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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번 님의 서재입니다.

마음을 울리는 음악

웹소설 > 작가연재 > 팬픽·패러디, 현대판타지

김현우
작품등록일 :
2015.04.16 13:27
최근연재일 :
2015.06.01 17:02
연재수 :
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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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1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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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0쪽

마음을 울리는 음악 67장-69장

DUMMY

제67장 독창적 안무 짓기




본격적으로 6월에 들어서고 차츰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자 창현은 회사로 가는 날이 잦아지기 시작하였다.

AA엔터테인먼트에 가는 이유는 간단했다. 본격적으로 앨범 제작을 시작함과 동시에 안무를 짜기 위함이었다.

곡이 준비된 상황에서 솔로 무대로서 강렬한 카리스마를 심어주기 위해서는 그만의 독특한 안무가 반드시 필요하였다.

창현 특유의 시원함과 더불어 감정 전달을 그대로 살리고, 안무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안무를 펼치는 것이 관건이니 만큼 석규가 고용한 댄스 안무팀의 조언을 받아 매일 같이 안무를 짜기 바빴다.

이미 드라마도 촬영이 막바지에 가까워지고 있는 실정이었기에 앨범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었다.

“하지만 좀 힘이 드네.”

세상 사람들은 그를 보고 뭐든지 잘한다고 말을 하지만 안무를 짜고, 그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창현은 내심 자신이 춤에 대한 재능이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안무팀에서는 창현의 재능을 높게 샀지만 본인 스스로는 그렇게 판단했던 것이다.

창현의 전체적인 몸 밸런스는 완벽에 가까웠다. 무공을 익히고 매일같이 명상을 하기에 그의 감각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발달되어 있었고, 신체 상태 또한 오밀조밀하게 단단히 근육이 압축되어 있었기에 춤을 추는데 적합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실제로 탁월한 반사 신경을 지니고 있어서 가르쳐주는 춤을 곧잘 따라하고는 했으니까.

언제고 태연과 함께 오락실에 갔을 때 펌프 나이트매어를 클리어 한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스스로 재능이 없다는 것을 느낀 것은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센스’의 결여였다.

본능적으로 어떤 춤을 출 것인가를 캐치하여 자유롭게 몸을 맡기는 형태의 춤을 구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자신에게 춤에 대한 재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해진 안무를 충실하게 따라할 수는 있지만 창조적인 안무를 해낼 수 있는 건 아니었나 보다.

“그걸 보면 마냥 불공평하지는 않단 말이지.”

내심 춤에 대한 재능도 있다면 모든지 다 해먹을 수 있을 것이란 설렘과 동시에 일말의 불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타 장르로 침입하는 것이니 만큼 그로서도 조심할 면이 없지 않아 있는 셈이었다.

지금 창현은 MR을 틀어놓고 한창 고안한 안무를 펼쳐내고 있었다. 이미 의뢰를 하는 순간, 대략적인 안무를 짜놓은 상황이었기에 그것을 익히는 것은 금방이었다.

그의 솔로 무대를 보는 것은 동생이라는 벼슬에 당당히 올라있는 지영이었다.

그녀는 연신 몽롱한 시선으로 창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트레이닝복을 입은 평범한 모습에 지나지 않았지만 땀을 흘리며 춤을 추고 있는 그의 모습은 그야 말로 최고 그 자체였다.

‘누구 오빠여서 저렇게 멋진 걸까?’

답은 자신의 오빠였지만 지영은 그렇게 도취되어 있었다. 현이라는 오빠를 둔 자신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여동생일 거라 자부하고 있었다.

마치 이모 팬들이 바라보듯 창현을 바라보던 그녀는 창현이 춤을 끝맺은 채 지영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어때, 지영아?”

“완전 최고야, 오빠!”

“칭찬은 고마워. 하지만 솔직하게 느낀 점을 말해주면 안 될까?”

칭찬이 지겹다는 것이 아닌, 창현 스스로가 무언가 한 가지 부족하다는 것을 은연중 느끼고 있었기에 안무를 보여주되 가장 가까이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지영에게 춤을 선보인 것이었다.

그녀라면 분명히 미진한 점을 짚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음! 솔직하게 느낀 점?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난 오빠가 이렇게 춤을 잘 출 줄 몰랐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우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몰입하게 만드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면서 창현이 추었던 안무를 떠올려보는 지영이었다. 그러다가 순간 멈칫하였다. 창현이 춘 안무를 떠올리는 순간 딱히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마치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왔다가 자연스럽게 흘러나간 느낌이랄까?

‘그러고 보니…….’

창현이 왜 자신에게 춤을 보였는지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기에 자신에게 춤을 보여주었던 것이고, 칭찬보다는 그가 느낀 점을 자신이 느끼길 바라면서 춤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바람처럼 지영은 창현의 춤에서 미진함을 즉각 발견해낼 수 있었다.

딱히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멈칫하는 그녀를 보며 창현이 눈을 번뜩이고는 묻는다.

“뭔가 생각난 거야?”

“으응? 음! 이건 내 생각일 수도 있는데… 오빠가 바라는 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뭔데?”

“오빠의 안무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레 몰입하게 만들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기억에 각인된다는 느낌이 적어.”

안무팀에서 만든 춤은 훌륭한 것이었다. 더 이상 포인트를 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그것으로도 각인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된다는 것일까.

하지만 무언가 깨달음이 올 듯한 느낌이 들었기에 지영을 재촉한다.

“무슨 말인지 자세히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

“으음! 기존의 가수들이 추는 춤이라면 분명 최상위 레벨에 속할 테지만 팬들이 오빠에게 거는 기대가 있잖아? 그것을 감안하면 조금 전형적인 느낌이 든다랄까? 열심히 준비한 것 같은데 이렇게 말하게 돼서 미안해…….”

자신이 말해놓고 그의 노력을 폄하하는 느낌이 들었는지 재빨리 사과하는 지영이었다.

하지만 창현은 무언가 깨달은 것이 있었기에 멍한 표정을 짓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말한다.

“아니야, 지영이 네 덕에 뭔가 생각이 난 것 같아. 난 혼자서 생각 좀 하도록 할 테니 쉬고 있도록 해.”

“으응.”

고개를 끄덕이는 지영을 놔두고 창현은 빠르게 안무실을 벗어나 녹음실로 향한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지영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겨들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거는 기대… 포인트 안무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는 건 그 기대치가 높다는 것. 그렇다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움직임을 보여주어야 하나? 아무도 할 수 없는 움직임이라… 아무도 할 수 없는 움직임…….”

무언가 잡힐 듯하면서 잡히지 않는 것이 창현을 괴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수확이라 생각하였다.

더 고민하면 잡힐 듯했지만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는 걸 보아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라 생각하며 창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때, 지영이 녹음실 안으로 들어오더니 그를 부른다.

“오빠, 아빠가 부르시는데?”

“음? 아버지가?”

“응! 스케줄에 관련된 거라고 하시는데 가봐야 할 것 같아.”

“알았어.”

고민을 방해한 게 아닐까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지영을 보며 빙긋 웃음을 지어보인 창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사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마 전할 이야기가 있는데 자신이 생각할 시간을 주느라 그런 것이리라.

곧장 사장실 안으로 들어간 창현은 석규를 보며 인사를 했다.

“부르셨어요, 아버지?”

“그래, 안무 연습을 하고 있었다고?”

“안무 연습이야 하고 있는데… 뭐라고 해야 할까. 딱 하나 걸리는 점이 있어서요. 그게 걸려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잘 잡히지가 않네요.”

“지영이의 조언을 들어도 말이냐?”

창현의 극성팬인 만큼 근접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지영의 말을 듣고도 고칠 수 없다면 제법 심각한 사안이었다.

염려 섞인 어조로 묻는 석규의 모습에 창현이 피식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지영이 덕분에 화두는 잡았죠. 하지만 그 이상은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인 것 같아요.”

“아직 시간은 있으니 급할 이유는 없겠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무슨 일로 부르신 거예요?”

안무에 관련된 것은 석규가 지원을 해주었으니 창현 스스로 해결할 문제였다. 그렇기에 그쯤에서 이야기를 멈춘 채 창현은 자신을 부른 용건을 물었다.

그 말에 석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에게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흠! 우선 드라마로 인해 멈췄던 CF를 다시 할 생각인데 말이다.”

“CF요? 좋죠. 아버지가 고르셨다면 의심할 필요가 없지요.”

드라마가 끝나면 앨범에 주력해야 하지만 하나만 몰두하게 되면 쉽게 고민이 풀리지 않는 면이 많았기에 다른 일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구나. 그럼 CF는 조만간 콘티가 나오면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도록 하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였기에 신속하게 처리가 가능했다. 이것이 광고주가 현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소속사가 연예인과 협력하는 과정이 상당히 오래 걸리는데 반해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핫 라인이 있어서 결정을 내리는데 빨랐으니까.

창현이 석규를 믿어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CF이야기를 끝맺은 석규는 창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른 하나는 네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달라는 섭외 요청이다.”

“예능이라면 드라마가 끝난 뒤 나가기로 한 걸로 아는데요?”

창현은 드라마가 끝나고, 종영 파티를 한 뒤에 S본부에서 하는 야심만만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한 상황이다. 그런데 다른 예능에 또 출연하라는 것인가? 예능 출연을 꺼려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태까지 소환했던 것을 감안하면 제법 빠른 페이스였다.

“기획 의도가 무척 좋아서 말이다. 게다가 너의 도움이 전폭적으로 필요한 것이기도 하고.”

석규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보통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예능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것이 제법 재미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창현이 호기심 어린 어조로 물었다.

“뭔데 그러시는 거예요?”

궁금증이 담긴 그의 물음에 석규가 씨익 미소를 짓더니 말한다.

“널 섭외하려는 예능 프로그램은 다름 아닌 <무한도전>이다.”

“무한도전이라고요? 갑자기 거기에서 왜…….”

무한도전이 언급되자 깜짝 놀라는 창현이었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초로서 토크 쇼 개념의 예능 판도를 완벽하게 뒤바꿔버린 프로그램이기도 하니까.

거기에 자신을 섭외하려 한다니, 의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원래 예능 프로그램에서 네가 섭외 순위 1위 아니더냐? 뭘 그거 가지고 놀래?”

“아, 그래도요. 아버지한테 듣기로는 무한도전에서 섭외 들어왔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했으니까요.”

창현이 가장 즐겨보는 예능 프로그램이 무한도전과 1박2일이니 만큼 그 부분에 대해서는 슬쩍 물어보고는 하였다. 하지만 두 프로그램 모두 고정된 MC들로 내용을 진행하기에 창현의 필요성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몸값 비싸고 섭외하기 어려운 그를 섭외 할 리가 없다.

“흐음! 그랬나?”

“네, 그랬죠. 어쨌거나 무한도전에서 섭외 요청이 들어왔다는 것은 상당히 의외네요. 예전에 들어온 게 아니라 근래 들어온 것이니 만큼 곧장 말씀해주신 것 아닌가요?”

정확하게 꿰뚫어보는 그의 말에 석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얼마 전에 섭외 요청이 들어왔지.”

“고정 출연 제의는 아닐 테고, 무언가 프로젝트를 준비하는데 제가 필요한가 보죠?”

무한도전을 제법 시청했는지 정확하게 꿰뚫어본다.

“…….”

괜히 거창한 말들을 준비하던 석규가 한순간 침묵하게 되어버리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틀렸어요? 흐음!”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자신이 틀렸는지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 창현. 그 모습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석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네 말이 모두 맞아서 그런 거다. 어떻게 섭외 요청이 들어온 것을 전부 꿰뚫어 보는지. 하기야, 널 고정 MC로 섭외한다는 발상을 하는 사람이 웃기지만.”

고정적으로 나오는 것은 사람들에게 있어 친근감을 심어줄 수 있지만 반대로 이미지가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 창현 같은 경우 음악뿐만 아니라 연기로 다른 일면을 보여주었지만 예능 프로그램 같이 망가지는 면모를 보여주어야 하는 곳에 고정적으로 나오는 것은 그의 이미지에 좋지 않았다.

당연히 고정 제의가 들어와도 받아들일 리 없고, 창현 또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건 아버지가 저번에 한 번 이야기 해주셨잖아요. 그래서 기억하고 있는 거죠.”

“그랬나? 이것 참, 나는 왜 기억하지 못하는지. 아무래도 늙긴 늙었나보군.”

자신이 이야기 해놓고 괜히 창현의 예리한 말에 감탄사를 터뜨리던 석규는 무안한 표정을 지우고는 섭외 요청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나가기 시작했다.

“이번에 내 선에서 보류하지 않은 채 네게 즉각 말하는 이유는 무한도전 측의 요청을 받아들일 경우 7월에 곧장 촬영에 들어가야 하고, 네가 준비를 해야 하기에 그렇다. 게다가 취지 또한 나쁘지 않으니 한 번쯤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렇고.”

“뭔데 그렇죠?”

무엇이기에 취지가 좋아서 곧장 자신에게 말을 하려는 걸까. 그때쯤이면 한창 앨범을 준비하는 시기여서 바쁘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이렇게 말을 할 정도라면 놓치기 아까운 것인 듯하였다.

“음! 아무래도 7월에 촬영하면 방영은 보름 후 정도에 한다고 하더구나.”

“내용은요?”

“아, 내용은 기부 차원에서 콘서트를 연다고 하던데? 그곳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은 제작비를 제외한 전액을 기부하기로 하고 말이다.”

듣는 것만으로도 취지가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기부를 하고 있지만 그것은 벌어들이는 금액의 일부일 뿐이니까. 그러고도 사회적으로 많은 공헌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약간의 찜찜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석규의 말에 귀가 쫑긋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심 찬성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을 느끼며 창현이 석규에게 물었다.

“그럼 제가 그곳에서 할 역할은 뭔가요?”

대충 짐작은 갔지만 괜히 헛다리 걸치지 않을까 싶어 석규에게 묻는다.

그 물음에 석규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한다.

“뻔하지 않겠느냐? 무한도전 측에서는 네게 PD 역할을 맡기려는 것이다. 네가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지 않고, 연기로 인해 모습을 보이지만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점이 많으니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조금이나마 그 실체를 밝혀보려는 셈이겠지.”

“그런다고 제게 이득이 있을까요?”

마음이 기울고 있지만 자신은 쉽게 결정을 내리는 위치가 아니었다.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새로운 면을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자칫 잘못하다가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수 있는 노릇이니까.

“있고말고. 우선 좋은 일에 참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의 호감을 사기에 부족함이 없지. 더군다나 무한도전 프로그램 자체가 상당한 마니아들을 양성하고 있는 만큼 너의 이미지를 좋게 어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것은 후에 낼 앨범에 좋은 영향을 끼칠 테지.”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미칠 악영향도 존재하지만 그 부분은 창현이 실수를 할 경우 끼칠 수 있는 부분이다. 게다가 자칫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슈 마케팅을 위해 그대로 내보내는 것이 아닌, 확실한 편집을 약속했기에 석규는 그 부분을 믿기로 결정을 내린 상황이었다.

“좋은 영향이라…….”

마음이 기울고 있는 듯하지만 창현은 아직까지 망설이고 있었다. 자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재석이 있기에 찬성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안무로 인해 머리가 어지러운 측면도 있고, 무엇보다 친한 것을 바탕으로 자신이 실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일말의 염려도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 석규가 나선다.

“결정적으로 네가 해줘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뭐죠?”

“무한도전의 메인 MC인 유재석 씨가 네 첫 팬 미팅 사회를 맡아주지 않았더냐?”

“아…….”

석규의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흘리는 창현이었다.

미처 깨닫고 있지 못했지만 그 부분에서 신세를 끼친 적이 있던 것이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인기도가 무척 높고 첫 팬 미팅이니 만큼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AA엔터테인먼트나 창현의 입장에서 재석이 사회를 맡아준 것은 무척 고마운 일이었다. 그의 존재 하나로 인해 팬 미팅 자체가 상당한 안정감을 갖고 무사히 치러질 수 있었으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 석규는 늘 고마움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번 기회를 좋게 삼아 창현의 이미지도 높이고, 재석에게 갖고 있던 빚 또한 청산하려는 생각이었다.

창현 또한 그 부분은 무척 고마워하던 것이기에 확실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알겠어요.”

“하겠다는 이야기냐?”

“네, 약간의 주의만 기울이면 제게 악영향보다 좋은 점이 많잖아요? 리얼 버라이어티라고 해서 약간 두려움을 갖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말을 들으니 해야겠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드네요.”

끊임없이 이슈를 만들어내는 무한도전이고, 주변에 산재한 여러 가지 요소 때문에 망설이던 차였지만 석규의 말이 결정적이었다.

“그래, 리얼 버라이어티라서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편집 문제도 확실하게 약속을 받았고, 네 성격 또한 믿고 있는 부분이니까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네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준다면 팬들도 더욱 친근감을 느낄 것이다.”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더욱 힘을 내서 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창현은 끊임없이 용기를 복돋아주는 석규의 말을 듣고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해보도록 할게요.”

“그래, 그럼 주의할 사항과 네가 준비해야 할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마.”

수락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석규는 창현에게 설명을 하기 시작하였고, 그 설명을 들으며 창현은 눈을 살짝 크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짓다 이내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창현의 무한도전 출연이 확정되었다.


석규와 이야기를 마친 창현은 지영과 함께 거리로 나왔다.

정체를 들킬 수도 있지만 지영이 집에 같이 들르자는 이야기에 못 이기는 척 함께 밖으로 나온 것이다.

모자를 비롯하여 헤드셋을 둘러 요란하지 않게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에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과 비교적 쉽게 묻힐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힐끔거리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설마 현이 거리를 마음껏 활보할까 싶은 일말의 의심이 그의 정체를 들키지 않게 해주고 있었다.

“오빠랑 같이 가니 너무 좋다.”

“갈수록 어리광만 늘어나기는. 그렇게 하다가 시집은 어떻게 가려고?”

갈수록 결혼 시기가 늦어지는 지금 시대에 할 말은 아니었지만 자신에게 필요 이상으로 의존하는 지영을 보면 조금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내 일은 알아서 할 수 있다고! 그러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두 살 차이인데 마치 부모가 자녀를 걱정하는 듯한 창현의 반응이 싫은 듯 표정을 찌푸리는 지영이었다.

그 말에 창현은 피식 웃었지만 자신의 말을 철회하지는 않았다.

“네가 그렇게 말해도 나는 걱정이 된다.”

“그렇게 말하면 어쩔 수 없지, 뭐.”

그렇게 말한 지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녀가 토라진 건가 싶어 창현은 힐끗 바라보다가 말없이 걷기 시작한다.

잠시 걸음을 옮기다가 지영이 무언가 떠오른 듯 창현에게 넌지시 묻는다.

“오빠,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요즘 소녀시대 언니들이랑 자주 만나?”

지영의 노림수는 바로 이것이었다. 놀이공원에서 창현에게 특별한 마음을 품고 있는 듯한 수연과 윤아의 모습을 보았기에 슬쩍 견제를 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으니까.

다행히도 창현은 아직까지 그녀들에게 특별한 마음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수연이나 윤아 모두 매력을 갖추고 있는 여인들이었기에 자칫 잘못하다 그대로 말려들어버리는 수가 있었다.

수연 같은 경우 창현의 환심을 사기 위해 샌드위치와 김밥까지 싸올 정도였으니까.

그녀가 지독한 요리치라서 다행이었지, 자칫 김밥마저 맛이 뛰어났다면 창현은 그녀에게 큰 호감을 품었을 것임이 분명했다.

‘앙큼한 녀석도 함께 하고 있고.’

수연의 동생인 수정을 떠올리며 지영이 경계의 기색을 띠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여유가 사라져 허둥지둥대지만 제3자가 도와주게 되면 상당히 골치 아프게 된다.

영악한 면모를 숨기고 소녀시대 언니들에게는 순진한 모습만 보인 수정은 결코 만만히 볼 적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쯤에서 단단히 보호막을 걸어둘 필요성이 있었다.

“자주 만난다라… 흐음! 글쎄? 저번에 놀이공원에 간 걸 묻는 건 아닐 테고… 다른 걸 묻는다면 촬영장에서 윤아 누나를 자주 만나는 것 정도? 종종 다른 누나들도 응원차 찾아오고는 하니까. 그리고…….”

순간 태연과 만났던 것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그녀가 자신에게 하던 여러 가지 교육(?)들이 떠오르자 한순간 열기가 확 치미는 것을 느꼈다.

‘이러면 안 되지.’

불순한 생각을 품는 자신을 다스리며 창현이 순간 멈칫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지영이 의아한 기색을 띠며 묻는다.

“그리고?”

“그리고… 별로 없네? 아무래도 드라마가 마지막으로 향하고 있고 신곡 작업과 여러 가지를 병행하려니 만날 시간이 별로 없다.”

“그렇구나…….”

창현이 솔직히 대답하지 않을 점도 있었지만 적어도 그 대답을 들은 지영은 한 줄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꽤나 심각하게 발전된 경우가 아니라면 둔한 창현은 있으면 있다고 할 테니까.

정말 심각한 경우가 존재하여 창현이 자체 삭제를 했으리라 생각하지 못한 채 말이다.

‘이제 써니 언니를 적극적으로 밀어주면…….’

어차피 순규는 창현에게 크게 마음이 없다고 했으니 그녀를 앞세워 창현과 관계를 진전시키게 하면 알아서 줄줄이 떨어져 나갈 것이라. 상상만 해도 즐거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괜히 기분이 좋아진 지영은 창현의 팔을 잡아끌며 말한다.

“가자, 오빠.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것 같다?”

“내가 뭘! 난 원래 좋았다고.”

속으로 희희낙락하는 지영이었다.

자신으로 인해 양의 탈을 쓴 여우 순규가 회심의 한방을 서서히 키워가고 있는 것을 모른 채.


창현의 무한도전 출연 소식은 대외적으로 비밀이 되었다. 동행하는 기자들로 인해 늘 먼저 소식이 새어나가고는 하지만 우선 지금 언급하여 쓸데없는 기대감을 조성할 이유가 없기에 비밀로 하기로 하였다.

“할 일은 날로 늘어나는데 해결되는 건 별로 없군. 후우.”

지영과 함께 집으로 가서 지선이 해주는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온 창현은 포인트 안무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을 해보았지만 뚜렷하게 결정 나는 것이 없었다.

하기야 그것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면 골머리를 앓을 이유가 없겠지만.

어쨌거나 포인트 안무를 생각하느라 창현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딱 하나, 딱 하나면 될 텐데.”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딱 하나만 해낼 수 있다면 자신의 춤은 그걸로 대변될 수 있을 테니까. 안무팀에서 짠 춤들도 훌륭한 것이었기에 자신만 해낼 수 있는 것을 하나만 해내면 되었다.

딱 하나라고 고정 지어서일까.

그것 때문에 더욱 힘든 느낌이었다.

명상을 하여 머리가 맑아진 상태에서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상당한 시간을 들여 고민을 해볼 문제인 듯 싶었다.

“후우! 촬영 갈 준비나 해야지.”

결국 창현은 고개를 저으며 포기를 선언한 창현은 옷을 차려입고 시간을 맞춰 아래로 내려간다. 오늘은 드라마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자 벤이 이미 자리하고 있었다.

창현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자 문이 덜컹 열리며 세희가 말한다.

“늦지 않았네.”

“제가 언제 늦은 적이 있던가요?”

살짝 미소를 지은 창현이 벤에 탑승하자 곧장 촬영장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세희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걱정 어린 목소리로 그에게 묻는다.

“꽤 피곤해 보이는데?”

“그래요? 흐음! 수면은 충분히 취했는데.”

씻을 때도, 옷을 입을 때도 보았지만 자신의 혈색은 나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들을 정도가 아니었으니까.

고민이 있기는 했지만 그는 프로였기에 확실하게 수면 취할 것은 취해주었다.

창현이 자신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하자 세희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몸 상태가 피곤해 보이기보다는 표정에 그런 기색이 서려 있어서 말이야.”

“표정에 드러난다고요?”

“응.”

“흐음…….”

전혀 눈치 채지 못했던 일이기에 세희의 말에 의외였고, 신기하다는 생각이 드는 창현이었다. 매니저라서 자신을 유심히 살펴서 그런 걸까. 남들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을 그녀가 종종 알아내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고는 한다.

“고민이 좀 있긴 해요."

“어떤 거기에 우리 창현이를 괴롭히는 걸까?”

은근한 어조로 묻는 세희의 모습에 창현이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창현이가 뭐에요. 닭살 돋는데요?”

“친근함의 표시라고 해둬. 네 매니저로 있는지 꽤 됐는지 아직도 적응하지 못한 거야?”

“목적이 있을 때만 보이는 모습이라서 그렇죠.”

“뭐라고?”

창현의 농에 세희의 눈이 날카로워지려 하자 그는 속으로 이크! 하며 자신의 고민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한다.

“별로 특별할 것 없는 고민이에요. 안무 때문에 고민이 좀 있었거든요.”

“어떤식으로? 내가 보기에는 훌륭하던데.”

세희도 창현의 새 앨범 안무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녀가 생각하기로는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함 그 자체였다. 창현은 스스로 춤에 대한 재능이 없다고 말하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개인적인 주장일 뿐, 다른 사람들은 그의 춤 실력에 놀라고는 하니깐. 천부적인 센스가 없으나 그는 주어진 춤들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당장 앨범을 낸다 해도 그의 신드롬이 일어날 정도라 생각했건만 무엇 때문에 고민을 하는 걸까.

“포인트 안무가 좀 부족하다 하더라고요. 뭐라고 해야 할까, 전체적으로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다 보게 되면 막상 떠오르는 것 없이 흐릿하다고 해야 할까요? 저도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다고 생각해서 고민을 하게 된 거고요.”

“그래? 흐음! 내가 보기에는 훌륭하던데…….”

흠 잡을 곳 없이 훌륭한 춤에 포인트가 부족하다니? 이상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다 세희는 순간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창현의 안무를 보고 훌륭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던 것이다.

그의 안무를 보고 단순히 훌륭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다니? 찬사의 말 종류는 무척 많지 않은가. 그런데 훌륭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아!”

무슨 뜻인지 세희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창현의 안무는 전체적으로 보면 훌륭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지만 막상 떠올리려고 하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는 느낌 밖에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특정 안무가 사람들에게 강하게 어필하여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인식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세희는 창현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충분히 그럴 수 있겠네. 무슨 뜻인지 알겠어.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구나.”

“누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응, 그럴 수 있네. 확실히 대단하지만 창현이 너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만큼 사람들은 특별한 걸 원할 것이라 생각해. 그러니 좀 더 자극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류의 안무가 하나쯤은 필요한 것일 테고.”

“그렇군요.”

그녀까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틀림없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안무였다.

너무 화려하여 전체적인 밸런스를 깨지 않되 한 번 본 사람으로 하여금 각인하게끔 만드는 그런 안무.

생각할수록 미궁으로 빠져드는 듯한 기분이었기에 창현의 표정이 미미하게 일그러진다.

그 모습에 세희는 자신이 도움을 주기는커녕 그의 고민에 기름을 들이부은 것 같았기에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하였다.

“미안, 고민 해결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부채질해서.”

“아니에요. 제가 고민하던 것은 저도 미비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거든요. 누나의 의견까지 들으니 확실해지는 것 같아서 오히려 후련하네요. 그와 반대로 포인트 안무에 관련된 것은 이제부터 고민해봐야 할 문제지만요.”

“미안.”

“괜찮다니까요.”

거듭 사과하는 세희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는 창현이었다.

하지만 그 웃음이 세희로 하여금 더욱 미안한 감정을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촬영장에 도착한 창현은 김지환 감독에게 먼저 인사를 한 뒤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은 창현을 반겨주며 본격적으로 촬영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막바지로 가는 관문이니 만큼 방심하지 말고 가자고.”

“네!”

드라마는 순조로이 시청률을 지키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렇기에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감독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배우들도 한 목소리를 내며 진지하게 연기에 임해나갔다. 연기가 어설플 경우 김지환 감독의 거침없는 지적이 들어왔기에 모두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했다.

그에 반해 한 차례 슬럼프 이후 전보다 훨씬 나아진 연기를 선보이는 창현은 대부분 3번 이내에 장면 촬영을 끝냈다.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경지를 넘어서 다른 사람의 연기력마저 끌어내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니, 가히 장족의 발전이라 할 만했다.

더군다나 안무에 대한 고민이 있는 상황이 아니던가. 그 고민을 떠안고도 완벽하게 연기를 임하고 있는 그는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세 번째 장면 촬영을 끝낸 창현이 막 숨을 몰아쉬며 세트장을 벗어날 때, 그의 뒤에서 한 줄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현아, 안녕!”

“어라, 윤아 누나. 조금 일찍 오셨네요?”

윤아의 촬영은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후부터 있었다. 그런데 곧 있으면 점심시간이니 대충 한 시간 정도 일찍 온 셈이다. 제법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 시간이나 일찍 왔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었다.

“응! 여기 점심이 먹고 싶어서 일찍 왔지.”

도시락을 짜잔! 하고 내미는 윤아를 보며 창현이 헛웃음을 흘렸다.

“왜요, 소녀시대 누나들 내에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많지 않군요.”

태연이 잘한다고 하나 가장 바쁜 멤버 중 한 사람이었고, 다른 멤버들의 요리 수준은 식재료의 맛을 후퇴시키지 않으면 다행인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수연의 샌드위치가 가히 혁명적인 맛을 냈지만 김밥에서는 폭탄이었기에 반반의 확률을 걸고 모험을 하기에는 이르렀고.

SM엔터테인먼트에서 고용한 아주머니가 밑반찬을 해놓는다 하더라도 다른 반찬을 해내지 못하니 제대로 된 식사가 이루어질 수 없으리라.

“응. 그래서 그냥 일찍 와버렸어. 아, 그리고 오늘 스케줄이 비어서 같이 왔어.”

윤아는 깜빡 잊었다는 듯 주위를 환기시키자, 그녀 옆에 서 있던 여인이 손을 들어 인사했다.

“안녕, 창현아.”

“네, 네.”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던 창현의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윤아와 함께 온 여인을 보고는 눈을 빛내는 창현이었다.

윤아와 함께 온 것은 다름 아닌 효연이었다.

번갈아 가면서 오고는 하더니 오늘은 효연과 함께 온 듯하다.

“언니, 여기 도시락 맛있어요, 먹어봐요.”

“숙소 밥이 더 낫지 않으려나? 스케줄이 없어서 윤아 널 따라오기는 했지만…….”

거듭되는 윤아의 제의에 이기지 못하는 척 자리에 앉는 효연이었다. 그리고 창현을 슬쩍 바라보며 묻는다.

“창현아, 여기 도시락 괜찮아? 윤아 말은 영 신용이 안 가서.”

“언니! 지금 절 못 믿겠다는 거예요? 와, 완전 실망!”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는 효연의 모습에 실망한 표정을 짓는 윤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연은 흔들리지 않는 말로 오히려 강력한 일격을 가했다.

“윤아 네가 평소 하는 행동을 보면 절대 믿음이 가지 않아서 말이야. 같은 초딩이긴 하지만 나는 먹을 것 가지고 장난 치지 않지만 너는 먹을 것으로 장난 치잖아.”

같은 초딩끼리 전략적 제휴를 맺지만 평소에도 그러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효연이나 윤아나 서로가 서로에게 무언가를 권유할 때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본다. 순순히 걸려들다가 자칫 잘못하면 된통 당하는 수가 있었으니까.

“우욱!”

강력한 효연의 일격에 주춤하는 윤아였다. 하지만 자신은 순수한 호의로 베푸는 것인데 그녀가 믿어주지 않자 눈꼬리를 치켜 올리며 말한다.

“먹을 거로 장난을 치지 않는다고요? 과연 언니가 그랬을라나?”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건데?”

게슴츠레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이번에는 효연이 움찔한다.

그러자 윤아의 입가에 음침한 미소가 걸리며 중얼거린다.

“흐흥! 과연 효연 언니가 먹을 걸로 장난을 안 쳤을까나. 가령 작년 발렌타인 데이 때…….”

“아! 그, 그건!”

소금 초콜릿의 탄생 배경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윤아였다. 그로 인해 창현은 소금 초콜릿을 맛있게 먹어 신세계를 경험한 적이 있고.

“후후! 사과하지 않으면 대참사가 일어날지도 몰라요오?”

묘하게 말끝을 흐리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웠지만 먼저 건드린 것은 자신이었다.

‘큭! 숙소 가서 두고 보자.’

속으로 칼날을 갈며 효연은 무조건 항복했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잘못했어. 소녀시대 에이스이자 센터를 맡고 계신 윤아님의 훌륭하디 훌륭한 조언을 거절하여 황송하기 그지없습니다. 부디 아량을 베풀어주십시오.”

“용서해드릴게요. 어쨌든 맛있는 건 사실이니 일단 먹어봐요.”

콧대를 높이며 의기양양하게 말을 받은 윤아가 제안하자 효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창현에게 넌지시 묻는다.

“창현아, 그런데 이거 맛 정말 괜찮은 거야?”

“언니!”

윤아가 버럭 소리 질렀지만 효연은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다.

창현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괜찮다 못해 맛있으니 먹어보도록 해요.”

“응.”

윤아의 말에는 그토록 의구심을 보였지만 창현의 말에는 단번에 납득하는 효연이었다. 그 모습에 윤아는 불만스러운 듯 입술을 삐죽였지만 효연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도시락을 먹기 시작한다.

“으음! 맛있네.”

그러면서 도시락을 먹어나가기 시작한다. 뿔난 표정을 지은 윤아도 전투적으로 도시락을 해치워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도시락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니, 점심시간이 제법 많이 남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신곡 준비한다는 이야기 들었는데 어때?”

“신곡 준비야 잘 되고 있어요. 이번에는 안무를 가미해볼까 생각 중이거든요.”

“안무를?”

창현의 말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짓는 윤아. 그러고 보니 그가 춤을 춘 적이 본 적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효연 또한 안무를 가미한다고 하자 흥미로운 듯한 눈치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이번 곡은 무슨 테만데?”

“음! 좀 고전적이지만 구애의 의미가 담겨 있어요. 최근에 슬럼프에 관련된 소재이기도 한데 슬럼프가 잘 풀려서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죠.”

“누군가가 열성적으로 도와줬나보지.”

장난처럼 스쳐가듯 이야기하는 효연의 말에 뜨끔하는 창현이었다. 그녀가 말을 하는 순간 태연과 있던 일들이 머릿속에 흘러가고 있었으니까.

‘알고 있나? 설마.’

효연이 알고 있을 리 없다 생각하며 그녀의 착각으로 치부하는 창현이었다.

“무슨 이야기에요, 언니?”

윤아가 호기심을 드러내며 효연에게 묻자 창현의 마음이 다시 한 번 심하게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효연은 그런 창현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짓는다. 무언가 의미심장한 의미가 담긴 것 같아 그의 마음이 심하게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정말 알고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만약 그녀가 목격했다면 어디까지 보았는지, 알고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안절부절이었으니까.

하지만 윤아에게 한 대답은 의외의 것이었다.

“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말이야. 별 거 아니니 특별히 마음에 두지 않아도 돼.”

“그래요? 흐음.”

무언가 있는 것 같아 날카로운 눈으로 효연을 훑었지만 그녀는 그저 담담할 뿐이었다. 결국 윤아는 아무 수확도 거두지 못한 채 촬영장으로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둘만 남게 되자 창현이 효연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누나가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온 거예요?”

“왜? 내가 오니까 이상해?”

의아한 시선을 한 채 효연이 묻자, 창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는 아니고요. 다만 누나는 촬영장에 한 번도 온 적이 없어서 궁금해서 그렇죠.”

정말 묻고 싶은 것은 따로 있었지만. 바로 묘한 뉘앙스로 자신과 태연 사이에 알고 있는 듯한 그 내용을 묻고 싶었다.

다만 직접적으로 물어볼 수 없어 말을 얼버무릴 뿐.

“평소에는 스케줄이 없으면 숙소에서 쉬거나 춤 연습을 하는데 윤아가 여기 점심이 맛있다고 하더라고. 게다가 나만 촬영장을 찾아온 적이 없다고 하니까 왠지 무관심해진 것 같고. 그래서 한 번 찾아온 거지.”

“그래요? 흐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다른 멤버들이 한 번씩 방문했다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창현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그녀의 말에 충분히 납득이 갔다.

“윤아는 어때?”

“윤아 누나라면 잘 해내고 있죠. 솔직히 시작할 땐 불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거든요. 하지만 스스로 분발하며 노력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연기도 점점 안정감을 찾아가는 느낌이고요.”

“그래? 역시 인터넷이랑은 다르구나.”

효연이 창현에게 물었던 이면에는 인터넷이 관련 있었나보다.

그녀가 인터넷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대충 짐작이 갔기에 창현은 미소를 지었다.

“인터넷은 원래 그렇죠. 가령 노래를 발표하더라도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나뉘잖아요.”

“그렇지.”

무엇이든 간에 호불호는 갈리기 마련이다. 음악도 마찬가지였고, 그것은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창현 또한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당장 그의 노래를 좋아하지만 장르적인 면에서 맞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다만 그의 팬들이 워낙 큰 힘을 발휘하기에 내색하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보는 사람도 마찬가지에요. 처음부터 부정적으로 보면 아무리 노력하고 개선되어도 좋지 않게 보이거든요. 하지만 냉정하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다르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랄까. 윤아 누나는 충분히 노력하고 있어요.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는 부족하겠지만… 언젠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겠죠.”

“흐음. 그렇구나.”

효연은 순간 윤아에게 참을 수 없는 부러운 마음을 느껴야만 했다. 그녀를 평가하는 창현의 모습에서 진한 관심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 제작회에서 강한 질문을 받아 충격을 받았다고 하더니 창현은 암암리에 그녀를 지켜보며 신경을 써주고 있나 보다.

이런 사람이 멤버들 말고 또 있다는 사실에 부러움을 느꼈다.

자신도 그렇게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이 든다랄까.

‘내가 무슨 생각을…….’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화들짝 놀라는 효연이었다. 설마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할 줄이야. 태연을 비롯하여 다른 멤버들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 것에 그녀는 살짝 당혹감이 들었다.

그러자 괜히 짓궂은 말이 나왔다.

“태연이랑은 연락 해봤어?”

“네? 그, 그게 무슨 말이죠?”

갑자기 그녀의 입에서 태연이 언급되자 움찔하는 창현이었다. 윤아 이야기에서 왜 갑자기 태연의 이름이 언급된단 말인가?

움찔하는 그의 반응이 재미있어서일까?

효연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걸렸다.

“왜 그래, 갑자기?”

“제가 뭘요. 하하!”

자신의 반응이 과했다는 걸 알았기에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창현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더욱 의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그도 알고, 효연도 알고 있었다.

“훗!”

효연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더욱 짙어지자 창현은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녀의 묘한 미소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으니까.

‘물어볼까?’

그런 충동이 들었지만 애써 억누른다.

만약 그녀가 알고 있다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 같으니까.

왜냐하면 그것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심하게 만들기 충분한 장면이니까.

자신의 물음에 그녀가 봤다고 하면 무어라 말을 해야 한단 말입니까?

우리는 키스를 하기는 했지만 연인 사이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 그러니 못본 척 해주세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비겁하지만 묻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창현이었다.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태연의 프라이버시를 위해서.

화제를 돌리기 위해 창현이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였다.

“춤 연습을 자주하고 있으면 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겠네요?”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어? 사실 춤을 잘 추는 사람은 무척 많아. 춤에 대해 해박한 사람도 너무나 많지. 그 사람들과 비교할 바는 못 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기본 상식은 가지고 있다 생각해.”

당당하게 말하는 효연이었다. 멤버들은 각각 뛰어난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춤에서 만큼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자신감이 있었고, 밀릴 생각도 없는 효연이다. 그렇기에 춤에 대해 언급하는 그녀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열의가 넘치는 반짝이는 눈을 보며 창현은 그녀가 자신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효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신이 지금 안고 있는 이 고민! 직접 보는 순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으니까.

“그럼 제게 조언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조언?”

“네!”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창현의 모습을 보며 효연은 묘한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춤에 관련된 이야기는 어느 것이나 환영하는 바였다.

“좋아.”

“고마워요.”

흔쾌히 받아들여주는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하는 창현.

“뭘, 나한테 있어서 어려운 것도 아닌데. 내가 알고 있는 하에 할 수 있는 조언이라면 해줄게.”

담담하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효연의 모습은 무척 듬직해보였다. 마치 자신이 물어보면 해답을 알려줄 것 같은 느낌이랄까.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을 느낀 창현은 거절하지 않고 그녀에게 묻기 시작하였다.

“제가 물어보고 싶은 건 춤에 관련된 거예요.”

“그럴 것 같아.”

창현에 그녀에게 춤에 관련된 것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으니 당연히 그 분류라 예상한 효연이었다. 그렇기에 흔쾌히 조언을 해주겠다고 승낙한 것이고.

“제가 묻고 싶은 것은 간단해요. 제가 이번에 댄스곡으로 안무를 짜고 있다고 말했잖아요?”

“응, 그랬지.”

그가 말했던 것을 떠올리고는 효연이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창현이 댄스곡을 한다는 것이 무척 의외이긴 했지만 변화를 꾀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 생각했으니까.

“안무를 짜고 있지만 포인트 안무에서 임팩트가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임팩트? 포인트 안무가 없는 거야? 안무팀이 안무를 짰다면 포인트 안무가 제법 임팩트 있는 것일 텐데?”

아직 신인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제법 긴 연습생 기간을 지닌 그녀였기에 어떤 방식으로 안무를 짜는지 잘 알고 있다.

특히 창현 정도의 네임벨류라면 안무를 짤 때 그 부분까지 고려하고 짤 텐데 임팩트가 부족하다는 그의 말이 의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음! 뭐라고 해야 할까. 임팩트가 없는 건 아니에요. 다만 그 임팩트가 팬들이 제게 거는 기대에 비해 약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임팩트라… 그렇다면 내게 바라는 건 뭐야? 네 안무를 보고 조언을 해달라는 류는 아닌 것 같은데.”

그녀의 말처럼 그런 류의 조언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미 지영에게 보여주고 충분히 조언을 얻었으니까. 다만 그녀가 바라는 것은 다른 종류의 것이라 볼 수 있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춤에 대한 누나의 지식이라 할 수 있어요. 사람들은 어떤 춤을 보고 막 열광하잖아요?”

“그렇지. 보통 그렇게 하고는 하니까…….”

세계적인 가수들도 그렇고, 당장 소녀시대도 그러하였다.

그녀들의 데뷔곡인 <다시 만난 세계>에서 발차기 안무는 아직도 소녀시대의 상징과도 같이 남아있으니까. 치마를 입고 발차기를 하여 제법 많은 악플이 달렸지만 그것이 큰 임팩트를 준 것만은 분명했다.

“그럼 네가 알고 싶은 건 대표적인 포인트 안무 같은 걸 알고 싶다는 거네?”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춤에 관련된 이야기라 그런지 창현의 의도를 단숨에 알아차리는 효연. 그리고 자신의 말을 단번에 알아차리자 그는 밝은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인다.

“흠! 대표적인 춤이라… 그럼 이런 건 어때?”

효연은 창현에게 말해줄 여러 가지 춤의 종류가 떠올랐지만 빠르게 사라졌다. 전문적인 춤꾼들의 춤은 그에게 있어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간단하게 흉내낼 수 있으면서 강력하게 임팩트 줄 수 있는 것을 떠올려야 하는데…….

‘아, 그거라면!’

순간 효연의 눈이 빛났다. 제법 어렵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춤이 떠올랐던 것이다. 충분한 연습을 거치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건 어때?”

“어떤 걸요?”

그녀가 제법 유용한 춤을 떠올린 듯했기에 기대감 어린 눈을 하는 창현이었다.

그 눈빛이 제법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그녀는 애써 내색하지 않은 채 말한다.

“내가 말하려는 건 이 춤이야.”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려는 효연이다. 자세를 취한 그녀는 발을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발은 마치 지면에 고정된 것처럼 느껴지면서 그녀의 신형이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순간 창현이 벼락 맞은 듯한 강한 충격을 받은 얼굴을 하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하기 시작한다.

“아! 그 춤은…….”

“너도 알지? 마이클 잭슨의 춤, 문워크!”

효연이 보여준 춤은 바로 문워크였다. 마이클 잭슨의 춤으로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춤이다.

고난이도이긴 하나 몸을 몇바퀴나 뒤집고 고난이도의 춤이 응용된 것들보다도 강하게 임팩트를 준 춤이 바로 그것이다. 마치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뒤로 쭉쭉 물러나는 그 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감탄을 흘리게 하니까.

“이 춤은 춤에 숙달된 사람이 충분한 연습기간을 거치면 할 수 있어. 하지만 최상의 난이도는 아니라 할 수 있지.”

“그럼…….”

“내가 말하려고 하는 건 간단해. 임팩트를 심어줄 수 있지만 임팩트와 춤의 난이도는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지. 누가 이런 춤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어? 자신만의 연구가 있었기에 가능한 거지. 그런 만큼 너도 충분히 연구를 하여 너만 해낼 수 있는 춤을 고안하란 이야기야. 춤의 난이도 여부를 떠나서.”

“나만 할 수 있는 거라…….”

제법 복잡한 의미가 담긴 이야기였다.

자신만 할 수 있는 춤. 그렇다고 어려운 난이도로 하자니 자신의 춤 실력이 부족하고, 백댄서들과 함께 일체감 어린 춤을 추자니 평범한 임팩트가 되어버릴 것 같다.

무언가 돌파구가 된 것 같지만 그로 인해 머리가 더욱 복잡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 가지를 돌파하니 여러 개의 장애물과 마주친 느낌이랄까.

머리가 아파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마워요.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아요.”

“그렇지? 그렇게 고민할 필요 없어. 내가 말하려는 건 너만 할 수 있는 것이되 어려운 걸 하라는 게 아닌 독창적인 걸 가미해보라는 거니까. 뭐든지 하이라이트에서 제대로 하나 빵 터뜨려주면 강렬한 임팩트가 되는 거잖아? 그 부분을 잘 고려해봐.”

진심어린 조언까지. 그녀의 말에 하늘을 찌를 듯 높아보이던 장애물들이 낮아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로서는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네, 조언이 큰 힘이 되네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오늘 조언은 고마웠어요. 시간 되면 제가 저녁이라도 사고 싶은데 어때요?”

창현의 제안이 이어졌지만 효연은 고개를 저어 그의 제의를 거절했다.

“아쉽지만 오늘 저녁에 윤아랑 같이 라디오 스케줄이 있어. 그것 때문에 같이 온 것이기도 하고. 대신 다음에 사줘. 알겠지?”

“네, 스케줄이 있다면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아쉽네요. 고마움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은데…….”

“훗! 그렇다면 나중에 날 좀 팍팍 밀어줘. 알겠지?”

그 말에 묘한 아픔이 느껴져 창현은 순간 묘한 느낌을 받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도움을 드리도록 할게요.”

“그렇게 말해주니 나도 팔자가 필 수 있겠네. 나중에 솔로로 데뷔하면 창현이한테 곡을 부탁해볼까!”

농담조로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창현은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하하하…….”

짓궂은 어조로 말하는 그녀였지만 창현은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껴야만 했다. 효리의 말로 화두를 잡을 수 있었고, 그녀의 조언으로 다른 것들을 정리할 수 있었으니까.

이제부터 해내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도움을 많이 받은 만큼 더 이상 의지해서는 현이라는 이름이 아까워지는 사태가 발생하리라.

“응? 무슨 일이야,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촬영을 끝내고 온 윤아가 입가에 미소 짓고 있는 창현을 보며 물어보았지만 그는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자세한 연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그냥 좋은 일이 있어서요.”

“으음! 무슨 일인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고민 어린 기색이었는데?”

“그랬나요? 그냥 고민하던 부분이 풀리게 되어서 좋다고 할 수 있어요. 저도 촬영을 해야 하니 가보도록 할게요.”

자세히 말해주지 않는 그의 모습에 윤아가 입술을 삐죽였지만 괜히 조언을 해준 효연이 기분 나쁠 수도 있어 창현은 비밀을 지켜주는 의리를 보여주었다.

기분이 좋았던 탓에 촬영도 성공리에 끝마칠 수 있었고, 그는 스케줄이 있는 효연과 윤아, 두 사람과 일별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그는 빈손이 아니었다. 효연이 예시로 보여준 마이클 잭슨의 춤, 문워크가 담겨있는 영상을 비롯하여 각종 춤이 담긴 영상을 집으로 갖고 온 것이다.

모처럼 집에 설치된 대형 TV를 틀고 DVD를 재생시켜 춤을 하나하나 보고 연구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저녁 시간이 되자, 간단하게 빵으로 저녁을 해치운 뒤 끝없이 DVD를 보며 연구해나간다.

그들의 독창성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면서.

“나에게 있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독창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지닌 이점을 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춤을 보며 그는 자신의 장점에 대해 연구하였다.

어떤 장점을 지니고 있을까. 어떤 춤을 추면 사람들이 열광할 수 있을까.

DVD에 담겨있는 가수들의 춤은 대부분 어려운 동작보다는 간단하면서 쉽게 따라할 수 없는 동작을 해내고 있었다.

자신도 그것이 가능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창현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내가 지닌 것. 내가 무엇을 지녔을까. 음향총서를 얻었지. 그리고 남들과 달리 무공을 익히고 내공을 지니고 있으니까…….”

내공을 언급하는 순간 창현의 눈이 크게 뜨인다. 그리고 그의 입가에 미소가 서리기 시작한다.

“그렇구나, 무공. 나에게는 무공이 있었어.”

그의 눈에는 마이클 잭슨이 문워크를 하고 있는 장면이 생생히 들어오고 있었다.




제68장 허공 위를 걷는 춤




자신이 지닌 유일한 무기는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음향총서, 총 세 가지로 분류되어 있는 이 무공은 크게 음악강론, 천음변성록, 현음심법이 바로 그것이다.

음악강론은 도경이나 불경과도 같은 음악에 대해서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 정리해놓은 일종의 교과서라 할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 음악을 연주해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 어떤 방식으로 노래를 불러야 사람에게 기쁨을 안겨다 줄 수 있을지 자세히 적혀 있는 것이 음악강론인 것이다.

천음변성록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음성을 조절해주는 방법이다. 많은 목소리를 낼 수 있음으로 질리지 않고 언제나 즐거움을 안겨다 줄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천음변성록이다.

현음심법은 무협지에서 나오는 내공심법으로, 대개 무협지들처럼 십 년 수련하면 3갑자의 내공이 쌓이거나 그런 류의 내공심법이 아니다. 현음심법은 시전자로 하여금 미형의 외형을 갖출 수 있게 도움을 주며, 체내에 내공을 쌓아 건강을 지켜주는 심법이었다.

창현은 음향총서의 모든 것을 익혔다.

음악강론을 먼저 익혀 기존에 자신이 추구하던 음악론에 새로운 형태의 독자적인 이론을 정립할 수 있었다. 그것이 소수의 뮤지션과 같을 수 있으나, 음악의 화려함보다는 진실된 멜로디와 노래로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그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에 각인되고 싶다 생각했으니까. 시대는 다르지만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은 한결 같았기에 음악강론은 절망에 빠져있던 그를 구원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음변성록 또한 제법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만원의 행복에서 윤아를 속이거나, 팬 미팅, 라디오 스타에서 파격적인 목소리 변형을 보여주었지만 그는 노래를 부를 때도 천음변성록을 사용한다. 즐거운 노래를 부를 때와 슬픈 노래를 부를 때 알게 모르게 천음변성록이 작용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현음심법은 그를 가장 많이 바꿔 놓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규보다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더 많이 닮은 그는 상당히 잘생긴 외모를 지니고 있었는데, 현음심법의 효력이 발동하여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외모를 지니게 되었다. 또한 심법의 힘으로 체력이 강해지고, 신체 능력 또한 운동선수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니, 신체적인 영향에 있어 가장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공심법을 익힌 창현의 내면에는 십 년의 내공이 자리하고 있었다.

거의 오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내공심법을 익혔지만 무협지처럼 3갑자니 5갑자니 하는 내공에 비하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적은 양의 내공이었다.

하지만 이 내공을 잘 활용하면 때때로 초인적인 신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너무 힘을 발휘하면 아크로바틱하게 될 테니…….”

내공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힘을 발휘하되, 자신이 초인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을 알리면 안 된다.

혹, 내공심법을 익히고 있는 게 알려지면 국가기관에 끌려가 내공심법을 토해낼지도 모르니까.

보이지 않되, 다른 사람이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춤이 필요하였다.

“흐음!”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창현의 생각에 지나지 않았다.

막상 내공을 활용할 것을 생각하니 수많은 춤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으니까.

그만큼 내공의 사용범위는 넓은 것이다. 내공을 활용하면 기존의 신체 능력 몇 배 이상의 것이 가능했으니까.

그렇다고 하여 생각나는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자신이 원하는 춤은 사람들에게 인상 깊게 다가옴과 동시에 따라할 수 있을 듯하면서 따라할 수 없는 자신만의 춤을 원하는 거니까.

“애초에 쉽게 떠오를 리가 없겠지? 하지만 방향은 확실하게 잡혔으니까.”

산을 하나 넘으니 또 다시 산이 눈앞에 자리한다. 하지만 창현은 방금 전까지 심각하던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지금부터 넘어야 할 산은 방금 전 넘었던 산과는 비교도 하지 않을 정도로 낮았으니까.

방향을 확실하게 정했으면 그 다음부터는 자신에게 내리막길과도 같다.

“내공이라도 좀 늘려줄까.”

매일 아침에 명상을 하면서 내공심법을 운용한다. 아침의 기운이 가장 순수하다 하여 창현은 일찍 일어나서 심법을 운용하고는 하는데, 내공을 단순히 건강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여기던 그가 막상 필요할 때가 되어서야 열중하는 걸 보면 영락없는 사람이란 걸 증명하고 있다.

내공과 춤의 조화.

창현에게 주어진 또 다른 명제였다.


“내공과 춤의 조화라…….”

다음 날, 아침 일찍 명상을 마친 창현은 이른 시간에 회사로 나왔다. 본격적으로 내공과 춤의 조화를 이뤄내기 위해 안무실에서 춤을 고안하고 있던 것이다.

이미 전체적인 안무는 짜여진 상태였지만 임팩트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수정은 불가피하다. 안무를 짠 사람들에게 다소 미안한 감이 있지만 그것이 현실이니까.

“텀블링을 해볼까?”

안무실 가장 뒤로 온 창현은 가볍게 몸을 뛰어보더니, 그대로 텀블링을 하기 시작한다. 내공의 힘으로 도약력이 강해진 그의 점프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마치 흑인이 텀블링을 하는 것처럼 가벼운 몸놀림으로 몸을 뒤집은 그는 순식간에 안무실 앞에 자리한 유리 앞에 착지할 수 있었다.

그가 텀블링을 택한 것은 상당수 사람들이 해낼 수 있는 것이고, 내공을 알게 모르게 사용해도 알아차릴 사람이 적다는 점 때문이다.

착!

완벽에 가까운 텀블링이었지만 그의 표정은 영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걸로는 조금 부족한데…….”

자신은 가수지, 댄서가 아니지 않은가? 분명 안무가 중요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주가 되는 것은 노래여야 하는데 이렇게 춤을 추면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으나 노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니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이건 포기해야겠군.”

그렇게 중얼거리며 창현이 몸을 돌릴 때, 안무실 문이 살짝 열려 있고, 세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라, 언제 들어왔어요?”

“…….”

창현이 반색하며 그녀를 불렀지만 세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금 전 텀블링하던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녀의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지 창현이 고개를 갸웃한다.

“왜 그래요?”

“바, 방금…….”

어찌나 놀랐는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세희였다. 그것이 창현으로 하여금 더욱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고.

“방금?”

“더, 텀블링 맞지?”

“아아, 그것 때문에 그런 거예요? 텀블링 맞아요. 그게 왜요?”

“텀블링을 했는데 놀라지 않겠어? 당연히 놀랐지.”

창현이 일찍 왔다는 말을 듣고 심경이 어지러워 이야기라도 할까 하여 안무실로 향한 세희였다. 안무실로 들어서는 순간 창현은 텀블링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마치 2002 월드컵에서 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던 나이지리아의 아가호와와도 같았다. 월드컵을 보다가 텀블링을 하던 모습이 인상 깊어 기억에 남겨두고 있었는데 창현이 그것을 하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하기 힘든 것이 텀블링이었으니까.

“그런가요? 하하!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데…….”

“어렵지 않다고? 그렇게 할 사람은 얼마 없을 텐데…….”

마치 중력에 구애를 받고 있지 않은 듯 하였다. 깃털과도 같은 몸으로 텀블링을 하던 모습은 탄력을 이용하던 흑인과 달리 탁월한 점프력과 보디밸런스에 의존하여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왜 텀블링을 한 거야? 서커스라도 나가보려고?”

“그런 건 아니고요. 이번에 안무 포인트를 잡아내려고 하다가 이런 걸 해보는 게 어떨까 싶어서요.”

“텀블링을? 흐음!”

창현의 말을 듣고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기는 세희였다. 하지만 그녀의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잠시 후, 고개를 저으며 부정적인 의사를 보였으니까.

“분명 시선을 사로잡는 건 가능하겠지만 그걸 하면 좀 그럴 것 같은데? 서커스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가수라면 충분히 시도할 법도 하지만 창현에게는 부적절하다는 것이 세희의 생각이었다.

“그렇죠? 흐음!”

자신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면서 고개를 나직이 끄덕이는 창현이었다.

의기소침하지 않은 그의 모습 때문일까.

세희가 의외의 기색을 띠며 그에게 물었다.

“실망하지 않네?”

어제 촬영장에 향할 때 고심하던 그의 기색을 기억하기에 묻는 것이다.

창현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아, 돌파구를 어느 정도 찾아냈거든요. 이제 춤만 찾아내면 될 것 같아요.”

‘처음부터 춤을 찾던 거 아니었나?’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자신이 괜한 것을 물어 창현에게 쓸데없는 슬럼프를 자초하게 될 까봐 말을 아끼는 세희였다. 부정적이던 것을 긍정적으로 바꾼 것 자체는 좋지 않은가. 그렇기에 긍정적인 창현의 모습에 만족하고 더 이상 무어라 하지 않는 게 나으리란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잘 됐네. 그럼 조만간 좋은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겠어?”

“좋은 소식이라… 어렵지 않겠죠? 하하.”

“창현이 넌 다른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다주지 않으니까.”

부담을 얻으면 사람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그 부담감에 짓눌려 그대로 무너져 내리는 사람과, 부담감을 극복하고 사람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주는 사람. 그 중에서 창현은 후자에 속하고, 언제나 사람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말에 실린 뉘앙스를 읽었기에 창현이 살짝 불안한 표정으로 묻는다.

“왠지 부담 주는 말 같은데…….”

“그랬나? 그런 건 아니니까 부담 갖지 않아도 돼.”

살포시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세희였지만 그 모습은 누가보아도 부담감을 느끼라는 뉘앙스를 팍팍 풍기고 있었다.

창현도 그것이 싫지 않았는지 피식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부담감이 자신을 더욱 단련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사람들이 기대하면 할수록 자신은 그 기대를 뛰어넘으면 되는 것이다.

‘이 맛 아니겠어?’

예상을 뛰어넘는 것을 보여줄 자신의 모습. 그것을 보고 감탄할 팬들의 모습을 보면 상상만 해도 즐겁다.

창현도 즐겁게 부담감을 받아들이자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던 세희가 무언가 떠오른 듯 창현에게 말한다.

“아참! 창현아,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

“뭘요?”

“그게 그러니까…….”

묘한 미소를 지은 세희가 창현에게 손짓을 하더니, 그가 다가오자, 귓속말로 무언가를 속닥거리기 시작한다.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창현이 눈을 빛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해보자고요?”

“어때?”

“괜찮지만 뒷일이…….”

재미있는 제안이었지만 실행 여부에 대해서 망설임이 생기는 창현이었다.

걱정하는 그를 보며 세희가 묘한 미소를 짓더니 말한다.

“오히려 좋아할 걸?”

“그럴까요?”

“날 한 번 믿어봐.”

장난기 어린 미소를 보고 믿을 마음이 그리 들지 않았지만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이 들었고, 자신 또한 마음이 동했기에 창현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하였다.


지영의 일과는 다른 중학생들과 확연하게 다르다.

그녀는 외부에 공표되지 않았지만 AA엔터테인먼트의 하나뿐인 연습생이다. 어찌 보면 인맥으로 들어갔다 볼 수 있기에 그녀는 자신이 연습생인 것을 티내지 않고 다닌다.

중학생이기에 야간 자율 학습 같은 것을 뺄 이유도 없기에 그녀가 연습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친구들은 그리 많지 않다.

정규 수업이 끝난 뒤 집에 도착하면 4시 안팎이었고, 집으로 돌아가 준비를 마친 뒤 회사로 향하면 약 5시가 된다. 그리고 4시간에서 5시간가량 트레이닝을 받은 뒤 집으로 돌아간다.

다른 연습생과 다른 것은 매일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과, 안무보다는 보컬 트레이닝을 중점적으로 받는다는 점이다.

물론 춤을 익혀야 하기에 트레이닝을 꾸준히 받고 있지만.

5시까지 도착하면 되지만 그녀는 방과 후 번개같이 집으로 귀환한 뒤 곧장 회사로 향한다. 그녀가 트레이닝을 받는 날 대부분은 특별한 날이 없으면 창현이 해주고는 하였기에 오빠를 보기 위해 일찍 가는 것이다.

그녀의 오빠 사랑은 대단하다.

그것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해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이 순수하다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믿고 있었으니까.

그런 만큼 그녀는 어찌 보면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는 창현의 진실 된 팬(?)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사랑의 큐피드일 수도 있고, 지독한 방해자일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창현의 존재 여부를 아는 것은 간단하다.

평소 그가 트레이닝을 할 때면 간단하게 문자로 통보가 왔던 것이다.

오늘도 회사로 향하려는 그녀에게 어김없이 문자가 전해졌다.

문자의 내용은 오늘 트레이닝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내용이 추가 되어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발성 연습실이 아닌, 안무실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안무를 보여주려고 하나?’

지영은 창현이 안고 있는 근심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자신으로 인해 괜한 걱정을 안겨다 주었다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한편으로는 그가 더욱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한 것이기에 괜찮다는 자기 위로가 동반되고 있었지만.

어쨌든 그가 안무실로 불렀다는 것은 좀 더 나은 안무를 짰다는 상상을 불러일으켰기에 지영은 걱정하면서도 안도의 마음을 가진 채 안무실로 향했다.

회사에 들어설 때 준비해둔 카드로 안에 들어간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안무실로 향한 것이다.

“어디…….”

안무실 문을 열던 지영이 멈칫하였다.

그곳에는 음악이 큰 소리로 틀어져 있었고, 창현이 눈을 감은 채 거울을 마주하고 있던 것이다.

그것도 잠시, 이윽고 그는 호흡을 크게 내쉬더니 몸을 공중에 띄우기 시작하였다.

“앗!”

위험한 그의 행동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지영. 자칫 잘못하다 머리가 지면에 충돌할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이 기우라는 것을 증명하기로 하듯, 창현의 몸이 둥글게 돌더니 그대로 착지를 한다.

거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지면에 착지하자마자 그의 몸이 다시 뒤집힌다.

연달아 텀블링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

마치 서커스를 보고 있는 듯한 충격에 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안무실 가장 앞에서 시작되어 끝까지 펼쳐진 그의 텀블링 숫자는 도합 일곱 번. 평범한 사람도 감히 상상을 하기 힘들 정도의 퍼포먼스를 펼친 것이다.

텀블링을 모두 펼친 창현은 문 쪽에 있는 지영을 보고는 알아본 척한다.

“지영아 왔어?”

이미 그녀가 안무실 안으로 들어와 있던 것을 알고 있던 창현이다.

왜냐하면 그녀를 안무실로 부른 것이 자신이었고, 그녀가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텀블링을 시전 했으니까.

‘후후 놀랐겠지?’

창현이 속으로 웃음을 짓고 있는 이유는 사전에 세희와 공모를 하였기에 그렇다.

그의 텀블링을 보고 놀란 세희는 창현에게 제안을 한다. 바로 지영에게 그의 텀블링 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게 해주자는 이야기가 그것이었다.

창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가 고민하게 된 것이 지영으로 인해 비롯된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세희였기에 골탕 먹이려는 의도로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물론 그걸 말하면 창현이 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였기에 그녀는 다른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채 깜짝 놀라게 해주기 위한 의도로 제안하였다.

과연 이걸로 놀랄까 싶었지만 모처럼 기분 전환을 위해 해보자는 세희의 이야기였기에 창현도 결국 수락하여 이와 같은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계획은 성공적인 듯 싶었다.

그의 텀블링을 목격한 지영은 입을 떡 벌리 채 놀라움을 표하고 있었으니까.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그녀의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오, 오빠 방금…….”

놀란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입을 여는 그녀의 모습이 귀엽다 여기며 창현이 모른 척 말한다.

“으응, 뭐?”

“바, 방금 텀블링 어떻게…….”

“아아, 텀블링? 지영이가 약간 부족하다 말해서 새로운 퍼포먼스를 고안하다가 떠올린 거야. 어때, 멋지지? 후후! 그런데 많이 놀랐어?”

은근슬쩍 그녀를 떠보는 창현.

그러자 지영은 고개를 좌우로 젓는 것이 아닌가?

‘분명 놀란 듯한 표정이었는데?’

창현이 의아함을 느낄 무렵, 다소 흥분한 지영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놀라기는 무슨! 오빠 지금 완전 멋졌어. 평소에 감정 잡고 노래부르던 오빠가 이렇게 멋진 텀블링을 보여주다니. 나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빠가 운동 신경이 별로라고 생각한단 말이야. 그런데 이런 텀블링을 보여주다니! 아마 팬들이 보면 완전 쇼크 먹을 걸?”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하는 지영은 다소 흥분한 기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창현이 이런 텀블링이 가능하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기에 그렇다. 그가 운동 신경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설마 이런 텀블링을 구사할 정도일 줄이야.

이런 텀블링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보통 운동 신경이 아니라는 것을 뜻했기에 지영의 흥분은 더욱 컸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은 모른 채 자신만 알고 있는 것 아닌가.

그의 텀블링은 그야 말로 신기에 가까웠다.

‘아마 팬들이 보면 까무라칠 걸?’

부드럽고 다정다감한 이미지인 그가 이렇게 뛰어난 운동 신경을 지니고 있다니? 분명 이런 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단숨에 반해버릴 것이라 확신하는 지영이다.

“그, 그래?”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흥분하여 말하는 지영의 모습에 주춤하는 창현이었다.

‘세희 누나, 놀랄 거라면서요?’

지영이 놀랄 것이라 호언장담하던 세희의 말이 무색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예상과 다른 그녀의 반응에 창현이 맥 빠진 것은 두 말이 필요없고.

“그런데 그걸 새로운 퍼포먼스로 적용시키려는 거야?”

지영의 물음. 그 말을 들은 창현은 잠시 멈칫하더니 입을 연다.

“글쎄, 지영이 네가 보기에는 어때?”

나이는 어리지만 요즘 트렌드를 대표하는 십대답게 지영의 의견은 예리한 면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좀 아니라고 봐. 오빠의 장점은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노래 실력이잖아? 그러니 노래로 승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춤은 어디까지나 보조가 되어야 하고. 텀블링을 하면서 노래를 할 수는 없잖아.”

세희와 같은 말을 하는 지영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들으며 창현은 지영이 보는 눈이 정확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겠지, 역시?”

“응, 그러니 오빠가 텀블링을 할 줄 아는 건 나만 알고 있는 걸로 할게.”

마치 그의 비밀을 알아낸 것 마냥 히죽 웃음을 짓는 지영이었다.

그 모습에 차마 창현은 세희와 공모하여 그녀를 속였다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하면 지영은 분명 실망할 것이 분명하니까.

“그, 그래.”

“약속한 거다? 히히! 비밀 하나 추가 완료.”

그가 텀블링하는 것을 비밀로 만들어버리는 지영이었다.

괜히 미안한 마음에 창현은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고.

“그런데 오빠는 언제부터 텀블링을 할 수 있던 거야?”

“…그냥 해보니까 되던데?”

내공 덕분이라 말할 수 없으니 본의 아니게 육체의 우월함(?)을 언급하는 창현이다.

그 말에 지영이 흠! 하고 고개를 나직이 끄덕이더니 다짜고짜 말한다.

“오빠는 아빠한테 감사해야 해.”

“응?”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창현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지영은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아빠가 오빠한테 튼튼한 몸을 주었으니까 당연히 고마워해야지. 얼굴도 잘생기게 낳아주었겠다, 노래도 잘하게 낳아주었겠다, 뛰어난 육체 능력까지… 당연히 감사해야지.”

“그렇구나. 맞는 말이야.”

뜬금없이 뛰어나온 석규 예찬론(?)에 의아한 표정을 짓던 창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의미로 오늘 저녁 같이 먹고 가.”

“그게 목적이었구나?”

“히히히!”

웃음을 지어보이는 지영의 모습에 창현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애교 어린 그녀의 모습에 역시 여동생은 당해내지 못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어쩔 수 없지. 그렇게 하도록 할게.”

“약속한 거다?”

“그래.”

따지고 보면 스케줄도 없고, 지선도 서서히 배가 부풀어 오르고 있기에 자신이 방문하여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 자주 비추고 도와주는 것이 효도 아니겠는가.

“아참! 오빠, 그리고 드라마 마지막 촬영이 멀지 않았지?”

갑자기 생각난 듯 창현에게 물어오는 지영.

그 물음에 창현이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돌연 표정을 굳히더니 말한다.

“그렇다면 키스신 촬영도 있겠네?”

직접적인 키스신이 아닌, 각도상 촬영을 하겠다고 했지만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다.

“…있지.”

키스신 파동 사건이 떠올랐기에 창현이 다소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러자 지영이 무서운 표정을 짓더니 창현에게 말한다.

“조심해야 해.”

“뭘?”

뜬금없이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묻는 창현.

그 말에 지영은 무서운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 창현에게 말한다.

“키스신 말이야, 키스신!”

“하지만 입술이 안 닿는데 뭘 조심하란 거야. 설마 날 믿지 못하는 거니?”

입술이 닿지 않는 키스신이기에 창현은 당당할 수 있었다. 자신은 결코 키스에 굶주리지(?) 않았기에 아닌 척 해버리는 늑대가 아니었다.

가슴을 쭉 피며 말하는 그의 말이 답답한지 지영이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말한다.

“아이 참, 오빠는 믿지만 상대 여배우 말이야! 상대 여배우가 오빠한테 할 가능성을 배제하면 안 되지.”

이 점이 지영은 너무나 답답했다. 일처리나 모든 건 완벽한데 이상하게 여성에게 있어서만큼은 관대했다. 그러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여러 명의 여인들을 후리고(?) 다니는 것 아니겠나.

더 이상 꼬이는 여인이 없길 바랐기에 지영은 창현에게 경고를 주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창현은 웃음을 지었다.

“하하! 괜찮아, 근영 누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

그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괜찮건 말건 무조건 조심해야 해! 알겠지?”

“아, 알았어.”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압박을 주는 지영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대답하는 창현이었다.

키스신은 여동생의 파워를 급상승 시켜주는 강력한 버프 마법이었다.


‘생각해보니 한 게 아무것도 없네.’

안무를 고안할까 싶어 왔는데 텀블링을 하다 세희에게 들키고,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시간은 훌쩍 지나 있었다.

결국 오늘 수확은 제로.

오늘 내로 안무를 완성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창현의 입장에서 제법 맥 빠지는 전개가 아닐 수 없다.

“후우!”

지영의 보컬 트레이닝을 봐준 뒤 모처럼 함께 집으로 가서 저녁을 함께 먹었다.

임신 사 개월이 넘어간 지선을 대신하여 창현이 요리를 하였고, 옆에서 지영이 도와주며 모처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점을 생각하면 보람찬 시간이었으니까.”

안무를 고안하는 걸로 따지면 수확이 없는 시간이었지만 가족들과 보낸 시간이었기에 창현은 나쁘지 않게 생각하였다.

집에 도착한 그는 컴퓨터를 하면서 각종 춤 동영상을 체크하기 시작하였다.

각종 춤 동영상을 보면서 자신만의 춤을 떠올리기 위한 노력이었다.

내공을 가지고 있는 만큼 다른 사람들보다 한 층 더 판타스틱한 춤을 추는 것이 가능하다.

그것은 창현에게 있어 최강의 강점이라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걸 자신은 할 수 있다.

“저것도 괜찮은데…….”

비보이 춤꾼들이 추는 춤들을 보면서 눈을 빛내보지만 고개를 젓는다. 제법 구미가 당기는 춤이지만 움직임이 과격하고 자신의 컨셉과 어울리지가 않는다.

창현이 찾으려는 춤의 종류는 간단하면서도 무척 어려운 것이었다.

보는 사람에게 쉽게 다가오면서 남들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독자적인 춤.

자신만이 가능하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춤을 찾으려 하니, 힘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검색을 해보지만 마음에 드는 것은 딱히 없다.

“내가 헛짓을 하고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의 눈을 가장 잡아끄는 춤은 문워크였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감탄이 흘러나오게 만드는 춤은 그야 말로 그가 추구하는 춤의 최정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는 것은 어렵지만 보는 것은 쉬우니까.

자신이 추구하는 춤이기에 여러모로 모태가 되고는 한다.

“비슷하게 해볼까? 하지만 그건 표절이 될 테고…….”

추구하는 궁극의 형태를 갖추고 있기에 저것을 독자적으로 소화해낸다 하여도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모든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되는 말이 있는 것처럼, 저것을 흉내 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였다.

“일단은 흉내만이니까…….”

그러면서 인터넷에 문워크를 하는 법에 관련된 것을 검색한 창현은 춤을 따라해보기 시작한다.

춤에 대한 기초가 없는 만큼 여러 번 반복하여 세세하게 설명을 보고, 가르치는 동영상의 선생이 하는 것을 보며 따라 하기 시작한다.

절정의 발놀림이 있어야 하기에 따라 하기 결코 쉬운 춤이 아니었다.

춤을 배우면서 창현은 깨달을 수 있었다.

“역시, 보는 건 쉬워도 따라하는 건 어려워. 그러니 독창적이지.”

자신이 추구하는 형태를 그대로 갖고 있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만 해낼 수 있고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것.

여기에서 좀 더 보는 사람에게 화려한 느낌이 들게 하고, 누구도 따라할 수 없게 만드는 춤을 완성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만의 춤이라…….”

문워크를 연습하면서 창현은 생각에 잠기기 시작한다.

어느덧 그의 문워크는 점점 능숙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한참 동안 춤 연습을 하던 창현은 발목에 느껴지는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크, 이거 내일 고생 좀 하겠군.”

철저하게 운동을 한 뒤 춤을 춰야 하는데 몰입한 나머지 과도하게 춤을 춘 듯하다.

이대로 가다 내일 꼼짝없이 끙끙댈 거라 판단한 창현은 발목을 풀어주고 명상에 빠져들며 내공심법을 운기하기 시작한다.

무협지에서는 내공심법이 근육통에 좋다고 하던데 효과가 있길 바라며.


효과는 없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난 창현은 발목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끙끙 앓아야만 했다.

“으으, 어떤 작가야. 내공심법을 운용하면 근육통에 효과가 있다는 게.”

그나마 풀어주었기에 이 정도였지, 제대로 몸을 풀지 않았더라면 오늘 걸어 다니지도 못했을 거란 끔찍한 상상이 들었다.

절뚝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선 창현은 발목을 이리저리 풀어주면서 통증을 가라앉히는데 전력을 기울인다.

속으로 내공심법의 효능에 대해 언급하며 근육통에도 효과가 있다 적은 작가에게 진한 살기를 느끼며.

이리저리 마사지를 해주자, 통증은 느껴졌지만 그럭저럭 걸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오늘 드라마 촬영이 있는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군.”

점점 화룡정점을 찍어나가는 드라마 스케줄이 큰 피해를 끼칠 뻔했다 생각하며 고개를 젓는 창현이었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만큼 스스로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기 싫었으니까.

걷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운동을 하는 것에는 상당한 지장이 갈 듯 싶었다.

어제 무리한 대가라 생각하며 창현은 명상을 건너뛴 채 분주하게 준비하기 시작한다.

잠시 후, 벤이 도착하고 촬영장으로 향하는 창현.

“안녕하세요.”

오늘도 변함없이 촬영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하던 창현은 먼저 촬영에 들어간다.

거의 대부분의 장면을 촬영한 후였기에 마지막 클라이막스 장면을 제외한 자잘한 장면들을 먼저 촬영하고 있었다.

그렇게 NG없이 논스톱으로 촬영을 하던 창현은 오후반에 합류하던 윤아와 인사를 나누게 된다.

“창현아 안녕! 오늘도 열심히 하네.”

“안녕하세요, 누나. 그리고… 어라?”

윤아 옆에 있는 여인을 발견한 창현의 눈은 크게 뜨이고 만다.

“아니, 오늘도 오신 거예요?”

창현의 눈에는 효연이 들어왔던 것이다.

놀란 듯 묻는 그 모습에 효연이 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묻는다.

“왜, 내가 오는 게 불편해?”

“딱히 그런 건 아니고요. 다른 누나들은 연달아 온 적이 없어서요. 하하!”

그리 싫은 것이 아닌데 자신의 말에 묘하게 과민(?) 반응을 보이는 효연의 모습에 창현은 머쓱한 웃음을 흘린다.

효연도 자신이 과민 반응 한 것을 깨닫고는 어개를 으쓱하며 말한다.

“그냥 오늘도 찾아왔어. 다른 멤버들과 달리 나는 스케줄이 한가한 편이니깐.”

그렇게 말을 하는 효연의 어조는 씁쓸했다. 다른 멤버들은 분주히 스케줄을 하느라 바쁜데 자신은 한가하다는 것이 어찌 기분 좋을 수 있겠는가.

당연히 기분이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에 서린 부정적인 기색을 못 읽을 창현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효연에게 말한다.

“죄송해요, 그런 의미로 물어본 게 아닌데.”

“상관없어. 나 스스로 그렇게 생각해버린 거니까.”

쿨하게 인정해버리니 더욱 미안한 감정이 드는 창현이었다.

괜히 자신이 건드려서는 안될 것을 건드린 듯한 느낌이었으니까.

소녀시대 인기가 제법 오르기 시작하면서 멤버들간의 인기 편차가 서서히 나고 있다는 것을 창현이 모를 리 없다. 모든 아이돌 그룹이 서서히 인기를 얻어나가는 과정에서 몇몇 멤버들을 내세우며 인기를 얻어나가는데, 그 그룹에 효연은 끼지 못했기에 요즘 한창 싱숭생숭할 때라는 것을 창현은 잘 알고 있었다.

수연 또한 이 과정을 겪으면서 큰 갈등으로 탈퇴 위기까지 몰린 적이 있지 않던가.

윤아 또한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효연의 모습에 크게 당황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그녀로서도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으니까.

“어, 언니. 왜 그래요.”

“응? 아니야. 나는 괜찮다니까. 정말.”

“네에…….”

자신이 괜찮다고 하는데 누가 무어라 말하겠는가.

어줍잖게 그녀를 위로하려다가 오히려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윤아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촬영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윤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촬영 세트장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창현을 지나칠 때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창현아, 부탁인데 효연 언니 좀 풀어줘. 요즘 내색하지 않지만 많이 힘들어하거든.”

그녀로서는 효연의 마음을 풀어주고자 함께 온 것인데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믿을 사람은 창현밖에 없었다.

졸지에 위로해줘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창현이었지만 자신 또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었기에 그 부탁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알았어요, 나만 믿어요.”

그가 그렇게 말하자 윤아는 안심하고 촬영장으로 향한다.

둘만 남게 되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그 침묵을 타파하고자 창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누나, 잠시 저기 앉아도 될까요? 제가 다리가 좀 아파서요.”

창현의 말에 효연이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그녀가 반응을 보인 것은 앉자는 것 때문이 아니라, 다리가 아프다는 창현의 말 때문이었다.

“다리가 아프다고? 갑자기 왜?”

“아, 어제 춤을 좀 연습하다가 무리를 좀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다리가 아프더라고요. 후우!”

“아플 정도로 무리하면 안 돼. 춤을 무리하게 추다가 몸이 망가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까. 아직 회복력이 있어서 괜찮지만 조금씩 나이 먹으면 그것도 힘들어진다?”

춤을 많이 춰봤기에 부상 입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는 효연의 조언.

그 말을 들은 창현이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내공 심법 운용을 하면 근육통이 사라질 거란 이야기가 뻥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은 상황이었으니까. 세맥에 기가 약간씩 깃들어 신체 기능이 좀 더 활성화 되고 회복력 또한 좋지만 범주를 달리할 정도는 아니다.

“그래야죠. 아, 제가 어제 연습한 게 문워크거거든요. 한 번 봐주실래요?”

문워크라는 말에 효연이 곧바로 반응한다.

자신이 보여준 춤이니 만큼 기억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이 그에게 보여준 기간은 극히 짧았고, 그는 전혀 연습을 하지 않은 듯하였다.

그러다 보니 무리란 느낌이 물씬 풍겼다.

“문워크? 그거 엄청 힘든 춤인데…….”

“그래도 일단 한 번 봐줘봐요.”

“알았어.”

봐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효연. 그녀 앞에 선 창현이 어제 본 자세를 기억해내더니, 수없이 반복하던 춤을 펼치기 시작한다. 연습한 시간이 극히 짧기에 완전히 몸에 배어있다 할 수 없지만 그의 신체능력과 어제의 고된 연습은 감각을 되살리는데 어려움이 없게 하였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창현의 춤에 효연이 절로 놀란 표정을 짓는다.

“오오…….”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감탄사. 그 모습에 창현은 흐뭇한 미소를 짓더니 그대로 춤을 멈추며 말한다.

“어때요?”

“대, 대단한데? 너 정말 하루 연습한 거 맞아?”

“맞아요. 대신 연습을 좀 많이 했죠.”

덕분에 발목에 통증이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효연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언제 우울한 기색을 띠었냐는 듯이 반짝이는 눈으로 창현을 바라보더니 그에게 말하기 시작한다.

“그래도 이건 정도를 넘어서는데? 이거 하루만에 해내는 사람은 거의 없어! 너라서 가능한 거지. 완전 대단하다! 이건 천재라 해도 불가능 할 걸? 창현이 너는 춤의 천재야. 춤의 천재! 정말로!”

“그 정도는 아닌데… 무엇보다 춤에 대한 센스가 부족하고…….”

“그거야 어디까지나 즉석에서 펼칠 때나 필요한 거지, 반복하는 동작으로 펼치는 춤인데 그것을 단기간에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봐! 창현이 너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거야!”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다. 춤에 대한 센스는 없지만 어떤 춤이든 간에 해낼 수 있는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막연하게 자신이 춤을 추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 정도면 충분히 춤에 재능이 있는 것에 속했다.

“그럼 재능이 있는 걸까요?”

“있고 말고! 아니, 넘치는 정도지. 대단하다, 난 여태까지 문워크 하루만에 해내는 사람 본 적도 없어.”

입에 침이 마를 틈도 없이 칭찬에 칭찬을 거듭하는 그녀였다.

춤에 일가견이 있는 그녀의 칭찬에 창현은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고, 몇 번이고 문워크를 보여주면서 은근한 칭찬을 유도하였다.

칭찬을 받아서 그런지 춤이 더 잘 춰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창현이 문워크를 한 뒤 분위기가 한결 풀어지기 시작하였고, 촬영을 마친 윤아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 묻는다.

“뭐야, 분위기가 왜 이렇게 좋아? 나만 빼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윤아의 물음에 효연은 창현이 문워크를 춘 것을 가르쳐주었고, 창현은 그녀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문워크를 연달아 펼치기에 이른다.

불과 하루만에 통달했다는 말에 윤아 또한 효연과 마찬가지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기 시작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창현은 묘한 생각에 빠져든다. 그동안 자신은 춤에 대해 재능이 없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녀들이 추켜 세워주자 자신도 모르게 다른 방향으로 생각이 흐르고 있던 것이다.

‘나 의외로 춤에 재능이 있을지도?’

그 사실을 뒤늦게서야 깨달은 창현이었다.


사람에게는 적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 적성은 자신에게 잘 맞는 것을 뜻하는데,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정 형편, 혹은 본인의 영달을 위해 적성을 무시하고 금전적 위주로 진로를 택한다.

사람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 그들의 적성은 다양하다.

그렇다면 적성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바로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적성이라고.

즐겁게 즐기면서 더욱 더 높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바로 적성이다. 그것을 잘 찾을 경우 언제나 둔하게 보이던 둔재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천재로 탈바꿈 할 수 있으며,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물고 늘어진다면 제아무리 비범한 사람이라도 범인보다 못한 사람으로 추락하고는 한다.

적성을 살리는 것은 자신의 재능이 그것에 부합하느냐라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자신에게 딱 들어맞는 것은 많지 않지만 그 분야에 대해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가령 평소 간단한 전략을 잘 짜고, 다른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는데 능한 사람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 숙달되면 탁월한 경기력을 보인다.

다른 사람을 압도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큰 희열을 느끼고, 그 재미에 빠져들면서 눈부신 속도로 발전에 발전을 이루기 시작한다.

그것이 하나의 적성이 되는 것이다.

창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에게 춤에 대한 재능이 없다 생각하였다.

춤에 대한 센스가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부터 안무팀이 짜는 퍼포먼스를 소화하기 위해 수동적으로 춤을 췄을 뿐이었다.

그랬기에 임팩트 있는 안무를 고안하는 것이 당연히 어렵게만 느껴졌다.

센스가 부족한 자신이 임팩트 있는 춤을 고안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게 느껴졌으니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꼬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하였고, 그에 따라 제대로 된 춤을 출 수 없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 일을 겪으면서 그 생각은 깔끔하게 가셨다.

바로 자신에게 춤에 대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자신에게 춤에 대한 센스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즉흥적으로 춤을 추라고 하면 춤꾼들이 추는 춤을 선보이지 못할 테니까.

그러나 자신은 그 단점을 덮고도 남을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다.

누구도 할 수 없는 춤을 내공의 힘을 사용하여 소화할 수 있으며, 남들보다 월등한 신체 능력으로 빠르게 춤을 흡수하는 것이 가능하다.

많은 춤꾼들이 바라는 재능을 자신은 갖추고 있던 것이다.

무슨 일이든 간에 장점과 단점은 존재하는 법이다.

하지만 장점을 극대화 하고 단점을 최소화하는 것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 진리로 통한다.

자신이 춤에 대한 센스가 부족하다면 장점인 신체 능력을 발휘하여 많은 춤을 습득하면 되는 것이다.

효연과 윤아의 극찬을 들으면서 창현은 그 이치를 깨우칠 수 있었다.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네.”

다른 사람에게는 오만하게 들릴 수도 있는 자신의 생각이 판단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노래도 압도적인데 춤도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지 그 파급력에 자신도 모르게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이다.

이미 노래로 정점을 찍은 적이 있는 자신이다. 최고의 노래실력을 지니고 있다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많은 팬층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거기에 만약 자신이 남들보다 월등한 춤 실력을 보여준다면?

더욱 더 폭발적인 반응을 얻을 것임이 분명했다.

그 반응은 자신에게 있어 도움이 될 테지만 은연중 자신은 그것에 대해 벽을 만들어두고 있었다.

춤을 잘 추게 되면 사람들이 자신에게 더욱 기대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사람들의 기대감이 높아질수록 부담감은 커지는 법이다.

여태까지 그 부담감을 딛고 잘해냈지만 언제까지 잘해낼지 그것은 알 수 없는 법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기대치는 한도 끝도 없는 법이니까.

그에 비해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에는 한계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한계에 달한 자신이 더 이상 보여줄 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소위 말하는 빈 깡통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무의식에서는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있어서 은연중 바리게이트를 치고 있던 것이다. 더욱 잘하는 모습을 보여서 사람들에게 큰 기대감을 심어주면 안 된다고. 그러니 일정 부분만 보여주라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그어버린 기준점이 되어버렸고, 무의식이 정해놓은 것을 의식이 그대로 쫓음으로써 일이 발생한 것이다.

“어렵군, 어려워.”

자신이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부담감이 강해진 느낌이다.

잘하는 것을 깨닫는 순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지만 그로 인해 자신이 다음 것을 보여줄 수 있을지 염려가 들었으니까.

지금 최선을 다하여 최상의 것을 보여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신은 프로이고, 지속적인 롱런을 바라는 만큼 다음을 염두에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음에 그 이상의 것을 보이지 않는다면 내리막길을 걷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기를 얻는 사람은 어느 순간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이상의 인기를 얻게 되는 시기가 있다.

사람들은 그 인기를 일컬어 흔히 거품이라 부르는데, 이 거품은 실력에 비해 많은 인기를 얻을 경우에 언급하고는 한다.

이 거품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느냐는 오로지 개인의 역량에 달려있다 할 수 있다.

창현은 지금 절정으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면 그 이상의 것을 발휘할 자신이 없었다.

“지금만으로도 충분히 화룡정점을 찍고 있으니까.”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촬영이 끝난 후, 회사로 돌아온 창현의 머리는 뒤죽박죽이었다.

자신의 장점을 깨닫는 순간이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고 있었다.

더욱 더 강렬한 임팩트를 주는 춤.

그것이 가능할까.

생각에 생각을 하다 보니 머리가 터져 버릴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지영의 보컬 트레이닝을 봐주면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괜찮은 거야, 오빠?”

“응? 괜찮기야 하지.”

“텀블링도 충분히 대단했어. 오빠는 오빠가 늘 말하는 것처럼 실력이 없는 게 아니야.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무척 춤을 잘 추니까 너무 무리하지 말도록 해. 아직 시간이 많잖아. 응?”

위로해주려는 여동생의 모습이 귀엽게 보인다.

괜히 머리 아파오던 것이 옅어지는 걸 느끼며 창현이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 고맙다.”

“고맙긴, 사실만 말했는데.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오빠는 때때로 겸손함을 넘어서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오빠는 오빠 생각보다 훨씬 대단하고 실력이 있거든. 그러니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지 않아도 된다고 봐.”

“내가 대단하다고?”

“물론이지! 그렇다면 빌보드 차트 1위 같은 게 운으로 되는 거겠어? 아니, 침체된 국내 시장에서 앨범을 백만 장 이상 파는 게 가능해? 불가능하지. 그렇게 팔리는 것은 다 오빠가 실력이 되기 때문이야.”

운이 따랐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운을 붙잡느냐 여부는 본인이 지닌 실력에 대해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현은 실력이 있고, 자신에게 찾아온 운을 움켜잡은 케이스였다.

그의 표정이 서서히 펴지기 시작한다. 지영의 말에 알게 모르게 큰 도움이 된 것이다.

“그래, 그렇겠지?”

“그렇고말고. 그러니 자신감을 가져.”

“고맙다, 지영아.”

자신에게 감사 인사를 표하는 창현의 모습에 지영은 미소를 지었다.

전형적인 외유내강인 창현이었지만 그의 내면은 때때로 깨지기 쉬운 상황에 놓이고는 한다. 마치 강철과도 같은 내구도를 지니고 있지만 결이 존재한다고 할까? 그 결이 자극되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고는 한다.

지영은 자신이 그 결을 훌륭히 보완해주고 있다 생각했다.

때때로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하는 창현의 모습이 그것을 증명하고는 했으니까.

비록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극성팬으로서 그에게 보이는 모습을 바탕으로 한 사실밖에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창현에게 큰 도움이 되는 듯하다.

다른 사람에게 있어 도움이 된다는 것은 고무되는 일이다.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이던 창현이 지영에게 입을 연다.

“그런데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응? 뭔데?”

무엇이든 말해보라는 표정을 짓는 지영.

그 모습에 창현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연다.

“인간이 가장 바라는 게 뭘까?”

“인간이 가장 바라는 거?”

“그래.”

엉뚱하기 그지없는 질문이었다.

분명 그렇게 생각되었지만 어느새 지영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름 아닌 창현의 질문이었으니까!

자신은 그의 여동생(?)으로서 그의 고민을 공유하고 같이 고민해줘야 할 의무가 존재하는 법이다!

그렇게 스스로 합리화시키던 지영은 문득 떠오른 것이 있어 창현에게 말한다.

“아무래도 인간이 가장 바라는 건 배부르게 먹으면서 근심 없이 사는 게 아닐까?”

“그런 것 말고. 좀 더 이상적인 거.”

너무 현실에 찌든(?) 이야기를 하자 창현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좀 더 범위를 좁힌다.

그러자 지영은 다시 흠! 하고 생각에 잠기더니 창현에게 말한다.

“좀 더 이상적이라면 초능력을 갖거나 그런 건가? 난 만약 내게 능력을 준다면 자유로이 하늘을 날고 싶은 능력을 가지고 싶은데.”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

“응! 하늘을 높이 날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나만의 세계에 있는 것 같잖아? 그래서 하늘을 나는 능력을 가지고 싶어.”

이상적인 질문에 부합하는 대답을 하는 지영이었다.

그 말에 창현은 자신도 모르게 지영의 대답을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이라, 과연.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

무언가 잡힐 듯하면서 잡히지 않는 아리송함이 창현의 전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고민에 잠긴 그의 모습을 보며 지영이 조심스럽게 말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하늘을 날고 싶다는 상상을 하지 않겠어?”

“그렇지. 누구든지 하늘을 날고 싶어 할 거야. 하늘을 난다. 하늘을 날아… 그래. 하늘을 나는 거야!”

끊임없이 하늘을 나는 것을 중얼거리던 창현.

답은 바로 앞에 나와있다는 것을 불현 듯 깨닫고는 큰 목소리로 외친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소망 중 하나! 바로 저 푸른 하늘을 날고 싶다는 상상이 바로 그것이다.

답을 찾은 느낌에 창현이 입가에 미소를 짓기 시작한다.

“하늘을 난다. 하늘을 나는 춤. 그것을 개발하는 거야.”

자신의 재능과 내면에 자리한 내공의 존재.

이것이 조화된다면 기가 막힌 춤이 나올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눈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하늘을 나는 춤이라… 하늘을 나는 춤.”

지영의 말을 듣고 가닥을 잡은 창현은 본격적으로 하늘을 나는 춤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방향 설정을 마친 것이기에 구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말 그대로 하늘을 나는 춤이니까.

자신이 하되,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런 춤이라는 생각이 들자, 창현은 묘한 미소를 짓는다.

“허공을 걸어볼까?”

자신이 이런 발상을 한다는 걸 누가 예상하고 있을까. 아니, 애초에 허공을 걷는 것이 가능하다고 누가 생각할까.

하지만 내공이 있다면, 자연스러운 퍼포먼스가 가미된다면 충분히 허공 위를 걷는 춤은 가능할 것이라 생각된다.

하늘을 걷는 춤이라 생각할 때 떠오른 것이 무협 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허공답보였으니까. 그것을 그대로 옮겨 퍼포먼스에 접목시킨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용천혈에 내공을 주입한다고 하면…….”

발바닥 아래 위치한 용천혈에 내공 뿜어내 바닥을 튕기듯 허공위로 올라선다.

그것이 창현의 발상이었다.

가능할지 불가능할지는 실행 여부에 따라 다르리라.

“일단 해봐야겠군.”

여태까지 내공에 관련된 부분은 가급적 터치하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그것은 일종의 자존심이었다.

내공으로 인해 전체적인 체력이 상승되고, 신체 능력이 발달되는 등 여러 가지 이점을 받고 있지만 그 이상의 것은 발휘하지 않으려 하였다.

그리 되면 자신이 마음만 먹을 경우 모든 경계를 허무는 것이 가능하니까.

그와 같은 논리로 노래 부분을 따진다면 할 말이 없지만 창현은 나름대로 내공을 최대한 발휘하지 않은 채 음악강론의 이론에 입각하여 자신의 깨달음을 펼쳤기에 적어도 목소리를 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고집이었다.

자신이 축구나 야구를 함으로써 운동의 경계를 무너뜨린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마음만 먹으면 자신도 모 만화처럼 40야드를 4.2초만에 주파하는 것이 가능하고, 50미터가 넘는 거리에서 세계 정상급 대포알 슈팅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내공으로 안력을 키운다면 시속 160km의 강속구라 하더라도 쳐낼 자신이 있다.

자신이 추구하는 것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즐겁게 만들고 귀를 즐겁게 만드는 것이다.

일종의 자기합리화였다. 여태까지 고집하던 내공 미사용의 원칙을 깨버리기 위해서는 궤변이랄지라도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유가 생겨나야 했으니까.

“그렇게 하면 되겠어.”

납득의 과정이 끝나자 창현은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제부터 자신이 해야 할 것은 퍼포먼스를 짜내는 것뿐.

더 이상 망설임이 없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근거림만 남고 있었다.



“하아! 우리 요즘 분위기가 이상하지 않아?”

대학 축제 시즌이 지나가자 소녀시대 스케줄 자체는 상당히 줄어들게 되었다.

앨범 활동도 끝나고 행사 스케줄도 줄어들었다.

종종 행사를 가고, 개인 스케줄을 소화하기는 하지만 단체 스케줄이 상당히 줄어들어 활동 때보다 자유시간이 많아졌다.

하지만 자유시간이 늘어났다고 하여 여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다음 앨범을 위해 치열한 준비 과정을 겪어야 했으니까.

최근 라디오 DJ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태연이나, MC 활동을 하고 있는 미영, 배우 활동을 하는 윤아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대체적으로 여유로운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연습을 자주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연습생 때처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많아졌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때는 어두침침한 지하 연습실에서 연습을 했고, 지금은 제대로 된 전용 연습실을 지니고 있다는 거랄까.

개개인이 인기를 느끼기에는 원더걸스의 돌풍이 너무나 매섭고, 그녀들이 원하는 목표에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뿐이다.

오늘은 모처럼 단체로 연습을 하는 날이었다.

수연의 말에 옆에 앉아있던 미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분위기? 갑자기 분위기는 왜?”

“그냥… 내가 느끼기에 분위기가 이상한 것 같아서.”

소녀시대 내에서 가장 연습생 기간이 긴 수연의 감각은 날카롭다. 가장 긴 시간 연습생 생활을 하며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그녀도 모르는 사이 분위기를 감지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유감스럽게도 미영은 그런 수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자신이 느끼기에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데 수연이 필요 이상으로 과민반응을 하는 것 같았다.

“나만 그런가? 효연아, 넌 어때?”

미영이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자 수연은 연습실 안으로 들어서는 효연에게 물음을 건넨다.

막 들어오던 차에 뜬금없이 어떠냐고 묻는 수연의 모습에 효연이 고개를 갸웃한다.

“뭐가?”

“분위기 말이야.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아?”

“분위기? 그러고 보니 묘한 위화감이 들고 있기는 해. 흐음!”

효연도 묘하게 걸리적거리는 무언가를 느끼고 있던 차였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짚어낼 수 없기에 내색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렇지? 아무래도 요즘 회사 분위기가 이상한 것 같아.”

“햅틱 사건이 있었으니까… 게다가…….”

무언가 말을 하려던 효연이 말을 멈춘다. 햅틱 사건은 소녀시대와 동방신기가 함께 핸드폰 광고를 촬영하면서 불거진 것으로, 그로 인해 소녀시대와 동방신기 팬덤의 사이가 극도로 나빠진 결과를 초래하였다.

설상가상으로 그 대열에 슈퍼주니어 팬덤까지 덩달아 합류하여 최근 최악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중 슈퍼주니어 팬덤의 합류는 수연이 원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에 효연은 말끝을 흐린 것이다.

덕분에 소녀시대는 팬보다 안티가 더 많다 조롱받을 정도니까.

“그래, 그랬지.”

효연이 무슨 말을 하려다 멈칫한지 알고 있었기에 수연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미안.”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효연이 수연에게 사과를 하였다.

서둘러 멈추기는 했지만 그것이 수연이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가뜩이나 악플로 고생했던 수연이었기에 자신이 경솔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다른 멤버들도 수연 앞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금지였으니까.

“괜찮아.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렇게 말하는 수연은 정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하였다.

한때 악플로 힘겨워한 적이 있지만 이제는 그렇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괜히 봐서 자신만 상처 입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니와 무엇보다 잘하든 못하든 간에 욕을 먹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어차피 욕을 할 사람은 반드시 한다. 그렇다면 거기에 상처 받는 것은 당사자에게 달린 일이 아닐까?

연예인들이 욕먹는 것을 보며 각오를 했기에 서서히 신인 티를 벗어가는 지금, 단순한 과거의 일로 치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가 그렇게 담담할 수 있게 된 까닭은 언젠가 창현에게 악플을 다는 사람을 보아서 그렇다.

국가적인 위업을 달성하고, 찬란한 광채를 뿌리듯 귀환한 그를 칭송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악플을 다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저걸 빌미로 군대를 면제 받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식으로 걸고 넘어지는 것도 있었다.

결국 어떻게 하든 간에 악플은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

가끔 기분이 저조할 때 악플을 보면 상처를 받지만 평상시라면 덤덤하게 받아들일 정도로 그녀는 성숙해져 있었다.

효연이 미안한 표정을 지우지 않자, 수연은 화제를 원래 것으로 복귀시켰다.

“아무래도 새 앨범 때문에 그런 것 같아.”

“그렇지? 아무래도…….”

수연과 효연이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두 사람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묘한 위화감의 정체가 바로 새 앨범에 관련된 것 때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현재 소녀시대의 새 앨범 발매가 확실하게 정해진 바가 없었다.

그 까닭은 경쟁 걸 그룹은 원더걸스가 <So Hot>이라는 노래로 <Tell Me>의 대박행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

뿐만 아니라 <So Hot>의 뒤를 이어 <Tell Me>의 폭풍을 뛰어넘을 또 다른 빅 프로젝트가 올 연말에 실행된다는 말은 SM엔터테인먼트로 하여금 고민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아직까지도 <So Hot>의 열풍은 상당하였고, 그 열풍이 사그라들 때 소녀시대가 컴백을 해야 할 텐데 그렇게 되면 여름 시즌인 7월 혹은 8월에 컴백을 해야 하는데 앨범 진척도도 문제지만 원더걸스의 연이은 컴백을 감당할 수 있느냐가 제기되었다.

거기에 그 시기는 이효리가 컴백하기로 연일 뉴스가 나고 있는 상황이어서 부담감은 더욱 컸다.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자, SM 엔터테인먼트 측에서는 소녀시대의 컴백을 무기한 연기시킨 상황이었다. 당장 앨범을 들고 나가 원더걸스와 정면으로 맞서는 것보다, 각종 프로그램에 꾸준히 얼굴을 비추며 인지도를 늘려나가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태연은 라디오 DJ로서, 윤아는 여배우로서 상당한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으니 그녀들을 필두로 하여 인기를 끌어들이겠다는 생각이었다.

당분간 개별 활동에 집중하게 하니, 고정 활동이 없는 멤버들이 위화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 수연이나 효연은 이미 회사 측의 의도를 어느 정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이 느낌은 연습생 때 데뷔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것과 비슷한데?”

효연의 말에 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후우! 연습생 때는 그래도 데뷔에 대한 불안함은 있었지만 지금은 그나마 낫지. 하지만 갑갑한 건 변함이 없네.”

“맞아.”

맞장구치는 효연과 신세한탄을 하는 수연을 보며 미영은 고개를 갸웃한다.

“새 앨범이 뭐가 어때서?”

“아무래도 새 앨범 발매가 늦어질 것 같다는 이야기야. 그래서 나와 수연이가 그걸 가지고 위화감을 느꼈다는 거지.”

효연의 친절한 설명에 고개를 갸우뚱하던 미영이 눈을 크게 뜨더니 버럭 목소리를 높인다.

“새 앨범이 늦게 나온다고? 왜?”

“으음!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서. 요즘 원더걸스가 워낙 강세이기도 하고… 올 겨울에 원더걸스가 대박을 노리고 컴백한다는 루머가 있던데 그게 사실인가 봐.”

처음에는 단순한 루머라 생각했지만 회사의 미적거리는 반응을 보니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가 앨범에 대한 이야기가 없을 리 없으니까.

만약 여름이나 가을에 컴백할 계획이 있었다면 벌써부터 준비해야 함이 옳았다.

이번에 준비한다고 했던 것은 정규 2집 앨범이었으니까.

“그럼 여름이 있잖아! 여름! 여름에 앨범을 내면 되지!”

현재 <So Hot>이 인기 몰이하고 있고, 조만간 굿바이 무대를 할 테니 여름 기간이 공백이 된다. 그 기간을 공략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효연이 고개를 젓는다.

“안 돼. 여름에는 창현이가 컴백하거든.”

“……!”

갑작스런 창현의 언급에 수연과 미영이 몸을 움찔한다. 그리고 두 소녀의 눈길이 순간 날카로워지며 효연에게 향한다. 하지만 그 강도가 상당히 약하여 효연은 눈치 채지 못한다.

창현의 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지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여 와룡 파니로 변한 미영이 자연스럽게 유도 질문을 한다.

“창현이 여름에 컴백해?”

“응. 그것도 그냥 컴백이 아닌 퍼포먼스를 곁들인 컴백이더라고. 그런데 춤을 추려 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고 있는 것 같더라고.”

너무나 간단하게 유도 질문에 걸려들어 정보를 술술 토해낸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미영의 눈이 빛났고, 수연의 눈은 더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녀는 살얼음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효연에게 물었다.

“김효연…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어?”

수연의 싸늘한 목소리는 그대로 효연의 귓가로 흘러들어간다.

‘아차!’

전신이 차갑게 얼어붙는 듯한 느낌과 함께 효연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야기를 나누느라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이 두 녀석은 창현의 이야기가 나오면 폭발적인 관심을 보인다는 것을.

그리고 그로 인해 패가망신(?)한 멤버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자기가 자기 무덤을 파버린 효연이었다.


폭군의 예리한 눈은 당장이라도 전신을 난도질 할 듯한 강렬한 예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것은 소녀시대 상위 서열을 차지하고 있는 효연조차 움찔하게 만들 정도로 강렬한 눈빛이었다.

‘큭! 역시 수연.’

전신을 장악해나가는 폭군의 난폭한 눈빛은 효연으로 하여금 뒤로 물러서라 경고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한때 자신과 호각을 다투던 수연의 눈빛이 이제는 상대하기 힘든 상위 서열로 껑충 뛰어올라서다니.

효연의 전신을 지배하나가는 싸늘한 카리스마의 소유자, 수연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지 말해주지 않겠어?”

“…….”

사실 딱히 무슨 일이 있었다 말하기도 뭐했다.

더군다나 수연의 난폭한 카리스마는 기존의 유약한 멤버들을 단번에 짓누르기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강함과 강함이 만나면 약한 쪽이 꺾여버리지, 휘어지지는 않는다.

수연의 난폭한 카리스마는 효연으로 하여금 굴복하게 만들지 않고 꺾이게 만들고 있었다.

“딱히 별 거 아닌데?”

“효연아…….”

설마 그녀가 그렇게 이렇게 나올 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서서히 굽히는 모습으로 소녀시대 내 권력 판도를 크게 바꾸게 하던 효연이 이런 모습을 나올 줄이야.

두 사람의 분열은 미영의 눈을 반짝이게 만들었다.

상위 서열에 해당하는 두 소녀가 분열한다면 소녀시대 내 권력 구도를 재편할 수도 있던 것이다.

‘이건 절호의 기회일지도?’

그러면서 은근슬쩍 끼어든 미영이 효연에게 말한다.

“효연이 네가 그런다면 우리는 안 좋은 쪽으로 의심을 할 수밖에 없어. 진실을 말해줘. 그리고 제시, 효연에게 강압적으로 말하면 난감할 수밖에 없다고.”

슬쩍 분란을 심어놓는 말을 흘리는 미영이었다.

강압적이란 말에 수연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지고, 효연은 흠! 하고 소리를 흘리다가 입을 연다.

그녀는 미영이 예상한 것처럼 속으로 여러 생각을 하고 있었다.

‘확실히 수연이가 요즘 도를 넘기는 했어. 그로 인해 장난 범위를 넘어선 세력 판도가 만들어지고 있기도 했고.’

한 번 일어난 균열에 미영은 비수를 박아놓았고, 그로 인해 수연과 효연의 불화는 순식간에 커져나가기 시작했다.

먼저 사과를 한 것은 수이었다.

“Sorry, 효연. 내가 과하게 반응했어.”

“아냐, 그럴 수도 있지. 이해하니깐.”

자신 또한 과하게 반발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기에 순순히 사과를 받아들인다.

“무슨 일인지 가르쳐줄 수 있겠어?”

“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입을 열려던 효연은 문득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미영을 볼 수 있었다.

그녀를 발견하는 순간 효연은 자신이 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역시 와룡 파니. 날 은근슬쩍 충동질해서 수연이와 관계를 떼어놓으려 할 줄이야.’

한 잔머리 하는 그녀는 미영의 속내를 단숨에 꿰뚫어볼 수 있었다.

예리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미영은 뒤로 움찔 물러나면서 묻는다.

“왜, 왜 그래?”

“됐어. 수연이한테만 말해줄 거야. 미영이 넌 저리로 가.”

냉랭하게 말하며 수연을 향해 말하자, 미영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소리를 높인다.

“말도 안 돼! 왜 나한테는 말해주지 않으려는 건데?”

“그건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아? 이 잔머리꾼 아가씨야.”

“이익!”

미영은 자신의 속내를 효연이 꿰뚫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덩달아 수연도 이상 기미를 알아차리고 자신을 노려보기 시작한다. 둘 사이에 일어난 균열에 비수를 박아 넣는데 성공했지만 그 성과로 만족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창현에 관련된 문제를 알지 못한다면 자신이 이룩한 성과는 반쪽짜리에 해당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서서히 자신을 옥죄는 눈빛을 느낀 미영이 엄포를 놓았다.

“나에게 알려주지 않으면 멤버들한테 소문내고 다닐 거야. 효연이가 창현이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뭐어?”

단단히 엄포를 놓는 그녀의 반응에 효연의 표정이 찌푸려진다. 잃을 것이 없는 미영에 비해 자신은 잃을 것이 제법 많았던 것이다.

만약 멤버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마 벌 떼처럼 자신에게 달려들 것임이 분명했다.

별 거 아닌 사실이었지만 괜히 비밀로 한다고 하여 추궁할 여지가 생겨버리니까.

“말하지 않으면 단단히 시달릴 각오를 해야 할 걸, 효연?”

자신의 노림수가 먹혀들자 미영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은 채 효연을 바라본다.

“으으…….”

신음을 흘린 효연이 수연을 바라보며 의사를 묻는다.

수연 또한 미영이 자폭 작전으로 나올 줄 몰랐기에 당황이 섞인 시선으로 미영을 바라본다.

“말하지 않으면 무조건 말할 거야. 타협은 없다구.”

생글생글 웃는 지금 저 모습이 그렇게 얄미워 보일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수연은 자신의 생각에 빠져든다.

‘요즘 미영이가 머리 쓰는 일이 늘어나다보니 점점 위로 치고 올라오려고 하네. 조만간 서열 정리를 다시 한 번 해야겠어.’

미영의 쐐기는 오히려 수연으로 하여금 서열 정리를 다짐하게끔 만들어주었다.

수연의 수족을 잘라낸 뒤 상위 서열로 치고 올라가려던 미영의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는 순간이었다.

그 사이 효연은 미영의 말에 이를 갈다가 결국 포기한 채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 어쩔 수 없지.”

제아무리 그녀라 하더라도 다른 멤버들이 달려들면 항복할 수밖에 없다.

다굴을 당하느니 굴욕스럽지만 미영에게 이야기를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두고 보자, 띨파니.’

“사실 창현이가 이번 앨범은 퍼포먼스 위주로 준비를 하고 있거든.”

그러면서 효연은 창현이 춤에 대해 재능이 없다고 말하면서 실은 춤에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과 다른 사람의 상상을 뛰어넘는 대단한 종류의 춤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잠깐만.”

그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수연이 효연의 말을 끊고 그녀를 바라본다.

예리한 그녀의 시선에 효연은 몸을 살짝 움찔 떤다. 그녀의 시선은 자신도 함부로 하지 못할 강렬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왜 그래?”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나오는 효연.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던 수연이 말한다.

“내가 궁금한 건 그게 아니라 어디서 창현이를 만났냐는 거야.”

“나도 그게 궁금해.”

창현이의 고민을 알았으니 이번에는 효연이 어떻게 창현을 만났는지 알아야 할 때였다.

옆에 있던 미영마저도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빛내자, 효연은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난 윤아랑 같이 촬영장에서 이야기 한 건데?”

“엥? 정말?”

미영이 맥 빠진 소리를 흘리며 묻자, 효연은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그걸 가지고 뭐하러 거짓말을 하겠어. 윤아에게 물어봐.”

거짓말을 하지 않았기에 효연은 당당하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미영은 그럴 수도 있다 생각하며 순순히 납득했지만 수연만은 그러지 못했다.

그녀는 묘하게 빛나는 눈으로 효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창현이가 효연이한테 고민을 털어놓을 줄이야. 효연이가 춤을 잘 춰서 그런 건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춤을 잘 추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만약 창현이 자신에게 그런 고민을 토로했더라면 자신이 긴 연습생 생활로 터득한 비법을 전수(?)해주겠다는 명목으로 개인적인 오붓한 시간을 가졌을 텐데.

효연이 창현에게 개인적인 감정을 갖지 않아 이 절호의 찬스를 살리지 못한 게 다행이라 여겨졌지만 한편으로는 경계의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윤아에게 단단히 일러둬야겠어. 효연이가 창현이랑 장시간 시간을 보내게 되면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수도 있으니까. 윤아도 그걸 원하지 않으니 내 말을 순순히 들을 거야.’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 하듯 흘려서 자신이 사전에 알아냈지만 만약 이대로 시간이 흘렀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수연은 효연을 확실하게 차단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구나. 내가 오해했네. 미안해.”

“뭐 딱히 잘못한 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다음부터는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고 이야기를 했으면 해.”

“응, 미안.”

충분히 기분 나빴을 수도 있었기에 수연은 순순히 사과했다.

“그나저나 효연이 너 대단하다. 창현이가 고민을 털어놓을 정도라니.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거야?”

“으음! 딱히 그런 건 아니야. 아무래도 내 컨셉이 춤으로 밀고 나가니까 그런 거 아닐까?”

“그런가?”

조금 미진한 느낌에 미영이 고개를 갸웃하자, 효연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그렇지, 뭐. 통달한 정도는 아니고 춤에 관해서는 내가 제법 해박한 편이니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쪽으로 이야기가 나온 거고 조언을 해줬을 뿐이야.”

“조언을 해줬는데 창현이는 아무것도 안 줬어? 창현이는 답례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흘리듯 말하는 미영. 그 속에는 묘한 실망감이 서려있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발끈하게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미영이 풀어놓은 미끼를 효연은 덥썩 물었다. 자신에게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반드시 보답을 하겠다는 그의 말을 정면에서 들었는데, 비아냥거리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미영의 모습에 참을 수 없던 것이다.

“답례? 당연히 해준다고 했어! 함부로 말하지 마, 이 띨파니야.”

“……!”

‘아차!’

순간 눈을 부릅뜨는 수연. 그 모습을 본 효연은 자신이 미영의 낚시질에 걸렸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Yes!'

입가에 미소를 지은 미영이 효연의 양어깨에 손을 턱! 하니 올려놓으며 말한다.

“우리 좀 더 오붓한 이야기를 나눌까, 효연?”

“그래야 할 것 같네.”

“크윽…….”

두 악마의 난입에 효연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자라나는 새싹을 망설임 없이 짓밟고, 짓이기는 두 해외파 소녀들이었다.


“후우우우!”

바닥이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쉰 윤아가 터벅터벅 숙소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물 한컵을 따라 마신 뒤 소파에 앉아 털썩 앉는다.

그녀는 요즘 무척이나 우울하였다.

한창 잘나가는 그녀가 우울하다니?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보면 윤아는 그야 말로 화려한 길을 걷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데뷔 전 여러 개의 CF를 시작으로 소녀시대 그룹으로 데뷔하며 일약 에이스로서 센터를 담당하고 있다.

예쁜 외모로 가수 겸 연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첫 주조연 역을 훌륭히 소화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장 소녀시대의 인기를 견인하고 있는 것이 그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드라마가 성공함으로써 데뷔 전 그녀가 간절히 원하던 톱스타가 되는 것에 성큼 한 걸음 다가간 듯하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우울한 기분을 느낀단 말인가?

“…….”

소파에 앉아 있던 수연은 한숨을 푹푹 내쉬는 윤아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TV에서 틀어진 것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무척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윤아는 웃기는커녕 한숨을 내쉬니 의아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

“무슨 일 있는 거야, 윤아야?”

“아, 언니. 별 일은 아니에요. 그냥… 그래요…….”

수연의 물음에 윤아가 무언가 입을 열려다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다.

그 모습은 수연으로 하여금 더욱 궁금하게 만들고 있었다. 원래 한 번 당길 때 주르륵 밀려오는 것보다 당기면 저쪽에서 미는 맛이 있어야 무엇이든 흥미를 자극하지 않는가.

오히려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윤아의 모습에 수연은 더욱 호기심을 느끼고는 말한다.

“아무것도 아니긴. 네가 우울해하는 것이 한눈에 보이는데. 넌 우리 팀의 에이스를 맡고 있어. 그것은 즉, 네가 우울해서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다면 우리 그룹 이미지에 타격이 간다는 거야. 내가 이야기를 들어줄 테니 어서 말해봐.”

소녀시대 내에서 고민을 들어주는 역할은 태연이 하는 것이지만 수연이 자청한 것에는 이유가 존재한다.

위에 그녀 스스로 말한 내용도 존재하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이유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윤아가 우울해하는 것! 지금 그녀가 막 드라마 촬영을 끝내고 돌아온 것을 감안하면 분명 드라마에 관련된 일일 확률이 높을 것이고, 그 중에서도 창현에 관련되었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효연에게 들었던 것이 있기에 수연은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을 할 겸, 윤아가 무슨 이유로 힘들어하는지 알 겸 하여 묻는 셈이었다.

그녀의 이러한 의도를 알 리가 없는 윤아가 다소 우울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그게… 다름이 아니라… 요즘 창현이가 도통 상대를 해주지 않아서요.”

‘역시.’

자신의 예상대로 창현에 관련된 일이라 생각하며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수연. 그러면서 짐짓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그녀에게 묻는다.

“창현이가 상대를 해주지 않는다고?”

“…네. 요즘 무슨 고민이 있나 봐요. 촬영장에서 만나도 상대를 잘 해주지 않고…….”

요즘 촬영은 점점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제 촬영이 끝나면 윤아가 창현을 볼 시간은 그리 많지 않게 된다.

드라마의 특성을 살려 그와 자주 만남을 갖는 것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불가능하다는 뜻.

그것은 윤아에게 우울증을 유발하게 만든 또 다른 이유였다.

여태까지 드라마 촬영으로 창현과 자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마음을 얻어내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 아니, 마음을 얻는 건 둘째치더라도 다른 멤버와 비교해서 확연하게 가까워지는 것도 해내지 못했다.

‘효연이의 말이 사실인가보네. 퍼포먼스 선정으로 고민이 있다고 하더니.’

내심 효연의 말이 맞는 게 확인되자 마음이 놓이는 것을 느낀 수연은 입가에 지어지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냈다.

윤아에게 미안하지만 드라마가 끝나간다는 것은 더 이상 그녀를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과 같았으니까.

현재 멤버들 중 수연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바로 윤아였다. 같이 드라마 촬영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거의 노골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창현에게 호감을 드러내고 있기에 그렇다.

저돌적인 면모가 있는 윤아가 적극적으로 나가면 창현도 흔들릴 수 있다는 생각에 수연은 알게 모르게 무척 그녀를 경계해야 했다.

특히 그녀가 그 마음을 굳히게 한 것은 얼마 전 함께 놀이공원에 갔을 때였다.

그때 그녀는 자신과 수정만 창현과 함께 가는 것인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불청객이 무려 셋이나 되었다.

창현의 여동생인 지영은 충분히 올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순규와 윤아였다.

나중에 순규에게 물어보니, 자신은 지영이 함께 놀이공원을 가자는 말에 따랐을 뿐이라고 해서 그러려니 했지만 윤아는 달랐다.

그녀는 창현을 좋아하는 것이 겉으로 티가 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거의 노골적으로 창현에게 제안을 하고 있으니까.

‘순규가 창현이 동생하고 친한 것도 경계해야 할 사항이지만 일단은 윤아가 제일 위험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윤아를 가장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그걸 겉으로 드러낼 수 없기에 수연은 같이 고민에 빠지는 척하면서 그녀에게 말한다.

“흐음! 무슨 고민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고민이요?”

“응. 고민 말이야. 창현이가 성격이 좋기는 하지만 요즘 들리는 말에 의하면 새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던데, 그에 대한 고민이 있을 수도 있잖아.”

“…아! 그러네요.”

윤아는 창현이 새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새로운 앨범을 준비한다면 충분히 고민이 많을 수 있다.

“그래도 절 상대해주지 않는 게 좀…….”

“창현이도 사람이잖아. 그럴 때는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해.”

“네…….”

수연의 말에 깨닫는 바가 있는 윤아였다. 너무 자신 위주로 생각한 게 아닐까 싶은 그런 생각. 창현이도 사람이고 당연히 그날 기분이 다를 수도 있으며, 앨범 준비를 할 때 생각이 많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기대가 차원을 달리할 정도로 대단한 만큼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

당연히 촬영장에 와서도 앨범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으리라.

윤아는 자신의 행동이 너무나 부끄럽게 느껴졌다.

창현이 어떤 처지에 놓인 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자신 위주로 생각하여 자신을 상대 해주지 않은 것만으로 삐져버린 모습이라니. 철부지 어린애 모습을 보인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수연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자신이 이기적인 생각에 빠져있을 때 상황을 정확하게 직시하게 함으로써 스스로의 잘못을 알아차리게 해주었으니까.

“고마워요, 언니.”

“뭘 그거 가지고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아니에요. 언니가 있어서 항상 제게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무한수연교로서 충성심을 되새기는 윤아였다. 태연도 대단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역시 자신에게는 수연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니 고맙네. 그런데 앞으로 드라마 촬영이 얼마나 남은 거야?”

그 말에 윤아가 다시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 창현과 드라마 촬영이 끝나면 어떤 형태로 만날 수 있을지 생각만 해도 심란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것이 수연이 의도한 것이라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창현과 앞으로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림으로써 윤아의 의욕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수연의 잔혹한 의도가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미 무한수연교로서 굳건한 충성심을 지닌 윤아는 그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일주일 정도 남았어요. 촬영일은 세 번 정도고요.”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마지막 촬영이면 창현이의 키스신도 있겠네.”

“……! 그러네요.”

수연의 말에 무언가 퍼뜩 떠오른 듯 순간 윤아의 눈이 빛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의 말처럼 최종 촬영 때 창현과 근영의 키스신 촬영이 있다.

한차례 소란이 일어났던 만큼 직접적인 접촉이 없겠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것 아니겠는가.

근영이 창현을 좋아해서 냅다 확 해버릴지도.

“반드시 지켜봐야겠네요. 그걸 놓칠 뻔하다니.”

“그래? 난 알고 있는 줄 알았지. 직접 하는지 보면 가르쳐줘.”

대수롭지 않게 말하지만 이것은 모두 수연이 의도한 바.

그녀는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산을 마치고 윤아에게 말한 것이다.

질투심을 자극할 수만 있다면 혹여 근영이 고의적인 키스를 하려 할 때 그녀가 방해할 수 있으니까.

자신이 직접 가지 못하는 만큼 확실한 안전장치를 해놓는 것이다.

이것이 그녀의 방식이었다.

수연은 속으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불타오르는 윤아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의도가 성공적으로 먹혀든 것처럼 느껴졌다.

‘후후! 이용하는 것 같지만 세상사 다 그런 거란다, 윤아야.’

폭군 수연의 모습에 와룡 파니가 빙의 된 듯하였다.


지영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회사에 도착했다.

오늘은 트레이닝이 없는 날이지만 무려, 무려! 창현이 직접 와 달라 부탁을 하였기에 온 것이다.

마치 경신술을 펼치는 무림 고수처럼 날랜 몸놀림으로 지면을 격하고 단숨에 회사에 도착한 지영은 창현이 지정한 연습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슨 이유로 날 부른 거지?’

오빠의 부름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응했지만 한 줄기 의문을 가지고 있던 지영은 연습실 안으로 들어서고, 창현이 먼저 있는 것을 보고는 인사하였다.

“오빠 안녕!”

“그래, 지영아. 일찍 왔네?”

“누가 불렀는데 감히 늦게 오겠어. 부르자마자 슈슝! 하고 바로 왔지, 헤헤!”

퍼포먼스에 관련된 고민을 털어놓은 이후 자신과 오빠의 관계가 한 층 더 가까워진 것 같기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 지영이었다.

전보다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대화하는 시간도 늘어났으니까.

이렇게 대단한 오빠를 자신이 독점하는 듯하니 절로 뿌듯한 감정이 밀려들어왔다.

‘앞으로도 이랬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바람이었지만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지영이었다.

“응,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내가 생각한 퍼포먼스를 완성했거든. 그래서 지영이 네가 봐줬으면 해서 부른 거야.”

“퍼포먼스?”

그러고 보니 일주일 전 창현이 무언가 실마리를 잡은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자신에게 고맙다고 연신 말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때 자신은 무엇을 한지 몰랐지만 창현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무척 기뻐했던 적이 있었지.

“그래, 퍼포먼스. 지영이한테 보여주려고 열심히 준비했지.”

“나한테? 설마 내가 처음이야?”

“그래. 이번 퍼포먼스에서 가장 많은 도움을 준 게 지영이 너니까 가장 먼저 보여주려고 준비했어.”

“응! 뭔지 완전 기대된다.”

자신이 가장 먼저라니! 창현이 자신 있게 준비한 거라면 상상을 초월한 춤일 터. 앞으로 엄청난 폭풍을 일으킬 춤을 자신이 가장 먼저 보게 된다는 생각에 지영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

그러면서 창현은 분주히 몸을 풀기 시작한다. 막 연습실에 들어왔을 때 지영이 왔기에 약간의 준비 운동이 필요하였다.

“…….”

몸을 푸는 창현의 모습을 보면서 지영은 감탄에 빠져든다. 전체적인 기준에서 보면 그렇게 크지 않은 키임에도 불구하고 쭉쭉 뻗은 다리는 끝도 없이 길어보였고, 평범한 트레이닝복을 차려입었음에도 전체적인 모습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듯하였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인 것 같아.’

엉뚱한 생각에 빠져들며 창현을 본격적인 신격화시키는 지영이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만큼 창현은 대단한 존재였고, 다른 사람에게도 대단한 존재이리라.

그녀가 생각에 잠긴 사이 간단하게 몸을 다 푼 창현이 마지막으로 기지개를 키더니 지영에게 말한다.

“그럼 보여주도록 할게. 거기 불 좀 꺼줄래?”

“불? 으응.”

‘아무것도 안 보일 텐데?’

갑자기 창현이 불을 꺼달라는 이야기에 지영은 의아함을 느끼면서 연습실 불을 껐다.

화악!

그러자 지영의 눈에 들어온 것은 창현이 신고 있는 신발뿐이었다. 연습실은 모두 검은색 커텐이 쳐져 있어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아 불을 끄자 야광 재질의 신발만 눈에 확 들어온 것이다.

갑자기 내려앉은 어둠으로 인해 지영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창현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잘 보도록 해.”

“……!”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창현의 춤.

그의 춤을 본 지영의 눈이 화등짝만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지금 그가 보여주고 있는 춤!

그것은 틀림없는 허공 위를 걷는 춤이었다.

“오, 오빠 어떻게…….”

놀란 목소리로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을 지영의 모습을 떠올리며 창현은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아직 불완전하지만 확실하게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그것은 허공 위를 걷는 춤!

앞으로 거대한 폭풍을 일으킬 전설의 춤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제69장 촬영 끝은 키스신!




‘후후후!’

드라마 촬영이 점점 끝나감에 따라 창현은 마음이 점점 들뜨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자신의 슬럼프를 깨버리기 위해 시작했던 드라마였다. 드라마 속에서 자신만의 캐릭터를 찾는 것이 즐거웠으며,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를 체험함으로써 경험을 늘릴 수 있어 무척 유익하다 생각하였다.

슬럼프를 겪으며 한단계 성장할 수 있게 된 것도 어디까지나 드라마 덕분. 그렇기에 연기자로서의 활동이 딱히 나쁘게 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난 연기자가 아니니까.”

아니, 드라마를 촬영할 때는 연기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촬영에 임한다.

그러나 엄연히 말하면 자신은 연기자가 아니다. 자신은 노래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며, 행복을 가져다주는 가수였다.

연기자라는 생각보다 가수라는 생각이 더 강했기에 스스로 진정한 연기자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캐릭터를 소화하면서도 은연중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잘한다고 치켜세워주지만 본인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분명 연기도 재미있긴 하지만 가수로서 제대로 무대에 서지 못했기에 창현은 어서 가수로서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였다.

작년 MKMF과 가요대전 이후 제대로 된 무대에 서본 적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송 3사가 컴백 무대를 가져가려 함으로 인해 불거진 알력으로 공중파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되자 창현은 가수로서 목이 마른 것을 느껴야만 했다.

무대 위에 서고 싶지만 보이지 않는 알력으로 인해 설 수 없다는 것은 그를 참을 수 없게 만들 정도로 괴롭게 했으니까.

그러나 이번만큼은 다르다.

석규가 자신에게 최우선적으로 약속한 것은 어떤 알력에도 흔들리지 않은 채 무대 위에 설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매주 최소 세 번씩 무대를 설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음악을 좋아해주는 사람들과 만남의 창구가 생겨난다는 것과 같았기에 창현은 마음이 설레는 것을 느껴야 했다.

“퍼포먼스도 해결이 되었으니까 좀 더 앨범에도 박차를 가해야겠네.”

자신이 출 퍼포먼스에 공을 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앨범에 들이는 공이 상당하게 되었다.

공을 들이다 보니 미니 앨범으로는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곡 몇 가지를 더 추가하여 정규 앨범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고, 석규와 이야기를 나눠 수락을 받게 되었다.

자신이 허락 받은 것은 정규 앨범을 두 개로 나누어 각각 미니 앨범 형태로 내겠다는 것.

각각 4-A, 4-B라는 형태로 나오게 될 미니 앨범은 두 개가 합쳐지면 정규 4집 앨범의 컨셉이 완성되는 형태를 갖추게끔 하였다.

4-B에 관련된 곡은 부족했지만 콘티를 잡아놓은 상태였기에 드라마 촬영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여러모로 일이 잘 풀리는 것 같네.”

창현을 괴롭히던 슬럼프 이후, 본격적으로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것 같아 창현은 흡족한 마음이 가득하였다.


드라마 리딩 작업을 어제 마쳤기에 오늘은 마지막 촬영을 하게 된다.

마지막 촬영이라는 말에 창현은 시원섭섭한 마음을 느끼면서 앞으로 가수로서 활동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설레는 것을 느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드라마가 그에게 있어 상당한 족쇄로 작용한 듯하다.

아무래도 연기자가 아니다 보니 부담감이 상당할 수밖에.

아침 일찍 일어난 창현은 예전과 달리 명상에 할애하는 시간을 한 시간이 아닌, 두 시간으로 늘렸다.

예전에는 굳이 신경 쓰지 않던 내공이 이제는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춤을 최소 세 번 이상 출 수 있도록 해야 해.”

허공을 걷는 춤을 추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내공을 단숨에 분출해야 했다. 용천혈을 통해 모든 내공을 분출하게 되면 그 다음 들이닥치는 것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늘어지는 무기력증이다.

춤을 완성했다고 하나 완벽한 형태가 아니어서 세 번 하면 완전 탈진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내공이 깃든 단전이 텅텅 비어버리면서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공의 양을 늘리고, 좀 더 숙달시킴으로써 내공 소모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창현은 그 기간에라도 부지런히 내공을 모아야 했다.

적은 양이더라도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명상을 마친 창현은 간단하게 씻은 뒤 아침을 먹고 소화 운동을 한 뒤 샤워를 마치고 촬영장에 갈 준비를 마쳤다.

마지막 촬영이니 만큼 오늘 촬영은 점심 시간 전부터 시작하여 늦은 저녁 시간까지 촬영하게 된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여태까지 했던 촬영 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촬영이 될 것이라 공지된 상태였다.

“NG내지 않고 잘해야지.”

자신 또한 가수로 돌아가게 되지만 연기자로서 좋은 경험을 했고, 마지막만큼은 제대로 된 연기자로서 끝맺음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기에 제대로 해내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준비를 끝낸 창현은 도착했다는 세희의 연락을 받고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주차장에 도착하여 벤에 탑승하여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밝은 창현의 표정을 본 세희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며칠 전까지만 하여도 창현은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제대로 입조차 열지 않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밝은 표정을 지은 채 먼저 인사를 건네자 세희로서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혼란을 느껴야 했다.

그래도 창현의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내심 다행이라 여기고 있었지만.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네?”

“네? 그래요? 하하!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창현은 자신이 퍼포먼스를 완성하기 전까지 제법 심각한 안색을 보였다는 걸 떠올리고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춤이었기에 완성하기 전까지 내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그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해졌나 보다.

“표정이 밝은 걸 보면 일이 해결된 것 같기도 하고.”

“네, 해결 되었죠. 며칠 전에 완성했는데 제가 겉으로 내색하고 다녔나 봐요.”

“내색하고 말고. 아주 팍팍 내색하던 걸?”

“그래요? 하하…….”

아주 대놓고 내색했다는 세희의 말에 어색한 웃음을 짓는 창현이었다.

그 모습에 세희가 묘하게 눈을 가늘게 뜨며 말한다.

“무슨 고민을 해결했기에 밝은 표정을 지으시는 걸까나?”

지금 창현의 나이 대에 할 고민은 제법 많지 않던가?

가령 이성 문제라던가, 여자 문제라던가, 연인 문제라던가.

그렇게 심각한 안색을 보일 정도라면 틀림없는 이성 관계 문제라 생각하는 세희였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심각한 표정을 지을 리 없었고, 창현에게 있어 며칠 동안 끙끙 앓게 할 문제였으니까.

‘뭐 창현이 정도면 대쉬하는 여자들이 엄청 많겠지.’

가장 근처에 있는 매니저였기에 창현에게 호감을 보이는 수많은 여인을 보아온 세희다.

당연히 그 중에서 용기를 가지고 대쉬한 여인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제법 개방되어 있는 그녀는 그 문제를 터치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러나 창현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녀의 예상과 전혀 다른 내용의 것이었다.

“아… 실은 고민하던 퍼포먼스를 완성했거든요. 그것 때문에 고민이 깊었었는데 그걸 내색하고 다녔나봐요.”

“…그게 끝이야?”

이성 문제가 아니라는 말에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창현을 바라보는 세희.

그녀의 태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네, 그게 끝인데요?”

“이럴 수가.”

자신의 예상이 완전 빗나가버리자 헛다리를 짚었다는 생각에 무안한 표정을 짓는 세희였다. 심각하게 며칠 동안 그러고 있어서 이성 문제라 생각했거늘.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짓고 있던 세희가 정신을 팟! 되찾으며 창현에게 묻는다.

“퍼포먼스 문제였구나. 난 진즉에 해결했는 줄 알았지. 그럼 사람들의 기대를 완벽하게 만족시켜줄 춤을 완성한 거야?”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좀처럼 볼 수 없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세희는 창현이 제법 확실한 퍼포먼스를 고안해냈다고 생각하며 기대감이 생겨나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보다 본인 스스로가 본인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그가 만족할 정도면 도저히 어느 정도의 퍼포먼스일지 감히 상상하기가 힘들 정도였으니까.

이름 자체만으로 사람들의 기대감을 자아내게 만드는 인물은 흔치 않다.

특히 네임벨류가 상상을 초월하는 여파를 일으키는 창현의 경우 더더욱.

그것을 뛰어넘을 정도라면 대단한 것임이 틀림없다.

“기대되네. 창현이 네가 며칠 동안 고안해서 완성할 정도의 퍼포먼스라면.”

짓궂은 놀림의 의미가 담긴 말이었지만 창현은 그녀가 원하는 반응을 보이기는커녕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기대하셔도 좋을 거예요.”

“…정말 자신 있나 봐?”

자신의 말에 이렇게 대답할 정도면 정말 자신 있는 듯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묻는 세희의 모습에 창현은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물론이죠.”

“그렇구나. 역시 창현이 넌 대단해. 그렇게 어려운 난제를 결국 풀어내다니. 너무 궁금한 걸?”

“기회가 되면 보여드리도록 할게요. 이게 제법 힘든 춤이라서 좀 연습을 해야 하거든요. 성공률 자체는 높지만 하고 나면 완전 탈진을 해버려서요.”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춤이기에 탈진까지 하는 걸까.

세희는 더더욱 궁금해지는 걸 느꼈지만 애써 호기심을 억누르며 고개를 끄덕인다.

“응, 기대할게. 사실 난 창현이 네가 웃음을 지어서 다른 종류의 웃음인 줄 알았거든.”

“다른 종류의 웃음이요?”

“응. 다른 종류의 웃음.”

그러면서 묘한 미소를 짓는 세희의 표정은 악동처럼 짓궂었다. 창현은 그 모습을 보고는 물어보면 안 된다는 것을 느꼈지만 이미 자신도 모르게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어떤 종류라 생각했는데요?”

“오늘 키스신이 있잖아? 그것 때문에 좋아하는 줄 알았지.”

“키, 키스신이요?”

눈에 띄게 당황하는 창현. 설마 세희가 자신의 표정을 보고 키스신이 있다 하여 좋아하는 것이라 생각할 줄 상상도 못했다.

당혹하는 그의 모습에 세희는 묘한 쾌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응응, 남자 배우들은 보통 그렇다던데? 예쁜 여배우와의 키스신이 있으면 촬영 날 무척 설레는 표정을 한다고. 근영 양 정도면 엄청 귀엽고 예쁘잖아? 아마 의도적으로 여러 번 NG를 낼지도 모르는 일이지.”

짓궂게 연타를 날리는 세희였다.

그 말에 창현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대답한다.

“에… 하지만 직접적으로 하는 키스신도 아니고, 제가 그렇게 음흉한 남자도 아닌데…….”

“남자는 모두 늑대라잖아. 충분히 그럴 수도 있지 않겠어?”

“아니, 전 그러지 않는데…….”

“게다가 혹시 모르지, 팬들이 나서서 직접 입맞춤하는 걸 수정했지만 어떤 늑대분이 큰맘 먹고 실수를 가장해서 진짜로 할지도? 한 번으로 부족해서 NG를 낼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

제대로 창현을 놀려먹는 세희였다.

“으으…….”

그 말에 할 말을 잃은 창현은 그대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의 말처럼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막상 말을 들으니 가슴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두근거리면서 묘한 갈등이 생겨나고 있었으니까.

이미 여러 번 입맞춤을 해봤지만(그 중에서 본인 스스로 나서서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입맞춤은 언제나 긴장되고 두근거리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침묵하는 그의 모습에 웃음을 짓고 있던 세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는 흠칫하며 그를 바라본다.

‘설마 정말 그럴 생각이었나?’

갑자기 창현이 늑대로 보이는 세희였다.

그 사이 그들을 태운 벤은 촬영장으로 서서히 진입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촬영장 안으로 들어선 창현은 오늘도 김지환 감독에게 가장 먼저 인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 되었다.

창현의 인사에 김지환 감독이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어서 와라. 벌써 마지막 촬영이구나. 오늘만 하면 끝이니 마지막까지 힘내도록 하자.”

“네, 물론입니다.”

촬영 마지막 날인 오늘이야 말로 배우들이 가장 집중력을 잃기 쉬운 날이다. 이제 끝이라는 안도감과 함께 앞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인해 정신 상태가 풀어지기 때문.

베테랑 배우라면 모를까 아직 연기자로서 신인인 창현이었기에 김지환 감독은 그것을 염려하여 창현에게 충고를 한 것이다.

그 충고에 담긴 의미를 모를 창현이 아니었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것이고. 그 또한 마지막 촬영이라는 것과 앞으로 가수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들뜬 감정을 연신 억눌러야 했으니까.

“그래, 넌 마인드 컨트롤이 잘 되는 녀석이니까 안심이 되는군.”

“그런가요? 하하!”

마인드 컨트롤이 잘된다고 하기에는 자신이 드라마 촬영을 하면서 여러 번 일을 일으킨 것이 있기에 멋쩍은 웃음을 짓는 창현이었다.

슬럼프 문제도 그렇고 키스신 파동도 자신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그것을 생각하니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창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김지환 감독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 정도는 일 축에도 속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도록. 세계적인 스타를 모셔놓고 이 정도 소란은 소란이라 할 수도 없지.”

“그런가요? 하하…….”

자신을 띄워주는 말이었기에 어색한 미소를 짓는 창현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김지환 감독이 은근한 어조로 말한다.

“키스신 일은 참 아쉽게 되었어. 아직까지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고 해서 이참에 확 노려보라는 의미로 한 건데 결국 불발이 나버렸으니.”

그렇게 말하는 김지환 감독의 표정은 묘하게 음흉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창현은 은근히 말하는 김지환 감독의 모습이 조금 전 자신보고 늑대라 칭하던 세희의 모습과 묘하게 매치 되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에… 저, 저는 딱히 바라지 않았는데…….”

“그런 것 치고 지나치게 아쉬운 표정을 하고 있는데?”

“그런가요?”

자신이 그렇게 티를 냈는가 싶어 손으로 얼굴을 더듬는 창현. 만약 표정에서 아쉬운 게 드러났다면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을 것이다.

“하하! 농담인데. 설마 진짜로 그렇게 생각한 건가?”

“농담…이라고요? 하아…….”

진짜인 줄 알고 자신의 얼굴을 더듬던 창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순간 자신이 아쉬워했다는 것에 뜨끔했다는 건 정말로 아쉬운 감정이 들어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근영 같이 귀엽고 예쁜 여인과의 키스신 기회를 놓쳐버렸으니.

창현은 왠지 세희가 자신보고 늑대라 하던 것이 진짜인 것 같아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선뜻 부인하지 못한 것만 보아도 자신이 늑대인 걸 자인하는 꼴이었으니까.

“정말 늑대인가…….”

“응? 뭐라고 말했나?”

“아니에요. 사실 키스신이라는 게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것 같은데 차라리 직접 하지 않는 게 속이 편한 것 같아서요.”

애써 자신의 마음을 숨기며 말하는 창현이다.

그 말을 들은 김지환 감독이 표정을 찌푸리며 말한다.

“대본이 유출되어가지고는… 철저하게 단속을 하고 있지만 범인이 누구인지는 나오지 않더군. 어쨌든 그로 인해 상당한 곤욕을 앓았고, 원하지 않았지만 노이즈 마케팅이 되었으니까. 어쨌든 키스신을 원하면 다음 캐스팅 제의 때 받아들이라고. 아주 찐한 걸 넣어줄 테니까.”

“하하하! 사양할게요.”

키스신이라는 말에 묘하게 혹하기는 하지만 자신은 가수였고, 미안하지만 연기는 슬럼프 타파를 위해서 한 만큼 더 이상 할 생각이 없었다.

“뭐 사람 마음은 바뀌는 법이니까. 처음에도 하지 않겠다 하다 결국 하게 되지 않았나?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니 그렇게 못을 박지 말라고.”

“그럴 수도 있네요. 그럼 다음 기회가 되면 그때 진지하게 생각해볼게요.”

“음, 그게 낫지.”

고개를 끄덕이는 김지환 감독. 만약 다음에도 창현을 붙잡게 된다면 상당한 시청률을 보장받을 수 있기에 그로서는 한시름 놓을 수 있다.

캐스팅 배우 목록에 창현의 이름만 올라가도 상당한 도움이 될 테니.

개인적인 이득이라 볼 수 있지만 자신의 인맥이 넓어지면 창현에게 적합한 드라마나 영화 같은 것도 소개시켜줄 수 있을 테니 결코 쌍방에게 나쁜 일은 아니리라.

흔쾌히 수락하는 창현의 모습이 기분 좋았는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격려의 말을 보냈다.

“그럼 오늘 촬영 잘 부탁하지.”

“물론입니다.”

“아참, 오늘 촬영이 끝난 후 회식이 있을 예정이야. 시간은 어떤가?”

촬영이 모두 끝나면 축하 기념으로 회식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

김지환 감독의 물음에 창현이 씨익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당연히 참가하려고 비워뒀죠.”

“음! 마음에 드는군. 그럼 오늘 촬영 잘 부탁한다. 일찍 끝내고 놀아보자고.”

“예!”

논다는 말에 괜히 긴장감이 풀려서 창현은 가벼운 기분으로 대답할 수 있었다.


스태프들에게도 인사를 마친 창현은 옷을 갈아입고 곧장 촬영에 착수하였다.

남자 주인공이었기에 오늘 촬영 분량이 가장 많은 것이 바로 그였다.

덕분에 점심시간조차 거른 채 촬영에 임해야 했다. 오늘 촬영에 임하는 창현의 자세 또한 무척 진지하였고, 그것이 촬영장에 반영된 탓인지 세트장에서 촬영하는 파트 부분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 야외 촬영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야외 촬영장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창현은 차 안에서 늦은 점심을 먹게 되었다.

“후우!”

“힘들지?”

도시락을 먹다 한숨을 내쉬는 창현을 보며 세희가 말한다.

그에 창현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힘을 내서 빨리 끝내면 다른 사람들 고생을 덜게 되니까 좋네요.”

“착한 말만 골라서 하네. 혹시 키스신 빨리 찍으려고 열심히 한 건 아니고?”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세희의 말에 창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한다.

“누나의 뇌내 망상을 저한테 실현하지 마세요. 어차피 입술도 닿지 않는 키스신을 제가 왜 기대하겠어요. 연기는 연기일 뿐, 현실과 드라마는 구분할 줄 아니 늑대 취급은 사양하도록 하겠어요.”

“미, 미안.”

강하게 말하는 창현의 모습에 압도되어 자신도 모르게 사과를 해버리는 세희였다. 그러고 보면 자신의 장난이 조금 과한 감이 없지 않아 있기는 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게 있는지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창현에게 물었다.

“그럼 직접 입맞춤 하는 키스신이었다면 기대하겠다는 거네?”

“…….”

창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야외 촬영장에 도착하자 그곳에서는 이미 촬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세트장에서 창현이 마지막 클라이막스로 향하는 부분을 촬영하고 있다면 근영은 여자 주인공이 겪는 심적 갈등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있었다.

베테랑 연기자답게 NG없이 단숨에 OK사인을 받은 근영은 벤에서 내리는 창현을 보고는 눈을 빛내며 그에게 접근한다.

“어서 와, 창현아. 세트장에서 촬영이 일찍 끝났나 봐?”

“마지막 날이라서 열심히 했죠.”

“그래? 보통 신인 연기자들은 마지막 촬영에서 퍼지는 모습을 보이고는 하는데 역시 창현이 넌 다르네. 과연, 가수 중에서도 탑 클래스라 이건가.”

자신을 칭찬하는 말에 낯이 뜨거웠지만 내색하지 않은 채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창현이었다.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민폐는 끼치면 안 되죠.”

“오옷! 멋진 말인데?”

“그래요? 그러는 누나도 촬영을 잘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무더운 날씨였지만 스태프들의 얼굴에 짜증이 서려있지 않았다. 날씨가 더워 불쾌지수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스태프들이 짜증을 내지 않는다는 것은 촬영이 제법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뜻.

정확하게 꿰뚫어보며 묻는 창현의 물음에 근영이 미소를 지었다.

“나이는 많지 않아도 베테랑이니까. 마지막 촬영을 더욱 잘하려고 파이팅 잔뜩 하고 왔지.”

“호오! 그렇군요. 확실히 누나는 연기 경험이 풍부하니까 이런 면에서는 확실하겠네요. 아까 감독님도 그 부분을 염려하시고 계시던데.”

“이때쯤에 가장 말썽이 일어나고는 하니 그럴 수밖에. 그런데 일찍 와도 너무 일찍 왔는데? 혹시 창현이 너…….”

“네?”

갑자기 가자미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근영의 눈길에 창현이 움찔하며 고개를 갸웃한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그녀에게서 느껴지고 있었다.

“설마 키스신 찍을려고 일찍 왔다던가…….”

그 말을 들은 창현의 얼굴에 황당함이 서렸다.

“하아?! 갑자기 다들 왜 그러죠?”

“으응? 뭐가?”

자신은 장난스레 말한 것인데 창현이 제법 예민하게 반응하자 근영이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 묻는다.

그러자 창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말하기 시작한다.

“세희 누나도 그렇고 감독님도 그렇고… 다들 아까 전부터 키스신에 대한 이야기만 하더라고요. 열심히 해도 키스신을 찍으려고 열심히 한다고 하고, 아침부터 기합을 넣고 있으면 키스신을 잘하려고 그러느냐고 하고… 정말 남자배우들은 키스신을 찍으면 다 늑대가 되는 건가요?”

“으음. 그, 그건…….”

창현의 말에 어안이 벙벙하던 근영은 그의 질문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한껏 누님 포스를 풍기며 베테랑 연기자로서의 면모를 보였지만 실은 그녀도 키스신을 해보지 않은 풋내기였던 것이다. 그랬기에 내심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창현에게 장난스럽게 말한 것인데 역으로 질문에 걸려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선배이고, 베테랑 연기자인 만큼 그럴 듯한 대답을 내놓아야 했다.

근영은 자신의 풍부한 연기 경험을 되살려 겪어보았던 것들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상대 여배우보다는 남자배우가 좀 더 기대하는 경향이 있지. 정말 늑대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나도 확신하지 못하겠고.”

“그런가요?”

확실한 대답이 아니었기에 창현은 아쉬운 기색이 서린 얼굴을 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근영이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짓더니, 은근한 어조로 창현에게 말한다.

“그럼 한 번 해볼래?”

“네? 뭘요?”

“키스신 말이야. 원래는 입맞춤을 하지 않는 걸로 수정되었지만 진짜로 해도 아무도 모를 텐데… 진짜로 해볼래?”

그것은 강렬한 유혹이었다. 한창 이성에 대해 왕성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을 창현에게 하는 강렬한 누님의 유혹.

순간 창현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근영은 여세를 몰아 창현에게 말한다.

“어차피 각도 촬영이니까 진짜로 해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거야. 창현이 넌 연기에 상당한 재능을 보였으니 앞으로 여러 드라마를 촬영하게 될 거고… 그렇게 되면 키스신도 촬영하게 될 테지. 그때 형편없이 여배우에게 리드 당하면 자존심이 상하잖아, 안 그래?”

계속해서 이어지는 은근한 유혹.

특히 여자에게 리드 당한다는 부분은 창현에게 있어 큰 의미로 다가왔다.

왜냐하면 여태까지 키스한 경험이 모조리 자신의 의사는 결여된, 여자들의 의지로 했던 것이니까. 그 부분에 있어 자신이 리드하고 싶은 욕망이 컸던(?) 창현으로서는 제대로 일격을 먹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서서히 넘어오려는 창현의 기색을 읽었는지 근영이 나름 섹시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한다.

“어때? 할 마음이 있어?”

외모가 어찌 되었건 강렬한 누님의 유혹인 것만은 분명했다.

“저는…….”

흔들리는 마음에 창현이 막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그 순간, 그의 말과 분위기를 단숨에 깨버리는 한 줄기 목소리가 그들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방금 들어서는 안될 말을 들어버린 것 같은데요, 언니?”

“……!”

갑자기 끼어든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창현과 근영이 목소리의 진원지로 시선이 향했다.

그곳에는 도끼눈을 뜬 채 근영을 노려보는 윤아가 살기(?)를 뿌리며 서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윤아의 등장이었지만 근영은 노련한 베테랑이었다.

그녀는 당황한 표정을 짓지 않고 태연한 표정을 한 채 윤아에게 시선을 옮긴 뒤 미소를 지어보이며 인사를 하였다.

“어머, 윤아 왔네. 어서 와. 지금 도착한 거야?”

그러면서 은근슬쩍 지금의 상황을 넘어가려 하는 근영.

하지만 그 말이 윤아에게 먹힐 리 없다.

그녀의 짙은 살기를 머금은 눈이 그대로 근영에게 향하고 있었다.

윤아는 속으로 근영에 대한 분노를 불태우고 있었다.

‘역시나, 수연 언니 말대로야.’

수연은 윤아에게 거듭 주의를 주었다. 창현이 둔감하여 여성의 호감을 제대로 눈치 채지 못하지만 주변 여인들이 가만히 있는다는 보장이 없다. 만약 여자가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창현은 눈뜨고 당할 수도 있다는 말과 함께 키스신 촬영을 하는 근영을 경계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였다.

그 말을 들은 윤아는 설마 근영이 그렇게 할까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이 함께 하고 있었기에 결국 수연의 말을 받아들이고 두 사람을 철저하게 감시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이 촬영장에 도착하자마자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창현에게 꼬리 아홉 개 달린 근영이 은근한 어조로 아직 피어보지 못한 소년의 꽃봉오리를 따버리려는 앙큼한 계획을.

친절한 근영의 말에도 불구하고 윤아는 도끼눈을 거두지 않은 채 근영에게 묻는다.

“방금 전 말 다 들었어요. 그게 무슨 뜻이죠, 언니?”

“뭘 말이니? 난 기억나지 않는 걸? 호, 호호…….”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윤아의 등장에 근영은 내심 이를 갈았지만 지금 그녀에게 현행범으로 발각된 순간이다. 그녀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했던 행동을 얼버무리려 했다.

“기억나지 않는다고요? 언니가 방금 창현에게 그… 키, 키, 키스신을 진짜로 하자고 했잖아요!”

키스신 언급에 대해 망설이던 윤아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말한다. 그러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깨닫고는 얼굴을 붉힌다. 버럭 외치기는 했지만 부끄러운 감정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설마 직접적으로 키스신을 언급할 줄 몰랐기에 근영은 다소 당황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은 채 빠르게 침착함을 되찾으며 윤아에게 말한다.

“그거 농담이야.”

“농담이라고요?”

“응. 인터넷으로 그 난리가 났었는데 설마 진짜로 하려 하겠어? 만약 진짜로 한 게 외부에 알려지면 나는 다크 스타에서 척살 당할지도 모르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농담이었다고 말하는 근영의 말은 매끄러웠고, 거침이 없었다. 윤아는 근영의 변함없는 표정에 혼란을 느끼고는 침음을 흘렸다.

“으음!”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윤아야. 응?”

설득하듯 말하는 근영의 모습에 윤아는 미심쩍은 면이 있었지만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하지도 않았고, 모의에 그쳤지만 자신이 이렇게 나선 이상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알겠어요. 일단은 믿을게요. 하지만 다음에도 그러면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응, 이해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말이야…….”

“네.”

무언가를 말하려는 근영의 모습에 윤아가 말해보라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의 수락이 떨어지자 근영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윤아에게 말한다.

“나랑 창현이와 관련된 일인데 윤아 네가 필요 이상으로 신경 쓰는 것 같은데?”

근영의 역습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계획을 사전에 뭉개버린 윤아를 골려줄 마음으로 짓궂은 장난을 걸었다.

그리고 그 장난에 걸려든 윤아는 아뿔싸! 하는 표정과 함께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키스신은 두 사람이 관련된 것인데 자신도 모르게 흥분하여 앞으로 나선 것이다.

“으윽! 그, 그건…….”

말끝을 흐리는 윤아. 머리가 백지처럼 새하얗게 변해서 무어라 말해야 할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당황하는 윤아를 근영은 좀 더 몰아붙이기 시작하였다.

“수상한데? 혹시 창현이한테 개인적인 감정이 있는 게 아닌가?”

“제, 제가 그, 그럴 리 없잖아요. 저와 창현이는 치, 친한 누나 동생 사이니까… 동생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저는 다크 스타 회원이니까… 창현이한테는 아직 이르다는 마음에서…….”

“그런데 너무 말을 더듬는데?”

“그, 그건…….”

어찌어찌 변명을 해냈지만 근영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에 더욱 당황한 윤아가 어쩔 줄을 몰라하며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그녀를 구원하는 한 줄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아야! 메이크업하고 옷도 갈아입어야 하는데 거기에서 뭐하는 거니. 어서 와라.”

“네! 네! 언니! 저는 순수한 의도로 그런 거니 이상하게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신을 구원해주는 매니저의 목소리에 윤아가 밝은 표정을 짓더니 근영에게 한마디 하고는 그대로 매니저가 있는 곳으로 쪼르르 달려간다.

도망치는 윤아의 모습을 보며 근영은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칫!”

“누나 너무 짓궂어요. 윤아 누나가 당황하잖아요.”

혀를 차는 그녀를 창현이 타박하듯 말하자 그녀는 창현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고개를 슬쩍 갸웃한다. 방금 전 윤아의 반응을 보면 그녀가 창현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창현도 느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듯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마 저렇게 반응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가?’

“내가 장난이 과했다고?”

“그렇지 않겠어요? 누나가 갑자기 친한 동생하고 엮어버리고 추궁하면 그 상황에서 누가 당황하지 않겠어요. 그것도 그렇고, 처음 키스신 제안도 장난이라고 말해야지, 진심인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요. 하여튼 장난이 심하다니까.”

“아이고 두야.”

머리가 아파오는 느낌에 근영은 앓는 소리를 내며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그녀는 깨달았던 것이다.

눈앞의 녀석은 여자의 맘을 몰라주는 지독한 둔감남이라는 것을. 대놓고 호감을 드러내는 여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알아차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진지하게 제안했던 것을 잊어버린 채 그것을 장난이라 치부하다니.

살다살다 이런 둔감남은 처음 봐서 근영은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진지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창현의 표정에서 그녀는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머리 아파요? 더워서 열이 올라 그런 걸 수도 있겠네요. 좀 쉬도록 해요.”

끝까지 자신의 상태를 오해를 하는 창현의 모습에 근영은 더 이상 무어라 할 여력도 없었다. 이 지독한 둔감남을 좋아하는 여인들이 앞으로 어떤 고생을 할지 생각만 해도 연민이 치밀어 올랐으니까.

“그래그래 머리가 아파 죽겠네. 좀 쉬어야겠다. 창현이 너도 쉬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창현을 일별한 근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발걸음을 옮긴다.

그녀는 둔감남 창현을 보며 아쉬운 듯 한숨을 푹푹 내쉰다.

“다 좋은데 설마 저렇게 지독할 정도로 둔감할 줄이야. 창현이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다 불쌍해지네. 후우!”

자신도 그 경계에 걸쳐 있다는 것을 모르는 근영이었다.

잠깐의 휴식을 취한 뒤 곧장 촬영이 재개 되었다.

먼저 촬영되는 장면은 근영과 윤아가 나오는 씬이었다.

악역이자, 남자 주인공 지훈을 끝까지 좋아하는 은설은 방황하는 여자 주인공 예린에게 마지막 일격을 먹이는 장면이다.

표독하게 치뜨고 있는 눈은 당장이라도 근영을 잡아먹을 듯 무시무시한 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 눈빛은 연기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현실감이 있었고, 마주하는 베테랑 연기자 근영에게 밀리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분위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연기력 논란을 완전히 해소시킨 윤아의 악역 연기는 그야 말로 완벽 그 자체였다. 질투의 화신이라 불리는 그녀의 연기를 접한 시청자들은 현실인지 연기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극찬을 하고는 했으니까.

지금도 자신을 노려보는 윤아의 분노 어린 눈길은 근영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극에 몰입하게 만들면서 한편으로는 그녀의 개인적인 감정(?)이 실려 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무서운 걸?’

방금 전 켕기는 짓을 한 것과 집요하게 물어보았던 것 때문인지 윤아의 시선이 더욱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는 근영이었다.

질투의 여신 백은설에 완전히 빙의된 윤아는 무시무시한 눈으로 근영을 쏘아보며 말한다.

“그는 처음부터 당신을 이용하기 위해 접근했던 거야. 그리고 바보같이 사랑에 빠져서 모든 걸 잃고 있지. 그를 정말 사랑한다면 그를 놓아줘. 그는 너의 상대가 아니야.”

극 중 내에서 예린을 사랑한 지훈은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려 든다. 그것을 알아차린 은설은 예린에게 그녀가 떠나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간신히 자리잡아가고 있는 지훈의 그룹은 국내 십대그룹으로서 나라에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떠나면 그가 슬퍼할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할 필요는 없어. 왜냐하면 내가 그 자리를 채울 거니까!”

강한 어조로 말하는 윤아에게서 근영을 압도하는 기세가 발산된다.

“당신이 정말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나요?”

“나는 그를 사랑하니까. 너는 조용히 떠나주기만 하면 돼.”

진심이 담기고 그녀의 마음이 전달된다. 윤아는 근영이 창현에게 은근한 어조로 유혹했던 것을 떠올리며 말을 함에 있어 더더욱 억양을 주었고, 그 말을 전해 듣는 근영은 혼란스러움을 느껴야만 했다.

“정말… 정말 제가 떠나야 하나요?”

“그것이 모두가 행복해지는 일이야. 너만 불행해지면 돼.”

악역다운 표독한 표정과 표독한 목소리. 질투에 사로잡힌 은설의 눈에 예린은 눈에 가시와 같았다. 그녀가 사라지면 모두가 행복해질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강한 어조의 말에 예린이 고개를 푹 떨어뜨리며 말한다.

“알겠어요. 제가 떠나야 한다면… 떠나겠어요.”

“컷! 수고했어.”

윤아의 표독한 연기와 근영의 순진무구하면서 한 남자를 생각하는 연기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장면이었다.

김지환 감독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연신 칭찬하였다.

그만큼 지금 장면은 그에게 있어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잘했다는 칭찬을 들은 뒤 근영이 윤아를 바라본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윤아가 멈칫한다. 자신의 표독스러운 연기에 진심이 반영되었기에 그녀에게 무어라 말하기가 머뭇거려지던 것이다.

악역으로서 항상 그녀를 괴롭히는 역할을 해왔기에 이렇듯 함께 촬영한 이후에는 근영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윤아였다.

“그렇게 부담 갖지 않아도 돼.”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근영. 상냥한 그녀의 표정과 목소리에 윤아는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접근하던 근영은 윤아를 지나치며 입을 연다.

“그렇게 앙칼지게 나올수록 더욱 진심이 되어버리고 싶어.”

“……!”

근영의 작은 중얼거림을 들은 윤아의 눈에 화등짝만하게 커진다.

지금 그녀가 한 말의 의미는 윤아로 하여금 여러 가지 상상을 자극하는 묘한 어조의 말이었으니까.

놀란 윤아의 시선을 받으며 근영은 저벅저벅 발걸음을 옮긴다.

다음 촬영은 다름 아닌 대망의 키스신이었다.


드라마 모든 장면 촬영이 끝났다.

이제 남은 장면은 극 중 남자 주인공인 지훈과 여자 주인공인 예린이 극적인 재회를 한 후 드라마의 대미를 장식할 키스신 뿐.

“…….”

남은 것이 키스신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배우들은 물론 스태프들, 심지어 감독까지 긴장한 표정을 짓는다.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방식으로 시작하느냐에 따라 절반 이상을 먹고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만큼 시작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시작은 그야 말로 대박 그 자체였다. 현의 이름을 적절이 이용한 이슈 마케팅과 가수로서 지닌 그의 카리스마를 적극 활용한 드라마는 첫 화부터 대박 행진을 달리기 시작하였고, 점점 몰입력을 더해가는 내용 구조와 발전해나가는 젊은 연기자들의 분투에 힘입어 시청률을 상승시켜나갔다.

그리고 지금, 마침내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만이 남았다.

처음이 절반이라는 말이 있지만 마지막은 그야 말로 탄탄대로를 달리던 드라마의 모든 평가를 가르는 기준점이 된다.

아무리 앞내용이 대단하다고 해도 마지막이 흐지부지한다면 시청자들을 배반하는 결과니까.

그만큼 마지막 마무리는 드라마의 평가를 다르게 만들 수 있는 중요 포인트였다.

이미 마지막 장면에 대한 대본은 나와 있는 상태. 결국 서로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걸 은설에게 전해들은 예린은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조용히 사라지려 한다. 하지만 남자 주인공인 지훈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발휘하여 그녀를 찾고, 도시 중심에서 재회를 한 그들은 키스를 하며 드라마를 끝낸다.

주변 공기 무게가 달라지는 걸 느낀 창현.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마지막 촬영에 임하려니 무거운 긴장감이 어깨를 짓누르는 듯하였다.

“긴장감이 장난이 아니네요.”

“마지막 촬영이니까. 얼마나 잘 해내느냐에 따라 드라마 평가가 많이 바뀔 거야.”

경험(?)이 풍부한 누님의 모습으로 창현에게 대답해주는 근영. 외모로는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지만 이럴 때만큼은 그녀가 자신보다 무려 다섯 살이나 많은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 창현의 시선을 느꼈는지 근영이 흠칫하며 창현에게 말한다.

“갑자기 왜 그런 시선으로 보는 거야.”

“하하! 누나가 갑자기 누나로 보여서요.”

“내가 누나지 그럼 뭐겠어? 아아, 설마 그 이성적인 뜻의 누나인가? 하기야, 내가 매력이 좀 넘치긴 하지.”

장난스러우면서 은근한 어조로 말하는 근영. 그 모습을 보며 창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긴 하죠. 하하!”

“뭐야, 무시하는 거야?”

“무시하다뇨. 제가 왜 누나를 무시하겠어요. 다만 이럴 때 확실하게 말해주는 걸 보면 누나가 확실히 베테랑 연기자라는 것을 실감한다는 뜻이죠.”

“뭐야, 그런 뜻이었어?”

김 빠진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삐죽이는 근영이었다. 그 모습이 불경(?)하게도 무척 귀엽다 생각하며 창현이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럼 무슨 뜻이라 생각한 건데요?”

“무슨 뜻일 거 같아?”

오히려 창현에게 답을 구하는 근영. 답을 몰라 그녀에게 물었는데 자신에게 다시 묻는다 한들 뭐라 대답할 수 있겠는가.

“잘 모르겠네요.”

“그럼 진지하게 고민해보도록 해.”

“끙! 지금 마지막 장면 때문에 그런 여유는 없어요. 그냥 누나가 말해주시면 안 될까요?”

앓는 소리를 흘리며 말하는 창현의 모습에 근영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지막 장면 때문에? 왜에? 혹시 키스신 때문에 그렇다거나 그런 건가?”

“무,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이에요.”

“흐흥! 뭐 나는 그냥 한 말인데? 남자는 전부 늑대라거나, 창현이가 남자니까 이제 막 피어나는 늑대라거나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어. 그저 마지막 키스신!을 열심히 준비하는 거라고 생각할 뿐이랄까?”

“…….”

사정없이 비수를 꽂아넣는 그녀의 말에 할 말을 잃어버린 창현이었다. 이건 아주 대놓고 이상한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는 걸 시인하는 꼴이 아닌가.

“이미 의심하고 있으니 뭐라 하기 그렇지만 오해하지 않길 바라요. 전 그런 생각하지 않았어요. 마지막 장면을 잘 촬영해서 성공적으로 촬영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

“뭐 그렇다면 그렇다고 쳐줄게.”

“…역시 안 믿네요. 쩝.”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창현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처럼 은근히 기대를 품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기에 무어라 말하지는 못했다.

키스신이라는 건 언제나 기대감을 동반하니까.

그런 범주에서 보면 창현도 이미 훌륭한 늑대였다.

‘키스신이라… 키스신. 뭐 이것도 경험 아니겠어?’

결코 자신이 좋아서 그러는 것이 아닌, 드라마 대본에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한다는 식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는 창현이었다.

그때, 창현의 귓가에 울려 퍼지는 날선 여인의 목소리.

“기분 좋아 보이네, 창현아?”

어느새 장면 촬영을 마친 윤아가 창현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윤아는 마지막에 근영이 했던 말을 듣고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 채 창현에게 다가온 것이다.

“아, 윤아 누나. 제가 기분 좋기는요. 그냥 마지막 장면 때문에 이런 저런 생각을 했을 뿐이에요.”

아무래도 키스신에 대한 자기 합리화가 완료되면서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나보다. 뚱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윤아의 모습에 창현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렇구나. 난 창현이가 잘 해낼 거라 생각해.”

“그렇죠?”

하나같이 자신에게 늑대니 뭐니 하는데 윤아만 다른 말을 하자 창현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윤아의 말에 기분이 좋은 듯 대답한다.

지켜보고 있던 근영 또한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자신의 말로 인해 윤아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저 근거 없는 자신감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게 의문을 가질 때, 윤아의 입에서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 흘러나왔다.

“나와 키스신 할 때도 잘 했잖아.”

“뭐, 뭐라고?”

윤아의 폭탄 발언에 근영의 입에서 경악이 서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그녀는 윤아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키스신이라니! 분명 창현이라면 첫 키스신이라 생각했는데 또 다른 키스신이 존재했단 말인가?

아니, 애초에 드라마에는 키스신이 존재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창현과 윤아가 다른 곳에서 키스신 촬영을 했다는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두 사람이 만났던 드라마 같은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면 도대체 어디에서 키스신 촬영을 했단 말인가?

‘서, 설마 창현이 키스신이 처음이라 윤아에게 도움을 청해서 키스신을 연습했다거나?’

걷잡을 수 없이 전개되는 상상. 그녀의 뇌리에는 키스신으로 인해 고민에 빠진 창현을 꼬리 아홉 개 달린 윤아가 살살 구슬려서 키스신 연습을 도와주겠다는 명목 하에 이런저런(?) 것을 실험해보는 윤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가 본 윤아라면 충분히 그런 짓이 가능하다!

망상 전개 100%에 다다른 근영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노의 눈길이었다.

‘흐흥!’

근영의 표정이 급변하는 걸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윤아였다.

그녀의 폭탄 발언에 그녀는 적잖게 당황해야만 했다. 참을 수 없다는 식의 이야기는 자칫 그녀가 키스신에서 일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것을 윤아가 그냥 넘길 리 없다. 어떻게 하면 근영의 만행을 저지할 수 있을지 생각하던 윤아는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바로 창현의 키스신 촬영은 근영이 처음이 아닌 자신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후후! 그건 몰랐을 걸. 창현이랑 키스신을 가장 먼저 촬영한 건 나라고.’

라샤의 곡 중 <가면의 기사>라는 곡이 존재하는데, 창현과 윤아는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으로 캐스팅 되어 열연을 펼친 적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윤아는 가면을 쓴 창현과 마지막 키스신을 촬영하였다.

비록 각도 없는 키스신이었기에 입술이 닿지는 않았지만 그의 숨결과 체온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일로 인해 윤아가 창현에게 반해버렸으니까.

‘후후후!’

자신이 첫 키스신 촬영이었다는 생각에 불쾌한 생각은 사라지고 기분 좋은 것만 남은 윤아였다. 이 사실을 근영에게 알린 것도 다른 노림수가 존재했다.

‘머리가 복잡할 걸.’

언제 키스신을 촬영한 것인지 근영에게 혼란을 심어주려는 의도가 존재하였고, 창현에게도 키스신 촬영 경험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킴으로써 그의 내면에 자리한 묘한 두근거림을 없애려는 의도였다.

평소에는 머리를 잘 쓰지 못해 번번이 이용당하고 속아 넘어가는 윤아였지만 지금 만큼은 와룡 파니와 사마율에 못지않은 지략을 보여주고 있었다.

뭐든지 궁하면 나오게 되는 법이었다.

“아아. 그러네요.”

창현은 <가면의 기사> 뮤직비디오 촬영할 때가 떠올랐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분명 윤아와 함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여 키스신을 촬영한 적이 있다. 입이 닿지 않는, 각도 촬영이었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키스신이었다.

따지고 보면 드라마 촬영과 다를 바 없는 장면이었다. 단지 다른 점은 뮤직비디오가 드라마로 바뀌었다는 점이고, 스케일이 좀 더 커졌다는 것? 그때와 비교하면 다를 건 없었다.

“언제 촬영한 건데?”

다급한 어조로 창현에게 묻는 근영. 사실이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창현이 인정해버리자 적잖게 당황한 듯 싶었다.

“그런 게 있어요, 그렇지, 창현아?”

다급한 그녀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윤아가 묘한 미소를 지은 채 창현에게 말한다. 분명 키스신 촬영을 했지만 창현은 입장을 밝히기가 상당히 난감한 처지였다.

왜냐하면 <가면의 기사>에서 창현이 참여했다는 것은 비밀로 붙여진 일이었으니까. 데뷔를 한 지금에 와서 굳이 감출 필요가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여기저기 떠벌릴 것도 안 되었다.

괜히 키스신을 먼저 했던 것이 퍼져나간다면 자신은 물론이고 윤아도 곤욕을 겪을 테니까.

윤아의 노림수가 거기까지 존재하지 않았지만 생각이 깊은 창현은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사전에 차단을 하였다.

“네, 밝히기 조금 그래서요. 설명할 수 없어서 미안해요, 누나.”

“으응… 비밀이라면 어쩔 수 없지. 괜찮아.”

자세한 사정을 설명하지 않자 근영은 자신의 망상이 사실인 것 같아 힘이 쭉 빠진 표정을 지었다. 만약 자신의 상상이 사실이라면 윤아와 창현은 이미 먼저 만나 이런저런(?) 키스신을 연습 했을 테니까. 그 장면에서 응큼한 윤아가 순진한 창현을 꼬드겨 이건 연인간의 키스가 아닌, 키스신 연습이라고 하면서 얼마나 창현을 농락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왜 그래요?”

“응? 아니야.”

대답은 하지만 상상력이 풍부한 근영의 뇌내에서는 윤아에게 이렇게 저렇게 농락(?) 당하는 창현의 모습이 떠올랐기에 음성에 힘이 없었다.

그녀의 모습을 보며 윤아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선수를 친다.

“언니가 강행군으로 많이 지쳤나봐. 조금 휴식을 취해야 할 것 같은데 자리를 피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

“그렇게 보이네요. 음! 자리를 피해줄 테니 조금이라도 체력을 추스르세요. 그럼 조금 있다가 봐요.”

그러면서 근영에게서 멀어지는 창현과 윤아였다.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도착한 창현은 윤아를 바라보며 말한다.

“생각해보니 그때도 키스신 촬영이 있었네요. 깜빡하고 있었어요.”

“그렇지? 나도 깜빡하고 있었어.”

“그렇게 생각하니까 지금 촬영하는 키스신도 어렵지 않게 느껴지네요. 따지고 보면 한 번 해봤던 것이기도 하고, 경험이 있으니 스케일이 조금 커졌다고 생각하면서 임하면 되겠네요.”

창현의 말에 무언가가 퍼뜩 떠오른 윤아가 창현에게 말한다.

“그렇지. 사실 말을 하지 않으려 했는데 창현이 네가 키스신으로 이런저런 고민이 많은 것 같아서 말한 거였어. 혹시 내가 말해서 폐가 된 건 아니지?”

“폐가되긴요. 당시에는 비밀이었지만 지금은 굳이 비밀로 할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가급적이면 언급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만약 그때 일이 밝혀지면 저나 누나가 제법 곤욕을 겪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응, 그건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는 윤아를 보며 창현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도 고마워요. 누나가 절 이렇게 생각해줄 줄 몰랐어요.”

창현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들렸다.

키스신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은근히 놀리고 있었고, 처음이라는 생각에 은연중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윤아가 자신의 긴장감을 풀어주고자 나선 것이다. 사악한(?) 사람들의 마수에 휘말리고 있던 창현에게 있어 윤아는 한줄기 구원줄과 같은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 히히! 역시 창현이 널 생각해주는 건 나밖에 없다니까? 앞으로 알아서 모시도록 해.”

그의 인사에 입이 귀까지 걸린 윤아가 자랑스러운 어조로 말하자 창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게요, 하하!”

단순한 질투심 유발을 위해 한 말로 창현에게 저렇게 달콤한 말까지 들을 수 있다니.

오늘 뭔가 일이 잘 풀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 윤아였다.

다른 장면 촬영도 모두 끝이 나고 마지막 촬영에 돌입하기 시작하였다.

6월 중순이어서 그런지 오후 7시가 되어가는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밖은 밝았다.

주변을 휘휘 둘러보던 김지환 감독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촬영에 돌입하도록 하지. 어두워지고 있으니 적절하군.”

마지막 장면은 도시 중심부에서 두 주인공이 만나는 것이었다.

떠나기 위해 움직이던 예린을 찾은 지훈이 도시 한복판에서 그녀를 껴안고, 입을 맞춤으로써 드라마가 끝이 나는 것. 도시의 밝은 야경이 그들을 비추면서 끝을 맺을 생각이었기에 주변이 좀 더 어두워지길 바라고 있었다.

아직 밝았지만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기에 김지환 감독은 촬영 개시를 명하였다. 약간 이르지만 지금 주변 환경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겨졌으니까.

“시작하도록 하지.”

김지환 감독의 말을 시작으로 촬영이 개시 되었다.

장면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힘없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예린을 지훈이 큰 목소리로 불러 찾는 장면이었다.

촬영이 시작되자 근영은 사람들 사이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그보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창현은 빠르게 거리를 질주하기 시작한다.

수많은 사람이 서 있지만 창현은 달리면서 그들과 부딪치고, 치이면서도 끊임없이 근영이 있는 곳으로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뒷모습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자 창현이 외친다.

“예린!”

“…….”

창현의 외침에 근영이 살짝 고개를 돌렸다가 그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다시 빠르게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여자가 남자의 속도를 이길 수 없는 법. 빠르게 다가간 창현은 어느덧 근영의 손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이야기를 좀 해.”

손목을 붙잡으며 말하는 창현의 모습에 근영이 표정을 살짝 찌푸리며 말한다.

“뭐하는 거야?”

그러면서 붙잡힌 손목을 강하게 털어버린다. 그러자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던 창현의 손이 풀어졌고, 그녀는 다시 몸을 돌리려 한다. 하지만 창현이 어깨를 짚자, 다시 몸을 돌린다.

“이야기 좀 하자고.”

“난 할 이야기가 없어.”

“갑자기, 왜. 갑자기 왜 떠나려는 거지?”

모든 역경을 딛고 마침내 그룹의 총수가 된 지훈이다. 비록 원수라고 하나 그가 직접적으로 개입된 적이 없다. 어디까지나 선대에 벌어진 일이었고, 예린은 그것을 이해해주는 모습을 보였다.

함께 이해해주고 살아가기로 한 지금 상황에서 갑자기 그녀가 마음이 바뀌어 떠나려는 것이다.

“네가 싫어졌어. 그럼 됐지?”

그렇게 말한 근영이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떠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은 창현이 강하게 그녀를 끌어당겼다.

창현의 손에 몸이 끌려간 근영은 그대로 그의 품안에 안기게 되었다.

“꺄아아아.”

지켜보고 있던 여성 스태프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창현의 품에 안긴 근영이 너무나 부럽게 여겨졌던 것이다. 반대로 남성 스태프들은 근영을 안고 있는 창현을 부럽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

그에 반해 윤아는 아무런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어디까지나 행동일 뿐, 그녀의 눈은 활화산처럼 용암이 일렁이고 있었다. 누군가 건드리면 당장 폭발할 것이란 느낌이 들 정도로.

한편, 창현에게 안긴 근영은 연기를 계속해서 하고 있었다.

“놔! 네가 싫어졌는데 왜 안는 거야. 난 네가 싫다고!”

표독하게 외치는 그녀의 말에 창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녀를 지켜본다. 그러자 그녀의 표독한 어조는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를 싫다고 해도 눈만큼은 진실을 말하고 있어. 제발 붙잡아 달라고. 떠나기 싫다고 말하면서 내가 싫어졌다고 하면 내가 믿을 것 같아.”

“난 네가 싫어졌어.”

“그런 말을 해도 믿지 않아. 왜냐하면 처음 학교에서 봤을 때부터 넌 영원히 내 거였으니까. 내 허락없이는 그 어디도 갈 수 없어.”

그러면서 창현은 다시 한 번 근영을 안는다. 이 과정을 넘기면 그 다음이 바로 대망의 키스신이다.

하지만 너무 의욕이 과한 것일까. 창현이 안았던 힘이 너무 강했던 나머지 안기면서 근영은 순간 터져나온 신음을 참지 못했다.

“윽!”

안는 힘이 너무 강해서 참아내지 못한 것이다.

당연히 그 소리는 NG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NG!"

김지환 감독의 목소리를 들은 창현은 자신이 순간 과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근영을 바라보며 묻는다.

“이런, 괜찮아요, 누나?”

“콜록콜록! 힘이 너무 세다고. 호리호리해보이는데 무슨 힘이 그렇게 센 거야?”

기침을 터뜨리며 근영이 창현에게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창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나름 몰입해서 힘을 줬는데 그것이 근영이 견뎌내기에는 너무 과한 힘이었나보다.

“미안해요.”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마지막 장면이어서 NG가 많이 날 줄 알았는데 잘 해냈고. 괜찮으니까 그럴 필요 없어.”

“네. 그리고 죄송합니다, 감독님.”

근영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창현이 김지환 감독에게 고개를 숙인다. 여러 번 가닥이 끊기는 경우라면 모를까, 이렇게 잘 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흐름이 끊기게 되면 그 흐름을 잇기가 제법 힘들어진다. 자신이 너무 몰입하다가 흐름이 끊어졌기에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사과에 김지환 감독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의욕이 너무 과한 것도 좋지 않지. 근영이를 너무 세게 안으면 남자 스태프들의 기세가 흉흉해지니까 살살 하도록 하고. 알겠지?”

김지환 감독의 농담에 일부 스태프들이 웃음을 터뜨렸고, 창현은 의욕이 과하다는 지적에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예, 죄송합니다.”

사과를 하던 창현은 한쪽에서 무시무시한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렸던 그는 귀신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홱 돌렸다.

무시무시한 시선의 정체는 다름 아닌 윤아였던 것이다.

‘윤아 누나가 왜 저렇게 바라보는 거지?’

창현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반응이었기에 의아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러는 건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괜히 물어봤다가 경을 칠 것 같아 창현은 그 마음을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촬영 끝난 후에 물어봐야겠군.’

그렇게 마음을 굳힌 창현은 근영을 바라본다.

기침을 하던 근영의 호흡은 어느새 차분하게 변해 있었다. 창현이 갑작스럽게 꽉 안는 바람에 사래가 들렸을 뿐이었으니까.

“괜찮아요, 누나?”

“응. 처음부터 별로 심각한 건 아니었어.”

놀라서 그런 것뿐이었으니까. 근영은 창현이 너무 미안해하는 것 같아 거듭 괜찮다 말하였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창현도 더 이상 근영에게 무어라 말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마따나 심각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촬영은 다시 재개되었다.

방금 전 촬영하면서 첫 번째 포옹과 그 다음 대사까지 촬영을 하였기에 촬영하는 부분은 두 번째 포옹이었다.

그러나 또 다시 발생하는 NG.

힘을 빼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보니 다시 NG가 난 것이다. 왜냐하면 대본에서는 꽉 끌어안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방금 전 NG 때문인지 필요 이상으로 힘을 빼서 꽉 안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대로 흐름이 끊겨버리면 상당한 고생을 할 것 같은 예감이었기에 창현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 직전에서 긴장감이 풀려버리면 엄청난 고생을 할 테니까. 스스로 자각하고 있어도 흐름이라는 것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고 있을 리가 없다.

빨리 다음 촬영 때 끝내야 한다.

“힘을 줘도 돼.”

“그래도 될까요?”

“응. 방금 전 내가 기침했던 건 창현이 네 실수가 아니라 내 실수여서 그래. 꽉 안는다는 게 있으니 그 부분을 내가 맞추는 것이 옳겠지.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하도록 해. 알겠지?”

“그렇게 할게요.”

베테랑의 면모를 보이며 불안해하는 자신을 다독이자, 한시름 놓는 창현이었다. 그녀의 말처럼 연기는 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닌, 여러 사람이 호흡을 맞추는 것이다. 창현 스스로가 다른 사람의 연기를 끌어낼 정도의 탑 레벨이 아닌 이상, 서로 맞춰가는 것이 이상적이리라. 더군다나 근영은 나이에 비해 베테랑 연기자로서, 창현의 내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애초에 그가 리드한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그렇게 든든한 근영의 말을 들은 뒤 다시 시작된 촬영.

그녀의 말을 들은 만큼 창현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촬영에 임하기 시작한다.

‘나에게 맞춰준다고 했으니 믿는다.’

베테랑 연기자인 그녀의 연기력을 믿었기에 창현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진지하게 연기에 임하기 시작했다.

대사를 하고 다시 그녀를 안는 장면이다. 처음은 너무 세게 안아서 NG가 났고, 두 번째는 너무 약하게 안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박진감이 없다 여겨져 NG. 그리고 이 흐름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을지, 아니면 흐름을 놓아버릴지 결정이 되는 세 번째 촬영이었다.

창현은 근영의 말을 믿고 그대로 그녀를 강하게 안는다.

“……!”

약하게 팔을 잡아끌었을 뿐인데 근영의 몸이 그대로 창현의 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근영은 이미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고 있던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실수라 칭했던 것은 필요 이상으로 몸에 힘을 주고 있었기 때문. 힘을 주지 않고 창현의 힘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였다면 눈치 빠른 창현이 필요 이상의 힘을 줄 리 없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그녀는 몸에 힘을 빼고 창현이 끌어당기는 타이밍에 맞춰 그대로 품안을 파고든 것이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창현이 자연스럽게 리드하는 것처럼 보이게끔 만드는 연기력.

상당한 연기 경력과 창현과의 호흡이 맞물린 숨은 진주와도 같은 근영의 연기였다.

자신에게 맞춰주는 근영의 연기에 나직이 감탄한 창현은 대사 그대로 진행해나간다.

한동안 포옹 이후 살며시 그녀를 떼어놓고 뜨거운 눈으로 바라본다.

여기서부터 진정한 드라마의 피날레.

바로 키스신이 그것이다.

원래 계획된 키스신은 카메라가 클로즈업을 한 채 두 사람이 입을 맞추며 드라마가 끝나는 것이었지만 키스신 파동으로 인해 바뀌어버린 대본은 두 사람의 고개가 서서히 겹쳐가면서 입을 맞추는 장면은 보이지 않고 끝내는 것이다.

직접 입을 맞추지 않기에 드라마 팬들은 아쉬워할 테지만 충분히 상상의 여지를 남길 수 있다는 장점이 존재한다.

입을 맞추는 것이 아니지만 근영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위치하게 되자 창현은 속으로 긴장을 하기 시작한다.

진짜는 아니어도 분위기만큼은 진짜였으니까.

이쪽에 카메라가 잡히지 않고 있었기에 근영은 눈을 뜨고 있었다. 본격 성인(?) 입문 연기로 들어가는 그녀에게서는 어른의 아우라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풍기는 그녀의 눈.

그녀는 창현의 허락을 구하듯 뜨거운 눈으로 바라보지만 그 눈빛을 이해하지 못한 그는 그저 연기에 몰입할 뿐이었다.

이대로 가면 키스신은 허무하게 끝나버릴 판. 창현의 둔감한 모습에 근영은 표정을 일그러뜨릴 뻔한 것을 간신히 참은 채 입을 연다.

도드라진 그녀의 입술이 작게 오물거린다.

‘해도 돼?’

창현의 눈이 동그랗게 뜨인다.

뭘?


눈으로 말한다는 것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선명하게 전해진 것은 처음이었다.

자신에게 허락을 구하듯 은연중 눈짓을 하고 있는 근영의 눈빛만 보아도 그 의미가 파악되었으니까.

허락을 구하듯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 창현은 아무런 반응을 보일 수 없었다. 지금 카메라가 자신을 촬영하고 있었고, 그녀의 말에 혼란을 겪어야만 했으니까.

순간 갈등이 일어났지만 창현의 결정은 빨랐다.

‘그렇게 하면 의미가 없어지지.’

이번 키스신으로 인해 얼마나 큰 일이 일어났었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과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영은 자신에게 아직 키스신이 이르다며 그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자신 스스로에게 있어 희생을 요구하는 이유였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창현은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 생각했다.

삐뚤어진 생각이었지만 결국 자신을 위하는 것이었으니까.

만약 자신 스스로 필요하다는 의지가 있었다면 모를까, 굳이 그럴 의지도 없는 지금 무리할 필요는 없다.

근영의 기색을 읽었지만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은 창현의 고개가 서서히 다가기 시작한다.

말은 서서히였지만 그 행동은 무척이나 빨랐다.

창현의 고개가 다가오는 순간 근영은 다가올 순간을 고대하며 눈을 살며시 감는다.

곧 있으면 촉촉하면서 부드러울 것으로 추정되는 것과 마주하겠지.

그렇게 기대감에 부푼 근영이 느낀 것은 기대했던 것과 다른 것이었다.

무언가가 자신의 입술을 꾹 누르지만 그것은 입술이 아니었다. 뒤이어 창현의 숨결이 살짝 뺨을 간질이는 것을 느낀 근영이 살며시 눈을 뜬다.

그러자 그곳에는 손가락으로 입 사이를 가로막은 창현의 손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근영의 눈이 흔들렸지만 창현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고개를 떼고 그녀의 얼굴을 감싸던 손도 뗀다.

각도 촬영으로 임했으니 직접 한 것처럼 보이리라.

고개를 뗀 창현은 그윽한 눈으로 근영을 바라보며 말한다.

“더 이상 놓아줄 수 없으니까. 응?”

“으, 으응…….”

직접 해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창현이 하지 않자 근영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베테랑 연기자인 그녀는 상황에 몰입하여 연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뒤이어 창현이 근영을 다시 한 번 안고, 주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장면 촬영은 끝난다.

“컷! 수고했어.”

김지환 감독의 OK 사인이 떨어지면서 마침내 촬영이 끝났음을 알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스태프들은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하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카메라들도 서서히 거둬지기 시작한다.

근영을 안고 있던 창현이 그녀를 떼어놓으며 말한다.

“수고하셨어요, 누나.”

“응… 창현이 너도.”

연기에 임했다고 하나 사심이 곁들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창현과 키스신을 촬영하지 못했지만 그의 체취가 느껴지는 근거리에서의 촬영은 그녀로 하여금 흔들리게 만들었다.

“그런데 왜 키스 하지 않은 거야?”

근영은 창현에게 질문을 건넸다.

자신이 해도 좋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키스신을 시행하지 않았다.

그것은 명백한 거절의 의미. 여자인 자신이 먼저 해도 좋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지 않은 창현의 행동에 그녀는 이기적이지만 자존심이 상한 것을 느껴야만 했다.

그녀의 물음에 창현은 고개를 살짝 갸웃하더니 묻는다.

“그거 농담 아니었어요?”

“……바보.”

자신의 마음을 전혀 알아주지 않는 창현의 모습에 근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이 차이를 감안해서라도 어떻게 해보려 했는데 아무래도 이쯤에서 접어야 할 듯 싶었다. 이렇게 둔감한 남자를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 것을 생각하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암담함을 느꼈으니까.

‘윤아가 대단한 것 같네.’

갑자기 창현을 좋아하는 윤아가 대단하게 느껴지는 근영이었다.

이 남자를 어떻게 꼬드길 마음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으니까.

자신도 흔들렸지만 이쯤에서 접어두고자 하는 근영이었다.

경쟁자는 많고, 산은 너무 높아 오를 엄두도 나지 않았기에.


윤아의 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내심 자신은 대범하다 생각하고 있었지만 키스신이 코앞에 닥치자 안절부절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던 것이다.

그녀의 눈에는 창현과 키스신을 찍는 근영의 모습이 크게 투영되고 있었다.

거리를 뛰는 창현의 모습은 누가 봐도 멋졌다. 잘 차려입은 정장 차림은 그의 긴 하체를 부각시켜주었고, 살짝 헝클어진 머리는 자연스러우면서 여태까지 보지 못한 다른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멤버 누구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기에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근영을 발견한 창현이 그녀를 거세게 끌어안자 윤아는 참을 수 없는 질투심을 느껴야만 했다.

저렇게 껴안다니!

‘분명 즐기고 있을 거야.’

근영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틀림없이 웃고 있었을 것임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창현의 가슴에 안기는 것 아닌가. 그것은 아직 자신도 오르지 못한 미지의 영역(?)과도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떨어진 뒤 다시 한 번 껴안을 때 NG가 나자 윤아의 눈에 불길이 치솟았다.

그녀의 눈에 근영이 고의로 NG를 낸 것처럼 보였다.

‘분명 세게 안지도 않았는데 비명은 왜 질러! 말도 안 돼!’

윤아가 보기에는 창현의 품을 좀 더 즐기기 위해(?) NG를 낸 것처럼 느껴졌다. 은근히 창현에게 키스신을 리얼하게 하기 위해서 진짜로 하는 것이 좋다 강조하는 모습을 보며 근영이 꼬리 달린 여우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 이후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밟히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다시 재개된 촬영에서 다시 끌어안으며 NG가 터지고, 그 다음 촬영에서 성공적으로 촬영이 이어지며 마침내 키스신이 나오게 되었다.

키스신에 돌입하게 되자 윤아는 우사인 볼트를 능가하는 속도로 축지법을 쓰듯 촬영장 근접거리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창현은 믿지만 근영은 믿을 수 없다. 만약 그가 하지 않으려 하더라도 근영이 할 수 있는 노릇이 아닌가.

두 눈을 부릅뜬 채 감시하듯 지켜보던 윤아가 순간 비명을 지를 뻔하였다.

“……!”

알 수 없는 빛으로 일렁이는 근영의 눈빛에 서린 감정이 윤아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지구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

그녀의 눈빛이 의미하는 것은 틀림없이 ‘나는 해도 좋으니 네 마음대로 해.’ 였다.

저렇게 앙큼한 수법을 사용하다니!

근접 거리에서 대놓고 네 마음대로 해주세요, 라고 하면 어떤 남자가 거절하겠는가! 그것은 제아무리 이성이 강한 창현이라 하더라도 힘든 일이었다.

‘넘어가면 안 돼!’

소리를 질러서라도 NG를 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모두가 분위기에 몰입하여 마지막 장면 촬영에 몰두하고 있었기에 그렇다.

그와 동시에 서서히 근영에게 가까워지는 창현의 고개.

서서히 두 사람의 고개가 겹치는 것을 보며 윤아가 손에 땀을 쥐기 시작한다.

근영의 얼굴을 살며시 붙잡은 채 입술을 가져가는 창현이 마침내 그녀의 입술과 마주했다 느낀 순간! 윤아는 깨달을 수 있었다.

창현과 근영의 사이에 손이 존재하고 있음을.

직접 한 것이라 생각하던 윤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2002 월드컵 8강전에서 승부차기를 하는 것보다 더욱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마침내 모든 촬영이 끝났다고 생각한 윤아는 온몸에 힘이 쫙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 사이 근영과 떨어진 창현이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하며 윤아에게 다가온다.

그가 다가오는 것을 깨달은 윤아가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이며 창현에게 말한다.

“수고했어, 창현아.”

“누나도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두 사람은 그동안 열심히 촬영한 것에 대해 격려의 말을 건네주었다.

촬영이 모두 끝나자 촬영장에는 열두 명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십대 중반부터 시작하여 사십대 초반 나이 대까지 다양한 여인들의 등장에 윤아는 고개를 갸웃한다.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촬영장에 여자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 의아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뒤이어 직원복을 차려입은 택배원들이 차곡차곡 상자를 쌓아놓기 시작한다.

“누구지?”

그녀의 말에 창현은 시선을 옮겼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 제 팬 카페 간부 누나들이에요.”

“팬 카페?”

“네. 그 키스신 사건을 부풀린 게 어떻게 보면 저희쪽 팬 카페여서… 간부 누나들이 사과를 하고 싶다고 했거든요. 촬영장에도 한 번 방문하고 싶어 했고. 그래서 오늘 찾아오면 괜찮을 것 같다 말을 했는데 정말 찾아오셨네요.”

더군다나 흔히 조공이라 말하는 선물 같은 것까지 들고 온 채.

자신의 팬 카페 사람들이었기에 창현이 먼저 다가간다.

스태프들과 배우들에게 시선을 받고 있던 여자들은 창현이 앞으로 나서자 눈을 빛낸다. 그녀들은 모두 창현의 팬으로서 거대 팬 카페인 블랙 큐트의 간부직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대다수가 골드 미스였고, 그의 노래에 반했지만 어린 팬들처럼 꺅꺅거리지는 않는다.

다만 창현을 직접 보았다는 만족감을 느낄 뿐.

창현이 블랙 큐트 카페 매니저인 미경에게 먼저 인사를 하였다.

“오셨네요, 누나. 그리고 처음 뵙는 분도 계시네요. 이렇게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키스신 파동 이후 블랙 큐트의 규모가 더욱 커져서 간부를 더 뽑았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다.

미경은 창현의 인사에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사고 친 게 있어서 수습하러 온 건데 그러니. 그나저나 오늘 촬영이 끝나서 다행이야. 앞으로 좀 쉴 수 있겠네?”

그녀의 말에 여자들이 모두 눈을 빛낸다. 직접 스타를 만나 향후 행보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으니까. 하물며 직접 좋아하는 스타가 아니었던가.

창현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럴 수 있지만 아쉽게도 쉬지 못할 것 같아요.”

“뭐라도 준비하고 있는 거야?”

“네. 8월에 새 앨범을 낼 예정이라 준비하고 있거든요. 게다가 9월에는 검정고시를 볼 예정이어서 쉴 틈이 없네요.”

앨범 이후에 미국으로 진출할 예정이라는 건 말하지 않았다.

확실하지 않았으니까.

새 앨범이라는 이야기에 모두 눈을 빛낸다. 12월에 발매한 정규 앨범 이후 8달만에 나오는 앨범이었으니까.

이번에는 어떤 컨셉일지, 어떤 노래로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어줄지 기대감이 팽배해졌다.

“새 앨범! 기대할게.”

“하하!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감독님에게 인사를 드려야죠. 오늘 촬영장에 들어올 수 있게 허락을 해주신 것도 감독님이거든요.”

“당연히 인사를 드려야지. 일을 일으킨 것을 사과하려고 선물까지 준비했는걸? 가자.”

“네, 그렇게 하죠.”

무슨 선물인지 몰라 창현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나쁘지 않은 것이란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미경을 데리고 김지환 감독이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아아, 팬 카페 사람들이었군.”

갑자기 등장한 여인들을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던 김지환 감독은 모습을 드러낸 여인들에게 창현이 다가가는 것을 보고는 오늘 찾아오기로 한 블랙 큐트 팬 카페 사람들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에게 다가간 창현이 김지환 감독에게 미경을 소개하였다.

“감독님, 이분은 오늘 방문하기로 한 미경 누나에요.”

“최미경이라고 합니다. 현의 팬 카페인 블랙 큐트를 맡고 있습니다.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그녀의 인사에 김지환 감독도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받으며 자기소개를 하였다.

“김지환이라고 합니다. 오신 걸 환영합니다.”

“네, 감독님. 멋있으세요.”

“…험험!”

미경의 말에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흘리는 김지환 감독이었다.


‘분위기가 묘한데?’

연애 방면으로는 눈치 -999라는 대단한 스탯을 지니고 있는 창현이었지만 다른 방면으로는 제법 눈치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창현은 김지환 감독과 최미경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를 깨달았다.

‘서로 호감을 가졌다거나? 그건 아니겠지.’

자기 멋대로 생각하던 창현은 첫눈에 보고 반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생각했다. 아직 어린 애들이라면 모를까 이미 나이를 제법 먹은 두 사람이 그럴 리 없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편으로 두 사람이 제법 잘 어울릴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만큼 창현은 앞으로 나서서 중간자로서 역할에 충실하고자 하였다.

“네, 미경 누나, 오늘 찾아온 이유가 있다 하셨잖아요. 그걸 감독님께 말씀 드려야 할 것 같은데…….”

자신도 모르게 멋지다고 이야기해버려 당황하던 미경은 상황을 바로잡아준 창현에게 감사의 눈빛을 보내며 말한다.

“아, 그렇지. 감독님, 오늘 저희가 찾아온 것은 그동안 현을 잘 보살펴주셨을 뿐만 아니라, 키스신에 관련된 일을 부풀려 결국 대본을 바꾸게 한 것에 사과를 하기 위함이에요. 아직 현이의 나이가 어려서 반대했다고 하나 이미 완성된 대본을 바꾼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서 저희의 행동을 사과드리며, 저희들의 의견을 받아주신 감독님께 감사 인사를 하고자 왔습니다.”

“아닙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다만 생각보다 여파가 조금 커져서 당황하기는 했습니다만… 하하!”

멋쩍게 웃음을 흘리는 김지환 감독. 평소에는 다른 여배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던 그가 묘하게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이니 창현은 의심이 불쑥 든다.

‘감독님이 아직 미혼이었나?’

아버지의 후배라는 것만 알고 있었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누나, 가지고 온 게 뭐죠?”

미경도 묘하게 어려워하는 걸 깨달았기에 창현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화를 주도하였다.

그 말을 들은 미경은 상자를 슬쩍 바라보며 말한다.

“응, 우리의 무례를 사과해야 한다고, 인정할 건 인정하자고 하면서 사과의 의미를 담아 조공하자고 해서 물품을 투표했거든. 그 중에서 보약이 가장 많이 나와서 보약을 사왔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물건이 나오자 창현은 물론 김지환 감독마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보약이라고요?”

“응! 드라마 촬영하느라 배우분들하고 스태프분들이 몸이 상했을 것 같아서 보약을 지어왔어. 어때?”

“…놀라운데요.”

“…역시 현이의 팬들은 스케일 자체가 다르군.”

놀라움이 역력한 김지환 감독의 목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은 창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김지환 감독에게 시선을 주더니 말한다.

“보약 먹고 다시 힘이 솟으시면 사모님이 좋아하실 것 같아요.”

창현의 말에 담긴 묘한 의도를 알아차린 김지환 감독. 그는 창현에게 눈빛으로 감사의 인사를 보내는가 싶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사모님은 무슨… 아직 미혼이다. 험!”

“어머! 감독님 미혼이셨어요?”

김지환 감독의 말을 들은 미경의 눈에 이채가 서린다. 멋지긴 하지만 자신보다 나이가 많아보여 결혼을 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미혼이라니. 전혀 의외의 말이었기에 그녀로서는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한 길에 매진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지요, 하하!”

“그렇구나… 한 길에 매진하는 남자는 멋진 법이죠. 좋은 짝을 만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렇게 말하는 미경의 눈은 묘하게 빛나고 있었다. 골드 미스가 골드 미스인 이유는 결혼을 한 뒤 여자가 일방적인 손해를 감수한다기에 하지 않는 이유도 있지만 경제적으로 완벽한 자립을 이루게 되어 까마득하게 높아진 눈 때문에 결혼을 하고 싶음에도 골드 미스가 되어 있는 상황이 존재한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그럼 일단 갖고 오신 걸 나눠드리게 해도 될까요?”

“되고 말고. 현이 네 팬들이 준비한 것이니 만큼 기쁘게 받을 게다.”

안 그래도 척척 쌓인 보약들을 하나하나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은 현의 팬들이 보약을 준비해왔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역시 월드 스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보통 팬 사이트에서 보내는 선물들을 겪어본 그들로서는 스태프들에게까지 보약을 돌리는 현의 팬들을 보며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누가 스태프들에게까지 보약을 돌리려 하겠는가.

“역시 현의 팬들은 수준 자체도 다르군.”

“팬이 워낙 많잖아. 어쨌든 대단한 건 대단한 거지.”

“촬영으로 인해 축난 몸 단번에 보신하게 됐는데?”

스타는 곧 팬들의 얼굴이지만 팬들의 행동 또한 스타의 평판을 가르기도 한다. 평소 예의바르게 대한 창현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스태프들은 보약까지 받게 되자 그 호감도가 꼭대기까지 치솟은 상태였다.

“모두 좋아하는군.”

“보약을 준 경우는 처음인가 보네요. 하기야, 저걸 준비하려고 했으면…….”

돈이 만만치 않게 들었을 것이란 말이 나오려다 말았다.

어느새 보약 하나를 챙겨온 미경이 김지환 감독에게 직접 건네는 것을 보았으니까.

“여기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감사의 인사를 표하던 김지환 감독은 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창현을 보며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도둑질을 하다 들킨 아이의 표정 같다랄까.

그 표정에 담긴 의미를 단번에 파악한 창현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감독님, 이렇게 오셨는데 그냥 보내기 아쉽지 않나요? 그런 의미에서 회식할 때 같이 가는 건 어때요? 1차만이라도요.”

어차피 미성년자인 창현은 1차 이후 술집에서 이어지는 회식에 참여하지 못한다.

“음! 그것도 괜찮겠지. 어떻습니까?”

“저희야 좋죠. 현의 얼굴을 보려고 왔는데 더 많이 보면 좋지 않겠어요?”

묘한 앙큼한 속내가 있었지만 미경은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내심 김지환 감독을 보고 호감을 느꼈던 차였는데 이대로 헤어지게 되면 더 이상 연락을 취하는 것이 어렵다 여겨졌으니까.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창현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주 대놓고 서로 끌린다는 표시를 하고 있지 않은가.

‘나이를 먹을대로 먹은 두 사람이 뭐하는 거람.’

절대 누가 누구에게 할 말은 아니었지만 창현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왜, 있지 않은가. 자신이 직접 할 때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제3자의 시선에서 보면 모든 게 훤하게 보이는 그런 상황.

중간에 놓이게 된 창현의 상황이 그러하였다.

김지환 감독의 허락을 얻은 창현은 카페 간부들에게도 물어본 결과, 모두 함께 가겠다는 모습을 보였다. 그녀들로서는 스타를 오랫동안 볼 수 있고, 이 기회가 흔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조공 하러 온 팬들도 함께 회식에 참여하게 되자 창현으로서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런 창현에게 다가온 것은 보약을 들고 있는 윤아였다.

“창현아, 이게 뭐야.”

“아, 키스신 일로 소란을 피운 것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드리는 거래요. 그간 드라마 촬영이 제법 타이트하게 진행되었으니까 몸 상했을까 싶어 축난 몸을 추스르라는 의미에서.”

“와! 창현이 네 팬들은 진짜 통 크다. 우와…….”

사실 이 정도 통은 다른 팬클럽에서도 발휘할 수 있지만 곧장 이행한 창현의 팬클럽이 대단하게 여겨졌다.

“그런가요.”

윤아의 감탄사에 어깨를 으쓱하는 창현이었다.

“그럼, 대단하지.”

“저도 그렇다 생각해요. 과분한 사랑이라 생각될 정도니까요. 그런데 누나 그거 알아요?”

“응? 뭘?”

은근한 창현의 물음에 눈을 빛내며 묻는 윤아.

그 모습에 창현이 피식 웃음을 짓더니 윤아에게 말한다.

“제가 들어보니까 키스신에 대해서 사건을 키운 건 블랙 큐트가 맞다지만 처음 자료를 얻은 것은 익명의 메일이라네요. 아마 누군가가 정보를 제공했나 봐요.”

“그, 그래?”

순간 윤아의 등에 땀이 삐질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익명의 메일이 누구의 것인지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던 것이다.

그런 윤아의 속내도 모른 채 창현이 계속해서 말한다.

“감독님은 드라마 팀 내 누군가가 정보를 제공한 것 같다 하더라고요. 최악이면 대본 유출까지 가능성이 있다라나? 만약 발각되면 고소하겠다 하셨는데 결국 들키지 않았네요. 아무래도 누군가 그냥 찔러본 건가봐요.”

‘고, 고소…….’

“그렇겠지.”

고소까지 나오자 윤아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표정을 겉으로 드러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다.

“어쨌든 일은 잘 처리 되었으니까요. 촬영이 모두 끝난 것 가지고 더 이상 뭐라 할 사람은 없겠죠.”

“그렇겠지?”

“그렇죠. 이미 끝난 일인 걸요. 그런데 누나 땀 많이 흘리는데요?”

이마에 땀이 맺힌 윤아를 보며 창현이 고개를 갸웃하자 그녀는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말한다.

“으응… 나 원래 땀이 많은 체질이야.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날씨가 좀 덥네.”

“그렇군요.”

땀이 많이 나는 체질도 있다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 창현은 더 이상 윤아에게 묻지 않는다. 윤아 또한 괜히 이야기를 나누면 자신의 행동이 발각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굳이 창현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렇게 촬영장에서 모두 철수한 촬영팀은 미리 예약해둔 곳에 자리를 옮기고는 본격적으로 회식을 하기 시작했다.

지글지글 고기가 익어가는 가운데, 한밤의 TV연예 리포터가 방문하여 각 배우들과 인터뷰를 하는 등 드라마 촬영이 끝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웃고 떠드는 드라마 팀을 보면서 창현은 내심 드라마가 끝났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 모두 끝났구나.’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했다가 오히려 자신의 치명적인 약점을 알게 해주고, 그것을 극복하게 도와준 드라마 촬영. 자신은 배우라는 인식이 약하지만, 연기자로서 해왔던 이 경험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던 창현의 눈에 김지환 감독과 미경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새 친해진 그들은 자리를 마주하고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고 있었다. 김지환 감독은 난데없는 매너를 발휘하여 가위와 집게를 들고 고기를 구워 미경에게 건네주고 있었다.

몇몇 스태프들은 그곳을 보며 표정을 찌푸렸다.

그들은 모두 미혼이었고, 솔로였다.

‘이게 회식인지, 맞선인지…….’

솔로에게 있어 김지환 감독과 미경의 모습은 더없이 염장으로 보였다.

그렇게 드라마 촬영이 모두 끝났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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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4화 +7 15.04.24 3,976 89 10쪽
40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3화 +6 15.04.22 4,424 82 10쪽
39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2화 +9 15.04.20 4,514 91 11쪽
38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1화 +10 15.04.17 7,373 95 10쪽
37 ▲▲▲▲▲시즌2 시작!▲▲▲▲▲ +5 15.04.17 5,421 65 1쪽
36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6장-108장 +8 15.04.16 6,409 106 230쪽
35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3장-105장 +1 15.04.16 4,242 82 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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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마음을 울리는 음악 19장-21장 +4 15.04.16 11,485 270 216쪽
6 마음을 울리는 음악 16장-18장 +5 15.04.16 11,536 242 163쪽
5 마음을 울리는 음악 13장-15장 +5 15.04.16 14,527 297 237쪽
4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장-12장 +8 15.04.16 13,727 352 171쪽
3 마음을 울리는 음악 7장-9장 +10 15.04.16 14,540 362 142쪽
2 마음을 울리는 음악 4장-6장 +11 15.04.16 16,820 421 120쪽
1 마음을 울리는 음악 프롤로그-3장 +47 15.04.16 29,872 545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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