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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번 님의 서재입니다.

마음을 울리는 음악

웹소설 > 작가연재 > 팬픽·패러디, 현대판타지

김현우
작품등록일 :
2015.04.16 13:27
최근연재일 :
2015.06.01 17:02
연재수 :
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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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6,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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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1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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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0쪽

마음을 울리는 음악 4장-6장

DUMMY

제4장. 거리에서의 만남.




“오늘은 이걸로 녹음을 마칠게요.”

와아!

혹독한 창현의 프로듀싱이 끝나자 라샤의 세 멤버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Laser> 이후 라샤의 음반 녹음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첫날 창현의 실력을 똑똑히 본 그녀들은 그 이후부터 창현의 요구에 충실하며 노래를 불렀고, 녹음은 첫날보다 느리지만 비교적 순조롭게 이어졌다.

“이 추세라면 금방 끝나겠는 걸?”

현재 라샤는 타이틀 곡 <Yesterday>를 제외한 모든 곡들의 녹음을 끝마친 상태였다.

타이틀 곡을 제외한 다른 곡들의 녹음이 끝나자 석규는 본격적인 영업에 나섰다.

본래 석규는 라샤의 1집 앨범 뮤직비디오를 타이틀 곡 <Yesterday>만 제작하려 하였다. 달콤하면서 부드럽게 스며드는 멜로디는 절로 흥얼거리게 할 만큼 강렬한 마력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이 곡을 듣는 순간 석규가 ‘대박이야!’를 외칠 정도로 뛰어난 곡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곡들도 떨어지지 않는 편인데, 그중에서 석규는 <Laser>란 곡이 라샤의 매력을 잘 살려준다고 판단하였고, 곧장 뮤직비디오 제작에 착수하였다.

다른 곡들을 녹음하고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느라 고된 스케쥴의 연속이었지만 라샤 멤버들의 얼굴은 밝았다.

삼 년의 시간을 땀으로 보낸 후의 데뷔. 자신들이 바쁜 이유가 정말 가수로서 데뷔 시기가 가까워지는 걸 느꼈기에 기쁜 마음으로 뮤직비디오 제작에 참여했다.

석규는 점차 사그라드는 라샤의 관심도를 증가시키기 위해 우선 뮤직비디오 티저 영상부터 제작했다.

처음 시린이 이중적인 매력으로 오프닝을 여는 모습과 미란, 세룬의 매력이 한껏 뽐내는 영상 제작을 통하여 공개하였는데,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아직 데뷔가 결정되지 않았음에도 라샤의 팬 카페가 조직되고, 여기저기 방송에서 러브 콜이 들어올 정도였으니 그 반응이 얼마나 대단한 지 알 수 있다.

이 열기를 이어나가기 위하여 AA엔터테인먼트는 공식적인 발표를 하였다.

라샤는 타이틀 곡 <Yesterday>의 녹음과 뮤직비디오 제작이 완료되면 데뷔를 하겠다고.

네티즌들의 반응이 폭발적으로 이어지면서 석규는 창현에게 타이틀 곡 <Yesterday>의 빠른 녹음을 부탁했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Yesterday>의 진행은 무척 더뎠다.

이는 창현이 거는 기대도가 무척 높아서이기도 하지만 라샤의 멤버들이 갑자기 분위기가 돌변한 <Yesterday>의 분위기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고, 연습 기간이 짧았기에 좀처럼 녹음에 진전이 없었다.

“시린 누나 좀 더 설레는 감정을 담아서 불러주세요.”

“아뇨,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좀 더 부드럽게.”

“그럴 땐 약간 새침하면서 싫지 않은 목소리로요.”

다행히 창현의 조언을 발판 삼아 녹음은 조금씩 진전되고 있었다.

문득 시계를 본 창현은 시간이 늦었음을 깨닫곤 입을 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녹음을 할게요.”

“수고하셨습니다!”

창현의 알림에 인사를 건네는 라샤의 멤버들.

녹음실에서 나오며 그녀들이 미안한 표정으로 창현을 바라본다.

“미안. 내일은 좀 더 열심히 할게.”

“요즘 매일 듣고 연습하고 있어. 나아지고 있지 않아?”

“네. 그건 그래요.”

미란의 말에 창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진도가 더뎠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가속도가 붙고 있다. <Yesterday>의 녹음 절반 정도를 했으니 말이다.

창현의 피곤한 얼굴을 본 세룬이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미안, 창현아. 하지만 녹음이 다 끝나가니 조금만 더 힘내줘.”

“네, 그게 제 일인 걸요.”

밝게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창현의 얼굴에 피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지난 한달 동안 이어진 녹음은 창현을 극도의 피로로 몰아넣었다.

다른 프로듀서와 달리 학교를 다니고 있는 창현이다. 비록 학교에서 공부를 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단지 학교를 나간다는 것만으로도 큰 스트레스가 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자기 위주로 녹음을 진행하는 프로듀서들과 달리 창현은 가수의 상태에 따라 녹음 텐션을 조절했다.

자신 위주가 아닌 타인 위주로 돌아가는 것은 무척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최고의 노래를 녹음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기에 창현은 그렇게 녹음을 강행하였고, 덕분에 매일같이 피곤에 절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내색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지고, 무엇보다 라샤가 힘들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휴우!”

녹음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창현이 곧장 침대에 드러누웠다.

본래 같으면 피곤함을 씻어내기 위해 명상이라도 하겠지만 지금은 그럴 겨를조차 없었다.

몸도 마음도 피곤한 창현은 문득 석규의 말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말한대로네. 세상이 쉽지 않다는 말.”

좋은 곡을 만들기 힘들지만 좋은 곡을 녹음하는 것도 힘들었다.

차라리 자신이 직접 불렀으면 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으며 내일 일정을 떠올렸다.

“하루 종일 녹음이네. 하아! 잠시 거리를 둘러보기라도 해야지.”

그 말과 함께 창현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눈을 뜬 창현은 명상으로 정신을 맑게 한 뒤 아침을 먹고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주말이 가장 골치란 말이지.”

평일에는 출입이 비교적 쉬웠지만 주말에 AA엔터테인먼트로 들어서는 것은 창현에게 있어 골치였다.

라샤의 <Laser> 뮤직비디오 티저 영상이 공개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AA엔터테인먼트로 몰려들은 탓이다.

그 때문에 수많은 팬들은 물론 기자들도 몰려들었는데, 그들이 모인 까닭은 라샤에 대해 취재를 하기 위함도 있지만 그녀들의 노래를 작곡한 가수 ‘현’ 에 대해 취재를 하기 위함도 있었다.

사실 <Laser>의 티저 영상은 매우 일부분에 불과했다.

첫 오프닝을 여는 부분과 각 멤버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분만 공개했는데, 거기서 흘러나오는 멜로디의 작곡이 현이 했다는 소문이 퍼짐에 따라 수많은 문의가 잇달아 들어왔다.

그래서 석규는 <Laser>의 뮤직비디오가 완성되는대로 방송에 보냈는데, 그게 대박이 났다.

라샤 세 멤버의 매력이 드러나는 모습과 특징 있는 멜로디는 대중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게다가 어디서 소문이 흘렀는지 현이 매일 AA엔터테인먼트에 출입한다는 말에 얼굴없는 가수 현의 정체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AA엔터테인먼트로 속속들이 모여드는 실정이었다.

거기에 가다가 자칫 잘못해서 정체를 들키는 날에는 자신의 사생활이 풍비박산 날 것이 분명했기에 현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러면서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옷을 입었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는지.”

석규의 탁월한 사업 수완이 좋긴 하지만 그것이 자신마저 피곤하게 만들자 영 기분이 별로인 창현이었다.

그래서 기분 전환 겸 거리를 둘러볼 생각이었기에 창현은 오랜만에 옷을 꺼내어 입기 시작했다.

음향총서를 익히고 내공을 어느 정도 갖게 되면서 군살이 빠져서 마치 여자처럼 가늘고 긴 팔과 다리를 가지게 되었다.

창현은 그런 자신의 모습이 싫지 않았다. 천성적으로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창현이었기에 오히려 자신의 모습이 흐뭇하기만 했다. 가끔 중성적인 느낌을 갖는다곤 하지만 여장을 하지 않는 이상 여자로 오해받는 일은 없다.

게다가 자신은 근육이 많은 마초 같은 스타일보다는 블링블링한 미소년 타입을 더 좋아하니까 여러모로 대만족이었다.

옷을 꺼낸 창현은 긴 다리를 돋보여주는 스키니를 입고, 허벅지까지 오는 긴 후드 티를 입었다. 그 후 비니와 안경을 쓰니, 평소 창현의 모습과 너무 달라 자칫 다른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거울을 본 창현은 평소와 전혀 다른 자신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OK.”

지갑과 핸드폰을 챙긴 창현은 곧장 집을 나섰다.


거리로 나선 창현은 많은 사람의 시선을 한눈에 받았다.

곧게 뻗은 다리의 각선미(?)가 그대로 드러나는 스키니와 상체를 펑퍼짐하게 가려주는 긴 후드 티. 그리고 눌러쓴 비니 아래로 흘러내리는 머리와 눈을 가려준 안경은 창현으로 하여금 묘한 중성적인 이미지를 풍기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창현의 비주얼이 워낙 좋지 않던가?

길을 지나가는 사람 열이면 아홉은 뒤를 돌아 창현을 바라볼 정도로 창현의 패션은 독특하면서 사람의 눈길을 잡아끄는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창현이 원하는 건 자신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지 시선집중을 안 받는 게 아니었기에 그리 개의치 않으며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어, 여긴?”

길을 걷던 창현의 눈에 애완용 고양이가 눈에 띄었다.

주먹만한 몸통에 오밀조밀한 다리와 머리가 길을 걷던 창현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귀, 귀여운데?”

고양이를 보며 급격하게 마음이 흔들리는 창현.

그동안 혼자뿐인 아버지를 보조하며 사느라 얼마나 외로웠던가? 바깥에 나가면 함께 장난치는 형제, 자매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게다가 그동안 AA엔터테인먼트가 얼마나 힘들었는가?

외롭고 힘들었지만 아버지가 자금난을 겪고 있는 걸 알았기에 그런 내색을 보일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Go&Stop>을 내면서 많은 돈을 벌지 않았는가?

예전엔 어려웠지만 지금은 가능했다.

너무 오랫동안 근검절약(?)이 몸에 배서 그런 듯했다.

‘이참에 한 마리 구해서 키우자!’

결심을 굳힌 창현은 거침없이 펫샵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고양이를 구입했다.

야옹-

창현의 품에 안기자 귀엽게 우는 고양이.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창현은 웃음을 지으며 부드럽게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고양이는 그런 창현의 손길이 좋았는지 미소를 지으며 갸르릉 한다.

“고양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물품이 뭐가 있죠?”

한 번 제대로 키워보기로 마음 먹은 창현은 펫샵 주인에게 물어 고양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물품을 구입했다.

근데 구입할 것이 제법 많아서, 아무 것도 들고 있지 않던 창현의 양손에 두둑하게 짐이 들렸다.

짐이 너무 많다고 판단한 창현은 오늘 밤에 배달해달라고 한 뒤, 대금을 치르고 가게를 벗어나려던 순간이었다.

가게 문이 열리며 발랄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저 오늘도 왔어요. 아앗!”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를 하던 소녀는 갑자기 창현을 손으로 가리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소녀의 시선은 창현의 품에 안겨있는 아기고양이에게 향했다.

소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서, 설마 그 고양이…….”

묻는 표정이 보통이 아니었기에 창현은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했다.

“제, 제가 오늘 구입했습니다만…….”

“아아!”

많이 실망한 제스쳐를 취하는 소녀.

그 소녀를 바라보는 창현의 얼굴에 난감함이 서렸다.//

설마 이 소녀가 먼저 고양이를 사려고 했던 걸까?

창현이 궁금증에 먼저 물었다.

“보아하니까 이 고양이를 사시려고 했나봐요?”

그 말에 소녀가 살짝 놀란다.

“아, 아니. 그건 아니고요. 그게… 우.”

무언가 설명하기가 힘든 사정이 있는 듯 소녀가 우울한 표정을 짓는다.

창현은 그런 소녀를 보곤 슬쩍 걸음을 옮긴다.

“그럼 전 일이 있어서 이만…….”

“자, 잠깐만요.”

가게 밖으로 나서는 창현을 붙잡는 소녀.

창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고양이랑 헤어져서 그런 거죠? 그럼 밖으로 나가죠. 가게에 폐를 끼치는 건 좋지 않으니까요.”

“아, 아, 네.”

창현이 밖으로 나가자, 소녀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창현을 따라나섰다.

하지만 막상 밖으로 나오니 거리에 사람이 무척 많았다.

이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여서 창현이 소녀에게 말했다.

“사람이 많으니 가까운 카페로 가요.”

“네? 네.”

아직까지 당혹스런 감정을 해소하지 못했는지 소녀가 말을 더듬는다.

그 모습이 귀여워 창현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러다 문득 창현은 눈앞의 소녀를 살피게 되었다.

‘키도 나랑 비슷하고 얼굴도 앳된 게 나랑 동갑인가?’

단정 짓기는 힘들었지만 적어도 외양은 그랬다.

고양이를 품에 안아든 창현이 저 앞쪽에 있는 카페로 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데, 뒤에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윽! 저기, 잠시…….”

숨 막히는 듯한 목소리에 창현이 고개를 돌리니 소녀가 인파에 휩쓸려 제대로 오지 못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마치 그 모습이 급류에 휩쓸려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물고기 같아서 창현은 웃음을 흘렸다.

“쿠쿡!”

창현의 웃음 소리를 들은 탓일까?

소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익!”

그러면서 힘 있게 걸음을 내딛을라 했지만 뭐 그게 그거였다.

작은 체구에 얼마나 힘이 있다고 그러겠는가.

창현은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소녀에게 다가가 손을 대뜸 잡았다.

“잠시 실례.”

“어, 어?”

그 말과 함께 강한 힘으로 소녀를 이끌며 인파를 헤쳐나갔다.

고된 여정(?) 끝에 마침내 카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인파를 헤쳐나가는 게 제법 고되었기에 카페 입구에 도착하자 창현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후우!”

그때 창현의 뒤에서 한줄기 목소리가 귀에 스며들었다.

“저기…….”

“네?”

“손 좀…….”

그러고 보니 아직도 손을 꽉 잡고 있었다.

순간 창현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화들짝 놀라 손을 놓았다.

“죄, 죄송합니다.”

당황하는 창현의 표정이 재밌어서 그런 걸까?

소녀가 작게 웃음을 지으며 새초롬한 표정을 짓는다.

“풉! 절 도와주셨으니까 용서해드릴게요.”

왠지 당했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감사합니다. 사과의 의미로 차 한잔 사겠습니다.”

“…고마워요. 사양하지 않을게요.”

여유가 생기자 창현을 바라볼 수 있게 된 소녀. 곱고 블링블링한 창현의 외모에 양볼에 살짝 홍조가 생겨난다.

“흐음!”

카페 안으로 들어선 창현이 메뉴를 보며 고민에 빠진다. 그러다가 소녀에게 시선을 주며 묻는다.

“어떤 걸 마시고 싶은가요?”

“저요?”

소녀는 자신을 가리키며 창현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는 메뉴를 본다. 그리곤 무언가 부끄러운 듯, 머뭇거리며 말한다.

“그럼 딸기 주스요.”

“네?”

순간 자신이 잘못들은 게 아닐까 착각한 창현.

그런 창현의 반응에 소녀가 더욱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따, 딸기 주스라니깐요.”

“아하! 딸기 주스요? 네, 알겠습니다. 쿡!”

“왜 웃는데요!”

“아, 아니에요. 여기 딸기 주스 두 개랑 치즈 케익도 두 개 주세요.”

부끄러움을 못 이겨 화를 내는 소녀를 외면하며 주문을 하는 창현.

그 모습에 소녀가 뿔난 표정을 지으며 창현을 본다.

창현은 그 모습을 애써 외면하다가 아기고양이를 소녀에게 내민다.

“에?”

갑작스러운 창현의 행동에 당황하는 소녀.

그 모습에 창현이 빈 자리를 가리키며 말한다.

“자리 좀 잡아주셨으면 해서요.”

“아, 네.”

그러면서 고양이를 받아든 소녀의 표정이 급격하게 밝아진다.

“가자, 야옹아.”

마치 예술 조각품을 만지듯이 조심스레 고양이를 쓰다듬은 소녀는 부드러운 털 감촉에 미소를 지으며 빈자리로 향한다.

커피를 기다리던 창현은 소녀의 말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야옹이? 설마 저 고양이 이름인가? 정말?”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휘휘 저으며 완성된 딸기 주스와 치즈 케익을 들곤 자리로 향했다.


자리를 잡은 소녀는 고양이와 재밌게 놀고 있었다.

고양이를 쓰다듬고 다리를 잡고 흔들어주면서 놀아주는 소녀는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창현은 맞은 편에 앉으면서 딸기 주스를 내밀었다.

“아, 고마워요.”

“그런데 고양이를 정말 좋아하시나봐요?”

창현은 고양이를 품에 꼬옥 안고 있는 소녀를 보며 물었다.

“네, 그런 편이에요.”

“그런데 왜 고양이를 사지 않으신 거에요? 아! 설마, 고양이 가격 때문에…….”

확실히 중학생 정도 입장에서 아기 고양이를 사려면 무척 힘들 것이다. 가격이 꽤 비쌌으니까.

창현의 말에 소녀가 손을 저었다.

“아뇨, 돈 문제는 괜찮지만 저랑 같이 사는 사람들 중에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아, 그렇군요. 그런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저랑 비슷하게 보이는데.”

“…….”

창현의 말에 순간 살짝 굳는 소녀. 그에 창현이 자기가 무슨 실수를 했나 싶어서 고민에 빠질 무렵, 소녀가 창현에게 물었다.

“혹시 나이가?”

“예? 열다섯인데…….”

갑자기 말없이 일어나는 소녀.

소녀는 창현을 보며 말했다.

“…잠시 일어나시겠어요?”

“네? 네.”

자리에서 일어나는 창현.

그리고 소녀 앞에 서니 두 사람의 키가 별로 차이 나지 않았다. 비록 소녀가 구두를 신고 있고 자신이 아직 성장기라지만 여자와 비슷한 키라는 사실이 새삼 마음 아팠다.

‘내공이 만능은 아니군.’

그렇게 생각에 빠졌을 때, 창현은 갑자기 정강이에서 고통이 몰려오는 걸 느꼈다.

“으악!”

창현의 비명에 카페 안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들었지만 소녀는 개의치 않고 자리에 앉으며 콧방귀를 끼었다.

“흥! 아직 새파란 주제에 날 동년배 취급한 벌이에요.”

아직도 고통이 가시지 않는 다리를 문지르며 창현이 물었다.

“으으! 몇 살인데 그러는 건데요?”

“저요? 열여덟 살이에요.”

“…….”

소녀의 말에 창현은 한순간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저런 겉모습을 하고 열여덟 살이라니? 말이 되는가?

창현의 얼굴에 불신감이 떠올랐다.

“열여덟? 거짓말 아닌가요?”

“못 믿겠나요? 흥! 이걸 보시죠!”

지갑에서 무언가를 꺼내들더니 내미는 소녀. 그것은 틀림없는 주민등록증이었다.

뒷자리는 가려서 보이지 않았지만 앞부분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890309

자신이 92년생이니 무려 세 살이나 많은! 열여덟 살이란 말이 된다.

“헐.”

창현의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런 창현의 반응에 소녀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는다.

“훗! 내 나이가 더 많지? 그러니 말 놓을게. 너는 나를 누나라 부르렴.”

“이럴 수가. 딱 봐도 나랑 동급생 필이었는데.”

처음부터 자신과 동갑이란 느낌이 강렬해서였을까.

눈앞의 소녀가 누나라 부르라는 말이 억울한 창현이었다.

동급생이란 말 때문일까.

창현은 순간 소녀의 이마에서 빠직 하는 효과음을 들었다.

동시에 엄습해오는 방금 전 느꼈던 강렬한 기운.

정강이를 차였을 때 느꼈던 그것이었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창현은 재빨리 말을 이었다.

“하하! 동급생이라니, 말도 안 되지요. 딱 봐도 누나 필인데. 안 그래요? 태연 누나.”

주민등록증에서 보았던 이름을 떠올리고는 재빨리 누나 소리를 붙이는 창현.

누나 소리와 창현의 아부에 한결 기분이 풀린 탓인지 소녀의 표정도 본래대로 돌아온다.

“흥! 누나라고 했으니 용서해주겠어. 하지만 다음부터는 얄짤 없을 줄 알아.”

“예이예이, 하해와도 같은 용서에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방금 전 처음 보고 알게 된 사이였지만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친해진 창현과 태연이었다.

호칭을 정립하고 한결 여유를 갖게 된 창현은 태연의 얼굴이 어디서 보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SM연습생이라던 주현을 조사하다가 발견했던 사실.

‘태연, 태연…? 설마, 그 태연인가?’

백문이 불여일견이고 백견이 불여일행이라.

행동하는 것이 제일임을 아는 창현은 자신의 궁금증을 드러냈다.

“누나, 혹시 소녀시대란 그룹에 속해 있어요?”

바로 반응을 보이는 태연. 참 솔직하다.

“으응? 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

“하하! 제가 그쪽으로 관심이 많아서요. 그나저나 아이돌 그룹의 멤버랑 만나다니 영광이네요.”

“영광은 무슨… 아직 데뷔도 안했는데.”

“데뷔 전부터 이렇게 아는 사람이 있을 정도잖아요. 이거 부러운 걸요. 미래의 아이돌과 알게 되다니. 흐흐, 미리 싸인 받아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제법 음흉하게 보이는 창현의 미소에 태연이 웃음을 흘린다.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짓긴. 그런데 너도 연예인 지망생 혹은 연습생이 아니야?”

“에?”

갑작스러운 태연의 말에 창현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창현을 앞에 두고 눈을 가늘게 하며 위아래로 스윽 훑어본 태연이 말한다.

“패션도 예사롭지 않고. 비주얼도 괜찮아 보이고. 길 가던 사람 붙잡고 물으면 나보다 네가 더 연예인 같은 걸?”

순간 뜨끔했지만 창현은 태연하게 화제전환을 시도했다.

“저 같은 사람은 널리고 널렸죠. 그런데 멤버 중에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나봐요?”

창현의 말에 태연은 딸기 주스를 한모금 마시곤 고개를 끄덕인다.

“응. 있지. 아무래도 그것 때문에 키울 수가 없더라고.”

그런 부분도 있지만 태연은 소녀시대의 리더였기에 멤버들에게 조금이나마 카리스마적인 이미지로 있어야 했다.

그랬기에 귀여운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차마 다른 멤버들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군요. 여러 사람이 함께 살려면 그런 부분은 조금씩 양보해야겠네요. 이크!”

문득 손목에 걸린 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창현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약속한 녹음 시간이 아슬아슬하게 다가온 까닭이다.

딸기 주스를 단번에 들이킨 창현이 다시 한 번 시간을 확인하며 말한다.

“누나, 전 약속이 있어서 이만 일어나봐야 할 것 같아요.”

“약속? 어쩔 수 없지.”

조금 아쉬워하는 기색을 보이는 태연.

그 모습에 창현이 슬쩍 장난을 쳤다.

“하하, 아무래도 누나가 저랑 같이 있고 싶었나 보네요.”

장난기 다분하게 말한 까닭은 당황한 모습을 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창현에게 한방 먹인 태연이었다. 만만치 않았다.

“응. 같이 있고 싶었어. 나랑 키가 비슷한 남자 아이는 요즘 흔치 않거든.”

그 말은 창현에게 강렬하게 다가왔다.

“크으으.”

강렬한 일격을 먹은 창현의 몸이 심하게 흔들렸다.

안 그래도 학교에서 주현보다 키가 작아 내심 자신의 키에 염려를 하고 있던 창현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방 제대로 먹을 줄이야.

순간 뇌리에 태연 Win 창현 Lose가 떠오른 건 자신만의 착각이었을까.

태연은 창현의 리액션에 만족의 미소를 띄우며 손을 내밀었다.

“핸드폰 줘봐.”

“에? 네.”

아직 얼떨떨한 상태던 창현이 순순히 핸드폰을 내민다.

핸드폰을 받은 뒤 자신의 번호를 입력한 태연이 저장까지 시킨 뒤 창현에게 내민다.

창현이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여자치고 제법 대담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한 태연이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이, 이건 우리 야옹이가 가끔 보고 싶을 때 연락하려고 적은 거야. 다른 의도는 없어.”

그러는데 왜 목소리는 떨리는 걸까.

창현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는 고양이를 받아들며 말했다.

“그래요. 어련하시겠어요. 누나만의 야옹이! 제가 아주 잘 보살펴 주겠습니다요.”

그러면서 태연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는다. 엄연한 어린이 취급.

기분 좋은 촉감과 함께 승리의 미소가 지어진다.

창현은 태연의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하자 재빨리 손을 치우고 뒤로 내뺐다.

“그럼 다음에 봐요. 바이바이.”

“이, 이 녀석!”

뒤늦게 광분한 태연이었으니 창현은 이미 가게를 벗어나고 있었다.

마지막 창현의 기습에 의한 태연의 역전패였다.


“후우! 강적이었어. 강적.”

도망치듯 가게에서 벗어난 창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소녀시대 리더 태연.

작은 몸과 앳된 외모지만 그 속에 내재된 파워(?)는 만만치 않았다.

그러니 아홉 명이 되는 그룹의 리더가 되는 거겠지.

“그나저나 늦었네. 이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녹음 시작 시간이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 이곳에서 택시를 타고 가면 아슬아슬하게 맞출 수 있는 시간이었다.

돈이 많이 들겠지만 어느 정도 돈이 있는 지금, 그것이 문제인가?

돈으로 살 수 없는 신용이 더욱 중요했다.


“좋아요. 지금 그대로만 가주세요.”

창현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녹음을 지켜보며 미소를 지었다.

<Yesterday>의 녹음이 거의 마무리 되어가는 시점에 창현도 녹음 대열에 합류하였다.

어제의 달콤한 만남을 회상하는 <Yesterday>의 매력을 한층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소년의 입장에서 노래를 해줄 피처링 상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창현은 처음부터 자신이 할 생각을 하고 있었고, AA엔터테인먼트에서는 이미 국내 굴지의 실력파 가수로 이름 매김한 가수 현의 피처링을 거절할 리 없었다.

약 30초 분량의 녹음을 하기 위해 창현이 걸린 시간은 약 두 시간 정도인데, <Yesterday>의 분량이 약 4분여인 걸 감안하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노래를 완성한 셈이다.

피처링 부분을 몇 번 부르면서 잘된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내 완벽한 파트를 만들어내는 창현의 능력에 라샤의 멤버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동안 녹음을 하면서 창현에게 간간히 교정을 받을 때나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피처링 부분에서 확실히 압도하는 면모를 보여주니 라샤의 녹음 앨범에 가속도가 한층 붙었다.

그리하여 당초 예상했던 5월초 완성이 4월 중하순으로 당길 수 있었다.

부지런히 음반 제작을 하고 뮤직비디오 제작까지 하면, 5월 중순에 데뷔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석규가 말했다.

그 말에 라샤 멤버들은 몸을 방방 뛰며 좋아했고, 창현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석규는 라샤의 흥행 가도를 이어가기 위해 <Laser>에 이어 1집 정규 앨범 수록곡들을 차례대로 발표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함과 동시에 얼굴없는 가수 현이 피처링한 <Yesterday>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만 갔다.

데뷔가 가까워져옴에 따라 라샤는 눈코 뜰새 없이 바빠졌지만 그에 반해 녹음 작업이 모두 끝난 창현은 한가해졌다.

요즘 들어 하는 것이라고는 학교에서 멍 때리는 것과 이따금 주현과 문자를 하는 것뿐이었다.

창현은 녹음이 모두 끝나자, 그날 바로 주현에게 문자를 찍었다.

[주현 누나 지금 통화 가능한가요?]

문자를 보낸 창현은 자신이 쓴 곡을 연주하면서 이리저리 손을 보았다. 연습생이라면 한창 안무를 연습하거나 녹음을 할 수도 있었기에 다른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 것이다.

문자를 보낸 지 얼마나 지냈을까.

지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문자가 왔다.

[응. 지금 막 안무 연습이 끝났어. 십 분 정도 휴식시간이야.]

문자를 본 창현은 곧장 통화 버튼을 눌렀다.

♪♬♩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틀림없는 <Go&Stop>였다.

<Go&Stop> 팬이라더니 벨소리와 컬러링까지 할 정도였나보다.

자신의 노래를 이렇게 좋아해주니 창현의 입가에는 절로 미소가 맺힌다. 인터넷에서 유명세니 뭐니 하지만 이럴 때만큼 절절하게 느끼게 해주진 못한다.

노래 한구절이 끝날 무렵 저편에서 주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보세요, 창현이야?

“네, 누나. 일단 밤 늦게 전화 드려서 죄송해요.”

녹음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지금 열시가 넘었다. 밤중에 연락하는 건 실례라고 생각했기에 창현은 사과부터 하였다.

-응 아니야. 뭔가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서겠지.

자신을 믿어주는 말에 입가에 절로 미소가 생기는 창현.

그는 자신이 전화 건 목적을 상기하곤 말했다.

“네. 제가 저번에 바쁘다고 했던 녹… 아니, 일이 끝나서요. 전에 주현 누나가 제게 윤아…씨를 부탁하셨잖아요. 그것 때문에 전화 드렸어요.”

보컬 트레이닝을 해달라던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일까.

다음 날부터 주현은 창현의 얼굴을 보는 걸 상당히 부끄러워했다. 게다가 연습량도 점점 늘어나는지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먹고 수면을 취하느라 창현과 만날 기회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래서 저번에 주현이 부탁을 했을 때 이후 두 사람은 만난 적이 없다.

간간이 문자를 주고 받긴 했지만 통화를 하는 건 처음인지라 주현의 목소리는 밝았다.

-그래? 윤아 언니가 좋아하겠네. 알겠어. 내가 윤아 언니한테 말해볼게. 대신 시간은 이쪽에서 정해야 할 거 같은데…….

슬쩍 달력을 본 창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겠죠. 아무래도 중간고사 시즌이고 누나도 연습하시느라 바쁠 테니까요.”

-응, 그러네. 윤아 언니도 중간고사고……. 일단 내가 윤아 언니한테 물어볼게. 그리고 약속 잡아도 되지?

“네, 물론이죠.”

-그럼 그렇게 할게. 날짜 정해지면 내가 연락할게.

“네, 그러세요.”

-응. 그럼 약속 정해지면 보자.

그렇게 통화는 끝의 났고, 창현은 침대에 몸을 묻었다.

“으으! 이제 다 끝났구나.”

녹음이 끝났다는 해방감에 창현은 깊게 잠들었다.


주현은 창현과의 통화가 끝나고 밝은 표정을 지었다.

“잘됐어, 정말.”

윤아는 창현의 거절 아닌 거절 소식을 듣는 순간 무척이나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친한 동생인 주현의 약점을 완전히 극복시켜 준 창현을 꼭 만나서 자신도 고질적인 약점을 극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이 있다고 하면서 정작 어느 정도 걸리는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에 주현은 확신이 없는 어조로 말했고, 그 때문인지 윤아는 반쯤 포기한 듯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주현이 약점을 극복한 게 윤아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고, 그 때문인지 윤아는 슬럼프란 늪에 빠지게 되었다.

슬럼프 때문에 근래 들어 안무도 자주 틀리고 노래 연습에서도 사사건건 지적을 받기 일쑤였다.

데뷔 전부터 CF와 뮤직비디오로 인해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윤아였기에 그 부담감은 다른 멤버들보다 컸다. 자칫하면 부담감으로 인하여 자멸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주현은 그런 윤아의 모습에 자신만 약점을 극복한 게 미안했다. 괜히 자신의 탓이 아닌데 자신만 약점을 극복하여 윤아에게 부담감을 몰아준 기분을 느꼈던 것이다. 때문에 윤아의 약점을 극복시켜줄 수 있는 창현의 연락을 내심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러던 차에 오늘 반갑게도 연락이 온 것이다. 주현의 마음 같아서는 당장 내일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연습실에 들어갔을 때, 윤아가 보였다.

축 처진 어깨와 우울한 표정은 그녀가 요즘 슬럼프임을 알게 해주었다.

주현은 그런 윤아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언니, 괜찮아요?”

윤아는 염려 섞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주현에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응, 괜찮아.”

그런 윤아의 모습이 주현은 안쓰러웠다.

소녀시대에서 주현이 막내지만 그 다음 막내는 윤아였다.

그랬기에 그녀들은 막내로서 서로 통하는 것이 많았고, 이야기나 연습하는 것도 많았다. 때문에 특별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었기에 그 걱정은 가족을 걱정하는 것과 비슷하였다.

“언니, 그런데 이번에 됐어요.”

그런 윤아의 모습이 마음 아파 재빨리 창현의 승낙 소식을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응? 뭐가 돼?”

“저번에 제가 말했던 동생 있잖아요. 저희 학교 후배요?”

“후배? 너 평소에 후배 이야기 잘 안하잖아.”

자기 관리가 철저한 주현이었기에 후배는 물론 동급생과의 일도 잘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다.

아무래도 주현이 말한 창현의 이미지는 후배보다 보컬 트레이너로서 더 깊게 박혀있는 듯 했다.

주현은 단어 선택을 바꾸었다.

“그러니까 그 보컬 트레이너요. 절 도와준…….”

“아, 그…….”

윤아는 주현의 약점을 극복하게끔 도와준 사람이 주현의 후배란 걸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눈을 크게 뜬다.

방금 전 주현이 됐다는 말의 의미를 알아차린 것이다.

“그, 볼 일이 끝났데?”

“네. 그래서 언니와 만날 수 없겠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언니랑 일정을 맞춰보고 만나기로 했죠.”

“그래? 잊지 않았네.”

이미 포기하던 것을 상대가 기억하고 도와주겠다고 말하자 새삼스레 감격 받은 윤아.

그런 윤아의 모습에 주현이 미소 짓는다.

“하지만 시기가 조금 애매해서요.”

“그건 그러네. 곧 있음 중간고사니까. 그럼 중간고사 끝나고 만날까? 시험이 끝나면 시간이 많이 남잖아.”

“그러네요.”

생각해보니 고등학교가 시험을 더 오래보지만 끝나는 날은 공교롭게도 같다.

그랬기에 시험 해방을 즐길 겸 자신의 문제도 고칠 생각이었다.

고음처리가 잘 되지 않아 그동안 얼마나 속앓이를 했던가.

창현에게 거절 당하고, 슬럼프에 빠지면서 윤아는 주현에게 물어 창현이 주현에게 도움을 준 부분을 그대로 따라해볼 정도였다.

하지만 되지 않았고, 주현은 그런 윤아에게 사람의 성격이 모두 다르듯이 고음처리를 고치는 방법도 모두 다르다고 하였다.

그래서 내심 포기하고 있었으면서도 창현이 시간 나길 기다리던 윤아였다.

‘주현이도 금방 고쳤으니 나도 금방 되겠지?’

잘 될지 안 될지는 아직 확실하게 모른다.

그러나 도움을 줄 조력자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윤아의 얼굴은 밝아지고 있었다.




제5장. 인연중첩.




중간고사.

치열한 교육열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학생들에게 있어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었지만 창현에게 있어 빨리 끝나 좋은 날 그 이상의 의미를 주지 못했다.

“후우!”

시험이 모두 끝나자 창현의 입에서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중간고사를 보는 기간은 총 삼 일.

삼 일이지만 3교시 동안 시험을 보고 끝나는 기간이 오늘로 끝이란 생각이 창현으로 하여금 한숨을 쉬게 만들었다.

‘차라리 학교를 그만둘까.’

그렇게 생각도 되었지만 대한민국 청소년에게 있어 중학교까지는 반드시 의무교육을 거쳐야만 한다.

작곡에 재미를 붙이고 다른 것에 열성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해도 어쩌겠나. 갖춰야 할 건 갖춰놔야지.

“그러고 보니 오늘이네.”

핸드폰을 펼친 창현의 눈에 D-Day가 눈에 들어왔다.

며칠 전에 주현과 한 약속이다.

창현이 시간이 났다는 말에 주현은 윤아와 창현의 시간을 조율했고, 같은 날 중간고사가 끝난다는 걸 알고는 시험이 끝난 뒤에 만나자고 하였다.

그리고 오늘이 중간고사 끝나는 날이다.

지이잉.

가방을 챙기고 집으로 가려던 차, 핸드폰에 진동이 울린다.

“응? 주현 누나네.”

핸드폰을 열고 확인하니 주현이 보낸 문자였다.

[오늘 광장분수대로 1시까지 와줘. 점심은 먹고 갈 거야.]

“집에 가서 점심 해결하고 가면… 빠듯하네. 주현 누나는 왜 이렇게 시간을 타이트하게 잡은 거야? 어서 가야겠군.”

시간을 확인한 창현이 곧장 집으로 향했다.

알게 모르게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잡은 채.


주현은 시험이 끝나자 곧장 집으로 향했다.

그녀는 창현에게 문자를 보낸 뒤 시간을 확인했다.

“윤아 언니는 너무 타이트하게 시간을 잡았어. 이래선 점심도 제대로 못 먹을 텐데. 히잉.”

고등학교 시험은 중학교보다 빨리 끝나니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시험이 끝나자 주현은 곧장 책가방을 싼 뒤 숙소로 향했다.

채점도 안하고 곧장 간 탓일까.

모여드는 학생들로 인해 버스를 기다리는데만 한세월이었는데 마치 오늘의 만남을 축복이라도 하듯(?) 서현은 곧장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할 수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숙소로 들어서면서 인사를 하는 주현.

그래봤자 다들 학교에 있거나 연습실에 있고, 집에는 윤아 밖에 없었다.

방안에 있던 윤아가 주현의 목소리를 듣고 나온다.

“주현이 왔어?”

주현은 모습을 드러낸 윤아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어, 언니…….”

“응, 왜? 이상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주현.

이상할 리가 있겠는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본 것은 살짝 화장을 하고 흰색 원피스를 입은 윤아의 모습이었는데 말이다.

같은 여자가 보아도 빛날 만큼 그녀의 외모는 빛을 발하고 있었다.

윤아는 어버버 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주현의 시선에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주현이 후배 만나는 건데 내가 너무 꾸몄나?”

“언니 너무 예뻐요.”

“고마워, 주현아. 너도 꾸미면 예쁠 거야. 그러고 보니 약속시간 한 시랬지? 밥 차려놓을 테니 어서 옷 갈아입어.”

밥을 차린다고 했지만 실제로 소녀시대 멤버들 대부분은 요리를 못한다.

하지만 멤버들의 부모님들이 종종 반찬을 만들어 보내주곤 하였고, 그 덕에 이따금 가해지는 찌개 폭탄만 아니면 그럭저럭 훌륭한 식단이 만들어진다.

주현이 옷을 갈아입으러 간 사이 윤아가 반찬 등을 꺼내 상을 차렸고, 주현이 옷을 다 갈아입었을 땐 여러 반찬이 있는 상차림이 완성되었다.

옷을 다 갈아입은 주현이 시간을 확인하고는 미소 짓는다.

“후! 다행이다. 이 정도 시간이면 늦지 않겠네요.”

“늦으면 안 되지. 도움을 청하는 건 우리니까.”

“그것도 그렇죠.”

윤아와 같이 점심을 먹고, 양치를 한 뒤 지갑, 핸드폰 등을 챙기고 준비를 끝마친다.

혹시나 해서 시간을 확인하니 삼십 분 정도가 남아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네.’

내심 늦는 게 아닐까 걱정했지만 운이 따라서인지 지각은 안할 듯 싶었다.

준비를 다한 주현이 윤아에게 말했다.

“언니, 이제 가요.”

“응.”

윤아와 주현이 막 밖으로 나서려던 차였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한 소녀가 집안으로 들어왔다.

집으로 들어오던 소녀는 윤아와 주현을 보고 놀란 듯 외친다.

“임윤아! 서주현! 너희 어디 가는 거야?”//

윤아와 주현은 마치 번개를 맞은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떤다.

평상시라면 절대 보이지 않을 반응.

소녀의 눈이 날카로워진다.

“뭐지, 그 반응은?”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언니.”

“잠시 밖에 볼일이 있어서요.”

눈에 띄게 말을 더듬는 주현과 달리 윤아는 담담하게 말한다.

하지만 팀플레이도 맞아야 제대로 플레이가 되는 거지, 한 명은 잘하고 한 명은 못하는데 그게 맞아떨어지겠는가?

그녀들을 바라보는 소녀의 눈길이 더욱 예리해졌다.

“임윤아! 네 연기가 제법이래도 주현이가 이미 다 티냈거든? 순순히 말하시지?”

소녀의 말에 윤아의 시선이 주현에게 향했다.

애처롭게 변해있는 주현.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사과밖에 없었다.

“미, 미안해요, 언니.”

윤아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노릇이었다.

“후우! 실은 주현이 아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거에요.”

“아는 사람, 누군데? 설마…….”

소녀의 아미가 상큼하게 휘더니, 날카롭게 묻는다.

“남자?”

“…….”

“히끅!”

윤아는 문제가 없었지만 주현이 문제였다.

주현은 당황하며 자신의 입을 서둘러 가로막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상태였다.

“남자라니, 누구야? 왜 만나려는 건데?”

“그, 그게요…….”

윤아가 변명을 하려고 하자 소녀가 손을 들어 윤아를 제지했다.

“거짓말 할 생각하지마. 임윤아! 넌 연기가 능숙해서 안 돼. 서주현! 똑바로 말해. 넌 거짓말 하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으니 거짓말 할 생각은 꿈에도 꾸지 말고.”

궁지에 몰린 두 사람.

촘촘한 포위망에 갇혀있는 적군처럼 그녀들은 눈앞의 소녀를 보곤 전의를 상실했다.

주현이 모든 걸 포기한 듯 말한다.

“후! 실은 윤아 언니 보컬 트레이닝을 도와줄 사람을 만나러 가요.”

“보컬 트레이닝? 남자야? 아, 저번에 널 도와줬다던?”

주현의 말에 잠시 생각에 빠진 소녀는 무언가를 떠올리며 놀라움이 담긴 얼굴로 물었다.

가창력의 고질적인 고음처리 문제로 주현과 윤아가 따로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 것은 멤버들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주현이 약점을 극복한 것은 유명한 사건이었다.

윤아와 주현을 트레이닝 시켜주는 보컬 트레이너 박예민은 초일류에 달하는 트레이너가 주현의 연습을 도와주었다고 말했고, 그 발언 때문인지 한동안 멤버들 사이에서 초일류라 불리는 보컬 트레이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가수를 꿈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가창력을 한단계 끌어올려 줄 수 있는 보컬 트레이너는 연습생인 그녀들로서 반드시 만나보고 싶은 대상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현이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않았기에 그 관심은 빠르게 식어갔다.

그런데 그 사람이 지금 언급된 것이다.

소녀가 주현에게 물었다.

“그래서 너랑 윤아가 그 보컬 트레이너를 만나러 가는 거란 이야기네?”

“네. 맞아요.”

주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실을 인정하자 소녀의 안색이 살짝 찌푸려졌다.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런 소녀의 모습에 윤아와 주현이 절로 긴장했다.

평소엔 사근사근하고 좋은 성격을 가진 언니였지만 한 번 강력하게 의견을 피력하면 절대 번복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민에 빠져있던 소녀는 둘을 보며 말했다.

“그럼 나도 같이 데려가.”

“네?”

한 목소리로 놀라움을 표현하는 윤아와 주현.

이런 말을 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던 탓인가 보다.

그에 소녀가 윤아와 주현을 훑어보며 말했다.

“막내 둘을 보내고 내가 어떻게 안심을 하라고? 내가 확실하게 책임져 줄게.”

물론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소녀 또한 가창력에 많은 욕심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충분히 잘 부른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가창력에 대한 욕심은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러던 차에 듣게 된 초일류 보컬 트레이너.

마음 같아서는 주현이를 닥달해서라도 만나고 싶었다.

어떻게 해서 고음처리가 불안정하던 주현이를 저렇게 도와준 걸까?

궁금했지만 주현이는 더 말하고 싶은 기색이 아니었기에 하는 수없이 포기하려던 차였다.

그런데 오늘 기회가 찾아왔다.

발칙(?)하게도 막내 둘이서 몰래 초일류 보컬 트레이너를 만나겠다고 나선 것이다.

자신 몰래 만나려고 하다니! 숙소에 물건을 두고 와 들리지 않았다면 이것(?)들이 보컬 트레이너를 만나는 것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만나겠다고 말했다.

거절하면 난도질 해버릴 듯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이다.

한참을 고민하는 듯한 주현. 아무래도 주현과 먼저 알고 있던 사이여서 그런지 결정권은 주현에게 있나보다. 윤아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주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주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승낙의 표시였다.

“알겠어요. 같이 가도록 해요 언니.”

그에 윤아의 표정이 사르르 풀렸다. 거절해서 훗날 참혹한 보복을 당하느니 같이 가는 게 낫다는 생각인 듯했다.

소녀의 표정도 밝아졌다. 만만치 않은 저항을 예상했는데 의외로 순탄하게 일이 해결되었다.

“자, 그럼 가자.”

처음의 목적을 잊은 채 앞장 서는 소녀.

그러나 그녀의 걸음은 이내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약속 장소를 모르네.”

“쿡!”

“풉!”

약간 멍한 표정을 짓는 소녀의 모습에 주현과 윤아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맺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계를 본 주현의 표정이 급변했다.

“헉! 언니들 늦었어요. 어서 가요!”

“응? 그, 그래.”

“미안!”

세 소녀는 빠른 걸음으로 숙소를 나섰다.


“후우! 늦지는 않았네.”

약속 장소에 나온 창현은 시계를 들여다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문자를 받았을 때 시간이 상당히 모자랄 줄 알았는데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니 제법 여유롭게 도착할 수 있었다.

대신 옷을 고를 여유가 없어 저번 외출 때 입었던 푸른색 스키니 진과 골반까지 오는 후드 티를 입었다. 예쁜 여자 둘이 나오는 자리인 만큼 패션으로 붉은 뿔테 안경도 썼는데, 제법 이미지도 달라 보이고 괜찮아 보였다.

“한 십 분 정도 남았네. 천천히 기다리자.”

창현은 자신이 작곡하고 가사를 입힌 노래들을 모아놓은 MP3를 키며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리고 분위기에 맞추어 부른 자신의 노래를 감상하며 장단점 분류에 빠져들었다.

‘에구, 사람들은 좋아해줘서 다행이지만 아직 멀었네. 언제 최지평이 말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거야.’

시대가 다르고 관점이 다르지만 가장 근본적인 부분은 바뀌지 않는다.

음향총서에서 최지평이 이르길, 음악으로 사람의 마음을 울리라 하였지만 아직 그 경지는 요원한 듯했다.

어느 정도 발전은 이루었지만 아직 많은 단계가 기다리고 있다랄까?

자괴감도 들었지만 그만큼 무궁무진한 세계가 있다는 느낌이 전신에 감돌아 절로 입가에 미소가 맺히고 있었다.

음악을 들으며 생각에 빠져들었던 창현이 문득 시계로 시선을 옮겼다. 약속시간에서 오 분이 지난 1:05분이었다.

“응? 한 시가 넘었네? 아직인가?”

주변을 휘휘 돌아보았지만 주현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이번 라샤의 타이틀 곡 <Yesterday>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자신이 프로듀싱 한 작품 중 가장 걸작이라 생각하는 곡.

창현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맺히며 흥얼흥얼거린다.

특히 자신이 피처링한 부분이 나오자 필이 충만하여 주변을 잊고 자신을 잊은 채 노래를 불러본다.

은은하게 적셔오는 달콤한 멜로디에 몸을 맡기며 소년의 설레는 마음이 전해져오는 창현의 노래는 주변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노래를 흥얼거리던 창현은 불현듯 자신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느끼고는 무아지경에서 빠져나왔다.

“헛!”

혹시나 해서 주변을 둘러보니 많은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져 얼굴이 절로 붉어졌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길거리에서 생쇼를 했다는 느낌에 무안함을 달래고자 고개를 돌리며 주현을 찾아본다. 아니, 주현을 찾는다기보다는 무안함을 감추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저쪽에서 주현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주변에 두 소녀가 주현과 함께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창현은 개의치 않고 MP3를 끄고 귀에 꼽은 이어폰을 뽑으며 주현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주현 누나.”

“으응. 안녕, 창현아.”

주현은 여전히 멍한 시선으로 창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숙소를 나선 세 소녀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발을 놀리며 약속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강렬한 포스로 일행 대열에 합류한 소녀가 주현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특히 소녀는 보컬 트레이너가 남자란 사실에 강한 호기심을 보였는데, 그 까닭은 주현이 남자라면 마치 다른 생물을 대하듯 멀게 대하기 때문이다.

“주현아, 그 보컬 트레이너란 사람 몇 살이야?”

소녀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주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열다섯 살이에요. 저보다 한 살 어리죠.”

아니나 다를까, 주현의 말에 소녀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묻는다.

“에, 그게 말이 돼? 정말 열다섯 살이야?”

“네. 저희 중학교 후배인데요…….”

주현은 창현과 만나게 된 이야기와 어떻게 도움을 주었는지 설명했다.

그 설명을 들은 윤아와 소녀는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러니까 열다섯 살에 초일류 실력을 지녔단 거네. 정말 대단해.”

“그러게요. 다시 들어도 정말…….”

“근데 잘생겼어?”

“에? 에, 네.”

감탄을 하다가 갑자기 묻는 소녀의 물음에 주현이 놀라며 어물쩍거리다가 대답한다.

부끄러워하는 막내의 모습에 소녀와 윤아의 입가에 짖궂은 미소가 지어진다.

“잘생겼나보네. 순둥이 주현이가 이 정도 반응을 보일 정도면.”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미남 미녀를 보아왔기에 그녀들의 눈은 매우 높았다.

그것은 주현도 마찬가지여서, 그녀가 잘생겼다고 말할 정도라면 도대체 어느 정도일지 쉬이 짐작가지 않았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약속시간보다 약간 늦게 도착할 수 있었다.

분수대가 보이자, 윤아가 주현에게 묻는다.

“주현아, 어디에 있어?”

아무래도 주현이 잘생겼다고 하니 멀찍이서 먼저 보고 싶었나보다.

“그, 글쎄요.”

주현도 주변을 둘러보며 창현을 찾아본다. 하지만 워낙 사람이 많은 터라 쉽게 찾기 힘들었다.

그때, 주현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귀에 어디선가 노래가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은은하게 적셔오는 달콤한 목소리.

마치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처럼 빠져드는 노랫소리에 주현은 물론이고 두 소녀도 그 노래 소리에 빠져들었다. 그 어떤 가수도, 연습생도 사람으로 하여금 이렇게 빠져들게 한 적이 없다.

“아, 잘 부른다…….”

노래가 끝나자 소녀가 감동에 젖은 얼굴로 감상을 말한다. 윤아도 마찬가지라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데, 주현의 시선이 한곳을 향하고 있었다.

주현의 시선이 향한 곳은 노래가 들려온 곳인데, 스키니 진과 후드 티를 입고, 붉은색 뿔테 안경을 쓴 소년이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주현의 고개가 갸웃하다가 두 눈이 살짝 커진다.

‘설마…….’

그때,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고, 소년이 빙긋 웃음을 지어보이며 이곳으로 다가온다.

귀에 꼽힌 이어폰을 뽑고 MP3를 끄며 소년이 주현에게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하세요, 주현 누나.”

“으응. 안녕, 창현아.”

주현은 멍한 얼굴로 대답한다.

창현은 그런 주현과 일별하며 곁에 있던 윤아와 소녀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주현 누나의 학교 후배인 강창현이라고 합니다.”

잘 차려입었지만 노는 분위기는 전혀 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감 넘치고 모범생적인 이미지가 느껴졌다.

윤아가 먼저 창현의 인사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주현이와 같은 숙소를 쓰고 있는 임윤아라고 합니다.”

“명성은 익히 듣고 있었습니다. CF와 뮤직비디오에 나오셨죠? 팬입니다.”

아직 신인이건만 자신을 알아봐주는 창현의 말에 윤아의 입에 미소가 맺혔다.

“영광이에요. 오늘 잘 부탁드릴게요.”

윤아와의 인사가 끝났고, 윤아 옆에 있던 소녀가 인사를 건네왔다.

“정수연이라고 해요. 오늘 이 둘의 책임자로 나왔고, 초일류 보컬 트레이너라는 창현씨를 만나러 왔어요. 잘 부탁드릴게요.”

정수연이라면 소녀시대의 제시카로 활동을 할 여자였다. 나이는 열여덟. 창현보다 세 살이 더 많다.

아직 데뷔 전이지만 소녀시대에 대해 조사를 많이 한 창현이었기에 수연을 알아볼 수 있었다.

“저보다 세 살 많으시니 말 놓아주세요. 윤아 씨도요. 그럼 저도 편하게 누나라고 부를게요.”

이성적인 관계 개선을 위해 말하는 것이 아닌, 오늘 만남을 편안하게 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였다.

어린 나이에 초일류 보컬 트레이너라고 해서 무척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일 줄 알았는데 제법 괜찮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되자 윤아와 수연의 표정이 한결 풀어졌다. 그녀들은 내심 창현의 성격이 어떨지 이만저만 걱정한 게 아니었다.

“응. 그럼 편하게 창현이라 부를게. 윤아 누나라고 불러.”

“생각보다 성격이 좋네? 수연 누나라고 부르렴.”

쿨한 두 소녀의 성격은 창현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예쁘다고 다 싸가지 없는 건 아니군.

“네. 깍듯하게 모실게요. 일단 자리부터 옮길까요? 여긴 사람이 많아서 이야기를 하기가 힘드네요. 저기 카페가 있으니 먼저 저기로 가죠. 제가 살게요.”

창현이 사겠다는 말에 주현이 미안한 표정으로 묻는다.

“괜찮겠어?”

늦은 것은 자신과 언니들인데 창현이 사겠다고 하자 못내 미안한 표정이었다.

게다가 카페에서 파는 커피나 주스들 가격은 중학생이 감당하기에 제법 큰 금액이다.

아직 창현에 대한 걸 잘 모르기에 염려한 것이다.

창현은 빙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주현 누나. 하지만 용돈이 넉넉하게 있으니 이 정도는 충분히 대접해드릴 수 있어요. 오늘 예쁜 누나들을 만난 대가로 대접하는 셈 치죠. 자 그럼 절 따라오세요.”

그 말과 함께 창현이 앞장을 섰고, 윤아와 수연은 그런 창현에게 보는 눈이 있다고 생각하며 미소를 지은 채 그의 뒤를 따랐다. 주현도 창현의 뒤를 따랐지만 여전히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카페에 들어선 창현 일행은 곧장 커피 주문에 나섰다.

“어떤 걸로 주문하실래요, 누나들?”

“난 아메리카노.”

“나랑 주현이는 카푸치노.”

평소 먹는 메뉴가 정해져 있는지 수연과 윤아는 창현의 물음에 곧장 대답했다.

순식간에 주문이 접수되자 창현이 카운터에 주문을 했다.

“아메리카노 하나랑요, 카푸치노 둘, 그리고 딸기 주스 하나요.”

그때, 주문을 하던 창현에게 주현이 물었다.

“…창현아 설마 딸기 주스 네가 마시는 거야?”

“네, 그런데요?”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창현.

“쿠쿡!”

그 대답을 듣기 무섭게 주현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푸훗!”

“쿡쿡!”

수연과 윤아는 창현과 초면인지라 웃음을 참으려 하는 듯했으니 주현의 웃음이 기폭제가 되었는지 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딸기 주스를 좋아하는 게 조금… 아니 매우 웃겼나보다.

‘태연 누나 미안합니다. 이런 느낌이었군요.’

창현은 예전에 만난 태연의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새삼 장난쳐서 미안하다고 생각하면서 앓는 소리를 냈다.

“끙! 제가 딸기 주스 좋아하는 게 죄인가요? 자리나 잡아요. 훠이.”

양손을 휘휘 저으며 자리를 잡게 한 창현은 돈을 지불하였고, 이윽고 커피와 딸기 주스가 나오자 그걸 들고 테이블로 향했다.

“여기 아메리카노랑 카푸치노요.”

“땡큐.”

창현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전하는 소녀들.

주현 옆에 남은 자리에 앉은 창현은 빨대를 꼽은 뒤 주스를 한모금 빨아들인다.

“쿡쿡!”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짓는 소녀들. 분홍색 후드 티를 입고 있는 창현이 딸기 주스를 마시니 안 웃을래야 안 웃을 수 없었다.

“끄응!”

세 소녀의 웃음 속에 창현은 앓는 소리를 내면서 딸기 주스를 마시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까 부른 노래가 뭐야?”

아메리카노를 한모금 마신 수연이 창현에게 물었다.

아까 전 길거리에서 불렀던 <Yesterday> 피처링 부분을 들은 듯했다.

현재 AA엔터테인먼트에서 라샤의 타이틀 곡 <Yesterday>를 공개한 상태였기에 창현은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곧 있음 데뷔할 라샤란 그룹 아시죠? 그 그룹의 타이틀 곡인 <Yesterday> 일부분이에요. 노래가 좋아서 외우고 있거든요.”

자기가 만든 노래를 스스로 좋다고 말하니 조금 민망했지만 창현은 개인적으로 <Yesterday>를 자신의 작품 중 가장 걸작이라고 생각했기에 거리낌은 없었다.

라샤와 <Yesterday>를 언급하자 반응이 곧장 왔다.

“어! 라샤! 지금 제일 유명하지.”

“데뷔 전인데도 폭발적인 반응으로 벌써 팬 카페가 생겼다던데.”

“<Laser>란 노래 장난 아니던데…….”

한마디씩 평을 내놓는데, 그 평이 모두 후했다.

수연이 돌연 박수를 쳤다.

“그러고 보니 <Yesterday>는 그거잖아. 가수 현이 피처링 했다는…….”

“현이 했다고요?”

“그렇다던데.”

“나 현이 부른 <Go&Stop> 듣고 싶어요. 완전 최고던데.”

“한국에 그런 실력파가 얼마나 있겠어.”

“완전 팬이에요. 나이가 몇살일까요?”

“인터넷에 본 바로는 이십대 중반의 추남이라던데…….”

“십대 후반이란 말도 있던데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한 모르겠지. 관계자들을 제외하고.”

자연스럽게 화제는 현으로 넘어왔다.

작년도 최고의 화제작인 <Go& Stop>은 많은 사람의 입에 올라왔고, 가수를 목표로 하는 그녀들에게 있어 <Go&Stop>과 가수 현은 선망의 대상이자 경애의 대상이었다.

이름없는 가수로서 오직 순수한 실력으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음반 판매량을 보여서 더욱 그런지도 모른다.

자신 앞에서 이야기가 서슴없이 오가자 창현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화제 전환을 유도했다.

“주현 누나에게 들었어요.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서요?”

창현의 말에 세 소녀가 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가수 현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야기 방향이 삼천포로 빠져 있었다.

윤아가 창현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주현이에게 들었을지 모르지만… 데뷔 준비를 하고 있는 멤버들 중에서 내가 가창력이 떨어지거든. 그래서 주현이에게 도움을 준 네게 도움을 받을 수 없을까 해서 청한 거야.”

말을 하는 윤아의 입술은 질끈 깨물려 있었다.

가수를 지망하는 연습생으로서 스스로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자인하는 것은 쉽사리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부족한 걸 깨닫고 인정하는 건 반드시 필요하다.

윤아의 말에 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음! 일단 가창력은 가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해요. 농사로 따지면 농지에 해당하거든요. 땅이 기름져야 수확물이 큰 것처럼 가창력이 뛰어나야 대중에게 사랑받는 가수가 될 수 있어요.”

창현의 말을 수연을 비롯하여 윤아와 주현도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윤아는 창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알지.”

“가창력에도 종류가 있어요. 마음을 담는 것. 마음을 표현하는 것. 마음을 울리는 것이죠. 마음을 담아야 마음을 표현할 수 있고, 마음을 표현해야 궁극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가 있어요.”

세 소녀가 창현을 바라본다. 창현의 말을 곱씹는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 내용은 음향총서에 나오는 내용이었기에 지금의 음악인들에게는 큰 공감을 주지 못한다.

지금 그들이 원하는 것은 마음이 아닌 눈에 보이는 것이었으니까.

길게 말한 창현은 목이 타는지 딸기 주스를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잇는다.

“원론적인 이야기는 이렇다는 거에요. 윤아 누나는 고음처리가 잘 되지 않죠?”

윤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응. 올라갈 듯하면서 벽에 가로막힌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불안정 해져.”

“그래요? 흐음! 주현 누나와 비슷하면서 전혀 다른 증상이네요.”

창현이 주현에게 시선을 주며 말하자 주현이 볼을 긁적이며 말한다.

“응. 혹시나 해서 창현이가 가르쳐준 방법을 언니에게 말해봤는데 안 되더라고.”

“그럴 수밖에요. 저번에 제가 말해드린 것처럼 만 가지 사람에게 만 가지 길이 존재하는 법이거든요.”

이야기 분위기가 제법 진지하게 돌아와서일까.

어느덧 그녀들은 커피를 모두 마셨고, 창현도 마지막 남은 딸기 주스를 마시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가볼까요.”

“어디로……?”

“진단을 받았으니 처방을 받으셔야겠죠.”

“처방?”

윤아가 의문스럽게 고개를 갸웃한다.

이게 진단인가?

아무렴 어떠랴. 창현이 도와준다고 했으니 윤아는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수연 언니, 주현아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자.”

“응.”

“네, 언니.”

빈컵을 모두 처리한 창현과 소녀들은 카페를 벗어나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창현이 소녀들을 데리고 간 곳은 학교였다.

“여긴…….”

주현은 도착한 장소를 보고 설마하는 표정을 짓다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창현은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말했다.

“가창력을 개선하려면 우선 무엇이 문제인지 눈으로 봐야하지 않겠어요? 그렇다고 거리 중심에서 노래를 들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그래서 이곳에 오게 되었어요.”

중간고사가 끝난 지금 학교에는 축구를 하는 사람 몇 명밖에 없었다.

학교 앞 마트에 들려 이온 음료 두 병을 산 창현이 앞장 선다.

“따라오세요. 좋은 곳이 있거든요.”

창현과 소녀들이 도착한 곳은 학교 뒤 정자였다.

수연과 윤아는 분위기 좋은 정자에 도착하자 탄성을 흘렸다.

“와!”

“여기만 공기가 다른 것 같아.”

“…….”

좋아하는 두 소녀와 달리 주현은 조금 뚱한 표정이었다.

주현은 이곳에 다른 언니들을 데려온 것이 내심 실망이었다.

‘그래도 단둘이 만났던 곳인데…….’

자신은 그러했는데 창현은 안 그랬단 이야기일까.

첫만남의 소중함을 마음 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는데 창현은 그러지 않는가보다.

주현은 그 점이 조금 서운했다.

그런 주현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창현은 사온 음료수를 내려다놓으며 윤아에게 말했다.

“이제 여기서 한 번 노래를 불러보세요. 고음처리가 불안정하다고 생각하는 노래로요.”

창현의 말에 정자를 둘러보던 윤아가 흠칫한다.

“여, 여기서?”

주변에 수연과 주현밖에 없었지만 타인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건 멈칫할 수밖에 없다. 가수를 지망하는 사람으로서 거리낌은 없었지만 자신의 약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라는 창현의 주문을 만족 시키면서 하려면 멈칫할 수밖에 없다.

“네. 제가 직접 봐야 도와드릴 수 있으니까요.”

강한 힘이 담긴 창현의 눈을 마주한 윤아.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알았어…….”

고개를 끄덕이며 몇차례 목을 가다듬은 윤아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입혀지며 흘러나오는 노래. 주현 같이 리드하고 무언가 폭발시키는 그런 면은 없지만 잔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창현을 비롯한 수연과 주현은 점점 윤아의 노래에 몰입되어 갔고, 노래의 클라이막스에 다다랐을 무렵, 고음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며 갈라질 기미까지 보였다.

윤아의 문제점을 체크한 창현이 손을 들어 제지한다.

“그만! 이 부분이네요.”

“하아아!”

무리하게 목소리를 올린 윤아는 호흡이 부족했는지 길게 숨을 고른다.

이번에는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꾸준한 연습을 해왔지만 아직 연습의 부족을 느끼는 윤아였다.

‘그래도 많은 연습을 해왔는데…….’

노력은 배반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게 자신에게 해당되지 않는 것 같아 아쉬움이 더했다.

창현은 방금 전 윤아가 보인 현상을 곱씹어보더니 말한다.

“혹시 고음을 올릴 때 몸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나요?”

윤아가 두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란다.

“그걸 어떻게?”

“역시 맞네요. 음!”

잠시 고민하던 창현이 말한다.

“그동안 꾸준히 연습을 하면서 어느 정도 개선된 느낌을 받았죠? 하지만 연습량에 비해 성과가 미미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나요?”

“응. 내 모토가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거든. 그래서 열심히 했지만 그에 반해…….”

윤아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창현은 그런 윤아의 모습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노력을 해도 잘 늘지 않았겠지요. 맞죠?”

“응. 그것 때문에 많이 속상했어.”

윤아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그 모습이 무척 애처로워 보였다.

창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안타까운 이야기에요. 윤아 누나, 제가 예전에 주현 누나에게 했던 이야기가 있어요. 만 명의 사람 성격이 모두 다르듯이 만 명의 사람에게도 각각 적합한 연습 방법이 있다고요.”

“주현이에게 들어서 알고 있어. 그럼 내 연습 방법이 잘못되었던 거야?”

“네. 하지만 많이 어긋나지는 않았어요. 그러니 성과가 있었겠죠. 우선 누나가 고음처리를 할 때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건 필요 이상의 힘을 쏟았기 때문이에요.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던 간에 적절한 힘을 사용하여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게 좋지요. 저를 따라해보시겠어요? 아-아-아!”

무리없이 매끄럽게 올라가는 창현의 고음.

그걸 본 세 소녀의 눈에 놀라움이 담긴다. 연습생 생활을 해보았기에 한눈에 창현의 고음이 보통 수준이 아님을 느낀 것이다.

“음을 높여가다가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을 받으면 곧장 멈추세요.”

창현의 요구에 윤아는 고개를 끄덕이곤 음을 높여나갔다.

“아-아-아!”

점점 높아져가는 소리. 그리고 창현의 말대로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을 받는 순간, 입을 닫았다.

그 모습을 본 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윤아 누나. 이곳을 조명 버튼 누르는 것처럼 살짝 눌러보시고 고음을 내보실래요?”

창현이 윗배 부근을 지그시 누르며 말하자 윤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으로 살짝 누르며 고음을 낸다.

“아-아-아-아!”

창현이 짚어준 부분을 누르고 음을 올리자 거침없이 올라가는 고음.

방금 전 느껴졌던 불안정한 느낌은 온데간데 사라진지 오래였다.

“……!”

수연과 주현은 그걸 보며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치 한편의 마법을 보는 듯한 느낌.

지켜보는 수연과 주현이 이 정도로 놀랄 정도인데 당사자인 윤아의 놀라움은 비할 바가 아니었다.

“…….”

스스로 하고도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윤아.

여전히 창현이 짚어준 부분을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윤아는 방금 전 현상이 믿기지 않는지 다시 한 번 고음을 내본다.

“아-아-아-아!”

매끄럽게 고음이 올라간다.

방금 전 상황이 거짓이 아니었다.

믿기지가 않는 상황.

윤아는 왼손으로 자신의 팔을 살짝 꼬집어본다.

“꾸, 꿈이 아니야.”

시선을 들어 창현에게 옮기니 웃고 있는 그 모습이 보인다.

윤아에게 있어 창현은 마치 마법사처럼 보였다.

그토록 고민해오던 문제를 이렇게 깔끔하게 해결해주다니.

창현이 윤아에게 조언을 했다.

“고음처리를 할 때 누르고 있는 부분에 약간의 힘을 주면 고음처리가 될 거에요. 하지만 너무 과하거나 너무 약하면 올라가지 않을 수 있으니 잘 조절하셔야 되요.”

“응. 고마워, 정말 고마워, 창현아.”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겸양의 말을 늘어놓았지만 사실 윤아의 잘못된 점을 파악하는데 창현이 쏟은 노력은 엄청났다.

일견하기에 제대로 된 보컬 트레이닝을 하고 있는 윤아의 잘못된 점을 파악하기 위해 음향총서의 절대청각까지 동원해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덕에 예쁜 누나들을 알게 되었으니 절대 손해는 아니었다.

윤아의 문제가 해결 되어 모두가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수연이 나섰다.//

“창현아, 나도 조금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윤아에게 도움을 주기 전까지 수연은 창현에게 큰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워낙 세상이 험하기도 했지만 데뷔 전부터 각종 스캔들이 연류되면서 세상의 험난함을 일찍 맛본 수연은 타인에게 섣불리 믿음을 주기 힘들었던 탓이다.

그래서 수연은 처음부터 창현의 존재에 대해 의심을 했다.

뛰어난 보컬 트레이너가 주현에게 의도적인 접근을 한 게 아닐까 해서 말이다.

솔직히 깐깐하고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이 높은 박예민 보컬 트레이너조차 감탄할 실력자가 아무 대가없이 도와준다고 하면 누가 쉽게 믿겠는가?

수연은 주현에게 도움을 준 보컬 트레이너가 남자란 말에 순진한 아이들을 노리는 전문범이 아닐까 예상하였다.

그래서 윤아와 주현이 보컬 트레이너를 만나러 가는데 지원하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자신의 예상과 다르면… 조금이나마 도움을 청할 생각이었다.

십대 여자에게 하악거리는 이삼십대 남자랄 거란 예상과 달리 보컬 트레이너는 주현의 학교 후배였고, 만나보고 윤아에게 도움을 준 과정까지 모두 지켜본 결과 정말 괜찮은 아이가 같았다.

그렇지 않겠는가. 자신이 가진 재주로 남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 얼핏 듣기론 쉬운 일이지만 그걸 행하는 데에 있어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연은 이렇게 부탁하는 자신의 모습이 염치없다는 걸 느꼈지만 그만큼 절박했다. 창현이 윤아에게 도움을 주는 광경을 본 순간, 자신의 고민을 해결해줄 사람은 창현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조마조마한 시선으로 창현을 바라보는 수연.

엄연히 말하면 오늘 이 자리에 자신은 불청객이라는 걸 알았기에 보이는 모습이었다.

잔뜩 긴장한 수연의 모습은 무척 애처로워 보였다.

창현은 내내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만났지만 누나 동생 할 정도로 친해졌잖아요. 고작 부탁 하나를 하는 건데 그것 가지고 그런 표정을 지으실 필요 없어요. 제 능력이 닿는다면 도와드릴테니 마음 편하게 말해보세요.”

“고마워, 창현아.”

창현의 승낙에 화악 밝아지는 수연.

바로 감사의 인사를 건네온다.

그에 창현은 미소를 지어보일 뿐이다.

“…….”

수연도 한동안 창현을 바라보고 있었고,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생겨났다.

창연은 수연을 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고민이 있으시다고 했으니 말해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 아! 미안.”

멍하니 있다가 창현의 말에 사과를 하는 수연.

곧잘 멍하곤 한다더니 정말인 듯했다.

창현에게 사과 한 수연이 말했다.

“실은 요즘 노래할 때 감정이입이 안 되거든. 그것 때문에 도움을 좀 얻고 싶어서…….”

감정 이입.

창현이 주현과 윤아에게 도움을 주었지만 감정 이입에 관하여 조언을 구하는 건 수연이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노래에 마음을 담는 것이다 보니 어찌 보면 주현과 윤아가 겪었던 것보다 심각한 난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창현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노래를 한 번 불러보시겠어요? 일단 들어봐야 문제를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응.”

윤아의 노래를 한 번 듣고는 귀신같이 도움을 준 창현이었다.

수연은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한국 노래보다 팝송이 더 익숙하기 때문일까?

수연의 입에서 영어 가사가 흘러 나왔고, 그것은 감미롭게 귀에 스며들었다.

그녀의 노래 실력은 무척 뛰어났다. 창현은 수연의 노래를 듣는 순간 그녀의 노래 실력이 주현과 윤아보다 한단계 위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노래에는 심각한 문제점이 존재하였다.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그녀의 노래에 결여되어 있던 것이다.

이윽고 수연의 노래가 끝나고, 창현을 비롯한 윤아와 주현이 박수를 쳤다.

짝짝짝.

“역시 언니에요.”

“정말 잘 부르세요.”

두 소녀는 박수를 치며 수연을 칭찬했지만 정작 칭찬을 받는 수연의 표정은 흐렸다.

그녀의 시선이 창현에게 향했다. 무언가 조언을 바라는 눈이었다.

창현은 웃음이 잦아든 채 진지한 눈으로 수연을 보며 말했다.

“확실히 누나의 말대로에요. 노래의 기교는 주현 누나랑 윤아 누나보다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지만 결정적인 감정 이입이 결여되어 있어요. 이거 심각한데요?”

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저 귀가 즐거우면 되는 사람들에게는 괜찮겠지만… 전문가 같은 사람이 들으면 심각하지. 난 그리고 더 잘 부르고 싶어.”

“누나의 마음 이해해요. 일단 누나가 해야 할 것은 노래에 감정을 이입하는 거네요. 이건 고음처리 같은 게 아니어서 제가 원론적인 충고밖에 할 수 없어요.”

감정 이입은 결국 본인에게 달린 문제다. 고음 처리 같이 타인이 도움을 줘서 단번에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이다. 아니, 고음 처리도 주현과 윤아가 평소 꾸준한 연습을 쌓아온 것이 아니면 고치기 힘들었을 것이다.

단번에 고칠 수 없다는 말에 수연의 얼굴에 작은 실망감이 떠올랐지만 창현의 조언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경청할게.”

“네. 우선 누나의 노래 기교는 뛰어나요. 하지만 노래의 분위기와 가사에 감정을 입히지 못하고 있어요. 특히 누나가 부른 노래는 슬픈 이별을 했지만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한다는 내용의 노래한 거잖아요?”

수연의 눈이 살짝 크게 뜨인다.

“그걸 어떻게?”

창현의 입에 미소가 맺힌다.

“에이, 이 정도 조언을 하려면 당연히 영어도 마스터를 해야죠. 어쨌든 들어보세요. 제가 보기에는 누나도 윤아 누나처럼 과도한 힘을 사용하려고 해요. 굳이 모든 상황에 맞춰 감정을 입힐 필요가 있나요? 슬픈 노래인 만큼 가장 큰 주제인 슬픔을 대중에게 전달하면 되요.”

“어떻게?”

“간단하죠. 슬픈 파트를 부를 땐 누나가 슬펐던 순간을 떠올리는 거에요. 그럼 슬픈 감정이 생기겠죠? 가사에 그 감정을 젖어들게 하는 거에요. 정말 나의 슬픔을 전달하는 거죠. 재회의 기대감도 마찬가지에요. 누나 같은 경우… 데뷔겠죠? 데뷔를 기다리는 설레는 감정. 그 감정을 가사와 일치 시키면 되요.”

“나의 감정을 가사에…….”

수연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하지만 그 충격은 새삼 컸다.

창현의 말은 간단했지만 그녀는 여태껏 이런 방법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래의 가사가 슬프면 최대한 노래의 분위기와 가사에 맞추어 부르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왔다. 가사의 내용에 어느 정도 동감을 하지만 결정적인 부분에 동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노래 가사로 간접적인 느낌을 받아도 직접 겪는 것만큼 못한 법이다.

그걸 알아차린 창현은 직접 자신이 겪었던 슬픔을 노래하란다.

자신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감정.

그것만큼 직접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은 없다.

불현듯 찾아온 깨달음은 찰나의 순간에 사람을 변화시킨다.

창현의 말에 무언가 단서를 잡은 수연이 노래를 부른다. 방금 전과 같은 노래다.

같은 노래지만 분위기는 확연하게 달랐다.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가사는 그녀의 감정이 입혀져 슬프면서 기대감이 들었다.

이윽고 노래가 끝나자 수연의 놀라울 정도로 발전된 가창력에 윤아와 주현이 멍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창현은 수연에게 엄지를 내밀어 보인다.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놀라운 발전이었다.

수연은 자신에게 엄지를 내밀어보이는 모습을 보곤 눈가를 파르르 떤다. 그리고 떨림이 담긴 목소리로 묻는다.

“강창현이라고 했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몇마디의 조언으로 마법처럼 사람을 변모 시키는 창현.

그 정체에 대해 수연이 의구심을 가졌다./

수연의 물음에 창현은 일순간 몸을 움찔했다.

“제 정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수연의 눈이 가늘게 변하며 창현을 훑었다. 애처로워보이던 조금 전과 달리 먹이를 노리는 듯한 포식자의 눈이었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어떻게 열다섯 살 소년이 보컬 트레이닝에 그렇게 빠삭하지? 게다가 그 가창력도 그렇고 웬만한 가수보다 괜찮아 보이고…….”

하나하나 창현을 보고 들었던 의구심을 늘어놓는 수연.

평범한 중학생이라면 전혀 갖출 수 없는 것을 창현은 갖추고 있었다.

뛰어난 가창력과 탁월한 보컬 트레이닝 실력.

그리고 사기적인 외모.

거리낌 없이 커피를 살 정도면 가지고 있는 돈도 부족하지 않은 듯했다.

수연의 설명을 들은 주현과 윤아도 그제야 의구심이 깃든 눈으로 창현을 바라본다.

가만히 듣고 있다 보니 의심이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중학생이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을까?

절대 아니다.

창현은 당황하며 양팔을 저었다.

“왜 그, 그런 시선으로 절… 하하! 노래 부르셨으니 목 마르시죠? 음료수 한잔 어때요 주현 누나?”

가장 먼저 자신이 도움을 준 주현에게 음료수를 권하는 창현.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창현의 편이 아니었다.

“나 노래 안 불러서 목 안 마른데…….”

창현은 재빨리 대상을 바꾸었다.

“윤아 누나?”

“목 마른 것보다 수연 누나의 질문에 대한 답이 더 궁금한데…….”

“수, 수연 누나?”

“…….”

묵묵히 바라보는 수연의 눈길에 창현은 찔끔한다. 처음 주현에게 권하던 음료수를 한 번에 마시더니 화제를 전환 해보려한다.

“음료수가 시원하네요. 어서 한잔씩…….”

그러나 여전히 그러한 시선은 거두어지지 않고 있었다.

자칫 자신의 정체(?)가 들통날 위기에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창현.

그의 표정은 마치 겁먹은 고양이와도 같았다.

그 모습을 본 수연의 포커 페이스가 깨지고 만다.

“푸후훗!”

윤아와 주현도 동시에 웃음을 흘린다.

“푸하하!”

“쿡쿡!”

“에?”

갑자기 세 소녀가 웃음을 터뜨리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창현.

한참동안 웃음을 터뜨리던 수연이 가까스로 진정하며 창현에게 말했다.

“내가 도움을 받은 네게 이렇게 추궁할 리 없잖아. 아, 웃겨. 푸훗! 하하하!”

“창현이 의외로 순진하네? 남에게 잘 속겠어.”

“속여서 미안. 하지만 재밌는 걸.”

그러면서 아직도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윤아와 주현.

그 모습에 정신이 나간 창현의 표정은 수습되지 않고 있었다.

“…저 지금 속은 거에요?”

수연은 여전히 웃음을 터뜨리다가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한다.

“응. 멋지게 조언을 해주기에 농담 한 번 한 건데 이런 반응은 상상도 못했어.”

“하하하…….”

자신이 속았다는 말을 듣자 허탈한 웃음을 흘리는 창현.

그것도 모르고 괜히 긴장하지 않았는가.

순간 몇 개의 생각이 창현의 뇌리에 흘러갔는지 모른다.

웃음기 가득한 세 소녀의 모습에 창현의 목소리가 떨려나온다.

“어떻게 절…….”

“미안, 미안! 창현이가 너무 듬직해 보여서 장난친 거야.”

수연은 손을 모아 창현에게 용서를 구했고, 윤아와 주현은 그런 수연의 모습을 힐끗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아니, 창현이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수연 언니가 눈짓을 하도 줘서 동참한 건데…….”

“저도요…….”

동생들의 배신(?)에 수연이 충격 받은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서 창현의 표정을 유심히 살핀다. 자신의 장난이 조금 심한 듯했다.

“너, 너희들? 이따 숙소에서 보자. 창현에 화난 거야? 미안해.”

창현이 미소를 지어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후! 됐어요, 수연 누나. 화난 거 아니에요. 순간 날카로운 질문을 하셔서 당황한 거에요.”

“그렇게 당황하니 더 궁금해지는데?”

살짝 날카로워지는 눈을 보며 창현이 웃음을 지으며 뒤로 한걸음 물러난다.

“하하! 이건 제 비밀이라서요. 그냥 꿈을 위해 열심히 공부한 거라고 할 게요. 남자도 비밀이 있어야 신비해 보이는 법입니다.”

“아! 어딘가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던 말.”

평소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지 주현이 창현의 말에 반응한다.

“도움 줘서 정말 고마워. 나중에 식사 한 번 대접할게.”

“…핸드폰 줘봐.”

손을 내미는 수연을 보며 얼떨떨한 얼굴로 핸드폰을 건네는 창현.

수연은 핸드폰을 받아들고는 번호를 입력하더니 윤아에게 건넨다.

윤아도 핸드폰을 받아들곤 번호를 입력하고 저장까지 꾹 한 뒤 창현에게 핸드폰을 건네며 말한다.

“연락 할 테니까 안 받으면 안 돼?”

창현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대신 전 맛있는 거 아님 안 먹을 거에요.”

“기대해. 맛있는 곳으로 데려갈 테니까.”

윤아는 자신감 있는 얼굴로 말했고, 창현은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소녀시대 멤버에 속한 누나들을 만날 때마다 기분이 유쾌해짐을 느끼는 창현이었다.

그렇게 창현은 수연과 윤아라는 두 누나를 알게 되었다.




제6장. 라샤의 데뷔? 현의 데뷔?




중간고사가 끝난 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시험이 끝나고 녹음도 끝나자 마땅히 할 일이 없어 창현이 유유히 시간을 보내는 사이, 연예계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바로 <Laser>로 일대 폭풍을 일으키며 조용히 준비하던 AA엔터테인먼트가 최근 모든 언론 매체들이 집중하고 있는 걸 그룹 ‘라샤’의 타이틀 곡 <Yesterday>가 드디어 뮤직비디오 공개와 함께 그 베일을 벗은 것이다.

뮤직비디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어제의 달콤한 순간을 떠올리는 라샤의 노래는 듣는 이들을 매료시켰으며, 드문드문 나오는 그녀들의 가창력은 기존의 아이돌이 비주얼 위주로 돌아간다는 편견을 말끔하게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라샤의 섹시함과 더불어 그녀들의 가창력에 반한 사람들은 곧장 그녀들의 팬으로 바뀌었고, 최근 들어 만들어진 라샤의 팬카페 회원이 물경 오만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그녀들이 이렇게 집중을 받는 것은 그녀들의 뛰어난 실력도 있지만 다른 요소가 존재하였다.

바로 얼굴없는 가수 ‘현’이 <Yesterday>를 피처링 했다는 소문이 알게 모르게 퍼져 나갔던 것이다.

AA엔터테인먼트 소속의 가수 ‘현’은 여태까지 싱글 앨범 하나밖에 내지 않은 신인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관심도는 폭발적이다.

가수 현이 낸 앨범 <Go&Stop>은 제2의 서태지라 불릴 정도로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수 현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었다.

바로 그가 순수한 노래 실력으로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사람들은 가수 현이 순수한 노래로 승부하기 위해 영세 규모의 AA엔터테인먼트를 택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체의 홍보도 없고 모습도 없이 오로지 노래만으로 승부한다고 추측하였다.

그 추측은 살을 붙이고 붙여 사람들에게 있어 가수 현은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 손 꼽히는 가수이자 작곡가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충분히 그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Go&Stop>에서 느꼈던 폭발적인 에너지를 다시 느껴보고자 현의 노래를 찾았고, 그가 피처링을 했다는 소문이 번지자 <Yesterday>의 관심은 하늘을 날다 못해 우주로까지 치솟는 듯하였다.

흔히 일정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은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게 된다.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변화보다는 자신의 것을 더욱 발전시키는데 주력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더욱 안정감 있고 수준 높게 변모하지만 참신한 느낌은 받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시도하지만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기존의 이미지에 묻히거나 무리한 변화의 시도로 인하여 자신의 기량을 깎아먹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Yesterday>는 달콤한 사랑 이야기를 노래한 것이다. 당연히 <Go&Stop>과 같은 폭발적인 게 없을 것이다.

현이 부르는 달콤한 멜로디는 과연 어떨까?

사람들은 모두 기대했고, 과연 현의 노래는 대중을 배신하지 않았다.

라샤가 <Yesterday>로 남성들의 마음을 녹였다면 현의 목소리는 여성들의 마음을 녹인 것이다.

그러자 사람들은 열광하면서 한편으로 기대하게 된다.

현이 무대에 서기를.

라샤와 함께 나와 최고의 무대를 보여주길 말이다.

그 열기는 그대로 AA엔터테인먼트로 전해졌다.


“허허, 이걸 어쩐다.”

석규는 빗발치는 의뢰 요청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는 지금 행복한 고민 속에 빠져 있었다.

라샤의 타이틀 곡 <Yesterday>가 공개되기 무섭게 방송 3사 모두 서로 자신의 방송국에서 데뷔 무대를 해달라고 요청해온 것이다.

세 방송국은 라샤가 신인 그룹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였다. 그만큼 라샤가 대박이란 걸 그들은 알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달콤한 미끼가 있으면 덫도 있는 법이다.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였지만 그들의 요구도 같았다.

바로 현의 출현이었다.

현재 방송 3사 음악 프로그램에는 연일 라샤의 데뷔 무대 날짜를 묻는 질문과 함께 피처링에 참가한 현이 출현하게 해달라고 하고 있었다. 얼굴없는 가수로서 대한민국 음반계에 한 획을 그은 현의 모습을 다들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시청자의 의견에 방송 3사도 동의하는 바였다. 데뷔 전부터 이렇게 관심을 모을 정도라면 라샤와 현의 출현으로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다. 그래서 베팅을 강하게 하고 현의 출현을 요구한 것이다. 덧붙여 앞으로 적극적으로 밀어주겠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회사의 사장인 석규의 입장에서 이것은 절호의 기회나 다름없었다. 무리를 해서라도 반드시 잡고 싶은 기회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녀석이 승낙할지. 허허.”

처음 앨범을 내면서 현이 누누이 말한 것이 바로 자신의 정체를 감춰달라는 것이었다. 연예인이 되면 유명해지는 것은 좋으나 사생활의 폭이 극도로 좁아질 것을 염려하였기에 한 부탁이다.

그리고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석규는 두 말없이 승낙했다. 겉으로 화려해보이지만 공인으로서 이것저것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자신의 아들 문제인 만큼 석규는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아들을 위해서라면 거절을 해야 함이 옳지만 3사에서 내민 과실은 석규로 하여금 함부로 결단을 내리지 못하게 할 만큼 달콤한 것이었다.

한동안 고민하던 석규는 인상을 찌푸리며 핸드폰을 집어들어 창현에게 전화했다.

“창현이냐? 지금 일 없지? 그럼 잠시 회사 좀 와라. 급한 일이니까, 어서. 그래.”

창현을 부른 석규는 핸드폰을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자기 인생이니 자기가 선택하게 해야겠어. 내가 결정하려니 머리만 아프군.”

자신의 일이니 알아서 처리하라.

창현이 어렸을 적부터 해오던 일이고, 석규가 자식을 키우는 방식이다.//


“너 TV 출현해달란다.”

사장실로 들어서는 창현에게 다짜고짜 말하는 석규였다.

자신을 다급하게 부르기에 무언가 큰 일이 터진 줄 알고 허겁지겁 달려왔던 창현은 맥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라샤의 데뷔 무대가 있잖느냐? <Yesterday>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더니 난리가 나서 말이지. 방송 3사에서 모두 자신들에게 라샤의 데뷔 무대를 해달라고 하지 않겠느냐? 그래서 뜸을 들였더니 어마어마한 조건을 제시하더구나.”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자신이 라샤의 곡들을 작곡하고 프로듀싱을 해줬지만 데뷔 무대랑 자신이 방송에 출현 해달라는 거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네놈이 <Yesterday>에 피처링 하지 않았느냐? 그거 참가해달란다. 이참에 베일 좀 벗겨보자는 거겠지. 시청자들도 난리였고.”

“그래요? 하지만 전 싫어요. 제가 처음 아버지께 드렸던 말씀 기억하고 계시죠?”

“그렇지. 하지만 떡밥이 너무 커서 말이다.”

얼굴을 알리지 않겠다는 것. 현의 말을 들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요구를 들어줄 경우 방송사에 뭘 해주기로 약속했는데요?”

“라샤를 전폭적으로 밀어준다고 하더구나.”

창현의 입이 떡 벌어진다. 정말 엄청난 조건이 아닌가! 라샤가 신인인 걸 감안하면 파격적이다 못해 편파적이라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이제 갓 데뷔하는 그룹을 방송사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주면 그것은 호랑이에 날개를 달은 것이나 다름없다.

“허, 그 정도에요?”

“그래. 보통 같으면 거절했을 테지만 워낙 큰 걸 내놓으니 섣불리 거절할 수 없더구나.”

“확실히 초기 반응이 좋다지만 방송사가 그 정도로 밀어주겠다면 보증수표나 다름없죠.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가요?”

“라샤의 <Yesterday>에서 네가 피처링 했다는 게 퍼지면서 관심도가 급증했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엄청난 반응으로 호응을 해줬다. 그중 일부 시청자들이 방송 3사 음악 프로그램에 신청했다고 한다. 그리고 반응이 엄청나자 방송 3사에서 경쟁이 붙어 서로 라샤와 너를 유치하려는 듯하다.”

“그렇군요.”

아직 자신의 인기를 잘 실감하지 못하는 창현. 하기야 유명해지면 밖에서 사람들이 알아보고 난리를 치기 마련인데 그런 것도 없었고 인터넷으로 간간히 봐오던 것도 이제는 남의 일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덤덤해졌다.

석규는 그런 아들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난 이렇게 생각한다. 비록 못난 아비지만 아들을 위한 충고라고 생각하고 들어다오.”

창현이 자세를 바로했다.

“말씀하세요, 아버지.”

“나도 네 말처럼 네가 유명해지길 원하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날카로운 송곳은 반드시 무언가를 꿰뚫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처럼 너 또한 언젠가 만인에게 모습을 드러낼 순간이 올 것이다. 난 네가 그때를 대비하여 한 번쯤 무대 위에 올라보았으면 한다. 무대 위에 서본 것과 안 서본 것의 차이는 크니 말이다.”

“무대라…….”

솔직히 유명세를 타서 다른 사람들이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부럽긴 하다. 하지만 그걸로 인하여 자신의 생활에 피해가 오는 건 아직 싫었다.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석규의 말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노래를 좋아하고 작곡을 좋아한다지만 그것을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환호성을 듣고 싶었다.

근래 들어 창현이 곧잘 느끼는 것이 있다.

바로 ‘외로움’이었다.

이따금 느끼곤 하던 감정이었는데, 주현이 데리고 온 수연과 윤아를 보면서 그 강도가 차츰 심해졌다.

마치 친자매처럼 함께 웃고 떠드는 그녀들의 모습이 부러웠고, 문득 자신의 주변에 외로움을 달래줄 사람이 없다는 걸 느낀 것이다.

노래를 하여도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공허하였고, 작곡을 하여도 쓸쓸한 멜로디 밖에 나오질 않았다.

녹음이 끝나고 활동 반경이 줄어들면서 만나는 사람이 없다 보니 그런 듯했다.

‘이 빈자리를 무대 위에 오름으로써 채울 수 있을까?’

그것은 모른다. 하지만 끌리는 건 사실이었다. 창현은 아직 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자신의 것을 과시하고도 싶은 사춘기의 소년이었으니까.

내심 마음이 기우는 것을 느끼며 창현이 물었다. 아직은 고민 단계였다.

“하지만 한 곳을 택하게 되면 다른 두 곳을 버리게 된다는 건데 그래도 괜찮을까요.”

한 곳이 밀어준다는 과실은 달콤했지만 그것을 위해 다른 두 곳을 버리는 건 어리석은 선택이기에 창현이 물었다.

“하하! 내 예상대로라면 한 곳을 택해도 다른 두 곳에서 손을 내밀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같은 기세라면 라샤의 열풍은 곧 대한민국을 뒤덮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석규의 마지막 말에는 상당한 믿음 아니, 확신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자신이 함께 출현한다는 전제가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게다가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여러 번이 될 수 있었기에 창현은 조심스러웠다.

“한 번만 하면 되는 거죠?”

조심스레 묻는 창현의 모습에 석규는 순간 마음이 아팠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아들을 이용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계속 말했지만 이것은 두 번 다시 없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영세 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해온 석규로서는 한단계 도약을 위하여 반드시 잡아야 하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래. 딱 한 번이다. 이 아비가 염치없지만 부탁하겠다. 라샤의 성공을 위해 도와다오.”

“후우! 알겠어요. 딱 한 번이에요. 다음엔 제가 내킬 때까지 출현하지 않을 거에요. 그런데…….”

승낙을 표한 창현이 조심스레 물었다.

“얼굴 가리면 안 되겠죠?”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방송사에서 제시한 게 바로 너의 얼굴 공개였어. 행여나 가면으로 얼굴 가릴 생각을 했으면 버리는 게 좋을 게다.”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대답하는 석규.

“으음!”

그런 석규의 대답에 고민에 빠진 창현.

얼굴 공개라. 참으로 난감한 주문이 아닐 수 없다.

아직은 평범한 생활이 좋은 창현이었기에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자신의 정체가 알려지는 걸 막고 싶었다.

그때 창현이 무언가 떠오른 듯 입을 열었다.

“반쪽짜리 가면으로 얼굴 반을 가리면요? 왼쪽만요.”

“반쪽이라…….”

잠시 고민하던 석규는 별 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가수 현의 컨셉은 신비주의가 아니었더냐? 반쪽이지만 다른 반대편 얼굴이 드러나면 그저 신비주의로 넘어가겠지.”

“되죠? 그럼, 흐흐…….”

창현은 입가에 미소를 짓고는 석규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 말을 듣던 석규가 감탄을 표한다.

“그런 방법이 있구나. 확실히 그렇게 하면 어느 정도 닮았다는 의구심만 살 테고 직접적으로 들킬 리는 없지. 역시 내 아들이라 그런지 잔머리도 보통이… 아니 머리가 명석하구나.”

창현이 싱긋 웃었다.

“어떻게 말하시건 전 아버지의 아들이므로 결국 평가는 아버지와 연결되어 있어요. 알아서 잘 칭찬 해주세요.”

“그래그래. 역시 내 아들이라 머리가 천재적이구나. 아주 대단해.”

“그럼 그렇게 해도 되는 거죠?”

“그 정도는 방송사에서도 뭐라고 못할 게다. 어차피 그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가수 현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거든. 사소한 요령 정도는 신경 쓰지 않을 게다. 어차피 무대에 선 후 활동할 건 라샤니까.”

“그럼 됐어요. 방송은 언제죠?”

“전부 다음 주로 잡혀있다. 네가 승낙한 이상 조건을 조율해보고 제일 낫게 제시한 곳에 출현하는 거지. 각각 금토일에 방송이 있다.”

“금요일도 어차피 학교 끝난 뒤에 할 테니 뭘 하시든 전 상관없어요. 토요일은 일찍 끝나고 일요일은 쉬니까요.”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창현이었지만 석규는 자신의 아들이 큰 결심을 했다는 걸 알았다. 비록 본인은 내키지 않지만 자신의 간곡한 부탁에, 라샤를 위해 나선 것이다. 고맙지 않을 수 없다.

“그래. 승낙해줘서 고맙다. 넌 최고의 효자다.”

“쳇, 그러지 말고 아버지 노릇이나 좀 잘해봐요. 자신이 없으면 아버지를 잘 내조하고 절 잘 돌봐줄 새어머니 좀 데려오시던가.”

“요놈이? 하하하! 그래그래. 외로운 창현이를 위해서라도 새어머니를 데려오겠다.”

자신이 미안해하는 걸 해소시켜주기 위해 농을 하는 창현을 보며 어느덧 자신의 아들이 다 컸다는 걸 느끼는 석규였다.


“하하하!”

창현은 맥없는 웃음을 흘렸다.

석규와 출연을 하기로 합의를 본 창현은 안무를 연습하고 있는 라샤를 보기 위해 연습실로 향했다.

처음엔 인사만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비록 하겠다고 말했지만 자신의 행동이 잘한 건지 아닌지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했던 까닭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인사하고 돌아가려던 찰나, 뒤에서 시린의 ‘잡아!’ 하는 소리와 함께 미란과 세룬이 후다닥 달려오더니 창현의 양팔을 붙들어 연습실 안으로 질질 끌고 오는 게 아닌가?

“뭐, 뭐죠?”

자신의 양팔을 강하게 붙드는 강력한(?) 힘을 느끼며 창현이 물었고, 시린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출연이 결정 됐다며? 그럼 우리랑 안무를 맞춰야지, 감히 어딜 도망 가려고?”

“도망이라뇨. 전 그저 집에 가려고 한건데… 무엇보다 제가 왜 안무를 맞춰야 하는 거에요?”

<Yesterday>에서 현이 등장하는 파트는 노래의 중후반 부분이다. 때문에 처음 굳이 안무를 맞출 필요가 없다.

하지만 라샤 멤버들의 생각은 달랐다.

“중반에 나와도 최근 세간의 관심을 싹슬이하고 있는 현의 등장인걸? 당연히 퍼포먼스가 필요하지.”

“아니 전 필요 없어요…….”

“우리가 안 돼. 그리고 창현이는 우리들을 프로듀싱 해줬잖아? 우리가 잘 되려면 너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마지막까지 책임져야지. 그러니 반항하지 말고 순순히 포기해.”

책임이라는 말에 창현의 어깨가 축 처졌다. 이왕 무대에 서기로 한 거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후우! 알았어요. 저도 하면 되죠?”

“잘 생각했어.”

시린이 창현을 보며 빙긋 웃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불여우처럼 보였다면 지금은 순한 토끼 같았다.

두 양면성을 가진 시린을 보며 새삼 여자가 두려운 존재라 느끼는 창현이었다.


현이 <Yesterday>의 피처링 가수로서 참가한다는 사실이 AA엔터테인먼트의 발표로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가수 현이 드디어 방송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특히 음원 서비스 부분에서 라샤의 정규 1집 수록곡 다섯 개 모두가 인기순위 10위 안에 들었다는 것은 놀라울 만한 대기록이었다.

그중에서 <Yesterday>의 반응은 가히 혁명이 일어났다고 착각 할 만큼 대단했다. 데뷔 전부터 뛰어난 실력으로 호평을 받아온 라샤의 가창력이 한 층 돋보였고,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뭇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현의 변신도 성공적이어서 거대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던 것이다.

이렇듯 현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그가 발매한 미니 앨범 <Go&Stop>의 판매도 늘어났다. 그동안 무관심 하던 사람들이 도대체 왜 사람들이 현, 현거리는지 궁금하여 구입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뒤늦게 현의 매력에 빠져든 사람들까지 다양했다.

사람들의 관심은 여러 방면에 걸쳐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었지만 그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바로 현의 모습이었다.

나이도, 얼굴도 알려지지 않은 현은 뛰어난 가창력으로 수많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만큼 그의 모습이 기대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에 따라 여러 방면으로 정보를 습득한 기자들이 제법 신빙성 있는 기사부터 시작하여 소설에 가까운 기사들을 냈는데, 그럴 때마다 폭발적인 조회수로 이어질 만큼 현에 대한 관심은 하루가 지날수록 커져갔다.

라샤의 첫 데뷔무대가 이뤄지는 곳은 토요일이었다.

사람들은 라샤와 현에 대한 호기심으로 방송 티켓을 구하려고 하였고, 무슨 월드컵 경기도 아니건만 가격에 가격을 덧댄 암표가 돌아다닐 정도로 사람들의 시선은 토요일 3시에 녹음될 음악 방송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일주일이란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토요일이 되었다.

석규가 방송 3사 중에서 라샤의 데뷔 무대를 서기로 한 곳은 M본부의 음악 프로그램이었다.

조건도 조건이었지만 현에 대한 일정 부분 요구를 M본부가 가장 먼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방송 3사에서 제시한 조건 중 하나가 바로 현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다.

석규는 이 부분을 조금이나마 수정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본래 현의 컨셉이 신비주의이고, 본인이 희망하는 만큼 약간 얼굴을 가릴 필요가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것이다.

본래 영세 엔터테인먼트인 AA엔터테인먼트가 거대 방송사를 상대로 이런 주장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석규에게는 라샤와 현이라는 강력한 패가 쥐어져 있었고, 이미 그들의 파급력이 어느 정도인지 본 방송 3사였기에 곧바로 조건 협상에 들어갔다. 그리고 선정된 것이 M본부였다.

창현은 무대에 설 날이 하루하루 다가옴에 따라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여태까지 느껴보았던 감정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쌓인 자신만의 응어리랄까. 그것을 풀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창현은 아침 일찍 준비를 하고 석규와 함께 집을 나서 라샤와 합류 한 뒤 방송국으로 향했다.

방송국으로 들어서던 창현은 밖에 늘어선 줄을 보고 절로 소리를 흘렸다.

“허어!”

“어, 엄청나네. 도대체 몇 명이 모인 거야?”

창현의 소리를 들은 시린이 길게 늘어선 장사진을 보고는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석규가 길게 늘어선 줄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

“다 너희들을 보려고 모인 게다. 그러니 실수하지 말고 열심히 해야한다.”

“이날을 위해 몇 년을 열심히 연습했는 걸요. 최선을 다해야죠.”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미란은 의욕을 불태웠다. 세룬도 떨리지만 지금 이 상황이 즐거운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오늘 이날을 위해 몇 년 동안 열심히 연습해왔다. 그러니 두려움보다 떨림이 클 수밖에 없고, 떨림보다 즐거움이 클 수밖에 없다.

창현은 옆에서 가늘게 떠는 시린을 보더니 물었다.

“긴장 되요, 누나?”

“응? 으응. 아무래도 그렇지. 나에게 있어 이곳은 예전부터 선망의 대상이었으니까. 어렸을 때부터 이곳에 서겠다고 얼마나 다짐을 했는지 몰라.”

“열심히 하셨잖아요. 반응도 좋으니 오늘은 그동안 노력해온 모든 것을 개방하세요. 그럼 누나들에게 있어 최고의 무대가 될 거라고 저는 의심치 않아요.”

시린이 그런 창현을 보며 기쁜 미소를 지으며 창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으이구, 말은 예쁘게 하네. 그래. 우리가 힘낼 테니 너도 잘해야 돼. 알았어?”

창현은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는 시린의 손길에 뒤로 물러났다.

“아, 제가 어린애도 아닌데 왜 그러세요. 게다가 오늘은 제가 누나보다 크다고요.”

오늘 특별 출현을 위해 창현은 남자의 자존심을 조금 두툼하게 착용했다. 그래서 평소 마주보던 시선 구도가 바뀌어 시린이 창현을 올려다보는 구도가 되었다.

시린이 피식 웃었다.

“그래봤자 너 실제 키 나보다 작잖아.”

“끄응! 아직 성장기에요. 일 년만 지나면 누나보다 커질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볼 문제지.”

시린의 웃음을 본 창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더 이상 상대해봤자 손해 보는 것은 자신 뿐. 훗날을 기약하며 창현과 라샤는 대기실로 향했다.


“리허설 무대는 어떻게 할 거야, 창현아?”

대기실에 들어서자 시린이 묻는다.

창현은 방송국에서 자신의 모습을 많이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본방만 하려고요. 미안하지만 누나들끼리 리허설 해주세요.”

오늘 방송을 하고 확실하게 결정을 내려야겠지만 창현은 아직까지 자신의 모습을 알리는 데는 부정적이었다.

그런 창현의 생각을 이미 석규를 통해 전해들었기에 라샤 멤버들은 순순히 수긍했다.

“알았어. 그럼 리허설 하고 올게. 창현이는 편히 쉬어.”

“네. 그럼 수고하세요, 누나들.”

라샤는 그대로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러 대기실을 벗어났다. 선배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기 위함이다. 현은 신비주의 컨셉에 정식 데뷔가 아니었기에 따라나서지 않았다.

“후우!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자. 그래야 누나들에게 최고의 무대를. 나의 첫 무대를 장식할 수 있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창현은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을 최고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 서서히 명상에 빠져들었다.


라샤는 자신의 곡에 반응이 좋다고 하여 자만하지 않았다.

인기란 것은 바람과도 같은 것이다. 언제 훌쩍 떠나갈지 모르는 것이고, 그것에 집착할수록 더욱 멀어질 수 있다.

석규는 라샤라는 걸 그룹을 구성하기 전에 먼저 멤버 하나하나의 성격을 보고 골랐다.

가수가 된다는 것은 대중의 아이돌이 되고 공인이 된다는 걸 뜻한다.

공인이 되면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조심해야 하고 매사에 짜증을 내지 않는 사근사근한 성격을 가져야 한다.

석규는 라샤가 연습생일 때부터 그것을 누누이 강조해왔고, 거의 세뇌(?) 수준까지 그 말을 들어온 라샤는 예의바르고 정중하게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선배 가수들은 예쁘고 예의 바른 라샤를 무척 반겼다. 그들도 눈이 있고 귀가 있는 이상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그녀들의 존재를 모를 리 없다.

화제의 주인공이고, 이미 대박은 따놓은 당상이라 여기는 당사자들이 무척 예의가 바르자 인기가 높아 오만할 거란 라샤의 편견도 사라지고 좋은 이미지만 남게 되었다.

인사를 하던 도중 몇몇 가수들은 현의 정체가 궁금했는지 넌지시 묻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라샤는 자칫 현이 오만불손한 인물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잘 둘러댔다.

삼십 분 동안 차례차례 선배들에게 인사를 한 라샤가 자신들의 대기실로 돌아왔다.

“후아! 엄청 긴장 했어.”

“그래도 좋은 분들이 많은 것 같아.”

“방송에서 보아온 이미지랑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대기실로 들어서던 그녀들은 멈칫했다.

대기실 안에 있던 창현이 눈을 감은 채 명상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라샤 멤버들은 순간 동시에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였다. 명상에 빠진 창현은 마치 건드리면 안될 듯한 느낌이 강렬하게 풍겨나왔던 것이다.

그녀들은 눈을 감고 조용히 좌선을 하고 있는 창현의 모습을 자세히 뜯어볼 수 있었다.

가는 얼굴 선과 날카롭고 높게 선 코. 그리고 감긴 눈가의 긴 속눈썹은 볼수록 아름답고 잘생겼다는 찬탄이 흘러 나온다.

시린은 그런 창현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히 잘생기긴 잘생겼어. 그렇지?”

미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우락부락한 사장님의 아들이란 게 매치가 안된다니까?”

“프로듀싱 할 때는 무섭고 그랬는데 지금은 보듬어주고 싶어. 귀여워.”

창현의 모습을 보며 소감을 말한 세룬이다.

그녀들은 이따금 창현의 모습을 살펴보기도 하고, 오늘 선보일 안무를 연습하기도 하였다.

곧이어 그녀들은 리허설을 하러 갔고, 성공적으로 리허설을 마친 그녀들이 대기실에 들어올 땐, 창현이 메이크업을 받고 있었다.

“오셨어요. 잘하시네요, 누나들. 걱정 없겠어요.”

라샤가 본 창현은 방금 전보다 좀 더 차분하고 좀 더 여유가 생긴 모습이었다.

창현은 지금 화장을 하고 있었다.

그가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선택한 것은 바로 짙은 화장이었다.

얼굴의 반을 가면으로 가리고 나머지 반쪽 얼굴은 짙은 화장을 한다. 그리고 카메라나 관중들에게 가급적 가면 쪽의 얼굴을 보이면 자신의 정체가 쉽사리 들키지 않을 거란 생각이었다.

그것만으로 방심하지는 않는다. 만약을 위해 머리 스타일도 바꾸었다. 이 정도면 평소 이미지와 달라 충분히 괴리감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고,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라샤는 화장이 끝난 창현의 모습을 보며 감탄을 터뜨렸다.

“호오! 이거 첫날밤에 화장 지워보라고 하는 건 비단 신부 이야기만이 아닌데?”

미란의 장난스러운 말에 창현이 빙긋 웃었다.

“누나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성공적이네요. 잘 넘길 수 있을 것 같아요.”

“너라면야 뭐…….”

그때, 스텝이 라샤의 차례가 임박했음을 알렸다.

라샤의 리더 시린이 미란과 세룬에게 말했다.

“자, 우리의 첫 무대야. 힘차게 구호 외치고 가자.”

“그래! 우리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우리의 불타오르는 열정을 위해.”

“우리의 찬란한 미래를 위해.”

각각 한마디씩 말한 그녀들은 한입을 모아 외쳤다.

“언제나 후회가 남지 않기 위해. 아자! 파이팅! 라샤!”

힘찬 구호와 함께 그녀들이 대기실을 벗어났다.

그런 그녀들의 모습을 쫓으며 창현이 반쪽짜리 가면을 들었다.

“이제 나도 시작해야겠지.”

차분하게 고르는 호흡과 차분한 눈동자.

만전의 상태다.


같은 시각.

청담동에 위치한 소녀시대의 숙소에서는 분주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태연은 TV를 들여다 보며 음악방송이 점점 후반부로 접어듬에도 원하던 가수가 나오지 않자 인상을 살풋 찌푸렸다. 그래도 그 모습이 마냥 귀엽기만 하다.

“라샤는 왜 아직 나오지 않는 거야?”

옆에서 윤아가 인터넷에 쳐본 내용을 떠올리며 대답해주었다.

“인터넷에 쳐보니 거의 마지막에 나온다고 되어 있어요, 언니. 데뷔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1위 후보라는데요?”

“정말?”

“물론 M방송사는 순위제가 없지만요. 다른 곳은 1위 후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대단하지. 데뷔부터 1위! 정말 대단해.”

감탄사를 터뜨리는 태연. 그럴 수밖에 없다. 데뷔 전부터 엄청난 인기 몰이를 하고 방송 3사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할 정도였으니 같은 걸 그룹으로서는 꿈 같은 엘리트 코스를 밟아나가고 있는 라샤였다.

“정말 같은 걸 그룹으로서 꿈같은 존재죠.”

태연과 윤아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때,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미영이 끼어든다. 예명은 티파니다.

“그런데 라샤의 무대에 정말 현이 나오는 거야?”

미영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한눈에 보아도 그녀가 열렬한 현의 팬인 걸 알 수 있다.

미영 곁에 앉아있던 주현이 대답한다.

“물론이에요, 언니. 몇 번을 검색해보고 몇 번이나 기사가 난 걸요.”

“정말 궁금해. 몇 살일까?”

“목소리로 보면 나이가 많은 것 같지는 않은데…….”

말끝을 흐리는 주현. 현의 모습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이상 어떠한 추측을 해보아도 결국 추측에 불과하다. 직접 모습으로 나와야 그 실체를 알 수 있겠지.

“난 현이 부르는 팝송이 듣고 싶어. 그럼 완전 반할 거 같아.”

미영이 양손을 붙잡은 채 눈이 몽롱해진다. 짧은 피처링 구간이지만 성공적인 변신을 완료한 가수 현은 천 개의 목소리를 가진 천의 마술사라 불리고 있다.

그런 그가 팝송을 부른다면 어떨까.

절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미영이었다.

“저도 현이 다른 노래를 불러보면 좋겠어요. 애니메이션 오프닝을 부르면 얼마나 좋을까…….”

자신이 즐겨듣는 애니 노래를 현이 부르는 상상을 하며 입가에 미소를 짓는 주현. 상상만 해도 감동의 물결이 몰려온다.

그때 곁에 있던 미영이 나머지 멤버를 찾으며 입을 연다.

“유리랑 써니랑 수영이랑 효연이는 어디 갔어?”

“유리 언니랑 수영 언니는 연습이 부족하다고 꾸중 받아서 연습실 갔고요, 효연 언니는 춤 카페 정모 가셨고, 써니 언니는 오늘 게임 길드 중요 클랜전이라고 하더라고요.”

“흐흥. 걔네들은 불쌍하네. 이 역사적인 순간을 보지 못하니.”

콧소리를 내며 말하는 미영은 무척이나 즐거워보였다.

하지만 주현이 그런 미영의 기분을 깨는 말을 하였다.

“유리 언니가 연신 당부하더라고요. 반드시 녹화 해두라고. 안하면 각오하라고요.”

미영의 입이 한자나 튀어 나온다.

“쳇! 걔는 그런 분야에서는 철저하다니깐.”

“유리 언니도 현의 팬이니까요. 아!”

주현이 Next 라샤를 보고 눈을 빛내며 말한다.

“이제 나올 것 같아요.”

음악방송 MC가 큰 목소리로 라샤를 소개한다. 2006년도 여름을 지배할 여신들의 등장. 올해 최고의 신인이라는 등 화려한 수식어를 붙이며 라샤가 등장한다.

그때까지 아무말없이 시청하던 수연이 조용히 입을 연다.

“그만 쉿. 조용히 보자.”

“응.”

“네.”

라샤의 무대가 시작되자 소녀들은 눈을 빛내며 TV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앞서 여러 가수들이 부르고 차츰 라샤의 차례가 다가온다.

한 명. 두 명.

차츰 라샤의 차례는 다가왔고, 마침내 라샤의 차례가 되었다.

MC가 가볍게 숨을 고르며 라샤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시청자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올해 여름을 지배할 여신들이 드디어 나오셨습니다. 최고의 매력으로 뭇 남성들이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들 올해 최고의 기대 여성 그룹! 라샤의 <Laser>!”

와아아아아아!

MC의 멘트가 끝남과 동시에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오며 카메라가 일제히 무대 위 라샤에게 집중된다.

무대 위에 올라선 라샤가 적당하게 긴장감이 감도는 얼굴로 자리를 잡고 있다.

타이틀 곡 <Yesterday>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Laser>는 라샤 각 멤버의 매력을 가장 잘 살려주는 노래였다.

MR이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노래는 시작 된다.

라샤 멤버들은 녹음을 할 때 창현이 해주었던 조언을 떠올리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개인 파트를 할 때는 각자 개인의 개성을 최대한 살리며 노래와 연기를 겸해야 한다.

청순함과 도발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시린이 초반의 시선을 끌어잡는데 탁월하다. 뭇 남성들이 끌릴 수밖에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표정에서 차츰 도발적인 아름다움으로 그 형태가 변한다. 노래도 노래지만 표정 연기도 완벽하다.

와아아아아!

한순간 시린에게 빠져드는 듯한 착각을 느끼며 팬들이 엄청난 함성을 터뜨린다. 대부분 남성 팬이었다.

마지막으로 눈웃음을 지어보인 시린이 뒤로 빠지고 미란이 메인에 선다.

미란은 살짝 치켜 올라간 눈매로 인하여 도도한 매력이 흐르는 여자다.

때론 새침하게, 때론 도도하게 표정 연기를 보이며 두 개의 껍데기 안에 있는 순수한 여인의 모습을 보인다.

엄청난 환호 속에서 마지막 개인 파트로 등장한 세룬은 포근한 미소와 눈웃음으로 반응을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그 뒤 이어진 세 명의 하모니.

개인 파트에선 철저하게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고 함께 할 땐 최고의 조화를 이끌어낸다.

무대 위에서 임하는 모습은 이제 갓 데뷔한 신인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능숙하고 절정에 달한 연기력을 보이고 있었다.

베스트 컨디션으로 첫 노래를 끝낸 라샤. 노래가 끝났음에도 관객의 폭발적인 반응은 여전하다.

무대 위에는 약 십 초가량의 적막이 존재하였고, 곧이어 새로운 MR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라샤의 타이틀 곡 <Yesterday>다.

어제의 달콤한 일을 회상하는 라샤의 타이틀 곡.

<Laser>의 여세를 이어가듯 라샤의 표정 연기와 목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며 관객들을 흡인력 있게 빠져들게 한다.

노래도 노래지만 노래를 하는 가수의 표정 연기가 훌륭하면 시청자는 노래와 연기가 주는 마력에 한 층 깊게 빠져들 수 있다.

최고의 가창력과 연기로 노래를 부르는 라샤.

그러나 노래가 흘러감에 따라 관객들의 함성은 가라앉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 라샤에 대한 호응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응은 점점 최고조를 향하고 있다.

그들이 침묵하는 이유는 하나다.

관객들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Yesterday>를 피처링 한 현의 등장을!

마침내 라샤의 파트가 모두 끝났다.

그와 동시에 무대 뒤쪽에서 효과음이 흘러나온다.

푸쉬!

무대 바닥에서 자욱하게 뿜어져 나오는 연기.

일순간 조명이 모두 그곳으로 향했고, 관객의 시선도 그곳으로 향한다.

마치 짙은 안개처럼 한치 앞도 불가능한 공간.

새하얀 백색의 공간에 검은 실루엣이 드리워진다.

서서히 드러나는 한 사람.

바로 현의 본격적인 등장이었다.


관객들도, 시청자들도 모두 현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에 서린 것은 기대감이었다.

어떻게 생겼을까. 과연 어린 소녀들의 바람처럼 잘생겼을까, 아니면 못생겨서 얼굴없는 가수를 했던 것일까.

궁금함이 담긴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현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모습을 드러낸 현은 젊은 청년이었다.

나이는 함부로 짐작하기 힘들었다. 아니, 너무나 어려보여 보는 이들이 혼란을 느껴야만 했다.

20대 중반? 아니다. 그보다 더 젊다.

20대 초반? 아니다. 좀 더. 그보다 좀 더 어려보인다.

그렇다면 10대란 말인가?

믿기 힘든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모두의 관심을 받으며 그 정체를 드러낸 현.

그런데 그 현이 십대에 불과한 소년이라니?

가창력이 아무리 뛰어난 십대 가수라 하여도 현만큼의 가창력과 비견되는 실력을 지닌 가수는 없었다.

그만큼 현의 노래에는 힘이 있고 감정이 실려 듣는 이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었으며, 국내 굴지의 실력파 가수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어마어마한 힘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 현이 십대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보는 사람들은 의구심을 가졌다.

정말 저게 현일까?

혹시 과도한 신비주의로 인하여 다른 대리인을 내세운 게 아닐까?

모습을 드러낸 현은 얼굴의 왼쪽을 가려주는 가면을 하고 있었다. 가면은 눈과 코 일부분을 가리고 있었다. 많은 면적을 가리고 있지 않기에 얼핏 보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은 화장을 하고 있었으며, 오른쪽 눈에는 외안경을 끼고 있다.

가면이, 외안경이, 사실상 현의 얼굴 절반 이상을 가리고 있었다.

드러난 것은 코와 입. 그리고 가느다란 턱선뿐.

얼굴의 절반 이상이 가려져 있지만 탁월한 그의 외모까지 감추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막연하게 현이 추남일 거라 생각하던 사람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은 채 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아니지 않은가. 이 정도 비주얼을 지니고 있었으면서 그동안 왜 이름없는 가수를 했단 말인가.

모두의 시선이 현의 입술을 향하고 있었다. 가면으로, 외안경으로 가려진 눈과 달리 입 부근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그들은 현의 노래를 듣고 싶었다.

그 뛰어남을 라이브로 직접 듣고 싶어했다.

그랬기에 현의 입술로 시선이 모여들었다. 모두가 그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남자가 저렇게 붉은 입술을 지녀도 된 것일까.

현의 입이 살짝 벌어지는 순간, 그의 파트는 시작되었다.

어제 만난 여인을 떠올리듯 입가에 맺힌 은은한 미소와 함께 흘러나오는 달콤한 목소리.

듣는 이를 매료시키는 현의 목소리는 보고, 듣는 사람들을 모두 매혹시키는 강렬한 중독성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사람들의 의심을 말끔하게 걷어냈다.

감정을 담아내어 상대방에게 가감없이 전달하는 가창력.

그것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현밖에 없다.

저기 무대 위에 서 있는 소년이 정말 현인 것이다.

사람들의 눈에 의심은 사라졌고, 그 틈을 경외심이 채워나갔다.

아직 십대에 불과한 소년.

앞날이 더 많고,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그가 이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다면 몇 년 후 얼마나 발전할 것인가.

사람들은 기대했고, 현의 노래에 매료되어 갔다.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내고 천천히 라샤에게 향한 현은 자신의 파트가 시작되자 맞춰온 안무를 하기 시작한다.

어제의 만남을 회상하며 달콤했던 그 순간을 시린에게 전했으며, 재회를 기대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미란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짧은 그녀와의 만남을 아쉬워하는 마음을 세룬에게 전달한다.

노래에 담긴 감정이 현의 손끝을 향해 라샤에게 전해지고, 그 감정을 전달받은 라샤는 현을 보조한다.

자신의 파트가 끝나고 물러나는 현은 이미 방청석에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놓았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라샤가 그 물결을 거대한 파도로 바꾸어놓았다.

마침내 <Yesterday>가 끝났을 때, 방청석에서 거대한 함성이 흘러나온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최고다! 최고!

라샤! 라샤! 라샤!

현! 현! 현!

그들의 노래로 일어난 거대한 파도는 사람의 마음에 깊게 스며들었다.

최고의 데뷔 무대를 치른 라샤는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관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넨 뒤 물러난다. 하지만 현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에 의아한 표정을 짓던 사람들은 곧이어 흘러나오는 MR에 다시 한 번 열광한다.

와아아아아!

흘러나오는 MR은 바로 현의 데뷔곡인 <Go&Stop>이었던 것이다.

음을 음미하듯 두 눈을 감은 현의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겁 없는 아이처럼 앞을 향해 달려가는 소년의 행보.

거침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듯 흘러나오는 현의 노래는 거침없었다.

하지만 앞을 향하는 소년에게 시련이 찾아왔고, 그에 소년은 절망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차근차근 자신의 노력을 쌓아나가고 마침내 그 노력이 꽃을 피울 때, 그동안 쌓여있던 모든 것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다.

노래의 클라이막스에 달할 때, 두 손으로 마이크를 움켜쥔 현이 음을 올리기 시작한다.

끝없이 올라가는 현의 고음.

관객들도 얼어붙었고 방송을 시청하던 시청자들도 얼어붙었다.

저것이 인간의 몸에서 흘러나올 수 있는 목소리란 말인가.

절정에 달한 현의 노래는 보는 모두에게 큰 파문을 남겼다.

도저히 불가능 할 거라 여겼던 노래.

그것을 창현은 해낸 것이다.

고음을 올리던 창현의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오싹한 소름을 느껴야만 했다.

그의 노래는 무대를 지배했고, 한국을 지배했다.

보는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은 현의 무대.

지켜보던 모두는 할 말을 잃어야 했다.

그렇게 창현의 첫 무대는 끝이 났다.

가수 현의 첫 공식 무대에 오른 창현.

그의 등장은 거대한 폭풍을 예고하고 있었다.


“…….”

가수 현의 무대를 본 소녀들은 할 말을 잃었다.

저게 인간으로서 가능한 일일까.

현의 노래를 듣고 난 소녀들은 넋이 나갔다.

태연이 멍한 표정을 지은 채 말한다.

“나도 제법 노래에 자신 있었지만… 이건 비교가 되질 않잖아.”

“가수 현. 정말 인간?”

미영도 충격이 큰 듯하다.

특히 그녀가 놀란 부분은 <Go&Stop>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고음부분이다.

다른 소녀들이 미영을 바라보았고, 미영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말했다.

“저거 She's gone 이란 노래보다 높은데? 특히 잔잔한 부분에서 기복없이 끌어올려야 하기에 몇단계나 더 높다고.”

전문용어까지 동원하며 설명할 기세였기에 수연이 나서서 간단하게 정리해준다.

“한마디로 대단하다는 거야.”

“그렇군요.”

주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자 미영이 울상을 짓는다.

“이잉. 열심히 설명하는데 그게 뭐야.”

미영의 항의(?)에 수연이 일침을 날린다.

“어렵게 말하면 뭐해. 그냥 간단하게 말해서 이해시켜주는 게 낫지.”

윤아가 수연의 편을 들고 나선다.

“수연 언니 말이 맞아요. 미영 언니는 가끔 말을 너무 어렵게 하려고 해요. 아메리칸 스타일인가.”

“하지만 그래야 저 가창력을, 내가 느낀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걸.”

주현을 바라보며 도움을 청하듯 말하는 미영이었지만 주현마저도 미영의 편이 아니었다.

“수연 언니 말대로 미영 언니는 너무 말을 어렵게 해요. 표현은 다를지라도 느낀 건 비슷할 텐데…….”

미영이 울상을 지으며 태연을 찾는다,

“주현이 너마저도… 태연아 도와줘. 내 편은 너밖에 없어.”

“조용히 해. 노래 여운 느끼기도 바빠.”

“모두 나만 미워해.”

태연에게마저 버려진 미영은 우는 시늉을 하며 방으로 달려간다.

“…….”

미영이 방으로 달려가자 시끌벅적하던 거실이 조용해진다.

주현은 녹화한 현의 라이브를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묘하게 창현이를 닮은 것 같은데…….’

갸름한 턱선과 이목구비가 묘하게 창현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의 현은 훨씬 성숙하고 알 수 없는 신비함이 감돌았다.

무엇보다 창현과 현의 키 차이는 쉽게 채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했다.

창현이 남자의 자존심을 과하게 착용(?)한 것을 모르던 주현은 키 차이를 보고 바로 자신의 추측을 부인한다.

‘에이 설마 창현이겠어? 약간 비슷한 것뿐이겠지. 키 차이도 크고. 머리 스타일도 다르잖아.’

수연과 윤아도 주현과 비슷한 생각을 한다.

‘저거 창현이랑 닮은 거 같은데.’

‘설마? 아니겠지.’

이윽고 그녀들은 창현의 키를 보고는 주현과 같이 부인하게 된다.

‘가수 현이랑 창현이 키가 거의 15cm가 차이나네. 내 착각인가 보다.’

‘그럼 그렇지. 혹시나 했는데 키 차이가 너무 심해.’

주현이 녹화분을 재생하자 다시 지켜보며 창현의 노래를 감상하며 감탄하던 태연은 문득 현의 얼굴을 보며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인다.

‘내 착각? 그 오만불손하던 녀석이랑 비슷한데…….’

소녀시대에서 가장 작은 축에 속하는 자신과 키가 비슷한 주제에 감히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고 도망친 녀석.

언젠가 한 번 만나게 되면 손봐(?)주리라 마음 먹은 녀석이랑 현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그러나 그녀도 역시나, 170cm에 달하는 라샤 멤버들보다 큰 현의 모습이 자신의 추측을 부인한다.

‘에이 설마. 못해도 175cm 이상으로 보이는데 저런 가창력을 지닌 가수가 설마 그렇게 깔았겠어? 내 착각이겠지.’

그러면서 창현과 현의 관계를 부인하는 태연.

그녀는 창현이 정말 그렇게 깔았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노래 정말 잘하네. 나랑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나중에 데뷔하게 되면 한 번쯤 꼭 봐달라고 해야지.’

다시 봐도 절로 감탄이 흘러나오는 현의 가창력. 한 수 지도를 부탁하고 싶을 정도로 현의 가창력은 독보적이었다.

한 번 만나게 되면 꼭 한 수 지도를 부탁하고 싶은 태연이었다.

현의 무대를 지켜보면서 도저히 저 키를 지닌 현이 창현일 확률이 없다고 판단한 주현이 비디오를 갈무리 하며 태연에게 말한다.

“언니, 방송도 봤으니 이제 저녁 준비해야죠.”

상념에 빠져있던 태연은 주현의 말을 듣고 생각에 헤어나온다.

“응? 응. 그래야지. 그럼 현의 무대도 봤으니 장이나 보러가자. 삐진 미영이 화도 풀어줘야 하고.”

“그래요. 너무 미영 언니를 놀린 것 같아서 미안하네요.”

윤아는 울면서(?) 방으로 가던 미영의 모습에 미안함을 느꼈는지 말한다. 그리고 주현과 함께 방으로 달려가 미영을 달래서 같이 장을 보러간다. 삐진 게 언제였냐는 듯 금방 웃음을 지으며 장보러 나서는 미영의 모습을 보니 좋게 말하면 무척 순수해보였고, 나쁘게 말하면 좀 맹한 듯했다.

그렇게 창현은 성공적으로 무대를 치르고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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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3화 +6 15.04.22 4,427 8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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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1화 +10 15.04.17 7,376 95 10쪽
37 ▲▲▲▲▲시즌2 시작!▲▲▲▲▲ +5 15.04.17 5,425 65 1쪽
36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6장-108장 +8 15.04.16 6,414 106 230쪽
35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3장-105장 +1 15.04.16 4,245 82 314쪽
34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0장-102장 +2 15.04.16 4,413 68 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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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마음을 울리는 음악 70장-72장 +1 15.04.16 4,755 82 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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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마음을 울리는 음악 40장-42장 +3 15.04.16 8,909 183 320쪽
13 마음을 울리는 음악 37장-39장 +2 15.04.16 9,615 224 397쪽
12 마음을 울리는 음악 34장-36장 +8 15.04.16 9,524 189 322쪽
11 마음을 울리는 음악 31장-33장 +8 15.04.16 10,355 261 345쪽
10 마음을 울리는 음악 28장-30장 +5 15.04.16 10,660 260 277쪽
9 마음을 울리는 음악 25장-27장 +7 15.04.16 11,040 267 233쪽
8 마음을 울리는 음악 22장-24장 +4 15.04.16 10,924 261 198쪽
7 마음을 울리는 음악 19장-21장 +4 15.04.16 11,492 270 216쪽
6 마음을 울리는 음악 16장-18장 +5 15.04.16 11,544 242 163쪽
5 마음을 울리는 음악 13장-15장 +5 15.04.16 14,536 297 237쪽
4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장-12장 +8 15.04.16 13,738 352 171쪽
3 마음을 울리는 음악 7장-9장 +10 15.04.16 14,554 362 142쪽
» 마음을 울리는 음악 4장-6장 +11 15.04.16 16,843 421 120쪽
1 마음을 울리는 음악 프롤로그-3장 +47 15.04.16 29,905 545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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