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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번 님의 서재입니다.

마음을 울리는 음악

웹소설 > 작가연재 > 팬픽·패러디, 현대판타지

김현우
작품등록일 :
2015.04.16 13:27
최근연재일 :
2015.06.01 17:02
연재수 :
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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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1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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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83쪽

마음을 울리는 음악 프롤로그-3장

DUMMY

프롤로그


울고 웃고 슬프고 기쁘게 만들어주고 싶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

그것을 만들고 싶다.

내 모든 것을 받쳐서라도.




제1장 소년 작곡가




“어서 오세요, 아버지.”

“오냐.”

인사를 받은 사십대 초반의 중년인은 넥타이를 풀며 소파에 앉았다.

얼굴에 피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아버지의 모습에 소년이 조심스레 다가가며 물었다.

“요즘 일이 잘 안 풀리시나 봐요?”

“그래, 요즘 곡 구하기가 힘들구나. 후우!”

소년의 아버지, 강석규는 아들 창현의 물음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강석규는 자그마한 규모의 엔터테인먼트 사장이다.

대형 기획사에서 오랜 시간 영업을 뛴 탓에 영업망은 넓었지만 자금이 부족하여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신인 배우나 가수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자금을 필요로 했고, 석규는 능력은 있지만 자금이 부족하여 뛰어난 신인들을 키워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신인들이야 말로 회사의 근간이 되는 기본 바탕임에도 말이다.

투자를 받아보려고 해도 아무런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그에게 돈을 내어주는 곳은 없었다.

별 수 없이 신인을 그룹이 아닌 솔로로 키우려고 했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가수는 단순히 가창력이 뛰어나다고 하여 성공할 만큼 연예계는 녹록치 않았다. 가창력을 돋보이게 만들어줄 곡과 사람들의 호감을 살 수 있는 외모가 필요로 했다.

괜찮은 외모와 가창력을 겸비한 가수를 캐스팅할 수 있었지만 정작 곡이 없는 상태였다.

마음 같아서는 돈을 빌려서라도 곡을 가지고 오고 싶었지만 이미 여러 차례 대출을 하면서 대부분의 재산을 탕진한 석규에게 남은 것이라곤 아들 창현과 단둘이 살고 있는 이 아파트밖에 남지 않았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며 잠도 못 이루고 뛰어다녔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창현은 석규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버지, 제게 괜찮은 곡이 있는데.”

석규는 정신이 번쩍 깨는 걸 느끼곤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괜찮은 곡이라고?”

그의 시선이 창현에게 고정되었다.

이제 중학교 1학년에 불과한 아들이지만 다른 아이들과 달리 무척 의젓하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었음에도 삐뚤어지지 않고, 자신을 배려하면서 항상 학교에서도 성적이 뛰어난, 입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효자인 아들이었다.

하지만 평소 보여주는 모습과 연예계에 통용될 만한 곡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엄연한 차이가 존재했다.

창현은 그런 강석규의 모습에 살짝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방안에 들어가서 기타를 가지고 나왔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와 기타 등 저쪽 계열에 종사하는 아버지 덕택에 여러 가지 악기 다루는 법을 배워온 창현이었다.

강석규는 창현이 기타를 들고 오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괜찮은 곡이란 게 설마?”

창현이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이래 보여도 아버지가 어렸을 적 나름대로 교육을 시키셨잖아요. 그 뒤로 나름대로 공부를 해서 어느 정도 작곡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

아들이 다방면에서 뛰어나다는 걸 알았기에 창현의 말에 강석규는 흥미를 보였다.

그런 강석규의 모습에 창현이 기타를 세팅하면서 물었다.

“우선 그 가수가 가장 잘하는 장르가 뭐죠?”

“아무래도 발라드겠지. 특히 고음 처리를 잘한단다.”

“음! 슬픈 쪽으로요? 아니면 밝은 쪽으로요?”

“슬픈 쪽이지, 아무래도.”

창현은 강석규에게 데뷔할 가수에 대한 몇가지 특징을 캐묻더니 기타를 몇 번 튕겨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이게 괜찮겠네요. 일단 제가 음부터 연주할 테니 들어주세요.”

디리리링.

맑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와 함께 창현의 손에서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음을 울리는 곡이었다.

빠르고 긴박하게 흘러나오는 템포는 마치 연인의 갈등을 묘사하는 듯하였고, 잔잔하면서 음울하게 젖어드는 음율은 연인과 헤어진 남자의 비극적인 모습을 그려내는 듯하였다.

음의 분위기와 모습을 살려주는 가사도 없이 말이다.

감탄에 감탄이 이어지는 사이 창현의 연주는 끝이 났다.

곡을 연주하며 그것을 음미하듯 눈을 감았던 창현이 눈을 뜨며 말했다.

“아직 부족하지만 여기에 여러 소리 효과를 넣어주고, 멋진 가사를 입히면 꽤 좋은 곡이 나올 거에요.”

짝짝!

강석규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이렇게 뛰어난 곡을 만든 아들의 자랑스러웠다.

“정말 좋은 곡이었다. 내 아들이 이렇게 뛰어난 곡을 작곡하다니! 창현아, 정말 네가 작곡한 게 맞느냐?”

직접 들은 사실이고, 눈앞에서 연주하는 걸 직접 들었지만 강석규는 아직도 믿기 힘들었다.

이게 14살 소년이 만든 곡이라니!

아버지의 칭찬에 창현은 약간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칭찬해주시니 감사해요.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한 걸요.”

“혹시 가사도 네가 작사한 게 있냐?”

이쪽 세계에서 여러 작곡가를 만나본 탓에 강석규는 창현이 이 곡에 대한 가사도 썼을까 싶어 물었다.

창현이 쑥스럽게 웃었다.

“부족하지만요.”

“한 번 들어보고 싶구나.”

“알겠어요.”

창현은 이 곡의 가사와 제목을 떠올리며 서서히 입을 열었다.//


이 노래의 제목은 만남과 이별이었다.

만남이 있으면 언젠가 이별이 있을 것 같다는 주제의 노래.

그녀와의 만남 부분에서는 설레이는 감정을 담아서, 그녀와의 이별부분에서는 저릿한 감정을 담아서.

열네 살의 소년이 작사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풍부한 감정이 담겨 목소리로 흘러나왔다.

“…….”

강석규는 아들의 노래에 입을 열지 못했다.

그만큼 창현의 노래에 압도당한 것이다.

비록 영세 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 바닥에서 오랫동안 여러 사람들을 만나온 그였다.

당연히 수많은 가수들을 만나보았고, 그중에 실력파 가수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는 몇 되지 않았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가창력.

강석규는 노래가 끝나고 자신을 멀뚱히 쳐다보는 창현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볼을 잡아당겼다.

창현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행동에 인상을 찌푸렸다.

“뭐, 뭐하는 거에요, 아버지?”

“네 녀석이 내 아들인지 의심이 들어서 그렇다. 하하! 실력파 신인을 발굴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내가 등 밑의 보석을 몰라볼 줄이야.”

“하하! 아버지?”

“데뷔하자! 너라면 우리나라 최고의 가수가 될 수 있어!”

강석규는 흥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창현의 반응은 의외였다.

“전 지금 가수가 되기 싫어요.”

예상과 다른 아들의 반응에 강석규가 실망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째서? 너라면 분명 최고의 가수가…….”

“전 아직 중학생이잖아요. 유명해지면 학교 생활이나 지금의 평온이 깨질 것 같아요.”

창현의 말에 강석규는 머리가 차갑게 식는 걸 느꼈다. 생각해보니 잘나가는 가수는 사생활마저도 철저하게 통제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게다가 창현은 자신의 아들이 아닌가?

마음 같아서는 당장 소정의 훈련 기간을 거친 뒤 가수로 데뷔시키고 싶었지만 아들의 의견도 존중해줘야 했다.

“그래?”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 마음이었다. 더군다나 방금 전 노래를 들은 이상, 강석규는 만남과 이별이란 곡을 누구도 창현보다 잘 소화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강석규가 말했다.

“그럼 말이다, 창현아.”

무슨 할 말이 있는 듯한 강석규.

“네, 말씀하세요, 아버지.”

“결국 네가 꺼려하는 것은 네 얼굴이 알려지고 사생활에 불편을 겪는 것 아니겠느냐? 네 음악과 네 노래는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지?”

“그거야…….”

창현은 딱히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사실 자신이 음악을 만들 때마다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었던가?

남들보다 잘난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당연한 심리였다.

창현도 몇 번이나 그런 충동에 시달려왔다.

그 점을 정확하게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그런 창현의 모습에 강석규가 미소를 지었다.

‘역시.’

아들의 성격과 작곡가의 특징, 그리고 수십 년의 연륜은 무시할 것이 못됐다.

강석규는 쐐기를 박았다.

“귀찮게 하지 않는다면 너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은데, 어떠냐? 좋은 경험이 될 게 분명하다.”

창현은 결정을 내렸다. 아버지가 이렇게 밑바탕을 깔아주니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해볼게요.”

강석규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잘생각했다. 너라면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거야.”

“후우!”

뭔가 당했다는 느낌과 함께 한편으로는 후련한 느낌이 드는 창현이었다.


아버지와 긴 이야기를 나눈 창현은 이름없는 가수로서 음반을 내기로 합의하였다.

때때로 창현의 몇 가지 곡을 들어본 강석규는 대박의 필이 왔다면서 이틀간 고된 업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옷을 차려입고 출근을 하였다. 창현의 음반 발매를 위해 지금이라도 발벗고 뛰어나서는 것이다.

아버지가 나가자 홀로 남은 창현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기타를 내려놓으며 웃음을 지었다.

“아버지가 감탄할 정도라니. 확실하게 성과가 있었나보네.”

창현은 한쪽에 놓인 금을 보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평범한 학생이던 자신이 새롭게 태어났던 그 사건을 말이다.

본래 창현은 강석규의 별다른 기대를 받지 못할 만큼 음악에 대한 평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악기를 다루는 것과 간단한 음악을 작곡할 수 있는 수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일류 작곡가가 꿈이던 창현의 꿈을 이루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부로 드러난 재능일 뿐. 창현은 마음 속에서 누구보다 아름다운 멜로디를 작곡할 수 있는, 감춰진 재능이 뛰어난 소년이었다.

“마음 속에서는 모든 걸 할 수 있어. 하지만 그걸 직접 할 수 없는 난…….”

자괴감에 빠졌었다.

왜 신은 나에게 재능을 주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건 내 착각에 불과했지. 마음 속에서의 작곡. 그게 내 재능이었어.”

마치 무협 소설 속 기연과도 같은 일이었다.

오랫동안 배우던 금이 망가지고 새 것을 사기 위해 가게 곳곳을 방문하던 도중, 창현은 언제 제작되었을지 모를 낡은 금을 사게 되었다.

온통 먼지로 뒤덮이고 만지면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한 금은 문화재 가치로 취급되지도 못한 채 언제 골동품 가게에 보내질지 모르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창현은 그 금을 본 순간 강렬한 끌림을 느꼈다. 그리고 한치의 망설임없이 그것을 구입했다.

그리고… 자신의 느낌은 정확했다.

이곳저곳 금을 깨끗하게 만들다가 돌연 한쪽에 균열이 일어나며 한권의 책이 나왔던 것이다.

음향총서.

고려시대 최지평이라 불린 사람이 쓴 책으로, 역사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본인 스스로 대단한 음악가라고 하였다.

창현은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은 채 최지평의 음악 강론에 대하여 읽어나갔다.

그는 자신이 연주하는 장르를 말하는 것이 아닌, 원론적인 측면에서 음악의 모든 것을 풀어나갔다.

그것을 읽은 창현은 막막했던 어둠에서 개안을 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자신은 여태껏 기교로만 음악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최지평은 이렇게 말했다.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는 음악은 잠깐의 여운이 남지만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음악은 평생의 여운을 가진다고 말이다.

음향총서에는 음악의 원론적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식으로 음악을 추구해야 한다던가, 어떤 식으로 음악을 해야 마음이 담기는지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적혀있었다.

무엇보다 음향총서에서 창현을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무협 소설에 나오는 내공심법 비슷한 명상법이었다.

이 명상법은 마음과 정신을 맑게 해주며, 무엇보다 무협 소설에 나오는 내공을 조금이나마 쌓게 해주는 공능을 가지고 있었다.

음악을 하면서 몽환적이고 판타지적인 요소를 좋아하여 종종 판타지 소설을 즐겨보곤 했던 터라 창현은 금방 명상법을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몸속에 쌓이는 내공은 워낙 미미하였고, 무협 소설처럼 신체를 강화하거나 그럴 수 있는 게 아니어서 그저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이상은 아니었다.

음향총서의 덕택에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게 된 창현은 기뻐하며 자신의 마음이 담긴 음악을 작곡해나갔다.

그렇게 일 년의 시간이 흘렀고, 오늘에 와서야 아버지에게 자신의 곡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건 기회야. 그동안 내가 해온 것을 선보일 수 있는. 첫술에 배부를 수 없겠지만 최선을 다해보자.”

창현은 두 손을 불끈 쥐었다.


“싱글 앨범으로 할게요. 노래도 다른 걸로 하고요.”

다음 날, 창현은 아버지가 집에 오자 꺼낸 말이다.

“음! 싱글 앨범은 동의한다만 왜 노래를 바꾸려는 것이냐?”

창현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강석규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강석규는 갑자기 노래를 바꾸자는 창현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제 들었던 창현의 노래에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지 않았던가?

분명히 성공할 거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어제 회사로 달려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한 구상을 마쳤는데 창현의 말이 바뀐 것이다.

강석규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왜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제 너의 노래를 듣고 전반적인 기획을 구상한 상태다. 확실한 이유를 들려다오.”

“제 나이가 아직 어리잖아요. 그래서 슬픈 노래보다는 밝고 뭔가 폭발적인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일단 들어보시고 결정해주세요.”

이왕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확실하게 해내겠다고 다짐한 창현이었다.

손에 들린 기타를 바로잡으며, 강석규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곧장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제 부른 노래는 솔직히 어린 창현이 부르기 어려운 노래였다. 아직 열네 살인 그에게 있어 이별이란 단어는 친숙한 단어가 아니었기에.

대신 창현은 밝으면서도 뭔가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폭발적인 노래를 선보였다.

Go&Stop

앞만 바라보는 모습과 역경과 시련에 가로막혀 멈춘 듯한 느낌을 주는 듯한 노래.

그걸 들으며 강석규는 왜 창현이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어제 노래를 들으며 이따금 느껴졌던 미숙함이 완벽하게 채워진 걸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잔잔하다가 점점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는 가창력은 강석규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였다.

짝짝짝!

“네가 왜 그 말을 했는지 알 수 있겠다. 좋다, 네 말대로 하겠다.”

“고마워요, 아버지.”

창현은 빙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미 완성된 창현의 노래가 앨범으로 제작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싱글 앨범 <Go&Stop>은 거침없이 나아가는 느낌과 역경과 시련에 가로막혀 좌절하는 느낌. 그리고 폭발적인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음악이었다.

음악 자체 구조는 복잡하지 않았지만 기존의 틀과 달리하는 <Go&Stop>은 음악 안에 기승전결이 뚜렷하게 느껴졌고, 노래가 이어지는 3분30초 동안 성장해가는 소년의 모습이 연대기처럼 펼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 <Go&Stop>의 반응은 밋밋했다. 강석규가 불철주야 뛰어다니며 영업에 매진했다지만 아직 영세 엔터테인먼트에 불과했기에 <Go&Stop>이 폭 넓은 곳에 퍼지게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강석규와 인연이 있는 PD의 도움을 통하여 시청률이 30%에 달하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Go&Stop>이 나올 수 있었고, 잠들어있던 삶의 에너지를 자극하는 노래에 많은 사람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처음 데뷔했다는 점과 얼굴없는 가수란 점에서 많이 마이너스를 먹고 들어갔지만 음악을 듣는 대중들은 적어도 실력파 가수들을 구분할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Go&Stop>을 들으면 들을수록 노래에 매료되는 걸 느꼈고, 그것은 곧장 음반 판매로 이어졌다.

강석규가 이끄는 AA엔터테인먼트는 창현의 바람에 따라 지어진 예명 현玄의 싱글 앨범 <Go&Stop>을 삼만 개를 제작한 상태였다.

처음 AA엔터테인먼트 직원들은 3만장이나 제작하는 것에 반대하는 모습이었지만 창현의 실력을 믿었기에 회사의 사활을 걸고 음반 제작을 하였다. 그리고 <Go&Stop>이 알려지게 되자 삽시간에 3만장이 다 팔리게 되고, 당시 한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많은 57만장의 판매를 이룩할 수 있게 되었다.

신인가수의 첫 노래답지 않게 엄청난 판매를 보인 것이다.

사람들은 신인가수 현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보였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가수들의 고음처리를 보고 그 가수의 가창력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그들이 보기에 <Go&Stop>의 클라이막스 부분은 경이에 가까웠다. 매끄럽게 올라가는 폭발적인 가창력은 일상생활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뻥 뚫어주었기 때문이다.

한 유명 프로그램에서는 프로작곡가가 출현하여 현이 부른 <Go&Stop>의 클라이막스 부분은 그 어렵다는 쉬즈곤보다 높은 옥타브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여 관심은 더욱 증폭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가수 현이 이십대 중반의 엄청난 실력파지만 얼굴이 못생겨서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고 하기도 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가수 현이 십대의 천재적인 실력을 지닌 소년이라고 하였다.

그런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AA엔터테인먼트는 자금 면에서 한숨을 돌릴 수 있었고, 가수 ‘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사람들의 관심 속에 작은 소년이었던 창현은 서서히 자신의 힘을 자각하고 있었다.

마음을 울리는 음악에 대한 것을 말이다.




제2장 만남의 시작




가수 현의 음반이 발매되고 세 달이 흘러 창현의 나이는 열다섯이 되었다.

<Go&Stop>의 눈부신 음반 판매에 석규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창현이는 자신의 아들이 아니던가?

덕분에 별도의 계약없이 음반 판매를 할 수 있었고, 거기서 나오는 이득은 모두 AA엔터테인먼트의 이득이었다.

전년도 하반기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손꼽힐 정도로 많은 양의 음반을 판매하였고, 새해가 된 지금도 음반은 꾸준한 판매를 보이고 있었다.

그와 함께 가수 현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현의 작곡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었다.

단조롭지만 적절한 음의 분배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현의 데뷔곡 <Go&Stop>은 기존의 음악과 상당히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단 한 곡에 불과했지만 간간히 AA엔터테인먼트에 작곡 의뢰가 올 정도로 현에 대한 관심도는 높았다.

석규가 오랜만에 집에 방문하여 창현을 찾았다.

“오셨어요, 아버지. 요즘 많이 바쁘신가봐요.”

복덩어리 아들의 모습을 보자 석규의 입에서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하! 이게 다 잘난 아들 덕분 아니겠느냐? 그동안 잘 지냈느냐?”

석규는 아들인 창현이 미안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로 했다. 창현이 어릴 적 어머니를 잃고 자신은 그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일에 몰두하여 창현을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그럼에도 아들은 대견하게 잘 자라주었다. 밖에서 머물 때가 많은 자신을 걱정하지 않게 스스로 잘 행동할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인정받는 가수가 되지 않았는가?

석규로서는 그저 아들이 흐뭇할 뿐이다.

창현은 석규를 보며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때는 인터넷의 시대. 비록 음향총서와 작곡에 빠져살고 있다지만 자신의 노래에 대한 반응은 간간히 체크하는 창현이었기에 아버지의 얼굴에 왜 활짝 펴졌는지 알 수 있었다.

“네 덕에 회사가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회사의 사활을 걸고 추진하던 프로젝트도 시행할 수 있게 되었어.”

석규는 창현에게 통장과 카드를 꺼내곤 내밀었다.

“네가 판 음반의 대가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적지만 나중에 회사가 호전되면 더 많이 주겠다. 금액이 적어서 미안하다.”

젊을 적부터 연예계의 안좋은 면을 많이 봐온 석규는 좀 더 연예인들이 유기적으로 활동할 수 있고, 서로에게 좋은 방향으로 계약할 수 있게 하고자 노력해왔다.

창현도 사적으로는 자신의 아들이지만 공적인 면에서 자신의 회사에 소속된(?) 귀중한 인재였다.

그런 만큼 확실하게 보수를 지급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AA엔터테인먼트의 자금력이 너무 약했다.

“이건…….”

통장을 펼쳐본 창현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Go&Stop>싱글 앨범 판매 수익을 창현에게 지급한 것이다.

“네가 잘 되다보니 그동안 구상해온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가동 시키게 되었다. 미안하다.”

창현은 미안한 표정을 짓는 석규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이 정도면 저한테 많은 거죠. 중학생인데 이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고요.”

그렇게 말했지만 창현은 아버지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노력한 만큼 되돌아오는 것. 그것이야 말로 석규의 좌우명이었고, 그의 회사가 내세우는 가장 큰 장점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있으니 다음에 여유로워지면 그때 부탁드릴게요. 모자란 만큼 회사 주식 좀 떼어주시던가요.”

마지막에 농담스럽게 변하는 창현의 말에 석규가 웃음을 지었다.

“하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건 그렇게 하도록 하고, 회사 사장의 입장으로 부탁이 있다, 창현아.”

웃음을 짓던 석규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창현도 자세를 바로하며 석규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번에 우리 회사에서 오랜 투자 끝에 마침내 걸 그룹 하나를 조직하기로 했다. 하지만 걸 그룹에게 있어 비주얼도 중요하지만 좋은 곡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해서 그걸 너에게 부탁하려고 하는데…….”

“제게 곡을요?”

의외의 표정을 짓는 창현은 고개를 저었다.

“물론 저도 아버지에게 도움을 드리고는 싶지만… 전 아직 검증이 되지 않은 풋내기인데…….”

스스로를 풋내기라 칭하는 것이 조금 그랬지만 창현은 아직도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여겼다. 음향총서를 습득하고 수련을 함으로써 음악에 마음을 담을 수 있게 되었지만 기교면에서 아직 부족했고, 최지평이 설명하는 경지에 한참 부족한 실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규도 꽤나 완고했다.

“그렇게 겸손하게 말할 필요없다. 난 네가 <Go&Stop>을 작곡하고 부를 때 너의 재능을 알 수 있었다. 부디 도와다오.”

“으음!”

석규의 간곡한 부탁에 창현은 생각에 잠겼다.

워낙 영세 엔터테인먼트에 회사의 사활을 걸고 있었기에 창현 또한 석규가 몇 년 전부터 전력을 다하여 신인 걸 그룹을 양성하고 있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초등학생 때부터 때때로 말하며 반드시 그녀들을 성공시켜 국내에서 손꼽히는 회사로 성장시키겠다고 말하던 석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었기에 창현은 차마 매정하게 뿌리칠 수 없었다.

‘그래. 아버지가 인정해주셨으니 이건 기회일 거야. 이왕 할 거 최선을 다해보자.’

마음을 굳히며 창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아버지. 하지만 저도 제 노래에 자부심이 있으니 프로듀싱하는 과정은 제게 일임해주세요. 제 모든 노력을 바쳐서 해볼게요.”

창현의 승낙에 석규의 얼굴이 밝아졌다.

“하하! 고맙다, 창현아.”

모든 것이 열악한 조건에서 음반 57만부를 판매한 창현이라면 반드시 잘해줄 것이라 생각하는 석규였다.

‘좋아 한 번 해보는 거야.’

그런 석규의 모습에 결의를 다지는 창현이었다.


석규에게 데뷔할 사람들의 특징을 들은 뒤 본격적으로 곡 구상에 몰입한 창현에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 사이 창현은 중1에서 중2로 올라갔고, 음향총서의 성취가 올라감에 따라 곡의 종류 또한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후우! 따분해.”

공책을 펼쳐놓고 곡에 대한 구상을 하며 창현은 수업을 건성건성 들어나갔다.

원래 공부를 잘했지만 명상을 하면서부터 탁월한 집중력으로 진도를 떼버리는 건 일도 아니게 된 창현이었다. 덕분에 수업 시간에 멍놓거나 잠을 자도 선생들은 창현의 실력을 인정하여 수행평가 점수를 좋게 주었고, 그 덕에 창현의 성적은 전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좋았다.

“꿈을 위해서라지만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아.”

점심시간.

급식을 먹은 창현은 문득 학교에 나오는 걸 회의적으로 느끼며 교무실 쪽으로 향했다.

창현이 가는 곳은 교무실이 아니라 선생들이 사용하라고 만들어놓은 휴게소였다. 정자 형식으로 만들어진 이곳은 지붕이 있어 그늘을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한적한 곳에 떨어져 있어서 종종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교무실에서 제법 떨어져 있기에 사용하는 사람도 없고 지금은 일종의 아지트가 되었다.

매점에 들려 포도주스를 빨며 정자로 향하던 창현이 멈칫했다.

“윽! 누가 있네?”

멀리서 보이는 사람의 실루엣을 발견하자 창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창현은 근래 들어 매일같이 이곳에 들렸다. 곳곳에 높은 건물이 솟아있는 대도시 풍경과 달리 이곳은 나무가 우거져서 마치 시골과 같은 포근한 분위기가 느껴져 명상도 잘되고 새로운 곡도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객이 있던 것이다.

“어쩔 수 없군. 운동장 그늘진 벤치라도… 응?”

발걸음을 돌리려던 창현은 귓가에 전해져오는 목소리에 반응을 했다.

그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는데, 그곳에는 긴 머리의 소녀가 눈을 감은 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창현은 노래를 부르는 소녀에게 다가가며 눈을 빛냈다.

‘목소리가 매력적인데?’

특유의 발랄하고 맑은 목소리가 듣는 이로 하여금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하지만…….

‘고음처리랑 감정이입 부분이 좀 부족하네.’

음악에 대해 빠삭하게 꿰고 있는 창현은 금세 노래를 부르는 소녀의 단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소녀의 노래는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며 끝을 맺었다.

“후우!”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노래를 마친 소녀.

노래를 감상하던 창현은 훌륭한 노래에 박수를 쳤다.

짝짝짝!

갑작스러운 박수소리에 소녀는 화들짝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꺄악! 누, 누구?”

예상 외의 반응에 창현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닫곤 사과의 인사를 하였다.

“이런,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비명을 지른 소녀는 자신의 반응이 너무 과했다는 걸 알아차리곤 황급히 두 손을 저었다.

“후, 다시 한 번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점심시간마다 제가 쉬던 곳이라 오늘도 왔는데 노래 소리가 들려서 저도 모르게 와버렸네요.”

노래 소리란 말에 소녀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자신의 노래를 들은 게 부끄러웠던 탓이다.

“저… 혹시 얼마나 들으신 거에요?”

부끄러웠던지 소녀는 양 검지 손가락을 비비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게…….”

대답을 못하는 창현. 목소리가 들린 직후부터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으니 처음부터 다 들은 셈.

그걸 차마 말하자니 눈앞의 소녀가 더욱 부끄러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창현의 반응만으로도 소녀는 대충이나마 눈치챌 수 있었다.

“설마……?”

“하하! 죄송합니다. 처음부터 다 들어버렸네요.”

결국 창현은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죄없는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 모습에 더욱 얼굴을 붉히는 소녀. 짐작하는 것과 입으로 듣는 것은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눈앞에서 보니 자신에게 말을 거는 소년은 상당히 잘생겼다. 호리호리하고 미소년 타입인 게 마치 딱…….

‘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순간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당황한 표정을 짓는 소녀.

그런 소녀의 모습에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창현은 분위기 쇄신을 위해 입을 열었다.

“이렇게 된 거 자기소개라도 해요. 제 이름은 강창현입니다. 무단으로 노래를 들은 것은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창현의 소개에 소녀도 번쩍 깨인 표정을 지으며 자기소개를 하였다.

“아! 제 이름은…….”

잠시 머뭇거리던 소녀는 창현을 힐끗 보더니 말을 이었다.

“서주현이라고 해요.”

창현은 서주현이라 밝힌 소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네, 비록 첫 만남은 죄송함으로 시작하게 되었지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네요. 서주현… 선배?”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 하여 말을 놓으려던 창현은 순간 멈칫했다. 눈앞의 소녀가 자신과 동급생 혹은 하급생이라 생각했는데 명찰색을 보아하니 선배였던 것이다.

‘외모는 앳되어서 나랑 동갑인 줄 알았는데…….’

가창력도 좋고 외모도 예뻐서 친하게 지내려고 했는데 선배였다.

예의 하나는 끝내주게 엄한 집안에서 어린 시절 자라왔기에 창현은 저도 모르게 주현의 앞에서 빳빳하게 서고 있었다.

자신을 편하게 대하다가 갑자기 선배란 사실에 돌변한 창현의 모습을 본 주현은 웃음을 짓고 말았다.

“풋!”

‘내가 선배란 거에 긴장한 거야? 귀여워…….’

평소 모습과 연장자를 대하는 모습에 이런 차이가 있다니.

그 차이에서 오는 느낌이 무척 신선한 주현이었다.

“내가 선배네……요?”

반말이라기도 뭐하고 존대라고 하기에도 뭐한 말투.

그 말투에 창현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편하게 대하셔도 되요. 저보다 선배이신 걸요? 아니, 그래야 해요. 그래야 제가 편하니까요.”

“그… 그래? 그럼 편하게 대할게…….”

박력이 느껴지는 창현의 목소리에 압도당하여 고개를 끄덕이는 주현. 하지만 뭐랄까 말을 놓음으로써 창현과 가까워졌다는 느낌은 좋았다.

“그런데 선배는 왜 이곳에서 연습 중인 거에요? 보통 여자라면 친구들과 같이 밥 먹고 수다 떨지 않나요?”

창현의 말에 주현은 눈에 띄게 버벅거리며 입을 열었다.

“으응? 아, 그게… 사실 난 SM연습생이거든. 그래서 친한 친구가 별로 없어.”

연습생이란 말에 창현의 눈이 빛났다.

“오호! 연습생이었어요?”

“으응…….”

주현의 긍정에 고개를 끄덕이는 창현이었다. 왜 주현이가 노래를 연습하고 실력도 제법 뛰어났는지 알았다고 할까?

“그래서 노래 솜씨가 뛰어났구나.”

“그, 그랬어? 고마워.”

창현의 중얼거림에 주현의 표정이 밝아졌다. 칭찬이란 것은 아무리 들어도 부족함이 없는 법이다.

“하지만 문제점도 있어요. 주제 넘을지도 모르지만… 들어보시겠어요?”

“응? 으응…….”

칭찬하기 무섭게 문제점을 지적하고 들어오는 창현의 말에 주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체적으로 잔잔하게 잘 불러서 무척 좋아요. 선배 목소리는 발랄하고 맑아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을 좋게 해주거든요. 하지만 노래의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고음처리 부분과 감정이입 부분에서 조금 부족함을 보인 거 같아요.”

“고음처리… 감정이입…….”

주현은 창현이 지적해준 부분을 곱씹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를 끄덕였다.

보컬 트레이너 언니에게서 종종 듣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언니는 고음처리 부분이 연습하면 차차 나아질 거라 하였고, 감정이입은 좀 더 크면 소화해낼 수 있을 거라 하였다.

놀라운 건 이제 열다섯 살인 창현이 그 점을 짚어냈다는 거다.

그런데 그 점을 짚어냈다고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건 아니지 않을까?

의뭉스러운 시선이 창현에게 향하려고 할 때, 창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극복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꾸준한 트레이닝을 통한 약점 극복이겠죠. 하지만 당장 극복할 수 있는 방법도 있어요.”

주현은 귀가 번쩍하는 걸 느꼈다.

“당장 극복할 수 있는 방법?”

“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잘못된 부분을 확실하게 알아야 하는데… 음!”

갑자기 말끝을 흐리는 창현.

그 모습에 주현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띤다.

“왜?”

“그게… 그러려면 제 앞에서 노래를 다시 불러보아야 하는데…….”

“노, 노래를?”

창현의 말에 눈에 띄게 당황하는 주현. 방금 전까지 창현이 노래를 들어서 부끄러워했는데 다시 불러야 된다니… 하지만 한편으로는 약점을 극복할 수 있다면 이것도 좋은 기회라 여겨졌다.

잠시 고민하던 주현은 이내 결심을 굳힌 듯 창현을 바라보았다.

“알았어. 해볼게. 대신에 확실하게 도와줘야 해.”

“물론입니다, 선배.”

창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답을 받은 주현은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좀전에 불렀던 노래를 다시 불러보기 시작했다.

“…….”

창현은 진지한 얼굴로 주현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 창현의 얼굴을 힐끗 본 주현은 더더욱 노래에 몰두하였고, 마침내 노래의 클라이막스로 올라갈 때였다.

돌연 창현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잠시! 거기서 멈춰주세요.”

“……!”

“선배도 느꼈겠죠? 그 부분에서 호흡이 막히고 음이 불안정한 걸요.”

“…응.”

주현은 창현이 정확하게 고음처리 부분을 짚어내자 다소 놀란 표정으로 창현을 바라보았다.

창현은 그런 주현을 보곤 배를 가리켰다.

“사실 고음 처리 부분은 복식 호흡이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그건 너무 광범위해서 효과가 즉각 나타나기 힘들어요. 선배가 음이 불안정해질 때 음을 처리하는 방식이 평이해요. 만 가지 사람의 얼굴과 성격이 모두 다른 것처럼 음을 처리하는 것도 각자의 방식이 있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데?”

“우선 숨을 들이신 뒤 그 숨을 아랫배 부근으로 보낸다고 생각하시고 그 느낌이 도달하면 숨을 뱉어주세요.”

“응.”

창현의 말에 순순히 따라주는 주현. 그 모습에 창현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길게 숨을 들이쉰 주현은 눈을 감으며 창현이 말한대로 숨을 아랫배 부근으로 보내는 듯했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을 뜨며 길게 숨을 내뱉었다.

“후아!”

핸드폰을 꺼내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던 창현이 시간을 확인하곤 핸드폰을 덮었다.

“이십 초 정도네요. 이십 초 정도라면… 아-아-아-아!”

갑자기 음을 높여 ‘아’를 연발하는 창현.

매끄럽게 스스럼없이 올라가는 창현의 목소리에 주현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다.

‘방금 발성… 선배들보다 높게 올라갔어.’

SM연습생으로서 수많은 실력파 선배들을 보아온 주현은 창현의 발성이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주현에게 믿음을 가져다주었다.

“이 정도군. 선배 이 부근을 손으로 눌러보세요.”

음을 조절하던 창현이 배 부근에 손을 대자 주현도 창현이 댄 곳이 손을 댄다.

“이곳을 약간 누른 뒤 음을 올려보세요. 아-아-아!”

“아-아-아!”

창현을 그대로 따라하는 주현.

그런데 음이 평소보다 무리없이 올라가자 두 눈을 크게 뜬다.

“어어?”

“효과가 있나보네요. 고음을 올릴 때 그 부근에 힘을 주시면 되요. 한 번 해보세요.”

“응.”

고개를 끄덕인 주현은 다시 한 번 노래를 불러본다.

“아! 된다…….”

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고음처리가 되자 주현이 나직하게 탄성을 터뜨렸다.

“잘되네요. 앞으로 그렇게 하시면 되요. 그리고 감정이입은 경험을 살려서 하는 건데… 그건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네요. 미안해요, 이 부분은 제가 해결해줄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응, 아니야. 고음처리가 되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걸.”

주현은 진심으로 창현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동안 고음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얼마나 마음앓이를 했던가?

트레이너 언니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라 했지만 좀처럼 보이지 않는 진전에 많은 속 앓이를 했어야만 했다.

그러던 차에 창현이 고민을 해결해주었다. 주현으로서는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 가지고 뭘요. 좀 전에 노래하는 걸 훔쳐본 것에 대한 사과라고 할게요.”

“아… 그건…….”

몰래 연습하던 순간을 다 보았다고 생각하자 부끄러움이 몰려오는 주현이었다.

그 모습에 무척 귀여워 창현은 작게 웃음을 지었다.

“알았어요, 선배가 부끄러워하시니 더 이상 언급하지 않을게요.”

“응. 고마워.”

그때,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예비종이 울려 퍼졌다.

창현은 남은 포도주스를 쭉 빨아들이곤 쓰레기통에 버리며 주현에게 말했다.

“오늘 제법 유익한 만남이었어요. 그럼 들어가세요, 선배.”

그리고 돌아서려던 찰나, 주현이 다급하게 창현을 불렀다.

“저기…… 잠깐!”

“네? 무슨 용건이라도……?”

고개를 돌리며 묻는 창현의 모습에 주현이 양볼에 살짝 홍조를 띠며 말했다.

“내일도 여기와도 되지……?”

내일도 만날 수 있냐는 뜻이었다.

창현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얼마든지 와도 되요, 선배.”

“응! 그리고…….”

밝게 대답하며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살짝 말끝을 흐리는 주현은 붉은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말했다.

“너무 거리감이 느껴지니깐… 선배라고 하지 마. 누나라고 불러.”

선배와 누나.

확실히 누나라는 표현이 조금 더 가까워 보인다.

잠시 멈칫한 창현은 주현의 말에 빙긋 웃음을 짓는다.

“그럼 다음부터 누나라고 부를게요. 수업 잘 들으세요, 주현 누나.”

누나란 소리에 주현은 수줍은 듯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으응, 너도.”

‘한 발짝 다가간 걸까?’

처음 보았을 때 호감이 가던 소년.

주현은 호칭이 바뀜으로서 한발자국 다가섰다는 느낌에 절로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SM연습실.

그룹 ‘소녀시대’가 구성되고 멤버들은 하루하루 고된 연습을 쌓아나가고 있었다.

특히 그 속에서 주현이 겪는 연습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고되었다.

소녀시대에서 주현은 막내였다.

막내였기에 데뷔 초부터 막내라서 실력이 부족하느니, 나이가 어려서 실력이 부족하다느니라는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해 SM측에서는 매일 주현에게 고된 연습을 시켰다.

주현은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고, 고된 연습을 묵묵히 해나갔다.

하지만 연습은 무척 힘들었기에 주현은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쌓아나가고 있었다.

특히 자연스럽게 처리되지 않는 고음처리는 주현에게 있어 악몽과도 같았다.

점점 데뷔는 다가오고 있는데 고질적인 약점은 극복되지 않은 채 사사건건 자신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괴로움도 이제는 안녕이었다.

오늘 만난 귀여운 남자 후배가 자신의 고민을 말끔하게 해결해준 것이다.

“귀여운 후배… 쿡!”

자기도 모르게 귀엽다고 생각해버리자 주현의 입에서 절로 웃음이 흘러 나왔다.

자신보다 약간 작은 키에 가는 얼굴선.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는 무척 섬세하면서 잘생긴 느낌을 주었다.

“강창현…이라 했지? 나보다 한 살 어리고…….”

솔직히 자신과 동급생인 줄 알았다.

말투도 말투고 행동하는 거지가 마치 어른 같았기 때문이다. 왠지 동급생 같은 느낌에 조금 어려웠지만 후배란 사실에 조금이나마 그런 감정이 풀렸다.

처음에 노래하는 걸 들켰을 때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아직 남에게 보여줄 만큼 연습이 되질 않는단 말이야…….

부끄러워하며 슬쩍 물어보니 처음부터 다 들었단다. 주현은 살아오면서 이때만큼 부끄러웠던 적은 없는 듯했다. 뭐랄까, 비슷한 나이 대 소년이라 그런 걸까. 하여튼 그랬다.

요즘처럼 단점을 지적받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상황인 만큼… 부끄러움은 더했다.

다행히 소년은 붙임성이 좋았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자신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하는 행동에 자신감이 넘치기에 자신과 동갑인 줄 알았는데 한 살 어린 후배란다.

거침없이 말하던 그 아이가 한순간 벙찐 표정을 지었을 때 느껴진 감정을 걷잡을 수 없어 주현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무엇보다 그 가창력… 정말 대단했어.’

자신의 문제점을 지적해줄 때 음을 높이는 창현의 모습을 떠올리며 주현의 표정에 감탄이 떠올랐다. 부족한 자신의 안목으로 봐도 보통이 아니었다.

그렇게 오늘 겪은 일을 회상할 때, 문이 열리면서 한 소녀가 들어온다.

“안녕, 주현아! 응? 주현이 오늘 무슨 일 있었어? 표정이 밝네.”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있던 주현은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깨곤 어느새 다가온 소녀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에? 아, 아니에요, 윤아 언니. 일은요. 무슨.”

“없다고 하기엔 주현이의 표정이 너무 밝은데?”

무언가를 숨기려는 기색이 보였기에 윤아는 주현의 모습에 눈을 가늘게 뜨며 장난스레 물었다.

“그, 그게…….”

예리한 윤아의 물음에 쭈뼛거리며 몸을 움찔 떠는 주현.

무언가가 있다는 분위기를 팍팍 풍기자 궁금해진 윤아가 막 주현에게 물으려 할 때, 보컬 트레이너가 안으로 들어왔다.

“자자, 오늘도 열심히 연습해보자.”

“네, 언니.”

윤아와 주현은 한목소리로 답하며 본격적인 연습에 나섰다.

이번에 구성된 걸 그룹 ‘소녀시대’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 야심차게 준비하는 아이돌 그룹이다.

회사에서 야심차게 준비하는 만큼 데뷔 후 비주얼만 있는 아이돌로 남지 않게 SM엔터테인먼트에서는 소녀시대 멤버들에게 강도 높은 연습을 시키고 있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강도 높은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은 윤아와 주현이었다.

윤아는 소녀시대 데뷔 전 이미 개인 데뷔를 먼저하였다. 청순하고 맑은 이미지의 윤아는 소녀시대 데뷔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고, 그것은 소녀시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윤아는 소녀시대 멤버들 중에서 가창력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매일 주현과 함께 보컬 트레이닝을 하였다. 일종의 분반 형식이어서 두 소녀만 따로 연습을 하였다.

“자, 평소 하던 것처럼 하자.”

그렇게 말하며 보컬 트레이너는 윤아와 주현에게 번갈아가면서 트레이닝을 시켜나갔다.

윤아와 주현의 고질적인 약점은 고음처리였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고음처리를 잘해야 비로소 실력파 가수로 인정해준다. 대중들에게 나가 실력파 아이돌로 인정받기 위해서 고음 처리는 반드시 익혀야 할 과제 중 하나였다.

‘차차 나아지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좀 늦을지도.’

보컬 트레이너, 박예민은 앞으로 데뷔가 일 년 남짓 남은 기간을 떠올리며 작게 숨을 내쉬었다. 고음처리. 무척이나 간단하지만 극복하기는 무척 어려운 난제 중 하나였다.

예민은 윤아부터 시작하여 주현까지 차례대로 보컬 트레이닝을 시키기 시작했다. 윤아의 목소리가 매끄럽게 올라가다가 중간에 무언가에 막힌 듯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한다. 처음보다 월등한 진보였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보였다.

그 다음 차례는 주현이었다.

‘주현이… 후우!’

주현을 보며 예민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차차 나아지는 윤아와 달리 주현이는 오랫동안 답보 상태에 머물러왔다.

주현이에게는 차차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지만… 내심 이게 주현이의 한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주현이의 성과는 미미했다.

‘이대로라면 위험한데. 어떤 방법이라도 강구해야 돼.’

그런 생각과 함께 주현이도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주현은 한차례 목을 가다듬고는 서서히 음을 올려나갔다.

“아-아-아!”

점점 목소리를 높이던 주현은 어느 순간 음을 올리기가 서서히 벅차오는 걸 느꼈다.

이곳이다. 늘 이곳에서 더 음을 높이지 못하고 막혔다. 이 한계를 뚫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노력은 자신에게 보답을 하지 않았다.

절망하고 또 절망했지만 신은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

‘난 할 수 있어. 오늘도 해냈잖아? 힘내자, 서주현.’

창현이 가르쳐준 부분에 힘을 주며 한계의 껍질에 부딪쳐본다.

여태껏 자신이 해온 모든 노력을 담아서 한계의 껍질을 힘껏 강타한다.

쩌적! 쩌적!

오랫동안 자신을 막아온 한계의 껍질이 깨어지는 소리.

동시에 막혀있던 무언가가 뻥 뚫리는 느낌과 함께 주현은 한계를 벗어던졌다.

자신을 속박하던 올가미를 벗어버리자 꽉 막혀있던 주현의 음이 폭발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예민과 윤아가 그런 주현이의 모습에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레 뜬다.

“이, 이건?”

“주, 주현아?”

지금 이 모습은 평소 주현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감내하고 마냥 웃음을 짓는 아이. 그런 아이가 주현이었는데… 지금은 마치 자신을 속박하던 모든 것을 탈피한 것처럼 자유로워 보였다.

평소 올라가지 않던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선 주현은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선을 느끼고는 입을 닫는다.

그리고 두 사람을 향해 싱긋 웃음을 지었다.

“…되네요.”

“노, 놀라워, 주현아. 언제 그렇게…….”

윤아는 하루만에 몰라볼 정도로 향상된 주현이의 고음처리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주현은 윤아의 칭찬이 쑥스러운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원래 안 됐는데… 오늘 아는 사람의 도움을 받았어요. 그래서 할 수 있게 됐어요.”

예민은 아직까지 놀라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한 층 성장할 수 있었다는 말에 예민은 정신이 번쩍 깨는 걸 느꼈다. 그리곤 주현의 양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도움을 받았다고? 누구한테?”

“그, 그게…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인데…….”

갑작스러운 예민의 반응에 당황한 표정을 짓는 주현.

예민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질문을 던졌다.

“어떤 방식으로 받았어? 혹시…….”

잠시 생각하던 예민. 그녀는 주현을 보며 물었다.

“네 배 부근 어딘가를 정확하게 짚어주며 그곳을 통해 호흡을 하게 했니?”

배 부근이라니까 왠지 모르게 민망한 모양의 물음이 되었지만 예민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네.”

살짝 부끄러움이 생겨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 주현.

그런 주현의 모습에 예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주현이는 오늘 정말 행운을 얻었구나.”

“네?”

“내가 예전에 말해줬잖니. 고음처리는 꾸준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주현이는 최근 들어 그 성과가 미미했어. 그래서 미안하지만 언니의 재능이 여기까지고 주현이를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해줄 거라 생각했어.”

“…….”

주현은 예민의 말에 묵묵히 경청했다.

예민은 말을 이어나갔다.

“보컬 트레이닝을 하는 사람은 복식 호흡을 하지만 초일류 보컬 트레이너는 복식 호흡보다 다른 걸 훈련시킨단다. 왜 그런지 아니?”

“모르겠어요.”

주현의 대답에 예민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들은 괜히 초일류가 아니거든. 듣는 순간 바로 상대방의 약점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극복할 방안을 마련해준단다. 오늘 주현이가 얻은 것도 그거고.”

믿기지가 않는 말이었다.

점심시간에 자신이 잠깐 받았던 트레이닝이 초일류 트레이너들만 해낼 수 있는 거라니.

하지만 예민도 SM엔터테인먼트에서 인정받는 일류 트레이너다. 그녀가 굳이 다른 사람을 치켜 세워주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도움을 준 창현은 열다섯 살이다.

열다섯 나이의 소년이 과연 초일류 트레이너가 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다.

그렇다고 우연이라 치부하기도 어렵다.

창현은 분명 자신의 증상을 모두 점검하고 그에 따른 합당한 방법을 가르쳐줬으니까. 그게 우연일 리가 없다.

“주현아.”

“네, 네?”

생각에 잠겨있던 주현이 흠칫하며 대답했다.

예민은 평소 엄격한 표정이 아닌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으면… 그분을 나한테 소개 좀 시켜주면 안 되겠니?”

초일류 보컬 트레이너를 만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들의 노하우와 트레이닝 방식은 모든 보컬 트레이너에게 있어 꿈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초일류에 다다라지 못했지만 SM에서 인정받을 정도의 실력을 지닌 예민이 도움을 받는다면 보컬 트레이너로서 한층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민의 생각이었다.

예민이 한껏 치켜 세워줬지만 창현은 열다섯 살 소년이다.

아마 여기서 사실대로 말해봤자 예민이 믿어줄 리 만무할 것이다.

주현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에, 에… 그, 그러니까…….”

그 반응에 예민이 지레짐작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래, 초일류 트레이너가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겠지. 네 반응을 보니 만나기가 어려울 것 같구나. 하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소개 시켜줘. 이건 보컬 트레이너 박예민으로서가 아니라 너희들의 친한 언니 박예민으로서 부탁하는 거야. 알았지?”

주현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네, 알겠어요, 언니…….”

“그래, 고마워. 오늘은 주현이가 잘 해냈으니 트레이닝은 여기까지 할게. 오늘은 자율 연습으로 할 테니 각자 연습하렴.”

윤아와 주현은 예민에게 인사를 하였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응, 너희들도 열심히 하렴.”

그 말과 함께 예민이 나가고, 윤아는 주현을 보며 말했다.

“주현아, 너 예민 언니 말처럼 초일류 보컬 트레이너에게 트레이닝을 받은 거야?”

그녀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윤아 또한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아직 가수로 데뷔하기엔 많은 면이 부족하다는 걸. 특히 가창력의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던 차에 주현이와 초일류 보컬 트레이너가 연관되어 있다는 건 무척이나 큰 희망이었다.

주현은 반짝이는 언니의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살짝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트레이닝이라면 트레이닝인데… 그게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윤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응? 모르겠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게 사실… 예민 언니가 초일류 보컬 트레이너로 아는 사람이 내 학교 후배거든.”

잠시 머뭇거리다가 사실을 털어놓는 주현.

그에 윤아가 경악한 듯 목소리를 높인다.

“에엑, 진짜? 그렇다면 주현이 네 후배가 초일류 보컬 트레이너라고?”

“그런 것 같아…….”

“와! 대단하다! 주현이의 고음처리 부분도 도와주고, 예민 언니에게 초일류 소리까지 듣고. 주현아, 그 후배 어떻게 만나게 되었어?”

까탈스럽기로 유명한 예민에게 극찬을 받은 주현의 후배가 누구인지 궁금증을 보이는 윤아.

주현은 창현을 만났던 것을 떠올리고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학교 점심시간 때였어요. 요즘 노래에 통 진전이 없어서 학교를 둘러보던 차에…….”

주현은 학교를 둘러보다가 한적한 정자를 발견했다는 말과 거기서 노래를 불렀다는 것. 그 노래를 창현이 들어서 만나게 된 것을 말하였다. 그리고 예민에게 말했던 것처럼 자신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어주고 그것을 해결해준 것까지.

“와! 그럼 네 후배가 그걸 단번에 해결해줬단 거네?”

이야기를 들은 윤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리곤 주현에게 재빨리 말했다.

“주현아! 나도 네 후배한테 좀 트레이닝을 받으면 안 될까?”

“네, 트레이닝요?”

놀라며 묻는 주현.

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나도 요즘 고음처리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잖아. 그래서 도움을 조금 받고 싶어서…….”

“하지만 오늘 처음 만났는데…….”

윤아의 사정을 익히 알고 있지만 오늘 처음 만난 창현에게 부탁을 하기엔 좀 어려웠다.

그런 주현의 모습에 윤아가 양손을 모았다.

“이렇게 부탁할게. 응? 주현아.”

“음… 알았어요, 언니. 제가 한 번 부탁해볼게요.”

잠시 고민에 잠겼던 주현은 이내 결심을 굳힌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그룹의 언니고, 늘 신세를 지고 있는 것 같았는데 이번에 제대로 나설 생각이다.

윤아는 주현이가 승낙하자 입가에 함박 미소를 지으며 주현을 껴안았다.

“꺅! 고마워, 주현아!”

그런 윤아의 포옹에 주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일 뿐이었다.




제3장 프로듀싱 준비. 걸 그룹 ‘라샤’




“왠지 기분이 좋은 걸.”

주현과 만남을 가진 날.

창현은 새로운 인연을 맺었다는 것에 기분이 흡족했다.

이번에 인연을 맺게 된 서주현…….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 귀여웠지. 수줍음도 많이 타고…….”

노래한 걸 들켰을 때 겁먹은 토끼와도 같은 그 모습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마치 몹쓸 짓을 한 느낌이랄까.

그 덕에 연민의 감정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도움을 주고 말았지만 창현의 기분은 가볍기만 했다.

“그 덕에 괜찮은 곡을 만들 수 있었으니까.”

늘 새로운 느낌과 새로운 감정은 새로운 곡을 쓰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창현은 오늘 주현과의 만남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담아 곡의 대략적인 기반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평소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담은 만큼 이번 곡은 특별했다.

“제법 뛰어난 곡이야. 이 정도면 아버지도 만족하시겠어.”

창현은 만족의 미소를 띠며 방과 후 곧장 AA엔터테인먼트로 향했다.

오늘부터 AA엔터테인먼트가 회사의 사활을 걸고 준비하던 걸 그룹 ‘라샤’의 프로듀싱을 시작하는 날이다.

‘라샤’는 강석규가 삼 년 전 본격적으로 엔터테인먼트를 차리면서 고르고 골라 선별한 실력파 연습생 셋으로 이루어져있다. 창현은 근래 들어 석규에게 ‘라샤’ 멤버들의 가창력이나 안무 실력 등을 봤는데, 무척 흡족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만족하기에는 아직 그녀들의 준비가 덜 되어 있었고, 다잡아줘야 할 부분도 있었다.

“그 부분은 내가 잡아줘야겠지. 제대로 가다듬기만 하면 아버지의 바람대로 뛰어난 가수가 될 수 있을 테니까.”

AA엔터테인먼트 건물로 들어간 창현은 곧장 사장실로 향했다.

업무를 보고 있던 석규는 창현의 방문에 반색했다.

“왔구나, 현.”

석규는 창현을 자신의 아들이 아닌 걸 그룹 ‘라샤’의 곡을 프로듀싱 할 작곡가 겸 프로듀서로 섭외하였다. 그랬기에 당연히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창현도 석규의 그런 대우에 평소와 다르게 대했다.

“네, 사장님. 지금 수업이 끝나 오게 되었어요.”

석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라샤’도 모두 있단다. 그 아이들도 이제 데뷔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자신들을 프로듀싱 해줄 프로듀서를 소개받아야겠지?”

그러면서 창현을 바라보는데 얼굴에 약간의 장난기가 감돌고 있었다.

이번 ‘라샤’의 앨범 모두 <Go&Stop>을 작곡하고 부른 ‘현’의 이름으로 임하게 된다. 즉, 라샤에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게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밝힐 것을 알았지만 창현은 장난기를 띠고 있는 석규의 태도에 다소 당황했다.

“아버지도 참. 어차피 알게 될 상황이잖아요? 다만 제가 어리다고 무시당하지 않게 아버지가 잘 도와주셨으면 해요.”

창현이 염려하는 부분이 그거였다. 세상은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해도 나이에 의해 제약을 받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라샤를 구성하고 있는 멤버들은 이번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빠른년생을 포함해도 창현과 최소 네 살의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석규는 그런 창현의 바람을 무참히도 뭉갰다.

“그것도 다 너의 실력 아니겠느냐? 작곡가던 소설가던 뭐든지 많은 경험을 해보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첫 프로듀싱부터 순조로우면 너무 재미없지 않느냐?”

어이가 없는 말에 창현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그, 그게 무슨…….”

석규가 피식 웃으며 창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농담이다. 라샤 애들은 모두 착한 애들이니 네 말이 잘 따를 거다.”

창현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후우! 가끔 아버지의 장난은 너무 무서울 때가 있어요.”

“하하! 미안하다. 미안해. 그럼 연습실로 가자꾸나.”

앞장서는 석규의 모습을 보며 창현은 작게 한숨을 내쉰 뒤 천천히 그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연습실에 도착할 수 있었고, 석규는 연습실 안에서 안무를 맞추고 있는 세 여인을 볼 수 있었다.

그녀들은 음악을 틀고 안무를 맞추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창현의 눈이 빛났다.

‘아버지가 보여줬던 것보다 월등히 잘하네. 하기야 삼 년이 지났으니 이 정도 발전은 있어야지. 그래도 잘하긴 잘하네.’

창현이 석규에게 시선을 주며 묻는다.

“라샤는 섹시함을 컨셉으로 하시려나 봐요?”

석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 애들 모두 그 분야 춤이 뛰어나거든. 하지만 너무 과도한 섹시 컨셉은 좋지 않지. 게다가 저 아이들 모두 이제 갓 스무 살이 되지 않았더냐?”

“그도 그렇지요. 제가 드린 곡 중에 그런 컨셉을 가질 만한 것도 하나 밖에 없고요.”

창현은 라샤의 앨범으로 낼 곡을 총 다섯 곡을 만들었다.

그중 그녀들이 밀고 갈 컨셉이 부합하는 노래 하나를 석규에게 들려줬는데, 음악을 들은 석규가 바로 타이틀 곡으로 삼자고 할 정도로 그의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뒤이어 건네진 세 곡도 만만치 않게 뛰어나서 졸지에 무엇을 타이틀 곡으로 정해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야만 했다.

그러던 중 창현이 오늘 타이틀 곡을 완성했다는 말에 곧바로 녹음을 시작하자고 한 것이다.

“일단 들어가자. 소개 시켜주마.”

그 말과 함께 석규가 먼저 연습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박수를 치며 시선을 모았다.

짝짝!

“자, 연습은 잠시 멈추고. 오늘 중요한 손님을 모셔왔다.”

“중요한 손님이요?”

안무 연습을 멈춘 세 여인은 각각 확실한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고 있었다.

중앙에 서 있는 여인은 머리를 틀어올려 새하얀 목선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는데, 그것은 청순함과 도발적인 아름다움이 좁힐 수 없는 차이를 만들어내며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왼쪽에 서 있는 여인은 항상 눈이 웃고 있는 듯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을 좋게 만들었고, 오른쪽에 서 있는 여인은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 도도하면서 새침한 느낌을 주었다.

그녀들은 올해 안에 데뷔가 결정된 걸 그룹 라샤였다.

왼쪽부터 세룬, 시린, 미란이라는 예명을 쓰고 있었다.

방금 전 석규의 말에 반응한 것은 시린이었다.

석규는 시린의 물음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너희들의 곡을 만들어준 분을 특별히 초빙해왔다.”

“……!”

석규의 말에 눈에 휘둥그레 변하는 세 여인.

자신들의 곡을 만들어준 사람. 그는 바로 가수 현이 아니던가?

현재 라샤는 데뷔를 하지 않았음에도 언론에서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었다. 특히 몇몇 기자들은 라샤가 2006년 최고의 신인이라 칭할 정도로 파격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그 까닭은 그녀들의 오디션 영상이 인터넷에 퍼진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Go&Stop>으로 국내에서 일약 최고의 가수로 매김한 가수 현이 작곡을 해준다는 영향이 컸다.

단 한 곡이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가수 현이 퍼뜨린 여파는 엄청났다.

영세 규모에 불과하던 AA엔터테인먼트를 급속도로 키워나갔으며, 단조롭지만 확실한 특유의 느낌이 담긴 곡은 많은 사람들을 중독성 있게 끌어들였다.

얼굴없는 가수, 무대에 서지 않는 가수였지만 그 모든 열세를 딛고 전년도 음반 판매 상위 5위 안에 들어가는 기염을 토했다. 아직까지도 꾸준한 음반 판매를 보이고 있을 정도니 가수 현의 이름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데뷔가 다가오고, 가수 현이 작곡을 해준다는 말에 라샤 멤버들은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그러니 절로 가수 현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져만 갔다.

‘감미로운 목소리와 뛰어난 작곡 능력이면 이십대 중반 정도에 잘생긴 남자가 아닐까?’

‘유명한 대작곡가가 곡을 쓰고 못생겼지만 뛰어난 보이스를 지닌 사람이 불렀을 수도 있어. 그러니 한 삼십대쯤 되지 않을까?’

‘일단 내 느낌은 어렸는데…….’

세룬, 미란, 시린의 생각이었다. 그들이 모두 다르게 생각할 만큼 현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었다.

같은 소속사임에도 얼굴은 물론 심지어 나이조차 모르는 가수 현.

그 베일이 오늘 벗겨지는 것이다.

석규는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주인공을 소개해야겠지. 어서 들어오너라, 현.”

모두의 시선이 연습실 문으로 향했고, 그곳으로 한 사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

“호오?”

“오……!”

연습실을 걸어 들어오는 인영의 모습을 확인한 세 여인은 각각 다른 반응을 보였다.

세룬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큰 눈을 더욱 크게 뜨며 놀라움이 묻어나오는 입을 막고 있었고, 미란은 창현의 모습에 눈을 빛냈고, 시린은 전혀 현실성 없어 보이던 자신의 추측이 사실로 드러나자 감탄사를 터뜨렸다.

“반갑습니다. 강창현이라고 합니다. 간단하게 현이라고 불러주세요.”

“강창현? 설마…….”

가수 현과 사장님의 성이 같다는 게 묘하게 걸린다.

라샤 멤버들의 시선이 석규에게 향하자 그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희들 예상대로다. 가수 현은 내 아들 창현이지.”

“와우!”

“놀라운 걸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수 현이 AA엔터테인먼트 사장 강석규의 아들이란 걸.

창현은 연신 놀라기 바쁘고, 그 반응을 즐기는 석규의 반응에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나섰다.

“그만하세요, 아버지. 계속 그러시면 제가 부끄럽잖아요. 오늘 제가 찾아온 까닭은 녹음을 시작하기 위해서에요.”

“녹음!”

“드디어 녹음을 하는 건가요?”

녹음이란 말에 반색하는 세 여인들. 삼 년간의 연습생활을 마치고 데뷔를 한다 해도 이런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녀들은 가수가 꿈이었다. 그런 가수에게 당연히 필요한 것은 노래였다.

처음 현이 작곡한 노래를 들었을 때 그 환희는 잊을 수 없다. 이 곡이 자신들의 노래가 될 거라는 그 기쁨. 오랜 갈증 끝에 마시는 물이 그 무엇보다 맛있는 것처럼 녹음 준비는 그녀들에게 있어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네. 오늘 타이틀 곡을 거의 완성했거든요. 일단 네 곡을 먼저 녹음 한 뒤 타이틀 곡을 완성하면 그것도 작업하려고 합니다. 프로듀싱을 하는 건 처음이지만…….”

창현이 라샤 멤버 하나하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중2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강렬한 의지가 담긴 눈빛이었다.

시선을 받은 라샤 멤버들이 모두 창현의 눈빛에 압도되었다.

“제 마음에 들 때까지 할 겁니다. 가혹할 수 있지만 이해해주세요.”

“…네.”

정말 강렬한 눈빛이었다. 한순간 압도된 라샤 멤버들은 아무런 반박조차 못한 채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일단 녹음실로. 실력을 봐야하니까요.”

창현은 라샤 멤버들을 이끌고 녹음실로 향했다.


“우선 <Laser>부터 들어볼게요.”

녹음실에 들어서고 창현은 곧장 자리에 앉으며 녹음에 착수했다.

창현이 라샤의 데뷔를 위해 준비한 곡은 빠르고 경쾌하면서 중독성이 강한 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Laser>가 그런 면이 강했다.

초반에 빠르고 임팩트 있는 랩으로 시작하는 <Laser>는 높은 수준의 랩과 가창력을 요구하는 노래다.

라샤 멤버들은 현이 곡을 작곡한 뒤 매일 들으며 연습했던 <Laser>였기에 자신감을 가지고 녹음에 임하기 시작했다.

‘현의 작곡이라면 우리는 최고의 데뷔를 할 수 있어.’

‘우리의 실력이라면 가능해.’

‘삼 년간 연습해온 우리의 실력을 보여주겠어.’

자신감을 잔뜩 가지고 시작하게 된 녹음.

하지만 라샤 멤버들의 그러한 속마음은 창현의 지적에 의해 산산이 깨져나갔다.

“그게 아니에요. 초반에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니까요? 단순히 랩에 힘을 준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고음처리도 무조건 음을 높인다고 잘하는 게 아니에요. 적절한 음의 분배를 통해야 합니다.”

“감정을 실어요. 그저 기교만 부린 음악을 대중들이 들어줄 것 같습니까?”

무려 세 시간 동안 녹음을 하면서 창현은 라샤 멤버들에게 끊임없이 조언을 하고, 충고를 하였다.

그러나 그녀들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고, 창현은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쉬며 마침내 녹음을 중단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요. 십 분 정도 쉬겠습니다. 후우!”

MR을 끈 뒤 창현은 의자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법 뛰어난 가창력을 가졌기에 너무 높은 기대치를 가졌던 걸까.

한 소절도 제대로 녹음이 되지 않은 걸 생각하니 기분이 착잡해졌다.

라샤 멤버들의 표정도 가히 좋지 못했다.

각각 가창력에 자신있던 그녀들이었다.

현이 노래를 작곡해주고 프로듀싱을 해준다는 말에 최고의 노래를 녹음하여 그를 놀라게 해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결과물은 이것이었다. 한 소절도 제대로 녹음하지 못했다.

노래 실력에 자신 있던 그녀들에게 있어 이것은 무척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특히 창현의 요구조건은 너무 높았다.

미란이 의자에 기대는 창현을 보며 마침내 목소리를 높였다.

“너무하는 거 아냐?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괜찮은 노래였어. 그런데 왜 자꾸 녹음을 반복시키는 거야?”

창현이 확실히 자신보다 어려보였기에 서슴없이 말을 놓는 미란이었다.

“…….”

그 말에 창현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시린과 세룬을 바라보았다.

“두 분도 같은 생각입니까?”

시린과 세룬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지만 그래요. 현의 기대치가 너무 높은 것 같아요.”

“감정을 담으라니. 저희들도 노래에 감정을 담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럼에도 그 점을 지적하니 좀처럼 공감하기 힘드네요.”

세 시간 동안 타박을 받아서 그런 탓일까?

라샤 멤버들 모두 불만이 서린 기색으로 창현을 바라보았다.

창현은 그녀들의 시선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랬군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제가 말한 것들은 모두 여러분들이 가능하기에 요구한 것입니다. 노래를 하시면서 좀 더 완벽하게 부르고 싶지 않습니까? 저는 그걸 조언한 겁니다.”

“우리는 네가 말하는 걸 이미 만족했다고 생각해. 그래서 네 말은 조언이라기보다 억지에 가까워.”

눈꼬리가 살짝 올라간 미란이 매섭게 말했다.

그 말에 창현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하아! 그럼 어쩔 수 없지요. 제가 시범을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창현.

꺼놓았던 MR을 키고는 녹음실로 들어갔다.

창현은 <Laser> 오프닝을 여는 시린에게 시선을 주었다.

“시린 씨의 매력은 평소 모습에서 느껴지는 청순함에서 한순간 도발적인 모습으로 변하는 그 차이에요. 사람은 누구든지 어느 정도의 이중성을 원하지요. 그러니 시린 씨가 첫 오프닝을 강력한 임팩트로 끌어당겨야 해요. 잘 보세요.”

그 말과 함께 노래가 시작되었다.

무표정하던 창현이 노래의 시작과 함께 미소가 맺혔다. 무척 훈훈한 미소가 입가에 맴도는 것이 마치 연인을 바라보는 미소인 듯했다.

그것을 정면으로 본 시린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천천히 오프닝 랩을 하던 창현의 표정이 서서히 변하며 분위기도 변하기 시작했다.

훈훈했던 미소로 여자를 포근히 안아줄 것 같던 분위기에서 반드시 따라야 할 듯한 카리스마적인 모습으로 변했다.

그와 함께 창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임팩트 있는 랩.

카리스마 있는 창현의 눈빛에 압도당한 라샤 멤버들은 그런 창현의 모습에 마치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느끼며 노래를 하는 창현의 모습에 몰두했다.

오프닝의 파격적인 모습을 보인 창현이 미란의 파트로 넘어왔다.

파워풀한 고음처리가 특기인 미란.

하지만 무조건 목소리를 높인다고 다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창현은 미란에게 누누이 충고했던 부분에 와서 음을 조절하며 노래를 불러나갔다.

매끄럽게 올라가며 사람의 심금을 뒤흔드는 창현의 고음.

<Go&Stop>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가창력과 달리 지금의 고음은 상대를 한순간에 끌어들이는 강렬한 마력을 담고 있었다.

“…….”

차원이 다른 가창력을 접한 미란의 얼굴이 붉어졌다. 방금 전까지 창현에게 소리치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졌던 것이다.

수백 번을 듣고 수백 번을 불러본 노래였다.

자신보다 더 잘 부르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강렬한 고음 처리로 클라이막스를 장식한 다음 파트는 세룬의 것이었다.

항상 웃음을 짓고 있는 세룬은 부드럽고 감미로운 모습을 이 곡에서 보여줘야 한다.

폭발적으로 뿜어내던 가창력에서 물씬 느껴오던 느낌을 갈무리한 창현이 은은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감정을 담아 노래를 해나갔다.

“…….”

항상 조용하고 사근사근한 세룬은 창현의 노래를 들으면서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노래가 끝나자 창현이 선보였던 것들이 긴 여운을 남기며 녹음실에는 한동안 침묵이 자리했다.

라샤의 세 멤버는 모두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창현의 노래를 직접 들은 지금, 그녀들은 자신들의 모습이 얼마나 억지였고 생떼였는가를 알 수 있었다.

잠시간 그녀들에게 시간을 주었던 창현이 입을 열었다.

“이건 여러분에게 맞춰진 곡입니다. 그런 만큼 저보다 여러분이 더 잘 부를 수 있어요. 오 분 후에 다시 녹음을 시작할 테니 마음을 잘 가다듬어 주세요.”

그 말과 함께 녹음실을 나서는 창현.

미란이 그런 창현의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나… 한순간 완전 꽂혔어. 저런 실력이라니…….”

“응. 어린 나이라서 염려했는데 감수성도 풍부하네. 그런 가창력이라니.”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노래를 듣고 세룬이 충격을 받은 듯했다.

“나도 예상보다 너무 어리기에 의심했는데… 이건 의심할 여지도 없잖아.”

시린은 아직도 창현이 처음 보여주었던 그 임팩트에 헤어나오지 못한 채 얼굴만 붉히고 있었다.

부드럽던 그 미소에서 한순간 여자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라니.

그 차이에 시린은 큰 충격을 받았다.

데뷔 전부터 사장님에게 들어왔던 말이다. 너의 매력은 청순한 외모에서 도발적인 자태로 변하는 것이라고. 그 매력만 잘 활용하면 능히 가수로서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잖아.”

막연하게 감이 잡히지 않던 것에 롤 모델을 발견한 느낌.

게다가…….

‘그런 모습. 빠져들 것 같잖아.’

얼굴이 붉어진 게,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는 듯하다.


“후우!”

녹음을 끝마치고 곧장 학교로 등교한 창현이 숨을 길게 내쉬며 눈을 깜빡였다.

직접 시범을 보여준 것이 큰 영향을 미친 탓일까.

전혀 진전을 보이지 않던 녹음은 창현이 시범을 보인 직후 빠르게 진행되었다.

불만을 잠재우고 라샤 멤버들이 마음을 다잡은 것은 좋았으나 때는 늦은 밤이었다.

그래서 내일 녹음을 하고자 했는데 라샤 멤버들이 그걸 거부하고 녹음 속행을 원했다. 이유는 한 번 느낌이 왔을 때 단번에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심 창현도 마찬가지였기에 그녀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고 녹음을 속행했다.

그러자 <Laser>의 녹음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 되어, 늦은 저녁을 해결하고 약 다섯 시간 만에 녹음을 끝마칠 수 있었다.

“이것 참 대단한 누나들이네. 나도 밤샘 작업을 하면서 피곤한데.”

창현은 졸려서 감겨오는 눈을 비비며 내심 감탄했다.

작업을 하는 사이 창현은 라샤의 멤버들과 관계를 한단계 개선할 수 있었다.

자신보다 나이 많은 그녀들에게 누나라고 부르고, 자신을 친한 동생으로 여겨달라고 한 것이다.

라샤 멤버들은 얼굴에 환한 미소를 피우며 창현과 누나 동생 관계를 성립하였고, 창현에게 몇가지 조언을 더 구했다.

나이는 자신들보다 어리지만 창현이 엄청난 실력파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창현도 자신이 프로듀싱을 하는 가수가 잘 되길 바랐기에 그녀들의 물음에 성실히 대답하며 친분을 쌓아나갈 수 있었다.

“이 정도 속도라면 음반도 금방 낼 수 있겠어.”

불화도 있었지만 잘 진행되는 걸 느끼면서 창현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녹음으로 밤을 샌 탓에 잠자기도 뭐하여 라샤의 타이틀 곡에 살을 붙이고 마침내 완성을 했기 때문이다.

창현은 이 곡의 이름을 <Yesterday>라고 이름 지었다. 곡의 내용은 어제 벌어진 일을 회상하며 두근거리는 소년과 소녀의 달콤한 마음을 담았다.

다른 곡에서 느껴보지 못한 느낌은 창현에게 새롭게 다가왔기에 예감이 좋았다.

“대박날 수 있을 거야. 후후.”

작곡은 했지만 아직 작사는 하지 않은 상태였다.

창현은 아침 일찍 등교하여 공책을 펼친 뒤 고민하며 차근차근 <Yesterday>의 가사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두근거리는 마음. 달콤한 느낌.

그 기분을 떠올리면서 가사를 써나갔고, 점심시간이 다가올수록 다가오는 설레는 마음을 그대로 가사로 형상화 해나갔다.

그리고 점심시간 종이 울리는 순간, 창현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다 썼다.”

창현은 공책을 사물함에 잘 보관한 뒤 곧장 정자로 향했다.


점심시간, 학교 뒷마당 정자.

모두가 급식을 먹고 있을 시간에 주현은 정자로 나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어떻게 부탁을 하지.”

주현은 정자를 빙글빙글 돌며 고민에 빠졌다.

윤아의 간절한 부탁에 의해 승낙은 했지만 창현은 자신과 이제 만난 지 하루, 그것도 몇십 분 만난 게 고작이었다.

그런 창현에게 어떻게 부탁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주현이었다.

“날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창현의 도움으로 약점을 극복하고 한단계 더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고마움의 인사를 건네도 모자랄 판에 부탁을 곁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주현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약속은 했고, 윤아는 주현에게 있어 소중한 언니였는데.

“트레이너 언니의 말이라면 윤아 언니도 약점을 극복할 수 있을 거야. 부탁해보자. 성격도 좋아 보이던데.”

예민이 인정한 창현의 실력이라면 윤아의 단점도 능히 극복하게 해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문제는 창현이 그 부탁을 들어줘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거절 할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이 작은 만남마저도 어렵게 되지 않을까?

그걸 걱정하게 되니 오늘 이곳에 나올지도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과연 나올까? 안 나오면…….”

손목을 돌려 시간을 확인하니 아직 이른 시간이다.

12:30분에 점심시간이 시작하는데 지금은 12:40분이다. 급식을 먹는데 짧게는 10분, 많게는 30분까지 소요되니 더 걸릴 수도 있다.

순간 안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치자 주현은 흘러가는 1분 1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안 나오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무척 슬플 것 같다.

만난 것은 잠깐의 순간이지만 창현이 친근하고 편하다고 생각하는 주현이었다.

그때였다.

주현의 시선에 멀리서 다가오는 한 남자가 보였다.

자신보다 약간 작은 키에 무척 잘생긴 얼굴의 소유자.

바로 강창현이었다.

그가 오는 걸 확인한 주현은 왠지 모를 안도의 한숨과 함게 얼굴이 붉게 상기되는 걸 느꼈다.

창현은 정자에 미리 와 있는 주현을 보며 저도 모르게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주현 누…나?”

친근한 호칭인 누나라고 하니 왠지 모르게 쑥스러움이 들었다.

“안녕! 창…현아.”

주현은 그런 창현을 보며 미소 지은 채 인사했다.

“하하! 네. 그런데 오늘도 일찍 계시네요?”

“응? 아, 그게…….”

별 게 아닌 말임에도 부끄러워하는 주현.

창현을 일찍 만날 수 있을까 하여 바로 온 게 들킨 게 아닐까 하는 감정이 들어 얼굴이 화끈했다.

주현은 자신의 반응에 스스로 당황하며 말했다.

“아, 그, 그게 난 급식을 하지 않거든.”

급식이 안 좋다는 말이 있어서 급식을 하지 않고 도시락을 싸오곤 한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 고민에 빠져있던 나머지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상태였다. 미처 거기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아, 그렇군요. 저도 오늘 급식을 안 먹었거든요. 메뉴 좋아하는 게 없어서.”

그 이유가 아니건만 왠지 사실을 말하기가 쑥스러워서 창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거짓말을 했다.

같이 점심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에 동질감이 든 걸까? 주현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럼 우리 둘 다 점심을 먹지 않은 거네?”

“하하! 그러네요. 그럼 매점 가실래요? 제가 사드릴게요.”

“어, 응, 그래? 응. 고마워.”

엉겁결에 주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같이 매점을 가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친분을 쌓으면 윤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가 편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둘의 분위기는 영 어색했다. 서로 뭐라 말을 하여 어색한 분위기를 타파하고 싶었지만 첫 운을 떼기가 영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던 중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음을 걷던 창현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주현 누나, 혹시 소녀시대라는 걸 그룹 멤버신가요?”

같이 걸으며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던 주현이 창현의 말에 놀라며 반응했다.

“어? 어. 근데 어떻게 알았어?”

창현이 웃음을 지어보였다.

“하하, 그런 쪽에 약간 관심이 있어서요. 이쪽에 관심 많은 사람들은 아마 소녀시대에 대해 많이 알고 있을 걸요?”

아무래도 소녀시대 멤버 중 데뷔 전부터 활동하던 윤아로 인하여 상당한 관심을 받고 있고, 인터넷에 소녀시대에 대한 정보가 어느 정도 퍼져 있는 듯했다.

어제 자신이 SM연습생이란 말에 창현은 주현을 검색을 하게 되었고, 조금 조사를 하니 주현이 소녀시대의 멤버인 걸 알 수 있게 되었다.

창현은 주현을 보며 말했다.

“아홉 명이 각각 개성이 있다 보니 곧 데뷔해서 인기를 얻을 거에요. 혹시 그때 잘 되면 저한테 싸인 해주기에요?”

장난스런 창현의 표정을 보곤 주현은 작게 웃음을 지었다.

“쿡, 물론이지. 후배가 부탁하는데 내가 어떻게 거절하겠어.”

“하하, 고마워요, 누나.”

이야기를 하면서 걷다보니 매점에 도착했다.

매점에는 급식을 먹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를 사기 위해 모여든 학생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창현과 주현을 보고는 반색했다.

“저거 2학년 강창현하고 3학년 서주현 아니야?”

“그런 것 같은데? 서주현은 SM연습생이잖아. 왜 강창현이랑 같이 있는 거지?”

“독불장군 강창현이 다른 사람이랑 있다니, 뭔가 이상한데?”

“서로 사귀는 거 아냐?”

“설마 사귀겠어? 연예인 소속사에서 스캔들을 얼마나 엄중히 단속하는데. 아마 아는 사이겠지.”

창현과 주현을 보고 숙덕거리는 학생들.

그도 그럴 것이 주현은 일찍이 SM연습생으로서 귀여운 외모와 약간 소극적인 모습으로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무척 많았다. 데뷔를 하기 전임에도 벌써부터 팬 카페가 생겨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반면 창현은 학교에서도 독불장군으로 유명했다.

학업에 무관심 하면서 친구들에게도 무관심한 아이.

그런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 2학년 짱인 놈이 시비를 걸었다가 개박살이 난 사건은 아직도 학교에서 유명했다.

다소 차가운 분위기와 독불장군적인 모습에 많은 여학생들은 창현을 사모하고 있었다.

그런 학교의 인기인 두 명이 같이 다니니 화젯거리가 되는 건 당연했다.

주현은 자신과 창현을 두고 숙덕거리는 학생들의 모습에 쑥스러워서 매점에서 약간 멀찍이 떨어졌다.

그 사이 창현이 빵과 음료수를 사고 왔다.

“좀 멀리 계셨네요. 아, 쟤네들이 말하는 거 신경 쓰지 마세요.”

주현은 창현이 내미는 빵과 음료수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도 별로 신경 안 써. 걱정하지마.”

“그럼 다행이네요. 여기서 달리 먹을 곳이 없으니 정자로 가서 먹을까요?”

“그게 낫겠네.”

고개를 끄덕인 주현이 창현과 나란히 하고 다시 정자로 향했다.

그러면서 주현은 창현을 힐끗힐끗 보며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어느 정도 친해졌으니 윤아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은가?

정자에 도착하면 빵과 음료수를 먹어야 할 테고,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면 자칫 말도 꺼내보지 못할 수도 있다.

말을 꺼내려면 지금이 가장 좋은 타이밍이었다.

‘말하자, 주현아. 나답지 않게 왜 이렇게 버벅대는 거야.’

작게 결심하며 주현이 입을 열었다.

“저기 창현아. 부탁이 있는데…….”

목이 말랐던지 포도주스에 빨대를 꼽고 빨아들이던 창현이 주스를 삼키며 물었다.

“부탁이요?”

“응. 들어줄 수 있어?”

창현은 흔쾌히 대답했다.

“별로 어렵지 않은 거라면요.”

“응. 이건 내 부탁이라기보단 윤아 언니의 부탁인데…….”

순간 창현이 고개를 갸웃한다.

“윤아? 아, 설마 CF랑 M/V로 유명한 그 윤아요?”

‘역시 아는구나…….’

소녀시대의 관심이 대부분 윤아로 인하여 파생된 것임을 알면서도 창현이 윤아를 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씁쓸한 주현이었다.

“응, 그 윤아인데 내가 어제 보컬 트레이닝을 하다가 창현이의 도움으로 고음처리를 할 수 있게 되었거든.”

“그래요? 축하드려요.”

자신이 도움이 되었다는 말에 창현이 밝게 웃었다.

“고마워. 그런데 그걸 알고서 윤아 언니가 도움을 청해달라고 말하길래… 내가 말해보겠다고 했거든.”

“제가요? 흐음!”

주현의 말에 창현이 고민에 빠졌다.

어제부터 라샤의 녹음을 시작한 탓에 요즘은 조금 바쁘다.

생각에 빠져있던 창현이 결심을 굳힌 듯 입을 열었다.//

“그게… 요즘 시간이 좀…….”

거절은 아니다. CF로 유명한 윤아는 한 번쯤 만나보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니까. 다만 요즘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 그렇구나…….”

거절과도 같은 창현의 말에 주현의 어깨가 푹 내려간다.

‘윤아 언니한테 어떻게 말하지?’

이 소식을 윤아에게 전할 때 실망할 걸 생각하니 기운이 쭉 빠지는 주현이었다.

눈에 띄게 처지는 주현의 모습에 창현의 표정이 급변한다.

자신의 말에 실망하는 것이 한눈에 보인 것이다.

창현의 표정이 난처해진다.

‘이것 참. 라샤의 녹음 때문에 시간 내기가 힘든데.’

<Laser>는 운이 좋아 하루만에 녹음을 끝낼 수 있었지만 다른 곡들이 며칠을 붙잡을지 모른다.

불규칙한 만큼 더욱 약속을 잡기 힘들다.

그 사이 정자에 도착했고, 창현과 주현은 묵묵히 빵을 먹으며 어색한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빵을 먹는 내내 시무룩한 주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창현은 그게 자신의 탓인 걸 알아 마음이 아팠다.

‘난감하네.’

볼을 긁적이며 생각에 잠긴 창현.

풀 죽은 주현을 차마 보고 있을 수 없어 어렵게 말을 꺼낸다.

“진짜 미안해요, 누나. 정말 바쁜 일이 있거든요.”

“…….”

창현의 말에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는 주현. 내심 창현과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거절을 당해서 충격이 꽤 큰 듯했다.

그걸 본 창현이 재빨리 말을 꺼냈다.

“아, 그럼 이건 어때요? 누나, 휴대전화 있죠?”

“핸드폰? 응, 있지…….”

주현은 핸드폰이란 말에 반응했다.

묘한 기대감이 생겼다.

무슨 일로 그걸 묻는 걸까?

“그럼…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그럼 제가 시간이 될 때 연락을 드릴게요.”

“해, 핸드폰 번호를?”

“네. 아무래도… 좀 그렇죠?”

눈에 띄게 당황하는 주현을 보며 창현도 머리를 긁적였다.

이건 좀 무리였나…….

그렇게 생각할 때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주현이 주섬주섬 교복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더니 창현에게 내밀었다.

승낙의 표시였다.

창현의 표정이 밝아지며 핸드폰을 받아든다.

“고마워요, 누나. 제가 녹… 아니, 용무를 마치면 꼭 연락 드릴게요.”

그러면서 주현의 핸드폰으로 자신의 핸드폰에 전화를 걸었다.

♪♬♩

그러자 창현의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Go&Stop>.

핸드폰이 진동 상태가 아닌 걸 알고는 창현은 아차,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이 알아볼 리도 없건만 지레 뜨끔한 것이다.

그때, 주현이 반색하며 창현에게 말했다.

“와! 창현이 너도 벨소리가 <Go&Stop>야?”

“네? 아, 네. 아무래도 매너모드를 깜빡했나봐요.”

이미 들었으니 부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자 주현이 자신의 핸드폰을 가리켰다.

“나도 벨소리가 <Go&Stop>거든.”

그 말에 창현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에? 주현 누나도요?”

“응. 한 번 해봐.”

창현은 묵묵히 주현의 핸드폰 매너모드를 풀고 자신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

전화 걸기가 무섭게 울려 퍼지는 <Go&Stop>.

꽤 길게 가는 걸로 보아 파트 부분이 아닌 전체를 다 다운 받은 듯했다.

전화를 끄며 창현이 물었다.

“누나, <Go&Stop> 좋아하시나 봐요?”

주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Go&Stop> 멜로디가 중독성 있고 날 열정적이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서 좋아해.”

“그, 그래요?”

자신이 만들고 불러서 그런 탓일까?

주현의 칭찬이 무척 쑥스러운 창현이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주현에게 이상하게 비쳐졌나 보다.

“근데 왜 갑자기 쑥스러워하는 거야?”

“아, 아니에요.”

주현의 말에 퍼뜩 정신이 깨는 걸 느끼며 창현은 주현의 핸드폰에 자신의 이름을 저장시킨 뒤 내밀었다.

“저장 했어요.”

그때 예비종이 울린다.

창현은 빵 봉지와 주스 팩을 쓰레기통에 버리며 주현에게 말했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시간이 되면 연락드릴게요.”

“응 그래.”

사라지는 창현의 뒷모습을 쫓다가 주현이 핸드폰을 살며시 열어본다. 그리고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된 창현의 이름을 찾아보았다.

강창현.

멋대라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름 저장이었다.

하지만 주현은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꼈다.

‘번호 알아냈다.’

어제보다 좀 더 가까워진 느낌.

주현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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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시즌2 시작!▲▲▲▲▲ +5 15.04.17 5,425 65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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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마음을 울리는 음악 34장-36장 +8 15.04.16 9,524 189 322쪽
11 마음을 울리는 음악 31장-33장 +8 15.04.16 10,355 261 345쪽
10 마음을 울리는 음악 28장-30장 +5 15.04.16 10,659 260 277쪽
9 마음을 울리는 음악 25장-27장 +7 15.04.16 11,040 267 233쪽
8 마음을 울리는 음악 22장-24장 +4 15.04.16 10,924 261 198쪽
7 마음을 울리는 음악 19장-21장 +4 15.04.16 11,492 270 216쪽
6 마음을 울리는 음악 16장-18장 +5 15.04.16 11,544 242 163쪽
5 마음을 울리는 음악 13장-15장 +5 15.04.16 14,536 297 237쪽
4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장-12장 +8 15.04.16 13,737 352 171쪽
3 마음을 울리는 음악 7장-9장 +10 15.04.16 14,552 362 142쪽
2 마음을 울리는 음악 4장-6장 +11 15.04.16 16,838 421 120쪽
» 마음을 울리는 음악 프롤로그-3장 +47 15.04.16 29,902 545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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