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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번 님의 서재입니다.

마음을 울리는 음악

웹소설 > 작가연재 > 팬픽·패러디, 현대판타지

김현우
작품등록일 :
2015.04.16 13:27
최근연재일 :
2015.06.0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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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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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1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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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327쪽

마음을 울리는 음악 73장-75장

DUMMY

제73장 무한도전(2)




전날 주현을 무사히 바래다 준 창현은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해결하고 곧장 작업실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무한도전 촬영을 하기로 약속을 한 날이었다.

각 멤버들이 오는 시간은 정오 무렵이지만 촬영 스태프들은 그보다 더욱 빨리 와서 준비를 해놓아야 한다.

그랬기에 촬영 스태프들이 오기 전 창현은 행여나 일어날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작업실에 자리한 곡들에 단단히 락을 걸어놓았다.

괜히 누군가가 유출하면 골치 아프니까.

당장 앨범 준비하고 있는 것들은 집으로 옮겨놓고, 예비 곡들은 락을 걸어놓은 창현은 일찍 방문하는 스태프들을 맞이하였다.

스태프들은 자신들 때문에 창현이 일찍 나와야 한다는 것에 무척 미안한 감정을 느끼는 듯했다.

그 사과에 웃음을 지어주며 괜찮다 하는 창현.

작업실 카메라 배치에 대해서 묻자, 창현은 똑 부러지는 어조로 말한다.

“일단 작업실은 나중에 하도록 하죠. 그곳은 중요하니까요.”

그들도 괜히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다행히 창현과 파장이 맞는 셈.

괜히 고집을 부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해해주는 듯하자 창현은 미소를 지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음료수라도 드시면서 쉬고 계세요.”

아직 무한도전 멤버들이 오기까지 시간이 남았기에 창현은 냉장고에 구비해둔 음료수를 스태프들에게 건네주는 여유까지 보인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더 이상 신경을 기울이지 않은 채 자신의 일을 하기 시작한다.

창현이 한 것은 수학 문제집을 푸는 일이었다.

‘…….’

음료수를 마시며 조용히 있던 카메라 감독은 공부에 열중하는 창현의 모습을 담기 시작한다.

방송에 나가려면 창현이 먼저 기다리고 있는 장면을 촬영해야 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 이미 말해두었던 상황이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촬영만 한다.

‘이걸로 시청률은 보장된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공부하는 모습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쉽게 범접하지 못할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무어라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는 힘들었지만 함부로 저 영역 안에 들어가서는 안될 것 같다는 느낌이랄까?

표현하지 못할 그 아우라가 카메라에까지 담기고 있으니 보는 시청자들도 알 것이다.

지금 창현은 보이기 위해 공부하는 척하는 게 아닌 정말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을.

평소 그의 생활에 담기기는커녕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극히 적어 일면을 엿보기도 힘들었기에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선을 끌 수 있다는 것이 카메라 감독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공부에 몰두하니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약 한 시간 정도 흘렀을 무렵, 초인종이 울리자, 문제를 풀던 창현이 힐끗 고개를 들더니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형, 일찍 오셨네요?”

문을 열자 작업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재석이었다.

아직 촬영 시작까지 한 시간이나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도착한 것이다.

“아무래도 할 게 많다 보니 일찍 올 수밖에 없다. 응?”

작업실 안으로 들어서던 재석은 지나치게 조용한 분위기에, 탁자 위에 수학 문제집이 놓여있는 것을 보고는 창현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혹시 공부하는데 내가 방해가 된 건가?”

“아뇨, 막 끝내던 차여서 방해가 된 건 아니에요.”

“그럼 다행이다. 분위기가 완전 조용해서 놀랐네.”

“절 배려해주셔서 그런 거예요. 여기 앉으세요.”

재석에게 자리를 권유하며 주스를 가져다 준 창현이 맞은편에 앉으면서 조용히 묻는다.

“이번에 녹음하게 되면 제가 좀 세게 나갈 수도 있어요.”

소심한 재석에게는 그 말만으로도 상당한 위협이 되는 듯, 움찔하더니 조심스럽게 묻는다.

“얼마나 세게 하려고 그렇게 말을 하는 거야?”

“그렇게 세게 하는 건 아니고요. 제가 말한대로 잘 따라줘야 한다랄까. 아무래도 형을 비롯한 다른 분들도 아직 미숙한 건 알고 있으니까요. 아, 전진 선배님은 빼고요.”

신화로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했던 그는 평범 이하 남자들이 모인 무한도전에서 우등생 같은 존재였다.

“명수형도 나름 몇집 가수인데, 섭섭하겠어.”

“기계 힘을 많이 빌리려 하셔서 그래요.”

첫날 자신에게 기계 좋은 것을 쓴다면서 잘 부탁한다는 말을 떠올리며 하는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재석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푸하하! 그 말 들으면 명수형 표정 완전 재미있겠는데?”

“좀 더 다듬어야죠. 하지만 완벽하게 하려는 것보다는 각자 개성을 살리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정상적인 가수 같이 앨범을 발매하려면 처음부터 보컬 트레이닝을 해야 할 것 같거든요.”

전문적인 가수가 아닌 만큼 그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완성도를 높이되 실력적인 측면보다는 개성을 살리는 방법이 더 좋으리라 여기는 창현이었다.

그 부분은 재석 또한 동감하는 바였다.

“그래? 음! 그건 그렇지. 그런데 보컬 트레이닝이 많이 어렵나?”

“한 번 해보고 싶으세요?”

“아, 아니.”

씨익 웃음을 지으며 묻는 창현의 모습에 알 수 없는 오한을 느낀 재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뒤로 물러난다.

“라디오 스타 보셨으면 잘 알고 계실 텐데.”

“아! 너랑 라샤가 나왔던 그거?”

“네, 거기에서 라샤 누나들이 설명한 적이 있잖아요.”

“당연히 봤지. 그 부분만 보고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물어본 거야.”

아무래도 현이 나오면 겹치는 질문보다는 새로운 질문이 많아야 했기에 그가 나온 프로그램을 가급적 참고하는 재석이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라디오 스타도 시청하였다.

“아무래도 겪어보지 않으면 그렇긴 하겠죠. 음, 뭐라고 해야 할까. 일단 제가 보컬 트레이닝을 시키면 방법 자체는 간단해요. 한계선까지 계속해서 몰아붙이는 거예요.”

“한계까지?”

“네, 흔히 말하잖아요. 사람의 몸은 신비하기 그지없어 몰아치면 몰아칠수록 그것에 익숙해진다고요. 한계까지 몰아치면 그 부분이 차츰 익숙해지게 되거든요. 그러면 한단계씩 높여가면서 한계치를 늘려나가는 거죠.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완급 조절을 잘 해줘야 하고, 몸으로 직접 체득하게 한다는 점이에요.”

“어렵네.”

고개를 갸우뚱하는 재석의 모습에 창현은 웃음을 지으며 친절하게 비유를 해주었다.

“연습하다 피토할 수 있다는 정도만 알고 계시면 되요.”

“피, 피를 토한다고?”

“속성으로 키우려면 그렇게라도 몰아쳐야죠.”

“…….”

재석은 갑자기 온화하게 보이는 창현의 얼굴이 바늘로 찌르면 피 한 방울도 흘러나오지 않을 듯한 냉혈한처럼 보였다.

그 시선의 의미를 알아차린 창현이 손을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보지 마세요. 정말 그렇게 몰아칠 생각은 없으니까요. 간단한 교정만 하고, 그 부분만 트레이닝할 예정이에요.”

“…믿어도 되지?”

“하하! 믿으셔도 될 듯 싶네요.”

“그럼 다행이고. 후우! 프로듀서로서 창현이 넌 무섭다고 소문이 나 있어서 어느 정도일지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더 무서운 거였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재석의 모습에 창현은 순간 악역이 된 듯한 느낌에 묘한 미소를 짓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다 재석이 무언가 떠오른 듯 창현에게 묻는다.

“맞다, 너 효리랑 친하다 그랬지? 효리 어때?”

은근한 어조로 묻는 재석의 모습에 창현이 입을 다물었다가 연다.

“…무슨 의미로 말씀하시는 건지…….”

“효리가 막 영계들 꼬시고 다니던데. 막 시집오라고 하지 않던?”

“풉! 아아, 저도 그런 제의를 받았죠. 참 달콤한 제의였죠.”

“그렇지? 효리 걔가 그렇다니까. 자칭 국민 요정이면서 하는 행동은 말이야…….”

그 뒤로 이어진 재석의 수다. 창현은 그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때로는 웃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역시 국민 MC라 그런지 이야기를 주도하는 능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야기를 함에 있어 지루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 무한도전 멤버들이 하나둘씩 도착하기 시작한다.

“촬영 시작합니다.”

모든 멤버들이 도착하자 PD가 촬영 시작을 알린다.

창현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한다.

횡렬로 늘어선 멤버들은 시작을 알리자 재석을 시작으로 외친다.

“무한~도전!”


“자, 오늘은 말이죠. 현 씨의 작업실을 살펴본 것에 이어 본격적으로 저희들이 곡을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시작과 함께 재석이 곡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하자, 사전에 이야기를 전달받지 못한 멤버들이 멀뚱한 표정을 짓는다.

음악에 조예가 깊지만(본인 생각) 작곡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까막눈 형돈이 벌써부터 막막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곡을 만들어요?”

“그렇습니다. 저희가 저번에 테마를 정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곡은 여기 현 씨께서 만들어주시기로 하셨고, 작사는 저희가 하기로 했지요. 그러니 저희도 곡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오! 그러면 저희가 작사가라는 이야기잖아요, 형님.”

“그렇죠. 저희가 부를 노래를 직접 작사하니 작사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홍철이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분위기가 한껏 살아난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창현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가 물리고 물리는 모습을 보면 무척 재미있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럼 본격적으로 작곡가 겸 프로듀서인 현 씨를 소개하겠습니다.”

“이미 여기에 계신데 뭘 소개를 해요?”

“어차피 방송에는 연이어 나갈 텐데.”

마치 처음 보는 듯 소개하려는 재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명수가 총알처럼 앞으로 튀어나가더니 창현의 손을 덥썩 잡고는 친근한 척한다.

“반갑습니다, 현 씨. 좋은 곡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저도요.”

갑작스러운 명수의 기습 어택에 창현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아무래도 강제 계약서 서명 사건 때문인지 그때 이후로 창현에게 유독 살갑게 구는 모습을 보인다.

“너무 친한 척하지 마세요.”

“뭐야, 넌 이미 친하니까 견제하는 겁니까. 뭡니까.”

존댓말과 반말이 뒤적박죽 섞인 명수의 말.

그 말을 들은 재석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변명하듯 말한다.

“아니, 그렇게 말씀하시면 시청자분들이 오해하시잖아요.”

“네가 이미 현 씨하고 친하다고 온동네방네 소문낸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제가 언제 그랬다고 그러십니까.”

억울한 듯 재석이 변명하지만 이미 그의 편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저도 그 소문 들은 적 있어요.”

“저도요. 치사하게 소개 시켜달라 해도 혼자서 독점하려 하고.”

“아니 제가 언제…….”

억울한 듯 말하지만 이미 그쪽으로 넘어간 주도권은 찾을 수 없었다.

답답한 듯 가슴을 탕탕 두드리는 재석이었지만 그를 신경 쓰는 멤버는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창현에게 다가가 달콤한 말을 건넬 뿐.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던 창현은 그들을 둘러보더니 입을 연다.

“저번에 테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에 어울릴 법한 곡들을 산출했습니다.”

“벌써 준비가 되었다는 건가요?”

예비 곡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설마 벌써 준비가 끝날 줄 몰랐기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아직 가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긴 하지요. 그 부분은 노래를 부르는 당사자와 함께 차츰 가다듬을 생각입니다. 아직 가사도 쓰지 않으셨잖아요?”

“그건…….”

이틀 밖에 되지 않았는데 가사를 썼을 리 없다.

아니, 아직 가사를 어떻게 쓸지 감조차 잡지 못한 상태였다.

“저는 대충 구상을 했는데요.”

그때, 손을 들고 앞으로 나서는 전진. 아이돌 출신인 그는 이미 창현의 말을 듣고 대략적인 구상을 마쳐온 상태였다.

무한도전 내 우등생인 그는 다른 멤버들과 틀린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전진이 적어온 가사를 받아드는 창현.

이미 그가 부를 곡을 대략 윤곽을 잡아놓은 상태였기에 가사를 읽어본 창현은 고개를 끄덕인다.

“호오! 괜찮은데요?”

칭찬 섞인 창현의 말에 밝아지는 전진의 얼굴.

확실히 그가 적어온 가사 자체는 괜찮다. 테마에도 어울리고, 곡 자체에도 부담감 없이 어우러질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곡의 ‘완성도’를 중심으로 보았을 때 하는 평가 기준이다.

무한도전은 음악 프로그램이 아닌 예능 프로그램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웃음을 줘야 하며, 한 줄기 감동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점에서 보면 전진이 적어온 가사 자체는 훌륭했지만 예능용에 적합하냐, 라고 묻는다면 단호하게 아니라 할 수 있다.

이번 여름 가요제는 곡의 완성도보다는 보다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고, 따라 부르기 쉽게 하는 것이었으니까.

가볍게 즐기는 종류의 음악을 사람들은 곧잘 얕보고는 하지만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대중적인 문화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예능용으로 가다듬어야 하는데… 잘할 수 있으려나?’

그 부분은 자신에게 주어진 몫.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불투명하다.

다만 최선을 다할 뿐.

“역시 우등생!”

“저 녀석은 운동도 잘하고 작사도 잘하고… 이거 너무 불공평한 거 아냐?”

창현의 칭찬을 들은 전진이 부러웠는지 시기의 말을 늘어놓는 명수.

그 모습에 미소를 지어보인 창현은 고개를 살짝 젓더니 말한다.

“노력하시면 다른 분들도 더욱 잘하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현 씨가 믿어주니 기대를 배신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그렇게 말하지만 자신감이 별로 없는 듯하다. 아무래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니 그런 것이겠지.

자신이 나서서 먼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배려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창현이 입을 열었다.

“일단 곡 하나를 먼저 들어보시겠어요? 작사에 관련된 건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되요. 제가 그 부분에 대해서 맞춰서 개사를 할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 부담 갖지 말고 한 번 들어보세요.”

“일단 들어봅시다. 과연 어떤 곡일지.”

“오케이!”

모든 멤버들이 동의하자 1층에 멤버들이 둘러앉기 시작하고, 창현은 노트북과 함께 스피커를 설치하고는 아직 미완성된 프로그램 파일을 재생하기 시작한다.

“이건 박명수 씨가 부르게 될 곡입니다.”

그러면서 재생하는 창현.

두두둥! 하는 묵직한 사운드와 함께 곡이 시작된다.

가사조차 입히지 않았으며, 믹싱을 하지도 않은 큰 뼈대였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크게 울리는 곡이었다.

단조로운 소리였지만 곡의 전개는 마치 판타지 소설과도 같았다.

도입부로 들어가면서 흥미를 주다가 서서히 전개하는 과정에서 몰입하게 만든다. 그리고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강약을 조절하면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더니, 그대로 쾅! 하고 절정 부분에서 터뜨려준다.

그때 느껴지는 강렬한 카타르시스.

한 줄기 전율이 몸을 휩쓰는 듯한 느낌에 모드가 감탄사를 터뜨리며 몸을 부르르 떤다.

“…….”

곡을 들은 명수는 얼떨떨한 기색이었다.

아직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사운드였지만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큰 스케일이 느껴지는 곡이었다.

“이, 이게 내 곡이란 말입니까?”

급기야 말까지 더듬는다.

“맞아요. 좀 더 가다듬을 게 있지만요. 가사가 나오고, 본격적으로 노래를 만들면 좀 더 좋은 곡이 될 거라 생각되거든요.”

“계약합시다.”

창현의 실력을 직접 목격하게 되자 급기야 계약하자고 앞으로 나서는 명수.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곡이라 해도 상관없다. 일단 큰 떡부터 낼름 먹어야 그 떡이 자신의 것이 될 테니까. 호시탐탐 1인자 자리를 노리는 명수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욕망의 화신이었다.

“하하…….”

다짜고짜 계약하자는 명수의 말에 창현이 멋쩍은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 핸드폰에 진동이 오는 것을 느끼고는 핸드폰을 펼쳐든다.

[작업실 앞인데 그냥 들어가면 돼?] 얼음공주 제시카

소녀시대가 작업실에 도착한 듯 싶었다.

마침 적절한 타이밍이라 생각한 창현은 벨을 누르라는 문자를 보내고는 무한도전 멤버들을 보면서 말한다.

“이번 녹음을 함에 있어 도움을 주실 분들이 계십니다.”

“도움을 주실 분?”

창현 말고 다른 사람이 참여한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기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그 모습을 보며 창현은 슬슬 타이밍을 재며 말한다.

“곧 오실 거예요.”

그때, 마치 서로 짜기라도 한 것처럼 띵동! 하며 초인종 소리가 들려온다.

그가 말하기 무섭게 초인종 소리가 울리자 무한도전 멤버들의 시선이 창현에게 고정되었다.

“오셨네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창현이 곧장 작업실 문을 연다.

그러자 우르르 들어서는 소녀들.

화사한 여인들의 등장에 무한도전 멤버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입이 헤벌쭉 벌어지기 시작했다.

작업실 안으로 들어선 여인들의 숫자는 무려 아홉 명.

창현은 가장 옆으로 서서 그녀들을 소개한다.

“이번 여름 가요제에 도움을 주실 분들입니다.”

그의 눈짓을 받은 태연이 앞으로 한걸음 나서더니 숫자를 샌다.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소녀시대입니다.”

그와 함께 터져 나오는 목소리. 그것은 무한도전 여름 가요제에 소녀시대가 도우미로 참석한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와도 같았다.


소녀시대의 등장은 큰 반향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무한도전 멤버들은 연신 서로를 바라보더니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다.

아직까지 현실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고 있던 것이다.

“지금 들어온 게 소녀시대지?”

“소녀시대야, 소녀시대.”

“와! 소녀시대다!”

칙칙한 남자들만 있는 공간(여자 스태프들과 작가 제외)에서 여성의 등장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다.

특히나 어리고 예쁜 여자 아이돌은 더더욱 그러하다.

예쁜 소녀들이 우르르 등장하자 작가들은 경계 어린 기색을 띤다. 방송에도 나오지 않건만 소녀시대의 등장은 여성으로 무언가 본능을 자극하는 면이 있었다.

단지 소녀시대를 초대한 PD진만 담담한 기색을 띨 뿐이었다.

‘설마 전부 다 올 줄이야.’

태호 PD가 눈을 빛냈다.

창현이 소녀시대에게 도움을 청하여 작업을 수월하게 하겠다는 의견을 제시하였고, 그는 흔쾌히 수락하였다. 하지만 몇 명이나 참여할지 불분명한 상황이었기에 내심 몇 명이나 올지 걱정하던 것이 사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하게 아홉 명 전원이 다 온 것이다.

‘설마 다 올 줄은 몰랐는데…….’

창현도 적잖게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서 입을 떡 벌린 채 소녀시대 멤버들을 바라보고 있는 무한도전 멤버들에게 말한다.

“아무래도 저 혼자서 일을 추진하는 것이 힘들 것 같아 소녀시대를 초대했습니다. 제가 메인 프로듀서 역할을 맡고, 소녀시대 분들이 보조 역할을 맡아주시기로 했습니다.”

“소녀시대 분들이 오면 저희야 대환영입니다. 이리 오세요.”

아리따운 소녀들의 등장에 입이 크게 벌어진 재석이 화색을 띠며 말한다.

그러면서 소녀시대를 카메라 중앙으로 인도한다.

작업실의 크기가 무척 넓었지만 스태프들부터 시작하여 무한도전 멤버, 소녀시대 아홉 명까지 들어오자 북적북적거리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재석은 인터뷰를 하듯 리더인 태연에게 묻는다.

“어떻게 보조 역할로 참가하게 되신 겁니까, 태연 양?”

“아,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현 씨가 무한도전 앨범 제작을 맡았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슈퍼주니어 오빠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더군요. 하지만 슈퍼주니어 오빠들은 현재 콘서트 일정으로 무척 바빠 저희가 대타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반쯤 진실, 반쯤 거짓이 섞인 말이었다.

슈퍼주니어를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들의 일정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후, 일찌감치 후보에서 제외하고 소녀시대를 추진한 창현이었다.

태연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행여나 창현에게 피해가 가고, 소녀시대 자체가 욕먹을 수도 있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고정적인 안티팬이 악플을 달지 않을 리 없지만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자기 멋대로 판단하여 결국 욕하는 것을 즐기는 부류에 불과하니까.

“아! 슈퍼주니어 분들에게는 애석하지만 오히려 저희에게는 잘 되었군요. 아무래도 저희에게는 풋풋한 소녀시대가 도와주는 게 더 좋지 않겠습니까? 안 그래요?”

“옳소, 옳소!”

“맞습니다!”

늑대의 심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한껏 야성을 표출(?)하는 재석의 외침에 모든 무한도전 멤버들이 열렬한 지지를 보낸다.

슈퍼주니어의 인기가 아무리 하늘을 찌른다 하더라도 남자가 남자에게 열광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정신없이 인터뷰를 나누고 있는 태연과 수영, 윤아를 제외하고 다른 멤버들은 카메라 앵글에 살짝 벗어난 상태였다.

창현은 주현에게 슬그머니 다가가더니 그녀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설마 모든 멤버들이 다 왔을 줄 몰랐어요. 대단한데요?”

어제 이야기를 꺼내 세 명도 오지 못할까 싶었는데 설마 아홉 명 전원이 다 올 줄이야.

새삼 주현의 수완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창현이다.

“다음 스케줄부터는 다 오지 못할 것 같아.”

고정적인 스케줄이 존재하는 태연과 미영은 다음 촬영 합류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었고, 윤아 또한 드라마가 종영을 앞둔 시점에 단독 CF 촬영 미팅이 잡혀있어 다음 촬영부터는 참여하지 못할 예정이다.

다만 오늘은 인사를 나누는 입장이기에 모든 멤버가 참여한 셈이다.

“그래도 괜찮아요.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요.”

각자의 스케줄이 있음에도 시간을 쪼개 참여해준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창현이다.

그 사이 이야기를 나누던 재석은 창현을 향해 시선을 옮기며 질문한다.

“자, 그럼 현 씨. 소녀시대 분들이 오셨으니 저희들을 맡아줄 보조 선생님을 선발하는 게 어떻습니까?”

방금 전 태연에게 세 명은 합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상황.

그렇게 되면 딱 여섯 명이 남게되고, 무한도전 멤버 또한 여섯 명이니 각각 멤버들을 정하는 것이 어떠할지 이야기하는 재석이었다.

단체 레슨을 시킬지 개인 레슨을 시킬지 고민하던 창현은 재석의 말을 듣고 각자 한 명씩 선발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여보인다.

“음! 각자 한 명씩 말이죠? 괜찮은데요?”

“자, 그럼 각자 파트너를 한 명씩 고르는 걸로 하죠.”

“대신 선택권은 소녀시대 분들에게 주는 겁니다.”

마치 커플 짝짓기 게임 같은 모양새가 되어버렸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를 유발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물론입니…….”

“찬성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재석을 제치고 앞으로 나선 명수가 자신 있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그의 모습에 한순간 할 말을 잃은 사람들이었지만 뒤이어 나서는 말에 금세 묻혀버린다.

“그럼 이런 방식으로 선택하는 건 어떨까요?”

앞으로 나선 창현이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태연과 미영, 윤아를 제외하면 남은 멤버들은 각각 수연과 순규, 효연, 유리, 수영, 주현이다.

이 중에서 보컬 라인을 나누면 수연과 순규, 주현이 될 테고, 춤 라인으로 나누면 효연, 유리, 수영으로 나뉜다.

즉, 세 곡은 댄스 중심의 곡이 될 수 있을 것이고, 다른 세 곡은 보컬 중심의 곡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오! 그럼 효연 양과, 유리 양, 수영 양에게 선택된 멤버는 댄스 중심으로 갈 수 있겠군요?”

“그렇죠. 물론 제가 메인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만큼 최종 점검을 하겠지만 무게 중심이 그쪽으로 기울 수 있다는 것을 알려드린 겁니다.”

“보컬 중심이라… 노래에 자신 없으면 댄스 중심이 좋으려나?”

“몸치고 음치인데 어떻게 하나…….”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무한도전 멤버들을 보며 창현이 어색한 웃음을 짓더니 말한다.

“지금 그걸 걱정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선택을 받을지 고민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아… 그렇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이미 결과가 정해진 것 마냥 행동하던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깨닫고는 피식 웃음을 짓는다.

“그럼 각자 한 분씩 포부를 밝히는 걸 해서 소녀시대 분들의 선택을 끌어내는 것이 어떨까요?”

“좋습니다!”

찬성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선 것은 재석. 그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말로 소녀시대를 설득하며 자신을 뽑아주길 바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한다.

소녀시대 내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멤버는 재석이었기에 열렬한 호응을 얻는다.

그 다음 나선 것은 홍철. 사기꾼이라는 별명답게 그는 재석을 벤치마킹하여 살살 구슬리는 방향으로 소녀시대를 꼬드기기 시작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운 수준. 적어도 외면을 받지 않았으니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성들 앞이라 그런지 어색한 표정을 지은 형돈은 어버버버하다가 강제로 조기종영 되었고, 준하는 뭐라 말을 늘어놓기는 하는데 점점 엉키다가 이내 자폭을 하고 만다.

우등생 포스를 팍팍 풍기는 전진은 자신과 함께 하면 고생을 적게 할 수 있다는 걸로 유혹한다.

마지막으로 나선 명수는 금전으로 회유(?)하려다 실패하여 소녀시대 멤버들의 야유를 받으며 뒤로 물러난다.

“그럼 모두 들어봤으니 이제부터 선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면…….”

모든 멤버들이 이야기를 끝내고, 선택을 기다리는 눈으로 기다리자, 창현이 설명을 이어나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아까 전부터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의 정체는 바로 수연이었다.

‘멋있다…….’

숙소에서 차가운 카리스마로 멤버들을 휘어잡던 수연은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창현의 모습에 넋을 잃은 표정을 짓는다.

당연히 그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였다.

그녀의 눈에 자체적으로 각색된 창현이 오색 아우라를 뿜어내며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모습만 보일 뿐.

그 사이 설명을 끝낸 창현이 소녀시대 멤버들에게 말한다.

“그럼 처음으로 박명수 씨와 함께 할 분은…….”

사사삭!

미처 창현의 말이 끝나기 전이었다.

이미 자기 자신을 홍보하면서 자폭한 명수였기에 소녀시대 멤버들은 잔혹하게도 그를 저버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거부의 의사를 보냈다.

하지만 창현의 멋진 모습에 빠져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수연은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화를 자초했다.

“그럼 제시카 씨로 결정된 건가요?”

“에? 네?”

멍하니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던 수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돌리더니 의아한 기색으로 창현을 바라본다.

그 사이 이미 창현은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그럼 제시카 씨는 박명수 씨와 함께 하는 것으로 결정하겠습니다.”

……What?

멍 놓고 있던 폭군 수연 양은 박명수와 함께 최악의 조합을 구성하게 되었다.


잠시 멍 놓고 있다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수연 양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순조롭게 파트너를 짤 수 있었다.

단지 수연만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

그녀가 자의에 의해 선택된 것이 아니라는 걸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멤버들이 알고 있는 상황이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수연에게 재석이 위로의 한마디를 건넨다.

“힘내요, 제시카 씨.”

“힘내 시카야…….”

재석의 위로 이후 태연을 비롯한 다른 멤버들이 위로해준다. 수연이 명수와 호흡을 맞추게 된 것은 군대 최전방에 배치된 것과 같은 이치. 한마디로 제일 힘든 일을 겪게 된다는 뜻이다.

“이거 다시 할 수 없는 거죠?”

수연의 물음에 재석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안타깝지만 다른 소녀시대 멤버분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

재석의 말에 수연이 멤버들에게 시선을 옮긴다.

그녀들은 절대 바꿔줄 기세가 아니었다.

“후우!”

한숨을 푹 내쉬는 수연. 멋진 창현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멍 놓고 있다가 이런 봉변이라니.

한편, 완전 애물단지 취급을 받게 된 명수는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표정을 찌푸리며 수연에게 말한다.

“표정이 왜 그래, 좀 밝게 지어봐.”

“이렇게요?”

방송용이랍시고 웃음을 지어보였지만 그녀는 컨셉 자체가 얼음공주였고, 애초에 웃음을 짓는 것 자체가 다른 멤버들 만큼 익숙하지가 않다.

“어색한데?”

망설임없이 수연의 웃음에 대해 혹평을 가하는 명수. 그는 지금 주변 분위기와 수연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삐딱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것을 알아차린 재석이 나서서 도와준다.

“그러지 마세요. 제시카 씨가 원래 마음을 곧잘 표현 못할 뿐이지 마음은 얼마나 따뜻한 분인데요.”

“맞아요, 시카가 얼마나 착한데요.”

“애교도 많고요.”

멤버들의 지원 사격이 이어지자 불퉁한 모습을 보이던 명수는 잠시 침묵한 채 조용히 수연을 살피다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한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맞아요!”

그렇게 말을 해도 다른 사람의 말을 믿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러자 수연은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새침한 어조로 말한다.

“자꾸 그러시면 저 그냥 관둘래요! 관두고 메인 프로듀서님을 도와드릴래요.”

수연이 가한 강한 한 수! 그것은 그녀의 개인적인 사심이 담긴 일격이기도 하였다.

메인 프로듀서는 다름 아닌 창현이었으니 명수와 갈라서고 창현과 찰싹 달라붙을 생각이었다.

그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다. 순간 몇몇 멤버들의 눈에 푸른 귀화가 번뜩였다.

설마 수연이 이렇게 강하게 나올 줄 몰랐는지 명수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연다.

“자, 잠시만요.”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전 그만둘 거예요!”

“미, 미안합니다. 그러니 우리 다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요.”

백기를 들고 항복을 선언하는 명수. 수연마저 도와주지 않는다면 자신은 혼자서 하게 될 거란 생각이 들었기에 결국 그녀에게 무릎을 꿇는 수밖에 없었다.

능수능란하게 명수를 밀고 당긴 수연이 힐끗 그를 보며 말한다.

“앞으로 제 표정 가지고 뭐라 하지 않기에요?”

“아, 알겠습니다. 그러니 우리 잘해봅시다.”

“네, 최선을 다해서 1등으로 만들어 드릴게요!”

항복 선언과도 다름없는 명수의 말에 수연 또한 표정을 사르르 풀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렇게 명수와 수연 콤비는 파국을 맞이하지 않은 채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아~ 아쉬운데요? 잘만 되었으면 명수형 혼자 할 수 있었는데.”

“뭐라고?”

명수가 눈을 치뜨자 재빨리 꼬리를 말고 한 걸음 물러서는 홍철. 그 모습을 보며 재석은 입가에 웃음을 짓더니 창현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묻는다.

“자, 그럼 이제 저희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우선 정해진 파트너분과 테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좋다 생각합니다. 간단하게 테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의견을 교환해보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곧장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답을 하는 재석의 얼굴은 싱글벙글.

그의 파트너는 다름 아닌 소녀시대의 유리.

여자 아이돌 몸매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로서는 섹시한 타입의 유리를 가장 좋아했기에 아까 전부터 입가에 웃음이 매달려 있었다.

유리 또한 무한도전을 즐겨보는 애청자로서 입담이 좋은 재석의 팬이었기에 서로 쿵짝을 맞춰가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수연은 이야기를 나누는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명수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말한다.

“그럼 이야기를 나눠야겠네요.”

“그럽시다.”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명수.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하였다. 시원한 태도로 이야기를 나누겠다 말을 했지만 정작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것이다.

“…….”

“…왜 그러시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의 모습이 불안했는지 수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그러자 고개를 갸우뚱하던 명수가 아! 하며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을 짓더니 손을 들어 수연에게 사과한다.

“미안합니다. 테마가 뭔지 까먹었습니다.”

“예에?”

수연의 입에서 어이없다는 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불과 이틀 전에 정해놓은 테마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걸 까먹었다니 말이 되는 이야기란 말인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웃기려고 모른다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아 그러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 건가요?”

“으음! 그게 그러니까… 이번 테마가 이열치열이어서 엄청 뜨거운 걸 선택했는데…….”

생각에 잠기는 명수. 이틀 전에 정할 때는 무작정 뜨거운 것을 선택해서 말했는데 막상 상황이 닥치자 머리가 하얗게 비면서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게다가 방금 전 겪어보아서 알다시피 수연의 기가 워낙 센 편이어서 주눅이 든 면도 없지 않아 있고.

“…….”

이리저리 생각을 하는 명수였지만 무엇을 말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선택했단 말인가.

수연의 눈초리가 점점 심상치 않게 변하자 명수가 말을 더듬기 시작한다.

“그게 그러니까…….”

“처음에 어떻게 하시려 했는데요?”

보다 못한 수연은 차근차근 접근해나가기로 생각하며 명수가 처음 정했던 생각에 대해 묻는다.

그러자 명수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말한다.

“음! 일단 이번 테마가 이열치열입니다.”

“이열치열이 뭐죠?”

아직 한글에 약한 면모를 보이는 수연이었다. 그렇기에 명수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하여 설명하기 시작한다.

눈초리가 심상치 않아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들다 보니 뇌의 활동이 비약적으로 상승된 상태였다.

“음! 뜨거운 걸 뜨거운 골로 극복한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뜨거운 게 테마네요. 그럼 뜨거운 게 뭐가 있을까요? 태양? 불? 아니면…….”

하나하나 조목조목 대상을 늘어놓는 수연.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명수는 자신이 선택했던 테마가 떠올랐는지 눈을 빛내며 외친다.

“그때 선택했던 게… 아아!”

“생각나셨나요?”

“네! 제가 선택한 건 바로 그겁니다!”

“그거요?”

그게 뭔지 몰라서 명수에게 묻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수연은 순간 버럭 할 뻔했지만 꾹 억누르고는 인내심 있게 명수를 바라보며 묻는다.

“그거, 화산 말입니다.”

“화산? 화산이라면…….”

순간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멍한 표정을 짓는 수연.

그녀는 불신 어린 기색으로 명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묻는다.

“설마 말씀하시는 게 화산? 볼케이노?”

이열치열을 하라 했더니 왜 갑자기 화산이 튀어나온단 말인가!

수연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이런 황당한 주제를 선택할 줄이야. 이열치열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대충 감을 잡아나가고 있었는데 무리수인 화산이 튀어나오자 그녀는 앞이 까마득해지는 느낌이다.

‘콤비, 그만둬야 하는 걸까…….’

진지하게 명수와의 콤비를 그만둘지 고민하는 수연이다.


명수와 수연이 빅 매치를 이루며 서로 대치하고 있을 때, 다른 쪽에서도 토론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선택을 받아 파트너가 정해지고, 재석은 그야 말로 싱글벙글.

자주 말하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은연중 소녀시대에서 유리를 가장 좋아하던 재석은 그녀와 함께 파트너가 된 것이 무척 즐거운 듯 싶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

자신의 주도권으로 자연스레 끌어들이면서 함께 안무를 짤 생각에 재석이 입을 연다.

그러나 그는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바로 유리는 소녀시대 내에서 사마율이라 칭해질 정도로 뛰어난 잔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는 표정을 진지하게 굳힌 채 재석에게 말한다.

“우선 테마를 알아야 해요.”

“테마라면… 이열치열이거든. 그래서 이번에 내가 선택한 것은 떡볶이고.”

“떡볶이요?”

“그래! 왜 그런 거 있잖아. 매콤한 떡볶이를 먹고 땀을 쭉 배고 나서 느끼는 상쾌한 느낌. 그걸 노리고 떡볶이로 선택을 했지.”

이열치열이라고 하면서 테마를 선택할 때 여러 가지 유형으로 나뉘었다.

바로 명수 같이 초자연적인(?) 화산을 고르는 사람도 있었고, 재석 같이 매콤한 음식을 바탕으로 이열치열을 하겠다는 발상을 한 사람도 있다.

듣기만 해도 맵게 느껴지는 떡볶이로 하여금 땀을 흘리게 하여 이열치열을 하겠다는 재석 나름대로의 계산이었다.

“괜찮은 것 같아요.”

“그렇지? 역시!”

파트너의 인정에 표정이 환하게 변하는 재석.

그는 미처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유리에게 인정을 받고, 자신은 그녀에게 답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재석이 그것을 전혀 자각하지 못한 채 유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보컬 쪽보다는 안무 쪽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렇지. 유리 넌 안무 쪽에 더 특출나다 했으니까.”

댄스 라인과 보컬 라인이 나뉜 것을 알고 있고, 유리가 댄스 라인인 걸 알고 있는 재석은 노래에 댄스가 가미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댄스 라인 중에서 가장 특화된 사람은 바로 효연이거든요. 정면 대결을 하면 이길 수가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재석도 일말의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이리라. 유리는 순수 춤 대결로 상대하면 효연을 꺾기가 힘들 것이라 여겨졌다. 더군다나 효연의 파트너는 전진이 아니던가. 자신이 효연을 감당한다 하더라도 재석이 전진을 감당할 방법은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

‘그래도 방법은 있어.’

명백한 열세였지만 유리가 믿고 있는 것은 재석의 예능감이다.

순수한 노래 완성도로 승부한다면 상대가 될 리 없지만 무한도전은 그 자체가 예능인 만큼 그 특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생각이었다.

“제게 방법이 있어요.”

“뭔데?”

“그건…….”

화색이 돌며 유리에게 답을 구하자, 그녀는 목소리를 한껏 낮춰 재석에게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 재석의 눈에 동그랗게 커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자신만만한 웃음을 짓기 시작한다.

이번 가요제의 승리는 우리 것이다!


“고 퀄리티 무대로 단번에 휘어잡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효연은 전진과 파트너가 되자 자신의 의견을 털어놓았다.

다른 것 따위는 다 필요없다고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전진은 이곳에서 우등생이라 칭해질 만큼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으니까. 효연 또한 소녀시대 내에서 춤을 가장 잘 춘다고 평이 자자한 만큼 두 사람의 조합은 그야 말로 최강의 무기가 합쳐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방법은 필요없다. 이미 자신들의 기본 실력 자체가 다른 그룹을 압도하는 이상, 정면돌파로 모든 그룹을 부숴버릴 생각이었다.

“나쁘지 않아. 그럼 안무를 중심으로 짤까?”

“네! 강렬한 퍼포먼스로 단숨에 눌러버리지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진지하게 하는 그룹이 하나쯤 있어야 하리라.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지만 그것을 능가할 만큼 강렬한 퍼포먼스를 펼쳐 단숨에 가요제를 휘어잡을 생각이었다.


전체적인 상황은 소녀시대의 우세를 보이고 있었다.

유리를 휘어잡으려던 재석은 자신도 모르게 페이스가 말려 유리의 제안에 승낙하여 그녀의 뜻대로 따르는 신세가 되어버렸고, 전진 또한 효연과 함께 합작을 선언하면서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퍼포먼스를 고안하기로 하였다.

남은 준하와 형돈은 소녀시대 내에서 기가 상당히 센 순규와 수영을 만나 단숨에 무너지고 있었다.

마치 선생님에게 숙제를 검사 맡는 학생마냥 두 사람은 테마부터 시작하여 곡에 어울리는 작사 쪽까지 모든 것을 하나하나 검사 맡는 형태가 되었다.

열 살 차이 넘게 나는 남자들이 나이 어린 소녀에게 꼼짝 못하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웃음을 짓게 하였다.

남은 것은 홍철과 주현의 조합.

이곳은 홍철의 굉장한 우세가 점쳐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한도전 맴버들 중에서 가장 화려한 입담과 함께 상대방을 휘어잡는 언변을 지닌 것이 바로 홍철이었던 것이다.

그에 반해 주현은 논리적이지만 조용한 성격으로 다른 사람을 단번에 휘어잡는 카리스마 같은 것은 지니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홍철의 우세가 점쳐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까, 우선 내가 생각한 테마는 태양이야! 태양!”

홍철이 선택한 테마는 다름 아닌 태양. 이열치열이라 칭하지만 가장 뜨거운 것은 아무래도 태양 아니겠는가! 이것을 떠올린 그는 가장 먼저 테마를 선택하였고, 자신이 1등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만만해 하고 있었다.

“태양이요?”

“그래, 태양! 완전 뜨겁잖아. 이열치열! 뜨거운 걸 뜨거운 걸로 다스리려면 당연히 뜨거운 걸로 해야지. 그러니까 이걸 바탕으로 해서 단숨에 다른 사람들을 압도하는 거야.”

앞뒤를 종잡을 수 없고 의미 파악이 선뜻 되지 않는 현란한 말 때문에 주현은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잠시 침묵하다 그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주현이 조용히 묻는다.

“생각하신 게 있으세요?”

“당연히 있지! 우선 태양하면 뭐가 떠올라? 낮이 떠오르지. 낮이 떠오르면 당연히…….”

시작된 홍철의 무한 수다. 가사를 완성한 전진과 달리 그는 머릿속에서 구상을 한 것이 있는지 주현에게 자신의 사상을 은연중 주입(?)시키기 시작하였다. 그가 생각한 가사는 상당한 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었으며 동시에 예능용으로 무척 적합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스스로의 생각일 뿐이다.

“어때, 어때? 완전 괜찮지?”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은 홍철이 기대감 어린 눈동자로 주현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 물음에 잠시 침묵하던 주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좀 유치한 거 같은데…….”

“유, 유치하다고? 절대 그렇지 않아! 이 가사로 말할 것 같으면…….”

유치하다는 말에 한차례 휘청이던 홍철은 절대 그렇지 않다면서 예능에 대한 흐름과 태양이 이열치열에 미치는 것에 대한 자신만의 해괴한 논리에 입각하여 주현을 납득시키려 하였다. 따발총처럼 튀어나오는 그의 말은 보통 사람이 듣는다면 충분히 질려버릴 정도로 대단한 양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대는 다름 아닌 소녀시대의 막내 서현이다.

논리적인 것을 신봉하는 그녀에게 있어 홍철의 말은 궤변에 불과하였다.

맞는 것도 몇 개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자신만의 기준에 입각한 것뿐이었으니까.

“제 생각은 달라요.”

“아니, 그러니까…….”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않은 듯한 주현의 모습에 홍철이 다시 말하려 했지만 주현이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우선 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그러시고 다시 이야기를 해주셔도 되요!”

“…….”

나직하지만 강한 어조로 말하는 주현의 모습에 홍철은 꼼짝도 못한 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니까 방금 전 말씀하신 부분은…….”

뒤이어 이어지는 주현의 말. 놀랍게도 그녀는 홍철이 한 말을 모두 기억하고 하나하나 조목조목 짚어가며 틀린 부분과 애매모호한 부분을 짚어나가고 있었다.

그 긴 말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그리고 여기에서는…….”

홍철은 본인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말들을 모두 기억한 채 지적하는 주현의 모습에 서서히 기가 질리고 있었다.

‘내, 내가 상대를 잘못 만났어.’

그리고 어느덧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인정하고야 말았다.

무한도전 내에서 가장 압도적인 말빨을 자랑하는 그였지만 상성이라는 것은 엄연히 존재하는 법. 논리를 앞세워 자신의 해괴한 궤변을 하나하나 파괴해나가는 주현은 그에게 있어 천적 그 이상이었다.

상대를 잘못 만나도 단단히 잘못 만난 셈이다.

파트너를 이룬 무한도전 멤버들은 명수와 수연 조합을 제외하고 철저하게 털리고 있는 중이었다.


“애들이 잘하고 있네.”

태연은 무한도전 멤버들을 압도하며 자신들의 페이스로 끌어들이고 있는 멤버들을 보면서 감탄이 섞인 어조로 중얼거린다.

예능에서 구르고 구른 인물들이니 만큼 상대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는데 자신의 페이스로 끌어들여 뜻대로 움직이는 모습이라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순간이었다.

“나도 하고 싶은데… 히잉! 스케줄 빼달라고 하면 안 될까.”

함께 무한도전 촬영에 합류하고 싶었는지 미영은 아쉬워하면서 우는 소리를 하였다.

“어쩔 수 없잖아. 스케줄이 그렇게 잡혀있는 걸.”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단 말야. 나도 합류하고 싶어.”

연예인은 한 방이라는 말이 종종 나오고는 한다.

그 까닭은 인기가 한 철이라는 뜻과 절묘하게 매치되는데, 인기를 얻을 때 몰아서 받는다고 할 정도로 인기가 몰릴 때가 있다.

그때가 되면 기획사 측에서는 인기를 바탕으로 수익을 극대화 시키고자 노력한다.

아직 소녀시대 경우 활짝 만개하지 않았지만 몇몇 멤버들이 높은 인지도를 얻으면서 서서히 그룹의 이름을 널리 알려나가는 중이다.

라디오 DJ와 MC를 맡은 태연과 미영은 선봉부대와도 같고, 드라마로 인해 일약 소녀시대라는 이름보다 배우 윤아로서 이름을 널리 알린 윤아는 소녀시대 전체 이름을 끌고 다니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당연히 그녀들 세 사람을 바탕으로 스케줄이 짜일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세 여인은 음반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촘촘한 스케줄을 자랑하고 있었다.

“너만 그런 줄 알어? 나도 하고 싶단 말이야.”

“저도요.”

울상을 짓는 미영을 째려보려 태연이 말하자, 윤아도 끼어들며 말한다.

윤아는 지금 배가 아파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자신이 소녀시대의 인기를 견인하는 역할을 맡아 은연중 뿌듯해하고 있었는데 설마 무한도전 의뢰가 들어올 줄이야.

창현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잡지 못하게 되자 그녀는 배가 아파 죽을 것 같았다.

‘하필이면…….’

아직 종영되지 않은 드라마의 여파가 무척 커서 윤아는 단독으로 CF 제의도 들어온 상황이고, 화보집과 인터뷰 등 여러 가지 스케줄이 무척 많이 잡혀 있었다.

그런데 반해 멤버들은 비교적 한가했는데 그것이 호재로 작용한 셈.

세상사 새옹지마라더니 설마 이런식으로 일이 전개될 줄 몰랐다.

그때, 미영은 와룡 파니로 변모하여 슈퍼 컴퓨터와 비슷한 연산량을 자랑하며 경우의 수를 세어보더니, 눈을 번뜩이며 두 소녀에게 말한다.

“그럼 우리도 뭔가 하자고 해볼까?”

“뭘 해봐요?”

“창현이가 일이 많다고 한 것은 저것 뿐만이 아닐 거야. 아마 다른 일도 있을 테지. 우리가 그것을 돕는 거야.”

예리한 와룡 파니의 안목에 의하면 고작 상의하여 안무를 짜는 것만으로도 힘들다 할 창현이 아니다.

그렇다는 건 분명 다른 것도 있다는 뜻. 미영은 그 빈틈을 파고들고자 하였다.

태연과 윤아만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테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녀들을 따돌릴 수 없으니 차라리 같이 끌고 들어가서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는 더미로 사용하는 게 낫다.

미영의 말을 들은 태연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동의한다.

“흐음! 확실히 일리는 있어.”

“그럼 물어보자.”

“그래!”

태연을 선두로 미영과 윤아가 뒤를 따라서 창현에게 갔다.

토론하는 소녀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창현은 태연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순간 움찔한다.

그녀를 보니 자신도 모르게 그때 있었던 흐뭇한 일(?)에 대해서 떠올랐던 것이다.

‘분명 나쁘지는 않았지만…….’

벌써 한 달이 훌쩍 넘은 일이지만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재생이 된다.

미국 출신도 아닌 전라도 전주 출신인 그녀가 자신에게 그렇고 저런 짓을 했으니 창현으로서는 당연히 쉽게 대할 수 없다.

더군다나 그의 입장에서 그것은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장난스러운 뽀뽀가 아닌 연인과 연인들이 하는 깊고 깊은 키스 종류의 것이었으니까.

당연히 그로서는 쉽게 상대하기가 어렵다.

창현에게 다가가던 태연은 그의 반응을 보고는 움찔하며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이 큰 임팩트를 남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조금만 더 밀었다가 당기면… 우헤헤헤!’

속으로 함박 웃음을 지으면서 태연은 조심스럽게 창현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네…….”

수줍은 듯 말을 건네는 태연과 수줍게 대답하는 창현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묘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무슨 일이 있는가 싶었는지 윤아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고, 와룡 파니가 되면 눈치 스탯 또한 99가 되는 미영 또한 슬쩍 나서면서 말한다.

“두 사람 왜 그래? 마치 무슨 일이 있던 사람처럼…….”

“응? 그, 그럴 리가. 하하!”

미영의 말에 태연은 움찔 몸을 떨며 호들갑스럽게 대답을 한다. 그에 반해 창현은 속으로 철렁했지만 겉으로는 반응을 드러내지 않고는 말한다.

“하하! 별 일 아니에요. 그나저나 무슨 일 때문에 오신 거예요?”

“응. 다름이 아니라 우리도 할 일이 없을까 싶어서.”

태연의 수상한 모습에 미영은 무언가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정작 창현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에 따로 추궁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상황. 이미지로 먹고 사는 여성 아이돌인 그녀가 본색을 보일 수 없는 노릇이다.

“아아, 할 일이요? 스케줄이 바쁘셔서 배제한 건데…….”

“오늘만이라도 돕고 싶어서 그래. 할 게 없을까?”

근래 익힌 촉촉하면서 부성애(?)를 끌어낼 수 있는 눈빛을 창현에게 보낸다. 강력한 마력이 담긴 그녀의 눈빛을 목격한 창현이 순간 움찔하더니 그녀의 말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한다.

“음! 그러고 보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도 조금 그러네요. 심심할 수도 있고요.”

“응응!”

“다른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창현이 태연과 윤아를 번갈아 바라보며 묻자, 두 소녀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갑한다는 식의 대답을 한다.

“음! 그러면 다른 곡들 조율하는 게 있거든요. 일단 작사를 하기 위해서는 가이드 곡도 필요하고요. 그 부분에 대해서 약간 도움이 필요한데 도움을 주실 수 있겠어요?”

뭐든지 노래를 부르려면 가이드 곡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더군다나 작사 초보인 무한도전 멤버들은 가이드 곡의 글자수를 맞추게 한다면 작사를 하는데 훨씬 편리할 것이다.

“응. 도울게! 뭐든지 시켜만 줘.”

“그 정도는 충분히 도울 수 있어.”

“열심히 할게!”

결의가 넘치는 세 여인의 대답에 창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가이드 곡에 대한 부분은 자신이 따로 작업해야 할 듯 싶었는데 그녀들이 도와준다고 하니 좀 더 시간 절약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고.

“고마워요. 그럼 도와주세요. 작업실로 올라가죠. 저쪽은 아무래도 토론이 좀 더 이어질 것 같으니까…….”

작업실로 올라가자는 말에 세 여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서부터는 각자 알아서 해야 할 일. 작업실로 올라가서 누가 더 강한 매력을 어필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급속도로 반전될 여지가 있다.

‘반드시 내가…….’

미영와 윤아의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굳은 결의.

그에 반해 이미 창현에게 강렬한 도장을 심어둔 태연 양은 여유만만이었다.

‘좀 더 밀어야 하나? 아니면 좀 더 당겨야 하나. 당기면 매력이 없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그렇게 고민을 하면서 창현은 세 여인을 데리고 작업실을 향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카메라 감독과 음향 시설 스태프들도 떨어져서 같이 작업실로 올라간다.

정작 토론을 나누는 무한도전 멤버들은 그 움직임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듯 싶었다.

‘뭔가가 있어. 분명히…….’

작업실로 올라가는 그들을 살피는 시선이 있었다.

예리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정체는 홍철을 논리로 완벽하게 제압한 흑화 서로로 서주현 양이었다.

분명 태연을 마주할 때 평소와 다른 반응을 보이던 창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자신을 바래다주던 창현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과 묘한 일치감이 있었다.

그것은 둘 사이에 모종의 일이 있었다는 뜻.

‘반드시 알아내야 해.’

그렇게 주현은 진실의 일각에 접근하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창현의 뒤를 따라 작업실로 올라온 소녀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여러 차례 봤지만 참으로 대단한 작업실이 아닐 수 없다.

“역시 대단해.”

“그러게.”

나직이 감탄사를 흘리는 태연과 미영. 그에 반해 윤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바라보며 그녀들에게 중얼거린다.

“이런 기계도 다 실력이 있어 커버가 되는 거니 전 그렇게 놀랍지 않은 걸요? 안 그래, 창현아?”

그러면서 슬쩍 창현에게 시선을 옮겨 묻는 윤아.

그녀의 언변은 창현을 추켜올려 세워주는 기법이 사용되고 있었다.

동시에 장비를 칭찬하던 태연과 미영은 창현의 곡이 기계의 힘을 빌려 성공한 것처럼 느껴지게 되었으니 그녀들의 눈이 가늘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저게 감히…….’

태연은 창현에게 점수 따고 들어가는 그녀의 가증스러운 행태에 분통을 터뜨렸다.

‘윤아의 말 실력이 많이 늘었는 걸?’

미영은 윤아의 말솜씨가 상승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가 윤아가 자신을 바라보자 눈웃음을 짓는다.

여태까지 지력이 부족하여 자신과 유리가 잘 휘두르던 윤아였기에 그녀의 변화를 꼼꼼히 체크하는 중이었다.

“일단 가이드 곡을 부를 예정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창현이 카메라 감독을 바라보며 묻자 그는 올라온 창현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스태프 한 명을 아래층으로 내려 보낸다. 이곳에서 그가 노래를 불러버리면 가요제를 할 때 재미가 반감이 될 수 있었기에 그렇다.

“가이드 곡 부르시는 장면은 방송에 나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음! 그러면 메이킹 필름이라도 남기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스태프의 말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감독은 독단적인 판단을 내렸다.

아마 PD의 의도도 그러할 것이라. 창현의 라이브 장면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시청률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니 만큼 다시 그와 프로젝트를 할 때 이용할 수 있으리라.

굴러들어오는 복덩어리를 내칠 만큼 어리석지 않으니까.

“좋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고개를 끄덕인 창현이 기계를 만지작거리다가 세 소녀가 자리한 곳으로 시선을 옮기더니 질문을 한다.

“기계 조작할 줄 아세요?”

“난 별로…….”

“나도 잘…….”

태연과 윤아가 고개를 젓는다. 조작하는 것을 몇 번 보기는 했지만 그것 뿐, 제대로 조작을 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 미영이 우물쭈물거리는 모습으로 나서더니 창현에게 조심스럽게 말한다.

“기계? 난 조금 할 줄 아는데…….”

그녀 또한 솔로를 꿈꾸는 여인이었고, 싱어송라이터를 꿈꾸기에 조금씩 연습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기계를 조금이나마 만질 줄 알았다.

여기에서 미영이 기계를 만질 줄 아는 정도는 극히 적었고, 그 수준은 태연과 거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서로의 수준을 빤히 알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미영이 앞으로 나서자 태연의 눈썹이 상큼하게 치솟는다.

‘저것이 감히…….’

자신과 수준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 주제에 나서다니!

다만 자신은 겸손한 모습을 보이고자, 실수를 범하지 않고자 나서지 않았지만 미영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앞으로 나선 것이다.

그 차이가 두 사람의 향방을 갈랐다.

부리부리한 태연의 눈빛이 자신에게 향하자 미영은 살짝 눈웃음을 지으며 승리를 장담한다.

‘기회는 왔을 때 잡는 법이야!’

그렇게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이고 있었지만, 정작 창현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미영의 말에 반색하며 앞으로 나선다.

“할 줄 아신다고요? 그럼 잘 됐네요. 제가 가르쳐드릴 테니 몇 가지만 해주시면 되요.”

“응응!”

환한 미소를 지으며 미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 모습이 눈꼴 시렸는지 태연이 앞으로 나선다.

“창현아!”

“네?”

고개를 살짝 든 창현이 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억지로 웃음을 짓고 있어 입 꼬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나도 조금 할 줄 알거든. 그러니까 미영이한테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그래요? 그럼 두 분이서 같이 해주세요.”

반기는 분위기로 창현이 태연을 끌어들이자, 순간 독점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던 미영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태연을 바라본다.

“태연이 너…….”

“얌체 같은 짓을 내가 간과하고 넘어갈 줄 알았더냐!”

사극 톤으로 준엄하게 미영을 꾸짖은 태연은 미영 옆에 자리하고는 창현의 지도하에 기계 조작법을 배운다.

곡을 틀고, 중단하고, 다음 곡으로 넘어가는 것만 가르쳐주었기에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간단하게 이것들만 해주시면 되요.”

“응! 난 이해했어.”

태연이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미영을 힐끗 바라본다. 띨파니라 불리는 그녀가 과연 이해했을까?

가소롭다는 기색이 역력한 그 눈빛에 미영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이해했어.”

“그럼 곧장 녹음에 들어가도록 할게요.”

두 사람이 모두 이해했다고 하니 곧장 녹음에 들어가려는 창현.

그가 부스 안으로 들어가 헤드셋을 쓰고 마이크를 들며 시작하라는 눈치를 주자, 태연과 미영은 허둥지둥 노래를 재생하기 시작한다.

“이게 맞아?”

“이거 아니야? 이거라고 했던 거 같은데…….”

“그건 재생이 아니라 전곡으로 넘어가는 거잖아!”

투닥거리던 그녀들은 창현의 눈초리가 이상해지는 듯하자, 재빨리 의견을 합치고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재생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였고, 그녀들은 이것이 맞는지 두근거리는 눈으로 창현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 눈빛을 읽은 것인지 창현은 맞다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맞다는 눈빛을 읽은 그녀들은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끼며 의자에 축 늘어진다.

“후! 재생하는 것도 힘드네.”

“그러게…….”

그렇게 두 사람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옆에 앉아있던 윤아가 창현의 노래를 듣고 있다가 웃음을 짓는다.

“풉!”

“왜 그래?”

의아한 눈을 한 태연이 바라보자, 윤아가 창현을 가리키며 말한다.

“창현이 노래 들어봐요. 푸후후훗!”

윤아의 손짓에 태연과 미영은 노래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들려오는 창현의 노래 소리. 가이드 곡이기에 아직 가사가 정해지지 않아 그가 임의대로 가사를 맞춰서 했는데, 태연은 하마터면 박장대소를 터뜨릴 뻔했다.

창현이 부르는 가사가 소위 말하는 골 때리는 거였던 것이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풋!”

그는 가이드 곡 가사를 다름 아닌 애국가 노래로 대체하고 있던 것이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황당한 것이었기에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건 당연한 일.

다만 미영만 이해하지 못해서 멀뚱멀뚱할 따름이었다.

“왜 웃는 거야, 태연아?”

“지금 창현이가 부르는 거 애국가 가사거든.”

“그래?”

태연의 말에 미영이 관심을 가지며 곡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그 사이 이어지는 창현의 노래. 가사는 애국가였지만 노래 자체는 정말 뜨겁다고 할 만큼 강한 열기를 동반하고 있었다. 가사의 의미가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노래를 듣고 있는 세 여인을 비롯한 무한도전 측 스태프들은 그렇게 느끼고 있었으니까.

스태프들은 감탄에 감탄을 거듭한다.

‘역시 허명이 아니었군. 정말 대단해. 이게 바로 월드 스타의 레벨이라는 건가?’

아직 그가 모든 것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것은 단순히 가이드 곡일 뿐이고, 무한도전 멤버들이 따라 부를 수 있는 수준으로 맞춰주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으니까.

잠시 후, 노래를 끝낸 창현은 녹음 부스에서 나온다.

그러자 태연과 미영, 윤아는 연신 칭찬을 쏟아낸다.

가사의 의미가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전해지는 노래의 분위기는 그야 말로 절정에 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하하! 고마워요.”

칭찬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보내는 창현.

그러더니 돌연 그녀들을 향해 살짝 가늘어진 눈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자, 그럼 깜짝 이벤트를 해볼까요?”

“이벤트? 갑자기 무슨 이벤트?”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세 소녀들. 그녀들 뿐만 아니라 무한도전 촬영진 측에서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로 소녀시대 세 분의 즉석 노래 자랑이랄까요?”

“헉! 그게 뭐야!”

“그게 무슨 이벤트야…….”

“으에?”

태연, 미영, 윤아는 입을 떡 벌리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들의 입장에서 전혀 이벤트 같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시청자분들에게는 이벤트죠. 안 그래요?”

“그, 그렇죠. 아무래도…….”

카메라 감독이 고개를 슬쩍 끄덕이자 창현은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게다가 요즘은 보컬 트레이닝을 잘 하고 있는지 중간 점검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죠.”

“…….”

세 여인의 표정이 미약하게 일그러진다. 그녀들은 소녀시대 멤버들 중에서 가장 스케줄이 많은 축에 속했기에 연습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던 것이다.

일그러지는 그녀들의 표정을 보며 창현이 슬쩍 다가가 목소리를 죽이며 말한다.

“무한도전은 많은 시청자들이 보는 프로그램이에요. 윤아 누나가 드라마를 하면서 가창력에 대해 많은 지적을 받았거든요. 이번 기회에 그것을 날려버리고자 하니 한 곡 불러주시면 좋겠어요.”

“아!”

창현의 말을 들은 그녀들은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근래 들어 드라마가 히트 침에 따라 윤아의 안티들이 가창력에 대해 지적하며 욕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그것을 종식시키고자 창현은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이리라.

태연과 미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창현의 말에 찬성했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윤아를 도와야지.”

“창현아…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자신을 이렇게 절실하게(?) 생각해주는 창현의 모습에 윤아는 그저 감동하고 또 감동할 뿐.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실력에 의문이 들었다.

못하는 편이 아니라 생각해도 소녀시대 멤버들 중에서 떨어지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불안해하는 그녀에게 창현이 나직이 속삭인다.

“이번 기회에 완전히 편견을 날려버리도록 해요. 알겠죠?”

“응! 열심히 할게!”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 윤아가 두 소녀와 함께 부스 안으로 들어간다.

‘창현이가 날 이렇게 생각해주는데 실망시킬 수 없어. 최선을 다해야 해.’

윤아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 채.

‘나에게 트레이닝을 받은 이상 기본 실력 이상이라는 걸 보여주는 게 좋아. 그것이 윤아 누나에게도 결코 손해가 아닐 테고…….’

분명 윤아를 생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여러 차례 받고도 가창력을 지적 받고 있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번 기회를 빌려 확실하게 가창력 논란을 종지부 찍고자 하였다.

그것을 모르는 윤아는 창현이 자신을 생각해준다 하여 그에게 더욱 더 감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부스 안으로 들어온 세 소녀는 서로를 바라보며 헤드셋을 쓴다.

태연은 윤아에게 마이크를 건네주면서 나직한 목소리로 묻는다.

“윤아야, 할 수 있겠어?”

창현이 그녀에게 했던 말을 듣지 못했을 리 없다.

깜짝 이벤트라 했지만 이번 이벤트는 그녀들의 실력 평가를 빙자한 윤아의 가창력 논란 종지부를 찍으려는 일이었다.

미영 또한 윤아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동안 드라마 촬영으로 인해 보컬 트레이닝을 자주 하지 못한 윤아였다.

그렇기에 노래를 부름에 있어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

그녀들의 표정을 본 윤아가 우스웠는지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쿡! 걱정하지 마세요. 잘할 자신 있으니까요.”

“…그래.”

윤아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더 이상 그녀를 말리지 않는 태연이었다. 미영 또한 그녀의 의지를 느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일 뿐.

두 소녀는 윤아가 욕심이 많은 여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아이돌 가수 이외에도 연기라는 분야를 개척하기 위해 연기 지도를 받았던 것이었고.

욕심이 많은 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무의미하게 과욕을 부리는 타입이고, 두 번째는 그것을 모두 움켜쥐기 위해 노력하는 타입이다.

그 중에서 윤아는 후자에 가까운 타입. 어느 정도 노래가 받쳐주지만 그 재능이 메인 보컬 라인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한 수 숨겨둔 것이 존재하고 있었다.

데뷔 이후 가창력 논란을 겪을 때마다 준비해왔던 한 수.

충고해준 사람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으면 행할 수 없는 보컬 트레이닝을 그녀는 해왔다.

그 성과를 지금 실험해볼 계획이었다.

“곡은 뭘로 할까?”

윤아를 바라보며 묻는 태연. 가급적이면 그녀에게 맞춰줄 의향을 비춘 것이다.

그녀의 마음을 느낀 윤아는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말한다.

“Kelly Clarkson의 <Because Of You>로 할게요.”

한때 태연과 미영이 라디오에서 불러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곡이며, 곡 자체로도 무척 유명한 곡이었다.

그녀의 선곡에 태연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걸 하겠다고?”

“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태연 언니랑 미영 언니가 전반부와 중반부를 불러주세요. 후반부는 제가 부르도록 할게요.”

<Because Of You>는 후반부에 고음이 절정으로 달한다. 당연히 후반부가 가장 힘들 수밖에 없다.

그 뿐인가?

이미 태연과 미영이 한 차례 불렀기에 만약 윤아가 제대로 부르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씹힐 거리를 제공하는 것과 다름없다.

편집을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눈앞에서 지켜보고 있는 창현의 존재였다.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고자 나서는 자리인데 실력을 제대로 보이지 않으면 점수를 깎아먹을 것은 자명한 일.

“절 믿어주세요, 언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태연을 향해 윤아가 나직하지만 힘이 실린 목소리로 말한다.

그 모습이 여태까지 보였던 윤아의 모습과 사뭇 다르게 보여 태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그렇게 하도록 하자.”

“…응. 나도 따를게.”

미영도 윤아의 뜻을 읽었는지 순순히 수락한다.

그렇게 곡을 합의하는데 성공하자, 태연이 마이크를 들어 창현에게 말한다.

“Kelly Clarkson의 <Because Of You>로 부탁할게."

건너편에 있던 창현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장 MR을 찾아 곡을 재생하기 시작한다.

잠시 후, 시작되는 노래. 은은하면서 감미로운 MR이 울려 퍼지며 그녀들의 귓가에 스며든다.

감정을 다잡은 태연이 마이크를 든다. 전반부는 그녀가 하고, 중반부는 미영이, 그리고 후반부는 윤아가 마무리를 하기로 합의를 본 상태였다.

익숙하면서 입에 착 감기는 영어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워낙 명곡이다 보니 가사 자체의 의미가 단숨에 다가오지 않아도 멜로디 자체의 의미가 스며들어 감정 이입을 하는데 일조한다.

전반부 태연의 노래가 끝나자, 그 다음을 이은 것은 미영이었다.

미국 출신인 미영은 한결 유창한 영어로 마치 자신의 노래인 것 마냥 자연스럽게 노래를 불러나간다.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익숙한 그녀는 팝송이 더욱 감정 이입에 능했다.

“…….”

능숙하게 노래를 불러나가는 미영을 보면서 윤아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그녀가 이 노래를 한 까닭은 간단했다. 바로 두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며 크게 감명을 받았기에 그렇다.

아직 자신이 도달하지 못한 영역에 서서 능숙하게 노래를 부르는 그녀들이 윤아에게는 더욱 부럽게 느껴졌다.

가수인 이상 자신 또한 노래를 더 잘 부르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그걸 갈고 닦을 열정 또한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동안 연습해온 자신의 모든 것을 폭발시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녀들만큼 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자신이 가수 소리가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된다고.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판가름 되겠지만 적어도 스스로에게 부끄럽고 싶지 않았다.

미영이 부르는 것을 들으며 윤아는 서서히 감정 이입을 해나간다.

그러면서 미영의 파트가 끝나자, 그녀는 마이크를 잡아 노래를 불러나간다.

우선 힘을 꽉 주고 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타고난 목소리라 하더라도 트레이닝 여부에 따라 목소리가 떨리고 안 떨리고가 상당히 난다. 본인이 스스로 자각하고 그것을 고쳐나가지 않으면 쉽게 고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였고.

가장 기본적인 음정 떨림이 일어나지 않게 하며 그녀는 능숙하게 노래를 불러나간다.

노래를 잘 부르는 언니들을 보며 필사적으로 갈고 닦았던 노래.

“…….”

능숙하게 불러나가는 윤아의 모습에 태연과 미영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이것은 아직까지 스타트 부분에 불과하다. 이제부터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풍부한 성량을 필요로 하는 고음 부분이다. 이 부분을 끌어올리고 나서 유지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따라 윤아의 평가가 달라지리라.

서서히 절정으로 치닫는 윤아의 노래.

노래를 부르는 윤아는 창현을 처음 만났던 그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주현의 소개로 만나게 되어 가창력 문제로 고민하는 자신에게 가장 기본적인 고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출구를 가르쳐주던 순간.

창현은 사람의 얼굴이 저마다 다르듯이 인간이 고음을 끌어올릴 수 있는 부분도 모두 다르다 하였다. 특히 배에서 끌어올리는 음 같은 경우 사람마다 다르기에 그것을 짚어낼 수 있는 사람은 초일류 트레이너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할 정도였으니까.

그때 이미 보컬 트레이너로서 스페셜급에 도달해 있던 창현은 윤아에게 어디 부분에 힘을 주면 고음을 끌어올릴 수 있는지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윤아는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여 고음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그 부분을 단련한 상태.

이제 그 성과를 보일 때였다.

안정적이며 흔들리지 않는 윤아의 목소리가 서서히 고음을 올리기 시작한다.

좀 더 힘을 꽉 주고, 배가 울리는 듯한 느낌으로.

목이 아픈 것이 아닌, 배가 당기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럴수록 밑에서 점점 풍부한 목소리가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흔들리지 않게.

안정적이게.

그리고 높게.

“……!”

그녀의 말끔한 고음 처리를 본 모든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심지어 지켜보고 있는 창현조차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하아아!’

그 모습을 본 윤아는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적어도 여태까지 자신이 한 훈련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고음을 끝내자 태연이 마이크를 들어 노래를 마무리해낸다.

윤아는 작게 호흡을 몰아쉬며 창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만족했다는 듯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은 채 서 있었다.

‘난 실전 타입이었어.’

만족감이 절로 들었다.

이것으로 태연과 수연, 아니, 미영까지 따라잡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감은 얻을 수 있었다.

열심히 연습하면 실력이 늘어날 것이라는 그런 종류의 자신감이.

아무리 연습을 해도 실력이 늘지 않으면 사람은 스스로에게 재능이 없다 여긴다. 그리고 그 벽을 넘지 못하면 그들은 절망을 느낀다. 거기에서 용기를 잃지 않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여 마침내 한계를 뛰어넘으면 재능이 활짝 꽃을 피운다.

윤아는 그 한계를 넘어서 꽃을 피우기 위해 싹을 틔운 것이나 다름없다.

마침내 노래가 끝나자, 창현이 박수를 친다.

녹음 부스 밖으로 나가니 스태프들 또한 예상외라는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진다.

“잘했어요.”

“고마워. 창현이 네 덕분이야.”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요. 이 정도면 가창력 논란은 더 이상 불거지지 않을 것 같네요. 감독님, 이 부분 가급적 방송에 내주실 수 없을까요?”

창현의 물음에 카메라 감독이 잠시 고민하다 말한다.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럼 그 부분은 부탁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말한 창현이 세 소녀를 보며 말한다.

“자, 그럼 나머지 가이드곡도 모두 끝내볼까요?”

“응!”

그의 말에 활기찬 모습을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들이었다.

그렇게 창현은 빠른 속도로 가이드 곡을 모두 녹음할 수 있었다.


가이드 곡 녹음을 끝낸 그들은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카메라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들의 눈에는 연신 대박이라는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창현의 노래 부르는 모습뿐만 아니라 소녀시대 내에서 가창력이 가장 떨어진다 알려진 윤아의 새로운 모습을 촬영할 수 있었으니까.

연기자 윤아가 아닌 소녀시대 윤아로서 능력을 새로 보인 거랄까?

아직 부족한 면이 있지만 고음을 소화해내는 그녀의 모습은 보는 시청자로 하여금 충분히 대단하다 생각하게 만들고 있었으니까.

창현이 아래로 내려가자 그들은 상의를 모두 나누었는지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야기를 잘 나누셨는지요?”

“아! 오셨습니까?”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기에 존댓말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재석.

“네, 가이드 곡을 녹음했거든요. 상의는 모두 다 하신 건가요?”

창현의 물음에 무한도전 멤버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그 중 원만하게 합의를 끌어낸 재석과 전진은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만만치 않은 기도의 소유자인 수연과 일전을 벌인 명수는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소녀시대 멤버들에게 완전히 눌려버린 준하와 형돈은 의기소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따져드는 주현에게 완전히 밀려버린 홍철은 그답지 않게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풋!’

기가 완전히 눌려버린 무한도전 멤버들을 보면서 창현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녹음을 마친 가이드 곡 CD를 나눠주며 말한다.

“여기 하나씩 받으세요. 작사를 해야 할 가사 구간을 적어놨으니 그 운율에 맞게 작사를 하시면 되요.”

CD를 받아들며 감탄의 기색이 섞인 눈으로 창현을 바라본다.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여섯 곡에 달하는 분량을 모조리 녹음하다니.

‘질도 질이지만 속도도 장난이 아니잖아? 역시 대단하군.’

촬영 초반에 틀어준 곡만 해도 보통 퀄리티가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다른 곡들 또한 그에 준한다는 뜻.

창현의 말로는 기존의 예비 곡을 가다듬어 테마에 맞췄다고 하는데 그것이 어디 쉬운가.

빠르게 나오고 좋은 퀄리티를 지닌다.

이것 하나만으로 먹고 들어갈 수 있는데 현의 네임벨류가 더해지면 그 여파는 상상을 초월할 것임이 분명하다.

“들어보시고 다음 촬영 때까지 작사를 해오시면 되요. 작사를 모두 하시고 그에 맞게 연습을 하시면 더욱 좋고요.”

그렇게 말한 창현이 PD에게 시선을 옮기더니 묻는다.

“다음 촬영은 언제로 잡고 계시죠?”

“음! 다음 촬영은 5일 후로 생각하고 있는데…….”

일정을 계산하던 PD의 말에 창현은 날짜를 계산하다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죄송합니다. 그 날은 CF 촬영 미팅이 있어서요. 아무래도 콘티부터 잡을 예정인지라 시간을 맞추기 힘들 것 같은데…….”

촬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 인물은 다름 아닌 창현이다.

안 된다는 창현의 말에 PD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제안한다.

“그렇다면 일주일 후는 어떻습니까?”

“일주일 후는… 오후부터 괜찮습니다. 그럼 일주일 후로 할까요?”

“그렇게 하지요.”

무한도전 멤버들과 각각 짝꿍을 이룬 소녀시대 멤버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미팅을 갖고 안무를 맞춰보기로 했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루어져 있었다.

일주일 후 창현을 만나는 것은 최종적인 작사 부분을 검사 맡고, 그 부분에 대한 협의를 마친 뒤 각자 개인적인 연습시간을 갖기 위함이다.

그 후 본격적인 프로젝트 여름 가요제를 시작하는 것이고.

“그럼 오늘 촬영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PD의 말과 함께 모든 촬영이 종료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일렬로 늘어선 소녀시대 멤버들은 스태프들에게, 무한도전 멤버들에게 큰 목소리로 인사하였다.

창현 또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였다.

“수고하셨어요.”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편안한 분위기로 돌아오자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눈다. 스태프들이 철수하려면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창현아 오늘 회식을 하려고 하는데 1차라도 같이 가는 게 어때?”

아무래도 회식 자리에 가게 되면 1차는 식사를 위주로, 2차는 술집으로 가는 경우가 있기에 그의 나이를 고려하여 1차만 제안한 것이리라.

“회식이요? 오늘 회식하시나 봐요?”

“그래, 창현이 너도 같이 갔으면 싶은데.”

무한도전을 위해서 무려 6억원 상당의 기부를 한 셈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가급적이면 그와 함께 자리를 하고 싶은 재석이었다.

“회식이라… 저는 몸만 가면 되는 건가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묻는 창현. 그가 준 곡들의 가치가 얼마나 큰데 고작 회식비용을 가지고 뭐라 하겠는가.

당연히 그렇다고 말하려던 재석은 손을 들며 막아서는 명수의 행동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나선 명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창현을 바라보더니 말한다.

“돈도 많이 벌면서 그런 걸 신경 써? 내가 쏜다! 가자!”

마치 자신이 모두 내는 것처럼 호기롭게 말하는 명수.

그 모습에 재석은 물론이고 다른 멤버들과 스태프들 모두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엄연히 회비를 걷어서 가는 건데 왜 형이 쏘는 것처럼 그러세요? 아니면 정말 형이 전부 쏜다거나?”

날카로운 재석의 지적에 명수가 몸을 움찔한다.

자칫 잘못하면 몇백만 원이 넘는 회식 비용을 모조리 감당하게 된 것이다.

“그, 그게 그러니까… 내가 회식비용을 많이 내니까…….”

돈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명수.

그 모습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좋은 곡을 써줬으니 당연히 공짜지. 같이 갔으면 하는데 어때?”

“네, 그럴게요. 마침 저녁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고 있었으니까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창현이었다.

그가 수락하자 재석은 소녀들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소녀시대도 같이 가자.”

아무래도 회식의 묘미는 아리따운 소녀들과 함께 하는 것 아니겠는가!

쟁쟁한 작가진이 있지만 아무래도 작가들의 외모와 얼굴로 먹고 들어가는 여자 아이돌과는 비교하기에 무리가 따른다.

재석의 말에 태연이 미안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음! 저희는 무리일 듯 싶어요.”

“그래?”

“네. 저는 라디오 스케줄을 가야하고 다른 멤버들도 회사에 가기로 예약이 되어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소녀들이 꾸벅 고개를 숙이자, 명수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아니, 일이 있으면 그것부터 해결해야지. 아직 너희들이 신인이라 그 부분은 선택권이 넓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감사합니다.”

버럭거리는 모습과 달리 배려심 깊은 명수의 모습에 감사의 인사를 하는 태연이었다. 방금 전까지 티격태격하며 화산에 대한 갑론을박을 펼치던 수연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명수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럼 아쉽지만 소녀시대는 다음 촬영 때 한 번 모여서 회식을 하기로 하고, 이만 철수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렇게 하죠.”

그러면서 철수 준비를 끝마칠 때, 소녀들이 일렬로 늘어선다. 그리고 가장 왼쪽에 선 태연이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저희는 먼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즐거운 회식 되세요, 선배님들.”

“그래, 잘 가라.”

“다음에는 꼭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무한도전 멤버들은 소녀시대가 회식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하자 아쉬움을 금치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창현은 뭔가 기분이 좋지 않은 듯 불퉁한 어조로 중얼거린다.

“이거 소녀시대 누나들만 대우가 좋은 거 아니에요? 저도 나름대로 비싼 몸인데…….”

월드 스타라 칭송해주며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자신이건만 소녀시대와 확연히 다른 대우라니.

조금 섭섭함을 느끼는 창현이었다.

그 모습에 재석이 피식 웃음을 짓더니 창현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며 말한다.

“네가 이해해, 창현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니요?”

재석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하는 창현.

그 모습에 재석은 강하고 굵직한 한 방을 날려주었다.

“넌 남자잖아.”

“…….”

순간 할 말을 잃은 창현이었다.


그래도 창현에게는 한 줄기 희망이 있었다.

재석에게 ‘넌 남자잖아.’라는 말로 크리티컬 공격을 맞아 절망의 늪에 허우적거리는 창현을 구원해준 것은 다름 아닌 쟁쟁한 작가진이었다.

대부분이 여성으로 구성된 작가진들은 재석의 말에 반발하면서 창현의 필요성에 대해 고해주었고, 자신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생각에 창현은 일말의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세상은 살만해!’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을 구원(?)해준 작가진에게 무한한 감사함을 느끼는 창현.

그와 별개로 작가진은 창현이 회식 자리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감격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소녀시대가 먼저 철수하고, 창현과 무한도전 측 일행은 인근 갈비 전문점으로 향했다. 오늘 촬영하면 우선 한 주분 분량을 완성하기에 중간 휴식 개념의 회식이란다.

갈비 전문점으로 들어서자, 작가진이 단체로 나서서 창현과 합석하기 위한 공작을 벌이기 시작한다.

“현 씨, 저희랑 먹어요.”

“왕처럼 대접해드릴게요.”

그녀들의 끈적한 유혹(?)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아까 전 자신에게 희망(?)을 주었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는 창현. 그런 그에게 구원의 말이 들려왔다.

“창현이 유혹하려 들지 마. 창현아 이리로 와. 우리랑 같이 먹자. 잘못 끌려가면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될 수 있어.”

재석의 말에 작가들이 발끈하여 바락 외친다.

“저희들을 납치범 취급하지 마세요!”

“우리가 언제 그랬다고!”

앙칼진 그녀들의 기세에 재석은 주춤거리며 한 걸음 물러선다. 그러다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하고는 창현을 데리고 간다.

“우웃! 어쨌든 창현이는 우리가 데려간다. 자, 가자.”

“네? 네…….”

아무래도 여성들 사이에 있는 것은 부담스러웠기에 창현은 다소 얼떨떨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재석을 따라들어간다.

뒤통수로 작가들이 원망스러운 눈초리를 그대로 느끼며.


“괜찮을까요?”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기에 창현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묻자, 재석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뭐,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확신하지 못하시는 게 더 불안한데요.”

“하하! 쟤네들이 능력이 좀 있는 편이지만 방송물 먹어서 눈이 엄청 높거든. 그래서 대부분이 노처녀고, 창현이 네가 참가했으니 오랜만에 물 만난 물고기처럼 달려드는 거지. 잘못 낚이면 곤욕 치른다?”

“하하하…….”

엄포를 놓는 재석의 모습에 창현은 그저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자자, 그럼 앉도록 하자고.”

재석이 안내한 곳은 무한도전 멤버들만 앉는 곳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처음에는 이렇게 친한 사람들끼리 앉아 함께 식사를 하다가 자리가 무르익기 시작하면 이리저리 뒤섞는다고 한다.

우선 친한 사람들끼리 분위기를 내는 것이 먼저인 셈이다.

하나둘씩 들어온 무한도전 멤버들이 상 두 개를 놓고 둘러앉기 시작했고, 재석이 창현의 옆에 붙어서 물을 따라주고, 수저와 젓가락을 건네며 묻는다.

“무한도전 촬영이 좀 어렵지?”

“그렇게 어렵지도 않더라고요. 버럭 호통 치는 명수 형은 처음 놀랐지만 좀 듣다보니 정감 있고, 다른 형들의 개성도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아서요.”

창현의 말에 1인자 곁에 붙어있는 그를 암암리에 견제하던 명수는 표정이 급속도로 밝아지더니 다른 사람들에게 의기양양한 어조로 말한다.

“봤지? 내가 바로 월드 스타를 매료시킨 사람이야.”

“하하하…….”

“그럴 땐 웃지 말고 한 마디 해줘야 돼. 안 그러면 명수 형은 진짜 그런 건 줄 안다고.”

재석의 타박에 창현은 웃음을 지은 채 어깨를 으쓱한다.

“딱히 그렇게 아셔도 상관은 없는 걸요.”

“으이구!”

아직 명수를 상대하는 방법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한 듯한 그의 모습에 재석은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본격적으로 회식이 시작되고, 주문을 받기 위해 온 아주머니는 무한도전 멤버들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그에 창현이 신기한 듯 바라보자 재석이 웃는 얼굴로 속삭인다.

“여기 자주 오거든. 그래서 아주머니들이 별로 놀라지 않는 편이지.”

“아아.”

자주 온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는 창현.

잠시 후, 주문을 받고 고기를 구워주기 위해 불판 위해 고기를 올려놓던 아주머니의 시선이 순간 창현에게 향한다.

40대 중반의 아주머니는 창현을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아는 척을 한다.

“어머? 혹시 지훈이 회장 아니야?”

여기서 나오는 지훈은 창현이 출연하는 드라마에서의 이름이었다. 그곳에서 창현은 어린 나이에 회장직을 맡아 부조리한 사회의 단면을 타파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자신을 알아보는 아주머니의 모습에 창현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네? 하하! 맞습니다.”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지훈이 회장은 가수라고 해서 세계적으로 엄청나다 하던데…….”

무한도전 멤버들을 볼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이는 아주머니. 그 행동에 주변에서 힐끗힐끗하던 다른 사람들도 창현을 알아보고는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다른 연예인들과 달리 창현은 무척 보기 힘든 인물 중 한 사람이었으니까.

재석은 주변 시선이 집중되는 듯하자 정중하게 부탁한다.

“지금 회식 중이니 이야기는 나중에 할 수 없을까요?”

“어머나! 제가 실수를 했네요. 나중에 회식이 끝나면 싸인 부탁드릴게요. 제 자식이 워낙 팬이어서…….”

“알겠습니다.”

식당에 가면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창현은 미소를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가수가 아닌 연기자인 자신을 알아보는 것이 무척 신기하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지훈이라니…….

마치 새로운 이름이 생긴 듯한 느낌이었다.

“역시 인기가 대단한데?”

“뭘요. 하하…….”

어색하게 웃음을 짓는 창현.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알아봐주는 것이 고맙긴 하지만 이렇게 띄워주는 모습을 볼 때면 어색함을 감추기가 힘들다.

창현이 어색한 표정을 보이자 재석은 놀리던 것을 멈춘다. 친한 동생이지만 그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재석으로서도 무척 어렵게 느껴졌던 것이다.

고기를 구우면서 재석은 창현에게 궁금했던 점을 묻는다.

“그나저나 곡을 어떻게 하면 그렇게 빨리 쓰는 거야?”

“맞아맞아, 음악적 조예가 깊은(?) 내 경험에 의하면 곡이 그렇게 빨리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고 하던데…….”

음악적 조예가 깊은(?) 형돈이 지원사격을 하며 말한다.

그 물음에 가수 출신(?)인 명수도 궁금한 듯 바라보았고, 다른 멤버들 또한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지 바라본다.

“음! 빠른 것은 아무래도 단조롭게 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무슨 말이야?”

“제가 복잡한 걸 무척 싫어해서요. 여기서 복잡한 건 여러 가지를 섞어서 하는 걸 말하는데… 사람의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여러 가지를 보여줄 수 있다 여기기에 멜로디 같은 것은 대부분 단조롭게 만들거든요. 부족하다 싶으면 믹싱을 해서 좀 더 세련되게 하거나 하고요.”

작곡보다는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에 중점을 둔다는 이야기였다. 가수는 곡도 중요하지만 부르는 사람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은가?

곡 자체는 분위기를 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기는 창현이었다.

나머지는 노래로서 커버를 하는 것이고.

그의 음성이 워낙 풍부하고, 사람들의 가슴 속 깊이 스며들기에 다른 사람들은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였고.

“그렇구나. 하기야, 막상 들어보니 무척 간단하면서도 그 의미를 파악하는데 어렵지 않은 것 같았어.”

고개를 끄덕이는 무한도전 멤버들이었다.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창현이 어떤 방식으로 작곡하는지는 알게 되었으니까.

그러면서 다시 고기를 굽는데 열중하기 시작한다.

나이가 어린 창현은 자신이 고기를 굽겠다고 했지만 귀하신 분이 고기를 구우면 안 된다는 명수의 말에 다시 분위기가 그런 쪽으로 형성되려 하자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리가 무르익음에 따라 자연히 술이 나오게 되었고, 술을 마시지 않는 재석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연스레 술을 마시지 않는 창현과 재석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고기를 먹어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자, 재석이 은근한 어조로 창현에게 입을 연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궁금한 거요? 뭔데요?”

술을 마시지는 않았지만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해서일까. 재석이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는 걸 느끼면서 그의 질문에 대답할 자세를 취한다.

수락이 떨어지자 재석은 잠시 멈칫하더니, 침을 꿀꺽 삼키고는 창현에게 말한다.

“소녀시대 멤버들이 너 좋아하는 거 아냐?”

틱.

재석의 말에 창현이 젓가락으로 집었던 고기가 떨어진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데요?”

한순간 굳어버린 창현은 김치 위로 떨어진 고기를 다시 집어 들며 묻는다.

무척 놀랐지만 목소리에서 감정이 묻어나오지 않았다.

순수하게 재석이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인지 궁금했으니깐.

재석은 창현이 그리 심각한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 또한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냥 느낌이랄까? 그런 게 느껴져서.”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재석. 제 딴에는 제법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말한 것이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창현의 반응에 순간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친한 누나들 같거든요.”

그렇게 말하지만 창현의 머릿속은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정말 친한 누나들이라 생각하는 걸까? 자신이?

분명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재석의 말을 들으니 머릿속이 뒤죽박죽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렇다 치자. 그럼 누나들은?’

간단하게 생각하기로 해보며 창현은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생각은 머리가 복잡하니 우선 재석이 말한 누나들의 모습이었다.

괜히 그가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을 터.

그렇다는 건 어느 정도 그런 기미가 보였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인데…….

‘분명 싫어하는 사람에게 입맞춤을 할 리는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싫어하는 사람에게 누가, 그것도 이성에게 입맞춤을 하겠는가? 그렇다는 건 적어도 자신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거기에서 한단계 더 발전하여 자신을 좋아하는 것일까?

선뜻 확답을 내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들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인지 겉으로 티를 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럼 재석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을 한 것일까?

창현이 재석을 바라보며 묻는다.

“정말 느낌뿐인가요?”

“으음… 그게 말이지…….”

자신을 바라보는 창현의 시선을 마주하는 순간 재석은 몸을 움찔하였다.

연예계에서 수많은 연예인들을 만나온 그는 창현과 같은 눈빛을 한 사람을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눈을 마주하는 순간 마치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강렬한 빛을 뿌리고 있는 그의 눈빛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혀올 정도였다.

“제대로 말씀해주세요.”

“…….”

재석은 순간 수많은 고민이 머릿속에 교차하였다.

그가 이렇게 말을 꺼낸 것은 작업실을 찾아온 소녀시대 멤버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게 빛나고 있어서 그렇다.

데뷔한 지 근 이십 년이 된 그의 눈치는 보통 연예인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발달되어 있다. 상대방의 반응을 보고 그때그때 맞춰 멘트를 날리는 만큼 사람의 심리 상태를 꿰뚫어 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의 감각에 걸리길, 소녀시대 멤버 중 다수가 창현에게 남자로서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확증은 아니지만 그것은 거의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었다.

이런 자신의 생각을 창현에게 털어놓을까 고민하다가 어렵사리 물어본 것인데 창현의 반응은 생각 이상의 것이었던 것이다.

‘내가 말해주는 게 좋을까?’

여러 여자가 한 남자를 좋아한다는 상황 자체가 말이 안된다.

창현의 반응을 보니 직접적으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가 자신의 말로 인해 어느 정도 심중이 가는 것 같았다.

자신이 말해서 인위적으로 알게 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이대로 놔두는 것이 좋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재석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100% 확실하지 않은 자신의 예감을 믿고 이야기를 하다 자칫 잘못하면 창현과 소녀시대의 관계가 어색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미치자 더 이상 의견을 주장할 수 없던 것이다.

재석은 상황을 얼버무리기 위해 웃음을 지으며 창현을 놀리듯 말한다.

“하하하! 농담이지, 농담! 창현이 네가 워낙 대단하니까 여성들을 그냥 홀릴 수 있지 않겠어? 소녀시대하고 친하다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 생각한 거지. 아니야?”

“아아, 그런 건가요?”

“그럼! 너랑 뮤직비디오 촬영을 했던 세실리아 양만 해도 네게 반했다 선언할 정도인데 같이 지낸 시간이 꽤 된 소녀시대는 오죽하겠어? 아니, 이미 누군가하고 사귀고 있을 지도?”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재석이 답을 구하듯 창현에게 바라보자 그는 어색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사귀고 있다뇨. 그 정도로 여유가 많지 않아요.”

“그래? 흐음! 그렇다면 조금 아쉬울지도. 현의 여자 친구를 알아낼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재석을 보면서 창현은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그가 모종의 이유로 확신하고 있었다면 자신이 소녀시대를 다시 만날 경우 자칫 어색해질 수도 있었을 테니까.

‘그렇게 되면 아쉽지.’

확실히 관계가 미묘하기는 미묘하다.

누나라고 하기에는 좀 더 가까워진 것 같고, 그렇다고 연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거리가 있는 듯한 느낌이었으니까.

더군다나 그녀들의 숫자는 총 아홉 명. 전부에게 연인이라 칭하는 것도 우스웠다.

‘그럼 그렇지.’

그녀들이 자신에게 보이는 호감 자체가 다 친근함의 표시라 생각되었다.

태연이 한 행동은 미국에서 살다 온 미영과 찰싹 붙어 다니다 보니 조금 과도하게 한 행동일 수도 있을 테고.

어찌어찌 스스로 납득하다 보니 속이 편안해진다.

따지고 보면 다른 여성들도 자신에게 그 정도 호감을 보이고는 하였다. 그렇기에 그 호감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식의 생각은 스스로의 과민 반응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여자 친구라… 호기심이 들기는 하지만 당장 해야 할 일들이 많으니까요.”

그렇게 선을 그어놓는 창현. 스스로 선을 그어놓았지만 한편으로는 묘하게 울렁거리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아직 그 정체를 스스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건 그렇지. 그럼 스케줄이 언제까지 바쁠 예정이야?”

재석은 화제가 전환 되는 듯하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창현에게 묻는다.

“8월 컴백 전까지 앨범 작업 하느라 바쁠 것 같고, 올해 말까지는 정신없이 보낼 것 같네요.”

“그래? 아쉬운데…….”

입맛을 다시는 재석을 보며 창현이 고개를 갸웃하고는 묻는다.

“왜요?”

“아! 내가 이번에 SBS에서 <패밀리가 떴다.>를 하게 되었거든. 아직 초창기라서 시청률을 좀 더 보장받으려면 화제의 현을 초대할까 싶어서 그런 건데 바쁘다면 조금 힘들겠네.”

그 이야기는 이미 효리에게 들어본 적이 있었다.

얼마 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고 한 번 출연해달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으니까.

그것이 재석과 함께 출연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TV로도 한 번 보았기에 내심 흥미가 동했지만 스케줄에 관련된 부분은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기에 어깨를 으쓱한다.

“그 부분은 제가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서요. 아무래도 소속사에 연락을 넣어보셔야 할 것 같아요.”

“창현이 넌 해보고 싶은 거지?”

“나쁘지 않겠죠?”

“그래! 그럼 조만간 제안을 넣어보도록 할게.”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는 창현의 모습에 재석이 자신감을 얻으며 말한다. 타사 방송에 섭외하는 천인공노(?) 할 행동이었지만 재석은 순조롭게 포섭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그 뒤에 이어진 것은 재석이 말했던 것처럼 자리를 섞어서 앉는 것이었다.

작가 누님(?)들의 열렬한 러브 콜을 받으며 자리를 옮긴 창현은 방송가에 떠도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1차 회식 자리가 끝나고, 2차로 자리를 옮길 때, 창현은 제작진 측과 작별 인사를 하였다.

내일부터 본격적인 스케줄이 있었기에 올 나이트를 달릴 수 없는 입장이다.

더군다나 일찍 자서 키도 커야하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 창현은 재석의 이야기를 곱씹기 시작한다.

“좋아 한다라… 좋아 한다…….”

과연 진실은 어떤 것일까?

재석이 던져준 화두는 태연의 조련이 낳은 부작용(?)으로 가뜩이나 복잡하던 창현의 머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제74장 중간 평가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절정에 다다르는 드라마는 날이 갈수록 더욱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고, 그럴수록 창현에게 쇄도하는 스케줄의 양은 서서히 증가하고 있었다.

중간에 석규가 거르고 걸러 마지막까지 남은 스케줄을 창현의 의견을 물어 결정하는데, 그 양만 해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양이었다.

그 정도로 굵직한 스케줄 제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각종 CF부터 시작하여 새로운 음반 발매에 대한 인터뷰 요청, 게다가 각지의 화보 촬영까지 그야 말로 제의가 오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제의가 밀물처럼 밀려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피곤하네.”

CF 같은 경우 철저한 고급화 전략을 펼침에 따라 그 숫자를 엄연히 제안하고 있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입장이고, 음반 발매에 대한 것도 최대한 코멘트를 아끼고 있는 입장이다. 또한 화보 또한 추후 음반 발매 컨셉으로 잡을 만한 것들을 적절하게 걸러내고 있다 보니 이건 뭐 스케줄을 하는 것보다 스케줄을 고르는데 더욱 심력을 소모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가뜩이나 머리도 아픈데.”

그답지 않게 표정을 찌푸리며 툴툴 거린다.

근래 들어 무척 바쁘고 머리가 아픈 나날이었다.

당장 무한도전 가요제에 선보일 곡들을 준비해야 하며, 자신의 타이틀곡에 삽입할 안무를 연습하면서 하늘을 걷는 춤 또한 꾸준히 연습을 해야 했다.

특히 논란의 여지가 많은 하늘을 걷는 춤 같은 경우 적절한 장비를 준비하여 숙달시켜야 했는데, 제법 숙달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여러 번 펼치기에는 벅찼다.

게다가 창현이 머리가 아픈 이유는 무한도전 회식 자리에서 재석에게 들었던 말이 끊임없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은연중 그럴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내심 의심을 하고 있는 와중에 재석이 말뚝을 박아버린 것이다.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자연히 다른 일을 함에 있어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때에 하필…….”

표정을 살짝 찌푸린 창현이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른 아침에 작업실로 와 앨범 작업을 하던 그는 검정고시 준비를 위해 공부를 하려 했지만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생각 때문에 공부를 이어나갈 수 없었다.

그러다 시간이 유야무야 흘러 어느덧 회사로 향할 시간이 되었다.

주차장으로 자신을 데리러 올 차가 올 예정이었기에 창현은 시간을 확인하고는 곧장 주차장으로 향한다.

석규가 이야기 할 것이 있다 하여 회사로 오라 한 날이었다.

마침 지영이에게 보컬 트레이닝도 시켜줘야 했기에 창현은 로드 매니저를 보낸다는 말을 듣고 흔쾌히 수락하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형,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은 무슨.”

로드 매니저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그는 피식 웃으면서 창현을 태우고 곧장 회사로 향한다.

드라마 촬영 이후 기존의 인기를 완전히 굳힌 뒤 더욱 포괄적인 팬 층을 형성하였기에 이제는 변장을 해도 정체를 들킬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아진 상태였다.

그런 만큼 대우 또한 자연히 틀려질 수밖에 없다.

창현이 변장을 잘 한다 하더라도 한 번 들키면 곤욕을 치를 수박에 없었으니 석규는 그런 사태를 아예 일으키지 않고자 필요할 때면 즉각 로드 매니저를 보내 데려오게끔 하였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소형차를 끌고 와 창현을 데려가는 로드 매니저를 볼 때면 정체를 은폐하는 로드 매니저의 실력도 수준급에 올라 있다 볼 수 있었다.

“수고하셨어요.”

무사히 회사에 도착한 창현은 곧장 안으로 진입하여 위로 올라갔다.

사장실이 있는 곳에 도착한 그는 비서에게 자신이 왔음을 알리자, 잠시 후 안으로 들여보내주었다.

“어서 와라.”

“네,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안으로 들어선 창현이 자리에 앉으면서 묻자, 석규는 비서에게 생강차 두 잔을 주문하고, 비서가 밖으로 나가자 소파에 몸을 묻더니 입을 연다.

“다름이 아니라 CF 촬영을 해야 할 게 있어서 말이다.”

“제의에 올라온 건가 보네요?”

“그래, 굵직한 것들로 뽑아왔다. 게다가 전부 네가 원한 것들이기도 하니까 한 번씩 훑어봐라.”

현의 이미지를 고려하여 CF를 고르는 석규의 안목도 까다로웠지만, CF자체를 고르는 창현 또한 상당히 까다로운 축에 속했다.

석규가 CF를 선정함에 있어 보는 기준은 이 광고가 현의 이미지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그리고 제시한 조건은 어느 정도인지, 이 두 가지가 중점을 이루고 있다.

그에 반해 창현은 보는 관점이 약간 달랐다.

아니, 다르다기보다는 이미 석규가 고려한 점들은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사장님이자 자신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가 자신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광고를 골랐을 리 없으니까.

그 점을 신뢰하고 있었기에 창현이 중점을 두는 부분은 다소 다른 부분이었다.

그가 보는 부분은 다름 아닌 광고의 콘티 부분.

여태까지 창현이 촬영한 광고 종류는 열 개가 약간 넘는다.

그리고 그 광고는 소위 말하는 ‘대박’이 터졌다.

가장 Hot한 아이콘임과 동시에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그가 광고를 촬영할 때마다 대박이 나니 광고사들이 몸에 안달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이유.

당연히 러브 콜이 쇄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위해 선을 그어 일정 숫자 이상을 허용하지 않는 석규의 정책 때문에 몇몇 기업은 엄청난 압력을 가하기도 하였다.

그로 인해 회사가 흔들릴 지경이었지만 석규는 요지부동.

괜히 협박만 가한 기업은 머쓱해져서 압박을 자진 철회할 정도였다.

어쨌거나 열이면 열, 백이면 백, 광고를 성공에 성공을 거듭시키는 창현이니 광고사들은 당연히 그를 끌어들이려고 한다.

‘창현이가 왜 그렇게 까다로운지 모르고서는.’

석규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걸렸다.

아무리 파급력이 대단하다고 하나 창현이 촬영하는 광고가 족족 성공하는 이면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창현이 사전에 콘티를 꼼꼼하게 점검하기 위함이다.

광고를 촬영하는 창현은 이를 테면 신선하기 짝이 없는 고급 재료다.

고급 재료로 음식을 만들게 되면 그 맛은 뛰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조리법이 잘못된 것이라면? 제아무리 재료가 좋아도 음식의 맛이 뛰어나질 리 없다.

창현이 고급 재료라면 콘티는 바로 조리법이다.

스스로를 냉철하게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최선의 조리법을 찾아낸다.

여느 사람들처럼 판타지 소설 같은 것을 즐겨 보던 창현이었기에 재미를 찾아내는 눈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다.

그렇기에 콘티가 자신을 얼마나 살려줄 수 있을지, 제품을 얼마나 빛내줄 수 있을지 대충 감이 잡히고는 한다.

석규가 건넨 세 개의 콘티를 훑어보던 창현이 묻는다.

“이거 모두 콘티를 제가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거죠?”

“그래, 모두 그 부분에 대한 확답을 받았지.”

다른 배우들과 달리 창현은 콘티를 일부 수정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하는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그에게 CF를 의뢰하려면 당연히 그 부분에 대한 양보가 이루어져야 한다.

여태까지 모두 대박이 터졌기에 그 부분을 거절하지도 않지만.

“그럼 저는 이게 괜찮을 것 같네요.”

창현이 건넨 것은 스포츠 용품에 관련된 것이다.

대게 운동선수가 찍는 CF가 마침내 창현에게까지 눈을 돌린 것.

석규는 창현이 건넨 콘티를 훑어보며 말한다.

“흐음! 이걸 해보겠다고? 힘들지도 모르는데?”

콘티 내용은 춤을 전혀 추지 못하는 몸치인 그가 운동화를 신게 되자 갑자기 춤의 신동이 되어 운동화의 성능을 극찬하는 내용이었다.

“약간만 수정하면 괜찮을 것 같거든요.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 해보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다만…….”

근래 들어 창현이 춤을 배워 제법 실력이 출중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지만 걱정이 되는 석규였다.

“걱정하지 마시고요. 제가 춤에 대한 센스가 없지만 숙달된 춤은 어느 정도 소화가 가능하거든요.”

“그래.”

당사자가 이렇게 말하는데 더 이상 자신이 걱정할 수 없는 노릇이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창현은 자신을 과소평가했으면 했지, 절대 과대평가를 하는 아이는 아니었으니까.

어리지만 스스로의 능력으로 올라선 자식이기에 전적인 신뢰를 갖고 있다.

“약간 수정할 부분은 아버지가 좀 나서주셔야 하는데요.”

“내가? 뭔데 그러냐?”

CF 촬영을 하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역할을 요구하는 창현의 모습에 석규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그러자 창현의 입이 열리면서 석규에게 자신이 생각한 구체적인 콘티를 이야기하기 시작하였고, 그 이야기를 듣던 석규가 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걸 원하는 거냐?”

“가능한가요?”

“가능이야 하지. 아니, 오히려 그쪽이 바라마지 않을 일인데…….”

묘한 표정을 지으며 창현을 바라보는 석규.

그 시선 때문에 창현은 슬쩍 시선을 피하며 말한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그렇게 하도록 하마.”

창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석규였다.

그러면서 창현을 힐끗 바라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저 녀석 설마…….’


“조만간 라샤가 돌아올 게다.”

CF 이야기를 최종적으로 마무리 지은 석규가 창현을 보내지 않고 한 말이다.

“일본 활동을 모두 끝냈나 봐요?”

창현이 눈을 빛내며 묻자 석규가 입가에 쓴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겠지? 세 달 정도 활동을 했으니 그 정도로 충분하다 여기고 있다. 게다가 라샤 아이들도 장기간 타지에서 지내는 것이 지친 듯하고.”

일본에서 최상의 대우로 라샤를 대한다 하더라도 고향이 그리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군다나 라샤는 동남아시아를 한 차례 투어 콘서트를 떠났기 때문에 한국에 얼마 있지 못하고 일본으로 간 상태다. 당연히 한국이 그리울 수밖에 없다.

그것 말고도 석규에게 다른 속내가 존재하고 있었다.

“네 뮤직비디오 촬영에 관련된 것 때문이기도 하다.”

“제 뮤직비디오라면…….”

창현이 순간 움찔하며 석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석규가 묘한 미소를 짓더니 그를 바라보고 있다.

“후후! 아주 걸작이던 걸? 네가 쓴 뮤직비디오 시나리오 말이다.”

“괜찮은 게 아니라요?”

자못 당당하게 말했지만 창현의 얼굴은 살짝 붉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새로운 앨범을 준비하면서 창현은 석규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부탁하였고, 석규는 그것을 흔쾌히 수락하였다.

그 후 창현은 자신이 잡은 앨범 컨셉을 바탕으로 뮤직비디오 시나리오를 짜놓았다.

이미 여러 번 시나리오를 보아왔기에 그것을 바탕으로 비슷하게 짜놓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비전문가인 그가 짜서 투박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의 의도가 가장 잘 살려져 있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석규가 말하는 것은 그것인 것이다.

“삼각관계라니, 참 멋진 발상이야.”

“그건… 어디까지나 앨범 컨셉에 관련된 걸로…….”

이번에 창현이 뮤직비디오 시나리오로 짠 것이 바로 삼각 관계에 관련된 것이기에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아직 열일곱인 자신이 삼각관계를 짠 것이 내심 부끄럽게 여겨졌는데 석규가 그것을 제대로 꼬집자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아아, 뭐라고 하는 게 아니다. 그냥 대단하다 생각해서 그러는 거니까.”

“끄응!”

능글능글하게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석규의 모습에 건 수를 내주었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 창현인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부끄러워하는 그의 모습에 석규는 좀 더 장난을 치고 싶었지만 자신이나 그나 모두 바쁜 처지이기에 장난을 그만두고 본론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한다.

“어쨌거나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인데, 여자 역할 중 한 사람을 라샤 애들로 할 생각이다.”

“…….”

“아무래도 같은 회사 출신이 아니더냐? 게다가 비주얼도 부족하지 않으니 괜찮을 것 같은데?”

창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마음에 들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나보다.

그 말에 창현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하다 생각해요. 저도 라샤 누나들 중 한 사람이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래? 그렇다면 괜히 설레발 친 거로구나.”

창현도 동감한다는 이야기에 한시름 놓은 듯 표정이 풀어지는 석규.

그로서는 거의 독단적인 판단을 내린 셈이었기에 내심 창현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하고 있었다.

현의 새로운 뮤직비디오를 촬영한다 하고 여성 배우를 모집한다면 그 경쟁률은 어마어마하게 변할 것임이 분명할 터. 더군다나 현이라는 이름값이 있기에 한 명을 뽑으면 회사간의 알력이 상당 부분 작용할 것임이 분명했기에 석규는 제법 고민을 하다가 일단 한 사람을 라샤 중 한 사람으로 해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비주얼도 부족하지 않고 창현과 오랫 동안 알고 지낸 만큼 호흡도 잘 맞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판단.

다만 남은 것이 창현의 결정이었는데 그가 무난하게 받아들이는 듯하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저도 라샤 누나들 중 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괜찮아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자. 네가 10월까지 활동을 하고 11월부터는 라샤가 국내 활동을 할 예정이니 그렇게 알도록 하고.”

해외 활동에 주력한 만큼 국내에 컴백을 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노리는 석규였다. 일본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많지만 중간에 한 다리를 거쳐져서 들어오는 만큼 수입이 여의치 않다.

그렇기에 창현이 미국으로 갈 동안 라샤는 국내 활동에 치중함으로써 일거양득을 노릴 생각이었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네요. 그렇게 하도록 할게요.”

당장 급한 것은 자신의 앨범이었기에 창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럼 그렇게 조치를 취하도록 하마.”

가장 걱정하던 부분을 유야무야 넘길 수 있게 되자 석규도 한시름 놓았다는 듯 입가에 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석규와 CF에 관련된 이야기와 뮤직비디오에 관련된 이야기도 일단락 지은 창현은 곧장 걸음을 옮겨 연습실로 향하기 시작했다.


“창현이는 왜 날 부르는 거야?”

서류 처리를 맡고 있던 세희는 창현이 자신을 부른다는 소리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근래 들어 창현이 본격적인 활동을 하지 않음에 따라 그녀는 실무 처리반에 배속되어 서류 처리를 하는데 바빴다.

조만간 음반을 들고 컴백하는 것과 각종 CF, 화보집 등등 수많은 스케줄 제의들을 걸러내는 것이 바로 그녀가 해야 할 일. 인원이 확충되어 일을 좀 더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매니저 역할을 하는 것보다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세희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연습실.

창현이 본격적으로 안무를 연습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전용 연습실이 되어버리다 하다시피 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연습실에 도착한 세희는 노크를 한다.

똑똑똑.

“누구세요?”

“나야.”

“아, 들어오세요.”

세희의 목소리를 분간한 것인지 곧장 들어오라 말하는 창현.

그의 수락이 떨어지자 세희는 연습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무슨 일로 부른 거야?”

의아함이 깃든 세희의 목소리에 씨익 미소를 짓는 창현. 그 모습이 묘하게 불길함을 심어주었기에 순간 세희가 몸을 움찔 떤다.

“아, 다름이 아니라 누나에게 이번 앨범에 관련된 안무를 보여드리려고 했거든요.”

“안무? 안무라면 이미 완성하지 않았… 아, 포인트 안무를 말하는 거야?”

고개를 갸우뚱하던 세희는 창현이 최근 들어 강력한 임팩트를 줄 안무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에 대해 묻는다.

그 물음에 창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동의한다.

“네, 맞아요. 포인트 안무를 완성했거든요. 아직 완벽하게 완성이라 말하기는 뭐하지만… 보면 모두가 깜짝 놀랄 만큼 파격적인 안무라 할 수 있죠.”

오늘 창현이 AA엔터테인먼트에 들른 이유는 석규와 CF에 대한 이야기를 끝맺기 위한 것도 있지만 세희에게 완성한 자신의 안무를 보여주기 위한 것도 있다.

자신에게 신경을 써준 이유 때문이랄까.

그 점이 고마웠기에 그에 대한 보답을 하려는 의미가 강했다.

“파격적인 안무라… 기대되는 걸?”

기대감 어린 표정을 하는 세희.

그녀가 아는 창현은 웬만해서 자신감을 드러내는 인물이 아니다. 자신의 이름값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기에 어느 정도 수준의 것으로는 사람들에게 대단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힘들다는 걸 그 스스로도 잘 알고 있기에 그렇다.

그걸 알기에 세희는 기대하는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안무이기에 창현이 이런 자신감을 보이는 것일까.

“우선 불을 꺼주시겠어요?”

“응? 그래.”

의아한 표정을 짓던 세희는 창문 전체에 커튼이 쳐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에 무언가 하려는 게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불을 끈다.

그러자 순식간에 어두워지는 연습실.

그 속에 빛나는 것은 창현의 신발뿐이다.

“야광 신발인가 봐?”

“그런 셈이죠. 그럼 봐주세요.”

세희의 말에 간략히 대답한 창현의 발이 미끄러지듯 움직이기 시작한다. 전문 춤꾼에게서나 볼 수 있는 움직임이기에 세희가 순간 놀란 기색을 보이며 그의 움직임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던 창현의 움직임이 어느 순간 뚝 끊기는가 싶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마치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것처럼 창현의 발이 한칸 한칸 올라가는 것이 보였던 것이다.

“와…….”

순간 터져 나오는 감탄사.

어떻게 저걸 한 건지 몰라 세희가 경악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탄성을 흘리자, 한순간 뚝 떨어진 창현의 다리가 다시 바닥에 착지한다.

“이제 불 켜주세요.”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세희는 전원을 킨다.

다시 연습실이 밝아지고, 세희는 경악한 표정으로 창현을 바라보며 묻는다.

“어, 어떻게 한 거야? 방금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면 마치 허공을 밟고 올라가는 것 같았는데…….”

주변을 스윽 둘러보니 한쪽에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된 삼단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저걸 밟고 올라간 것인가? 하지만 무대에서 저걸 놓고 위로 올라간다 하더라도 파격적이지 못할 텐데?

물론 저게 보이지 않고, 신발만 보일 때는 대단하게 느껴졌지만.

“이게 제가 준비한 춤이에요. 어때요?”

“대단하기는 한데 좀…….”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이미 준비를 마쳐놓았거든요.”

세희가 무엇을 지적하려는지 알아차린 창현이 먼저 말하자 그녀는 잠시 고민에 빠져 있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면 아주 대단한 춤이라 생각해. 아마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걸?”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세희의 말에 용기를 얻은 듯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이는 창현이다.

춤은 점점 숙달되어 가고, 춤을 본 지영과 세희는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두 사람이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라면 충분히 파급력이 있다는 뜻.

‘본격적으로 밀고 나가도 되겠어.’

방금 전 춤을 펼치고도 그렇게 부담이 되지 않았기에 자신감을 얻은 창현이 눈을 빛내고 있었다.


창현이 앞으로의 스케줄 때문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무렵, 여름 가요제를 앞둔 무한도전 멤버들도 매일같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있었다.

상금이 금 한 냥이 걸려있단 이야기를 들은 무한도전 멤버들은 눈에 불을 키고 연습에 연습을 매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의욕이 넘치는 그들의 모습에 당황한 것은 바로 파트너로 배정된 소녀시대 멤버들이었다.

첫 날 완전히 휘어 잡혔던 그들이 돌연 의욕적으로 나오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특히 첫 날 완전 앙숙이 되어버린 명수와 수연은 사소한 것 가지고 티격태격하기 일쑤였다.

화산이라는 말도 안되는 테마를 가지고 노래를 부르려고 하니 어디 합의가 되겠는가.

더군다나 가사 중 ‘핫 뜨거, 핫 뜨거.’ 거리고 있으니 묘하게 표절인 것 같기도 해서 의견이 도저히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무한도전이 방영되면 사상 최악의 천적이라 칭해지리라.

그에 반해 순조롭게 일정이 진행되는 멤버들도 있었다.

바로 재석과 유리의 조합이 그것이다.

유리를 단숨에 휘어잡아 자신의 페이스로 끌고 가려던 재석은 도리어 사마율의 계략에 휘말려 모든 권리를 그녀에게 양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그리고 안무를 짜면서 사사건건 그녀에게 허락 맡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뒤늦게 자신의 실책을 알아차린 재석은 분위기를 반전하고자 하였지만 그럴 틈을 절대 내주지 않는 유리의 모습에 그저 운명에 순응하기로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승리만 하면 되는 거니깐.’

말 그대로 승리만 하면 되는 것이다.

비록 자신이 유리의 페이스에 휘말려 집 지키는 강아지마냥 되어버렸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괜찮다는 것이 그의 생각.

괜찮은 안무를 짜고 밀어붙이면 더 좋은 것이 나올 것 같기도 했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유리의 저력이 워낙 만만치 않았다.

형돈과 짝을 이룬 수영은 형돈의 기발한 안무 선택에 감탄을 연발하면서 함께 안무를 짜고 있었다.

“완전 대박!”

수영의 입에서 그런 말이 연신 흘러 나올 정도라면 필시 보통 안무가 아니리라.

그야 말로 웃음과 철학(?)을 동시에 지닌 춤이랄까.

예능용으로 적절히 승화한 형돈의 파격 퍼포먼스라면 1등도 무리가 아니라는 것이 수영의 생각이었다.

‘승리는 내 거야. 후후후!’

수영이 그렇게 웃음을 짓는 것에는 이유가 존재한다.

바로 첫 촬영 이후 숙소에서는 한 가지 밀약이 맺어졌던 것이다.


촬영을 마치고 숙소.

씻고 나온 유리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멤버들을 둘러보며 입을 연다.

“이번 가요제는 내가 승리하겠어.”

자신감 넘치는 유리의 말에 내심 자신의 승리를 점치고 있던 수영이 코웃음을 치며 반박한다.

“흥! 이미 형돈 오빠랑 합의한 것을 보면 네가 그런 말을 못할 텐데 잘도 그렇게 말하네?”

“뭐래, 나랑 함께 하는 사람은 국민 MC라고. 분량도 가장 많이 나오고, 나의 창의적인 춤이 받쳐주는 우리 팀이 질 거라 생각해?”

유리의 도발적인 언사에 수영은 표정을 찌푸리더니 외친다.

“그럼 내기에 참가하도록 하지! 그 표정을 완전히 찌푸려지게 만들어주겠어.”

“흥! 어디 질 거 같아? 승리는 우리 것이라니까. 너희들은 어때?”

유리가 다른 멤버들을 둘러보며 묻는다.

그러자 순간 계산에 들어가는 멤버들.

‘준하 오빠는 좀 어리바리해서 내가 잘 받쳐줘야 할 것 같은데… 이길 수 있을라나? 소재 자체는 괜찮은 것 같은데.’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 반, 준하의 못미더운 모습으로 인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반을 차지하고 있는 순규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에 반해 수연은 계산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난 포기. Give up. 명수 오빠랑 대화를 나눠보니까 1등은 못할 것 같아.”

한 차례 티격태격한 모습이었기에 모든 멤버들이 수긍하는 모습을 보인다.

기세등등하게 참가할 것이라 생각하던 유리는 자신의 생각이 어긋나자 내심 마음이 다급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말한다.

“그럼 이런 건 어때. 우리도 방송에 의욕적으로 임해야 하니까 내기를 거는 거야. 가령 1등은 설거지 1년 무료라던가!”

“1년 무료?”

순간 번뜩이는 멤버들.

밥을 차려먹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뒤에 치우는 것은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특히 설거지를 하면 고무장갑을 끼지 않을 경우 손이 상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기에 멤버들이 하기 싫어하는 것 중 best 3에 꼽히는 일이었다.

그런 설거지를 일 년 동안 하지 않을 수 있다?

대단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유리는 힐끗 수연을 바라본다. 이미 수영은 도발적인 언사로 꼬드겨놓았기에 남은 것은 그녀 뿐.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대세가 기울 것임이 분명하다.

“1등! 1등이라… 내가 직접 나선다면 못할 것도 없지.”

잠시 고민을 하던 수연이 결정을 내린 듯 말한다.

그 모습에 설거지와 포기 사이를 놓고 고민하던 순규도 기꺼이 찬성한다.

“좋아, 나도 참가할게.”

“너희들이 그렇다면 별 수 없지. 나도 참가하지.”

조용히 사태를 관망하던 효연은 상황이 구성되자 속으로 미소를 짓는다.

‘훗 바보들. 나랑 전진 오빠 조합이면 예능용 웃음은 적더라도 최상의 무대를 꾸밀 수 있는데.’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침묵하고 있었을 뿐, 내심 이런 내기가 성립하길 기다리고 있던 효연이다.

“나도 참가하겠어! 권유리! 완전히 물리쳐주겠어!”

유리의 말에 넘어간 수영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치며 유리를 노려본다.

그 눈빛에 유리는 지지 않은 채 마주 노려보며 외친다.

“흥! 어디 해보시지!”

“막내야, 넌 어떻게 할 거야?”

“저요? 저는…….”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주현 뿐. 그녀는 홍철의 어거지 설교에 한 차례 당한 경력이 있기에 제법 고민이 길었다.

‘과연 내가 1등을 해서 설거지를 면제 받을 수 있을까?’

막내는 서글픈 법이다.

소녀시대 내에서 나이가 제일 어린 주현은 막내란 이유로 가장 많은 설거지를 담당해왔다. 그렇기에 설거지 면제권에 가장 눈을 번뜩인 것도 다름 아닌 그녀.

하지만 홍철과 함께 해서 1등을 할 수 있을지 그것은 미지수였다.

어거지 설교를 하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 도저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고민하던 것도 잠시. 어차피 꼴지에게는 별다른 패널티가 없었기에 주현은 수락하기로 마음 먹는다. 패널티라면 설거지를 몇 번 더해야한다는 것이겠지만 어차피 막내인 자신은 그게 그거일 것임이 분명했으니까.

“저도 참가할게요.”

“좋아! 그럼 내기가 성립되었군.”

유리가 미소를 지으며 A4용지를 꺼내와 본격적인 계약서를 작성한다.

제시카, 써니, 효연, 유리, 수영, 서현이라 적힌 계약서에는 여름 가요제 1등하는 사람에게 설거지 1년 면제권을 부여한다는 내용과 함께 그녀들의 지장이 꾸욱 찍혀 있었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 성립된 셈이다.

“넌 누가 이길 것 같아?”

“나? 글쎄… 일단 팽팽할 것 같은데.”

“전 수연 언니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머지 삼인방(태연, 미영, 윤아)은 누가 이길지 한가롭게 구경하고 있었다.

강 건너 불구경이 바로 이런 경우리라.


‘반드시 승리해야 해.’

주현은 주먹을 굳게 움켜쥔다.

어떻게 하면 여름 가요제에서 1위를 하고 설거지 1년 면제권을 얻을지 그녀는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하였다.

우선 그녀와 홍철의 상성은 그야 말로 극과 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궤변으로 상대방을 정신없이 몰아쳐 자신의 페이스로 끌어들이는 홍철과 논리적인 말로 조목조목 상대방을 설득하는 주현은 서로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힘들었다.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주현은 끊임없이 고민에 빠져야만 했다.

어떻게 하면 홍철과 함께 잘 조화를 이루어 1등을 할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끝에 마침내 답이 나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 명경지수처럼 맑은 머리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주현이 생각해낸 해법은 이것이다.

‘홍철 오빠와 내가 서로 섞일 수 없다면 한쪽이 완전히 융해되는 수밖에 없어. 내가 홍철 오빠에게 1등을 해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해서 나에게 협력하도록 해야겠다.’

그것이 주현이 내린 결정이었다. 되지 않는다면 되게 만들어라! 그것이 바로 주현의 신조였으니까.

그때, 대기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홍철이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는 주현을 발견하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손을 흔든다.

“Yo! 일찍 왔네?”

“오셨어요, 오빠?”

자리에 일어서서 인사하는 주현.

예의 바른 그녀의 모습에 홍철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다.

“뭐 이렇게 일찍 왔어.”

“방금 전에 도착했어요.”

그러면서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어보이는 주현의 눈은 위험하게 빛나고 있었다.

‘반드시.’

그 사실을 모른 채 홍철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주현에게 연신 말을 걸고 있었다.

곧이어 불어 닥칠 설교 폭풍을 자각하지 못한 채.


“작사 모두 하신 거예요?”

굳은 각오와 결의가 넘실거리는 주현의 모습을 자각하지 못한 채, 홍철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마치 대단한 것을 선보이듯 품속에 곱게 접힌 종이를 꺼내든다.

“당연히 다했지! 짜잔!”

“좀 봐도 될까요?”

“물론!”

흔쾌히 수락하며 홍철이 작사한 종이를 건네주자 그것을 받아든 주현은 곧장 펼쳐들어 그가 작사한 곡을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이거 작사하기 엄청 힘들었어. 현이가 가이드 곡을 워낙 우스꽝스럽게 녹음을 해서.”

“풉! 그건 그렇죠.”

웃음을 지은 주현이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처음 가이드 곡을 들었을 때 얼마나 웃겼는지, 그때를 생각하면 다시 웃음이 흘러나올 지경이었다.

창현이 홍철에게 건네준 가이드 곡은 무척 훌륭한 것이었다. 태양이라는 주제를 가진 그의 곡에 잘 어울리는 곡이었는데, 문제는 가이드 곡이랍시고 녹음을 한 가사였던 것이다.

뜬금없이 흘러나오는 애국가 3절.

노래를 듣기 위해 모처럼 드물게 임하던 홍철은 물론, 주현마저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동안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곧이어 터져 나온 웃음. 예능용으로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창현의 행동이 너무나 웃겨 한동안 폭소를 터뜨려야만 했다.

그때 기억을 떠올린 주현은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홍철이 작사한 가사를 훑어본다.

빠르게 좌우로 움직이는 그녀의 눈. 아침마다 독서를 한다더니 그것이 거짓이 아닌 듯 싶었다.

“으음!”

절로 흘러나오는 신음. 빠른 속도로 가사를 훑어본 주현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이게 무슨 판타스틱(Fantastic)한 가사란 말인가.

솔직한 말로 주현은 이 가사를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무어라 써놓기는 써놓았는데 가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부터 시작하여, 도대체 어찌하여 이런 배열로 존재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던 것이다.

‘내 심장이 뜨겁게 타올라 노릇노릇 익어버렸어? 이게 무슨…….’

어이가 없어서 황당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건 도대체 무슨 4차원 사고 방식인지.

개구리 중사 케로로를 시청하는 탓에 곧잘 언니들에게 4차원이라는 소리를 듣던 주현이지만 오늘 진정 4차원 사고를 지닌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이런 사람이 4차원이 아니라면 대한민국은 4차원 대국일 테니까.

주현의 이런 속내로 모른 채 홍철은 주현이 침묵하는 이유가 자신의 고차원적인(?) 가사에 반해버려서 그런 것이라 멋대로 판단해버렸다.

“어때, 어때? 완전 대단하지? 캬! 나의 이 번뜩이는 재치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니까. 이 영역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주절주절 떠드는 홍철의 이야기는 자화자찬 그 자체였다.

도대체 이 가사 어디가 예술적이고, 어디가 재치라는 건지.

한동안 우월감에 젖어 주저리 떠드는 홍철의 모습을 지켜보던 주현이 입을 연다.

“이거 전체적으로 수정을 해야 할 것 같아요.”

“……!”

청천벽력과도 같은 그녀의 말에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끄러미 주현을 바라보는 홍철.

자신의 완벽한 걸작(?)을 처음부터 수정해야 한다니, 그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란 말인가!

당황한 홍철은 평소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그게 무슨 말…….”

“우선 정식으로 관통하는 주제가 없어요.”

홍철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조목조목 반격을 하기 시작한 주현. 본래 그녀의 성격이라면 조용히 잘못된 점만 지적했을 테지만 지금은 임하는 자세가 다르다.

이번 여름 가요제 1위에게는 설거지 1년 면제라는 특혜가 있나니, 막내인 그녀로서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1위를 차지해야 했던 것이다.

단호한 어조로 홍철의 말을 끊어버린 그녀가 설명을 이어나간다.

“큰 줄기를 잡아놓지 않고 그때그때 자극적인 가사를 쓰신 나머지 주제가 보이지 않고, 산만한 느낌이 들어요. 우선 큰 줄기를 잡으신 다음 그 줄기에서 파생되는 곁가지를 생성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요즘 유행인 후크송 같은 반복 후렴구를 넣는 것도 좋고요.”

“…….”

하나하나 꼭꼭 짚어 이야기를 하는 주현의 말에는 빈틈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의 단호한 어조, 굳은 표정에 압도된 홍철은 그저 할 말을 잃은 채 멍한 표정만 짓고 있을 뿐.

그 사이 주현은 계속해서 쐐기를 박아대고 있었다.

“그리고 가사가 너무 자극적인 것 같아요. 물론 자극적일 수는 있지만 그 자극이 불쾌감을 유발해서는 안 되잖아요? 그런 만큼 좀 더 순화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릴 수 있는 단어의 선택이 필요하다 생각해요. 이 역시 큰 줄기를 잡아서…….”

논리정연하게 설명해오는 주현은 노련한 사냥꾼 같았다.

목표물을 놓고 결코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은밀하게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넣을 뿐이다.

야금야금 상대방이 빠져나갈 수 있는 공간을 모조리 갉아먹은 뒤, 완전히 포획할 수 있는 그물망을 펼쳐놓는다.

억지 논리의 대가인 홍철에게 있어 주현은 그야 말로 천적 그 자체인 셈이다.

점점 자신을 좀 먹고 들어오는 주현의 설명에 홍철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설명에 설명을 거듭하는 주현을 제지하고 말한다.

“아니, 서현아, 우선 내 말을 들어봐.”

“…그렇게 할게요. 홍철 오빠께서도 나름대로 생각하신 게 있으시겠죠? 주제넘게 나서서 죄송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예의 바르게 말하는 주현. 그러면서 실상은 할 말을 다한 셈이니 홍철이 여기에서 합당한 말을 해야 하리라.

“…….”

정자세를 취하며 홍철의 이야기를 경청할 자세를 취하는 주현을 보면서 그는 엄청난 부담감을 느껴야만 했다.

사실 그에게 있어 주현이 말한 나름대로의 뭐시기가 있을 리 없다.

그저 느낌 쫓아, 이리저리 쫓아쫓아 뚝딱 만들어낸 작품이니까.

당연히 할 말이 궁색해질 수밖에 없다.

“에… 그게 그러니까…….”

“네, 말씀하세요.”

대답도 또박또박하니 할 말이 더더욱 없어진다.

‘안 돼! 완전히 밀려버려.’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는 홍철. 현의 작업실에서 주현과 파트너가 된 뒤 처참하게 발렸던 것을 상기하고는 필사적으로 할 말을 떠올린다.

무한도전에서 보여주었던 사기꾼 캐릭터는 이럴 때 빛을 발해야 하는 것이다!

순간 20%가 넘는 뇌 가동률로 엄청난 생각을 거듭한 홍철은 마침내 할 말을 찾아내고는 눈을 번뜩인다.

“우선 내가 작사한 걸 말할 것 같으면 초기 시안이라 할 수 있어.”

“초기 시안이요?”

“그래! 초기 시안! 주제가 태양이잖아? 그러니까 그 뜨거움을 나만의 느낌으로 표현하려고 했고, 그걸 바탕으로 펼쳐낸 것이 바로 이 가사지. 그러니까 이 가사로 말할 것 같으면 태양에 대한 나만의 느낌을 표현한 거랄까, 그런 느낌이란 거지.”

아웃사이더 저리가라 할 정도로 빠르게 속사포로 말을 쏟아내는 홍철. 여전히 궤변이었지만 제법 그럴 듯함을 갖추고 있어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사람이라면 어어, 하다가 순식간에 끌려갈 법한 내용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홍철은 중대한 실수를 범하고 있었다.

첫째는 상대가 무척 논리적인 점이라는 것.

둘째는 상대가 말을 하나씩 듣고 모두 기억한다는 것.

셋째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로는 설득이 안 된다는 것.

마지막은 상대가 소녀시대의 최종병기 주현이라는 점이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주현은 홍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그럼 결국 이 가사는 완성 형태가 아니라는 거네요?”

“그렇지! 초기 느낌만 표현한 상태니까 아직 완성형은 아닌 셈이지.”

우선 상황을 벗어나고자 말을 하는 홍철. 주현이 자신의 말에 넘어가고 있는 것 같아 그의 입가에 어느덧 미소가 걸리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가사를 보완해야 한다는 거고요?”

“그, 그렇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맞는 말이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이 변명을 하려는 것도 느낌을 표현한 것이기에 고쳐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던 것이니까.

그런데 그것을 주현이 먼저 짚어내니 다소 당황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주현이 의외의 공격으로 치고 나오자 홍철이 재빨리 말을 덧붙인다.

“그러니까 이건 아직 초기 상태라서 좀 더 보완할 거야. 일단 오늘은 중간 점검이니까 이 형태로 갈 생각이고. 왜 그런 거 있잖아! 대외비! 신비주의! 그런 거지.”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하는 것이 바로 홍철의 전문 분야!

달콤한 말로 상대방의 귀를 현혹시켜 단숨에 자신의 페이스로 끌어들이려 한다.

“그럼 초기 형태는 이대로 가는 거고, 최종 형태는 따로 하시자는 거네요.”

“그래, 맞아! 내가 말하려던 게 그거야!”

상대방을 띄워줌으로써 자신의 페이스를 지켜나간다.

홍철이 습득한 사기술의 정화가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 무색할 정도로 주현은 중심만 짚어낸다.

“최종 형태는 같이 해도 되겠네요. 그렇죠?”

“그, 그건…….”

순간 홍철은 방금 전 자신이 했던 말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느껴야만 했다.

이런저런 달콤한 말로 꼬셔도 결국 한 방에 무너지지 않는가.

말끝을 흐리는 홍철을 보며 주현이 고개를 갸웃한다.

“아닌가요?”

“아니, 마, 맞아.”

순진무구한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주현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자니 홍철은 차마 거짓을 고할 수 없었다.

그의 말에 주현은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그럼 본격적인 작사 부분은 제가 맡아도 되겠네요. 홍철 오빠가 초기 형태를 맞춰주셨으니 최종 형태는 제가 하는 형태로요. 오빠가 원하신다면 공동 작업 형태로 해도 되고요. 어떤가요?”

말은 제안이지만 그녀의 눈빛은 절대 끼어들면 안 된다는 경고를 뿜어내고 있었다.

“네, 네가 해주면 좋긴 하지만 너무 수고스러운 거 아닐까?”

마지막 홍철의 발악.

하지만 주현은 매정하게도 그 바람을 잔혹하게 짓밟는다. 아니, 이미 짓밟은 상태에서 좌우로 짓이기는 확실한 마무리를 가한다.

“괜찮아요. 좋은 일을 하는 걸 알고 있는 걸요. 제게 맡겨주시면 홍철 오빠의 느낌을 살려 완성해보고 싶어요.”

“그, 그래. 서현이 네가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

“고마워요 오빠.”

“…….”

싱긋 웃음을 지어 보이는 주현의 모습에 홍철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로써 주현은 작사에 대한 주도권을 합법적으로 완벽하게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해서…….”

한편, 이곳은 명수와 수연이 머물고 있는 대기실.

그곳에서 명수는 자신이 짜온 작사를 들고 수연을 설득하기 위해 설명에 설명을 거듭하고 있었다.

하지만 설명을 듣는 당사자 수연은 시큰둥한 표정이다.

작사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어딘가 들어본 듯한 향기가 솔솔 풍기는 것이, 쉽게 납득하고 넘어가기에 무리가 따르고 있던 것이다.

수연은 자신의 의문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요?”

“들어본 것 같다고? 요, 요즘 노래가 다 그렇지 뭐.”

한순간 명수가 움찔한 것을 수연은 놓치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자신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뜻이리라.

“분명 들어본 것 같아요. 잘 생각해보세요. 잘못하면 표절 시비가 걸릴 수 있단 말이에요!”

그녀의 눈매가 서서히 가늘어지며 명수를 압박해나가기 시작하자, 그는 으으! 하는 신음과 함께 자신도 모르게 한걸음 뒤로 물러난다.

평소 센 척 하지만 그에게 있어 천적은 기가 센 여자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 처음에는 면식이 없어 곧잘 압박하지 못했지만 자주 의견 교환을 하면서 친해졌기에 수연은 폭군의 카리스마를 가감없이 발휘하여 명수를 압박하고 있었다.

신음을 흘리며 뒤로 한 걸음 또 다시 물러선다.

소녀시대 전체를 휘감는 폭군의 카리스마가 명수에게 그대로 통하고 있는 것이다.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는 명수.

그의 얼굴에 침울함이 자리하기 시작한다.

‘하필이면…….’

그는 수연과 한 조가 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한탄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명수는 기가 센 여자들에게 꼼짝 못하는 고질병(?)이 존재하기에 자신을 뭉개버리는 여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파트너가 될 때 성격이 유해보이는 소녀시대 멤버가 되길 바랐던 것이 사실.

처음 수연이 파트너가 되었을 때 무척 조용한 이미지여서 내심 자신의 뜻대로 일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착각. 수연은 사사건건 그의 결정에 딴죽을 걸기 시작하였고, 밀리고 밀리다 보니 어느덧 자신의 최소 권리마저 박탈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야 말로 사면초가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비슷한 걸 생각해보세요.”

당장이라도 레이저가 쏘아져 나올 것 같은 수연의 눈빛이 무섭다.

평소라면 호통으로 수연의 기를 죽여놓았을 테지만 이미 저지른 일이 있었기에 명수는 더 이상 부인하지 못한 채 사실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사, 사실은… 내 곡들과 느낌을 비슷하게 했는데…….”

“맞잖아요, 제 말이.”

쿠오오! 하고 불길이 피어오르는 수연의 모습은 결코 소녀시대의 얼음공주가 아니었다.

차라리 폭군이라는 말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리겠지.

서서히 궁지에 몰리는 것을 느낀 명수는 힐끔 수연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래도 그건 내 곡들이고…….”

“명수 오빠!”

흠칫!

차가운 수연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떠는 명수. 그리고 힐끔 수연을 바라보자,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명수가 위축되는 모습을 보일 때, 한순간 지옥의 불길과 북풍한설이 몰아치던 수연의 기세가 완화되며 부드럽게 말한다.

“1등을 해야 하잖아요. 1등하면 금 한 냥이에요, 금 한 냥.”

“금 한 냥…….”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명수.

그 모습을 보며 수연은 슬쩍 미소를 짓더니 말한다.

“금 한 냥 받고 싶으시죠?”

“받고 싶지. 당연히…….”

그렇게 막대한 양의 상금을 어찌 받기 싫겠는가! 가뜩이나 결혼을 하게 되면서 명수 또한 경제권을 아내에게 박탈당한 비운의 유부남 중 한 사람이었기에 금 한 냥은 훌륭한 비자금(?)이 되어 줄 수 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금 한 냥을 받아내고 싶은 것이 그의 심정이다.

그래서 자신의 히트곡(?)들을 총 집대성하여 작사를 한 것이고.

방금 전까지 사정없이 명수를 몰아치던 수연은 어느새 방법을 바꿔 그를 천천히 설득하고 있었다.

“그렇죠? 명수 오빠 결혼하셨다 하니 용돈을 받아쓰실 테고요.”

정곡을 찔리자 움찔하는 모습을 보여 수연으로 하여금 확신을 얻게 만든다.

그 반응을 목격한 수연은 입가에 미소를 점점 짙게 띠며 명수를 설득하는데 박차를 가한다.

“저도 파트너가 된 이상 명수 오빠가 1등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어요. 제가 무례하게 대한 것은 사과드릴게요.”

“어어, 그, 그래. 어차피 그렇게 무례하지도 않았어.”

살짝 고개를 숙이는 수연을 보며 명수가 아니라는 듯 양손을 젓는다.

그는 지금 방금 전까지 자신을 사정없이 몰아치던 수연과 지금 상냥하게 말하는 수연이 동일인물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여자가 아무리 변덕스러운 생물이라고 하나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오락가락하는 수연의 모습에 명수가 혼란을 겪으려 하자, 수연은 그 틈을 주지 않은 채 곧장 말을 건다.

“명수 오빠, 1등 하고 싶으시죠?”

“당연하지.”

무한도전 내에서 자신의 위엄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금 한 냥을 받아 자신의 비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1등은 당연히 하고 싶은 것이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당연히 도와야 하는 거 아니야?”

도와주기 위해 파트너가 된 거 아닌가?

그런데 지금에서 도와주겠다고 말하다니.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 명수가 바라보자, 수연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리겠다는 이야기에요. 저는 명수 오빠가 1위를 하길 바라고, 방송 분량 또한 제일 많이 나오길 바라고 있어요.”

“으음…….”

명수가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저의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도와주겠다고 하니 반가운 것도 사실. 아니, 오히려 티격태격하던 것에서 협력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었으니 그로서는 오히려 반길 일이었다.

“1등을 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하겠지?”

“물론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이 가사부터 가다듬을 필요성이 있을 것 같네요.”

살살 구슬러놓은 뒤 본색을 드러내는 수연.

우선은 이 표절 일색(?)인 가사부터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심혈을 기울여서 짠…….”

“1등을 하기 위함이에요.”

명수가 반발하자 수연은 입가에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예의 상냥한 미소였지만 예민한 그의 감각에 한 줄기 냉기가 포착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무언의 압박이리라.

‘하지만 내가 심혈을 기울여 짠 가사를…….’

수연이 협력적으로 나오는 것은 좋지만 아까운 마음이 들어 명수가 머뭇거리자, 미소 지은 채 지켜보던 그녀가 결정타를 날린다.

“비자금을 위해서에요.”

그 말을 들은 명수는 곧장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본격적인 명시카 조합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M본부 무한도전 스튜디오.

창현의 작업실에서 모이지 않고 이곳에서 모인 까닭은 오늘 중간 집계를 이곳에서 하기에 그렇다.

재석은 자신을 중심으로 양옆에 포진한 사람들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본격적으로 녹화를 시작한다.

“자, 그럼 중간 집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짝짝짝짝!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치며 중간 집계 자리를 축하한다.

“우선 중간 집계 자리에 빼놓을 수 없으신 분이죠. 이번 여름 가요제를 위해 곡들을 주신 대한민국이 낳은 스타! 현 씨를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꺄아아아아!

워낙 촬영이 협소한 관계로 창현은 우레와 같은 박수가 아닌, 작가진의 열렬한 비명(?)을 들으며 스튜디오 안으로 입장한다.

그리고 한쪽에 마련된 전용 좌석에 앉는다.

“현 씨!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앞으로 스케줄에 관련된 이것저것을 논의하며 지냈습니다. 재석 씨는 작사와 안무를 모두 완성하셨나요?”

“그건… 나중에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당장 말할 듯하다가 은근슬쩍 뒤로 빠지는 재석의 모습에 몇몇 사람들은 기대했다가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재석 옆에 앉아있던 유리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고.

“현 씨가 제공해주신 곡과 가이드 곡을 받고 저희가 나름대로 작사를 했는데요. 이번 여름 가요제의 테마는 이열치열이니 만큼 저희 나름대로 많이 고심하고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각자 나름대로 준비한 것들을 선보이고, 현 씨에게 평가 받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재석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본격적인 소개 타임이 시작되었다.

“자, 그럼 가장 먼저 선보일 분은 정형돈 씨입니다.”

짝짝짝짝!

검소한(?) 박수 세례를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형돈. 그를 향해 수영은 파이팅! 하는 포즈를 취하자, 형돈은 필이 충만한 자태(?)로 수영의 인사에 화답한다.

그리고 거들먹거리는 모습으로 앞으로 나서서 소위 말하는 똥폼을 잡는다.

“저거 너무 오만하잖아!”

“저 녀석 끌어내!”

그 모습에 격분하는 몇몇 어르신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포즈를 취하던 형돈은 자세를 풀고 인사한다.

“반갑습니다. 화려한 퍼포먼스와 신기에 가까운 랩을 구사하는 정형돈입니다.”

우우우우!

말도 안 되는 사기틱한 소개에 야유를 터뜨리는 출연진.

진행을 하는 재석 또한 터무니없는 형돈의 소개에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짓다가 미소를 띠고는 입을 연다.

“자, 그럼 정형돈 씨의 테마에 대해 들어볼까요. 이열치열인 것은 알고 계시죠?”

“물론입니다.”

“그럼 이번에 잡으신 테마는 무엇인가요?”

그 질문에 슬쩍 수영을 바라본 형돈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입을 연다.

“여름을 단숨에 타파할 우리 팀의 테마는 바로… 불족발입니다!”

힘찬 외침. 뜨거운 여름을 타파하기 위해 불족발이라는 테마를 들고 나왔지만 그를 반긴 것은 야유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저 녀석 테마 하나는 잘 잡는단 말이야.”

“어떻게 저런 걸 생각한 거지? 딱 자기 이미지랑 일치하잖아.”

경악이 서린 어조로 중얼거리는 무한도전 멤버들.

형돈의 테마를 처음 들은 소녀시대 멤버들 또한 놀란 토끼 마냥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형돈을 바라보다가 수영에게 시선을 옮긴다.

그러자 수영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마치 자신이 승리한 것 마냥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만만치 않다!

그것이 소녀들이 느낀 감상이었다.

설마 형돈의 테마가 불족발일 줄이야!

생각지도 못한 강력한 테마의 등장에 소녀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뜨겁게 퍼덕퍼덕거리는 족발이 당장이라도 입가를 노니며 뜨거운 화력을 내뿜을 것 같았으니까.

“네! 불족발! 형돈 씨의 테마였죠. 그 테마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재석의 물음.

그 질문에 형돈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말한다.

“간단합니다. 제가 바로 무한도전의 뚱보를 맡고 있기에 고안한 것입니다. 여름이라는 응당 냉채 족발을 선택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저는 이열치열이라는 테마에서 온 것을 발상의 전환을 하여 불족발을 선택한 것입니다.”

정말 대단하다!

설마 저런 발상이 가능할 줄이야.

소녀시대 멤버들은 입을 떡 벌릴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테마 자체만으로 이열치열이라는 테마가 제대로 먹혀드는 듯 싶었다.

‘형돈 오빠가 저런 생각을 해낼 줄이야.’

‘수영이가 유리하겠는데?’

‘질 수 없어! 설사 테마가 불족발이라 하더라도…….’

눈에 불을 킨 채 형돈과 수영을 번갈아바라보는 소녀들.

그 뜨거운 시선(?)에 형돈은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고, 그녀들이 왜 자신을 바라보는지 알고 있는 수영 또한 한껏 우월함이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후후후! 권율! 난 처음부터 승리를 장담하고 있었다고.’

노래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지 않은가.

우선 제목 자체가 절반을 넘게 먹고 들어가는 상황!

불족발이라는 엄청난 테마를 쥐고 있는 이상 자신의 승리는 따놓은 당상이리라.

그렇게 생각한 우월한 수영의 시선이 유리에게 향하는 순간, 그녀의 표정은 참혹하게 일그러지고 말았다.

다른 멤버들과 달리 유리의 표정은 담담함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녀 또한 참혹하게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한껏 기대감에 부풀었던 수영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저게 감히…….’

자신을 도발한 유리만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자 바짝 독이 오른 수영.

카메라가 자신을 촬영하고 있기에 뭐라 톡 쏘아붙일 수 없었기에 그녀는 이를 갈면서도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한편, 기세가 서서히 형돈에게 기울고 있던 재석은 중재자인 MC의 입장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경쟁자의 입장이기도 하였기에 분위기가 반전되기 전에 진행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럼 형돈 씨의 불족발 곡을 들어보도록 할까요? 작사는 완료되었는지?”

“물론입니다. 작사는 물론 안무 또한 완성된 상태입니다.”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은 형돈이 과도한 제스쳐를 취하자 수영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우우우우!’ 하고 야유를 터뜨렸다. 불족발이라는 우월한 테마를 선점한 것은 좋지만 그로 인해 다소 들뜬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재석 또한 부담이 되는 거였는지 살짝 표정을 찌푸리더니 말한다.

“그럼 본격적으로 불족발 노래를 들어보겠습니다.”

두두두! 스파~ 스-파~!

묵직한 기운과 함께 울려 퍼지는 매콤한 느낌의 사운드.

창현은 형돈이 선택한 불족발에 맞춰 자신만의 느낌을 곡에 담아냈기에 듣는 사람은 불족발의 화끈함이 온몸으로 전달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두둥! 두두둥! 습파~!

마침내 전주가 끝나고 노래가 시작될 때!

양손을 활짝 펼치는 형돈!

짧은 그의 양팔과 구부러진 손목은 하나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와 함께 절묘하게 손가락으로 그려내는 족발의 미학!

그야 말로 순수한 안무로 재창안한 족발의 정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 하나만으로 보는 사람의 기대감을 절로 충족시키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 그때!

절묘한 족발 신수神手를 펼친 형돈이 자세를 푼다.

무엇을 펼칠지 잔뜩 기대하던 사람들은 순간 몸에 힘이 빠져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아야 했다.

맥이 탁 풀려버린 사람들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형돈이 말한다.

“여기까지입니다.”

“여기까지라니… 아직 보여준 것이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허탈한 재석의 표정을 보며 형돈은 간단명료하게 대답한다.

“보여드리지 않았습니까? 오프닝 안무부터 시작해서 곡의 첫 부분까지!”

“그게 끝입니까, 정말로?”

“그렇습니다.”

방송 분량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형돈의 행동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재석이 방향을 바꿔 수영에게 시선을 고정하고는 묻는다.

“수영 양, 궁금해 하는 시청자분들을 위해 좀 더 정보를 주실 생각이 없으신지?”

형돈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껏 즐기며 우월감에 도취되어 있다 재석이 빈틈을 노려 사각지대라 할 수 있는 수영에게 질문을 옮기자 당황하며 말한다.

“아니, 왜 제게 묻지 않고 수영 양에게 묻는 겁니까.”

“대답하지 않으시니까요.”

냉정하게 형돈의 말을 잘라버린 재석이 수영을 바라본다.

짧은 순간 수영과 형돈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환되었다.

살짝 고개를 끄덕인 수영이 고개를 들어 슬쩍 창현을 바라보다가 재석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입을 연다.

“불족발 곡에 관련된 것이라면…….”

심상치 않은 전주와 제스쳐!

첫 타자지만 강력한 모습을 보였기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다.

자신에게 몰려드는 시선에 옅은 미소를 띤 수영이 말한다.

“비밀입니다.”

“……!”

머엉!

두 번이나 낚여버린 사람들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멋지게 사람들을 낚아버린 수영을 보며 형돈은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훌륭한 그녀의 낚시를 칭찬했다.

형돈에 이어 수영에게까지 낚여버리자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재석은 정신을 수습하고는 말한다.

“예, 그럼 첫 번째 타자, 정형돈 씨의 불족발이었습니다.

짝짝짝.

두 차례 낚시에 낚여버리자 건성으로 박수를 치는 사람들.

“그럼 현 씨에게 평가를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창현은 이미 불족발에 관련된 가사를 받아서 훑고 있었다.

가사에 관련된 정보를 다른 팀은 얻을 수 없지만 창현은 이미 가사를 읽고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우선 가사가 무척 훌륭하네요. 흔히 사람들이 불족발을 들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와 먹어보았을 때의 맛을 아주 위트 있게 풀어냈습니다.”

천천히 평가를 내리는 창현.

그의 말에 형돈과 수영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지기 시작한다.

“정말인가요?”

벅찬 설렘이 담긴 형돈의 목소리에 창현은 싱긋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가사가 독창적이고 감각이 살아 있는 게 느껴지는 걸요?”

“네! 수영 양이 적극적으로 도와줘서 더욱 멋있는 가사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정형돈! 그는 쪼잔한 남자가 아니었다. 나의 영광은 팀의 영광이기도 한 법! 당연히 작사를 하는데 지대한 도움을 준 수영에게 그 영광을 돌렸다.

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수영에게 몰린다.

형돈에게 고맙다는 눈인사를 보낸 수영이 도도하게 콧대를 높인다. 형돈의 독창적인 감각이 함께 하긴 했지만 수영의 지도 편달이 없었으면 이토록 멋진 불족발 가사는 탄생할 수 없었으리라.

당연히 뿌듯한 감정이 몰려왔다.

그리고 자신의 라이벌이라 생각하는 유리를 힐끗 본다.

여태까지 담담하던 그녀는 창현이 수영을 칭찬하자 그제야 표정이 흐릿하게 변해간다.

‘창현이가 칭찬할 정도라면 보통이 아니라는 건데…….’

급변하는 유리의 표정을 즐기듯 바라보며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 수영.

자신과 형돈의 모든 정화가 녹아있는 불족발을 이길 자는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톡톡 튀는 가사 뿐만 아니라 형돈에게는 ‘그것’이 있었으니까.

‘그것’만 발휘한다면 모든 사람들을 올킬할 수 있을 것이란 것이 수영의 계산이었다.

‘훗! 승리는 내 것이야. 깝율 넌 날 이길 수 없어.’

승리자의 미소를 짓는 수영. 그녀의 시선이 이번에는 창현에게 향한다.

다시 한 번 그의 칭찬을 듣고 싶었다.

‘창현아, 좀 더 칭찬해줘!’

수영은 아이큐 430 이상만이 시전 할 수 있는 고위 기술 텔레파시(?)를 창현에게 시전 했다.

그녀의 간절한 바람이 정말 닿기라도 한 것일까.

창현의 시선이 수영에게 향한다.

‘난 역시 우월해!’

주파수가 맞은 것이라 확신하며 수영의 가슴이 두근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자랑하는 소녀시대 각선미 담당 수영답지 않게 그녀는 수줍은 표정을 지었지만 눈만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좀 더… 좀 더 많은 칭찬을 해줘!

그녀의 간절한 바람이 닿은 것인지 창현은 싱긋 미소를 짓더니 입을 열기 시작한다.

“불족발의 가사가 독창적이고 감각적인 이유를 알 수 있네요.”

모두가 의문 부호를 그렸고, 수영은 창현이 더 많은 칭찬을 해줄 거란 기대감에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 사이 창현은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가사에는 본인의 경험담들이 절묘하게 묻어나온 것 같네요. 불족발을 먹으면서 그것에 대한 맛이나 느낌 등을 제대로 표현한 것 같아요. 정형돈 씨가 수영 양의 도움이 컸다고 하니 그 부분에 대한 이유를 잘 알겠네요.”

“…….”

칭찬을 잔뜩 기대하던 수영은 창현의 말을 듣고 그대로 석상이 되어 굳어버렸다.

그리고…….

푸하하하하!

스튜디오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창현에게 여전히 식신 취급을 받은 수영은 좌절하며 처참하게 침몰하였고, 첫 팀 불족발에 이어 다른 멤버들도 차례차례 나서기 시작하였다.

준하와 순규 팀은 한 소절만 달랑 부른 채 끝을 맺은데 반해, 전진과 효연 팀은 강렬한 퍼포먼스로 스튜디오를 압도하여 큰 이미지를 남겼다.

웃음을 유발하는 코드는 ‘불족발’에 비해 부족하지만 철저한 준비와 프로정신으로 무장된 전진의 퍼포먼스와 노래는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들 지경이었다.

‘강력한 적이야.’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잔뜩 긴장한 채 전진과 효연의 조합을 바라보는 소녀들의 시선이었다.

특히나 이제부터 시작 단계에 들어가 있는 수연과 주현은 이를 지그시 깨물며 주먹을 꽉 움켜쥘 정도였다. 자신은 파트너 때문에 이제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데 누구는 벌써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를 구사하고 있다니.

세상이 불공평하기는 하지만 너무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에 반해 모사꾼 유리의 생각은 다소 달랐다.

그녀는 날카로운 눈으로 미소를 짓고 있는 효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분명 대단한 퍼포먼스지만 외부로 노출된 이상 더 큰 위험도는 없다는 뜻이야. 효랭이 넌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겠지만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뜻처럼 자신을 좀 더 숨겨야 했어. 넌 이길 수 없어.’

오히려 위험도는 불족발보다 낮다 생각하는 유리였다.

그녀의 생각과 달리 다른 사람들은 압도적인 퍼포먼스에 감탄하고 있는 듯하지만.

완성도 높은 무대를 본 창현이 칭찬 일색의 평가를 내려주었고, 그 다음으로 나선 것은 다름 아닌 홍철이었다.

척척 발걸음을 옮겨 정중하게 창현에게 인사를 하는 홍철.

“노홍철 씨가 준비한 테마가 뭡니까?”

평소와 다소 다른 홍철의 모습에 고개를 살짝 갸웃하면서 질문을 하는 재석. 무언가 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 걱정은 기우였던 것일까?

홍철은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밝은 표정을 짓더니 힘차게 외친다.

“제 테마는 바로 태양입니다.”

“태양! 확실히 나쁘지 않은 테마죠. 노래를 준비하셨습니까?”

“물론입니다! 저의 넘치는 지적 센스를 마음껏 즐기시길! 음악 주세요!”

자신감 넘치게 외친 홍철이 자세를 척하니 취한다.

범상치 않은 센스를 지닌 홍철이었기에 모두가 기대감 서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태양’의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미리 적어놓은 가사를 보면서 노래를 하기 시작한다.

“…….”

노래를 듣고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순간 멍해진다.

지금 홍철이 부르고 있는 노래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에 저렇게 판타스틱한 가사가 있을 수 있다니.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고, 무엇을 표현하고자 한 것인지 알 수도 없었다.

모두의 표정이 기괴막측하게 변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건지 홍철은 자신의 노래에 충실하고 있다.

그가 부르고 있는 가사는 다름 아닌 그가 처음 작성한 것 그대로였다.

주현은 홍철이 앞으로 나서기 전 한 가지 지령을 그에게 내렸다.

‘오빠가 작사한 가사를 들고 그대로 부르세요.’

이미 조목조목 반박하는 주현의 모습에 완전히 백기 투항을 해버린 홍철이었다. 지금의 그는 완벽한 하수인과 다를 바 없는 신세였기에 주현의 명령을 따랐다.

아니나 다를까.

판타스틱한 홍철의 가사를 들은 사람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해가기 시작한다.

곡은 훌륭하지만 가사가 기괴막측하여 곡 전체의 느낌이 이상하게 변해버린 것이다.

홍철의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본 소녀들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적어도 ‘저것’에 질 것이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으니까.

‘우리가 이겼어!’

자신들이 아무리 못해도 홍철의 노래보다 못할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만큼 홍철의 가사는 이상한 것이었다.

‘예정대로.’

주현은 언니들의 입가에 미소가 맺히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자신의 계산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 그녀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속으로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병법에는 이런 게 있어요. 허허실실이라고.’

그녀가 계획한 것은 그야 말로 간단.

막내인 탓에 그녀는 언니들이 어떠한 습성을 가지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유리의 판단처럼 모난 돌은 정을 맞고 마는 서바이벌 시스템. 오직 한 사람만이 영광을 취할 것이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주현으로서는 언니들의 견제에 벗어날 수단이 필요했고, 그러다 생각한 것이 바로 홍철의 가사였다.

자신이 듣기에 완전 폭탄과도 다름 없는 홍철의 가사.

저것을 보여주어 언니들의 방심을 이끌어내겠다는 것이 주현의 생각이었다.

‘서로 열심히 견제하도록 하세요. 그 사이 과실을 취하는 건 제가 될 거니까요.’

검은 속내를 숨기고 언니들의 분쟁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철저하게 제3자를 가장하고서.

하지만 최후에 웃는 사람은 자신이 될 것이다.

설거지 1년 면제는 그만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그 사이 노래가 끝난 홍철에게 창현이 평가를 해주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홍철의 가사에 존재하는 치명적인 점들을 창현은 가감 없이 지적하고 있었다.

마치 난도질당하는 느낌이었기에 홍철의 표정이 좋지 않게 변한다.

주현에게 처참하게 당했지만 내심 자신의 독창적인 가사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틀린 것이란 게 증명되어버린 것이다.

당연히 홍철의 표정은 암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힘없이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는 홍철. 그의 양 어깨는 안쓰러울 정도로 축 늘어져 있었다.

그에 반해 다른 무한도전 멤버들은 웃음을 지은 채 홍철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력한 경쟁자라 생각하던 홍철의 부진을 그들은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있던 것이다.

경쟁자가 줄어들수록 금 한 냥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지니 그들로서는 그것이 당연한 반응이리라.

“…….”

의욕을 잃은 홍철의 표정을 보며 주현은 그에게 좀 더 용기를 복돋아줘야 한다 생각했다. 자신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언니들을 속이는 것이었지 홍철이 의기소침하게 변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잘하셨어요.”

“서, 서현아…….”

모두가 자신 보고 타박을 하였다.

너의 가사는 이상하다고. 너의 감각은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라고.

“오빠의 실력이 모자라서 그런 게 아니에요. 단지 다른 분들이 이해하지 못한 거죠. 다만… 오빠의 가사가 다른 사람들에게 먹혀들지 않았을 뿐.”

홍철을 위로해주는 주현. 흐리멍텅하게 변해있던 그의 눈에 서서히 초점이 맺히기 시작하자 주현은 좀 더 용기를 복돋아줄 요량으로 칭찬을 좀 더 해준다.

“사실 저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 이 여름 가요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줘야하는 가요제에요. 오빠의 독창적인 가사도 좋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오빠가 양보를 해주시면 안 될까요?”

대기실에서 주도권을 빼앗을 때는 반강제적이었지만 지금은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모습.

그것을 모른 채 홍철은 주현의 말에 서서히 빠져들고 있었다.

모두가 자신을 외면할 때 단 한 사람은 자신을 인정해주고 있다.

사람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하지 않았던가!

순간 홍철은 마음이 울컥하는 느낌과 함께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을 이렇게 높게 평가해주는 주현과 함께라면 문제가 없으리라.

“알았어, 서현아. 널 믿도록 할게. 같이 1등 하자. 미안하다, 내가 부족해서 네가 고생을 하는구나.”

그답지 않은 표정과 어투.

방금 전 멤버들의 호응에 큰 상처를 입었음이 분명하다.

주현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홍철을 위로한다.

“잘하셨으니 그런 우울한 표정은 짓지 않으셔도 되요. 제가 꼭 오빠를 1위로 만들어드릴 테니까요.”

지금 이 순간 홍철의 앞에는 천사가 강림해 있었다.


“그럼 다음 팀은… 저로군요.”

눈대중으로 주변을 훑던 재석은 자신의 차례라는 것을 깨닫고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서려한다.

그 모습에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던 유리가 재석을 부른다.

“재석 오빠, 잠시만요.”

“응? 왜 그래, 유리야.”

의아한 표정을 지은 재석이 유리에게 다가가자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잠시 귀 좀…….”

“음? 그래.”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재석은 유리의 요구에 순순히 몸을 숙인다. 그러자 유리가 재석의 귀에 무언가를 소곤소곤거리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본 무한도전 멤버들의 눈이 가늘어지며 반발하기 시작한다.

“어디서 신성한 방송국에서 애정행각이야!”

버럭 외치며 호통을 치는 명수.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부럽다는 기색이 잔뜩 서려 있었다. 그러다 부인이 방송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표정을 고치고는 PD에게 이 부분 편집해달라고 손짓을 하지만 매정하게도 PD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형님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와! 인기 아이돌하고 지금 그게 무슨…….”

“부, 부럽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비난에 재석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지금 무슨 말들을 하는 겁니까.”

“여자 아이돌하고 스캔들 내려는 거냐! 네 나이를 생각해!”

명수가 선봉장이 되어 본격적으로 재석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부인님께서 보고 계실 수 있기에 최대한 표정 관리를 한 채.

그의 호통에 다른 멤버들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재석을 부러움 반 질투 반 섞인 눈으로 바라본다.

단순한 귓속말이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부러움을 유발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아니, 그럼 저는 여자 아이돌하고 스캔들도 낼 수 없는 겁니까?”

억울한 마음에 항변한 것이었지만 그것은 큰 파장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형돈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재석에게 말한다.

“형 지금 유리한테 흑심 품은 거예요?”

“완전 저질! 완전 저질이다! 재석 형님 그러시면 안되요.”

홍철의 추가타가 재석의 마음을 사정없이 비수로 찌르고 있었다.

그 뒤에 이어진 명수의 호통은 만루 홈런에 가까운 위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너 얼마 후면 결혼하잖아! 제수씨가 이걸 보고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해?”

“그, 그건…….”

부인 이야기가 나오자 급속도로 당황하기 시작하는 재석이다.

그는 얼마 후 결혼할 예비 유부남! 자신이라고 해서 여자 아이돌과 스캔들이 나지 못할 게 없다는 억울한 마음에 외친 거였지만 그것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켜 되돌아오고 있었다.

1인자가 위태롭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일까.

영원한 2인자 명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재석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며 삿대질을 한다.

“여러분이 알고 계시는 유재석은 이런 사람입니다.”

“이 간악한……!”

“저런 사람이 1인자라니!”

분통을 터뜨리는 무한명수교(?) 교도 형돈과 준하.

하하가 공익으로 가버린 지금, 무한재석교를 받쳐줄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유, 유리야, 도와 줘.”

궁지에 몰린 재석은 자신의 구명줄로 유리를 선택했다.

스캔들 당사자(?)인 유리의 해명이 이어진다면 충분히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유리는 무한도전 멤버들의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뜬금없이 스캔들이라니.

자신은 그저 재석에게 할 말이 있고, 그것이 비밀 이야기라서 귓속말을 한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것이 갑자기 스캔들로 발전하게 되자 그녀는 당혹스러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하필이면 창현이 앞에 있는 곳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행여나 창현이가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반쯤 웃기기 위해 장난을 하는 게 알고 있기에 그가 오해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행동이 조신한 이미지(?)에 타격이 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까불거리지만 내 남자 앞에서는 조신한 여자가 바로 자신이거늘!

실수도 이런 실수가 없다.

창현을 힐끔 바라보다가 수영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녀의 입가에는 흐릿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것은 노골적인 비웃음이었다.

‘저것이…….’

순간 마음속에서 불길이 치밀었지만 유리는 침착하기 위해 속으로 심호흡을 하였다.

여기에서 화를 내면 자신의 이미지는 더욱 깎일 것이 분명할 터.

모사는 결코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침착하게 호흡을 고른 유리는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재석을 보고는 싱긋 미소를 짓는다.

“미안해요, 오빠. 들켜버렸네요?”

오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극구 부인하는 것과 위트 있게 웃음으로 넘어가는 것!

여기에서 정색하며 부인하는 것은 예능 프로그램에 있어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유리가 선택한 방법은 위트 있게 웃음을 주는 방법이었다.

바로 장난스럽게 스캔들을 인정하는 것.

그 말을 듣는 순간 재석의 얼굴은 흙빛이 되어버렸다.

1인자를 추락시킬 절호의 기회를 잡은 명수는 본격적으로 반란을 일으켜 그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봐봐! 내 말이 맞잖아! 너 이놈! 그렇게 예쁜 예비 신부를 두고!”

“맞아맞아! 형수님이 얼마나 상심이 크시겠어!”

“이 도둑! 공적!”

온갖 욕설(?)을 들으며 순식간에 인면수심 범죄자가 되어버린 재석이다.

하얗게 질린 채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는 재석을 지켜보던 유리가 나서서 상황을 중재하기 시작한다.

“저기, 농담이었는데 이만하시는 게 어떨까요? 중간 평가도 아직 안 끝났는데…….”

유리의 말에 재석을 몰아붙이던 무한도전 멤버들은 움찔하고는 뒤로 물러선다.

처참하게 당한(?) 재석은 비틀거리더니 유리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고맙다, 유리야.”

“뭘요. 대신 제가 말한 대로 하시는 거예요?”

“그래…….”

병 주고 약준 격이지만 재석은 자신을 구원해준 유리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 모습에 유리는 살짝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어쨌거나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었기에 무난하게 넘어갔다.

‘미안해요, 재석 오빠.’

괜히 재석만 피를 봤지만.

앞으로 나선 재석은 망신창이가 되어 있지만 꿋꿋하게 버티고 섰다.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고 해서 자신을 말릴 수 없는 노릇이다.

자신은 프로정신이 투철한 MC였으니까.

이번 가요제에서 모두를 확실하게 눌러줄 것이라 다짐하며 앞으로 나선다. 그리고 창현에게 시선을 주며 곡을 소개하기 시작한다.

“제가 선택한 테마는 바로 떡볶이입니다. 분식류 중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떡볶이는 매운맛으로 더위를 이겨낼 수 있는 떡볶이로 이열치열할 수 있게 만들겠습니다.”

자신감 넘치는 재석의 모습에 창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작사한 가사를 보며 말한다.

“그럼 노래를 들어볼까요.”

그 말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재석의 노래.

핫핫핫!

매운 것을 먹고 내뿜는 뜨거운 숨결 같은 멜로디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체온이 확 달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주기 시작한다.

바로 재석의 곡 떡볶이였다.

전주 부분이 모두 끝나고, 본격적인 노래가 시작할 부분이 되자 재석은 리듬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학교 종이 땡땡땡!”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온 가사는 기상천외한 것이었다.

그가 작사한 그대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 뜬금없이 동요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몸을 폴짝폴짝 뛰기 시작하더니 그의 전매특허인 메뚜기 춤까지 추기 시작한다.

“…….”

한순간 스튜디오는 침묵에 휩싸인다.

설마 재석이 이럴 것이라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기에 모두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기까지입니다.”

그의 말과 함께 음악이 끊겼고, 재석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뒤 자신의 자리로 물러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무한도전 멤버들이 강하게 비난했다.

“뭐야, 그게! 설마 되지도 않는 신비주의야, 뭐야.”

“하나도 보여주지 않고! 적어도 난 조금이라도 보여줬는데.”

강렬한 비난이 쇄도하고 있었지만 재석은 꿋꿋하게 침묵하며 일절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 나오자 무한도전 멤버들도 더 이상 비난을 하지 못한 채 입을 다문다. 무슨 리액션이 있어야 멘트라도 던질 수 있는 법인데 무응답이면 혼자 쇼를 한 꼴이니까.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창현은 고개를 끄덕인다.

“음, 가사는 괜찮네요. 막 나오시기 전에 유리 씨가 해준 말 때문에 방법을 바꾸신 것 같은데 두 분 호흡이 무척 잘 맞는 것 같네요.”

“하하! 저희들의 호흡은 그야 말로 찰떡 호흡이라 할 수 있지요.”

재석은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지만 유리는 창현의 그러한 말이 자신을 타박하는 듯하여 무어라 말을 할 수 없었다.

“무대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기대가 되네요. 그럼 마지막 조로 가도록 하죠.”

창현의 말에 재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주자인 명수를 소개한다.

“알겠습니다, 마지막은 박명수 씨입니다.”

재석의 호명에 명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로 걸어 나가려 한다.

“이거 가지고 나가셔야죠.”

그런 명수를 제지한 것은 수연.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인 노래 가사였다.

“이미 다 외우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제법 믿음직한 모습을 보이지만 수연은 그 말이 거짓이라는 걸 알고 있는 듯 콧방귀를 뀌며 말한다.

“거짓말, 방금 전까지 가사 못 외우고 계신 거 알거든요? 어서 가지고 가세요.”

“가사 다 외웠다고! 날 못 믿어?”

대뜸 호통을 치는 명수였지만 소녀시대의 폭군 수연에게 그 말이 먹힐 리 만무하였다.

“그럼 해보세요.”

“뭐, 뭘?”

갑작스러운 수연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명수. 그러자 수연은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으며 말한다.

“가사 외우고 있는지 확인해보려고요.”

“그, 그건…….”

“외우지 못하고 계신 거 맞죠?”

“…….”

수연의 연타에 명수는 침묵하고 말았다. 그리고 PD에게 잠시 편집해달라는 표시를 하더니 카메라도 끄지 않았는데 대뜸 다가가 수연에게 사과한다. 물론 PD는 명수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은 채 촬영을 계속하고 있었다.

“시카야, 오빠 체면 좀 살려줘야지.

명수가 애원조로 말하며 슬그머니 가사가 적힌 종이를 가져가려하자, 수연은 쀼루퉁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홱 돌린다.

그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던 홍철이 웃음기 배어있는 목소리로 말한다.

“아~ 저 팀 와해되나요?”

명시카 팀은 처음부터 파토 분위기였다.


우여곡절 끝에 명수와 수연은 가까스로 화해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안색 모두 좋지가 않았다. 명수는 쓸데없는 고집을 부려 수연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었고, 수연은 끝까지 명수의 체면을 살려주지 않았으니까.

두 사람 모두 방송이라는 걸 알고 있어 일정 이상의 선을 넘지 않았지만 그래도 위태로운 것은 변함이 없다.

다른 무한도전 멤버들은 그야 말로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보고 있었다.

경쟁자의 팀이 위태롭다는 것은 금 한 냥이 자신들에게 돌아올 확률이 조금이라도 더 높아졌다는 것을 뜻했으니까.

소녀시대 멤버들 또한 얼굴에 은은한 화색이 돌고 있었다.

최강의 적이 될 수 있는 수연이 명수와 함께 사상 최악(?)의 조합을 구성함으로써 그 전투력이 현격하게 하락했으니까.

라이벌이 약해진다는 것은 곧 자신들의 힘이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수연이가 하락세라면…….’

‘승리는 나의 것이군.’

가장 강한 적인 수연의 추락을 좋아하는 소녀들.

그만큼 그녀들에게 있어 설거지 1년 면제권은 대단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들의 라이벌인 수연이 파토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고, 명수는 심기가 대단히 불편한 얼굴로 스튜디오 중앙에 선다.

재석은 몰락 직전(?)의 명수를 보며 최대한 웃음기를 숨기고는 그에게 묻는다.

“박명수 씨의 테마는 무엇인가요?”

“제가 부를 테마는 바로 볼케이노입니다.”

“볼케이노?”

“화산이란 뜻입니다. 화산이 영어로 볼케이노. 그것도 모르십니까?”

고개를 갸웃하는 재석을 보며 혀를 굴려 볼케이노를 발음한 명수가 그를 타박한다.

그 행동에 재석은 쓴웃음을 짓더니 명수에게 말한다.

“모를 수도 있는 거죠. 처음에 선택하신 게 화산이었는데 갑자기 볼케이노라 하셔서 순간 떠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무식을 그런 방식으로 숨기는 건 옳지 못한 짓입니다.”

“…….”

뜬금없는 명수의 말에 할 말을 잃은 재석이 침묵하자 뻘줌해진 명수는 창현을 보며 말한다.

“노래 시작하겠습니다. 음악 주시죠.”

불친절한 명수의 진행에 재석이 정신을 차리고는 황급히 그를 제지했다.

“아, 아니. 우선 왜 볼케이노를 선택했는지 시청자들에게 설명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빨리빨리 진행해버리는 명수에게 브레이크를 밟아주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한다.

“아, 그렇군요. 제가 볼케이노를 하게 된 이유는… 무지막지하게 뜨겁기 때문입니다.”

“…그것뿐인가요?”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여서 재석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 명수에게 묻자 그는 그럼 무엇이 또 있냐는 듯한 표정으로 재석을 바라본다.

“아니, 뭐… 화산을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던가…….”

“제가 볼케이노를 선택한 이유는 딱 하나. 뜨겁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뜨거워서 선택한 겁니까?”

“이열치열이니 가장 뜨거운 걸 선택해야 될 거 아냐? 넌 왜 항상 그렇게 딴죽을 걸어! MC면 좀 매끄럽게 진행을 해봐!”

거듭되는 재석의 질문에 결국 폭발한 명수가 호통을 친다. 가뜩이나 같은 팀인 수연과 아웅다웅해서 기분이 저조한데 쓸데없는 꼬투리만 잡아대는 재석의 행동에 울분이 폭발한 것이다.

명수가 폭발하자 찔끔한 재석은 곧바로 진행한다.

“아, 예. 그럼 볼케이노, 들어보시죠.”

그러며 재석이 뒤로 빠져버리자 명수는 무어라 말을 하지도 못한 채 마이크를 든다.

수연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입장이었기에 그로서는 최대한 멋진 라이브를 펼쳐야 하는 상황이다.

우우! 두두두!

웅장한(?) 전주와 함께 멜로디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리듬을 잡아나가던 명수가 마이크를 서서히 드는 순간!

이미 첫 가사를 불러야 할 부분이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

가사를 놓쳐버리자 당황한 표정을 지은 명수가 우왕자왕하며 가사가 적힌 종이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리고는 간신히 리듬을 잡아내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명수가 박자를 놓쳐버리자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던 무한도전 멤버들은 노래를 다시 시작하자 그것을 조용히 경청하다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왜 볼케이노에서 화산의 왕자가 나와!”

“저거 바다의 왕자 표절이잖아!”

“우와! 자기 곡이라고 그냥 낼름낼름 가져다 쓰네!”

“완전 몰양심!”

척이면 척이라고, 어딘가 익숙한 가사를 들은 무한도전 멤버들은 명수가 자신의 곡에서 괜찮을 법한 가사들을 따왔다는 것을 단숨에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작렬하는 맹비난.

수많은 고민을 필요로 하는 작사 작업을 날로 먹으려 하니 맹비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멤버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명수는 꿋꿋하게 노래를 부른다. 누가 뭐라고 하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여기까지입니다.”

1절을 모두 부른 명수가 되지도 않는 정중한 자세를 취하자, 무한도전 멤버들이 일제히 야유를 터뜨렸다.

우우우우!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

가슴을 쭉 핀 채 당당하게 말하는 명수의 행동은 적반하장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 모습에 무한도전 멤버들도 맞받아치려 하자, 조용히 노래를 감상하던 창현이 입을 열었다.

“음! 박명수 씨!”

“예, 작곡가 님.”

깍듯하게 예를 취하는 명수.

처세술에 해박한 그는 창현을 보며 깍듯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우와! 완전 어이없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변할 수가 있냐!”

이중성이 돋보이는 명수의 행동에 무한도전 멤버들이 불평 불만을 터뜨렸지만 그들은 이미 관심 밖. 명수의 신경은 모조리 창현에게 쏠려 있었다.

그들의 야유를 손을 듬으로써 여유있게 제지한 창현이 명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묻는다.

“본인 곡들에 있는 가사와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많은데요?”

“제 피와 땀이 묻어있는 작품들을 집대성했습니다.”

자부심이 묻어나오는 명수의 말. 자신의 히트곡(?)들 가사를 짜깁기한 새로운 장르의 작품이었기에 그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흘러나온 창현의 말은 명수에게 있어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전혀 창의성이 보이지 않네요. 가사를 새로 짜는 걸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작사가의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 작품입니다. 아무래도 이걸 모두 지우고 새로 하는 걸 추천드리고 싶네요.”

연이어 터져나온 창현의 독설에 명수는 입을 쩍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당장 무어라 반박하고 싶지만 앞에 선 창현은 사석에 있을 때와 달리 무어라 항변할 여지조차 주지 않은 채 꽉 틀어쥔 채 몰아치고 있었다.

당연히 명수로서는 눈을 뜬 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새, 생각해보겠습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명수가 터덜터덜 자신의 진영으로 걸음을 옮기자, 무한도전 멤버들이 폭소를 터뜨리며 즐거워한다.

“푸하하! 쌤통이다!”

“저럴 줄 알았어. 설마 저게 통할 줄 알았나?”

그렇게 비웃음을 들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간 명수는 편하게 앉을 수조차 없었다.

그의 앞에는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는 수연이 자리하고 있던 것이다.

“그게 뭐에요?”

“뭐, 뭐가.”

“연습이 제대로 되지 않으셨잖아요. 설마 제가 꾸준히 연습하시라고 신신당부하던 걸 잊으신 건 아니죠?”

“그, 그게 그러니까…….”

집에서는 부인에게, 밖에서는 수연에게.

이것도 여난이라면 여난이리라.

아니, 시련인가?

안팎으로 여자들에게 치이는 비운의 남자, 그의 이름은 바로 무한도전의 2인자 박명수이리라.

우물쭈물하는 명수를 보며 입가에 미소 짓고 있던 재석이 수연에게 일러바친다.

“이해해주세요, 시카 양. 사실은 명수 형이 굵직한 행사를 몇 개 형수님 몰래 뛰어서 말입니다.”

“야!”

눈을 부릅뜨며 재석을 압박하려던 명수였지만 자신의 뒤통수에 작렬하는 스산한 기세에 몸을 움츠린다.

“잘하신 게 없으면서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시는 거예요.”

“미, 미안합니다.”

사과만이 살 길.

어느새 자신의 머리 꼭대기 위에 올라서 군림하는 수연에게 연신 사과에 사과를 거듭하는 명수였다.

“피나는 연습을 하셔야 해요. 안 그럼 저 더 이상 팀 안할 거예요!”

입술을 삐죽이며 고개를 홱하니 돌리는 그녀의 모습은 팬들이 보면 환장할 장면이었지만 당사자인 명수에게 있어서는 지옥의 야차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자신의 나이 반밖에 되지 않는 아이에게 이렇게 움츠러들다니!

순간 불쑥 솟아오른 반발심에 명수가 반란을 일으키려 했지만 수연은 그 타이밍을 정확하게 끊어버린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아, 알겠습니다.”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한 수연의 모습에 결국 백기를 들고 투항하는 명수였다.

그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무한도전 멤버들과 소녀시대 멤버들은 쑥덕쑥덕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래도 조만간 저 팀은 해산되겠는데?”

“해산이라기보다는 와해가 낫지 않을까요?”

“어쨌든 명수 형 팀은 제 구실을 하기 힘들겠어.”

그 소리를 들은 명수는 발끈했지만 수연과 시선을 마주치자 고개를 푹 숙인다.

재석은 명수가 당하는 모습을 고소해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그가 불쌍해 보일 정도로 몰리자, 황급히 진행을 하였다.

“그럼 오늘 중간 평가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셨고, 일주일 후, 여름 가요제에 최선의 기량을 발휘하도록 합시다.”

그 말을 끝으로 중간 평가는 모두 끝났다.

무한도전 멤버들과 소녀시대 멤버들은 명수와 수연의 팀이 와해 될 것이란 걸 의심하지 않은 채.

그러나 그들은 보지 못했다.

그 기색을 읽어 들인 수연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걸린 것을.

‘모든 건 계획대로.’

명수와 수연이 연기한 것은 누구도 모르고 있을 것이라.

그저 콩가루 팀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설거지 1년 면제권이 바야흐로 군웅할거 시대를 열어나가고 있었다.




제75장 여름 가요제




일주일이란 시간은 짧으면서도 길다.

마냥 아무 일도 없이 빈둥빈둥 보내려고 하면 무척 긴 시간이지만 무언가에 몰두하려면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너무나 짧게 느껴지는 법이다.

그것은 무한도전 멤버들 또한 마찬가지.

서로 경쟁 관계에 놓여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은 평상시 느꼈던 것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금 한 냥 때문인가?

적어도 무한도전 멤버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유부남에게는 유용한 비자금(?)으로, 총각에게는 유용한 용돈이 될 수 있는 금 한 냥은 포기하기 힘든 메리트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무한도전 멤버들은 금 한 냥 때문에 멤버들이 열심히 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더욱 더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 존재하고 있었다.

지금 이렇게 치열한 경쟁 상황이 된 것은 금 한 냥 때문이 아니다.

탐이 나기도 하지만 그들은 금 한 냥보다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인물들이었다.

금 한 냥을 위해 예능 프로그램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만들 사람이 아니란 뜻이다.

이것은 모두 소녀시대 멤버들로 인해 조장된 것이란 걸.

다만 그녀들 모두 뒤에서 암중배후의 역할을 하며 무한도전 멤버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설거지 1년 면제권으로 인해 비롯된 군웅할거 시대!

그녀들의 노력이 판가름 될 여름 가요제가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소녀시대 멤버들은 정기적으로 방을 한 번씩 바꾼다.

한 달에 한 번씩 바꾸기에는 너무 자주였고, 그렇다고 반년마다 한 번은 너무 적은 것 같아 그녀들은 세 달에 한 번씩 방을 바꿔 룸메이트를 바꾸고는 한다.

특정 멤버와 너무 친해져서 팀 내에 불화가 생기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덜 친한 멤버들간의 친목을 쌓게 하여 안팎으로 멤버들 모두 친하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소녀시대의 위대한 꼬꼬마 리더 태연 양의 룸메이트는 바로 순규 양이다.

팀 내에서 유일하게 150cm대 공기를 맛보고 있는 그녀들.

깔창의 힘과 소속사의 실드가 작용하여 프로필에는 160cm대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판타지 키를 지니게 되었지만 현실은 150cm대에 불과했다.

태연과 순규는 소녀시대 내에서 앙숙으로 통한다.

그도 그럴 것이 최단신 1,2위를 다투는 라이벌이었으니 화기애애한 이야기도 이내 키로 인해 불화가 불거져 티격태격하기가 일쑤였던 것이다.

하도 그러다 보니 이번 방 배치에서 멤버들은 두 사람으로 하여금 한 방을 쓰게 하였다. 거기에 플러스로 효연을 얹어 그녀들의 방은 단신 트리오가 쓰는 방이다.

데뷔 전부터 시작하여 데뷔 초기까지 키 문제로 티격태격하던 그녀들은 요즘 잠잠하다.

서로 키 문제로 싸우다 보니 상황이 제 살 깎아먹기식으로 돌입하여서 그렇다.

소녀시대 최단신은 순규로 알려져 있지만 본인은 절대 인정하지 않고 있기에 아직까지 최단신 문제가 불거지면 태연과 함께 파이트 모드에 돌입하고는 한다.

그러나 지금 보이는 상황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태연아, 한 번만 도와줘!”

룸메이트 효연이 전진과 함께 지옥 훈련에 돌입하기 위해 연습실로 향한 걸 확인한 순규는 곧장 작업을 개시하였다.

현재 방에는 고된 스케줄을 모처럼 끝나고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는 태연만 자리하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잔뜩 부은 얼굴로 뒹굴뒹굴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팬들이 경악스러워할 테지만 그녀들은 워낙 자주 본 모습이라 이젠 익숙하다 못해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는 지경이었다.

“뭔 소리야?”

배게를 잡고 휴식을 취한다는 기쁨에 몸을 구르고 있던 태연이 순규의 말에 반응한다.

그리고는 눈이 가늘어지며 순규를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너 좀 이상한데?”

그녀의 말마따나 순규의 모습은 이상하였다.

평소 순규라면 쉬는 시간에 컴퓨터를 키고 스타크래프트에 열중하고는 한다.

주변에서 아무도 말리지 않으면 한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무작정 달리는 순규였기에 몇몇 멤버들은 그녀가 프로게이머냐고 하면서 말릴 정도.

그렇게 게임을 거듭하는 순규가 컴퓨터를 키지도 않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니 태연으로서는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너 여름 가요제도 준비해야 하잖아?”

태연이 의문을 느끼는 것은 현재 여름 가요제를 위해 모든 멤버들이 밖으로 나가 있다는 점이다.

미영과 윤아는 스케줄 중이고, 다른 멤버들 모두 각자 파트너와 함께 여름 가요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실정인데 순규만 숙소에 있으니 태연으로서는 의문을 갖는 게 당연한 일이다.

순규도 준하와 함께 준비에 몰두할 시기가 아닌가.

의문이 가득한 태연의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순규는 꿋꿋하게 태연에게 부탁한다.

“너의 도움이 필요해!”

“무슨 도움이 필요한데 그러는 거야? 난 쉬고 싶어!”

모처럼만의 휴식을 허망하게 날려버릴 수 없는 노릇.

그녀의 부탁이 상당히 귀찮은 것이란 걸 감안한 태연이었기에 그녀는 먼저 거절하고 나섰다.

어차피 아쉬운 것은 순규였지, 자신이 아니었으니까.

급한 사람이 먼저 달려들기 마련이다.

순규의 표정이 급변하는 것을 본 태연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후후! 나보다 훨~~~~~씬 단신 순규 따위 다루는 건 일도 아니지.’

와룡 파니와 사마율로 이어지는 소녀시대 내 두 참모진에 비할 바는 못 되어도 리더로서 눈칫밥을 괜히 먹은 것이 아니었기에 때때로 멤버들을 다루는 기술은 보통이 아닌 태연이었다.

“아잉! 태연아! 도와주랑!”

츤츤(?)거리는 태연의 모습에 순규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후다닥 그녀에게 다가가 팔을 붙잡으며 부담 잔뜩 주는 애교를 시전 한다.

“힉! 저, 저리 가라고! 소, 소름 돋아!”

설마 순규가 이런 애교를 시전 할 줄 몰랐기에 태연은 경기를 일으키며 무의식적으로 Made In 전라도 전주 억양을 구사한다. 순규의 애교는 남자에게 있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만 자신에게 있어 그녀의 애교는 주먹을 부르는 애교에 지나지 않는다.

“들어줄 거야, 말 거야? 안 그럼 더욱 강력한 108콤보 애교를 시전 하겠어.”

츤츤거리던 태연의 페이스가 흐트러지자 순규가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태연을 바라보며 말한다.

감히 자신을 협박하려는 순규의 행동에 태연이 눈에 불똥을 일으키려 하자, 순규가 선수를 친다.

“참고로 108콤보 애교는 방금 전 것보다 더욱 강력해. 그리고 한단계씩 넘어갈 때마다 2배 이상 소름이 돋을 걸?”

“…….”

그야 말로 촌철살인이다.

언제 단신 순규가 108콤보 애교라는 무지막지한 기술을 습득했단 말인가.

‘큭! 모처럼만의 휴일인데… 일단 들어보는 거야. 들어보기만.’

들어주는 게 아니라 생각하면서 태연은 부스스한 얼굴을 한 채 순규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좋아, 일단 들어보기만 할게. 말해봐.”

“응! 이번에 말이지…….”

일단 이야기를 들어준다고 했지만 순규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자신이 걸 떡밥은 태연을 만족시키고도 남을 테니까.

그녀의 이야기는 간단한 것이었다.

바로 여름 가요제에서 자신의 파트너가 된 준하를 연습시키는데 태연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

순규의 말을 들은 태연은 단칼에 거절한다.

“내가 왜 해야 되는데? 아니, 설마 내가 공짜로 움직일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닐 테지?”

문득 자신이 순규를 너무 얕봤다는 생각에 슬그머니 요구조건을 이야기하는 태연.

“…….”

그 모습에 순규는 미간을 살며시 좁혔다.

그녀가 생각했던 태연의 반응과는 다소 다른 것이었던 것이다.

‘원래 태연이는 이렇게 이해타산이 밝은 애가 아니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순규는 자신이 내놓을 수 있는 패를 내놓는다.

“내가 네게 줄 수 있는 건 이거야. 설거지 1년 면제권에서 3달을 할당해줄게. 어때?”

눈을 빛내며 말하는 순규.

그 말에 태연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너무 적어.”

“적다고? 그럼 좀 더 늘려줄게. 4달!”

그녀 딴에는 제법 통을 크게 써서 4달이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태연은 그녀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자신이 급한 것이 아니라 순규가 급한 거 아닌가?

“최소한 8달은 되야지.”

“헉! 그건 너무 많아. 아, 알았어. 5달로 늘려줄게.”

“7달.”

“끙… 그럼 6달로 하자. 서로 가르치는 거니까 딱 반반씩 나누는 거야. 어때?”

과도한 태연의 조건에 순규가 이를 지그시 깨물며 말한다.

더 이상 몰아치면 거래가 불발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태연은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설거지 반년 면제는 그녀에게 있어 무척 큰 메리트였으니까.

“흐음!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 정도로 해두지, 뭐. 괜찮네.”

“좋아, 그럼 협상 성공이야.”

순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미소를 짓고 있다. 처음부터 태연이 반년 정도를 원할 것이란 걸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기에 자신의 페이스로 그녀를 끌어들이는데 성공하였다.

‘태연이를 끌어들이는데 이 정도 대가라면야 뭐…….’

설거지 면제권 반년을 획득한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손해는 없고, 그 대가로 태연이라는 강력한 아군을 얻게 되었다. 태연이 리더로서 다른 멤버들을 이끌며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기술도 늘었기에 그녀의 도움만 받는다면 2배의 효율을 낼 수 있으리라.

승리에 한 발짝 다가선 기분이었다.

‘처음부티 이게 계획이었어.’

중간 평가에서 딱 중간의 모습만 보여 그저 그렇게 보인 뒤 태연의 도움을 받아 단번에 전력 상승을 꾀하는 순규의 모습.

그녀가 스타크래프트에서 종종 쓰는 몰래 해처리 수법과 흡사한 수법이었다.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며 순규가 미소를 짓자, 태연 또한 마주 웃음을 짓는다.

“잠깐, 아직 한 가지 남은 게 있어.”

“뭔데?”

순규의 물음에 태연이 침대 아래에서 무언가를 뒤적거리더니 A4용지를 꺼내든다. 그리고 펜을 들어 A4용지에 무언가를 끄적끄적하더니 그것을 그대로 순규에게 내민다.

“이게 뭐…….”

A4용지에 적힌 것을 본 순규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태연이 내민 A4용지에 적힌 것은 그녀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던 것이다.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 그것.

그것은 ‘써니(본명 이순규)가 소녀시대의 위대한 리더 태연보다 키가 작다.’ 라고 쓰인 각서였다.

“서명하자, 이순규.”

씨익 미소를 지으며 태연이 음흉한(?) 표정을 짓는다.

“…….”

그 모습을 보면서 순규는 태연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태연을 설득하는데 성공한 순규는 곧장 그녀를 대동하고 연습실로 향했다.

참고로 각서에는 서명을 하지 않았다.

흉흉한 순규의 기세에 압도당한 나머지 태연은 장난을 접고 자진해서 각서를 찢어버렸다는 후일담이 전해지고 있었으니까.

연습실에서 홀로 묵묵히 연습을 하던 준하는 태연과 함께 순규가 등장하자 무척 기뻐하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태연은 소녀시대 내에서 인기 수위를 다투는 멤버였으니까.

또한 귀여운 외모로 나이 많은 층 사람들을 어필하고 있었고, 준하 또한 태연의 삼촌팬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도 잠시,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가자 준하의 입에서 곡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태연의 연습은 그야 말로 혹독함이라 표현하기에도 부족할 지경. 나중에 방송으로 방영되지 못할 만큼 혹독하고 처절하게 준하를 몰아붙였다.

그리고 순규가 옆에서 절묘하게 추임새를 넣어주니, 준하는 그야 말로 죽다 간신히 살아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녀의 스파르타식 훈련에 힘입어 준하의 실력은 하루하루 늘어나기 시작했고, 마침내 여름 가요제가 개최되는 날이 되었다.

여름 가요제는 올림픽 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리게 되었다.

이에 앞서 무한도전 제작진 측은 언론 매체를 통해 무한도전 여름 프로젝트인 여름 가요제에 대한 사실을 널리 알렸다.

총 3주분으로 구성된 여름 가요제 특집은 2008년 7월 19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3주간 방영이 되고, 여름 가요제 콘서트는 7월 17일에 개최된다.

그야 말로 이 사실이 알려지자 난리가 났다.

그도 그럴 것이 현이 직접 작곡한 곡을 무한도전 멤버들이 각각 작사를 하여 콘서트를 연다!

이미 두터운 매니아 층을 거느리고 있는 무한도전과 드라마로 인해 엄청난 팬 층을 쌓은 현의 조합은 무어라 감히 칭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폭발력을 지니고 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리기가 무섭게 언론 매체에서는 이 사실을 실어 나르기 시작했고, 온갖 추측성 기사가 도배됨으로써 얼마나 기대가 큰지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파급력을 확인시킨 것이 바로 티켓 판매였다.

중간 평가가 있던 7월 7일 언론 매체에 알린 무한도전 제작진 측은 7월 10일 오전 10시부터 티켓 판매를 시작하였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티켓 판매 시작이 될 무렵 사이트가 다운되기 시작하다가, 간신히 10시 정각에 맞춰 홈페이지를 오픈하였는데, 티켓이 판매되는 속도는 그야 말로 광속이었다.

채 1분도 되지 않아 티켓 전체가 매진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전액 불우이웃 돕기에 기부되며, 현 또한 모든 곡을 무료로 제공하였다는 말에 다크 스타와 블랙 큐트에서는 대대적인 서포터 역할을 하며 무한도전 제작진 측과 함께 하겠다는 의향을 밝히고 앨범 판매 준비에 착수하기 시작한다.

7월 17일은 목요일이라는, 아직 중고등학교는 방학을 하지 않는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티켓이 모두 판매되자 무한도전 제작진 측은 얼떨떨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현이 함께 하기에 티켓이 모두 판매될 것이라는 걸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뒤에 일어나는 엄청난 파급력은 미처 그들이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하였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이라고는…….”

무한도전의 담당 PD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또한 현의 파급력이 대단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야 말로 엄청난 파급력이 아닌가?

기사만 백 개가 넘게 올라갔으며, 잔여 기사들까지 합치면 그 배는 훌쩍 넘어간다.

그뿐인가?

콘서트 티켓이 순식간에 동이 나버리자 아직 콘서트를 개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앙코르 콘서트를 열자는 제안이 수두룩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거기에 현의 팬 사이트인 다크 스타와 블랙 큐트가 앨범을 구매하려는 의향을 보이니, 초두 물량으로 30만장을 찍어도 부족할 정도로 엄청난 주문이 쇄도하고 있는 중이었다.

“엄청난 인물이네. 정말로 엄청나.”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다.

초두 물량 10만장을 예상하고 일을 추진했는데 벌써 그것에 3배에 달하는 물량 판매가 확실시 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만약 여기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만 보이면 앙코르 콘서트를 열어도 되겠는 걸?”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현의 곡들은.

무한도전 멤버들의 땀과 현의 혼이 녹아있는 곡이라면 여태까지 누구도 달성하지 못했던 엄청난 금액을 모으는 것이 가능하다 생각되었다.

모든 것이 무한도전의 이름으로 해결될 거란 생각에 PD는 벌써부터 몸이 부르르 떨려오고 있었다.


이와 같이 폭발적인 반응은 무한도전 멤버들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바였다.

PD와 마찬가지로 현의 파급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직접 몸으로 겪어본 적이 없기에 얼마나 대단한지 가늠할 수가 없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그 파워가 발휘되는 것을 보자, 무한도전 멤버들은 새삼 현이라는 네임벨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간단한 소감 인터뷰를 위해 스튜디오에 모였다가 대기실로 향한 그들은 그 부분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엄청난데?”

순수한 재석의 감격. 창현의 팬 미팅 MC를 보았기에 그의 네임벨류가 주는 파워를 어렴풋 알고 있었지만 직접 겪게 되자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었다.

“역시 세계 1위라는 타이틀은 엄청나군. 이거 마음만 먹으면 돈을 갈퀴로 쓸어 담는 것도 가능하잖아?”

돈 냄새를 잘 맡는 명수 옹이 눈을 번뜩이며 감탄사를 흘린다.

그의 말마따나 마음만 먹으면 사람들의 돈을 긁어모으는 것은 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당장 벌어들이는 액수만 해도 가뿐히 억대를 넘어서고 있었으니까.

“현이가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 거잖아요.”

옆에 앉아있던 형돈의 말에 명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에게 핀잔을 날린다.

“넌 바보냐? 현은 단기간에 뽑아먹는 이미지가 아니야. 이대로 쭉 롱런을 한다는 거지. 게다가 돈은 이미 쓸어 담고 있는 중이고. 앞으로 얼마나 더 긁어모을지 상상도 하기가 힘들지만.”

“철저한 고급화 전력이니 그렇죠. 아직 나이도 어리니까 성인이 되면 얼마나 더 대단해질지… 후와! 정말 대단한 사람하고 알고 있는 거네요.”

나이가 어려 마냥 동생으로 느껴졌지만 새삼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어쨌든 티켓이 모두 팔렸다니 우리로서는 좋은 거야. 각자 연습한 것을 최대한 발휘해서 멋진 무대를 보이도록 하자. 좋은 일을 하는 거니까, 힘을 내도록 하고. 알겠지?”

“물론입니다!”

재석의 격려에 고개를 끄덕이며 전의를 다지는 무한도전 멤버들이었다.

결연한 표정으로 의지를 다지는 그들의 대기실에 노크소리가 들려오더니,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바로 최종 평가에 앞서 인터뷰를 위해 스튜디오에 들린 창현이었다.

그는 대기실에 빼꼼 고개를 들이밀더니 안으로 들어서며 미소를 짓는다.

“괜찮아 보이네요?”

전에는 몰랐지만 다가오는 그의 뒤에서 찬란한 광휘가 발산되는 듯한 착각이 느껴졌다.

무한도전 멤버들은 고개를 뒤로 물리며 양손으로 눈을 가린다.

“우와아앗! 빛이 나서 눈이 부신다!”

“…갑자기 왜 그러시는 거예요?”

어이가 없는 그들의 리액션에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묻는 창현.

그 물음에 명수가 씨익 웃음을 짓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창현에게 다가가 어깨 동무를 하며 말한다.

“왜 이러긴. 자랑스러운 현과 아는 사이가 되어서 그렇지!”

“…명수 형이 이럴 분이 아닌데?”

짧은 시간이지만 명수의 성격을 너무나 잘 파악한 창현이었다.

눈을 살짝 가늘게 뜨는 창현의 모습에 명수가 움찔하자 재석이 일러바친다.

“명수 형은 지금 창현이 네가 엄청난 사람이라는 걸 뒤늦게 깨닫고서 친한 척하는 거지. 조심하도록 해. 잘못하면 창현이 너 이상한 치킨 광고 찍을지도 몰라.”

“넌 입 좀 다물어! 하나도 도움이 되는 게 없어! 저 녀석이 왜 국민 MC인 거야!”

이미 사전에 계획이 있던 것인지 명수는 버럭 소리를 지른다. 재석의 말마따나 은근슬쩍 꼬드겨서 CF 계약을 강제 체결(?)하려던 속셈이 있는 듯하였다.

버럭 소리 지르는 명수의 모습에 재석은 피식 미소를 지었고, 창현 또한 웃음을 지었다.

“이러지 말고, 우리 계약이나 합시다. 최상의 대우를 아끼지 않을 테니 앞으로 내 앨범을 책임져주는 걸로!”

전날에는 강제적인 계약을 추진했지만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차린 이상 명수도 함부로 행동하기가 어려웠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명수의 기질이 그대로 발휘된 것이다.

여기서 강한 건 주먹이 강한 것도 있지만 상대방의 인기도 그 척도가 된다.

한동안 잠잠하던 명수가 다시 앨범 타령을 하며 계약을 종용하자 창현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하하! 그것만큼은 좀 참아주시길.”

“형은 왜 자꾸 창현이한테 부담을 주려 해. 어쨌거나 창현아, 고맙다. 네 곡 때문에 엄청난 관심을 받고 이번 프로젝트도 대 성공으로 끝날 수 있을 것 같아.”

재석의 말에 창현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뭘요, 좋은 일에 쓰인다니 다행인 거죠.”

“아니, 누가 네 나이에 그런 걸 쉽게 생각하겠어. 정말 대단한 거야.”

“맞아맞아. 쉽게 생각하지 말라고.”

다른 무한도전 멤버들도 추임새를 넣으며 창현을 띄워준다.

그것이 결코 기분 나쁘지 않았지만 칭찬이 과하면 오히려 독이 되는 법.

특히나 다른 사람의 쓴소리를 많이 듣지 않는 창현의 입장에서 칭찬은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선 창현이 미소를 지은 채 무한도전 멤버들을 둘러보며 말한다.

“그나저나 잘하실 수 있겠죠? 곡에 대한 제 자부심은 남다른 거라서, 중간 평가 때처럼 하시면 안 되요.”

그러면서 창현이 몇몇 멤버들에게 시선을 주자, 모두 움찔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짓는다.

“걱정하지 마, 최고의 무대를 보여줄 테니까.”

“형은 원래 믿고 있죠. 다만 다른 분이 걱정될 뿐.”

전진의 말에 대꾸한 창현이 명수를 빤히 바라본다.

그 시선에 인상을 찌푸린 명수가 말한다.

“걱정하지 말도록. 인세에 둘도 없을 샤우팅한 무대를 보여줄 테니.”

명수의 말에 무한도전 멤버들이 야유를 터뜨린다.

“저 형은 촬영이 아닌데도 무리수를 둬.”

“그 말을 들으면 현이가 믿을 거 같나?”

움찔한 명수가 뒤로 물러서고, 재석이 그 자리를 차지하며 말한다.

“우릴 봐. 모두 잘할 수밖에 없다니까.”

“…과연, 형 말대로에요.”

재석의 말에 창현의 시선이 무한도전 멤버들에게 향하며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고,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해버렸다.

무한도전 멤버들의 눈에는 과도한 연습의 영향으로 모두 다크 서클이 깊게 내려앉아 있었다.

누구 때문일까?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연습을 열심히 했나보네.’

창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내막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보다 대단한 콘서트가 열릴 것 같았다.


소녀시대는 오늘 특별 게스트로 참여한다.

본래 방송에 참여할 계획이 없었지만 AA엔터테인먼트에서 촉박한 현의 일정을 고려하여 SM엔터테인먼트에 협력 요청을 한 것이다.

처음 요청한 것은 슈퍼주니어였으나 그들은 한창 해외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대신 선택된 것이 소녀시대였다.

시간이 부족한 현의 도우미 역할을 함과 동시에 각각 한 명씩 무한도전 멤버들에게 붙어 조언을 해주기로 한 셈이다.

그 결과 오늘 열리게 될 무한도전 여름 가요제 오프닝을 맡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아침 일찍 콘서트 장에 도착한 그녀들은 한차례 리허설 무대를 갖고 본격적으로 의상으로 갈아입고 화장을 하기 시작한다.

“…….”

여태까지 소녀시대 대기실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무거운 침묵이었다.

그녀들은 서로간에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까닭은 간단했다.

바로 이번 여름 가요제에 걸려있는 설거지 1년 면제권 때문이다.

주부들, 그리고 자취하는 사람들만 알 것이다.

한 사람이 아홉 명분을 설거지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고된 노동인지.

뭇 대중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아이돌이건만 그녀들은 9일마다 한 번씩 양손에 고무장갑을 무장한 채 수세미를 쥐고 그릇을 벅벅 닦아야 하는 운명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다.

설거지가 얼마나 고된지 깨닫고 있었기에 그녀들은 모두 설거지 면제권을 따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고, 그 신경전은 내내 이어져 리허설 무대를 하고 지금까지 제대로 된 대화 한 마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로 인해 무한도전에 참가하지 않는 태연-써니 외에는 아직 태연이 참여한 것을 모른다.-과 미영, 윤아는 살벌한 분위기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당혹감을 느끼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워크가 깨지지 않는 걸 보면 그것도 참 대단하다 여겨진다.

“후우!”

숨 막히는 무거운 공기가 공간을 지배한 가운데 한 사람이 한숨을 푹 내쉰다.

모두가 잔뜩 긴장하여 제대로 된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 한숨은 큰 소리를 내며 소녀들의 귓가를 울렸다.

소녀들의 시선이 한숨을 쉰 주인공에게 향했다.

분위기 반전이 필요했기에 태연은 한숨을 내쉰 장본인에게 말을 건다.

“왜 그래, 써니야?”

“그냥… 좀 좋지 않아서…….”

순규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날씨로 치면 먹구름이 잔뜩 낀 것 같다랄까? 워낙 표정이 흐릿하여 보는 사람도 영향을 받을 정도였다.

“뭔데 그래? 고민이 있으면 털어놓아야 함께 고민해주지. 말해봐. 이 리더님께서 듣고 시기적절한 조언을 해주겠음!”

의젓해보이려는 듯 어깨를 쭉 피는 태연의 모습에 순규가 피식 웃는다.

자신보다 키가 작은 주제에-어디까지나 순규의 관점-어른처럼 보이려고 하는 행동이라니.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믿음직스러웠기에 순규가 입을 연다.

“그냥… 준하 오빠가 걱정되서.”

“…….”

순규의 입에서 준하가 언급되자 다른 소녀들의 귀가 쫑긋한다.

준하는 다름 아닌 이번 여름 가요제 순규의 파트너였다.

태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준하 오빠가 왜?”

“연습을 할 때 준하 오빠가 영 따라오지 못해서. 솔직히 안무도 완성하지 못했거든. 그런데도 준하 오빠는 한사코 괜찮다고 하니… 하아! 오늘 무대가 어떻게 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해. 만약 준하 오빠가 무대 망치면 난…….”

순규의 표정이 다시 흐릿하게 변해간다.

그녀의 얼굴을 날씨로 치면 지금 장대비가 내리고 강렬한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으리라.

그 말을 들은 태연이 순간 흠칫했지만 그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신의 반응을 누구도 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태연은 순규의 말에 맞장구치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잖아? 지금 와서 더 잘하게 하는 건 어려운 일이고. 그냥 준하 오빠를 믿는 게 최선이지 않겠어?”

“탱구 넌 준하 오빠를 신뢰할 수 있어?”

“…….”

준하에게 미안하지만 신뢰는 할 수 없었다.

바보스러운 면이 있었기에 무언가 일을 믿고 맡기기에는 상당한 무리수가 따랐으니까.

태연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리자 순규는 다시 한 번 한숨을 푹 내쉬며 침울한 표정을 짓는다.

그 표정을 보며 여름 가요제에 참가하는 소녀들이 눈을 빛낸다.

‘좋아, 그럼 써니는 탈락.’

‘경쟁자 하나가 줄어들었어! 이제 남은 건…….’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려는 것을 억지로 참아낸다.

중간 평가 때 그렇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무대를 선보인 준하였는데 그것이 한계인 듯했다.

그렇다는 건 자신들에게 기회가 왔다는 뜻이기에 소녀들의 얼굴은 무척 밝아졌다.

표정을 관리해도 보이는 사람에게는 보이는 법이다.

경쟁 관계가 아닌 관전에 가까운 입장이었기에 태연은 멤버들의 어깨가 순간 흠칫 떨리며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걸리다가 사라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소녀시대의 리더 태연은 그 광경을 똑똑히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무서운 것.’

그녀가 무섭다 생각한 것은 다름 아닌 순규였다.

그렇다, 지금 그녀가 한 행동은 모두 뻥이었던 것이다.

준하가 안무를 외우지 못했다고? 거짓이다. 순규를 필두로 태연의 보좌에 의해 준하는 대한민국 주입식 교육처럼 그녀들이 짠 안무를 모조리 머릿속에 주입시켰고, 속성 보컬 트레이닝을 통하여 노래의 테마를 살리는데 모든 주력을 기울였다.

불량학생 준하는 그 진도를 당연히 따라오지 못했지만 반복 학습에 강자 없는 법이다.

될 때까지 무한 반복으로 채근에 채근을 거듭하니, 마침내 준하는 그녀들이 원하는 수준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순규는 거짓 정보를 흘려 멤버들을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태연은 힐끗 순규를 바라본다.

흐릿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잘 살피면 순규의 입 꼬리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각자의 생각에 빠져든 지금 다른 멤버들이 그 모습을 볼 리 만무했다.

즉, 완벽하게 순규의 한탄에 넘어간 것이다.

‘만약 이걸 다른 경우에도 써먹으면?’

상상해본다. 순규가 저 거짓말을 다르게 활용하여 창현에게 거짓을 고한다면?

어설픈 자신에게도 넘어간 창현이라면 순규의 저 앙큼한 행동에도 반드시 넘어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태연은 순간 주먹을 불끈 쥔다.

‘그건 안 돼.’

어떻게 다 당겨놓은 상황인데!

한순간 그것이 무효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자 태연은 심각한 위기감을 느꼈다.

그러다 이내 피식 웃음을 짓는다.

‘어차피 순규는 창현이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자신의 헛된 기우라 생각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태연이었다. 순규가 저렇게 해서 멤버들을 속아넘긴 건 자신에게도 유리한 일이었으니까.

순간 숙여졌던 순규가 슬쩍 자신을 바라보는 걸 느낀 태연이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어준다.

‘나이스, 순규.’

‘이 정도는 기본이지.’

미영과 유리처럼 허를 찌르는 책략은 구사하지 못하지만 이런 간단한 트릭만으로도 눈을 가리는 것은 간단하다.

이것은 속이고 속이는 무한경쟁이었으니까.

즉, Free For All인 셈이다.

단 한 사람만이 살아남는 이 무한경쟁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순규가 암묵적으로 탈락 확정이 된 가운데, 태연은 완벽한 트릭의 완성을 위해 박수를 짝짝 친다.

“자자, 우리 암울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좀 더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어보자.”

그러면서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니, 서서히 평소 분위기를 회복하는데 성공한다.

그녀들의 이야기 주제는 당연히 창현에 관련된 것이었다.

숙소에서 곧잘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하고는 하기에 그녀들은 이번 콘서트가 얼마나 대단한 여파를 끼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창현이 참 대단한 것 같지 않아?”

“그러게 채 1분도 되지 않아서 모조리 매진이라니.”

“놀라운 건 그것뿐만이 아냐. 이번 앨범 최소 판매량이 30만 장이라던데?”

“완전 동방신기 오빠들 급이네. 와우!”

“사실 창현이 네임벨류에 그 정도면 조금 부족하지. 그래도 노래를 부른 게 가수도 아닌데 엄청난 것 같아.”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들은 30만 장이라는 숫자에 눈이 돌아버린 효연의 말에 화제가 슬그머니 바뀐다.

“그 정도면 얼마나 될까?”

“몇 억은 되지 않을까?”

“이럴 때면 창현이한테 돈은 의미가 없는 것 같아. 내는 족족 이런 성과라니… 정말 부럽고 대단하다.”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니, 스태프가 대기실에 노크를 한 뒤 들어와 말한다.

“소녀시대 준비해주세요.”

마침내 무한도전 여름 가요제 콘서트가 시작할 때가 된 것이다.


콘서트 장소로 사용되고 있는 올림픽 체조경기장은 만원이었다.

총 수용 인원 1만 5천명을 가득 채운 무한도전 여름 가요제 콘서트는 무한도전 파급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현의 파급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자리였다.

서서히 콘서트 시작 시간이 되어 감에 따라, 체조경기장 앞에 사람이 가득 자리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입장하게 되자, 순식간에 좌석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콘서트 시작 시간이 다 되어가자 무한도전 멤버는 무대 위에 서기 위해 움직인다.

그러다 홍철은 좌석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경악성을 터뜨렸다.

“헉! 형님, 저 사람들이 전부 우리 콘서트를 보려고 온 사람인가요?”

“그, 그렇겠지? 태호가 많다고 하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재석 또한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그 또한 사람이 많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 숫자일 줄은 몰랐다.

올림픽 체조경기장 수용인원을 모조리 채워버린 것 같지 않은가.

“이렇게 많이 오다니…….”

모두가 경악하고 있었고, 그나마 아이돌 신화로 활동하면서 이런 무대 위에 곧잘 서본 전진만이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놀라움에 빠져 있을 때, 도대체 얼마나 되는 사람이 왔을까 궁금해 하던 형돈이 스태프에게 다가가 물어보니, 대답을 듣고 경악성을 터뜨린다.

“헉! 그, 그러니까 지금 15,000명이 왔다고요?”

스태프의 말에 의하면 제대로 집계가 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란다. 설마 콘서트장에 사람이 이렇게 많이 올 것이라고는 예측 못했기에 사전 준비가 많이 부족했다는 것이 스태프의 말이었다.

형돈의 외침이 귀에 들어오자, 무한도전 멤버들이 몸을 흠칫 떤다.

“엄청나게 많네.”

“이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갑자기 엄청난 무게를 지닌 부담감이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껏해야 수백 명, 많아봤자 천 명 안팎이라 생각했었다.

결코 15,0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일 것이라 그들은 생각하지 못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하다니.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재석이었다.

“힘을 내야지. 모두 최고의 무대를 펼치기 위해 피나는 연습을 했잖아?”

멤버들을 둘러보며 말을 하는 재석의 모습은 의젓해보였지만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형…….”

“재석아…….”

안타까운 재석의 모습에 무한도전 멤버들의 표정이 애잔하게 변한다. 그 또한 떨리고 있을 텐데, 아니, 지금 누구보다 떨고 있을 사람이 바로 그였다. 하지만 메인 MC라는 것이 그를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한다.

갑자기 눈에 총기가 맴돌고 힘이 불끈 솟아 오른다.

그들의 기색을 알아차린 재석이 한 마디 덧붙인다.

의욕을 더욱 불질러줄 한마디.

“게다가 알잖아? 같이 하는 소녀시대 애들…….”

“……!”

얼굴색이 파리하게 변하는 무한도전 멤버들이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표정이 급변하기 시작하는 것일까.

순간 몇몇 멤버들은 창백하게 질린 채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신음을 흘리기 시작한다.

“으으, 만약에 1등을 못하면…….”

“난 1등을 해야만 해. 1등을 하지 못하면 나는 살아갈 가치가 없어…….”

마약하다 금단 증상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손을 부들부들 떨며 동공이 풀려버리는 멤버들. 몇몇 멤버들의 눈에는 더욱 의욕이 솟아났지만 몇몇 멤버들은 극심한 금단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연습 기간에 무슨 일을 겪었기에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란 말인가?

재석은 부들부들 떨고 있는 멤버들을 보며 자신은 저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저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반드시 최고의 무대를 보여주도록 하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멤버들을 격려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런 훈훈한 말도 한 마디 외침에 산산이 깨져버리고 말았다.

“최고의 무대 따위는 필요 없어!”

버럭 외치는 사람을 보니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명수였다.

그는 다른 멤버들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알 수 있었다. 그의 다리는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본인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극도의 두려움(?)을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명수는 무한도전 멤버들을 둘러보며 으르렁거린다.

“최고의 무대는 신경 쓰지 않아. 내 목표는 오로지 1등이야. 그걸 막는 녀석들은 용서하지 않겠어.”

살기가 흉흉한 명수의 모습은 여태까지 보여주었던 것과 전혀 다를 지경이었다.

그가 발산하는 전의 때문일까.

다른 무한도전 멤버들의 눈에도 흉흉한 기세가 서리기 시작한다.

그들 또한 절대로 질 수 없는 이유가 존재하고 있었다.

“지지 않을 거야.”

“나도 질 수 없어.”

살벌한 기세가 요동치기 시작하자, 분위기를 한 층 업 시키려던 재석도 더 이상 얌전하게 있을 수 없었다.

그 또한 1위를 할 수밖에 없는 절실한 이유가 존재했다.

“좋아! 이렇게 된 거, 나도 속내를 감추지 않고 1등을 위해 모든 능력을 발휘하겠어. 명수 형, 봐주지 않을 테니 각오하도록 해.”

“1등은 내 것이야.”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 뒤에 드러난 환영.

보통이라면 용과 호랑이였을 테지만.

벼멸구와 메뚜기가 으르렁거리는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었다.


웅성웅성.

콘서트 시작 시간이 가까워 옴에 따라 올림픽 체조경기장은 점점 들뜬 기색이 서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마침내 콘서트 시작 시간이 딱 되자, 관객석에 켜진 불이 꺼진다.

칠흑 같은 어둠이 자리하자, 웅성거림에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무대 위로 뚜벅뚜벅 걸음 소리가 들려오자 사람들은 웅성거림을 멈춘 채 일제히 보이지 않는 무대 위로 시선을 고정한다.

잠시 후, 걸음 소리가 멈추고 한순간 무대 위가 환하게 밝아지며 폭죽 소리가 터져나온다.

퍼벙! 펑! 펑!

그와 함께 쏟아지는 함성 소리.

와아아아아아아아!

거센 함성 소리가 체조경기장 전체를 울릴 듯 우렁우렁 울려퍼지고 있었다.

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무한도전의 메인MC인 재석이었다.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마이크를 든 채 서 있었고, 관객들의 함성 소리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제 신색을 회복하며 정중하게 인사한다.

“이렇게 저희 무한도전 여름 가요제 콘서트를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무한도전의 메인 MC와 1인자를 맡고 있는 유재석입니다.”

우와아아아!

짝짝짝짝짝!

재석의 소개에 다시 한 번 터져 나오는 함성 소리와 박수 소리.

열렬한 환영에 재석은 입가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하하! 제가 카메라 울렁증이 있는데 이렇게 사람들 많은 곳에서도 울렁증을 느끼나 보네요. 이곳까지 찾아와주신 시청자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해드리며 저희 무한도전 멤버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힘찬 함성과 박수로 맞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와 주세요.”

그 말과 함께 조명이 무한도전 멤버들이 자리한 곳을 비추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한 사람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럴 때마다 터져 나오는 박수 소리와 함성 소리.

무대 위에 모두 올라오자, 재석이 눈짓을 하고, 그들은 열 손가락을 쭉 피며 수인사를 한다.

“무한~ 도전!”

단 한 사람만 빼놓고.

“무, 무한도전.”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얼떨떨한 모양인지 그만 타이밍을 놓친 명수가 한 박자 늦게 무한도전을 외친 것이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얼떨떨해하는 명수의 모습은 웃음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명수 형이 오늘 잔뜩 긴장해서요. 실수를 하더라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부드럽게 감싸주는 재석에 반해 홍철은 직설적으로 말한다.

“원래 나이가 들면 적응력이 떨어지니 이해해주세요!”

“누가 나이가 들어!”

“그 정도면 충분히 나이가 든 거예요, 형님.”

“…말을 말아야지. 넌 오늘 가요제에서 압도적인 기량 차이를 느낄 줄 알아라.”

평소와 달리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며 후일을 기약하는 명수. 후일을 기약하는 모양새가 평소와 같았지만 그 기세만큼은 심상치가 않았다.

“오늘 명수 형의 기세가 심상치가 않네요. 그렇게 제시카 양하고 티격태격하더니 조금 온순해진 건가?”

제시카라는 단어를 듣자 명수의 몸이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한다. 그에게 있어 ‘제시카’라는 단어는 금지어였던 것이다.

몸에 경기를 일으킨 명수가 재석의 입을 막으며 말한다.

“걔 이야기는 하지 마! 소름 돋잖아!”

“아, 지금 제시카 양이 보고 있는데 그런 반응을 보이셔도 되나요?”

그 말에 흠칫 몸을 떠는 명수. 그러면서 주변을 휘휘 둘러보더니 은근한 어조로 재석에게 묻는다.

“아… 이거 보면 어떻게 하지? 봐, 봤을까?”

“그, 글쎄요?”

예상 이상의 반응을 보이기에 재석도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 모습에 관객들은 그저 웃음을 터뜨릴 뿐.

당사자가 아니면 모르는 무서운 진실이 숨어 있으리라.

그렇게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 이번 여름 가요제에 대한 소감과 곡에 대한 간략한 홍보, 그리고 만담을 나누며 30여분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본격적인 여름 가요제 시작을 위해 재석이 진행을 하기 시작한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여름 가요제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름 가요제에서 저희들의 순위를 매겨주실 분은 딱 한 분입니다. 바로 저희들의 곡을 만들어주신 분이자 대한민국의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리신 그분! 다 같이 불러볼까요?”

재석의 진행에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경기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혀어어어언!

퍼벙! 펑!

관객의 외침과 함께 폭죽이 터지며 요란한 폭음이 울려 퍼진다.

그와 함께 조명이 한 곳을 비추기 시작했고, 서서히 한 사람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곳에는 정장을 빼어나게 차려입은 창현이 자리에 서 있었다.


와아! 와아아아!

함성은 끊이지 않고 있었다.

사실 이곳에 모인 대다수의 사람들은 현의 팬이라 해도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무한도전이 낳은 시너지 효과와 현의 팬들의 참여가 이루어진 엄청난 효과.

바로 지금 올림픽 체조경기장에 모인 15,000명의 관객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으며, 앨범 선주문 물량이 30만 장이라는 것이 두 번째 증명이다.

그야 말로 현 효과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마이크를 든 채 저벅저벅 걸음을 옮긴 창현이 무한도전 멤버들이 서 있는 곳을 향해 선다.

178cm까지 큰 그의 키는 더 이상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크게 보이고 있었다.

창현이 무언가 말을 하기 위해 마이크를 들자 경기장은 삽시간에 침묵에 빠져든다.

한국에 와서 단 한 번도 콘서트를 열지 않은 그였기에 지금 이 무대는 마치 그의 콘서트인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지은 그의 모습이 대형 스크린에 그대로 잡히고 있었고, 몇몇 관객들은 솟아오르는 감정을 참아내지 못한 채 꺄~ 하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와아아아아!

꺄아아아아!

단지 인사만 했을 뿐인데 엄청난 환호가 퍼져 나간다.

좀처럼 가라앉지 않을 환호성이었지만 창현이 무언가 말을 하려 하자 거짓말처럼 뚝 끊긴다.

마치 한편의 마법을 보는 듯한 느낌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되어 기분이 무척 좋네요. 국민 예능 프로그램이라 불리는 무한도전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고, 함께 촬영하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얼마 후면 방영되겠지만 무한도전 멤버분들이 정말 열심히 연습을 했거든요. 오늘 그 결실을 봐주시고 환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창현의 말을 들은 무한도전 멤버들은 순간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바로 자신들의 고생을 알아주는 그의 말 때문이다.

그의 말 그대로다.

자신들이 그간 얼마나 많은 구박과 핍박(?)을 받으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던가!

어느 특정 멤버는 1위를 하지 못하면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지 못하는 것이라 주입식 세뇌(?)를 시도하였으며, 어떤 멤버는 옴짝달싹 못하게 그물을 쳐놓고 마음껏 몰아넣기를 시전 하였다.

그로 인해 마음은 피폐해졌고, 자신의 본분을 잊은 채 오로지 자신의 곡을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태어난 기계가 되어버렸다.

그것을 창현이 알아주는 듯하니 그들로서는 감격할 수밖에 없다.

현재 그들의 목적은 금 한 냥보다 1위를 하는 것이다.

1위를 하는 것이야 말로 자신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할 지상 과제가 되어버린 셈이니까.

말을 할 때마다 연신 환호성이 끊이지 않기에 자칫 주객이 전도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창현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말한다.

“그럼 저는 잠시 후에 다시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무한도전 멤버분들이니까요. 잠시 후 심사총평 때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고개를 살짝 숙인 창현이 곧장 무대 뒤로 퇴장한다.

그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짧고 굵은 것이 무엇인지 그 스스로 제대로 보여준 셈이다.

“자, 그럼 본격적인 무한도전 여름 가요제 콘서트를 시작하겠습니다. 저희 여섯 명이 그간 준비한 노래와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심사위원이신 현 씨에게 평가를 받고 순위를 판가름합니다. 공정성을 위해 지금부터 순서를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창현이 사라지고 어수선해지려는 분위기를 재빨리 다잡는 재석.

최대한 공정하게 노래를 하기 위해 순서까지 지금 자체적으로 선발하겠다는 이야기였다.

그의 말과 함께 본격적인 순위 선발이 시작되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순서를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재석의 말이 이어지고 자리한 것은 네모난 상자였다. 위에는 둥근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안에는 각각 순서가 적힌 종이가 들어 있었다.

가장 간단한 제비뽑기를 하려는 셈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나이 순서대로?”

“그럼 제가 제일 불리하잖습니까, 형님.”

“전 막내에요.”

두 번째로 나이가 어린 홍철이 이의를 제기했다. 그리고 막내인 전진 또한 불만을 제기하자 다른 방법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결국 정해진 것은 가위바위보였다.

무한도전 멤버들의 눈이 전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들의 공통적인 생각은 단 하나였다.

‘1번만은 뽑으면 안 돼.’

무대에서 가장 불리한 것이 바로 1번이다. 가장 처음으로 하기에 얼핏 보면 가장 큰 임팩트를 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가장 먼저 하기에 뒤이어 강렬한 퍼포먼스가 펼쳐지면 앞에 것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무한도전 멤버들은 모두 1번만큼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눈에 전의가 깃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순간 이것이 방송이고, 콘서트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모두가 결연한 표정을 지은 가운데, 마침내 죽음의 가위 바위 보가 시작되었다.

복불복이지만 1번을 피하기 위해서는 순서가 앞이면 앞일수록 좋다.

“가위~ 바위~ 보!”

순간 대형 스크린에 드러나는 여섯 개의 손.

삼 대 삼이었다.

주먹 세 개, 가위 세 개.

가위를 낸 자들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주먹을 낸 자들의 얼굴에 환희가 깃들기 시작했다.

“이겼다아!”

“아악! 안 돼! 졌어!”

가위 바위 보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그들의 모습을 사람들은 즐겁게 바라보고 있었다. 무한도전 멤버들은 행동 하나하나로 웃음을 줄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 상태다.

첫 승자는 명수와 재석, 형돈이었고, 가위를 내서 패배한 자는 준하와 홍철, 전진이었다.

순위가 뒤로 밀렸다는 것은 그만큼 1번을 뽑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 앞에서 1번을 뽑아준다면 좋지만 복불복을 기대하기에는 세상사 운빨이라는 것을 맛보기에 너무나 힘이 든다.

“여기에서 1위, 2위, 3위가 갈리는 겁니다.”

메인 MC인 재석조차 지금 이게 예능인지 뭔지를 잊은 채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유독 사근사근 대해주는 유리는 점점 콘서트 날짜가 다가옴에 따라 차근차근 재석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그 또한 절대로 질 수 없었다.

명수 또한 그간 얼마나 수연에게 갈굼을 당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였고, 형돈 또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자신을 압박하던 수영의 모습이 떠올랐기에 반드시 이겨야 하는 굳건한 결의가 드러나 있었다.

“가위~ 바위~ 보!”

한차례 시선을 교환한 그들은 마치 서로의 생각을 읽은 듯 모두 주먹을 내고 있었다.

보는 사람이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가위 바위 보로 엄청난 긴장감을 심어주는 세 사람.

모두 주먹을 내자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기회가 생겼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승부다!”

그 말과 함께 세 사람이 다시 가위 바위 보를 한다.

번개처럼 뻗어지는 세 손!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허공을 가르는 그들의 손은 순간 복잡한 연산과 공식을 거쳐 제곱 단위로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 상단전이 열려 백회혈로 하늘과 소통하여 용천혈의 지력을 받아들이는 천지합일의 경지에 도달하는 듯하더니 그 깨달음과 정수를 그대로 손으로 펼쳐낸다.

한마디로 대충 감으로 펼쳐냈다는 뜻이다.

그리고 드러난 결과.

두 개의 가위와 하나의 주먹은 승자가 가려졌다는 걸 뜻했다.

승자는 얼굴에 환희가 깃들며 양손을 번쩍 들며 포효를 터뜨린다.

“이겼다아아아아!”

가위 바위 보 승자는 다름 아닌 형돈이었던 것이다.

주먹을 불끈 쥔 채 승리자의 기쁨을 토해내는 형돈.

그 사이 다른 그룹에서도 치열한 가위 바위 보 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얼떨떨한 기색으로 가위 바위 보를 내버려 4등이 되어버린 준하, 그리고 홍철과 전진이 꼴찌가 되기 위해 치열한 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꼴등이 되어버리면 앞에 어느 사람이 1번을 뽑을 확률이 높으니까.

1번을 뽑지 않기 위해서는 제일 처음이나 제일 마지막이 유리하다.

결국 홍철이 전진에게 패배하여 꼴등이 되는 영광을 맛보았다.

“그럼 뽑도록 하겠습니다.”

형돈은 1/6이라는 확률에 걸려들 확률이 없다 생각하며 당당하게 앞으로 나섰다.

누가 생각해도 그렇지 않은가. 16.7%의 확률이 설마 자신에게 적용될 것이라고.

입가에 여유만만한 미소를 지은 채 형돈이 상자에 손을 넣는다. 그리고 멤버들의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을 즐기듯 바라보며 서서히 종이 한 장을 뽑아든다.

“……!”

그리고 상자 밖에 드러난 종이를 보는 순간 형돈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종이 사이로 검은색 긴 선 하나가 보였던 것이다.

당황한 표정을 지은 형돈.

그는 재빨리 종이를 상자 안에 넣으려 하였다.

그러나 그 행동을 가만히 보고 있을 멤버들이 아니었다.

“너 그러는 거 아니야!”

“안에 넣으면 형이 1번이에요!”

그들은 재빨리 형돈에게 달려들어 그의 팔을 속박하며 종이를 잡은 뒤 서서히 손을 뽑아낸다.

엄청난 반응 속도에 형돈은 차마 종이를 놓아버리지 못한 채 하는 수 없이 그 종이에 자신의 운명을 거는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괜찮아. 4번일 수도 있으니까.’

딱 중간 번호였지만 4번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하며 형돈은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펼쳐들기 시작한다.

부들부들.

종이를 펼치는 형돈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서히 드러나는 검은 윤곽에는 결코 4를 완성해야 할 획이 보이지 않고 있던 것이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로지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있는 세로선 하나뿐이었다.

마침내 모든 종이를 펼쳤을 때 형돈은 석상처럼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의 반응에 혹시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옮긴 무한도전 멤버들의 표정이 급속도로 밝아지기 시작한다.

“예!”

“이 세상에 정의는 살아있구나!”

형돈이 지옥의 1번을 뽑았던 것이다.

16.7%라는 엄청난 확률을 뚫어낸 채!

이것도 운이라면 엄청난 운이 아닐 수 없다.

비참하게 일그러지는 형돈에 비해 다른 멤버들의 표정은 희희낙락이었다. 가장 골치 아픈 순서를 형돈이 맡아주었으니 자신들에게 기회가 조금이라도 더 생긴 셈이었으니까.

모두가 즐거워하는 가운데 재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형돈 씨가 1번이 되었습니다.”

빼도 박도 못하게 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시선을 마주치자 재석은 씨익 웃음을 짓는다.

1번을 뽑은 것은 자신이건만 왜 이렇게 재석이 얄밉게 느껴지는 걸까.

“크흑!”

형돈은 1번을 뽑은 자신의 손이 너무나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그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1번을 뽑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 1번을 뽑음으로 인하여 1위가 멀어졌고, 그로 인해 수영에게 어떤 구박을 들을지 상상만 해도 두려워서 그렇다.

도대체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러는 걸까?

그것은 오직 본인만 알고 있으리라.


1번을 뽑은 형돈은 곧장 무대 준비하라는 이름하에 무대 뒤쪽으로 향했고, 다른 멤버들은 희희낙락하며 번호표를 뽑기에 한창이었다.

하필이면 1번을 뽑아버린 자신을 원망하면서 형돈은 터벅터벅 힘없이 걸음을 옮겼다.

“오빠!”

준비를 위해 대기실로 걸음을 옮기던 형돈의 몸이 순간 벼락에 맞은 것처럼 부르르 떨렸다.

그가 시선을 옮기니 그곳에는 무대 의상을 갖춰입은 수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형돈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한다.

“수, 수영아!”

“왜 날 보고 물러서요. 무슨 제가 도깨비라도 되어버린 것 같잖아요.”

‘도깨비는 무슨… 그냥 악귀였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형돈이었지만 내색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는 힘겹게 웃음을 지으며 수영에게 말한다.

“하하하! 그, 그러게. 아무래도 수영이 네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서 놀란 것 같아.”

“그래요? 흐음!”

심상치 않은 형돈의 반응에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던 수영이었지만 지금 시간이 촉박하던 차였기에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형돈에게 말한다.

“오빠, 1번 뽑으셨더라고요?”

“그, 그건…….”

역시나, 수영은 알고 찾아온 듯 싶었다.

형돈은 무슨 불호령이 떨어질지 몰라 움찔 몸을 떨었다.

그간 얼마나 시달렸는지 그의 행동 하나하나마다 그대로 배어나오고 있었다.

“흐음! 1번은 제일 좋지 않은데…….”

“가장 큰 임팩트를 보여주면 괜찮지 않을까?”

의외로(?) 수영이 몰아붙이지 않자 형돈은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자신의 의견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1번이 가장 불리하다는 것을 그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연히 그 말이 순순히 먹혀들 리가 없다.

“그래도 뒤에서 강렬한 걸 보여주면 바로 잊어버릴 텐데요?”

“그, 그렇겠지?”

수영이 쉽게 넘어갈 만큼 녹록치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소심하게 반응하는 형돈을 보며 수영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대기실에 있어야 할 그녀가 이곳으로 온 것은 간단했다.

무대에 서기 위해 대기하던 도중 형돈이 1번을 뽑는 걸 보았기에 그렇다.

그때 유리가 자신을 보며 눈웃음 지었던 것을 보고 수영은 곧장 형돈을 만나러 온 것이다.

눈웃음이었지만 그것은 엄연히 말하면 비웃음이었다.

‘깝율! 네가 감히…….’

속으로 울화통이 터지는 것을 느끼며 힘겹게 자신을 다스린 수영이 형돈을 바라보며 말한다.

“어쩔 수 없네요.”

“어쩔 수 없다니?”

“봉인했던 ‘그것’을 무대 위에서 펼쳐야 할 것 같아요.”

수영의 말에 형돈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묻는다.

“수, 수영아… ‘그것’이라면 설마…….”

“맞아요. 1번을 뽑은 이상 웬만한 강렬함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임팩트를 심어주기는 불가능해요.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수밖에 없어요. 너무나 강력해서 숨겨두었던 그 퍼포먼스를 개방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해요.”

“괜찮을까? 자칫 잘못하면 부작용이 심각할 텐데.”

걱정스러운 어조로 중얼거리는 형돈이었지만 수영은 1등을 차지하기 위해 물불도 가리지 않는 상황이었다.

깝율을 꺾기 위해서! 그리고 설거지 1년 면제권을 위해서!

이제는 자존심 문제였다.

“오빠만 잘하시면 되요. 자고로 매운 음식도 처음에 너무 매운 것을 먹게 되면 뒤에 것들은 맛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법이에요. 오빠의 강렬한 퍼포먼스로 모든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주면 뒤에 사람들은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줄줄이 무너질 거예요.”

“그럴까?”

수영의 말에 혹하는 표정을 짓는 형돈이었다.

매일 구박하기 일쑤였던 그녀가 모처럼 회유하는 어조로 말을 하자 적잖게 구미가 당기는 듯했다.

수영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네! 그럼 금 한 냥은 오빠 게 되는 거예요!”

“좋아! 해보겠어!”

마침내 결정을 내린 듯 주먹을 불끈 쥐며 말하는 형돈.

그 모습을 보며 수영은 미소를 지으며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힘내세요, 오빠, 오빠라면 가능해요.”

“알았어, 나만 믿어, 수영아.”

슬금슬금 눈치만 보던 형돈이 자신감을 얻고 수영을 대한다.

그 모습을 보며 수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자신감을 얻은 듯해. 가능하겠어.’

아직 이변의 여지는 존재하고 있었다.


형돈이 1번을 뽑고 무대 준비를 위해 먼저 들어가고, 다른 멤버들은 차곡차곡 순서를 정하기 시작했다.

2번은 전진이 뽑게 되었고, 3번은 홍철, 4번은 준하, 5번은 재석, 6번은 명수가 뽑게 되었다.

2번과 3번을 뽑은 전진과 홍철은 다소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만족하는 눈치였다.

적어도 1번보다는 훨씬 나은 숫자들이었으니까.

순서가 모두 정해지자 2번과 3번 차례인 전진과 홍철은 먼저 안으로 들어갔고, 재석은 마이크를 들고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시작한다.

“자, 그럼 본격적인 콘서트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번을 뽑은 정형돈 씨가 준비하기 위해서는 약간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오프닝 무대를 성대하게 꾸며주실 분들을 모셔왔습니다. 어렵사리 모신 분들이니 등장하시면 열화와도 같은 박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잠시 후, 무대 위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재석이 고개를 꾸벅 숙였고, 동시에 무대 위가 어두워졌다.

그러자 잠시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약 삼 분여 정도가 흘렀을까.

사방에 설치된 사운드에서 은은한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웅성거리던 소리가 뚝 끊긴다.

그와 동시에 확 밝아지는 조명과 함께 무대 위 모습이 비춰진다.

와아아아아아!

무대 위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함성을 터뜨리는 관객들!

조명과 함께 모습이 드러난 사람은 다름 아닌 아홉 명의 소녀, 소녀시대였던 것이다!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지은 그녀들은 본격적으로 흘러나오는 <소녀시대> 노래에 맞춰 안무를 추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무한도전 콘서트에 참여한 사람들 중 약 절반 정도가 남성이다. 현의 팬들 중 여성이 많지만 남성들도 많다. 또한 무한도전 골수팬들은 남성이 제법 많았기에 현의 팬들과 조화를 이루어 반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남자치고 소녀시대를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기에 당연히 아리따운 소녀들의 모습에 열광하였다.

힘찬 안무와 함께 만족스러운 무대 매너를 보인 소녀시대는 첫 번째 곡 <소녀시대>를 성공적으로 불렀다.

노래가 끝나고, 마이크를 잡은 태연이 앞으로 나서면서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소녀시대의 리더 태연입니다. 이번 무한도전 여름 가요제 콘서트 오프닝 무대를 장식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모두 인사 한 번 드리겠습니다.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소녀시대입니다!”

태연의 말에 맞춰 인사를 하는 소녀시대.

공손하게 인사하는 그녀들의 모습에 관객들이 다시 한 번 탄성을 터뜨리며 박수를 친다.

그 모습에 미소를 지은 태연이 슬쩍 뒤를 돌아보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한다.

“이번에 저와 티파니, 윤아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이 각각 무한도전 멤버 선배님들의 멘토를 맡게 되었는데요, 그 부분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직은 어설프지만 제법 매끄러운 태연의 진행 하에 소녀시대 멤버들은 하나둘씩 인터뷰를 하기 시작한다.

칭찬으로 시작하여 칭찬으로 끝나는 소녀들의 말.

대기실에서 그 말을 들은 무한도전 멤버들은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칭찬만 하다니!

현실에서는 엄청난 구박에 구박, 또 구박에 구박. 오로지 구박의 연속뿐이었는데 말이다.

수영의 입담과 순규의 재치가 적절하게 조화되어 웃음을 유발할 수 있었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게 되고, 인터뷰가 모두 끝나게 되자 태연은 마이크를 들며 말한다.

“그럼 저희는 한 곡 더 부르고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후 시작될 여름 가요제를 마음껏 즐겨주시길 바라며, 시작하겠습니다. <Kissing You>."

와아아아아!

태연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MR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일렬로 선 소녀시대가 품속에서 꺼내든 사탕을 휘두르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만족스러운 무대를 마친 그녀들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마이크를 든 재석이 앞으로 나서며 말한다.

“모두 소녀시대 노래 잘 들었나요?”

네에에에!

거센 외침. 그 함성이 마음에 들었는지 재석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심사위원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재석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다시 한 번 함성을 지르기 시작한다. 심사위원이라면 무한도전 멤버들에게 곡를 전해준 현이었기에 그렇다.

거센 함성 소리와 함께 무대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창현은 중앙에 서서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입을 연다.

“이번 여름 가요제 콘서트에서 심사위원을 맡게 된 현입니다. 제가 보고자 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무대 매너와 자신의 노래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것 여부, 그리고 퍼포먼스와 노래에 대한 열정입니다. 다소 주관적인 부분이 개입될 수 있겠지만 최대한 공정하게 심사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주관적이라 말하지만 실제로 모든 심사는 주관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이번 여름 가요제의 모든 곡들은 그가 작곡한 곡이니 만큼 주관적인 견해가 들어간다 하더라도 무어라 할 사람은 없으리라.

그렇게 자신의 소견을 밝힌 창현이 고개를 살짝 숙인 뒤 한쪽에 마련된 심사위원석에 앉았다.

그가 자리에 앉자, 재석은 본격적인 진행을 하기 시작한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무대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무대를 장식해줄 분은 바로 정형돈 씨입니다. 모두 한 번 외쳐보도록 하죠. 정형돈의 곡!”

불족발! 불족발!

재석의 유도에 사람들이 거세게 외치기 시작한다. 이미 사전에 나누어진 안내 책자에 무한도전 멤버들이 부를 노래 제목들이 적혀 있었다.

관객들의 외침에 무대 조명이 다시 꺼졌다. 그 사이 재석이 퇴장하고, 힙합 차림을 한 형돈이 결연한 표정을 지은 채 무대 위에 오른다.

무한도전 여름 가요제 콘서트를 장식할 첫 번째 곡.

바로 불족발이었다.

‘그것’으로 모든 사람들을 뒤집어지게 만들리라.

불족발의 강림이었다.


둥! 둥! 둥! 두둥! 둥! 둥! 둥! 두둥!

묵직한 사운드가 경기장 전체에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그 속에 오연히 서 있는 뚱보 한 사람.

그의 몸무게 만큼 묵직한 사운드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있었다.

흘러나오는 사운드에 몸을 맡겨 들썩이는 형돈.

그 모습이 묘하게 잘 어울려 보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리듬에 익숙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관중 앞에 서본 사람은 알 것이다.

다른 사람 앞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를 동반해야 하는 것인지.

지금 경기장에 자리한 사람들의 숫자는 15,000명.

개그 콘서트를 하면서 익숙해졌다 하나 개그맨이 아닌, 가수로서 무대 위에 서는 것이기에 두근거림은 더욱 커져 있었다.

‘난 해낼 수 있다!’

금 한 냥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수영이의 구박을 면하기 위해서라도!

전자보다 후자가 더욱 동기부여가 된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슬픈 현실이었다.

가볍게 몸을 흔들던 형돈이 마이크를 들고 본격적인 노래를 시작한다.

그의 노래는 올 여름을 단숨에 붕괴해버릴 파격의 불족발!

입에 들어가는 순간 쫀득쫀득한 식감과 화끈하게 입속을 태워버리는 불족발의 매력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으리라.

불족발의 대가인 자신과 수영의 완벽한 조합으로 뭇 관객들의 마음속에 불족발의 위대함을 심어주리라!

중간 평가 때 보였던 족발 퍼포먼스를 보이며 강렬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때마침 조명 또한 은은한 붉은색.


뜨겁게 타오르는 내 마음처럼.

오늘도 내 맘을 흔드는 단 하나의 것.

매끄러운 자태.

윤기 넘치는 피부.

붉게 물들여진 홍조가 나를 유혹하네.


묵직한 사운드, 붉은 조명빛.

그것이 한데 어우러진 형돈은 그의 노래 제목처럼 붉게 달아오른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노래와 절묘한 일치를 이루는 그는 경기장의 판타지 스타.

와아아아아!

간결하지만 힘이 넘치는 퍼포먼스를 구사하며 흔들림 없는 가창력을 구사하는 형돈의 모습에 사람들이 함성을 터뜨린다.

그간의 지옥 훈련이 마침내 무대 위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노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인 듯 싶었다.

안무와 노래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형돈의 모습은 무한도전에서 보여준 것과 사뭇 다른 형태였다.

그가 부르는 불족발이라는 노래의 내용은 간단했다.


야식을 너무나 좋아하는 청년이 있다.

그 청년은 야식으로 언제나 불족발을 먹었고, 매일같이 야식을 먹다 보니 살이 쪄서 뚱뚱보가 되어버렸다.

자신의 볼품없어진 외모로 인해 여자 친구에게도 차이자 청년은 실의에 빠져버렸고, 절망하면서 마침내 굳은 결심을 하게 된다.

바로 자신을 찬 여자를 불족발의 세계로 입문하게 만드는 것.

매일 불족발을 뜯는 자신을 보며 구박하던 여자 친구가 불족발에 빠져든다면 그것이야 말로 복수의 성공이라 생각하며 청년은 본격적인 다이어트에 돌입하며 외모지상주의에 빠져버린 여성들에게 불족발의 매력을 각인시켜 준다는 한편의 희곡 같은 내용의 곡이었다.


얼핏 보면 어처구니가 없는 내용이었지만 그 안의 내용은 교묘하게 외모지상주의 현실을 비판하고 있으며, 아울러 불족발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있었다.

첫 부분은 불족발의 아름다운 자태(?)에 넋을 잃어버린 청년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고, 중반부는 여자 친구에게 차이며 굳게 다짐을 하는 모습이었다.


넌 언제나 그랬지.

저 기름이 번들번들한 게 뭐가 그리 좋냐고.

하지만 난 단호하게 말할 수 있어.

“니가 불족발의 맛을 알아?”


와하하하하!

모 CF에서 나온 ‘니들이 게 맛을 알아?’라는 식으로 말하는 형돈의 어투에 관객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린다.

독백형으로 읊는 형돈의 노래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묘한 싱크로율 일치를 보여주면서 한편으로는 시도때도 없는 연중무휴 다이어트 때문에 야식조차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사람의 한을 담고 있었다.

이것은 늘 몸매 관리에 여념이 없는 소녀시대 멤버들로 인해 야식을 먹을 수 없게 된 수영의 한을 담아내고 있었다.

노래 중반부가 흐르고 피나는 노력 끝에 슬림해진 몸이 된 남자가 전보다 더욱 잘생겨진 얼굴로 여자들을 불족발의 세계로 인도하는 내용을 말한다.


불족발은 쫄깃쫄깃

내 마음은 두근두근

뜨거운 열기를 담아 네게 한 마디.

“어이~ 족발 한 번 같이 뜯읍시다?”


불족발의 매력에 감염된 사람들은 너도나도 불족발을 즐기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살이 쪄버려 결국 세상은 외모지상주의가 사라졌다는 해피엔딩(?)을 담아낸 형돈의 곡은 한편의 일대기와도 같은 형식이었다.

노래가 끝나고, 흐르는 곡의 리듬은 점점 빨라지기 시작한다.

마이크를 쥔 채 형돈의 몸이 딱딱딱 끊기며 절묘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육중한 체구에서 나오는 춤이라고 믿기기 힘든 고급 퍼포먼스!

와아아아아아!

지켜보고 있던 관객들은 상상을 뛰어넘는 형돈의 퍼포먼스에 함성을 터뜨렸다.

들려오는 함성 소리에도 불구하고 형돈은 춤추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빠르게 몸을 움직이며 춤을 구사하다 돌연 우뚝 멈춰 서더니, 뒤쪽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든다.

사람들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그것을 곧장 입으로 가져가는 형돈.

그것은 바로 불족발이었던 것이다!

“……!”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 그가 불족발을 먹을 것이라 누가 감히 상상했단 말인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관객들이 순간 놀랄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예상했던 바.

하지만 여기에서 숨겨두었던 비기를 펼치니.

입에 불족발을 문 채 다시 한 번 리듬에 몸을 맡겨 춤을 추던 형돈이 후다닥 앞으로 달려가더니 왼손으로 입에 문 족발을 떼어내며 외친다.

“족발 드롭킥!”

그 외침과 함께 형돈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며 레슬링에서나 볼 수 있던 드롭킥이 펼쳐진다.

공중에 떠올랐던 형돈의 몸이 앞으로 뒤집히며 안전하게 낙법을 한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숙련된 몸놀림이었다.

모두가 놀란 시선으로 보고 있을 때, 엎어져 있던 형돈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손에 쥔 불족발을 여유롭게 한 입 뜯는다. 그리고 손을 들어 관객들을 향해 여유롭게 손을 흔든다.

“쌩유!”

와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아!

정형돈! 정형돈!

고난이도 퍼포먼스를 구사한 것도 모자라 무대 매너까지!

사람들은 형돈의 모습에 열광하며 탄성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런 반응을 보일 만큼 형돈의 퍼포먼스는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나름대로 일대기를 담아내고 있는 심오한(?) 가사 내용과 뛰어난 가창력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그의 무대에 경기장에 모인 관객들 모두가 열광하고 있었다.

15,000명이 발산하는 함성은 그야 말로 장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에 형돈은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성공이다! 이 정도면 1등을 노릴 수도 있겠어.’

금 한 냥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보다는 수영에게 구박당하지 않을 것 같다는 기쁨이 더욱 컸다.

함성을 내지르는 관객들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해보인 형돈은 곧장 무대 뒤로 발걸음을 옮겼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지만 후회 없는 무대였다.

첫 스타트를 굉장하게 끊어버린 형돈이었다.


“…….”

오프닝 무대를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와 첫 주자인 형돈의 퍼포먼스를 지켜보던 소녀들은 할 말을 잃었다.

“저, 저게 정말 형돈 오빠라고?”

“Unbelievable."

그녀들의 놀라움은 무척이나 큰 것이었다.

분명 그녀들이 알고 있는 형돈은 몸치에 제대로 된 춤과 노래를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사람이 변할 수 있다니.

모두의 시선이 수영에게 향한다.

그녀의 입가에는 흡족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콧대를 높이 세운 채 수영은 멤버들에게 말한다.

“후후후! 내가 맡았으니 저 정도는 기본 아니겠어?”

확실히 예상 이상의 실력이었다. 분명 수영이라면 한 건 해낼 줄 알았지만 이건 상상이상이랄까?

묘한 불안감이 생겨났지만 소녀들은 애써 그 불안감을 억눌렀다.

‘쉽지 않겠어.’

‘설마 형돈 오빠가 저 정도일 줄이야.’

‘괜찮아, 우리가 준비한 것도 만만치 않으니까.’

‘어차피 형돈 오빠는 첫 주자니까…….’

그렇게 각자 생각에 빠져 있는 와중에 한 사람의 표정만큼은 눈에 띄게 흐려져 있었다.

그 표정을 본 수영은 느물느물한 웃음을 지은 채 묻는다.

“유리 너 표정이 좋지 않다?”

“…….”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수영의 모습에 유리의 표정이 좋지 않게 변했다.

‘설마 저걸 쓸 줄이야.’

그녀는 형돈의 퍼포먼스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형돈의 무대에서 가장 압권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불족발을 입에 문 채 족발 드롭킥을 날린 장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저 불족발을 입에 문 것은 사실 유리가 먼저 고안한 퍼포먼스였던 것이다.

‘수영이 저게 감히…….’

유리의 눈에 불길이 확 일어났다.

해당 음식을 문 채 퍼포먼스를 펼치는 것은 유리가 재석과 한 차례 논의했던 것이었다. 그러다 떡볶이로는 파급력이 부족할 것 같아 취소를 했는데 형돈이 그 퍼포먼스를 펼친 것이다.

독자적으로 생각해냈을 수도 있지만 왠지 빼앗긴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할 말이 있으면 해.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어?”

생각에 빠진 유리를 도발하는 수영.

그 모습에 유리는 버럭 소리를 지르려다가 간신히 화를 억누른다.

이곳에서 수영의 도발에 말려들면 손해를 보는 것은 자신뿐이다.

‘후우! 진정하자. 재석 오빠가 형돈 오빠를 누를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재석 오빠의 무대가 끝날 때까지 참도록 하자. 저 멀대의 도발에 넘어가면 안 돼.’

그러면서 침착함을 되찾으니, 유리를 도발하던 수영의 눈에 아쉬움이 서린다.

‘쉽게 넘어오지 않네. 칫!’

“다음은 전진 오빠네?”

유리를 자극해봤자 얻을 것이 없다 판단한 수영이 화제 전환을 꾀한다.

그 말에 전진과 파트너를 이루었던 효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전진 오빠 차례지. 후후! 수영이, 네가 형돈 오빠를 잘 가르쳤다고 해도 전진 오빠한테는 안 될 걸?”

“그건 지켜봐야하지 않겠어?”

수영은 자신만만했다.

형돈의 무대는 재미와 진지함, 완성도라는 삼박자를 골고루 갖췄다. 그랬기에 첫 무대의 약점을 빼더라도 자신이 이길 것이라 확신하는 수영이었다.

“그래? 일단 지켜봐봐. 아주 멋진 무대가 펼쳐질 테니까.”

“…….”

효연의 자신만만한 말에 수영은 입을 다문 채 모니터를 주시하기 시작한다.

무대 위에는 어느덧 멋진 옷을 차려입은 전진이 서 있었다.


다른 무한도전 멤버들과 달리 전진은 무척 유리한 고지에 서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고질적인 약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평균 이하 남자들이 끊임없이 도전을 한다는 컨셉을 지닌 무한도전 내에서 전진은 우등생 컨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보다 우월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가지로 나뉜다.

동경. 그리고 질투.

그런 면에서 전진은 양날의 검이라 할 수 있는 존재였다.

우등생으로서 다른 멤버들의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지만 때로는 재미를 반감시키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랄까.

본래 예능감 자체는 떨어지는 편이 아니었지만 이곳에서는 상성이 잘 안 맞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웃기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만 다른 멤버들처럼 빵빵 터지는 경우도 많지 않다.

그렇기에 이번 공연이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공연 또한 가수 출신인 그가 압도적인 퍼포먼스와 가창력으로 밀어붙인다면 우승을 할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웃음은 유발하지 못하게 된다.

선택의 기로에 섰다 할 수 있는 셈이다.

“…….”

무대 위에 선 전진의 표정은 사뭇 비장하였다.

설마 형돈이 이렇게까지 잘할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다.

그런 만큼 부담감이 더욱 밀려오고 있다.

자신이 잘해야 한다고. 웃음과 동시에 완벽한 공연을 펼쳐야 한다고.

‘할 수 있다. 믿어보자.’

그와 함께 본격적으로 노래를 하기 시작하는 전진.

두둥! 둥!

시작은 전직 아이돌 가수 출신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화려한 춤을 바탕이 되었다.

절제된 몸놀림과 무대를 휘어잡는 능력.

“…….”

보고 있는 사람들은 방금 전 형돈이 펼쳤던 분위기와 판이하게 다른 느낌에 침묵한다. 가수 출신이 발산하는 아우라는 아무래도 형돈이 발산하던 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탁탁탁!

절제된 몸놀림으로 완급을 주며 펼쳐내는 전진의 퍼포먼스는 완벽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것은 가요제이지만 가요제의 이름을 빌린 예능 프로그램.

전진은 자신이 믿고 있는 한 수를 펼치기로 하며 본격적으로 노래를 하기 시작한다.

그가 정한 테마는 다름 아닌 ‘사우나’였다.

일반적인 이열치열이 바로 이것 아니겠는가?

후끈한 사우나에서 땀을 한 번 쭉 빼고 나면 느껴지는 시원함!

이것이야 말로 이열치열의 원조라 생각하였고, 평소 사우나를 자주 다니던 전진은 이 소재로 다른 멤버들을 꺾고 우승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웃음을 유발하느냐였다.

작사를 마치고 창현에게 건네주었지만 사실 예능적인 면은 별로 없었으니까.

그런데 창현의 손에 맞춰 개편된 가사는 그야 말로 기대 이상이었다.

전진은 그것을 믿고 밀고 나가기로 결정을 내렸고, 별도의 수정 없이 퍼포먼스에 중점을 맞춰 준비한 것이다.

노래를 부르는 내내 웃음을 유발할 필요는 없다!

적절한 완급의 중요성이 필요하다.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탄성을.

그것이 목표인 만큼 전진의 첫 노래 부분은 진지하게 이를 데 없었다.

당연히 관객들 또한 웃음을 터뜨리거나 그런 것은 없고, 그냥 콘서트에 온 사람처럼 야광봉을 휘두르며 노래에 호응을 해주고 있었다.

이것이 당연한 반응이지만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이것이 오히려 마이너스다.

‘이제부터!’

노래 초반부가 끝나고 중반부로 접어들어서면서 전진의 노림수가 시작되었다.


후끈한 사우나를 벗어나

차가운 냉탕에 몸을 담가봐.

앗 차거! 앗 차거! 앗 차거!


일명 ‘차가워’ 춤이 펼쳐진 것이다.

팔을 교차하여 양 어깨 위에 손을 살며시 올려놓고 몸을 부르르 떠는 모습은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더욱 웃긴 것은 한없이 진지한 전진의 표정 때문이다.

와하하하하하!

관객들은 이렇게 웃겨 죽겠는데 정작 본인은 진지한 표정으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으니 상반된 모습에 포복절도할 지경이었다.

만약 전진이 웃음을 지은 채 춤을 췄다면 재미는 반감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없이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도리어 관객들이 왜 웃음을 짓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 생전 보지 못한 그의 어리바리한 모습에 관객들이 폭소를 터뜨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다시 진지하게 흘러가는 노래.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에 기대감이 서리기 시작한 것이다.

진지 일변도로 노래가 진행되었다면 그저 조용히 노래만 듣고 있었을 테지만 적절한 완급으로 한 번 빵! 터뜨려주니 또 다시 터뜨려줄 것이 있나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던 것이다.

‘차가워’ 춤이 펼쳐질 때마다 간간한 웃음이 흘러나왔고, 노래는 점점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때, 준비해둔 파격(?) 퍼포먼스가 시작된다.

촤악! 촥!

입고 있던 의상을 단숨에 좌우로 젖히며 벗어버린 그는 하늘에서 펄럭거리며 떨어지는 의상을 잡고 단숨에 그것을 입은 것이다.

그와 함께 로봇 변신처럼 머리에 장착되는 양 모양 수건!

겉으로 두른 가운과 함께 절묘하게 맞물려 완벽한 찜질방 백수의 옷 차림새가 되었다.

와아아아아아!

파격적인 그의 퍼포먼스에 관객들은 다시 한 번 함성을 터뜨린다.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전진은 계속해서 노래를 불러나간다.


가끔씩 이런 사람 있죠.

사우나가 제 집인 줄 아는 사람.

볼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아.

그런 사람을 보면 한 마디씩 하죠.

“거기 아저씨, 같이 좀 씁시다.”


부리부리하게 뜬 눈으로 당장이라도 따질 듯 바라보는 전진의 모습은 자못 사나워보였지만 뒤이어 이어진 가사는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나의 실수였어요.

순간 내 앞에 드러난 용 문신.

좌우로 호랑이가 포효하고 있어요.

하얗게 변해버린 내가 하는 한마디.

“계, 계란 하나 드실래요?”


푸하하하하!

주머니에서 계란을 꺼낸 채 비굴한 표정을 짓는 전진의 표정을 보며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린다.

그야 말로 상상 이상의 퍼포먼스!

설마 그가 이렇게까지 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기에 사람들은 더욱 더 열광했다.

모든 노래가 끝나고 그 또한 형돈처럼 퍼포먼스를 펼친다.

다만 양 모양 수건과 가운을 입은 채 파워풀한 춤을 추니, 미처 가시지 않았던 웃음이 더욱 증폭되어 경기장을 가득 채워나간다.

마침내 모든 노래가 끝나고, 바닥에 떨어진 옷을 허겁지겁 챙기며 고개를 숙인 채 물러나는 그의 모습에 관객들은 다시 한 번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후우! 후!”

가볍게 숨을 몰아쉬는 전진의 표정은 밝았다.

“진아, 너 왜 이렇게 잘해.”

다음 차례인 홍철이 경악한 표정으로 다가와 전진에게 말한다.

그의 물음에 전진은 다시 한 번 자신의 무대가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말한다.

“다 실력이죠.”

“이런… 가장 약체라 생각했는데… 설마 1번과 2번이 이렇게 잘할 줄이야.

부담감이 물밀 듯 몰려오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잘못하게 되면 그대로 야유를 뒤집어쓰게 될 테니까.

더군다나 자신의 가사는…….

“후우!”

한숨만 나왔다.

그 모습을 보며 전진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홍철을 툭툭 친다.

“열심히 해봐요. 그럼 알아요? 좋은 결과가 있을지.”

이미 자신의 무대가 끝났기에 그는 여유만만이었다.

그에 반해 홍철은 아직 넘어야 할 산이 한참 남아 있었으니 불안할 수밖에.

“잘해야지. 그 설교 폭풍은 다시 듣기 싫으니까.”

자신의 파트너인 주현의 주장에 반박했다가 한 시간 넘는 설교 폭풍을 떠올리자 홍철은 몸을 부르르 떤다.

자신의 곡이 1등을 차지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열심히 하기라도 하면 그래도 변명 거리는 생기니까…….

“형돈 형이랑 진이는 저런데 나는…….”

무대 위로 나가는 홍철의 표정은 우울하게 물들고 있었다.


앞 사람이 잘하면 뒷 사람이 하기 힘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것은 지금 무대 위에 선 홍철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사항이다.

중간 평가 때 상당할 것이란 예감을 심어주었지만 설마 불족발을 입에 물고 족발 드롭킥을 펼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휘어잡는 퍼포먼스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어디 그뿐인가.

뒤이어 무대를 펼친 전진 또한 그러하다.

예능감이 부족한 것이 고질적인 약점으로 평가받던 그의 무대.

프로페셔널한 완성도 높은 무대를 펼칠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 예상은 단단히 빗나간 것.

절묘하게 예능과 조화된 프로페셔널한 무대는 완벽에 가까운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저것보다 뛰어난 무대를 펼칠 수 없다는 불안감을 가득 안은 채.

“으으…….”

절로 신음이 흘러나오는 홍철이었다.

그에 반해 자신은 어떤지.

“서현이 널 믿었다고!”

중간 평가 때 조목조목 옳은 논리로 자신을 무너뜨린 주현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녀에게 모든 것을 맡긴 홍철이었다.

하지만 주현이 완성해온 가사를 보는 순간 홍철은 진정한 지옥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설마 이것을 불러야 한단 말인가.

격렬하게 항의를 했지만 이미 주도권은 주현에게 넘어간 지 오래.

홍철의 항의는 주현의 의견을 돌려놓기는커녕 도리어 한차례 설교 폭풍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속사포 랩으로 이어지는 주현의 설교에 결국 무릎을 꿇은 홍철.

어쩌겠는가.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린 거, 최선을 다해서 무대를 소화하는 수밖에.

단지 주현의 이상 취향이 깃든 곡이 경기장에 모인 관객들에게 먹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게 무리라는 걸 본인 스스로 자각하고 있기에 더욱 슬픈 사실이었지만.

“그래, 갈 때까지 가보는 거야.”

까짓 거 인생 한 방이라 생각하며 주먹을 불끈 쥔 홍철이었다.

굳게 결심한 그의 발걸음이 본격적인 준비를 마친다.


홍철이 선택한 테마는 다름 아닌 태양이다.

무척 간단하지만 반대로 포괄적이어서 제대로 된 중심을 잡기 힘들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앞서 무대를 펼친 형돈의 불족발이나 전진의 사우나는 무척 간단하면서 범위가 작아 이미지 메이킹이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에 반해 태양이란 테마는 그 장점을 지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가사를 대대적으로 개사해야했던 주현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야만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태양 아래 거침없이 자신의 길을 달리는 한 남자의 일대기였다.

바로 태양의 껍질을 뒤집어 쓴 열정! 그것이 바로 메인 테마인 셈이다.

딱! 딱! 딱! 딱!

마치 드럼 스틱으로 타이밍을 재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이는 홍철의 박자 감각이 상당히 떨어지는 걸 감안한 창현의 배려였다.

정확히 일곱 번의 소리가 들리고, 홍철의 노래가 시작된다.

거친 그의 보이스에 맞춰 목표를 향한 한 남자의 일대기가 펼쳐진다.


뜨거운 태양 아래 난 타오르고 있어.

붉은 열정은 날 두근거리게 만들지.

목표를 위해서 난 절대 포기하지 않아.


홍철의 목소리는 결코 미성이라 할 수 없다. 그것은 보컬 트레이닝을 한다 해도 고칠 수 없는 점이었기에 주현은 경로를 바꿔 그의 거친 보이스가 최대한 부각될 수 있게 하였다.

그녀 스스로는 잘 알 수 없지만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바로 사나이들만의 세계!

거친 보이스와 거친 아우라로 하여금 홍철의 매력을 부각시켜 남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것이 주현의 작전이었다.

오오오오!

홍철의 노래 실력을 그리 기대하지 않고 있던 관객들은 유창하게 부르는 그의 모습에 감탄사를 터뜨린다. 목소리가 탁하기는 했지만 노래와 가사가 잘 어울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괜찮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감탄은 잠시 뿐이었다.

뒤이어 흘러나온 홍철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얼이 나가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던 것이다.


한 번 결심한 것이 사나이일지언데(케로케로)

왜 늘 포기하려는 마음이 드는 것일까(케로케로)

이렇게 약한 나의 모습은 또 다른 나(케로케로)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어. 이것은 나의 길(케로케로)


바로 뒤에 들려온 정체불명의 대두 개구리 화음 때문인 것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잘나가는 곡 뒤에 개구리 울음 소리가 들어간 상황이라니.

“…….”

대기실에서 내심 완성도가 높은 홍철의 노래에 감탄하고 있던 소녀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이건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할까.

예상 외로 잘하는 홍철의 모습에 일말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녹색 대두 개구리의 화음이 들어간 것을 보는 순간, 소녀들은 모두 황당한 표정을 지은 채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주현에게 시선을 옮긴다.

언니들의 시선집중에 얌전히 앉아있던 주현이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대단하죠?”

가장 가까이 앉아있던 윤아에게 물으니, 그녀는 반짝이는 주현의 눈을 외면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그래. 대단하네.”

어떤 의미로 정말 대단하다 할 수 있다.

설마 공중파 방송에서 자신의 취미 생활을 과감하게 접목시키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

눈을 반짝이는 주현을 보며 소녀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말았다.

매번 꾹꾹 참았다가 한 번에 발산하는 막내였기에 숨어있는 강자로 취급받고 있었는데 이상 취향 때문에 결국 모든 것을 망쳐버린 듯 싶었다.

“설거지 면제권은 제 거예요!”

홍철의 무대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주현이 외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태연은 꿋꿋하게 무대 위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홍철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홍철 오빠가 불쌍하네.”

“그러게.”

옆에 있던 수연은 백 번 공감하고 있었다.


푸하하하하하!

어쨌든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성공했다.

홍철이 노래를 부르고 뒤이어 케로케로 소리가 흘러나오면 관객들은 연신 폭소를 터뜨리고 있었으니까.

“후우! 감사합니다.”

노래가 끝나자 홍철은 감사의 인사를 남긴 뒤 황급히 무대를 벗어났다. 평소라면 무대 위에 서서 감사합니다 등을 외치며 오지랖을 발휘했을 테지만 여기에서 그러고 있을 만큼 그는 얼굴이 두껍지 못했다.

이게 무슨 케로로 OST도 아니고.

무대 뒤로 향하자, 다음 순서를 위해 대기하고 있던 준하가 황당한 표정을 지은 채 질문을 한다.

“홍철이 너 그게 뭐냐.”

“몰라요, 형님. 저 지금 부끄러워서 죽겠으니까 나중에 이야기해요.”

그렇게 말한 홍철이 후다닥 걸음을 옮겼고, 준하는 더 이상 놀리지 못한 채 자신의 무대 준비를 위해 걸음을 옮겼다.

네 번째부터는 후반부라 할 수 있기에 이제부터 본격적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임팩트를 남기면 앞서 무대를 펼친 참가자들을 단번에 눌러버릴 수 있으니까.

무대 위에 오른 준하는 침착하게 심호흡을 한다.

‘금 한 냥은 내 꺼니깐.’

그는 자신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왜냐고?

자신에게는 비장의 한 수가 있었으니까.

뿐만 아니라 순규의 지옥과도 같은 트레이닝을 버텨내고 마침내 무대 위에 섰다.

이미 사전 리허설까지 했기에 준하는 큰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다.

와아아아아아!

홍철의 케로로 OST 파동 이후 다소 멍해졌던 관객들은 네 번째 주자로 준하의 차례가 되자 함성으로 그를 맞이한다.

조명이 번쩍이며 무대 위에 서 있는 준하를 비춘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양손을 포갠 뒤 팔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두두! 두두두! 두! 두! 두!

그가 자리를 함과 동시에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MR.

뒤이어 흘러나온 것은 기존의 무한도전 멤버들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아주머니~ 한 그릇만 더 줘요.

이 녀석아! 술 좀 그만 마셔.

에이~ 그게 되나요. 어쨌든 아주머니 육개장이 최고!

이 녀석이! 알긴 아는 군. 음하하하!


일상 대화 같은 부분이 AR로 접목되어 있던 것이다. 준하가 육개장을 주문하는 목소리와 함께 털털한 목소리가 아줌마 웃음을 터뜨리며 아주머니 역할을 맡았던 여성이 본격적인 랩을 시작한다.


어제부터 매일같이 찾아오는 사람들.

밤거리를 배회하다 늘 이곳을 찾지.

뜨끈뜨끈 육개장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얼큰한 국물, 쫄깃한 육질은 So Delicious.


“…….”

털털하면서도 묘하게 귀여운 목소리. 뿐만 아니라 약간 어색한 듯한 랩.

대기실에서 준하의 노래를 듣고 있던 소녀들은 일제히 침묵한다.

지금 아줌마 웃음을 터뜨리며 랩을 하는 저 AR의 목소리 주인공이 누구인지 그녀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던 것이다.

일곱 쌍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한다.

그녀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은 채 찰싹 붙어있는 아담한 소녀 두 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너, 너희들…….”

효연의 경악한 목소리.

수영 또한 이를 갈며 순규를 바라보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이순규! 네가 감히……!”

“후후! 이기기 위해서는 무슨 방법이든 사용해야 하지 않겠어?”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보이는 순규였다.


순규가 태연을 끌어들인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도우미 역할을 하기로 하면서 참여하는 소녀시대 멤버들은 함께 무대 위에 오르지 않기로 하였다. 거기에는 피처링 또한 숨어 있었다.

그렇다는 건 도우미가 아닌 다른 사람은 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 맹점을 알아차린 순규는 곧장 작전을 개시하였고, 소녀시대 내에서 최고의 가창력을 지닌 태연을 꼬드겨 준하의 노래에 참여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사각지대를 절묘하게 이용한 순규의 파인 플레이가 아닐 수 없다.

순규는 자신을 죽일 듯 노려보는 멤버들에게 여유로운 태도로 일침을 가한다.

“이기기 위해서는 뭐든지 다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난 너희들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고,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이익…….”

수영은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분통 터지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말 그대로다.

자신 또한 승리를 할 수 있다면 무슨 방법이든 사용했을 것 아닌가? 그렇기에 유리가 흘리듯 말했던 것을 형돈에게 적용시켜 불족발을 문 채 드롭킥을 날리는 퍼포먼스를 구사한 것이고.

자신 또한 그렇게 했을 지언데 승리를 위해 다른 방법을 구사한 순규에게 뭐라고 할 것이 되지 못됐다.

그저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화를 삭일 뿐.

“훗!”

그 모습을 보며 순규는 입가에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승자의 기분을 맛볼 뿐이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승자의 기분을 맛보겠는가.

얄미운 그 모습에 수영은 볼을 확 꼬집어주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태연에게 분노를 터뜨린다.

“이익! 탱구 너! 언제 순규한테 붙은 거야!”

“붙기는 무슨. 그저 합리적인 제안이 들어왔기에 수락했을 뿐.”

“합리적인 제안?”

무언가 딜이 오고갔다는 것을 깨달은 수영.

놀란 그녀의 시선이 태연에게 향하다가 순규에게 향한다.

그러자 순규는 쯧쯧! 혀를 차며 검지손가락을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그 모습에 태연은 킥킥! 하고 웃음을 짓는다. 그녀들이 수영을 이렇게 놀리는 까닭은 단신 듀오로서 멀대(수영)에게 당한 수모가 적잖게 있어서 그렇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놀려보겠는가.

“그걸 굳이 알려줄 필요가 있겠어? 어차피 승부는 날 텐데.”

태연의 말처럼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다소 어설프지만 그녀의 AR이 있음으로 인하여 준하의 노래가 더욱 살아나는 효과가 발휘되었던 것이다.

별다른 퍼포먼스가 없지만 노래 자체 완성도로 다른 곡들을 올킬할 정도. 정말 대단한 수준의 곡이 아닐 수 없다.

뭐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은데 저 단신 듀오가 단단히 준비해온 듯 블로킹이 만만치 않다.

열이 뻗친 수영은 씩씩거리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스레 앉아있는 유리에게 버럭 외친다.

“깝율! 너는 왜 아무 말도 없어!”

잔머리가 잘 돌아가는 유리라면 분명 무슨 말을 해야 할 텐데?

수영은 유리가 참전하길 바라며 은근히 그녀를 볶았다.

하지만 유리가 보인 반응은 수영의 예상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게 뭐 어때서?”

“뭐?”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반응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 수영.

그 표정이 웃겼는지 유리는 피식 웃음을 짓고는 말한다.

“이기려고 그런 거라잖아. 그거면 됐지, 뭐가 문제인데? 어차피 우리가 공동으로 협약한 것에 그런 내용도 없잖아? 사각지대를 잘 파악한 순규가 잘한 거지.”

파직!

아까부터 순규거리는 수영과 유리의 모습에 순간 이마에 혈관 마크가 돋아난 순규였지만 애써 화를 억누른다.

지금 이 순간은 자신이 승리의 쾌감을 맛보는 자리였기에.

“까, 깝율! 네가 어떻게…….”

자신과 함께 단신 듀오를 공격할 것이라 의심치 않았던 수영이었기에 충격이 큰 듯 비틀거린다.

과도한 그녀의 액션에도 불구하고 유리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말한다.

“뭐가? 내 말이 틀린 거라도 있나?”

“윽!”

신음을 흘리며 뒤로 주춤 물러나는 수영.

유리의 말에 틀린 것이 없었기에 무어라 반박할 거리가 없다. 그래도 같은 장신파로서 함께 단신 듀오를 놀리던 입장이었는데 편을 들어주지 않자 배신감이 들었다.

그 모습에 유리가 하아!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그리고, 수영이 넌 형돈 오빠를 믿지 못해?”

“……믿지.”

“형돈 오빠는 상당한 퍼포먼스를 펼쳤어. 그렇다면 믿고 있어야지. 네가 그런 태도를 보인다는 건 형돈 오빠를 믿지 않는다는 거 아니겠어? 안 그래?”

“그, 그건…….”

졸지에 사람을 믿지 못하는 불신 가득한 사람이 되어버리자 수영은 어버버하며 침몰할 수밖에 없었다.

수영을 침몰시킨 유리는 태연과 순규에게 시선을 옮긴다.

만만치 않은 두뇌의 소유자였기에 두 소녀는 긴장감 어린 표정을 짓는다.

막강한 무력을 지닌 수영보다 순간순간 대처하는 잔머리의 소유자 유리가 상대하기 더 까다롭다.

긴장한 단신 듀오의 모습을 보며 유리는 피식 웃는다.

왠지 비웃음 같아 두 사람 모두 표정이 팍 일그러진다.

“제법인데? 설마 그렇게 할 줄 몰랐어. 상당하다는 건 인정할게. 하지만 쉽지 않을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유리는 입을 다물었다.

“…….”

‘유리가 동요하지 않는데?’

‘그만큼 자신 있다는 건가?’

압도적인 자신들의 합작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유리의 모습에 태연과 순규는 묘한 불안함을 느낀다.

태연자약한 유리의 모습에 그녀들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들의 폭군 또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아주머니 한 그릇만요!(8,000원이다, 이놈아!)

공기밥 한 그릇 추가요!(그만 좀 먹어라, 이놈아!)

육개장이 참 맛있어요!(단체 회식 좀 여기서 해!)

얼큰얼큰! 뜨끈뜨끈!(내 마음도 후끈후끈)


와아아아아!

AR로 참여하는 정체불명의 랩퍼(?) 때문일까.

노래는 더욱 흥겹게 느껴졌고, 더욱 정감이 갔다.

어디 그뿐인가!

세밀한 육개장의 묘사로 인해 경기장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당장 얼큰한 육개장 한 그릇 먹고 싶은 강한 충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준하의 노래 완성도는 대단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별다른 퍼포먼스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준하에게 들려오는 환호성은 족발 드롭킥을 선보이던 형돈과 대등하게 느껴질 정도.

자신의 순서가 뒤쪽인 만큼 더욱 유리할 것임이 분명했다.

‘내가 이겼어!’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박수 소리와 함께 함성 소리가 들려오자 준하는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깔끔한 무대 매너까지 보인 준하는 인사를 마치고 무대 뒤로 나온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재석이 감탄 섞인 눈으로 준하를 바라보며 말한다.

“형 대단한데? 언제 그렇게…….”

“뭐 이 정도야 기본이지.”

재석의 칭찬에 준하는 어깨를 으쓱한다.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이자 준하는 은연중 자신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다.

관객의 반응뿐만 아니라 재석까지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라면 두 말 필요없이 자신의 승리라는 뜻이었으니까.

“뭐, 잘해 봐.”

평소와 달리 여유 넘치는 태도로 재석의 어깨를 툭툭 친 준하가 무대 뒤로 걸음을 옮긴다.

“…….”

준하가 사라지자 재석의 표정이 어둡게 변한다.

우승을 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강력한 한 방 퍼포먼스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형돈.

중독성 강한 안무와 적절한 웃음으로 반응을 산 전진.

정체불명의 랩퍼(?)까지 고용하여 완성도를 높인 준하.

……케로케로거리던 홍철은 제외하더라도 정말 강한 조합이었다.

“1등 할 수 있을까? 정말 이길 수 있는 거니, 유리야?”

불길한 중얼거림과 함께 무대 앞으로 걸음을 옮기는 재석이었다.


앞의 무대가 워낙 대단한 것들이었기에 재석으로서는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길 수 있을까.”

그것이 솔직한 그의 생각.

그도 그럴 것이 재석이 준비한 것은 약간의 퍼포먼스밖에 없었다.

처음 유리의 제안을 듣고 재석은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딱! 치며 반가움을 토로하였다.

유리의 제안은 재석에게 있어 그만큼 대단하다 생각할 만큼 독창적인 발상이 곁들어져 있던 것이다.

설사 자신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라 하여도 유리의 제안은 매력적인 것이었다.

고만고만한(전진은 무대 감각이 뛰어나지만 예능감이 없으니) 멤버들 사이에서 자신이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가 단숨에 1위를 석권할 수 있으리라 생각할 정도로.

그렇게 생각하며 무대에 서려던 재석이었지만 다른 멤버들의 무대를 보고 입이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 이라는 말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올 정도였으니까.

이 정도면 웬만한 가수의 무대에 비해 결코 꿀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뿐인가.

형돈의 파격적인 족발 드롭킥 퍼포먼스나 전진의 사우나 복 퍼포먼스, 그리고 정체불명의 여자 랩퍼를 고용한 준하까지 모두 대단한 무대를 선보였던 것이다.

독창적인 무대 매너로 가산점이 더해질 정도로.

물론 홍철 또한 그 범주에 속한다.

어떤 의미로 정말 대단했으니까.

거기에다가 누구보다 독창적이기까지 하였다.

‘그에 비해…….’

딱히 자신은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이 재석의 생각.

과연 앞 네 명의 멤버들을 제치고 자신이 1위를 할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고민하기도 잠시.

재석은 유리와 함께 하던 지옥과도 같던 나날들을 떠올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해보는 수밖에.’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법보다 주먹이 앞선다 하여 무력으로 진압하면 그것이 가장 두려운 것이라 생각하지만 정작 두려운 것은 따로 있다는 것을.

바로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정신 공격을 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괴롭다는 것을 알아차린 재석이었다.

파트너로 내정되며 끊임없이 유리에게 정신적 세뇌를 받아왔기에 재석은 앞서 대단한 무대를 보았음에도 유리를 불신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간 유리의 주입식 교육이 본격적인 성과를 거두는 순간이었다.

무대 위에 선 재석은 차분하게 마음을 다지고 마이크를 잡는다.

다른 멤버들의 실력이 대단하다 생각했지만 그는 유리의 발상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유리만 믿으면 1위는 따놓은 당상이야.’

그가 이렇게 판단하는 것은 간단했다.

지금 이 무대를 위해 유리가 준비했던 모든 수와 상황이 맞아 떨어지고 있던 것이다.

유리가 구상했던 상황은 이러하였다.

“재석 오빠는 아마 네 번째에서 마지막 순서에 해당하게 될 거예요. 재석 오빠가 해야 할 일은 앞서 펼쳐진 무대를 모두 잡아먹고 뒤에 이어질 무대의 맥을 끊어놓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분들과 차별성을 둬야 했고, 그로 인해 정해진 것이 바로 이 곡이에요. 오빠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으니 불안해하실 필요 없어요. 저를 믿으세요! 절 믿으시면 오빠는 반드시 1위를 하시고 금 한 냥을 차지할 수 있으실 거예요.”

정말 유리의 말대로였다.

자신의 순서는 유리가 예견했던 것처럼 후반부에 속하는 다섯 번째.

앞선 무대들로 인해 한껏 달아오른 이 경기장의 분위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최적의 환경이 조성되었다.

‘훗! 명수 형에게 미안한 걸.’

무대 위에 오르자 유리가 했던 말들이 떠오르며 묘하게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는 자신의 뒤에 무대에 설 명수에게 명복을 빌어준 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박자를 잡아나간다.

부드럽게 깔리는 MR과 함께 조명 빛을 받아 모습을 드러내는 재석.

와아아?

관객들은 재석의 등장에 함성을 지르려다가 여태까지 펼쳐졌던 열정적인 무대와 판이하게 다른 분위기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함성을 멈추고 말았다.

그 사이 부드럽게 깔린 MR에 맞춰 박자를 잡은 재석이 천천히 노래를 하기 시작한다.

본래 그의 노래는 신나고 빠른 비트를 바탕으로 한 요즘 트렌드에 맞춘 곡이었으나 유리의 요청으로 인해 좀 더 차분하고 느릿한 페이스로 바뀌었다.

신나는 대중음악에서 발라드로 바꿔버린 것이다.

이것을 아는 멤버들은 아무도 없으리라.

차분하게 분위기를 잡은 재석이 마이크를 들어 노래를 하기 시작한다.

그의 노래 주제는 ‘떡볶이’였다.

하지만 노래 가사는 떡볶이라는 단어가 주는 분위기와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언제나 발걸음을 옮기던 닿던 분식집.

그곳에 간 나는 오늘도 떡볶이를 먹었지.

매콤달콤한 떡볶이를 먹으며 추억을 회상해.

아릿했던 내 첫사랑의 추억을.


잔잔하게 깔리는 음악과 우수 어린(?) 재석의 분위기.

그것을 보며 관객들은 눈을 비비며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의심할 정도였다.

그들이 보아왔던 재석은 여태까지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으니까.

관객들의 반응이 어떻건 재석은 자신의 페이스로 노래를 불러나가기 시작한다.

후끈 달아올랐던 무대는 재석의 노래로 차분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달콤했던 그 맛은 사랑하던 순간처럼.

새콤했던 그 맛은 수줍은 내 마음처럼.

매콤했던 그 맛은 이별의 씁쓸함처럼.

달콤하고 매콤하고 새콤했던 떡볶이의 그 맛.

한 점 베어 물며 난 오늘도 그때를 기억해.


재석의 ‘떡볶이’는 어릴 적 자신이 먹던 떡볶이의 맛을 떠올리며 첫사랑의 두근거림, 첫사랑의 달콤함, 첫사랑의 씁쓸함을 담아내고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 갖고 있는 것이 첫사랑이라는 테마였고, 그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떡볶이의 맛으로 비유하고 있었기에 그 싱크로율은 다른 것과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야 말로 허를 찔린 셈.

설마 재석이 발라드 장르로 부를 것이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무한도전 멤버들은 물론 소녀시대 멤버들 또한 경악한 표정을 짓는다.

“후훗!”

유리는 경악한 멤버들을 보며 낮게 웃음을 짓는다.

무척 작은 소리였지만 그 소리는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대기실에 우렁우렁 울려 퍼지는 듯한 효과를 낳았다.

그 웃음 소리에 정신을 차린 소녀들.

그녀들은 경악이 담긴 눈으로 유리를 바라본다.

“너, 너…….”

옆에 앉아있던 효연이 뭐라 말을 잇지 못한 채 너만을 반복하며 유리를 가리킨다.

그러자 유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다.

“왜?”

“어떻게 저런 방식을…….”

“난 재석 오빠에게 맞는 것을 제안했을 뿐이야. 그리고 승리를 위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끌어냈지. 자극적이면서 거부감이 없는, 그러면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 소재가 지닌 힘을 진정한 발휘한 형태라 할 수 있다고!”

그녀의 말은 결코 오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말을 할 만큼 재석이 부르는 노래 형태는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다주었으니까.

그것 뿐만이 아니다.

느릿한 재석의 노래는 여태까지 빠른 템포로 일관하던 다른 멤버들과 차별성을 두면서 관객들의 마음 속 깊이 침투하기 시작하였다. 거기에 기존의 빠른 노래들의 맥을 완전히 끊어버리며 가사로 공감대를 이끌어내니, 앞서 강렬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노래들이 무색해질 정도의 순간이었다.

그것을 파악한 수영이 경악성을 터뜨리며 유리를 바라본다.

“모두 노렸구나!”

“후후!”

부인하지 않는 유리였다.

그저 낮게 웃음을 흘리며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할 뿐.

그 모습에 파트너로 참여한 소녀들이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유리가 이렇게 교활한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뒤통수에 칼을 꽂아넣을 줄 몰랐으니까.

그제야 순규가 태연을 투입하는 반칙을 너그러이 지켜보고 있었는지 소녀들은 이해할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한 소녀들의 모습에 유리는 태연자약한 모습을 보인다.

“아직 끝이 아니라고. 좀 더 남아 있으니 지켜보도록 해. 후후!”

유리의 예고!

그녀의 말에 소녀들의 시선이 모니터로 향하고, 절정으로 치닫는 무대를 보며 눈을 부릅뜨기 시작하였다.


잔잔하게 흘러간 노래는 클라이막스로 향하고 있었다.

재석은 무대 반응을 보며 나쁘지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자신이 준비한 것을 떠올리며 이를 악 물었다. 이제부터는 자신과의 싸움을 했던 결과물을 보여주어야 할 때였다.

퍼포먼스 위주로 가려던 유리가 보컬 위주로 갔을까 궁금해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위한 것.

처음부터 유리는 한 방 퍼포먼스를 준비하였고, 본격 노래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었다.

‘시작이다.’

이제 시작이라 생각하며 재석은 자신의 노래를 이어나간다.


황홀했던 그 순간은 언제나 날 두근거리게 만들어.

쓰디 쓴 잔소리는 떡볶이의 매운함.

날 띄워주는 칭찬은 떡볶이의 달콤함.

예쁜 여자와 만남은 떡볶이의 새콤함.

십 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이 떡볶이의 맛처럼.


그 가사를 끝으로 재석의 몸이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한다.

무대 시작 전 은밀하게 와이어를 달아놓은 것은 모두 이것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와아아아아!

서서히 하늘로 솟아 오르는 재석의 모습에 관객들이 함성을 터뜨린다.

그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재석은 후렴구를 반복하며 노래에 열중한다.

그리고 노래가 마침내 끝났을 때, 여전히 재석은 하늘에 떠 있었다.

높이 뜬 그는 힐끗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아찔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뜬다. 그리고 하늘에 떠있는 상태로 메뚜기 춤을 추기 시작한다.

푸하하하하하!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며 메뚜기 춤을 추는 재석을 보며 폭소를 터뜨리는 관객들.

그 모습을 보며 재석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것은 유리의 예견대로.

그녀의 말대로 된 이상 사각지대는 없다.

‘나의 승리다!’

재석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

재석의 노래가 끝나자 소녀시대 대기실 분위기는 처참했다.

그야 말로 초토화 분위기.

“까, 깝율 네가 설마 이렇게 할 줄이야.”

“으으, 저걸 그냥…….”

여름 가요제 콘서트에 참가한 소녀들은 뭐라 말도 할 수 없어 유리를 바라보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고 있었다. 유리가 특별한 반칙을 한 적이 없었다. 오직 순수한 고찰로 지금의 결과를 이룩한 것이다.

재석의 무대는 소녀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앞의 무대를 모조리 무無로 돌려버리는 차분한 분위기와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가사. 이것만으로도 다른 곡들과 차별성을 보여 자웅을 겨룰만하다. 아니, 오히려 상대하기 벅차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쐐기를 박았다.

바로 와이어를 이용하여 재석의 몸을 띄운 뒤 메뚜기 춤을 추게 한 것이다.

그가 심각한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황.

그걸 극복하게 한 채 진지한 분위기를 단숨에 타파하는 메뚜기 춤은 극적인 분위기 반전을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관객들은 물론 보는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기억을 선사했다.

“후후! 다 실력이지.”

멤버들의 분통 터지는 모습이 재미있는지 유리는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얄미운 표정을 짓는다.

그 모습에 욱하는 몇몇 소녀들. 하지만 여기에서 흥분해봤자 패배자 인증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설거지 면제권은 잘 쓰도록 하겠어.”

아직 승부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만하게 자신의 승리를 점치는 유리였다.

하지만 지금 상황 자체를 본다면 유리가 크게 앞서고 있는 것이 사실.

크게 앞서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와 흐름을 보면 다른 곡들을 올킬(All Kill)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광오한 유리의 말에 소녀들은 분노했지만 그 말이 사실이어서 무어라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자신들의 곡이 대반전을 일으켜줄 것이라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을 뿐.

그때, 여태껏 조용히 침묵하고 있던 미영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입을 열었다.

“제시는 아무런 반응이 없네?”

같은 지능 캐릭터로서 그녀는 유리의 행동력에 크게 감탄한 상황이었다.

사각지대를 절묘하게 이용할 뿐만 아니라, 멤버들로 하여금 묘한 경쟁 열기를 조장하게 해놓고 자신은 그 열기를 완전히 뭉개버리는 계책을 사용하다니.

사도의 계략 달인 사마율다운 면모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유리의 행동에 감탄하던 미영은 어느 순간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마지막 순서를 남겨두고 있는 수연이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손해를 보는 것은 바로 수연이다.

다른 곡들은 유리의 곡으로 인해 분위기 자체가 뭉개져버렸지만 수연의 곡은 채 나오기도 전에 뭉개진 상황이다.

그녀와 명수의 곡이 다른 소녀들과 비슷한 류의 빠른 템포를 자랑하는 곡일 확률이 높았으니까.

만약 그 곡이 펼쳐진다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식상함을 느끼게 할 수 있을 확률이 높고, 자칫 잘못하면 앞서 무대를 펼친 재석의 무대를 돋보여주는 역할로 전락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저 여유로운 모습이라니.

궁금함을 참지 못하여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을 꺼낸 것이다.

그 말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유리의 곡에 모든 곡들이 올킬 당하고 있는 상황.

분명 수연 또한 그 범주에 벗어나지 않을 텐데 그녀는 너무나 여유로웠고, 마치 제3자인 것 마냥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소녀들은 불길한 마음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저렇게 여유로운 모습이라면 그녀 또한 한 수 준비한 게 있지 않을까?

소녀시대 내 폭군이라 불리는 수연인데?

“그러고 보니 수연이 넌 왜 아무런 반응도 없는 거야?”

“설마 깝율보다 뛰어난 무대를 준비했단 거야?”

“말도 안 돼!”

믿기지 않는다는 기색을 보이면서 한편으로는 은근한 불안감을 드러낸다.

그 모습에 수연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유리에게 시선을 둔다.

그녀의 시선이 닿자 유리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한다. 하지만 자신의 승리를 장담하였기에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내 승리야! 수연이가 아무리 폭군이어도 나의 두뇌를 뛰어넘을 수 없어!’

그것은 그녀의 절대적인 확신.

그랬기에 유리는 수연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을 수 있었다.

“유리 네 무대는 잘 봤어.”

마치 아랫사람을 칭찬하는 듯한 담담한 말투.

자신이 하급직원이 된 듯한 느낌에 유리는 순간 울컥했지만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지금 수연이는 날 이기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도발하는 거야. 걸려들어서 손해를 보면 안 돼.’

그러면서 울컥하기는커녕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가식적이었지만 치열한 수 싸움을 벌이고 있는 지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나았다.

“고마워.”

“이 말은 진심이야. 설마 이 정도 무대를 보일 줄이야. 나도 다른 애들과 같은 선택을 했다면 큰 곤욕을 치를 뻔했어.”

“…….”

그 말은 다른 멤버들과 다른 종류의 곡을 추구했다는 이야기.

미소 짓고 있던 유리의 표정이 순간 당황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한다.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바였다.

‘설마 수연이가 나랑 같은 생각을 했다고?’

“수연아, 그게 무슨 말이야?”

애써 표정을 수습하며 유리가 묻는다.

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그것을 순순히 말해줄 리 없다.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은 수연은 모두가 쩔쩔매던 유리를 마치 어린 아이 다루듯이 하며 말한다.

“그건 보면 알 거야.”

“…….”

그 말에 입술을 꼭 깨무는 유리였다.

자신들을 발라버리고(?) 있던 유리가 역관광 당하자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는 소녀들이었다.

“자, 시작된다.”

그 분위기를 즐기듯 수연은 자신에게 병장이라는 별명을 내려준 포즈를 취하며 모니터를 바라본다.


한편, 성공적인 무대를 펼친 재석은 무대 뒤로 내려온다.

그리고 굳어있는 명수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사과를 한다.

“미안, 명수 형. 나도 이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어.”

무한도전 촬영을 하면서 가장 승리에 집착한 것이 바로 명수였다.

경제권을 빼앗긴 유부남의 비애일까?

금 한 냥이라는 월척을 낚기 위해 명수는 멤버들 중에서 가장 큰 탐욕을 드러냈고, 가장 열정적인 노력을 바쳤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재석으로서는 자신의 승리가 거의 확실해진 지금 상황에 그에게 미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공과 사는 분명해야 하는 법. 자신 또한 1위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기에 최선을 다한 것이다. 다른 멤버들을 압도할 무대를 선보인 것에 재석은 후회하지 않았다.

재석의 말에 명수의 시선이 그에게 향한다.

곧이어 터져 나올 호통을 예상하며 재석이 뒤로 물러날 준비를 했지만 명수의 입에서 호통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응?”

의아한 표정을 지은 재석이 명수를 바라본다.

그러자 비장하게 빛나는 그의 두 눈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1위를 하기 위해 저 정도로 비장한 분위기를 발한다는 것인가?

재석은 자신도 압도되는 것을 느꼈다.

뒤이어 흘러나온 명수의 짧은 한 마디.

“잘 지켜보도록 해.”

“으응…….”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인 재석을 바라보던 명수가 무대 위로 걸음을 옮긴다. 그 모습이 마치 전쟁터에 참전하는 병사의 모습과도 같아 재석은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것이란 말인가.


와아아아아!

조명과 함께 명수가 모습을 드러내자 관객들은 전 무대의 열기가 식지 않았는지 뜨거운 함성으로 명수를 맞이한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다.

지금 이 환호가 자신에게 향하는 것이 아닌, 재석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달라질 거다!’

굳은 결의가 넘쳐나는 명수의 눈!

그와 함께 MR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그가 선택한 테마는 다름 아닌 화산! 달리 볼케이노라 불리는 명수의 곡은 이열치열이라는 말에 가장 뜨거운 것을 본능적으로 고른 소재였다.

난해한 소재였지만 수연과 합작으로 명수는 화산의 매력을 완벽하게 살려낸 곡을 완성할 수 있었다.

본인 스스로 놀랄 정도로 대단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곡이었다.

허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세상 그 무엇과도 부딪쳐도 깨지지 않을 듯한 굳센 기세가 명수에게서 느껴지고 있었다.

그 아우라가 관객들에게도 전해진 것일까.

재석의 무대에 환호하던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명수의 모습에 압도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 사이 흘러나온 MR의 박자에 맞추던 명수가 본격적인 노래를 시작한다.


뜨거운 나의 열정은 Great Volcano.

언제나 앞길을 바라보고 달려가지.

그런 내 앞에 나타난 얼음공주.

차디찬 레이저로 나를 압박하지.

오! 난 아직 해낼 수 있어요!

오! 난 아직 더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제발! 그러니 제발!

더 이상 구박만은 하지 마세요!


자신이 당했던 모든 것을 토해내며!

여름 콘서트 가요제에 자신의 승리 따위는 필요없다!

오로지 밖에서 자유를 누리던 자신에게 안팎이 일치된 삶을 느끼게 해준 그 원수에게! 오늘 이 노래를 바칠 것이다!


차디찬 얼음공주의 눈에 서린 그것은.

날 단숨에 녹여버릴 뜨거운 Volcano

제발 좀 누가 그녀를 좀 말려주오,

난 오늘도 그녀를 만나러 가야만 해.

이것은 지옥으로 가는 특급 지하철.

누가 날 좀! 제발 날 좀! 구해주세요.


“…….”

명수의 노래에 모니터를 주시하던 소녀들은 침묵하였다.

당사자인 수연 또한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그것만 보아도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동안 모니터와 수연의 모습을 번갈아 바라보던 소녀들.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태연이 가까스로 입을 연다.

“이거 수연이 행실을 낱낱이 고해바치는 노래 아니야?”

명시카 팀은 와해되었다.

싴병장은 디스(Diss) 당했다.


수연은 억울했다.

명수가 기존에 자신과 상의하여 완성한 곡이 아닌, 다른 곡을 부르자 실망감이 절로 들었던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새롭게 개사된 가사는 다름 아닌 자신을 정면으로 비방하고 나서는 가사였다.

그 가사를 듣는 제3자에게는 새롭게 들릴지 모르나 당사자인 수연의 입장에서는 전혀 아니었다.

명백히 자신을 디스하는 곡이었던 것이다.

힙합에서 누군가를 디스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설마 그 대상이 자신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어째서!

어찌나 억울했던지 열정적인 무대를 펼치고 있는 명수에게 달려가 당장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신은 그저!

명수가 딴청 피울 때 구박을 했을 뿐이고!

명수의 진도가 지지부진 했을 때 눈치를 줬을 뿐이고!

게으름을 피우지 못하게 중간중간 점검을 했을 뿐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자신이 저렇게 가혹한 디스를 당해야 한단 말인가.

1등을 차지하기 위해 명수에게 했던 자신의 행동을 조용히 떠올리던 수연.

문득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심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심하긴 심했네.’

자신은 설거지 면제권을 차지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명수를 갈궜을 뿐이지만 당사자인 명수에게 있어서는 무척 고단했을 것임이 분명했다.

명수의 디스하는 가사를 듣고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수연이었다.

그녀의 그러한 생각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멤버들은 은근한 어조로 수연을 약올리기에 바빴다.

“우와! 정말 저랬던 거야? 수연이 너 심하긴 심했다.”

“그러게, 명수 오빠는 완전 지옥을 겪었을 텐데?”

“수연이 네가 그런 면모가 있긴 하지만 설마 저렇게 할 줄이야…….”

“언니, 저건 좀 심했어요.”

“제시! 저렇게 난폭하게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올 수 있어.”

기타 등등 시시각각 이어지는 멤버들의 말에 수연은 순간 울컥했다가 가까스로 성질을 참아낸다.

자신의 지지 세력마저 등을 돌리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섣불리 폭군의 기질을 발휘했다가는 오히려 역관광 당하기 십상이었다. 다시는 그때처럼 역관광을 당하지 않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기에 수연은 간신히 자신의 성질을 참아낼 수 있었다.

‘두고 보자, 이것들.’

속으로는 자신의 성격을 박박 긁어놓은 멤버들을 벼르며.

그렇게 수연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있는 사이, 명수는 자신이 직접 개사한 곡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처음 여름 가요제를 개최할 때 지은 자신의 가사는 소위 말하는 히트곡을 짜깁기한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수연에게 갈굼을 당하면서 그의 뇌는 풀가동되는 것 마냥 창조적인(?) 가사를 만들어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완성된 곡이 바로 지금 이 곡이다.

자신을 박박 긁어놓은 얼음공주를 정면으로 비방하고 나서는 곡!

각오는 충분했다!

‘난 무너지지 않아!’

목숨을 건 명수에게 두려운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앞만 보고 돌진할 뿐.

얼음공주가 이 곡을 듣고 눈에 무시무시한 얼음 레이저를 뿜어내며 전신에 살이 에일 듯한 아우라를 발산하여도 자신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왜냐고? 여기에서마저 물러선다면 자신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가련한 처지에 놓이기 때문이다.

‘결투다, 얼음공주 제시카!’

노래를 부르는 명수의 눈에 결연한 의지가 서리기 시작한다.

와아아아아아!

그리고 그의 노래가 이어질수록 관객들은 더욱 더 열광하며 명수의 노래에 호응하기 시작한다.


명수의 무대를 끝으로 모든 곡이 끝난다.

무한도전 여섯 멤버들이 펼친 여름 가요제 콘서트.

그 결과물은 다른 사람이 생각하기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단한 파워를 담아내고 있었다.

첫 무대의 시작을 끊은 형돈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명수의 디스 곡까지.

비록 홍철의 노래가 케로로 삽입음이 들렸지만 전체적인 완성도를 봐서는 무척 훌륭했다.

어차피 케로로 삽입음은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삭제를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명수의 무대가 끝나고, 관객들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재석을 비롯한 다른 무한도전 멤버들이 위로 올라온다.

그리고 대기실에서 무대를 지켜보던 소녀시대 멤버들은 가까운 로열석을 지정받아 그곳에 앉는다.

모든 무대가 끝난 지금, 창현의 총 심사평을 듣고 순위를 판가름해야 한다.

“무대 어떠셨나요? 즐거우셨나요?”

와아아아아아아!

함성으로 화답하는 관객들.

그 대답에 재석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모두 만족하신 것 같으니 다행입니다. 그럼 모든 무대가 끝난 지금, 저희들의 곡을 직접 작곡해주신 현 씨의 총 심사평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오니 관객 여러분들께서는 자리에 앉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차하면 좋은 이벤트가 일어날 가능성도 높으니 말입니다.”

묘한 뉘앙스를 풍기며 말을 끊어낸 재석.

그의 말이 끝나자 언제 모습을 드러냈는지 창현이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내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었다.

처음 모습을 드러내 조용히 앉아 있었지만 무한도전 멤버들의 열정적인 무대에 어느덧 존재감이 잊혀진 창현이었다.

그렇기에 조명이 비춰진 지금,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와아아아아!

조명이 창현을 비추자 관객들은 함성을 내지르다가 조용히 손을 든 그의 행동에 입을 다문다.

사람들이 침묵하자 펜을 든 창현은 무언가를 꼼꼼히 체크하더니 마이크를 들어 입을 열기 시작한다.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인 심사 평가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모든 분들이 훌륭한 무대를 선보였으며, 각각의 개성이 잘 드러난 무대라고 생각합니다. 관객 여러분들께서는 수고하신 무한도전 멤버분들을 위해 박수를 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짝짝짝짝짝!

와아아아아!

능숙한 창현의 진행에 관객들은 박수와 함께 함성을 질러 무한도전 멤버들의 열정적인 무대를 환호해주었다.

그러자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꾸벅 숙이는 무한도전 멤버들.

그 모습을 보며 싱긋 미소를 지은 창현이 본격적인 심사평가를 시작한다.

“그럼 지금부터 심사평가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 곡을 부른 ‘불족발’의 정형돈 씨.”

“옙! 제 곡입니다.”

창현의 호명에 형돈이 뻣뻣하게 굳은 채로 앞으로 나선다.

회식 자리에서 편하게 그를 대할 수 있게 되었지만 지금은 심사위원으로 나선 창현이다. 그의 평가에 따라 순위가 매겨질 것이므로 당연히 딱딱하게 굳은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 자신의 무대를 선보이고 관객들의 반응을 보았을 때, 처음이라는 약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1등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하지만 뒤이어 펼쳐진 다른 멤버들의 무대는 충격 그 자체.

자신이 1등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싸악 가셔 있었다.

전진의 차가워 퍼포먼스라던가, 준하의 본격 AR 도움, 그리고 재석의 감미로운 멜로디는 형돈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도 최소한 4위!’

케로케로거리던 홍철과 본격 제시카 디스 곡을 부른 명수만큼은 확실하게 이길 수 있으리라 확신하는 형돈이었다.

그들마저도 이기지 못하면 자신은 그야 말로 형편없음 그 자체일 것임이 분명하리라.

형돈이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 사이 창현이 총 심사평가를 시작한다.

“정형돈 씨의 무대는 무척 훌륭했습니다. 불족발이라는 테마를 잘 살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의미를 전달하는데 성공하였고, 곳곳에 펼쳐진 퍼포먼스와 마지막에 가미된 족발 드롭킥 퍼포먼스는 관객들에게 큰 인상을 남기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후한 심사평가에 형돈은 여유를 되찾고는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한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말은 형돈이 바라던 것이 아니었다.

“다음은 전진 씨.”

“자, 잠깐만요.”

자신의 순위를 알려주지 않은 채 다음 순번으로 넘어가려는 창현의 행동에 형돈이 제지를 한다.

그에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자, 형돈은 자신의 궁금증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왜 제 순위는 알려주지 않으시는 지?”

그렇게 물음을 던지는 형돈의 마음은 두근두근 떨리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순위가 하위권으로 곤두박질 칠 수도 있는 노릇이었으니까.

그에게는 반드시 1등을 해야 할 이유가 존재하고 있었다.

바로 자신의 파트너인 수영이 연습하는 내내 자신에게 1위를 하라고 세뇌 아닌 세뇌를 시켰기 때문.

또한 금 한 냥이라는 상금이 무척 탐났기에 형돈은 내심 창현의 평가를 기다리며 자신이 1위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물음에 창현은 피식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가 묘한 불안함을 동반하여 잔뜩 긴장하는 형돈.

어떤 대답이 나올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그를 향해 창현이 기대감 깨버리는 말을 한다.

“순위는 마지막 박명수 씨 심사평가를 한 뒤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

한껏 기대감을 끌어올리다가 곤두박질치는 기분에 형돈의 표정이 볼만하게 변했다.

그 모습에도 불구하고 창현은 냉정하게 저버리며 다음 순서인 사람을 부른다.

“다음은 전진 씨.”

“옙!

얼떨떨한 표정을 지은 형돈을 제치고 전진이 나선다.

그런 전진을 보며 창현이 짤막하게 말한다.

“훌륭한 무대였습니다.”

설마 1등이 전진이란 말인가!

모두의 표정이 급변할 때, 뒤이어진 창현의 말에 한시름 놓은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안무 또한 훌륭했고 무대 또한 훌륭했습니다. 프로페셔널함과 예능이 적절하게 섞인 무대라고 해야 할까요? 무척 보기 좋았고,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무대였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어디에도 전진이 1위라는 이야기는 없었다.

후우우우!

이번 무대는 홍철과 명수를 제외하고 누가 1위를 해도 이상하지 않았기에 무한도전 멤버들은 전진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위라는 확언이 나오지 않은 이상 전진이 1위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던 것이다.

간절히 1위를 바라던 다른 멤버들로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는 순간이었다.

전진 또한 창현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결국 그의 입에서 1위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리라.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 지 창현은 다음 사람을 부른다.

“다음은 노홍철 씨.”

“예! 여기 노홍철 앞으로 나왔습니다!”

다른 멤버들에게 하위권이라 확정 받는 홍철이었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속은 시꺼멓게 타오르고 있었다.

고 퀄리티를 보여준 다른 멤버에 비해 자신의 무대는 그야 말로 저질 그 자체!

케로케로거리던 것을 생각하니 마이페이스인 홍철이라 해도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어쩌자고 그런 무대를 펼친 것인지.

복잡한 그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창현이 본격적인 심사평을 시작한다.

“노홍철 씨 무대도 훌륭했습니다.”

“예?”

최악이라 해도 할 말이 없던 홍철에게 있어 창현의 심사평은 의외 그 자체였다.

그 모습에 창현은 홍철의 속내를 짐작했는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훌륭했다고 말했습니다. 태양이라는 어려운 소재를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사 또한 무척 적절했습니다.”

가사가 적절하다니!

설마 케로케로거리던 것이 적절했단 말인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 홍철을 보며 창현이 말한다.

“케로케로거리던 것이 무척 독창성이 높더군요. 하지만 곧 발매될 앨범에는 빼주시면 감사할 듯 싶네요.”

“그, 그건 제 소관이 아니라…….”

말하면 우습겠지만 자신은 소녀시대 막내 주현에게 꽉 잡혀있는 상태.

차마 말하기 뭐해 얼굴을 슬쩍 붉히는 홍철이었다.

“다 알고 있으니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셔도 되요. 어쨌든 저는 노홍철 씨의 곡이 지닌 독창성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그 무엇도 두려울 것 없는 홍철에게 상극인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주현이었다.

사실 그 또한 케로케로거리던 소리를 빼고 싶은 것이 간절했던 차, 창현이 그 고행(?)을 스스로 해준다고 하니 그로서는 두 팔을 벌려 반기는 바였다.

홍철의 평가가 끝나고 그 다음 이어진 것은 준하였다.

앞으로 나선 준하를 보며 창현은 역시나, 호평을 내린다.

“정준하 씨 또한 무척 훌륭한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그 누가 다른 분의 도움을 받아 피처링을 할 발상을 했을까요! 곡의 완성도를 높이려던 그 점을 높이 평가하는 바입니다.”

“예, 감사합니다.”

싱글벙글 웃음을 지으며 창현의 말에 대답하는 준하였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지은 창현이 준하에게 묻는다.

“그런데 조금 아쉬운 게 있다면, 랩퍼를 맡은 분이 조금 미숙하시더군요. 그 부분이 좀 더 완벽하게 이루어졌더라면 1등을 해도 손색이 없었을 텐데 아쉬웠습니다.”

“……!”

청천벽력과도 같은 창현의 말.

그의 호평에 내심 자신의 승리를 점치던 준하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자신이 1위를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도리어 AR이 발목을 붙잡는 꼴이라니.

“분명 보컬 부분 같은 건 괜찮았지만 랩은 조금 어설프더군요. 좀 더 완숙한 랩을 구사하는 분을 초빙했더라면 좋은 점수를 받았을 텐데 안타깝습니다.”

호평 일색이던 다른 멤버들과 달리 준하는 혹평을 받고 있는 상황.

창현의 말에 주먹을 꾸욱 움켜쥐는 두 사람이 있었다.

‘창현이 너! 감히 나의 완숙한 랩 실력(?)을 비판하다니!’

‘태연이가 도와줘서 1등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발목이 잡힌 꼴이잖아!’

태연과 순규였다.

한 사람은 분노하고, 한 사람은 안타까워하고 있는 상황.

결국 혹평을 받은 준하는 처음 의기양양했던 모습과 달리 축 처진 어깨로 물러선다.

다음으로 나선 사람은 이번 여름 가요제 콘서트에서 가장 폭발적인 무대를 선보인 재석이었다.

그가 앞으로 나서자 창현이 대뜸 말한다.

“유재석 씨는 정말 훌륭한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자신의 선전을 미리 체감해두었기에 재석은 마치 M본부 대상을 수상하는 것 마냥 여유로운 미소를 띠면서 과하지 않게 칭찬을 받아들인다. 이 모습은 큰 상을 여러 차례 받아본 사람만이 시전 할 수 있는 적절한 여유와 겸손을 겸비한 행동이다.

“유재석 씨는 떡볶이라는 흔한 소재를 가지고 첫사랑을 절묘하게 엮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게 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곡이라 생각하며, 그러한 발상을 한 유재석 씨에게 찬사를 보내는 바입니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창현의 칭찬에도 불구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재석.

그 모습에 창현은 살짝 고개를 갸웃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예, 말씀하십시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감대를 일으키게 만들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맞습니다.”

“그럼 현 씨 또한 그렇다는 건가요?”

“…….”

날카롭게 파고드는 재석의 말에 순간 할 말을 잃은 창현.

와아아아아아아!

그 모습을 본 관객들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까지 창현의 말에 휘둘리던 무한도전 멤버들과 달리 재석은 능숙하게 자신의 페이스로 끌어당기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거 잘하면 현의 첫사랑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방송 출연을 거의 하지 않는 현이었기에 그 대답은 그만큼 희소가치가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

“대답해주십시오!”

침묵하는 창현을 재촉하며 재석이 기세를 실어 말한다. 그럴수록 관객들의 호응은 더욱 커져갔고, 재석의 어깨는 의기양양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하하!”

어색하게 웃음을 짓는 창현. 설마 자신의 빈틈을 이렇게 파고들 줄 몰랐기에 적잖게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다 물러서지 않을 듯한 재석의 모습에 결국 한숨을 푹 내쉰다.

부인할 수 없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죄송합니다만 전 아직 첫사랑을 해보지도 못했습니다.”

“에이!”

우우우우우!

재석의 야유와 함께 관객들도 야유를 한다. 창현의 대답은 극히 일반적이면서도 가장 하기 쉬운 대답이었던 것이다.

“정말입니다. 일전에도 밝힌 적이 있지 않습니까?”

관객들의 야유에 창현이 변명하듯 대답한다.

그 모습에 관객들은 물론 재석 또한 더 이상 재촉을 할 수 없었다. 첫사랑을 해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극히 평범한 변명이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없다고 하는 사람에게 다그쳐서 없는 걸 있는 걸로 만들기에 뭐했다.

“또한 공중에 올라가서 메뚜기 춤을 춘 것도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유재석 씨는 고소공포증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극복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사실 방금 전에 출 때도 무척 무서웠습니다. 하하!”

“열심히 연습하셨군요.”

“…그렇다고 해야겠죠?”

잠깐의 침묵. 그리고 유리를 힐끔 보며 말하는 재석의 행동.

그 모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창현이었기에 순간 피식 웃음이 흘러나올 뻔한 것을 참아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그럼 마지막 박명수 씨.”

창현의 말에 재석이 뒤로 물러나고 명수가 앞으로 나선다.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앞으로 나서는 명수. 하지만 잠시 후 자신에게 들이닥칠 최후를 직감하고 있는 것일까.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의 다리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박명수 씨!”

“어? 아니, 예? 예?”

얼떨떨한 표정으로 창현의 부름에 대답하는 명수.

그의 모습을 본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특히 그가 왜 덜덜덜 떨고 있는지 알고 있는 무한도전 멤버들은 배를 붙잡고는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가늘게 떨고 있는 명수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애처롭게 만들고 있었다.

그 또한 명수가 무슨 이유로 떨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노래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미소를 지은 채 말합니다.

“훌륭했습니다.”

“예… 예?”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되묻는 명수. 명백히 수연을 디스한 곡이 훌륭하다고 하니, 그로서는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 창현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에 창현이 뒤이어 평가를 한다.

“훌륭했다고요. 아주 감정이입이 잘 되시던 걸요? 다른 곡들과 비교해서 최고의 감정이입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칭찬인지 욕인지.

아니, 적어도 칭찬의 의미로 말하는 것임이 분명했다.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명수.

자신은 한껏 분노를 담아 불렀는데 그것을 도리어 잘했다고 하니, 명수는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고 있었다.

“에 그러니까 지금… 제가 잘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만?”

믿기지가 않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 표정이 우스웠기에 관객들은 웃음을 지었고, 창현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살짝 웃음을 지은 채 명수에게 말한다.

“제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감정 이입입니다. 노래를 부르는 기교가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노래 가사에, 멜로디에 담겨 있는 감정을 담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 가장 힘들지요. 그런 면에서 박명수 씨는 제가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말한 창현은 무한도전 다른 멤버들을 둘러본다.

그들은 멍한 표정을 지은 채 명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과 파트너를 이룬 제시카를 완벽하게 디스하는 곡을 써버린 명수가 설마하니 창현에게 가장 후한 점수를 받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믿기지가 않는 상황이어서 그들은 어안이 벙벙하였다.

그들의 모습이 더 웃겼기에 창현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물론 다른 분들도 감정 이입이 뛰어났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향한 박명수 씨의 분노가 절절하게 묻어나오는 노래는 다른 무대 중에서 가장 뛰어났다고 생각되네요.”

“그, 그럼 박명수 씨가 우승이라는 건가요?”

얼떨떨한 안색으로 재석이 명수를 힐끗 가리키며 묻는다.

그 물음에 창현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습니다. 우승은 바로 박명수 씨입니다.”

와아아아아아!

창현의 선언에 관객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른다.

그들로서는 누가 1등을 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모두가 뛰어난 무대를 선보였다.

특히나 마지막 무대를 선보인 명수는 자신의 분노가 다른 사람에게 생생하게 전달될 정도로 뛰어난 감정 이입을 자랑했기에 창현의 기준에 있어 그가 1등을 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단지 소녀시대 멤버들과 무한도전 멤버들만 이해하기 힘든 우승이 아닐 수 없다.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어떻게 명수 형이! 저 팀 와해된 거 아니었나?”

무한도전 멤버들은 경악하며 그렇게 외쳤지만 이미 승부는 판가름 난 상태였다.

자신이 1등 할 줄 몰랐기에 명수는 어리둥절하면서 1등했다는 기쁨에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창현이 다가가 명수에게 메달을 걸어주고, 트로피를 건넨다.

“금 한 냥 가량의 메달입니다.”

금 한 냥에 달하는 메달을 보며 명수가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묵직한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무게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힘이 불끈불끈 솟아나고 있었다.

이걸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명수를 보며 무한도전 멤버들은 부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무한도전 멤버들을 향해 썩소를 지어 보인 명수는 메달을 들어 진한 입맞춤을 하며 왼손에는 트로피를, 오른손에는 메달을 번쩍 든다.

와아아아아아!

승자의 기쁨이 그대로 전달되는 명수의 행동에 관객들이 함성을 지른다.

“우하하하하!”

그렇게 한껏 1등의 기분을 만끽하며 명수가 무한도전 멤버들을 약올리고, 관객들을 향해 기쁨의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을 때, 스태프 몇 명이 후다닥 올라온다.

“박명수 씨 좀 잡아주시겠어요?”

“…….”

PD의 말에 무한도전 멤버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한껏 1등에 도취해 승자의 기분을 만끽하는 명수에게 슬그머니 접근하기 시작한다.

늙은 악마의 감각은 녹슬지 않았다.

그는 스산한 기운이 자신을 향해 덮쳐오는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어느덧 지척에 접근하여 자신을 붙잡으려는 여러 개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야 말로 찰나의 순간!

명수는 알 수 없는 위협을 느끼고는 곧장 도망치려 하였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자신에게 있어 유익한 일은 아닐 터.

“잡아!”

도망치려는 명수를 보며 재석이 외쳤고, 순식간에 사방을 점한 무한도전 멤버들이 명수를 포위한 뒤 단단히 포박한다.

무한도전 프로젝트인 <돈 가방을 들고 튀어라!>에서 이미 명수의 저력을 실감한 그들이었기에 방심하지 않고 차분하게 몰이 사냥을 하여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뭐하는 짓이야, 이거!”

홍철과 전진에게 양팔을 단단히 제압당한 명수가 바동거리며 반항을 했지만 그의 힘이 다른 멤버들을 이길 정도가 될 리 없다.

그저 무의미하게 바동거리며 애처로운 모습만 보일 뿐.

“…….”

갑자기 명수를 포박하는 무한도전 멤버들을 보며 관객들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그들로서는 지금 상황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파악이 되지 않고 있는 듯하다.

그 사이 앞으로 나선 PD가 마이크를 들더니 관객들을 향해 말한다.

“이번 여름 가요제 콘서트는 기부를 위해 기획된 콘서트입니다. 제작비용을 뺀 모든 것은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쓰일 예정이며, 박명수 씨에게 수여된 금 한 냥 또한 불우이웃을 위해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왜 내 금 한 냥을 네 맘대로 기부해! 난 절대 못해! 안 해! 안 할 거야!”

PD의 말에 몸을 뒤틀며 격렬하게 항의하는 명수.

어떻게 획득한 금 한 냥인가!

그야 말로 모진 구박과 수모를 이겨내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난 산물이 아닌가!

그런데 그 금 한 냥을 기부하겠다니!

절대 빼앗길 수 없다는 생각에 명수는 필사적으로 반항을 하였다.

하지만 한 손으로 열 손을 막을 수 없는 법.

이미 양팔은 홍철과 전진에게 제압되어 있었기에 명수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조용히 다가오는 스태프를 간절한 시선으로 바라볼 뿐.

그렇게 바라보더라도 봐줄 리가 없겠지만.

어느덧 명수 앞에 도달한 스태프는 양손을 뻗어 명수의 목에 걸려있던 메달을 빼내기 시작한다.

“안 돼! 절대 안 돼!”

빼앗길 수 없다는 일념으로 외치는 명수였지만 이미 금 한 냥 메달은 그의 목에서 빠져나와 PD의 품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

허탈한 표정으로 메달을 쫓는 명수.

그의 모습에 PD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한다.

“박명수 씨가 기부한 금 한 냥은 좋은 일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재빠르게 무대에서 사라지니, 명수로서는 무언가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그저 허망한 시선으로 금 한 냥을 들고가는 PD를 바라볼 뿐.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명수의 얼굴에 잔뜩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본격 여름 가요제 콘서트가 끝났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이어진 콘서트였지만 관객들은 모두 만족한 표정으로 콘서트를 즐길 수 있었다.

다만 이곳에서 만족하지 못한 사람은 딱 한 명뿐.

금 한 냥을 빼앗겨버린 명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마치 세상을 다 산 듯한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명수.

그 모습에 무한도전 멤버들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말을 걸고는 했지만 무기력한 모습으로 축 늘어진 명수는 도통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 일어서길 기다리고 있을 뿐.

그때, 명수의 정신을 되돌아오게 만든 한 줄기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명수 오빠…….”

“……!”

순간 벼락을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떠는 명수.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옮겨 뒤를 돌아보기 시작한다.

그곳에는 자신을 바라보는 수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관객석에서 시상식을 지켜보던 소녀시대는 콘서트가 끝나자 무한도전 멤버들에게 인사를 하며 뒤풀이 회식에 같이 참가할 요량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리고 수연은 자신의 파트너인 명수에게 온 것이고.

“하, 하, 하! 시카야, 안녕?”

어색한 웃음을 짓는 명수.

온몸에 힘이 빠져 주저앉아 있던 그는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고 있었다.

여차하면 도망칠 것이라는 예감을 강하게 주는 자세였다.

그의 머릿속은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금 한 냥을 빼앗긴 충격으로 잊고 있던 것이 하나 존재했다.

바로 자신이 정면으로 비방하고 나선 수연의 존재를 잊고 있던 것.

콘서트가 끝나면 재빨리 사라질 생각이던 명수는 금 한 냥을 빼앗기면서 그녀의 존재를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던 것이다.

치밀한 늙은 악마의 결정적인 범실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저 눈을 보고 있자니, 명수는 잘못 걸리면 자신의 최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명수 오빠.”

뒤로 슬금슬금 물러서는 명수를 보며 수연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한다.

‘안 잡힐 수 있을까?’

무대 위에서 모든 힘을 소모한 명수는 자신이 도망칠 경우 수연의 손에 잡히지 않을 확률을 계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녀의 손에 벗어날 수 있을 확률은 거의 전무.

결국 그녀의 손에 떨어진 상태와 마찬가지란 이야기였다.

“이렇게 최후를 맞이하는 건가, 나는. 집에서도, 밖에서도…….”

서서히 다가오는 수연을 보며 자신의 최후를 짐작한 듯 눈을 살며시 감는 명수.

자신의 나이 올해 서른아홉.

길지 않은 인생 이대로 시들어버리는 듯했다.

어느덧 명수의 앞에 다가온 수연.

최후를 직감하던 명수에게 들려온 것은 지옥의 유부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귀곡성이 아닌, 진심이 가득 담긴 미안한 목소리였다.

“죄송합니다.”

“……?”

갑작스러운 사과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뜨는 명수.

그러자 그의 눈에 보인 것은 자신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있는 수연의 모습이었다.

무슨 이유로 사과를 하고 있단 말인가?

멀뚱멀뚱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수연이 말한다.

“제가 1등을 하려고 버릇없게 오빠에게 너무 버릇없게 굴었던 것 같아요. 처음엔 몰랐지만 오빠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걸 깨달아서…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주제 넘게 행동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진심이 절절하게 묻어나오는 수연의 말.

그녀에게 반란을 일으키면서 자신의 최후를 직감하던 명수였기에 갑작스러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다가 그녀가 자신에게 사과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내 표정이 환하게 변해간다.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것이다!

자신에게 기회가 찾아왔다는 것을 깨달은 명수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으며 수연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흠칫하고 놀라는 수연.

그 모습에 명수는 아직까지 자신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입을 연다.

“그래, 용서해주마.”

“정말요?”

살짝 고개를 든 수연의 모습에 명수는 흠칫했지만 한 번 세운 남자의 가오를 그대로 지켜내기 위해 짐짓 태평한 어조로 말한다.

“그, 그래. 그러니 앞으로 그러지 말고.”

“네! 감사합니다! 용서해주셔서.”

명수의 말에 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는 수연.

그 모습에 명수 또한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속으로는 땀을 잔뜩 흘리면서.

얼음공주의 손에서 간신히 살아남는데 성공한 셈이다.


여름 가요제 콘서트를 위해 오늘 스케줄을 모두 뺀 소녀시대는 함께 회식 자리에 참가하여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오랜만에 포식을 하였기에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녀들.

오늘의 이 배부름은 내일 운동으로 빼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오늘은 오늘이고 내일은 내일이란 진리를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들은 당장의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거실에서 축 늘어진 소녀들을 향해 수연이 입을 열었다.

“모두 듣도록 해. 이번 여름 가요제에서 명수 오빠가 1등을 했으니 설거지 면제권은 내 거야. 알겠지?”

“…….”

수연의 말에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녀들.

특히 주현의 표정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나의 참신한 작품이 왜…….’

아직도 자신과 홍철의 합작이 1위를 하지 못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주현이었다.

솔직히 그 정도로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곡은 없지 않았던가.

그런데 1등을 하지 못하다니.

설거지 면제권을 갖지 못해서 그런지 그녀의 표정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그렇게 설거지 면제권이 수연의 손에 쥐어지려 할 때, 손을 드는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유리였다.

“이의 있는데?”

자신 있게 자리에서 일어서는 유리. 평소 수연의 막강한 기도 앞에 맥없이 무너지던 그녀가 아니었다.

“이의 있다고? 어째서? 내가 1등을 한 거잖아.”

감히 자신에게 정면으로 대결해오는 유리를 향해 수연이 얼음 레이저를 쏘아 보내며 단번에 제압하려 하였다.

하지만 유리는 그 시선을 받으면서도 눈썹 하나 꿈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의견을 밝히며 당당하게 그녀에게 반박한다.

“분명 명수 오빠가 1위를 한 건 사실이야. 하지만 수연이 네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잖아. 설마 명수 오빠의 곡에 수연이 너의 도움이 들어갔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웃! 그, 그건…….”

정곡을 찔린 수연이 순간 얼음 레이저를 풀며 움찔한다.

유리의 말마따나 자신이 명수의 곡에 끼친 기여도는 제로.

오로지 자신을 디스하기 위한 일념으로 짜낸 명수의 곡은 그의 혼자 힘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설거지 면제권을 차지한다는 건 말도 안 되지. 안 그래?”

“나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

동의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효연.

그와 동시에 허공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의미심장하게 교환된다.

“나도 마찬가지야.”

수긍하며 일어서는 순규 또한 단호한 어조로 말하며 유리, 효연과 시선을 교환한다.

“수연이 네가 1위를 주장하려면 명수 오빠를 보좌했어야지.”

수영 또한 자리에서 일어선다. 주현을 제외한 모든 멤버가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그녀들 사이에 모종의 협약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을 주도하고 나선 것은 다름 아닌 유리.

명수에게 사과를 하고, 회식 자리에서 다소 의기소침한 그녀의 모습을 보며 유리는 대반란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주현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에게 몰래 이야기를 하였다.

‘수연이가 지금 약해졌어! 지금이 아니면 우리는 영원히 수연이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해!’

그녀들은 폭군 수연의 그늘에 벗어나기 위해 형성된 반 수연 연합군이었다.

“수연이 네가 한 기여도가 없는 만큼 하자가 있는 거라 생각해. 처음부터 설거지 면제권은 우리가 각각 파트너를 도와 1등으로 만들 경우에 주기로 한 거잖아? 그런데 수연이 너는 명수 오빠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으니 그 부분이 성립하지가 않아. 그런 고로 설거지 면제권을 인정할 수 없어.”

“맞아맞아.”

단단히 각오를 한 그녀들은 날카롭게 수연을 몰아붙였다.

그러자 수연의 눈이 날카롭게 변하더니 다시 한 번 얼음 레이저를 시전 한다.

“정말 이러기야, 너희?”

북풍한설보다 차갑게 느껴지는 수연의 날카로운 눈빛.

그녀는 한 명이고, 반 수연 연합군은 네 명이었지만 얼음 레이저에 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아야 했다.

‘여기서 밀리면 죽도 밥도 안 돼. 더욱 더 몰아붙여야 해.’

유리의 지휘 아래 대동단결하는 그녀들.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얼음 레이저를 받아내기 시작한다.

한동안 이어지던 대치.

그 균형이 깨진 것은 얼음 레이저로 막바지까지 몰아붙이던 수연이었다.

“하아! 정말 인정해줄 수 없는 거야?”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봐, 수연아. 네가 우리 입장이었다면 순순히 인정해줄 수 있겠어?”

“…….”

역지사지 논리에 수연은 할 말을 잃었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지금 이 상황이 될 경우 이의를 제기했을 테니까.

침묵하는 그녀를 보며 유리가 미소를 지은 채 은근한 어조로 말한다.

“그렇지?”

“…그건 맞아.”

“그래서 인정할 수 없다는 거야. 그만큼 설거지 면제권은 큰 거니까.”

“알았어. 설거지 면제권은 없는 걸로 하면 되는 거 아냐! 히잉! 너희들 미워!”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법.

팩 토라진 표정을 지은 수연이 몸을 돌려 그대로 방으로 향한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닫힌 문을 보며 수연과 대치하던 멤버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우리가 이긴 거지?”

“이긴 거야! 앞으로 수연이가 폭군 기질을 발휘할 때마다 날 믿도록 해. 알겠지?”

“응응!”

“나도 협력하겠어!”

민심이라는 것은 무서운 법.

폭군의 공포 정치에 늘 두려움이란 병과 사투를 벌여야 했던 소녀들은 유리의 지휘 아래 대동단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야 말로 상황의 반전.

폭군을 따르던 윤아마저도 대세에 따라 유리의 지휘 하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었다.

2008년 7월 17일.

공포 정치로 소녀시대 내에서 군림하던 수연의 독재는 마침내 종말을 고하고 있었다.

“히잉! 나빴어!"

수연은 자신을 매몰차게 대하는 멤버들을 원망하며 곰 인형을 꼬옥 껴안는다.

창현의 신기가 깃든(?) 이 곰 인형이 멤버들의 까칠함을 지워내줄 거라 믿으며.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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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1화 +10 15.04.17 7,376 95 10쪽
37 ▲▲▲▲▲시즌2 시작!▲▲▲▲▲ +5 15.04.17 5,425 65 1쪽
36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6장-108장 +8 15.04.16 6,414 106 230쪽
35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3장-105장 +1 15.04.16 4,245 82 314쪽
34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0장-102장 +2 15.04.16 4,413 68 229쪽
33 마음을 울리는 음악 97장-99장 +1 15.04.16 4,390 63 264쪽
32 마음을 울리는 음악 94장-96장 +1 15.04.16 4,379 80 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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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마음을 울리는 음악 88장-90장 +1 15.04.16 4,929 98 332쪽
29 마음을 울리는 음악 85장-87장 +1 15.04.16 4,712 83 270쪽
28 마음을 울리는 음악 82장-84장 +2 15.04.16 4,914 85 261쪽
27 마음을 울리는 음악 79장-81장 +1 15.04.16 4,580 87 241쪽
26 마음을 울리는 음악 76장-78장 +1 15.04.16 4,753 74 244쪽
» 마음을 울리는 음악 73장-75장 +1 15.04.16 4,939 111 327쪽
24 마음을 울리는 음악 70장-72장 +1 15.04.16 4,755 82 200쪽
23 마음을 울리는 음악 67장-69장 +1 15.04.16 4,742 80 210쪽
22 마음을 울리는 음악 64장-66장 +1 15.04.16 4,956 75 282쪽
21 마음을 울리는 음악 61장-63장 +2 15.04.16 5,259 79 316쪽
20 마음을 울리는 음악 58장-60장 +1 15.04.16 5,251 74 186쪽
19 마음을 울리는 음악 55장-57장 +2 15.04.16 5,596 95 215쪽
18 마음을 울리는 음악 52장-54장 +1 15.04.16 6,511 110 349쪽
17 마음을 울리는 음악 49장-51장 +2 15.04.16 6,422 119 2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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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마음을 울리는 음악 40장-42장 +3 15.04.16 8,909 183 320쪽
13 마음을 울리는 음악 37장-39장 +2 15.04.16 9,615 224 397쪽
12 마음을 울리는 음악 34장-36장 +8 15.04.16 9,524 189 322쪽
11 마음을 울리는 음악 31장-33장 +8 15.04.16 10,355 261 345쪽
10 마음을 울리는 음악 28장-30장 +5 15.04.16 10,660 260 277쪽
9 마음을 울리는 음악 25장-27장 +7 15.04.16 11,040 267 233쪽
8 마음을 울리는 음악 22장-24장 +4 15.04.16 10,924 261 198쪽
7 마음을 울리는 음악 19장-21장 +4 15.04.16 11,492 270 216쪽
6 마음을 울리는 음악 16장-18장 +5 15.04.16 11,544 242 163쪽
5 마음을 울리는 음악 13장-15장 +5 15.04.16 14,536 297 237쪽
4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장-12장 +8 15.04.16 13,738 352 171쪽
3 마음을 울리는 음악 7장-9장 +10 15.04.16 14,556 362 142쪽
2 마음을 울리는 음악 4장-6장 +11 15.04.16 16,843 421 120쪽
1 마음을 울리는 음악 프롤로그-3장 +47 15.04.16 29,906 545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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