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10화
“흠! 지영이도 나름대로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유종의 미를 거두고 며칠 뒤, 창현을 본 석규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면서 은근한 불만을 드러냈다.
“어차피 아버지도 1위를 줄 생각은 없으셨잖아요. 실력도 그렇고 아직 감정을 담아내는 능력도 다듬어야 해요.”
“그래도 잘하지 않았느냐.”
“잘했어도 우승 정도는 아니었어요. 설사 우승할 만큼 실력을 보였어도 우승 시켜줬으면 이래저래 말이 나왔을 걸요? 가족 회사에서 우승을 몰아주느니 뭐니 하는 걸로요.”
“누가 감히 그런 말을 한다고!”
“말이 그렇다는 거죠. 아버지가 더 잘 아시면서 그러세요?”
이래서 딸 바보가 무섭다는 말이 나오는 듯했다. 친딸이 아님에도 이미 친딸 이상으로 아껴주는 석규의 존재는 가끔씩 창현으로 하여금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자신의 태도를 알아차린 석규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웃어보였다.
“농담으로 한 말이다. 하지만 지영이가 우승을 해도 손색이 없다는 말은 진짜다. 그동안 정말 많이 노력했어.”
“그건 저도 느꼈어요. 마음고생이 심했을 텐데 잘 견뎌내고 성장해서 기분이 좋네요. 앞으로 좋은 가수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야지. 예전에는 반대하는 듯하더니 이제 너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구나.”
“그만한 실력을 보여줬으니까요.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은 것처럼 보이지만요.”
창현의 눈에 아직 지영은 고칠 것 투성이였다. 그럼에도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었기에 긍정적인 면이 많았다.
“뭐,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냐만은 동생이라고 특히 더 엄하게 굴지 마라. 그러다가 가족간에 의가 상할 수 있으니.”
“제 동생인 걸 감수하려면 그만큼 더 견뎌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하지만 제 잣대가 너무 엄격하다는 걸 가끔씩 깨닫고는 해요. 너무 세게 말하지는 않을게요.”
“그러면 됐다. 오디션은 예상 이상으로 성과를 거뒀으니 이제 남은 건 내 사업적인 역량이겠지. 그나저나 널 부른 건 예능 출연 문제 때문이다.”
“이번 앨범 활동에서 예능 출연은 가급적 줄이겠다고 말했는데요?”
철저한 감정 몰입을 바탕으로 노래를 하는 만큼 예능 출연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걸 기억했다. 그걸 고집하는 석규의 태도가 마음에 들 리 없었다.
“알고 있다. 하지만 별 수 있느냐, 방송국에서 아주 단단히 준비해왔는데. 아직 우리가 방송국에 뻗댈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그래도요. 저는 이미 제 입장을 정확하게 전달했다고 생각해요. 미국에서 러브콜을 받는 제가 언제까지 국내 방송국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여야겠어요? 요즘 6집 앨범 압박까지 주셔서 쉽지 않아요.”
“으음!”
창현이 이렇게 완고하게 나온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석규는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서는 자신이 너무 방송국과 관계를 갑과 을로 형성해놓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급적 좋게 가고 싶다만, 네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나.”
“싫다는 게 아니라 이번 앨범 활동에서 최대한 줄이고자 해요. 그러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조절을 해주세요.”
“그 말은 조금 시간이 흐르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냐?”
“그건 왜요?”
“단칼에 거절하는 것과 약간의 여지를 두는 건 차이가 존재해서 그렇다.”
“나중에야 뭐, 유리 누나랑 순규 누나가 하는 그 청춘불패인가 하는 예능 출연도 긍정적으로 고려해보겠다고 했으니까요.”
창현은 한 번쯤 해볼 수도 있다는 뉘앙스로 말했지만 불행하게도 상대는 석규였다. 입 꼬리를 말아 올린 석규가 사악한 웃음을 짓더니, 그가 남긴 말의 꼬리를 붙잡고 흔들었다.
“잘 됐구나. 안 그래도 징징거리던 게 K방송국이었다. 그리고 네가 수락하면 <청춘불패>에 출연시키려고 했지. 마침 그곳에 소녀시대 아이들이 있으니 출연하는 건 어렵지 않겠구나.”
“어…… 예?”
“그럼 시기를 보아 출연하는 방향으로 굳혀보자. 여태까지 보여준 모습이 있으니 단번에 바꾸는 것보다 조금씩 바꾸는 게 낫겠지.”
“에휴! 알았어요, 출연하는 게 싫은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제 상태를 봐서 해주세요. 요즘 이래저래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아요.”
“알았다, 충분히 주의하마.”
창현이 싫어하는 걸 억지로 진행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방금 전처럼 여지를 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단칼에 잘라버리려는 그의 성향을 조금이라도 고쳐주기 위함이다.
지금은 뛰어난 실력으로 모두가 우러러보고 있지만 인기란 것은 평생 가는 게 아니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이다.
인기라는 든든한 우군이 사라졌을 때, 주변에 적이 산재하면 영원히 재기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그런 만큼 두루뭉술하게 굴어 최대한 많은 아군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얼굴에 싫은 기색이 역력하지만 하나씩 깨달아가야지.’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창현에게 많은 걸 요구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처럼 하나씩 발전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만족이었으니까.
***
오디션에서 준우승을 거둔 지영은 한동안 주변에서 밀려드는 축하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학교에서는 일약 스타가 되었으며, 여러 방송에 나가서 노래를 불러야 했다.
그 중 상당 부분은 현에 대한 질문을 차지했지만 지금은 지영이란 가수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니 그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리고 오늘은 오랜만에 아는 언니를 만나기로 한 날이다.
“지영아, 준우승 축하해!”
“고마워요, 언니.”
“뭐 먹을래? 여기 다 맛있어.”
“그냥 간단하게 딸기 스무디로 할게요.”
“역시 너도 핑크 좋아하는구나? 나도 좋아해!”
지영이 오늘 만나는 언니의 정체는 다름 아닌 미영이었다.
오디션에서 안타깝게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이전부터 꾸준히 문자를 통해 응원해준 것이 바로 그녀였다.
늘 혼자라는 생각을 하면서 외로워하던 지영에게 미영의 문자는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그래서 이전까지 알고 지내는 사이였지만 급속도로 친해질 수 있었고, 모처럼 난 휴일에 미영과 만남을 가지게 된 것이다.
“요즘 많이 바쁘지?”
“네, 제 인생이 이렇게 바뀔 줄 몰랐어요. 그래봤자 소녀시대 티파니보다 바쁘겠어요?”
“많이 바쁘긴 해도 뿌듯해.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여태까지 노력해왔으니까.”
“언니들을 보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그동안 내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인기를 바란 게 아닐까, 오빠 말처럼 철없이 너무 나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그렇지 않아. 지영이는 잘했는걸.”
“실력과 별개로 깨닫는 게 많아요. 그래서 언니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요. 문자로 조언해줬을 때 많은 힘이 되었어요.”
“그랬다니 다행이다, 헤헤!”
순진무구한 미영의 미소에 지영도 덩달아 웃음을 지었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세상만사 근심이 모두 씻겨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딸기 스무디가 나오고, 둘은 사소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정신없이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귀걸이나 팔찌, 목걸이 등은 물론 패션으로 화제가 옮겨가면서 두 시간여를 훌쩍 보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우리 저녁 먹을까? 뭐 먹고 싶어?”
“좋아요! 그런데 언니는 한창 활동 중이어서 음식 가려야되지 않아요?”
“으응? 괘, 괜찮아. 한 끼쯤은 먹어도 운동하면 금방 빠져.”
“그래요? 괜히 폐가 될 것 같은데.”
“아니야! 난 괜찮으니까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그럼 저는 파스타요!”
“나도 파스타 좋아해.”
금세 의기투합한 둘은 인근 파스타 전문점으로 가서 맛있게 흡입했다.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지영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지만 반대로 자신의 배를 바라보는 미영의 얼굴에는 절망이 드리워 있었다.
“히잉, 이거 어떻게 하지? 살찌면 바로 티가 나는데…….”
“언니, 괜찮아요?”
“괜찮을 줄 알았는데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그러니까 주의를 해야죠.”
한 그릇을 먹은 지영과 달리 미영은 파스타를 먹으면서 화덕 피자와 탄산음료를 마음껏 즐긴 상태였다. 그렇게 먹어놓고 날씬하길 원하면 이보다 더 도둑은 없을 것이다.
“소화도 시킬 겸 좀 걸어요. 그럼 괜찮아질 거예요.”
“그렇지? 그럴 거야. 그래야만 해.”
“언니는 너무 천진난만해서 문제에요. 물론 그 점이 좋긴 하지만.”
울상이었다가 금세 웃고, 변화무쌍한 표정에 지영은 저도 모르게 외로움을 잊고 웃을 수 있었다.
뭔가 한없이 만만하면서 기댈 수 있을 것 같은 대상이랄까.
지영의 눈에 보인 미영은 변화무쌍한 존재였다.
“요즘 윤아랑 연락은 자주해?”
“아니요.”
창현을 전폭적으로 밀어주기로 했지만 서로 스케줄이 바빠지면서 연락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연락을 기다리지 말고 한 번쯤 해봐.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기존의 친구랑 소원해질 수밖에 없거든. 같은 업계에 있는 사람들하고 미리 친분을 다지는 게 좋아.”
“그래요?”
“응, 기왕이면 모임도 만들어서 참여도 해보고. 이리저리 경험하는 게 좋아. 창현이는 이런 거 잘 안하지?”
“오빠는 음악에 미쳐 있다고 보면 돼요. 가끔 걱정도 돼요. 특히 여자 관계가요.”
은근한 어조로 말을 했지만 미영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건 지영이가 잘 이끌어줘야 돼. 지금은 정신없이 일해서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나중에 크게 탈이 날지도 몰라.”
“명심할게요.”
자신도 느껴보았던 지독한 외로움을 창현도 겪게 할 수 없었다.
주먹을 불끈 움켜쥐며 대답한 지영의 눈은 어느새 미영을 향한 신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여전히 순진한 미소가 가득했다.
과연 순진할지는 모르겠지만.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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