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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번 님의 서재입니다.

마음을 울리는 음악

웹소설 > 작가연재 > 팬픽·패러디, 현대판타지

김현우
작품등록일 :
2015.04.16 13:27
최근연재일 :
2015.06.0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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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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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16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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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83쪽

마음을 울리는 음악 49장-51장

DUMMY

제49장 태연의 생일




드라마 제작 발표회는 사람들의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다름 아닌 현이 직접 출연한다는 소식 하나가 그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 제작 발표회에서 사람들은 현이 보인 모습에 열광하였다.

현의 팬들은 늘 걱정을 하고는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착하고 겸손한 모습을 보이고, 그 모습이 좋아서 팬이 된 사람들도 많지만 사회라는 것이 워낙 험난한 만큼 그 모습이 자칫 그를 얕잡아볼 수 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드라마 제작 발표회에서 했던 몇몇 질문들은 현을 얕잡아 보는 듯한 질문이었다. 그것을 보던 사람들은 순간 울컥하는 마음을 힘겹게 다잡아야만 했다.

특히 그 부분의 절정을 이루던 부분이 바로 박일순 기자의 질문이었다.

거의 억지로나마 현과 윤아를 엮으려드는 그의 모습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답답함을 느껴야만 했다. 저렇게 당하고만 있는 현의 모습에서 너무 겸손하고 착한 것도 무언가 아니다 싶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현이 한 건을 터뜨리는데 성공하였다.

자신의 위치를 기자에게 인지 시키며 당당한 자부심을 드러낸 것이다. 그 모습에 박일순 기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현의 말처럼 그는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은연중 현을 얕잡아 보던 박일순 기자가 당황하는 모습에 통쾌함을 느껴야만 했다. 그간에 묵혀두었던 걱정이 한 번에 쑥 내려가는 듯했다.

자칫하면 오만해보일 수 있었지만 평소에 늘 겸양의 태도를 보이던 현이었기에 그러한 느낌은 거의 들지 않았다. 사람의 행동도 상대적으로 느껴지는 것만큼 평소에 거만한 행동을 일삼았더라면 분명 오만한 행동으로 비춰질 수 있겠지만 겸손한 모습을 보이다가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비추는 것은 자부심으로 보일 뿐 정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오죽했으면 현이 그런 모습을 보일 것이냐고 옹호론이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자신을 믿어달라는 현의 말은 큰 파장을 일으켜 사람들의 기대감을 샀다.

언제나 자신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그를 믿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거기에 더하여 라디오 스타 예고편도 큰 화제가 되었다.

라샤와 함께 출연한 라디오 스타에서 그동안 궁금해왔던 점들을 명쾌하게 설명한다는 말이 나오자 시청자들의 관심이 급증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방송 출연을 많이 하지 않는 현이었기에 그가 출연하는 방송마다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비밀을 파헤치거나 루머를 해명하는 것이 많은 라디오 스타였기에 현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들의 눈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러한 엄청난 기대 속에서 3월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다.


드라마 제작 발표회가 끝나고 그것에 관련된 기사가 곧장 인터넷에 올라오기 시작하자, 석규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창현을 칭찬하였다.

“잘했다. 그렇게 강하게 한 방 찔러두면 당분간 설치지 못하겠지.”

물리고 물리는 관계였지만 석규는 기자들을 그리 무서워하지 않았다. 기획사 자체의 진정성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어필할 수만 있다면 기자들의 농간에 놀아나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그렇다.

그렇다고 하여 기자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기자들이 소식을 전달함으로 인해 얻는 홍보 효과 같은 것은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었기에 나름대로 우대를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연예인을 헐뜯거나 말을 이상하게 하여 오해를 사게 만드는 기자들에게는 무척 냉정한 모습을 보이는 석규였다. 그렇기에 기자들 사이에서도 확실하게 호불호가 갈린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AA엔터테인먼트에게 이득이 될 수 있고 실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실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AA엔터테인먼트 혼자라면 모를까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도 은연중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기에 그렇다.

대형 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가 보조를 맞춘다면 기자들도 감히 경시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을 보유하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자신의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하고 있지 않지만 제대로 발휘할 마음만 있다면 현의 이름으로 엄청난 일들을 진행할 여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기자들은 괜히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협력을 하려 하고 있었다. 자신들에게 맞춰주는 한 AA엔터테인먼트에서 딱히 섭섭하게 대하지 않으니 말이다.

AA엔터테인먼트에서 상상도 못할 자금을 끌어안고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돈이 있다면 무슨 일이든 가능한 것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것을 알기에 기자들도 함부로 경거망동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몇몇 기자들은 창현이 나이가 어리기에 살살 긁으려는 모습을 보이지만 말이다. 그것이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그들은 잘 모르고 있는 듯하다.

창현은 석규의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런데 그 기자는 뒤끝이 별로 좋아보이지가 않아서요.”

“말이 많이 구린 인물이지. 하지만 그가 더럽게 나온다면 이쪽에서도 준비해둔 한 수가 있으니 염려할 것 없다. 오히려 네가 그동안 겸손한 모습을 보여 왔기에 오늘의 모습이 더욱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긍정적인 반응으로 말이야.”

“그렇다니 잘 되었네요. 솔직히 걱정을 좀 했거든요. 제가 욱한 게 아닐까 싶어서요. 괜히 명성으로 찍어누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창현의 말에 석규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세상이 다 그런 건데 네가 조금 그런 것 가지고 무어라 할 인물은 없다. 그러니 안심해도 괜찮다.”

심각하게 그런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창현을 잘 알고 있는 석규는 안심할 수 있었다.

“이제 어려운 문제들은 다 흘러간 듯 싶네요.”

진학 문제부터 드라마까지.

하나만 하여도 조용히 넘어갈 수 없는 마당에 두 가지가 시기적으로 겹치게 되자 심적으로 창현을 무척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넘어간 문제였다. 진학 문제는 성적 공개로 어느 정도 논란을 잠재우는데 성공했고, 드라마는 아직 제대로 넘어가지 못했지만 마냥 나쁜 쪽으로 쏠리던 여론을 어느 정도 중화시키는데 성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연기를 통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뿐이었다.

“연기는 잘 알아서 하겠지. 음악은 어떠냐? 슬럼프는 벗어난 것 같고?”

연기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음악이지 않겠는가?

창현이 슬럼프를 어느 정도 벗어났나 묻는 석규였다.

그에 창현은 고개를 저었다.

“심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벗어났다고 하기도 힘들어요. 미묘하게 어렵다고 할까요? 심각한 수준은 아닌데 좀 껄끄러워요.”

미간을 좁힌 채 대답하는 창현이었다.

차라리 아예 안 되었으면 모를까, 미묘하게 걸리적거리는 것이 신경을 자극하고 있었다. 노래를 부를 때도 그랬고, 녹음 작업을 할 때도 그랬으니 말이다.

여전히 슬럼프에 빠져있다는 창현의 말에 석규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더니 말한다.

“음! SM엔터테인먼트에서 제안에 들어왔는데. 일단 이야기만 들어보겠느냐?”

예전 같으면 망설임 없이 고개를 저었을 테지만 지금은 약간 사정이 다르다. 회사 자체가 SM엔터테인먼트와 보조를 맞추는 면이 없지 않아 있고, 무조건 거절하던 드라마 제안도 이번 기회를 통해 하게 되었기에 약간 보는 눈이 넓어졌다고 해야 할까? 언제까지 자신과 라샤 노래에만 손을 댈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일단 이야기만 들어보고자 하였다.

“이야기만 들어보는 건 어렵지 않죠. 들어보죠.”

“그래, SM엔터테인먼트에서 이번에 네가 촬영하게 된 드라마 OST를 하려고 하더구나. 그래서 그 곡을 너에게 받고 녹음 작업도 네게 받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한테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SM엔터테인먼트 작곡진도 세잖아요?”

의문을 표하는 창현의 모습에 석규가 피식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렇긴 한데 드라마 OST에 참가하는 가수가 강력하게 요청했다고 하더구나. 기왕 들어온 제안이기에 네게 말을 하는 것이기도 하고.”

“누군데 그러는 거죠?”

강력 요청을 했다는 말에 의아함을 드러내는 창현이었다.

그에 석규가 입가에 맺힌 미소를 더욱 짙게 그려내며 말한다.

“소녀시대 멤버 중 하나라고 하더구나.”

“…….”

순간 침묵하는 창현이었다. 누구일지 생각하느라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석규가 짓궂은 미소를 지은 채 말한다.

“왜? 누구인지 궁금하냐?”

자신의 심정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석규의 모습에 슬쩍 그를 바라보던 창현이 말한다.

“궁금하긴 궁금한데 아버지 미소가 조금 걸리네요. 놀리실 생각이라면 그냥 듣지 않을게요.”

자신의 장난을 사전에 차단해버리는 창현의 모습에 석규가 아쉬운 듯 눈살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쉰다.

“으음! 나의 재미를 앗아가는구나. 조금 놀려줄 생각이었는데 사실 나도 누구인지는 모른다.”

“네?”

자신도 모른다는 말에 창현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누구인지도 모르고 자신을 놀릴 생각만 했단 말인가?

그러다가 창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런데 제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 일이 발생하는 거 아닌가요?”

의심을 살 수 있다는 말에 석규가 고개를 저었다.

“그에 대해 준비를 해놨지. 이번 드라마 OST에 대해서는 전부 네가 곡을 주고 프로듀싱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개개인이 나눠서 하는 것이 아닌, 합본으로 음반을 내기로 했다.”

석규의 말에 창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게 가능한가요?”

“김지환 감독에게 부탁해서 권한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러니 천천히 생각해보면서 드라마 OST 파트 구성과 가수 선정을 고민해보도록 하여라. 네 곡을 받고 싶어하는 가수는 넘치도록 많으니까.”

“알겠어요. 고민해볼게요. 드라마가 잘되려면 OST도 중요하니까요.”

그렇게 석규와 창현의 대화는 끝을 맺었다. 배역의 연기에 이은 드라마 OST를 부를 가수의 선정. 드라마 OST가 드라마에 끼치는 영향이 제법 큰 만큼 창현에게 큰 고민을 차지할 듯 싶었다.


그렇게 드라마 제작 발표회가 끝난 뒤 곧바로 라디오 스타가 방영 되었다.

라디오 스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실제로 라디오 스타 시청률은 약 15% 정도인데, 한 기사에 따르면 이날 라디오 스타의 시청률은 최소 30%에서 최대 40% 정도 나올 것이라 전망하였다.

그만큼 사람들이 현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는 걸 반증하는 바였다.

한 관계자가 인터뷰하길, 현과 라샤는 예능과 다큐의 경계선에서 절묘한 중심을 잡았다고 말을 하였고, 그동안 베일에 감싸져 있던 현의 좋은 면들을 알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이런 밑밥들이 서서히 깔리기 시작하니 사람들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드라마에 관련된 심경 부분과, 루머에 관련된 부분, 라샤의 녹음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고 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자극하였다.

다크 스타 내에서도 현이 출연하는 방송을 보길 권유하였다. 다크 스타의 가장 큰 장점은 현에게 이로운 작용을 많이 하고, 단체 움직임을 곧잘 보인다는 것이다. 게다가 다크 스타 내에서의 움직임은 회사가 직접 참견하는 것이 아닌, 순수하게 팬들의 의중대로 움직이기에 팬덤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제대로 된 방향을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그 중간에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팬 사이트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현이나 회사에서 방향 제시를 해줄 때도 있기에 곧잘 의견 교류를 하고 있었다.

라디오 스타를 시청하자는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다크 스타 팬들이 가장 자부심으로 여기는 것이 바로 현의 파급력이었다. 자신들이야 말로 현의 파급력을 대변한다는 자부심이 은연중 자리하고 있었다.

만약 라디오 스타에서 시청률이 대폭 상승한다고 하면 다크 스타의 도움이 무척 크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점이다. 그렇다면 프로그램에서는 현을 더욱 섭외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더욱 더 현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이야기처럼 진행되지는 않을 테지만 그렇다고 전혀 영향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렇게 될 확률도 높았고 말이다.

그렇게 많은 관심 속에서 라디오 스타가 시작 되었다.

삼주에 걸쳐서 하게 된 라디오 스타 첫 번째 주 내용은 사람들에게 그동안 숨겨졌던 현의 여러 면모를 보여주는 방송이었다.

현의 수입에 관련된 부분과 라샤가 그동안 노력해온 모습과 갑작스러운 인기에 대처하는 모습, 그리고 라샤의 미국 진출 가능성과 혹독한 보컬 트레이닝, 프로듀싱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인기가 결코 외부에서 보이는 화려한 면면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엄청난 인기를 얻음으로 인하여 그 기대에 부흥하고자 더욱 더 연습에 연습을 박차 했어야 했다는 라샤의 말은 사람들의 가슴에 큰 파문을 일으킨 것이다. 그녀들의 말은 일종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와 같은 것이었다. 권리와 의무라는 두 가지를 놓고 볼 때, 인기라는 권리를 얻게 되었다면 더욱 더 나은 실력이라는 의무를 이행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평소 방송에서는 순한 모습을 보이고 무대 위에서는 카리스마적인 모습을 보였던 현이 보컬 트레이닝이나 프로듀싱을 할 때 또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새로운 느낌을 받아야 했다.

미국 진출에 관련된 언급은 실제로 라샤가 미국에 진출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이미 진출로를 확보해놓은 상황이기에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 예측되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상상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미국보다는 중국 문제를 어떻게든 매듭짓고 결정을 내릴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첫 번째 주 내용의 끝은 다름 아닌 소녀시대에 관련된 루머로 끝을 맺었다. 현이 SM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었다고 하나 방송상에서 자주 어울리는 모습을 보인 만큼 그에 대한 해명을 한 것으로 추정이 되는 것이었다.

잔뜩 기대감 서린 눈으로 방송을 시청하다가 그 부분에서 끝나자 시청자들은 절묘한 절단마공을 시전 한 라디오 스타 PD에게 원망의 소리를 흘리면서 한편으로는 다음주에 본방사수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을 하곤 하였다. 게다가 덤으로 현의 라이브 공연이 이루어지는 떡밥까지 흘린 만큼 이번 주보다 다음 주 시청률이 더 높게 나올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현이 나오는 라디오 스타는 소녀시대도 관람을 하고 있었다.

라디오 스케줄을 끝낸 뒤 숙소로 돌아와 씻고는 잠에 들 준비를 하면서 라디오 스타가 시작하자 눈을 빛내며 시청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자신들과 관련된 루머 부분에서 끝을 맺자 일제히 원망의 탄성을 흘렸다.

“아, 뭐야! 왜 하필 이렇게 끝나는 거야.”

“이럴 때가 제일 짜증나더라. 다음 주까지 가슴 졸이면서 볼 수밖에 없잖아?”

“한숨 밖에 안 나오네, 에휴!”

원망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되면 다음 주도 시청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눈에 빤히 보이는 제작진들의 술수인 걸 알면서도 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짜증나는 소녀들이었다.

방송이 끝나자 내일 스케줄을 위해 소녀들은 각자 방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멤버들이 방으로 들어가고 있음에도 수연은 조용히 TV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수연에게 태연이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물었다.

“수연아.”

“왜?”

TV를 보고 있던 수연이 눈을 여전히 TV에 둔 채 태연의 말에 답한다.

그러자 태연이 물었다.

“드라마 OST 하기로 한 거 어떻게 됐어?”

자신이 하려고 하다가 실패를 해서 그런 걸까? 수연이 드라마 OST를 부르는 것에 관심이 많은 태연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예고편이 다 끝났다. 내심 루머에 관련된 언급이 나오는 부분이 있길 원했는데 없어서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태연에게 시선을 옮긴 수연이 고개를 살짝 저어보였다.

“아직 몰라. 기다려달라는 말밖에 듣질 못해서.”

“그렇구나. 알았어.”

수연의 말에서 아직 성사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은 태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러난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수연의 얼굴에 살짝 짜증이 서렸다. 제법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는데 창현이 쉽사리 허락을 하지 않고 있던 것이다.

이제 슬슬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아직까지 이렇다 할 언급이 없자 가슴이 답답한 것은 바로 수연이었다. 어떤 형식으로든 대답이 나오면 후련할 텐데 대답이 나오지 않자 조급함을 느끼고 있었다.

‘설마 이대로 안 되는 건 아니겠지?’

불길한 느낌이 전신을 휘감았지만 수연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반드시 성사시켜주겠다는 수만의 대답을 들은 만큼 그의 말을 믿고 있었다.

국내 최대 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의 말이 아닌가!

그가 믿으라고 한 만큼 굳게 믿고 있을 것이다.

‘부디 내가 먼저 움직이지 않게 해주길.’

안 된다고 하면 현에게 부탁할 생각을 하는 수연이었다.

과연 그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근래 들어 주변에서 제법 움직임을 보이는 것들이 있기에 자신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을 은연중 하고 있었다.

부지런하게 움직여서 나쁠 것은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


라디오 스타가 방영되고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시청률도 평소 나오던 시청률보다 두 배 높은 31.2%가 나왔다. 예능 프로그램으로 보면 거의 최고치에 해당하는 시청률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람들은 이것이 현의 효과라고 하면서 절묘하게 다음 주 분량을 끊은 탓에 다음 주 시청률이 더 높아질 것이라 전망하고 있었다.

반응이 나쁘지 않자 창현의 입에서도 다소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토크 형식으로 진행되는 예능 프로그램이 처음인 만큼 이런저런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럭저럭 무난하게 넘어가는 듯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도 예능 프로그램을 출연하는데 그리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여 예능감이 부족하여 출연을 하게 되면 그냥 시청률 올리기 위한 제작진의 수작이라는 말을 들을까 걱정했는데 그럭저럭 합격점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래저래 위험할 수 있던 부분들을 잘 편집하여 괜찮게 나왔다.

창현에게 있어서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방송이 나오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걱정을 했는데 무난하게 넘길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이제 창현의 고민은 다른 것으로 넘어갔다.

이틀 전 석규가 했던 것을 본격적으로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OST라, 드라마 OST.”

자신에게 전권을 주었다는 것이 무척 새롭고 낯설면서 한편으로는 설레는 창현이었다.

석규의 말을 듣기로는 수많은 가수들이 드라마 OST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 만큼 곡을 작곡함에 있어 가수를 걱정할 부분은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가수를 지명하면 십중팔구 승낙하는 형태일 테니 말이다.

슬럼프였기에 얼핏 보면 곡에 관련된 활동을 일체 중단하는 것이 옳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한 가지 처방에 불과하다.

허리가 아프다고 하여 그대로 놔두면 더 심각해질 확률이 높다. 지속적인 운동을 하여 회복을 하는 것처럼, 슬럼프에 빠졌으면 지속적인 음악 활동으로 슬럼프를 타파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드라마 OST는 여태까지 창현이 도전해보지 못한 새로운 개척지였다. 이것에서 느껴지는 새로운 감정과 새로운 기획은 창현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다 넣어줄 것이라는 것이 석규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어느 정도 적중하였다.

파트별로 구상하는 것과 가수들 선정, 곡 분위기의 상상은 창현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다 넣어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은 SM엔터테인먼트에서 가수 한 명을 지목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소녀시대 멤버 중 한 명이 신청했다는 점이 창현에게 내심 걸렸다.

자신의 테마와 맞지 않아도 부득이 안고 가야 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슬쩍 석규의 의중을 떠보니 석규는 가급적이면 한 명을 선택하길 바라고 있는 듯했다.

어찌 보면 그리 어렵지 않은 것이기도 하지만 테마가 정해지고 그에 부적합하다면 매우 어렵게 된다. 곡을 새로 써야 하고 구상했던 테마도 새로 맞춰야 하니 말이다.

파트 구성이 창현에게 주어진 권한인 만큼 이 부분은 확실하게 집고 넘어가야 한다.

“누구인지 알아야 하는데 아버지도 모른다고 하니. 일단 물어봐야겠네.”

누군지 알아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기에 자리에서 일어선 창현이 곧장 사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사장실에 도착하고는 석규를 만날 수 있냐는 물음에 비서가 지금 업무 통화 중이라고 하면서 잠시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기다리는 창현에게 생강차를 가져다주자 창현이 미소를 지으며 차를 받아든다.

“고마워요. 그런데 힘드시지 않으세요?”

누군가를 보좌한다는 것이 쉬워 보이지 않아 묻는 창현이었다.

그에 비서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힘들다니요. 이런 대우에 이런 일을 하는데 전혀 힘들지 않답니다.”

비서를 뽑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사장을 보좌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각종 기밀을 알고 있기에 입이 무겁고 책임감이 강하며 여차할 때 자신보다 회사를 우선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그에 대한 대우는 충분한 편이지만 이래저래 신경 쓸 것이 많은 이상 무척 피곤할 것임이 분명했다.

“매일 수고하시는 것 같아서요.”

입가에 미소를 지은 창현이 생강차를 마시면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강차를 다 마시고 약 오 분여 정도를 기다렸을 때, 석규의 통화가 끝났는지 비서가 창현에게 들어가도 된다는 말을 한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난 창현이 곧장 사장실 안으로 들어간다.

석규가 창현을 맞이하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냐? 드라마 OST 구성 중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 SM엔터테인먼트 가수 중 한 사람이 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요.”

창현의 말에 석규가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물었다.

“음! SM엔터테인먼트 말이더냐? 소녀시대 멤버 중 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 말에 창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정확히 누구인지 알아야 진행이 가능해요.”

“그래? 알았다. 잠시 기다려라.”

그렇게 말한 석규가 핸드폰을 열어 어디론가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통화가 연결되었는지 석규가 전화를 하기 시작한다.

“회장님, 접니다. 강석규. 예,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그렇죠, 그때 이후로 처음이죠. 다름아 아니라 그 드라마 OST 건 때문에 연락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현이가 그 드라마 OST에 참가하는 가수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고 해서 말입니다. 하하! 유감스럽게 확정된 건 아니고, 누구인지는 알아야 테마를 잡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예, 아,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예상과는 틀려서 말이지요. 알겠습니다. 현이한테 이야기하고 결과가 나면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그럼 수고하십시오. 예.”

그렇게 통화를 끝낸 석규의 시선이 창현에게 향한다.

창현은 과연 누가 드라마 OST를 신청했을지 기대감 서린 눈으로 석규를 바라보며 물었다.

“누구라던가요?”

그러자 석규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리더니 장난스러운 어조로 창현에게 말했다.

“누구일까?”

“에?”

황당한 표정과 함께 어이가 없다는 듯 순간 할 말을 잃은 창현이었다.

그런 창현의 모습에 석규가 말한다.

“왜 그러느냐. 누구인지 맞춰보라는 건데. 누구일 것 같으냐? 한 번 맞춰보아라.”

“장난치지 마시고 가르쳐주세요. 누구에요?”

표정을 살짝 찡그리며 석규에게 장난치지 말라고 강력하게 말하는 창현이었다.

그 물음에 석규가 움찔했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창현에게 말한다.

“그것 가지고 그렇게 나올 필요는 없지 않느냐? 그리고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닌데 그렇게 퍽퍽 하게 나올 이유도 없고 말이다.”

석규의 말에 창현은 자신이 너무 성급하다는 걸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그리 급할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너무 서둘렀다.

그걸 깨닫게 되자 창현은 곧장 석규에게 사과를 하였다.

“죄송해요. 제가 조금 성급했네요.”

“알면 됐다. 그럼 이제 맞춰봐야지? 자, 누구일 것 같으냐?”

창현의 사과에 석규는 누구인지 맞출 것을 물었다.

그 물음에 창현은 표정을 살짝 찡그렸다. 누구일지 생각해본 것이다.

그러다가 이내 생각을 굳히고는 말했다.

“태연 누나 아닌가요? 생각해보니 드라마 OST 경력도 있고 하니 함께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태연이 드라마 OST를 한다라, 제법 괜찮은 생각인 듯했다. 테마도 괜찮을 듯 싶었고.

하지만 창현의 대답은 틀렸다. 석규가 수만에게 전화로 전해들은 상대는 다른 인물이었던 것이다. 석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틀렸다. 태연이 아니다.”

태연이 아니다? 그럼 누구란 말인가? 태연일 거라 생각하던 창현으로서는 의외일 수밖에 없었다. 의아함을 느낀 창현이 석규에게 물었다.

“그럼 누구인데요?”

창현의 물음에 석규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제시카라고 하더구나.”

“제시카? 수연 누나요?”

창현이 믿기지 않는 듯 말했다. 그러자 석규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답했다.

“수연이 누구인지 모르나 그게 제시카의 본명이라면 맞겠지. SM엔터테인먼트에서 드라마 OST를 했으면 싶은 가수가 바로 제시카라고 했으니 말이다.”

“제시카라… 의외네요, 의외. 흐음!”

확실히 가창력은 어느 정도 되니 이번 기회를 발판 삼아 드라마 OST로 경험을 쌓으려는 것일 수 있다. 그걸 이해하고 있는 창현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자신이 하려는 테마에 수연이 어울리는지 생각에 잠긴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짧은 순간으로 테마에 적합한지 부적합한지 알 수 없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창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일단 알게 되었으니 전 가보도록 할게요. 수연 누나가 드라마 OST를 할지는 조금 생각을 해보도록 할게요.”

“그래. 그렇게 해라.”

“그럼…….”

고개를 숙이고는 사장실을 벗어나는 창현이었다. 그리고는 곧장 녹음실로 돌아와 수연에 관련된 테마를 잡아보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힘든데? 따로 불러서 노래를 한 번 들어봐야겠다. 어차피 저쪽에서도 원하고 있으면 그 정도 요구는 들어주겠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창현이었다. 아무래도 자신 혼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것보다 노래를 들어보고 자신의 구상에 어울리는 노래가 있는지 찾아보는 게 더 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연에 관련된 생각을 끝맺자 창현은 무언가 떠오른 듯 나직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 보니 태연 누나 생일이구나. 멀지 않았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작년에 자신이 이맘때쯤 미국에 갈 것이라 말을 하자, 태연이 선물이라면서 자신의 볼에 뽀뽀를 해주었는데 말이다.

제법 달콤한 기억이었기에 창현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맺혔다. 세 살이나 많은 누나였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누나라기보다는 친구 같은 느낌이 강한 태연이었기에 무언가 보답을 해주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일단 그날 시간이 되는지부터 알아야겠지.”

자신이 뭘 해주고 싶다 해도 태연의 시간이 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 아니던가?

한창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만큼 그날 스케줄이 있는지부터 알아야 했기에 창현은 핸드폰을 열어 곧장 태연과 통화를 시도하였다.

♩♪♬

자신이 뮤직비디오 촬영에 함께 임하기도 했던 <Kissing You>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삼십여 초 동안 컬러링이 들리다가 통화가 연결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통화가 연결되자 창현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누나, 저에요 창현이.”

-그래, 알고 있어. 갑자기 무슨 일이야? 전화도 다하고?

문자를 자주 교환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전화를 하는 것은 그리 잦지 않았다. 약간 쑥스러운 것도 있었고, 스케줄이 활발한 만큼 태연과 통화가 쉽사리 이루어질 기회가 없었기에 그렇다.

“하하! 그건 피차일반이잖아요. 그거 가지고 뭐라고 하지 마세요. 제가 전화를 한 건 다름이 아니라 얼마 후면 누나 생일이잖아요.”

창현의 말에 건너편에서 태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억하고 있었네? 난 까먹고 있을 줄 알았는데.

퉁명스러웠지만 그 속에 기쁜 감정이 섞여 있었다. 창현이 자신의 생일을 기억해주고 있다는 것에서 오는 기쁜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걸 내색하면 왠지 자신이 지는 것 같은 기분에 태연은 애써 담담한 기색을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창현은 그런 태연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아 피식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까먹다니요. 제가 어떻게 누나의 생일을 까먹을 수 있겠어요? 설마 작년에 있던 일도 잊어버린 거 아닌가요?”

-작년에? 작년에 무슨 일이 있었나?

창현의 말에 의아한 감정이 담긴 목소리로 묻는 태연이었다.

그에 창현이 충격을 받았다는 듯 격앙된 목소리로 말한다.

“이럴 수가! 정말 기억나지 않는 거예요? 그 충격적이었던 사건을?”

연기수업을 괜히 허투루 배운 것이 아니다. 감정을 몰입하고 상황을 조성하자 순식간에 상황극이 완성된다.

-자, 잠깐만! 생각 좀 해보고.

연기가 완전히 먹혀들었는지 태연이 당황한 목소리로 창현을 제지하고는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잠시 후, 태연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창현에게 말했다.

-아… 설마 그……?

태연의 반응에 창현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게 뭘까요, 과연?”

-서, 설마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뭘요?”

태연의 입에서 나오는 대답을 듣고 싶었는지 연신 재촉하는 창현이다.

그 말에 태연이 무안한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몰라! 난 기억 안 나니까 너 혼자 열심히 기억해!

폭발하는 태연의 모습에 창현은 웃음을 흘리며 사과했다.

“하하! 미안해요. 장난을 좀 치고 싶어서 그랬어요. 그나저나 누나 생일 당일에 일정이 어떻게 되세요?”

-그건 왜?

자신이 농락당했다는 것을 알았기에 태연의 목소리는 불퉁하였다.

그에 창현이 재차 사과를 하였다.

“미안하다니까요. 그야 당연히 선물을 전해드리려고 그러는 거죠.”

창현의 말을 들은 태연이 잠시 스케줄을 살피는가 싶더니, 이내 줄어드는 목소리로 말한다.

-으음! 그날 스케줄이 있는데…….

창현에게 있어 애석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설마 생일인 날에도 스케줄이 있을 줄이야.

살짝 미간을 좁힌 창현이 태연에게 물었다.

“스케줄이 어떤 건지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응. 3월 9일 스케줄은…….

스케줄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태연.

그 이야기를 들으며 창현은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어떤 식으로 선물을 줘야 할지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후우!”

창현과 통화를 끝낸 태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쉬운 마음이 몸 전체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어찌 아쉽지 않겠는가? 창현이 직접 선물을 주겠다고 말을 해주었는데 정작 그날에는 스케줄이 있었으니 말이다.

생일이긴 하지만 3월 9일에는 음악 방송이 있다. 그리고 음악 방송이 끝나면 라디오 스케줄에 가야하고, 라디오 스케줄이 끝나면 SM엔터테인먼트에서 열어주는 생일 파티에 가야 한다. 팬들도 참석하는 것이기에 절대 빠질 수 없는 자리였던 것이다.

회사에서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주는데 어찌 나 몰라라 할 수 있겠는가?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척 고맙고 그랬지만 지금은 아쉽기만 하다.

“어쩔 수 없지. 이미 스케줄이 잡힌 거니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내심 기대를 했지만 현실을 자각하는 순간 답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으니 말이다.

“생일 선물로 나도 드라마 OST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해볼까?”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일 선물을 받기는 힘드니 이번 창현이 참가하는 드라마 OST를 부르고 싶다고 부탁하는 것.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선물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하지만 그것을 일에까지 관련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 조금만 빨리 눈치 챘더라면 드라마 OST를 낚아채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아마 창현의 성격상 이야기가 들어갈 즈음에는 자신의 생일에 코앞에 다가와 있을 테고, 드라마 OST를 해본 경력이 있으니 승낙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구도가 그려졌는데 많이 아쉬웠다.

“수연이가 부럽네. 에휴!”

드라마 OST로 가창력을 상당 부분 인정받고 개인적인 인지도가 올라간 만큼 여러모로 수연이 부러운 태연이었다.

자신이 했던 것도 스케일 면에서 부족하지 않았지만 수연이 맡게 될 드라마 OST는 자신이 맡았던 것보다 훨씬 스케일이 컸으니 말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창현이 작곡 작사를 하고 프로듀싱을 맡은 만큼 화제성은 이미 따놓은 당상이다.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드는 태연이었다.


“흐음! 스케줄이 제법 꽉 찼네.”

태연과 통화를 끝낸 창현은 스케줄이 꽉 찬 것을 듣고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작년에 훌륭한 선물(?)을 받은 만큼 개인적으로 보답을 해주고 싶었다. 어찌 보면 작년에 미국 진출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태연이 자신에게 조언을 해주었기에 단호하게 마음을 먹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개인적으로 태연이 자신과 알고 지낸 것이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개인적인 친분을 고려하더라도 반드시 선물을 주고 싶은 것이 창현의 개인적인 마음이었다.

“그런데 무얼 좋아하려나.”

선물을 주려면 모름지기 좋아하는 것을 선물해야 하지 않는가?

이래저래 고민을 해보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한정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창현이었다.

그러다가 창현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자신의 이마를 딱! 쳤다.

“그러고 보니 내가 고양이를 맡겼었지? 그걸 까먹고 있었다니.”

완전 까먹고 있었다. 자신이 미국에 갈 때 고양이를 태연에게 맡기지 않았던가? 그때 태연은 고양이를 맡아주었는데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 말이 없는 걸 보면 잘 키우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잘 가지고 있겠지. 이야기 해볼까? 내 고양이긴 하지만 그동안 키워준 게 있으니까…….”

낳아준 정 따로 있고 키워준 정이 따로 있지 않은가?

자신이 키우기는 했지만 그동안 키워준 정이 있는 만큼 고양이를 계속 키우겠다고 하면 굳이 소유권을 주장할 생각이 없는 창현이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던 창현은 태연이 고양이를 좋아하는 걸 떠올리고는 한 가지 가정을 하였다.

“고양이를 좋아하니까 귀여운 걸 대체적으로 좋아하지 않을까?”

문득 든 생각이었지만 제법 신빙성이 있었다.

보통 여자들이 귀여운 걸 좋아하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이 미치자 구체적으로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귀여운 것 혹은 예쁜 것을 여자들이 대체적으로 좋아하니 그걸 중점으로 맞추어 사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귀여운 것 혹은 예쁜 걸 구입하면 되는 건데. 무얼 구입한다…….”

곰곰이 생각에 잠기는 창현이었다.

무엇을 선물로 주어야 좋아할까?

고려할 것이 많은데 태연의 생일선물에 관련하여 깊은 생각에 잠기고 있었다.

“그 속에 의미를 담으면 더 좋겠지?”

입가에 미소를 짓는 창현이었다.


하루하루는 무척 빠르게 흘러갔다. 늘어지게 있으면 시간이 무척 길다고 느낄 수 있지만 바쁘게 움직이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흘러간다.

그것이 바로 창현의 경우에 해당하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가볍게 운동을 한 뒤에 점심을 해결하고 회사로 간다. 그리고 연기수업을 약 세 시간가량 받는다.

연기수업을 받은 뒤 곧장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지영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한다. 그리고 그 후에 남은 스케줄이 있으면 해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패턴이었다.

그 사이 창현은 태연의 생일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물질적으로 값비싼 선물은 받는 사람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여 부담이 크지 않으면서 한편으로는 정성이 들어간 선물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던 것이다.

받는 사람이 기쁘면 선물을 하는 사람도 기쁘기 마련이다.

창현은 선물을 받을 태연이 기뻐하는 표정을 상상하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준비는 다 되었으니 이제 물건이 도착하기만 하면 되겠지.”

물건은 이틀 내로 도착한다고 하니 본격적인 준비를 하면 된다.

선물을 다 마련하자 이제 다른 곳으로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태연의 선물을 전달하러 간 김에 수연에게 구체적인 약속도 잡을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그녀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구상한 테마와 일치를 시켜야 할 테니 말이다.

그렇게 창현이 태연의 선물과 드라마 OST를 동시에 구상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한 사람의 이름을 확인하니 미란의 전화였다.

그것을 확인한 창현은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이 누나 콘서트로 바쁘지 않나?”

3월 3일, 창현이 드라마 제작 발표회를 할 때 라샤는 본격적으로 전국 투어 콘서트를 떠나기 시작했다.

우선 부산을 시작으로 차근차근 위로 올라오는 형식이었기에 무척 바쁠 것임이 분명했다. 콘서트가 이틀마다 한 번씩 있었기에 그렇다.

고정된 패턴으로 하는 것이기에 숙달시키면 어려움은 없겠지만 이틀에 한 번씩 콘서트를 한다는 것은 엄청난 체력 소모를 요하는 일일 것이다.

창현의 계산에 의하면 지금 한창 콘서트를 열고 있을 것임이 분명했다.

쉬는 시간인가? 하는 마음에 창현은 핸드폰을 열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러자 들려온 것은 미란의 목소리가 아닌 귀청이 떨어질 듯한 엄청난 크기의 함성이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

‘뭐, 뭐지?’

순간 의문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그 의문을 내색하지 못했다.

바로 창현의 의문을 해소해주는 미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예! 여러분이 원하시던 현 씨와 통화입니다. 안녕하세요, 현 씨?

“네? 아, 네. 안녕하세요.”

-아직 이곳에 모인 분들이 잘 모르시는 듯한데 간략하게 자신의 소개를 해주시면 안 될까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눈치 챈 창현이었다. 아무래도 미란이 콘서트 도중 자신과 깜짝 통화 연결을 했나보다.

설마 이렇게 할 줄은 몰랐기에 창현은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자기소개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현입니다. 이렇게 목소리라도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러자 다시 한 번 열렬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라샤는 남자들에게도 절대적으로 인기가 있지만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무척 많다. 뭐랄까, 여성팬을 끌어들이는 듯한 무대 위의 카리스마가 있어서 그런다.

평소에는 조용하면서 은연중 무언가 있어 보이는 듯한 분위기를 지닌 시린은 무대 위에서 강렬한 카리스마를 발휘하였고, 세룬은 나긋나긋한 이미지로서 여성들에게 언니와도 같은 이미지를 어필하였다. 그리고 미란은 활발한 성격으로 팀 내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친근한 친구와도 같은 모습을 보인다.

그렇기에 남자 팬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타 여성 그룹과 달리 라샤의 팬 클럽인 다크 레이디스는 여성 회원이 30%에 육박할 정도로 여성 팬을 많이 거느리고 있다.

그리고 그 여성 팬들이 현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찌 보면 현의 팬들이 라샤의 팬으로 함께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현 씨와 통화가 연결 되었으니 한곡 들어보는 게 어떨까요?

갑자기 통화를 연결한 것도 당혹스러운데 창현에게 노래까지 시키는 미란이었다.

목도 제대로 풀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창현은 다소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거듭되는 그녀의 성화와 모인 팬들의 함성소리에 결국 포기한 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 후로도 여러 가지 인터뷰를 하고 나서야 간신히 풀려날 수 있었다.

간신히 통화를 끊을 수 있게 된 창현이 중얼거렸다.

“이거 다음에 출연료 꼭 받아야겠어.”

목소리로 출연한 것도 출연한 것이지 않은가.

게다가 콘서트로 벌어들이는 돈은 그야 말로 엄청나다.

반드시 출연료로 엄청나게 맛있는 것들을 뜯어먹겠다고 결심하는 창현이었다.

그렇게 결심한 창현이 오늘 스케줄도 무사히 끝낸 뒤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가자 창현이 주문해놓은 물건이 도착해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창현이 미소를 지었다.

“이제 선물도 도착했고, 슬슬 박차를 가해볼까?”

오늘은 3월 7일. 그리고 내일 3월 8일은 연기수업 이외에 다른 스케줄이 없다. 그렇기에 선물 제작에 전력투구를 할 수 있었다.

내일 선물 완성에 박차를 가하면 3월 9일, 선물이 완성된다.


3월 9일은 태연의 생일이다.

평소라면 자신이 가장 먼저 일어나 멤버들을 깨워줬을 테지만 오늘 만큼은 달랐다.

오늘 만큼은 멤버들이 자신에게 배려를 해주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어제 주현이 말하길, ‘내일은 언니의 생일이니 제가 깨워드릴게요. 그러니 푹 주무세요.’ 라는 훈훈한 배려에 태연은 모처럼 푹 잠에 빠질 수 있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기준이고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잠꼬대를 한다거나 제법 험하게 잔 것으로 비춰졌지만 말이다.

주현이 깨워줄 거라는 믿음에 푹 잠을 잔 태연은 아침에 일어나니 피로도 싹 가신 것이 무척 기분이 좋았다. 오늘 자신의 생일이라는 점 때문인지 기분이 상당히 업 되어 있었다.

“태연아 생일 축하해!”

멤버들의 축하 인사 속에 태연은 손 하나 움직이지 않은 채 아침을 해결할 수 있었고, 자잘한 일거리에도 손을 대지 않을 수 있었다.

이것은 멤버들끼리 정해놓은 규칙이었다. 생일 때만큼은 그 멤버를 왕같이 대접하자는 취지에서 시행된 것인데, 수영의 생일 날 처음 도입이 되었으며, 태연이 두 번째 체험자인 것이다.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태연은 오후 스케줄을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 음악 방송이 있기에 먼저 헤어 샵에 가서 머리를 하고 음악 방송 대기실로 향했다. 그리고는 메이크업을 받으며 리허설 무대에 섰다.

아직 신인이기에 공백기를 오랫동안 둘 수 없는 것이 그녀들의 입장이다. 신인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는 많은 무대에 서야 하지 않는가? 그런 이치였다.

“에구! 태연이의 생일인데 이거 제대로 쉬지도 못하네.”

“그러게, 명색이 소녀시대 리더의 생일인데 좀 휴식을 주면 안 되나.”

순규와 수영이 궁시렁거리면서 오늘도 빽빽하게 차 있는 스케줄을 보고는 한숨을 내쉰다.

평소에 리더 대접을 해주지도 않는 것들이 이럴 때만 리더의 생일을 찾는다.

뭐라 한마디 하고 싶은 태연이었지만 그래봤자 서로 감정만 안 좋아진다는 걸 알았기에 그저 한숨만 푹 내쉴 뿐이었다.

그때, 대기실 문이 열리더니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얘들아! 우리 왔어!”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카라였다.

데뷔 시기도 비슷하고 나이 대도 비슷했기에 소녀시대와 무척 친하게 지내는 그룹이었다.

“와! 규리 언니!”

“승연 언니 하이!”

“니코리도 안녕!”

카라의 방문을 반갑게 맞이하는 소녀들이었다. 아무래도 여성 그룹이다 보니 처음에는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기도 했지만 경쟁자보다는 함께 활동하는 동료라는 생각이 강했기에 지금은 친하게 지낸다.

반갑게 환영 인사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선 카라는 태연의 생일을 축하해준다.

“오늘 생일이라며? 축하해! 태연아!”

“고마워요, 규리 언니.”

자신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주는 규리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는 태연이었다.

그에 규리가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러냐는 듯 태연에게 말한다.

“여덟 명을 이끄느라 많이 힘들지? 하지만 이해하도록 해. 원래 리더는 우월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거거든.”

규리의 말에 옆에 있던 승연이 발끈하며 그녀의 말에 제동을 걸었다.

“우월하긴! 너 생일 더 빨라서 리더 된 거잖아!”

그 말에 규리가 무슨 말이냐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생일이 빠르긴? 멤버들이 모여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눈 뒤 내가 리더에 적합하다고 해서 선발된 거잖아?”

“거짓말 하지마!”

아무래도 리더 선정에 무언가 에피소드가 있는 듯하다.

투닥거리는 두 사람을 놔둔 채 니콜이 태연에게 다가와 축하 인사를 건넨다.

“생일 축하해요, 언니! 진심으로.”

아직 서툰 한국어로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니콜의 모습에 태연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고마워, 니콜.”

그런 태연에게 성희가 다가오더니 궁금한 듯 물었다.

“그런데 태연아.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응? 뭔데?”

동갑이라 말을 편하게 하는 처지였다.

태연이 말해보라는 제스처를 취하자 성희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윽고 마음을 굳힌 듯 태연에게 말한다.

“너희들 현 씨랑 친하다면서? 혹시 선물 같은 거 받지 않았어?”

“…….”

성희의 말에 한순간 대기실이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소녀시대 멤버들과 카라 멤버들의 시선이 태연에게 집중되었다. 선물을 받았는지 그 유무가 궁금했던 것이다.

잠시 머뭇거리던 태연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 주겠다고 했는데 스케줄 때문에 받지 못했어.”

“저런!”

절로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현이 주겠다는 선물을 스케줄 때문에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니! 정말 애석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창현에게 직접 이곳으로 찾아와서 선물을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연예인은 인지도가 몸값을 자랑하는 만큼 현의 인지도는 대한민국에서 최고를 달리고 있기에 한 번 움직이는 것만으로 엄청난 폭풍을 동반한다. 가수인 그녀들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렇지만 현의 선물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아쉬웠다.

주지 않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주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스케줄 때문에 받지 못했다고 하면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성희의 말에 대기실에 있던 여인들은 모두 현이 선물을 주는 광경을 떠올렸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맞게 각색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은은한 분위기 속에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선물을 건네주는 현의 모습. 모든 여성들의 로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걸 상상하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하나같이 두 볼이 불그스름하다. 결코 볼터치 때문이 아니었다.

“현이 준다면 나는 스케줄을 펑크 내고 도망갈 수도 있어!”

다소 격한 목소리로 말하는 승연이었다. 선물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적잖게 감동을 받은 듯했다.

태연도 잠시 그런 상상을 하다가 이내 상상에서 벗어난다. 상상을 하면 무엇 하는가 상상하는 것이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는데.

성희의 언급에 애써 잊고 있던 것이 떠오른 탓일까?

태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런 태연을 지켜보고 있던 규리가 위로의 의미를 담아 태연의 등을 토닥여주며 말한다.

“힘을 내.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여차하면 지금은 킵 해두었다가 다음에 선물을 달라고 해도 되잖아.”

“그래도 될까요?”

살짝 희망을 담아 말하는 태연이었다.

그에 규리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하지만 다음이라는 것이 있을 확률이 별로 없었다.


연기수업을 끝낸 창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스케줄이었다.

세희가 창현에게 다가오면서 스케줄이 있다는 것은 상기시켜주었다.

“오늘 인터뷰 스케줄 있는 거 알지?”

“알고 있어요.”

어찌 모르고 있겠는가. 오늘 스케줄을 보면서 이래저래 시간을 맞춰보았는데 말이다.

드라마 제의를 받은 직후 창현에게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예전에도 인터뷰 신청이 많았지만 드라마 제작 발표회가 이루어진 후에는 몇배가 늘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터뷰 신청이 많아진 상황이었다.

석규는 그중에서 몇몇 굵직한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였다. 마냥 거부할 일도 아니고, 인터뷰를 함으로써 속 시원하게 이야기할 것은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

창현이 옷을 챙겨 입는 모습을 보고는 세희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에 창현이 웃음을 지은 채 말한다.

“중간에 들릴 곳이 있는데 좀 일찍 가도록 해요. 여유시간이 약간 필요하거든요.”

중간이 들릴 곳이라니?

처음 듣는 이야기에 세희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물었다.

“중간에 들릴 곳? 어딘데?”

“그건 비밀입니다.”

손을 입에 가져다 대며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하는 창현의 모습에 세희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너 그거 뭐하는 거야?”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자 창현이 머쓱한 표정을 지은 채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한다.

“유명한 애니메이션 캐릭터 행동을 따라 해본 건데 누나는 모르나 보네요. 이거 괜히 뻘줌하네요, 하하!”

웃음을 짓는 창현을 보며 세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옷을 챙겨 입고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일단 들릴 곳이 있다고 하니 같이 가도록 해. 어차피 같이 가야하지만.”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선 세희가 창현과 함께 스케줄 활동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로드 매니저에게 먼저 연락을 한 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곧장 벤에 탑승하였다. 그리고는 벤이 회사 건물을 벗어나자 세희가 창현에게 물었다.

“그래, 중간에 들릴 곳이 어딘데 그러는 거야?”

궁금한 듯 묻는 세희를 보며 창현이 씨익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연다.

“S본부로요. 들릴 일이 있거든요.”

그 말에 세희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S본부는 왜? 여기서 멀잖아.”

S본부는 자신들이 가려는 곳하고 한참 떨어진 곳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왜 S본부를 간단 말인가? 세희로서는 의문일 수밖에 없다.

그에 창현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멀어도 어쩔 수 없죠. 제가 말했잖아요. 중간에 들릴 곳이 있다고. 지금부터 부지런히 가면 될 거예요. 아니, 오히려 시간 남을 걸요? 맞죠, 형?”

창현이 로드 매니저를 향해 묻자, 시간을 대충 가늠해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서 S본부에 가고 바로 인터뷰 장소에 가는 걸로 따지면 삼십 분 정도 시간이 남네. 늦지는 않겠어.”

“다행이네요.”

입가에 미소를 지은 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세희가 살짝 눈살을 찌푸리더니 끼어들었다.

“잠깐, 시간이 남는 건 이래저래 좋아. 그런데 갑자기 왜 S본부에 가겠다는 거야?”

“이유는 왜요? 제가 용무가 있어서 가는 건데 말이죠.”

창현은 나름대로 무어라 말을 했지만 세희도 물러서지 않았다.

“용무도 용무 나름이지. 그냥 사적인 공간에 간다고 했으면 아무 말도 안 했을 거야. 하지만 S본부는 연예인들이 있는 거잖아? 연예인들 만나러 가는 거지? 자세히 말해봐. 사정을 알아야 허락을 해줄 수 있을 거 아니야.”

세희는 창현의 말에 강력하게 제지하고 나섰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현의 매니저가 아닌가? 그런 만큼 현이 어떤 용무를 볼 때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그래야 만약의 사태에 대처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만약 사적인 일이었다고 하면 세희는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연예인이라고 해도 엄연히 사생활은 존재하는 법이고, 그것은 존중해줘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남들의 시선을 받으며 살아가는 연예인 특성상 그들에게 자그마한 사생활도 없다면 정말 불행한 것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창현은 지금 목적지가 다름 아닌 S본부라 하였다.

그렇다는 것은 연예인을 만나겠다는 것.

지금 창현의 상황은 최악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좋다고 할 수도 없다. 사람들에게 예민하다고 할 수 있는 진학 문제와 드라마 문제가 겹치고, 거기에 라디오 스타로 인해 가라앉았던 루머가 불거지고 있는 실정이었기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헤어나올 수 없는 스캔들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세희가 창현의 목적지를 알고자 했던 것이다.

창현은 가급적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절대 물러서려 하지 않는 세희의 모습에 이대로 얼렁뚱땅 넘길 수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했다.

“후우! 알았어요. 말할게요.”

“말해봐. 뭔데 그러는 거야?”

창현이 순순히 납득하는 모습을 보이자 세희도 표정을 풀며 창현에게 물었다.

그러자 창현이 다시 한 번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한다.

“선물을 주려고 해요.”

“선물? 설마 너 여자 친구 사귀고 있던 거야?”

선물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던 세희가 무슨 상상을 한 듯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외친다.

언제 여자 친구를 사귀어서 선물을 주겠다고 하는 것인가!

아니, 그보다 창현이 여자 친구를 사귀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니에요! 여자 친구는 무슨!”

소리를 지르는 세희의 모습에 창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세희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물었다.

“그럼 뭔데?”

“그러니까… 생일 선물이요. 생일 선물 전해주려고 잠시 들리자고 하던 거였어요.”

“선물? 아하! 그렇구나. 오늘 누구 생일인데?”

여자 친구에게 선물을 주는 게 아니면 당연히 생일 선물 밖에 없다.

그제야 세희는 창현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창현에게 물었다.

“생일 선물을 준다고 하면 되는 거지 뭐 그거 가지고 그래?”

“여자한테 주는 거라서 아무래도 그렇죠.”

“그렇구나. 뭐 그거 가지고 그래. 흐흐! 근데 여자 누구한테 주는 건데?”

부끄러워하는 창현의 모습이 그 또래 소년의 수줍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하여 어느새 표정을 푼 채 훈훈한 미소를 짓는 세희였다. 그래, 가끔 이런 표정도 지어야 열일곱 소년 같은 느낌이 나지. 안 그래도 너무 어른스러운 느낌이 강했다.

그렇게 느낀 세희가 창현을 보며 대답을 요구하자, 잠시 머뭇거리던 창현이 솔직하게 대답한다.

“3월 9일이 태연 누나 생일이거든요. 그래서 선물 주려고 한 거예요.”

“태연이? 아하! 그랬구나. 오늘 생일이었어. 친한 사이인 건 알았는데 이렇게 직접 선물을 챙겨주는 사이일 줄은 몰랐는데.”

음흉하게 미소를 지어보이는 세희의 모습이 걸리적거린다. 저런 모습을 볼 것 같아서 언급을 하지 않았던 것인데 괜히 언급했다는 생각이 드는 창현이었다.

살짝 인상을 찡그린 창현에 세희에게 말했다.

“누나가 그럴 것 같아서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던 거예요.”

“아, 미안. 내가 실수했네.”

창현의 불편한 심정이 전해졌기에 세희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사과하였다.

선뜻 사과하는 세희의 모습에 창현은 표정을 풀고는 말했다.

“태연 누나는 작년에 제가 미국으로 진출할 때 상담을 해줬거든요. 그때 고마운 감정이 들어서 무언가 보답을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렇구나. 하기야 괜히 아홉 명 중 리더는 아니겠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세희였다.

“어쨌거나 제 사정을 말했으니 S본부로 가줘요.”

“이미 가고 있어.”

어차피 창현의 뜻을 꺾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로드 매니저는 이미 S본부로 차를 돌리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창현은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 그렇군요.”

그렇게 창현을 태운 벤은 S본부로 향했다.


S본부는 난리가 났다.

오늘은 일요일이어서 인기가요를 하는 날이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들이 대거 참석하는 만큼 팬들은 가수들을 보기 위해 S본부로 몰려든 상황이다.

그런 그들은 믿기지 못할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될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꺄아! 현이다!

현이다! 현!

팬들은 난리가 났다. 현이 모습을 드러내자 비명을 지르면서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 현이 참가한다는 소식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현이 온단 말인가?

그러건 말건 현을 태운 벤은 서서히 안으로 들어섰다. 굳이 팬들에게 용무를 설명할 이유는 없었기에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삼십 분이야. 그 이상은 안 되는 거 알지?”

“알았어요.”

벤에서 내린 창현은 세희에게 연신 당부를 받고 있었다. 인터뷰 장소에 넉넉하게 도착하기 위해서는 삼십 분의 여유 시간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세희는 창현이 삼십 분 안에 오라고 당부를 하고 있었다.

이곳에 오면서 수십 번 넘게 이야기를 들었던 차였기에 창현은 연신 알겠다고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벤에서 내린 창현은 곧장 방송국으로 들어섰다. 이미 몇 번 와보았던 차였기에 지리는 훤하게 꿰뚫고 있었다.

창현이 방송국으로 진입하자 그를 알아본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딱히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기에 사람들이 알아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현이다. 여기 왜 온 거지?”

“현이네. 실물은 처음 봐.”

“메이크업 한 것 같지 않은데 허! 저게 정말 생얼이야?”

아는 만큼 보인다고, 연예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창현이 생얼로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인물이 대단하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방송국에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채 돌아다닐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공연하고 있네? 일단 봐야겠네.”

대기실에 가봤자 없을 것을 알아낸 창현은 곧장 방송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가수들이 노래 부르는 것을 보면서 소녀시대가 나오길 기다렸다.

두 가수가 부르고 나가자 그 다음으로 소녀시대가 올라서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창현은 눈을 빛냈다.

“나왔군.”


다소 우울한 상태에서 무대 위에 오른 태연은 썩 만족스럽지 않은 무대를 끝마쳤지만 표정은 밝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무대에 오르고 노래를 부르다가 창현과 닮은 사람을 보았던 것이다.

얼핏 보았기에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닮은 얼굴을 본 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어느 정도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참으로 웃기는 현상이 아닐 수 없었다. 잠시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우울해 하다가 비슷한 얼굴을 본 것만으로 기분이 급격히 밝아지는 자신의 변덕스러운 기분이라니.

“태연이 너 기분 좋아보이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소녀시대의 무대가 끝나고, 아까 전 자신들로 인해 분위기가 어두워졌다고 생각한 카라 멤버들이 대기실에 찾아와 은연중 태연의 분위기를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태연의 분위기가 그리 나쁘지 않은 것이 아닌가?

태연은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성희를 보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좋긴. 오늘 내 생일이니 당연히 좋아야지.”

“그, 그런가?”

오히려 당당하게 나오니 말을 건 사람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대답한 태연은 멤버들을 둘러보고는 말한다.

“오늘 무대 잘했어. 아직 스케줄이 남았으니 힘내도록 하자!”

“그, 그래.”

소녀들도 갑자기 밝아진 태연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하였다.

사람 기분이 아무리 변덕스럽다지만 갑자기 기분이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영문을 모르는 그녀들로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태연이 분위기를 밝게 만들고 있을 때, 갑자기 대기실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보통 대기실에 들어올 때는 노크를 하는 것이 예의였기에 소녀들은 자연스럽게 밖을 향해 외쳤다.

“누구세요?”

“예, 오늘 소녀시대 태연 씨의 생일이라 하셔서 선물 전달하러 왔는데요.”

“들어오세요.”

방송국에는 허락받은 사람만 들어올 수 있기에 이곳 대기실까지 들어올 정도라면 믿을 수 있다는 걸 뜻했기에 소녀들은 순순히 대기실 안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누가 선물을 준단 말인가? 팬들이 준 선물은 어제 전달 받은 상황이었고, 개인적으로 전달한 선물도 오늘 한 번에 모아서 받은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누가 보낸 선물인지 딱히 예상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딸칵.

소녀들의 허락이 떨어지자 대기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모자를 푹 눌러쓴 사람이었다.

키는 한 175cm 정도로 보였으며, 전체적으로 슬림한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쭉 빠진 다리는 남자답지 않을 정도였고, 전체적인 체격은 왜소하지 않았지만 그리 크지 않은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모자 아래로 드러난 하관이 뭐라고 해야 할까? 익숙한 느낌이 든다라고 할까나?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을 동시에 받았는지 소녀들은 동시에 고개를 갸웃한다. 누구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런 소녀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기실 안으로 청년은 다시 한 번 사실을 확인시켜주듯 말한다.

“소녀시대 태연 씨의 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태연 씨가 누구죠?”

“전데요?”

설마 자신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건가, 라는 느낌에 조금 울컥했지만 아직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는 뭐라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선 청년은 태연 앞에 선다. 키를 높여주는 구두를 신고 있었지만 그렇다 하여도 태연의 키가 165cm를 넘지 못한다.

자신 앞으로 다가온 사람을 본능적으로 올려다 본 태연은 순간 넋을 잃으며 소리쳤다.

“앗!”

갑자기 소리 치는 태연의 모습에 소녀들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외친다.

“뭐, 뭐야?”

“왜 그래, 태연아?”

“뭘 그리 놀라는 건가요, 태연 누나.”

자신을 보며 소리치는 태연의 모습에 빙그레 웃음을 짓던 청년은 모자를 벗으면서 인사를 하였다.

“선물 배달 왔습니다.”

모자를 벗은 사람의 정체는 다름 아닌 창현이었다.

그의 모습을 확인한 사람들은 모두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익숙한 느낌이 들었지만 설마 그일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대기실은 순간 침묵에 빠져들었다.

갑작스러운 창현의 방문은 그녀들로 하여금 놀라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너, 너! 어떻게 여길…….”

태연은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며 창현을 손가락질 하고 있었다.

그에 창현은 손을 뻗어 자신을 가리키는 그녀의 손가락을 곱게 접어주었다.

그러자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태연이 앗! 하는 소리와 함께 손을 아래로 내린다. 그리고 여전히 놀란 얼굴을 한 채 창현에게 묻는다.

“여긴 어떻게 온 거야?”

그녀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 창현과의 통화에서 생일날 만나기 힘들다는 뉘앙스의 말을 듣지 않았던가?

그 때문에 내심 창현을 만날 것을 포기하고 있던 태연이었다. 창현이 잠시 짬을 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잠시의 짬을 낼 수 없던 것이다.

내심 포기하고 있었기에 놀라움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자신을 놀란 시선으로 바라보는 태연에게 피식 웃음을 지어보인 창현이 말한다.

“근처에 스케줄이 있어서요. 그래서 잠시 들린 거예요. 착하죠?”

살짝 애교 어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치명적이다. 창현의 장점은 나이에 비해 기댈 수 있을 정도로 의젓한 것인데 거기에 연하의 치명적인 매력이라 할 수 있는 애교가 가미되면 그 누가 뛰어넘을 수 있단 말인가.

아니나 다를까, 창현의 모습을 본 태연의 얼굴이 확 붉어진다. 아니, 붉어졌다고 본인이 느꼈다. 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행인 점은 방금 무대가 끝났고, 화장으로 어느 정도 가려진다는 점이었다.

태연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자신의 생일 선물을 주기 위해 여기까지 직접 온 사람인데 당연히 고마울 수밖에 없다.

“으응.”

사실 근처에 스케줄이 있다고 할 수 없지만 창현이 이렇게 말을 한 것은 그렇게 말을 해야 태연이 부담을 느끼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런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태연의 모습에 창현이 쇼핑백을 건넸다.

“여기 선물이에요. 딱히 비싼 건 아니고요, 실생활에서 어느 정도 필요할 것 같아서 샀어요.”

어떤 선물이든 상관이 없지 않나?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받는 것이다.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고마워.”

창현이 주는 선물이라는 점이 더욱 점수를 더하고 있었다.

감사의 인사를 하며 선물을 받는 태연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지어보인 창현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한다.

“그러고 보니 다음 스케줄 있죠? 저도 잠시 짬을 내서 온 거라 이만 가보도록 할게요. 스케줄 잘 하고요, 태연 누나 오늘 생일 축하드려요.”

창현의 말에 빠르게 현실을 자각한 태연이었다. 그녀는 창현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선물 줘서 고마워. 잘 쓸게.”

“예이. 그럼 다음에 만날 기회가 있으면 만나요. 그럼 바이바이.”

그렇게 말을 한 창현이 대기실을 벗어났다. 방송국을 돌아다니고, 인기가요 무대를 관람하느라 시간이 촉박했었다. 게다가 소녀시대 외에 카라 멤버들도 있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고.

“와아! 태연이 너 대단하다!”

창현이 밖으로 나가자 옆에 있던 승연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도 그럴 것이 다름 아닌 현이 직접 와서 선물을 주지 않았나!

카라 멤버들도 창현과 얼굴을 익혀두기는 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얼굴만 익혀놓은 상황이다.

그녀들에게 있어 현이란 존재는 선배이자 다가가기 힘든 존재였다. 인기도 인기지만 뭐랄까, 신비감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고 해야 할까. 왠지 접근을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아우라가 전신을 휘감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녀들은 현과 친분을 가지고 있는 소녀시대를 부러워하였다. 데뷔 전부터 알고 지냈다고 하니 허물없이 대하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부러움을 느꼈던 것이다. 게다가 회사 사이도 친밀하지 않던가? 현은 SM엔터테인먼트의 프로듀서로서 계약도 하고 말이다.

친한 사이라면 어찌어찌하여 곡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흥행 보증 수표와도 같은 현의 곡이라면 순식간에 인기를 얻을 것임이 분명했다. 물론 비약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현과 친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런 상상이 가능할 정도로 현은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이 정도 가지고 뭘.”

부러움을 표하는 카라 멤버들의 모습에 태연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여자들이 멋진 이벤트를 해주는 남자 친구를 둔 친구를 부러워하는 것처럼 자신을 위해 선물을 가지고 온 창현이 마치 자신을 위해 이벤트를 한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이 순간만큼은 창현이 남자 친구의 역할을 해주었다고 볼 수 있었다.

“선물이 무엇일지 궁금한데요? 보면 안 될까요?”

니콜의 말에 태연은 잠시 머뭇거렸다. 숙소에서 조용히 열어볼지 아니면 여기서 선물을 열어볼지 말이다.

“열어 볼까……?”

태연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하자 멤버들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모습을 보인다. 창현이 무슨 선물을 했을지 궁금해 하는 표정이었다.

“알았어, 열어볼게.”

멤버들이 열어보라는 반응을 보이자 태연은 못 이기는 척 창현의 선물을 열어보기 시작하였다.

쇼핑백에서 포장된 상자를 꺼내고, 포장을 조심스럽게 벗긴다.

그러자 모습을 드러낸 것을 본 사람들이 나직이 감탄사를 터뜨린다.

“저거 아이리버잖아?”

창현이 선물한 것은 다름 아닌 아이리버였다. 그것도 지금 한창 신형이라 불리는 것이었는데, 가격이 제법 나가는 것이었다.

게다가 미영이 부러워 할 만한 분홍색 아이리버였고, 무척 여성스러우면서 세련된 디자인을 하고 있었기에 실용적인 면을 제외하더라도 충분히 장식용으로 가지고 다닐 수 있을 듯했다.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태연도 싱긋 웃음을 지었다. 따로 MP3가 있긴 하지만 아이리버의 용도가 더욱 무궁무진하였기에 그렇다. 게다가 여러 가지 기능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있으니 활용도도 나쁘지 않을 듯 싶었다.

“포장이 뜯어져 있는 걸 보면 현 씨가 만진 것 같은데 만약 저기에 직접 부른 노래가 있지 않을까?”

밀봉 되어 있는 것이 아닌 한 번 뜯었다가 다시 넣은 포장을 본 승연이 하는 말이다.

그에 옆에 있던 규리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한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 네 상상이겠지.”

“나도 그냥 해본 말이야. 만약 그랬다면 정말 로맨틱하겠다. 태연이 정말 부러워.”

대놓고 부러움을 표하는 승연이었다.

그에 태연이 미소를 짓더니 말한다.

“고마워요, 언니.”

그렇게 말을 한 태연이 흠칫하며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자 멤버들이 그리 좋지 않은 얼굴을 한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분홍색을 좋아하는 미영은 세련된 디자인을 한 아이리버가 단단히 마음에 들었는지 아주 뚫어져라 아이리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 왠지 모를 위기심이 든 태연이 슬쩍 아이리버를 뒤로 숨긴다. 이거 잘못하다가는 자칫 빼앗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칫!”

태연이 아이리버를 뒤로 숨기자 미영이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간수 잘해야겠다. 자다가 없어질지도.’

미영의 탐욕 어린 표정을 본 태연은 아이리버를 은밀히 숨겨두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멤버들이 안 좋은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 좋아하지 않아야 할 일이지만 그것이 창현으로 인해 비롯된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렇다.

자신이 우위에 선 느낌이랄까. 그런 느낌이 들었기에 태연은 살짝 턱을 치켜들 수 있었다. 우위에 선 자들만 느낄 수 있는 우월한 느낌이었다.

“자자, 어서 준비하도록 하자. 다음 스케줄 가야지.”

짧지만 기분 좋은 우월함을 만끽한 태연이 멤버들을 추스르기 시작한다. 아직 스케줄은 많이 남아 있다. 무척 고된 여정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창현의 선물을 받아서일까? 태연의 표정은 밝았다.

힘이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듯하였다.

그녀의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진한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스케줄을 마치고 오니 막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숙소로 들어선 소녀들은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 씻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눈을 더 붙이기 위해서는 화장실을 선점하는 것이 과제였던 것이다.

태연은 리더로서의 배려심을 발휘하여 멤버들이 먼저 씻도록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멤버들이 다 씻자, 자신도 씻은 뒤 곧장 잠에 들 준비를 한다.

“…….”

룸메이트가 잠에 든 것을 확인한 태연이 조심스럽게 아이리버를 킨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아이리버를 킨 것은 선물 안에 있던 짧은 쪽지 내용이 있었기에 그렇다.

[집으로 돌아가면 아이리버를 켜보세요.]

그걸 본 태연은 승연이 했던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창현이 직접 부른 노래를 안에 수록했을 수도 있다는 상상이 들었던 것이다.

상상만 해도 짜릿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랬기에 아이리버를 키는 태연의 가슴은 두근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이리버를 킨 태연은 곧장 노래가 있는 곳을 클릭했다. 그러자 파일 하나가 보였다. 바로 태연의 생일♡.mp3이라는 파일이었다.

하트 문양을 본 태연은 입가에 슬쩍 미소를 짓다가 이내 무언가를 파악한 듯 살짝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이것이 감히 누나라 하지 않고 그냥 이름을 부르다니.”

살짝 괘씸한 느낌이 들었지만 오늘 한 행동들이 마음에 드니 봐주겠다고 생각하는 태연이었다. 소녀시대 리더답게 참으로 넓은 마음을 지닌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그 파일을 더블클릭하여 재생시켰다. 그러자 기존의 곡이 아닌 듯, 직접 녹음한 듯한 창현의 멘트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오늘 태연 누나의 생일을 무척 축하드리고요. 어떤 선물을 할까 하다가 물질적으로 비싼 것보다는 아무래도 정성이 들어간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생일 축하의 의미를 담은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즐겁게 들어주세요.

그렇게 말을 한 창현이 피아노로 연주를 하는 듯 피아노 반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영어로 작사된 노래가 창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매혹시키는 노래라 할 수 있었다. 수영의 생일을 축하하면서 창현이 노래를 불러주었던 것처럼 축하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고 있었다.

노래를 들으면서 태연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감미로운 멜로디와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호소력 짙은 창현의 목소리는 태연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가사가 영어로 되어 있었지만 그 내용만큼은 창현의 감정에 실려 그대로 전달되는 듯하였다.

얼마나 노래에 심취해 있었을까.

마침내 노래가 끝이 났다.

노래를 끝낸 창현이 말을 하기 시작한다.

-사실 요즘 슬럼프라서 작업을 하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축하하는 마음이 담아져서 그런지 괜찮은 곡이 나왔네요. 앨범에 실을 만큼 괜찮은 곡이 되어서 저도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들고요. 태연 누나가 마음에 들기를 빌겠어요.

마음에 들다마다. 아니,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당장 멤버들을 깨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자신의 앞날이 어두워질 것 같았기에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있을 따름이었다.

‘고마워. 날 위해 이런 노래를 만들어주다니.’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태연이었다. 그만큼 창현의 선물은 값지고 귀한 것이었다.

그때, 태연의 기분을 확 깨버리는 창현의 말이 들려왔다.

-아, 그런데 가사를 괜히 영어로 했나 봐요. 수연 누나나 미영 누나면 모를까, 태연 누나는 영어 알아들을 수 있어요? 이미 녹음을 해버렸으니 어쩌겠어요. 가사 내용이 너무 궁금하다면 나중에 가사를 적어서 보내드릴께요.

그 말을 들은 태연의 표정이 팍 일그러졌다.

‘나도 영어 잘하거든? 이게 어디서 사람 차별이야! 나도 영어 잘한다고!’

실제로 들린 단어는 Congratulation 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가사 내용을 다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 태연이었다.

어차피 생일 축하한다는 노래 아니겠나? 그럼 내용이야 뻔하다.

‘뭐, 축하한다는 내용의 가사겠지. 어쨌든 날 무시하다니. 다음에 보기만 해봐!’

그러면서 애꿎은 창현에게 전의를 불태우는 태연이었다.

하지만 꿍얼거리면서도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2008년 생일은 자신에게 있어 최고의 생일이었다.




제50장 수연, 테스트를 보다




태연의 생일이 지나가면서 한동안 창현이 S본부에 들린 것이 화제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스케줄이 없던 창현이 S본부에 들린 것을 일부 팬들이 목격하면서 화제가 되었던 것이다. 특별히 S본부에 모습을 드러낼 일이 없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소위 말하는 증거사진까지 첨부하여 창현이 S본부에 등장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논란이 가중되기 시작했다. 행동 하나하나가 이슈가 되는 창현인 만큼 무슨 이유로 S본부에 들렸는가가 초점에 맞춰졌던 것이다.

거기에 창현을 비롯하여 AA엔터테인먼트는 이렇다 할 말을 하지 않았다. 창현은 태연의 선물을 주기 위해 들렸다고 말을 하면 오해가 가중될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고, AA엔터테인먼트에서는 곧 묻히게 될 일을 가지고 왈가왈부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자 팬들이 그럴 듯한 이유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바로 곧 있으면 촬영에 들어갈 S본부 드라마의 어떠한 부분을 협의하러 현이 S본부로 향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제법 그럴 듯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마침 드라마 방영하기로 결정된 곳이 S본부였고, 드라마 제작 발표회를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현이 드라마에 하차 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현이 직접 S본부에 찾아가서 할 이야기라면 제법 심각한 사항일 것임이 분명했고, 그 심각한 이야기일 것 중 하나가 바로 드라마 하차일 확률이 높았던 것이다.

이것은 많은 팬들의 바람이기도 하였다. 현의 팬들은 드라마에 출연하여 기존의 이미지가 마이너스 되지 않길 원했다. 웬만한 연기력이 받쳐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연을 덜컥 맡게 되어버리면 누군가를 욕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의 집중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기에 팬들은 나쁜 의미에서 현이 드라마에 하차하길 바라는 것이 아닌, 기존의 이미지를 지켜주길 원하면서 드라마에 하차하길 원하고 있었다.

제법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다가 난데없이 드라마 하차설로 번지게 되자 곧장 AA엔터테인먼트에서는 사실무근임을 밝혔다. 창현이 S본부로 찾아갔던 일을 설명하지 않은 채 드라마 하차설에 대한 것만 해명을 한 것이다.

드라마에 관련된 내용을 뺌으로써 사람들이 그쪽으로 생각을 굳히게 만드는 것도 있었다.

만약 그 부분도 부인해버리면 무슨 이유로 S본부에 찾아갔을지 다른 방향으로 상상이 들쭉날쭉 뻗어나갈 것임이 분명했기에 그렇다.

그렇게 사람들은 현이 S본부를 찾은 것은 드라마에 관련된 내용이라는 것으로 생각을 굳혔다.

일부 팬들은 그날 소녀시대가 방송을 하고 있고, 태연의 생일이 3월 9일인 점을 들어 모종의 만남을 가지기 위해 S본부에 방문한 것이라 주장했지만 그 주장은 금방 묻혔다. 제법 그럴 듯했지만 확률적으로 보면 드라마 쪽 내용이 더욱 무게가 실렸고, 팬들은 굳이 여자 연예인과 얽히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그렇다.

그리하여 창현이 S본부에 들렸던 내용은 가볍게 마무리 될 수 있었다.

일이 어떻게 진행되건 창현은 그에 대한 신경을 그리 쓰지 않고 있었다. 자신의 행보 하나가 이슈가 되었다는 것이 놀라웠지만 이미 최소한의 대처를 모두 한 만큼 굳이 그에 신경을 기울여 심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태연에게 선물을 전달한 창현은 자신의 슬럼프가 한시적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간단하게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는 노래를 작곡할 때는 전혀 슬럼프가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갈 땐 슬럼프의 여파가 느껴졌다. 라디오 스타 촬영을 할 때보다 상당히 나아진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여전히 슬럼프 잔해가 남아 있는 듯했다.

“그래도 나한테 국한 되니 다행이군. 본격적으로 드라마 ost 작업을 할 수 있을 테니.”

아무래도 기존에 자신이 부르던 익숙한 컨셉 때문에 슬럼프가 왔다고 느끼는 창현이었다. 이것은 컨셉에 변화를 줘야 하는데 아직 그 부분에 심력을 기울일 여력이 되지 않았다.

자신의 슬럼프 여부를 확인한 창현은 차곡차곡 드라마 ost 준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미 드라마 내용 전개에 대해 훤히 꿰뚫고 있었기에 테마를 잡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드라마 ost에 대해 어떤 식으로 구성을 할지 대략적으로 틀을 짜놓은 것이다. 그리고 파트를 몇으로 나눠야 할지, 그리고 어떤 감정 처리에 능한 가수들을 섭외할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다.

“가수 섭외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으니 그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이미 드라마 ost의 작업 전부를 현이 맡는다는 것은 연예계의 큰 이슈가 되어 있었다. 현이 데뷔 삼 년 만에 드디어 자기 소속사가 아닌 다른 가수에게 곡을 준다는 걸 뜻했기에 그렇다.

현의 곡을 받은 라샤가 얼마나 큰 성공을 거두었는지 보았기에 제법 규모가 있는 기획사들은 현의 곡을 받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런 그들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열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제법 뛰어난 가수들을 거느리고 있는 기획사부터 시작하여 아이돌 그룹을 거느리고 있는 기획사들까지 연일 AA엔터테인먼트에 전화를 하고 있었다. 드라마 ost에 자신들 소속 가수들을 넣어달라는 식의 부탁으로 말이다.

그에 대해 석규는 공개적으로 대답을 한 상태였다. 드라마 ost에 관련된 가수 선택은 모두 현에게 일임한 상황이고, 결정이 되면 1차적으로 선택을 할 것이라고 말이다.

대부분의 가수들은 현이 선택한다면 OK사인을 내릴 것이라는 의중을 보였다. 석규의 발언은 제법 오만하게 비춰질 수 있는 모습이었지만 연예계가 나이 위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인지도와 실력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만큼 그 발언은 당연히 발휘할 수 있는 자신감이었다.

“일단 컨셉을 정했으니 가수를 선택하는 일만 남았겠군. 그 부분만 결정을 내리면 되겠어.”

그렇게 생각한 창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상을 마쳤으니 가수들을 지명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명할 가수들 대부분이 어느 정도 인지도를 지니고 있고, 실력도 있지만 몇몇 가수들은 실력을 확인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1차적으로 실력을 확인할 대상은 바로 소녀시대의 제시카였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가장 먼저 의중을 밝혀왔고, 회사 간에도 사이가 친한 편이니 석규가 가급적이면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의 가수 한 명에게 드라마 ost를 주면 좋겠다는 말을 한 상태였다.

그에 대해 창현은 제법 길게 고민을 하다가 긍정적으로 고민을 끝마친 상태였다.

수연의 섬세하고 높은 고음이라면 제법 괜찮은 파트를 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자신의 생각만으로 쉽사리 흘러가는 문제가 아니었기에 어느 정도 실력을 확인하고 결정을 내릴 생각이었다.

“근데 이러다가 욕을 먹는 건 아닐런지 모르겠네.”

심중으로 결정한 가수들이 있긴 하지만 그중에서 그룹 출신으로서 솔로에 도전하는 것은 수연이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결과를 발표하게 되면 사람들이 불신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도 있었다.

AA엔터테인먼트와 SM엔터테인먼트가 친한 사이라는 것을 만인이 알고 있는 만큼 수연이 본격적으로 솔로로서 첫 가능성을 선보이는 드라마 ost에 공정성이 제기될 수밖에 없던 것이다.

물론 이 세상에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긴 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받게 될 시선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창현이었다. 아무리 세상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지만 어느 정도 마음이 작용했다는 것을 감출 수 없기에 더욱 그러한 것일지도 모른다.

잠시 멈칫했던 창현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괜히 생각을 하니 머리만 아파왔던 것이다.

“어떻게 되겠지. 어차피 나한테 권한이 있는데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든 말든 성공하면 되는 거잖아? 결과로 모든 걸 보여주면 되는 거지.”

일부분을 보고 전체를 말하려는 사람들은 애초에 상대하지 않는 것이 낫다. 전체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대화가 가능하단 말인가.

그렇기에 창현은 자신의 결심을 굳히고는 사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서에게 일러 자신이 왔다는 것을 알린 창현은 잠시 후 사장실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어째 회사 규모가 커질수록 회사에서 석규를 만나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것을 느끼는 창현이었다. 아무래도 일도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 그런 것이겠지만 예전과 다른 모습에 종종 낯선 느낌을 받고는 한다.

석규가 창현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그래, 무슨 일이냐? 이번에는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창현이 S본부에 갔던 것을 가지고 꼬리를 잡는 석규였다.

그 말에 창현이 눈썹을 찡그렸다.

“사고라니요. 제가 언제 사고를 쳤다고 그럽니까?”

창현의 그런 반응에 석규는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짓더니 말한다.

“S본부에 갔던 이유가 뭔지 난 알고 있다. 후후!”

일이 많아져서 그런 걸까?

어째 갈수록 자신을 대하는 석규의 모습이 아버지라기보다는 친구과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을 할 때는 진지하다는 게 다행이었지만 자신을 콕콕 찌르면서 자극하는 것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친한 사이에 그럴 수도 있는 거죠. 어쨌든 용무가 있어서 찾아왔어요.”

더 이상 장난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한 창현의 모습에 석규는 잠시 멈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창현에게 물었다.

“그래, 무슨 용무로 찾아왔느냐?”

“드라마 ost에 관한 구상이 대략적으로 끝이 나서 말이죠.”

“오! 그러냐? 벌써? 제법 빨리 끝났구나.”

창현의 말에 반색하며 말하는 석규였다. 제법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예전과도 같은 페이스라면 금방 끝날 일이지만 현재 창현은 슬럼프를 겪고 있고, 연기수업과 고등학교 과정 공부를 겸하면서 종종 스케줄까지 소화하고 있었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벌써 구상을 끝냈다니, 이미 반은 진행된 것이라 볼 수 있었다.

자칫하다가는 드라마 ost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걱정이 말끔하게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석규가 말했다.

“그럼 가수들을 섭외하면 되겠구나. 아마 대부분의 가수들이 네 섭외에 응할 것이다.”

그러면서 가수들이 보인 반응에 대해 설명을 하는 석규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창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한다.

“그렇게 되었다면 다행이죠. 일단 실력 있는 가수들은 섭외하는 형식으로 하고, 그룹 가수들은 약간 테스트를 보는 형식으로 하려고요.”

“그렇게 해라. 확정이 아니라 조금 그렇지만 일단 테스트를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할게다. 그들에게 있어서도 하나의 기회가 될 테니 말이다.”

이쪽에서 부탁해서 할 일이 아니라 저쪽이 부탁해도 들어줄까 말까한 일이었다. 거의 확실한 흥행 보증 수표인 만큼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그런 만큼 이쪽에서 어느 정도 의향을 보인다면 저쪽에서는 필사적으로 들어오려 애쓸 것임이 분명했다.

“네. 그럼 먼저 한 사람 테스트부터 보려고요.”

“그래, 누구냐? 말하면 먼저 말하도록 하마.”

석규가 적극적으로 나와주자 창현도 다소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꼈다.

“그럼 SM엔터테인먼트 쪽부터 보도록 하죠. 제시카 누나 스케줄 알아봐주시고 이쪽하고 맞춰서 테스트를 한 번 봤으면 하는데요.”

수연이라고 하면 석규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제시카라 칭하는 창현이었다.

그에 석규는 턱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일단 실력을 보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겠지. 알겠다. 내가 SM엔터테인먼트와 연락을 해보도록 하마. 장소는 어디로 하겠느냐?”

아무래도 노래 테스트를 보려면 녹음실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녹음실은 SM엔터테인먼트에도 있고, AA엔터테인먼트에도 있다. 그리고 창현의 개인 녹음실도 있었다.

그 물음에 창현은 자신의 녹음실로 오라고 하려다가 멈칫했다. 자신이 근래 들어 무척 바쁜 만큼 개인 녹음실에 가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다시 생각에 잠긴 창현은 자신이 SM엔터테인먼트로 갈지 이곳으로 할지 고민을 하다가 아무래도 익숙한 곳에서 테스트를 보는 것이 편할 거라 생각이 들었기에 결정을 내렸다.

“이곳으로 와달라고 하세요. 제가 여유로우면 먼저 가는 방향으로 하겠는데 제가 좀 바쁘잖아요. 그쪽도 바쁜 건 같을 테지만 아무래도 테스트인 만큼 제가 익숙한 곳에서 하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창현의 말에 석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렇게 전하도록 하마.”

“그럼 부탁드릴게요.”

자신의 용건을 모두 이야기 한 창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숙이며 사장실을 벗어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석규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수롭지 않게 말을 했지만 이번 일은 제법 복잡했다.

“잘해서 반드시 성사 되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수연을 드라마 ost로 진출시켜주면 SM엔터테인먼트에서 제법 만만치 않은 떡밥을 걸어놓았기에 가급적이면 원만하게 성사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석규였다.

이래서 사업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현의 의중에 맡기겠다고 했지만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으면 도움을 주고 싶었으니 말이다.

우선해야 할 것은 SM엔터테인먼트에게 연락하여 스케줄을 협의하는 것이다.

석규가 곧장 전화를 들어 SM엔터테인먼트로 연락하기 시작했다.


“흐음!”

방금 전화 통화를 끝낸 수만은 불편한 헛기침을 흘렸다.

조금 전 AA엔터테인먼트 사장인 석규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만은 석규가 자신의 제안을 수락하는 것인 줄 알고 기쁜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결과는 다소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현이 드라마 ost를 수락하는 것이 아닌, 테스트를 보겠다고 의중을 전했다고 말한 것이다.

물론 1차 지명인만큼 수락이 될 확률이 높았지만 자칫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다가는 이도저도 아닌 것이 되어버릴 확률이 높았다.

수연이 캐스팅 될 경우 만만치 않은 떡밥을 주겠다고 제시를 했지만 그럼에도 완벽한 수락이 아닌 부분적 수락은 조금 불편함을 갖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뭣 하나 쉽게 풀리는 일이 없기에 그렇다.

이번 드라마 ost는 성공 가능성이 무척 높다는 점에서 군침을 흘릴 법도 하지만 소녀시대 내 메인보컬 중 한 사람인 수연의 새로운 가능성을 점쳐보는 것도 가능하다. 과연 최고의 곡과 최고의 프로듀싱이 갖춰졌을 때 어느 정도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었다.

이미 소녀시대 메인보컬 중 한 사람인 태연은 <만약에>라는 곡으로 솔로로서의 가능성을 보이지 않았던가? 아직 개별 활동을 활발하게 할 생각은 없었지만 추후 개별 활동에 주력을 하려고 하는 만큼 어느 정도 가능성을 점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윤아가 드라마에 출연하고, 수연이 드라마 ost를 부름으로써 소녀시대의 전체적인 인지도를 쌓아놓으려는 속셈이었다. 원더걸스와 경쟁에서 다소 뒤처진 만큼 각지에서 활동을 하여 차근차근 인지도를 쌓아놓을 속셈이었다. 그중에서 아무래도 인지도를 쌓는 것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제일이라 생각하는 수만이었다.

“확실히 쉽지는 않을 거라 했지. 나이가 어리다고 하나 확실한 자기 고집이 있을 테니.”

다소 불편한 심기가 들긴 했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수만이었다. 자기 고집이 없다면 무슨 일이든 간에 성공하기가 힘들지 않은가? 그런 만큼 이번 일은 나쁘게 생각할 것이 아닌, 일단 1차적으로 통과를 한 셈이니 좋게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수만은 곧장 소녀시대의 스케줄을 책임지고 있는 담당 실장을 불렀다.

“김 실장을 불러오게.”

이왕 지명이 된 것 가급적이면 빠르게 테스트를 볼 생각이었다.

이미 이쪽에서는 현의 추후 일주일 스케줄 표를 받은 상태였다. 그런 만큼 수연의 스케줄과 맞춰 날을 정해 AA엔터테인먼트로 향할 생각이었다.

소녀시대의 스케줄을 전담하고 있는 김 실장이 수만의 부름을 받고 회장실로 찾아왔다. 그리고 소녀시대의 전체적인 스케줄을 보며 논의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정해진 날은 바로 3월 13일 목요일이었다. 오전에 스케줄이 없으므로 오전부터 하여 라디오 스케줄이 있는 밤 8시까지 시간을 비워둘 생각이었다.

“갑작스러운 스케줄일 테지만 이해하겠지. 그렇게 정하도록 하게.”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했기에 곧장 스케줄을 정해버리는 수만이었다.


3월 12일 수요일, 라디오 스타에서 현과 라샤가 나온 편이 방송되기 시작하였다.

저번 주 아슬아슬한 부분에서 끊어버린 탓에 벌써부터 내용을 언급하는 기사들이 차근차근 연예 기사 란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 속에는 저번 주에 언급했던 여러 내용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두 번째 편에서는 소녀시대에 관련된 루머와 현의 첫 사랑 이야기, 그리고 세실리아에 관련된 루머가 언급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2007 MKMF에서 현과 함께 키스 퍼포먼스를 했던 세실리아를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MKMF에서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하였고,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폭탄발언을 한 세실리아의 말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 부분에 대해 창현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무척 궁금해 하였다.

라디오 스타가 방영할 시간이 되자 일제히 채널 고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소녀시대의 숙소도 마찬가지였다.

칼같이 스케줄을 끝낸 그녀들은 빠르게 숙소로 돌아와 씻고는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서 라디오 스타가 방영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무릎팍 도사가 끝나고 잠시 후, 저번 주에 했던 내용이 살짝 언급이 되면서 곧바로 이번 주 내용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이 바로 소녀시대에 관련된 루머였다.

소녀들은 창현이 과연 무어라 언급을 할지 기대가 가득 찬 눈으로 TV를 바라보고 시작하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대실망이었다.

창현은 소녀시대를 그저 친한 누나로 못을 박아두었던 것이다.

그것을 본 소녀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심 친한 누나의 선을 조금이라도 넘었다고 생각했지만 둔감한 창현에게는 그것이 아니었나 보다. 그러다 보니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친한 누나로 밖에 감정이 없고, 첫 사랑을 해보지 않았다는 창현의 발언에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방송이기에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방송에서 진정성을 내세우는 면이 많은 창현이기에 그 말이 사실처럼 들렸다.

그렇다는 것은 아직 자신들에게 희망이 있다는 뜻이었다.

소녀들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첫 사랑을 해보지 않았다면 한 번에 휘어잡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어.’

‘차근차근 다가가는 건 오히려 독일 수도? 확 감정을 발산해서 정신없게 만든 다음 수락을 받아내는 방법도 괜찮을지 몰라.’

‘동조를 해주면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누나 이상으로 느껴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겠어. 이게 관건이야.’

무슨 연애 전문 서적에 나올 법한 생각들을 하고 있는 소녀들이었다. 누가 보면 마치 연애 전문가들처럼 보일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있듯이 그녀들이 그렇게 생각해봤자 생각과 실행이 일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어쨌든 다행인 것은 창현이 아직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세실리아에 관련된 언급이 나오기는 했지만 그것이 그녀들의 마음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이미 첫 사랑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생각에 빠져 있느라 여념이 없던 것이다.

특히 첫 사랑 이야기가 나올 때 첫 키스 이야기는 나오지 않자 수연은 속으로 우월한 웃음을 지었다.

‘너희들은 아직 모르겠지. 하지만 창현이의 첫 키스는 내가 가져갔다고.’

남들이 모르는 자신과 창현만의 비밀.

그랬기에 그녀는 우월하게 콧대를 세울 수 있었다. 수많은 여성들이 한 번이라도 실물을 보길 원하는 현을 자주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첫 키스도 자신이 가져갔으니 말이다.

그런 만큼 자신이 가장 유리한 고지에 있다고 생각하는 수연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사이 어느덧 라디오 스타가 끝났다. 이번 주에서 내용을 끝맺은 것이 아닌, 다음 주에도 내용이 연결된다고 나와 있었다.

다음 주는 창현이 Ne Yo의 <So Sick>을 부르는 장면과 자신의 파급력에 대한 답변, 그리고 드라마에 관련된 부분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방송이 끝나자 소녀들도 일제히 기지개를 키며 말한다.

“으라라! 방송 끝났네! 재미있었어.”

“창현이가 프로듀싱을 할 때 무섭긴 무섭나봐. 라샤 언니들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아무래도 방송이니까 약간 과장된 면이 있는 것 아닐까? 그렇게 무서워 보이지 않는데.”

“아니야, 평소에 저렇게 능글 맞은 애가 제대로 일을 할 땐 무서울 수도 있어.”

라디오 스타를 본 소녀들이 이래저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특히 화제가 되는 것은 당연히 프로듀싱에 관련된 부분이었다. 자신들에 관련된 루머에 대해 이야기를 할 법도 했지만 소녀들은 이상하게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언급을 꺼려하고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말을 하게 되면 답을 내리지 못한 채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느낌 때문에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제 자야겠다.”

그렇게 말을 한 태연이 자기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태연을 보며 멤버들이 악마의 유혹을 하였다.

“조금 놀다가 자자.”

“내일 오전 스케줄은 없잖아요?”

“싫어. 난 피곤해서 일찍 잘래.”

멤버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거절의 표시를 한 태연이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간 태연은 침대에 눕고는 그대로 아이리버 전원을 켰다.

전원을 킨 그녀는 이어폰을 귀에 꼽고는 창현이 자신을 위해 불러준 노래를 듣는다.

이것이 어느덧 그녀의 습관이 된 상태였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자신의 탄생을 축복해주는 창현의 노래를 들으면 근심을 모두 잊은 채 편안하게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매일 잠을 자기 전 창현이 불러준 노래를 듣고는 한다. 숙면에 있어 최고의 노래가 아닐 수 없었다.

‘아직 좋아하는 여자가 없다고 했지?’

괘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다행이기도 하였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앞으로 잘해야 하는 일이었다. 없다는 것은 다른 말로 언제든지 생길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 결과가 어떻느냐는 바로 자신이 하기 나름이라고 볼 수 있다.

노래를 들은 태연이 잠시 뒤척거리더니 이내 잠에 빠져든다.

한편 거실에 남은 멤버들은 아무래도 내일 노는 날이니 만큼 조금 더 시간을 보낼 생각인 듯하였다.

그런 소녀들 사이로 수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그러자 수영이 수연을 바라보며 말한다.

“수연 너 내일 스케줄 있는 거 알지? 아까 매니저 오빠가 내일 일찍 회사로 오라고 했어.”

“알아. 왜 하필 나만 스케줄이 있는지…….”

약간 불만스러운 어조로 대답한 수연이었지만 그녀의 가슴은 두근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잡힌 개인 스케줄이 무엇인지 어렴풋 짐작이 갔던 것이다.

지금 이 시기에 자신의 개인 스케줄이라면 아마도 드라마 ost에 관련된 것일 확률이 높았다. 그렇기에 수연은 개인 스케줄이었지만 짜증나기는커녕 오히려 홀가분했다.

아마 회사에 오라고 하는 것은 수만이 직접 당부를 하기 위한 것일 확률이 높았다. 이번 일은 회사에서도 제법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테스트의 의미를 담고 있기에 긴장이 되는 것은 분명했지만 단둘이 있다는 것이 수연을 더욱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단둘이란다, 단둘! 어찌 기대가 되지 않겠는가.

그런 만큼 겉으로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속으로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수연이었다.

그녀는 살짝 불퉁한 표정을 지은 채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기며 말한다.

“난 씻고 잘 테니 너희들은 재미있게 놀아. 너무 늦게까지 놀지 말고.”

“알았어. 다음에 스케줄 없으면 같이 놀지 뭐.”

오전에 스케줄이 있는데 같이 놀자고 하는 것도 그랬기에 순순히 포기하는 소녀들이었다. 그러면서 자신들만 노는 것이 미안했는지 오히려 미안한 안색이 서려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들이 수연의 생각을 알고 있었다면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화장실로 향하는 그녀의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회심의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후후! 단둘이라고!’

자신에게 단독 찬스가 왔다는 것 때문일까.

속은 너무나 즐거운 수연이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난 수연은 곧장 메이크업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SM엔터테인먼트로 가는 날이지만 수연이 화장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오늘 분명 AA엔터테인먼트로 가서 창현과 만남을 가질 것이 분명했던 것이다.

그것도 멤버들과 함께 하여 단체로 만나는 것이 아닌, 무려 혼자서! 단독으로 만나는 절호의 기회를 획득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대망의 날이기도 한 만큼 오늘 점수를 많이 따놓아야 한다.

꼼꼼하게 화장을 한 수연은 멤버들이 깰 무렵 은밀하게 숙소를 벗어났다. 그리고는 숙소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는 벤에 탑승하여 그대로 SM엔터테인먼트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건물 안으로 들어선 수연은 보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곧장 회장실로 향했다. 자신들의 스케줄을 전담하는 실장님이 곧장 회장실로 가라고 말을 한 것이다.

이번 일에 대해 회사에서 상당하는 비중이 제법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스케줄인지 알고 있었지만 회장실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되는 것을 느꼈다. 멤버들과 함께 오기도 하였고, 2월 달에 직접 말을 할 때 찾아오기는 했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서 오너라.”

특별히 기다릴 이유도 없이 수연은 곧장 수만과 만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아침 시간인 만큼 별다른 스케줄이 잡혀있지 않은 듯했다.

“안녕하세요, 삼촌…….”

삼촌이라 불렀지만 살짝 말끝을 흐리는 수연이었다. 아무래도 회장님을 삼촌이라 부르기에는 적잖이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순규가 조카이기에 편안하게 삼촌이라 부르라 했지만 아직까지 어색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한 수연의 모습에 수만이 웃음을 짓더니 수연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래, 잘 왔다. 이리 앉아라. 차는 무엇으로 하겠느냐? 커피가 아무래도 입맛에 맞겠지?”

“네.”

수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수만도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를 주문하였다.

차가 나오기까지 간단한 근황 등을 물어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커피와 녹차가 나오자 각각 차를 한 모금씩 마신다.

조심스럽게 커피를 마시는 수연을 보면서 수만이 입을 열었다.

“너도 내가 무슨 이유 때문에 부른 것인지 대략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수만의 말에 수연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내려놓았다.

“네. 드라마 ost에 관련된 이야기 아닌가요?”

“맞다. 드라마 ost. 얼마 전에 AA엔터테인먼트에서 연락이 왔다. 바로 제시카 너의 드라마 ost에 관련된 사안 때문이었지.”

“…….”

수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수만의 말을 듣고 있었다.

자신의 말을 경청하는 수연의 모습에 수만이 말을 이어나갔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다.”

“네?”

확정이 되지 않았다는 수만의 말에 수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심 확정이 되어서 오늘 그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눌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결정이 되었으면 자신이 직접 AA엔터테인먼트로 갈 이유가 없다. 아직 드라마 촬영도 들어가지 않은 시점에서 드라마 ost를 벌써 녹음할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아마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 분명한데 창현을 혼자서 만날 수 있다는 들뜬 마음에 실수를 한 것이다.

놀란 수연의 반응에 수만은 살짝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AA엔터테인먼트가 작긴 하지만 쉬운 회사가 아니거든. 이번 드라마 ost도 우리 회사에서 먼저 부탁을 했어야 할 정도였으니. 일단 확답은 받지 못했지만 1차 지명을 받은 상황이다. 네 실력을 테스트 해보고 싶다는 의중을 밝힌 셈이지.”

확정이 된 것이 아니라 실력을 한 번 테스트 해보고 결정을 내리겠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거절은 아니었기에 수연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수연에게 수만이 말했다.

“너는 알지 모르지만 이번 드라마 ost는 너에게 무척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겠지?”

“네, 알고 있어요.”

수연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드라마 ost를 부르는 것으로 볼 수 있겠지만 그것은 몇 년 후 소녀시대가 프로젝트로 전환되고 단체 활동보다 개인 활동에 주력하게 되면서 각자 분야에 맞는 일을 찾게 되는 일종의 실험이었다.

태연은 이미 드라마 ost를 성공리에 부름으로써 솔로로서의 가능성을 보였다. 그리고 그 다음이 바로 수연이었다. 소녀시대 내에서 태연이 가창력으로 알려졌지만 수연도 그에 못지않은 실력을 지니고 있다. 목소리의 톤도 다르고 구사하는 창법도 약간 달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노래를 부르는 것 하나로는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다. 그런 만큼 회사에서는 수연의 솔로로서의 가능성을 점쳐보려는 생각이었다. 이번에 만들어진 큰 무대로 말이다.

“향후 너의 가능성을 입증하는 것이니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한다. 너의 미래도 미래지만 이번 일로 인해 너와 소녀시대의 인지도가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그런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한다.”

“네, 물론이에요. 최선을 다할게요.”

고개를 끄덕이며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수연이었다. 그녀 또한 대충 할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먼저 나서서 잡은 기회이고, 자신이 도약할 수 있는 기회인 만큼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래, 그런 각오가 보이니 다행이구나. 우선 네 실력을 모두 선보여야 한다. 아니, 그 이상의 것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추후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너도 알고 있겠지?”

“네.”

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또한 이번 일이 상당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돌 출신으로서 솔로로 현에게 곡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여파를 끼칠지 상상도 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기에 실력 이상의 기량을 발휘하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자신이 실력 이하의 모습을 보인다면 사람들은 회사의 힘으로 곡을 받았다고 SM엔터테인먼트를 욕할 것이고, 실력도 모른 채 나섰다고 수연을 욕할 것이 분명했다.

메리트가 큰 만큼 어설프게 임하다가는 잃는 것도 많을 수 있다.

굳은 다짐이 실려 있는 수연의 말에 수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적으로 이야기가 잘 되었으니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강 사장도 상당히 고지식하군. 흔쾌하게 수락할 수 있는 걸 가지고 이렇게 어렵게 만드니. 때로는 호쾌하게 처리하는 것도 있어야 하는데 계속해서 이렇게 하면 힘들겠어.’

불평은 했지만 그것은 석규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기에 하는 불만이었다. 자신이었어도 신중에 신중을 거듭할 것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노래가 망하게 되면 SM엔터테인먼트도, 수연도 욕을 먹겠지만 그보다 욕을 더 먹게 될 것이 바로 AA엔터테인먼트와 현이었다. 그런 만큼 불만을 하면서도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름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것은 어렵지만 한순간 떨어뜨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니 무슨 일이든 간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나쁘지 않다.

“좋다. 네 각오가 굳어 보이니 이제부터는 힘을 내라고 할 수밖에 없구나. 너도 예상하고 메이크업을 한 것이겠지만 AA엔터테인먼트에 10시로 약속이 잡혀 있다. 아무래도 테스트가 길어질 것 같아 스케줄은 밤에 있는 라디오 스케줄을 제외하고 모두 비워둔 상태고. 스케줄은 김 실장에게 전달받았겠지?”

“네, 매니저 오빠에게 전해 들었어요.”

“그래, 그럼 최선을 다해야 한다.”

“네!”

그렇게 수연은 수만에게 인사를 한 뒤 회장실을 벗어났다. 이제 곧장 AA엔터테인먼트로 향해야 하는 것이다.

발걸음 가볍게 회사를 벗어나려던 수연이 순간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회사에 온 것이다.

“수정이나 보고 갈까?”

숙소 생활을 하게 되고 스케줄을 하게 되면서 동생인 수정을 많이 못 봤다. 그렇기에 오랜만에 수정을 볼까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자주 오지도 못해 자주 보지도 못했으니까.”

동생을 끔찍이도 아끼는데 자주 보질 못하니 얼마나 섭섭했던가. 영상 통화를 종종 하고는 하지만 직접 보는 것만 못한 것이 현실이었다.

그렇게 수정을 보고 가기로 결정을 내린 수연은 조심스럽게 수정이 연습하고 있는 연습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연습을 하는가 싶어 조심스럽게 연습실 문을 열었는데 마침 연습을 하고 있지 않는지 모두 편안하게 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에 수연은 자신이 나이스 타이밍을 잡았다고 생각하면서 연습실 안으로 들어섰다.

앉아서 편히 쉬거나 자율 연습을 하는 등 각각 휴식시간을 보내던 연습생들은 연습실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을 보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제시카 선배님!”

먼저 데뷔를 하였고, 연습생 대부분이 수연보다 나이가 어렸기에 인사를 함에 있어 자연스러웠다.

게다가 수연은 연습생들에게 있어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습생 생활을 가장 길게 한 사람 중 하나로서 연습생들 내에서는 그 무용담(?)이 널리 퍼져 있던 것이다.

연습생들이 자신에게 인사하자, 수연도 마주 인사를 하였다.

“안녕! 미안, 오늘 스케줄 이야기를 들으러 온 거라 음료수 같은 걸 사오지 못했네. 다음에 많이 사올게.”

그렇게 말한 수연이 수정에게 다가갔다.

거울을 보며 가볍게 몸을 풀고 있던 수정이 수연을 보면서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했다.

“언니! 연락도 안하고 갑자기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긴. 너 보러 왔지.”

“정말?”

자신을 보러왔다는 말에 좋아하는 수정이었다. 그에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수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런데 오늘 연습 안 해? 휴식시간 치고는 좀 긴데?”

“아, 오늘 단체로 맞춰보는 춤 연습이 있었는데 스케줄이 조정되어서 개인 자율 연습만 하게 됐어. 그런데 언니 스케줄 가는 거야?”

회사에 오기에는 지나치게 차려입고 화장을 했기에 묻는 수정이었다. 한 듯 안한 듯 화장을 했지만 그건 남자의 시점에서 그런 거지 여자의 눈으로 보면 단숨에 꿰뚫어볼 수 있는 사항이었다.

“응? 아, 맞아. 오늘 스케줄 있어.”

“그래? 윤아 언니한테 물어보니 윤아 언니는 스케줄 없다고 하던데. 언니만 있는 거야?”

아무래도 수연이 언니다 보니 수정은 소녀시대 다른 멤버들과도 친하게 지낸다.

종종 문자도 하고는 하기에 오늘 스케줄이 없다는 걸 알았는데 수연은 있다고 하니 수연만 스케줄이 있나보다.

“오늘 나만 있다고 할 수 있어. 방송 스케줄이 아니라 앞으로 새로운 스케줄을 위한 미팅이라고 해야 할까? 테스트? 그런 거니까.”

“테스트, 뭔데?”

방송 스케줄이 아닌 미팅과 테스트를 언급하는 수연의 모습에 수정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무언가 흥미로운 느낌이 솔솔 풍겼다.

“그, 그러니까…….”

갑작스러운 수정의 물음에 수연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냥 그렇게 알아들을 줄 알았지, 깊게 파고들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수연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자 수정은 제법 큰 건수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리고는 수연의 팔을 붙잡고는 가르쳐 달라고 하기 시작했다.

“언니, 뭔데 그래? 나도 좀 가르쳐줘. 응? 궁금해서 그렇단 말이야. 가르쳐주지 않으면 나 삐질 거야?”

삐죽 튀어나온 입과 애절한 눈빛은 수연의 방어막을 단숨에 무너뜨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결국 수연은 속으로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연발을 하면서 수정의 크리티컬 어택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아, 알았어. 가르쳐줄게. 실은 오늘 드라마 ost 때문에 현을 만나기로 했어. 아직 확정된 건 아니고 테스트를 봐야 하거든.”

아직 외부에 알리면 안 되는 이야기였기에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수연이었다.

수정도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수연의 모습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그녀의 말을 듣고는 눈을 반짝였다.

지금 그녀의 입에서 나온 사람이 누구인가?

다름 아닌 현이다. 현!

사람들은 현이 SM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로 계약을 했다 하여 SM엔터테인먼트에 자주 오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오는 게 전부였고, 그것도 전부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들과 시간을 보내고는 한다. 연습생인 수정은 여태까지 현을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수연이 현을 만나러 간단다.

수정의 눈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눈이 영악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무슨 눈이…….’

영악하게 빛나는 수정의 눈을 본 수연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니, 물러나려 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수정이 두 손을 뻗어 수연의 어깨를 단단히 고정시킨 것이다.

그리고는 수연의 두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말했다.

“언니! 나도 데려가줘.”

그 말에 수연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 수정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데려 가달라니? 나는 놀러가는 게 아니야. 테스트 보러 가는 거라니깐?”

그렇게 말하며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수연이었다.

절대 데려갈 수 없다! 라는 생각이 그녀의 뇌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떻게 잡은 단독 찬스란 말인가? 그 찬스를 놓칠 만큼 그녀는 어리석지 않았다.

오늘을 위해 수많은 계획을 짜왔는데 그것을 다 포기하라고? 절대 해줄 수 없다는 강렬한 의지가 그녀의 전신에서 발산되고 있었다.

수정은 그것을 보고는 강하게 나가는 것을 포기했다. 지금의 수연은 마치 대나무와도 같아서 부러질언정 휘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살짝 애교를 부리는 것으로 방향 전환을 한다.

“아잉! 언니, 나도 현 한 번 보고 싶단 말이야. 매일 언니만 보고 너무 치사해.”

갑작스러운 수정의 변화에 수연이 적응하지 못한 채 말을 더듬었다.

“하, 하지만 싸인도 받아주고 그랬잖아.”

“내 얼굴도 보지 않고 해준 싸인인 걸? 물론 좋기는 했지만 기회가 온 만큼 더 좋은 걸 받고 싶다고!”

언니인 수연을 너무나 자세히 꿰고 있는 만큼 다채로운 모습으로 그녀의 빈틈을 사정없이 공략하는 수정이었다. 소녀시대 내에서는 최상위 먹이사슬에 해당하는 그녀였지만 그녀는 수정과 먹이사슬 관계에 놓인 가련한 여인이었다.

수정의 속내를 어렴풋 알고 있었지만 워낙 끔찍이 아끼는 바람에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안 돼! 내가 여기서 약해지면!’

필사적으로 느슨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으면서 수연이 말한다.

“그래도 안 돼. 내가 놀러가는 거면 말을 않겠지만 놀러가는 게 아니라 테스트를 보러가는 거야. 그러니 안 돼.”

“언니! 제발! 응?”

더 이상 이유 댈 것이 사라진 것일까?

이제 막무가내 식으로 애원하는 수정이었다.

그것이 마지막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걸 무사히 넘기면 더 이상 수정은 자신에게 무어라 말을 하지 못하리라.

수연은 속으로 다 끝났다고 미소를 지으면서 수정에게 말했다.

“안 돼! 너 오늘 연습도 해야 하잖아? 연습 빼먹게 하고 데려갈 수 없어!”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강한 의지를 실어 말하는 수연이었다.

하지만 수정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수연의 말을 들은 순간 다 죽어가던 수정의 눈이 돌연 빛을 찾은 것이다.

실낱같은 희망을 발견한 듯 수정이 수연을 보며 말한다.

“그러면 연습 안 해도 되면 따라가도 되는 거야?”

“…….”

순간 할 말을 잃은 수연이었다. 어찌하여 말이 그렇게 해석된단 말인가?

그렇다고 무어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자신이 한 말이었으니 말이다.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은 채 수연이 화제를 돌렸다.

“연습 안 해도 안 돼! 현이 너 따라오는 걸 허락할 것 같아?”

“그럼 허락하면 따라가도 된다는 말이지?”

도저히 설득이 통하는 상태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자신이 유리하게 해석하는 수정의 모습에 수연은 머리가 아파왔다.

그러다가 수연은 결심했다. 직접 창현과 통화하여 수정을 떼어놓기로 말이다. 그렇게 되면 수정이도 더 이상 무어라 말을 못하겠지.

‘그래, 공과 사는 분명하니 창현이가 허락하지 않을 거야.’

그렇게 생각했지만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는 창현을 믿기로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허락하면 따라가게 해줄게.”

“좋아! 언니 나중에 말 바꾸면 안 돼!”

위기에서 탈출한 수정이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대답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수연은 가뜩이나 찜찜한 마음이 더 찜찜해지는 걸 느끼면서도 호기를 부렸다.

“좋아! 해보자.”

그렇게 말하면서 수연이 수정에게 눈짓을 하여 연습실을 슬그머니 나와 복도로 향했다.

복도에 도착한 수연은 핸드폰을 열어 창현에게 연락하기 시작했다. 수정은 그런 수연의 옆에 찰싹 붙어 핸드폰에 귀를 가져다 댔다.

보기만 해도 예쁘장한 자매가 찰싹 붙어 있는 것은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흐뭇하게 만들었지만 두 자매의 기세는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반드시 떼어내려는 자와 반드시 따라붙으려는 자.

흡사 영화를 방불케 하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

컬러링 <Kissing You>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걸 들은 수정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언니들 정말 현이랑 친한가 보네? 언니들 노래를 컬러링으로 삼을 정도면.”

그에 수연은 어깨를 으쓱할 뻔했지만 가까스로 충동을 억누를 수 있었다. 자신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동생의 말에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필사적으로 자신을 억누르는데 성공한 수연은 통화가 연결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컬러링이 끊기면서 익숙한 창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창현아, 나야. 수연이.”

-네, 수연 누나. 오랜만이에요.

생각해보면 통화는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발렌타인 데이 이후 만나질 않았으니 말이다.

의례적인 인사가 오고간 뒤 창현이 수연에게 말한다.

-오늘 테스트 때문에 연락하신 거죠?

“응. 그것도 있고, 한 가지 물어볼 것도 있어서 연락했어.”

그러면서 수연이 슬쩍 수정에게 시선을 준다. 그러자 수정이 눈짓으로 어서 말하라는 듯 신호를 준다.

-네, 뭔데요?

창현의 대답이 들려오자 수정의 눈총을 받은 수연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더니 말한다.

“그, 그게 그러니까… 조금 난감한 부탁인데…….”

아무래도 말하기 꺼려지는 수연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에서도 중요하게 여기는 일에 사적으로 동생을 데려가도 되냐고 말하다니! 정말 창피한 부탁이 아닐 수 없었다.

-여보세요? 무슨 부탁인데 그러는 거예요?

우물쭈물하며 수연이 말을 하지 않자, 창현이 묻는다.

그러자 옆에 있던 수정이 작은 목소리로 수연을 재촉한다.

“언니, 뭐하는 거야? 어서 말해.”

-어라? 옆에 누구 있어요?

청각이 무척 예민한 창현은 작게 이야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수정이 말한 것을 들었나보다.

그러자 수연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으응. 내 동생.”

-누나 동생도 있었어요? 몇 살이에요?

창현이 자신에게 흥미를 가진 듯하자 수정이 재빨리 끼어들며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현 오빠! 수연 언니 동생인 수정이라고 해요! 이렇게 통화하게 되어 너무너무 영광이에요. 오빠 팬이에요!”

“너! 너…….”

갑작스러운 수정의 난입에 수연이 입을 떡 벌린 채 수정을 바라본다.

그런 수연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은 채 수정은 창현의 대답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자 창현의 대답이 곧장 들려왔다.

-오빠라고 하니 나보다 어린가 보네? 몇 살이야? 아참, 내가 말 놓아서 기분 나쁜 건 아니지?

“아니에요! 완전히 기분 좋은 걸요? 제 나이는 15살이에요. 94년생이고요. 평소에 오빠 팬이었는데 이렇게 통화하게 돼서 너무 기뻐요.”

아주 연상의 오빠를 녹여버리는(?) 귀여운 목소리로 말하는 수정이었다.

그에 수연이 눈살을 찌푸린 채 수정에게 말한다.

“수정이 너 정말…….”

수연이 무어라 말을 하건 말건 수정은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지금 상황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것은 수연이 아닌 창현이었다. 그렇다면 창현을 공략하여 허락을 얻어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 볼 수 있다.

-그래? 내 동생하고 동갑이네? 만나게 돼서 반가워.

“네, 오빠! 저도 너무 반가워요. 그런데 통화하게 돼서 너무너무 기쁘긴 한데 한 가지 부탁만 해도 될까요?”

본격적으로 창현 공략에 나선 수정이었다.

-무슨 부탁인데? 너무 큰 부탁은 들어주지 못하는데. 하하!

“그러니까 그게 무엇이냐면요…….”

창현의 웃음에 수정이 희망을 건 채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행동은 끝을 맺지 못했다. 수연이 핸드폰을 위로 휙 올린 것이다. 아직 수연이 키가 더 커서 수정은 순식간에 핸드폰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언니!”

갑작스러운 수연의 행동에 수정이 소리쳤지만 수연은 신경 쓰지 않았다.

-무슨 일 있는 거예요?

갑자기 수정의 큰 목소리가 들리자 수연이 입을 열었다.

“아니, 그건 아니고. 실은 내가 오늘 그곳으로 찾아가기로 했잖아? 그런데 수정이가 계속 따라오고 싶다고 해서 조금 다툼이 있었어. 아무리 그래도 회사 간에 논의 되고 있는 일이고, 중요한 일인데 계속 따라오겠다고 해서. 설득하기가 쉽지 않네.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러니 이해해줘.”

묘하게 회사 간의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수정이를 철부지로 묘사하는 수연이었다. 아직 어리지만 영악하게 실세를 파악하고 단숨에 일을 처리하려는 수정에게 더 이상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

자신의 말을 끝낸 수연은 창현의 대답을 기다렸다.

‘제발… 제발 안 된다고 해줘.’

속으로 간절히 기원하는 수연이었다. 창현이 자신의 의도를 파악하고 오면 안 된다고 말을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 밖에 없었다.

하지만 야속한 창현은 그런 수연의 생각을 전혀 모른 채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 상관없어요. 수연 누나 동생이면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데려와요. 그리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면 피곤해요. 그러니 긴장을 좀 풀라는 의미에서 수정이도 데려오면 괜찮을 듯 싶네요.

“…….”

창현의 야속한 대답에 수연은 할 말을 잃었다. 설마 자신이 한 말이 자신의 무덤을 팔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수연이 멍한 시선으로 수정을 바라보자 수정은 손으로 V자를 만들며 말한다.

“정의는 승리한다고!”

누가 정의인지 모르지만 확실한 건 지금 수정의 태도가 몹시 얄밉다는 점이다.

그런 수연에게 창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잠시 수정이 좀 바꿔주겠어요?

그에 수연은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지은 채 수정에게 핸드폰을 건네준다.

핸드폰을 받은 수정이 곧장 창현과 통화하기 시작한다.

“네, 조용히 있어야 한다고요? 네, 물론이에요. 언니가 어떻게 노래 부르는지 보고만 있을게요. 네, 그렇게 할게요. 그럼 조금 있다가 만나요.”

창현에게 주의할 점에 대해 들은 듯 수정은 아주 조신한 태도로 창현의 말에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수연을 대하는 태도와는 상반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통화를 끝낸 수정이 수연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방금 전까지 보여주던 영악한 모습을 지운 채 순진무구한 얼굴로 수연에게 말한다.

“고마워, 언니. 언니 덕분에 현 오빠랑 만날 수 있게 되었어. 내 투정 받아줘서 고맙고, 사랑해. 그럼 난 선생님한테 말하고 오도록 할게.”

자신의 할 말만 한 채 쪼르르 달려가 버리는 수정이었다.

“…….”

사라지는 수정의 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짓는 수연이었다.

단독 찬스라고 하여 얼마나 많은 계획을 세우고 수많은 상황에 대해 시뮬레이션까지 해보지 않았던가.

그런데 갑작스러운 수정의 난입이라니.

같은 멤버들만 철저하게 견제하면 될 줄 알았던 수연은 수정이라는 복병에게 발목을 잡혀버렸다.

신은 이번만큼은 수연을 버렸다.


“언니! 너무 좋다. 그치?”

수정은 수연의 손을 잡은 채 싱글벙글 웃음을 짓고 있었다. SM엔터테인먼트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택시에 탄 지금까지 계속해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런 수정의 얼굴을 보면서 수연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것이 지금 남의 속도 모르고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수연은 회사에서 수정이 허락을 받아내는 것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비록 창현이 허락을 했지만 수연은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었다. 바로 춤 연습을 시키는 선생님들이 수정의 외출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비록 팀으로 맞춰보는 춤 연습이 무산되었다고 하나 개인 자율 연습도 엄연한 연습 중 하나였다.

연습생이 연습 시간에 외출을 하는 것이 말이나 된단 말인가?

그런데 수정은 선생님한테 쪼르르 달려가더니 어찌어찌 이야기를 하고는 수락을 받아내는데 성공한다. 아무래도 창현의 싸인을 미끼로 내건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설마 외출이 허용될 줄이야.

특히나 춤 연습을 시키는 선생님의 말이 더욱 가관이었다.

현역 가수인 언니가 노래 부르는 모습과 현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체험 학습이 된다고 말을 하다니.

그 이야기를 듣는 간 수연은 어이가 없어 입을 떡 벌려야만 했다.

‘요즘 기강이 풀어졌어. 내가 할 때는 외출도 못하고 열심히 연습만 했는데. 이런 게 가능할 줄이야. 말도 안 돼.’

수정이 외출을 하는데 성공하자 이제는 기강이 풀어졌다면서 궁시렁거린다. 그렇게 말을 해도 수연이 연습할 때도 슬쩍 외출을 할 땐 했고, 할 건 다했다. 괜히 불만에서 표출되는 말일 뿐이었다.

“언니! 실제로 현 오빠 보면 어때?”

옆에서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던 수정이 재잘재잘 이야기를 걸어온다.

평소에는 그런 수정의 모습을 좋아하고는 했는데 지금은 좋아할 수가 없었다. 뭐랄까, 좋아 보인다라고 하기 보다는 얄미워 보인다라고 해야 할까? 저 보들보들한 볼을 콱 꼬집어주고 싶었다.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수연이 수정에게 말한다.

“잘 생겼어. TV로 봤다며? 당연히 잘생겼지.”

그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면 무어라 묘사를 한단 말인가? 어디가 잘생기고 어디는 어떻다느니 하는 것은 어딘가에 결점이 있으니 하는 말이다.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에게 어디가 잘생겼다는 말은 욕이다. 그냥 전체적으로 잘생겼으니 잘생겼다고 말을 할 뿐이었다.

그 이야기에서 수연의 불편한 심정이 묻어나왔지만 수정은 느끼지 못했나보다.

그녀는 눈치채지 못한 듯 수연에게 묻는다.

“그럼 피부는 어때? 정말 소문대로 완전 백옥 피부야? 파리가 내려앉으면 미끄러질 만큼?”

창현의 피부는 한차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분명 메이크업을 한 것이 아닌데 피부가 마치 백옥과도 같아서 화장품 CF를 찍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고 극찬하던 적이 있던 것이다.

수정도 그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기에 수연에게 묻는 것이다. 아무래도 수연이 현을 만나본 적이 많을 테니 말이다.

그 물음에 수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피부 정말 좋아. 여자 피부라고 해도 믿을 만큼 좋거든. 아니, 여자보다 더 좋을지도?”

“꺄아! 어떻게 그렇게 관리를 잘할 수 있는 거지? 가면 물어볼까? 물어보면 가르쳐줄까?”

수연의 말에 사실로 판명이 나자 비명을 지르며 좋아하는 수정이었다. 곧 있으면 보게 될 것인데도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면 이때만큼은 영락없는 어린 아이였다.

그 모습에 수연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대답한다.

“가르쳐주지 않던데? 나도 이미 물어봤었다고. 안 가르쳐주더라.”

“에이, 정말? 그럼 좀 아니다. 좋은 비법이 있으면 공유해야지. 나빴다.”

수정이 아쉬운 듯 입술을 삐죽이며 말하자 수연도 그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건 그래. 물어보니까 그냥 타고 났다고 말만 하더라? 그렇게 타고 났으면 관리를 하는데도 걔보다 피부가 좋지 않은 애들은 어쩌라는 거야. 정말 한 대 때려주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때리면 안 돼! 그러다가 언니 길가다가 총 맞을 수도 있어. 이렇게 말이야, 빵!”

때려주고 싶다는 말에 호들갑을 떨며 수정이 만류하였다. 그리고는 총을 쏘는 모션을 취하면서 총성을 흉내내자 수연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말이야…….”

이어지는 창현의 험담들(?)

궁시렁거리던 수연은 어느덧 수정과의 수다 삼매경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 사이 두 자매는 AA엔터테인먼트에 도착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AA엔터테인먼트에 도착하자, 수정이 택시에 내려서는 감탄사를 터뜨렸다.

“우와!”

“대단하지?”

수연이 수정 옆에 서며 묻는다.

그러자 수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정말 대단하네. 정말…….”

연신 감탄사를 터뜨리는 수정. 그녀가 감탄사를 터뜨리는 것이 결코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었다.

SM엔터테인먼트도 회사 규모에 비해 건물이 초라하다고 종종 이야기를 듣고는 한다. 그런데 AA엔터테인먼트는 그보다 더욱 심했다. 이건 마치 그냥 평범한 중소기업 회사가 있을 법한 곳이 아니던가? 이런 곳에서 현과 라샤가 배출 되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 수정이었다.

그에 수연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수정에게 말한다.

“나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어. 내부 시설도 그렇게 기대하지는 마. 여기는 아무래도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다른 것으로 승부하는 듯하니까.”

“응. 나도 사실 화려하거나 그런 건 좋아하지 않아. 화려하더라도 내실이 탄탄해야지. 안 그래, 언니?”

“그래, 네 말이 맞아. 내실이 튼튼해야지.”

그래도 자매는 자매인 듯 서로 생각하는 것이 비슷한 듯했다.

두 자매는 어깨를 나란히 한 채 AA엔터테인먼트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사전에 이야기가 다 되어 있었기에 회사 안으로 들어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늘 용무는 창현에게 있는 것이었기에 두 사람은 그대로 녹음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다양한 부서가 있고 수많은 연습실이 있는 SM엔터테인먼트와 달리 AA엔터테인먼트는 연습실도 한 개에 불과했고, 녹음실도 하나였다. 정말 작다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이런 곳에서 현 오빠가 나왔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 언니는 믿겨?”

“처음에는 못 믿었지. 그런데 대 스타는 약간 어려운 듯한 곳에서 나오는 건가봐.”

그러고 보니 현의 정체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도 자신이었다. 그리고 현의 첫 키스를 빼앗은 것도 자신이고.

무언가 첫 번째를 자신이 많이 빼앗는다는 생각에 수연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런 수연을 보면서 수정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수연이 말해줄 기세가 아니었기에 그저 묵묵히 옆에서 걸을 뿐이었다.

그렇게 두 자매가 녹음실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녹음실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남성의 대답소리와 함께 곧이어 문이 열렸다.

그녀들을 맞이한 것은 다름 아닌 창현이었다.

문을 연 창현은 두 자매가 들어온 것을 보고는 반가운 표정을 지은 채 두 사람을 맞이하였다.

“오, 빨리 왔네요? 어서 와요. 안으로 들어오세요, 이리로.”

그렇게 말을 한 창현이 손으로 들어오라는 표시를 하자 수연과 수정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창현이 권하는 곳에 앉았다.

두 자매가 앉은 곳 맞은 편에 앉으면서 창현이 물었다.

“오느라 불편한 건 없었죠?”

“없었어. 택시 타고 왔으니 딱히 그럴 것도 없는 걸? 어차피 가깝기도 하고. 그나저나 아까 통화 했었지? 여기는 내 동생이야. 이름은 정수정. 나이는 창현이 너보다 두 살 어리고. 인사해, 수정아.”

“네, 언니. 안녕하세요, 현 오빠? 정수정이라고 해요. 미국식 이름은 크리스탈 정이고요. 못난 언니가 늘 신세를 끼치고 있어요. 잘 부탁드려요.”

인사를 하는 수정의 태도는 그야 말로 180도 변해 있었다.

조신한 말투부터 시작하여 조신한 행동까지.

그 모습을 보던 수연은 경악하여 입이 떡 벌어졌다.

이 무슨 즉석 변신 같은 행동이란 말인가.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하여도 말괄량이 이미지를 보여주던 수정이 아니던가? 자신의 팔을 잡으면서 현이 보고 싶다고 헤헤거리던 행동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자신을 은근히 유도하여 현에 대한 정보를 얻어낸 건?

복잡한 생각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맴돌다가 사라졌다. 지금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수연의 입이 떡 벌어지건 말건 수정은 조신한 태도로 창현을 대하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에 창현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래, 안녕? 내 이름은 강창현이라고 해. 가수로 활동할 땐 현으로 활동하고 있고. 친근하게 창현 오빠라고 불러도 좋아.”

“네, 고마워요, 창현 오빠. 언니에게 들었는데 정말 듣던 대로 친절하시네요.”

정말 요조숙녀가 따로없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수연은 온몸이 오그라들 것 같은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자신의 친 동생인 수정인지 잡아서 해부를 해보고 싶을 정도로 심각한 괴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저것이…….’

속으로 이를 갈던 수연은 돌연 수정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눈을 번뜩였다.

그냥 조신하게 행동하면 됐지, 자신을 감히 못난 언니라고 하다니.

솔직히 자신이 어디가 못났단 말인가?

괜히 창현에게 점수 따고 들어가는 수정의 모습에 트집을 잡아 궁시렁거리는 수연이었다.

그 사이 창현과 수정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창현이 수정에게 주의를 주었다.

“오늘 수연 누나가 온 것은 나한테 테스트를 받기 위함이거든. 이건 개인과 개인의 일이 아니라 회사와 회사에 관련된 일이니 만큼 본격적으로 테스트에 들어가면 수정이는 가만히 보고 있으면 좋겠어. 알았지?”

이미 라디오 스타를 통해 창현이 녹음에 들어가면 엄격해진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수정 또한 현의 열렬한 팬이었고, 라디오 스타를 당연히 시청하였기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네, 물론이에요. 저도 라디오 스타 봤어요. 녹음하실 때 엄격해지신다면서요? 언니가 혼나도 조용히 있을게요. 창현 오빠가 혼내는 거라면 틀린 게 없을 게 분명하니까요.”

“그래? 하하! 고맙다. 이거 수정이한테 고마워서 선물이라도 줘야겠네.”

그렇게 말을 하면서 창현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한쪽에 놓인 상자를 가지고 왔다. 예쁘게 포장된 자그마한 상자였는데, 여성의 감수성에 맞게 아기자기하게 꾸며져서 여성들이 선호할 만한 포장이었다.

창현이 그걸 수정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자, 수정아. 오늘 만난 기념이고, 내일 화이트 데이라고 해서 내가 주는 선물이야. 그렇게 비싼 건 아니지만 오늘의 예쁜 만남을 기념하기 위한 오빠의 선물이라고 생각해둬.”

“와! 고맙습니다, 오빠! 완전 짱이에요. 굿굿!”

예상치 못한 선물에 수정이 환호성을 터뜨리며 연신 창현에게 굿굿!을 외치기에 바빴다.

그것을 본 수연은 나는? 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발렌타인 데이에서 자칫 바꿔치기 당할 뻔한 초콜릿을 구원한 것이 바로 자신인데 이런 풋대접이라니!

불만이 터져 나오려 했지만 그렇게 하면 점수만 깎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수연이었다.

그런 수연에게 시선을 옮기며 창현에 말했다.

“누나, 회장님한테는 어디까지 듣고 오신 거예요?”

“으응?”

내심 선물을 기대하고 있던 수연은 창현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수정이 옆에 있어 염려가 되기는 했지만 같은 회사 소속의 연습생이고, 그렇게 기밀을 요하는 것들이 없었기에 수연은 간략하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 찾아온 것은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닌 테스트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오늘 테스트에 따라 드라마 ost가 결정 난다는 것. 그리고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니 외부에 말하지 말라는 것 등 수만에게 들었던 것을 설명하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창현이 고개를 나직이 끄덕였다.

“음, 회장님이 잘 설명하셨네요. 그대로 알고 계시면 되요. 거기에 가감이 없으니까요. 우선 누나가 들으면 섭섭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번 드라마 ost를 부르기로 한 가수들이 워낙 가창력으로 인정받고 있어서요. 누나도 노래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톱 가수들의 가창력에 비하면 약간 부족한 감이 있잖아요? 그 점을 제가 프로듀싱 맡으면서 매꿔줄 수 있는지, 그리고 누나의 단점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볼 거예요. 저한테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적이 있으니 전반적인 것은 이해하고 있으리라 믿고요.”

수연은 창현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적이 있기에 그의 방식이 어떠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창현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창현은 자신이 모든 것을 해주려는 것보다는 자신이 노래를 부르고, 스스로 단점을 깨달으면서 스스로 극복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가르쳐줘서 깨닫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작 자신이 부족한 점을 스스로 깨닫는 것만큼 절실하게 느끼는 경우는 없으니 말이다. 자기 자신이 부족한 점을 스스로 깨달아야 극복할 때도 더욱 열심히 할 수 있다.

그렇게 하여 많은 문제점들을 극복하였기에 수연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으응, 알았어.”

“좋아요, 역시 같이 해본 경험이 있으니 편하네요. 만약 잘 해결되기만 하면 누나랑 일하는 것이 가장 편할 것 같아요. 그렇데 되면 같이 볼 일도 많아지겠죠? 아무래도 제 앨범을 작업할 때 라샤 누나들에게 피처링을 부탁할 수도 있겠지만 누나들하고 궁합이 잘 맞으면 부탁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렇지.”

몇몇 단어를 제거하면 묘하게 해석이 가능한 창현의 말에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는 수연이었다. 그 말을 듣다 보니 묘하게 전의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감돈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좋아요. 누나에게서 각오가 보이니 좋네요.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되요?”

“응? 뭔데?”

테스트에 들어가면 더 이상 누나와 동생 관계가 지속되기 힘들기에 일단 궁금한 점을 모두 풀어나가려는 창현이었다.

그에 수연이 말해보라는 듯 눈짓을 주자 창현이 물었다.

“아니, 이번에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SM엔터테인먼트에서 먼저 드라마 ost 의뢰를 했다고 들어서요. 누나가 직접 지원을 했다고 했는데 설마 제가 드라마 ost 작업을 할 거라고 알고 계셨던 거예요?”

정곡을 찌르는 창현의 질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창현은 자신이 드라마 ost를 맡을지 어떻게 알고 SM엔터테인먼트에서 먼저 부탁을 해왔는지 신기하였다. 자신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을 몰랐다면 말을 하지 않겠는데, SM엔터테인먼트에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확률이 높았지만 자신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확률은 그리 높게 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에 출연하는 윤아도 아닌 수연이 자신의 드라마 출연 확정 전에 드라마 ost를 문의했다고 하니 신기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윤아가 먼저 말한 것일까?

하지만 윤아가 먼저 말할 사람이 아닌 것 같았기에 수연에게 직접 물은 것이었다.

예상 외의 질문에 수연이 당황하면서 대답을 하였다.

“그, 그건… 태연이 드라마 ost를 했었잖아? 그래서 나도 해보고 싶어서 그랬던 거였어.”

사실 창현이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덜컥 하고 싶다고 말을 한 것이지만 진실 된 내막을 이야기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회사에서 창현에게 부탁을 해온 것이라고 할 뿐.

수연의 이야기를 들은 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우연이었구나. 흐음!”

우연의 일치였다고 생각하면서 창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조용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수정에게 한쪽에 있는 자리를 권했다.

“저쪽에 앉아서 구경하도록 해. 앞으로 수정이도 겪어볼 것들이니까 유의 깊게 보면 도움이 많이 될 거야.”

“네, 오빠.”

언니에게는 영악한 모습을 보이던 수정은 창현 앞에서는 한 마리의 순한 양에 불과하였다.

그 모습이 가증스럽다고 느끼면서 수연은 수정의 품에 안겨있는 작은 사탕 상자가 보였다.

‘나도 받고 싶은데…….’

괜히 수정이 따라와서 자신이 받을 것을 수정이 받은 것이라 생각하니 심통이 절로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창현이 앞에 있으므로 성질을 보일 수도 없는 노릇. 이러다가 스트레스로 머리가 빠질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누나도 일어서세요. 이제 녹음에 들어가야죠.”

“으응.”

창현의 말에 수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그녀는 흘긋흘긋 곁눈질로 수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탕 상자를 품에 안고 있는 수정을 부럽다는 눈을 한 채 말이다.

하염없이 수정을 바라보고 있자, 옆에서 창현이 말한다.

“누나 뭐하는 거예요? 아, 수정이 앞에서 노래를 부르려니까 망설여지는 거예요? 처음에만 그런 거니까 너무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자, 안으로 들어가세요.”

그러면서 수연을 부스 안으로 들여보내는 창현이었다.

창현에게 떠밀리면서 부스 안으로 들어서는 수연은 ‘그게 아니야! 내가 수정이를 바라보는 건 그게 아니라 사탕을 받은 게 부러울 뿐이라고! 나도 사탕 줘!’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을 하면 너무나 경우가 없어 보이고, 수정이 비웃을 것 같아서 어색하게 안으로 들어서는 수밖에 없었다.

부스 안으로 들어서면서도 수연은 힐끗힐끗 수정이를 보고 있었다.

‘나도 사탕 받고 싶은데…….’

이내 부스 안으로 들어서자 사탕에 대한 집념을 놓아버리는 수연이었다. 이제부터 다른 생각은 방해가 될 뿐이다. 오로지 노래를 잘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기량을 끌어올려야 한다.

“목 풀 시간 드릴게요. 오 분 후에 본격적으로 녹음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본격적으로 테스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창현도 목소리가 다소 경직되면서 방금 전 사근사근했던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누나와 동생 사이가 아닌, 가수와 프로듀서로서의 사이였다.

목을 풀 시간을 준 창현은 정확히 오 분이 지나자 본격적인 테스트를 하기 시작하였다.


“시작하세요.”

창현의 말이 떨어지자 수연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MR이 흘러나오자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미 사전에 수연이 즐겨 부르는 노래 리스트를 SM엔터테인먼트에서 받아놓은 상황이었다. 그랬기에 창현은 그 리스트에 있는 노래 중 하나를 틀었고, 수연은 곧장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창현의 주문에 따라 수연은 열심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목도 적절하게 풀어놓은 상황이었기에 노래에 대한 몰입도가 절묘하게 올라가면서 심취하여 부르기 시작한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기교면에서 완벽하였고, 음 조절도 괜찮았다. 호흡을 할 때 호흡량도 나쁘지 않았으며,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기교가 돋보였다.

적어도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그러하였다.

수연의 노래가 끝나고 잠시 한숨 돌릴 시간을 준 창현이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리게끔 조작을 하고는 그녀에게 말했다.

“전체적인 완성도는 좋아요. 하지만 약간 아쉬운 면이 없지 않아 있네요. 1분 38초 부분 있죠? 이 부분이요.”

그러면서 창현이 노래 시간을 조절한 뒤 틀어주자 수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어느 부분인지 지적을 한 창현이 수연에게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한 몰입도가 약간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럴 때는 음을 약간 끄는 것처럼 하는 것보다는 살짝 끊어주다가 이어주는 게 좋거든요. 이렇게요.”

창현이 간단하게 시범을 보여주자 수연이 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창현의 말대로 하는 것이 훨씬 나아보였다.

수연이 납득한 모습을 보이자 창현이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말한다.

“알아들었으면 다시 한 번 해보도록 할게요.”

창현이 다시 노래를 틀자, 수연이 그 부분에 노래를 다시 하기 시작한다.

노래를 들은 창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연에게 지적을 하기 시작한다.

“그 부분은 좋아요. 하지만 이 부분이 부족해요. 발음을 뭉개면 안 되거든요. 그렇죠. 약간 악센트를 주어서 확실하게 하는 것이 좋아요.”

“노래의 전체적인 토대를 유지하되 누나의 특색을 살리는 것이 좋아요. 너무 과한 기교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니 적절하게 조절을 하면서 맑고 높은 톤의 목소리를 내보세요. 그렇게요.”

“그 부분은 끌지 말고 자연스럽게. 네, 그렇게요.”

쉴 틈도 없이 수연을 몰아치는 창현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수정은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신이 보기에 수연의 노래 실력은 어디 흠 잡을 곳 없을 정도로 완벽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냥 듣기만 해도 절로 탄성이 나올 정도였던 것이다. 평소보다 훨씬 잘한 것 같아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오는데 그 노래를 듣고도 지적을 하는 창현의 모습이 정말 놀라웠다.

그런데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창현이 지적한 점을 고치자 수연의 노래가 확연히 더 나아진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수정은 감탄을 터뜨렸다.

“와… 정말 대단해.”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대단한 실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걸 완벽하게 소화하는 수연이나 흠 잡을 곳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노래를 하는 수연의 빈틈을 잡아내어 지적하는 창현이나 정말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특히 노래를 부르는 수연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창현의 표정은 옆에 있는 수정조차도 압도될 수밖에 없는 강렬함을 담아내고 있었다. 정말 옆에서 보고만 있어도 감탄이 나오는 외모에 저렇게 진지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니. 방금 전 보여주었던 다정한 모습에서 오는 차이가 더없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평소에는 다정하면서 일을 할 때는 한없이 진지한 남자! 어찌 끌리지 않겠는가.

수정은 노래를 부르는 수연의 모습을 보랴, 옆에서 수연의 단점을 지적하는 창현의 모습을 보랴, 정신이 없었다. 옆에서 보고만 있어도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 창현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수정 또한 가수를 준비하는 연습생이었기에 그런 창현의 말을 들으면서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직 자신은 멀었다는 것을 말이다.

‘창현 오빠랑 수연 언니 앞에 있으니까 괜히 작아지는 것 같잖아. 나도 연습생 중에서는 나름 잘하는 편이라고… 칫!’

괜히 작아지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는 입술을 삐죽이는 수정이었다. 그러면서 점점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빠져들고 있었다.

오늘 창현을 본 것도 본 것이지만 저렇게 열심히 하는 수연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데뷔를 목표로 연습에 매진하는 연습생들.

하지만 데뷔가 끝이 아니다. 연습생들의 목표는 데뷔지만 데뷔를 한 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데뷔할 때보다 훨씬 발전한 지금 모습을 보면서 수정은 그 점을 몸으로 직접 느끼고 있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가슴으로 이해하는 것은 천양지차인 만큼 수정은 나중에 데뷔를 할 때를 대비하여 아주 유익한 것을 깨닫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잠시 쉬도록 하죠.”

쉴 틈도 없이 약 한 시간 정도 노래를 시키던 창현은 수연의 목에 무리가 갈까 싶어 휴식을 선언하였다. 중간중간에 약간이나마 쉴 틈을 주었기에 딱히 문제점은 없어보였지만 휴식을 취하는 것도 목을 보전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후우!”

창현의 휴식 선언에 수연은 헤드셋을 벗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벅찰 정도로 몰아치는 창현이었지만 뿌듯한 마음이 앞섰다. 고작 한 시간 동안 했을 뿐인데 자신이 느끼던 단점들을 깨우칠 수 있던 것이다.

이것들을 극복하는 것은 자신의 노력 여부에 달려 있었지만 자신의 단점을 파악한 것만으로도 큰 성과였다.

‘역시 창현이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돼.’

이성으로도 함께 하고 싶지만 정말 보컬 트레이너로서, 프로듀서로서도 함께 하고 싶은 인물이었다.

아직 경험이 많지 않아 많은 사람들을 겪어보지 못했지만 그녀가 겪어본 사람들 중에 창현만한 사람이 없었다.

창현과 함께 하면 우선 마음을 편안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마음을 편하게 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우선 노래를 부를 때 노래에 몰입하는 정도가 틀리고, 제 기량을 발휘하는 정도가 틀리다.

묵직한 분위기에서 노래를 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틀리게 되는 경우가 있고, 그리 되면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노래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 그렇다.

하지만 창현 같은 경우는 나이가 어려서 그런 걸까? 노래를 할 때 긴장은 되지만 부담은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고, 자신의 기량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차이는 무척 컸다.

게다가 창현은 노래를 하다가 틀리거나, 노래가 끝난 후 지적을 할 때도 어떤 부분이 어떻게 해서 틀렸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더 좋게 들리는지를 세세하게 알려준다. 상대방을 꼼짝없게 만드는 분위기와 목소리는 물론, 자세한 설명으로 무어라 변명할 거리조차 주지 않으니 그를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창현이 지적한 점들을 고치면 실력이 향상된 것이 눈에 띄게 느껴진다. 이 점이 결정적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실력이 눈에 띄게 늘어나니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까.

가수인 만큼 가창력에 욕심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연 또한 가창력에 상당한 욕심을 가지고 있기에 자신의 실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켜줄 수 있는 창현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은 것은 당연하였다.

“다시 시작하도록 하죠. 충분히 쉬었죠?”

약 10분 정도 지났을까, 창현이 다시 시작해도 되냐고 묻는다.

그에 수연이 상념에 벗어나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응!”

그리고 다시 헤드셋을 쓰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수연의 노래 테스트는 무척 길게 이어졌다.

시간이 어느덧 정오가 지날 무렵, 창현이 힐끗 시계로 시선을 옮기더니 입을 열었다.

“그만! 3분 휴식입니다.”

그렇게 말한 창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간단하게 먹을 쿠키와 주스를 내와 수정에게 주었다.

“일단 이거라도 먹고 있어. 지루하지?”

“아니에요. 오히려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되는 걸요? 오길 정말 잘한 것 같아요.”

똘망똘망한 눈으로 말을 하는 수정의 모습에 창현은 웃음을 지으면서 수정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려다가 멈칫했다. 자신 딴에는 귀여움의 표현일 수 있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렇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일단 먹으면서 계속 지켜봐. 얼마 남지 않았거든. 테스트 끝낸 후에 같이 식사하러 가자. 알았지?”

“정말요? 저야 좋죠! 그럼 이건 조금만 먹어야겠다.”

그러면서 수정이 쿠키를 슬쩍 밀자, 창현이 피식 웃음을 짓고는 수연에게도 말을 전했다.

“늦은 점심이 되겠지만 일단 테스트를 끝내고 먹도록 해요. 알았죠?”

점심을 사주겠다는 말은 창현과 조금 더 오래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식사도 사준다고 하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며 힘이 나는 걸 느끼는 수연이었다.

“응.”

“언니 열심히 해!”

“알았어.”

수정의 응원에 수연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힘을 내겠다는 포즈를 취했다.

그 모습을 본 창현이 시계로 힐끗 시선을 옮기고는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다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 후로도 테스트는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무려 세 시간 동안 노래를 부른 듯했다. 중간중간에 휴식을 취한 것이 약 한 시간이라는 걸 감안하면 노래를 부른 것이 거의 두 시간이나 되었던 것이다. 목이 쉬지 않을까 살짝 염려가 되었지만 잘 관리할 것이라 믿으면서 창현이 마침내 끝을 선언하였다.

“수고하셨어요. 이제 나오셔도 되요.”

“응.”

고개를 끄덕인 수연이 헤드셋을 벗고는 부스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수정이 수연에게 쪼르르 달려가서는 그녀에게 주스가 담긴 컵을 내밀었다.

“수고했어요, 언니. 목 마를 텐데 이거 마셔요.”

“마셔도 돼?”

수연이 창현을 보며 묻자, 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셔도 되요. 마시면서 들으세요.”

창현의 허락이 떨어지자 수연이 주스를 마시기 시작하였다. 중간중간에 물을 조금씩 섭취하기는 했지만 갈증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주스를 마시는 것을 보면서 창현이 수연에게 최종 평가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우선 수연 누나의 전체적인 기교나 음은 무척 안정되어 있어요. 하지만 일정 이상의 고음으로 올라가면 약간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요. 이 부분은 보컬 트레이닝을 조금 필요로 할 것 같아요.”

“으응…….”

아무래도 창현이 말을 구사하는 방법은 먼저 칭찬을 하고 끝에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편이었기에 마음을 놓지 않고 있던 수연은 창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보컬 트레이닝으로 소화가 가능하다고 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창현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제가 누나랑 처음 만났을 때 누나한테 감정 이입이 부족하다고 한 적이 있죠?”

창현의 말에 수연이 처음 창현과 만났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때가 아마 윤아가 주현의 후배인 창현에게 보컬 트레이닝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위해 몰래 숙소를 나서려던 때였지. 자신 또한 가창력에 욕심이 많았기에 주현의 약점을 고쳐준 상대가 누구인지 궁금하여 따라갔다가 창현을 처음 만났다. 그리고 그때 창현에게 감정 이입 부분이 부족하다고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수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창현이 빙긋 웃으며 말한다.

“감정 이입 부분이 많이 좋아졌어요. 한글 공부도 열심히 하셨나 봐요.”

“응. 열심히 했어. 고마워.”

자신을 칭찬해주는 말을 하자 미소를 짓는 수연이었다.

하지만 창현은 곧바로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들어왔다.

“하지만 아쉬운 면도 약간 있어요. 약간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 누나가 잘 파악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거든요. 아무래도 어려운 단어는 몰입을 방해하는 듯해요. 그리고 한글로 된 가사보다는 영어 가사에 더욱 잘 몰입된 모습을 보이네요. 아무래도 영어가 더 친숙해서 그런 거겠죠?”

“으응…….”

구구절절 옳은 말이기에 수연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에 창현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하다가 멈칫한다.

“전체적으로 괜찮기는 한데 약간 멈칫거리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 거예요. 전체적인 밸런스는 굉장히 잘 잡혀 있어요. 그러니 자신감을 가져도 되요.”

“고마워.”

창현의 말에 힘이 나는 수연이었다.

그러면서 창현이 계속하여 지적을 해주었다.

“일단 테스트 결과를 말씀드리면 합격은 합격이에요.”

합격이라는 단어에 좋아해야 정상이지만 수연은 그럴 수가 없었다. 창현의 말에서 묘한 뉘앙스를 느꼈던 것이다.

수연이 조심스럽게 창현을 보며 물었다.

“합격은 합격? 무언가 느낌이 이상한데……?”

“네, 아쉽지만 반쯤 합격이라고 할 수 있어요.”

“…….”

창현의 말에 수연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최선을 다했는데 합격이 아니라 반쯤 합격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그녀의 실망스러운 표정을 본 창현이 서둘러 말을 더해주었다.

“잠시 만요. 반쯤 합격이라고 했던 건 누나의 실력이 부족했던 게 아니에요. 다만 제가 기획하고 있는 드라마 ost에 약간 맞지가 않아서 그런 거예요. 게다가 합격이라고 했지, 탈락이라고 한 게 아니잖아요?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봐요.”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거야?”

떨리는 목소리로 결과를 묻는 것이다.

지금 그녀가 알고 싶은 것은 합격이냐, 탈락이냐였지, 반쯤 합격 같은 어중간한 말이 아니었다.

어찌 보면 드라마 ost에 맞지 않는다는 건 탈락이나 마찬가지라는 뜻 아닌가? 그런 만큼 수연은 자신이 탈락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수연의 모습에 창현이 대답했다.

“일단 합격이에요. 그 합격 기준이 드라마 ost에 참여하는 것이냐는 걸 묻는 것이라면요.”

“정말……?”

합격이라는 말에 수연이 밝은 표정을 지었다. 드라마 ost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여 탈락일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에 창현이 피식 웃음을 짓고는 말한다.

“하지만 한 가지 더해야 할 점이 있어요. 바로 누나를 보완해줄 멤버를 영입하는 거예요.”

창현의 말에 마냥 좋아하던 수연이 멈칫한다. 그렇다는 건 자신 혼자서 드라마 ost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는 걸 뜻했다.

수연이 창현을 보며 물었다.

“멤버를 영입하라는 건……?”

“누나를 보완해줄 멤버 하나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두 사람이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

두 사람이란 말에 수연은 다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내심 자신의 솔로곡이 될 줄 알고 좋아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실망한 수연의 모습에 창현은 살짝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누나 솔로곡인 건 맞아요. 말 그대로 보완해줄 멤버니까요. 듀엣이 아닌 피처링을 해줄 멤버가 필요하다고 할까요? 그렇게 해서 보완하게 되면 제가 기획하고 있는 테마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럼 보완해줄 멤버로 누굴 생각하고 있는데?”

“으음! 잠시만요.”

수연의 물음에 창현이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보완해줄 음색을 지닌 사람을 소녀시대 내에서 찾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녹음에 들어가면 괜히 어색한 사람과 함께 할 경우 녹음에 큰 지장이 생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창현이 결정을 내린 듯 수연에게 말한다.

“아무래도 소녀시대 내에서 꼽으라고 하면 태연 누나나 미영 누나가 적절할 것 같네요.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참여하면 저는 괜찮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듀엣이 아닌 보완 형태이기에 높은 톤보다는 약간 낮거나 허스키한 목소리를 선택한 창현이었다.

“그래? 둘 중 아무나 해도 되는 거야?”

창현의 말에 수연이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물어왔다.

그 질문에 창현이 망설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태연 누나나 미영 누나 둘 중 아무나 상관없어요.”

“그럼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같이 녹음을 하면 아무 이상이 없는 거네?”

“네. 둘 중 아무나 해도 전 상관없어요.”

창현의 대답을 들은 수연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창현에게 대답을 구하듯 말했다.

“그럼 태연이나 파니 중에서 내가 한 명을 정해도 되겠지?”

“누나가 굳이 고르겠다면 저야 상관없어요. 누가 되든 간에 저는 괜찮으니까요.”

아무래도 두 사람 모두 수연의 목소리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만큼 누가 되든 간에 상관이 없는 창현이었다.

그 대답을 들은 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태연이나 파니 중에서 내가 한 명 정하도록 할게. 그래도 되지?”

“네, 그럼 저도 그에 맞춰서 준비하도록 할게요. 3월 말에 본격적으로 드라마 ost 녹음에 들어가도록 할 테니 3월 21일까지 정해주시고요.”

3월 21일이면 딱 다음 주였다.

넉넉하다면 넉넉하고 부족하다며 부족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자신이 맞춰야 하는 것이었기에 수연은 계산을 해보다가 시간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그럼 테스트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약간 늦었지만 점심 먹으러 가볼까요?”

“와! 맛있는 거 사주세요, 오빠!”

테스트가 끝났음을 알리며 빙긋 웃음을 지어보이는 창현이었다. 그리고 수정은 신나는 표정을 지으면서 창현에게 맛있는 걸 사달라고 하였다.

창현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수연에게 말한다.

“아참,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렇게 말을 한 창현이 녹음실을 나섰다. 잠시 후, 녹음실 안으로 돌아온 창현의 손에는 큰 쇼핑백이 있었다.

창현은 그것을 수연에게 내밀면서 말했다.

“내일이 화이트 데이잖아요? 그래서 준비했어요. 수연 누나 거랑 다른 누나들 것 모두 챙겨두었어요.”

“정말?”

자신만 챙긴 것이 아닌 다른 멤버들도 챙긴 거라고 말을 했지만 수연은 실망하기는커녕 눈을 빛내며 얼굴에 화색을 띠었다. 아까 전 창현이 사탕을 주지 않아 내심 포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뜻하지 않게 사탕을 받게 되자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무슨 일이든 간에 기대하지 않다가 받으면 그 기쁨은 무척 큰 법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지만 기대가 없으면 기쁨은 큰 법이었으니 말이다.

쇼핑백을 건네받은 수연이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각지각색의 상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만 보아도 창현이 멤버들 하나하나에게 어울릴 법한 사탕을 사주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수연은 창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였다.

“고마워, 창현아. 비싸 보이는데…….”

“비싸기는요. 딱히 비싼 것도 아니니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그렇게 말을 하지 않지만 수연은 알고 있었다. 창현이 자신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하는 말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걸 알고 있었지만 굳이 부담을 줄 필요는 없었기에 수연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이럴 땐 모른 척 넘어가주는 것이 좋다.

“그래도 고마워. 잊지 않고 챙겨줘서.”

“그렇게까지 말하면 어쩔 수 없네요, 하하! 누나들도 잊지 않고 챙겨주었으니 비긴 셈치면 되죠.”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상황을 마무리하는 창현이었다.

그리고는 수연의 손에 쥐어졌던 쇼핑백을 다시 가져온다.

수연이 왜? 하는 눈으로 바라보자 창현이 말한다.

“제법 무게가 나가잖아요. 점심 먹고 헤어질 때까지는 제가 갖고 있을게요. 누나가 혹시 제가 갖고 가지 않게 말해주면 되죠. 갖고 도망가지 않을 테니 안심하시고요.”

“아까워서 다 먹으려고 가져가면 안 돼.”

“물론이에요.”

수연의 장난스러운 표정에 창현도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창현과 수연, 수정은 점심을 먹기 위해 회사를 나섰다.

소녀시대의 열렬한 팬인 로드 매니저를 꼬드겨서 제법 비싼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해결하였다.

수정은 마냥 좋아했지만 이런 곳의 가격이 비싸다는 걸 알고 있는 수연은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지만 술을 마시지 않으면 비싸지 않다는 창현의 말에 잠잠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미안한 기색이 가시지 않자 그러면 녹음을 할 때 열심히 하라는 말에 표정을 풀 수 있었다.

맛있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창현이 먼저 AA엔터테인먼트로 돌아가고, 수연과 수정은 창현의 배려로 벤에 탑승하여 SM엔터테인먼트로 향할 수 있었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수정이 힐끗 운전을 하는 로드 매니저를 바라보더니 수연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언니, 창현 오빠 좋아하지?”

“……!”

수정의 말에 수연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눈치 챈 것이란 말인가?

경악한 수연의 표정을 보면서 수정은 입가에 미소를 짓더니 말한다.

“그렇게 좋아하는 티를 내면 지켜보는 사람은 다 알 수 있다고.”

“그, 그랬어?”

수연은 자신이 그렇게 티를 냈나, 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간파한 수정에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수정은 말을 더듬는 수연에게 말한다.

“내가 찜하려고 하긴 했지만 언니가 먼저 좋아한 듯하니까 내가 도와주도록 할게. 솔직히 창현 오빠만큼 형부로 어울리는 사람은 없으니까.”

적극적인 수연의 연애전선에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보인 수정이었다.

그것은 수연에게 엄청나게 큰 위안이 되었다.

크게 뜬 눈으로 수정을 바라보자 수정이 웃음을 짓는다.

“언니가 어떻게 적극적으로 나서는지 잘 모르는 듯하니까 내가 창현 오빠와 친해져서 언니와 접점을 늘리도록 할게. 언니 칭찬을 하고 만나는 기회를 늘리면 자연스럽게 기회는 오지 않겠어? 안 그래?”

수연이 놀란 눈으로 수정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 그러네. 대단하다, 수정아.”

스무 살 먹은 여인이 열다섯 살 소녀의 계책에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두 자매는 쑥덕거리며 창현을 어떻게 넘어오게 만들 수 있을지 때 아닌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고 있었다.

수정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연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그 이야기를 들음에 따라 오늘 수정을 데려온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닌 최고의 한 수였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수연의 연심을 알아차린 사람이 생겼지만 그것이 호기로 작용한 셈이었다.

그렇게 수연은 강력한 지원군을 얻을 수 있었다.

고작 열다섯이라는 강력한 연막에 휩싸인 영악한 지원군을 말이다.




제51장 리더탱 vs 와룡파니




수연은 수정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는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수정과의 대화는 수연에게 있어 너무나 유익한 것들이었다.

수정은 어린 나이답지 않게 연애에 대해 무척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어색하던 한국어를 연애소설을 읽음으로써 그 실력을 길렀다고 하니 한국어를 늘리면서 절로 연애에 대한 스킬도 늘어난 듯했다. 그래봤자 죽은 지식이지만 그 지식을 받은 사람이 잘 활용하면 죽은 지식도 산 지식이 될 수 있다. 수정이 말해준 것들 중 쓸 만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중에서 번뜩이는 것들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이것은 혼자서 개별 활동도 가능한 것들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수정이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겠다고 언급한 상황이었다. 물론 그 말을 100% 신뢰할 수 없는 것이 슬픈 현실이었지만 영악한 수정이 도와준다고 하면 자신에게 이롭게 작용할 것은 분명했다.

수정을 신뢰할 수 없어도 용돈을 주면서 협력을 구하면 100% 협력할 테니까.

돈을 믿을 수밖에 없는 슬픈 현실이었지만 그것이 확실한 방법이기에 수연은 수정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적어도 이론에 있어서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아직 나이가 어리다는 점을 이용한다면 창현과 친해져서 자신과 접점을 늘려나갈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녀가 알고 있는 수정은 결코 쉽게 도와줄 인물이 아니었기에 적절한 채찍과 당근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그래도 수정이가 도와준다고 하니 다행이야.”

처음에 따라온다고 할 때는 한대 콕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자신을 도와주는 아군으로 바뀌게 되니 마음이 가벼운 수연이었다.

쇼핑백 안에 든 사탕이 제법 무거웠지만 마음이 가볍다 보니 그리 부담이 되지 않았다.

“나 왔어.”

“수연이 왔다!”

숙소 안으로 들어선 수연을 보고는 유리가 소리치자 멤버들이 하나둘씩 방에서 우르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반가운 손님을 맞이할 법한 그녀들의 모습에 수연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뭐야, 무슨 행사라도 하는 거야? 갑자기 왜 그렇게 우르르 몰려나와?”

“수연이 너 드라마 ost 테스트 보려고 창현이 만나고 왔다며!”

오히려 눈을 치뜨는 수연을 보며 소리치는 태연이었다.

그 외침에 수연이 순간 움찔하였다. 설마 태연이 그 사실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기야, 자신이 스케줄이 있다 보니 매니저에게 물어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사항이었다.

일단 만나는 것에 중점을 두었기에 만난 후에 벌어질 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기세로 수연을 제압하는데 성공한 태연이 말한다.

“어떻게 말도 하지 않고 갈 수가 있어!”

‘말하면 따라올 거잖아!’

뻔했기에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머리가 있다면 누가 말을 하고 가겠는가? 스케줄이 없으니 줄줄이 따라올 기세인데?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수연이었다.

그리고는 태연한 얼굴로 변명을 하였다.

“그렇게 됐어. 난 회사에서 오라고만 해서 간 건데 갑자기 그쪽으로 가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간 거야. 내가 알고 있었으면 말했겠지. 안 그래?”

“으으…….”

수연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뒤로 물러서는 태연이었다. 여기서 아니라고 말을 하면 수연을 거짓말쟁이로 치부하는 것이기에 그 이상의 진도를 뽑을 수 없었던 것이다.

태연이 처참하게 침몰하고, 그 뒤를 이은 것이 주현이었다.

그녀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수연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드라마 ost 테스트는 잘 보셨어요? 어떻게 된 거예요?”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런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거대 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의 부탁이라면 수락할 수밖에 없는 큰 압박감을 느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창현은 다르지 않은가?

자신의 기대에 어긋나면 서슴없이 탈락이라고 말할 인물이 바로 창현이었다.

“테스트는…….”

주현의 말을 들은 수연이 인상을 확 찌푸렸다. 반만 합격했다는 창현의 말에 기분이 확 나빠진 것이다.

그냥 두 눈 꼭 감고 합격을 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반만 합격이라는 것이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실력적인 측면에서는 합격이지만 테마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도 말이다. 실력이 합격이면 당연히 합격이어야지.

물론 그렇다고 하여 탈락한 것보다 훨씬 나은 것은 분명했다.

“설마…….”

찌푸린 수연의 표정을 보면서 소녀들의 눈이 점점 크게 뜨이기 시작했다. 수연의 반응을 보면 합격한 것이 아니라 탈락했다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그러면서 멤버들 몇 명의 눈에는 묘한 열기가 담기기 시작했다. 수연이 탈락을 했다면 자신이 그 기회를 붙잡을 수도 있기에 그렇다.

틈새시장을 노리려는 멤버들의 기색을 수연이 눈치 채지 못할 리 없었다. 그녀는 찌푸렸던 표정을 단숨에 풀고는 대답했다.

“일단 합격이야. 그러니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말도록.”

강력하게 경고하는 수연의 말에 몇몇 소녀가 몸을 움찔 떨었다. 수연이 자신들의 속내를 꿰뚫고 있다는 걸 눈치 챈 것이다.

그때, 유리가 수연이 들고 있는 것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런데 그건 뭐야? 쇼핑백? 누구한테 뭐 받은 거야?”

“아, 이거?”

유리가 가리킨 쇼핑백은 다름 아닌 창현이 주었던 사탕이 든 것이었다.

쇼핑백에 시선을 준 수연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걸어가 거실 소파에 앉더니 쇼핑백을 옆에 내려놓고는 입을 열었다.

“내 앞으로 줄 서도록 해.”

“……?”

“그게 무슨 말이야?”

수연의 말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 소녀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와중에 눈치가 빠른 유리가 슬금슬금 수연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소녀들은 선뜻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수연이 뒤에 내용까지 이야기한다.

“이 쇼핑백에 든 건 바로 창현이가 준 화이트 데이…….”

우당탕!

창현이 준 화이트 데이란 말에 감을 잡은 소녀들이 일제히 수연 앞에 서기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다시 만난 세계> 첫 대형을 맞추는 것 마냥 일렬로 늘어서기 시작했다. 그 짧은 순간에 수십여 개의 견제가 있었던 것은 마치 현란한 개인기를 주로 하는 운동을 보는 듯하였다.

가장 앞에 선 것은 바로 유리였다. 먼저 접근하여 일정 거리 안으로 접어든 상황이었기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 결국 선두에 서는데 성공한 것이다.

“자, 사탕 줘.”

“잠깐만 기다려.”

그렇게 말을 한 수연이 쇼핑백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다 같은 사탕이 아니라 개개인별로 맞춰진 것이기에 유리 것을 찾아야 했다.

“어디 보자… 유리 게 뭐더라…….”

뒤적거리던 수연이 유리 이름이 새겨진 것을 찾고는 내밀었다.

“자, 이거 네 거.”

“땡큐!”

하늘색 고급 포장지에 포장된 상자를 받아든 유리가 웃음을 지은 채 쪼르르 방으로 달려간다.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지은 수연이 하나하나 챙겨서 준다.

비슷한 색상의 포장지가 있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모두 다른 포장지로 포장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포장지에 영어로 예쁘게 이름이 쓰여 있어서 마구잡이로 뜯는 것이 아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와! 진짜 예쁘다!”

“사탕도 너무 예뻐요.”

창현에게 받았다는 기쁨이 가시기 전에 포장을 뜯어본 소녀들은 다시 한 번 감탄한다. 포장지 안에 있는 내용물 또한 겉모습에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동화나라에 나오는 듯한 분위기의 사탕들은 감수성이 풍부한 소녀들의 마음을 뒤흔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사탕을 받고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는 소녀들을 보면서 수연은 살짝 표정을 찡그렸다. 뭐라고 해야 할까, 좋아하는 멤버들을 보니 처음 받을지 못 받을지 가슴을 졸였던 자신만 손해보는 느낌이랄까.

약간 심통이 나서 그런지 수연은 박수를 짝짝! 치며 이목을 모았다.

“잠시만. 나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해? 그거 들고 오느라 엄청 힘들었는데?”

“고마워 수연아.”

“땡큐!”

“들고 오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언니.”

수연의 외침에 소녀들은 그제야 여기까지 사탕을 조달하느라 고생했을 수연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왠지 엎드려 절 받기 같았지만 수연은 그것만으로 만족하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그런데 오늘 언니 혼자서 AA엔터테인먼트에 가신 거예요?”

사탕을 받고 좋아하던 주현이 수연을 힐끗 보면서 물었다. 아무래도 그녀가 혼자 AA엔터테인먼트에 갔다는 것이 궁금했나보다.

그 질문에 사탕을 보며 좋아하던 소녀들이 일제히 수연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제법 민감한 사항이 담긴 질문이었던 것이다.

주현의 물음에 수연의 표정이 팍 일그러졌다. 그녀의 말에 진드기 같이 달라붙던 수정의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자신의 동생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너무나 얄미웠다.

결과적으로 긍정적이었지만 그래도 단독 찬스를 놓친 것은 안타까웠다.

자신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느낀 수연이 고개를 저어보였다.

“아니, 혼자서 못 갔어. 수정이가 창현이 팬이라고 해서 같이 데려갔거든.”

어쩔 수 없이, 라는 단어가 빠지기는 했지만 그 단어를 포함시키면 자신이 속이 좁아 보일 것 같아서 과감하게 삭제하는 수연이었다.

“수정이가요? 그러고 보니 그랬구나.”

수정과 친한 윤아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수긍한다. 수정이 창현의 팬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종종 언급하고는 했으니 모를 리가 없다.

수연이 혼자 가지 않고 수정과 함께 갔다는 말에 주현은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혼자 갔다고 하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하기가 두려웠는데 수정이라는 안전장치가 함께 갔던 것이다.

둘이 있는 것과 셋이 있는 것은 엄연히 다르니 말이다.

역사는 둘이 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칫!’

주현의 눈에 안도의 감정이 서리는 것을 본 수연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 안 좋은 기분을 풀고 싶은 심정이 가득했다.

‘그러고 보니 그게 있구나.’

미간을 좁히던 수연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멤버들을 골탕 먹일 방법이 떠오른 것이다. 그래봤자 그 대상이 태연과 미영에 한정되는 것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지금은 이 기분을 푸는 것이 중요했으니까.

수연이 태연과 미영을 번갈아보더니 입을 열었다.

“태연이랑 파니.”

“응?”

“왜, 제시?”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태연과 미영이 수연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러자 수연이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태연이랑 파니는 나한테 선물을 줘야 할 듯 싶은데.”

“우리가 왜?”

태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묻자 수연이 여전히 묘한 미소를 지은 채 말한다.

“창현과 관련된 좋은 정보가 있거든.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선물을 준다면 그 정보를 제공하고 좋은 기회를 주도록 할게.”

좋은 정보와 좋은 기회라는 단어는 태연과 미영을 낚기에 충분하였다.

순간 태연의 눈에 갈등이 서렸다. 어떻게 할지 고민이 되었던 것이다. 수연이 결코 정보를 줄 사람이 아닌데 정보를 주겠다고 하니 함정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 사이 미영이 수연에게 말했다.

“난 선물 줄게. 무슨 말인지 말해봐, 제시.”

미영의 수락에 태연이 기겁하면서 그녀도 동조하는 말을 하였다.

“나, 나도 줄게! 우선 원하는 선물이 뭔지 말해봐.”

정보가 중요하더라도 어떤 물건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수연은 두 사람이 가장 아끼는 물건 상위 다섯 번째 안에 들어가는 물건들을 언급하였다.

“태연이는 노란색 블라우스 그거 있지? 그거랑, 파니는 핑크색 핸드백.”

“허억!”

엄청난 요구조건에 두 사람이 안색을 달리하였다. 하지만 수연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어느새 소파에 느긋하게 누운 그녀가 태연과 미영을 여유로이 바라보면서 말한다.

“싫으면 말고. 그럼 다른 사람한테 기회가 가는 거고.”

도대체 저 기회가 무엇이란 말인가.

별볼일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만약 저것이 대박이라면?

태연과 미영은 갈등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그리고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기회는 왔을 때 잡는다! 놓치고 후회하느니 과감하게 애장품 하나를 버리는 셈 치고 들어보자!

“좋아, 주겠어.”

“나도.”

두 사람이 모두 수락하자 수연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좋은 선택이야. 이제 그 정보를 말해줄게.”

곧장 정보를 언급하려는 수연을 미영이 제지하였다.

“잠깐. 다른 애들도 들어도 되는 거야?”

“상관없어. 기회가 오지 않는 거니까. 그럼 말한다?”

“어서 말해봐.”

태연이 재촉하자 수연이 몸을 일으켜 자세를 바로하고는 두 사람을 번갈아보더니 말한다.

“너희 둘, 피처링 해볼래?”

두 사람 중 하나만 고르라고 한 권한으로 두 가지 물건을 득템한 수연이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하면 일타이피라고도 한다.

수연은 그렇게 두 사람을 낚아 평소 탐내던 물건을 얻어내는데 성공하였다.

“피처링이라니? 갑자기 무슨?”

“그러게. 나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수연의 말을 들은 태연과 미영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한다. 피처링을 하겠냐는 수연의 말을 순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이었다.

빠르게 두뇌 회전을 시키던 두 사람이 이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서, 설마!”

“제시! 네가 말한 게 설마 그…….”

두 사람이 모두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수연이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인다.

“너희가 생각한 게 맞아. 내가 하기로 한 드라마 ost에 피처링을 할 사람이 필요해. 그리고 그 후보가 너희 둘이고.”

“우리라고? 잠깐! 왜 우리가 후보야? 우리 둘 모두 피처링을 하는 게 아니라?”

수연의 말에서 오류를 발견한 태연이 수연에게 따졌다.

그러자 수연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한다.

“후보 맞아. 너희 둘 중 한 사람이 피처링을 하는 거지.”

“아니, 후보에 우리 물건을 받겠다고? 너무 하잖아, 제시!”

“맞아, 같이 하는 것도 아니라 고작 후보에 우리 애장품을 가져가겠다니!”

격렬하게 항의하는 두 사람이었다.

그에 수연의 눈썹을 꿈틀하더니 태연과 미영에게 말한다.

“그럼 후보로 올라가는 거 취소할까? 창현이가 언급한 후보 리스트만 해도 십여 명이던데 너희들 하지 않고 그냥 다른 사람으로 할까?”

자신들 말고도 후보가 있다는 말에 태연과 미영의 표정이 급변했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항의의 여지가 없는 것이 아닌가?

미영이 두 눈에 웃음을 그리면서 수연에게 말했다.

“아니! 내가 언제 취소 해달라고 했어? 후보만으로도 영광이야, 제시! 헤헤!”

목적한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잠시라도 자신을 굽혀야 한다.

그 전략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미영이었다.

재빠르게 태도를 바꾸는 미영의 모습에 훗! 하고 미소를 지은 수연이 태연을 보면서 말한다.

“태연이 넌? 포기하면 미영이로 정하도록 하고.”

입후보 하는데 너무나 비싼 대가가 아닌가?

하고는 싶지만 어떻게든 튕겨서 자신의 블라우스를 사수하려던 태연이었지만 미영의 약삭빠른 행동에 허를 찔리고 말았다. 이대로 자신이 물러서다가는 미영이 피처링을 할 수 있는 영광을 거머쥐게 될 판이었던 것이다.

이를 뿌득 간 태연이 참전을 선언하였다.

“누가 포기한다고 했어! 나도 참여할 거라고!”

독 오른 표정으로 소리치는 태연이었다.

씩씩거리는 태연에 비해 수연은 평온하기만 하였다.

그녀는 슬쩍 태연을 바라보더니 말한다.

“참여하면 참여하는 거지, 뭐 그거 가지고 소리를 질러? 그럼 두 사람 모두 후보에 오르는 거지?”

수연의 말에 태연과 미영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그리고는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피처링 내가 도와줄게.”

“나도! 질 수 없어.”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그때, 수연에게 이의를 제기하며 앞으로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잠깐만. 왜 후보에 태연이랑 파니만 오르는 거야?”

앞으로 나선 인물은 바로 순규였다. 그녀는 무언가 납득할 수 없다는 듯 수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시선에 수연이 의아한 듯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왜 태연이랑 파니만이라니?”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묻자, 순규가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태연이나 파니 말고도 피처링 하고 싶은 사람은 많다고. 그런데 왜 하필 두 사람만이야?”

“아아.”

그제야 순규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수연이었다. 순규의 말은 왜 후보를 태연과 미영만 올리냐는 뜻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드라마 ost는 큰 기회라 할 수 있다. 월드 아티스트 현이 직접 작업에 참여하는 만큼 그 위력이 지니는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 ost에 참여한다고 하여 돈을 많이 받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돈을 몽땅 투자하고도 끌어올리기 힘든 인지도 상승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었다.

소녀시대의 이름이 높아지는 건 좋지만 자신을 중심으로 이름이 알려지는 것이 더 좋다. 그렇기에 이 좋은 기회를 순순히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수연이 순규의 말에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아까 말했잖아? 창현이가 직접 언급한 후보는 소녀시대 내에서 태연이랑 파니 밖에 없었어. 내 음색에 어울린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창현이가 태연이랑 파니만 언급한 거야. 유감스럽지만 너희들은 그 후보에 없었고.”

“하아! 그런 거야? 그렇구나…….”

수연의 말에 다소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는 순규였다. 그것은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라 다른 소녀들도 그러하였다. 내심 피처링에 욕심을 내고 있었음이 분명하였다.

분위기가 침울하게 변하는 듯하자 태연이 나서면서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게 있어.”

“뭔데? 말해봐.”

턱짓을 하면서 말해보라는 듯 눈치를 주자, 태연이 잠시 호흡을 고르더니 묻는다.

“나랑 파니가 후보에 오른다면 두 사람이 창현이한테 찾아가서 테스트를 보면 되는 거야?”

“…….”

태연의 말을 들은 미영은 순간 가슴이 콱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창현한테 직접 테스트를 받는다는 말을 듣는 순간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순수하게 가창력을 따지면 미영은 자신의 실력이 태연보다 한 끗발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압도적으로 밀리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한 끗발 정도 말이다. 하지만 창현과도 같은 톱 가수에게 있어 그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한 끗발이라고 하여도 결국 차이는 차이다. 그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승리는 불투명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만큼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만약 자신이 실력으로 인해 밀려버린다면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고, 모처럼만에 찾아온 기회를 놓쳐버리는 계기가 되어버리니 말이다.

가창력에서는 한 수 떨어지지만 느낌에서 만큼은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준비 기간이 제법 필요하였다. 그렇기에 갑자기 테스트를 보게 된다면 자신이 밀릴 수밖에 없다.

잔뜩 긴장한 안색으로 수연을 바라보는 미영이었다. 어떤 대답이 나올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수연은 잠시 뜸을 들이듯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영의 긴장감이 최고조로 올라갈 무렵, 수연이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니야.”

‘후우!’

수연의 입에서 아니란 이야기가 나오자 미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대답이 나올지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다행히도 아니라는 대답이 나온 것이다.

“그럼 어떤 방법인데?”

자신의 생각이 틀린 듯하자 태연이 살짝 눈썹을 찡그리면서 말한다.

그러자 수연이 짤막하게 대답한다.

“내 마음대로.”

“엉?”

수연의 대답에 순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되묻는 태연이었다.

그러자 수연이 다시 한 번 또박또박 말을 이어준다.

“내 마음대로라고. 내 마음. 내 결정. OK?”

이해를 하지 못하는 태연에게 친절하게 설명에 설명을 해주는 수연.

“…….”

그 대답을 들은 태연과 미영은 물론이고 관심 있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소녀들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녀들은 지금 수연의 말이 무슨 뜻인지 한순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들은 말이 사실이 아닌가 싶었으니 말이다.

긴 침묵이 이어지고, 미영이 수연을 바라보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제시, 네 마음이 가는대로 피처링 상대를 결정하는 거라고?”

“맞아. 창현이가 나한테 준 권한이야. 내 피처링을 맡으려면 나와 친한 사이가 좋다고 했거든. 그러면서 나에게 소녀시대 내에서는 태연과 파니가 좋을 것 같다고 했고. 그러면서 둘 중 한 사람을 선택하라고 했어.”

‘그렇다면 처음부터 우리 둘이 후보였단 거잖아!’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누르는 태연이었다.

미영도 비슷한 생각을 한 듯, 안색이 좋지 않았다. 자신이 수연에게 낚였다는 것을 깨닫고 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상황은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오로지 수연의 의중에 결정권이 달리게 되었으니 오죽하겠는가?

태연이 불편한 표정을 지은 채 수연을 보면서 말했다.

“그러면 나와 미영이가 너한테 잘 보이기라도 해야 한다는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수연의 대답에 태연이 표정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런 거라면 나는 후보에서 빠지겠어. 실력으로 얻는 것이 아닌 너의 주관대로라면 결국 너에게 잘해야 한다는 거잖아? 그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해. 나는 하지 않겠어.”

강하게 나가는 태연이었다. 가뜩이나 드라마 ost에 선수를 빼앗겨서 기분이 불편한데 수연에게 헤헤거리면서 아부를 하기는 싫었다.

가수라면 실력으로 피처링을 따내야지, 아부로 따내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결코 수연이가 괘씸해서 그런 게 아니야. 암! 그렇고말고.’

그렇게 생각하며 각오를 굳히는 태연이었다.

그런 태연의 행동에 수연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설마 태연이 이렇게 강하게 나올 줄 몰랐던 탓이다.

수연이 이번에는 미영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파니,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 물음에 미영은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태연이 하지 않겠다고 한 이상 자신이 하겠다고 하면 후보에는 자신 밖에 남지 않는다. 그리 되면 자신이 피처링을 맡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태연의 말을 들으니 자신이 하겠다는 말이 선뜻 떨어지지 않았다. 뭐랄까, 자존심을 굽히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것이다.

고민을 하던 미영도 결정을 내리고는 수연에게 말한다.

“미안, 제시.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나도 하지 않겠어. 가수는 실력으로 피처링을 따내야 한다고 생각해.”

미영까지 강하게 나오자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수연의 얼굴에서 당황한 표정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설마하니 태연과 미영 두 사람 모두 하지 않겠다고 할 줄 몰랐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계획이 틀어지지 않는가? 게다가 자신이 원하던 블라우스와 핸드백도 날아가 버리는 셈이었다.

‘내가 조금 심했나? 심했네.’

생각에 잠겨있던 수연은 자신의 말이 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기야, 확실하게 시켜주는 것도 아니면서 결정권은 나에게 있으니 알아서 기어라! 라고 말하면 누가 좋다고 하겠는가. 자신이었어도 자존심 때문에 하지 않겠다고 할 것임이 분명했다.

수정에게 느꼈던 묘한 괘씸함과 사탕을 받고 좋아하는 멤버들의 모습에 살짝 질투심을 느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수연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이번 일은 내가 실수를 한 거네. 내 실수를 인정하겠어. 그러니 두 사람 모두 후보에서 물러나지 말아줘.”

수연이 한발 물러서자 태연과 미영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자존심 때문에 물러설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수연이 의외로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태연이 수연에게 물었다.

“그럼 어떤 방식으로 결정할 건데?”

“솔직히 창현이는 둘 중 아무나 상관없다고 생각했거든. 두 사람 모두 창현이 원하는 음색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방법을 바꾸도록 할게.”

그러면서 수연의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괘씸한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차피 누가 되든 간에 자신의 몫을 챙긴 만큼 수연은 결과에 딱히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면 치열하게 경쟁하는 장면을 제3자의 입장에서 보는 것도 즐겁지 않을까?

순간 기발한 생각이 떠오른 수연은 슬쩍 시선을 옮겨 멤버들을 둘러본다. 그리고는 두 사람을 향해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그럼 너희 둘이 멤버들에게 봉사를 하는 거야. 어떻게 하냐면…….”

수연의 말이 천천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태연과 미영의 표정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크게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기에 최종적으로 수락을 하였다. 지켜보고 있던 소녀들도 수연의 말에 열렬한 반응을 보이며 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본격적인 태연과 미영의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피처링에 관련된 권한은 멤버들에게 맡기도록 하겠어. 정확히 3월 21일까지야. 너희들이 멤버들에게 잘 해주고, 21일 날 애들이 투표를 해서 결정이 나도록 할게. 나는 당연히 빠질 거고. 그렇게 되면 여섯 명이니 총 여섯 표가 나오겠네? 같은 숫자의 표가 나오지 않게 잘 해보라고.”

수연이 태연과 미영에게 한 말이었다.

그녀는 멤버들에게 결정권을 넘겼다. 창현이 준 일주일이라는 기간 동안 태연과 미영이 멤버들에게 하는 것을 보고는 최종 결정을 멤버들이 내리는 것으로 결정권을 미룬 것이다.

그에 대해서 태연과 미영은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은 채 수락을 하였다. 그동안 멤버들에게 신세 끼친 것에 대한 보답을 하라는 수연의 뜻이 무척 예뻐서 순순히 수락을 한 것이다. 게다가 다른 방법으로 해봤자 이야기만 길어질 것 같았고, 기왕이면 멤버들에게 잘해주면서 피처링을 따내기로 하였다.

투표는 익명을 보장해주기로 하였다. 다른 소녀들은 상관이 없지만 나이가 어린 윤아나 주현은 자칫하다가 보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을 염려한 것이다.

태연과 미영도 그 부분에 대해 동의를 하였다. 누가 누구를 찍었는지 알게 되면 실망을 할 것 같았기에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다는 것이 그녀들의 생각이었다.

덕분에 나머지 소녀들만 신이 났다. 수연의 배려(?) 덕분에 자신들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일주일 동안 태연과 미영에게 잔신부름을 시키겠다고 생각하면서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수연은 더욱 더 재미있는 흐름을 위해 몇가지 규칙도 걸어놓았다.

“우선 당번을 빼주거나 그런 건 하면 안 돼. 나중에 한 사람이 되고 한 사람이 되지 못할 때 당번 같은 게 남아 있으면 얼마나 실망이 크겠어? 그런 만큼 일상생활에서 해줄 수 있는 배려를 하는 걸 중점적으로 해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누가 피처링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던 간에 하는 사람에게 격려를 해줘야 하고. 알았지?”

“물론이야.”

“나도 동의하는 바야.”

수연의 말에 흔쾌히 동의하는 두 소녀였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지은 수연이 마지막 말로 쐐기를 박는다.

“그 외에 다른 것들은 마음껏 해도 좋아.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전략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지. 그것은 각자 알아서 하도록 하고, 오늘부터 시작하도록 하자. 모두 동의하지?”

수연이 멤버들을 쳐다보자 소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한다.

본격적으로 태연과 미영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스케줄을 하면서 태연과 미영은 멤버들에게 배려를 해주기 시작하였다.

이동을 할 때 편안한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물론, 라디오 스케줄 때 음료수를 뽑아준다거나, 적극적인 리액션을 해주는 것으로 멤버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하였다.

특히 태연과 미영이 서로 견제를 하면서 먼저 배려를 해주려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무척 즐거운 것들이었다. 덕분에 수연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그녀들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서로의 강력한 견제 때문에 쉽게 승부를 가늠할 수 없다고 한 두 사람은 곧장 은밀한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먼저 움직임을 보인 것은 다름 아닌 태연이었다.

그녀는 스케줄 도중 메이크업을 고치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는 화장실 안에 있는 수영을 보고는 곧장 움직임을 보였다.

“수영아, 나랑 이야기 좀 해.”

“무슨 일인데, 그래?”

수영은 태연이 무슨 말을 할지 대략 짐작하고 있었지만 짐짓 모르는 척 묻는다.

그러자 태연이 수영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들어줄게. 대신 나에게 표를 주었으면 좋겠어.”

노골적으로 수영에게 표를 원하는 태연이었다.

그녀가 수영을 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수영은 수연과 효연, 이 두 사람과 함께 가장 연습생을 오랫동안 보낸 인물이었다. 그런 만큼 은연중 소녀시대 내에서 갖는 파워가 만만치 않다. 오랜 연습생 기간에서 쌓아온 경험은 결코 녹록치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수영을 먼저 섭외하면 자신이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는 것이 태연의 생각이었다.

효연을 섭외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일찍이 리스트에서 제외된 상황이었다. 연습생 생활을 오래하여 제법 짬이 있기는 하지만 효연은 결정적으로 변덕이 심하다. 지금 확답을 받아놓아도 21일이 되면 마음이 바뀔 확률이 높았다. 그렇기에 투표를 하기 직전 정신없이 몰아쳐서 표를 확보해놓는 것이 중요했다. 그것이 관건이었다.

그렇기에 먼저 수영을 설득하려는 태연이었다.

“원하는 거라! 딱히 원하는 건 없는데?”

수영은 정말 태연에게 원하는 것이 없었다.

이런 대결은 무척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결국 승자와 패자가 가려지는 아주 잔혹한 대결이다. 그런 만큼 지금 태연이 이렇게 많은 패를 꺼내놓고 멤버들에게 뿌린다고 하여도 패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 만큼 굳이 태연에게 많은 것을 뽑아내려 하지 않았다. 뿌린 것이 많은 만큼 패배할 경우 얻는 충격이 만만치 않으니 말이다.

태연이 그런 수영의 생각을 눈치 채지 못할 리 없었다.

그녀가 수영을 보면서 먼저 조건을 내걸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공짜로 표를 줄 건 아니잖아? 나를 도와주면 앞으로 팬들에게 받은 간식 반으로 나눠줄게.”

음식으로 수영을 꾀려는 태연이었다. 그 정도라면 부담도 되지 않고 제법 메리트가 큰 조건이었기에 수영이 혹할 것이라는 예상도 함께 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영이 그 말에 반응을 보였다.

“호오! 간식이라… 제법 끌리는 걸?”

이 정도라면 태연이 특별히 부담이 가지 않고 자신도 부담없이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선이었다.

태연의 제안에 제법 절묘하다고 생각하면서 수영은 잠시 고민에 잠기는 듯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태연이 네 제안을 받아들이겠어. 그 약속 잊지 마.”

“약속을 지킨다면 반드시 나도 지키도록 하겠어. 그럼 우리는 동맹 사이인가?”

“그래, 동맹이야.”

태연이 손을 내밀자 수영은 그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흔들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태연과 수영(이른바 탱셩 동맹)의 동맹이 결성 되었다.


비슷한 시각, 미영도 가만히 놀고만 있지 않았다.

그녀 또한 태연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가만히 있다가는 자칫 이도저도 되지 않을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걸 직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미영은 같은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멤버 중 유리를 공략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른 멤버들은 모르지만 미영은 유리의 뛰어난 지략을 간파하고 있었다. 발렌타인 데이 때 같은 사건에 휘말리면서 유리가 뛰어난 지략의 소유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창현에 관련된 일이라면 마치 삼국지 게임의 에디트를 사용한 것 마냥 지력이 99로 치솟는 미영은 가장 먼저 아군으로 끌어들어야 할 인물이 유리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적으로 돌아서게 되면 가장 껄끄러운 인물이 바로 유리였던 것이다.

미영은 곧장 유리를 불러내 자신의 용건을 털어놓았다.

“나에게 표를 줘.”

이미 서로의 속을 훤하게 꿰뚫어보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더 이상의 말은 필요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갑작스러운 말임에도 불구하고 유리는 미영의 말에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미영보다 더 평온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유리는 자연스러운 어조로 미영에게 물었다.

“그 대가는?”

세상은 기브 앤 테이크다.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어야 하는 법. 유리는 정확히 자신이 표를 줄 경우 미영이 어떠한 것을 줄지 묻고 있는 것이었다.

미영은 어설프게 협상을 하다가는 자칫 더 크게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크게 제시를 하였다.

“내가 창현이 하고 음료수 광고를 찍을 때 받았던 모자를 줄게.”

창현과 함께 음료수 광고를 찍을 때 미영은 창현에게서 모자를 선물 받은 적이 있다. 바로 창현이 착용하던 모자를 미영이 갖고 싶다고 하자 자신도 모자가 많다고 하면서 선물로 준 것이다.

그것은 미영의 보물 베스트 5에 들어가는 보물 중 보물이었다. 그것을 지금 유리의 한표를 획득하기 위해 희생하려는 것이었다.

“그걸? 흐음!”

유리는 미영이 제시한 조건이 제법 강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미영이 처음부터 이렇게 센 조건을 제시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서로의 생각을 훤하게 꿰뚫고 있다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협상에 응할 마음이 있는 자신과 달리 미영은 부지런히 표를 획득해야 하는 입장이었으니 말이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유리는 그리 나쁠 것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네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겠어. 그 정도면 나에게 밑질 것도 없으니 말이야.”

“땡큐, 유리. 유리 네가 내 편이라면 난 정말 든든할 거야.”

“든든하기는. 어쨌든 확실히 미영이 너한테 표를 주도록 할게.”

자신을 믿어주는 미영의 모습에 유리는 약간 머쓱한 표정을 지은 채 말한다. 커다란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는 면모를 보였지만 표면적으로 나선 적이 없기에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 아직 어색하였다.

그런 유리의 모습에 미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유리 네가 같은 편이라는 게 얼마나 용기를 주고 위안이 되는 줄 알아? 그러니 자신을 가져.”

“그래? 그렇게 말해준다면 나야 고맙지. 후후!”

다른 사람에게 인정 받는다는 것이 어찌 기쁘지 않을까.

다만 어색하다는 점이 존재하였지만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라는 것이 분명했다.

미영이 자신을 인정해주는 모습에 유리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라이벌이자 호적수에게 인정받는 이 느낌. 자신도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입증한 것 같았기에 뿌듯한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기분이 좋게 되자 적극적으로 변한다.

유리가 먼저 나서서 미영에게 제안을 하기 시작한다.

“다음 대상은 주현이로 하는 게 어때? 주현이가 꽉 막힌 면이 있지만 한 번 결정을 내리면 반드시 그것으로 밀고 나가는 면이 있어서 말이야…….”

“주현이보다는 윤아가 낫지 않을까? 윤아를 설득하는데 성공하면 윤아를 이용해서 주현이를 설득하는 것이 수월한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두 소녀.

언뜻 들으면 평범한 이야기로 들리지만 그 이야기 속에는 소녀시대 멤버가 들으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치밀한 계산이 숨어 있었다. 바로 각 멤버들의 속성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누구를 설득함으로 인하여 누구를 설득하는데 수월하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배가 산으로 간다는 것.

그것은 달리 생각하면 능력에 능력이 더해져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일으킨다는 걸 뜻했다.

유리와 미영의 조합이 바로 그러하였다. 서로가 힘을 합침으로 인하여 그 위력이 더욱 강력해진 것이다.

마치 그것은 조조의 백만 대군을 막기 위해 동맹을 맺은 주유와 제갈량 비슷한 관계였다. 두 지략가가 힘을 합쳐 결국 십만의 군대로 백만 대군을 물리치지 않았는가? 두 사람의 합작은 1 더하기 1은 2가 아닌, 1더하기 1은 무한대가 된다.

단지 단점이 있다면 그 유대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점이다.

목표가 같기에 힘을 합쳤지만 목표를 이룬다면 언제든지 서로의 등에 칼을 겨눌 수 있는 그런…….

수많은 경우의 수를 내놓고 있지만 그러면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탐색에 탐색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동료가 아닌 적으로서 만날 테니 말이다. 서로의 빈틈을 비집으면서 숨겨진 면을 끌어내기 위해 두 사람은 끊임없이 지략 싸움을 거듭하고 있었다.

한 가지 애석한 점이 있다면…….

태연과 수영의 경우에도, 미영과 유리의 경우에도 가장 마지막에 거론된 존재가 있다는 점이다.

그녀들의 가장 하위 순위로 밀려난 존재는 바로 효연이었다.

평소 변덕을 자주 부린다는 이유에서 마지막 날 집중적으로 공략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변덕을 곧잘 부리다가 조성된 불쌍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경우를 두고 사자성어로 표현할 수 있다.

자업자득.

달리 말하면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다.

결국 이래저래 효연은 불쌍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태연은 수영을, 미영은 유리를 각각 포섭함으로써 소녀시대 숙소 내에 묘한 움직임이 가속화되기 시작하였다.


각각 수영과 유리를 포섭한 태연과 미영은 숙소에 돌아와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한 채 자신의 할 일을 해나가고 있었다.

태연은 어리바리한 미영이 먼저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미영 또한 약간 굼뜬 면이 없지 않아 있는 태연이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서로가 어떠한 심정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그저 서로 마주치면 공평한 경쟁을 하면서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소리장도. 두 사람의 웃음 속에는 칼이 숨어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을 지은 채 스케줄을 해나가는 그녀들은 윤아를 대신 하여 드라마에 출연해도 충분히 제 몫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연기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각각 수영과 유리를 설득하는데 성공했지만 그 후로 태연과 미영은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각기 최고의 아군이라 생각하는 이들을 끌어들이느라 막대한 출혈을 감수해야 했다는 것이다.

승리를 보장 받기 위해서는 아직 3표나 더 확보해야 하는데 거기까지 출혈을 감수하면 안 된다. 수연에게 한 번, 각각 끌어들이는 인물에게 출혈을 감수했기에 더 이상 출혈을 감수하게 되면 피가 부족해서 쓰러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다른 멤버들을 출혈을 보지 않은 채 끌어들이려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자칫 잘못하다가 자신에게 끌어들이기는커녕 적에게 돌아서게 만들 수도 있었기에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을 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여기에서 먼저 움직임을 보인 것은 다름 아닌 미영이었다.

이미 최고의 지략가인 유리와 손을 잡은 미영은 나머지 멤버들을 어떻게 공략할지 결정을 한 상태였다.

그녀는 이례적으로 윤아와 주현을 미뤄두고 순규를 먼저 공략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윤아를 공략하면 주현도 얻을 수 있지만 이것은 얻는 것이 큰 만큼 잃는 것도 클 수 있다.

창현의 이야기만 나오면 상당히 민감해지는 윤아는 적절한 밑밥을 깔아놓아야 하는데 그걸 성사 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윤아를 끌어들이면 주현도 끌어들일 수 있으니 그녀에게 출혈을 감수하고 끌어들이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자신이 받은 물건을 반드시 자랑할 윤아였고, 그리 되면 주현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것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기에 윤아를 공략하는 걸 포기한 채 타깃을 순규에게로 돌린 것이다.

순규는 소녀시대 내에서 가장 늦게 합류한 멤버였지만 삼촌의 파워가 있는 만큼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는 멤버였다.

미영이 순규를 타깃으로 결정한 까닭은 순규가 강력한 파워를 간직한 것도 있지만 그녀가 아직 창현에게 큰 관심이 없다는 것도 작용하였다.

그런 만큼 최대한 상황에 객관적으로 끼어드는 것이 가능하였기에 순규를 가장 먼저 공략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미영은 태연이 라디오 스케줄을 나간 걸 확인하고는 음료수를 컵에 따라 게임을 하고 있는 순규의 방으로 들어갔다.

“헤헤! 써니야! 게임 하느라 힘들지? 자, 음료수 마셔.”

순규라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특성을 간파하여 순규가 아닌 써니로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순규의 기분을 띄워준다.

아니나 다를까, 항상 거론되던 호칭 문제도 일어나지 않은 채 순규는 미영이 내미는 컵을 받아들었다.

“오우! 마침 목이 말랐는데, 땡큐!”

그럴 수밖에 없다. 순규가 목이 어느 정도 마를 타이밍까지 세밀하게 짜서 음료수를 들고 안으로 들어간 것이니 말이다. 목이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음료수를 받지 않았다면 효과가 반감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순규는 게임에 몰두하다가 게임이 끝났는지 컴퓨터를 끄고는 몸을 돌린다. 그곳에는 미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순규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 그래, 무슨 일로 기다리고 있는 거야?”

“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어.”

“할 말? 호오! 그렇단 말이지…….”

순규 또한 만만치 않은 눈치의 소유자.

그녀는 미영이 무슨 일 때문에 자신을 기다렸는지 이해한 듯 눈을 빛냈다. 미영이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은 결국 협력을 요구한다는 것 아닌가?

그 협력 요구에 응할 생각이 있는 순규였다.

모름지기 계약이라는 것은 서로의 조건이 맞아야 하는 것 아닌가?

자신에게 맞는 조건이라면 협력을 맺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규였다. 아니면 계약 협상은 결렬되는 것이고 말이다.

“준비해온 것이 있으리라 생각해. 뭘 생각하고 있는지 제시해봐.”

의자에 몸을 묻은 채 다리를 쭉 뻗으며 말하는 순규였다.

그 모습에 미영은 역시 순규가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걸 깨닫는다. 자신의 말 한마디로 단숨에 상황을 파악하여 조건을 제시해보라는 것을 보면 말이다.

미영은 그런 순규를 보면서 자신이 준비한 조건을 꺼내놓기 시작하였다.

“사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어.”

“그래? 그럼 협상 결렬. 잘 가.”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에 바로 협상 종료를 외치는 순규였다. 자신이 얻는 것도 없는데 소중한 표를 행사할 수 없지 않은가? 확실하게 자신에게 이익이 보장되지 않으면 협상에 응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나오는 순규의 모습에 입술을 살짝 깨문 미영이 준비해온 대안을 꺼내들었다.

“이야기만 들어봐.”

“제시할 게 없다면 난 별로 할 이야기가 없는데? 일단 들어나 볼게.”

시간은 많다. 상대가 준비한 보따리를 풀어놓는 것을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느긋한 모습으로 말하는 순규를 보면서 미영은 살짝 초조한 모습을 보이더니 입을 열었다.

“딱 하나 보장해줄 수 있는 건 있어. 바로 미국에서 온 현의 한정판 앨범을 줄게.”

미영은 자신의 조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엄청난 조건으로 말이다.

“헉! 그 말 정말이지?”

순규가 경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미영에게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영이 제시한 조건이 정말 엄청났던 것이다.

제법 큰 조건을 베팅할 것이라 생각하기는 했지만 설마 이렇게 큰 걸 걸 줄이야.

창현이 미국에서 활동할 때 미영의 오빠가 우연히 창현을 만나게 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창현은 그때 만난 사람이 미영의 오빠라는 것을 몰랐지만 당시 미영의 오빠는 창현의 한정판 앨범을 얻는데 성공하였다.

무려 삼백만 장이 넘게 팔린 현의 싱글 중에서 천 장밖에 나오지 않은 한정판이었다.

그 값은 현재 판매하는 가격보다 오십 배 정도 비싼 걸 감안하면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경악하는 순규의 모습에 미영이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물론이야. 난 거짓말을 하지 않아. 단, 조건이 있어.”

“조건? 말해봐.”

그렇게 큰 것을 제시하면서 조건이 없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건을 걸지 않았더라면 너무 좋은 조건에 자신이 의심할 판이었으니까.

순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미영에게 조건을 제시해보라는 식으로 말을 했다.

“일단 나에게 반드시 표를 행사해야 할 것. 그리고 내가 피처링에 참여했을 경우에 약속을 지킬 거야.”

단순히 표를 행사하는 것만으로 큰 출혈을 감수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미영은 약간 술수를 부렸다. 순규의 표를 확실하게 받아내면서 자신이 당첨될 경우에 주겠다고 언급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신이 피처링에 참가하지 못하더라도 출혈을 피할 수 있으니 손해를 보지 않게 된다.

여러 가지 노림수가 숨어있는 미영의 대안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순규가 거세게 반발했다.

“잠깐! 그렇다면 내가 받지 못할 확률이 반이라는 거잖아! 나한테 불리해! 그런 조건이라면 하지 않겠어. 아직 애들도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마당에.”

순규는 미영이 자신에게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완강한 모습을 보였다. 자신이 표를 행사해봤자 한 표밖에 되지 않는데 나머지 표를 어떻게 얻어낸단 말인가? 얼핏 보면 흥미가 동하는 제안이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날로 먹으려는 심보였다.

그 반발에 미영이 입가에 미소를 띠더니 말한다.

“아니야. 써니 네가 두 번째야.”

그 말을 들은 순규가 순간 멈칫한다. 자신이 두 번째라는 말에 반응을 보인 것이다.

“…내가 두 번째라고?”

“응. 이미 유리도 설득했어.”

“말도 안 돼…….”

수연이 내기를 선언한지 이틀째가 되는 날이다. 그런데 벌써 한 명을 설득시키고 자신을 설득하고 있는 것이라고?

놀라우리만치 빠른 속도에 순규는 전율이 일어나는 걸 느꼈다. 이런 무시무시한 속도라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유리를 비롯한 자신이라면 벌써 표를 두 개나 확보한 셈이다. 거기에 한 사람만 더 확보를 하게 되면 최소한 동률을 이루게 된다.

아직 기간이 5일이나 남은 것을 감안하면 미영이 이길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렇게 빠르게 움직일 줄이야. 그렇다면 가능성이 있어.’

순규는 미영이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태연의 경우 어떨지 모르나 5일이란 시간은 충분한 굳히기를 하기에 충분하다. 유리가 자신과 비슷한 조건을 제시 받았다면 배신을 할 가능성이 없으니 자신까지 하면 확실한 표 두 개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길 자신 있는 거지?”

그 물음에 미영이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한다.

“물론이야. 이 추세면 내가 5대1 혹은 4대2로 이길 수 있어.”

확신이 깃든 미영의 목소리였다.

그 대답을 들은 순규는 마음을 굳혔다. 비록 조건부 제안이지만 걸린 것이 작지 않고 아직 5일이나 남은 것을 감안하여 미영에게 올인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좋아, 난 너에게 투표를 하도록 하겠어. 그 대신 반드시 이겨야 해. 알았지?”

“응! 나만 믿어.”

순규를 설득하는데 성공한 미영이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두 번째 표를 획득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미영은 방으로 돌아오면서 입가에 지은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녀가 순규에게 조건부 제안을 한 것은 다 속셈이 있어서 그렇다.

약간 게으른 면이 없지 않아 있는 순규는 그냥 조건을 걸면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아니, 나중에 슬쩍 말을 바꿀지도 모르는 위험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조건부 제안을 하게 되면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미영이 승리를 해야 순규가 앨범을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되면 순규도 자신의 승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박에 없으리라.

간단한 계획이지만 이 계획을 수립하느라 유리와 무려 두 시간 동안 계획을 세워야만 했다. 순규의 전반적인 성격을 파악하고, 그녀가 어떻게 나올지, 그녀가 어느 선에서 허락을 해야 할지 다 상황을 만들고 예측을 해본 것이다.

무척 큰 조건을 건 것처럼 보이지만 조건부 제안이기에 큰 부담은 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큰 부담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피처링을 따낸다는 것은 창현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자신의 인지도 또한 비약적으로 올릴 수 있는 상황. 그러니 한정판 앨범을 아낄 상황도 아니었다.

그러나 무려 현의 한정판 앨범이다. 그걸 너무 쉽게 내주는 것에 의아함을 느낄 수도 있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은 미영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 순규야. 후후후!”

사실 미영이 내건 조건에는 치명적인 점이 한 가지 존재한다.

미영이 순규에게 주겠다고 했던 한정판 앨범이란 건 사실 뻥이었다. 한정판 앨범이 아닌 일반 앨범을 줄 생각이었으니까.

리스닝은 되지만 리딩은 안 되는 순규의 맹점을 파악하여 이용하려는 미영이었다.

미쳤다고 현의 한정판 앨범을 순순히 내주겠는가? 절대 그럴 생각이 없는 미영이었다. 그렇기에 순규를 꼬드겨서 대 사기극을 벌인 것이다. 그렇기에 한 점 망설임도 없이 조건을 내건 것이다.

순규가 나중에 일반 앨범이라는 것을 알아차려도 어쩔 수 없다. 그때면 이미 투표는 끝나있을 때고, 자신은 승리를 했을 테니까. 거기에 자신도 한정판인 줄 알았다고 하면서 억울한 표정을 지은 채 오빠를 원망하는 액션을 취해주면 된다.

그리 되면 욕을 먹겠지만 뭐, 이 자리에 없는 만큼 괜찮지 않겠는가?

승리를 위해 가족까지 이용하는 미영이야 말로 승리를 위해 어떠한 수라도 이용하는 유형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괜히 순규만 불쌍해진 셈이다.


미영이 순규를 악랄한 수(?)로 꼬드기고 있을 때 윤아는 창현과 함께 있었다. 3월 3일 드라마 제작 발표회에 이어 드디어 드라마 첫 촬영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5월에 방영이 결정된 [소년왕]은 3월 중순부터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5월 방영 때쯤에는 최소 10화 정도를 촬영한 뒤 상태를 보고 편수를 늘릴지, 아니면 조기종영을 할지 결정을 내리리라.

드라마 촬영을 하기 위해 촬영장에 도착한 창현은 윤아를 만나서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있었다.

그리고는 윤아의 말을 듣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그러니까 갑자기 내기를 붙은 셈이네요?”

윤아에게 이야기를 들으며 창현이 웃음을 터뜨리자 이야기를 하는 윤아도 탄력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수연 언니가 아주 멋진 내기를 한 거지. 그래서 덕분에 우리는 편해졌어.”

좋게 말하면 태연과 미영이 멤버들에게 봉사를 하는 것이지만 그냥 정상적으로 말하면 귀찮은 일을 대신해주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 셈이었다. 그래서 불과 이틀 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멤버들은 너무 편해져서 좋아하고 있었다.

심지어 주현마저도 언니들의 배려에 ‘이런 것이야 말로 진정한 협동이에요!’ 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창현은 웃음을 지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어요. 저는 수연 누나가 갑자기 선택권을 달라고 해서 놀랐거든요. 어차피 노래를 부르는 것은 수연 누나니까 피처링을 누가 맡던 간에 상관 없다고 해서 권한을 준 거예요. 아무래도 멤버들 간에도 편한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그랬거든요.”

그 말에 윤아가 고개를 저으며 부인했다.

“아니야. 우린 다 친해. 특히 수연 언니는 태연 언니랑은 보컬 트레이닝을 자주 받았어. 메인 보컬이잖아. 그리고 수연 언니는 미국에 와서 초기에 적응하지 못한 미영 언니하고 시간을 많이 보냈고. 그래서 고루고루 친하다고 볼 수 있어.”

“그래요? 신기하네요. 여자들이 모이면 질투가 심하다고 들었거든요.”

신기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창현의 모습에 윤아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데뷔 전에는 그랬지.”

실제로 데뷔 전에는 무척 질투가 심했다.

연습생들 사이에 암묵적인 다툼도 많았고, 견제와 견제의 연속으로 인해 회사를 나간 연습생도 무척 많았다. 특히 지금의 소녀시대가 확정되기까지 수많은 과정이 존재했기에 그 과정에서 질투가 없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긴 연습생 기간 때문일까?

데뷔를 하고 나서는 질투라고 할 것도 그리 없었다.

모두 고생했으니 모두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랄까?

물론 어느 특정 멤버가 잘 나가면 질투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하지만 오랜 시간 함께 했기에 그걸 금방 알아차리고 위로를 해주는 상황이었다. 데뷔 이후 가장 크게 갈등이 불거진 것이 수연의 그것이었으니 말이다.

윤아의 미소에서 창현은 자신이 모르는 많은 것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데뷔 이후에 그러기가 더 쉽지 않다고 봐요. 그 점은 대단하네요.”

“후후후! 그건 그래.”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는 거야?”

창현과 윤아가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아서일까?

방금 전 촬영을 끝낸 근영이 다가와서 묻는다.

그러자 창현이 근영을 맞이하면서 말한다. 근영이 이십대 초반이기에 또래로는 창현과 윤아가 유일했다. 그랬기에 근영은 창현과 윤아와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창현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근영을 무척 살갑게 대하고 있었다.

근영이 다가오자 창현이 입을 열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서요.”

그러면서 소녀시대 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암투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근영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그런 일도 있구나. 역시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재미있게 노네.”

“하하! 그러게 말이에요. 아마 윤아 누나는 365일 심심하지 않을 거예요.”

“그건 맞는 말이라서 뭐라고 말을 못하겠네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윤아도 동감하는 바였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하자 창현과 윤아가 웃음을 지었다.

그러다가 근영이 창현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런데 피처링 부분을 둘 중 아무나 해도 되는 거야? 잘 맞는 것이 중요하면 한 명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근영의 물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피처링을 맡는 사람이 어떤 음색을 지니고, 어느 정도의 실력을 지녔느냐에 따라 노래가 상당히 달라진다. 그렇기에 의문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였다.

“그건 맞는 말이긴 한데 뚜렷한 기획을 하지 않았어요. 가령 제시카 누나가 메인을 맡고, 태연 누나나 티파니 누나가 피처링을 맡게 되면 각자의 매력을 발산하게 하면 되는 거거든요. 제가 두 사람을 꼽은 건 두 사람 모두 제시카 누나를 돋보이게 하면서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기에 두 사람 중 아무나 좋다고 한 거예요.”

소녀시대와 멤버들의 이름을 알고 있지만 실명을 모르는 근영을 위해 수연을 제시카로, 미영을 티파니로 부르는 창현이었다.

“그렇구나. 그런 것도 있었어. 역시 대단한데?”

자신이 의문을 느끼던 부분을 창현이 그럴 듯하게 설명하자 근영이 감탄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본다.

그러자 창현은 빙긋 웃음을 지으며 콧대를 높게 세운다.

“당연히 대단하죠. 제가 누군데요.”

장난스레 잘난 척하는 창현의 모습에 근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휴! 팬들이 그 모습 보면 아주 깬다고 할 거야.”

그 말에 윤아가 동의하는 듯 의견을 보탰다.

“팬들 앞에서는 완전 내숭 덩어리에요. 또래 애들하고 다를 게 없다니까요? 아니, 그냥 초등학생이에요. 강초딩.”

즉석으로 창현의 별명을 지어서 부르는 윤아였다.

그 별명에 창현이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말한다.

“그게 뭐에요. 초딩은 누나 별명이잖아요. 임초딩이 다른 사람한테 초딩이라 부르다니! 정말 세상이 말세다! 말세로다!”

창현의 말에 윤아가 눈을 치뜨며 그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뭐라고? 너…….”

“스톱! 어라? 저기 태연 누나가 오네요? 무슨 일로?”

윤아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 뒤로 물러서던 창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 뒤로 물러서던 것을 멈추고는 한 곳을 바라보며 말한다.

“뭐라고? 태연 언니가? 거짓말 치지… 저, 정말이네?”

창현의 말이 자신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한 수작이라 생각한 윤아가 거짓이라고 외치며 창현에게 달려들려고 할 때, 속는 셈치고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태연이 윤아에게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윤아가 자리에서 멈춰선 채 태연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짓는다.

“태연 언니? 어떻게 여길?”

“아, 윤아야. 후우! 너 드라마 촬영 끝났다면서? 나도 돌아가는 중이어서 굳이 차를 두 대 동원할 필요없이 이곳에 들렸다가 오게 된 거야.”

달려와서 숨이 찬 듯 태연이 숨을 고르면서 윤아에게 말한다.

그러자 윤아가 태연의 말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구나.”

“후우! 그런 거야. 앗! 문근영이다! 헉!”

그러면서 윤아에게 시선을 옮기던 태연은 그녀 뒤에 근영이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놀라서 소리쳤다가 이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근영에게 다가가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서…….”

마치 일반인이 연예인을 보고 놀란 듯한 모습을 보이는 태연의 모습에 근영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태연을 보면서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소녀시대의 리더 태연 씨죠? 문근영이라고 해요. 잘 부탁드려요.”

“네, 넵! 소녀시대의 리더 태연이라고 합니다. 나오신 드라마나 영화 너무 잘 봤어요. 제가 두 살 어리니 편하게 불러주세요.”

나이 차이는 얼마 나지 않지만 데뷔부터 시작하여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좁힐 수 없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했다. 그렇기에 태연은 근영이 자신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이 불편하여 편하게 대하길 원했다.

“그래도 될까요?”

“물론이죠.”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근영이 입가에 지은 미소를 더욱 짙게 띠면서 말한다.

“그럼 편하게 부를게. 대신 태연이도 나한테 언니라고 불러. 윤아랑은 이미 많이 친해져서 소녀시대가 예쁜 여동생 같거든.”

화끈하게 호칭을 정립해주는 근영의 모습에 태연도 미소를 지었다. 선배인 근영이 적극적으로 나서주니 태연으로서도 마음이 한결 편했다.

“전 영광이죠. 멤버들도 좋아할 거예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근영 언니.”

“그래, 귀여운 동생이 생겨서 좋네. 정말 스무 살이야? 아직 고등학생으로 보여.”

“…그걸 언니가 하시면 이상하잖아요.”

동안이 동안에게 어려 보인다고 말하니 무언가 상당히 어색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창현과 윤아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려 보인다고 하면서 정작 자신은 어려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모습이 뭐랄까, 매우 부러우면서도 재미있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 모습을 강하게 지켜보고 있던 창현이 태연에게 말한다.

“그나저나 수연 누나가 내기를 제안했다면서요? 어때요?”

“응? 피처링 내기 말이야?”

피처링 맡기로 한 내기를 윤아가 이야기한 듯하다.

태연의 반응에 창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태연은 입가에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훗! 설마 어리바리한 티파니와 내가 경쟁이 된다고 생각해? 어림도 없지. 암! 그렇고말고.”

아직 태연은 와룡파니, 제갈파니라 불리는 지력 99의 소유자 미영의 실력을 모르고 있었다. 이미 유리를 꼬드기고, 순규를 속여 2표를 획득했다는 걸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슬프게도 지금 태연의 상황은 속담과 정확하게 들어맞고 있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미영의 진가를 모르기에 이런 강한 자신감을 보일 수 있는 것이리라.

강한 자신감을 보이는 태연의 모습에 창현도 피식 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건투를 빌게요. 누구를 딱히 응원하지는 않을 테지만요.”

“당연히 내가 이긴다니까? 그러니 준비를 해두는 게 좋을 거야. 후후후!”

나름 음침하게 웃는답시고 손을 가린 채 음산한 웃음소리를 흉내 내는 태연이었다.

그걸 본 근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태연아 그렇게 웃지 마. 음침한 게 아니라 초등학생이 키득거리는 것 같아.”

“헉! 저, 정말요?”

자신은 나름대로 음침한 걸 흉내냈는데 그게 안 되나보다.

근영의 말을 들은 태연은 바로 웃음을 멈추고는 나름 꼿꼿한 자세를 취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창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째 승리를 자신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딱히 압도적으로 이길 것 같은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창현이 무언가 떠오른 듯 태연에게 말한다.

“그나저나 윤아 누나 데리러 온 거 아니었어요? 로드 매니저분이 기다리다가 지치겠네.”

“헉! 맞다! 까먹고 있었네 윤아야, 가자! 근영 언니, 창현아! 다음에 또 만나!”

그러면서 태연이 윤아를 끌고 사라지려했지만 완강하게 버티며 소리치는 윤아의 모습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자, 잠시 만요, 언니! 저 아직 갈 준비 다 안 됐다고요!”

“그, 그래? 그럼 어서 준비하도록 해.”

그렇게 말한 태연은 창현과 근영을 힐끗 보고는 시선을 마주하지 못한다. 간다고 해놓고 어물쩍거리게 되었으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잠시 후, 갈 준비를 마친 윤아와 함께 촬영장을 벗어나는 태연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창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은 압승을 예견했지만 창현이 보기에는 태연이나 미영이나 딱히 누가 압도적인 것 같지 않았다.

‘박빙이겠군.’

그런 생각을 하는 창현이었다.

그의 예상처럼 두 사람의 대결은 박빙이라 할 수 있었다.

다만 창현은 낮은 수준에서 박빙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상상을 뛰어넘는 권모술수가 오고가는 박빙의 대결이었지만 말이다.


벤을 타고 숙소로 돌아가던 중, 태연이 윤아에게 물었다.

“드라마 촬영은 할 만해?”

“딱히 어려운 건 느끼지 못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제 시작 단계라서 아직 모든 걸 파악하기에는 조금 이른 감이 없지않아 있어요.”

아직 드라마 시작 단계라서 그런지 고난이도 연기력을 요구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간단하게 오프닝 장면을 찍었다라고 할까? 그랬기에 윤아는 특별한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 상황이었다.

어느 정도 연기수업을 받기는 하지만 추후 연기자를 하려는 것이 아닌 태연은 아직 연기가 쉽고 어렵고를 잘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연기라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래, 드라마 잘 찍어야 소녀시대 인지도 올라가는 거 알지? 아, 부담주려는 게 아니라 힘을 내라는 뜻이야.”

“네, 열심히 해야죠. 모든 능력을 다 발휘해볼 생각이에요.”

주먹을 불끈 쥐며 굳은 각오를 다지는 윤아였다.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짓는 태연이었다.

그러다가 그녀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윤아에게 말한다.

“그러고 보니 누구에게 투표할지 생각해봤어?”

태연의 물음에 윤아가 흠칫하면서 대답한다.

“투표요? 글쎄요…….”

윤아와 단 둘밖에 없는 지금 이 기회를 놓칠 태연이 아니다.

아니, 이 둘밖에 없는 상황은 사실 태연이 조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래 회사에서는 윤아를 데려오기 위해 다른 차를 동원하려고 했는데 태연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약간 돌아서 가더라도 윤아와 함께 타고 오겠다고 하였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기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투표에 들어서게 되면서 윤아의 가치는 무척 커졌다. 윤현 커플이라고 할 정도로 윤아와 주현의 사이가 워낙 친밀했던 것이다. 윤아를 먼저 설득하는데 성공하면 자연스레 주현의 표도 얻어내기가 한결 쉬워진다. 이것은 태연과 미영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늘 스케줄이 없는 미영은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순규를 먼저 설득하기로 결정을 내린 상황이었고, 태연은 오늘 기회를 살려 윤아와 주현의 표를 한 번에 획득할 생각이었다.

윤아가 반응을 보이며 말끝을 흐리자 태연은 침착하게 준비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딱히 부담주려고 하는 말이 아니야. 어차피 누군가는 투표를 해야 되는 거 알지?”

“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윤아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누구에게 투표를 할지 고민이 되었던 것이다.

리더로서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듬직한 모습으로 자신들을 이끌어주는 태연도 태연이고, 늘 빈틈 있는 모습으로 멤버들에게 편한 마음과 웃음을 주는 미영 또한 소중한 언니였다.

그렇기에 윤아는 누구를 찍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누구 한 명을 선택하게 되면 다른 한 명을 배신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기권을 할까 생각도 할 정도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태연은 한눈에 윤아가 고민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는 은근한 어조로 윤아에게 말했다.

“고민을 하고 있는 거지? 다 알아.”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한 태연의 모습에 윤아가 고개를 살며시 끄덕인다.

“고민이 너무 깊어져서 누가를 찍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태연 언니도 좋고 미영 언니도 좋아서…….”

“너무 깊게 고민 하지마. 익명이 보장되는 투표잖아? 자신의 마음이 가는대로 선택을 하면 돼. 그리고 나는 지금 윤아 너의 표를 얻어내려고 하는 거야.”

솔직하게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는 태연이었다. 지금 고민에 빠져서 약간 감성적으로 변하게 된 윤아에게 진실 되고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제 표를요?”

“그래. 이번 피처링은 반드시 내가 하고 싶거든. 그걸 위해서는 윤아 너의 힘이 필요해.”

“하지만 미영 언니도 하고 싶어 할 거 아니에요.”

어차피 하고 싶어하는 것은 태연이나 미영이나 모두 동일하다. 그렇기에 태연의 말에 반박하는 윤아였다.

그러자 태연이 윤아에게 강한 어조로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할 건데?”

“그, 그건…….”

말끝을 흐리는 윤아. 무어라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차피 두 사람이 다 하고 싶어 하지만 결국 하는 사람은 한 명이다. 그렇기에 자신 또한 둘 중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이다.

윤아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태연이 은근한 어조로 설득하였다.

“미영이가 어떻게 할지 모르지만 수연이가 내기 시작을 알리고 나서 내가 무척 잘해줬지?”

“네…….”

확실히 내기가 시작되고 윤아에게 가장 잘해준 것이 바로 태연이었다. 미영도 어느 정도 배려를 해주기는 했지만 태연에 비하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치? 솔직히 지금만 그런 게 아니잖아. 평소에도 내가 일찍 일어나서 너희들 깨워주고…….”

그렇게 말을 하면서 시작된 것이 바로 자신이 평소에 했던 것들을 윤아에게 각인시켜주기 시작하였다.

스케줄을 챙기는 것부터 시작하여 아침에 깨워주고, 식사 당번 맡은 멤버들을 도와주고, 멤버들을 독려하기까지… 수많은 것들을 태연을 거치면서 멤버들이 불편하지 않게 이런저런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듣자 윤아는 태연에게 급격히 고마운 감정이 들었다. 태연이 평소에 이렇게 많이 자신들을 배려해주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태연이 노린 것이다. 윤아에게 자신이 그동안 고생한 점들을 늘어놓아 그녀에게 미안한 감정을 심어주고, 그 틈을 타 자신에게 마음을 기울어지게 만드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이미 수영을 설득하면서 한 차례 출혈을 본 상황이었기에 태연은 그동안 자신이 쌓아온 공적을 가지고 윤아를 설득하려는 속셈이었다. 물질적인 것으로 현혹하는 것이 아닌, 마음 속 깊은 곳을 공략하는 고도의 전략이었다.

그리고 그 전략은 먹혀들었다.

태연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겨있던 윤아가 결단을 내린 것이다.

“알겠어요. 그럼 저는 언니를 찍도록 할게요. 그동안 저희들을 그렇게 보살펴주셨는데 이 정도는 당연한 것 같아요.”

자신의 의도가 정확하게

“고마워, 윤아야! 내가 이 은혜 꼭 잊지 않을게.”

“주현이한테도 이야기 해볼게요. 아마 주현이도 언니한테 평소 고마움을 많이 느끼고 있어서 언니를 찍을 거예요.”

태연의 설득이 필요 이상으로 먹혀드는 순간이었다. 그야 말로 일타이피, 윤아를 공략함으로써 주현까지 공략하게 된 상황이었다.

활짝 웃음을 지은 태연이 윤아를 끌어안았다.

“고마워, 윤아야! 넌 내 은인이야.”

“미영 언니에게는 미안하지만… 언니가 평소에 고생을 많이 했으니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윤아의 생각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태연은 활짝 웃음을 지었지만, 그렇게 유도한 자신의 행동 때문인지 한줄기 미안한 감정이 생겨났다. 그러나 그 감정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이래나 저래나 상관없지 않은가? 일단은 당장의 승리가 중요할 뿐이었다.

윤아에게는 나중에 그 보답을 두둑하게 해주면 되는 것이고.

계획한 전략이 주효하게 됨으로써 한발 앞서 나가게 된 태연이었다.


숙소에 도착한 태연은 윤아에게 그 사항을 일단 비밀로 해달라고 하였다. 윤아 또한 미영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비밀로 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주현에게 설득을 해보겠다고 한 뒤 방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태연과 윤아가 숙소로 돌아오자, 스케줄을 위해 나갔던 멤버들도 돌아오기 시작했다.

멤버들 중 저녁을 먹은 사람도 있고, 먹지 않은 사람도 있었기에 먹지 않은 사람들은 간단하게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먹기로 하였다.

“내가 나가도록 할게.”

그리고 태연이 멤버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자신이 나가겠다고 자청을 하였다.

“나도…….”

“내가 갈게.”

태연이 나서자 미영이 나가겠다고 했지만 그 말을 끊고 들어오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유리였다.

“유리 네가? 갑자기 왜?”

태연도 유리가 먼저 나서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평소 나가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유리였기에 그런 것이다.

그러자 유리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한다.

“오늘 하루 종일 숙소에 있어서 바람 좀 쐬고 싶어서. 미영이 넌 쉬어. 내가 갔다올게.”

“알았어…….”

강하게 말하자 미영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유리가 나가겠다고 결정이 된 순간, 미영과 유리의 시선이 순간 허공에서 얽혀들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둘 사이에 수많은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그리고 유리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미영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순순히 물러선다. 그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기에 그렇다.

그렇게 태연과 유리가 숙소를 나섰다. 이제 제법 생겨난 사생팬들을 피하기 위해 능숙하게 변장을 하고 숙소를 벗어난 두 사람이 근처 편의점에 들려 도시락을 사고, 마트에 들려 먹을 만한 것들을 산다. 편의점에서 산 것은 당장 때울 식사였고, 마트에서는 필요한 생필품들을 사는 것이었다. 밑반찬 같은 것은 회사에서 고용된 아주머니가 만들어주시고는 하지만 가끔은 집에서 파는 것 말고 밖에서 파는 것을 먹고 싶지 않은가?

마트에서도 물건을 모두 구입한 태연과 유리가 숙소로 돌아오기 시작하다.

숙소로 돌아오던 도중 저 앞에 벤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태연이 유리를 힐끗 보더니 입을 열었다.

“유리야, 잠시 나랑 이야기 좀 해.”

“이야기? 그래.”

태연의 말에 유리는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보며 태연은 유리가 자신의 행동을 예측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법 설득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상관없지 않은가? 유리만 설득하면 자신의 승리니까. 제법 출혈을 일으키더라도 확실한 승리만 보장받을 수 있다면 출혈을 감수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태연과 유리가 놀이터로 향하기 시작했다.

점점 편 가르기가 가속화되면서 접점이 겹치기 시작하였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이라 볼 수 있다.


두 사람은 벤치로 향했다.

아파트 인근이었기에 사람들이 있었지만 서서히 어둑어둑해지는 상황이었기에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얼굴을 알아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에게 정체를 들킬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듯 싶었다.

게다가 제법 많은 물건을 구입한 상황이었기에 상당히 팔이 아팠다.

태연과 유리는 벤치에 다가가 옆에 짐을 내려놓고는 팔을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는 어느 정도 힘이 돌아오자 태연은 비닐봉지를 뒤적이더니 캔 커피를 꺼내서 유리에게 건넨다.

“자, 받아.”

“땡큐! 서비스 좋네?”

유리의 의미심장한 말에 태연이 싱긋 웃음을 짓더니 어깨를 으쓱한다.

“나야 항상 그렇지.”

“호오…….”

유리에게서 묘한 콧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런 유리를 바라보면서 태연이 캔 커피를 딴 뒤 한 모금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무슨 이유 때문에 유리 너와 이야기 하자고 한 건지 알 거야.”

“대충 짐작은 하고 있어.”

미영의 접근을 알아차린 유리가 태연의 행동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유리가 알아차린 듯하자 태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캔 커피 한 모금을 마신 뒤 말을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나는 유리 네가 나에게 표를 주었으면 좋겠어.”

말 그대로 단도직입적으로 나오는 태연이었다.

그 말에 유리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하는 태연의 모습에서 쉽사리 물러날 것 같지 않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유리가 태연을 떠보기 위해 입을 열었다.

“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데?”

요컨대 네가 나에게 어느 정도 해줄 수 있느냐는 뜻이었다. 바꿔 말하면 네가 해주는 것에 따라 정하겠다는 의미가 담기기도 하였다.

제법 만만치 않은 화술을 구사하는 유리였다. 자칫 태연이 그 말을 놓치고 말을 하다가는 유리의 페이스에 휘말려서 밑천을 다 털릴 것임이 분명했다.

지력 99 미영에게 밀리지 않는 유리의 화술이 본격적으로 발휘되기 시작한 것이다.

태연은 유리의 물음에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태연한 기색으로 유리에게 묻는다.

“어느 정도를 원하는데?”

“…….”

예상을 뛰어넘는 대답이었다. 저 태연의 대답은 한 차례 뒤흔들기 위해 언급한 유리의 의도를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유리는 태연의 저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 또한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만만치 않군. 과연, 꼬꼬마리더. 키는 꼬맹이여도 만만하게 볼 수 없어.’

그렇게 생각하면서 유리는 태연의 말에 대답을 해주었다.

“나야 당연히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안 그렇겠어?”

팽팽한 신경전의 연속이었다. 먼저 말하라는 유리의 말에 태연은 살짝 턱짓을 하면서 말한다.

“네가 원하는 선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원하는 선을 제시하면 그에 맞게 제시를 하도록 할게.”

“흐음! 일단 생각하고 있는 선이 있으리라 생각해. 그 선을 내게 말해줘.”

밀어붙여서 태연을 뒤흔드는 것이 힘들다고 판단한 유리가 한 발자국 물러선 모습을 보인다.

그러자 태연도 거기서 더 전진하지 않은 채 유리의 질문에 대답한다.

“내 애장품 중 하나를 희생할 각오도 있어.”

강력한 조건을 제시하는 태연이었다. 그녀의 애장품이라면 수연조차 탐낼 정도로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만큼 태연이 피처링에 걸고 있는 기대는 크다는 뜻이었다.

유리도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태연을 바라본다.

“제법 센데? 그렇게 애장품을 퍼주다가는 무사하지 못할 텐데.”

태연의 상황에 대해 떠보기 위해 언급하는 유리였다.

하지만 태연은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다.

“그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어. 내게 중요한 건 유리 네가 나에게 협력을 할 것이냐, 아니면 협력을 하지 않을 것이냐야.”

“흐음!”

생각에 잠기는 유리였다. 미영에게 제시 받은 조건도 괜찮았지만 태연이 내건 조건도 만만치 않았다. 무엇을 골라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로 두 조건은 막상막하였다.

고민에 잠기는 유리를 보면서 태연은 그녀를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효연이한테 희망을 걸어야 하나?’

하지만 변덕이 심한 효연은 말 그대로 마지막 수였다. 결정적일 때 그녀가 마음을 바꾸게 되면 일을 완전히 그르치게 되니 말이다. 그런 만큼 효연은 보험이었고, 가장 확실하게 네 명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유리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순규를 설득하는 수밖에.’

평소에 깝율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깐죽거리는 유리였기에 아무래도 순규보다 쉽게 설득이 되리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을 보니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도 태연은 자신 있었다. 자신이 제시한 조건이 센 만큼 유리가 받아들일 것이란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아니, 유리가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똑같은 조건으로 순규를 낚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까. 다만 겹치게 되면 자신의 출혈이 너무 커지므로 한 사람을 확실하게 확보하고 한 사람을 버리는 패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남은 캔 커피를 모두 마신 태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유리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결정을 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너무 생각이 길어지면 그러니까 내일까지 신중하게 생각을 한 다음에 대답해줘. 이 정도면 충분하지?”

태연의 배려에 유리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음! 충분해. 알았어. 내일까지 결정을 내리도록 할게.”

그렇게 말한 유리도 남은 캔 커피를 모두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는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리고 태연과 함께 숙소로 올라간다.


숙소에 도착한 두 사람이 사온 도시락으로 저녁을 해결한 소녀들은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이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 모습이 재미있단 말이지.”

그 모습을 보면서 수연은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느긋하게 관전하고 있기 때문일까?

수연의 눈에는 누가 미영에게 포섭이 되었고, 누가 태연에게 포섭이 되었는지 보였다.

현재 상황은 그야 말로 백중지세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흥미로웠다. 축구를 볼 때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는 것보다 비슷한 점수로 치열한 게임을 벌여야 더욱 스릴 있고 재미있지 않은가? 그런 만큼 태연과 미영의 대결이 심화될수록 수연에게는 새로운 재미를 가져다 줄 뿐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본격적으로 스케줄을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다.

미영과 효연은 케이블 방송을 위해 아침 일찍 스케줄을 떠났고, 태연과 수영, 유리, 순규는 공중파 방송을 위해 뒤이어 나갔다.

그러자 남은 것은 수연과 윤아, 주현 셋이었다. 세 사람도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있다가 스케줄을 떠나야 한다.

윤아는 드라마 촬영을 하러 가야 했고, 수연과 주현은 다른 공중파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둘이 있을 틈을 만들어야 하는데.’

느긋하게 TV를 보는 수연을 힐끗 보면서 윤아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녀가 주현과 단 둘이 있을 기회를 기다리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주현을 설득하기 위함이었다.

어제 태연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윤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한태연교의 제일교도로 임명된 상황이었다. 그동안 태연이 리더로서 수많은 고충을 겪으면서 멤버들을 위해 알게 모르게 수많은 배려와 양보를 아끼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윤아는 태연이 반드시 잘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혔다. 그렇기에 주현을 반드시 설득하여 태연에게 투표를 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본인은 미처 자각하지 못하고 있지만 윤아는 주현을 무한태연교 제이교도로 삼을 생각이었다.

아침부터 멤버들이 나갈 때까지 이래저래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만 좀처럼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스케줄을 할 시간이 다가오자 윤아는 마침내 기회를 포착할 수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먼저 씻고 독서를 하는 주현과 달리 수연은 스케줄 나갈 시간에 임박해서야 씻는 것이었다.

오늘도 수연은 씻지 않은 상황이었다.

힐끗 시간을 살피니 수연과 주현이 스케줄을 위해 나가야 할 시간이 머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조금 있으면 수연이 씻으러 간다는 뜻.

윤아는 그 순간이 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녀가 이렇게 초조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보수적인 면을 보이는 주현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그렇다. 수연이 먼저 다 씻는 사이 주현을 설득하지 못하게 되면 상황이 먼저 종료되는 어처구니없는 순간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1초가 1분 같이 흘러가는 사이, 기회는 마침내 찾아왔다.

“언니, 얼른 씻어야죠. 안 그러면 늦어요.”

“조금만 더… 시간이 늦었네, 알았어.”

더 이상 지체하면 되지 않는 상황이 닥치자 주현이 수연을 재촉하였고, 언제나처럼 조금만 더!를 외치던 수연이 시간을 확인하고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는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기회다!’

눈을 반짝인 윤아가 주현을 바라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주현도 윤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일까? 설마 생각이 통하기라도 한 것일까?

윤아는 묘하게 느낌이 좋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는 주현에게 먼저 입을 열었다.

“주현아, 잠시 이야기 좀 할까?”

“이야기요? 저도 언니에게 할 이야기가 있었는데. 잘 됐네요, 방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해요.”

“나야 좋지.”

안 그래도 수연이 언제 다 씻고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설득 작업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불안요소로 작용하고 있었기에 윤아는 주현의 말을 순순히 수락하였다. 그리고는 주현과 함께 방안으로 들어왔다.

딸칵.

방안으로 들어온 주현은 방문을 잠갔다. 방에 들어오지 못하면 목소리가 웬만큼 크지 않은 이상 엿듣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그렇기에 윤아는 한결 마음이 놓이는 것을 느끼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 맞은편에 주현이 앉았다.

자신이 해야 할 행동들을 주현이 알아서 해주자 윤아는 무척 느낌이 좋았다. 윤현 커플 라인이 데자뷰가 통하는 것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윤아의 맞은편에 앉은 주현이 윤아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셨죠? 먼저 이야기 하세요.”

예의 바른 주현답게 먼저 윤아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윤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윤현 커플의 데자뷰가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해야 할까? 그 욕심에 윤아는 주현에게 방긋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아니야, 주현이 너도 할 이야기가 있다며? 먼저 이야기 해봐. 내가 듣고 난 뒤에 이야기를 하도록 할게.”

“음!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저부터 이야기 하도록 할게요.”

잠시 멈칫하던 주현은 윤아의 제안을 수락하고는 침묵에 빠진다. 할 말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잠시 후,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끝났는지 주현이 윤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언니.”

“응, 왜?”

주현이 무슨 이야기를 꺼낼지 기대하며 대답하는 윤아였다.

그러나 그녀는 이어진 주현의 말에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미영 언니에게 표를 주는 게 어떨까 싶어서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

주현의 말을 들은 윤아는 표정을 굳혔다. 설마 주현이 이런 말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한 것이다. 설마 미영에게 벌써 설득을 당한 것이란 말인가?

예상외의 상황에 윤아가 표정을 굳힌 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쩔 줄 몰라 했다.

설마 주현이 이런 말을 할 줄이야.

윤아의 계획이 완전히 어긋나는 순간이었다.

어찌 되었든 확실한 사실은 한 가지 있다.

윤현 커플의 생각은 한 가지로 통했다는 점이다.

그것이 비록 서로가 반대 파벌에 속하게 되어 서로가 서로를 끌어들이려는 것이었지만…….

이것도 어찌 보면 놀라운 것이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태연과 미영의 대결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주, 주현아. 다시 한 번 말해볼래?”

윤아는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이 사실인지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주현이가 무슨 말을 한 것이란 말인가?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윤아에게 주현은 다시 한 번 말을 한다.

“언니가 미영 언니에게 표를 주면 어떨까 싶어서요. 아직 정하신 거 아니지 않은가요? 이미 정하셨어요?”

“그, 글쎄? 하하…….”

주현의 말을 들은 윤아는 순간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머쓱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주현이 살짝 표정을 굳힌 채 윤아에게 말한다.

“웃음만 짓지 말고요. 전 언니를 설득할 생각이라니까요.”

“그래, 이유나 알고 결정하자. 도대체 왜 미영 언니야?”

“그건…….”

순간 말문을 흐리는 주현이었다. 보통 주장을 할 때 명확한 근거를 대면서 말을 하는 평소 그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무언가 있어!’

머뭇거리는 주현의 모습에 눈을 빛내며 주현을 바라보는 윤아였다. 저렇게 머뭇거리는 것은 무언가 명쾌한 이유가 없다는 뜻이었다.

“말 못할 이유라도 있는 거야?”

주현을 곧장 몰아치는 윤아였다. 딱히 상대방을 휘두르는 말 재주가 없어도 지금이 기회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게 그러니까요…….”

뭐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주현은 말을 할 수 없었다. 평소 윤아라면 따뜻한(?) 어조로 자신에게 왜 미영 언니에게 표를 줘야 하냐고 이유를 물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현은 미리 준비한 말을 꺼내면서 미영의 착한 점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을 했을 것이다.

윤아라면 그 이야기를 듣고 차츰 마음이 기울어질 테고 결국 미영을 찍을 것이라는 것이 주현의 계산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보았다. 윤아는 그런 말에 쉽게 넘어갈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만약 그녀가 태연에게 표를 주기로 하지 않았더라면 주현의 말에 충분히 넘어갔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무한태연교의 제일교도로서 그 신앙심이 극도로 팽창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주현이 미영을 지지하는 이유가 궁금했던 것이고, 윤아가 아직 결정을 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던 주현으로서는 허를 찔린 셈이었다.

주현이 머뭇거리자 윤아는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왜 말을 못해? 설마 나한테 숨기는 것이 있는 거야?”

괜히 팬들이 태니 커플, 윤현 커플 등 이렇게 짝을 지어 붙여주는 것이 아니다. 다 그만큼 팬들에게 친근한 모습을 보이기에 그런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약간의 편차가 있지만 약간씩 의지하는 멤버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윤아와 주현이 바로 그런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언니들로서는 느끼지 못하는 막내로서의 고충을 털어놓으며 부담을 덜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숨기는 모습을 보이니 윤아가 서운한 표정을 짓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의 표정에 주현은 어쩔 줄 몰라다가 이윽고 진실을 실토하기 시작했다.

“…사실은요…….”

그러면서 주현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어제 밤, 스케줄을 끝내고 온 주현을 미영이 은밀하게 불러낸 것이었다. 그리고는 주현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하였다.

바로 케로로 소대 인형에 음성녹음이 되도록 주문 제작을 하여 그곳에 창현의 성대모사가 담긴 것을 선물로 주겠다고 유혹을 한 것이다. 창현의 성대모사 실력이 이미 달인의 경지에 다다랐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미영이 필살의 한 수를 꺼낸 셈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주현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고민에 빠져들어야만 했다. 그만큼 미영의 제안은 달콤하면서 유혹적이었던 것이다.

케로로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자신의 돈으로 구입한다는 것은 왠지 꺼려지는 주현이었다. 게다가 그쪽으로 돈을 소비한다는 것은 왠지 모르게 아까운 느낌이 들었기에 케로로에 관련된 물건은 팬들이 선물로 보내준 것과 창현이 일본에 갔을 때 선물로 주었던 것이 다였다.

돈을 쓰는 건 아깝지만 선물로 받는다면 기쁘지 않겠는가?

그래서 주현은 장시간의 고민 끝에 조심스럽게 미영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주현이 수락을 하자 미영은 다시 한 번 악마의 유혹을 꺼내왔던 것이다.

바로 윤아를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윤아를 설득하면 거기에 얹어서 자신이 피처링을 할 때 함께 녹음실을 데려가 주겠다고 제안을 꺼냈다. 그 말을 들은 주현은 망설임 없이 윤아를 설득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파격적인 추가 수당을 거절할 그녀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말은 윤아에게 하지 않고 케로로 인형에 관련된 것만 언급하는 주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현의 말을 들은 윤아가 펄쩍 뛰었다.

“뭐라고? 미영 언니가 그런 말을 했어?”

그녀로서는 충격적이었다.

설마 미영이 그런 술수를 부릴 줄이야!

순진하고 착한 동생을 어떻게 그런 뇌물(?)로 꼬드길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마치 어린 아이를 사탕 줄 테니 우리 집으로 오렴! 하고 납치하는 납치범의 소행과 다를 바가 없었다.

윤아는 미영의 사악함에 치를 떨었다. 순진한 주현을 그런 식으로 유혹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물어보길 잘했어! 자칫 잘못하다가 주현이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널 뻔했어. 내가 잘한 거야.’

온갖 뇌물과 술수로 주현을 유혹하려고 하는 미영에 비해 태연은 어떤가! 평소 묵묵히 리더로서의 일을 하면서 멤버들에게 양보와 배려를 하며 덕을 쌓지 않았던가!

주현의 말을 들은 윤아는 무한태연교의 신앙심이 한층 더 깊어지는 것을 느끼며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주현아! 그런 물질적인 것들이 넘어가면 안 돼. 너는 한 번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한 번 당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유혹을 이겨낼 수 없게 돼. 계속해서 언니들에게 이용당할 뿐이라고!”

윤아는 주현을 본격적으로 설득하면서 미영의 부당함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한 번은 어렵지만 그것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면 그 다음부터는 양심의 가책이 사라진다. 마치 하얀 백지와도 같은 주현에게 미영이 검은 먹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려는 상황이다. 이것이 이어지면 하얀 백지 상태였던 주현은 검은색 종이로 변해버릴 것이다.

이것을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윤아의 전의를 불태우게 만들었다.

“미영 언니는 결국 너의 표를 이용하려는 것뿐이라고! 지금 이게 우리 멤버들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지만 만약 이게 사회로 나간다고 생각해봐. 그럼 투표에서 돈을 받고 투표를 한 것이야. 이게 말이 돼? 돈을 받고 투표를 하면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땅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고, 그리 되면…….”

급기야 사회의 일로 확장을 시키면서 설명을 하는 윤아였다.

그 말을 들으면서 주현은 묵묵부답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자신의 결정에 내심 후회하는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윤아의 말을 들으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주현은 마침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기 시작했다.

“언니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제가 잘못한 것 같아요. 순수하게 마음이 가는 사람에게 투표를 하는 건데 미영 언니의 언변에 넘어가서 언니마저 설득하려고 하다니… 제가 나빴어요.”

그러면서 고개를 푹 숙이는 주현.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의 모습만 봐도 진심으로 반성하고 뉘우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은 윤아가 주현의 어깨에 손을 턱하니 올려놓는다.

그러자 주현이 고개를 들어 윤아를 바라본다.

윤아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주현에게 말한다.

“자책 하지 않아도 돼. 사람은 누구든지 한순간 유혹에 빠져들 수 있는 법이야. 그렇게 달콤한 제안을 하는데 덤덤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부처님이게? 잘못을 범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잘못을 반성하고 올바른 길로 가는 것이 중요한 거야.”

순간 떠오르는 것 그대로 하는 말이었지만 마치 전도사가 하는 말처럼 청산유수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으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 받을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언니 말이 맞아요.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나 봐요.”

“그래, 사실 나도 주현이 너한테 태연 언니에게 표를 달라고 할 예정이었어. 왠지 알아?”

윤아가 그런 말을 하려고 했었다는 말을 들은 주현이 흠칫했다. 결과적으로 그녀와 자신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신기하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무슨 이유에서 윤아가 태연에게 표를 주라고 말을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왜요?”

“내가 태연 언니에게 표를 달라고 말하려고 했던 이유는 사뭇 달라. 들어 봐봐.”

그러면서 윤아는 본격적으로 태연의 칭송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늘 멤버들을 깨워주기 위해 멤버들 중 가장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일찍 일어나는 것과, 전반적으로 요리를 잘한다고 하여 식사 당번을 자주 맡는 일. 그리고 언제나 멤버들을 챙기고, 행여 실수를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며 멤버들을 돌보는 일. 그리고 소녀시대가 잘못을 하면 대표로 불려가 혼이 나고, 잘못했다고 말을 하면서 항상 전반적인 스케줄에 관련된 것을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일 등등 수많은 이야기가 윤아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본래 태연에 말한 것에는 약간 살이 덧붙여진 상태였는데 윤아의 입을 거치면서 그 살에 비계까지 덧붙어 엄청나게 덩치가 커진 상태였다.

“…….”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현은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은 단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표를 행사할 생각을 했는데 윤아는 멤버들을 위해 늘 고생하는 태연에게 표를 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윤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현은 그동안 태연이 자신들 눈에 보이지 않게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윤아의 말에는 약간 뻥이 섞여 있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신빙성 있게 들렸던 것이다. 그랬기에 태연 쪽으로 차츰 마음이 기울이지기 시작하였다. 이미 무한태연교의 제일교도 윤아의 설교 수준은 탄력에 탄력을 받아 웬만한 목사 못지않은 기량을 자랑하고 있었다.

윤아의 설명이 끝나자 주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언니 말 잘 알았어요.”

“그럼……?”

기대감 서린 얼굴로 주현을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태연 언니에게 투표하겠어요. 그동안 저는 태연 언니가 그렇게 고생하는지 몰랐거든요. 그런데 언니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태연 언니의 수고를 나 몰라라 했는지 알 것 같아요. 그렇게 고생하는 태연 언니에게 한 번이라도 기회가 더 돌아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비록 미영 언니도 같은 멤버이고 친한 언니지만 태연 언니가 더 수고한 만큼 태연 언니가 기회를 갖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요.”

조목조목 이유를 설명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주현의 모습에 윤아가 덥썩 주현을 끌어안았다.

“잘 생각했어, 주현아. 우리 둘이 태연 언니를 투표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거야.”

주현도 그 포옹을 거절하지 않은 채 윤아를 마주 끌어안았다.

“네, 그동안 제가 너무 이기적이어서 태연 언니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 더 잘해야겠어요.”

“그래! 반드시 태연 언니가 이길 거야!”

그렇게 두 사람이 포옹을 하면서 윤현 커플의 우애가 더욱 돈독하게 쌓이고 있을 때, 밖에서 수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현아, 뭐해? 스케줄 갈 시간 다 됐어?”

“네? 헉! 저, 정말이네!”

수연의 목소리를 들은 주현이 시계로 시선을 옮겼다가 기겁한다. 이야기를 나누느라 미처 자각하지 못했는데 어느새 시간이 상당 부분 흘러갔던 것이다.

포옹을 푼 주현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는 후다닥 옷을 고쳐 입고는 방을 나섰다.

“언니 말 다 이해했으니까 며칠 후에 결과를 보도록 해요. 그럼 저는 스케줄 하러 가볼게요.”

“잘 다녀와, 스케줄 잘 하도록 하고.”

주현을 설득하는데 성공한 윤아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손을 흔들며 주현을 배웅한다. 그리고 방을 나선 주현이 어느덧 준비를 마친 수연을 바라보면서 말한다.

“언니, 가요.”

“방에서 뭘 그렇게 하고 있는 거야? 늦겠다, 가자.”

“죄송해요.”

뚱한 표정을 지은 수연이 고갯짓을 하자, 주현이 사과하면서 숙소를 나선다.

문밖으로 나가는 주현을 보는 수연의 얼굴에는 뚱한 표정이 사라진 채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거 점점 더 재미있어 지는 걸?”

윤아와 주현의 기색이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수연은 빠르게 씻은 뒤 두 사람이 있는 방의 대화를 엿들은 상태였다. 방음이 제법 잘 되기는 했지만 격앙된 목소리로 외쳐대는데 어찌 들리지 않을까.

점점 대결의 구도가 재미있어 진다고 생각하는 수연이었다.


한편, 주현이 윤아에게 전도(?) 되어 무한태연교의 제이교도로서 가입된 걸 모르는 미영은 같이 스케줄을 가게 된 효연을 설득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이미 유리와 순규에 이어 주현을 설득하게 된 미영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주현이가 윤아를 설득하게 되면 상황은 끝이야. 하지만 방심할 수 없지.’

4대 2로 아슬아슬하게 상황을 끝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압도적인 상황으로 승리를 함으로써 당당하게 피처링을 따내고 싶은 것이 미영의 심정이었다.

그녀는 애초에 수영은 목록에서 제외하고 있었다. 태연과 스케줄이 겹침으로 인하여 수영이 태연에게 넘어간 것을 은연중 눈치 챈 것이다.

‘효연이도 계속해서 숙소에 있었어. 그리고 태연이랑 스케줄을 같이 한 적도 없지. 그렇다면 내가 먼저 기회를 뻗는 셈이 될 거야.’

변덕이 심하기에 마지막으로 공략하려 했지만 살짝 상황이 달라졌다. 이미 자신은 과반수이상의 멤버들을 확보했기에 이쯤에서 효연을 공략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미영은 효연이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습생 시절 효연은 유난히 자신을 괴롭힌 사람 중 하나였다. 마음은 약하면서 장난기가 넘쳐서 다른 사람을 종종 괴롭히고는 하였다.

특히 연습생 시절에 효연은 나이가 어리지만 연습생 생활을 무척 길게 해서 소위 말하는 대장격인 인물이었다. 수연과 수영을 비롯하여 효연은 연습생 대장이라 불리고는 하였다.

처음 연습생으로 들어왔을 때 한국말이 잘 되지 않던 미영은 무척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괴롭힘을 당하고는 했는데, 그런 미영을 가장 많이 괴롭힌 인물이 바로 효연이었다. 타고난 장난기와 신입의 군기를 잡는다는 명목 하에 많이 괴롭혔던 것이다.

그러다가 그것이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큰 상처가 된다는 것을 알고는 눈물을 흘리며 사과한 적이 있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심정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처럼 미영이 상처 받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참다 못한 미영이 눈물을 흘리면서 괴로웠던 이야기를 하자 마음이 약한 효연은 미영에게 사과를 하면서 관계를 새로이 한 적이 있다.

악랄하지만 미영은 효연이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걸 이용하려는 속셈이었다.

그 점이 마음이 걸리기는 했지만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너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승리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미영이었다.

평범한 승리가 아닌 완벽한 승리를 위하여.

그러기 위해서 미영은 효연과 함께 스케줄 갈 때부터 서서히 밑밥을 깔았다.

바로 벤 안에서 약간 움츠러든 모습을 보이는 것. 그리고 효연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흠칫거리는 효과는 옵션이었다.

“뭐야?”

미영이 그런 반응을 보이자, 효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미영을 바라본다.

묘하게 미안했던 기억이 떠오르자 평소 같은 퉁명스러운 어조가 아닌, 약간 힘이 들어있지 않은 말이 흘러나온다.

그러자 미영이 효연을 바라보면서 말한다.

“효연아, 부탁이 있는데.”

“부탁? 뭔데?”

말해보라는 듯 효연이 턱짓을 하며 미영을 재촉하자, 그녀가 힐끗 효연의 눈치를 살피더니 입을 연다.

“며칠 후에 투표하는 거… 나한테 투표 해주면 안 돼?”

“뭐라고?”

미영의 말에 버럭 소리를 지르는 효연이었다. 그것은 놀라움과 황당함이 담긴 목소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부탁을 하는 것 치고 너무 간단하게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은 무언가 조건을 먼저 제시하고 표를 요구할 줄 알았다.

그런데 버럭 소리를 지른 효연은 황당한 장면을 봐야만 했다.

자신이 놀라 소리친 것에 미영이 과민 반응을 보이며 몸을 웅크렸던 것이다.

“내 부탁이 과했나? 미, 미안.”

“…….”

순간 할 말을 잃은 효연이었다. 몸을 웅크리는 미영의 모습에서 예전에 자신이 괴롭힐 때마다 몸을 웅크린 채 묵묵히 버텨내던 미영의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러자 효연의 표정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흔들렸다.

자책감이 심장에서 흘러 나와 전신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 이러면 뭐라고 할 수도 없잖아.’

그러면서 예전에 가슴 속 묻어두었던 미안한 감정이 생겨났다. 그때 풀었다고 했지만 단순히 사과를 한 것만 가지고 끝이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렇다.

그러자 효연은 깊은 고민에 빠져든다. 그러면서 그 미안한 감정을 덜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기에 이른다.

‘내가 미영이에게 표를 주면 미안한 마음을 덜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미안한 감정.

미영은 그때 모두 풀었다고 말을 했지만 자신은 그러하지 않았다. 늘 미안한 감정이 마음 한구석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일로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 이거 하나 가지고 울궈먹으려고 하는 것도 좀 그래. 이번에 미영이를 밀어주자.’

마음을 굳힌 효연은 미영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강하게 말한다.

“그런 표정 짓지마! 예전에 다 풀었다고 했잖아? 알겠어! 너에게 표를 주도록 할게.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야. 이 표를 줌으로 인하여 너에게 미안한 감정을 모두 털어버릴 거니까. 너도 앞으로 나한테 그런 반응 보이지 마! 알았어?”

“응? 으응…….”

박력 있는 효연의 모습에 압도되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는 미영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미영을 보면서 효연이 확답을 받는다.

“분명히 대답했다? 앞으로 그런 반응 보이지 마! 너한테 표 줄 거니까.”

“아, 알았어. 고마워.”

너무나 쉽게 허락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효연이 여태까지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에 미영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 됐어. 대신 신부름 같은 건 해야 해. 수연이가 특별히 한 봉사 기간이니까 알았지?”

쿨한 효연답게 표도 쿨하게 주었다.

미영은 미안한 마음과 함께 고마운 마음이 들어 효연을 덥석 끌어안으며 웃음을 지었다.

“물론이지! 고마워, 마이 달링! 사랑해!”

“이거 놔! 숨 막혀!”

효연이 바동거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힘을 더욱 줘서 끌어안는 미영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진한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효연아 미안! 나중에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지금은 당장의 승리가 중요한 법이었다.


마침내 폭풍과도 같던 일주일이 끝났다.

그 기간 동안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공방전이 오고갔다.

그래서일까? 태연과 미영의 얼굴은 첫날에 비해 무척 수척해져 있다. 달리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마른 모습을 보이고 있던 것이다.

“이제 본격적인 투표를 하겠어.”

유일한 중립자인 수연이 사회를 맡아 투표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수척해져 광대뼈가 드러날 정도인 태연과 미영을 번갈아 보면서 말한다.

“너희들은 저쪽 방안으로 들어가 있어. 그리고 투표를 하는 애들은 저쪽 방으로 들어가고. 그 다음 나이 어린 순으로 나와. 나이가 같으면 생일 순서대로 나오는 거야.”

“알았어.”

대망의 순간이었기에 명령하는 투의 말에도 불구하고 멤버들이 순순히 따른다. 그리고 태연과 미영이 방안으로 들어갔고, 나머지 멤버들도 다른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거실에 남은 것은 수연과 주현이었다. 가장 막내인 주현이 투표를 하기 위해 남은 것이다.

수연이 주현에게 종이와 펜을 내밀었다.

“네가 투표할 멤버의 이름을 적고 안에 넣어.”

“…….”

종이와 펜을 건네받은 주현의 얼굴에 한동안 갈등의 기색이 서렸다.

그리고 얼마나 고민에 빠졌을까.

이내 결심을 굳힌 듯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펜을 들고는 종이에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수연이 눈을 빛냈다.

투표를 한 주현이 들어가고 윤아가 나온다. 그리고 윤아도 자신이 지지하는 멤버의 이름을 적는다.

그 후로도 멤버들이 차례차례 나와 자신이 지지하는 멤버들의 이름을 적는다.

“호오…….”

한 멤버가 적는 것을 본 수연의 눈이 번쩍 빛나다가 가라앉았다.

그리고 순규의 투표를 끝으로 모든 투표가 끝났다.

순규가 투표함에 표를 넣자, 수연이 박수를 짝짝! 치며 소리친다.

“투표 끝! 자, 밖으로 나와!”

수연의 외침에 소녀들이 거실로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각각 거실에 자리를 잡자 수연이 소녀들을 둘러보며 말한다.

“그럼 곧장 투표함을 개봉하도록 할게.”

“동점이야? 아니면 승부가 났어?”

태연이 궁금한 듯, 묻자 수연이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표는 4대 2로 한쪽이 승리했어.”

수연의 말에 태연과 미영의 표정에 순간 기쁨이 감돌다가 불안함이 스쳤다. 자신이 예상하기에는 당연하긴 했는데 한 줄기 불안한 마음도 생겨났던 것이다.

제3자인 수연은 그런 태연과 미영의 표정을 슬쩍 살피더니 말한다.

“그럼 곧장 개표하도록 할게.”

그러면서 수연이 본격적으로 투표함을 열고 이름을 말하기 시작한다.

첫 번째 종이를 꺼낸 수연이 종이를 펼치고는 이름을 확인하면서 입을 연다.

“티파니.”

“……!”

첫 번째 표가 자신에게 나오자 미영의 입에 미소가 걸린다. 그에 반해 태연의 표정이 흐려진다.

“태연!”

뒤이어 태연의 이름이 나오자 태연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로써 1대 1이 된 것이다.

하지만 투표는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었다.

종이를 꺼낸 수연이 이름을 확인하고는 말한다.

“황미영.”

2대 1. 한 표 앞서 나가게 된 미영의 표정이 밝아진다. 그리고 태연의 표정이 흐려진다. 이 다음에 미영에게 한 표라도 나오면 승부는 갈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돌연 수연이 행동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태연을 향해 피식 웃음을 짓는 것이 아닌가? 그 웃음에 태연의 가슴 속에 불안한 마음이 들 무렵, 갑자기 수연이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돌연 투표함을 거꾸로 들어 투표 종이 세 개를 모두 털어내는 것이 아닌가?

무슨 행동인가 싶어 태연과 미영은 물론 다른 소녀들도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 수연을 바라본다.

그러자 수연이 세 종이를 각각 집어 들고는 소녀들에게 펼쳐 보이면서 말한다.

“승부가 났거든. 나머지 세 표는 태연이 몰표야. 결과는 4대 2로 태연이의 승리.”

“…….”

태연과 미영의 표정에 희비가 엇갈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미영은 유리와 순규, 주현과 효연의 표를 획득하여 자신의 승리를 장담하고 있었다. 주현이 윤아를 설득했다면 5대 1로 승리를 해야 하지 않는가?

도대체 누가 배신한 것이란 말인가?

숨 막히는 침묵이 거실에 감돌았다. 전혀 의외의 결과가 나온 셈이었다.

물론 그것은 미영의 생각일 뿐이었고, 태연은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승리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옆에 있는 미영의 존재로 인하여 함부로 내색을 하지 못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입을 연 것은 미영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비명 비슷한 소리가 흘러 나왔다.

“말도 안 돼…….”

자신의 패배를 믿을 수 없는 미영이었다.

어찌하여 자신이 패한단 말인가? 분명 자신이 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허탈함과 배신감이 전신을 휘감고 있었다.

그 분위기를 느꼈음일까.

멤버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미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돌연 미영이 날카로운 눈으로 멤버들에게 시선을 확 돌렸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표를 주기로 했던 멤버들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만큼 충격이 컸다는 이야기였다. 하기야, 승리를 위해 엄청난 물량공세를 퍼부었는데 자신이 패배하다니. 충격도 이만한 충격이 없었다.

콰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방문이 닫혔다. 그 뒤를 이어 달칵!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방문이 잠겼음을 알렸다.

“하하… 이거 좋아할 수가 없네.”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지다가 입을 연 것이 태연이었다.

그녀는 멤버들을 둘러보면서 말을 하였다. 그러자 멤버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미영이 저런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는 그녀들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강력한 조건을 제시한 미영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기대가 컸다는 이야기리라.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수연은 눈살을 살짝 찌푸린다. 장난 식으로 피처링 파트너를 정하기 위해 투표제를 시도한 것인데 설마 미영이 그렇게 충격 받을 줄 몰랐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풀어줘야 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풀어준단 말인가?

질투심이 강한 만큼 한 번 마음이 뒤틀어지면 그 여파가 상당히 오래 가는 사람이 바로 미영이었다. 팀 내에서 분위기 메이커를 맡고 있는 만큼 그녀의 이런 장기적인 감정의 뒤틀림은 스케줄을 이행하는데 큰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수연이 윤아에게 시선을 주면서 입을 연다.

“윤아야.”

“네, 언니.”

미영이 설마 그렇게 충격받은 모습을 보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상태였던 윤아가 수연의 부름에 답한다.

그러자 수연이 눈짓으로 미영이 들어간 방 쪽을 가리키더니 말했다.

“미영이 저거 웬만한 걸로는 풀어지지 않을 것 같은데 창현이한테 도움을 청하면 안 될까?”

평소라면 한 번이라도 더 통화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 같이 귀찮은 일을 떠맡는 것은 사양이었다.

수연의 말에 윤아가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 손으로 자신을 가리킨다.

“제가요?”

“그래, 네가 창현이랑 같이 드라마도 하고 가장 친하잖아? 그러니까 창현이한테 어떻게 방법을 물어봐.

“…그럴게요.”

자신과 상관없는 귀찮은 일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 불만인 윤아였지만 자신이 막내라는 점과 수연이 직접 자신에게 창현과 제일 친한 사이라고 말해준 것, 그리고 미영에게 표를 주려던 주현을 전도(?)하여 표를 돌린 것에 대한 찜찜함을 느낀 윤아가 수락을 한다.

윤아가 수락하자, 수연이 멤버들을 둘러보며 말한다.

“윤아가 일단 창현이랑 연락하고 올 때까지 기다리자. 창현이한테 말해서 만약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가 자체적으로 해결을 해야 하니까.”

수연이 먼저 창현에게 전화를 걸어보라고 한 것은 테스트를 위해 그를 찾아갔을 때 노래 분량이 많아 고민이 된다는 창현의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그렇다.

노래 분량이 많게 되면 약간 늘리거나 해서 두 개로 늘리는 방법도 존재하지 않은가? 혹시 창현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윤아에게 언질을 준 것이다. 윤아의 말을 듣고 창현이 마음을 살짝 바꿀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확실하게 굳혀버리는 수연의 말에 윤아가 살짝 한숨을 내쉬고는 방으로 향한다 창현과 통화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도 내가 창현이랑 제일 친하니까…….’

귀찮은 일을 맡게 되었지만 자신이 창현과 제일 친하다는 것에 위안을 얻으며 윤아는 곧장 창현에게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

♩♪♬

컬러링이 흘러나오면서 잠시 후, 창현과 통화가 연결 된다.

-여보세요? 윤아 누나에요>

“여보세요? 창현아 나야.”

전화를 걸기 전에는 툴툴거렸지만 막상 창현의 목소리를 듣게 되자 순식간에 목소리가 맑고 청아하게 탈바꿈(?) 되었고, 영상 통화도 아니건만 입가에 방긋 미소가 떠오른 윤아였다.

언제 들어도 그렇지만 창현이의 목소리는 듣는 것 자체만으로도 보약이었고, 삶의 활력소였다.

-네, 윤아 누나요. 갑자기 무슨 일이세요?

용건을 물어오는 창현의 말에 윤아는 순간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어느 정도 순화를 거치면서 말을 꺼냈다.

“그때 내가 말한 적 있잖아. 수연 언니 노래를 가지고 태연 언니랑 미영 언니가 피처링을 둘 중 한 사람이 맡기로 한 거. 그거 내기를 하다가 문제가 생겼거든.”

-문제요? 무슨 문제요? 저번에 들어보니 투표로 정한다면서요? 그러고 보니 오늘까지 알려달라고 했는데 결과가 나왔나보네요?

눈치가 빠른 건지 창현은 윤아가 언급한 내용이 대충 어떠한 것인지 눈치를 챈 듯했다.

그러자 윤아가 숨길 필요 없다는 듯 언급을 한다.

“응. 결과가 나왔어. 결과는 태연 언니가 4대 2로 승리했거든.”

-그래요? 그럼 태연 누나가 피처링을 맡으면 되죠. 그런데 그게 왜요?

“사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거든…….”

그러면서 윤아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무한태연교의 제일교도로서 주현을 설득했던 일들과 미영을 지지하기로 했던 멤버 중 한 사람의 배신, 그리고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던 미영이 의외의 결과에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삐진 모습까지… 세세하게 창현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윤아였다.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창현이 순간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잠깐, 누나 말을 들어보니 태연 누나로 결정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이 아니라 묘하게 저에게 그 일을 해결해달라는 듯한 건데요?

창현의 말에 윤아는 그가 무서울 정도로 정확한 직관력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면서 움찔 몸을 떨면서 말한다.

“그, 그래? 그건 잘 모르겠지만 수연 언니가 창현이 너한테 전화로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거든. 난 그 이야기를 듣고 연락을 한 것뿐이야.”

-수연 누나가요? 흐음!

잠시 생각에 잠기는 창현이었다. 수연이 무슨 이유에서 자신에게 연락을 해보라고 했을까?

그러다가 창현은 무언가가 떠오른 듯 나직이 감탄사를 흘린다.

-아! 그렇구나.

수연을 테스트 할 때 자신이 합격 여부를 알려주면서 불러야 할 곡의 길이가 제법 길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현재 수연이 부를 드라마 ost의 길이가 5:39초일만큼 무척 길어진 상황이어서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수연은 자신이 길어진 것을 내심 두 개로 끊어서 해주길 원하고 있는 듯하였다.

사실 그 점은 창현이 무척 고민하고 있는 사항이기도 하였다.

가창력을 인정받은 가수는 주어진 노래에 결정적인 힌트를 제시하면 그 점을 빠르게 파악하고는 노래를 곧장 소화해낸다.

하지만 아직 다 가다듬어지지 않은 가수들은 다르다. 그 노래를 부르면서 눈부시게 성장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수연은 물론이고 태연이나 미영도 상당히 탐이 나는 존재였다.

보석으로 치면 태연은 아직 다 가다듬어지지 않았지만 화려한 빛을 발하고 있다고 볼 수 있고, 수연은 섬세한 빛을 발하여 섬세한 세공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미영 또한 명장의 손을 거치면 얼마든지 자신만의 색을 갖춘 개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스타일인 창현의 입장에서 그들의 노래를 맡음으로 인해 그들이 얼마나 성장할지 기대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랬기에 노래가 길어진 것을 두고 내심 고민을 하고 있던 것이다.

고민에 잠겨있던 창현이 윤아에게 말한다.

-윤아 누나? 실례지만 수연 누나 좀 바꿔주시겠어요? 아무래도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네요.

“응? 그, 그래.”

창현의 말에 윤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거실로 나간다. 그리고는 수연을 손짓으로 부르자, 수연이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나? 라는 표정을 지었고, 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수연이 윤아가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왜?”

“창현이가 언니 좀 바꿔달라는데요?”

“그래? 알았어.”

자신을 바꿔달라는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던 수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핸드폰을 받아든다.

“여보세요?”

-저 창현이에요, 수연 누나.

“응. 알아. 그런데 갑자기 나는 왜?”

-대충 이야기를 듣고 누나가 무슨 의도로 전화를 한 건지 알 것 같아서요. 그 정도로 태연 누나랑 미영 누나가 치열했던 거예요?

보지 않았으면 말도 말라는 말이 있다. 그 정도로 태연과 미영의 심리전은 치열했다. 그렇기에 수연은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엄청 치열했지. 그 뭐더라? 예전 로마와 카르타고의 전쟁이 이러했을까? 아마 이것보다도 덜 했을 걸?”

적어도 옆에서 체감했으니 그 전쟁보다는 태연과 미영의 전쟁이 더 치열하게 느껴졌다.

-그 정도에요? 흐음! 실례가 안 되면 구체적인 내용을 들을 수 있을까요?

“어렵지 않아. 간략하게 줄여서 중요한 것들만 말해줄게. 어떻게 된 거냐면…….”

수연은 일주일 동안 있던 암투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옆에서 흥미로운 눈으로 듣던 윤아의 입이 쩍 벌어질 정도였다. 그 정도로 태연과 미영의 대결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열했던 것이다.

-…….

이야기를 다 들은 창현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정도로 치열했다니,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창현은 결정을 내린 듯 입을 연다.

-알았어요. 저도 이래저래 고민이 되었거든요. 그런데 그 정도라면 저도 힘을 써야 할 것 같네요.

“그럼……?”

수연이 약간 기대감 어린 목소리로 묻자, 창현이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수연과, 핸드폰에 바짝 귀를 기울이고 있던 윤아의 표정이 밝아진다.


쾅쾅!

“파니! 문 열어봐!”

창현과 통화를 끝낸 수연이 방을 두드리면서 미영의 이름을 불렀다.

그럼에도 방문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수연이 다시 방문을 두드리면서 아까보다 더욱 세게 친다.

쾅쾅쾅!

“파니야 문 열어! 안 열면 너랑 다시는 안 본다?”

문을 열 기미가 보이지 않자 마침내 으름장을 놓는 수연이었다. 그리고 그 말이 먹혔는지 약간의 시간 차이를 두고 방문이 열린다.

열린 방문 사이로 미영이 모습을 드러낸다. 눈이 약간 부은 걸 보아 패배의 서러움으로 울었나보다.

“난 지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제시.”

“내가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는데? 듣지 않을 거야?”

“…….”

지금 상황에서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맛있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은 미영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좋은 소식을 들어도 좋게 들릴까?

미영은 수연을 외면하며 방문을 닫으려 하였다.

“나 잘래.”

“흐음! 정말? 창현이가 너 피처링 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는데 정말 잘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미영의 고개가 시속 300km 바람을 가를 정도로 돌아간다. 그리고는 두 눈에 엄청난 양의 불꽃을 내뿜어내며 수연에게 묻는다.

“…저, 정말이야? Reallly?”

“마, 맞아. 창현이가 피처링 해도 된데.”

순간 미영의 행동에 압도당한 수연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미영이 묻는다.

“어떻게?”

“노래가 길어서 창현이가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고 있었거든. 그러다가 파니 네가 피처링을 따내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했다는 걸 듣고 창현이가 반으로 나눠서 두 개로 만든다고 했어. 그러니 태연이도 피처링을 하는 거고 너도 피처링을 하게 되는 거지. 회사 문제도 창현이가 해결해주겠다고 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SM엔터테인먼트로서는 거절할 리가 없는 제안이었다. Part 1, Part 2로 나온다는 것은 소녀시대 멤버들이 그만큼 활약을 할 수 있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그런 만큼 창현이 하겠다고 했으면 거의 확정적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미영이 두 눈에 눈물을 글썽이면서 수연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고, 고마워!”

“고맙긴. 고맙다는 인사는 창현이한테나 해.”

“응! 응!”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미영이었다.

결과적으로 피처링을 따내게 되자 소녀시대 숙소 분위기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러자 대두된 것이 바로 배신자 색출이었다.

주현이 먼저 미영에게 사과를 하였다.

“언니 죄송해요. 실은 언니를 찍기로 했는데 윤아 언니 이야기를 듣고 보니 조금 아닌 것 같아서…….”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만약 피처링을 따내지 못했더라면 방방 날뛰었을 테지만 이렇게 순순히 자수를 하니 무어라 말을 하지 않는 미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자 남은 한 표가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본래 미영을 찍어주기로 한 사람이 유리와 순규, 효연과 주현인 만큼 한 유리, 순규,. 효연 중 한 사람이 배신을 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미영이 세 사람을 둘러보면서 말한다.

“그럼 너희들 중 한 사람이 배신을 했다는 건데 누구야?”

그 물음에 세 여인이 동시에 고개를 저으며 혐의를 부인하였다.

“난 아니야.”

“나도 아닌데?”

“나도 아니야.”

분명 한 명이 배신을 했는데 세 사람 모두 배신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흐음!”

그러자 미영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세 사람의 눈을 훑는다. 그러다가 알아냈다는 듯 효연을 가리키며 말한다.

“효연이 너지!”

“나 아니야! 왜 나야! 이유가 뭔데?”

미영의 지목에 펄쩍 뛰며 고개를 젓는 효연이었다. 어째서 자신이 범인이란 말인가?

이유를 묻자, 미영은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효연이 넌 변덕이 심하잖아!”

“…….”

변덕이 심하다는 것에는 무어라 변론을 할 수 없는 효연이었다. 자신이 변덕이 심한 것은 스스로도 느끼고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효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미영은 확정적으로 말한다.

“봐봐! 효연이 너잖아! 그렇게 감동스럽게 말을 하더니 배신을 하다니. 너무해!”

“나 아니라니까! 어이구 답답해!”

자신을 아주 대놓고 지목하는 미영의 모습에 효연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친다.

아니라고 말을 해도 전반적으로 믿지를 않으니 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하지만 미영은 효연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고, 효연은 아니라고 하면서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 여인이 속으로 사과를 하였다.

‘미안해, 미영아!’

미영에게 사과를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유리였다.

태연에게 제안을 받은 유리는 많은 고민을 할 것도 없이 배신을 택했다. 태연 같은 경우는 자신의 지략으로 방해가 가능했지만 지력 99인 미영 같은 경우 자칫 자신의 계략에 벗어나 창현을 독점할 수 있는 찬스를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창현을 독점하여 잘 되면 자신은 그야 말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는 게 아닌가?

그런 여지조차 주지 않기 위해 유리는 과감하게 미영을 버리고 태연을 선택하게 되었다. 태연이 내건 애장품이라는 조건도 한몫을 하였다.

어차피 익명이 보장되기에 입을 다물면 된다고 생각했다. 효연이 미영에게 설득 당한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가만히 있으면 효연이 죄를 뒤집어 쓸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렇다.

아니나 다를까, 평소에 변덕을 자주부린 탓에 효연은 미영에게 범인으로 지목되어 추궁을 받고 있었다.

억울한 표정을 지어봤자 평소에 해둔 것이 있으니 설득이 쉽지 않으리라.

‘미안해, 효연아!’

유리는 미영에게 추궁당하는 효연의 모습을 보면서 사과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다시 분주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결과적으로 미영이 피처링을 따낸 이상 어떻게든 방해를 할 계획을 세워야 했던 것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자신이 미영을 배신한 것이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 미영이 피처링을 따내려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창현과 함께 있는 것이니 만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서둘러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것도 또 머리를 굴려야 하네.’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방해할 수 있을까.

효연이 미영과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유리는 점점 깊은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피처링에 관련된 일은 훈훈하게 해결을 할 수 있었다.

범인으로 지목 당한 효연만 억울하겠지만 말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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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3화 +6 15.04.22 4,427 8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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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1화 +10 15.04.17 7,376 95 10쪽
37 ▲▲▲▲▲시즌2 시작!▲▲▲▲▲ +5 15.04.17 5,425 65 1쪽
36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6장-108장 +8 15.04.16 6,414 106 230쪽
35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3장-105장 +1 15.04.16 4,244 82 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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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마음을 울리는 음악 16장-18장 +5 15.04.16 11,544 242 163쪽
5 마음을 울리는 음악 13장-15장 +5 15.04.16 14,536 297 237쪽
4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장-12장 +8 15.04.16 13,737 352 171쪽
3 마음을 울리는 음악 7장-9장 +10 15.04.16 14,552 362 142쪽
2 마음을 울리는 음악 4장-6장 +11 15.04.16 16,838 421 120쪽
1 마음을 울리는 음악 프롤로그-3장 +47 15.04.16 29,901 545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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