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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번 님의 서재입니다.

마음을 울리는 음악

웹소설 > 작가연재 > 팬픽·패러디, 현대판타지

김현우
작품등록일 :
2015.04.16 13:27
최근연재일 :
2015.06.0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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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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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16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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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320쪽

마음을 울리는 음악 40장-42장

DUMMY

제40장 Kissing You




일일 카페가 끝나고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그 사이 현의 정규 3집 앨범의 고대하던 오리콘 차트 집계가 나오는 날이 되었다.

먼저 공개된 오리콘 위클리 차트는 현의 정규 3집 앨범인 [One Year]가 1위를 차지함으로써 그 이름을 다시 한 번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라샤와의 인연으로 일본 거대 기획사인 쟈니스와 연관 관계를 맺은 현은 계약을 맺음과 동시에 일본어 버전으로 녹음된 앨범이 출하되었다. 그리고 한국보다 훨씬 많은 120만장이라는 경이로운 판매를 기록하면서 다시 한 번 그의 위상을 세상에 알리는데 성공하였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8월을 뜻하는 <August>가 폭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일본 사람들에게 인기를 끈 것은 따뜻한 봄을 연상시키는 4월의 <April>이 인기를 끌었다. 골고루 사랑받은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뭐랄까, 각국의 사람들마다 좋아하는 성향이 조금씩 다른 듯하였다.

오리콘 차트에서 기록을 갱신하자 분위기는 그야 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현의 팬 사이트인 다크 스타에서는 현의 1위를 축하한다는 사실을 널리 알렸고, 그것이 기사화가 되어 퍼져 나갔다.

오리콘 차트 제패라는 위업에 힘 입어 현은 1월 6일 <애인 있어요> 디지털 싱글 앨범을 발매하였다. 약속했던 것을 지키는 셈이었다.

익숙한 곡이되 현이 새로 편곡을 하여 새로운 느낌을 주는 <애인 있어요>는 단번에 디지털 음원 상위 차트를 기록하였다. 현이란 이름은 일종의 보증 수표가 되어서 사람들의 구매를 망설임 없게 만드는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꾸준히 상승세를 타던 <애인 있어요>는 결국 3위에서 더 치고 올라가지 못했다. 1위와 2위가 각각 <August>와 <One Year>가 차지하고 있어 그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전혀 다른 풍의 새로운 노래를 시도한 것이었기에 사람들은 크게 호응을 하며 앨범과 음원을 샀다. 앨범 수익 반액이 불우이웃을 돕는데 쓰겠다는 말이 주효한 탓이다. 그런데 곡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이은미 측에서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금액도 모두 불우이웃에게 기증하겠다고 말을 함으로써 한 층 더 곡이 잘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앨범이 대박 나고 있어 흐뭇해하는 가운데 창현을 황당하게 만드는 한 가지 소식이 있었다.

바로 일일 카페에서 일어난 일 때문이다.

<애인 있어요>를 공개하고 다음 날인 1월 7일, 일일 카페에서 현의 애장품으로 27만원에 팔린 그의 목도리가 경매 사이트에 나타난 것이다.

목도리의 주인은 목도리에 새겨진 싸인을 클로즈업하며 찍어놓은 뒤 네 명이서 돈을 합쳐 구매했는데 이것 때문에 친구들의 우정에 금이 갈 지경이라고 하면서 고민한 끝에 판매하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말하고는 자신들이 구입한 금액을 뺀 전액을 현의 이름으로 기부하겠다고 올려놓았다.

이는 큰 파장을 일으키며 단번에 인터넷을 휩쓸었다.

1월 7일 00시 01분에 등록된 현의 목도리는 1월 8일 00시 01분에 완료된다고 쓰여 있었다.

현의 오리콘 차트 1위와 <애인 있어요> 수입 전액 기부 소식 탓에 기존의 반응보다 더욱 폭발과도 같은 관심이 이어지면서 애장품인 목도리의 등장은 큰 반향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목도리 한 곳에 적혀 있는 싸인은 현의 것임이 분명했기에 더욱 그렇다.

경매 사이트에 올라온 지 한 시간 만에 소문이 빠르게 퍼져 나갔고, 현의 팬들에게도 사실이 전해짐으로써 목도리를 쟁탈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졌다.

27만원에서 시작된 경매 가격은 차곡차곡 올라 경매가 끝날 무렵, 현의 목도리는 343만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에 팔리게 되었다.

키가 커야 한다는 일념 하에 밤 10시에 잤다가 아침에 일어난 창현은 황당한 표정을 지어야 했지만 말이다.

“좋은 일에 쓰겠다니 뭐, 알아서 하겠지.”

어차피 목도리는 팔린 것이었으니 자신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딱히 자신이 신경 쓸 일은 없겠지.

주말이 끝나고 월요일이 되었기에 회사로 향하는 중이었다.

오늘이 1월 7일이고 내일은 1월 8일이다. 1월 8일은 소녀시대의 새로운 곡인 <Kissing You> 뮤직비디오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이미 곡의 분위기나 그런 건 다 알겠는데 왜 오라고 하는 거야.”

뚱한 표정을 지으며 벤에 타는 창현이었다.

앨범 판매도 순조롭고 엊그제 발매한 디지털 싱글 앨범도 순항을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도대체 무슨 일로 자신에게 오라고 하는 것일까?

고민을 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랬기에 표정을 찡그리면서도 회사로 향하는 것이다. 석규가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알기 위해서 말이다.

AA엔터테인먼트에 도착한 창현은 곧장 사장실로 향했다.

“저 왔어요. 무슨 일로… 응?”

사장실 안으로 들어서며 입을 열던 창현은 순간 고개를 갸웃하였다.

당연히 석규 혼자 있으리라 생각했던 사장실에는 석규만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신과 마주보는 곳에는 석규가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은 채 앉아 있었고, 자신에게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 곳에는 자신 또래의 여자 아이가 앉아 있었다.

익숙한 모습에 가까이 가서 소녀의 모습을 확인한 창현이 고개를 갸웃한다.

“지영이?”

석규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것은 다름 아닌 지영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왜 이곳에 있단 말인가?

영문을 몰랐기에 창현이 고개를 갸웃하자, 석규는 그에게 손짓을 하며 말한다.

“창현이 너 이리 와서 앉아라.”

“무슨 일이에요?”

석규의 모습에서 직감적으로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고 생각하는 창현이었다.

그에 석규가 지영을 가리켰다.

“네가 이야기를 좀 나눠보아라. 나는 머리가 아파서, 허허!”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석규가 이렇게 골치 아파 한단 말인가.

창현이 지영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지영의 표정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그녀는 결연한 표정으로 창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그러는 것일까.

“지영아, 무슨 일 때문에 아버지가 이렇게 골치 아파 하시는 거야, 나한테 말해봐.”

그러자 지영이 창현을 바라보면서 입을 연다.

“나 가수가 되고 싶어, 오빠. 아빠한테 방금 그 이야기를 한 거야.”

“…뭐라고?”

한순간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싶어서 창현은 고개를 갸웃하며 지영에게 되물었다.

지금 지영이 한 말이 무엇이란 말인가. 가수가 하고 싶다고?

어이가 없는 마음에 창현은 지영을 바라본다.

그 시선에 지영은 입술을 꼬옥 깨물더니 다시 말한다.

“나 가수가 하고 싶다고, 오빠. 그래서 아빠를 찾아온 거야.”

창현도 석규처럼 머리를 부여잡고 싶은 마음이었다.

갑자기 가수가 되고 싶다니? 황당한 마음에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갑자기 가수는 왜 되고 싶은 건데?”

창현의 물음에 지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부인한다.

“갑자기가 아니야. 나는 원래부터 꿈이 가수였어, 오빠.”

“그래? 원래부터 꿈이 가수였다고 치자. 그런데 그걸 왜 이곳에 와서 이야기하는 거지? 설마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곧바로 데뷔하려고 하는 거였어?”

지영에게 말하는 창현의 목소리가 차가워진다. 만약 자신의 말대로라면 모두 지영의 잘못이기에 그렇다.

창현의 어조가 차가워지자 석규가 제지하고 나선다.

“그게 아니다. 지영이는 지금 오디션을 보게 해달라고 그러는 거다.”

“오디션이요? 하아…….”

한숨을 내쉬는 창현이었다. 오디션이라니, 정말 대책이 서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창현이 처음 데뷔를 하고 앨범을 판매하여 번 돈으로 석규는 회사의 사활을 걸고 연습생들을 모두 걸러낸 뒤 라샤를 데뷔 시켰다. 그랬기에 현재 AA엔터테인먼트에는 연습생이 한 명도 없다.

창현이 엄청난 앨범 판매고를 올리고 있고, 라샤도 인기를 지속함에 따라 자금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지속적으로 회사를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신인의 배출이 필요하다.

사실 연습생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움이 없다. AA엔터테인먼트에 연습생으로 들어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문의 전화를 하곤 하였기에 그렇다.

석규 또한 그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회사가 이제 막 확장을 하고 있고, 아직까지 창현과 라샤를 보조하기 벅찬 만큼 연습생을 감당할 여력이 되지 않았기에 그렇다. 돈을 풀면 단번에 규모는 키울 수 있지만 실속은 사라진다는 것이 석규의 생각이었다.

지금도 꾸준히 직원들을 늘리고 있는 실정이었고, 본격적으로 준비가 다 갖추어지면 연습생을 차근차근 늘릴 생각이었다.

물론 당장 지영이 연습생으로 들어온다고 하여도 AA엔터테인먼트가 충분히 감당이 가능하다. 다만 석규가 당황하는 것은 갑자기 지영이 연습생을 하겠다고 찾아온 것 때문이었다.

한숨을 내쉰 창현이 지영을 보며 물었다.

“너 그 사실 어머니에게도 말씀드렸어?”

1월말이면 석규와 지선이 결혼을 하지만 지금까지는 서로 남남이었다. 즉, 지영이 연습생이 되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어머니한테는 허락 맡았어, 오빠. 어릴 적부터 내 꿈은 가수였어. 단순히 화려한 연예인의 삶을 동경해서 그런 게 아니야. 내 노래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

지영의 말을 듣는 순간 창현은 할 말을 잃었다.

그녀가 한 말,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가수로 데뷔하기 전 그토록 다짐하던 것이었기에 그렇다.

아니, 약간은 다르다.

자신은 가수가 되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부른 노래를 기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사람의 마음에 깊은 파문을 일으키는 노래를 들려주고 싶었다랄까? 욕심이 많은 어린 시절인 만큼 누구나 기억할 수 있는 노래를 작곡하고 싶었고, 누구나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간직해오던 자신의 꿈을 말하는 지영의 모습에서 창현은 몇 년 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과연 지영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아니다, 힘들 것이다. 자신은 운이 좋았고, 그 운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여 꿈을 이룰 발판을 마련했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꿈을 이룰 수 있었다면 싸움이 일어날 리가 없다. 당연히 힘들 것이다.

깊은 생각에 잠기는 창현이었다.

창현이 답을 하지 않자 석규가 나섰다.

“지영아. 이것은 어찌 보면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일일 수 있다. 너무 성급하게 결정을 내리다가는 후회를 할 수도 있단다. 그러니 조금만 더 생각할 시간을 가지고…….”

석규의 말에 지영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연다.

“아빠, 저도 신중하게 생각하고 고민 끝에 이곳에 온 거예요. 시험이 끝나고 오빠와 함께 노래방에 갔을 때… 본의 아니게 일이 벌어졌지만 함께 노래를 불렀을 때 즐거웠어요. 제가 아빠와 오빠 덕을 보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에요. 제 결심을 알려드리고자… 제 실력을 확인하고자 온 거예요. 아빠와 오빠의 기준에 부족하다면 실력을 길러서 다시 찾아올게요. 부탁드려요.”

지영의 표정은 굳건하였다.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듯한 모습이랄까.

그 모습에 석규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연예계라는 것은 만만치 않다. 창현과 라샤가 이렇게 인기를 얻은 것도 우연에 우연이 중첩되었다고 할 정도로 운이 좋은 것이다.

석규는 아직도 지영이 연예계의 화려한 모습을 보고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다시 한 번 지영을 만류하려 할 때, 생각에 잠겨 있던 창현이 석규를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일단 한 번 실력을 테스트 해보는 게 어떨까요, 아버지.”

“창현이 너…….”

창현의 말에 석규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린다.

그에 창현이 입가에 미소를 살짝 짓는다.

“실력이 어떤지 봐야 하잖아요. 실력이 있다면 사업자로서 붙잡는 것은 당연한 거고요. 안 그래, 지영아?”

그의 시선이 지영에게 향한다.

그러자 지영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응! 고마워, 오빠.”

“고마워 할 건 없어. 말 그대로 네 실력을 볼 뿐이니까. 오빠로써, 아버지로서 자비심은 바라지 않길 바라는 바야.”

냉정하게 말을 하는 창현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석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요즘 아이들은 하나 같이 똥고집이 셌다.

그렇게 지영의 즉석 오디션이 결정되었다.


세 사람은 라샤가 사용하던 연습실로 자리를 옮겼다.

지영의 실력을 테스트하기 위함이었다.

연습실에 들어선 석규와 창현은 의자를 끌어다가 각각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는 창현이 석규에게 시선을 힐끗 준다.

“AA엔터테인먼트는 기본적으로 가창력이 받쳐줘야 한다. 그 기준은 철저히 심사위원을 중심으로 맞추어져 있다. 즉, 지영이 넌 나와 창현이의 마음에 들어야 오디션에서 합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무척 쉽게 들리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무척 난해한 심사기준이기도 하다.

석규와 창현이 아는 사람이기에 얼핏 보면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아 보이지만 두 사람은 결코 사적인 감정을 대입하여 후한 점수를 줄 인물들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아는 사이이기에 그 기준이 더욱 엄격하게 적용될 확률이 높았다.

석규의 말이 끝나자 창현이 지영을 바라본다.

그와 눈을 마주친 지영은 바짝 긴장한 표정을 짓는다. 지영은 직감적으로 석규보다 창현이 더 까다로울 것이란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이제 곧 아버지가 될 석규는 지영을 냉정하게 대하기 힘들었지만 창현은 그와 약간 상황이 달랐으니 말이다.

창현은 지영을 보면서 말한다.

“최선을 다해서, 후회하지 않도록 노래를 해봐. 라이브 무대를 하는 가수에게 실수는 용납되지 않아. 그걸 알아둬.”

“알았어요. 최선을 다하겠어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지영을 보면서 석규가 물었다.

“부를 곡은 무엇으로 할 것이냐?”

“빅마마의 <체념>으로 할게요.”

“빅마마의 노래를?”

지영의 곡 선정에 석규와 창현의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빅마마의 <체념>은 보통 어려운 노래가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럼 시작할게요.”

그런 두 사람의 표정을 신경 쓰지 않은 채 지영이 노래를 시작하기 위해 목을 가볍게 푼다. 그리고 곧이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 한다.

지영의 노래는 이미 창현이 들어본 적이 있다. 지영의 시험이 끝났을 때 함께 노래방을 가서 그녀가 부른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는 것이다.

거기에서 창현이 느꼈던 지영의 실력은 ‘잘한다’ 보다는 노래를 ‘느낌 있게 부른다’ 였다. 얼핏 보면 전자가 더 좋은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발전 가능성으로 보면 후자가 더 낫다고 할 수 있다. 느낌 있게 부른다는 것은 곡의 느낌을 잘 살려낸다는 것이고, 감정 이입을 잘한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때문에 창현은 지영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녀의 실력을 잘 갈고 닦으면 좋은 실력을 지닌 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 생각이 날 무렵, 목을 푼 지영이 노래를 시작하였다.

체념이라는 단어가 희망을 버리고 단념한다는 뜻을 지닌 만큼 노래 자체가 무척 슬프다. 때문에 감정 이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아무리 고음 처리를 잘하여도 노래에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석규와 창현은 전문가답게 그 점을 알고 있었고, 그들이 주목하는 점은 바로 감정 이입과 그 감정을 전달하는 면이었다.

서서히 곡의 느낌을 살려가며 부르는 지영.

짠한 느낌이 살며시 느껴진다. 그리고 서서히 노래가 클라이막스에 다다름에 따라 지영의 노래에서 묻어나오는 슬픔의 감정이 석규와 창현에게 전달되기 시작한다.

“…….”

석규와 창현은 놀란 눈으로 지영을 바라본다. 노래를 하는 그녀의 기교는 어디서 배우거나 그런 것이 아니었기에 당연히 부족하였다. 심지어 고음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버거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지영에게는 그 단점을 뒤덮을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바로 곡의 슬픈 느낌을 물씬 살려주는 감정 전달이 그것이다.

그 감정에 자신 또한 취한 듯, 지영은 두 눈에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 사이 지영의 노래가 모두 끝났다.

노래가 끝나자 석규는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짝짝짝!

“잘했다. 아주 잘했어.”

단순히 잘했다는 말만 반복하는 석규. 하지만 그의 입에서 이런 감탄사가 나왔다는 것은 정말 잘 불렀다는 이야기가 된다.

수많은 가수들의 노래를 들어봤기에 석규는 지영의 재능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기교 면에서는 확실히 떨어졌지만 감정 이입에서 만큼은 무척이나 훌륭하다는 걸 말이다.

“감사합니다.”

석규의 칭찬에 지영이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감사의 인사를 한다.

그러나 아직 난관이 남아 있다. 바로 최대 난관이라 할 수 있는 창현이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던 것이다.

“…….”

창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지영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지영은 자신도 모르게 바짝 긴장한 모습을 한다.

조용히 지영을 바라보던 창현이 입을 열었다.

“노래를 부르면서 슬픈 감정을 이입했는데 무얼 떠올리면서 한 거지?”

“그건…….”

지영이 순간 말하기를 머뭇거린다.

그 모습에 창현이 턱을 괴며 지영을 바라보았다. 대답을 들을 심산인가보다.

그에 지영이 조심스럽게 말한다.

“전 아빠를 떠올리고…….”

“슬픔이란 키워드를 꺼내서 감정 이입을 했다는 거네?”

“…네.”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지영이었다.

그녀가 언급한 전 아빠는 그녀의 친부를 말하는 것이리라.

지영의 대답에 창현이 석규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창현의 질문에 석규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기 시작한다.

“그저 어린 치기에 연예인이 되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구나. 충분히 가수가 될 만한 소질을 지니고 있어. 나이를 감안하면 라샤 아이들보다 더 소질이 있다고 볼 수 있겠지. 사장의 입장에서 이런 인재를 놓치고 싶지 않다.”

석규의 말은 합격을 뜻하고 있었다.

지영의 얼굴에 환해지며 석규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다.

“감사합니다, 아빠.”

“나는 사실대로 말한 것이니 고마워 할 필요가 없다. 창현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석규의 말에 지영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한다.

그녀는 느끼고 있었다. 석규가 찬성을 했지만 창현의 말에 따라 결과가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과연 창현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지영은 창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창현의 입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날이 흐르고 흘러 마침내 1월 8일이 되었다.

오늘 소녀시대는 1집 앨범인 <소녀시대>의 뒤를 잇는 후속곡 <Kissing You>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날이다.

멤버의 숫자가 아홉 명이나 되는 만큼 소녀들은 아침 촬영을 위해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를 해야만 했다. 자신들이 활동할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만큼 꾸미는 것에 있어서 게을리 할 수 없었다.

“부지런히 움직여! 수연이 넌 매일 늦어서 시간이 아슬아슬하잖아. 미안하지도 않아?”

평소라면 소녀시대 내에서 최강을 다투는 스펙을 자랑하는 수연이지만 아침에 가장 강력한 파워를 발휘하는 것은 다름 아닌 태연이다. 리더라는 자리와 함께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는 스킬로 인하여 아침에 한해서는 무적에 가까운 신위를 발휘하고 있었다.

“알았어, 미안해.”

평소 저렇게 태연이 말을 했다면 당장 응징이 돌아와야 함이 옳지만 지금 수연이 할 수 있는 것은 사과 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태연은 리더로서 아침마다 평소 자신을 발라버리던(?) 멤버들을 발라버리는(?) 맛에 일찍 일어나고는 한다.

‘흐흐! 내가 이 맛에 일찍 일어난단 말이야.’

속으로 웃음을 지으며 아직도 잠이 덜 깬 멤버들을 구박하는 태연이었다.

그렇게 부랴부랴 준비를 끝마친 소녀들은 미리 준비된 벤에 탑승하여 헤어 샵으로 향한다.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서 머리를 해야 했으니 말이다.

헤어 샵에서 몇 시간 동안 사투를 벌인 끝에 머리를 완성한 소녀들은 벤을 타고 이동한다.

이동하는 도중 소녀들 사이에서 불만이 마침내 터져 나오고 말았다.

그녀들의 불만은 이러했다.

“아니, 뮤직비디오에 남자가 출연한다면서요! 왜 알려주지 않는 건데요?”

자신들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는 만큼 당연히 알 권리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나쁜 매니저는 아무리 떼를 쓰고 협박을 해도 뮤직비디오 촬영에 참가하는 남자 배우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것은 회사의 특급 기밀이라나 뭐라나.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소녀들은 자신들이 신뢰를 얻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아 섭섭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아홉 명의 소녀들을 맡으면서 극도로 단련된 매니저는 얼굴에 철판을 깐 채 매몰차게 외면할 뿐이었다.

결국 궁금함을 견디지 못한 태연이 폭탄 선언을 한다.

“이씨! 가르쳐주지 않으면 오늘 다 같이 보이콧 할 거야!”

태연의 외침에 매니저가 반응을 보인다.

매니저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태연에게 눈을 부라린다.

“뭐? 보이콧을 하겠다고?”

“그, 그러니까… 우리한테 알려달라고요! 우리도 알 권리가 있어요! 가르쳐주지 않으면 애들이랑 다 같이 보이콧 할 거예요! 얘들아! 나와 함께 할 거지?”

태연은 한 지붕 아래 한 이불(?)을 덮고 잔 멤버들을 믿었다.

그리고 그녀의 바람대로 다른 멤버들이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보이콧이니 뭐니 하는 태연의 말을 듣고 있던 매니저가 다른 아이들도 반란에 동조할 움직임을 보이자 눈썹을 꿈틀하며 말한다.

“정말 보이콧 하겠다고? 용돈 삭감에 행동반경을 더 좁혀줘야 하나? 아니, 숙소 내에서 간식 섭취 금지를 해줘?”

아홉 명의 소녀들을 다루는데 익숙해진 매니저였기에 소녀들의 깊은 약점을 파고들었다.

그에 다른 소녀들이 눈에 띄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도 그렇지 않은가!

어차피 촬영장으로 향하는 지금, 함께 촬영하는 남자 배우는 알 수 있지만 매일 밤 조금씩 야금야금 먹는 간식의 맛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낙이었다.

그 낙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걸 박탈하겠다니!

게다가 용돈 삭감과 행동반경 축소는 재앙과도 다름없는 처벌이었다.

“이렇게 해도 보이콧을 할 거야?”

초등학생 같이 유지했지만 매니저는 협박성 발언을 한 뒤 다시 한 번 소녀들을 둘러본다.

그에 소녀들은 강아지처럼 깨갱하는 수밖에 없었다.

궁금하기는 하였지만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 얻는 리스크가 너무나 컸다.

“미, 미안 태연아.”

그 말과 함께 태연의 아군은 우수수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으윽! 얘, 얘들아.”

영원할 것 같았던 멤버들이 매니저의 협박에 하나둘 돌아서자 태연은 신음을 흘리며 매니저를 바라본다.

매니저는 승자의 웃음을 지으며 태연에게 말한다.

“이래도 보이콧을 할 거냐? 태연이 너 혼자 보이콧을 할 태세인데?”

“…끄윽! 제가 졌어요. 안 궁금해요, 안 궁금해! 됐죠?”

절규하듯 패배를 선언하는 태연이었다.

그 모습에 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태연의 패배 선언을 받아들인다.

“그래, 그래야지. 후후후! 그래도 순순히 포기해줬으니 힌트 정도는 주마. 어떠냐?”

“힌트요?”

매니저의 말에 태연과 다른 소녀들의 눈이 반짝인다.

궁금하긴 어지간히 궁금했나보다.

그에 매니저가 피식 웃음을 지으며 힌트를 준다.

“남자 톱스타다. 됐지? 나머지는 알아서 상상하도록 해.”

그 말과 함께 더 이상 소녀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 매니저였다.

하지만… 이미 매니저를 신경 쓰는 소녀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들은 남자 톱스타란 말에 열광하였다.

“꺄아! 톱스타래! 서, 설마! 강동원은 아니겠지? 완전 좋아!”

“조인성일 수도 있어. 조인성! 꺄아!”

남자 톱스타로 추정되는 이름 하나하나가 도마 위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상상만 해도 흐뭇해지는 소녀들이었다.

자신들의 뮤직비디오에 남자 톱스타가 참여하다니!

새삼 자신들의 인지도 상승(?)이 체감되는 소녀들이었다.

이러다가 톱스타와 눈이 마주치면 어떻게 하지?

아니, 만약 톱스타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하면?

그렇게 매니저의 한마디에 핑크빛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소녀들이었다.

실제로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말이지.

뭐 착각은 자유라고 했으니까…….

결코 매니저의 잘못은 아니었다.

익숙한 얼굴이긴 하나 분명 톱스타였으니까.

소녀들을 태운 벤이 촬영장을 향해 다 와가고 있었다.


“잘하기는 하지만… 부족해.”

지영을 보며 창현이 한 말이다.

그 말에 석규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창현을 바라보았다. 분명 자신이 듣기에 지영의 실력은 괜찮았다. 고음 처리나 창법 같은 것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은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보완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노래에 느낌을 담아낸다는 것 자체는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사람의 종류가 각양각색인 만큼 그 느낌을 전달하는 것 자체만으로 뛰어난 능력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그 의문이 이어지려 할 때, 창현의 입이 열렸다.

“지영이 넌 개별적으로 보면 가수를 지망하는 지망생이야. 아직은 연습생이 아니니까. 맞지?”

창현의 말에 지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지영이 동의하는 모습을 보이자 창현이 말을 이어나간다.

“기획사와 계약이 되어 있지 않은 지망생인 만큼 지영이 넌 어느 기획사에서나 탐을 낼 거야. 하지만 말이야…….”

말끝을 흐리며 지영을 바라보는 창현.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석규가 음!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창현이 왜 부족하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석규를 힐끗 바라보던 창현이 말한다.

“개별적으로 보면 한 사람의 지망생이지만 좀 더 가까이서 보면 지영이 넌 아버지의 딸이고 나의 동생이야.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

“…….”

지영은 창현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렴풋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뭐라고 선뜻 말하기가 어려웠다.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창현은 석규를 바라보며 말한다.

“나머지는 아버지가 설명을 좀 해주시겠어요? 아무래도 저보다는 아버지가 설명해주시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요.”

“그러마.”

고개를 살짝 끄덕인 석규는 지영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지영이 네가 만약 연예계에 데뷔할 경우 분명히 꼬리표를 가지고 다녀야 할 것이다. 바로 AA엔터테인먼트 사장의 딸이라는 것과 현의 여동생이라는 꼬리표를 말이다. 이것은 네가 다른 기획사에 가도 바뀌지 않는 것일 것이다.”

“그건…….”

지영은 말을 잇지 못했다. 아직 어리지만 그녀는 석규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던 것이다.

자각하지 못했지만 자신에게 있어 AA엔터테인먼트 사장인 석규와 세계적인 스타인 창현은 자랑거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수로 나아가기에는 난해한 벽이었다.

석규의 말처럼 자신이 가수가 된다면 그 꼬릿말은 당연히 붙게 될 것이기에 그렇다.

“다른 기획사에 가면 지영이 너를 받아줄 것이다. 왜냐? 실력은 둘째 치더라도 지영이 너는 확실하게 이름을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나와 창현이의 존재로 말이다. 그리고 데뷔를 하게 되면 지영이 너는 그룹으로 데뷔하게 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왠지 아느냐?”

지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잘 모르겠어요…….”

그녀가 그 이유를 꿰고 있을 리가 없었다.

고개를 젓는 지영을 보면서 석규가 잔인한 현실을 설명해주었다.

“그 이유는 바로 네 존재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기 쉽기 때문이다. 가령 다섯 명이 데뷔를 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기획사는 지영이 너를 중심으로 밀어줄 것이다. 왜냐? 방금 말한 것처럼 너는 창현이의 동생이기 때문이다. 이미 활발하게 활동을 하여 인지도를 얻어나갈 단계를 지난 창현이는 본격적인 힘을 발휘하기만 하면 그 영향력으로 대한민국을 뒤덮어버리는 것이 가능할 정도다. 당연히 그 동생인 너에 대한 관심은 쏟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지영이 네 실력에 대해 기대를 걸 것이다. ‘오빠는 저렇게 뛰어난 뮤지션인데 동생도 그렇겠지?’ 라는 기대감이 생길 것이고, 그 기대치는 무궁무진하게 올라갈 것이다. 지영이 너는 그 기대치를 충족시켜야 할 것이고,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하게 되면? 결국 넌 노이즈 마케팅의 희생자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너무나 장황하고 복잡한 말이었다.

석규의 말을 들으면서 지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말을 이해하기 바빴던 것이다.

하지만 결론은 이렇다는 것이다. 자신이 가수를 하기에는 무리라는 뜻.

“…….”

지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석규는 간단하게 정리해주었다.

“결국 지영이 넌 웬만한 가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실력이 되어야 욕을 먹지 않고 활동이 가능할 것이다. 안 그러면 대중들의 실망을 산 채 상처만 입고 사라질 테지.”

“그 실력의 기준이 어느 정도죠?”

아직 어려서인지 지영은 확실한 기준을 제시해줘야만 하는 듯하였다.

정확한 기준점을 바라자, 석규가 말해주었다.

“댄스 가수로 하려면 아이비 정도의 실력은 갖춰야 할 것이고, 발라드 가수가 되려면 이수영 정도는 되어야 한다. 즉, 가수들 중에서 톱클래스가 되어야 자립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지영이 넌 창현이의 그늘에 가려질 확률이 높다.”

“아이비… 이수영…….”

지영의 안색이 핼쑥하게 변했다.

아이비와 이수영이라니. 그야 말로 가창력에 있어서는 입증된 인물들이 아닌가?

그 정도는 되어야 욕을 먹지 않고 자립이 가능할 정도라니.

입술을 꼬옥 깨문 지영이 생각에 잠겼다.

너무나 뛰어난 오빠를 두었기에 기쁘다는 생각만 하였지, 그가 자신의 꿈에 걸림돌이 되리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설마 이런 상황에 닥치게 될 줄이야.

생각에 잠긴 지영은 결심을 굳혔다.

아직 시작도 해보지 않은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포기하는 것은 이르지 않은가?

무엇이든 해보고 부딪친 다음에야 결과는 나오는 법이다.

지영은 석규의 설명과 창현의 말을 들었지만 이대로 포기하기 싫었다.

청소년 특유의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는 그런 것도 작용하였다.

“그래도 해보겠어요. 오빠, 한 번만 제게 기회를 줘요.”

“…….”

창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지영을 바라보았다.

그도 머릿속이 복잡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설마 자신이 지영의 꿈에 방해물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도움이 되지 못할망정 망해나 되다니.

만약 자신이 어느 정도 위치에 서 있는 가수였거나 직종이 다른 배우였다면?

오히려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이 지영에게 도와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에 잠겨 있던 창현이 석규를 바라본다.

뚜렷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석규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이럴 때는 역시 삶의 경험이 풍부한 석규가 명쾌한 해답을 내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날카로운 직관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창현은 이제 열일곱이 된 소년에 불과하다. 이렇게 난감한 상황에서 나오는 해답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정답일 확률이 높다.

석규는 창현이 자신을 바라보자 피식 웃음을 지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부리부리한 눈으로 제법 카리스마를 발휘하더니 마지막에 와서는 결국 자신에게 답을 구하는 창현의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여기에서 웃으면 아버지로서, 사장님으로서의 위엄이 떨어진다. 석규는 표정을 관리하면서 창현에게 말한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뭐 있겠느냐? 조건을 걸어놓고 말을 하여라. 몇 년 안에 원하는 수준에 들지 못하면 데뷔는 못하게 하겠다고. 대신 그 안에 원하는 성과를 거둔다면 데뷔를 물심양면 도와주는 것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도와주신다는 겁니까?”

데뷔를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사장인 석규의 몫이다.

창현의 질문에 석규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 관계를 떠나 지영이는 능력이 있는 아이다. 내 기준에 부합되기만 한다면 나는 지영이의 꿈을 도와주고 싶구나.”

석규는 지영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린 듯했다.

그가 그렇게 말하니 창현도 더 이상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창현도 내심 지영의 꿈을 도와주고 싶었기에 그렇다.

생판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동생이 될 지영이 아닌가?

가능성이 있다면 그 가능성을 믿고 도와주고 싶었다.

“…좋아요. 아버지의 결정이 그렇다면 저도 따르겠습니다. 지영아.”

“응… 오빠.”

창현의 부름에 지영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내심 창현이 안 된다고 하면서 이유를 설명할 때 절망하였다. 석규는 도와준다고 하여도 창현만큼은 절대로 도와주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영은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창현의 수락을 얻어내지 못하면 자신은 결코 가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것은 의지 여부를 떠나서였다.

석규가 설명했던 것처럼 자신이 혼자 꿈을 이루겠다고 다른 기획사로 가버리면 분명 그가 말했던 것처럼 소위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패로 쓰일 확률이 높을 테니 말이다.

지영은 창현의 허락을 얻고, 본격적으로 가수의 꿈을 위해 뛰어들고 싶었다.

그런데 창현이 마침내 허락을 한 것이다.

지영으로서는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창현은 지영을 보며 말한다.

“가수를 하기 전에 한 가지 나와 약속을 해야 해. 기간은 3년이야. 정확히 3년. 그 기간 동안 지영이 네가 내 마음에 드는 실력을 기르면 데뷔를 하는 거고 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데뷔를 포기하고 다른 꿈을 찾는 거야. 그에 대해 동의해?”

즉, 창현의 말은 연습생 기간을 3년 동안 하면서 자신의 마음에 들라는 것이었다.

거기에 뚜렷한 기준이 없었다.

기준점이라면 오로지 창현의 마음에 드는 것. 확실하게 정해진 것이 없는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기준이었다.

연습생 기간이 3년이란 것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다. 아이돌 그룹 멤버들 중 3년의 기간은 오히려 평균에서 적을 정도의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짧은 시간도 아니었다. 3년이란 시간 동안 노력을 하게 되면 분명이 성과를 이루게 되리라.

지영은 창현의 말에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알았어. 오빠 말대로 따를게. 3년. 그 기간 동안 내 모든 노력을 기울여서 오빠의 마음에 들 수 있도록 노력할게.”

의욕에 불타는 지영을 보며 석규가 웃음을 지은 채 끼어들었다.

“그럼 결정이 된 거로구나. 잘 됐어. 하하!”

“고마워요, 아빠. 아빠가 아니었으면 창현 오빠의 허락을 얻지 못했을 거예요.”

창현의 허락을 얻어내는데 석규의 공이 컸던 만큼 지영은 석규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그러자 석규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어째 말하는 것이 이상했던 것이다.

“지영아 내가 사장인데 어째 창현이의 의견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냐?”

“이상하게 오빠의 결정권이 더 크게 느껴지던데요?”

지영의 말은 사실이었다. 실제로 석규 또한 창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하려고 했으니 말이다.

“크흠흠! 그렇기는 하지만 이 아빠가 더 결정권이 있는 거 알지?”

뭐랄까, 갑자기 분위기가 확 풀어지면서 가벼워져갔다.

“물론이죠. 아빠가 사장님인 걸요.”

“그렇지, 하하!”

예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돌아오자 창현이 지영을 부르며 말한다.

“지영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앞으로 내가 하라는 대로 착실하게 따라야 한다. 알겠지?”

창현의 말에 지영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 오빠. 오빠만 믿을게.”

“그래, 대답을 하니 마음을 놓인다.”

갑작스럽게 결정이 되었지만 한시름 놓이는 창현이었다.

이제 지영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1월 7일, 뮤직비디오 촬영 할 전날에 벌어진 일이다.


지영의 일을 마무리 지은 창현은 석규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50만장 풀린 앨범이 모두 동이 나서 추가 작업에 들어갔다는 이야기였다.

자신의 앨범이 잘 나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싫어할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지영의 일로 내심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석규는 창현에게 노래로도 다양한 제의가 들어왔다고 말을 전해왔다.

사실 예전에도 제의가 들어온 것이지만 석규가 창현에게 전달하지 않던 새로운 종류의 일이었다.

바로 이벤트 송이나 드라마 OST 제안이었던 것이다.

데뷔를 하기 전에는 얼굴을 드러내면 안 되기에 대외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데뷔 후에는 갑작스레 치이는 스케줄로 인하여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같이 스케줄이 넉넉해진 시점에 창현이 택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미 돈을 벌어야 하기 위해 인지도를 올려야 하는 상황은 끝이 났다. 이제 창현이 하고 싶은대로, 그에게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을 법한 스케줄만 골라서 해도 되는 것이 창현의 실정이었다.

어찌 보면 내일 소녀시대의 뮤직비디오에 참여하는 것도 그와 같은 것이다. 출연 제안을 받아들인 대신 석규는 은연중에 연습생을 트레이닝 시키는 체계적인 방법 같은 것을 들여오는 중이었다. 추후 연습생을 받아들이고 기획사를 운영하려면 기초부터 탄탄하게 트레이닝 시켜야 할 체계적인 방법이 있어야 하니 말이다. SM엔터테인먼트는 대형 기획사 중에서 으뜸을 차지하는 곳이기에 그 방법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완성된 것들이다.

무엇보다 창현이 소녀시대와 친하다는 것도 있기에 그렇지만 말이다.

‘소녀시대는 반드시 뜰 것이다.’

석규는 그런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Tell Me> 열풍으로 소녀시대를 누르고 독보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원더걸스가 있지만 석규는 잠재적인 가능성은 소녀시대에게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소녀시대 멤버 하나하나의 기초가 원더걸스보다 탄탄하다고 여기고 있었기에 그렇다.

원더걸스 개개인의 연습생 기간보다 소녀시대 개개인 연습생 기간이 훨씬 길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간단하다. 세월이 모든 것을 대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긴 시간 동안 연습생 생활을 거쳐온 소녀시대가 기초적인 면에서 더욱 탄탄하다는 이야기였다.

때문에 지금 원더걸스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그 인기가 장시간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보면 차근차근 밟고 올라가는 소녀시대의 인기가 언제든지 원더걸스를 추월할 여지를 보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홉 명의 멤버를 갖춘 소녀시대는 다양한 비주얼과 탄탄한 실력이 뒷받침 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실력이 떨어지는 멤버가 있다 하여도 인원 숫자가 많기에 충분히 채워 넣을 여백도 존재한다.

그런 성공 가능성에다가 대형 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의 적극적인 푸쉬가 있다면?

당장이든 내년이든 성공할 가능성이 대폭 상승하게 될 것이다.

인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은 팬들의 숫자도 늘어난다는 것을 뜻했기에 그때 가서 지금처럼 자주 만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일 것이다.

창현이 소녀시대와 무척 친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석규는 그가 싫어하지 않는 한 스케줄을 최대한 붙여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약 소녀시대가 인기를 얻게 되면 지금 창현 같이 적은 스케줄을 소화할 리가 없다. 대형 기획사이고, 마케팅 비용이나 그런 것에서 엄청난 돈을 들이는 SM엔터테인먼트인 만큼 손익분기점을 넘기 위해 스케줄을 빡빡하게 잡아놓을 것이다.

그리 되면 나중에는 만나고 싶어도 제대로 만나기 힘들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이 힘들어지는 만큼 지금 같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지리라.

그런 날이 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석규는 그에 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녀석이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차라리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말을 하면 편하련만.

막상 그렇게 조치를 취해놓기는 하였지만 석규의 머릿속은 복잡하였다.

그저 친한 누나들이거나, 아니면 그중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는 것. 둘 중 하나만 알고 있어도 대응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 점이 아쉬운 석규였다.


벤을 타고 촬영장으로 가는 소녀들의 머릿속은 달콤한 상상이 가득하였다.

매니저가 전해준 ‘남자 톱스타’ 라는 키워드가 주는 것 하나만으로 소녀들의 상상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보이콧을 하겠다는 말은 삼천리 밖으로 사라진 채 소녀들은 오늘 뮤직비디오에 촬영하러 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토론하기에 바빴다.

태연은 멤버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누구일 거 같아?”

“나는 조인성일 것 같아! 오면 완전 짱일 텐데.”

“송승헌도 좋고 소지섭도 좋고! 다 좋은데 어떻게 하지?”

“잠깐! 지금 그걸 말하는 게 아니잖아. 희망사항을 말하지 말란 말이다.”

그렇게 말하던 태연의 눈이 순간 빛났다. 기발한 생각이 든 것이다.

그녀는 멤버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흐음! 얘들아! 그러면 이건 어때? 톱스타가 누구일지 알아맞히는 거야. 물론 돈을 걸어야겠지? 후후!”

“돈이라고?”

돈 이야기가 나오자 소녀들의 눈이 번뜩인다.

전에 언급한 적이 있지만 회사에서 용돈을 받아쓰는 만큼 소녀들의 용돈은 정해져 있다. 그리고 용돈의 양은 본인들이 느끼기에 항상 부족하였기에 용돈을 아끼기 위해 전쟁과도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태연의 제안은 달콤한 유혹과도 같았다.

맞추기만 하면 상당한 돈을 얻어낼 수 있기에.

그리고 소녀들은 태연의 유혹에 넘어갔다.

“좋아! 하자.”

“재미있겠다. 해보자.”

“좋아, 너무 큰돈은 걸지 말고 오천 원씩 걸고 하자. 맞추면 못 맞춘 애들 돈을 가져가는 거야. 물론 맞춘 사람이 하나도 없으면 내기는 무효가 되는 거고. 어때?”

이미 몇 번 내기를 해본 듯 능숙하게 말하는 태연이었다.

당연히 그것은 멤버들의 호응을 끌어냈다.

그에 태연이 순규를 바라보며 물었다.

“좋아! 내기 시작하자. 써니 넌 누구일 거 같아?”

“나는 동방신기 윤호 오빠일 거 같아.”

방금 전만 해도 소지섭 꺄악 하던 순규는 완전히 달라진 태도로 말하였다.

연신 소지섭을 외치던 것은 그녀의 개인 희망일 뿐이다. 다른 기획사도 그렇고 SM엔터테인먼트도 뮤직비디오에 남자 인물을 출연할 일이 생기면 당연히 자신들 기획사에 소속된 인물을 고용한다.

현실과 이상은 엄연히 다른 법이기에 써니는 주저없이 동방신기를 택한 것이다.

“제법 신빙성이 있는데?”

태연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에게도 돈을 걷으면서 물어보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동방신기 멤버나 슈퍼주니어의 멤버였다. 매니저가 말한 톱스타에 부합하면서 같은 기획사 소속인 만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럼 윤아까지 내기를 끝…….”

윤아가 슈퍼주니어의 시원을 이야기 함으로써 내기를 종료하려던 태연은 멈칫해야만 했다.

주현이 손을 들어 태연에게 말한 것이다.

“언니, 저도 참여할게요.”

“막내 너도?”

태연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아니, 그녀 뿐만이 아니라 다른 소녀들도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러자 주현이 언니들을 둘러보면서 말한다.

“저는 하면 안되요?”

“아, 아니. 평소 내기 같은 건 참여하지 않아서 안할 줄 알았지. 그래, 막내는 누구일 거 같아?”

태연의 물음에 주현은 오천 원을 그녀에게 건네며 말한다.

“저는 의외성에 중점을 두겠어요. 창현이가 올 것 같아요.”

“……!”

주현의 말에 소녀들 몇몇이 움찔하였다. 그녀의 말이 제법 가능성이 있다고 보인 것이다.

순간 몇몇 소녀들의 뇌리에 그럴 수도 있겠다! 라는 메시지가 스쳐지나갔다.

‘서, 설마! 아니겠지.’

그렇게 위안을 삼는 소녀들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소녀시대입니다.”

촬영장에 도착한 소녀들은 단체로 인사를 하면서 감독과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녔다. 그리고는 부지런히 주변을 둘러보면서 뮤직비디오 촬영에 참여할 남자 배우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아직 오질 않았다는 말에 약간 실망한 안색으로 남자 배우가 오기를 기다렸다.

상당히 일찍 도착한 상태였기에 소녀들이 약 삼십여 분을 기다렸을 무렵, 남자 배우 측이 도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그러자 소녀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피 같은 오천 원이 걸려 있는 만큼 누구인지 직접 확인할 생각이었다.

촬영장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은 스타크래프트 벤이었다.

그걸 본 소녀들은 머릿속에서 꽈르릉! 천둥이 내리치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녀들의 뇌리에는 모 광고의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라는 멜로디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너무나 익숙한 모습의 벤.

그것은 다름 아닌 창현이 타고 다니는 벤이었던 것이다.

확인하는 순간 소녀들은 오천 원이 날아갔다는 생각과 함께 묘한 반가움이 교차하고 있었다.


촬영장에 들어선 벤은 그대로 다가와 소녀들 앞에 멈춰선다.

그리고 벤의 문이 덜컹! 하고 열리면서 한 사람이 차에서 내린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창현이었다.

그는 소녀들을 향해 손을 들며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누나들 하이! 요즘 무척 자주 보네요? 날 보기 위해 이렇게 나와 줄 줄이야. 기분이 좋군요, 후후!”

“누가 널 보러 왔다는 거야. 하아! 내 돈… 흑흑!”

태연은 오천 원이 날아가게 되자 괜히 창현의 잘못도 아니건만 그에게 한마디를 톡 쏘아붙이고는 한숨을 내쉬며 우는 시늉을 하였다. 내심 슈퍼주니어 중 한 명이 올 줄 알았는데 예상이 어긋나자 허탈한 마음이 가득하였다.

나름 열심히 분석해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인물을 꼽았거늘 실패할 줄이야.

창현은 갑자기 태연이 자신을 쏘아붙이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음? 뭐지. 누나들 왜 그래요. 수연 누나?”

“몰라. 후우! 창현이가 온 건 반가운데 이걸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창현이 수연을 바라보며 영문을 묻자 수연은 한숨을 내쉬고는 뜻 모를 말을 한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촬영장 안으로 들어선다.

다른 소녀들도 복잡한 표정을 지은 채 한숨을 내쉬고는 촬영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녀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은 ‘내 돈…….’ 이었다.

자신이 온 것과 돈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러자 마중 나온 소녀들 중 남은 것은 주현 밖에 없었다.

창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 주현에게 물었다.

“주현 누나, 다른 누나들 왜 저래요? 뭔가 이상한데…….”

그런 창현의 말에 주현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그리고는 창현의 팔을 잡고는 인사를 한다.

“고마워, 창현아. 덕분에 이길 수 있었어. 케로로 빵이 80개야.”

“뭐라고요?”

주현의 말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 창현이 고개를 갸웃한다. 하지만 주현은 끝내 그런 창현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은 채 고맙다는 말만 하고는 안으로 들어선다.

그러자 홀로 남게 된 창현이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소녀들의 내기 사실을 알지 못하는 한 영원히 풀리지 않을 미스테리였다.


“안녕하세요, 현입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촬영장 안으로 들어선 창현은 오늘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힘써 줄 감독과 스태프들에게 부지런히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창현의 인사성은 무척 유명한 것이었기에 그의 인사를 받은 스태프들은 당황하는 모습보다는 다소 감격에 겨운 모습과 함께 반가운 표정으로 마주 인사를 하였다. 특히 여자 스태프들 같은 경우에는 악수를 청하거나 싸인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창현은 특별한 거부감 없이 싸인을 해주고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분을 쌓아나갔다.

그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특별한 친분이 없어도 어느 정도 선까지는 금방 친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촬영 시작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남아 있었기에 창현은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끝낼 수 있었고, 복장을 갈아입은 소녀들을 향해 다가갔다.

먼저 복장을 다 갈아입은 것은 미영과 주현이었다.

창현은 두 사람에게 다가가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미영 누나랑 주현 누나 복장이 예쁘네요. 오늘 촬영하는 복장이에요?”

여자들이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말이 바로 예쁘다는 말이다.

창현의 말을 들은 미영과 주현은 밝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 말고 창현이 너랑 입는 복장도 있는데 그것도 귀여워.”

“응, 오늘 촬영하는 복장이야.”

그녀들이 입고 있는 복장은 순백 계열의 옷들이었다. 주현은 머리띠를 착용하여 나이에 맞는 귀여움과 청순함을 보이고 있었고, 미영은 머플러? 목도리를 하고 있었다.

복장은 짧은 건데 목도리를 하고 있으니 뭐랄까, 언밸런스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뭐 귀여운 장땡이지 말이다.

소녀란 컨셉에 어울리게 귀여운 모습으로 밀고 나가는 듯했다.

고개를 끄덕인 창현이 미영을 보며 물었다.

“그래요? 음, 간단하게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제가 같이 해야 할 장면은 먼저 누나들이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끝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이건 뭐죠? 먹는 거예요?”

창현이 가리킨 것은 맛있어 보이는 사탕이었다. 빵집에 파는 큰 사탕 있지 않은가? 그게 미영의 손에 들려 있어서 뭐하는 건가 싶어 물어보았다. 설마 촬영을 앞두고 사탕을 먹는 거란 말인가?

그 물음에 미영이 고개를 젓고는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이건 먹는 게 아니라 이번 곡으로 활동할 때 사용할 소품이야.”

“소품이라뇨? 설마 사탕 들고 흔들면서 춤을 추는 거예요?”

순간 창현의 뇌리에서 사탕을 들고 춤추는 소녀들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어린 애처럼 사탕을 들고 춤추다니!

멤버 아홉 명 중에서 일곱 명이 이제 성인이지 않은가?

그래도 뭐… 그중에서 성인이 아니라 중학생처럼 보이는 멤버들도 있으니 딱히 상관은 없지 않을 듯하다.

게다가 사탕 들고 춤추는 장면을 상상해보니 제법 어울리는 것 같고 말이다.

“응! 귀엽지?”

해맑게 웃음을 짓는 미영의 모습에 차마 뭐라고 말을 할 수 없는 창현이었다.

본인이 좋아하는 듯한데 거기에 찬물을 끼얹으면 안 되지.

막상 생각해보니 괜찮은 느낌이었기에 창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생각해보니 괜찮네요.”

“그렇지? 애들도 처음에는 유치하다고 그러더니 나중에는 좋아하더라고.”

“하하하!”

미영의 말에 웃음을 짓는 창현이었다. 그럼 그렇지, 사탕 들고 춤을 춘다고 하는데 그걸 듣고서 우와! 하며 좋아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멋쩍은 미소를 짓고 있던 창현이 주현을 보면서 물었다.

“그런데 주현 누나, 아까 전에 왜 다 나와 있던 거예요?”

“응? 무슨 말이야?”

창현은 자신이 올 때 갑자기 우르르 몰려나온 것을 물었지만 주현은 알아듣질 못했나보다.

그에 창현이 자세히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제가 촬영장에 들어올 때요. 안에 있던 누나들이 갑자기 우르르 몰려나오던데 이상해서요. 제가 온다고 해서 누나들이 그렇게 환영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아닐 텐데 말이죠.”

다른 사람들이라면 이해가 갔지만 상대가 소녀시대이기에 이해가 가지 않는 창현이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라는 의문이 뇌리에 남아 떠나질 않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말에 미영은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창현이 넌 우리가 반겨주지 않았다는 거야?”

“아, 아니오. 그럴 리가요. 그게 아니라 누나들이 갑자기 우르르 몰려 나왔다는 게 조금 이상해서 물어본 거예요. 절대 그런 의미로 그런 게 아니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네?”

창현은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갑자기 왜 나온 것인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잘못 들으면 미영의 말처럼 반겨주지 않았다는 뜻으로 들릴 수 있던 것이다.

뭐라 말을 해야 할지 창현의 얼굴에 난감함이 서릴 때, 미영이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농담이야. 설마 그 말의 의미도 모를 줄 알고? 한국어 열심히 공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자신의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자 미영도 그녀 나름대로 섭섭했다. 창현이 자신의 국어 실력이 부족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 것이다.

“하하! 그러네요. 제가 누나를 얕봤나 봐요. 미안해요.”

“앞으로 얕보면 안 돼! 나도 한국어 잘한다고. 그런데 물어봤던 게 뭐였지?”

약간 어벙한 모습을 보이는 미영이었다. 창현이 자신의 한국어 실력을 무시하는 줄 알고 발끈했다가 정작 창현이 말한 내용을 까먹었으니 말이다.

그에 창현은 웃음을 짓고는 말한다.

“그러니까 제가 차를 타고 촬영장에 도착했을 때, 누나들이 갑자기 나왔잖아요. 왜 나왔는지 물어본 거예요.”

“아! 그게 말이지. 실은…….”

창현의 물음에 미영이 막 입을 열려고 하자 그녀를 제지하는 사람이 있었다.

“언니!”

바로 주현이었다.

미영은 주현이 큰소리로 자신을 부르자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응? 주현아, 왜?”

“잠시 저랑 이야기 좀…….”

창현에게 내기 사실을 알려주기가 싫은 주현이었다. 뭐랄까, 창현의 이름으로 이득을 챙겼다는 걸 창현에게 알려주기 싫다랄까? 게다가 본인이 느끼기에도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었다. 어찌 되었건 간에 자신을 걸고 내기를 한 셈이니 말이다.

그런 주현의 모습에 창현이 끼어들며 제지한다.

“잠깐만요, 주현 누나. 미영 누나가 저한테 이야기 해주려고 하는데 왜 그러시는 거예요.”

“그게 그러니까…….”

마땅히 둘러댈 말이 떠오르지 않자 주현의 얼굴에 곤혹스러움이 떠올랐다.

미영은 그런 주현의 모습에 자신이 말하려던 것을 곧이곧대로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미영이 핑계를 대기 위해 입을 열려고 할 때, 구원의 빛이 다가왔다.

“현 군! 오늘 뮤직비디오에 쓰일 시나리오인데 받아가도록.”

바로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감독이 창현에게 오늘 촬영할 자세한 스토리를 그에게 건네주려고 하는 것이었다.

“아, 예. 일단 누나들 먼저 이야기 나누세요. 금방 올게요.”

그리고 창현은 감독에게 향했고, 미영과 주현은 따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창현이 떠났기에 두 사람은 굳이 장소를 옮길 필요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미영은 주현을 보며 물었다.

“주현아, 왜 그런 거야. 말하면 안 되는 거라도 있어?”

“그러니까… 그런 거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창현이를 두고 내기를 한 건데 돈이 오고 갔으니까, 창현이가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아서요.”

“생각해보니까 그러네?”

주현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미영이었다.

아무래도 본인의 동의 없이 돈이 오가는 내기를 한 것이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막상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면 기분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미영은 주현의 말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웃음을 짓고는 자신보다 큰 주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막내는 생각도 깊지. 나는 그런 걸 생각도 못하는데. 역시 우리 막내는 대단해.”

“대단하긴요.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것들인데요, 뭐.”

별로 대단하지 않은 것 가지고 칭찬을 받자 쑥스러운 표정을 짓는 주현이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미영은 헤헤! 웃으면서 주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띠를 착용하고 있어서 제대로 쓰다듬지 못했지만 뭐랄까, 부드러운 머릿결을 매만지고 있다 보니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창현이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것 같은데.”

어벙한 모습을 보이고는 하지만 둔감한 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미영은 창현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에 주현은 생각해놓은 것이 있는 듯 미영에게 말한다.

“제가 말을 할 테니 언니는 맞춰주시기만 하면 되요. 아셨죠?”

“알았어. 이크, 창현이 온다.”

“잘 맞춰줘야 해요. 언니.”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받아들고 오는 창현을 보며 전의를 불사르는 주현이었다.

그런 주현의 모습에 미영도 주먹을 불끈 움켜쥐며 말한다.

“알았어, 나만 믿어, 주현아.”

한국말을 부지런히 배웠지만 미영은 아직 모르는 게 있는가 보다.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때로는 가만히 있는 게 도움이 된다는…….

미영은 본인이 그런 경우에 속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걸 눈치 채고 있지 못하나 보다.

그러니 어벙하다는 소리를 듣지.


창현이 다가오자 미영과 주현은 눈을 마주쳤다가 창현을 반갑게 맞이한다.

미영은 창현의 손에 들린 걸 보고는 묻는다.

“그게 뭐야?”

그녀의 물음에 창현이 손에 든 종이뭉치를 들어보이며 대답했다.

“아, 오늘 촬영하는 뮤직비디오 있잖아요. 그거 시나리오에요.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려고요.”

“그렇구나. 걱정마, 창현이라면 잘할 수 있을 거야.”

주먹을 불끈 쥐며 창현에게 말하는 미영이었다. 이미 그와는 광고를 촬영한 적이 있었기에 그녀는 창현이 노래만 잘하는 것이 아닌, 연기 같은 것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는 걸 알고 있었다.

미영의 말에 창현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미영 누나. 이거 힘이 나는데요? 오늘도 폐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해야겠네요.”

“폐는 무슨, 우리가 열심히 해야지.”

서로 좋은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가 서서히 풀어지려 하자, 창현이 미영을 보면서 물었다.

“그나저나 물어볼 게 있는데요.”

“응? 뭔데? 뭐든지 물어봐봐. 신체 사이즈만 빼고 다 대답해줄게.”

선정적(?)이라 할 수 있는 말을 서슴없이 말하는 미영이었다.

“언니!”

그에 주현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미영에게 외쳤고, 창현도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알았어요. 신체 사이즈는 빼고 물어볼게요. 그게 아니니까 상관없네요. 제가 누나한테 물어보려던 건 아까 전에 했던 질문이에요. 제가 올 때 왜 나와 계셨던 거예요?”

어찌 보면 별볼일없는 일이지만 창현은 그것이 신경 쓰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자기 자신이 나타나자마자 다른 소녀들이 시무룩한 표정을 짓지 않았던가? 그러다 보니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창현의 질문에 주현이 끼어들었다.

“창현아, 그건 내가 설명할게.”

그러면서 주현이 미영에게 눈짓을 하자 미영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로 물러선다.

“그래, 막내가 말을 더 잘하니까 막내가 설명해.”

바통 터치가 되자 주현이 앞으로 나서면서 간단하게 설명했다.

“우리가 나왔던 이유는 간단해. 회사에서 우리 뮤직비디오에 남자 배우가 참여한다는 사실을 말해줬는데 그게 정작 누구인지 말을 해주지 않았거든. 그래서 언니들하고 누구인지 맞히기를 했어. 그래서 나왔던 거야. 그렇죠, 언니?”

“아…….”

주현의 말에 그제야 상황이 이해되는 창현이었다.

누군지 맞히기를 했으니 당연히 누구인지 우르르 몰려 나왔으리라.

자신들이 고른 인물이 나오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실망한 사람들은 아마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고른 것일 테지.

창현은 주현을 보면서 물었다.

“그럼 정답을 맞힌 사람은 누군데요?”

그 질문에 주현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밖에 없어.”

그렇게 말을 하는 주현은 무언가 뿌듯한 느낌이었다.

그렇지 않겠는가. 아홉 명 중에서 맞힌 사람이 자신 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이는 자신이 가장 창현을 생각하고 있는 듯하여 기분이 더 좋았다.

정답을 맞힌 사람이 주현 밖에 없다는 사실에 창현은 묘한 기분에 사로 잡혔다.

“누나가요? 그래도 어떻게 저를 맞히셨네요. 음, 그런데 무슨 내기를 걸지 않았어요? 제가 보기에는 어느 정도의 돈을 걸고 내기를 했을 것 같은데. 가령 5000원 정도의 돈을 걸고 내기를 했다거나…….”

창현이 주현을 힐끗 보면서 말한다.

그가 알고 있는 소녀들이라면 결코 재미로 알아맞히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 무언가를 걸고 내기를 했을 테지. 그리고 저번에 같이 고스톱을 해본 경력이 있는 만큼 내기에 현금을 걸었으리라는 것이 창현의 생각이었다.

그 말에 주현은 속으로 뜨끔하였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행여 자신의 표정을 창현이 알아차릴까 조마조마하여 슬쩍 그를 보았지만 자신이 들키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이 만난 적이 많아서 그런 것일까.

언니들을 알아도 너무 잘 알고 있는 창현이었다.

하지만 진실을 들킬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주현은 살짝 정색하면서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돈 내기라니 정말 우리를 그렇게 본 거야? 언니, 안 그래요? 창현이가 우리를 돈 내기나 하는 사람으로 보는데…….”

주현의 말을 들은 미영이 주현이 눈짓을 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을 하였다.

“으응, 그러게 말이야. 창현이가 우리를 그렇게 볼 줄 몰랐네.”

두 사람이 말하자 창현은 고개를 갸웃한다. 그녀들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아무래도 주현을 보아하니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괜히 아리송한 느낌에 창현은 고민에 잠기다가 사과를 한다. 아무리 같이 고스톱을 쳤다기로서니 그녀들을 도박소녀시대처럼 말한 것은 자신의 실수인 듯하였다.

“…그래요? 미안해요.”

“아냐.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사과하는 창현의 모습에 주현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고 하였다.

그때, 그들에게 다가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상당히 작은 체구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는데, 주현의 뒤로 은밀하게 다가온 인영은 나직하면서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인가.”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주현이 화들짝 놀라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말을 건 사람의 모습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까, 깜짝이야! 태연 언니 뭐하는 거예요.”

그들에게 다가온 사람의 정체는 다름 아닌 태연이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주현을 보면서 태연이 웃음을 지었다.

“뭐하긴 뭐하겠어. 심각한 표정으로 쑥덕거리는 모습을 봐서 무슨 이야기를 하나 궁금해서 온 거지. 창현이 안녕, 아까 전에 제대로 인사 못해서 미안해.”

태연이 주현의 맞은 편에 있는 창현을 보고는 인사를 한다.

창현 또한 태연의 인사를 받아주며 말한다.

“안녕하세요, 태연 누나. 뭐 이해해요. 방금 전에 주현 누나에게 이야기를 다 들었거든요.”

“그래? 어휴! 그럼 너도 알겠구나. 우리 막내가 어찌 그렇게 예지력이 좋은지. 혼자 맞춰서 그 많은 도…… 읍!”

많은 돈이라 언급하려던 태연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주현의 손이 전광석화와 같이 날아와 그녀의 입을 막아버린 것이다.

입이 막힌 채 읍읍! 거리는 태연에게 눈짓으로 사정을 설명하려는 주현이었다.

하지만 그런 소설 같은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

주현의 손을 떼어낸 태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왜 입을 막어, 이것아! 어휴! 나이는 나보다 어린데 어째 덩치는 멀대같아서 힘도 나보다 센 거야!”

주현을 멀대라고 비유하지만 그 속에는 부러움이 숨겨져 있었다.

멀대 소리를 들어도 좋으니 저렇게 크고 싶건만.

태연이 계속해서 소리치면 불리해지는 건 자신이었기에 주현은 화제 돌리기를 시전 하였다.

“그나저나 언니 패션이 너무 귀여워요.”

“귀여워? 음! 나는 좀 여성스러워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제법 눈치가 있는 태연은 주현이 계속해서 눈짓을 하자 무언가 사정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더 깊이 파고들지 않고 그녀의 장단에 맞춰준다. 나중에 숙소에서 물어보면 되니 말이다.

여성스러워 보인다는 태연의 말에 창현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여성스럽다고요? 그건 좀 아닌 듯하네요, 누나. 오히려 더 어려보여서 중학생이 멋부린 것 같아요.”

창현의 말에 도끼눈을 뜨며 바라보는 태연이었다.

“뭐시라? 너 지금 말 다했어? 감히 중학생 같다니!”

다른 사람은 어려 보인다고 하면 좋아하지만 그것이 태연에게까지 통용되는 말은 아니었다.

자신은 아홉 명이나 되는 소녀시대의 리더다.

여덟 명을 이끌기 위해서는 좀 더 카리스마를 팍팍 뿜어내는 시크한 외모와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기럭지를 보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신은 자신에게 동안의 외모를 주었지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우월한 기럭지를 가져가셨다.

창현은 태연이 폭주할 기미를 보이자 사태 완화에 나섰다.

“농담이에요, 농담. 충분히 여성스러워 보여요. 그 머리, 키 커보이게 하려고 한 거잖아요. 맞죠? 충분히 여성스러워 보이니까 괜찮아요.”

“으으…….”

머리를 뒤로 묶어 위로 향하게 한 이유를 정확하게 간파해내자 태연이 신음을 흘렸다. 이럴 때 만큼은 눈치가 빠르단 말이지.

“그나저나 다른 누나들은 준비가 멀었어요?”

그런 태연의 모습에 창현은 화제를 돌리고자 다른 사람들의 사정을 물었다.

“멀었어. 아직 시간 남았다고 꾸물꾸물 대더라. 굼벵이가 따로 없어.”

정확하게 빈틈을 찔렀음인가.

태연은 속사포로 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특히 수연이! 걔는 완전 굼벵이가 할머니라고 부를 거야. 아침에 매일 늦게 일어나지, 준비도 늦게 하지. 완전 B형의 단점은 다 가지고 있어.”

“어라, 수연 누나가 B형이었어요? 몰랐는데.”

B형이란 말에 창현이 반응을 보이자 고개를 끄덕인 태연이 수연의 험담을 늘어놓았다.

“수연이는 완전 B형 단점만 가지고 있어. 게으르지만 막상 뭘 하려고 하면 적극적으로 하는데 뒷심이 없어. 게다가 가끔 상식에 벗어난 짓도 하고 심술궂지. 무엇보다!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해. 그래서 수연이 때문에 분위기가 가라앉은 게 한두 번이 아니야. 완전… 어휴!”

“하하! 단점이 있긴 있네요. 그래도 수연 누나는 사람이 좋잖아요.”

단점만 생각하게 되면 사람간의 사이가 좋아질 수 없다. 특히 같은 숙소를 사용하는 입장인 만큼 단점까지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창현의 말에 태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그렇지. 수연이가 대외적인 이미지는 차갑지만 멤버들은 끔찍이 챙기거든. 애교도 많고. 하지만 심술궂은 데다가 감정 기복이 심한 건 고쳐야 돼. 어떤 일이 있었냐면…….”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태연은 수연의 단점을 주절주절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절대 말을 하지 않았을 텐데 뭐랄까, 창현은 알고 지내는 사람의 단계를 뛰어넘었다랄까?

지금 이야기하고 있으면 마치 오랜 친구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평소에 수연에게 있던 불만이나 험담을 늘어놓을 수 있는 것일 테지.

“응?”

책 몇권을 써도 부족하지 않을 양의 험담을 속사포로 내뱉던 태연은 어느 순간부턴가 분위기가 싸하다는 걸 느꼈다.

미영과 주현에게 시선을 옮기니 그녀들은 자신을 안쓰럽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태연의 표정이 망연하게 변했다.

“아, 아니지? 아닐 거야. 그렇다고 말해줘, 창현아.”

창현을 태연이 간절하게 묻자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누나, 명복을 빌어요, 아멘.”

“하하하…….”

태연은 뒤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자 삐꺽거리며 목을 돌렸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한 사람의 모습.

바로 대마왕이 그녀의 뒤에 강림해 있었다.


섬뜩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모습. 팬들이 보았다면 얼음공주가 강림한 것으로 보이겠지만 태연의 눈에 보이길, 지금 수연의 모습은 지상에 강림한 한 명의 악마로 보였다.

“하하, 그, 그게 그러니까… 수연아?”

“네 이야기는 아주 잘 들었어. 아주 멋지게 이야기를 하던데. 그것도 창현이 앞에서.”

그 말과 함께 수연은 창현을 힐끗 바라보았다.

자신을 보는 수연의 모습에 창현이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를 보자 수연은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이 느껴졌다.

웃고 있지만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었다.

수연의 시선이 다시 태연에게 향한다.

그녀와 눈을 마주친 태연이 흠칫하면서 몸을 부르르 떤다.

딱 보면 너무나 가련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수연은 태연을 용서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감히! 창현의 앞에서 자신의 험담을 하다니.

평상시 같았으면 당장 태연에게 달려들어 지옥의 얼음 풀코스를 보여주고 싶은 것이 그녀의 심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불행하게도 창현이 앞에 있다.

그러다 보니 본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자신의 흉폭성을 드러낼 인물은 없을 테니 말이다.

수연은 자신만의 고유 스킬인 얼음 레이저로 태연을 완벽하게 제압해놓은 상태였다.

그녀의 상태는 그야 말로 도마 위에 놓인 물고기 신세였다.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소문이 안 날까.’

좋은 이야기만 해도 모자를 판에 자신의 험담을 한 태연의 죄는 실로 막대하다.

태연을 어떻게 처벌할지 고민에 잠기면서 수연은 그녀에게 말을 건다.

“매번 아침에 나를 그렇게 구박하더니 그게 이유가 있었구나? 어쩐지…….”

“그게 그러니까… 수연아! 용서해줘!”

용서를 비는 태연. 하지만 그녀 스스로도 느끼고 있으리라.

자신의 이야기를 들은 이상 수연이 결코 용서할 리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입가에 미소를 띤 수연이 태연에게 묻는다.

“태연아, 너라면 지금 상황에서 용서할 수 있겠니?”

“그, 그건…….”

할 말을 잃은 태연이었다. 그녀도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되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는 건 수연도 용서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최종 그녀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마치… 오지선다형의 문제와도 같았다.

가령 문제는 이럴 것이다.

지금 수연의 뒷담을 하다가 걸린 상태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1, 좌로 가도 죽는다.

2. 우로 가도 죽는다.

3. 앞으로 가도 죽는다.

4. 뒤로 가도 죽는다.

5. 어디로 가든 죽는다.

즉, 죽는다는 건 변함이 없다는 뜻이었다.

입술을 질끈 깨무는 태연. 그녀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여겼다.

그렇다면 그녀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뿐이다.

몸을 홱 돌린 태연이 맹렬한 속도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미안해! 수연아!”

갑자기 도주를 시도하는 태연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던 수연은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는 고함을 지르며 태연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너, 거기서!”

그리고 벌어진 것은 지루한 추격전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창현은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참 시끌벅적하게 지낸다고 생각하였다.


결국 수연에게 붙잡힌 태연은 창현의 시야가 닿지 않는 으슥한 곳으로 끌려가 처참한 응징을 당해야만 했다. 소녀시대의 리더로서 늘 수연을 뛰어넘고자 방법을 모색하는 태연이었지만 결말은 항상 처참하기만 하였다.

조용히 수연에게 끌려가 응징을 당한 태연은 얼핏 보기에는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된 사실이다. 이미 보이지 않는 곳을 공략하는데 달인이 된 수연은 보이지 않게 응징을 가해놓은 상태였다.

소녀들이 준비를 하는 동안 창현은 한쪽에 자리하여 시나리오를 읽고 있었다. 메이킹 필름을 촬영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창현을 촬영하기도 하였지만 메이킹 필름은 말 그대로 제작 과정을 그대로 담아내는 것이었기에 창현은 특별히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채 시나리오를 파악하는데 주력하였다.

이번에 촬영하는 뮤직비디오의 곡은 <Kissing You>라는 곡이었다. 발랄한 느낌을 주는 이 곡은 소녀시대란 이름에 적합하게 느껴지는 곡으로, 밝은 느낌의 곡이었다.

창현이 뮤직비디오 촬영에서 하는 역할은 간단했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소녀들과 노닥거리는 모습만 찍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도 표정 연기 같은 것이 필요하였기에 대충 임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어렵지는 않네.”

특별히 어려운 부분은 없었기에 시나리오를 읽어본 창현이 고개를 나직이 끄덕인다.

그리고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할 시간이 되자 창현은 세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 긴 시간이 흐르지 않았건만 소녀들은 모두 순백의 복장을 입고 있는 상태였다.

치마나 바지가 짧아서 춥지 않을까 염려된 창현은 다가가며 말을 걸었다.

“누나들 모두 예쁘네요. 그런데 춥지 않아요?”

“추, 춥기야 춥지. 하지만 곧 있으면 춤추게 될 거니까 괜찮아.”

창현의 말에 수연이 대답하였다. 추운지 덜덜 떠는 그녀의 모습이 조금 안쓰러운 창현이었다. 겉옷을 걸치고 있다고 하여도 춥기는 추운가보다.

그러던 창현은 구석에서 웅크리고 앉아있는 태연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왜 그러지? 하는 의문에 태연에게 다가간 창현이 조심스레 물었다.

“어라, 태연 누나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아, 그게 그러니까… 크윽!”

뭐라 말을 하려던 태연은 입을 열지 않았다. 어딘가를 보더니 표정을 살짝 찡그리며 더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응?”

태연이 어디를 보고 저러는 것일까 싶었던 창현이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미소를 방긋 짓고 있는 수연의 모습이 보였다.

창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그래요, 누나? 무슨 일 있어요?”

“그게… 아무것도 아니야. 후우!”

뭔가 갈등되는 표정을 짓던 태연이 이내 고개를 젓는다. 그 영문을 모르는 창현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창현이 보지 못해서 그렇다.

자세한 사정을 말하려던 태연이 순간 마주친 수연의 모습은 마치 흉신악살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무시무시한 얼굴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서글플 따름이었다.


복장을 갖춰입은 소녀들은 본격적으로 뮤직비디오 촬영에 임하기 시작하였다.

발랄한 음악에 맞추어 일렬로 늘어선 그녀들은 사탕을 들고 흔든다.

제일 앞에 선 것은 간지작살 촌철살인 우주무적의 눈웃음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미영이 섰다.

그리고 MR이 흘러나오자 좌우로 퍼져 나가면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인원이 많으니 안무를 잘 맞추면 일체감이 들어서 무언가 있어 보인다.

MR에 맞추어 춤을 추던 소녀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아니, 어차피 노래는 나오고 있었기에 입모양으로 뻐끔뻐끔하면서 촬영을 한다.

소녀들이 하나씩 들고 있는 사탕을 들고 음에 맞추어 흔들고 있던 창현은 문득 사탕을 바라보다가 아쉬움을 토로한다.

“여기에 마이크가 없네. 아쉽군.”

예전에 새끼손가락 끝에 마이크를 달고 노래를 불렀던 이정현의 <와>처럼 사탕에 마이크를 장착하고 노래를 부르면 재미있을 텐데 말이다.

그 점이 조금 아쉬운 창현이었다.

“먹는 것도 아니고, 장기 보존도 되니 뭐, 소품 역할에 딱이긴 한데. 마이크로 활용하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말이지.”

진짜 사탕인 줄 알고 깨물어보려던 창현은 스태프가 만류하는 바람에 먹지 않았다. 먹는 게 아니라는 말에 조금 아쉬운 창현이었다. 가령 활동을 하다가 노래를 부르고 나서 출출하면 바로 먹어버리면 괜찮을 텐데, 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 사이 소녀들이 몇 번 NG를 내기도 하고 OK를 받기도 하면서 촬영에 임하고 있었다.

몇 번씩 보면서 흥얼거리며 사탕을 흔들던 창현은 안무가 눈에 익어서 따라 추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다시 춤을 추던 소녀들은 자신들의 춤을 따라 추는 창현의 모습에 놀란 표정을 짓는 게 아닌가?

그에 NG가 나자 다시 촬영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춤을 따라 추던 창현은 도중에 순규가 춤을 틀려서 NG가 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정작 따라 추던 창현은 완벽하게 춤을 소화한 상태.

자신을 바라보는 순규의 시선을 느낀 창현이 그녀와 시선을 마주하며 훗! 하고 웃음을 짓는다. 다른 사람의 노래도 아닌 자신의 노래 안무를 틀리다니.

“이익!”

창현의 웃음이 비웃음이라는 걸 파악했는지 순규가 분한 표정을 지으며 열심히 춤을 춘다. 매일같이 스타크래프트 관광을 당해서 그런지 순규는 무슨 일이건 간에 창현과 승부로 연관시키려고 한다. 그녀는 아마 창현이 자신들의 안무를 완벽하게 소화하내고, 자신은 틀리자 패배감을 느꼈으리라.

그렇게 몇 번이고 춤을 따라 추다 보니 어느새 소녀시대급으로 춤을 출 수 있게 된 창현이었다. 물론 세부 조정을 받아야 하겠지만 얼핏 보기에는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장족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춤이 몸에 익어가자 창현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방송 나가면 써먹어야지.’

이렇게 익혀둔 춤은 나중에 방송에서 큰 도움을 되리라.

겸사겸사 소녀들의 노래도 홍보가 될 수 있을 테니 더욱 좋지 않은가?

그 사이 촬영은 무난하게 흘러갔고, 창현도 완벽하게 안무를 익혔을 무렵, 창현은 갑자기 센터에서 춤을 추던 윤아의 사탕이 사라지는 걸 보았다.

“앗!”

사탕이 사라지자 윤아의 입에서 당혹성이 흘러나왔고, 동시에 NG가 났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창현은 순간 식겁하였다.

사라진 윤아의 사탕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헉!”

사탕을 본 창현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퍽! 콰직!

그러자 날아오던 사탕은 정확히 창현의 앞에 떨어졌다.

창현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소녀들과 스태프들을 보며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다치지 않았어요.”

“미안해, 창현아.”

본의 아니게 창현에게 위협을 가하게 된 윤아가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사과를 하였다.

그에 창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한다.

“아니에요. 고의는 아니잖아요. 그러니 미안해 할 필요 없어요.”

“고마워.”

쿨하게 용서해주는 창현의 모습에 감사의 인사를 하는 윤아였다.

그러다가 촬영 도중 창현이 춤추는 것을 본 수연이 웃음보가 터져서 한동안 지연이 된 적이 있다. 결국 창현은 수연과 개별적으로 시간을 가지면서 그녀를 안정 시켰고, 촬영은 재개될 수 있었다.

그렇게 촬영이 되는 과정에서 사건은 또 일어났다.

안무를 맞추던 도중 다시 한 번 윤아의 사탕이 이탈을 시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사탕이 날아간 곳은 다름 아닌 창현이 있는 곳.

창현은 뒤로 물러나면서 날아오는 사탕을 피했다. 사탕이 날아올 수 있다는 것을 보았기에 당황하지 않고 간단하게 피했다.

퍽! 콰직!

“…….”

아까와 다를 바 없이 깨진 사탕을 보며 창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가온 윤아도 황당함과 미안함이 뒤범벅되어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잠시간의 침묵.

그 침묵을 깬 창현이 윤아를 보며 물었다.

“누나 이거… 고의는 아니죠?”

어째… 고의같이 느껴졌기에 그렇다. 그녀의 연기 실력은 보통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고의인지 아닌지 경계선이 모호한 가운데 1차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이제 창현과 함께 하는 촬영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창현이 먼저 촬영을 하게 되는 사람은 태연과 윤아였다.

그녀들은 순백의 여성의 아름다움(태연의 주장)을 강조하는 복장에서 소녀다운 귀여운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그에 맞추어 창현도 옷을 갈아입었다.

하얀색 와이셔츠에 연두색 계열의 바지를 입은 것이다. 그리고 하얀색 구두를 착용한 창현은 머리가 꽤 길어서 뒤로 꽁무니 머리가 된다는 코디의 열띤 말 하에 뒷머리를 묶기까지 하였다.

남자이기에 먼저 옷을 다 갈아입은 창현은 먼저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태연과 윤아와 달리 아직 여유가 있는 다른 소녀들 앞에 나서면서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훗! 어떤가요, 이 우월한 기럭지.”

175cm의 창현은 그의 말처럼 상체보다 하체가 긴 우월한 몸매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창현은 실책을 범한 것이다.

소녀시대 내에서 기럭지로 괴물 같은 인물이 존재하고 있던 것이다.

창현의 말을 들은 효연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그래봤자 창현이 넌 수영이보다 다리 짧아.”

“…….”

효연의 말에 한순간 할 말을 잃은 창현이 수영을 바라본다.

창현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수영은 훗! 하고 웃음을 짓더니 우월한 다리 라인을 선보였다.

그야 말로 이기적인 길이였다.

“크윽! 이럴 수가…….”

그걸 본 창현은 짙은 패배감에 휩싸였다. 175cm인 자신이 170cm인 수영보다 다리 길이가 짧다니! 이는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전신을 휘감는 패배감에 OTL 자세를 취한 창현은 아직까지 자신은 멀었다고 생각했다. 이제 어느 정도 평균 측에 속하게 되어 안심하고 있었는데 여자보다 다리길이가 짧다니!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었다.

‘두고 보자, 반드시 꺾어주겠다.’

한동안 잊고 있던 작은 키에 대한 패배감이 다리 길이로 옮겨가는 순간이었다.

1년 후 키가 더욱 커서 수영을 꺾어주겠다고 다짐하는 창현이었다.

어쨌든 옷을 차려입은 창현은 긴 하체와 더불어 단추를 잠그지 않은 와이셔츠 사이로 보이는 하얀색 티에는 제법 탄탄하게 보이는 상체 근육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창현이 무척 마른 체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창현의 프로필에는 키가 175cm에 몸무게는 60kg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실제로 보면 호리호리하다는 느낌이 절로 드는데 저 몸무게에 어찌 근육이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하지만 창현도 나름 근육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가슴 근육이 꿈틀거리고 배에는 왕자가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보면 탄탄하다, 라는 느낌을 줄 정도의 몸매를 갖추고 있던 것이다.

게다가 뒤로 묶은 머리로 인하여 차분한 느낌이 드는 본래 느낌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뭐랄까, 약간 장난꾸러기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느낌이 들었다.

먼저 옷을 입은 창현이 다른 소녀들과 투닥거리고 있을 때,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갔던 태연과 윤아가 다 갈아입고 나왔다.

그녀들 또한 귀여운 복장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창현은 윤아의 복장을 보는 순간 역시, 예쁘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태연을 보는 순간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놀란 창현의 시선에 태연이 훗! 하고 도도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예쁜 건 역시 알아보는 눈이 있군.”

자부심이 가득한 태연의 말에 창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감탄사 섞인 소리를 흘렸다.

“그게 아니라… 와! 진짜, 태연 누나 대단해요. 진짜 중학생 같은데요?”

창현의 말에 한껏 자부심이 서려 있던 태연의 표정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그녀가 창현을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뭐, 뭐시라?”

“풉!”

옆에 있던 윤아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창현의 말처럼 그녀 또한 그렇게 느끼고 있던 것이다.

준비를 끝마치자 본격적으로 창현과 태연, 윤아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붉은색 소파에 앉은 창현이 먼저 자신의 우측에 앉은 태연과 가위 바위 보를 하며 노는 장면을 촬영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좌측에 앉은 윤아를 귀여워(?) 해주는 장면을 촬영하면 된다.

촬영에 들어가기에 앞서 창현과 태연은 연습 삼아 가위 바위 보를 하고 있었다.

장난으로 가위 바위 보를 하던 태연은 문득 생각 난 듯 창현에게 말한다.

“창현아, 우리 가위 바위 보해서 알밤 맞기 하자. 어때?”

“알밤 맞기요? 설마 이거요?”

창현이 엄지손가락으로 중지손가락을 꾸욱 누르다가 튕기며 말한다.

그걸 본 태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거. 어때? 하자.”

“저 이거 진짜 센데요? 맞으면 누나 울지도 몰라요.”

진지한 표정을 지은 창현이 태연에게 경고를 한다.

하지만 그런 창현의 말은 태연을 위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전의를 불사르게 만들었다.

“나도 세거든? 한 번 해보자.”

“알았어요. 저 원망하지 마세요.”

“그건 내가 할 말이야.”

그와 함께 두 사람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제 말이 맞죠? 저 이거 엄청 세다니까요.”

결말은 순식간에 났다. 자신의 파워가 대단하다고 자부하던 태연은 결국 일반 여성의 범주에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으으으…….”

이마를 움켜쥔 채 태연이 신음을 흘렸다.

창현의 말은 사실이었다. 호리호리한 모습과 달리 그의 파워는 상상을 초월했던 것이다.

태연은 창현의 일격을 맞는 순간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는 듯한 충격을 맛보아야만 했다. 결국 그녀는 눈물을 머금고 포기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창현의 파괴력은 가공할 정도였다.

“이마가 빨개졌어. 어떡해.”

태연은 붉어진 자신의 이마를 보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창현은 그런 태연의 반응을 간단하게 일축해주었다.

“괜찮아요. 어차피 누나는 앞머리 내리잖아요. 빨갛게 변한 거 티나지 않을 거예요.”

“…….”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창현이 미운 태연이었다.

괜찮다고 했지만 설마하니 세게 때릴 줄이야.

‘난 절대 무서워서 그러는 게 아니야. 내가 누나니까 넓은 마음으로 참는 것뿐이었다.’

콱 한 대 쥐어박고 싶지만 자신이 누나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봐준다고 생각하는 태연이었다. 실은 한 대 콱 쥐어박았다가 후환이 두려워서 그런 것임에도 말이다.

“후후후!”

태연이 침묵하자 창현은 승자의 미소를 짓는다.

역시 승부는 이겨야 제 맛이었다.

이기면 기분이 좋지 않은가?

태연을 꺾음으로써 방금 전 수영의 다리 길이 굴욕 사건을 잊어버릴 수 있는 창현이었다.

“나랑 해보자, 창현아.”

그때, 옆에 있던 윤아가 창현에게 말을 걸었다.

“네? 윤아 누나도 하자고요?”

갑작스러운 승부 신청에 창현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방금 전 태연이 당하는 모습을 보았을 텐데 대결 신청이라니? 어안이 벙벙하였다.

창현이 다시 한 번 물었다.

“정말하자는 거예요? 정말?”

“왜? 이상해?”

“딱히 이상할 건 없지만…….”

태연이 자신에게 당하는 모습을 보았을 텐데 대결을 시청하는 모습이 의외여서 그렇다.

“뭐, 누나가 하자면 하죠. 대신 전 봐주지 않아요. 아시죠?”

“물론이야.”

“윤아 파이팅! 내 복수를 꼭 해줘!”

윤아가 하겠다고 하자 그녀를 응원하는 태연이었다. 반드시 창현이 당하길 간절히 바라는 태연의 모습에 창현은 웃음을 지었다.

“후후! 그래봤자 태연 누나는 패자일 뿐.”

“…내가 알밤 이거 연마해서 재도전 할 거야. 두고 보자.”

패자의 변명을 냉정하게 외면하면서 창현이 윤아를 향해 말했다.

“룰 아시죠? 가위 바위 보 해서 이긴 사람이 알밤 때리는 거예요.”

“알아. 그런데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자신을 보며 말끝을 흐리자 창현은 고개를 갸웃한다. 물어볼 것이라니? 뭐가 궁금하단 이야기란 말인가.

“뭔데요? 이상한 게 아니면 전 상관없어요.”

“응. 아까 촬영할 때… 수연 언니랑 뭐했어?”

윤아가 묻는 내용은 아까 촬영할 때 창현의 춤을 보고 수연이 빵 터진 탓에 그가 수연을 진정 시키기 위해 데리고 가서 진정 시키고 온 것을 묻는 것이었다.

그 물음에 창현이 물었다.

“아까요? 아, 수연 누나가 막 웃을 때요?”

“응.”

“아, 그거 수연 누나가 한 번 빵 터지면 어떤 특정한 걸 보면 계속 웃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바꿨죠. 제 춤을 보고 웃는 걸 다른 걸로요.”

그 말은 즉, 창현이 수연에게 다른 것으로 웃겨서 그녀가 웃음을 그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구나. 그런 거였어.”

작게 중얼거리는 윤아는 속으로 극도의 질투심을 느끼고 있었다.

수연 언니를 웃기기 위해 노력하는 창현의 모습이 선했다.

자신도 거기까지는 가보지 못했는데! 수연을 위해 노력하는 창현의 모습을 생각하자 윤아는 자신도 모르게 확 치미는 질투심에 당혹스러운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하지만 이것 만큼은 확실하다.

자신의 마음을 모른 채 여기저기 여러 여자에게 친절을 베푸는 창현이 괘씸하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녀석은 맞아야 정신을 차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윤아는 전의를 불태우며 창현에게 말했다.

“그럼 하자. 가위 바위 보부터 해야지?”

“네, 그렇죠.”

창현은 무언가 급변하는 듯한 윤아의 분위기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위 바위 보를 준비한다.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본 채 가위 바위 보를 준비한다. 그에 태연이 중간에서 가위 바위 보를 외쳐준다.

“가위 바위… 보!”

태연이 보를 외치자 창현과 윤아가 각기 준비한 것을 낸다.

창현은 주먹을 내밀었고, 윤아는 보자기를 내밀었다.

그런고로 윤아의 승리.

“누나가 이기셨네요.”

창현은 당황하지 않은 얼굴로 입을 연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가 세봤자 얼마나 세겠냐는 생각을 태연과 하면서 갖게 된 것이다. 아무리 세다고 해도 결국 여자는 여자였다.

어찌 보면 성차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창현이었지만 그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윤아는 엄지로 중지를 꾹 누르더니 입으로 가져가 하! 하고 불며 경고했다.

“조금 아플 테니까 준비해둬.”

“전 언제나 준비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여유 있는 얼굴로 이마를 대는 창현이었다.

그에 윤아는 창현의 이마에 손을 내밀었고, 풀로 충전된 그녀의 알밤이 창현의 이마를 강타하였다.

따아아악!

경쾌한 소리!

피부를 파고들어 뼈로 스며드는 듯한 강렬한 통증이 창현의 이마를 강타하였다.

이것이 여성이란 성별이 낼 수 있는 파괴력이란 말인가.

창현은 자신이 착각했다는 것을 알아차림과 동시에 알밤 하나로 정신이 까마득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평생을 가도… 잊지 못할 파괴력인 듯하였다.

여자라고 얕보다가 된통 깨진 창현이었다.


태연과 윤아의 촬영을 빠르게 끝낸 창현은 곧바로 다음 촬영에 임하게 되었다.

다음 촬영은 순규와 유리, 두 사람과 하는 것이었다.

연두색 셔츠를 입고 하얀색 바지와 하얀색 상의를 입은 창현이 촐싹 맞은 춤을 추면서 두 사람과 함께 하는 장면을 촬영하였다.

촐싹 맞은 춤을 보면서 박수를 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보기에는 우습기만 한데 말이다.

어쩌면 박수를 치면서 속으로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창피하였지만 어찌하겠는가. 이게 자신이 할 일이었는데 말이다.

자신이 추자 촐싹 맞은 춤도 느낌이 있다고 주변 사람들이 칭찬해주었지만 내심 민망했던 창현은 빠르게 촬영을 마친 뒤 옷을 갈아입었다.

다음 촬영은 미영과 하는 촬영이었다.

분홍색을 좋아하는 미영의 취향에 딱 맞게 이번에는 창현도 하얀색 바지에 분홍색 바탕 하얀색 물방울무늬가 들어간 셔츠를 입었다. 그리고 하얀색 조끼를 걸쳤다.

옷을 다 입은 창현이 촬영장으로 오니, 먼저 옷을 다 입은 미영의 모습에 눈에 들어왔다.

미영은 의자 위에 놓여있는 뭔가를 열심히 노려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창현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미영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미영 누나, 뭐해요?”

“까, 깜짝이야! 아, 아하하! 창현이였네.”

창현의 부름에 미영이 화들짝 놀란 모습을 보이다가 이내 그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에 창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렇게 놀라는 거예요? 뭔가 수상한데요?”

“수, 수상하기는! 내가 수상한 짓을 할 리가 없잖아!”

말을 더듬는 모습이 매우 수상해 보였다.

하지만 종종 그녀가 수상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창현은 별다른 의심 없이 넘어갔다. 원체 행동 자체가 허술하다 보니 다른 누나들에게 많이 당한 기억에 그녀가 수상하게 보인 것일 확률이 높았으니 말이다.

“흐음! 그것도 그러네요.”

“그렇지. 내가 왜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겠어. 안 그래? 헤헤! 그나저나 창현이 분홍색 셔츠 입었네. 멋있다.”

분홍색 매니아답게 미영은 창현의 분홍색 복장을 보고는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다가와 ‘멋지다.’라는 말을 연발하였다. 아무래도 창현이 옷을 입을 때 분홍색 종류의 옷을 입은 적이 없었기에 더욱 멋지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영의 말에 창현도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누나도 귀여워요. 분홍색이 잘 어울리네요.”

“정말? 창현이가 말해주니 더 좋네.”

머리를 뒤로 묶은 미영의 모습은 무척 귀여웠다. 소녀시대 내에서 최고의 인지도를 자랑하는 모습답다랄까.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촬영 준비를 마칠 무렵, 점심시간이 되어 식사를 하러갔다.

아무래도 외진 스튜디오다 보니 단체로 식당에 가서 먹는 것이 아니라, 미리 준비해둔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게 되었다.

도시락을 건네는 스태프는 무척 미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도시락 자체도 고급스러운 것이었기에 개의치 말라는 말과 함께 점심식사를 시작하였다.

세희는 도시락을 먹으면서 창현에게 웃음을 지었다.

“후후! 창현이 너 분홍색 계열 옷 잘 어울리는데? 이참에 다음 컨셉은 분홍색 복장으로 하는 게 어때? 팬들이 아주 좋아할 것 같은데.”

“그런 말 하지마세요. 상상만 해도 끔찍해요.”

질색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창현이었다.

아무래도 마초적인 그런 것보다 블링블링한 것들을 좋아하는 창현이었지만 분홍색 계열은 낯 뜨거움의 절정이었다.

뭐랄까, 입어놓고 정작 자신이 보면 민망하다랄까.

다른 사람들은 분홍색 복장을 완벽하게 소화했다고 엄지손가락을 내밀고는 하였지만 정작 창현은 영 아니올시다, 였다.

“왜? 잘 어울리는데.”

“보는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저는 좀 그래요. 빨리 촬영을 끝내려고 했는데 점심시간이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복장을 갈아입지 않는 건데 그랬네요.”

“그 정도야? 그렇게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창현이 분홍색을 싫어하는가 보다, 라고 생각하는 세희였다.

그에 창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게 싫은 건 아니지만 제가 조금 민망해서 그래요.”

그 말과 함께 두 사람은 식사를 계속하였다.


식사를 마친 뒤 촬영은 재개되었다.

미영은 창현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물었다.

“창현아, 괜찮아?”

뜬금없는 미영의 물음에 창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괜찮아? 라니? 무슨 말을 하는 것이란 말인가.

방금 전 윤아도 그렇고 뭐랄까, 자신은 잘 모르는데 뜬금없는 질문을 곧잘 받는다고 생각하는 창현이었다.

“네? 뭐가요?”

“응? 아, 아니야.”

창현이 오히려 되묻자 미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고개를 젓는다.

그 모습에 창현은 무언가 수상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자신의 착각이려니 생각하였다.

그와 함께 촬영이 시작되었다.

먼저 촬영하는 부분은 두 사람이 몸을 밀착한 채 카메라를 향해 턱을 괴고 원 샷을 찍는 부분이었다.

분홍색 거대한 의자에 창현이 먼저 앉았다. 그리고는 미영의 손을 잡아 끌어올려 주었다.

의자 위로 올라선 미영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고, 고마워, 창현아.”

“뭘요. 이 정도는 당연한 거죠.”

단순히 손을 잡아주었을 뿐인데 얼굴을 붉히는 미영의 모습에 창현은 살짝 걱정이 되었다.

‘이 정도로 얼굴을 붉히면 힘들 수도 있겠는데?’

몸을 붙인 채 원 샷을 잡는 것이니 만큼 능숙하게 해내면 빠르게 끝낼 수 있겠지만 방금 같은 미영의 반응이라면 제법 힘들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창현이었다.

‘미영 누나도 프로일 텐데 잘 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창현과 미영은 본격적인 촬영을 시작하였다.

창현과 미영의 몸이 찰싹 붙었다. 옆으로 붙은 것에 불과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닿아 있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 그리고 불이 깜빡이는 카메라를 향해 손으로 턱을 괴며 함께 원 샷을 찍는다.

단번에 OK사인이 떨어지자 창현은 밝은 표정을 짓는다.

버벅 거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 번에 성공한 것이다.

창현은 미영을 보면서 말한다.

“누나 잘하시네요. 좀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어렵기는 무슨! 나도 나름 프로라고!”

자신의 실력을 낮추는 말 때문일까.

발끈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창현에게 자신도 프로라고 주장하는 미영이었다.

그에 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한다.

“그렇죠. 누나가 편하게 느껴져서 그랬나봐요. 미안해요.”

“으응, 편하다고? 미안하긴 무슨! 그럴 수도 있지.”

자신이 편하게 느껴진다는 말에 표정이 확 풀어지는 미영이었다.

그 모습에 창현은 웃음을 짓고는 다음 촬영에 임했다.

다음 촬영은 하트 모양의 쿠션을 꼭 껴안고 창현과 미영이 서로를 기대며 자는 포즈를 취하는 장면이었다.

양손을 모으고 오른쪽 뺨에 갖다 댄 미영이 머리를 창현의 왼쪽 어깨에 기댔고, 창현은 쿠션을 안은 채 눈을 감고는 자는 포즈를 하였다.

그러면서 다리를 물장구 치듯이 흔들면 되는 것이다.

이번에도 성공적으로 OK.

연속 두 번을 성공리에 끝내자 창현과 미영은 들뜬 표정을 지었다.

NG 없이 순조롭게 나아가고 있으니 그런 것이다.

창현이 미영을 보며 말했다.

“누나랑 호흡이 잘 맞나 봐요. 이렇게 척척 OK 사인이 나오는 걸 보면 말이에요.”

“그래? 나도 창현이랑 한 번에 끝내니까 기분이 좋다.”

호흡이 잘 맞는다는 말에 밝은 표정을 짓는 미영이었다.

그 외에도 둘은 그야 말로 순조롭게 촬영을 풀어나갔다.

쿠션으로 얼굴을 가린 채 서로 어깨동무를 하는 장면이나, 미영의 키스 총에 쓰러지는 장면이나 모두 한 번에 OK 사인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다 보니 창현과 미영은 스태프들에게 찰떡호흡 커플로 보이고 있었다. 뭐든지 척척 해내니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마지막 장면이네요. 진짜 이렇게 순식간에 끝날 줄은 몰랐어요.”

마지막 장면을 남겨놓고 창현이 미영에게 말했다. 그냥 지나가듯이 찍은 장면이 있었는데, 창현과 미영이 워낙 찰떡호흡을 보이다 보니 감독이 더 좋은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재촬영을 요구한 것이다.

이미 시나리오를 꿰고 있는 창현이었지만 감독이 특별히 지시한 장면이니 만큼 더욱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시나리오가 적힌 종이 뭉치를 가지고 왔다.

그러자 갑자기 미영이 잔뜩 굳은 표정을 짓는 게 아닌가?

창현은 그런 미영의 모습을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왜 그래요, 미영 누나?”

“으응? 아, 아니야. 아무것도. 그러고 보니 아까 전에 감독님이 촬영 장면을 살짝 바꾼 게 있거든. 확인해봐.”

“아, 그래요?”

미영이 굳었던 이유가 그것이라 생각하며 창현은 종이를 빠른 속도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창현은 미영이 말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컴퓨터로 뽑은 종이에 죽죽 그은 뒤 무언가 고친 것이 보였던 것이다.

그걸 보던 창현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하아?”

그가 황당한 표정을 지은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수정된 부분이 어처구니가 없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감독이 재촬영을 요구한 부분은 미영이 창현에게 하트 모양의 쿠션을 내미는 것이고, 창현이 그것을 사랑스럽다는 얼굴을 하며 받아드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수정된 장면에는 미영이 창현의 볼에 뽀뽀를 함과 동시에 쿠션을 내미는 것으로 되어 있지 않은가?

<쿠션을 내민다.> 이 부분에서 ‘쿠션을’ 부분이 가로로 죽죽 그어져 있었고, 그 대신에 <볼에 뽀뽀를 하며 쿠션을 내민다.> 로 수정이 되어 있었다.

그것도 분홍색 펜으로 말이다.

그걸 지켜보던 창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랄까, 아주 수상한 냄새가 났던 것이다.

‘이거 뭔가 아주 수상한데…….’

과연 감독님이 분홍색 펜으로 수정을 했을까? 널리고 널린 게 검은색 펜인데?

창현이 미영을 바라보자 그녀는 고개를 홱 돌리면서 딴청을 피운다.

그 모습을 본 창현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분홍색 매니아가 옆에 있고, 무언가 아는 듯이 물어보는 걸 보면 바로 짐작이 가지 않겠는가.

그녀가 왜 아까 전부터 수상한 모습을 보였는지 이해가 되는 창현이었다.

이렇게 자체적인 수정을 거쳐놓았으니 그러는 것일 테지.

창현은 미영을 보면서 말했다.

“전 이거 언제 바뀌었는지 몰랐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그 물음에 미영이 눈에 띄게 몸을 움찔 떨더니 창현에게 버럭한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지, 지금 날 의심하는 거야?”

없던 의심도 생겨나기 만들어주는 리액션이 아닐 수 없었다.

피식 웃음을 지은 창현이 어깨를 으쓱한다.

“의심하긴요? 제가 언제 의심했다고 그러세요?”

“차, 창현이 네 말이 그렇게 느껴지는데?”

태연하게 대답하는 창현의 모습에서 자신의 실수를 자각한 미영이었다.

그런 미영의 말에 창현은 그녀의 눈과 마주하더니 물었다.

“정말 제 말이 그렇게 느껴졌어요? 정말?”

“으… 아, 아니.”

눈과 눈이 마주치자 순간 부끄러워진 미영은 시선을 피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지는 창현이었다.

자신보다 세 살이나 많지만 뭐랄까, 여동생 같은 느낌이랄까.

놀리는 맛도 있고, 보살펴줘야 할 듯한 느낌도 났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미영이 창현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차, 창현아, 물어볼 게 있어.”

“뭔데요? 말해보세요.”

의아한 표정을 지은 창현이 되묻자, 미영이 입술을 꼬옥 깨물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뽀뽀 해주는 게 그렇게 싫어?”

아무래도 창현이 미영에게 물었던 것 자체가 그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나보다.

그 물음에 창현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저으려다가 살짝 장난기가 들어 말한다.

“음, 다른 누나들이라면 좋을지도?”

“그럼 나는 싫다는 이야기야?”

미영의 표정이 날카롭게 변한다. 내심 좋다고 할 것이라 기대를 했는데 기대를 저버린 채 싫다는 의향을 보인 것이다.

날카로운 그녀의 반응에 창현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녀가 그런 표정을 지을 줄 몰랐던 것이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미영의 표정, 그것은 틀림없는 질투의 표정이었다.

창현은 한눈에 그녀의 심리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미영 누나가 질투심이 있었나? 그런데 왜 질투를 하는 거지?’

막상 자신에게 왜 질투의 감정을 보이는지 이해가 안 되는 창현이었다.

우선은 질투의 표정을 보이는 미영을 달래는 것이 우선이었다.

“설마요. 누나가 해준다면 영광이죠, 하하!”

“정말?”

창현의 말을 들은 미영이 언제 날카로운 표정을 지었냐는 마냥 밝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너무나 순식간에 변하는 그녀의 모습에 창현은 다소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에, 그렇죠. 영광이죠. 하지만 힘든 게 있잖아요. 안 그래요?”

“그거야 그렇지…….”

침울하게 바뀌는 미영의 얼굴이었다. 역시 안 되는 건 안 되나보다.

창현은 미영의 표정이 침울하게 바뀌려하자 그녀에게 물었다.

“근데 이거 정말 누가 고친 거죠?”

“나, 나는 아니라니깐?

그러면서 시선을 홱하니 돌리는 미영이었다. 창현의 시선과 마주치는 것이 두려웠다.

그 모습에 창현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제가 이거 감독님한테 물어보고 옵니다?”

고개를 돌려 창현의 시선을 피하고 있던 미영이 화들짝 놀라서 되물었다.

“가, 감독님한테 물어보겠다고?”

설마 창현이 이렇게 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미영의 놀라움은 컸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큐 싸인이 떨어지면 순순히 당해주는 걸로 훈훈하게 마무리(?)가 될 텐데 감독님에게 물어보겠다니!

의외의 상황에 당혹한 표정을 짓는 미영이었다.

그런 미영의 모습에 웃음을 지은 창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네,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물어보고 올게요.”

“으응. 그, 그래…….”

이미 자백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상황이었다. 여기에서 창현이 알면 자신에게 실망할 것이란 생각에 미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모습에 창현은 속으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저렇게 얼굴에 다 티가 나는데 자신이 눈치 챈 것을 모르고 있다니.

놀리는 맛이 쏠쏠한 미영이었다.

저렇게 허술한 모습을 보이니 다른 멤버들도 놀리는 것이리라.

그리고는 창현이 감독에게 향했다.

곁눈질로 슬쩍 살피니 미영이 초조한 안색으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에 창현이 피식 웃음을 짓고는 감독님에게 다가가면서 물었다.

“감독님 이거 감독님께서 수정하신 건가요?”

“수정? 흐음! 글쎄…….”

수정이라는 말에 감독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창현이 내미는 종이를 받아든다.

그리고 미영이 수정한 것을 보더니 눈을 빛냈다.

“호오! 이거 재미있겠는데? 이거 누가 수정했지?”

“에? 그, 글쎄요…….”

미영이 수정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창현은 말할 수 없었기에 얼버무렸다.

그러자 한동안 그걸 지켜보던 감독이 창현을 보며 말한다.

“이거 이렇게 촬영하는 게 어때?”

“네?”

감독의 말을 들은 창현은 순간 어이가 없어서 되묻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수정한대로 촬영이라니?

전혀 그럴 것이라 예상하지 못한 창현이었다. 미영을 놀려주기 위해 장난스럽게 물은 것인데 설마 감독이 그걸 하자고 말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놀란 창현이 반문하자 감독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농담이니 그런 표정 짓지 말라고. 이건 무리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감독의 말처럼 수정된 시나리오는 약간 무리수를 두고 있다.

시나리오대로 하면 미영이 창현의 볼에 뽀뽀를 하는 것인데 그것만으로 충분히 이슈 몰이를 할 수 있지만 창현이나 소녀시대나 둘 모두 득보다 실이 많을 테니 말이다.

“할 수만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군. 이건 누가 장난을 친 것 같으니 원래대로 하면 될 것 같고. 알겠지?”

“알겠습니다.”

누군가의 장난으로 치부하는 감독이었다.

그에 창현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영에게 돌아온다. 순간 저대로 진행하는 게 아닐까 싶어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이었다.

창현이 다가오자 미영이 그에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차, 창현아. 감독님이 뭐라고 하셔?”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표정에서 감정이 다 드러나는 건 일종의 약점인데,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당장의 재미가 우선이었다.

창현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 누가 장난친 거 같다고 하네요. 수정된 건 가짜래요.”

“그래? 그렇구나…….”

뭘 기대한 걸까.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짓는 미영이었다. 아직도 자신이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재미있는 창현이었다.

실망한 듯한 미영의 모습에 창현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촬영이 시작되자 다시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촬영에 임하기 시작했다.

미영과의 촬영을 끝낸 창현이 그 다음 임한 것은 수연, 효연과의 촬영이었다.

효연은 양 갈래로 머리를 땋았고, 수연 또한 양 갈래로 머리를 땋아서 동그랗게 말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머리를 하였다.

같이 하트를 그리기도 하고,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기도 하면서 노는 분위기로 촬영을 끝마칠 수 있었다.

마지막은 수영, 주현과 하는 촬영이었다.

“크윽!”

수영을 보는 순간 창현은 신음을 흘렸다. 아까 전에 느껴야 했던 다리 길이 굴욕 사건이 떠올랐던 것이다.

“훗!”

수영은 그런 창현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가 침음을 흘리자 무엇을 의미하는지 간파했던 것이다.

그렇게 사적인 신경전(?)을 접어두고 촬영을 개시하였다.

이번에 촬영하는 것은 신데렐라가 두고 간 유리 구두의 주인을 찾는 왕자님처럼 창현이 신발을 들고 와 수영과 주현에게 신겨주는 모양새를 취하면 되는 것이다.

노래에 맞춰 수영에게 신발을 씌워줄 듯이 모양새를 취하던 창현은 슬쩍 몸을 돌려 주현에게 향한다.

주현은 뭐가 불안한지 창현을 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왜 저러지?’

의문이 드는 창현이었지만 그걸 겉으로 내색할 수 없었기에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는 주현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응?”

주현에게 향하던 창현은 순간 몸을 멈칫하였다.

그녀에게 다가가니 뭐라고 해야 하나, 기묘한 냄새가 나고 있던 것이다.

그것은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하나… 퀴퀴한 냄새였는데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발 냄새와도 비슷한…….

‘발 냄새?’

순간 정신이 퍼뜩 드는 창현이었다. 그러면서 주현이 왜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을 지었는지 알 것 같았다.

창현의 시선이 주현에게 향하자 그녀가 퍼뜩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말하지도 않았는데 맹렬하게 고개를 젓기 시작한다.

“나, 나는 아니야. 이 신발 때문에 그래. 믿어줘, 창현아.”

“에? 에, 에… 네, 알겠어요.”

주현의 해명에 압도된 창현이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주현의 외침 때문에 그 장면은 NG가 날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 번 촬영에 임할 때, 기묘한 냄새는 계속해서 퍼졌으나 창현과 주현은 의식적으로 그것을 무시한 채 촬영에 임했고, 한 번에 OK를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을 끝으로 뮤직비디오 촬영은 끝을 맺었다.

마지막으로 메이킹 필름 서비스를 위해 창현이 직접 사탕을 들고 <Kissing You>의 안무를 선보임으로써 광고 촬영을 끝맺을 수 있었다.

하지만 끝끝내 기묘한 냄새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제41장 재혼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이후 창현은 이렇다 할 스케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빌보드 앨범 차트 순위권 내에 진입은 하였지만 1위는 하지 못했다는 점이랄까.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지만 창현은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미국에 가서 직접 활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순위권에 든 것만으로 감지덕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건 창현은 애초에 이러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 예상하였다. 아니, 순위권에 들더라도 하위권에 들 줄 알았는데 상위권에 든 걸 보고는 의외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창현이 1위를 차지한 것을 보고는 그가 손쉽게 1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나보지만 실제로 1위 말고 순위권조차도 대단히 들기가 어렵다. 세계 최대 시장이라 불리는 미국이 만만할 리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창현을 보고 아쉽지 않냐는 물음을 던졌지만 창현은 오히려 예상 외로 앨범이 잘나간 것 같아 흡족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별히 스케줄이 없는 창현은 날마다 녹음실에 머물면서 가끔씩 잡히는 인터뷰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정규 3집 앨범을 내면서 깨달은 것들이 있기에 그것들을 정리하면서 자신이 부족한 점을 하나하나 적어놓고, 그것을 보완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띵동!

오늘도 집에서 빈둥거리기보다는 녹음실에 와서 시간을 보내던 창현의 녹음실에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구지?”

딱히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녹음실에 누군가가 찾아오자 창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 문앞으로 나간다.

자신의 숙소는 일찌감치 위치를 들켰지만 녹음실 위치만큼은 보안이 철저하여 아직까지 사람들이 그 위치를 알고 있지 못하다.

“세희 누나?”

인터폰에 비친 사람의 모습을 보고 창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의 녹음실을 방문한 사람이 다름 아닌 세희였던 것이다.

세희가 도대체 왜 녹음실에 방문했단 말인가.

오늘은 스케줄이 없어서 찾아올 일이 없을 텐데?

무슨 영문인지 몰랐지만 세희가 찾아온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창현은 문을 열어주며 입을 열었다.

“세희 누나 무슨 일로 온…….”

창현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가 문을 여는 순간 들어온 사람은 하나가 아닌 셋이었으니 말이다.

“짜잔! 우리가 왔다고!”

“여기가 창현이의 녹음실? 좋네. 잘 해놨다.”

“창현아, 오랜만이야.”

갑자기 녹음실 안으로 들어선 여인들, 그녀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라샤였다.

“어라, 누나들? 벌써 한국에 온 거예요?”

창현이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들을 맞이하였다.

동남아시아를 돌면서 콘서트를 열었던 그녀들이 한국에 돌아온 것이다.

“왜? 우리가 너무 일찍 오니까 섭섭한 거야, 설마?”

창현의 말이 기분 나쁘게 들렸는지 녹음실을 둘러보던 미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한다. 여전히 통통 튀는 말투였다.

그에 창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한다.

“하하! 그럴 리가요. 전 누나들이 좀 더 있다가 올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네요.”

라샤가 동남아시아로 떠난 것이 11월쯤이었으니 약 두 달 정도나 걸려서 돌아온 것이다. 상당히 긴 시간이었지만 창현은 그 사이 MKMF 준비와 정규 3집 앨범 준비, 그리고 각종 루머에도 휩싸이고 여러 가지 일에도 바빠서 라샤가 금방 돌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창현의 말에 세룬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무려 두 달이나 있었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새해를 타국에서 맞이하는 느낌이 얼마나 서러웠는데. 창현이 너까지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그러게 말이야.”

세룬의 말에 동조하면서 시린이 무척 섭섭한 표정을 짓는다.

그에 창현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느끼고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그게 아니라요… 그게 그러니까… 음, 누나들이 무척 반갑다는 이야기죠, 뭐.”

어물쩡 넘어가려는 창현의 모습이 우스웠던 것일까.

미란이 이해한다는 듯 창현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한다.

“그래그래, 이해한다, 이해해. 왜, 그런 말도 있잖아. 자기 군대 생활은 오지게도 안 가는데 남의 군대 생활은 순식간에 지난다는 말.”

제법 철학(?)적인 말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창현은 아직 군대를 가지 않아서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저 군대 아직 안 가서 모르겠는데요?”

“그냥 내가 말하면 그렇다고 하면 되지. 으이구!”

“어쨌든 잘 왔어요, 누나들. 동남아시아 싹 돌고 오신 거예요?”

창현이 미소를 지으며 묻자 세 여인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인다.

“다 돌고말고. 그 뿐만 아니라 오는 길에 대만도 들렸다 왔어.”

“맞아! 우리 대만에서 완전 귀빈 대우 받고 왔어. 대우 장난 아니던데?”

“대만에서 콘서트를 하니까 중국에서 온 사람들이 많더라고. 창현이 너 보고 싶다는 사람도 많고.”

TTS기획사와의 마찰로 AA엔터테인먼트는 중국에서 소속 연예인들 활동을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한 만큼 중국에 있는 라샤 팬들이 대만으로 온 듯하다. 정말 극성팬이 있기는 있나보다.

창현이 놀란 얼굴로 묻는다.

“우와! 누나들 얼굴 보러 중국에서 대만까지 오는 사람들이 있다고요?”

“너 어째 말하는 게 상당히 기분 나쁘다?”

창현의 말에 심기가 뒤틀렸는지 미란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한다.

그러자 창현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하하! 그런 뜻으로 한 게 아니에요. 다만 그 정도 팬이 있다는 게 신기해서 물어본 거예요.”

“흠! 오랜만에 보는 거니까 용서해주겠어.”

“후우!”

평소라면 속사포로 욕을 퍼부었을 미란이 순순히 물러서자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창현이었다.

그런 창현을 보며 미소 짓던 시린이 말한다.

“사실 우리가 조금 일정을 당겨서 온 것에는 이유가 있어.”

“이유요? 음…….”

이유란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창현.

그러다가 이내 무언가 생각난 듯 시린을 쳐다본다.

“설마…….”

“맞아. 얼마 안 있으면 사장님 결혼식이잖아? 제대로 일정을 맞추면 늦을 것 같아서 조금씩 당겨서 오늘 도착한 거야.”

그녀들이 원래 일정대로 돌아오게 된다면 1월 말에서 2월 초쯤에 돌아오게 된다.

그런데 석규의 결혼식에 참여하기 위해 일정을 조금씩 당기고 당긴 끝에 1월 중순으로 접어드는 오늘에서야 오게 된 것이다.

창현으로서는 정말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의 콘서트 일정들이 결코 널널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는 만큼 스케줄을 당기기 위해서 모자란 잠까지 아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렇다.

석규를 위해서 고된 행군을 마다하지 않다니.

창현의 얼굴에 고마움이 서렸다.

“고마워요, 누나들.”

그 말에 시린이 웃음을 지은 채 고개를 젓는다.

“뭘 그거 가지고 그래. 사장님은 우리한테 있어서 은인이라고. 사장님이 없었으면 우리가 어떻게 데뷔를 했겠어? 우리에게 있어서 사장님은 기획사 사장님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아버지와도 같아. 그러니 고마워할 필요 없어. 우리가 원해서, 사장님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서 그런 거니까.”

참으로 예쁜 마음씨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감격 어린 표정을 짓던 창현은 시린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요. 고마운 건 고마운 거죠.”

“후후! 고마운 걸 알면 나중에 거하게 한 턱 쏘라고.”

“물론이죠. 얼마든지 쏠게요, 하하!”

시린의 말에 마음이 훈훈해진 창현은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창현은 정말로 가족 같은 분위기의 기획사라면 이런 분위기가 아닐까 싶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석규가 원하는 분위기의 기획사가 아닌가?

아들로서, 소속사 가수로서 창현은 석규가 원하는 바를 이룬 것 같아 기분이 무척 좋았다.

창현의 승낙이 떨어지자 미란이 눈을 빛내며 말한다.

“창현이 너 다 들었어! 이제 발뺌 하면 안 돼. 너 앨범 완전 잘 판 거 알거든? 우리가 아주 단단히 벗겨먹을 거니까 각오 좀 해야 할 거야.”

미란의 말에 창현은 순간 아차 했다.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빛으로 변한 라샤 세 명의 눈길이 느껴진 것이다.

창현은 재빨리 방어선을 펼친다.

“누나들도 돈 많이 벌잖아요. 설마 동생 벗겨먹으려고 들겠어요. 마음씨 착한 누나들이? 설마 마음씨 고약한 짓을 제게 하겠어요? 안 그래요?”

“으윽!”

재빨리 방어를 펼친 탓에 시린과 세룬이 추가 공격을 펼치지 못했다.

그러자 미란이 데미지를 입고는 비틀거렸다. 창현의 대응이 제법 강력했던 탓이다.

창현은 라샤를 보면서 물었다.

“그런데 바로 이곳으로 온 거예요?”

“응.”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자 창현이 말한다.

“그럼 올라오세요. 녹음실 구경 시켜드릴 테니까요.”

그 말과 함께 창현과 라샤가 녹음실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녹음실을 구경 시켜 준 창현은 라샤에게 고마움을 담은 푸짐한 저녁식사를 대접해야 했다.

이놈의 여자들은 무슨 꽃등심 바이러스가 걸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연신 꽃등심을 외치며 김치와 함께 먹는 시늉을 하는 미란 때문에 창현은 소녀시대와 몇 차례 가보았던 꽃등심 전문점으로 향했다.

거기에서 꽃등심을 정말, 죽어라 먹어대는 라샤를 보면서 창현은 허탈한 미소를 지어야 했다.

오랜만에 한국에 왔다고 하면서 열심히 김치부터 먹는 꼴이라니.

누가 봐도 연예인이라 볼 수 없는 희귀한 장면임이 분명했다.

그렇게 라샤를 대접한 창현은 오늘 쉬고 내일 회사에 찾아가겠다는 그녀들의 말을 듣고 자신도 회사에 찾아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다음 날, 창현은 곧장 씻은 뒤 AA엔터테인먼트를 향하기 시작하였다.

“오늘도 내가 먼저 온 건가?”

AA엔터테인먼트 건물 안으로 들어선 창현이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회사에 찾아가겠다고 한 것도 있지만 오늘은 지영의 보컬 트레이닝을 하기 위한 것도 있었다.

가수가 되겠다는 야무진 포부를 보인 지영은 하루에 세 번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는 한다.

그리고 전담 보컬 트레이너가 다름 아닌 창현이었다.

창현이 처음 걱정한 것은 지영을 엄하게 가르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었던 것이었다.

아무래도 귀여운 여동생이 아닌가.

그래서 지영을 가르칠 때 냉정하게 대하지 못하고 정에 휩쓸리지 않을까 걱정이 많던 창현이었다.

그 걱정을 석규에게 털어놓던 창현은 하마터면 석규에게 한 대 맞을 뻔한 적이 있다.

네 녀석만큼 냉정하게 대하는 녀석은 세상에서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 석규가 창현에게 구박을 했던 것이다.

그 정도로 창현은 사적인 정에 얽매이지 않은 채 지영을 혹독하게 가르치고 있었다.

이미 2년 전에 소녀시대 멤버 몇몇의 보컬 트레이닝을 봐준 적이 있는 창현으로서는 당장 지영의 실력이 늘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 외로 진도는 많이 나가지 않았다.

당시 소녀들은 기본기가 탄탄하여 창현이 거기에 물꼬만 트여주면 금방 실력이 느는 면모를 보였는데, 지영은 달랐던 것이다.

체계적인 수련을 쌓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억지로 끌어올리는 경향이 강했던 것이다.

고음 처리라는 것이 꾸준한 연습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단기간에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지영의 장점은 라샤의 시린처럼 깔끔함이 느껴지는 고음 처리가 아닌, 듣는 사람에게 감정이 전달되는 탁월한 감정 전달력이었다.

그랬기에 창현은 지영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아두기 위한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상태였다. 당장의 효과는 미미하겠지만 차근차근 쌓아두다 보면 필시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되리라.

소녀시대 내에서 마법사라 불릴 정도로 상대방의 탁월한 발전을 이끈 창현에게는 조금 불만족스러운 발전 속도였지만 말이다.

덜컹.

“지영이는 언제 오려나…….”

녹음실 안으로 들어서면서 지영이가 올 때까지 시간을 어떻게 죽일지 고민하던 창현은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눈에 보인 것은 녹음실 안에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는 지영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보컬 트레이닝을 시키면서 창현이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하질 않으니 이렇게 녹음실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나보다.

“…….”

지영의 노래를 듣던 창현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갔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다름 아닌 창현이 금지 시킨 노래 중 하나였던 것이다.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다. 너무 과해서는 좋을 것이 없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아직 어린 지영은 당장의 실력이 부족하지만 노력에 노력을 쌓다 보면 몇 년 후 찬란한 꽃을 피울 재능을 지니고 있다.

어린 나이의 창현이 이런 말을 하기 뭐하지만 지영의 미래를 몇 년 내다보고 그녀를 트레이닝 시키고 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목을 과도하게 소모시키는 노래는 금지 시킨 상태였다.

그런데 지영이 그걸 부르고 있던 것이다.

표정을 굳힌 창현이 걸음을 옮겨 부스 안을 쾅쾅 두드렸다.

그러자 노래를 부르던 지영이 화들짝 놀라며 움찔 몸을 떤다.

헤드셋을 벗은 지영이 창현을 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오빠… 그게 그러니까…….”

“지영이 너 내가 이 노래하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창현의 말음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에게는 절대적인 철칙이 존재한다.

바로 주어진 규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란 동물은 편함을 쫓는 동물이다. 그리고 간사하다.

사회란 집단에서 한 사람이 정해진 규칙을 지키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간다고 가정해보자.

그렇게 되면 그걸 본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규칙을 지키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 되면 규칙은 결국 무너질 것이고, 그 규칙을 지키기 위해 강제성이 존재하는 법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법을 어기면 처벌을 할 수 있으니까.

그런 것처럼 창현은 지영에게 자신의 말을 반드시 지키라고 강조를 한 터였다.

그런데 그걸 지키지 않는 모습을 정면으로 들켜버린 것이다.

“지영이 너한테 내가 뭐라고 그랬어? 힘들어도 따르겠다고 했지? 그런데 벌써부터 내 말을 안 들어?”

“오빠…….”

“조용히 해.”

지영이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창현은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자초지종이 어떻건 간에 지금 상황은 명백하게 지영이 잘못한 것이었다.

변명할 여지도 주지 않자 지영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떨어뜨린다.

창현이 그런 지영에게 무어라 더 말하려 할 때, 녹음실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야호! 창현이 여기 있……니?”

어제 꽃등심으로 기력을 보충해서 그런지 한껏 밝아진 얼굴을 하고 있는 미란이 녹음실 안으로 들어서다가 멈칫하였다.

눈치 빠른 그녀는 한눈에 녹음실 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미란이 조용히 녹음실 안으로 들어서자 뒤이어 들어서는 세룬과 시린도 무언가 싶어서 녹음실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착 가라앉은 녹음실 분위기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것이지?

그러다가 시린이 지영을 알아보고는 외친다.

“어라, 지영이가 여기는 웬일이야. 놀러온 거야?”

어제 막 귀국했으니 지영이 연습생이 된 걸 알 리가 없는 그녀였다.

그에 창현이 고개를 저으면서 대신 대답한다.

“아니에요. 지영이는 연습생이에요. 얼마 전에 들어왔죠.”

“연…습생? 지영이가?”

믿기지가 않는 얼굴로 중얼거리는 시린이었다.

규모는 작지만 석규가 연습생을 선발하는 기준은 무척이나 까다롭다.

지영이가 딸이라고 해도 쉽게 연습생으로 발탁할 사장님이 아닌데?

그런 그녀의 의문이 이어지건 말건 창현이 시린에게 말한다.

“지금 지영이 훈계 중이거든요? 곧 나갈 테니 누나들은 밖에 나가주시면 안 될까요?”

창현의 말에 흠칫하는 세 여인이었다.

평소에는 친한 누나 동생으로 지내지만 프로듀싱을 할 때나 보컬 트레이닝을 할 때 창현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호랑이 선생님 그 자체였다.

자신들조차 혼나면서 흠칫할 때가 많은데 지영이 혼날 일이 있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시린이 창현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늘 좋은 날이기도 하니까… 넘어가면 안 될까?”

석규의 결혼식이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지영을 혼내는 것은 모양새가 안 좋지 않은가.

그 말에 미란과 세룬이 보조타를 날렸다.

“맞아, 사장님 결혼식도 얼마 안 남았잖아. 그러니까 좋게좋게 하자. 응?”

“너무 다그쳐도 좋을 게 없어.”

하나같이 지영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었다.

자신들도 처음에 창현의 다그침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는데 지영은 오죽할까.

하지만 창현은 완고했다. 그녀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창현이 고개를 저으며 부정의 뜻을 보낸 것이다.

“그건 사적인 감정이 함께 할 때고요. 지영이는 제가 말한 규칙을 어겼어요.”

“규칙을 어겼다고?”

창현이 말한 규칙을 어겼다는 말에 크게 반응하는 소녀들이었다.

그리고는 시린과 미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선다.

“규칙을 어겼다면 어쩔 수 없지…….”

“창현이의 규칙은 절대적이니까…….”

그 사이 세룬이 지영에게 다가간다.

외고를 다녔을 정도로 머리가 좋은 그녀는 지영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단번에 알아차린 상태였다.

아마 보컬 트레이닝을 받는데 단번에 늘어나지 않는 실력 때문에 답답했으리라.

세룬은 지영에게 귓속말로 말한다.

“어찌 되었건 간에 무조건 잘못했다고 비는 게 좋을 거야. 실력이 잘 늘지 않아서 그랬던 거지?”

정곡이었기에 지영의 몸이 움찔한다.

그 모습에 세룬이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창현이의 보컬 트레이닝은 따르기만 하면 반드시 실력 상승이 이루어지거든. 창현이가 밖에서 어떤 가수인지 알아두도록 해. 동생인 너에게 좋으면 좋았지 나쁘게 대할 리가 있겠어? 그러니까 무조건 잘못했다고 말하고 착실히 따르도록 해. 알았지?”

“…네.”

마치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듯한 세룬의 행동에 절로 감탄이 나오는 지영이었다.

사실 그녀도 답답한 마음이었다.

창현의 보컬 트레이닝을 착실히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게 실력이 쭉쭉 늘어나질 않았던 것이다.

마음은 벌써 테스트에 합격하여 데뷔를 앞두고 있는데 현실은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지고 있으니 그녀로서도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창현 몰래 노래를 불러본 것이고, 그것이 딱 걸리게 된 것이다.

뒤이어 라샤가 들어온 것을 보고 자신을 구원해줄 줄 알았으나 창현이 세운 규칙을 어겼다는 말에 그냥 물러서는 것을 보고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편을 들어줄 것이란 생각이었는데 창현의 말에 순순히 납득하는 모습이 이해가 되질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자신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세룬의 말을 듣자 지영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리고는 창현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지고 보면 라샤도 창현의 작품이지 않겠는가.

그를 따르면 반드시 저렇게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자 지영은 자신이 너무 참을성이 없었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창현 앞으로 간 지영이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죄송해요. 다시는 규칙을 어기지 않을게요. 용서해주세요.”

“…….”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지영의 모습에서 맥이 탁 풀려버리는 창현이었다.

단단히 주의를 줄 심산이었는데 중간에 라샤가 들어온 바람에 분위기가 깨져버린 것이다.

여기에서 다그쳐봤자 좋을 것이 하나도 없으리라.

한숨을 푹 내쉰 창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말한다.

“다음은 없으니까 앞으로는 알아서 잘하도록 해. 알겠지.”

“네, 죄송해요, 오빠.”

창현의 용서에 숙였던 고개를 들고 밝은 표정을 짓는 지영이었다.


지영과의 일을 일단락 한 뒤, 창현은 라샤를 보면서 물었다.

“그런데 누나들 일찍 왔네요.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렇게 일찍 온 거예요.”

창현의 물음에 시린이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바람이 불긴 무슨. 그냥 어제 저녁을 맛있게 먹고 푹 잤으니 일찍 일어나서 온 거지.”

유난히 저녁을 맛있게 먹은 걸 강조하는 시린이었다.

그 말에 창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녀의 말에서 어제 꽃등심 지옥이 떠올랐던 것이다.

“크윽! 누나들 완전 돼지 저리가라던데요.”

“뭐라고, 돼지?”

창현의 말에 발끈하는 표정을 짓는 세 여인이었다. 세상 그 어떤 여자가 자신 보고 돼지라 하는데 기분 좋아라 하겠는가.

살기까지 드러내는 그녀들의 모습에 창현이 손을 가로저었다.

“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복스럽게 먹어서 그렇게 말한 거예요.”

“호오, 끝까지 아니라고는 말을 안 하는데? 강창현 군.”

꼭 이럴 때만 예리한 미란이었다.

미란의 말에서 시린과 세룬은 자신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존재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눈을 날카롭게 한 채 창현을 째려보았다.

그에 창현이 움찔하면서 뒤로 물러선다.

“누가 누나들 보고 돼지라고 하겠어요. 완전 여신이죠. 여신. 돼지 중에 여신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흠! 우리가 여신 소리를 좀 듣긴 하지. 알긴 아는군.”

여신이라는 단어에 급격히 풀어지는 모습을 보이는 세 여인이었다.

역시 여자는 칭찬에 약하다는 말이 사실인가보다.

“그럼요. 누나들이 아니면 누가 여신 소리를 듣겠어요. 안 그래요?”

풀어지는 모습을 보이자 곧장 칭찬 모드에 돌입하는 창현이었다.

어찌 보면 비굴해보이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화 난 여자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는데.

국내에 복귀한 이상 앞으로 마주칠 일이 많을 것 같았기에 창현은 그녀들의 기분을 풀어주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그렇게 기분을 푸는데 성공하자 창현은 다시 본래 목적으로 돌아왔다.

“누나들 무슨 일 때문에 일찍 온 건데요?”

“시린이가 말한 그대로인데? 일찍 일어났고,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준비를 마치고 일찍 온 거야.”

세룬이 침착하게 대답한다. 아무래도 라샤의 브레인을 맡고 있다 보니 세룬과 이야기를 나누면 창현은 버겁다는 걸 느끼고는 해야 했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창현은 무언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창현의 의문을 풀어준 것은 미란이었다.

그녀는 키득하고 웃음을 흘리고는 창현에게 말한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일찍 온 이유는… 사장님을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온 거야.”

“깜짝 놀라게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한 표정을 짓던 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샤가 귀국한 사실은 알고 있을 테지만 이렇게 일찍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 충분히 놀랄 만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의문을 푼 창현이 한결 후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군요. 그런 이유가 있었어. 그럼 곧장 사장실로 가겠네요.”

“사장실로 가려다가 잠시 연습실이랑 녹음실을 둘러보려고 온 건데 이렇게 보게 된 거지.”

그녀들이 녹음실에 오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시린이었다.

아무래도 오랜만에 오다 보니 감회(?)에 젖어서 주변을 둘러보려던 것이리라.

창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들에게 물었다.

“음, 누나들도 왔으니까 기왕이면 아버지 결혼식 때 축가 하나 불러주는 게 어때요?”

그 말에 화들짝 놀라는 세 여인이었다. 아무래도 축가는 창현의 독차지라 생각했는데 그가 제안을 하니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축가? 우리가? 괜찮으려나.”

망설이는 듯한 세룬의 말에 창현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고말고요. 오히려 좋아할 걸요.”

창현이 부르려던 것을 자신들이 뺏는 느낌이었기에 세룬이 창현을 보며 물었다.

“창현이 너는?”

“저도 불러야죠. 아, 축가야 뭐 두 곡 부르면 어때요. 우선 누나들이 먼저 하고 제가 피날레를 장식하는 쪽으로. 어때요?”

“좋은데.”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아무래도 자신들이 어릴 때부터 모든 편의를 봐주던 석규인 만큼 그녀들이 느끼는 감정은 남달랐다.

그래서 결혼식 때 무언가를 꼭 하나 해주고 싶었는데 이런 제안을 먼저 해주는 창현이 고마웠다.

시린과 세룬은 창현에게 고마움의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그런 감정 표현에 서투른 사람도 한 명 있었다.

바로 미란이었다.

그녀는 창현을 보면서 툴툴대는 어조로 말했다.

“꼭 자기가 피날레를 장식하려고 한단 말이지. 저놈의 절정 장식 증후군 녀석.”

미란의 말에 창현이 황당한 표정을 지은 채 말한다.

“그런 병도 있어요? 어째 병 이름이 좀 이상한데요.”

“내가 방금 지어낸 병명이야. 꼭 클라이막스는 자신이 장식하려는 증상을 지닌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지. 어때, 창현이 너한테 어울리는 병명 아니야?”

그 말에 창현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듣고 보니 틀린 말도 아니었던 것이다.

무엇을 하건 간에 자신이 클라이막스를 장식하고 싶어하는 생각이 절로 드니 말이다.

창현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한다.

“그것도 그러네요. 그런데 병이라고 하니까 어쩐지 느낌이 좀 그러네요.”

창현의 반응이 어쩐지 좀 그렇자 시린이 상황을 수습한다.

“농담으로 한 이야기 가지고 뭘 그래.”

“그것도 그러네요. 하하하! 그러고 보니 누나들은 어떻게 할 거예요, 국내 활동.”

해외 활동부터 먼저 했으니 이제 국내 활동을 할 차례인데 어떻게 할지 궁금한 창현이었다.

“사장님이랑 이야기를 먼저 해봐야지. 그럼 우리는 사장님한테 가보도록 할게. 이러다가 사장님이 우리 온 거 알아차리겠다.”

그 말에 창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요. 깜짝 방문 성공하길 바라요.”

“응! 그럼…….”

그걸 끝으로 라샤는 사장실로 향했고, 녹음실에는 창현과 지영만이 남게 되었다.

“…….”

지영은 창현과 단둘이 있는 상황이 어색했다. 창현이 용서를 해주었다고 하지만 방금 전까지만 해도 혼나는 상황이었기에 무척 어색했던 것이다.

그런 지영을 보며 창현은 피식 웃음을 짓고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창현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지영이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는다.

그녀에게 창현이 말한다.

“지영아 우리 축가 함께 부를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창현의 제안이었다.


녹음실을 벗어난 라샤는 곧장 사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회사를 둘러보면서 그녀들은 자신들이 자리를 비운 두 달이란 시간 동안 직원들이 상당히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들을 알아보고 인사하는 신입 사원들에게 화답해주면서 그녀들은 사장실로 움직였다.

그러면서 회사를 둘러보는 그녀들의 얼굴에는 참으로 복잡한 표정이 서려 있었다.

어찌 보면 AA엔터테인먼트에서 처음으로 데뷔에 성공한 연예인들이 자신이었다. 현이 첫 미니 앨범을 내기 전에는 자금 사정이 너무나 열악하여 지금의 절반도 되지 않는 직원들이 일하고 있었고, 자신들도 언제든지 잘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존재하였고 말이다.

그러다가 현의 미니 앨범이 나오게 되었고, 자금에 여유가 약간 생기게 되면서 자신들이 데뷔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전까지만 하여도 데뷔란 것이 무척 멀어보였지만 말이다.

물론 회사를 나오게 되더라도 받아주고자 하는 기획사가 있었기에 문제는 없었지만 그녀들로서는 강석규라는, 이상주의를 꿈꾸는 사장님을 무척 의지하고 있었기에 가급적이면 그 사람 밑에서 가수로 데뷔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바람이 이루어져 데뷔를 한 지 벌써 2년에 가까운 시간이 되었고, 햇수로는 3년이 흐르게 되었다.

그때 그 힘들던 시절이 옛날처럼 느껴지니 그녀들의 입가에 피식 미소가 서렸다.

짧은 감상을 뒤로한 채 곧장 사장실에 도착한 그녀들은 예전에는 없던 비서에게 손가락으로 입에 대면서 조용히 해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는 한껏 목소리를 죽여 물었다.

“사장님 안에 계시죠?”

“네, 안에 계세요. 마침 휴식 시간이기도 하시고요.”

그 물음에 비서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유용한 정보까지 전해준다.

일을 하는 중에 갑자기 난입하게 되면 깜짝 방문이라고 해도 미안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휴식 시간을 노려 현장을 덮칠(?) 생각이었는데 다행히도 휴식 시간이란다.

서로 눈을 마주친 그녀들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장실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문을 벌컥 열면서 힘차게 외친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헉! 어, 그, 그래. 너희들이구나.”

컴퓨터를 하고 있던 석규는 갑자기 라샤가 안으로 들어서자 화들짝 놀라면서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모습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안으로 들어선 미란이 석규의 모니터를 들여다 본다.

그리고 놀란 얼굴로 모니터를 가리키며 소리친다.

“사장님 어떻게 근무 시간에…….”

미란의 외침에 석규가 막 사장실 안으로 들어서는 세 여인을 바라본다.

그와 함께 왼손의 엄지손가락은 Alt 버튼으로, 약지손가락은 Tab 버튼으로 향하여 꾹 누른다.

순식간에 초록색으로 가득 찼던 화면이 본래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바뀐다.

그리고는 재빨리 표정을 수습하며 말한다.

“으응? 너희들이 이 시간이 무슨 일이냐? 비서에게 말도 하지 않고서.”

보통 사장실 안으로 들어오면 비서를 통해 들어오지 않던가.

석규는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왜 비서를 통해서 들어오지 않았냐는 식으로 물었다.

그 말에 시린과 세룬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말에 깜짝 놀라게 하기 위하여 들어선 것인데 그걸 집고 넘어갈 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자세한 상황을 알고 있는 미란이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

그녀는 석규를 향해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흥! 사장님! 그렇게 정색하셔도 이미 다 봤거든요? 어떻게 근무 시간에 맞고를 하실 수 있으세요?”

“맞고라고?”

“설마 그 맞고?”

미란의 말에 시린과 세룬의 눈이 샐쭉하게 변한다.

설마 지금 미란이 말하는 맞고가 그 고스톱이 두 명이서 하는 그 맞고란 말인가?

그리고 맞고하는 것을 숨기려고 도리어 정색을 한 것이고?

“하하! 그게 그러니까…….”

세 여인의 시선 집중 포화에 석규가 웃음을 지으면서 말끝을 흐렸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뭐라 말을 해야 했는데 그것이 잘 떠오르지 않은 탓이다.

“후우! 그래, 맞고 하고 있었다. 그게 뭐 어쨌다고 그러는 것이냐.”

결국 시선 집중 공격에 백기를 드는 석규였다.

그런 석규의 반응에 피식 웃음을 지은 미란이 다가가며 묻는다.

“그런데 왜 갑자기 화면을 최소화 시키는 거예요?”

“갑자기 들어와서 당황해서 그런 게다.”

그래도 남자의 자존심이 있지 않은가!

휴식 시간에 한가로이 게임이나 즐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그렇다.

그렇게 말을 하는 석규의 모습에 라샤가 킥! 하고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는 미란이 석규에게 물었다.

“저희도 세룬이가 종종 맞고를 해서 재미삼아 몇 번씩 해보고는 하거든요. 돈을 얼마나 보유하고 계세요?”

“사이버 머니 말이냐? 음, 그러니까…….”

대답하길 꺼려하는 석규였다.

무언가 숨기고 싶은 것이 있는 것일까.

석규의 태도에서 미심쩍은 면을 발견한 미란이 석규에게 물었다.

“왜 그러시는데요? 보여주세요. 이미 알았으니 딱히 숨길 것도 없잖아요.”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석규의 모습을 비집고 들어가는 미란이었다.

“으음…….”

그에 석규는 거절할 수 없어서 결국 신음을 흘리면서 맞고 창을 띄운다.

그러자 라샤는 컴퓨터 화면에 떠 오른 맞고 창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할 말을 잃어야만 했다.

“…….”

“꺄하하하! 사장님 이게 뭐에요? 아, 너무 웃겨. 하하하하!”

석규의 보유 금액을 본 미란은 자지러질 듯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맞고 창에 뜬 석규의 보유 금액은 정확히 19만 2000원이었던 것이다.

하는 모양새나 생김새는 수십억을 보유하고 있는 듯한 모습인데 고작 19만 2000원이라니?

미란이 웃음을 터뜨려도 할 말이 없는 석규였다.

시린과 세룬도 풉! 하고 웃음을 참고 있었다. 그래도 미란보다는 예의를 차리는 두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웃음을 그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웃음을 흘리고 있는 미란을 보면서 석규는 자존심이 상한 듯 헛기침을 터뜨리며 말한다.

“험험! 아까 전에 다 잃어서 그런 거다. 원래는 몇억 정도 보유하고 있었어. 잠시 실수해서 잃은 것일 뿐. 다시 원래 금액을 되찾을 수 있을 거다. 암, 그렇고 말고.”

자존심을 세우려고 말을 하는 석규의 모습은 제3자가 보면 사뭇 애처로워 보일 정도였다.

“그래요? 그럼 잠시만요…….”

석규에게 양해(?)를 구한 미란이 아이디를 클릭하여 기본 정보를 본다.

그러자 드러나는 석규의 기본 정보.

그걸 보면서 미란은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푸하하하! 이게 뭐야! 아하하하하!”

컴퓨터 화면에 드러난 석규 아이디의 기본 정보는 이러했다.


머니 : 19만 2000원

레벨 : 평민

전적 : 259승 886패


최고점수 : 512점

최고금액 : 199만 9950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는 기본 정보였다.

세상에, 1000전이 넘는 전적을 가지고도 최고금액이 고작 199만 9950원이라니? 애통하게도 50원이 부족하여 200만원이 되지 못한 것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게다가 저 많은 패배는 무엇이란 말인가.

시린과 세룬도 그걸 보고는 웃음을 흘리기 시작한다.

졸지에 자신의 신상정보(?)가 유출 되자 석규는 불편한 듯 헛기침을 흘렸다.

“험험! 이 아이디는 두 번째 아이디라서 그런 거다. 첫 번째 아이디는 보유 금액이 많아. 정말이야.”

자존심을 세우려는 석규의 모습을 보자 웃음을 참기 힘든 라샤였다.

늘 근엄하면서 자상한 모습만 보다가 이렇게 어린 아이 같은 면을 보게 되다니.

동경의 대상과도 같던 석규의 빈틈 있는 모습은 라샤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호호! 그렇다고 믿어줄게요.”

“큼! 알면 됐다.”

미란의 말투가 마치 ‘아닌 건 알지만 믿어줄게.’ 라는 식의 어투여서 석규가 뭐라 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보이면 왠지 저렴해 보인다랄까. 그런 느낌이 들었기에 대인배답게 수긍하고 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일단락이 되자, 미란이 세룬을 가리키며 말한다.

“사장님, 여기 세룬이가 맞고는 거의 최강이거든요? 한 번 조언을 구해보시는 게 어때요?”

“잘하면 잘하는 거지, 최강은 무슨 말이냐.”

기분이 다소 뒤틀려있던 석규가 불퉁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에 미란이 피식 웃음을 짓고는 입을 열었다.

“그 정도가 아니라니까? 세룬이가 여기 등급이 무려 신이에요, 신! 보유 금액만 해도 무려 수백억! 랭킹에도 들어갈 정도의 실력자인 걸요? 맞지, 세룬아?”

미란이 갑자기 묻자 세룬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어, 응…….”

“호오! 수백억이라고? 흐음!”

흥미가 동한 얼굴을 한 석규가 묘한 감탄사를 흘리며 세룬을 바라본다.

무려 수백억이라고 하지 않는가!

수백억을 보유했다면 랭킹에 들 정도로 엄청난 실력을 보유한 것임이 분명했다.

안 그래도 행복해야 할 요즘 시즌에 맞고 때문에 없는 스트레스까지 만들어내는 실정이 아니겠는가.

“세룬아, 그렇게 잘하면 나 좀 도와주지 않겠느냐?”

결국 남자의 자존심(?)을 접은 채 세룬에게 도움을 청하는 석규였다.

가르침을 받는 것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늦바람이 불어 맞고의 재미에 빠져든 석규에게 있어서 당장의 승리 비결이 중요하였다.

“으음! 제가요?”

석규가 조언을 구하자 세룬은 흥미가 동하는 얼굴로 대답한다.

한눈에 보아도 석규의 맞고 실력은 초보자였다.

그런 초보를 갱생(?) 시켜 고수로서 탈바꿈 시켜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건 또 못 보고 지나치는 세룬의 성격이었기에 맞고를 처음 접하는 시린과 미란을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가르쳐 결국 고수로 탈바꿈 시키지 않았던가?

세룬 본인이 수백억 보유 유저이긴 했지만 시린과 미란도 수억 원을 보유한 고수급 유저들이었다.

“그래. 아무래도 수백억을 보유했다면 비결이 있지 않겠느냐. 그걸 알고 싶단 이야기지.”

그래도 남은 자존심은 있는 석규였기에 차마 맞고를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석규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 수 있었기에 세룬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사장님.”

“험험! 그래, 고맙다. 바로 알려줄 수 있나?”

아무래도 이야기가 나왔으면 바로 시행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곧바로 가르침을 청하는 석규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 세룬이 석규의 뒤에 선다.

그리고 방을 만든 뒤 20만원을 보유한 유저와 게임을 시작한다.

그러자 본격적인 세룬의 가르침이 시작되었다.

“아니에요. 그럴 땐 먼저 피박을 면해야 하고요, 네, 사장님이 광을 많이 들고 계시니까 광을 노려야 해요. 그리고 적이 청단을 먹었으니 청단 조심하시고요.”

세룬의 가르침은 소속사 사장님이라고 하여 빗겨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르침이 이어짐에 따라 석규는 세룬의 스파르타식 교육에 따라야만 했고, 철두철미하게 맞고의 정석(?)을 주입시키는 세룬의 행동으로 인하여 석규는 차근차근 하나둘씩 알아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삼십 분 정도가 흘렀을 무렵.

“이럴 수가…….”

석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화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화면에는 무려 오백만 원을 넘게 딴 장면이 보이고 있었다.

순식간에 서너 명을 올인 시켜서 백만 원이 넘는 종잣돈을 마련한 석규는 차근차근 밟고 올라가 오백만 원까지 보유하게 되었고, 비슷한 돈을 보유한 유저를 올인 시킴으로써 단번에 천만 원이라는 거액을 달성하게 된 것이다.

최고금액 199만 9950원에서 단숨에 천만 원이라니.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석규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이렇게 돈을 따다니. 세룬이 너 대단하구나.”

석규의 칭찬에 세룬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사장님도 대단하세요. 이렇게 빨리 요령을 터득할 줄 몰랐거든요.”

세룬의 칭찬에 석규는 기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스트레스만 주는 줄 알았던 맞고가 실은 이렇게 재미있는 게임일 줄이야!

특히 상대방의 돈을 올인 시킬 때의 쾌감은 대단했다.

이런 기분에 맞고를 하는 거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기분이 좋자 씀씀이도 커졌다.

석규는 라샤를 보며 호기롭게 외쳤다.

“점심 안 먹었지? 가자! 내가 맛있는 걸로 사도록 하마.”

“와! 사장님 만세!”

“세룬이 굿굿!”

전날 꽃등심으로 배에 기름칠을 한 그녀들은 다시 한 번 기름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을 표출하였다.

그 연유를 모르는 석규로서는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어쨌든 어제는 창현, 오늘은 석규.

부자를 통째로 벗겨 먹는 라샤였다.


석규와 지선의 결혼식은 1월 마지막 주 토요일이었다.

그 사이 창현의 앨범 판매는 순조로이 이루어져 80만장을 돌파하여 100만장의 고지를 향하고 있는 실정이었고, 디지털 음원 수익도 벌어들이고 있는 실정이었기에 그 수입이 굉장하였다.

2007년 대한민국 연예인 중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벌어들인 것은 다름 아닌 창현이다.

국내에서 벌어들인 것은 물론이고, 미국에서 벌어들인 금액도 어마어마하였기에 정확한 집계가 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2008년이 시작될 시점에 앨범이 대박 났으니 그가 벌어들이는 돈은 그야 말로 천문학적이라 불릴 수준이었다.

게다가 빌보드 차트 집계가 단순히 앨범 판매가 아닌, 현지 방송에 출연하는 것까지 합쳐져야 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다시 한 번 현의 파워가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에 가서 한 것도 아니고, 한국에 머물면서 빌보드 차트에 진입, 그것도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갔으니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단순히 인기를 유지하는 것이 아닌, 연말 가요대전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주가를 급상승시키는 기적을 선보였다.

그로 인해 현이란 이름의 브랜드가 가지는 파워는 그야 말로 엄청나졌다.

현의 이름 하나만으로 사람들이 호감을 살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 정도로 성장함에 따라 열등감이 폭발하여 사사건건 현이 하는 행동에 무조건적인 비방을 하는 안티들도 생겨났지만 다 하나의 과정이 아니겠는가.

최고의 자리에 섰음에도 늘 바른 모습을 보이는 현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현의 아버지인 석규의 결혼 소식은 연예계에 큰 파문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아시아 각지는 물론이고 세계 최고 시장인 미국마저 개척하지 않았는가.

연예계에서 석규의 입지는 결코 낮은 것이 아니었다.

당장 예전만 하더라도 방송 3사에서 현과 라샤의 출연을 은연중에 압박할 수 있게 되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해졌으니 말이다.

현과 라샤의 보이콧 하나만으로 중국 기획사인 TTS가 말로를 걷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게다가 홀로 독보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국내 최대 규모 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와도 영업적인 제휴를 맺고 있었고, 보이지는 않지만 JYP엔터테인먼트나 YG엔터테인먼트, DSP미디어 등 큰 기획사들과도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AA엔터테인먼트의 행보를 가로막을 자들은 거의 없었다.

이는 AA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인 석규의 Win-Win 사업 전략이 맞아 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 라샤가 귀국했다는 소식이 퍼짐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석규의 결혼식에 현과 라샤가 참석할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었다.

거기에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명예회장이 석규의 결혼식에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보였고,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대표 연예인이라 할 수 있는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천상지희, 소녀시대가 결혼식에 참석하겠다는 사실이 공개 되었기에 두 회사 간의 관계가 밀접하다는 것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은 현재 시점에서 벌써부터 수많은 취재진들이 자리를 예약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수많은 연예인들이 모이는 곳은 기사거리로서 최고의 소재였으니 말이다.


“거기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되고, 조금 더 힘을 줘야 해.”

지영에게 축가를 제의한 창현은 그날부터 곧장 지영과 함께 결혼식 축가를 부르는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창현과 지영의 실력 차이가 워낙 나지 않던가.

그래서 창현은 지영에게 맞춰주면서 그녀가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끔 손을 봐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보컬 트레이닝을 겸하고 있었다.

일전에 창현이 세워둔 규칙을 어긴 지영은 그 후부터 창현의 말을 성실하게 따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지만 너무 뜬구름 잡는 목표라면 실현을 할 가능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목표에 도달한 자신과 현재 지점에 서 있는 자신과의 차이가 너무나도 큰 것이기에 그렇다.

그걸 몰랐던 창현은 지영에게 3년 동안 죽은 듯이 자신의 지시에 따르라는 것이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창현은 지영에게 단기적인 목표를 심어주었다.

그것이 바로 결혼식의 축가였다.

석규가 연예 기획사 사장인 만큼 수많은 취재진들이 몰려올 것은 당연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못난 실력을 보일 수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창현의 제안에 지영은 수락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적절한 긴장감을 가진 채 창현의 말에 성실히 따르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가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할 수 있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우선 지영의 단기적인 목표는 석규의 결혼식에서 훌륭히 축가를 소화해낼 것.

목표가 있기에 임하는 자세도 달라졌다.

창현은 그것을 느낄 수 있었고, 지영이 열심히 하는 모습에 자극을 받아 그녀가 최고의 기량을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후! 여기까지 하자. 그래도 많이 좋아졌어.”

시계를 본 창현은 저녁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느끼고는 지영에게 칭찬을 해주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쓴소리보다는 칭찬을 좋아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은 지영도 마찬가지였다.

창현도 근래 들어 그 논리를 깨달았기에 아주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지영을 혼내기보다는 칭찬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었다.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더욱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욕을 불어넣어주니 말이다.

“오늘도 수고했어요, 오빠.”

지영이 미소를 지으며 창현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다.

“많이 좋아졌어. 이 정도면 결혼식 때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야.”

“헤헤!”

창현의 칭찬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애교 있는 웃음을 지어보이는 지영이었다.

호되게 혼날 뻔한 이후 지영은 창현에게 애교를 많이 부리고는 하였다. 자신과는 불과 두 살, 그리고 학년으로는 한 학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하는 행동이나 신경을 써주는 면에 있어서는 훨씬 성숙하다는 걸 느꼈기에 그렇다.

예전에는 의지할 곳이 없어 스스로 어른스러운 척하였지만 지영의 본래 모습은 애교가 많은 모습이었다.

창현도 그런 지영의 성격을 알아차렸기에 그녀의 애교를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집에 식재료가 없으니까 저녁은 밖에서 먹을까? 지영이가 수고했으니까 맛있는 영양 갈비탕 사줄게. 갈비탕 좋아하지?”

“물론이지. 나 싫어하는 음식 없어, 오빠.”

창현의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지영이었다.

결혼식을 3일 앞두고 지영은 창현의 집에서 머물고 있었다.

지선이 오랜만에 친정으로 돌아가면서 지영은 자연스레 창현이 맡게 된 것이다.

석규도 신랑의 입장이어서 지영을 돌봐줄 서 없었고, 그렇다고 혼자 두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오빠인 창현과 함께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기에 그렇다.

그래서 지영은 요 며칠 전부터 창현과 함께 마치 007작전에 버금가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지영과 달리 창현은 톱스타였기에 어디서나 얼굴을 가려야 했고, 그런 창현을 따라다니는 지영 또한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의식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스타들이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다는 치기 어린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연예인을 하길 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즐기는 사람들이었으니 말이다.

지영과 함께 녹음실을 나선 창현은 완전 무장을 하기 시작하였다.

소녀시대의 일일 카페에서 자신이 가진 목도리 중 가장 비싼 목도리(2만원)를 판매하였기에 그보다 조금 저렴하지만 그래도 비싼 축에 속하는 17000원짜리 고급(?) 하늘색 목도리로 입과 코를 가렸고, 눈에는 디자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커다란 뿔테 안경을 하였다. 그러다 보니 눈만 보고는 도저히 얼굴을 알아차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음식점에 가면 목도리를 풀어야 하지만 모자를 쓰고 안경을 쓴 채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으면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괜찮았다.

완전 무장을 갖춘 창현이 지영과 함께 근처에 위치한 영양 갈비탕 집으로 향했다.

이곳은 창현의 집에서도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집에서 해먹기가 귀찮을 때 종종 들르는 곳이었다.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그만큼 확실하게 맛이 보장되는 곳이었으니 더욱 그렇다.

이곳에서 저녁을 해결한 뒤 근처 마트에 들려 장을 보고 갈 생각이었다.

지영과 함께 갈비탕 집 안으로 들어선 창현은 비교적 구석 자리에 자리하였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이니 만큼 구석에 자리해야 편히 먹을 수 있기에 그렇다.

보컬 트레이닝이 끝나면 창현과 지영은 평범한 남매 사이로 돌아오기에 사소한 잡담들을 주로 주고 받는다.

십대인 지영은 연예계에 관심이 많지 않겠는가.

그래서 종종 창현에게 아이돌에 관련된 루머 같은 것을 물어보고는 한다.

몇 번 만나본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연예인들에 대해서는 대답을 해줄 수 있지만 그 외의 연예인들은 거의 알지 못하기에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지만 말이다.

영양 갈비탕 두 그릇을 시킨 두 사람은 갈비탕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축가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거기에서 지영이 네 실력이 처음으로 드러날 거야. 너라면 잘할 거라고 믿으니까 너무 떨지 말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라 아버지랑 어머니를 축복하기 위한 거니까. 알았지?”

지영은 이렇게 자신의 용기를 복 돋아주는 창현이 고마웠다.

솔직히 불안한 마음이 무척 컸기에 창현의 위로는 큰 힘이 되고는 한다.

“응, 알았어, 오빠.”

“너의 장점은 기교에서 오는 게 아니라 네가 느끼는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거야. 그러니까 떨지 말고 잘해.”

그렇게 두 사람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이었다.

갈비탕이 막 나올 무렵, 창현은 안으로 들어오던 사람들과 눈을 딱 마주치고 말았다.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두 여인이었는데 창현이 처음 가게 안으로 들어설 때처럼 완전 무장을 한 상태였다.

목도리로 입과 코를 가리고, 모자를 푹 눌러 써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밑에 있던 창현의 시선이 들어오던 사람의 눈과 마주한 것이다.

모습을 감추었지만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멈칫한 창현과 두 여인들.

창현의 시선이 묘하게 변했다.

‘누나들도 이곳에 오는구나.’

옆에 있던 지영이 창현을 보며 물었다.

“오빠, 왜 그래?”

“으응? 아니야. 아는 사람들이 있어서.”

“아는 사람?”

창현의 말에 지영의 시선이 안으로 들어선 두 사람에게 향한다.

잠시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 그리고 이내 무언가 결심을 굳힌 듯 창현에게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창현과 지영이 녹음실에서 축가를 부르기 위해 녹음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을 때, 소녀시대 숙소 내에서도 때 아닌 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로 한 멤버가 한 사람에게 떼를 쓰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던 것이다.

떼를 쓰는 사람은 다름 아닌 윤아였고, 그런 윤아의 공세를 받고 있는 인물은 유리였다.

유리는 소파에 누워 수연이 곧잘 취하는 말년 병장의 자세를 취한 채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수연이 저렇게 자세를 취하는 걸 보고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유리였기에 이 자세를 정복했다는 묘한 성취감과 함께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아늑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윤아는 그런 유리의 옆에서 그녀의 팔을 붙잡은 채 떼를 쓰고 있었다.

“언니이! 같이 나가요오! 네? 혼자 나가기 싫단 말이에요.”

“그냥 여기서 먹자. 뭐하러 밖에 나가서 먹으려고 그러는 거야.”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던 유리는 강한 힘으로 자신을 잡아 흔드는 윤아에게 표정을 찡그려 보인다.

모처럼 스케줄이 없는 날이어서 편안하게 숙소에서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다.

그런데 매일같이 바쁘게 스케줄을 소화하던 윤아도 오늘 쉬는 날이라고 하며 같이 놀아달라는 식으로 자신에게 치근거리니 귀찮을 수밖에 없었다.

“아잉! 언니, 쉬는 날이잖아요. 게다가 매니저 오빠들도 없는 지금이야 말로 밖에 나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란 말이에요.”

<소녀시대>란 곡으로 90년대 이승철의 노래를 다시 한 번 떠올릴 수 있게 한 소녀시대는 이른 바 삼촌 팬이라는 팬 층을 거느리게 됨으로써 상당한 인지도 상승을 겪게 되었다.

그로 인해 소녀시대 각 멤버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스케줄을 소화하게 되었고, 그러던 중 유리와 윤아가 오늘 스케줄이 비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평소 바깥 세상에 대한 열망이 강한(?) 윤아는 식사를 숙소가 아닌 밖에서 하자고 유리에게 강렬한 애교를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집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유리는 그런 윤아의 애교가 귀찮을 따름이었다.

남자였다면 백 번을 녹이고도 남았을 테지만 말이다.

“그냥 집에서 먹자. 반찬들도 많은데 왜 그래.”

“집에서 먹는 건 먹는 거고요. 저번에 태연 언니가 여기 앞에 진짜 맛있는 갈비탕 집이 있다고 했단 말이에요. 같이 가요. 네?”

윤아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은 다름 아닌 숙소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갈비탕 집이었다.

얼마 전에 태연과 수영이 그곳에 갔다 온 뒤 맛있다고 극찬을 하지 않았던가.

그 이야기를 들은 윤아도 반드시 가고 싶었지만 스케줄로 인하여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니저들의 삼엄한 감시 때문에 갈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멤버들이 뿔뿔이 흩어짐에 따라 매니저의 감시망이 느슨해졌고, 스케줄이 없어 외출이 가능한 지금이야 말로 최적의 시기였던 것이다.

거듭되는 윤아의 제안에 유리가 표정을 찡그리며 말한다.

“가고 싶으면 혼자 가면 되잖아.”

“혼자서 어떻게 가요. 그래도 나름 연예인인데. 언니이! 같이 가요! 네? 같이 가요!”

안 된다고 해도 계속해서 가자고만 하는 윤아를 보면 영락없는 어린 아이가 떠오르는 유리였다.

마치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를 쓰는 어린 아이.

이럴 때만큼은 팬들이 지어준 초딩이란 별명이 무색하지 않다고 여기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유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았다고, 알았어. 가자. 그 맛있는 곳이 어딘지 꼭 맛을 봐야겠다.”

“언니 땡큐! 대신 내가 살게.”

유리의 승낙을 얻어내자 어린 아이처럼 기뻐하는 윤아였다.

그리고는 느릿하게 움직이는 유리를 붙잡고 무장을 시키기 시작한다.

인지도가 올라감에 따라 알아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었고, 자칫 들켰다가는 곤욕을 치를 수 있으니 얼굴을 가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무장을 마친 두 사람은 숙소를 벗어났다.

소위 말하는 사생팬들도 생겨난 상태였기에 유리와 윤아는 숙소를 벗어날 일이 있으면 수연이 알아낸 방법을 사용하고는 하였다.

바로 옥상으로 가서 옆 라인으로 옮긴 뒤 나오는 것이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 앞에는 몇몇 사생팬들이 보였지만 옆 라인에서 나오니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렇게 아파트 단지를 나선 두 사람은 갈비탕 가게로 향한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기에 두 사람은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윤아가 간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에요. 제법 크죠?”

“사람 많다. 정말 맛있나본데?”

유리는 간판보다 안에 모여 있는 손님들을 보고는 말했다.

식사 시간대라고 하지만 자리가 거의 꽉 찬 것을 보면 가게가 무척 잘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손님이 많다면 당연히 음식이 괜찮은 것일 테지.

두 사람이 가게 안으로 들어설 무렵이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던 유리와 윤아는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제일 구석이라 할 수 있는 곳에서 자신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무장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낯익은 패션과 체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때, 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사람도 두 사람과 시선이 마주쳤다.

“…….”

순간 흐르는 침묵.

유리와 윤아는 직감적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숙소 인근에 살고 있으며 이 근처에 녹음실이 있는 인물.

‘창현이다!’

두 사람의 뇌리에 스친 생각이었다.

윤아가 유리를 보면서 물었다.

“언니, 어떻게 하죠? 창현이도 우리를 알아본 것 같은데?”

그러면서 윤아가 묘한 눈으로 유리를 바라본다.

그녀의 내심은 창현과 함께 앉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하였다.

“알아본 것 같으니 그냥 합석할까. 어차피 자리도 많지 않은데 같이 만난 것도 인연 아니겠어?”

“그럼 좋죠.”

윤아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유리가 그녀의 바람대로 해준다.

그 말에 윤아가 밝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 창현에게 다가가는데, 무언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창현의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다름 아닌 여자였던 것이다.

그걸 확인한 순간 윤아의 마음이 순간 철렁하면서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서, 설마 여자 친구는 아니겠지?’

자신들과는 약간 다르지만 비주얼로 엄청난 팬을 거느리고 있는 현인 만큼 이성을 사귀는 문제에서 회사에 제약을 가하지 않겠는가?

SM엔터테인먼트에서도 그렇게 하기에 윤아는 스스로 위로를 하려고 했지만 마음이 불편하였다.

언젠가 한 번 만난 AA엔터테인먼트 사장의 성격을 떠올려보면 오히려 환영했으면 환영했지 못하게 하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윤아의 마음이 불안함으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하였다.

‘진짜 여자 친구는 아니겠지? 설마? 아무 낌새도 눈치 채지 못했는데?’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이 엉켜들 때, 윤아를 툭 치는 손이 있었다.

윤아가 시선을 옮기니 그곳에는 유리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리는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 윤아에게 물었다.

“뭐해?”

“에, 에… 그게 그러니까… 언니 혹시 누구인지 알아요?”

윤아가 슬쩍 창현의 맞은 편에 앉은 지영을 가리키며 묻는다.

그에 유리의 시선이 지영에게 향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무언가 떠오른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 쟤 걔잖아. 창현이 동생.”

“동생이라고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윤아가 되묻자, 유리가 말했다.

“12월에 한 번 난리가 난 적 있잖아. 스티커 사진 때문에. 조만간 창현이의 동생이 될 애야. 이름은 최지영이고.”

“아…….”

유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윤아였다. 그러고 보니 며칠 후에 AA엔터테인먼트 사장이자 창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석규의 결혼식이 있지 않은가? 결혼을 하게 되면 창현에게 여동생이 새로이 생긴다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지금 유리가 말한 것은 12월에 창현이 어떤 여학생들과 스티커 사진을 찍어 사건이 크게 번졌던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이해가 되자 한시름이 놓이는 윤아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긴장감이 들었다.

그렇다는 건 지금 창현의 맞은 편에 있는 여자 아이는 창현의 여동생이 된다는 것이 아닌가.

여동생에게 점수를 따서 창현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한 걸음 전진할 수 있다면?

이것은 엄청난 기회가 될 수 있다.

창현의 앞에서 떳떳해질 정도로 인지도를 쌓으면 나서기로 마음먹은 윤아였지만 요즘 상황이 그런 결심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었다.

현의 인기가 날이 갈수록 안정되는 기미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폭증하는 기미를 보이고 있던 것이다.

가뜩이나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거기에 인기 상승이 이루어지니 점점 그와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아니라, 점점 벌어지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러자 위기감이 바짝 들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우선은 한 발자국씩, 거부감이 들지 않게 접근을 하려는 윤아였다.

그 사이 두 사람은 창현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도착하였다.

유리는 창현을 보면서 인사를 하였다.

“안녕, 창현아. 여기서 만나니 반갑네. 자리가 많이 없어서 그런데 합석을 해도 괜찮을까?”

지극히 자연스럽게 말을 하는 유리였다.

그에 맞은 편에 앉아있던 지영의 시선도 유리에게 향했다.

창현은 지영을 보면서 물었다.

“어떻게 할까, 지영아.”

자신은 상관이 없지만 지영은 상관이 있지 않은가. 아무리 맛이 있는 음식을 먹어도 함께 있기 불편한 사람과 함께 하게 되면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기에 창현은 지영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난 상관없어, 오빠. 여기 앉으세요.”

흔쾌히 합석을 승낙한 지영은 자리에서 일어서고는 창현의 옆에 가서 앉았다.

그런 지영의 행동에 윤아는 순간 멈칫하다가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지영의 승낙을 듣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창현의 옆에 자리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영이 견제를 하듯이 먼저 창현의 옆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윤아를 견제하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낯설어서 그런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지영이 쉬운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차분하게, 거리감을 두지 않고 접근해야 해.’

눈앞의 귀여운 소녀의 지원을 얻을 수만 있으면 창현에 대해서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첫 인사를 꺼낼지 고민에 빠지던 차, 먼저 치고 들어오는 존재가 있었다.

“창현이 안녕! 여기서 만나니 반갑네. 그리고 너는 지영이 맞지? 나는 유리라고 해. 아참, 내가 말을 놓아서 기분 나쁜 건 아니지?”

윤아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계산이 오가고 있을 무렵, 먼저 입을 연 것은 다름 아닌 유리였다.

복잡하게 계산을 하다가 먼저 선수를 빼앗긴 셈이다.

“아, 예. 안녕하세요, 누나. 그동안 잘 지냈어요?”

유리의 친근한 인사에 창현이 먼저 인사를 받았다.

이어 지영도 웃음을 지으면서 유리의 인사를 받는다.

“안녕하세요, 유리 언니. 만나서 반가워요. 오빠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제법 친밀함을 발휘하는 지영이었다.

유리는 지영의 말에 호오! 하는 감탄사를 흘리면서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이야기라니 어떤? 설마 우리 욕을 하지는 않았겠지?”

“욕이라니요. 무슨 섭섭한 말씀을.”

펄쩍 뛰며 부인하는 창현이었다. 절대로 욕한 적이 없었다는 의사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지영의 입장은 달랐다.

지영의 입가에 미소가 서리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입을 연 것이다.

“흐응, 글쎄요. 오빠가 욕을 한 것 같기도 하고…….”

“우리 욕을 했다고? 정말?”

“지영아 너 거짓말 하면 안 되지!”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유리가 창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창현이 펄쩍 뛰면서 지영에게 한마디 하였다.

자신이 언제 욕을 했단 말인가!

억울한 입장에 처하게 된 창현이었다.

그런 창현의 반박에 지영이 말했다.

“욕은 하지 않았어요. 다만 뭐랄까… 매번 당하는 것 같아서 다음에는 당하지 않겠다고 결의만 다지더라고요.”

“풉! 결의를 다져?”

지영의 말에 웃음을 간신히 참아내는 유리였다. 창현이 매번 당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갔던 것이다. 하나씩 꼽아보면 끝도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서 쿨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뒤에서 결의만 다지다니, 제법 귀여운 면이 있었다.

“지영이 너… 어휴!”

지영의 말을 들은 창현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설마 그 사실을 말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그렇다.

그런 창현의 모습에 유리의 얼굴에 서린 웃음은 더욱 짙어졌다.

“창현이 너 의외로 소심한 면이 있네? 매번 쿨하게 넘겨서 마음이 넓은 줄 알았는데.”

“쳇! 저 마음 넓거든요? 다만 쉽게 당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졌을 뿐이에요.”

변명과도 같은 창현의 말에 유리의 입가에 맺힌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그렇구나. 그렇다고 생각할게. 후후후!”

전혀 믿는 듯한 얼굴이 아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창현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은근히 약점을 건드리는 유리의 특성상 이번 건으로 인해 제법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의외의 창현의 소심한 면을 캐치한 유리가 승자의 웃음을 짓고 있다가 머뭇거리는 윤아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녀를 툭 치며 말했다.

“윤아야, 너는 왜 인사 안 해. 인사해.”

“에? 아… 안녕하세요? 나는 소녀시대의 윤아야…요.”

갑작스럽게 인사를 해야 했기 때문일까.

어떻게 말문을 열지 고민하던 윤아는 갑자기 유리가 자신을 치며 말하자 당황한 표정을 지은 채 존댓말과 반말이 뒤죽박죽된 말을 꺼내고 말았다.

“풉! 너 왜 그래. 완전 웃긴다.”

윤아의 이상한 인사에 유리가 웃음을 지었다. 존댓말과 반말의 혼합이 우스웠기에 그렇다.

‘언니 너무해.’

유리 때문에 실수를 했다고 생각하는 윤아는 유리를 원망스럽게 바라보고서는 창현과 지영을 힐끗 보았다.

그러자 창현과 지영도 입가에 웃음이 맺혀 있는 것이 보였다.

윤아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대로 있을 수 없었기에 다시 한 번 인사를 한다.

“소녀시대의 윤아에요. 저도 언니니까 말을 놓아도 될까요?”

우선 까불거리는 유리와 달리 조신하게 나가기로 마음 먹은 윤아였다. 첫 인상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소곳하고 순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 윤아의 전략이 주효했던 것일까.

지영은 싱긋 귀엽게 웃음을 지으면서 윤아의 말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최지영이에요. 편안하게 지영이라고 부르셔도 되요. 저도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으응. 물론이지. 윤아 언니라고 불러. 지영이 참 귀엽다.”

“고마워요. 언니도 역시 소문처럼 예뻐요.”

지영의 말에 윤아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그녀가 말한 것 중에서 ‘소문처럼’ 이라는 말이 귀에 걸렸던 것이다.

과연 누가 그런 소문을 퍼뜨린 것일까.

설마…….

‘예쁘다고? 설마 창현이가 이야기해준 걸까.’

그럴 확률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김칫국부터 마시는 윤아였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창현과 지영의 갈비탕이 먼저 나왔다. 뒤이어 유리와 윤아도 갈비탕을 주문하였고, 잠시 후, 갈비탕이 나오자 함께 먹기 시작하였다.

값이 제법 비싼 갈비탕답게 갈비가 무척 많이 들어가 있었고, 국물이 진하여 진짜 갈비탕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맛이었다.

한동안 식사에 열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사이 윤아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분주하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이대로 식사가 끝나면 그냥 헤어질 것이 분명하였다. 그런 만큼 이 자리에서 지영이와 친해진 뒤 본격적으로 창현과 친분을 쌓을 발판을 마련해놓는 것이 좋다.

‘이 상황은 아니야.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해.’

문득 한때 강력했던 라이벌(?) 세실리아의 말이 떠올랐다.

용기 있는 남자만이 미녀를 차지하는 세상은 끝났다.

이제는 용기 있는 여자도 미남을 차지하는 세상이 도래하였다.

먼저 나서서 실행력을 보여야 만이 추후 승리의 달콤함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지영이도 귀여운데 혹시 연예인에 관심 많지 않아?”

정석적인 공략을 펼치는 윤아였다.

십대 중에서, 특히 여성이 연예계에 관심 없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관심이 많았고, 그중에서 당연히 관심의 집중은 SM라인인 동방신기와 슈퍼주니어에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녀시대도 SM라인인 만큼 그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고 있고, 그 중에서도 윤아는 가장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있는 축에 속한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쓸모없는 지식에 불과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지영의 환심을 살 수 있는 최고의 카드가 되리라.

윤아의 말에 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관심이 많죠. 제 꿈도 가수인 걸요?”

“가수라고? 정말? 오디션은 본 거고?”

가수가 꿈이라니. 창현이 오빠인 만큼 연예인이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아니, 조금 더 생각해보면 오히려 더 까다로울 수가 있다. 창현의 이름 값이 워낙 대단한 만큼 어중간한 실력으로 데뷔를 하다가는 가십거리가 되기 십상일 테니 말이다.

“네, 오디션은 당연히 봤죠. 현재는 연습생이에요.”

“그래? 어디 연습생인데?”

궁금한 듯 묻는 윤아였다. 일단 SM엔터테인먼트에는 보인 적이 없으니 아닐 테고… 그렇다면 어딜까. JYP? YG? DSP? 코어? 엠넷?

수많은 기획사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지영의 입에서 나온 곳은 전혀 다른 곳이었다.

“아니에요. 아버지 회사인 AA엔터테인먼트 연습생이에요.”

“AA엔터테인먼트라고? 거기 연습생 안 받지 않아?”

지영의 말에 대답한 것은 유리였다. 처음에는 나오기 싫어하다가 갈비탕 맛이 뛰어나자 정신없이 먹으면서 이야기를 듣다가 지영의 말에 놀라 외친 것이다.

유리의 물음에 지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네. AA엔터테인먼트 연습생이에요.”

“거기 연습생 없는 걸로 아는데. 어떻게 들어간 거야?”

순간 아버지나 창현의 후광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려다가 들어갔다. 앞에 있는 창현과 지영에게 실례되는 말이었기에 그렇다.

“오디션을 보고 들어갔죠. 워낙 까다롭게 조건을 제시해서… 삼 년 동안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최종 데뷔 여부를 알려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한숨을 푹 내쉬는 지영이었다. 연습생 생활을 하는 사람들 대개가 그러하듯 마음은 당장 데뷔에 가 있는데 연습생 생활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에서 암담함을 느낀 것일 테지. 게다가 데뷔를 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데뷔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니 더욱 그러했다.

“그건 좀 그렇다. AA엔터테인먼트 사장님은 무척 자상하시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까다로우신가봐?”

“아니에요. 사장님… 아빠는 괜찮다고 하셨는데, 오빠가 좀 엄해서요.”

그렇게 말하며 힐끗 창현의 눈치를 보는 지영이었다.

그 말에 유리가 놀란 눈으로 창현을 바라보며 말한다.

“창현이가?”

“오빠가 제법 엄하거든요. 후우!”

“그건 이해해.”

데뷔 전 창현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경험이 있는 유리는 지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는 아주 순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가 막상 무언가에 돌입하게 되면 무섭게 몰입하는 모습을 보았으니 말이다.

“남매지간이라 하여도 엄하게 대해야 할 것은 존재하니까요. 게다가 지영이는 제 동생이라는 이름으로 나갈 것이기에 남들만큼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남들보다 더 잘해야 되요. 그래야 최소한 욕은 먹지 않을 테니까요.”

“그것도 맞는 말이야…….”

그렇게 말이 나오자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런 분위기를 타파하고자 윤아가 입을 열었다.

“분위기가 너무 무거운 거 아냐? 지영이는 최선을 다하면 되고, 창현이는 최선을 다해서 지영이를 가르치면 되는 거지. 최선을 다하면 결과는 좋게 나올 테니까.”

“오오! 윤아 네가 옳은 말을 할 때가 있구나. 우리 사고뭉치가 이렇게 크다니!”

빠직! 자신이 왜 사고뭉치란 말인가. 사람 이상하게.

윤아가 발끈한 표정으로 유리에게 말했다.

“제가 언제 옳지 않은 말을 했다고 그러세요!”

“항상 그러잖아!”

그러면서 투닥거리는 두 사람이었다.

그래도 윤아의 노력 때문인지 분위기는 한결 가벼워졌다.

식사를 마치고, 인근 커피숍으로 가서 간단하게 티타임을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같은 여자이고, 연예인 지망생이란 점 때문일까.

유리와 윤아는 지영과 상당히 친해질 수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윤아는 지영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친밀도를 올리면서 지영이 오빠의 연애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둘 필요가 있던 것이다.

오빠의 연애 상대가 생길 경우 어떻냐고 물어보자, 지영의 대답은 이러했다.

“최선을 다해서 방해해야죠. 오빠는 소중하니까요.”

그렇게 말을 하는 지영의 얼굴에는 단호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절대로 순순히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영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는 윤아였다.

아무래도 지영을 꼬드겨 창현에게 호감을 사야겠다는 작전은 어려울 듯 싶었다.


카페에서의 대화를 끝맺고, 헤어질 때가 되자 유리가 지영에게 슬쩍 다가온다. 그리고는 지영에게 슬쩍 말한다.

“지영아.”

“아, 네. 유리 언니.”

창현과 윤아는 방금 마셨던 플라스틱 컵과 종이컵을 버리는 중이었기에 유리와 지영 단 둘만 남은 상태였다.

지영은 갑자기 유리가 말을 걸자 살짝 움찔하며 대답을 하였다.

뭐랄까,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해지기는 했지만 워낙 만난 시간이 짧았기에 창현이 옆에 없으면 아직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유리는 쿡! 하고 웃음을 짓더니 말한다.

“그렇게 부담 갖지마. 내가 미안해지잖아.”

“네, 네…….”

말 한마디로 부담을 덜어낼 수 있다면 누구든지 부담을 갖지 않으리라.

어색하게 대답하는 지영의 모습에 유리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한다.

“부담 갖지 않아도 되는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지. 음음! 다름이 아니라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

그러면서 은근히 곁눈질을 하는 걸 보아 무언가 비밀스러운 물음인가보다.

지영은 자신에게 무얼 물어볼까 순간 고개가 갸웃거렸지만 아는 바가 없었기에 흔쾌히 대답한다.

“네, 물어보세요.”

“응! 그럼 물어 본다……?”

무얼 물어보는 게 그리 어렵단 말인가.

지영은 유리가 생각보다 소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질문 하나 하는 것 가지고 이렇게 지체하는 모습을 보일 리 없을 테니 말이다.

고개를 살짝 끄덕임으로써 동의의 표시를 보이자 유리의 표정이 살짝 풀어지며 묻는다.

“아까 윤아의 질문에 대답했던 거 말인데…….”

윤아의 질문?

순간 무슨 질문인지 파악이 안 돼서 고개를 갸웃하는 지영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무슨 질문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지영에게 유리가 언질을 한 것이다.

“윤아가 창현이 여자 친구에 대해서 물어본 거 말이야.”

“아! 그거요?”

유리의 말에 무슨 질문이었는지 떠올리는 지영이었다.

분명 윤아가 그런 질문을 했었지.

그에 대한 지영의 대답은 뻔했다.

세상에 저런 오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얼굴도 잘생겼지, 돈도 많지, 노래도 잘하지, 성격도 좋지, 게다가 동생도 배려할 줄 알지…….

장점을 늘어놓다 보니 끝도 없을 정도로 많다.

그게 바로 창현이란 존재였다.

그런 오빠를 누가 쉽게 넘겨준단 말인가.

지영은 창현에게 어울리는 여자가 아니면 절대로 그를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절대 사심이 들어간 생각이 아니었다.

오빠에게 어울리는 여자가 아니면 절대 넘겨주지 않겠다는, 시누이로서 최고의 새언니를 찾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당연히 방해해야죠. 제 모든 걸 걸고 화끈하게 방해할 거예요.”

지영의 결심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런 지영의 말에 유리의 표정이 모호하게 변했다.

“그래? 그건 조금 아쉽네. 하지만 지영아…….”

“네?”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는 유리의 모습에 지영이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 대답한다.

그러자 유리가 지영에게 다가가더니 속삭이듯 조용히 말한다.

“나는 어때? 새언니로?”

“에엑?”

유리의 말에 경악 어린 표정을 짓는 지영이었다.

갑자기 그런 것을 물어보기에 설마 했는데 그런 것이란 말인가?

유리 언니가 오빠를?

지영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 자신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현명하게 대처했다고 볼 수 있을까.

아니, 창현과 유리의 조합이라고? 세 살 차이나 나는데? 게다가…….

수많은 생각들이 교차하면서 지영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지영의 얼굴을 보면서 유리가 웃음을 지었다.

“후후! 복잡한 모양이네. 하지만 이쪽도 제법 용기를 낸 거라고. 당사자가 워낙 난공불락에 완전둔감이라서 시누이 쪽을 먼저 공략하고자 마음을 굳힌 거거든.”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하는 유리였다.

멤버들 사이에서 제법 까불까불하지만 막상 호감을 가진 남자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그녀였다. 뭐라고 해야 할까. 말을 거는 것이 부끄럽다고 해야 할까?

게다가 호감을 표시해야 하는데 호감 표현보다는 틱틱거렸기에 관계 개선을 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마치 초등학생 남자 아이가 여자 아이에게 표현을 제대로 못해서 괴롭히는 것처럼 말이다.

유리가 창현을 좋아하게 된 것은 결정적 계기 같은 것이 없었다.

뭐랄까. 창현은 마치 담배와도 같다고 할까나?

한 번 손을 댔다가 그 다음부터 서서히 빠져들고 헤어 나올 수 없는, 마치 그런 담배와도 같은 존재였다.

빠지면 빠질수록 그 결말이 좋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것도 비슷하였다.

이 점에 대해서 유리는 많은 고민을 해야만 했다.

이대로 호감을 접어두고 친한 동생으로 알고 지낼 것이냐, 아니면 한 번 부딪쳐보는 것이 좋은가.

본래 유리는 창현에 대한 마음을 접으려고 하였다.

그를 좋아하기에는 현재 인지도 차이가 워낙 컸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걸음 떨어져서 둘러볼 여유가 있는 만큼, 그녀들 중 누가 창현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던 것이다.

멤버들 중 절반 이상이 창현에게 이성으로서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심지어 연하는 싫다고 했던 몇몇 멤버들까지 말이다.

아무래도 나이에 비해 성숙한 창현의 매력에 빠져있는 듯했다.

그를 좋아하게 되면 결국 멤버들과 경쟁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했기에 유리는 자신의 마음을 접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누구도 창현에게 적극적으로 접근을 하는 사람이 없던 것이다.

아무래도 인지도의 차이를 느끼고, 본인들 스스로가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를 때까지 마음을 자제하려는 듯하였다.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창현은 치명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거기에서 유리는 자신에게 기회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멤버들처럼 결정적인 계기는 없었지만 나이에 비해 성숙하면서 풋풋한 상반된 매력과 모든 것을 포용할 듯한 넓은 마음, 그리고 나날이 성장해가는 외모나 키 같은 것 모두가 마음에 쏙 들어왔다.

이렇게 멋진 남자를 가까이서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을 사람이 있을까.

데뷔 전부터 창현과 알고 지냈기에 여성들이 그렇게 꺄악거리는 동방신기도, 슈퍼주니어도, 빅뱅도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보다 더 멋지고 우월한 매력을 지닌 인물이 있었으니 말이다.

‘한 번 해보는 거야.’

아무도 멤버도 나서지 않는 이상 지금의 찬스는 기회 중 기회였다.

뭐랄까, 축구로 이야기를 하면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이라 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을 놓치면 바보가 아닌가?

창현이 이렇게 둔감한 것도 아직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그럴 확률이 높다.

저렇게 어리어리한 상황일 때 확 휘어잡으면 인기가 있다고 하여 여기저기 여자들에게 대시를 하고 있는 남자 아이돌보다 훨씬 예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창현을 보아온 것이 햇수로 3년이 지났으니 그에 대해서 충분히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기에 창현의 동생인 지영이 나타났다.

이것은 최고의 어시스트가 될 수 있고, 최악의 플레이가 될 수도 있다.

지영의 호감을 사서 지원 사격을 받을 수만 있으면 창현의 마음을 훔치는데 가장 앞서 나갈 수 있을 것이고, 경계심을 사게 되면 알리느니만 못한 것이 될 것이다.

사전에 최선을 다해 방해해주겠다고 말을 했음에도 유리가 나선 것은 갈비탕 집에서부터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했기에 그렇다.

지영이가 그렇게 말을 함으로써 자신의 의지를 보였지만 불의의 일격을 당함으로써 당혹할 것이고, 그 틈을 비집기만 하면 최소한 방해는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유리의 계산이었다.

그 계산이 먹혀들었기에 지영이 당혹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

유리는 지영을 보면서 물었다.

“지영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대답을 해줘.”

그 말에 지영은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 유리를 볼 수 있었다.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유리의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시종일관 자신만만한 그녀답지 않게 부끄러운 감정을 보이고 있던 것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지영은 유리가 용기를 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긴 생머리에 귀엽다기보다는 예쁜 외모를 지닌 유리는 살짝 까무잡잡한 피부로 인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섹시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남자 관계가 제법 복잡할 법도 보이는데 내면에는 그와 전혀 다른 모습이 숨어 있었다.

그 모습이 신선하고 한편으로는 까다로울 법한 그녀의 기준에 창현이 부합했다는 것이 자부심이 들었다.

역시 창현 오빠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지영이 입을 열었다.

“도와주는 건 모르겠어요. 하지만…….”

유리의 시선이 지영에게 향한다. 의외의 일격을 퍼부었으니 이제 결과만 나오면 된다.

과연 지영은 뭐라고 할까.

그 시선을 받으며 지영이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적어도… 방해는 하지 않을게요. 대신… 스캔들이 나지 않게 조용히 하세요. 아셨죠?”

지영의 방관 선언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수확이었다.

방해를 하겠다는 말과 달리 방관을 하겠다는 것은 적어도 방해를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즉, 자신은 방해하지 않되 다른 여자들의 접근은 지영이 방해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순식간에 엄청난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이다.

“고마워, 지영아. 다음에 내가 맛있는 거 꼭 사줄게. 아니다. 동방신기 오빠들이랑 슈퍼주니어 오빠들 싸인 CD라도 받아줄까?”

마음이 흔들릴 때 확 잡아두는 것이 좋다.

지영의 환심을 단단히 사두기로 마음먹은 이상, 유리는 자신의 인맥을 총 동원하여 지영에게 물량공세를 하고 있었다.

동방신기는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까지 했고, 슈퍼주니어와 소녀시대는 원래 친했으니 말이다.

십대 여성 중에서 동방신기나 슈퍼주니어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니나 다를까.

유리의 말에 지영의 표정이 활짝 핀다. 창현이 동방신기와 슈퍼주니어를 알고 있다고 하나 싸인 CD를 구해준 적은 없기에 그렇다.

“정말요? 싸인 CD요?”

“물론이지! 이래 보여도 SM엔터테인먼트라고! 다 아는 오빠들이야. 충분히 받아줄 능력이 되지.”

“저야 좋죠! 그것도 완전요!”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이 창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다익선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지영은 동방신기와 슈퍼주니어 모두 좋아한다.

게다가 유리에게 무언가를 받는다는 것.

그것은 지영에게 한줄기 위안이 되고 있었다.

무언가를 받게 되면 유리의 접근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무언가를 받아서 그렇다는 것이 되니 말이다.

결국 자기 위로 수단이 필요했던 것이다.

지영과 합의가 되자 유리의 입가에도 미소가 맺힌다. 무언가를 주고, 그것을 지영이 받았다는 것은 자신과 한 배를 탔다는 의미였으니 말이다.

“좋아! 그럼 이걸로 합의 본 거다?”

“대신 도와드리지는 못해요. 사실… 저도 오빠와 같이 지낸 지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아서 오빠에 대해서 잘 모르거든요. 대신… 오빠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면 전해드릴게요.”

지낸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앞으로는 같이 지낼 것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자신들보다 창현에 대한 것을 알아내는 것이 월등히 빠를 것이다.

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라면 대 환영이지.”

“좋아요. 나머지는 언니 능력이에요. 저는 지켜보기만 할 테니까요.”

“두고 봐. 창현이가 내 매력에 넘어올 수밖에 없게 만들 테니까.”

지영이라는 지뢰를 피한 지금, 유리는 자신감이 팽배하는 것을 느꼈다.

적어도 자신이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거한 상태니까.


숙소로 돌아가는 길.

창현과 지영은 녹음실로 간다는 말에 카페에서 나온 유리와 윤아는 그들과 찢어져 돌아가게 되었다.

윤아는 유리의 표정을 보면서 의심스러운 얼굴로 묻는다.

“언니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무슨 좋은 일 있어요?”

카페에 나왔을 때부터일까.

유리의 표정이 묘하게 좋아 보이는 것을 느꼈다.

사소한 변화라면 변화일 수 있지만 수 년 동안 함께 연습을 한 멤버가 아니겠는가?

작은 변화라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윤아의 물음에 유리는 순간 멈칫한다. 그러다가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그래? 흐음! 맛있는 갈비탕을 먹어서 그런가? 수고했어, 윤아야. 갈비탕 맛있더라.”

그러면서 윤아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유리가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윤아가 넘어갈 리 없었다.

갈비탕이 맛있었다면 갈비탕 집을 나설 때 밝은 표정을 지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유리의 표정이 밝아진 것은 갈비탕 집을 나설 때가 아니라 카페를 나설 때란 말이다.

그러니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자 윤아는 자신과 창현이 먹은 컵들을 정리할 때 유리가 지영과 함께 이야기 나누던 장면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때 둘 모두 즐거워 보이던데. 설마 그것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지영의 표정도 무척 즐거웠던 것으로 보아 무언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오고간 것인데 무엇일까.

‘아, 모르겠어. 물어봐도 대답을 해줄 것 같지 않고.’

진실을 말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딱히 숨기는 기색도 보이지 않지 않은가.

이러면 진실을 알아내기는 더 어려워진다.

윤아는 머리가 복잡해지는 느낌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는 유리의 뒤를 부지런히 따라가기 시작했다.


‘무사히 넘어간 건가?’

순간적인 윤아의 물음에 멈칫했던 유리는 자신의 대답에 윤아가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 예의주시하여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석연치 않은 대답이었다.

맛있는 갈비탕을 먹었으면 갈비탕 집을 나설 때 기분 좋은 기색을 보였어야 하는데 카페에 나설 때부터 싱글벙글한 안색을 보였으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윤아도 무언가 부족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른 척 외면을 하면서 윤아가 어떻게 나올지 계산을 해야 했다.

그녀가 다시 질문을 한다면 능청스럽게 대꾸하여 자연스럽게 벗어날 방도를 강구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윤아는 스스로 납득한 모습을 보였다.

유리로서는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후우! 설마 그걸 물어볼 줄은 몰랐네. 다행이다. 그럼 이제 앞으로의 일을 어쩐다.’

작은 언덕인 윤아라는 장애물을 넘어선 유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만 했다.

지영이라는 산을 정복한 이상 그녀 앞에 펼쳐진 것은 감히 인간의 힘으로 정복이 가능할지 의문이 드는 높은 산이었다.

이것은 순전히 자신의 노력 여부에 따라 정복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갈리게 될 것이다.

‘우선 걸리는 것은 메이크업 사건인데…….’

오늘 창현과 만났을 때 반갑게 인사를 했지만 유리를 머뭇거리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바로 연말 가요대전에서 창현과 마주쳤을 때가 그것이다.

연말 가요대전에서 유리는 리허설 무대를 서게 되었다. 그런데 그만 메이크업이 절반 정도 끝났을 때 리허설 무대를 서게 되어서 보기만 해도 우스운 그런 모습으로 리허설 무대를 섰던 것이다.

게다가 눈화장이 한쪽만 되어 있어서 그야 말로 언밸런스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창현과 정면으로 마주쳤던 것이다.

화장의 전후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은 모든 여자의 공통된 심리였다.

하물며 호감을 가진 이성에게는 오죽하겠는가.

근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유리는 아직도 그것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망가진 이미지를 회복하려면 획기적인 무언가가 필요했으니 말이다.

‘일단은 차근차근 접근해나가자. 그럼 될 거야.’

지영이라는 방파제가 유리에게 안심이라는 감정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오빠를 넘겨줄 수 없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지영이라면 충분히 시간을 벌어줄 것이란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연습생이라면 분명 창현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받게 될 것이고,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게 되면 알게 모르게 얻는 정보들이 많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유리해지는 것은 자신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천천히, 나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야.’

인지도를 높인 뒤 창현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려는 멤버들의 선택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다만 유리는 그와 약간 다르게, 인지도를 서서히 올리면서 그와 별개로 창현과의 친분을 다져나갈 생각이었다.

항상 옆에 있어주다가 갑자기 사라지면 그 빈 공간에서 허전함을 느낄 수밖에 없기에.

그것이 남녀 간의 감정을 싹트게 만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선 이론에서는 박사 못지않은 지식을 자랑하는 유리였다.

하지만…….

이론이 실전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칠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녹음실로 향하던 창현은 얼굴에 웃음을 짓고 있는 지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

“지영아,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그렇게 싱글벙글 웃고 있는 거야.”

“응? 내가 그렇게 보이나.”

그러면서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는 지영이었다.

그런 지영의 행동에 창현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그렇게 보이니까 내가 묻는 것 아니겠어. 무슨 좋은 일이 있는 건데, 그래? 너 카페에서 나올 때부터 계속 웃음을 짓고 있더라.”

“아! 실은 유리 언니가 동방신기랑 슈퍼주니어 싸인 받아준다고 했거든. 그것 때문에 기뻐서 그렇지.”

아무래도 십대 소녀에게 동방신기와 슈퍼주니어는 선망의 대상 아니겠는가?

지영의 말에 그녀가 왜 좋아하는지 이해가 가는 창현이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이 무심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었으면 지영이가 이렇게 사소하게 기뻐하는 일들을 자신이 해주었을 텐데 말이다.

“잘 됐네. 그러고 보니 내가 좀 무심했던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내가 진즉에 받아줄 걸 그랬네.”

“괜찮아, 오빠. 유리 언니가 받아주기로 했잖아.”

그러면서 지영의 입가에 맺힌 미소는 다른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바로 창현에 대한 뿌듯함이었다.

‘엄청 대단한데 이렇게 소탈하니까 언니가 좋아하는 거겠지. 하여간 뭐든지 대단하다니까. 아니, 여자의 마음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 대단한 게 아니라 좀 그런 건가?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지.’

여자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어떤 의미로 대단하지만 막상 좋아하는 상대에게 있어서는 재앙과도 같은 단점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만큼 야속한 게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창현의 나이가 열일곱인데 아직은 좀 빠르지 않은가.

그 점이 걸리는 지영이었다.

‘뭐 어떻게 되겠지. 나는 도와준다고 하지 않았으니 유리 언니가 잘할 거야. 나는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거고.’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자세한 전말을 알고 있다고 자신이 꼭 도와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갑작스러운 유리의 말에 당황하여 방해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딱히 도와줄 마음도 없는 지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이렇게 멋진 오빠를 이른 나이에 여자에게 보내고(?) 싶겠는가.

그 점만큼은 확고한 지영이었다.

창현을 꼬시건 마음을 훔치건 그것은 유리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유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영의 마음이 아닐 수 없었다.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고, 창현도 지영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창현이 지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지영아, 이번에 축가 하는 건 잘해야 하니까 소화를 시킨 다음에 조금 더 연습하기로 하자. 부를 노래를 주로 네가 불러야 한다는 거 알지? 어떻게 보면 연예 관계자들에게 처음 실력을 선보이는 것이기도 하니까 잘해야 돼. 알겠지?”

“알았어, 오빠. 열심히 연습할게.”

창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지영이었다. 석규의 자리가 자리인 만큼 연예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연예인들도 모일 확률이 높았다.

그런 자리에서 축가를 부른다는 것. 제법 부담되는 자리였다.

그렇다고 그 기회를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어찌 되었건 간에 자신의 어머니와 새 아버지가 결혼을 하는 자리가 아닌가?

자신의 노래로 그들의 결혼을 축복해줄 수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때문에 과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을 가르치는 창현의 일정도 묵묵히 소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지영이가 이렇게 듬직하게 말하니까 나도 기분이 좋구나.”

그러면서 지영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쓰다듬어주는 창현이었다.

지영은 창현이 쓰다듬어주면 무척 좋아하고는 하였기에 창현은 칭찬할 일이 있으면 종종 지영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한다.

“듬직하긴.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건데.”

그 말에 창현이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듬직하다는 거야. 이런 게 효도라는 거고.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자. 알았지?”

“응!”

창현의 말에 힘차게 대답하는 지영이었다.

석규와 지선의 결혼식이 코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석규와 지선의 결혼식 당일이 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결혼식장으로 향한 창현과 지영은 복장부터 갈아입기 시작하였다.

오늘 결혼식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석규와 지선이지만 창현과 지영도 그에 못지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어찌 보면 평범한 기획사 사장의 결혼식이라 볼 수 있지만 창현의 인지도 때문에 관심도가 웬만한 톱스타 이상의 것으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거기에 AA엔터테인먼트와 긴밀한 사이로 지내던 SM엔터테인먼트에서 대대적으로 참석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터였기에 그 관심도는 더욱 커졌다고 볼 수 있다.

결혼식장에 도착한 창현과 지영은 신랑이 입을 법한 깔끔한 하얀색 턱시도를 입었고, 지영 또한 수수하면서도 볼수록 아름다운 하얀색 드레스를 입었다.

드레스를 입은 지영은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을 지으며 창현의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이렇게 있으니까 우리 꼭 부부 같다. 그치, 오빠?”

“하하? 그런가? 음, 그렇게 보이기도 하네.”

지영의 말에 창현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정말 다른 사람이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행동하는 걸 보면 무척 나이 차이가 많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 창현과 지영은 두 살 차이 밖에 나질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나란히 서면 제법 어울리는 그림이 되는 것이고 말이다.

창현이 지영의 드레스를 들여다 보면서 말한다.

“음! 행동하기 편해 보이네?”

“응! 아무래도 예뻐 보이는 것보다는 움직이기 편한 것에 주안점을 맞췄다고 하더라고.”

제법 어려운 단어를 구사하는 지영이었다.

신은 구두도 높아 보이지 않았고, 원래 지금 나이 대가 가장 예쁠 때였기에 메이크업도 살짝 한 상태였다.

게다가 화려한 장식도 없어서 수수한 드레스를 입은 듯했다.

창현은 그 모습을 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예뻐. 어울린다, 지영아.”

그 말에 지영이 얼굴을 붉힌다.

원래 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 예쁘다는 말이다.

게다가 다름 아닌 창현에게 듣는 말이지 않은가?

상기된 얼굴로 지영이 창현을 바라보면서 말한다.

“정말? 고마워, 오빠. 나 그냥 이대로 오빠한테 시집갈까?”

그 말에 창현이 피식 웃음을 지으면서 지영의 머리를 아프지 않게 쥐어박았다.

“못하는 말도 없어. 오늘 이후로 우리는 남매거든? 남매끼리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거란다, 지영아.”

“칫! 농담인데 그거 가지고 그래.”

장난스럽게 말한 만큼 응! 이라고 해주길 바랐는데 바라던 대답을 해주지 않자 불만스러운 지영이었다.

이렇게 둔감하니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도 못 알아보는 것일 테지.

‘좋아해야 하는 건가?’

순간 혼란한 마음이 들었지만 뭐 이래나 저래나 좋다고 생각하는 지영이었다.

어차피 창현이 둔감하면 솔로 기간이 길어질 테니 자신은 오빠를 독점할 기간이 그만큼 길어진다는 뜻이 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좋을 수밖에.

“그럼 이제 가볼까? 음, 아무래도 엄마한테 먼저 가보는 게 좋겠지?”

“응! 아빠는 대범하잖아.”

그렇게 옷을 다 갈아입은 두 남매는 신부 대기실로 향했다.


아직 결혼식까지 상당한 시간이 남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상태였다.

특히 신부 대기실은 더욱 그렇다.

옷을 다 갈아입은 창현과 지영이 모습을 드러내자 초대된 기자들이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새하얀 턱시도를 차려입은 창현의 모습은 여태까지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기에 기자들은 이 사진을 올리면 특종감이라고 생각하면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 바빴다.

창현과 지영은 그런 인파를 헤치고 신부 대기실로 향했다.

신부 대기실에 들어서자 드레스를 차려입은 지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선 창현과 지영이 지선을 불렀다.

“어머니.”

“엄마.”

두 사람의 목소리에 신부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두 사람에게 쏠렸다. 안에는 지선을 비롯하여 창현에게 이모와 외삼촌이 될 사람들, 그리고 조카들이 있었다.

재혼임에도 가족들이 와주어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지선은 창현과 지영이 들어와 인사를 하자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마주 인사를 하였다.

“어서오렴, 창현아.”

“칫! 엄마는 딸이 보고 싶지 않았던 거야?”

지영은 지선이 창현의 이름만 부르자 섭섭한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자 지선이 웃음을 짓더니 지영에게 말한다.

“그래, 지영이 너도 잘 지냈어? 불편하지는 않았고?”

“불편하기는! 오빠가 완전 잘 대해줘서 완전 그곳에 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라니까? 게다가 사생팬들 피해다니는 걸 보면 마치 미션 수행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말문이 터지자 지선에게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는 지영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창현은 지선의 모습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마흔이 넘었지만 곱게 차려 입은 지선의 모습은 삼십대 중반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고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원래 예쁜 외모를 지니고 있는 지선이었다. 하지만 지영을 키우기 위해 고된 일을 하다 보니 피부 같은 것이 약간 거칠어진 느낌이 났었는데, 석규와 만난 이후 관리를 잘 받은 탓에 예전의 미모를 되찾은 상태였다.

지영이의 귀여운 외모가 지선에게 물려받은 듯하니 말은 다한 듯하지만.

한동안 지영과 이야기를 나누던 지선은 창현을 보더니, 무언가 깨달은 듯 입을 연다.

“내가 깜빡했네. 창현아, 여기 이분은 네 외삼촌이 되시는 분이야.”

지선의 말에 창현이 자세를 바로하면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강창현입니다. 현재 열일곱 살이고, 부족하지만 가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창현의 정체를 모를 리 없었다.

지선이 재혼을 한다고 했을 때 기획사 사장이란 말에 얼마나 의심을 했던가.

사기꾼 기획사들이 워낙 판을 치고 있었기에 가족들의 불신은 대단하였다.

하지만 지선이 만나는 사람이 AA엔터테인먼트 사장이란 말에 이야기는 달라졌다.

현과 라샤로 인해 엄청난 현금을 끌어안고 있는 알짜배기 회사가 아니던가?

게다가 그 회사의 사장은 다름 아닌 현의 아버지였다.

졸지에 세계적인 스타를 사촌으로 두게 된 지선의 조카들은 입이 큼지막하게 벌어져 있었다.

“여기는 네 사촌형이고…….”

“안녕하세요…….”

하나둘씩 인사를 나누는 창현이었다.

외삼촌과 이모가 되는 분들은 예의 바른 창현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해주었고, 사촌이 된 사촌 형 누나들이나 동생들은 창현에게 달라붙어 이야기를 나누기 바빴다.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진도 함께 찍은 창현과 지영은 인사를 한 뒤 신부 대기실을 나섰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상당히 흘러 석규에게 갈 시간이 된 것이다.

양해를 구하고 신부 대기실에 나온 창현과 지영은 다시 한 번 카메라 세례를 받으면서 석규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영이 창현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원래 오빠는 항상 이렇게 관심을 많이 받는 거야? 아니면 오늘만…….”

아무래도 과도한 관심 때문인지 부담을 느꼈나보다.

창현이 지영에게 조용히 말했다.

“항상 이런 편이야. 그러니까 행동에 각별히 조심을 해야 하는 거지. 왜 힘든지 알겠지?”

“으응.”

항상 창현이 지영에게 가수가 되려면 행동거지를 똑바로 해야 한다고 말하고는 하였다. 그 말에 지영은 막연하게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제대로 공감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다 보니 왜 창현이 그런 말을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자리에서 자칫 행동을 잘못하기라도 하다가는 매장되기 십상이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창현과 지영이 신랑 대기실 안으로 들어섰다.

신랑 대기실은 신부 대기실과 달리 썰렁하였다. 아무래도 석규는 일가친척이 없기에 사람들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대기실 안으로 들어서자 창현과 지영을 맞이한 것은 라샤였다.

라샤는 대기실 안으로 들어서는 창현을 보면서 감탄사를 터뜨렸다.

“와우! 오늘 정말 멋있는데? 창현이 다시 봤어.”

“진짜 멋있다. 앞으로 그러고만 다녀.”

“멋있네, 창현아.”

“칫! 언니들, 저는 안 보이는 거예요?”

창현에게만 관심이 쏟아지자 아까처럼 입술을 삐죽이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지영이었다.

그에 세 여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말한다.

“그럴 리가! 이렇게 큐트한 지영이를 모른 척 할 리가 없잖아.”

“맞아맞아, 그렇게 입으니까 마치 요정 같은 걸? 다시 봐야겠어, 지영이.”

“몇 년 후가 기대되는데?”

세 여인의 칭찬에 불퉁한 표정을 짓던 지영의 표정이 점차 펴졌다. 그녀들의 칭찬이 주효했던 것이다.

“정말요?”

“그러엄!”

“헤헤! 언니들도 예뻐요.”

오는 말이 고우면 가는 말도 고운 법. 지영은 자신이 받은 만큼 아낌없이 라샤를 칭찬하는 말을 해주었다.

그 사이 창현은 석규에게 다가간 상황이었다.

창현은 한눈에 석규가 지금 보기 드물게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한때 사이가 소원하기는 하였지만 부자지간이 아닌가?

석규를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이제는 바뀌겠지만 말이다.

창현이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석규에게 말했다.

“아버지도 떨리시는 거예요?”

“험! 그럼 떨리지 않겠냐? 지금 이 순간 떨지 않는 남자는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자신이 긴장하고 있는 사실을 가지고 일반론화 시키는 석규였다. 하기야, 결혼식을 앞에 두고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 사람은 없으리라.

창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겠죠. 결혼식을 앞에 두고 떨지 않는 사람은 없겠죠.”

“그렇지. 그건 그렇고 창현아.”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자신을 바라보자 창현도 표정을 살짝 굳히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버지.”

그 대답에 석규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창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늦은 줄 알지만… 정말 괜찮은 것이냐?”

“…….”

순간 침묵하는 창현이었다. 석규의 물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던 것이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관한 문제 때문이리라.

어머니를 유독 따르던 창현이었기에 석규는 마음 한구석에 켕기는 무언가가 있는 듯하였다.

지선과의 결혼을 쉽게 허락해준 이유.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을 배려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창현은 석규가 무엇을 염두에 두고 묻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에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저어보였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도 아버지가 행복하시길 바랄 거예요. 아버지도 어머니를 사랑하셨잖아요? 그거면 된다고 생각해요. 단, 가슴 속에서 어머니를 잊으시면 안되요. 그럼 어머니가 정말 슬퍼하실 테니까요. 저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기억해주기만 하시면 만족해요. 그러니 어머니를 잊어버리지 마세요. 전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니까요.”

“…그래, 알았다.”

석규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창현이 말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것이다.

가슴 속에서나마 잊지 않는 것. 창현은 그걸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 대답을 끝으로 잠시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라샤와 지영도 이쪽의 분위기를 파악한 듯 선뜻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있었다.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석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창현을 보면서 말했다.

“자, 그럼 이제 손님들이 오실 때가 되었구나. 너도 같이 가자.”

갑자기 자신의 팔을 잡아끌자 창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에? 저는 왜요.”

“너는 내 아들 아니냐? 그러니 함께 손님을 맞이해야지.”

“…에휴! 알았어요. 알았어.”

어차피 하게 될 일이었기에 순순히 납득하는 창현이었다.

그리고는 석규와 함께 신랑 대기실을 나섰다.

이제부터 올 손님들을 맞이해야 할 터였다.


‘이건 원래 신랑이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결혼식장 안으로 들어서는 문에서 창현은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속으로 품은 생각이었다.

비공개로 결혼식을 치르려던 석규의 결혼식이 공개적으로 치르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창현이 결혼식장 입구에 서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특히 연예가 중계라든지, 한밤의 TV연예, 섹션TV 등 방송 3사 프로그램에서 석규와 창현에게 인터뷰를 시도하였다.

이렇게 기분 좋은 날 인터뷰를 거절하는 것도 그랬기에 석규와 창현은 인터뷰에 성실히 응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슈를 만드는 것은 석규보다 창현이기 때문일까?

인터뷰 또한 창현에게 집중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오늘 아버지이자 사장님의 결혼식인데 축하의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자신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는 모습을 보면서 창현은 싱긋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음,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하고요, 보는 분들이 부끄럽지 않게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네요.”

“오늘 패션이 멋진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프로필보다 키가 크신 것 같은데.”

그 질문에 창현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공식선상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키를 밝힐 수 있게 된 것이다.

제법 컸기에 나오는 자신감이었다.

“키가 많이 커서 이런 옷도 소화할 수 있게 되었네요. 프로필에는 170cm라 되어 있는데 조만간 175cm로 수정되지 않을까 싶네요, 하하!”

조만간 프로필이 수정될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은 창현이었다.

키가 175cm인데 인터넷을 검색하면 170cm로 나오던 것이 얼마나 어색했던가.

특히 마법의 신발을 신지 않았음에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고 마법의 신발을 착용한 게 아니냐는 시선을 보낼 때마다 무척 괴로워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을 테지.

그렇게 몇 번 인터뷰를 하자, 결혼식장 측에서 고용한 경호원들이 알아서 기자들을 격리시켜주었다.

그러자 석규와 창현은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을 맞이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주로 오는 사람들은 기획사 측 실무진들이 많았다.

사장들이 직접 오거나 못 오면 사장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러면서 소속 연예인들도 데리고 와서 인사를 나누었는데, 창현과 인사를 나누면서 스리슬쩍 잘 봐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에서 창현은 그들의 속셈을 느낄 수 있었다.

여태까지 본인과 라샤 이외에 절대 주지 않았던 창현의 곡을 어떻게든 따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던 것이다.

그에 창현과 석규는 웃음을 지으며 애써 넘길 수 있었다.

석규가 창현을 툭 치며 말했다.

“잘 대답을 해야 한다. 기획사 사장들이나 실무진들은 보통 너구리들이 아니어서 말실수를 하면 잡고 늘어질 확률이 높아. 말실수 하나로 고생을 할 수 있으니 잘 하도록 하고. 알겠지?”

“알았어요. 저도 좋지 않은 예감을 받아서요.”

창현이 여태까지 다른 가수들에게 곡을 주지 않았던 것은 복잡하게 얽히는 것이 싫어서이기도 하지만 누구에게 주면 형평성에 어긋나고, 결국 금전에 얽매이는 꼴이 되는 걸 보기 싫었던 석규의 방침이기도 하였다.

가장 친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도 은연중 곡을 주길 바라고 있지만 주지 않고 있지 않은가?

그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까닭이다.

창현에게 주의를 준 석규는 다시 한 번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다.

특히 석규의 결혼식에 찾아온 의외의 손님들은 코어콘텐츠 미디어의 실무진들과 씨야의 방문이었고, YG엔터테인먼트의 빅뱅이나 DSP미디어의 SS501이 그러하였다. 모두 실무진들과 함께 석규의 결혼식에 참석을 한 것이다.

결혼식장 입구가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그곳에 시선을 슬쩍 옮기니, 그곳에는 JYP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사장과 함께 원더걸스가 들어오고 있었다.

석규는 박진영을 보고는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하였다.

“어서오십시오, 박 사장님.”

“결혼 축하드립니다, 강 사장님. 정말 경사로군요.”

진영이 연일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원더걸스를 데리고 석규의 결혼식에 찾은 것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예전의 어색한 관계를 한 걸음이나마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JYP엔터테인먼트가 AA엔터테인먼트에 비해 부족한 것이 거의 없었다.

국대 최대 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소녀시대도 JYP엔터테인먼트에서 내놓은 원더걸스에게 밀리는 감지 있지 않은가?

원더걸스가 소녀시대보다 비주얼이나 가창력 측면에서 월등한 실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JYP엔터테인먼트의 마케팅 능력이 대단하고 대중의 관심을 끌어들일 줄 알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면 다름 아닌 미국 쪽 인맥이었다. 그리고 부족한 점이라기보다는 현이란 존재와 함께 라샤를 예로 들 수 있다.

예전부터 미국 진출이 관심이 많았기에 미국 쪽 진출로에 대해 무척 예민한 편이었다.

그러던 중 미국에 진출하여 그곳을 제패하다시피 한 현이 등장한 것이다.

그것만으로 미국 쪽 인맥은 확 트였다고 보고 있었고, 추후 원더걸스 미국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는 진영으로서는 AA엔터테인먼트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었던 것이다.

진영이 눈짓을 하자 원더걸스 다섯 명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면서 말한다.

“결혼식 축하드려요.”

“하하! 원더걸스 분들도 와주시니 영광입니다. 그럼 안으로 드시지요.”

석규가 안쪽을 향해 손을 들며 말하자 그들이 안으로 들어선다.

안으로 들어서다가 원더걸스는 창현과 시선을 마주쳤는데, 그에 창현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한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잘 차려입고 입가에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이 눈이 부셔 고개를 돌리는 원더걸스였다.

그렇게 손님들이 차곡차곡 들어서고 거의 모든 손님들이 도착했을 무렵, 오늘 손님들 중 가장 대인원을 데리고 온 손님들이 도착했다.

바로 SM엔터테인먼트 측 손님들이 도착한 것이다.

다른 기획사들과 달리 SM엔터테인먼트에서 온 사람들의 숫자는 엄청났다.

명예회장 이수만 대표부터 시작하여 십여 명의 실무진들과 슈퍼주니어 열세 명 중 열한 명, 그리고 동방신기 다섯 명과 소녀시대 아홉 명이 온 것이다.

다 합치면 사십 명이 넘는 숫자였다.

엄청난 대인원에 석규는 입을 떡 벌렸다.

“허어…….”

그런 석규의 모습에 수만이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말한다.

“하하!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십니까. 원래 SM이 워낙 대인원이 아닙니까? 오늘 강 사장님의 결혼식을 축하하고자 다 끌고 왔습니다, 그려.”

벌써 난리가 났다.

아이돌 라인에 있어서는 SM엔터테인먼트가 최강이지 않은가? 특히 동방신기 같은 경우는 일본에 진출하고 있는 실정이고, 슈퍼주니어는 중국 쪽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소녀시대도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치고 올라와 탄탄하게 기초를 다지고 있는 아이돌 그룹이었다.

이들이 한데 모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식장 밖에 있는 기자들은 연신 대박이라고 중얼거리며 사진을 찍기 바빴다.

석규도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말한다.

“많은 분들이 오신다고 이야기는 들었지만 설마 이렇게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오려면 화끈하게 오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SM엔터테인먼트에서 그동안 AA엔터테인먼트에 신세를 진 것도 있는 만큼 말입니다.”

딱히 신세랄 것도 없었다. 오히려 도움이라면 AA엔터테인먼트에서 더 많이 받았지만 말이다. 다만 신세라고 말하는 것은 예전에 있던 일의 빚을 말하는 것일 테고, 프로듀서로서 종종 SM엔터테인먼트로 가서 가수들이나 연습생의 보컬 트레이닝을 해주는 창현의 일 때문에 그러는 것이리라.

게다가 창현과 친하게 지내는 것 하나만으로도 주가가 오르고 있는 실정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놀라운 건 어쩔 수 없습니다. 하하! 안으로 드시지요, 이거 공연히 회장님이 어려운 걸음을 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석규의 말에 수만이 고개를 젓는다.

“아닙니다. 강 사장님의 결혼식이 아닙니까? 당연히 와야지요.”

“그래도 이렇게 와주신 게 고마워서…….”

“고마우시면 나중에 현 군에게 잘 말하셔서 곡이나 하나 주십시오. 어이쿠, 너무 큰 부탁인가? 어쨌든 축하드립니다, 하하!”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석규에게 슬쩍 떡밥을 뿌리고 안으로 들어가는 수만이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창현은 웃음을 지었다. 어째 목적이 다 비슷하다고 느낀 것이다.

안으로 들어서는 수만의 뒤를 따라 실무진들과 함께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순으로 들어섰다. 어째 인지도 순으로 들어가는 것 같아 창현은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다가 소녀시대 멤버들과 눈이 마주쳤는데, 창현과 눈이 마주친 윤아가 슬쩍 그에게 다가오면서 물었다.

“창현아, 오늘 축가 불러?”

갑작스러운 물음에 의아한 표정을 지은 창현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네, 저랑 지영이가 하나 부르고, 라샤 누나들이 하나 부르고, 하나 더 원하시면 저도 부르려고요.”

“그렇구나. 그리고 한 가지 더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갑자기 머뭇거리는 윤아였다.

그 모습에 창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뭔데요? 제가 아는 선이면 대답해드릴게요.”

친절한 창현의 대답에 윤아가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짓더니 창현에게 묻는다.

“여기 뷔페식이지?”

“네?”

“점심 말이야. 뷔페식이지? 나 아침 안 먹고 왔거든.”

“……네.”

순간 할 말을 잃을 뻔하다가 대답을 하는 창현이었다.

묻고 싶었던 것이 뷔페식이라니. 게다가 아침도 안 먹고 왔단다.

윤아의 물음에 대답을 하자 소녀시대 멤버 몇몇의 얼굴이 밝아진다.

설마… 점심 뷔페를 노리고 아침을 버린 건가?

등골이 오싹해지는 창현이었다.

뷔페를 위해 아침을 버릴 줄이야.

SM엔터테인먼트에서 온 손님들을 끝으로 결혼식을 시작하였다.


석규의 결혼식 주례를 맡게 된 것은 그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 담임 선생님을 맡으신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었다.

그리고 사회를 맡은 것은 석규의 친구로서, 각종 행사와 돌잔치 등 언더그라운드에서 실력을 쌓아온 실력자(?)가 맡게 되었다.

차례대로 신랑이 입장을 하고, 신부가 입장하였다.

그런데 신부 입장은 조금 다르게 하였다.

본래는 지선의 아버지와 함께 등장을 했어야 했지만 지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기에 창현이 대신 지선과 함께 등장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약간 어색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기에 창현은 지영과 함께 지선을 에스코트하는 식으로 하여 식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창현과 지영이 자리로 돌아가고, 석규와 지선이 팔짱을 낌으로써 결혼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번듯하게 차려입은 석규도 중년 신사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고, 웨딩드레스를 차려입은 지선 또한 완숙한 느낌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어지는 주례 속에서 석규와 지선은 떨리는 얼굴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였다.

만인 앞에서 하는 맹세였기에 앞으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야 하리라.

그렇게 결혼식이 이어지고, 축가를 부르는 시간이 되었다.

가장 먼저 축가를 위해 나선 것은 라샤였다.

동남아시아 순회 콘서트를 끝마치고 돌아온 라샤에게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다.

세 명 중 리더인 시린이 앞으로 나서서 석규에게 축언을 하였다.

“사장님 앞으로 행복하게 사시고요. 그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면서 저희가 축가를 부르도록 할게요.”

그러면서 한숨을 푹 내쉰 창현이 피아노로 걸어갔다.

축가를 불러준다고 고마워하다가 졸지에 붙잡혀 축가로 부를 노래를 연주하라는 강압(?)을 받았던 것이다.

피아노 앞에 앉은 창현이 간단하게 손을 풀고는 본격적으로 연주를 하기 시작한다.

창현이 연주하기 시작한 노래는 양파의 <Marry Me>였다. 웬만한 가창력으로는 제대로 소화해낼 수 없을 만큼 고난이도의 곡이었다. 가창력도 가창력이지만 음을 절묘하게 조절하는 기교도 필요하기에 그렇다.

하지만 창현에게 장기간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라샤의 가창력은 굉장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완벽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원하게 노래를 소화해내자 그녀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축하의 감정과 함께 어우러져 식장을 가득 채우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짝짝짝!

라샤의 축가가 끝나자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명성답게 뛰어난 노래가 아닐 수 없었다.

고개를 꾸벅 숙인 라샤가 물러나고, 그 다음으로 나선 것은 창현과 지영이었다.

피아노에 설치되어 있는 마이크를 든 창현이 하객들에게 시선을 주면서 말한다.

“다음은 저와 지영이가 축가를 부르도록 할게요. 사실상 지영이가 부르는 것이니까 잘 들어주세요.”

그렇게 말을 한 창현이 연주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연주를 하는 노래는 다름 아닌 리사의 <인연>이었다.

이 곡은 바비킴의 피처링이 들어간 곡이기에 창현이 일부분이나마 도와주기로 한 곡이기도 하다.

지영이 여태까지 창현과 함께 머물면서 연습한 곡이 다름 아닌 이 곡이었다.

창현의 소개에 지영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면서 고개를 꾸벅 숙인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빠와 엄마의 결혼식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축가를 부르도록 할게요.”

말을 하는 지영은 잔뜩 긴장한 안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친척들이 모여 있을 뿐만 아니라 연예 기획사 관계자들과 연예인들이 잔뜩 모여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그들에게 자신의 실력을 선보이는 자리였으니 어찌 긴장이 되지 않겠는가.

‘지영이가 많이 긴장하고 있네.’

창현은 그런 지영의 상태를 한눈에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마이크에 입을 떼고는 지영에게 속삭이듯이 말한다.

“지영아! 긴장하지 말고 릴렉스. 연습한 것 그것을 그대로 발휘하면 돼. 너무 긴장하지 말자.”

그 말을 들은 지영은 자신이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다.

그러자 창현에게 고마운 감정이 물밀 듯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세세하게 챙겨주는 창현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마이크를 입에서 뗀 지영이 창현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오빠 땡큐.”

“제 실력이나 발휘하고 이야기 하자.”

피식 웃으면서 대답한 창현이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지금 시작하는 곡은 리사의 <인연>인 만큼 지영의 가창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라 볼 수 있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노래 간주를 시작하자 마이크를 든 지영이 눈을 감고 있다가 본격적으로 노래를 시작하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지영은 라샤처럼 절묘한 기교를 발휘하며 노래를 부를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장점은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

그것 하나만큼은 발군이라 할 수 있다.

식장에 모인 사람들은 지영의 노래를 들으면서 눈을 빛냈다.

연예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인 만큼 지영의 자질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지영의 노래 실력은 아직 가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었다. 하지만 그 원석을 가공하면 찬란한 빛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란 걸 기획사 실무진들은 알 수 있었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기교를 발휘하지 않았음에도 그녀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이 전해져 온다.

여기에 기교를 더할 수만 있다면?

찬란한 빛을 발휘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로 자라날 확률이 높았다.

긴장감을 푼 채 노래에 열중하는 지영의 모습에 창현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노래에 자신도 취해가면서 자신의 파트가 되자 랩을 하기 시작한다.

창현의 랩 실력은 이미 MKMF에서 증명이 되었기에 사람들은 창현의 랩에 빠져들면서 지영이 전달하는 감정 전달에 푹 빠져든 표정을 짓는다.

짝짝짝짝!

마침내 지영의 노래가 끝을 맺었을 때, 식장 내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친다. 그만큼 지영의 노래 실력은 뛰어났던 것이다.

축가를 받은 입장에 속하는 석규와 지선도 흐뭇한 표정을 지은 채 박수를 치고 있었다.

석규는 근 시일 내에 발전한 지영의 실력에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치고 있었고, 지선은 예상을 뛰어넘는 지선의 실력에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람들의 박수를 받자 지영이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연신한다.

그녀는 지금 자신에게 쏟아지는 환호가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노래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하여도 불안하고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이 되었는데 막상 노래가 시작하지 붕 뜬 듯한 느낌과 함께 노래에 취해가며 정신없이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솔직히 지금 자신이 잘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분간도 잘 가지 않는 상태였다.

하지만 노래가 끝나고 사람들의 박수를 받자 지영은 자신이 노래를 성공적으로 끝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즐거워. 노래를 부르고 환호를 받는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상기된 얼굴을 한 지영이 느낀 감정이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환호를 받게 되자 생각을 달리할 수 있었다.

이런 환호를 언제 받아볼 수 있겠는가.

그리고 자신의 노래에 사람들이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쳐주는 것에 지영은 숨길 수 없는 희열을 느껴야만 했다.

계속해서 이런 기분을 맛보고 싶은 것이 그녀의 진심이었다.

고개를 깊게 숙인 지영이 덜 가라앉은 얼굴로 자신의 자리로 향한다.

지영의 노래가 준 여운이 서서히 가라앉는 기미가 보이자 창현이 마이크를 잡아든다.

그리고는 하객들을 둘러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말한다.

“그럼 이제 마지막 축가는 제가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라샤 누나들과 지영이가 멋진 국내 노래를 불러주었으니 저는 팝송을 하나 불러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 물을 조금 먹고 왔으니 이렇게 해줘야 결혼식이 조금 럭셔리 해보일 테니까요.”

창현의 농에 피식 웃음을 짓는 하객들이었다. 확실히 팝송을 부르면 뭐랄까,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기는 하니 말이다.

분위기를 다소 풀어내는데 성공한 창현이 현란한 손놀림으로 피아노 건반을 치기 시작한다.

피아니스트 뺨을 칠 정도로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웬만해서는 보기 힘든 실력으로 피아노를 치자, 부드러운 멜로디가 식장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피아노에 마이크를 설치한 창현이 거기에 입을 가져다대며 말한다.

“제가 부를 노래는 Glenn Medeiros의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입니다. 무척 유명한 노래이기도 하니 잘 들어주세요.”

그와 함께 멜로디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음원에서 들을 수 있는 것과는 다소 다르지만 창현 특유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노래였다.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는 결혼식에 있어서 무척 잘 어울리는 가사를 지닌 곡이었다. 그리고 은은하면서 가창력이 부각되는 곡이었기에 하객들은 창현의 노래에 서서히 빠져들기 시작했다.

노래를 부름에 있어서 창현이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멜로디도 멜로디지만 사람의 마음을 절묘하게 잡아끄는 그의 음의 조절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의 법칙은 밀고 당기는 작용과 반작용인 걸 감안하면 창현은 그 지점을 절묘하게 캐치한다고 할 수 있다.

부드러운 멜로디와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창현의 가창력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노래에 취한 사람들은 눈을 감은 채 창현의 노래에 몰입하기 시작하였다.

영어에 능통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가사의 의미가 와 닿지 않겠지만 신기하게도 그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이유에는 바로 창현의 노래에서 흘러나오는 절묘한 감정 전달이 그들의 마음을 지배해나가고 있었기에 그렇다.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해나가는 노래가 아닐 수 없었다.

잔잔한 봄바람과도 같았던 창현의 노래가 끝났다.

사람들은 아직도 노래가 가져다주는 깊은 여운에 잠겨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여운에 서서히 벗어날 무렵, 마이크를 든 창현이 석규와 지선에게 한마디를 한다.

“결혼 축하드리고 부디 서로가 서로를 아껴주셨으면 합니다. 축하드려요.”

그 말과 함께 고개를 살짝 숙인 창현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명불허전이군. 하…….’

창현이 노래 부르는 장면을 지켜본 수만은 창현의 노래가 가져다주는 충격에 혀를 내둘러야만 했다.

자신 또한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였지만 저런 음색과 감정 전달력을 지닌 가수는 맹세코 없었다.

사람의 마음을 쥐고 펴는 절묘한 노래 실력.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이곳의 사람들을 단번에 휘어잡은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존재였다.

저런 무대 장악력이 있기에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지 않을까 싶었다.

노래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잘하게 만드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하지만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를 만들어주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그것은 선천적인 재능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창현은 그것을 갖추고 있었다. 아니, 무대를 장악하는 걸 넘어서 사람들을 지배하는 경지에 도달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만은 창현이 노래를 부르는 라이브 장면을 보면서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한 가지였다.

반드시 현이라는 끈을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을.

백해무익이란 말이 있다면 창현은 그와 반대의 존재였다.

백익무해. 이득이 될 수 있지만 결코 해는 되지 않을 것이었다.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 현의 존재는 그 정도로 중요해.’

그것은 비단 수만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다.

이곳에 모인 모든 연예 기획자들이 느끼는 공통된 감정이었으니까.

석규의 결혼식은 창현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실력과 필요성을 다른 사람들에게 각인 시키는 자리가 되었다.

그렇게 석규와 지선의 결혼식이 끝났다.


결혼식이 끝나고 때 아닌 식신 군단들의 등장으로 뷔페 음식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는 후문이 전해지지만 호텔의 이미지와 식신 군단의 이미지 차원에서 이 사실은 영원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제42장 창현의 졸업식




결혼식을 무사히 치른 석규와 지선은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이참에 아주 뽕을 뽑겠다는 말과 함께 장장 17박 18일이라는 말도 안 되는 유럽 여행 기간을 잡아버린 것이다.

결혼식이 1월 중하순에 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석규가 돌아오는 것은 2월 중순 정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매일 일에 치여 살다가 한 번 여행을 떠나게 되었으니 아주 유럽 물을 지겹도록 먹고 오겠다나 뭐라나.

어차피 석규가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 AA엔터테인먼트에 직원들은 충분히 뽑아놓았으니 일을 처리하는데 지장은 없을 것이다.

그 기간 동안 창현은 하루하루 배정된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시간이 빌 때면 지영의 보컬 트레이닝을 시키곤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1월이 끝나고 2월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창현의 졸업식이 한걸음 앞으로 성큼 다가온 상태였다.

2008년 2월 4일은 창현의 졸업식이 있는 날이었다.

석규와 지선은 신혼여행을 간 상태고, 2월 4일 날 지영은 개학식이었기에 사실상 창현은 혼자서 졸업식을 치러야만 했다.

그런 창현에게 한 가지 제안이 들어온다.

세희가 창현에게 방송 제의를 가지고 온 것이다.

“제 졸업식을 방송하고 싶다고요?”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하는 창현이었다.

갑자기 자신의 졸업식을 촬영하고 싶다는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창현의 말에 세희가 고개를 끄덕인다.

“독점으로 촬영하고 싶다는데? 그에 대한 보답도 존재하고.”

“아니, 제 졸업식이 무슨 이슈 거리가 된다고 촬영을 한다는 거죠?”

자신이 분명 이슈 몰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졸업식 하는 장면을 촬영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창현이었다.

그런 창현의 말에 세희가 피식 웃음을 지으면서 말한다.

“밖에 잘 나가질 않으니 모르는가 본데 창현이 네 주가는 최고가에 이르렀거든? 당연히 방송사가 몸이 달아오르는 게 당연한 일이지. 당장 이런 제안만 들어온 곳이 세 곳이야.”

세희의 말은 사실이었다.

본의 아니게 창현의 행보 하나하나가 이슈가 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시점을 모으고 있는 실정이었다.

특히 연예인들의 정보를 알려주는 프로그램 같은 경우 석규의 결혼식이 있던 주에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한 상태였다.

그 이유는 석규의 결혼식에 현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이 퍼졌기에 그렇다.

현의 팬들은 새하얀 턱시도를 차려입은 모습에 열광을 하였고, 정장을 차려입으면 신사 필이 나고, 하얀색 턱시도를 차려입으면 왕자님 느낌이 난다면서 현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였다.

게다가 누구로부터 퍼졌는지 모르나 창현이 석규의 결혼식에서 불렀던 Glenn Medeiros의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 라이브 동영상이 퍼지면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기도 하였다.

언제나 그렇지만 사람의 마음을 강렬하게 울리는 창현의 라이브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저것을 어떻게 작업했는지 MP3 파일로 변환이 되어 인터넷에 돌아다닐 정도였으니 그 관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그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것이 바로 현이란 존재였다.

본래 이런 제안은 1월 중순부터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던 차였다.

방송 3사에서 창현이의 졸업식을 촬영하고 싶다고 제안을 해온 것이다.

거기에 방송사들은 하나같이 독점 촬영을 요구한 상태였다.

이 제안을 석규는 생각해보겠다는 말로써 일축한 상태였고, 결정권은 창현에게 넘긴 상태였다.

그리고 졸업식을 할 시기가 다가오자 세희로 하여금 창현이 결정을 내리게 하는 것이다.

“흐음! 촬영이라… 고민이 되는데요.”

턱을 괴며 생각에 잠기는 창현이었다.

혼자서 졸업을 하게 되는 쓸쓸한 졸업식이 되리라 생각했는데 촬영 제의를 받을 줄은 몰랐다.

촬영을 하게 되면 그나마 나아지지 않을까? 라고 생각이 되었으니 말이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창현이 결정을 내렸다.

혼자서 하는 쓸쓸한 졸업식보다는 아무래도 시끌벅적한 졸업식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촬영을 하게 되면 세희도 오고 다른 사람들도 오지 않겠는가?

쓸쓸하게 졸업식을 치르는 것보다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창현이었다.

“괜찮네요. 하도록 하죠. 촬영.”

“잘 생각했어. 그러면 어디랑 하도록 할까?”

창현의 졸업식까지 앞으로 3일 남았을 뿐이다. 얼른 결정을 하고 통보를 해줘야 했기에 어느 한곳을 선택하길 바라고 있었다.

세희의 말을 들은 창현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한다.

“아무래도 K본부가 낫지 않겠어요? 제시한 조건도 가장 나은 것 같고요.”

“그래? 그렇다면 거기로 하자.”

어차피 제시한 조건은 다 비슷비슷하였기에 창현의 말에 순순히 동의하는 세희였다. 결정권은 창현에게 있는 만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현재 창현은 많은 방송을 하고 있지 않았기에 사람들의 수많은 TV 출연 요청을 받고 있는 실정이었다. 다만 대외적인 활동을 많이 하고 있지 않은 실정이었기에 각 프로에서는 창현을 섭외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실정이었다.

그렇다고 창현이 신비주의를 컨셉으로 하는 것도 아니었다.

만원의 행복도 그렇고, Mnet 방송에서도 간간이 출연을 하지 않았던가? 현의 특집 방송도 그렇고, 소녀시대의 일일 카페에서도 잠시나마 출연한 적이 있다. 가요대전에도 참석을 했었고 말이다.

학교를 다니고 있고, 본인의 몸이 축날 정도로 바쁘게 방송 활동을 할 이유가 없었기에 TV 출연을 많이 하려고 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가수들이 예능 출연을 많이 하는 이유가 다름 아닌 자신을 알리고자 출연을 하는 것인데 창현은 이미 그 차원을 넘어서고 있었으니 말이다.

방송 활동을 많이 하지 않는 만큼 현의 방송 출연은 한정 되어 있었기에 출연이 보장되기만 한다면 시청률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의 존재만으로 본방 사수를 외칠 팬들이 수두룩 하였으니 말이다.

한 달이 지났음에도 그의 앨범은 여전히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었다.

처음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August>란 곡도 그렇지만, 사람들의 취향을 다양하게 만족시켜주는 곡들은 짧은 기간 동안 사랑 받는 것이 아닌, 오랜 기간 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촬영을 할 때 뭐 특별히 준비할 거라도 있어요?”

아무래도 촬영이지 않은가?

창현은 촬영을 위해 무언가 특별히 준비할 것이 있는지 세희에게 물어보았다.

그에 세희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준비할 게 있긴 뭐가 있겠어. 평소 모습 그대로 보여주면 되는 거야. 언행이 가벼우면 그거라도 주의를 주겠다는데 그것도 아니잖아? 설마 교복을 불량하게 입나?”

“그럴 리가요. 저같이 반듯하게 입고 다니는 학생이 어디 있다고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하는 창현의 말에는 상당한 자신감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창현은 학교의 교칙을 어기지 않는 편이었다.

물론 가수 활동을 위하여 머리를 기르는 것은 필요했기에 학교 측에 양해를 구하고 머리를 기르고는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을 자극할 정도로 머리를 길게 기르는 편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창현은 여태까지 염색을 한 적이 없었고, 심지어 귀걸이까지 한 적이 없다. 아니, 애초에 귀를 뚫지 않았으니 귀걸이를 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나이 많은 장년층들이 현을 좋아하는 이유가 다름 아닌 모범생 같은 번듯한 모습 때문이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을 다한 것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세희는 약간 거만해 보이는 창현의 말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말은 어쨌거나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그래, 너 잘났다, 잘났어.”

“후후! 제가 잘나기는 좀 잘났죠. 그나저나 라샤 누나들은 어떻게 움직일 예정이죠?”

현 같은 경우 가요 프로그램에 나오지 않는 방침이 정해졌지만 라샤의 경우는 다르다.

라샤의 앨범이 나올 당시 대한민국은 원더걸스의 <Tell Me> 열풍에 휩싸여 있던 상태였다. 그에 정면으로 대결을 할지 말지 고심을 하던 석규는 결국 정면대결보다는 동남아시아 각국에 먼저 활동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라샤를 해외로 진출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지금, 라샤의 행보에 사람들의 기대감이 모이고 있었다.

국내를 호령했던 만큼 과연 이번 기회에 한국에 컴백을 할지 초점이 모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물음에 세희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컴백은 하지 않을 것 같은데?”

“어째서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묻는 창현이었다.

지금 가요계 상황이라면 컴백 무대를 가져도 충분히 인기몰이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컴백을 하지 않겠다니?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창현의 반응에 세희가 자신이 들었던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아마 컴백 무대 대신 전국 투어 콘서트를 할 것 같아. 아무래도 앨범이 나온 지 시간이 흘렀고, 지금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을 해봤자 1위를 차지하는 건 어려울 거라는 판단이거든. 그래서 전국 투어 콘서트로 계획이 잡혔어.”

“휘유! 전국 투어라니. 스케일이 크네요. 누나들은 찬성을 했고요?”

세희의 말을 들어보니 그녀의 말도 옳다고 여겨지는 창현이었다.

아무래도 앨범 발매가 이루어진지 제법 시간이 흐른 만큼 가요 프로그램에 나가서 활약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래도 1위를 한 노래만 알아주다 보니, 괜히 나갔다가 1위를 차지 못하게 되면 수많은 루머에 휩싸이게 될지도 모르고 말이다.

차라리 팬들을 위해 콘서트를 개최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찬성을 했지. 전국 투어 콘서트를 한 다음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비슷하게 투어 콘서트를 할 것 같아.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할 계획이지.”

“괜찮네요, 흐음! 나도 가요 프로그램에 나가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될까요?”

창현이 가요 프로그램에 나가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앨범의 쇼 케이스 무대를 위해 가요대전에 나갔다가 예상을 월등히 넘어선 대박이 터진 탓에 방송 3사에서 서로 과도하다 싶을 견제를 한 탓이다.

거기에 끼여 버린 AA엔터테인먼트는 애꿎은 돌을 맞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신경전이 과열되는 양상을 보이자 아예 방송 출연을 포기해버렸다.

창현의 입장에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괜한 신경전에 휘말려 방송 출연을 못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마 될 걸? 고별 무대 형식으로 해서 출연 협상을 하고 있어.”

그 물음에 세희는 자신이 들었던 것을 설명해주었다.

무대에 서고 싶어 하는 창현의 모습을 본 석규는 컴백 무대를 아예 포기해버리는 대신에 앨범의 반응이 시들해질 무렵, 순위에 상관없이 한 번 무대에 서는 것을 협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방송사들은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었고, 조만간 결과가 나올 듯 싶었다.

그 말을 들은 창현이 밝은 표정을 지었다.

“잘 됐으면 좋겠네요.”

무대에 서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의욕이 절로 넘치는 창현이었다.


한편, 오늘은 스케줄이 없어서 쉬고 있던 소녀들의 숙소에는 깊은 생각에 잠긴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소녀시대의 막내 주현이었다.

그녀는 스케줄이 없는 오늘, 언니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숙소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부족했던 수면을 보충하기도 하고, TV도 시청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햇수로 2년차에 들었지만 이제 데뷔를 한지 갓 반년 밖에 되지 않은 신인이었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스케줄을 소화하는 것이 버겁다고 스스로 느낄 때가 많다.

그랬기에 수면 보충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잠이 부족하게 되면 스케줄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

충분한 수면 보충을 하고 독서를 해볼까 생각할 때, 주현의 핸드폰에 문자 한 통이 왔다.

“응? 누구지?”

모르는 번호에서 문자가 왔기에 주현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핸드폰을 펼쳤다. 스팸 문자라면 차단을 시켜야 했기에 문자를 꾸욱 눌렀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중학교 몇기생이 2월 4일 졸업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걸 확인한 주현이 나직한 소리를 흘렸다.

“아! 그러고 보니…….”

그제야 무언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이는 주현이었다.

그러고 보니 언니들이 이번에 졸업을 하지 않는가?

그렇다는 건 창현이도 졸업을 하는 것인데 그걸 깜빡 간과하고 있던 것이다.

“2월 4일, 2월 4일…….”

스케줄 표로 걸어간 주현이 자신의 스케줄을 확인해본다.

다행히도 2월 4일에는 스케줄이 없었다. 주현으로서는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후! 스케줄이 없구나. 다행이야.”

2월 4일은 다름 아닌 창현이의 졸업식. 작년 자신의 졸업식에서 창현이 해주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주현으로서는 반드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작년 자신의 졸업식 때 창현은 외국으로 촬영을 간 상태였기에 졸업식에 참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에 자신은 매우 아쉬워하였고,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어찌 보면 창현과 같은 학교를 다니는 마지막 날인데 그날 오지 않는다고 하니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창현은 졸업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일정을 당겨서 일찍 끝마친 뒤 졸업식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그 일로 인해 얼마나 감동을 받았던가.

반드시 자신도 창현의 졸업식에 참석하여 축하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주현이었다.

하지만 세월의 힘 때문인지 그 결심을 잊어버린 채 하루하루 스케줄을 소화하기 바빴던 것이다.

“이런 바보. 창현이의 졸업식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다니.”

꽁!

주현은 자신의 머리를 스스로 쥐어박으면서 반성했다.

설마 그때의 다짐을 잊고 있을 줄이야.

자신의 실수를 뼈저리게 느끼면서 자책하는 주현이었다.

“그럼 졸업식에 참석을 해야 하긴 하는데…….”

막상 참석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주현이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어둡게 변했다.

창현이의 졸업식이 열린다고 하면 분명 수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임이 분명했던 것이다.

과연 그 속에서 자신이 창현을 만나 축하해줄 수 있을까?

만약 갔다가 얼굴을 들켜서 곤란하게 되어버린다면?

그리 되면 졸지에 민폐를 끼치게 되는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살짝 멈칫하는 주현이었다. 축하를 해주러 갔다가 민폐만 끼치고 오게 된다면 창현이에게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어떻게 하지?”

순간 언니들에게 조언을 구해볼까, 생각하던 주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언니들에게 말을 하면 분명 몇 명은 따라나서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처럼 온 독점 찬스를 놓치게 된다.

예로부터 전쟁을 벌일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다름 아닌 정보였다. 지금 창현의 졸업식에 대한 정보를 쥐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주현 뿐.

이런 단독 찬스를 놓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었다.

하지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봐도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주현이 그렇게 고민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방문이 덜컹 열리더니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태연이었다.

앞치마를 두른 태연은 모처럼 실력 발휘를 했는지 주현에게 소리쳤다.

“주현아! 점심 먹자.”

“네? 아, 태연 언니. 언니가 오늘 준비하신 거예요?”

집에 오셔서 간단한 반찬을 만들어주시고, 청소를 해주시는 아주머니가 계시긴 하지만 이렇게 쉬는 날에 요리를 하는 것은 멤버들이었다.

오늘 식사 준비 멤버는 태연이었나보다.

“나지. 어때, 기대 되지? 후후후! 어쨌든 가서 밥 먹자.”

“네, 언니.”

자칭 소녀시대 내 요리 실력 1인자인 태연은 당장하게 허리를 쭉 피며 당당한 표정을 짓는다. 아홉 명 중 일등을 한다는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뿌듯한지 입가에 미소가 맺혀있는 태연이었다.

하기야, 일일 카페 이후 주먹밥의 달인으로 등극한 태연으로 인하여 소녀들이 음식 폭탄을 맞는 일은 극히 줄어들었으니 말이다.

대답하는 주현의 모습을 살피던 태연이 얼굴에 살짝 그늘 진 주현의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막내 너 무슨 고민 있어?”

“네? 아, 아니에요.”

귀신 같이 자신의 상태를 알아맞히는 태연의 말에 황급히 고개를 젓는 주현이었다. 잠시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멤버들 모두가 몇 년 동안 함께 지내왔기에 서로가 무슨 고민거리를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금방 파악해낸다는 것을 말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때는 항상 긴장해야만 한다.

“그래? 흐음! 고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언니한테 털어놔.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알았지?”

고개를 젓는 주현의 모습에서 무언가 수상하다는 것을 느낀 태연이었지만 딱히 이상한 점이 없었기에 그냥 넘어가는 모습이었다.

그런 태연의 모습에 주현은 방심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네, 알았어요. 그럼 밥 먹으러 가요, 언니. 식겠어요.”

“그래.”

그렇게 태연과 주현이 합류 함으로써 점심식사가 시작되었다.

점심 식사가 끝나고, 상비약처럼 미리 구비해둔 아이스크림으로 디저트를 대신 한 소녀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TV 앞에 앉기 시작하였다.

아직 밖은 추위가 가시지 않아 추웠고, 밖으로 나가려면 매니저의 허락을 맡아야 했기에 소녀들 모두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 집에서 하루를 보낸 걸 택한 상태였다.

유리와 수영, 윤아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고, 태연과 수연, 미영은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순규와 효연은 요 근래 재미를 붙인 오디션이라는 게임을 한창 하고 있었다.

주현은 독서를 하겠다는 핑계를 대고는 방으로 들어온 상태였다.

적절한 위장을 위해 책을 펼쳐둔 주현의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생각이 맴돌고 있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창현의 졸업식에 무리 없이 참가할 수 있을까, 였다.

주현은 핸드폰에 온 문자를 본다. 졸업식의 시간은 오전 11시. 일찍 일어나는 언니들의 눈을 피한다면 찬스를 살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이 있을 뿐이었다.

‘그냥 가는 건 무리잖아. 그럼 어떻게 하지? 가서 축하를 해주고 싶은데.’

하지만 아까 생각했던 것처럼 창현의 졸업식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임이 분명하다. 아마 교문 앞에 많은 수의 팬들이 바글바글 모일 테지.

그런 팬들이 모인 상태에서 창현과 단독으로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더군다나 방송국에서 취재를 하러 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는 건 학교 내에서 일대일로 만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럼 밖에서 만나야 하나? 아…….”

무심코 흘린 말.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순간 주현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학교 안에서만 창현을 만날 생각을 했으니 답이 나오지 않고 있던 것이다.

그렇다면 졸업식이 끝나고, 밖에서 따로 만나면 되는 일 아닌가?

졸업식이 끝나고 창현에게 이렇다 할 스케줄이 없는 걸 확인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방법을 이제야 떠올리다니.

“이런 방법을 이제야 떠올리다니.”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을 탓하는 주현이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창현의 졸업을 축하해주는 것이지, 학교 안에서 그를 만나는 것이 아니었다. 잠시 목적을 잊어버린 채 다른 주제에 빠져들었던 자신을 자책하면서 주현은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졸업식이 끝난 후 만나야겠지? 약속 장소는 녹음실로 하면 될 테고.”

녹음실에서 단둘이 만난다. 그리고 축하의 인사를 해줄 테지.

아무도 몰라주는 상황에서 자신 혼자 축하를 해준다면 창현은 분명 감동을 할 것이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싹 튼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주현은 얼굴을 붉으면서 양손으로 상기된 자신의 볼에 손을 얹는다.

“부, 부끄러워.”

그때였다.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느라 눈치 채지 못했던 한줄기 목소리가 상상에 잠겨있던 주현을 강타했다.

“호오! 우리 막내가 무엇이 그리울까? 그리고 졸업식이라…….”

휘익!

그 말과 함께 섬광을 방불케 하는 손놀림이 주현의 핸드폰을 낚아챘다.

“아…….”

핸드폰을 빼앗긴 주현이 뒤를 돌아보는 순간, 주현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어갔다.

자신의 핸드폰을 빼앗아간 장본인이 문자를 확인했던 것이다.

“호오! 이런 멋진 정보가 있을 줄이야. 우리 주현이가 제법 머리를 섰네?”

주현의 시선을 받은 소녀가 순수 백지와도 같은 새하얀 웃음을 지어보였다.


주현은 지금 상황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언제 자신의 뒤로 접근을 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에 잠겨 있었다고 하나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이렇게 접근을 한 것을 본 주현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러는 사이, 핸드폰 문자를 확인한 여인은 꼼꼼히 한글자씩 보더니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우리 막내가 이런 앙큼한 계획을 세울 줄은 몰랐어요. 이 언니에게 말을 하지 않고 혼자 가려고 하다니. 언니는 매우 섭섭해요.”

그녀의 말에 몸을 움찔 떠는 주현이었다.

주현은 지금 눈앞에 있는 여인이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평소에는 한없이 착하고 밝으며 때로는 어리버리한 모습을 보이고는 하였는데… 지금은 그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주현의 눈이 격렬하게 떨리면서 목소리도 같이 떨려나온다.

“미영 언니…….”

그렇다. 주현의 앞에 있는 여인의 정체는 다름 아닌 미영이었던 것이다.

평소 허술한 모습으로 팬들에게 ‘띨파니’ 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은 미영이었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을 보면 과연 그 별명이 어울리는가 심각하게 고민이 될 정도였다.

흔들림 없는 눈동자와 은연중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드는 그녀의 기운은 소녀시대 내 최강의 포스를 자랑하는 수연과 비견될 정도였다.

주현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미영이 반응을 하였다.

“응? 왜 그러니 주현아?”

남자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눈웃음을 지어보이는 미영이었다.

하지만 그 웃음을 받는 순간 주현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듯한 충격을 느껴야만 했다.

눈 꼬리는 분명 휘어 있는데 눈은 웃고 있질 않았던 것이다.

미영은 다시 한 번 문자를 들여다 보더니 주현에게 말한다.

“미영 언니는 매우 슬퍼요. 설마 귀엽고 깜찍한 우리 주현이가 이런 사실을 숨길 줄은 몰랐거든요. 설마 우리 막내가 그럴 줄이야…….”

“언니 이건 그러니까…….”

전신을 휘감는 기묘한 느낌에 무어라 변명을 하고자 하는 주현이었지만 뭐라 말을 할 수 없었다.

평소와는 사뭇 다른 미영의 분위기에 눌리고 만 것이다.

소녀시대 먹이사슬 내에서 최하위에 속하는 태연과 윤아에게도 매번 당하고 이따금 자신에게도 당하던 미영이었는데 설마 이런 모습을 보일 줄이야.

“응? 뭐라고 할 말이 있어요? 주현 양?”

평상시 사용하던 반말을 제외한 채 존대를 하는 미영의 모습이 더욱 공포스럽게 느껴지는 주현이었다.

이럴 수가. 미영에게도 이런 분위기가 발산될 줄이야.

주현은 미영이야 말로 소녀시대 내 숨겨진 강자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른 바 최종병기랄까.

으스스한 미영의 분위기에 주현이 재빨리 사과했다.

“미안해요, 언니. 숨기려고 한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고요? 흐음!”

주현의 말 때문일까.

눈을 가늘게 뜬 미영은 잠시 주현과 핸드폰을 번갈아 보더니 생각에 잠겼다.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미영은 자신이 크나 큰 오류를 범할 뻔했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했다.

TV를 보다가 방에 무언가 가질 것이 있어서 방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던 중 방에 주현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방안으로 들어갔다.

동생을 배려하는 착한 언니의 표본과도 같은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방안으로 들어선 미영은 자신이 가지고 나오려던 물건을 챙기려고 할 때, 의아한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분명 책을 읽고 있어야 할 주현이 책상에 앉은 채 갑자기 ‘부끄러워’ 라는 단어를 연발하는 등 혼자서 기이한 상상에 빠져있던 것이다.

거기에 의아함이 생겨난 미영은 조심스럽게 주현에게 접근을 하였고, 그녀가 핸드폰을 들고 생각에 잠겨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뒤로 접근하여 슬쩍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졸업식이라는 단어를 본 것 같았다.

부끄럽다는 단어와 함께 졸업식이라는 두 개의 단어.

두 가지 단어를 보는 순간, 미영은 순간 머리를 둔기라도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올해 멤버들이 졸업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미영이었다.

주현이 분명 언니들이 졸업을 한다 하여 부끄럽다고 말할 아이가 아니었다.

그걸 깨닫는 순간, 미영은 창현이 올해 졸업을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주현이는 창현이의 학교 선배니까 졸업식에 관련된 문자가 날아올 수 있을 것이다.

찰나의 순간에 복잡한 결론을 빠르게 내린 미영이었다.

그러자 그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주현의 핸드폰을 낚아채게 되었다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확인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성공적으로 주현의 핸드폰을 낚아채고, 내용을 확인한 미영은 자신의 예상이 맞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활화산 같은 분노를 느껴야만 했다.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혼자 독식하려 하다니!

물론 자신이 알았어도 독식을 하려고 했을 테지만 상황이 다르지 않은가.

큰 분노를 느낀 미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현에게 분노를 발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눈을 가늘게 뜬 미영은 주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의기소침하여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는 모습은 한눈에 보아도 측은해보였다.

그 모습에 미영은 분노가 차츰 사그라드는 것을 느끼면서 주현에게 물었다.

“정말 숨기려고 했던 게 아니지?”

존대에서 반말로 돌아왔다.

이것은 화가 풀리기 시작했다는 뜻.

주현은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에요. 언니들에게도 알리려 했어요.”

마땅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더라면 언니들에게 도움을 청했으리라.

그것은 분명히 맞다고 생각하는 주현이었다. 결코 지금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변명이 아니었다.

결코…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래, 좋아. 주현이가 그렇게 말하니까 언니가 이해할게. 음, 언니가 화낸 건 미안해. 우리 주현이가 언니에게 숨기려고 한 줄 알고 화가 나서 그런 거야. 이해해줄 수 있지?”

이렇게 무서운 미영의 모습은 처음이었기에 주현은 그 모습을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움찔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 다시는 그런 미영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무, 물론이죠. 이해하고 말고요.”

“아이구, 착하다. 우리 막내.”

주현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미영이었다.

평소에는 결코 하지 않았던 행동. 늘 상위 스펙의 멤버들에게 당하여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이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이었다.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미영의 손길을 느끼면서 주현이 생각한다.

‘미영 언니가 이렇게 무서운데. 수영 언니랑 효연 언니, 윤아 언니는 각오해야 할 거 같아요.’

주현의 뇌리에 스치고 지나간 사람들은 평소 미영을 자주 놀리는 멤버들이었다.

만약 그녀들이 이런 미영의 모습을 보았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아예 놀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지금 미영의 모습은 무서웠다.

얼음 레이저라는 스킬로 최정상에 군림하는 수연에게도 쉽게 압도되지 않는 주현이 미영의 포스 앞에서 한낱 어린아이로 전락해야만 했으니 말이다.

조용히 주현의 비단결 같은 머리를 쓰다듬던 미영이 물었다.

“찾아가겠다고 창현이한테 전화는 했고?”

“아니오. 아직 연락은 하지 못했어요. 찾아가야 할지 고민이 되어서요…….”

주현의 말에 미영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어째서? 찾아가면 창현이가 기뻐할 텐데?”

“그러니까…….”

주현은 자신이 생각했던 바를 털어놓는 수밖에 없었다.

창현의 졸업식에 분명 수많은 팬들이 몰려들 것이고, 그리 되면 졸업식은 무척 붐비게 될 터. 붐비는 졸업식에서 제대로 된 만남을 가질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 말을 들은 미영은 나직이 감탄사를 터뜨린다. 주현의 말처럼 정말 그럴 수도 있던 것이다.

“아! 그렇구나. 역시 막내는 똑똑하네.”

“이건 언니도 생각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가? 헤헤!”

주현의 말에 고개를 살짝 갸웃하다가 이내 웃음을 짓는 미영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주현은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이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평소 때의 미영의 모습이었는데 말이다.

매일 골탕 먹는 그 모습인데 방금 전 그 모습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웃음을 지으며 잠시 무언가 생각에 잠겨있던 미영이 주현에게 말한다.

“주현아, 우리 이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둘이서만 알자.”

아무래도 미영도 주현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나보다.

바로 창현과 만나되 적은 숫자의 멤버들과 함께 하는 것!

그 말을 들은 주현이 속으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원래는 저 혼자만 알고 있고 싶었다고요. 후우!’

미영이 알아차리지만 못했으면 모처럼 혼자 만날 수 있었을 텐데.

그 점이 못내 아쉬운 주현이었다.

“네, 언니…….”

“음! 그러니까… 많이 가면 창현이가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까 우리가 대표로 가서 축하해주자는 이야기야.”

행여 주현이 이상한 생각을 할까 싶어 자기 나름대로 변명거리를 만나서 설명해주는 미영이었다.

그런 미영의 설명에 건성이나마 고개를 끄덕이는 주현이었다.

어차피 자신도 숫자가 적으면 적을수록 좋으니 말이다.

주현의 수락을 얻어내자 미영은 활짝 웃음을 짓더니 말한다.

“그럼 우선 창현이와 통화를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스케줄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걸 알아야 할 텐데.”

“그것도 그러네요.”

“음, 그러면 내가 전화를 해보도록 할게.”

미영의 말에 주현이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미영이 전화를 하면 창현의 졸업식을 가장 먼저 알고 전화한 사람이 마치 미영처럼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주현이 서둘러 미영을 제지하려 하였다.

“에? 자, 잠시만요!”

하지만 이미 늦었다. 말을 함과 동시에 핸드폰을 펼쳐 창현의 단축번호를 꾹 누른 미영은 통화 연결 중에 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주현은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하니 미영의 대처가 이렇게 빠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정말 창현과 연관이 되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미영이었다.

선수를 빼앗긴 주현으로서는 정말 뼈아픈 실책이 아닐 수 없었다.

그에 반해 전화를 걸고 있는 미영의 얼굴은 싱글벙글이었다. 이렇게 핑계를 대서라도 전화를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즐거움이었다.

♩♪♬

컬러링이 울리면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대로 통화가 이어지지 않는가 싶자, 미영이 울상을 지었다.

“설마 전화가 안 되는 건가? 싫은데…….”

통화가 연결되지 않는다는 미영의 말에 주현의 표정이 순간 밝아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내 통화가 연결되는 소리와 함께 건너편에서 창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창현아, 나야!”

자신의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다짜고짜 나라고 밝히는 미영.

하지만 다행히도 창현은 상대방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핸드폰 액정에 전화를 건 사람의 번호가 뜨니 말이다.

창현은 반가운 목소리로 미영의 전화를 반겼다.

-미영 누나? 갑자기 무슨 일이세요?

“으응! 역시 아는구나. 감격이야.”

별 것도 아니건만 감격의 표정을 짓는 미영이었다.

눈에 콩깍지가 씌어도 단단히 씌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건너편에서 미영의 목소리를 듣던 창현이 피식 하고는 미영에게 말한다.

-감격은 무슨요.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로 전화를 하신 거예요?

“아! 다름 아니라, 창현이 네가 2월 4일에 졸업식을 한다고 들었거든. 맞지?”

주현의 핸드폰을 강탈하면서 창현의 졸업식 날짜를 보았음에도 확인을 하는 미영이었다.

그 말에 창현이 놀란 목소리로 미영에게 물었다.

-어? 미영 누나가 어떻게 알고 계신 거예요? 2월 4일 월요일 제 졸업식 맞아요.

“그래, 맞지? 에헴! 내가 창현이에 관한 건 다 꿰고 있단 말씀이지!”

옆에 있던 주현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오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미영이었다.

그런 상황을 알 리가 없는 창현은 미영의 말에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하하! 고마워요. 설마 그것까지 알고 계실 줄은 몰랐어요. 졸업식 때문에 전화를 주신 거예요?

“응! 졸업식 축하한다고 전화 하려고 했지. 이제 고등학생 되겠네?”

-으음! 고등학생이라…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어쨌든 졸업식이 맞아요. 축하해주셔서 감사하고요.

고등학생이란 말에 말끝을 흐리는 창현이었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지 않은가보다.

어쨌든 자신의 졸업식을 축하한다고 전화해주는 미영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설마 이것까지 알고 축하한다고 말을 남겨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응! 그래서 창현이 졸업식에 찾아갈까 생각 중인데 안 될까?”

본격적으로 용건을 꺼내는 미영이었다.

옆에서 자신의 공을 미영이 주워 먹는 모습에 입술을 삐죽이던 주현도 귀를 쫑긋한 채 귀를 기울인다.

미영의 말에 잠시 침묵이 흐르고, 이내 창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으음! 그건 아무래도 어려울 듯 싶은데요.

“그래…? 아쉽네. 후우…….”

창현의 대답에 풀 죽은 목소리를 내는 미영이었다. 듣는 사람의 기운이 팍 사그라드는 의기소침한 목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옆에 있던 주현의 얼굴에도 실망의 감정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예상했던 전개 그대로인가보다.

풀 죽은 미영의 목소리 때문일까.

건너편에서 창현이 무언가 생각에 잠기더니 미영에게 말한다.

-미안해요. 음, 졸업식에 촬영이 잡혀서요. 잠깐 인터뷰도 해야 될 것 같고 그래서 졸업식에는 시간이 안 될 것 같고… 음! 졸업식이 끝나고 만나는 건 어때요?

잔뜩 풀이 죽어 있던 미영의 귀가 순간 쫑긋한다. 창현의 말은 만날 수 있다는 걸 뜻하던 것이다.

“응? 졸업식 끝나고?”

-네. 졸업식 끝나면 1시에서 2시쯤 될 것 같은데. 조금 늦은 점심을 같이 먹으면 어떨까 싶어서요. 음, 아무래도 시간을 정확하게 하는 게 좋을 테니 2시쯤에 만나는 건 어떨까요?

촬영이 있다는 말에 내심 포기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된다는 창현의 말은 반가운 소식이었다.

미영은 금세 활기찬 목소리가 되어 물었다.

“우리야 좋지! 그날 스케줄이 없거든. 그럼 어디서 만날까?”

-제 녹음실 어때요? 졸업식이 끝나면 녹음실에 갈 생각이었거든요.

구체적인 코스는 정하지 않은 채 녹음실을 언급하는 창현이었다.

그에 미영이 핸드폰에서 잠시 귀를 떼더니 주현을 바라보고는 묻는다.

“창현이가 졸업식 끝나고 녹음실에서 만나자고 하는데 괜찮지?”

“저는 좋아요, 언니.”

“응, 알았어.”

주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미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창현에게 말한다.

“응! 그리로 갈게. 주현이도 같이 갈 건데 괜찮지?”

-저야 상관없어요. 그러고 보니 주현 누나도 제 졸업식에 오려고 하신 거예요? 옆에 있으시면 잠시 바꿔주시겠어요?

“으응. 알았어. 주현아, 여기. 창현이가 바꿔 달라네.”

주현을 바꿔달라는 말에 미영은 마음에 안드는 듯 미간에 주름을 만들어내다가 주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고마워요, 언니. 여보세요?”

핸드폰을 건네주는 미영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는 받아드는 주현이었다.

주현이 전화를 받아들자 창현이 말한다.

-여보세요? 주현 누나, 저 창현이에요. 제 졸업식 알고 계셨던 거예요?

“물론이지! 작년에 창현이가 와줬었잖아. 그래서 기억하고 있었지.”

실은 오늘 문자가 와서 뒤늦게 깨달았지만 점수 깎이게 그런 말을 할 이유는 없다.

주현의 말을 들은 창현이 감격이라는 듯 말한다.

-오! 역시. 누나가 기억해주니 기분이 좋네요. 아무 언급이 없어서 다 잊어버린 줄 알았거든요. 하하!

‘미안. 실은 잊어먹고 있었어.’

속으로 창현에게 사과를 한 주현은 당치도 않다는 듯 창현에게 말한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은 하면 안 되지. 어쨌든 졸업 축하하고, 2월 4일에 보자. 나랑 미영 언니가 점심 맛있는 거 사줄게.”

아무래도 창현의 졸업식이다 보니 이 날만큼은 자신이 사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주현이었다.

힐끗 미영을 바라보며 의견을 구하자 미영도 얼른 고개를 끄덕인다. 축하해주며 점심을 사는 것이 제법 점수를 딸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것도 괜찮은데요? 누나들한테 얻어먹는 점심이라! 기대해도 되죠?

“으응? 응! 무, 물론이지. 기대해도 돼. 아니, 무조건 기대하고 와.”

설마 흔쾌히 승낙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다소 당혹스러운 음성으로 대답하는 주현이었다.

더군다나 기대하겠다니?

부담감이 드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디 대답을 해버린 상태였다.

주현의 대답을 들은 창현은 힘찬 목소리로 말한다.

-그럼 기대할게요. 저는 인터뷰 스케줄이 있어서 이만 끊을게요. 잘 부탁해요.

“알았어. 나만 믿어.”

그렇게 말을 하고는 통화가 끊어졌다.

주현은 미영을 바라보면서 저질렀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미영 언니 어떻게 하죠? 창현이가 기대하겠다고 하는데…….”

순전히 기분에 취해서 한 말이다.

충분히 창현에게 점심을 살 용의는 있었지만 그의 기대감을 충족시킬 만큼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미영과 주현 모두 밖에 나가서 맛있는 것을 즐겨 먹거나 그러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소위 말하는 맛집 같은 곳은 물론이고 단골로 찾는 음식점도 없었던 것이다.

미영도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주현에게 말한다.

“우리 맛집 같은 거 모르잖아. 어떻게 하지?”

“언니들한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건 당연한 말이고! 애들한테 말하면 단번에 들켜버린다고! 맛집은커녕 그날 외출하는 것도 언급하면 안 돼.”

누가 이 여인에게 띨파니라는 굴욕스러운 별명을 지었단 말인가.

멤버들의 성격을 꿰뚫어 보고 언급조차 금지 시키는 미영이야 말로 띨파니가 아닌, 와룡파니, 봉추파니라는 별명이 어울렸다.

‘역시, 미영 언니는 대단해. 앞으로 절대 겉모습에 넘어가지 말아야지.’

다시 한 번 미영의 날카로움에 주현은 속으로 감탄을 하며 다짐을 되새긴다. 사람은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그럼 어떻게 하죠?”

방법을 묻는 주현의 모습에 깊은 생각에 잠기는 미영이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미영은 주현에게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했다.

“그런데 이걸 굳이 우리가 고민할 이유가 있어? 컴퓨터로 검색해보면 되잖아.”

“…아!”

미영의 말에 주현은 자신이 이렇게 간단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멍청하게도 이것을 잊고 있었다니.

멍한 주현의 표정에, 미영도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나도 깜빡했었네. 그럼 된 거지? 인터넷에서 검색하는 걸로.”

“네, 언니. 그리고 창현이가 좋아하는 걸 조사하면 될 듯 싶네요.”

“응. 우리가 최우선으로 해야 할 것은 보안을 지키는 것. 알겠지?”

“네, 물론이에요. 언니.”

더 이상 혹(?)을 다는 것은 주현도 사양이었다.

그렇게 미영과 주현 사이에 동맹이 성립하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들의 비밀은 채 일 분도 되지 않아 들키고 말았다.

굳게 닫혀 있는 방문은 완벽한 방음 처리를 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건너편에서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은밀한 인영 하나.

그녀는 미영과 주현 사이에 성립하는 동맹 이야기를 듣고는 몸을 일으킨다.

“미영이와 주현이, 이것들이 감히…….”

자신에게 알리지 않은 채 은밀하게 거사를 치르려고 한 두 여인에 대한 분노 때문일까.

여인의 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러 마침내 졸업식인 2월 4일이 되었다.

창현은 오늘도 새벽이라기도 뭐하고 아침이라기도 조금 애매한 6시에 눈을 떴다. 키가 크기 위해 가능하면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고는 하였기에 일어나는 시간도 빠르다.

아침 일찍 일어난 창현은 몸을 씻고는 명상에 잠긴다. 하루를 상쾌하게 보내기 위해서 명상에 잠기고는 한다.

한 시간 정도를 명상으로 보낸 창현은 맑은 정신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였다.

그리고 여덟 시쯤이 되자 지영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러고 보니 지영이도 오늘 개학식이다.

개학 첫날부터 정규 수업이라는 말에 툴툴거리던 지영의 모습을 떠올리니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래, 지영아. 학교 잘 갔고? 그래, 졸업식 11시쯤에 시작할 것 같아. 점심 약속도 있고. 그래. 저녁은 같이 먹을까? 알았어. 그럼 그때 보자.”

점심은 미영, 주현과 함께 하기로 했으니 저녁은 지영과 함께 하기로 약속을 한 창현이었다.

시계를 힐끗 본 창현은 여덟 시가 넘은 것을 확인하고는 몸을 일으킨다.

“흠! 그럼 준비를 해볼까.”

오늘은 졸업식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스케줄이기도 하다. 이른바 독점 취재 형식으로 촬영이 오니까 말이다.

게다가 세희에게 슬쩍 들으니, 동급생들이 싸인 요청과 사진 요청을 할지도 모르니 단단히 준비를 할 생각이었다.

“뭐 매번 세희 누나가 하는 잔소리이긴 하지만.”

세희가 매번 창현에게 하는 말이 있었다.

바로 연예인이면 좀 연예인 티 좀 내라는 것이었다.

물론 창현이 티를 내지 않는다고 하여 그를 못 알아보는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데뷔하기 전 창현은 평범한 꽃들 중에서 발군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면 지금은 닭들 사이에 있는 학 한 마리와 같았다. 다른 사람들과 궤를 달리 하는 아우라가 풍긴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다.

그걸 모르는 세희가 아니었다.

다만 그녀가 창현에게 하는 말은 밖을 나갈 때 조금 꾸미고 다니라는 이야기였다.

연예인의 사진 한 장은 나중에 큰 여파를 몰고 오기도 한다.

한때 극성팬이었다가 엽기사진이나 굴욕사진들을 보고 팬심이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던 것이다.

그랬기에 세희는 창현이 외출을 할 때도 메이크업을 아니, 하다 못해 비비 크림이라도 바르고 나가길 원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콱 숙소에 가둬놓고 외출할 때마다 허락을 구하게 하고 싶지만 그것이 어디 쉬운가.

그래서 그녀는 매번 창현에게 구박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겹게 귀에 들리면 말을 듣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의도는 멋지게 성공을 하였다.

하도 잔소리를 듣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간단한 메이크업을 하고 있던 것이다.

“이러다가 코디 누나가 실업자가 될 수 있을 텐데.”

창현은 점점 늘어만 가는 자신의 메이크업 실력에 만족을 표하면서 피식 웃음을 짓는다.

자신이 봐도 나이스한 메이크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차근차근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아홉시 반이 되어 있었다.

깔끔하게 교복을 챙겨 입은 창현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내심 속으로 OK 사인을 내릴 때,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해보니 세희의 전화였다.

창현은 곧장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창현이 너 준비 다했어?

결코 늦장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한 세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에 창현은 피식 웃음을 짓고는 힘차게 대답한다.

“옙! 준비 완료입니다. 언제쯤 오실 겁니까?”

-졸업식이 11시 시작이잖아? 그럼 10시 30분에 가면 될 듯 싶은데.

10시 30분이라?

고개를 갸웃하는 창현이었다.

졸업식 시작이 11시라고 하나 보통 조금 일찍 등교를 하지 않던가? 학교 수업 시작이 9시면 등교를 8시 30분 이전에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왜 이렇게 늦게 간단 말인가.

‘학생들 때문인가?’

싸인 공세에 시달릴 수도 있다는 세희의 말을 듣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창현이었다.

의문을 표하려던 창현은 목구멍까지 치민 말을 꿀꺽 삼키고는 세희에게 말한다.

“알았어요. 그러면 10시 30분에 지하 주차장으로 가면 되는 거죠?”

-그래. 그때까지 오면 될 거야. 늦으면 안 되고. 알았지?

“제가 언제 약속 시간에 늦은 적이 있다고 그러세요. 알았어요. 그때까지 가도록 할게요.”

세희의 말에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창현이었다. 약속시간이라면 그야 말로 철두철미! 늦지 않겠다는 각오가 대단한 상태였다.

그렇게 세희와 통화를 끝낸 창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슬쩍 시계를 바라보니 시간은 9시 30분. 데리러 오기까지 한 시간이 넘게 남아 있었다.

“컴퓨터라도 하면서 시간을 죽여야겠네.”

역시 시간을 보내는 데는 컴퓨터가 최고 아니겠는가.

컴퓨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은 창현은 컴퓨터를 키고는 인터넷을 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접속한 것은 아무래도 자신의 팬 사이트인 다크 스타였다.

신설 게시판을 보니 자신의 졸업을 축하하는 게시글이 가득하였다.

“이런 것도 있었네.”

아무래도 수많은 게시판들이 있기에 주로 사용하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게시판뿐이었다. 그랬기에 자신의 졸업을 축하하는 게시글들을 보자 고마운 마음이 든 창현은 감사하는 마음을 담은 게시글을 작성하였다.

동시 접속자 목록에 창현의 이름이 있었기에 순식간에 사이트에 사람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창현이 게시글을 작성하자마자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하였다.

순식간에 달리는 댓글들을 보던 창현은 스타크래프트를 키고 세 판 정도 하다가 10시 20분이 된 걸 보고는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주차장에 내려온 창현은 벤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한쪽에서 빵빵! 하고 소리가 울렸고, 창현이 시선을 옮기니 그곳에 벤이 주차되어 있었다.

벤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 창현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서 말한다.

“조금 일찍 오셨네요?”

“창현이 네가 일찍 오는 걸 아니까 조금 일찍 오자고 한 거야.”

창현에 대해 상당히 자세하게 꿰뚫고 있는 세희였기에 미리 온 것이다.

그런 세희의 말에 창현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의자에 앉았다.

“저에 대해 너무 잘 알면 안되요.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불편하다니까요.”

자신의 기분을 파악하고는 알아서 배려를 해주는 것도 좋긴 하지만 아무래도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 무언가 염탐을 당하는 느낌이 들어 별로라고 생각하는 창현이었다.

그 말에 세희가 웃음을 지으면서 말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돼. 창현이 넌 파악하기 힘든 4차원이거든. 누가 너를 파악할 수 있을까. 아직 나도 감이 안 잡혀. 그냥 때려 맞추는 것뿐이거든.”

“제가 4차원이라고요? 그런 말은 처음 듣는데.”

세희의 말에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창현이었다.

정말 농담하지 않고 4차원이라는 소리는 처음 들어보았다.

처음 듣는 소리기에 그냥 넘겨버릴 수 있지만 세희가 한 말이기에 묘하게 귀에 걸렸다.

아무래도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라서 그런 걸까?

창현은 결국 세희에게 물었다.

“누나, 제가 왜 4차원이에요?”

그 물음에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세희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말했다.

“몰라서 묻는 거야? 하기야, 모르니까 4차원인 거겠지. 음, 창현이 넌 매우 독특해. 톱스타임에도 욕심이 별로 없고, 거만하지도 않거든. 모든 톱스타들이 거만하지는 않지만 네 나이 대는 거만해지기 쉽잖아? 의식적으로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해도 무의식 중에 행동으로 많이 나오는 편이고. 정상의 자리에 있음에도 신인 같이 행동하는 게 4차원 같이 느껴져서 그래. 조금 오만해도 될 법한데 말이지.”

그 말에 창현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나쁜 게 아니라 좋은 것이 아닌가?

“허! 그건 좋은 거 아닌가요?”

“좋은 면으로 4차원이라는 거야. 그러니까 너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던 거고. 어떤 면에서는 대단하단 말이야.”

세희가 창현이 자유로이 행동을 해도 묵인하는 것이 바로 그것 때문이다.

능력적인 천재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그런 천재들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정신적으로 성숙한 천재는 드물다. 자신의 능력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깨닫는 순간, 평범한 사람을 깔보거나, 묘하게 거리감 있는 시선으로 바라보기에 그렇다.

그런 면에서 창현은 그러한 것들이 없이, 정신적으로도 정상적이면서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녀가 창현을 높게 치는 이유가 바로 정신적인 성숙함 때문이었다.

“누나가 칭찬해주니 기분 좋네요, 뭐. 하하! 그럼 앞으로도 4차원으로 살아야겠네요.”

좋은 의미로 말한 것이란 걸 깨닫자 웃음으로 넘기는 창현이었다.

그가 의도하던 하지 않았던 간에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린 시절을 워낙 어두웠고,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려는 나날의 연속을 보냈기에 그렇다. 이 자리에서 떨어지면 보이는 것은 끝없는 어둠뿐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창현에게 있어 ‘자만’이나 ‘오만’ 이라는 단어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언제나 겸손한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야만 프로라는 의식도 있기에 그렇다.

이 점이 엄청난 스트레스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다행히도 창현이 소화하는 스케줄의 양은 그리 많지가 않았다.

그것은 이러한 창현의 상태를 석규가 파악하고 있었기에 그렇다. 미국에서 빠듯한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육체도 육체지만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에게 과도한 스케줄은 해가 된다고 판단을 내리던 차였다.

과한 프로의식이 자칫 그의 연예인 생명을 갉아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 창현을 보면서 세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살짝 한숨을 쉬었다.

“…둔감하기도 하지. 쟤를 좋아하는 애는 고생을 할 거야.”

남들 눈에는 화려한 연애 경험을 가질 것 같지만 속은 전혀 다른 창현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짓고는 조용히 말하는 세희였다.

그렇게 벤 안은 다시 침묵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것이 있는 듯, 세희가 창현에게 물었다.

“창현이 너 설마 몸만 온 거야?”

그 말에 창현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묻는다.

아무 것도 모르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 가지고 올 게 또 있나요?”

“…하아!”

무감각한 창현의 모습에 한숨이 절로 흘러나오는 세희였다.

그리고는 벤을 운전하는 로드 매니저에게 말했다.

“오빠, 저기 대형 마트로 가도록 해요. 살 게 있어요.”

“그래? 그럼 시간이 조금 빠듯할 거 같은데. 알았어.”

십 분 일찍 온 것 때문에 지각은 면할 수 있을 듯 싶었다.

벤이 진로를 대형 마트로 변경하자 창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세희에게 묻는다.

“누나 왜 갑자기 대형 마트로 가는 거예요?”

“너 정말 졸업식에 대해서 잘 모르는가 보구나? 하아! 겪어 보면 알 거야.”

어떻게 요즘 애들인 창현보다 세희가 더 졸업식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일까.

전혀 모르겠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창현의 모습에 한숨을 내쉰 세희는 창현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입을 다물었다.

그 사이 벤은 대형 마트로 향하고 있었다.


“이것도 잘 어울리는데? 아니, 이것도 괜찮고. 흐음!”

근처 대형 마트로 향한 세희는 창현의 옷을 고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졸지에 마네킹이 된 창현으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이런 저런 옷을 가져다 대는 세희를 보며 창현은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은 채 말한다.

“옷은 왜요?”

“필요할 것 같아서. 이것 괜찮네.”

그러면서 창현에게 어울리는 잠바를 고른 세희는 옷을 챙긴다. 그리고는 창현에게 맞는 티도 하나 골랐다.

그런 세희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는 창현이었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도대체 왜?’ 라는 단어만 맴돌고 있던 것이다.

웅성웅성.

갑작스러운 창현의 등장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기에 충분하였다.

졸업식에 가는 것이었기에 창현은 이렇다 할 변장을 한 상태가 아니었다. 중학교 교복을 입고, 변장할 만한 것들은 하나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형 마트에 들어서면서 창현을 알아본 사람들이 싸인 요청을 하자, 세희는 매니저로서 사람들에게 접근을 하지 말아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하였다. 대신 멀리서 사진을 찍는 건 상관하지 않겠다고 하자, 사람들은 창현에게 다가가지 않은 채 조금 떨어져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무래도 창현이 학교에 나갈 때 교복 차림을 한 사진이 찍히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자주 접할 수 없는 복장은 틀림없었다.

졸지에 세희를 따라다니면서 옷을 사게 된 창현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옷을 후다닥 고른 두 사람은 곧장 주차장으로 올라가 벤에 탑승하고는 그대로 학교로 직행하였다. 옷을 제법 빨리 골랐기에 학교에 늦지는 않을 듯 싶었다.

“그런데 옷은 왜 산 거예요?”

벤에 탑승한 창현이 세희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세희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필요할 거라니까? 그렇게 알아두면 편할 거야.”

“흐음! 뭐, 그렇게 알고 있도록 하죠, 뭐.”

다시 물어도 세희가 대답해줄 모양새가 아니었기에 그러려니 하면서 납득하는 창현이었다.

그렇게 학교에 도착하니 10시 50분이었다. 사실 걸어서 통학을 해도 되지만 걸어서 가는 동안 몰려드는 사람을 감당할 여력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학교를 갈 때 차를 타고 가고는 하였다.

학교 앞에 도착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정문 앞에 우글거리고 있었다.

바로 현의 팬들이 졸업식 소식을 알고서는 학교로 찾아온 것이다.

무슨 콘서트도 아닌데 피켓을 만들어온 사람도 있었고, 꽃을 들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한 사람들의 숫자는 무려 수백 명. 정문 앞이 마치 개미떼가 우글거리는 것처럼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학교로 들어서려는 사람들을 막느라 선생님들이 진땀을 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창현이 탑승하고 있는 벤이 등장하자 누군가가 벤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꺄아! 현이다!

그 외침과 함께 사람들이 벤이 있는 곳을 향해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인파를 헤치고 벤이 서서히 학교로 가기는 하는데 그 속도가 매우 더뎠다.

사람들이 둘러싸고 벤을 툭툭 두드리기도 했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학교 안으로 들어서는데 성공한다.

무사히 학교 안으로 들어서자 로드 매니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후! 이것도 고역이군, 고역이야.”

“고생하셨어요.”

로드 매니저를 위로하는 창현의 모습에 세희가 한마디 한다.

“고생은 이제부터 창현이 네가 해야 할 걸. 내리자.”

“누나도 졸업식에 참여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네 졸업식이기도 하지만 엄연히 말하면 스케줄이기도 해. 그걸 알아야지. 안 그래?”

“그것도 그러네요.”

엄연히 스케줄인 이상 매니저인 세희도 참석할 이유가 존재한다.

그렇게 창현이 납득을 하자 세희가 벤에서 내린다.

갑자기 벤에서 미모의 여성이 내리자 당장이라도 밀고 들어오려던 사람들이 멈칫한다.

교문으로 다가간 세희가 사람들을 보면서 말한다.

“현의 매니저 윤세희라고 합니다. 모두 현의 졸업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촬영 허가가 나고 학교 안으로 들어오실 수 있을 거예요. 그때까지 기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현의 졸업식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살짝 고개를 숙인 세희가 돌아간다. 그리고 벤에서 내린 창현도 사람들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드르륵.

교실에는 벌써 학생들이 모두 와 있는 상태였다.

창현이 등장하자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몰려들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창현이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잠시 후, 담임선생님이 들어와 졸업식에 대해 이런 저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설명을 하는 담임선생님은 바짝 굳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K본부에서 나온 촬영팀이 창현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던 것이다. 거기에 담임선생님의 모습이 담기는 것도 당연했다.

딱히 카메라를 의식할 필요가 없는 것을 알고 있는 창현은 의식하지 않은 채 담담한 안색으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시간이 되자 운동장으로 나오라는 방송이 들려온다.

본래 졸업식은 강당에서 할 예정이었으나 촬영팀이 오고, 현의 팬들도 왔기에 넓은 운동장에서 하기로 변경한 것이다.

운동장으로 나간 창현은 1번답게 제일 앞에 자리를 하였다. 성이 강씨다 보니 출석번호도 제일 앞이었다.

학생들이 모두 나오자 본격적으로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운동장은 이미 개방된 상태였기에 창현의 팬들이 운동장에 빼곡하게 들어온 상태였다. 그들은 창현의 모습을 찾기 위해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 사이 시작된 졸업식은 교장선생님의 마지막 훈화와 함께 그동안 수고한 학생회장과 부회장, 학생부 임원들에게 상장을 주었다.

“3학년 2반 강창현 학생은 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창현의 이름을 호명하였다.

앞에서 조용히 서 있던 창현은 의아한 안색을 하였다.

“응? 나?”

고개를 갸웃하던 창현은 담임선생님의 손짓에 얼떨떨한 안색으로 교장선생님 앞에 선다.

꺄아아아아!

창현이 모습을 드러내자 졸업식에 온 팬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른다.

그런 팬들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살짝 고개를 숙인 창현은 교장선생님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그 인사를 받은 교장선생님은 창현에게 상장을 준다.

무슨 학교의 이름을 널리 알린 상이라나 뭐라나.

“이에 강창현 학생에게 상장을 수여함. 2008년 2월 4일. 월요일…….”

어쨌든 주는 상은 마다하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상장을 받아든다.

상장을 받아드는 창현의 모습에 웃음을 지은 교장선생님이 말한다.

“그럼 상장도 모두 수여하였으므로 우리 학교의 자랑인 창현 군의 노래를 한곡 들으면서 졸업식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갑작스러운 말에 창현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를 할 거란 세희의 언질은 들었지만 설마 노래를 한곡 해달라고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에? 제 노래를 말입니까?”

“창현 군을 보러 오기 위해 온 팬들도 있지 않은가? 확실한 보답은 필요하지. 그럼 부탁하겠네.”

그렇게 말을 한 교장선생님은 뒤로 물러났고, 졸지에 창현만이 남게 되었다.

그에 창현이 한숨을 푹 내쉰다. 아까 전 세희가 준비는 자신들이 다 갖춰놨으니 맞춰주기만 하면 된다고 하더니 이걸 뜻하는 것이었나 보다.

‘나쁘지 않겠지. 생각해보면 작년에도 노래를 불렀고.’

팬들도 자신의 졸업식을 축하하기 위해 와주었으니 이 정도 서비스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나직이 고개를 끄덕인 창현이 마이크를 잡고는 말한다.

“에, 어떻게 하다 보니 졸지에 한곡을 부르게 되었네요. 음, 제가 부를 곡은 이번 정규 3집 앨범의 수록곡인 <February>입니다. 종류는 다르지만 이별의 주제를 담고 있고, 미래의 희망을 갖고자 하는 것은 비슷하네요. 지금은 이렇게 헤어지지만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될 것을 약속하며 한 곡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창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장 <February>의 MR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단단히 준비를 한 듯하다.

그 MR에 맞추어 노래를 시작하는 창현.

2월의 싸늘한 추위와 이별의 슬픔을, 그리고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주제의 <February>를 부르면서 창현은 이제 헤어지는 슬픔을 노래하고, 이별 후 새로운 만남에 관하여 두근거리는 느낌을 표현하였다.

사람들은 창현의 노래에 빠져들며 그의 멜로디에 녹아들기 시작하였다.

어쩌다 보니 시원섭섭한 졸업식에 절묘하게 어울리는 노래가 되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각기 자신의 반으로 돌아간 학생들에게 졸업 앨범이 주어졌다.

졸업 앨범을 받은 학생들은 일제히 창현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싸인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창현아! 싸인 좀 해줘!”

“싸인? 좋아,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친구들의 요청에 흔쾌히 승낙을 하며 싸인을 하기 시작하는 창현이었다.

미국에서 활동을 하느라 오랫동안 학교에 나오질 못했기에 단체 사진에는 창현의 모습이 없었다. 개개인의 사진은 있었지만 단체 사진은 미처 참석을 하지 못했기에 그 속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이다.

아쉬웠지만 창현은 그런 기색을 내비치지 않은 채 오늘 마지막으로 마주하게 될 반 친구들의 싸인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싸인을 해주었다. 그리고 흔쾌히 같이 사진도 찍어주었다.

본래대로라면 담임선생님이 그런 상황을 만류해야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반 아이들이 창현과 한 반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큰 힘을 얻었는지 담임선생님 또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창현과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함으로써 반 학생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졸업식은 끝나게 되었고, 촬영팀과 단독 인터뷰를 갖게 되었다.

“졸업을 하게 되니 어떤 기분입니까?”

리포터의 질문에 창현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홀가분하다는 느낌이랄까요? 해외 활동을 하고, 바쁘게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니 학교를 자주 못 가게 돼서 무척 아쉽더라고요.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학년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 것 같아 홀가분함보다는 아쉬움이 더 크네요.”

그러면서 리포터와 몇마디를 더 나눈 창현의 인터뷰가 모두 끝났다.

그리고는 교실을 막 벗어나려고 할 때, 창현에게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창현은 자신에게 다가온 사람을 보고는 반기는 표정을 지었다.

다름 아닌 창현에게 접근한 사람은 그가 속했던 반의 반장이었던 것이다.

이름은 홍지연으로, 아담한 체구와 귀여운 외모를 지니고 있는 여자였는데, 학교생활을 들쭉날쭉하게 한 창현과 3학년 동안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친구이기도 하였다.

“반장, 무슨 일이야?”

창현의 물음에 지연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연다.

“차, 창현아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괜찮을까?”

“뭔데? 어려운 게 아니면 들어줄게.”

같이 사진을 찍거나 그런 류의 부탁인 줄 알고 흔쾌히 승낙하는 창현.

하지만 지연의 부탁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창현의 교복 마이를 가리키며 말한 것이다.

“이 교복 마이 나 주면 안 돼?”

그 말에 순식간에 학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일제히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난 교복 단추!”

“와이셔츠도 좋아!”

어차피 오늘 이후로 입을 일이 없는 교복이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창현의 입장이었고, 학생들로서는 창현의 애장품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갑작스러운 학생들의 어택에 창현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을뿐이었다.

“에?”

결국 교복 마이를 비롯하여 조끼와 와이셔츠까지 빼앗긴 창현이었다.

다행히 세희가 준비한 티와 잠바로 인해 한겨울 반팔 차림을 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래서 세희 누나가 옷을 샀던 거구나.’

창현이 몰랐던 사실. 졸업식에는 교복을 테러 당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세희는 그걸 알고는 옷을 준비했던 것이다.

세희가 왜 대형 마트에서 티와 잠바를 준비했는지 깨달을 수 있던 창현이었다.

이것이 세희의 위대함(?)이었다.


결국 교복을 털린(?) 창현은 세희가 대형 마트에서 사준 옷을 입고 녹음실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미영, 주현과 한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집이 아닌 녹음실로 향한 것이다.

물론 이 사실을 세희에게 말하면 잔소리를 들을 것이 분명했기에 입도 뻥긋하지 않은 상태였다.

“졸업 축하하고.”

“네, 오늘 고마웠어요. 조심해서 가세요.”

세희는 졸업을 축하한다며 점심을 사겠다고 했지만 이미 약속이 있었기에 어렵사리 거절을 하고는 녹음실로 들어왔다.

“우선 졸업식이 끝났으니 연락은 해야겠지.”

현재 시간은 1시 10분.

약속시간이 2시라고 했지만 졸업식이 끝난 지금 연락을 해야 할 것 같았기에 창현은 핸드폰을 열고는 미영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한편, 창현의 연락을 받은 미영은 밝은 표정을 지은 채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응! 그럼 2시에 가면 되는 거지? 알았어. 응. 일찍 가도록 할게.”

미영이 통화를 끝내자 그녀 옆에 있던 주현이 옆으로 다가와 묻는다.

“언니, 창현이에요?”

“응. 창현이 졸업식 끝나고 녹음실로 왔다고 하는데?”

“그럼 얼른 가도록 해요.”

창현과 점심 약속으로 인해 두 소녀는 점심을 먹지 않은 상태였다.

다른 소녀들이 점심을 먹었지만 그녀들은 약속이 있다는 말을 하고는 점심을 먹지 않은 것이다.

2시라면 점심을 먹기에는 다소 늦은 시간이었지만 창현과 함께 하는 자리가 아닌가?

배는 고팠지만 표정만큼은 밝았다.

미영이 주현을 바라보며 주의를 주었다.

“주현아, 유의해야 할 점은 바로 표정관리야. 어떤 질문을 해도 내색을 하면 안 돼. 알았지?”

“네, 언니. 알겠어요.”

얼마 전 주현에게 본색(?)을 보였던 터라 미영의 말에 부동자세를 취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주현이었다. 가장 상대하기 버거워하는 인물 1위로 미영이 등극한 상태였다.

자신의 말에 충실히 따르는 주현의 모습에 미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주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럼 되는 거야. 우리 주현이 잘한다.”

“그런데 창현이가 돈까스를 좋아할까요?”

주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미영에게 물었다.

졸업을 한 창현에게 점심을 사주겠다고 한 그녀들이 찾은 곳은 돈까스 전문점이었다.

미영은 생선류를 싫어하였기에 회와 관련된 것은 일찌감치 제외된 상황이었고, 고기를 먹는 것도 왠지 성의가 없어 보였기에 찾다가 발견한 게 돈까스 전문점이었다.

창현이 가리는 음식이 없다는 걸 알았기에 돈까스 전문점을 고르기는 했지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왠지 모르게 돈까스 전문점도 성의가 없어 보였기에 그렇다.

걱정 섞인 주현의 말에 미영이 고개를 저으면서 말한다.

“우리는 용돈을 받아서 쓰니까 창현이도 이해해줄 거야.”

엄청난 양의 앨범을 팔아서 그야 말로 갑부인 창현과 달리 미영과 주현은 회사에서 용돈을 받아 쓰는 가난한 아이돌이었다.

그런 형편에 비싼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무척 어려웠다.

그저 창현이가 이해해주리라고 믿을 뿐.

미영의 말에 주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한다.

“이해해줄 거예요. 창현이는 배려심이 있으니까요.”

“일단 기본적인 준비는 했으니까 얼른 준비하고 가도록 하자.”

한시라도 빨리 창현을 만나고 싶었기에 주현을 재촉하는 미영이었다.

“알겠어요. 그럼 옷을 다 갈아입고 현관으로 갈게요.”

주현도 비슷한 마음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재빨리 자신의 방으로 향한다.

이미 그녀들은 자신들이 입을 옷을 정해놓은 상황이었다.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고 있던 것이다.

이미 기본 메이크업은 갖춘 상태. 한 듯 안한 듯 자연스러운 화장은 그야 말로 기본 중 기본이었고, 두 사람의 실력은 완숙의 경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은 그녀들이 옷을 입는데 걸린 시간은 채 십 분도 되지 않았다.

화려하지 않되 각자의 매력을 최대한 살리는 패션은 그녀들의 패션 감각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예쁘게 차려입은 두 소녀가 현관에 서 있자, TV를 보고 있던 유리가 두 소녀를 보고는 물었다.

“어디 가?”

“약속이 있어서 나가보려구.”

“저도 미영 언니랑 같이 약속이 있어서요.”

사전에 입을 맞춰놓았기에 미영과 주현은 자연스러운 얼굴로 대답한다. 제3자가 보면 한 치의 흔들림이 없는 완벽한 말이었다.

“그래? 그럼 늦지 않도록 해.”

워낙 자연스러웠던 탓일까.

눈치가 무척 빠른 유리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지 못한 듯 두 소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의심이 많은 유리를 속이는데 성공하자 두 소녀는 속으로 아싸!를 외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 늦지 않도록 할게.”

“일찍 올게요, 언니.”

그렇게 말한 두 사람이 숙소를 나섰다. 행여 유리가 냄새를 맡을까 싶어 행동이 빨라진 것이다.

후다닥 숙소를 나선 그녀들은 수연이 익힌 방법 중 하나인, 옥상을 통해 옆동으로 이동하여 밖으로 나가기 방법을 실행하였다. 소녀시대도 그간의 활동으로 인해 팬들이 많아지면서 이른 바 사생팬이라 분리는 극성팬들이 생겨났기에 그렇다.

성공적으로 밖을 나온 두 소녀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성공적이네요, 언니.”

“그럼! 아무리 의심이 많다 하더라도 마음만 굳게 먹으면 된다니까?”

모든 계획을 세운 미영은 자신의 계획이 성공하자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그것은 사실이었기에 주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영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운다.

주현이 자신을 칭찬해주자, 미영은 헤헤! 하고 웃음을 지으면서 어깨를 쭉 편다. 역시 아직까지는 띨파니의 잔재가 조금 남아 있었다. 저 모습을 보면 예전의 만만한 미영의 모습이 떠올랐으니 말이다.

‘현혹되면 안 돼. 저렇게 보이는 미영 언니의 뒤에는 꼬리가 아홉 개가 달려 있어.’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며 정신을 다잡는 주현이었다.

그렇게 아파트 단지를 나선 그녀들은 곧장 창현의 녹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숙소에서 녹음실까지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천천히 걸어가면 십 분 정도?

가벼운 잡담을 나누면서 가기에 적당한 거리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십 분 정도 걸었을까.

그녀들은 창현의 녹음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띵동!

녹음실 앞에 설치된 벨을 누르자 안에서 창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열리면서 창현이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그녀들을 맞이한다.

“어서 와요, 누나들. 오느라 고생했죠?”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사생팬들을 피하느라 고생을 제법 했으리라 생각하는 창현이었다.

“고생은 무슨! 한 걸음에 달려왔는 걸.”

“고생하지 않았어. 그나저나 졸업 축하해, 창현아.”

반갑게 자신들을 맞이해주자 미소를 짓는 미영과 주현이었다.

그런 두 소녀를 보면서 창현은 안으로 맞이하였다.

“날씨가 제법 추우니까 우선 몸부터 좀 녹여요.”

그렇게 말한 창현은 두 소녀를 소파로 안내하였고, 주스를 컵에 따라 건네주었다.

주스를 한 모금 마시면서 주현이 창현에게 물었다.

“졸업식이 조금 늦게 끝났네?”

그녀가 졸업식을 했을 때보다 훨씬 늦은 시간에 끝난 듯했다.

그에 창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촬영이 있어서요. 게다가 팬 분들도 와주셔서 조금 길어졌어요.”

“그렇구나…….”

주현이 졸업 할 때는 데뷔를 하지 않았을 때이기에 사람들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창현은 경우가 다르니, 늦게 끝나는 것도 이해가 갔다.

두 사람이 이야기 나누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일까.

표정을 살짝 찌푸리던 미영은 창현이 입고 있는 티를 보고는 눈을 빛내며 말한다.

“그런데 창현이 분홍색 티네? 잘 어울린다.”

웬만해서는 분홍색을 소화하기 힘든데 창현이 입으니 무척 잘 어울렸다.

잘 어울린다는 말에 창현은 어색한 표정을 짓더니 대답했다.

“아, 이거요? 매니저 누나가 사준 거예요.”

“세희 언니가 왜?”

미영이 의문을 표할 때, 주현이 창현의 차림을 보더니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창현이 바지는 교복 바진데? 상의는 분홍색 티고…….”

“아, 그게…….”

창현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교복 마이를 강탈당하고, 와이셔츠를 빼앗긴 사연이 떠올랐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웃음만 절로 나온다.

“졸업을 하면 교복을 주는 전통 같은 게 있나 봐요.”

그 말과 함께 이어진 창현의 설명.

미영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주현은 작년에 그러한 것들을 보았기에 고개를 나직이 끄덕인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많이 늦었네요. 늦은 점심이 되겠어요.”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덧 시간이 2시를 가리키자 창현이 말했다.

그에 미영도 시간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그럼 가도록 할까?”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띵동!

갑자기 벨이 울리는 녹음실.

순간 세 사람의 몸이 움찔한다.

“누구지?”

마땅히 찾아올 사람이 없었기에 창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문 앞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방문자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인터폰에 시선이 향할 때, 그의 눈에 익숙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

말을 하던 창현이 순간 멈칫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미 창현의 목소리가 건너편에 들린 상황이었다.

건너편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야 창현아!”

문밖에는… 악마와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일곱 명의 소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누나들이 왜 이곳에 있단 말인가? 약속은 분명 미영, 주현과만 잡았는데?

슬쩍 미영과 주현에게 시선을 옮기니 그녀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표정만 봐도 그녀들이 부른 것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는 건 그녀들 스스로가 알아내서 찾아왔다는 뜻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창현이 애쓰고 있을 때, 다시 한 번 띵동! 소리가 들리더니 밖에서 유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창현아, 문 좀 열어줘. 우리라니깐?”

“네? 네. 알았어요. 잠시만요.”

상념에 잠겨 있던 창현이 제 정신을 찾고는 문을 열어주었다.

문이 열리자 밖에 있던 소녀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오기 시작한다.

창현이 그녀들을 보면서 물음을 던졌다.

“누나들,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그 물음에 여기저기서 원망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수연이 창현을 보면서 말한다.

“창현이 너 오늘 졸업식이라며. 우린 그것도 몰랐는데, 왜 말도 안 해줬어.”

옆에 있던 순규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왠지 아침에 오랫동안 스타크래프트에 있더라니. 졸업식이 있었구나.”

태연도 뚱한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말도 안 해주고, 섭섭하네.”

그 외에도 소녀들의 입에서 원망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졸지에 궁지에 몰리게 된 창현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한다.

“하하! 그게 말이죠. 그러니까…….”

뭐라 변명을 하려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창현이 아무 말도 못하자 조용히 서 있던 유리가 말했다.

“뭐 괜찮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지금 창현이한테 따지는 것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거든. 암 따로 있고말고…….”

그 말과 함께 시선을 한곳으로 옮기는 유리였다.

그곳에는 미영과 주현이 자리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유리와 시선을 마주하자 움찔하며 뒤로 물러난다.

감히 멤버들에게 말을 하지 않고 창현을 독점하려고 했기에 켕기는 면이 있던 것이다.

진한 웃음을 지은 유리가 두 사람을 보며 말한다.

“설마 졸업식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너희들뿐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유리가 그때 상황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두 사람 사이에 동맹이 성립하고 있을 무렵, 방 밖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리의 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미영이와 주현이, 이것들이 감히…….”

감히 둘이서 창현을 독점하려고 하다니!

게다가 졸업식이 있다는 사실도 알리지 않은 채 그걸 구실 삼아 식사 약속을 잡다니!

이야기를 듣고 있는 입장에서 분통 터지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나도 그날 스케줄이 없는데!’

미영이와 주현이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분노, 그리고 조급함이 생겨났다.

그녀의 날카로운 관찰에 의하면 미영과 주현도 창현에게 어느 정도 마음이 있는 상황이었다.

두 사람이 있기에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형세를 취하고 있었지만 방금 전 미영의 모습을 본 유리는 방심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설마 미영이가 그런 지략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보이는 모습만 가지고 판단을 내리다가 일을 크게 그르칠 뻔했어.’

숨겨져 있던 미영의 본 모습을 발견한 유리는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 생각하였다.

모르고 있었다면 한 방 먹었을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유리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을 때, 설거지를 끝마친 태연이 유리를 불렀다.

“유리야 방문 앞에서 뭐해?”

“응? 아, 아니야. 난 잠시…….”

방문 앞에서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는 자신의 모습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유리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생각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선택 루트는 세 가지야. 이대로 묵인하는 것과 나 혼자서 참가하는 것, 그리고 멤버들에게 알리는 것.’

우선 묵인하는 것이 가장 먼저 탈락하였다.

자신이 보지 않으면 무슨 일이 날지 상상만 해도 불안했다.

미영의 전혀 의외의 모습을 본 상태였기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추측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평소라면 주현이 미영을 억제하는 것이 가능했을 테지만 능수능란하게 주현을 다루고, 창현의 졸업식을 알아낸 것이 마치 자신인 것처럼 만들어버리는 모습은 혀를 내두를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즉, 주현이 미영을 견제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칫 미영에게 단독 찬스를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이건 안 돼.’

묵인하는 것이 탈락하자 선택지는 두 가지만 남았다.

자신 혼자 참가하는 것과 바로 멤버들 전체를 데려가는 것.

‘어떻게 하지?’

두 방법 사이에서 유리는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깊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다름 아닌 멤버들 전체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혼자서 슬그머니 참가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 방법을 배제한 데에는 이유가 존재한다.

유리는 창현을 좋아하지만 노골적으로 좋아하는 티를 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여자는 모름지기 약간의 튕겨주는 맛(?)과 함께 당겨주는 맛이 함께 있어야 한다. 그런 만큼 일편단심 너밖에 없어! 라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었다.

게다가 아직 창현에게 마음을 드러낼 만큼 확고한 친분을 쌓아두지 못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주현처럼 학교 선후배 사이라는 확고한 연결고리도 없었고, 윤아처럼 데뷔 전에 뮤직비디오를 함께 촬영한 사이도 아니었다. 그리고 수연처럼 힘들 때 옆에 있어주면서 계기를 만든 것도 아니다..

연결 고리라고 해봤자 단체로 받던 보컬 트레이닝 뿐.

그랬기에 창현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물밑작업이 필요한데 그 명분이 약했다.

자신 혼자서 참가하게 되면 부득이하게 두 사람을 방해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미영과 주현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연히 자신도 창현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테고, 이후에 돌아오는 것은 두 사람의 견제일 것이다.

이것은 유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서서히 물밑작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창현의 마음속에 자신이 들어가는 것!

그 작업을 위해서는 주변의 방해를 받지 말아야 한다.

서서히, 창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을 마음속에 새겨 넣어야 하니 말이다.

‘기회일 수도 있지만 포기하자.’

미래를 위해 자신에게 온 기회를 저버리기로 결심한 유리였다.

그리곤 2월 4일, 창현의 졸업식 당일이 되자 아니나 다를까, 약속이 있다는 말과 함께 두 사람이 외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조용히 두 사람을 살피던 유리는 집밖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고는 멤버들을 모았다.

갑자기 자신들을 부르는 유리의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짓던 멤버들이었지만 급한 일이라는 말에 군말 없이 모여들었다.

“중요한 일이 아니기만 해봐. 가만 두지 않을 거야.”

낮잠을 자려던 수연은 졸린 눈을 한 채 유리에게 으르렁거렸다.

다른 멤버들도 각자 편안한 하루를 보내려던 차였기에 급하다는 말과 함께 자신들을 부른 유리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유리가 멤버들에게 입을 연다.

“미영이랑 주현이가 밖으로 나간 거 알지?”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방금 외출을 했으니 모를 리가 있겠는가.

막 순규와 함께 게임을 하려다가 붙잡혀온 태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유리에게 말한다.

“설마 그 말 하려고 부른 건 아니겠지?”

유리가 손을 들어 태연을 제지하며 입을 열었다.

“내 말 다 듣고 말해.”

“별 거 아니기만 해봐라.”

불만스러운 안색을 하고 있는 태연을 진압한 유리는 멤버들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미영이와 주현이가 나간 이유는 간단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야.”

“누군가라?”

누굴 만나러 간다라?

갑자기 호기심이 동하는 표정을 짓는 소녀들이었다. 자신들은 그냥 외출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유리는 무언가 알고 있는 기색이었다.

멤버들의 표정이 변하자 유리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갑자기 엉뚱한 화제를 꺼내든다.

“그걸 알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어.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알아?”

“…….”

순간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는 멤버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쉬는 날이라서 전날 늦게까지 놀다가 잠든 상태였기에 컴퓨터를 만질 수도 없었다.

유일하게 컴퓨터를 한 멤버는 순규뿐인데 아침에 일어나서 주구장창 스타크래프트 특훈만 하고 있었기에 다크 스타에 들어가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랬기에 창현의 졸업식에 대해 아는 멤버는 없었다.

“권유리, 장난치지 말고 어서 말해봐.”

호기심을 절묘하게 자극하는 유리의 화술에 수연이 표정을 찡그리며 말하라고 압박을 준다. 그에 다른 소녀들도 동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무도 모르는 듯하자 유리는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은 채 말한다.

“오늘은 2월 4일. 월요일이지.”

어이없는 유리의 말에 순간 침묵이 감돌다가 표정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수연이 날카로운 눈으로 유리를 노려보기 시작한다.

“…너 지금 말장난 하자는 거야?”

다른 소녀들의 눈도 곱지 않았다.

그러자 유리가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창현이의 졸업식이 있는 날이기도 하고.”

“……!”

이어진 유리의 말에 순간 경악 어린 표정을 짓는 소녀들이었다.

오늘이 2월 4일 월요일이다. 그렇다는 건 오늘이 창현이의 졸업식이란 이야기가 아닌가?

경악 어린 표정을 하고 있는 소녀들을 향해 유리가 빙긋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2월 4일 월요일인 오늘은 창현이의 졸업식입니다. 그리고 지금쯤 졸업식이 끝났을 테지요. 공교롭게도 미영이와 주현이는 만날 사람이 있다고 하네요. 자, 그러면 여기서 문제를 내겠습니다. 두 사람은 과연 누구를 만나러 갔을까요?”

더 생각할 것도 없다. 유리의 말을 듣는 순간 모든 정황은 그려졌으니 말이다.

몇몇 소녀들이 이를 뿌득 간다. 미영과 주현이 선수를 쳤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순식간에 분위기는 건드리면 폭발할 것처럼 일촉즉발의 위험한 상태로 치닫기 시작했다.

숨 막히는 침묵이 거실을 지배하는 가운데, 수연의 시선이 유리에게 향했다.

“…그래서 두 사람이 향한 곳은?”

거부 할 수 없는 강렬한 힘이 담긴 물음이었다.

그에 유리는 순간 수연의 포스에 압도된 느낌을 받으면서 입을 열었다.

“창현이의 녹음실이야. 2시까지 만나기로 하더라고.”

그 말에 소녀들이 일제히 시계를 바라보았다. 현재 시간은 1시 30분이다. 늦지 않았다.

태연이 주변을 둘러보면서 입을 열었다.

“모두 갈 거지?”

“가야지.”

분노하는 소녀와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녀들이 제각각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태연이 시계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모두 1시 50분까지 준비하도록. 창현이의 녹음실로 간다.”

준비할 시간은 불과 이십 분.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다.

태연의 말이 끝나자마자 소녀들은 순식간에 흩어져서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성공이야. 후훗!”

그 모습을 보면서 유리는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단체로 가게 되면 러블리한 분위기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으리라.

유리가 방으로 향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사실을 알고 있는 만큼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기등등한 얼굴을 한 소녀들이 창현의 녹음실에 들이닥친 것이다.


“설마 졸업식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너희들뿐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갑작스러운 유리의 말에 미영과 주현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는 것이 아닌가?

두 소녀가 뒤로 주춤 물러나자, 창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누나들 오늘 스케줄 있던 거 아니에요?”

“스케줄? 왜, 쟤들이 스케줄 있다고 한 거야, 설마?”

창현의 말에 도끼눈을 뜨며 말하는 수연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날카로운 그녀의 반응에 창현은 순간 움찔한다.

왜냐면 그렇게 말을 했었으니 말이다.

“에, 그러니까…….”

하지만 분위기로 보아 진실을 말하면 사단이 나도 단단히 날 것 같았기에 창현은 말하길 꺼려했다.

창현이 슬쩍 미영과 주현을 곁눈질하였다. 그러자 두 소녀는 창백하게 질린 채 멤버들과 조금이라도 멀어지기 위해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소녀들은 미영과 주현이 거짓말 한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일순간 막혀버린 모습만 보아도 상황을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태연이 앞으로 나서면서 미영과 주현에게 말했다.

“너희들의 죄를 너희가 알린 것이렷다.”

평상시와 다른 위압감을 발산하는 태연의 모습에 미영과 주현이 움츠러든다.

주현이 우물쭈물하면서 태연에게 입을 연다.

“언니들이 귀찮다고 하실까봐…….”

누가 들어도 명백한 핑계에 불과한 말.

그에 태연이 눈에 쌍심지를 키며 주현을 노려보았다.

“막내 이것이…….”

분위기가 험악해지려 하자 미영이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평소와 다른 얼굴을 한 채 태연에게 말한다.

“속인 건 미안해.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막내를 혼내는 건 좀 아니잖아. 창현이도 보고 있는데.”

미영이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걷어내려 하자 창현이 끼어들며 말한다.

“그러게요. 그러지 말고 같이 점심 먹으러 가요. 누나들 점심 드셨어요?”

“먹었어. 그리고 쟤네들만 점심 약속이 있다고 안 먹고 나온 거야.”

“하아!”

수영의 대꾸에 창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한숨을 내쉰다.

점심을 먹었다고 하니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던 것이다.

이대로 점심을 먹으러 간다고 하면 결국에는 먹지 않은 사람들만 움직여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대인원이 움직이는 건 쉽지 않다.

짝짝!

“잠시만 여기 집중해주세요.”

박수를 치며 시선을 집중시키는 창현.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소녀들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오늘 제 졸업식이잖아요? 험악한 분위기는 좋지 않아요. 그러지 말고 다 푸세요. 미영 누나랑 주현 누나가 나쁜 뜻으로 그랬을 리가 없잖아요.”

‘나쁜 뜻이 아니라 음흉한 속셈이었겠지!’

창현의 말에 몇몇 소녀들이 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낼 수 없었기에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앙금 갖지 마시고요. 좋게 해야죠. 나가서 점심 먹는 건 어려울 거 같으니 시켜먹도록 하고요. 누나들도 조금 드시는 게 어때요?”

“그렇게 할게.”

오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창현의 말에 뭐라 반박하겠는가.

아직 얼떨떨한 기색이었지만 고개를 나직이 끄덕이며 납득하는 소녀들이었다.

“그럼 뭘 시켜 먹을까요? 그러고 보니 출장 패밀리 레스토랑이 있던데 그거라도 먹을까요?”

무난하게 치킨이나 피자를 언급하려던 창현은 출장 패밀리 레스토랑을 떠올리고는 말한다.

그에 소녀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창현은 전화를 들어 음식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녹음실 주소를 말하고, 주문을 끝낸 창현에게 미영과 주현이 다가오면서 사과를 한다.

“창현아 미안해.”

“다음에 우리가 꼭 사도록 할게.”

두 사람의 사과에 창현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하지만 다음에는 꼭 사줘야 돼요. 알았죠?”

“으응.”

창현의 말에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미영과 주현이었다.

잠시 후, 음식이 배달되었고, 돈은 이미 인터넷으로 지불한 상태였기에, 밖에 놓아둔 음식을 들고 안에다가 펼치기 시작했다.

성대하게 차려지는 음식들을 보면서 소녀들은 일제히 감탄 어린 목소리를 냈다.

“우와아!”

“저도 처음 시켜보는데 제법 괜찮네요. 천천히 많이 먹도록 하세요.”

점심을 먹은 상태이긴 하지만 열두시쯤에 먹었다고 하니 지금쯤 많이 소화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창현이었다.

그의 말과 함께 소녀들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역시나, 소화가 되어서인지 음식을 거침없이 먹고 있었다.

음식을 먹던 도중 주현은 무언가가 생각난 듯 창현에게 물었다.

“창현아, 너 그러면 고등학교는 어디로 오는 거야?”

기대감에 찬 주현의 말이었다.

그에 음식을 먹던 윤아는 순간 움찔하고는 창현에게 시선을 집중한다.

윤아와 주현은 대영고에 같이 다니는 상황이다.

만약 창현이 대영고로 진학을 한다면 자신들과 함께 흐뭇한 스쿨 라이프를 즐기게 되는 것이다.

기대감에 찬 두 소녀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창현을 바라보는 일곱 소녀였다.

하지만 창현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모두의 기대를 깨버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창현이 입을 연 것이다.

“음! 곧 발표될 테지만 고등학교는 가지 않으려고요?”

“에? 왜?”

창현의 말에 주현은 충격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반드시 고등학교에 진학할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주현의 반응에 창현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말한다.

“학교를 가고 싶기는 하지만 힘들 것 같아서요. 스케줄이 넉넉하다고 하여도 곡을 만들 때는 학교생활을 못하거든요. 게다가 학교 친구 관계도 그렇고요. 제가 연예인이다 보니 묘하게 벽을 치고 대하는 모습이 싫어서요.”

“아…….”

창현의 말에 윤아와 주현은 나직이 감탄사를 흘리며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오로지 가수 생활을 위해서라면 학교는 상당한 걸림돌이 되고는 한다. 어떻게든 학생 본분에 충실해야 할 테지만 창현에게 학교는 의미가 없어졌다. 제대로 나가기도 힘들뿐만 아니라 가수로서 활동하는데 방해가 되었으니 말이다.

윤아와 주현은 창현의 말에 공감을 하고 있었다.

그녀들 또한 제법 잘 나가는 아이돌 가수인 만큼 학교에 가면 친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고는 한다. 그리고 순식간에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자신들과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느낌 때문일까? 아니면 연예인에 대한 동경 때문일까.

친근하게 대하지만 윤아와 주현은 자신에게 친구들이 묘하게 거리감을 두는 것을 느끼고는 한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이들이었기에 어울리기 힘들었던 것이다.

창현의 말에 공감을 하였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대신 검정고시를 봐야겠죠. 제가 검정고시 보고, 내년에 대학 들어가면 주현 누나랑 같은 동기생이 될 수 있는 거 알아요?”

“그러고 보니 그것도 그러네.”

그러면서 주현은 퍼뜩 자신과 창현이 함께 알콩달콩한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는 모습을 상상하였다. 상상만 해도 달콤한 상상이 아닐 수 없다.

“가족 이외에는 누나들에게 처음 말하는 것 같네요. 자랑은 아니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말아주세요. 아셨죠?”

“알았어. 비밀로 할게.”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소녀들이었다.

창현의 고등학교 진학 포기 소식은 무척 큰 여파를 끼칠 이슈거리임이 분명했다.

그런 만큼 각별한 입 조심이 요구되고 있었다.

그렇게 식사가 모두 끝나고, 소녀들은 숙소로 돌아가게 되었다.

창현은 직접 녹음실 밖으로 나와 배웅을 해주었다.

수영이 그런 창현에게 각인시키듯 말한다.

“창현아, 2월 10일은 내 생일이니까 잊으면 안 돼! 알았지?”

“알았어요. 선물 준비하면 되죠?”

“응응! 난 비싼 거 좋아하니까 최대한 고급스러운 걸로!”

입담이 좋은 수영의 넉살 덕분인지 한결 풀어진 채 헤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소녀들은 숙소 안으로 무사 귀환할 수 있었다.

숙소 안으로 들어가던 찰나, 싸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

수연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입가에 묘한 미소를 띤 수연이 미영과 주현을 번갈아 보더니 말한다.

“일이 무척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것 같아서 말이야. 자세한 상황을 들어보아야겠지?”

그 말에 다른 소녀들은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상황을 파악해낸다.

그리고는 미영과 주현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히익!”

아까 전에는 엄청난 용맹을 뽐내던 미영도 이번만큼은 역부족이었는지 털썩 주저앉으며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언니들에게 포박 당하던 주현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와룡파니도 얼음마녀… 아니, 얼음공주 수연에게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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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8화 +17 15.05.02 4,029 9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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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4화 +7 15.04.24 3,976 89 10쪽
40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3화 +6 15.04.22 4,424 82 10쪽
39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2화 +9 15.04.20 4,514 91 11쪽
38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1화 +10 15.04.17 7,373 95 10쪽
37 ▲▲▲▲▲시즌2 시작!▲▲▲▲▲ +5 15.04.17 5,421 65 1쪽
36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6장-108장 +8 15.04.16 6,409 106 230쪽
35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3장-105장 +1 15.04.16 4,242 82 314쪽
34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0장-102장 +2 15.04.16 4,411 68 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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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울리는 음악 40장-42장 +3 15.04.16 8,904 183 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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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마음을 울리는 음악 16장-18장 +5 15.04.16 11,536 242 163쪽
5 마음을 울리는 음악 13장-15장 +5 15.04.16 14,527 297 237쪽
4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장-12장 +8 15.04.16 13,727 352 171쪽
3 마음을 울리는 음악 7장-9장 +10 15.04.16 14,540 362 142쪽
2 마음을 울리는 음악 4장-6장 +11 15.04.16 16,820 421 120쪽
1 마음을 울리는 음악 프롤로그-3장 +47 15.04.16 29,872 545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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