선생!”

“이것이! 어디서 지분 넣으려고 하는 거야!”

“흥! 원래 세상은 그런 거야.”

갑작스러운 유리의 난입에 태연이 분노를 뿜어냈고, 두 사람의 치열한 신경전이 전개되었다. 스펙은 부족하지만 분노 상태에 빠진 태연은 능히 유리와 견주어도 밀리지 않았다.

두 사람의 대치에 창현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저기… 누나들? 소개 좀 시켜주었으면 하는데…….”

창현이 바라보는 곳에는 순규가 엉거주춤 서 있었다.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태연과 유리는 대치 상태를 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수연은 혀를 차더니 순규를 소개시켜주었다.

“이쪽은 이순규. 우리 멤버 중 한 사람이야. 나이는 열여덟 살이고.”

창현의 눈에 놀라움이 서린다.

“열여덟 살이요? 저랑 동갑인… 이크!”

말을 하던 창현은 머리로 스쳐가는 데자뷰에 져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태연을 슬쩍 바라보자 그녀는 첫 만남 때가 떠오른 듯, 기광을 번뜩이며 창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색하게 미소를 지은 창현이 순규에게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주현 누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강창현입니다. 저보다 세 살 많으니 편하게 대해주세요. 저도 누나라고 부를게요.”

조금 튕기던 때와 달리 싹싹한 모습이었다.

순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내 예명은 써니라고 해. 원래라면 예명으로 부르게 하겠지만 편하게 순규 누나라고 불러줘. 앞으로 잘 부탁해.”

‘써니?’

순간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느낌에 창현이 살짝 의아해하다가 웃는다.

“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순규 누나.”

친화력이 좋은 창현과 순규가 친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창현은 순규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누나도 스타크래프트 자주 해요? 저도 자주 하는 편인데.”

“정말? 나도 연습 때문에 많이 하지는 못하지만 자주하거든. 언제 한 번 같이 할까?”

순규의 게임 신청에 창현이 미소를 지었다.

“훗! 제가 이래보여도 아마추어 사이에서는 꽤 세다고요.”

“흥! 나도 우리 길드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실력이라고.”

이야기는 어느덧 게임 이야기로 접어들었고, 창현과 순규는 언제 한 번 게임을 해보기로 약속하며 이야기를 끝낼 수 있었다.

우선 세 소녀의 수준을 가늠하기 위해 그들은 노래방으로 향하였고, 그녀들의 실력과 상태를 판단하여 적절한 조언을 해주었다. 그리고 같이 점심을 먹었다.

이날 창현은 문자로 종종 이야기 하곤 했던 유리와 무척 친해질 수 있었고, 게임이라는 공통적인 관심사 속에 순규와 놀라울 정도의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제18장 아사미 유키의 내한 방문, 충격의 정모




한가한 일요일.

순규는 오늘도 머리를 부여잡은 채 전략전술을 짜느라 여념이 없었다.

“도대체 왜 내가 못 이기는 거지.”

게임 아이디 DarkSword. 상대 저그에게 있어 사신의 프로토스라 불리며, 테란에게는 지옥의 프로토스, 같은 프로토스에게는 악몽의 프로토스라 불리는 유저다.

순규는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즐기는 평범한 유저다. 다만 승부욕이 상당했고, 그 승부욕을 충족시킬 만한 실력을 지니고 있다.

배틀넷에서 난다 긴다 하는 유저들과 게임을 해보았고, 이길 때도 질 때도 있지만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접전을 벌일 수 있었기에 그녀는 만족하였다. 진정으로 박진감 넘치는 게임은 비록 패배하더라도 분하기보다는 상쾌한 기분이 드니까.

하지만 DarkSword란 유저와 게임을 한 뒤 그녀는 변했다.

그저 게임을 즐기는 것으로, 기왕이면 이기는 방향으로 께임 방향을 추구하던 그녀가 오로지 DarkSword란 유저를 꺾기 위해 게임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따금 올라오는 DarkSword의 리플레이를 구해서 보고, 그녀가 간혹 DarkSword와 게임을 하게 되면 그 게임을 저장하여 반드시 다시 보고는 한다. 그리고 DarkSword의 게임 빌드와 스타일, 타이밍 등을 꼼꼼하게 체크하였다.

하지만 상당 기간 동안 게임을 해온 그녀는 몇 개의 리플레이를 보고 깨달을 수 있었다. DarkSword는 리플레이를 보고 공략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란 것을 말이다.

DarkSword는 철저하게 상대방에 맞춰 게임에 임한다. 절대로 도박성 플레이를 하지 않으며, 상대방이 도박성 플레이를 하면 과감하게, 무난하게 플레이를 하면 같이 무난하게 게임을 하여 순수한 실력전을 벌인다. 놀라울 정도로 대단한 반사신경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녀를 놀랍게 한 것은 탁월한 게임 센스였다.

세상의 어떤 일이든 간에 무엇이든 재능을 타고나야 한다.

노력이란 말이 있지만 억지로 하는 노력이 아닌 즐기기 위한 노력은 그 누구도 쫓을 수 없다. 하지만 즐기기 위해서는 적성과 재능을 타고나야 하는데, 순규가 본 DarkSword는 그 방면에서 타고났다. 얼핏 보면 놓칠 만한 그의 세심한 플레이 하나하나가 보이지 않는 실처럼 상대를 조종한다.

이것은 누가 가르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타고 나서 완벽에 가깝게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을 창조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랬기에 순규가 분해하는 것이다. 웬만한 수준의 고수라면 그냥 치고박고 하다가 패했다고 여기겠지만 그녀는 뛰어난 고수였고,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화끈하게 치고 박고 싸우다가 졌지만 그것이 모두 상대방이 조종했다는 걸 안다면? 그 이상의 치욕은 없다.

“으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창현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이후, 순규는 현실에서의 슬럼프를 말끔하게 청산했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창현의 지도는 놀라워서, 왜 그가 초일류 보컬 트레이닝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슬럼프를 극복하다 못해 전보다 더 나은 노래 전개에 보컬 트레이너 선생들이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말이다.

“현실은 탄탄대로인데 어째서 게임에서는 이러는 거야.”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뜨리며 그녀가 투덜거린다.

현재 그녀와 DarkSword간의 상대전적은 7전 0승 7패. 승률 제로다. 아무리 용을 써도 이겨본 적이 없다.

DarkSword와 처음 게임을 한 게 꽤 오랜 시간이 된 걸 감안하면 상대전적이 얼마 안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순규가 매일 밤 위주로 접속을 한다는 점이고, 다른 이유는 DarkSword가 워낙 불규칙하게 접속을 한다는 점에 있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종일 붙잡고 도전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오늘도 그녀가 게임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길드 마스터에게서 귓속말이 날아왔다.

<From:TTa)SpiriT>:써니야, 게임 중?

평소 자신이 게임 중이면 귓속말을 잘 하지 않던 길드 마스터였기에 순규는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To:TTa)SunNy>:네, 게임 중이에요. 다 끝났지만요. 왜요?

그녀의 대답에 길드 마스터가 말했다.

<From:TTa)SpiriT>:나 다음 달에 군대 가는 거 알지? 그래서 길드 내에서 간략하게 정모를 하고 싶다고 해서. 서울 사는 길드원들에게 말하는 중이거든.

그러고 보니 길드 마스터가 스물두 살이어서 다음 달에 군대를 간다고 했지. 길드 마스터도 다른 사람으로 바뀌고 길드 내에 한동안 개편이 이루어질 거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무려 반년동안 있어온 길드였기에 상당한 친분을 쌓은 상태였다. 순규는 길드 마스터의 말에 대답했다.

<To:TTa)SunNy>:장소랑 날짜 좀 말씀해주시겠어요?

<From:TTa)SpiriT>:장소는 신림 근처로 할 생각이야. 점심 간단하게 해결하고 노래방에서 소화시킨 뒤에 피시방 가서 스타 좀 하다가 저녁 먹고 헤어지려고 하거든. 정모는 이번주 일요일 날 하려고 생각 중이야.

다음주도 아니고 이번주라면 상당히 고민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평일에는 연습에 몰두해야 하고, 토요일은 보컬 트레이닝을 받아야 하니 말이다. 일요일은 물론 쉬긴 하지만 마음의 준비가 조금 필요하다고 할까?

정모에 참석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을 때, 그녀의 눈을 번뜩이게 하는 길드 마스터의 말이 이어졌다.

<From:TTa)SpiriT>:아참! 이번 정모에 DarkSword도 오라고 할 생각이거든. 너 DarkSword 본 적 없지?

그 말을 본 순규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뭐, 뭣? DarkSword가 온다고?”

길드 정모인 만큼 그것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순규는 DarkSword가 정모에 참석한다는 말에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 게 느껴졌다.

그것은 설렘이었다. 자신을 압도적하는 실력을 갖춘 엄청난 실력자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 그것은 선망의 감정과 비슷하였다.

DarkSword의 참석 소식은 순규가 결단을 내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녀는 곧장 결정을 내리고 대답했다.

<To:TTa)SunNy>:DarkSword가 온다면 저도 반드시 갈 거예요! 장소랑 시간 정하면 말해주세요.

순규가 고민하는 듯 싶어 날린 떡밥이 주효한 순간이었다.

<From:TTa)SpiriT>:크크! 호되게 당했으니 오죽할까. 그런데 넌 막상 DarkSword 얼굴 보면 못 때린다. 이건 내가 백프로 장담한다.

순규는 뜨끔했다. 때릴 생각은 아니었지만 게임에서 자신을 농락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이었는데 그걸 꿰뚫고 있던 것이다.

<To:TTa)SunNy>:제가 왜 때려요! 어린 나이인데 정말 잘해서 한 번 꼭 보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From:TTa)SpiriT>:그렇다고 쳐주마. 자세한 날짜는 내일 공지하마. 일요일까지 실력을 벼려놔야지 주먹을 벼려놓지 말아라, 써니야.

길드 마스터의 웃음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순규는 길드 마스터의 말에 더 대답하지 않고 눈을 빛냈다.

그녀의 눈에는 일요일날 만나게 될 DarkSword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순규의 입가에 웃음이 맺히고 있었다.


11월 중순, 마침내 일은 터지고야 말았다.

100만장 돌파! 마침내 국내 음반 시장에서 꿈같은 수치가 달성된 것이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현玄이다. 그의 정규 1집 앨범이 마침내 꿈의 수치라는 백만 장을 돌파한 것이다.

경악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십만 장도 넘기 힘든 이 시기에 백만 장이라는 판매고를 이룩하다니.

연예 언론에서는 가수 현의 백만 장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전에도 언급했다시피 시장 자체가 살아났다는 것은 사람들의 문화 활동이 활발해졌다는 뜻이 된다. 즉, 경제가 어느 정도 살아났다는 것을 눈 가리고 아웅식이지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백만 장이란 판매는 엄청난 폭풍을 동반하였다. 음반을 구매하기 위해 매장을 가고, 여러 노래를 들음으로써 알게 모르게 음반 시장의 활력을 불어다 넣어줘 조금씩 판매가 늘고 있는 추세였던 것이다.

이쯤 되자 사람들의 관심은 다시 폭주하기 시작하였다. 도대체 현이 언제 데뷔할지에 대해 관심을 모으고 있던 것이다.

라샤의 미란이 내년 초에 데뷔한다는 말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확신이 담기지 않은 말이었고, 무엇보다 AA엔터테인먼트에서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았다. 미란의 언급은 당시 수많은 기삿거리를 낳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양가 없는 기사일 뿐, 언제든지 늦춰질 수 있다는 일말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었다.

그러니 방송사나 연예 언론에서는 가수 현의 행보에 대해 촉감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 현의 인기는 최정상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현재 현의 앨범을 정식 발매한 곳은 한국과 일본 두곳인데,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그리고 심지어 미국까지 현의 앨범 판매를 위한 수출로를 개척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즉, 한국 내에서 백만 장을 판매하였지만 전세계로 따지면 더욱 많다는 이야기였다.

파워풀한 현의 첫 앨범인 <Go&Stop>에서 그의 가창력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끊임없이 현의 노래를 원하였고, 정규 1집 앨범을 구매하면서 다채로운 음악을 소화해내는 현의 열성팬이 되었다.

그런 만큼 그가 본격적으로 데뷔를 하게 될 경우 그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하게 될 것임이 분명하였다.

물론 신비주의를 표방하는 가수들 중 상당수가 비주얼이 떨어져 데뷔 이후 오히려 인기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으나 현은 외모 또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그의 얼굴을 본 극소수의 사람은 최고라고 치켜세우길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AA엔터테인먼트 사장 강석규는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백만 장을 돌파함으로써 다시 한 번 거대하게 타오르는 현의 불길을 더욱 크게 만들기 위해 그 위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바로 현의 본격적인 데뷔 계획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이다.

구체적인 시기는 보도하지 않았지만 라샤의 미란이 언급한 것처럼 내년 초중순부터 얼굴을 드러내고 본격적인 활동을 할 것이라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러자 이렇다 할 기사거리가 없던 연예계 뉴스에서는 며칠 동안 현의 데뷔 소식을 가지고 뜨거운 논란을 일으킬 정도였다.

그러던 차에 한 가지 폭풍이 한국을 강타한다.

바로 일본 오리콘 차트 위클리 7주 1위라는 말도 안 되는 기록을 세운 천상의 목소리 아사미 유키가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데뷔 전부터 천상의 목소리라 불리며 수많은 팬층을 거느리던 아사미 유키는 현의 곡과 프로듀싱을 받으면서 일약 일본 정상에 군림하는 가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특히 그녀는 데뷔가 채 세 달도 되지 않았지만 한국에 엄청난 팬층을 거느리고 있었다. 바로 가수 현의 팬들이 작곡과 프로듀싱을 담당한 아사미 유키에 대한 호기심이 그녀의 인기로 승화된 경우였다. 데뷔가 막 세 달이 되어가고, 한국에 활동을 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한국 팬 카페 회원은 무려 오만 명에 달할 정도였다. 그리고 흩어져 있는 팬은 그의 곱절이 넘었다.

일본에서 음반 활동을 접은 그녀는 한국에도 자신의 팬이 있다는 말에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무엇보다 화제가 되었던 것은 그녀의 발언이었다.

자신에게 세상의 빛을 찾아준 가수 현이 보고 싶다고.

톱 스타인 그녀의 말은 엄청난 화제를 낳았고, 가수 현과 아사미 유키가 연인 관계가 아니냐는 추측성 기사가 나올 정도로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창현은 아사미 유키의 내한 방문 소식을 보고는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냥 방문하겠다고 하면 되지, 왜 거기서 나를 언급한 거야. 하아! 유키는 여전하군.”

아사미 유키의 나이는 이제 열여덟. 창현은 열다섯 살이지만 함께 녹음을 하면서 그들은 친해졌고, 누나와 동생 사이라기보다는 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다. 아사미 유키도 그것을 원했다.

문제는 아사미 유키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그녀는 청순가련한 외모와 달리 무척 적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평소에는 무척 얌전한데 이상하게 창현을 볼 때마다 그에게 달려들어 스킨쉽을 취하려 하는 것이다.

창현은 그런 아사미 유키가 부담스러웠다. 분명 나쁘지는 않은데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이나 행동이 창현으로 하여금 알게 모르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것 참! 스캔들에 가까운 기사가 나왔는데도 아버지는 오히려 좋아하고 있으니.”

이런 점에서 보면 석규는 참 웃겼다. 기획사 사장이라면 소속 연예인의 스캔들을 어떻게든 무마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껄껄껄 하고 웃으면서 열다섯 살 된 놈이 벌써부터 며느리 후보들을 양산하고 있냐면서 놀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석규의 모습에 창현은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해버린지 오래였다.

“그나저나 내 데뷔 시기를 공식적으로 발표했으니 이제는 빼도박도 못하겠군.”

창현은 AA엔터테인먼트에서 자신의 데뷔 시기를 공식 발표한 것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언론에 발표한 이상 더 이상 뒤로 빼는 것은 어려웠다.

어찌 보면 아직 완벽하게 창현의 결심이 굳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는 AA엔터테인먼트의 발표가 만족스러웠다. 약간 수동적인 면이 있는 창현으로서는 자신의 결심이 확실하지 않을 때 주변에서 반강제적으로 그런 분위기를 조성해주면 어떻게든 결심을 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대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창현은 머리를 움켜쥐었다.

“으! 그러고 보니 유키가 한국에 오면 어떻게 하지? 분명 아버지 회사로 와서 날 찾을 텐데.”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고민이었다. 볼 때마다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보여주니 창현으로서는 가급적 아사미 유키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 일이 자기 마음대로 되는가? 쟈니스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여성 아이돌인 만큼 아사미 유키의 가치는 AA엔터테인먼트에서도 무척 높았다. 자신이 싫다고 해도 작곡가로서, 프로듀서로서 반드시 만날 일이 생긴다.

창현이 이런저런 고민에 잠겨있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번호를 본 창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 형이 왜 지금 전화를……?”

고개를 갸웃하면서 전화를 받는 창현. 전화 온 사람은 박해민이란 형으로, 올해 스물두 살이며 창현과 스타크래프트 배틀넷에서 무척 친한 형 중 하나였다. 배틀넷 아이디는 TTa)SpiriT이란 아이디를 쓴다.

“여보세요? 아, 해민이 형. 왜 전화하신 거예요? 헉! 형 벌써 군대 갈 시기가 되었어요? 이번주 일요일이요? 당연히 되죠. 그런데 길드 정모라면서 제가 가도 되나요? 아! 그럼 다행이네요. 장소는요? 신림역이요. 네 알겠어요. 그럼 그때 만나요. 네.”

전화를 끊은 창현은 머리를 빠르게 회전 시킨다.

내일이 토요일이니 보컬 트레이닝을 도와준 뒤 하루를 보내고 일요일 날 참석하면 된다. 아무런 약속도 없으니 참가가 가능하다.

일정을 계산해보던 창현은 고개를 갸웃한다. 그러고 보니 누가 참석하는지 안 물어본 것이다. 하지만 창현은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누가 참석하는 지 물어볼 걸 그랬나.”

만약 정모에 써니가 참석한다는 말을 들었다면 창현은 정모 참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봤을지도 모른다. 배틀넷에서 함께 게임을 하면서 써니는 늘 창현에게 으르렁하면서 장난으로 현실에서 볼 때 각오하라는 말을 종종하곤 하였기 때문이다.

그걸 모르고 있는 창현은 오랜만에 아는 형을 만난다는 사실에 조금 들떠 있었다.


정모 약속이 잡힌 그날 밤, 창현은 석규의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황당한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뭐라고요? 일요일에 잠시 들리라고요? 왜요?”

황당함이 가득 담긴 창현. 그도 그럴 것이 일요일에 약속을 잡아놨는데 갑자기 기획사로 오라니?

창현은 당연히 거절했다.

“저 이번 주에 약속 있어요. 그러니 못 나가요.”

그러자 건너편에서 석규의 난감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일요일에 아사미 유키가 오기로 했단 말이다. 일정 자체가 타이트해서 일요일 밖에 만날 시간이 없어. 우리 회사를 구경하고 점심 식사를 할 예정인데 어떻게 안 되겠냐?

“약속이 점심 시간부터인데…….”

아사미 유키가 언급되자 창현도 난감해졌다. 그녀가 온다면 당연히 사업적인 이야기가 함께 할 것임이 분명했다. 거기에 자신 또한 연관 되어 있을 게 분명하고, 그럼 반드시 참가해야 함이 옳다.

창현의 음성에 갈등이 섞이자 석규가 말한다.

-그럼 아침에 미팅을 하고 점심 식사를 한 뒤 헤어지는 것이 어떠냐? 네 약속은 조금 늦추고 말이다.

“으음!”

창현은 고민에 빠졌다. 확실히 아사미 유키가 오는 만큼 안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가 분명 자신의 참석을 바라고 있을 테니 말이다.

‘어쩔 수 없잖아.’

한동안 고민하던 창현은 결정을 내렸다. 이미 정해진 결말이었다.

“알았어요. 그럼 약속 있는 거 좀 늦도록 하죠. 대신 점심식사 하고 바로 갈 거예요.”

창현의 승낙이 떨어지자 석규가 한결 밝아진 목소리로 말한다.

-알았다. 그렇게 하마.

그렇게 통화가 끝났고, 핸드폰을 바라보는 창현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유키가 이래저래 날 곤란하게 만드네.”

물론 이번 일은 사업적인 것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아사미 유키를 만나는 것은 창현에게 상당히 부담되는 일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창현은 머리를 부여잡는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다시 펼쳐든다.

“늦는다고 말해야겠지.”

그리 하여 창현의 정모 합류는 조금 늦춰지게 되었다.


창현에게 있어 매주 토요일은 어느덧 보컬 트레이닝을 시켜주는 날이 되었다.

오후 열한 시에 소녀시대 아홉 명의 멤버 중 네 사람하고 만나 근처 노래방으로 가서 보컬 트레이닝을 하고는 하는데, 약 두 시간 동안 보컬 트레이닝을 한 뒤 점심을 먹고 헤어진다.

소녀들은 전부 창현보다 세 살 많았지만 보컬 트레이닝을 시켜준다고 하여 선생이라 불리는데, 창현의 성을 더해서 강선생이라고 하는데 선생님으로 부르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고 왠지 놀리는 느낌이 물씬 풍기곤 하였다.

보컬 트레이닝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창현은 간단한 곡 구상과 게임, 애니메이션 감상 등으로 하루를 보내고 마침내 일요일이 되었다.

일요일 아침, 창현은 일찍 일어났다. 보통 창현은 명상을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고는 하는데,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평소보다 더욱 일찍 일어났다.

화장실로 가서 간단하게 씻은 창현은 어제 미리 골라둔 옷을 입고는 곧장 나갈 채비를 한다. 어제 아사미 유키가 한국에 방문하여 대대적으로 인터뷰를 하고 호텔에서 머문 다음 아침 일찍 AA엔터테인먼트에 방문하기로 약속을 잡아놓은 것이다.

준비를 마치고 슬쩍 시간을 보니 열시다. 열한 시까지 기획사로 가기로 했으니 늦지 않으리라.

“에이! 설마 일본에서 회사 사람들도 같이 왔을 텐데 그러진 않겠지.”

스스로 위로를 하며 집을 나선다. 아사미 유키가 자신에게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을 때는 단둘이 있을 때였으니까 회사 사람들도 있고, 라샤도 함께 할 텐데 설마 그러지 않겠지.

그렇게 좋게 생각하며 집을 나선 창현이 기획사로 향한다.

그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을 때, 창현은 막 들어서는 세 사람을 보고 소리친다.

“엇! 누나들!”

창현의 목소리를 들은 세 여인이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창현이 오랜만이네.”

“녹음 끝났다고 바로 사라지고, 들리지도 않아.”

“흥! 자기가 프로듀싱 해놓고 아주 나 몰라라 하더니 여기서 보게 되는군.”

세 여인의 정체는 다름 아닌 라샤였다.

그녀들은 바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향후 일본 일정에 논의하기 위해 오늘 참석한 것이다.

창현은 그런 누나들의 반응에 웃음을 지었다.

“하하! 미안해요. 이래저래 놀다 보니 시간이 후다닥 지나더라고요.”

웃으면서 용서를 비는 창현의 모습이 얄미워서일까.

미란이 창현을 보며 말했다.

“흥! 우리 1위 한 것은 알고나 있나요, 작곡가님?”

“아마 모르고 있을 걸?”

옆에서 그는 세룬. 그러면서 창현을 보는데, 확신이 가득했다.

“설마 아무리 관심이 없다고 해도 창현이가 모를까…….”

그러면서 힐끔 창현을 보는 시린. 하지만 그녀의 눈에도 별로 믿음이 별로 들어있지 않았다.

‘어, 언제 1위를 한 거지?’

창현은 당황했다. 요즘 TV에 신경을 쓰지 않다보니 감감 무소식이었던 것이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본 탓인지 라샤의 눈빛 공격이 한층 더 거세어진다. 창현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미, 미안해요.”

창현의 반응에 라샤는 경악한다.

“너, 정말로!”

“설마! 진짜로 모를 줄이야.”

“일단 약속 시간이 되었으니 올라가자. 창현이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 하도록 하고.”

평소 사근사근하던 시린이 창현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한다.

죄가 들통 난 창현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는 우울한 표정으로 뒤를 따른다.

네 사람은 곧장 사장실로 직행하였다.

사장실이 보이기 시작하자 갑자기 미란과 세룬이 빠르게 달려간다.

그리곤 사장실을 벌컥 열며 외쳤다.

“사장님 저희 왔어요!”

“맛있는 점심 기대할게요! 아?”

활기차게 외치던 그녀들은 순간 멈칫한다. 사장실에 석규 말고 다른 사람들도 있던 것이다.

석규의 맞은 편에는 한 명의 중년인과 한 명의 소녀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중 중년인이 라샤를 보며 미소를 지으며 일본어로 말했다.

“언제나 활기차군. 오랜만이네, 미란, 세룬.”

미란과 세룬의 눈에도 반가움이 서렸다. 눈앞에 중년인은 그녀들이 일본 활동 때 많은 도움을 받았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나다 부장님!”

“언제 한국에 오신 거예요?”

중년인, 쟈니스의 영업부장인 사나다 료이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하하! 어제 왔지. 여기 아사미 양을 따라서 말이네. 아사미 양, 인사하게, 이 두 아름다운 여인은 라샤의 미란과 세룬이라고 한다네.”

사나다 료이치의 소개에 소녀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흰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무척 청순하고 고귀한 분위기를 흘리고 있어 마치 일국의 공주님과도 같았다.

아사미 유키는 두 사람을 향해 인사를 하였다. 어눌하지만 한국어였다.

“안녕하세요, 미란님, 세룬님. 아사미 유키라고 합니다.”

뒤따라 들어온 시린이 인사하는 아사미 유키를 보며 눈을 빛냈다.

“아사미 유키라면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그래. 그 아사미 양이지. 한국에 앨범 PR을 하고, 라샤와 가수 현의 활동을 의논하기 위해 왔지. 오! 마침 현군도 있었군.”

시린을 따라 들어온 창현이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사나다 부장님? 그리고…….”

창현의 시선이 아사미 유키에게 향했다.

그녀의 눈이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창현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하였다.

“오랜만이야, 유키.”

“현… 현!”

한차례 외침과 함께 창현에게 달려오는 유키.

그녀는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그대로 창현에게 몸을 날려 그의 품에 안겼다.

“……!”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경악한 표정을 짓는다./

“뭐, 뭐하는 거야, 지금!”

가장 먼저 소리친 것은 시린이었다.

평소 라샤 멤버 중에서 가장 조용한 성격을 지녔지만 한 번 화나면 가장 무서운 것이 그녀였다.

그녀는 창현을 보면서 말했다.

“강창현! 언제까지 안고 있을 거야. 어서 놔!”

목소리가 높지 않고 무척 낮았다. 하지만 그것이 무척 위협적이었다.

창현은 이런 시린의 모습이 처음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아사미 유키를 떼어놓았다.

그녀는 창현과 떨이지지 않으려 했지만 여성이 남성의 힘을 이길 수 없는 노릇. 창현의 품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아쉬운 표정을 짓고 창현을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매정하게 대하는 거야?”

“여긴 공적인 자리잖아.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고.”

이야기를 하는 창현의 표정이 무척 어색했다. 그도 그럴 것이 슬픈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사미 유키의 표정은 아찔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창현이 이성관계에 관해서 눈치가 없다고 하여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호감을 드러내면 눈치 챌 수밖에 없다.

그런 창현을 구원한 것은 시린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듯, 딱딱한 목소리로 아사미 유키에게 말했다.

“아사미 양, 지금 이곳은 사업상 이야기를 나누는 곳입니다. 당신이 일본을 강타하는 톱 가수인 이상 행동거지에 신경을 써주세요.”

시린의 차가운 말에 아사미 유키는 창현을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알겠어요.”

그 말과 함께 뒤로 물러나는 아사미 유키. 한동안 사무실에는 냉랭한 기운이 흘렀다.

이 분위기를 타개한 것은 석규였다.

그는 웬만한 바람둥이 저리가라 할 정도로 여성들의 사랑을 받는 창현을 보며 웃음을 짓다가 사태 완화를 위해 나섰다.

“자자, 심각한 분위기는 이쯤으로 하고 회의실로 자리를 옮기지요. 사나다 부장님도 정신 차리십시오.”

석규의 말에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사나다 료이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는 지금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아사미 유키가 한국에 가고 싶다고 하면서 현, 현하고 노래를 부를 때만 해도 그의 팬이거나 단순한 호감을 가지고 있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자신의 생각을 월등히 뛰어넘고 있었다.

사나다 료이치는 회의실로 가면서 생각이 점차 복잡해졌다.

‘허, 큰일이군. 회장님이 아신다면 분명 사단이 일어날 텐데.’

쟈니스는 일본 정상을 다투는 기획사인 만큼 소속 연예인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룰이 있다.

그중 가장 엄격한 것이 이성교제였다. 젊은 남자 아이돌인 만큼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그로 인하여 각종 스캔들이 생길 요소가 무척 풍부하여서이다.

그걸 모르는 쟈니 회장이 아니었고, 회사를 위해서, 소속 연예인들을 위해서 스캔들이 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를 하도록 하였다. 이성관계에 있어서 내세운 방침은 화끈하게 공개를 하던가 아니면 아예 만나지 말던가였다. 이 말을 지키지 않으면 계약파기를 감행할 정도의 과단성을 보여주였다.

그래서 쟈니스 내에서 처음 여성 아이돌을 키우겠다고 할 때 많은 반대가 있었다. 연습생 시절부터 친분을 쌓게 되면 자칫 데뷔 후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서이다.

하지만 일본 제일의 기획사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한가지로만 나아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여성 아이돌 육성에 나서기 시작하였고, 그 첫타가 바로 라샤와 아사미 유키였다.

쟈니 회장은 놀라울 정도로 과단성이 있었기에 여성 아이돌 육성을 위해 아예 새로운 건물 하나를 인수하여 여성 연습생 전용으로 삼았다. 라샤와 아사미 유키도 그곳에서 활동을 하였기에 쟈니스 소속 남자 아이들과 TV프로그램에서나 몇 번 만나보았을 뿐, 사적으로 만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엄격한 곳이 쟈니스인데 지금 아사미 유키가 현에게 대하는 태도는 단순한 호감을 넘어선 것이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무척 심각한 일이다.

현은 얼굴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미 한국과 일본에서 정상에 군림하는 가수였다. 게다가 한국에 보도된 바와 같이 그가 내년 초에 데뷔를 하게 된다면 인기의 최절정에서 본격적인 데뷔를 갖게 된다는 말이 된다. 비주얼과 가창력 어디 하나 떨어지지 않는 그가 데뷔를 하게 되면 일약 톱 스타의 자리에 오를 것임이 분명했고, 그렇게 되면 아사미 유키와의 관계가 언젠가는 불거질 수밖에 없다.

톱 스타간의 스캔들.

기자들 입장에서 정말 군침 도는 기삿거리가 아닐 수 없다.

‘아사미에게 경고를 줘야겠군. 현은 회장님께서도 눈독들이고 있는 인물인데.’

이번에 한국으로 출장 오게 되면서 사나다 료이치가 쟈니 회장에게 받아오라는 계약 건수는 총 두 가지였다.

바로 아사미 유키 2집 앨범 곡과 현의 일본 활동 계약.

현의 특성상 프로듀싱까지는 못하더라도 그의 곡이 있다면 아사미 유키는 신예 가수에서 단숨에 최고의 가수까지 오를 수 있게 될 것이다.

괜히 다른 곡으로 모험을 하느니 검증된 현의 노래를 받아 아사미 유키의 인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곡비가 얼마나 되던 간에 반드시 계약을 채결하고 오라는 명령이 있었다.

그리고 현의 일본 진출 계약.

이것은 본래 AA엔터테인먼트에서 제의해야 하나 이미 현은 아시아 각국에서 러브 콜을 보낼 만한 위치에 선 가수였다. 몇몇 국가와 기획사에서는 데뷔 이후 현의 인기가 어떻게 바뀔지 몰라 고심하는 눈치였지만 이미 현을 눈으로 보고, 그의 인간 됨이 어떠한지 본 쟈니 회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현의 일본 진출을 쟈니스에서 하게 하라고 엄명을 내린 터였다.

‘아사미 일은 나중에 하고, 지금은 계약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 생각과 함께 사나다 료이치는 회의실에 자리를 잡음과 동시에 석규에게 말했다.

“사장님이라면 왜 저희가 찾아오신지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석규는 갑자기 본론을 꺼내는 사나다 료이치의 말에 눈을 빛내더니 입을 연다.

“짐작은 하고 있지만 확신은 할 수 없군요. 무엇인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영업의 기본은 자신의 속내를 먼저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특히 그것은 우위에 서 있는 입장에서 정석으로 통한다. 어차피 밀고 당기기가 되는 신경전에서 결국 불리한 입장에 선 작가 자신의 목적을 꺼내놓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시, 작은 기획사지만 현과 라샤를 키울 만한 사장이다.’

영업 능력이 뛰어나지만 받은 만큼 갚는 인물. 드물게 신의가 있는 인물이라고 쟈니 회장은 석규를 평했다.

이런 인물은 어찌 보면 쟈니 회장과 닮은 면이 있어서, 상대방을 어느 정도 배려해주는 면이 있다.

사나다 료이치는 석규의 말에 곧장 자신의 용건을 꺼내들었다.

“간단합니다. 저희 쟈니스에서는 아사미 양의 2집 앨범 곡을 모두 현군이 작곡해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현군이 공식데뷔를 할 경우 저희 쟈니스와 제휴를 맺어주셨으면 해서 이렇게 찾게 되었습니다.”

“곡과 계약을요? 흐음!”

석규가 눈을 빛내며 생각에 잠긴다. 제법 큰 계약건이었던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창현에게 시선을 준다. 두 계약건은 모두 그와 연관된 만큼 생각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창현이 네 생각은 어떠냐?”

그에 모든 시선이 창현에게 향한다. 특히 아사미 유키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창현을 빤하게 쳐다보았는데, 창현은 그런 시선에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유, 유키는 아무래도 뛰어난 노래 실력을 가졌으니… 제 곡으로 노래를 불러준다면 대 환영이죠. 그리고 일본 데뷔는… 아직 한국에서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으니 벌써부터 논하는 건 시기상조가 아닐까요.”

창현의 말에 아사미 유키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사실 쟈니스에서 현의 곡을 고집한 이유는 그녀가 졸라서이기도 하였다.

석규가 사나다 료이치를 보며 말했다.

“그렇다는데 어떠십니까? 우선 계약은 현의 곡에 관련된 것만 한 뒤 데뷔에 관한 것은 추후에 논의하는 것으로요.”

슬쩍 석규의 눈치를 보니 더 이상 얻어낼 것이 없어보였다.

쟈니 회장이 꼭 계약을 따오라고 했지만 안 되는 상황은 어쩔 수가 없다.

사나다 료이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곡 계약이라도 해서 다행입니다만 데뷔 계약은 못해서 무척 아쉽군요. 그럼 구두로라도 계약해주시지 않겠습니까? 현군이 데뷔를 하게 되고 일본 진출을 염두에 두게 되면 우리 쟈니스를 1순위로 생각해주겠다고 말입니다.”

초대형 기획사인 쟈니스에서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다.

석규는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하! 그건 저희가 오히려 부탁해야 할 일이지요. 이렇게 계약을 하게 되어 기쁘군요. 점심 식사는 제가 아는 유명한 곳으로 가야겠습니다. 한정식 괜찮으신지요?”

“한식 좋아합니다. 아사미 양도 한식 좋아하고요.”

“잘되었군요. 하하!”

석규가 구두로 약속을 해주자 사나다 료이치의 입에서도 미소가 맺혔고, 최고의 조건으로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점심식사를 하면서 자꾸 창현에게 달라붙는 아사미 유키의 존재로 인하여 때 아닌 라샤 멤버들의 레이저가 발사되긴 하였지만 전체적으로 평온한 점심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함께 있자는 아사미 유키의 말이 있었지만 그녀는 스케줄이 있었고, 창현은 약속이 있었다.

점심식사를 마친 창현은 곧장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약속시간이 한참이나 오버되어 있었다.


순규는 아침에 일어나 멤버들과 아침을 먹은 뒤 본격적으로 준비를 하였다. 오늘 DarkSword와 만난다는 생각에 그녀는 평소 보지 않았던 격투기 동영상을 보면서 몇가지 기술을 습득해놓은 상태였다.

태연과 더불어 소녀시대 멤버들 중 전투 스펙 최약체에 속하는 그녀였지만 태연과 달리 상당한 공격성을 띠고 있다. 비록 수연과 같이 타고난 얼음 레이저나 카리스마는 없었지만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그녀는 작은 체구에 강렬한 한방이 숨어 있었기에 멤버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이미 두 번의 미행 경험이 있는 태연과 호기심 많은 유리가 있었기에 순규는 행여 그녀들이 미행을 할까 싶어 사전에 차단을 결심했다.

아침식사 후 소다맛 뽕따를 쪽쪽 빨아먹으며 순규가 말했다.

“나 오늘 게임 길드 정모 가니까 따라 오지마. 특히 태연이 너!”

순규의 경고에 태연이 발끈하며 외친다.

“아씨! 나 지금 설거지 중인 거 안 보여? 가뜩이나 옆에서 아이스크림 쪽쪽 빠는 소리 때문에 거슬려 죽겠건만.”

“거슬린다면 더해줄게. 쪽쪽쪽!”

태연의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과하게 아이스크림을 빨아먹는 순규.

그에 태연이 발끈하며 거품이 잔뜩 묻은 고무장갑을 들며 순규에게 달려들었다.

“그냥 죽어랏! 이 배신자!”

“꺄악! 하지마! 아이스크림에 거품 들어간다고! 알았어, 안할게!”

어쨌든 성공적으로 태연을 봉쇄한 순규는 유리도 차단을 해놓은 뒤 시간에 맞춰 나갔다.

그녀가 사는 곳에서 신림까지 버스 타는 것과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약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약속 시간이 열두시인데 시계를 보니 십분 전이다. 적당한 시간에 도착한 셈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약속 장소로 향하자 그녀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배틀넷에서 TTa)SpiriT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길드 마스터였다.

이름은 박해민이라 하고, 비교적 나이가 어린 길드 마스터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통솔력으로 길드를 잘 이끌어가던 마스터였다. 순규가 길드에 가입한지 약 반년이 되었기에 이미 정모에서 두 차례 본 적이 있었다.

순규가 먼저 해민을 알아보고는 인사한다.

“스피릿 오빠, 오랜만이에요.”

해민도 순규를 알아보고 인사한다. 아무래도 게임에서 만난 사이다보니 본명보다는 아이디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어, 써니야, 오랜만이네.”

“그런데 스피릿 오빠만 온 거예요? 아, 토드 오빠랑 실버 언니도 오셨네요.”

인사를 하던 순규는 해민 뒤에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인사를 한다. 각각 게임에서 토드란 아이디와 실버란 아이디를 쓰는 길드원이었는데, 토드란 유저는 이십대 후반 남자였고, 실버란 아이디를 쓰는 사람은 이십대 초반의 여성 유저였다.

모두 한 번 이상씩 본 얼굴이었기에 반갑게 인사를 한 순규는 주변을 둘러보며 해민에게 묻는다.

“그런데 왜 그 녀석은 없어요?”

“그 녀석이라니?” 아…….“

순규의 물음에 주변을 둘러보며 의문을 표하던 해민이 막 말하려고 할 때 순규가 외쳤다.

“다크소드요! 오늘 나온다면서요! 왜 안나온 거죠?”

가수 지망생답게 목소리가 장난 아니게 컸다.

귀가 아픈지 해민이 인상을 찡그리며 순규에게 말했다.

“으이구! 누가 가수 연습생 아니랄까봐 엄청 소리 지르네.”

“빨리 제 물음에 답이나 해주세요. 다크소드를 만나서 꺾으려고 얼마나 제가 연습을 했는데…….”

“연습? 설마 내가 농담했던 것처럼 주먹을… 이크!”

순규의 무시무시한 눈길을 마주한 해민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달래듯이 말했다.

“실은 다크소드 녀석이 온다고 했다가 갑자기 사정이 생겼다고 하지 뭐냐? 그래서 조금 늦게 온다고 하더라. 한 두 시쯤에 온다고 했으니 우리가 점심 먹고 노래방에 가면 중간에 합류한다고 하더라.”

“그래요?”

사정이 생겼다는 부분에서 무척 심각한 표정을 지은 그녀였지만 합류한다는 말을 듣고 표정이 바뀐다. 절대로 격투기 동영상을 보고 익힌 기술들을 못 써먹게 되어 아쉬워했던 것이 아니다. 다만 며칠 동안 심력을 다하여 짜온 스타크래프트 전략을 못 써먹는 것이 아쉬워서 그랬던 것이다.

모이는 멤버는 다크소드까지 모두 다섯 명이었다.

순규가 마지막 오는 사람이었는지 해민은 사람들을 통솔하여 인근 부대찌개 집으로 향했다.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있으면서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곳이었다.

한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의 대화 주제는 당연히 스타크래프트 이야기였다.

현재 그들이 하는 배틀넷 서버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곳으로, 실력자들이 가장 많이 모인 곳이기도 하다.

그들이 속한 TTa길드는 배틀넷 최상위 길드에서 일정 기간마다 벌이는 클랜전에서 베스트 7에 속한 길드였다.

배틀넷에는 수많은 길드가 존재하고 당연히 수많은 실력자들이 우글거린다. 당장 클랜전에 참가하는 길드가 백 개가 넘는데, 그중에서 7위라는 것은 그들의 길드가 거의 최상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 클랜전에서는 어떤 엔트리를 짠다느니, 어떤 길드에서 어떤 프로게이머가 나왔느니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주제는 DarkSword로 넘어갔다.

순규는 해민의 이야기를 듣다가 두 눈을 부릅 떴다.

“정말요? DarkSword가 프로게이머랑 맞먹는 실력자라고요?”

순규의 말에 해민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써니 널 그렇게 이길 정도의 실력자가 그 정도도 안된다고 생각한 거야? DarkSword가 프로게이머랑 붙으면 거의 막상막하야. 준프로도 상대가 안 돼.”

물론 배틀넷에서 프로게이머보다 잘하는 유저들은 많다. 하지만 그들은 방송을 참가하거나 그렇게 되면 긴장하게 되어 상당히 떨어지는 기량을 보이고는 한다.

다만 해민이 DarkSword를 언급한 것은 그의 뛰어난 실력에서 기인한다.

“그 뭐지, 몇 년 전에 DarkSword가 온게임넷에서 방영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거든. 물론 얼굴은 안 나오고 그냥 평소 알던 유저랑 게임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거였는데 거기서 DarkSword가 프로게이머랑 정면으로 붙어서 삼전 삼승을 거뒀어. 그것 때문에 한동안 난리가 났었지. 왜냐면 당시 DarkSword한테 깨진 프로게이머가 바로 전 대회 우승자였거든.”

순규가 감탄사를 자아냈다.

“프로게이머랑 견주어도 안 부족하네요.”

“그래. 오히려 프로게이머들도 기피하거든. 너도 게임해봐서 알겠지만 DarkSword 플레이 솔직히 엄청 짜증나잖아. 도박성 플레이는 꿈도 못 꾸고 정면으로 붙어도 이리저리 심기 자극하는 플레이를 해대는데, 어휴! 난 그녀석이 게임만 하자고 하면 그냥 피한다. 상대하는 것 자체가 악몽이야.”

진저리를 치며 고개를 젓는 해민을 보며 순규는 눈을 빛내며 이를 간다.

“그래도 한 번쯤 꺾어보고 싶어요. 그렇게 잘한다니 말이죠.”

그런데 눈빛에는 살기가 흐르고 있었다.

해민은 그런 순규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적일 땐 악몽이지만 아군일 땐 정말 든든하지. 그런데 순규 너 막상 DarkSword 보면 절대 못 때린다.”

순규가 코를 찡긋하며 물었다.

“왜 자꾸 그러는 거예요. 때릴 생각 없거든요? 그리고 왜 못 때린다고 하는 건데요?”

“DarkSword 그 녀석 엄청 잘생겼거든. 완전 미소년이야. 보면 바로 살기가 수그러들걸? 나도 처음에 완전 벼르고 있다가 여기 실버 때문에 뜻을 못 이루었거든.”

“그 이야기는 왜 하는 거예요!”

“하아! 지금도 이러니 내가 뜻을 이루지 못하지. 어쨌든 그렇다는 것만 알아둬라.”

“흥! 난 달라요. 전 외모에 혹하지 않을 자신 있어요.”

자신 있게 말하는 순규. 그럴 수도 있는 것이 이미 창현을 보았기에 다른 미소년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상태였다.

그런 순규의 모습에 해민이 피식 웃었다.

“그건 마치 때리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아니라니까요. 왜 자꾸 그렇게 몰아가요.”

“하하! 알았다, 알았어.”

웃음을 지은 해민은 다른 주제로 전환하였다. 순규도 DarkSword만 나오면 예민해졌기에 다른 이야기에 참가하면서 점심 식사를 마쳤다.

점심 식사 후 일행이 향한 곳은 노래방이었다. 방금 먹은 것을 소화시킬 겸해서이다.

특히 가수 지망생인 순규는 언니, 오빠들의 권유에 의하여 처음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놀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오는 게 아닌가?

양해를 구한 순규는 방에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전화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태연이었다.

“태연아 왜 전화한 거야, 뭐? 게임에 졌는데 하소연 할 사람이 없다고? 아씨! 네 실력이 부족해서 진 거 가지고 뭘 그러는 거야! 뭐? 4드론에 졌다고? 그거 당한 네가 바보지!”

게임을 하다가 져서 순규에게 하소연을 늘어놓는 태연의 행동에 순규는 화를 내며 들어줄 건 다 들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해민에게 위치를 물어 노래방에 도착한 창현은 노래방에 들어섰다.

방에 들어선 그는 자신을 반겨주는 세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스피릿 형 오랜만이에요! 토드 형하고 실버 누나도요.”

“어서와라, 소드야! 자, 여기 앉아라.”

해민은 창현을 반기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창현에게 그 자리를 권했다. 그리고 창현에게 노래방 책을 건넨 해민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방으로 나온다.

마침, 순규도 통화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오던 참이었다.

해민은 그런 순규를 보면서 말했다.

“써니야, DarkSword 지금 왔다.”

보이스 피싱보다 어이없는 태연의 전화에 잔뜩 화나 있던 순규의 눈이 빛났다.

“정말요?”

“그래. 안에 있으니까 어서 들어가봐.”

“알았어요.”

해민의 부추김에 순규가 방문을 열고 들어선다. 그리고 DarkSword로 짐작되는 소년에게 성큼성큼 다가간다.

다가가던 순규는 소년의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웃한다.

‘어라? 이상하네. 어디선가 본 얼굴인데…….’

어두운 조명 때문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DarkSword는 노래를 고르는 중이라 그런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니까.

소년 앞에 도착한 순규가 턱하니 방문으로 향하는 경로를 막아서며 말한다.

“네가 DarkSword야?”

자신의 닉네임을 부르자 소년이 움찔하다가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시선을 옮긴다.

그리고 마주하는 얼굴과 얼굴.

두 사람은 동시에 놀란 표정을 짓는다.

소년, 창현이 당황한 어조로 말한다.

“누, 누나가 왜 여기에…….”

“너, 너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서, 설마 네가 DarkSword?”

너무나 놀란 나머지 창현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말하는 순규.

두 사람의 충격적인 만남이었다.


순규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놀라움이 담긴 시선으로 창현에게 물었다.

“창현이 네가 정말 DarkSword라고?”

창현도 얼떨떨한 표정이다.

그는 순규를 보며 물었다.

“그, 그러는 누나는 설마 써니?”

“…….”

창현의 물음에 순규는 침묵했고, 창현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 순규의 침묵이 무언의 긍정을 의미한 것이다.

순규의 표정은 복잡했다. 창현이 DarkSword라는 사실에 놀라운 표정이 되었다가,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 그러다가 입가에 점차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보면서 창현의 표정도 변하고 있었다.

게임을 하면서 친해지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가 어떻게 나올지 직접 듣지 않았던가.

창현이 들었던 말, 그것은 만났을 때 묘자리 알아보라는 말이었다.

스타크래프트를 하면서 창현은 자신의 플레이가 상대방의 짜증을 유발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아는 형들을 만날 때마다 장난 식으로 당하곤 했는데, 써니는 승부욕이 너무 강해서 질 때마다 보이지 않게 방방 날뛰면서 꼭 한 번 보자고 이빨에 힘 꽉 주고 말하곤 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이 농담이라고, 장난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디까지나 모르는 사람일 경우에나 그 이야기가 성립된다.

창현과 순규는 이미 보컬 트레이닝으로 아는 사이였고, 상당한 친분을 쌓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즉, 장난처럼 했던 이야기가 실제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창현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멈칫했다.

하필이면 해민이 자신에게 권했던 자리에서 안쪽 자리였던 것이다. 옆은 테이블이 있었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앞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곳에 바로 순규가 있었다.

슬쩍 순규의 얼굴을 바라보니 입가에 미소가 드리우고 있었다. 흐릿하게 맴도는 살기의 존재가 창현을 더욱 압박해왔다.

“후후후!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정말 반갑다구, DarkSword군?”

“하하! 바, 반갑습니다, 순…….”

“써니라고 불러.”

“네! 써니 누나. 반가워요, 하하!”

다른 사람에게는 본명이 알려지는 게 싫은지 닉네임으로 부르란 압박에 바로 말을 바꾸는 창현.

순규는 양손을 가볍게 털어보이며 창현에게 말했다.

“오늘을 위해 내가 여러 격투 영상들을 보고 연구해왔다고. 우리 이야기 좀 해볼까, 창현군.”

그러면서 손을 움켜쥐니 우둑! 하고 소리가 나는데,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창현이 도망칠 곳은 없었다. 유일한 탈출로에는 순규가 자리하고 있던 것이다.

작은 주먹이 어찌 그렇게 무서워 보이는지, 이대로 가다가는 꼼짝없이 당할 판이었기에 창현은 도움을 청했다.

“스, 스피릿 형 헬프!”

창현의 도움 요청에 해민이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님아 우리가 언제 팀플할 때 서로 헬프 해줬죠? 알아서 살아남으시죠.”

역시 길드 마스터. 능글능글하여 도움을 얻기가 힘들다.

창현은 대상을 바꾸었다.

“크, 크윽! 실버 누나, 헬프!”

“그런데 두 사람 아는 사이야?”

“……!”

“어, 그러고 보니 그러네? 둘이 어떻게 알고 있는 사이야?”

화제를 옮기는데 성공했다.

음산한 미소를 지은 채 다가오던 순규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다.

“그, 그게 말이죠…….”

순간 말을 더듬으며 말하는 순규. 옆에서 눈치를 살살 보던 창현은 탁자를 슬쩍 밀어놓고 살금살금 빠져나가려 하였다.

그리고 막 지나가려던 차, 순규가 날카로운 눈을 하며 창현의 뒷덜미를 잡고는 옆으로 던져버리며 말한다.

“여기 창현이 아니, DarkSword가 제 아는 동생 후배거든요. 그래서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스타하는 것 정도는 알았는데 설마 얘가 DarkSword일 줄은 꿈에도 몰랐던 거죠.”

“호오! 참으로 멋진 우연이구만. 소드야 넌 끝났구나. 써니 얘 승부욕 장난 아니라서 한 번 잡고 늘어지면 절대 안 놓는다. 넌 이제 끝났어, 쯧쯧!”

순규의 설명에 눈을 빛내며 듣고 있던 해민이 혀를 차며 창현을 동정한다.

창현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창현의 모습을 사람들은 안쓰럽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으으! 내가 실수했나.’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창현을 보며 순규는 저도 모르게 동정심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마음이 약해지는 걸 느끼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 안 돼! 이 녀석은 나를 처참하게 관광 보내주던 녀석이야! 독하게 마음 먹자! 이 녀석은 적이닷!’

독하게 마음을 먹은 순규.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은 채 웃음을 지었다.

결판을 낼 곳은 이곳이 아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이 같지 않은가? 그때 결판을 내면 된다.

“호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스피릿 오빠. 제가 언제 그랬다고요. 자, 창현군, 이렇게 왔으니까 같이 즐겁게 놀아봐요. 호호!”

웃음을 지으며 상냥하게 말하는 순규.

하지만 방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느꼈다.

지금 저 웃음은 가식이라고.

어찌 되었든 애꿎은 시간은 흘러갔기에 노래를 선곡하여 부름으로써 어색한 분위기 타파에 앞장섰다. 그러자 분위기는 다시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외부에 드러난 것뿐이었다.

바로 옆에 찰싹 붙어 앉아 순규는 창현에게 여러 가지 압력을 행사했고, 창현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음료수를 사는 등 여러 가지 봉사를 해야만 했다.


노래방을 간 일행은 곧장 피시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같이 게임을 했는데, 순규는 창현에게 게임을 신청했고, 곧장 일대일 대결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눈치없는 창현은 순규에게 져줄 법도 했는데 그대로 이겨버렸고, 순규는 애써 웃음을 지으면서 이마에 혈관 마크가 도드라져 창현을 식은땀 흘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피시방에서 게임을 즐긴 뒤 같이 저녁식사를 했다.

한달 후 군대 갈 해민을 위한 저녁식사였는데, 정모를 함으로써 한층 더 친해졌기에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마침내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다른 약속이 있다고 거짓말하며 슬그머니 빠지려던 창현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순규가 창현의 팔을 꽉 붙잡은 것이다.

태연도 그렇고 무언가 특이한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분명 잡은 힘은 별로인데 감당하기 힘든 압박이 전해져오는 걸 보며 말이다.

순규가 창현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우리 할 이야기가 있잖아. 응? 같이 가자.”

‘끄응!’

거짓말을 해도 먹힐 기세가 아니었기에 창현은 속으로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정말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일행과 헤어지고 창현과 순규는 같이 지하철을 탔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순규가 창현의 옷을 잡아끌었다.

창현이 움찔하면서 뒤돌아보자 순규가 피식 웃으면서 말한다.

“왜 그렇게 겁을 먹어. 내가 설마 진짜 때리려고 한 줄 안 거야?”

예, 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정말 그렇게 대답하면 때릴 것 같았다.

창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에요. 설마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나도 처음에 너한테 게임 졌을 때 엄청 분노했거든. 그리고 정말 정모에서 보게 되면 장난을 빙자한 이렇고 저런 기술을 걸어보려고 생각했고.”

기술 이름을 말할 때 표정에서 진정성이 엿보였기에 창현이 움찔했다.

그런 창현의 모습에 순규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건 패배자들이 할 법한 행동이잖아? 게이머라면 게이머로 풀어야겠지. 안 그래?”

정말 옳은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창현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의 말이 전부 맞습니다.”

“그래서 실력을 길러서 정정당당하게 너를 꺾으려고. 그러니 네가 협조 좀 해줬으면 해.”

‘아니, 왜 나를 꺾는 걸 내가 협조해야 한단 겁니까.’

하지만 속마음을 드러낼 수 없었기에 창현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예이! 뭐든지 말씀만 해주십쇼. 적극적인 협조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후훗! 그 모습 마음에 들었어. 좋아! 원래는 일곱 판으로 합의를 보려고 했는데 다섯 판으로 해주도록 할게.”

“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창현.

순규가 그런 창현을 보며 말했다.

“나랑 하루에 다섯 판! 이렇게 게임 해주면 용서해주도록 할게.”

그녀가 내세운 조건이었다.

야심차게 준비해온 여러 기술(?)을 봉인하는 대신 하루에 다섯 게임을 해주는 것!

창현에게 거절은 없었다. 거절했다가는 당장 저 서글서글한 눈웃음이 어떻게 변할지 짐작조차 하기 싫었으니까.

결국 창현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후우! 알았어요.”

“호호! 잘 생각했어, 창현군. 역시 벌주를 택하지 않네.”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자 창현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는 순규.

무사히 넘어가는 듯하여 창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 그럼 누나 조심히 들어가세요.”

“응, 알았어. 잠깐!”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몸을 돌리던 창현을 부르는 순규.

창현에게 달려온 그녀는 다짜고짜 그의 팔을 잡더니 기이한 각도로 꺾는다.

갑자기 전해지는 팔의 고통에 창현은 비명을 질렀다.

“으, 으악! 이게 뭐하는…….”

“아! 미안! 아무래도 익혀놓고 안 써봐서 효과가 어떨지 몰랐거든. 호호! 그럼 잘 들어가렴.”

기어코 자신이 익혀온 기술을 창현에게 써먹고야 마는 순규.

엄청난 속도로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창현이 중얼거렸다.

“분명히 한 대 때리고 싶었던 거야…….”

그것은 확신에 찬 중얼거림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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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10화 +21 15.05.06 3,748 86 10쪽
46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9화 +10 15.05.04 3,692 94 10쪽
45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8화 +17 15.05.02 4,030 92 10쪽
44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7화 +10 15.05.01 4,129 9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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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5화 +15 15.04.27 3,713 97 9쪽
41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4화 +7 15.04.24 3,979 89 10쪽
40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3화 +6 15.04.22 4,427 82 10쪽
39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2화 +9 15.04.20 4,516 91 11쪽
38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1화 +10 15.04.17 7,376 95 10쪽
37 ▲▲▲▲▲시즌2 시작!▲▲▲▲▲ +5 15.04.17 5,425 65 1쪽
36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6장-108장 +8 15.04.16 6,414 106 230쪽
35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3장-105장 +1 15.04.16 4,244 82 314쪽
34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0장-102장 +2 15.04.16 4,413 68 229쪽
33 마음을 울리는 음악 97장-99장 +1 15.04.16 4,389 63 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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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마음을 울리는 음악 22장-24장 +4 15.04.16 10,924 261 198쪽
7 마음을 울리는 음악 19장-21장 +4 15.04.16 11,492 270 216쪽
» 마음을 울리는 음악 16장-18장 +5 15.04.16 11,544 242 163쪽
5 마음을 울리는 음악 13장-15장 +5 15.04.16 14,536 297 237쪽
4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장-12장 +8 15.04.16 13,737 352 171쪽
3 마음을 울리는 음악 7장-9장 +10 15.04.16 14,552 362 142쪽
2 마음을 울리는 음악 4장-6장 +11 15.04.16 16,838 421 120쪽
1 마음을 울리는 음악 프롤로그-3장 +47 15.04.16 29,900 545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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