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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번 님의 서재입니다.

마음을 울리는 음악

웹소설 > 작가연재 > 팬픽·패러디, 현대판타지

김현우
작품등록일 :
2015.04.16 13:27
최근연재일 :
2015.06.0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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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16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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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0쪽

마음을 울리는 음악 70장-72장

DUMMY

제70장 고민하는 당신, 떠나라!




드라마 촬영이 끝나자 창현은 본격적으로 앨범 준비에 착수하게 되었다.

휴식이 며칠 동안 주어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명목상 주어진 것. 당장 앨범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는 곡을 가다듬어야 했으며, 안무 또한 꾸준하게 연습을 해야만 했다.

하늘을 걷는 컨셉을 가진 안무는 창현이 지닌 내공을 바탕으로 펼치는, 오로지 그만이 가능한 춤이다. 하지만 내공 소모가 막대하여 몇 번 펼치면 녹초가 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기에 연습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지영이가 본 반응을 보면 성공적이지.”

안무를 완성하고 가장 먼저 보여준 것은 바로 지영이었다.

그녀에게 안무를 보여준 후 결과는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하늘을 걷는 듯한 창현의 안무는 지영으로 하여금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방식의 안무였으니까. 지영은 경악하면서 창현에게 어떤 원리로 시행되는 것인지 창현을 붙잡고 거듭 묻기 바빴다.

그 정도 반응만 본다면 이 안무는 성공적.

남은 것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 더욱 더 큰 센세이션을 일으킬 수 있도록 가다듬는 것뿐이다.

“가능할 거야. 가능하지.”

안무를 가다듬는 것 외에도 뮤직비디오를 촬영해야 했으며, 드라마 촬영이 끝난 후 주조연 배우들과 함께 야심만만이라는 토크 프로그램에도 참여해야 한다.

8월초 컴백을 감안하면 남은 기간은 한 달 보름밖에 되지 않지만 바쁜 나날의 연속이 될 확률이 높았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게 있는지 창현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진다.

“생각해보니 컴백한 이후에 검정고시를 봐야 하잖아? 이런…….”

컴백을 앞둔 가수였지만 그는 검정고시를 앞둔 고시생이기도 하였다.

작업실로 나서는 창현의 손에는 수학 정석과 개념 원리가 쥐어져 있었다.

옆에 있는 동으로 옮겨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창현을 목격한 몇몇 사생팬들이 사진을 찍다가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을 보고는 착실히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게 알려졌지만.

앨범 성공과 검정고시, 두 가지 모두 붙잡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었다.


작업실로 향한 창현의 일과는 단조롭다 볼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기에 마음껏 안무를 연습할 수 있었고, 이미 뼈대는 완성해둔 상황이었기에 좋은 것이 떠오를 때마다 수정을 가미하면 된다. 그리고 다른 것을 하지 않을 때는 미리 준비해둔 참고서로 검정고시를 준비한다.

집에 있을 때는 인터넷 강의를 종종 듣고, 다 듣지 못했을 때는 유료 다운로드를 이용하여 PMP에 담아 시청하고는 한다.

중학교 시절 성적이 전교권에 들었던 창현이지만 고등학교에 들어오면 수업의 체계가 훨씬 심화되기에 성적이 좋은 그로서도 방심할 수 없다.

상위권에 들었던 학생들이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거꾸러지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니까. 머리가 좋은 걸 믿고 만만히 여기기에는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이 만만치 않다.

“일단은 이렇게만 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

수학 정석을 스윽 훑어보며 창현이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복잡한 공식을 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초 문제를 시작하여 서서히 복잡한 공식으로 풀어내는 것까지 방심할 수 없다.

창현은 다른 과목 중에서도 수학을 가장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문제를 풀 때 가지런하게 쓰는 내용들이 그로 하여금 마치 수학자가 된 듯한 성취감을 주기에 그렇다. 무엇보다 풀어내린 흔적이 선명하게 남으니 다 풀고 나면 뭔가 남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고.

특히 일정 공식을 대입하면 마법처럼 풀려버리는 수학은 창현에게 있어 강렬한 유혹을 주는 과목이기도 하다.

“마법이라도 익히면 성공했을지도.”

그가 수학을 열심히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폭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하기 때문.

문제를 풀 때 한 가지로 고정된 시점에서 바라보면 심화 문제를 푸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기에 수학 문제를 풀려면 항상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여러 가지 공식들을 대입하여 풀어낼 수 있으니까.

넓은 시야를 갖게 하는 이유가 있어 수학에 매진하기도 한다.

한동안 수학 문제를 풀면서 종종 곡을 저장해두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창현은 시간이 3시가 된 것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슬슬 회사로 가야지.”

4시부터는 지영의 보컬 트레이닝을 해줄 시간이기에 슬슬 움직여야 한다. 다른 연예인이라면 벤이 오겠지만 이미 탁월한 변장술로 능력을 인정받은 창현은 다른 연예인보다 여유롭다.

점심을 먹지 않은 것을 깨달은 그는 앞에 위치한 슈퍼에서 간단하게 빵과 우유를 산 뒤 어슬렁어슬렁 걸음을 옮긴다. 작업실에 있으면서 안무 연습을 하지 않았기에 회사에 가기 전까지 어느 정도 운동을 해둘 생각이었다.

내공에 마냥 의지할 수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렇게 약 삼십여 분 동안 걸음을 옮긴 창현은 아주 능숙하게 회사 뒷문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땀이 제법 흘러내렸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은 채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위이잉.

외견은 허름하지만 내부는 제법 세련되어가는 AA엔터테인먼트였다. 조만간 외부 페인트칠도 새로 하려 한다니 이제 중견 엔터테인먼트로 도약할 준비가 되어가리라.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창현이 탑승하였고, 목적지 5층을 누른 뒤 막 엘리베이터 문을 닫으려 할 때였다.

그때, 창현의 귀에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자, 잠시만요!”

“응?”

엘리베이터를 붙잡으려는 목소리란 걸 알아차린 창현은 열림을 해주었고, 헐레벌떡 뛰어오던 여인은 간신히 엘리베이터에 탑승할 수 있었다.

“헥헥!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여인은 창현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기에 창현은 고개를 갸웃한다.

‘새로운 직원인가?’

일단 탈 사람은 모두 탄 것 같기에 창현은 엘리베이터 문을 닫는다.

그 사이 숨을 고른 여인은 창현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한유란은 이번 채용 광고를 통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AA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한 여인이다.

본격적으로 중견 엔터테인먼트로 발돋움하기 위해 석규가 가장 먼저 시행한 것은 직원들 숫자를 늘리는 것이었다.

전에는 소수정예라는 명목 하에 몇 되지 않는 직원들을 통해 회사를 꾸려나갔지만 현과 라샤라는 걸출한 연예인이 탄생하면서 서서히 업무량이 늘어나고, 사장인 석규조차 야근을 하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석규는 직원들을 하나둘씩 늘리기 시작했고, 하나둘씩 직원들을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일처리를 완벽하게 하는 것이 힘들었다. 업무를 처리하는 사원들만으로는 현과 라샤의 활동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것을 느껴야 했던 것이다.

라샤가 주로 해외에서 활동하기에 업무량이 적었지, 만약 라샤가 국내로 돌아오면 야근을 밥 먹듯이 하게 된다.

회사의 기형적인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석규는 직원들을 채용하기 시작했고, 불만이 나오지 않는 적절한 연봉 제시를 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무려 78:1이라는 엄청난 경쟁률을 기록했고, 3차 면접까지 거르고 거른 끝에 다섯 명의 직원을 선발하게 되었다.

마지막 면접은 석규와 직접 이야기를 나눌 정도였기에 무척 까다로웠다.

한유란은 수도권에서 손에 꼽히는 대학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상위권에 속하는 대학을 졸업하였다.

그녀가 전공한 것은 다름 아닌 중국어학과. 중국 쪽 업무를 담당하기로 했다.

유란은 자신이 AA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한 것을 행운으로 여겼다.

‘연봉도 좋고, 야근 수당도 있다 했으니까.’

요즘 같이 직장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진 상황에서 AA엔터테인먼트가 제시한 조건은 무척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사실 유란은 연예 기획사에 입사할 생각을 갖고 있지 못했다. 중국어를 전공하긴 했지만 대학교가 그렇게 이름 높은 것도 아니었고, 기획사에 어울리지도 않으니까.

다만 동기생들이 공무원을 준비하거나 그러기에 그녀도 덩달아 준비를 하다가 AA엔터테인먼트에서 내건 채용공고에 혹하여 이쪽으로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사실 그렇게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입사하게 되자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설마 내가 될 줄 몰랐겠지.’

3차 면접 직전까지 남은 면면을 보고 그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소위 말하는 SKY대 졸업생들은 거의 없던 것.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급의 대학이거나, 심지어 지방대 출신마저도 있었다.

‘확실히 사장님은 틀려.’

이야기를 나눠본 석규는 권위적이지 않았다.

그가 한 말은 아주 간단했다. 열심히 하는 만큼 대가를 받을 것이며, 능력만 쪽 빨아먹는 것이 아닌 가족같은 분위기를 원한다는 것. 그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기에 유란은 크게 감명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그녀는 왜 소위 말하는 SKY대 사람들이 최종 면접에 남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석규는 독선적인 사람을 싫어했다. 우선 주어진 일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성실함과 사람의 성격, 그리고 회사에 애정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을 뽑으려 했던 것이다.

유란은 평소 성실함에는 자신 있었지만 요령이 부족하여 종종 핀잔을 얻고는 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기회가 되어 AA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하게 된 것이다.

‘연봉 3000만원에 야근시 추가 수당. 완전 만족이야 난.’

성과를 올리면 성과급과 더불어 진급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유란은 자신에게 기회가 왔음을 깨달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확실하게 처리한다면 일자리에서 짤릴 일은 없을 테니까.

AA엔터테인먼트에 현과 라샤가 있는 걸 감안하면 사장인 석규가 갑자기 미쳐서 땅에 투기하고 망하지 않는 이상 회사가 망할 일은 없을 것이리라.

‘더군다나 현도 있고.’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그녀도 현의 팬이다. 다크 스타 정회원에 불과하지만 종종 접속을 할 정도였고, MP3나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 현의 음악을 해놓을 정도였으니까.

자신이 배속된 곳이 총무부였지만 같은 회사인 만큼 현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팽배한 상태였다.

주변 가족이나 이웃들은 물론, 친구들까지 AA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하게 되었다고 하니 현의 싸인을 받아 달라 할 정도였으니까.

‘언감생심 싸인은 꿈도 못꾸더라도 안면을 트는 건 가능하단 말이지. 그렇게 되면 날 무시하던 친구들도 꼼짝 못할 걸? 호호!’

항상 친구들에게 당하던 가련한 먹이사슬 최하위던 유란은 자신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될 경우를 생각하며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정식 출근은 다음주부터지만 오늘 그녀가 출근한 것은 사장 석규가 불렀기 때문. 앞으로 회사에서 일해야 할 것들을 간략하게 알려주는 오리엔테이션 같은 개념이라고 했기에 그녀는 집합시간인 4시에 맞춰 회사에 향했다.

그러다 막 엘리베이터를 탑승하려 할 때, 닫히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자, 잠시만요!”

거의 다 닫힌 엘리베이터가 열릴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짓말 같이 그 목소리를 듣고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숨이 차오를 만큼 뛰었던 탓에 그녀는 감사의 인사를 표하며 숨을 고르는데 주력하였다.

그러다 문득 엘리베이터를 열어준 사람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한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고, 복장 또한 간편하였기에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무언가 어리다는 분위기가 팍팍 풍겼다. 그러면서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무언의 포스도 풍기고 있었고.

‘AA엔터테인먼트에 연습생이 있던가?’

입사하게 되는 곳이었기에 나름대로 조사를 했지만 연습생이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없다고도 들어보지 못했기에 유란은 창현이 연습생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이렇게 어린 직원은 없을 테니까.

‘역시 차기 연예인이라 이건가? 풍기는 포스가 장난이 아니네.’

창현에게서 느껴지는 포스에 은연중 압도되는 자신의 모습을 느낀 유란은 4층을 눌렀다.

“…….”

아무 말도 오고가지 않은 채 엘리베이터에는 침묵이 내려앉았고, 잠시 후, 엘리베이터는 4층에 도착하였다.

땡!

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에 내리면서 유란이 슬쩍 창현을 보며 말한다.

“몇 살이세요?”

“열일곱 살입니다만…….”

갑자기 자신의 나이를 묻는 유란의 행동에 창현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대답을 한다.

‘역시 연습생이었어.’

그 대답을 들은 유란은 자신의 생각이 확실하다는 걸 깨달았다. 열일곱 살이 직원일 리는 없으니 이곳의 연습생임이 분명하리라. 5층은 그녀가 알기로 연습생들이 사용하는 연습실과 보컬 트레이닝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린 나이에 힘들겠네.’

꿈을 위해 달려가는 그의 모습이 참으로 대단하게 생각되니, 앞으로 자신이 잘 보살펴(?)줘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며칠 뒤 정식으로 출근하게 될 한유란이에요. 자주 보기 힘들 테지만 이렇게 본 것도 인연인 만큼 다음에 만나면 밥이라도 사드릴게요. 연습생 생활 힘들죠? 힘내세요. 그럼 파이팅!”

그렇게 말한 유란은 그대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긴다.

“…….”

졸지에 연습생으로 전락한 창현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창현은 웃음을 지었다.

“연습생이라… 후후! 재미있네.”


연습실에 도착한 창현은 먼저 도착한 지영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시키면서 시간을 보냈다.

약 한 시간 정도 흐른 후, 창현은 나직한 감탄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트레이닝을 끝낸다.

“수고했어, 오늘도.”

“오늘은 일찍 끝나네요?”

“지영이 실력이 많이 늘어서. 내가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 어릴 때 발전이 빠르다고 하더니 지영이 넌 발전이 진짜 빠르다.”

“정말?”

창현의 칭찬에 지영의 얼굴이 환하게 변한다. 평소 격려의 말을 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칭찬 릴레이를 펼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

“응, 사실이야. 이 발전 속도면 아마 내가 말했던 기간 안에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데뷔도 꿈은 아니라는 거지.”

지영이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할 때 창현은 가장 크게 반대를 하였다.

그 이유는 그녀가 자신의 여동생이 되었기 때문.

만약 아무 상관이 없는 사이였더라면 그녀는 트레이닝 후 훌륭한 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동생이 된 이상 웬만한 실력 가지고는 대중을 납득시키기 힘들 것이란 게 창현의 생각이었다. 다른 연예인이라면 상관없을 테지만 창현에게 향하는 잣대가 그대로 지영에게 향할 테니까. 그 잣대를 납득시키지 못할 실력이라면 상처만 받고 대중에게 외면 받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발전 속도라면 자신의 이름에 눌리지 않고 훌륭하게 버텨낼 수 있으리라.

그만큼 지영의 노력과 열정은 그녀를 배반하지 않았다.

일종의 중간 평가와 같은 말이었기에 지영은 감격한 표정으로 창현에게 말한다.

“고마워, 오빠.”

“고맙긴. 네가 열심히 해서 그런 건데.”

“그래도…….”

“고마운 건 네가 만족 선에 다다를 정도로 성장한 뒤에 받도록 할게. 확실한 결과가 나오면 그때는 망설이지 않고 감사의 인사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지금 내가 한 말을 듣고 자만하면 그것은 결국 네 발목을 잡게 될 거야. 알겠지?”

가족이 나쁜 말을 할 리가 없다. 피로 이어진 가족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사심 없이 조언을 해줄 수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은 가족이 있더라도 그 범주에 창현과 지영은 속하지 않는다.

“응!”

“그래, 그럼 된 거야.”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듯 창현이 말하자, 고개를 끄덕인 지영이 창현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런데 오빠, 그 허공을 걷는 안무 한 번만 보여주면 안 돼?”

그녀는 자신이 말한 것을 창현이 그렇게 적용시킬 것이라 상상도 못했다.

어둠 속에서 은은히 빛나던 창현의 발이 허공을 걷던 그 모습! 그것은 거대한 충격이었기에 그녀는 시간이 종종 남으면 창현에게 그 안무를 보여 달라 하고는 한다. 그만큼 파격적이고 대단하여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그런 면에 있어서 창현은 안무를 창조하는데 성공했다 할 수 있으리라.

“지금은 좀 곤란하지. 아무래도 준비를 갖춰야 하는 안무니까.”

다른 사람이 없을 때 혼자서 연습할 수 있지만 사람 있는 곳에서 보여주는 것은 사양이었다. 자신이 아무 도구도 없이 허공을 걷는 걸 보여줄 경우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몰랐으니까. 지영도 모종의 도구를 사용했다 믿고 있었기에 환한 지금 상태에서 보여주는 것은 곤란했다.

“그래도 보여주라. 응?”

“안 되는 건 안 돼. 아직 완벽하게 숙달된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정도가 되면 그때 보여줄게.”

창현의 말에 조르던 지영이 멈칫하더니 눈을 토끼처럼 동그랗게 뜨고는 묻는다.

“아직 다른 사람한테 보여준 게 아니야?”

“그렇지. 아직 보여주지 않았기에 보여주는 건 곤란해.”

“그렇구나…….”

창현의 말에 뭔가 중대한 사실을 알아차린 듯 고개를 끄덕인 지영. 속으로는 자신에게 가장 먼저 새로운 안무를 보여주었다는 사실에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오빠가 그만큼 자신을 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두 사람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연습실 문이 열리더니, 석규가 안으로 들어오며 묻는다.

“아직도 연습하고 있는 게냐?”

“갑자기 이곳에는 무슨 일이세요?”

업무처리를 하는 석규는 사장실에서 나오는 법이 거의 없었기에 창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 석규를 맞이한다. 지영 또한 갑작스러운 아빠의 등장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다.

“하하! 나라고 해서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면 안 되는 법은 없지.”

“그렇긴 하죠.”

“그나저나 보아하니 트레이닝은 모두 끝난 듯하군.”

날카로운 석규의 눈을 피할 수 없는 듯, 평소보다 보컬 트레이닝을 일찍 끝냈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린다. 그러면서 한시름 덜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죠. 지영이 발전 속도가 빨라서요.”

“그래? 그거 다행이구나. 다름이 아니라 인사를 해야 할 사람이 있어서 말이다.”

“인사요?”

순간 창현의 머리에 스치고 지나간 사람은 자신을 연습생 취급하며 앙큼하게도 밥을 사주겠다고 하던 유란의 모습이었다.

그가 생각에 잠길 무렵, 석규는 자세한 상황을 설명한다.

“음! 이번에 새로 직원을 뽑아서 말이다. 전부 다섯 명을 뽑았는데…….”

“인사라도 하라는 거네요?”

“아무래도 그렇지. 대부분이 총무부 인원이어서 보기 힘들 테지만 같은 회사인 만큼 인사를 나누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게다가 전부 네 팬이기도 하고.”

자신의 팬이라는데 무어라 말해야겠는가. 이미 보컬 트레이닝도 모두 끝나면서 자신이 할 일이 사라졌는데.

“하하! 그렇게 말씀하시면 거절할 수가 없네요.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그래. 그렇게 하마. 잠시만 기다려라.”

흔쾌히 수락하는 창현의 모습에 석규는 미소를 지었다.

그가 연습실을 나서자, 창현은 주변을 휘휘 둘러보다가 자신이 벗어두었던 모자를 다시 쓴다.

깊게 눌러쓴 그는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지경.

지영이 그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묻는다.

“오빠, 그 모습 뭐야?”

“응, 이거? 재미있는 모습이랄까?”

평소에는 보기 힘들었던, 마치 악동과도 같은 미소를 지어보이는 창현이었다.


“마지막으로 인사할 곳이 있으니 따라오도록.”

새로운 신입사원들은 남자 둘, 여자 셋이었다. 모두 자기 중심이 잡혀있으면서 주어진 일처리를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인재들로 이루어져 있다.

대학 출신을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지만 석규 본인 자체가 소위 말하는 명문대 출신이 아니다 보니 알게 모르게 명문대 출신에 대한 반발심이 제법 있었다. 아니, 대학을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이 아닌 사람 능력 자체를 본다랄까.

그들 모두 AA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한 자신의 모습이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

하기야, 일단 면접을 보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명문대 출신이 되리라 생각했을 테니까.

그들은 석규가 향하는 곳이 5층 연습실인 걸 보고는 대충 그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연습실로 향하는 건가?’

‘AA엔터테인먼트는 연습생이 없다 들었는데?’

‘몇 명 정도는 있겠지. 아무래도 연습생들하고 인사하려는가 보네.’

연습생의 대다수가 탈락하지만 그들 중 소수는 미래의 스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끼와 잠재력을 잠재하고 있을지 궁금하였기에 기대감이 팽배해지는 것을 느끼며 발걸음을 옮긴다.

그 사이 선두에 선 석규가 연습실에 도착하였다.

“이곳이지.”

그러면서 석규가 연습실 문을 열자, 제법 시설이 좋은 연습실의 풍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으로 들어선 사원들은 연습실을 둘러보다가 고개를 갸웃한다. 연습실 안에 있는 사람은 불과 두 명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한 사람은 발랄함이 돋보이는 소녀였고, 다른 한 사람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는 소년이었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었지만 체격으로 보면 아직 어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원들은 연습실 안에 바글바글할 것을 기대하다가 고작 두 명뿐이자 다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AA엔터테인먼트에 연습생이 이것밖에 되지 않을 줄 몰랐던 것이다.

‘겨우 연습생이 두 명?’

‘이러니 연습생이 없다 소문이 날 만하지.’

그렇게 수군거릴 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연습실에 울려 퍼졌다.

“어라, 너는?”

“……!”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곳에 향한다. 그곳에는 오늘 입사한 한유란이 반가운 표정을 지은 채 서 있었다.

석규는 유란이 창현을 보며 아는 척을 하자 눈에 빛을 내며 묘한 어조로 묻는다.

“둘이 알고 있는 사이인가?”

“네? 아, 그런 건 아니고 올라오다가 만났거든요. 아무래도 총무부 배속이다 보니 자주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었네요. 음 그러니까… 안녕?”

창현을 보며 어색한 어조로 인사하는 유란.

그 모습에 석규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창현이 신입사원 여부를 묘하게 알고 있는 듯한 태도를 해석할 수 있었다.

직접 신입사원과 만났으니 알고 있는 것일 테지.

석규는 창현의 입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려있는 것을 보고는 그 또한 비슷한 종류의 미소를 짓고는 창현에게 말한다.

“인사해라. 다음 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게 될 사원들이다.”

지영이 먼저 앞으로 나서 인사를 하였다.

“최지영이라고 합니다. 이곳의 연습생이에요.”

그녀가 인사를 하고 뒤로 물러났고, 이번에 앞으로 나선 것은 창현이었다.

앞으로 나선 그는 묘한 시선으로 유란을 바라보다가 모자를 벗으며 인사를 한다.

“강창현이라고 합니다. 예명은 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유란에게 시선을 고정한 창현이 싱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

할 말을 잃은 유란. 지금 상황이 닥쳤다면 누구도 할 말을 잃을 만한 상황이다.

그녀의 머릿속은 지금 과부하가 되어 터져버릴 지경. 자신의 눈앞에 있는 소년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녀는 머리가 하얗게 비어버리는 것을 느껴야 했다.

그 후에는 온갖 복잡한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뒤흔들고 있는 중이었고.

유란은 자신 앞에 싱긋 미소 짓고 있는 소년을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 앞에 있는 게 현이라고? 그럼 내가 아까 봤던 연습생은 누구? 아니, 애초에 연습생이 아니었을지도. 연습생이 모자를 푹 눌러 얼굴을 가릴 리 없잖아?’

차기 스타라 하더라도 얼굴을 필요 이상으로 가리는 연습생은 거의 없으리라.

연습생은 기본적으로 차기 스타라는 생각에 얼굴을 가릴 수도 있다는 그녀의 생각이 오류였던 셈.

그녀는 자신이 천하의 현을 연습생 취급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거 재미있네.’

창현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유란을 보며 짓궂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평소 장난기가 그리 심하지 않은 그였지만 약간 어벙한 면이 없지 않아 있는 유란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장난기가 생겨나고는 하였다.

뭐라고 해야 할까. 장난을 하는 맛이 있다랄까.

충분히 착각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놀라게 해줄 요량으로 대뜸 정체를 밝혔던 것인데 유란의 반응은 그의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었다.

은근히 측은지심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더 장난을 치고 싶다는 충동을 들게끔 한다.

앞으로 한 걸음 나선 창현이 유란을 보며 더욱 진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아까 전에 한 번 뵙지 않았나요?”

미소를 지으며, 온화하게 묻는 창현이었지만 그 모습이 마치 유란에게 있어서는 추궁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더욱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연다.

“어버버버… 그, 그게 그러니까…….”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창현이 현이었다는 것이 의외였다는 뜻. 모두가 보는 가운데 허둥거리던 그녀는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고는 창현에게 정중하게 사과하였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했어요!”

세계적인 가수라면 자존심이 강할 것이고, 사람이 자신을 알아보는 것에 대한 척도가 존재하리라. 현이라면 이미 나라의 위상을 세운 연예인으로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였고, 드라마에서 맹활약을 펼침에 따라 아주머니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비록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알아보지 못한 채 연습생 취급한 자신의 행동은 분명 잘못한 것이리라.

자칫 잘못하면 회사에서 잘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유란은 심장이 자그맣게 쪼그라드는 듯한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현이 사장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니까.

“…….”

유란의 사과에 순간 연습실은 침묵에 감돌았다.

누가 보더라도 현이 장난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유란은 창현이 화를 내고 있는 줄 알고 바짝 군기가 든 모습으로 사과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석규와 지영은 물론 새로 입사한 사원들은 입에서 흘러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어벙한 그녀의 모습은 제3자로 하여금 충분히 웃음이 흘러나오게 만들기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니까.

창현도 설마 유란이 이런 식으로 나올 줄 예상 못했기에 다소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웃음을 흘린다.

“하하, 그렇게 나오시면 제가 좀 머쓱한데…….”

“죄송해요! 제가 감히 현… 님도 알아보지 못하고. 죄송해요!”

‘이런, 장난을 칠 사람이 못 되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창현은 혀를 쯧쯧 찰 수밖에 없었다.

반응하는 그녀의 모습이 재미있어 좀 더 장난을 칠 요량이었는데 생각보다 심한 과민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괜히 장난을 더 치다가 잘못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창현은 장난을 그만 두고는 고개를 저어보였다.

“딱히 타박하려는 건 아닌데 너무 앞서 가시는 것 같네요. 고개도 숙일 필요가 없어요. 사장님에게 듣지 못했나요? 입사한 순간, 모두가 가족 같이 지낸다는 걸요.”

“…그럼 용서해주시는 건가요?”

슬그머니 고개를 들며 묻는 유란.

그 모습에 창현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그녀에게 말한다.

“애초에 용서고 자시고 할 게 있긴 있나요? 그냥 사람 좀 알아보지 못한 것 가지고.”

“그 부분에 상당히 예민하실 것 같았는데…….”

자신의 예상과 전혀 다른 창현의 반응에 이번에는 유란이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분명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것에 화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화를 내기는커녕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라니?

진심이 절절하게(?) 전해지는 창현의 온화한 미소에 유란은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실로 무서운 마력이 담긴 웃음이 아닐 수 없다.

“알아보지 못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절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겠죠. 그 부분에 대해서 과민 반응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네… 그럼 전 안 잘리는 건가요?”

창현의 말에 마음이 놓이는 걸 느끼면서 유란이 슬쩍 석규의 눈치를 본다.

당사자는 용서를 해주는 듯하지만 무시무시한(?) 사장님이 남아 있었으니까.

유란의 말에 석규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용서하고말고! 처음부터 현이는 모습을 감추려 했는데 그걸 쉽게 알아보면 그게 오히려 잘못된 것이지! 저렇게 보여도 모습을 감추는데 능하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법.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떠한 추궁도 없을 테니 안심해도 좋네, 한유란 사원!”

“네, 감사합니다.”

상황이 잘 풀리는 듯하자 표정이 한결 밝아지는 유란이었다. 자신의 예상과 달리 현은 높은 인기에 비해 성격이 좋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로서는 참으로 흡족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재미있는 유란의 모습에 괜히 기분이 유쾌해지는 걸 느낀 창현은 사원들을 보면서 인사를 하였다. 앞으로 회사의 직원으로서, 가족과도 같이 지낼 사람들이었기에 자신이 나서서 먼저 인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예,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사원들은 예상 외로 담담하면서 겸손한 창현의 모습에 크게 반한 듯하다. 톱스타로서의 아우라가 풍겨 나와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것이 느껴졌지만 은은하게 짓고 있는 미소나 어조에서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준다. 때문에 사원들은 창현이 인기에 비해 오만하지 않고 무척 성격이 좋은 소년이란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대부분 톱스타의 경우 성격이 좋지 않다 여기곤 하니까.

특히나 어린 나이에 높은 인기를 얻게 되면 이른 바 거품이라는 것이 들어가 성격이 개차반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을 사회 경험 한 사람들이라면 잘 알고 있다.

물론 창현의 경우 거품이랄 것도 없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기에 그 말은 적용이 되지 않지만 경우는 비슷하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변하자 석규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기름칠을 좀 더 한다.

“오늘 입사한다 하여 트레이닝 시간을 줄여 만나게 하였지.”

별 것 아니듯 말했지만 사원들에게 있어 큰 감격을 심어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사장님이 자신들을 생각하여 일부러 현의 스케줄을 바꿨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아직까지 자신이 AA엔터테인먼트 직원이라는 것이 적응되지 않던 사원들에게 있어 큰 감격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말이었다. 현 같은 경우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돈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게다가 그 말에 호응하여 현이 직접 나서줬다는 것도 감격 그 자체였다.

그것만으로도 직원들의 충성심을 높이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능수능란하게 순진한 사원들을 다루는 석규를 보며 창현은 웃음을 지었다.

그의 낚시질에 낚여 파닥파닥거리는 사원의 모습이 그대로 그의 눈에 들어왔으니까.

‘아버지도 대단하시군. 설마 저렇게 낚을 줄이야.’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것을 그대로 실행한 석규였다. 분명 트레이닝이 끝나기 직전이었지만 트레이닝 중이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고, 그 중간에 석규가 끼어들어 중단시킨 것이 다름없으니까. 진실 90%에 거짓 10%를 섞어 절묘하게 둔갑시킨 석규의 언변에 직원들은 무한한 충성심을 발휘하게 되리라.

그렇게 웃음을 짓고 있던 창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없는 유란을 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의기소침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이 묘하게 동정심을 자극하였기에 창현이 은근한 어조로 묻는다.

“왜 그렇게 말씀이 없으세요?”

“실수를 해서요…….”

용서해준다 했지만 아직까지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 여기는 유란이었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의 용서를 받았어도 스스로 잘못했다는 걸 자각했기에 극복하기가 쉽지 않은 듯하다.

사실 유란은 이야기에 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자신이 잘못한 바를 알고 있었기에 무어라 말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서 내심 부러워하고 있었는데 창현이 직접 말을 걸어주자 속으로 크게 기뻐하였다.

‘나도 현이랑 이야기하는 사이라고.’

네임벨류가 주는 위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방금 전까지만 하여도 일개 연습생이라 하여 아무렇지도 않게 대했지만 그가 현이라는 걸 알아차린 후 이렇게 어렵게 느껴질 줄이야. 하지만 팬의 입장에서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기에 유란이 무어라 할 이유는 없었다.

“실수가 아니라니까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안심하셔도 좋아요. 저도 물론이고, 사장님도 문제 삼지 않을 테니까요.”

“네, 감사합니다.”

어린 나이에 넓은 마음까지!

하나하나가 다 새롭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같은 식구인데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요?”

미소 짓는 현의 모습이 눈부시다 여기는 유란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듣고 나자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고, 이야기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종종 살짝 장난을 칠 때마다 흠칫흠칫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창현은 눈을 빛낼 수 있었다.

‘앞으로 자주 만나게 되면 장난 좀 쳐야겠지.’

유란에게 지옥과도 같은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창현의 속내도 모른 채 유란은 크게 기뻐하고 있었다.

첫 날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넘어갔을 뿐만 아니라 팬이었던 현과도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었으니까.

그녀는 자신의 상상을 깨지 않는 현의 모습에 크게 감동하여 의욕을 얻을 수 있었다.

‘앞으로 자주 보지 못하더라도 열심히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다크 스타 정회원으로서 현을 직접 보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큰 영광을 얻었다 생각하는 유란. 팬으로서, 직원으로서 현을 위해 열심히 일할 것이라 다짐하며 그의 밑거름이 되어주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있었다.


“보기에 어떠냐?”

사원들을 모두 돌려보낸 뒤 석규는 창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신이 사람 보는 눈은 믿지만 창현 또한 사람 보는 눈이 제법 있다. 마치 무슨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사람의 성격을 꿰뚫어 보는 눈이 뛰어났으니까.

그리고 대부분 그의 말이 정답에 가까웠던 것을 감안하면 그의 능력은 입증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괜찮더라고요. 쓸데없는 꾀를 부릴 것 같지도 않고, 어느 정도 대우를 해주면 애사심을 가질 것 같기도 하고요. 딱 아버지가 원하는 타입의 직원인 걸 같던 걸요?”

“하하! 그러냐?”

아들의 인정이었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건 어쩔 수 없는 석규였다. 특히 창현은 한참이나 어린 아들이라 하더라도 그 능력만큼은 세계급이었으니까.

“특히 한유란이란 분이 재미있어요.”

“그래?”

“장난을 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쿡쿡!”

“장난도 심하군. 어쨌든 모두 괜찮다니 다행이다.”

서서히 규모를 늘려나가는 지금 상황에서 다섯 명이라는 많은 직원들을 뽑은 만큼 부담이 적잖게 되는 것이 사실.

자신의 능력을 믿지만 창현에게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여겨 그에게도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보라 여긴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창현에게서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자 한시름 놓는 석규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사업 확장을 할 때다.


회사에서 일어난 간단한 해프닝 이후, 창현은 안무 완성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였다.

드라마가 끝난 직후였기에 무척 바빴지만 가수로서 다시 복귀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안무를 겸비한다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만큼 준비를 게을리 할 수 없었기에 부지런히 준비에 준비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생겨난 고민 때문에 창현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허공을 걷는 안무. 좋은 이름이 없을까.”

말 그대로 허공을 밟고 올라가는 안무였다. 무협 소설에서 보면 허공답보와도 같은 현상.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춤 이름을 허공답보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좀 더 그럴 듯한 이름을 생각해보고 있지만 선뜻 떠오르지 않아 제법 고민을 하고 있었다.

며칠 뒤 촬영할 야심만만 대본을 짜기 위해 작가와 미팅을 하면서도 그 고민은 계속되었을 정도니까.

하늘 위를 걷는 걸음이란 걸 어떻게 축약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다가가게 할지 창현으로서는 고민되는 대목이었다.

“어렵군, 어려워. 이번에는 이름 짓는 것이 어렵네.”

산 하나를 넘으면 그 다음 산이 기다리고 있다. 어렵사리 안무를 정하는 산을 넘어섰더니 이번에는 이름을 정하는 것이 앞을 가로 막고 있다.

창현으로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일단 보류해두는 것이 좋겠군. 선뜻 떠오르지 않는 걸 가지고 계속해서 붙잡고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니까.”

생각나지 않는 걸 미련하게 끙끙거리며 붙잡고 있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 다른 것에 주의를 기울이면 언젠가 반드시 좋은 생각이 날 때가 있으니 그때를 노리는 것이 좋으리라.

그렇게 고민을 정리한 창현은 컴퓨터를 껐다.

검정고시 준비를 위해 오늘도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작업실로 향한다.

곡을 완벽하게 준비하기 위해 작업실에 출근하는 셈이다.

드라마가 끝난 직후여서 바쁘긴 했지만 일주일에 사흘 정도는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

“좀만 더 가다듬으면 될 듯 싶으니.”

자신이 막 슬럼프를 벗어났을 때 떠오른 악상으로 완성한 곡들.

4-A 파트 부분을 거의 완성한 지금 창현에게 필요한 것은 안무의 숙달 뿐이다.

이 안무를 완성하는 순간 보는 사람들 모두가 경악에 빠지리라.

그 날을 위해 창현은 오늘도 부지런히 준비에 준비를 거듭하고 있었다.


<Kissing You> 활동 이후 소녀시대는 본격적인 개별 활동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리더인 태연이 라디오 DJ를 맡은 것으로 시작하여 각 멤버들이 예능 프로그램 게스트로 참여하면서 얼굴 알리기에 나선 것이다.

국내 최대 연예 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의 언론 플레이는 믿을 만한 수준에 이르렀지만 현재 소녀시대는 원더걸스에 밀리고 있는 상태. 가수로서 컴백을 해야 할 시기가 되었지만 원더걸스가 막강한 화력으로 가요계를 점거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컴백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약간 방향을 돌려 개별적인 활동에 치중하면서 각 멤버들의 얼굴을 알리기에 나서고 있었다. 이것이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흐름이 넘어올 것이라 생각하며.

특히 태연의 라디오 DJ와 윤아의 여배우 활동은 소녀시대에게 상당한 홍보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원더걸스가 <So Hot>이란 노래로 기존의 <Tell Me> 열풍을 이어가는데 성공하자, 앨범이 무기한 연기되기 시작하였다.

그나마 원더걸스와 라이벌 구도를 만들어낸 것도 SM엔터테인먼트의 강력한 힘이 발휘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원더걸스 <So Hot> 활동이 서서히 끝나가는 지금, 본격적으로 컴백할 준비를 해야 했지만 그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조만간 이효리가 3집 앨범을 들고 나온다는 소문이 파다한 상황이었고, 8월에는 현 또한 4집 앨범을 가지고 컴백한다는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8~9월쯤 잡혀있던 앨범은 무기한 연기된 상황. 좀 더 뒤로 미루면 되지만 그때를 맞춰 원더걸스가 굳히기를 위해 앨범을 가지고 나올 예정이었다.

말 그대로 올해에는 공백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앨범 발매가 연기되었다는 것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파악이 가능하다. 특히 연습생 생활이 무척 길었던 멤버들이 많은 만큼 회사의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능했기에 이미 회사에서 어떤 방침을 세웠는지 대부분의 멤버들이 눈치 채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숙소 분위기가 상당히 침체된 상황이었다.

그나마 고정 스케줄이 있는 멤버들은 상황이 나았다.

지금 분위기가 무척 좋지 않은 것은 바로 고정 스케줄이 없는 멤버들이었다.

모든 회사가 그러하듯이 그룹을 데뷔시킬 경우 스포라이트가 한 사람에게 집중되게 유도한다. 그 멤버를 중심으로 그룹을 알리고, 차근차근 한 사람씩 인기를 얻게 하여 결국 인기를 고르게 얻게 만들려는 의도인 것이다.

소녀시대는 처음 윤아를 중심으로 이름을 알렸고, 그 다음 태연과 미영이 팬들의 관심을 받으며 팬 층을 확장시켰다. 그리고 아직 걸음마 단계였지만 다른 멤버들도 예능 프로그램에 꾸준히 모습을 비추면서 인지도를 쌓아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멤버간의 인기 편차는 필연적으로 그녀들 사이에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한 차례 터졌던 것이 바로 ‘제시카 사태’였다.

수연과 태연의 말다툼이 크게 번져 마침내 탈퇴 선언까지 해버린 그때의 상황 이후 인기 편차로 인한 갈등이 모습을 감췄지만 그렇다고 하여 일이 완벽하게 해결된 것이 아니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겉으로 항상 담담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멤버들을 안정시켜주던 멤버가 존재하고 있던 것이다.

“오늘도 하늘은 맑네.”

문을 여니 벌써부터 매미가 윙윙하고 우는 것이 들려왔다.

그러면서 하늘을 슬쩍 바라보니 푸른색 하늘에 하얀색 구름이 두둥실 떠다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하늘을 감상하듯 바라보던 여인은 고개를 돌려 숙소 안을 바라본다.

모두 스케줄을 위해 나선 숙소는 휑한 느낌이 절로 느껴지고 있었다.

아홉 명이나 되는 멤버들이 있을 땐 한없이 좁게 느껴지는 숙소였지만 지금 같이 혼자 있는 상황이 되면 이 좁은 곳마저도 무척 넓게 느껴지고는 한다.

아침부터 급하다고 하며 옷을 훌렁훌렁 벗어재끼던 멤버들의 모습을 떠올리던 여인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오늘도 혼자로군.”

그 어조에는 숨길 수 없는 씁쓸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는 옷을 하나하나 챙겨들고 각 방에 옷을 던져놓기 시작한다.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방문하고는 하지만 과년한 처자의 난장판인 숙소 모습을 보일 수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거실에 어질러진 옷을 방에 넣어둔 여인은 시계를 힐끗 보고는 스케줄 표를 본다.

오늘 자신의 스케줄은 텅텅 비어있는 상황. 내일도, 그리고 내일 모레도 스케줄은 없다. 아니, 내일 모레는 라디오 스케줄이 있고, 그 다음 날은 행사 스케줄이 있다.

왠지 입맛이 씁쓸해지는 느낌에 여인은 시간을 보다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는 생각에 외출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연습이나 하러 갈까.”

앨범도 무기한 연기 되었지만 어릴 때부터 꾸준한 연습을 해온 상황이다. 몸이 굳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꾸준한 연습만큼 좋은 것이 없을 터. 스케줄이 없다 하여 마냥 숙소 안에 있는 것도 그러니 그녀는 회사라도 가서 연습에 매진하고자 하였다.

그것이 지금의 복잡한 상황을 잊게 해주고, 자신의 실력을 더욱 늘리게 해줄 테니까.

혹시 또 알겠는가. 언젠가 자신에게 기회를 올지.

그 기회를 붙잡기 위해서는 꾸준히 실력을 연마하는 것이 최고였다.

“기회가 와야겠지만.”

현실을 알고 있는 만큼 그녀의 웃음은 씁쓸하였다.

준비를 마친 뒤 숙소를 나서는 그녀의 정체.

소녀시대의 효연이었다.


참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간사하다.

처음 자신의 간절한 바람은 기약 없는 연습생 신분에서 벗어나 연예인으로서 데뷔하는 것이었다.

연습생 입장에서 데뷔는 종착지점과도 같은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데뷔를 하는 순간, 그곳이 종착지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데뷔한 연예인은 연습생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살벌하고 치열한 곳에서 보이지 않는 전투를 치러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대중의 관심을 더 끌어야했기에 노이즈 마케팅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조금이라도 더 많은 무대에 서서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매일같이 움직여야했다.

그때가 오히려 좋았다.

하지만 휴식기에 접어들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하얀 피부와 귀여운 얼굴, 털털한 성격으로 인기를 얻어나가는 태연과 살인적인 눈웃음으로 남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미영. 그리고 데뷔 전부터 CF를 촬영하고, 예쁜 외모로 당당히 센터를 차지하며 가장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며 왕도를 걷고 있는 윤아까지.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그녀들이 가장 절절하게 느끼고 있었다.

수연이 느낀 것도 그런 것과 비슷했으니까.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고.”

숙소를 나선 효연은 푸른 하늘을 보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데뷔를 하고, 소녀시대 그룹이 인지도를 얻어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개인 인지도는 그룹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태. 태연이나 미영은 벌써 그룹의 인지도에 근접해가고, 윤아는 그룹의 인지도를 뛰어넘을 정도로 성장했지만 자신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그녀로 하여금 복잡하게 만들었다.

발랄하고 깜찍한 컨셉의 소녀시대와 효연이 지닌 매력과는 처음부터 상극과도 같았다. 댄싱 퀸이라는 별명을 내세우며 데뷔를 했지만 그 끼를 발산할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자연스레 인지도를 얻는 것은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내 선택이 틀린 걸까.”

요즘 불쑥 드는 생각이었다.

자신이 소녀시대로 데뷔한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차라리 자신이 다른 프로젝트로 빠지고, 소녀시대에 어울릴 법하던 소연이 데뷔한다던지…….

“후우!”

괜히 머리가 복잡해지는 느낌에 고개를 젓는 효연이었다.

그놈의 인기가 뭐기에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어지럽히는 걸까.

팀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내색하지 않지만 이미 헝클어질대로 헝클어진 마음은 자신의 뜻대로 통제되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멤버들이 자신을 생각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팀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것도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소녀시대를 탈퇴할 수 없는 노릇이고.

딜레마에 빠져버린 그녀의 머리는 무엇보다 복잡하였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던 그녀는 아파트 단지 앞에 위치한 곳에 문득 걸음을 멈추며 중얼거렸다.

“창현이 작업실이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은 창현의 작업실이 자리한 곳이었다.

문득 그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는 자신보다 어리지만 어른스러운 사고를 지닌 창현이라면 해답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이내 그녀는 고개를 젓는다.

창현은 자신과 다르지 않은가?

“스케줄이 있겠지. 나와는 달리.”

괜히 입맛이 더 쓴 걸 느끼며 그녀가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굳게 닫혀있던 작업실 문이 열리더니, 한 소년이 모습을 드러낸다. 모자를 푹 눌러써 얼굴이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작업실 문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 틀림없는 창현이리라.

“응?”

슈퍼를 가려는 것인지 효연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던 창현의 발걸음이 문득 멈춘다. 그리고는 그와 비슷하게 모자를 눌러써 얼굴을 가린 효연을 보다가 그녀를 알아본 듯 입을 연다.

“효연 누나 아니에요?”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법.

변장의 대가 창현은 변장한 효연의 모습을 단숨에 꿰뚫어 보았다.


“누나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단숨에 알아봐서 그런 걸까?

엉거주춤 서 있는 효연의 모습을 보며 창현은 웃음이 흘러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는 물었다.

모자를 푹 눌러 썼지만 눈썰미가 남다른 창현의 눈을 속일 수 없는 노릇이다. 모자를 푹 눌러 쓸 경우 얼굴 윗부분은 드러나지 않지만 하관은 그대로 드러난다. 그렇기에 자주 대면한 적이 있는 얼굴이라면 그것만으로 거의 100%에 가깝게 상대방을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효연과는 자주 대면하기도 하였고, 근래 들어 도움을 얻기도 했으니 알아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으응, 스케줄이 없어서 회사에서 연습이나 할까 싶어서…….”

우울한 지금 상황에서 막연하게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정말로 만남이 성사되자 효연은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요? 흐음…….”

순간 예리한 눈으로 효연을 훑는 창현. 여성의 호감에 대해서는 -999 스탯을 자랑하는 그였지만 그 외 다른 부분에서 비범함을 자랑하는 그는 한눈에 효연이 심상치 않은 상태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무언가 우울한 오오라가 효연을 중심으로 포진되어 있다랄까?

그녀에게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기에 창현은 오지랖이지만 자세한 연유를 알아내고자 하였다.

‘춤에 관해서 조언도 받았고. 태연 누나도 나한테 도움을 줬으니까…….’

태연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건 곧 소녀시대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뜻. 오지랖 넓은 행동이지만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을 굳힌 창현이 효연을 바라보며 말한다.

“누나 점심 먹었어요?”

“응? 아, 아니…….”

딱히 입맛도 없어서 점심을 먹지 않은 상태였다. 그냥 회사로 향하면서 아무거나 군것질을 하여 식사를 때우려고 했을 뿐.

“그럼 저랑 같이 먹어요. 얼마 전에 저기 도시락 가게가 생겼는데 맛이 괜찮거든요. 스케줄이 없으면 자의적으로 조절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응?”

아침 일찍 작업실로 향한 창현은 이것저것 작업에 몰두하느라 식사를 거른 상태였다. 아니, 아침은 워낙 일찍 먹지만 워낙 일찍 먹기에 그의 점심은 다른 사람이 말하는 아침 겸 점심 형태로 이루어진다. 작업실에 과자와 음료수, 라면 밖에 없는 걸 확인한 그는 근래 오픈한 도시락 가게에서 점심을 사먹을 요량으로 밖에 나오는 중이었던 것이다.

밖으로 나오다 우연찮게 효연을 발견하게 된 것이고.

“그게… 난 그러니까…….”

“어차피 지금 가나 조금 기다렸다가 가나 그렇게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잖아요.”

“…….”

자신의 타이밍을 교묘하게 끊고 들어오는 창현의 모습에 효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를 바라본다.

그러자 창현은 입가에 싱긋 미소를 짓더니 효연을 한 번 더 재촉한다.

“네?”

아무 것도 모르는 듯한 저 얼굴로 재촉하는 걸 보면 왜 다른 멤버들이 창현에게 넘어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보고 있으면 자신보다 연하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기대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가뜩이나 기분이 우울했던 효연은 이대로 회사에 가봤자 기분 전환이 되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대신 네가 사는 거지? 나 돈 많이 안 들고 왔거든.”

“그렇게 할게요. 어차피 도시락은 그렇게 비싸지도 않으니까요.”

“용돈을 받는 난 그 정도에도 벌벌 떤다고.”

“그래요? 그에 비하면 전 양반이네요. 하하!”

피식 웃으며 말하는 효연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한 창현이 발걸음을 옮긴다. 그 뒤를 효연이 따랐고, 그들은 도시락 가게에서 가장 푸짐해 보이는 것들을 고른 뒤 작업실로 향했다.

작업실 안으로 들어서자 효연은 나직이 감탄사를 흘렸다.

“엄청 넓네…….”

여러 차례 작업실을 방문해봤지만 이렇게 혼자서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대부분의 멤버들이 혼자서 가는 것을 악착같이 막아서고는 했으니까. 그랬기에 홀로 창현의 작업실에 온 멤버는 없으리라.

멤버가 전부 왔을 땐 바글바글해서 넓은지 몰랐는데 이렇게 오니 혼자 쓰기에는 지나치게 넓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요? 좀 넓긴 하죠.”

처음에는 자신도 그런 느낌을 받았지만 익숙해진 지금에 와서는 그리 넓다는 느낌을 받지도 않는다.

자신이 사용하는 숙소 또한 40평이 넘을 정도로 넓었으니까.

“넓고 쾌적하니 작업이 잘 되겠어.”

“작업은 2층에서 하니까 잘 모르겠네요.”

넓고 쾌적해서 작업이 잘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피식 웃으며 노 코멘트한 창현이 도시락을 들고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자신이 먹을 도시락을 탁자 위에 올려놓던 효연은 한쪽에 쌓여있는 참고서들을 보고는 묻는다.

“공부하는 거야?”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않았으니까요. 검정고시로 자격을 갖춰놓아야 대학을 가더라도 갈 수 있지 않겠어요?”

“그건 그렇지…….”

그렇게 대답하는 효연의 얼굴이 침울하게 변해갔다.

그 이유는 가수가 되기 위해 학교 진학까지 포기한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가수가 되었지만 지금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 서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숙소에서 간신히 참아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이가 있어서 그럴까. 그 감정을 참기가 힘들었다.

창현은 효연의 표정이 울적하게 변하는 것을 보고는 황급히 물었다.

“괜찮아요?”

그러면서 자신이 실수한 게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봤지만 딱히 실수한 건 없는 듯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아서 검정고시를 준비한다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런데 효연이 우울한 모습을 보이자 창현으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응… 그냥 기분이 좀 안 좋아서.”

한순간 마음이 풀어질 뻔했지만 눈물을 보일 수 없는 노릇. 간신히 마음을 추스른 그녀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모습마저도 억지로 유지하려는 기색이 역력하여 창현으로 하여금 무언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만들어주었다.

“도시락이 맛있으니 드셔보세요.”

창현이 고른 것은 돈까스 덮밥이었고, 효연이 고른 것은 새우튀김 덮밥이었다. 튀김 종류여서 상당한 칼로리를 동반하지만 기분이 울적한 지금, 그런 것이 신경 쓰기 싫었다.

“…….”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식사를 하는 두 사람.

오랜만에 기름기 있는 음식을 먹어서인지 효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음식 먹기 바빴고, 창현 또한 이 무거운 침묵의 정체를 파악하느라 애쓰고 있었다.

이미 효연이 어떤 이유로 우울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창현은 그 원인을 파악하려 애쓰고 있었다.

‘분명 무언가 있는데…….’

아직 그것을 모르기에 나설 수가 없었다. 만약 이유를 알면 나서서 그녀에게 일말의 도움이나마 줄 수 있으련만.

그렇게 조용히 식사가 끝나고, 용기를 쓰레기 봉투에 넣는다.

도시락을 다 먹은 효연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럼 난 이만 가볼게… 도시락 고마웠어.”

“잠시만요!”

효연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황급히 그녀를 제지하는 창현. 아직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는데 순순히 보내줄 수 없는 노릇이다. 거듭 말하지만 오지랖이어도 그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으니까.

“응… 왜?”

“제가 이번에 준비하는 곡이 있는데 한 번 봐주시겠어요?”

아직 석규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4-A 앨범의 곡이었다. 그것을 효연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상당한 모험. 하지만 그녀가 작곡을 하는 것도 아니고, 베껴서 다른 사람에게 팔아치울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창현으로서는 제법 강수를 둔 셈이다.

“나한테 그걸 보여줘도 되나?”

“저번에 누나가 안무에 관련해서 조언을 해주셨잖아요. 이번에 기획하고 있는 안무가 있는데 우선 노래를 듣고 나서 어울리는 안무에 관련해 조언을 받고 싶어서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자신을 칭찬해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고, 역사에서 간언을 올리는 충신보다 아첨을 하는 간신들이 많이 등장한 것이 바로 그 예이다.

노래를 들려주고 안무 포인트에 관련하여 조언을 얻고 싶다는 것은 아직까지 인지도를 얻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인정해준다는 말.

다른 멤버들과의 인기 격차로 우울해하던 효연에게 있어 그 인정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존재였다.

적어도 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실력을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거니까.

몸을 돌리려던 효연이 멈칫하며 창현에게 묻는다.

“그래도 돼?”

“물론이죠. 게다가 들려드릴 곡은 타이틀곡뿐이거든요.”

대수롭지 않은 듯 이야기하지만 효연에게 있어서는 가벼운 내용이 아니었다. 그녀는 다소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창현에게 말한다.

“하지만 타이틀곡이 가장 중요한 거잖아.”

“괜찮아요. 전 누나를 믿거든요. 설마 타이틀곡을 듣고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거나, 누나가 직접 작곡해서 선공개를 할 것도 아니잖아요. 안 그래요?”

굳은 믿음이 그의 목소리에 실려 그대로 효연에게 전달된다.

창현의 가장 큰 장점은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게 그대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 효연을 믿고 있는 그의 마음이 그녀에게 절절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에서 진심을 느낀 효연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이렇게 자신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의 부탁을 거절할 만큼 그녀의 성격은 모질지 못했다.

“아, 알았어.”

“고마워요.”

수락한 그녀의 말에 창현이 웃음을 지어 보인다. 떠오르는 태양처럼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그의 웃음을 본 효연이 고개를 살짝 숙인다.

그녀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효연을 2층으로 데려간 창현은 자신의 타이틀곡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를 하였다.

“타이틀곡은 현재 곡 자체를 좀 더 가다듬는 중이에요. 가사도 곡에 맞춰 작사하는 중인데, 아직 그건 미완성이고요. 곡 자체의 느낌만 듣고 조언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알았어.”

창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효연이 노래를 틀어보라는 듯 신호를 주자, 곧장 곡을 재생한다.

다소 음울한 느낌을 주면서 한편으로는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곡. 전체적인 분위기가 마치 공포 영화를 보는 듯 소름이 끼치는 느낌이랄까?

여기에서 어느 구간에는 빠른 리듬으로 사람의 마음을 점점 옥죄는 듯한 느낌을 줌과 동시에 빵! 하고 터지는 부분이 있었고, 후반부로 향하면 음울한 느낌에서 서서히 애틋한 느낌으로 변하며 사람의 심금을 자극하는 느낌을 준다.

“…….”

그 노래를 들으면서 효연의 표정은 복잡하게 변하고 있었다.

단순히 곡만 들었을 뿐인데 범상치 않다는 느낌이 팍팍 풍기고 있던 것이다. 사람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마법사처럼, 아니, 마치 마리오네트처럼 자신이 꼭두각시 인형이 되어 창현의 곡에 감정이 조종당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야 말로 감정을 조종하는 마술사와도 같은 실력이었다.

‘대단해. 아직 가사는 완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곡이라면 절대 실패하지 않을 거야. 정말 대단해.’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어휘력을 초월한 것 같다랄까?

이 곡이라면 기존의 인기를 그대로 유지, 아니, 새로운 컨셉까지 성공한다면 기존의 인기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폭발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야 말로 인기가 고공행진을 하게 될 테지.

자신과 확연히 다르게 말이다.

‘타고난 재능의 그릇이 다른 걸까. 나도 춤이라면 자신이 있다 했지만 다른 멤버들도 그에 못지않게 추고… 노래 또한…….’

멤버가 많은 그룹인 이상 확연하게 튀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건 당연한 사실. 하지만 자신은 다른 멤버들보다 미모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무작정 욕을 먹고 있다.

얼굴이 모든 게 다란 말인가?

춤과 끼로서 승부하면 안 되는 걸까?

창현이 더욱 더 많은 인기를 얻게 될 거란 생각이 미치자 자신의 처지가 더욱 비관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효연의 안색이 우울하게 변한다.

곡을 들려주고 그녀의 평가를 기다리던 창현은 기분이 환기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울적해진 그녀의 표정을 보면서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누나……?”

그의 부름에 생각에 몰두하고 있던 효연이 확 깬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더니 창현을 직시하면서 입을 열기 시작한다. 자신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무엇이든 받아줄 것 같은 창현이라면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책을 찾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창현아, 묻고 싶은 게 있어.”

“뭔데요?”

심상치 않은 그녀의 분위기에 편승한 걸까. 창현의 표정도 긴장감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녀의 분위기를 보면 종종 보이던 울적한 표정의 원인이 무엇인지 말해줄 분위기였으니까.

자신의 곡에 대한 감상평을 들어야 하는 것조차 잊은 채 효연의 말을 기다리는 창현이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을 지은 효연이 데뷔 후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다른 멤버들에게 절대 언급하지 못하며 혼자서 끙끙 앓아야만 했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내 그녀는 지금도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던 명제를 꺼내놓았다.

“난 가수가 어울리지 않는 걸까?”

뜬금없는 말. 하지만 그것은 효연으로 하여금 그간에 고민했던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오고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기에 창현은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네?”

“말 그대로야. 아무래도 난 가수를 하는 게 아니었나 봐.”

“무슨 사정이 있는 거예요?”

설마 효연이 이런 종류의 고민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기껏해야 춤에 대한 슬럼프이거나, 보컬 트레이닝에 관련된 고민, 혹은 이성에 관련된 것이라 생각하던 창현의 예측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좀 더 근원적이고, 위험한 종류의 고민.

대부분이 데뷔를 하면 저런 고민을 한 번쯤 하게 된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판이하게 다른 연예계와 무대의 흐름, 그리고 이유 없는 악성 댓글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 외에도 여러 잡다한 이유가 존재하고 있지만 어찌 되었든 누구나 한 번쯤 연예인을 그만두고 싶어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효연 같은 경우 이제 두 달만 지나면 데뷔한지 일 년이 되어가는 아이돌 가수. 아이돌의 수명을 감안하면 이제는 신인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그만두고 싶다니. 창현으로서는 어리둥절하면서 이유가 궁금하였다.

“그냥… 나랑 잘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힘이 들기도 해서. 처음 데뷔할 때 난 솔로로 데뷔하길 바랐거든. 그러다 친구들과 함께 하면 의지도 되고 힘이 되는 것 같아 그룹 프로젝트에 포함되었지만… 막상 데뷔를 하니 그게 쉽지가 않네.”

모두가 최소 삼 년 이상 친분을 다져왔기에 서로간에 질투하는 식의 모습을 보이지는 않지만 은연중 비교가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같은 시기, 같은 그룹으로서 데뷔했지만 인기도는 전혀 달랐으니까.

그 중에서 자신의 인기가 가장 아래 단계에 있다는 것을 모를 효연이 아니었다.

데뷔 초기에 악성 댓글을 보고 얼마나 상처를 입었던가.

지금은 담담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담담해진 것이 아닌, 보고도 모른 척하는 것뿐이었다.

참으면 참을수록 상처는 커져갔고, 고민 또한 늘어만 갔다.

그것이 마침내 부피를 키우고 키우다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

효연의 말에 창현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무언가 조언을 해줘야 했다. 하지만 이놈의 인기 문제는 자신이 섣불리 입에 담기가 난감한 문제였다.

왜냐하면 자신은 다른 연예인들과 달리 음향총서로 다져진 뛰어난 실력으로 이름 없는 가수로서 엄청난 네임벨류를 형성한 뒤 연예계에 개선장군처럼 데뷔했으니까. 데뷔 초기부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인기를 얻으며 데뷔한 만큼 인기 문제에 있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상당히 난감할 수밖에 없다.

창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효연은 입가에 처연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그냥 들어만 달라는 거야.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해도 관두는 것은 쉬운 게 아니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섣불리 무어라 말씀드리기가 어려워요. 하지만 누나가 왜 관두려 하는 건지 이유를 알고 싶어요. 이유를 알 수 있다면 제가 조언을 해드리는 것도 가능할 것 같은데…….”

조심스럽게 원인에 접근하려는 창현.

효연이 자신에게 말했다는 것은 고민을 털어놓을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는 뜻과 비슷하다. 그렇기에 자신이 이야기를 듣고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가급적 도움을 주고 싶었다.

알고 있는 연예인의 숫자는 늘어가지만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연예인은 같은 소속사의 라샤와 제휴를 맺고, 데뷔 전부터 친하게 지낸 소녀시대 뿐이니까.

사심 없이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이였기에 창현은 도움이 되고 싶었다.

“간단해. 인기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이지.”

“인기 차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창현. 역시나, 연예인들의 고민은 인기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자신은 인기 걱정을 하지 않고 있으니 과분한 것도 이런 과분한 것이 없으리라.

그 사이 효연이 입을 열었다.

“난 태연이처럼 귀엽지도 않고, 팬들을 잘 다루지도 못해. 수연이처럼 시크한 매력도 없고. 순규… 아니, 써니 같이 활력소 같이 활달한 이미지도 존재하지 않고, 미영이처럼 살인적인 눈웃음도 없어. 유리처럼 섹시하지도 않고, 수영이처럼 말도 잘하지 못하지. 윤아처럼 예쁘지도 않고, 주현이처럼 똑소리나는 매력도 없어. 그래서 내가 내세운 것은 유일하게 춤인데… 내 전문 분야인 춤은 소녀시대 컨셉하고 잘 맞지도 않고 그나마 다른 멤버들과 비교해서 독보적이지도 않지.”

막연하게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생각.

그것을 입으로 언급하게 되자 효연은 입맛이 썼다.

각양각색의 뚜렷한 매력을 지닌 멤버들이었지만 자신은 그곳에서 자신만의 매력을 어필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화룡정점의 방해물이 되는 것처럼.

자신이 빠지면 소녀시대가 더욱 완벽해질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으니까.

“…….”

효연의 말에 창현은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소녀시대는 사람들이 모를 때 그저 여자들이 많은 그룹에 지나지 않지만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껍질 속에 또 다른 알맹이가 존재하는 양파와도 같다.

각양각색의 매력과 재능을 지닌 멤버들이 존재하기에 사람들은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소녀시대다.

그곳에서 효연은 스스로가 방해가 된다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빠지면 완벽해질까?

잠시 고민에 빠지던 창현은 답을 내릴 수 있었다.

“누나가 빠진다고 해서 8인조 소녀시대가 잘 나갈까요?”

“그렇지 않을 것 같아?”

창현의 눈을 직시하며 효연이 묻는다. 그것은 창현의 답을 바라는 굳건한 눈. 어린 나이에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그라면 확실한 답을 내려줄 수 있으리라. 효연은 그가 내린 답을 듣고 싶었다.

창현은 효연의 말에 짧고 단호하게 말했다.

“잘 나가지 못할 거예요.”

“…….”

너무나 굳건한 의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말.

최소한 어느 정도 고민은 하거나 부정적인 답을 생각하던 효연은 단호하게 끊어 말하는 창현의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설마 자신이 없는 소녀시대가 잘 나가지 못할 것이라 말할 줄 몰랐으니까.

국내 최대 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의 절대적인 지원과 방해물이 되던 자신의 존재 소실. 그렇게 되면 소녀시대는 고공행진을 거듭하여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당황하는 효연의 표정에 창현은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인다.

매력적인 웃음이 효연은 마음이 흔들리는 걸 느꼈지만 고개를 젓는다. 자신이 빠짐으로써 소녀시대가 잘 나갈 것이라 생각한 것은 그녀가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한 끝에, 아주 힘겹게 내린 결론이다.

그것을 부정당한다는 것은 자신의 고민 자체가 부정당하는 꼴이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건데?”

날이 선 목소리로 창현의 말에 의문을 표한다.

그러자 웃음을 짓고 있던 창현은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워낙 갑작스러운 변화에서 효연이 움찔할 정도.

“누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셨어요? SM엔터테인먼트가 왜 국내 최대 기획사라 칭해지는지.”

“…….”

왜 국내 최대 기획사라 불리는지 그녀도 대충 알고 있다. 하지만 창현이 생각하는 바가 무엇인지 몰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녀의 답을 바란 게 아닌지 창현은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뛰어난 기획력, 신인을 띄워주는 언론 플레이, 체계적인 연습생 선발과 트레이닝. 그리고…….”

창현의 눈이 효연을 직시한다.

“여러 차례 검증 끝에 선발된 멤버들.”

“국내 최대 기획사라 해서 그걸 믿으란 거야?”

“믿건 믿지 않건 그것은 개인의 자유지요. 하지만 그걸 아셔야 해요. 누나는 여러 차례 걸쳐진 프로젝트에서 끝까지 남아 소녀시대가 되었다고 들었어요. 그렇다는 건 SM엔터테인먼트에서 누나의 가능성을 보았다는 이야기겠지요. HOT와 신화, S.E.S를 키워낸 SM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 노하우는 국내를 넘어서 아시아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라 생각해요. 그 기획력을 무시한 채 스스로가 소녀시대에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SM엔터테인먼트 자체를 무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누나 스스로를 과소평가한다 할 수 있는 거죠.”

“나를 스스로 과소평가한다고?”

순간 헛웃음이 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말을 하는 창현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했으니까.

하지만 납득할 수 없는 것이, 이미 그녀 스스로 얼마나 자기 최면을 걸었는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나도 충분히 제 몫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소녀시대 그룹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결국 내려진 결론은 이것이다. 결국 자신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고, SM엔터테인먼트가 틀린 것이다.

그러나 차마 창현에게 그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저 눈빛!

그것이 그녀로 하여금 냉소를 지을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제가 말한 것은 어디까지나 SM엔터테인먼트의 능력을 기반으로 누나에 대해 설명을 한 거죠. 제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누나는 충분히 재능이 있어요. 그것은 제가 보장할 정도로.”

저것이다.

바로 자신을 믿어주는 듯한 저 눈빛. 가식이나 동정이 아닌, 진심으로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듯한 눈빛은 효연으로 하여금 매몰찬 태도를 보이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로 하여금 마음속에 서서히 한 가닥 희망을 생성하게 하고 있었다.

효연은 자신도 모르게 창현에게 물었다.

“어떤 종류의?”

“그 부분에 대해서 제가 말해도 되는 건가요? 만약 알게 되면 누나의 능력이 활짝 피어나지 못할 수도 있는데?”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창현. 그 모습에 효연은 더욱 궁금해지는 걸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엇인지 물어보기 난감해졌다.

그의 말을 들으니 자신이 자각하는 순간 그 재능이라는 것이 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궁금해도 너무 궁금했기에 효연은 내심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매정하게도 창현은 효연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효연을 힐끗 바라보더니 말한다.

“오늘 누나 스케줄 없다 했죠? 그럼 시간이 있겠네요?”

“…….”

효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말해달라는 듯 창현을 바라볼 뿐.

그 모습에 창현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묻는다.

“시간 없나요?”

“…있어.”

“그럼 밖으로 나가도록 해요. 잠시 밖에서 기다려주실래요?”

“그것 말고 대답을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도대체 자신이 자각하지 못한 재능이 무엇일까. 지금 같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서 창현의 말은 간절하였다.

거짓이 담겨지지 않은 그의 눈에는 자신이 보지 못한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는 듯했으니까.

하지만 매정하게도 창현은 싱긋 미소를 지으면서 끝까지 그녀의 질문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제 말에 따라주시면요.”

“…알았어.”

답을 바라는 것은 엄연히 효연 쪽. 결국 창현의 말에 순순히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같이 밖으로 나가자는 것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과 같았기에 답을 구할 기회는 반드시 생길 테니까.

모자를 푹 눌러쓴 그녀는 작업실 밖으로 나갔다. 서서히 더워지는 날씨 때문인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무렵, 창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모습을 드러낸 창현의 모습은 그야 말로 충격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효연은 땡볕 아래 자신을 세워둔 창현에게 발산할 분노조차 잊어버린 채 어버버하며 손으로 그를 가리켰다.

“너, 너…….”

“하하, 멋지죠?”

멋쩍게 웃음을 짓고 있는 창현. 그는 얼굴을 가리는 모자 대신 헬멧을 쓰고 있었다. 그것도 분홍색으로 되어 미영이 환장할 정도로 상큼한 헬멧.

그리고 그가 끌고 오고 있는 것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다름 아닌, 분홍색으로 페인팅 된 125cc 스쿠터였던 것이다.

능숙하게 스쿠터 앞에 탑승한 창현은 효연에게 헬멧을 내민다. 그가 쓴 것과 똑같은 분홍색의 헬멧이었다.

“…….”

헬멧을 받고 침묵하는 효연을 바라보며 창현이 말한다.

“야, 타!”

지금만큼은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재벌 2세 부럽지 않은 포스를 풍기는 창현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꽃분홍 125cc 스쿠터였다.


두두. 두두두. 두두두.

도로를 질주하는 한 대의 스쿠터가 있다.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매혹적인 꽃분홍색 스쿠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시선을 고정하게 만드는 강렬한 매력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도로를 누비고 있는 스쿠터를 보고 있자니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진한 분홍색으로 페인팅 된 스쿠터는 오토바이처럼 강렬한 화력을 발휘하며 부아아앙! 거리는 것이 아닌, 마치 다리 짧은 사람이 도도도 걸어가는 것과 비슷한 환상을 보여주고 있던 것이다.

스쿠터를 운전하고 있는 사람은 무척 앳된 외모를 가진 소년이었는데, 패션 마크스를 하고, 핑크색 헬멧과 고글을 써 얼굴을 전혀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그 뒤에 탑승하고 있는 사람은 지금 상황이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중이었다.

꽃분홍 125cc 스쿠터를 타고 도로를 질주하고 있는 남녀는 바로 창현과 효연이었다.

한껏 호기를 부려 “야, 타!”를 외쳤다가 한 차례 효연에게 얻어맞을 뻔한 위기를 간신히 넘긴 창현은 효연을 태우고 무작정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스쿠터의 속도가 얼마나 나오겠는가.

그저 덜덜덜거리며 느릿하게 도로를 향하고 있을 뿐이었다.

더군다나 시선 집중 효과 1000%인 스쿠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있는 중이었고,

집중되는 사람들의 시선에 행여나 얼굴이 보일까 싶어 고개를 푹 숙인 효연이 창현에게 속삭인다.

“띨파니가 좋아할 법한 꽃분홍 스쿠터라니. 잘못된 선택 아니야?”

“하하하…….”

그녀의 말에 그저 웃음을 지어보이는 창현이었다.

만 16세가 지나면 원동기 면허를 딸 수 있다 하여 곧장 면허를 딴 그에게 석규가 생일 선물로 준 것이 바로 이 스쿠터였다.

마치 여자가 좋아할 듯한 꽃분홍색을 지닌 스쿠터는 혼자 타기에 제법, 아니, 매우 무리였으니까.

그러다 효연이 울적한 모습을 보이자, 마침내 숨겨두었던 꽃분홍 125cc 스쿠터를 끌고 출격한 것이다.

멋쩍은 웃음을 흘리던 그는 효연에게 말한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누나 기분 전환 시켜주려고 고이 모셔놓은 걸 처음으로 끌고 나오는 건데요. 그냥 이 드라이브를 즐겨주세요. 읏차! 가급적이면 중심 잘 잡아주시고요.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태워보는 거라서 능숙하지가 않아요.”

꽃분홍 스쿠터에 [초보운전]이라는 문구를 붙일 수도 없으니 참으로 난감하다.

창현 딴에는 효연이 주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었지만 그 말은 그녀에게 있어 전혀 다른 의미로 들렸다.

그녀의 귀에 천둥처럼 울려 퍼진 창현의 말.

‘처음이라고?’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길 좋아하는 사람에게 있어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효연 또한 마찬가지.

다른 사람을, 그것도 면허를 따고 처음 다른 사람을 태워본 것이 자신이라는 것이 귓가에 큰 소리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꾸욱.

유쾌한 기분은 그대로 그녀에게 반영되었다.

창현은 효연이 양팔을 자신의 허리에 두르자 깜짝 놀라며 묻는다.

“갑자기 왜 그래요?”

무엇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 알고 있지만 효연의 표정은 태연하기만 하다.

따지고 보면 그녀의 장난기는 소녀시대 내에서 No.1이다. 임초딩도 그녀의 장난기에 굴복하고 그녀와 함께 연합전선을 이룩하여 초딩 듀오 연합을 구성하지 않았던가.

“왜긴? 중심 잘 잡으라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는데?”

방귀 뀐 놈이 되려 성을 내면 한순간 어안이 벙벙해지기 마련이다.

그것은 창현 또한 마찬가지. 갑자기 허리를 두른 손 때문에 놀라 물었지만 그녀의 대답을 듣자 얼떨떨한 표정을 지은 채 순순히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 그래요?”

초보 운전의 한계가 절실하게 드러나는 상황. 누군가를 태우고 운전한 적이 없으니 뒤에 탑승한 사람이 어떻게 중심을 잡을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창현은 너무나 태연히 말하는 효연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행동을 납득하고 있었다.

‘훗! 마치 띨파니 같군.’

어리둥절하여 자신의 꼬드김에 그대로 넘어가는 창현의 모습을 보며 미영과 비슷하다 여기는 효연이었다.

그녀의 입가에 그려진 미소는 절정에 달한 회심의 미소!

하지만 시선이 앞에 고정된 창현에게 그 모습이 보일 리 만무하다.

“그럼. 뒤를 잡고 하다 잘못하면 넘어가게 생겼어. 스쿠터가 별로 크지 않아서.”

“어쩔 수 없어요. 125cc의 한계니까…….”

어찌 창현이 이렇게 작은 스쿠터를 타고 다니겠는가. 다 나이의 한계가 있어서 그런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누구들이 흔히 말하는 포르쉐니, 람보르기니니, 뭐니 하는 유명 차들을 몰고 다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대한민국의 면허는 만 18세가 지나야 딸 수 있다.

2년 후 가능한 현실인 셈이다.

“그러니 내 행동에 뭐라 하지 말라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거니까. 알겠지?”

아주 당당하게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시킨다.

이것이 소녀시대 멤버들과 다른 그녀만의 모습이다.

직설적이며, 개구쟁이 같아 한없이 친근한 느낌을 주는 모습.

너무나 당당하게 말하기에 창현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요.”

“그럼 가도록! 강기사, 어디로 갈 예정이지? 인천 앞바다 어때?”

장난기가 스며든 효연의 말.

그녀의 말에 창현이 스쿠터를 두두두! 속력을 올리더니 말한다.

“작업실로 되돌아 갑니다.”

“…….”

인천 앞바다까지 가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였다.

현실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스쿠터를 탄 두 사람은 결국 작업실에 도착할 수밖에 없었다.

매캐한 매연을 마시며 도로를 질주했지만 효연은 가슴이 상쾌해지는 것을 느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단순히 창현과 같이 스쿠터를 탄 것뿐인데 몸 자체가 가뿐하다랄까.

좁아터진 스쿠터였지만 그곳에서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장난을 주고받던 기분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녀의 기분을 유쾌하게 만든 것은 묘한 성취감 때문이었다.

뒷문으로 조용히 스쿠터를 끌고가는 창현을 보며 효연이 일순간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태연이 그것은 창현이와 스쿠터를 타보지 못했겠지?’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창현에게 말도 되지 않는 개연성을 부여하여 그의 입술을 훔치던 태연이었다.

비록 입술도장을 찍어놓았지만 아직까지 창현은 커플이 아닌 솔로. 태연의 작업은 입술도장을 찍은 시점에 크게 진전이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진행형이라는 것에 변함이 없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창현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빠른 초딩인 그녀는 이미 눈치 채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알고도 모른 척을 하고 있을 뿐.

이성 관계 문제가 얼마나 큰 혼란을 야기할지 알고 있었기에 그녀들로서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 치열한 다툼에 다툼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들 중 누구도 이런 창현의 위로를 받지 못했을 것이고, 이런 드라이브를 만끽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은 스쿠터 뒤에서 창현의 몸을 더듬을 기회(?)까지 얻었다.

‘몸 제법 좋았지? 운동을 많이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부드러운 근육을 가지고 있었어.’

타고난 전문가(?)인 그녀는 이미 창현의 몸 탐색을 마친 상태. 그녀가 판단 내린 창현의 몸은 그야 말로 상품 중 상품이다. 만지는 맛(?)이 있다랄까. 친구의 남자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더듬었다는 엉큼한 생각에 그녀는 묘한 성취감에 사로 잡혀 있는 상태였다.

“누나.”

그녀가 흐뭇했던 감각을 떠올리며 그 느낌을 만끽하고 있을 때, 피해자인 창현은 스쿠터를 놓아두고 효연이 있는 곳으로 다가온다.

자신만의 상상에 빠져있던 그녀는 갑작스러운 창현의 접근에 화들짝 놀라며 엉거주춤 뒤로 물러나며 대답한다.

“엉? 어엉!”

“풋! 무슨 대답이 그래요?”

대답을 하는 그녀의 모습이 무척 우스웠기에 웃음을 참지 못하는 창현이었다.

그 웃음을 본 효연은 자신이 못 보일 꼴을 보였다는 생각에 얼굴을 살짝 붉히더니 창현에게 버럭 소리를 지른다.

“이, 이건 못 본 걸로 해! 다른 사람에게 알리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알았어요, 알았어. 비밀로 해줄게요. 풉!”

엉거주춤 뒤로 물러난 채 화들짝 놀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떠올리자 다시 웃음이 흘러나오는 창현이다.

그 모습에 부아가 치미는지 효연의 눈에 불똥이 튄다.

감히 자신의 우스운 모습을 보고 그냥 넘어가주기는커녕 웃음을 참지 못하는 꼴이라니!

임초딩과 함께 초딩 듀오로 활동하면서 그녀는 언제나 가해자의 입장이 되었지,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본 적은 없다.

“이익…….”

“아아, 알았어요. 더 이상 웃지 않을 테니 화내지 말아요.”

얄밉게도 그렇게 말한 창현은 웃음을 바로 지워버리며 평소 얼굴로 돌아온다.

“…….”

너무나 갑작스러운 변화였기에 화를 내려던 효연은 무어라 말할 타이밍조차 놓친 채 한숨을 푹 내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을 농락(?)하는데 있어 한가닥하는 자신이었지만 창현이란 벽은 높고 견고했다.

그녀가 화를 푼 듯하자 창현은 다시 슬그머니 웃음을 짓더니 그녀에게 묻는다.

“한 번 드라이브를 하니 어때요? 기분이 좀 풀렸죠?”

“…응.”

생각해보니 어느 순간 자신의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던 고민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떠올렸다.

마치 창현이 마법을 부린 것처럼.

아니, 그의 마법에 자신의 고민이 단숨에 날아간 것이리라.

“다른 것에 몰두하게 되면 고민은 잊어버릴 수 있을 거예요. 주제넘을지 모르지만 누나가 고민하는 부분을 어느 정도 이해해요. 하지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늘, 그리고 내일, 그리고 또 내일, 이렇게 하루하루 노력을 쌓아나가야 한다 생각해요. 고민도 좋지만 그것이 쌓이면 결국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니까요.”

“…맞는 말이야.”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다.

먼 길을 가려면 결국 첫 걸음을 내딛고, 그 한 걸음이 더해지고 더해져 마침내 종착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이 인기로 인해 고민하게 된 것은 멤버들과 큰 격차를 느낀 것도 있지만, 자신의 존재가 소녀시대에게 방해가 된다는 악성 리플을 보았고, 그 리플에 상처를 입으면서 마땅한 이유를 찾지 못했기에 그렇다.

그 고민은 결국 소녀시대 내에서 자신이 사라지면 어떨까 하는 형태로 발전하게 된 것이고.

지금은 매력을 찾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그것을 반드시 찾을 수 있게 되리라.

한결 나아진 그녀의 표정을 보며 창현이 웃음을 짓는다.

“그것도 있지만 전 누나의 매력을 알아차릴 수 있었어요.”

“내 매력을……?”

자신의 매력을 찾았다는 말에 효연이 기대감 어린 눈으로 창현을 바라본다. 과도한 기대감이 서린 그녀의 눈은 별빛처럼 반짝이고 있어 창현에게 부담감을 심어주고 있었다.

슬그머니 한 걸음 뒤로 물러난 창현이 그녀에게 말한다.

“바로 거침없이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에요. 누구에게나 장난을 치는 개구쟁이 같은 모습. 사람에게 친근함을 주는 게 바로 누나의 매력인 것 같아요. 마치 초딩처럼!”

잔뜩 기대하던 효연의 아미가 상큼하게 휘어진다.

기대하고 기대하던 자신의 장점이 초딩 같은 면이라니!

“뭐, 초딩?”

그러나 그녀가 화를 내기도 전에 창현은 이미 멀찍이 물러나고 있었다.

“그럼 다음에 뵙도록 해요! 수고하세요!”

그 말과 함께 작업실 안으로 사라지는 창현이었다.

“…….”

사라진 그의 모습을 조용히 쫓던 효연.

단단히 화가 난 표정을 짓던 그녀가 이내 피식하고 웃음을 흘린다.

“초딩 같은 모습이 내 장점이라… 하여간 못 말리겠다니까.”

자신의 단점이라 여기던 부분이었지만 창현에게 들으니 마치 장점과도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의 말에는 참으로 묘한 매력이 숨어있다 여기며 걸음을 옮기는 효연이었다.

회사로 향하는 그녀의 걸음은 한 결 가벼워보였다.




제71장 무한도전




드라마 촬영이 끝난 이후, 4집 앨범 작업을 하느라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그 뿐인가? 안무 연습을 병행하였고, 검정고시 공부 또한 꾸준히 하고 있는 중이었다.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창현 같은 경우 드라마로 인해 전국민적인 인기를 다시 한 번 얻는데 성공하였기에 그 인기를 바탕으로 CF를 섭렵해나가고 있었다.

아직 촬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이미지에 적합한 CF를 추리고 추려내는 중이었다. 철저히 럭셔리 이미지를 추구하는 창현이었기에 그가 계약하는 CF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효과만큼은 대단하였기에 많은 돈을 서서라도 그를 모셔가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상황이다.

“후우! 힘들군, 힘들어.”

창현이 특히 애먹고 있는 것은 바로 안무 연습이었다.

허공을 밟는 안무는 다른 시설물을 쓰지 않기에 해내기가 무척 힘들다. 무대 위에 설 때는 시설물을 이용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놓아둘 테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의 힘으로 해내야 했기에 완전히 숙달시켜놓을 필요가 있었다.

익숙해지긴 했지만 펼치면 막대한 내공의 소모로 탈진하여 허덕이기에 바빴으니까.

안무만 완벽하게 완성한다면 한시름 놓을 수 있을 텐데 그것이 아직 불완전한 모습을 종종 보여 마음을 놓을 수 없게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어진 예능 프로그램 녹화로 인해 더욱 지친 모습을 보여야만 했다.

S본부에서 촬영하는 야심만만이라는 프로그램에 나가 한 차례 격전을 치러야만 했으니까.

방송 촬영 이후 별다른 일정이 잡히지 않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것이 있는지 창현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러고 보니 6월말쯤에 무한도전 촬영을 한다고 들었는데…….”

현재 날짜는 곧 7월이 되는 6월 27일이다. 6월 말에 촬영한다 하던 무한도전을 촬영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데 아직 그에게 연락조차 없는 실정이었던 것이다.

“빠르게 끝나는 게 아니라 들었는데?”

얼마 전 촬영한 야심만만과 달리 무한도전은 공익성이 강한 프로젝트였기에 제법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상황이었다.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것은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무한도전 측은 물론이고 석규에게조차 연락이 없으니 황당할 수밖에 없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슨 일이 없는 것이라면 자신에게 연락이 없을 리 없으니.

그렇다고 하여 무슨 일이 있다면 당연히 자신에게 연락이 올 텐데 아무 연락이 없자 창현으로서는 혼란스러웠다.

이래도 저래도 연락이 닿아야 할 텐데 자신에게 아무런 언질도 없으니 답답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무한도전 촬영은 자신 또한 상당히 기대하고 있던 것이었다.

흔히 말하는 무한도전 광팬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국민 예능 프로그램의 전후는 무한도전으로 나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을 말이지만 무한도전의 팬인 창현에게는 충분히 공감을 주는 말이었고, 그 프로그램이 자신에게 있어 큰 도움을 줄 수 있고, 좋은 일을 한다기에 기대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연락을 해볼까…….”

석규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연락을 할까 고민하던 창현.

그러다 이내 고개를 젓는다. 요즘 라샤가 일본 활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다 하고, 자신의 컴백으로 인해 회사가 바쁘다는 걸 알고 있는데 번거롭게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어차피 내일 회사에 들를 일이 있으니 그때 물어보면 되겠지.”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정해두는 창현이었다.

이미 한쪽에서 촬영을 시작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국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라는 명칭을 얻은 무한도전.

여섯 명의 평범 이하 남성들이 펼치는 무한도전은 젊은 층의 매니아 층을 두텁게 갖추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단기 프로젝트부터 시작하여 장기 프로젝트까지. 수많은 프로젝트를 활용하여 좋은 일도 많이 하기에 사람들에게 있어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는 한다.

시청률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칭할 만큼 무한도전이 지닌 파급력은 대단하다.

시도 때도 없이 촬영을 하는 그들은 오늘 단기 프로젝트를 위해 모여 있었다.

무한도전 멤버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바로 박명수다.

유재석의 곁을 지키는 2인자로서, 호통 개그를 치는 그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버럭 화를 내도 타인에게 화가 아닌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다.

그는 평소 촬영하는 날짜가 아닌 주말로 접어드는 금요일에 촬영을 한다고 하자 눈가를 찌푸리고 있었다.

다른 연예인이라면 그러한 기색을 보이지 못할 테지만 버럭거리는 호통 개그가 전문이니 만큼 성격을 유감없이 발휘할수록 웃음을 유발한다.

“뭐야, 오늘은 왜 촬영하는 거야! 주말이라고! 가족과 함께 하는 주말!”

버럭! PD에게 소리를 지르는 명수. 손으로 삿대질을 하며 성큼성큼 다가가는 그를 향해 재석이 달려들며 필사적으로 말린다.

“아, 왜 이래요. 우리가 어디 이런 적이 한두 번입니까? 새삼스러운 일도 아닌데 왜 그러세요.”

혼내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미운 법.

안 그래도 주말 촬영이라 기분이 팍팍 나빠져 있는 명수는 표적을 재석에게 옮기더니 그에게 손가락질하며 버럭 외친다.

“너도 결혼해 봐! 주말에 왜 쉬어야 하는지!”

그 말에 재석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더니 샐쭉한 표정을 지으며 명수에게 깐족거린다.

“저도 열흘 후에 결혼합니다만? 게다가 얼마 전 이야기를 들어보면 주말에 제발 촬영이 있다고 제게 말해달라… 웁!”

결혼을 하고 나서 유난히 약점이 많아진 명수.

그의 비밀을 가감 없이 폭로하려던 재석은 명수의 손에 입이 막혀 웁웁! 거리며 바동거리고 있다.

사정없이 재석의 입을 막아버린 명수가 카메라를 향해 시선을 옮기더니 말한다.

“이 부분은 편집해주길 바랍니다.”

하지만 웃음 포인트 하나를 짚어낸 카메라 감독은 친절하게 좌우로 카메라를 흔듬으로써 거절의 표시를 보낸다.

그러자 명수의 표정이 굳더니 카메라 감독에게 말한다.

“편집하지 않으면 저… 단란한 신혼 생활이 망가질 수 있는데요?”

아마 이 부분에 해골 표시가 무한대로 뜨리라.

부인에게 꽉 잡혀 옴짝달싹 못하는 가련한 유부남 명수를 보며 재석은 폭소를 터뜨린다.

심기가 불편해진 명수는 재석에게 시선을 옮기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웃지 마! 너도 얼마 후면 유부남이야! 나같이 안될 줄 알아?”

“…….”

명수의 폭탄 발언에 순간 굳어버리는 재석. 결혼을 앞둔 새신랑이기에 설레는 마음이 없지 않아 있지만 부인에게 꽉 잡혀 사는 명수의 모습을 볼 때마다 불안한 마음이 들고는 하였다.

술을 자주 마시지는 않지만 술자리에 곧잘 끼고는 하였기에 통금시간이 정해진 명수의 모습이 측은하였고, 번 돈을 가끔은 마음껏 쓰던 그가 용돈을 받는 모습을 볼 때면 얼마나 측은한 심정이 들었던가.

이제는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곧잘 마음이 뜨끔거리고는 한다.

재석이 그러한 느낌을 받은 것은 곧 자신의 부인이 될 신부가 형수님을 곧잘 만나고는 하기 때문. 좋은 것만 골라 전수 받으면 좋겠지만 예로부터 나쁜 것은 쉽게, 좋은 것은 어렵게 본받는 법이다.

표정이 굳은 재석을 보며 명수는 썩소를 가감 없이 날려준다.

“너도 곧 내 처지가 될 것이다. 두고 봐. 그때 얼마나 애걸복걸하게 될지.”

“저, 정말 저도 그렇게 될까요?”

“두고 보면 알겠지.”

“으으…….”

짙은 원한이 서린 말이었지만 그것은 재석에게 있어 악몽과도 같은 이미지를 선사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어느새 도착한 또 다른 멤버가 불쑥 끼어들며 묻는다.

“무슨 이야기 하는 거예요, 형님들?”

모습을 드러낸 인물은 노란 머리를 하고 있는 홍철이었다.

집합 장소에 모습을 드러냈기에 반겨줘야 함이 옳았지만 가뜩이나 고민이 쌓여있던 명수는 싱글인 홍철이 부러워 퉁명스럽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만다.

“유부남의 고민이다. 넌 끼어들지 마!”

강렬한 호통이 작렬했지만 상대는 마이페이스인 홍철이다. 그 호통에 전혀 데미지 없는 모습을 한 채 오히려 역공을 퍼붓는다.

“형님! 지금 신혼인데 벌써 불화가? 아니, 형수님에게 꽉 잡혀 산다는 말이 사실이었군요? 이거 특종이군, 특종이야.”

“웃!”

강력한 일격에 명수가 멈칫거렸다. 사나이의 자존심이 있지, 자신이 잡혀 산다는 것을 외부에 알릴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미 카메라에 실려 생생하게 전국적으로 방송될 예정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재석은 괜히 자신의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아 침울한 목소리로 홍철을 말린다.

“홍철아, 명수 형한테 그러지 마. 가뜩이나 심란한 명수 형인데 네가 그러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

그러나 홍철은 전형적인 마이페이스다.

그는 재석을 보더니 곧 그가 결혼할 새신랑이라는 것을 떠올리고는 치명적인 일격을 날린다.

“그러고 보니 형님도 곧 결혼하시잖아요? 형도 명수 형처럼 되는 거 아니에요?”

“윽!”

정곡을 찔린 재석이 신음을 흘리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난다.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이 어떠한 일격을 퍼부은 것인지도 모른 채 홍철은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나둘씩 모여 마침내 모든 멤버들이 모였다.

중앙에 선 재석은 좌우로 멤버들을 둘러보며 입을 연다.

“자! 오늘 여러분들을 부른 이유는 곧 쨍쨍한 여름을 타파할 시원한 프로젝트를 하기 위함입니다.”

재석의 말에 준하가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더니 말한다.

“시원한 프로젝트? 설마 바캉스라도 가는 건가?”

“에이, 그럴 리가 또 이상한 노가다나 시키겠지.”

옆에 서 있던 형돈이 이상한 것을 생각해냈는지 불만스러운 기색을 보인다. 제작진이 그렇게 착한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여러분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프로젝트입니다.”

“도대체 뭔데 그러는 거야? 바람 넣다 빠지면 얼마나 허탈한지 알아?”

재석과 홍철에게 입은 데미지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는지 명수가 심기불편한 말을 흘린다.

그 말에 웃음을 짓은 재석이 궁금증이 가득한 멤버들을 둘러보더니 잠시 뜸을 들이고는 입을 연다.

“오늘 여러분들을 모은 이유는… 바로 2008 여름 가요제를 하기 위함입니다!”

아주 야심차게 외치는 재석. 2007 강변 북로 가요제의 뒤를 잇는 유서 깊은(?) 2008 여름 가요제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반응은 미지근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에이, 뭐야, 그게.”

“땡볕 아래서 노래를 부르라고? 난 못해.”

“배 째!”

예상 외의 반응에 재석이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나름대로 야심찬 포맷이었거늘 설마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이야.

그러다 무언가 떠오른 것이 있는지 음흉한 웃음을 짓더니 말한다.

“못하겠다는 겁니까? 우리의 곡을 맡아줄 분이 바로 현 씨인데 말이죠?”

“……!”

재석의 말에 모두가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본다.


가장 먼저 말한 것은 홍철. 마이페이스적 성격을 가진 그는 충격에도 그만큼 강한 모습을 보인다.

경악이 담긴 어조로 재석을 바라보며 묻는다.

“현 씨? 내가 알고 있는 그 현 씨란 말인가요, 형님?”

홍철의 물음에 모두가 답을 구하는 눈으로 재석을 바라본다. 그러자 재석이 PD와 싸인을 맞추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맞습니다. 이번 여름 시즌을 맞아 무한도전 제작진에서 아주 어렵사리 현 씨를 모시는데 성공했습니다.”

분명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진실. 하지만 여태까지 워낙 당한 것이 많았던 탓일까.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명수가 날카로운 눈으로 끼어들며 말한다.

“이거 거짓말 아냐?”

“아니,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지만 그걸로 명수를 설득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그는 PD와 재석이 합심하여 멤버들을 단체로 낚으려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거짓말이 아니긴 왜 거짓말이 아냐! 너 방금 PD하고 시선 교환했잖아!”

버럭 소리를 지르는 명수의 말은 다른 멤버들로 하여금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어렵사리 현을 섭외한 건 좋다 치자. 그런데 왜 의미심장하게 시선을 교환한단 말인가?

명수의 말을 들은 그들의 뇌리에는 무언가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동안 당한 것이 적잖게 있는 만큼 슬프게도 PD를 비롯하여 재석을 쉽사리 신뢰할 수 없었다.

“아니, 그게 그러니까…….”

가자미눈을 한 채 자신을 바라보자 크게 당황하기 시작한 재석.

그렇지만 쉽게 의심을 풀 멤버들의 모습이 아닌지라 결국 한숨을 푹 내쉬더니 순순히 사실을 시인한다.

“후! 알겠습니다. 진실을 말해드리죠.”

“그럼 그렇지. 역시 무언가 내막이 있었어. 명수 형 짱이야.”

진실을 말하려는 재석의 모습에 형돈이 엄지손가락을 척 내밀며 명수를 찬양한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현이라는 미끼에 속아 또 다시 이상한 노가다를 했을지 모른다.

형돈의 칭찬에 잔뜩 의기양양해진 명수가 어깨를 쭉 피더니 외친다.

“날 쉽게 속일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이래도 있는 사람이야.”

그 모습에 쓰게 웃음을 지은 재석이 한껏 의기양양해진 명수의 기분을 망치는 말을 한다.

“그런데 속이려는 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번에 여름 가요제를 하는 것도 사실이고, 현 씨가 섭외된 것도 사실이니까요.”

“정말이었어, 그거?”

진실을 말하겠다 한 재석이 정말로 진실(?)을 이야기하는 듯하자 준하가 한껏 놀라며 묻는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형돈이 그를 툭 치며 말한다.

“형, 재석이 형이 지금 속이려는 거 안 보여? 속지마. 저거 다 거짓말이야.”

“그, 그런가? 그런데 방금 전에 진실을 말한다고 했잖아.”

왔다갔다하는 말 때문에 어지간히 헷갈리는 듯하다.

명수도 서서히 헷갈리기 시작하는지 인상을 찌푸리고는 재석에게 호통을 친다.

“빨리 진실을 말해. 저 바보는 아직도 뭐가 뭔지 갈피를 못 잡잖아.”

“아, 알았어요. 이번에 하는 건 여름 가요제가 맞고, 현 씨를 섭외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재석이 PD를 향해 묻자, 고개를 끄덕이는 PD.

순순히 사실을 시인하자 다시 한 번 술렁이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재석이 말한 것은 거짓이 아닌 진실이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정말로 현을 섭외했다고? 정말 그게 가능해?”

“무슨 수를 부렸을지도. 어쨌든 정말 현을 볼 수 있다니 대단한데?”

“같은 연예인인데 보기 가장 힘든 연예인이라잖아. 이번 기회에 볼 수 있겠네.”

파격적인 데뷔를 치른 현은 미국을 제패한 뒤 돌아와 한국에서 각종 방송 활동을 했지만 그 범위가 극히 한정되어 있어 연예인이면서 가장 만나기 힘든 연예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었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재능은 벌써 활짝 만개하여 나라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인물이 바로 현 아니던가.

그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흥분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나 그와 만나 인맥을 형성할 수 있다면 사적으로도 엄청난 이득이 될 테니까.

하지만 의심의 마왕인 명수는 여전히 납득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재석과 PD를 번갈아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다.

“태호가 쉽게 이 사실을 말할 리가 없는데?”

정말로 현을 섭외했다 치자. 그렇다면 자신들에게 순순히 말할 PD가 아닌 것이다. 매번 무언가 숨기다가 빵빵 터뜨리고 자신들은 그 속에서 어떻게 상황이 흐르는지도 모른 채 이리저리 휩쓸려다니지 않았던가?

그동안 당한 것이 워낙 많아서인지 명수는 도통 재석과 PD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의심이 가득한 명수의 말에 재석은 무언가 떠오른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한다.

“아, 그 부분에 대해서 지금부터 말씀드리려고요.”

“…….”

괜히 설레발 친 것 같은 느낌에 명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밝히지 않던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현재 현 씨는 작업실에 머물고 있는 상황입니다.”

“가수면 당연히 작업실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준하의 말에 재석이 고개를 저으면서 말한다.

“아, 좀 끝까지 들어봐요.”

“알았어.”

입을 꾹 다문 준하를 보며 재석이 다시 말을 이어나간다.

“드라마 촬영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앨범 준비를 위해 작업실에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현 씨의 작업실을 향해 가도록 할 겁니다.”

“작업실을 급습하자는 건가?”

명수가 번뜩이는 눈으로 재석을 바라보며 묻자, 입가에 미소를 지은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척이면 척인 법이다. 이미 수차례 해온 내공이 있기에 그들은 단번에 무엇을 하려 하는지 눈치 챌 수 있었다.

수년간 호흡을 맞추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그런데 폐가 되지 않을까요, 형님?”

아무래도 급습하자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 평소 그답지 않게 염려 섞인 어조로 묻는 홍철이었다. 세심한 면이 있는 그는 아무런 통보도 없이 창현의 작업실로 향하자는 것이 불안한 듯했다.

“괜찮아. 소속사 사장님에게 허락을 받아놨거든. 특별히 폐가 될 일이 없다 하셨으니 밀고 나가도 돼.”

잠시 카메라를 꺼달라 하고 말을 한 것이니 편집이 되리라. 아마 자막으로 사전에 양해를 구했다고 하면 별다른 말이 나오지 않겠지.

“괜찮다고 하면 상관없겠죠.”

“좋아, 그럼 가는 거야. 고고고!”

현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들뜬 멤버들.

한국이 낳은 불세출 천재라 불리는 음악의 천재를 만난다는 것은 일반인도, 연예인도 가리지 않는 설렘을 동반하고 있었다.

차에 탑승한 무한도전 멤버들이 향하는 곳은 바로 창현의 작업실이 있는 곳이다.


“차에서 내리고 작업실 앞에 갈 때까지는 비밀로 할 거예요.”

재석의 말에 몇몇 멤버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 그를 바라본다. 리얼 버라이어티인 만큼 지속적으로 촬영하는 것이 생명인데 비밀로 하겠다니?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알 수 있을까요, 형님?”

궁금증을 참지 못한 홍철이 묻자, 재석이 간단하게 답한다.

“작업실의 위치는 비밀이니까. 자칫 잘못하면 발각될 수 있거든.”

“아아! 그렇구나. 충분히 가능성이 있죠.”

네티즌들의 저력은 무서울 정도로 대단하다.

만약 무한도전에서 차에 내려 현의 작업실을 가는 과정을 담아내면 그 다음 현의 작업실이 발각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임이 분명했다.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해낼 수 있는 능력자들이었으니까.

특히나 팬 층이 두터운 현이라면 몇 가지 자료만으로도 작업실을 알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 만큼 제작진 측에서 주의를 기울이려는 것이라.

가뜩이나 현에게 폐를 끼치는 만큼 여러 가지 곤란한 일을 겪지 않게 하는 것이 자신들이 할 일이니까.

“창현이가 워낙 착해도 지켜줄 건 지켜줘야지.”

순간 편하게 말을 놓는 것을 형돈은 놓치지 않았다.

그는 눈을 부릅뜨더니 다른 멤버들이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외친다.

“창현이? 그러고 보니 재석이 형 현하고 친분이 있었지!”

“……!”

모두가 놀란 시선으로 재석을 바라보았다. 설마 그가 현과 접점이 있을 줄 몰랐던 것이다. 그러자 재석이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자신감 있게 어깨를 쭉 피고는 말한다.

“팬 미팅 때 내가 MC 봐준 적이 있지. 내가 바로 현과 형 동생 하는 사이라고.”

“에이! 나이차이가 얼만데 형 동생이에요? 너무 사심이 작렬한 거 아니에요?”

야유를 보내며 추궁하는 형돈의 모습에 재석이 잠시 멈칫했지만 말한다.

“연예계에서 선배 아니면 형이지. 어쨌든 그걸 계기로 친해지게 되었어. 창현이는 효리하고도 무척 친하거든.”

“이효리! 이거 완전히 우리만 쏙 빼놓고 친하게 지내는 거네?”

“맞아맞아.”

모두가 한 목소리로 재석에게 야유를 보내자 그는 다소 당황한 눈치였다. 그러다 한쪽에서 웅크리고 있는 명수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연다.

“명수형, 뭐해요?”

그 목소리에 다른 멤버들의 시선도 모두 명수에게 향한다.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니 신경 쓰지 마. 신경 쓰지 말라고!”

재석의 기웃거림에 그의 접근을 저지하던 명수가 카메라를 보고는 버럭 호통을 쳐 카메라를 물리친다.

“저 형은 또 뭘 꾸미는 거지.”

자세한 연유를 알고 싶었지만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으니 더 이상 뭐라 할 수 없었다.

그 후 이어진 것은 소소한 이야기들이었다. 현을 만나면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해야 할지부터 시작하여 가장 좋은 곡을 얻어내는 방법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애초에 오프닝을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한 것이 아니었기에 창현의 작업실에 도착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때부터 위치가 발각되면 안 되기에 잠시 카메라를 꺼두고 분분히 내려서기 시작한다. 작업실 뒤 주차할 곳이 충분히 있었기에 스태프들과 무한도전 멤버들이 내려서기 시작한다.

“이곳이에요? 겉모습만 보면 잘 모르겠는데…….”

“1층하고 2층 함께 쓴다고 들었어. 나도 가보지 않아서 잘 몰라.”

그 사이 촬영 준비를 마친 그들은 작업실 문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거기에서 문제가 된 것은 누가 먼저 나서서 작업실로 진입하느냐였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일제히 추천한 것은 바로 재석이었다.

“형이 해. 현 씨 알고 있다며.”

“내, 내가?”

“형이 알고 있다면서요.”

“아, 알고는 있지.”

친하다고 으스대던 것이 방금 전인데 급격히 약한 모습을 보이는 재석. 그 모습을 보며 다른 멤버들의 눈이 가늘어지기 시작한다.

그때, 형돈의 날카로운 비수가 재석의 가슴을 후벼판다.

“혹시 한두 번 만나본 게 다인 걸 가지고 친한 척 한 거 아니야?”

“아니거든. 잘 알고 있고 친해! 잘 봐. 내가 보여주도록 하지.”

그러면서 의기양양하게 앞으로 나선 재석. 초인종을 누르려던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러다 이내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을 깨닫고는 초인종을 누른다.

띵동!

맑게 울려 퍼지는 초인종 소리. 그 소리를 들은 무한도전 멤버들은 나이도 잊고 주책스러운 반응을 보인다.

“눌렀어, 눌렀어!”

“재석이 형인지 모르면 완전 굴욕인데.”

그렇게 수군수군거렸지만 한동안 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자 창현이 작업실에 없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없는 거 아냐?”

“설마? 있을 거라 했는데…….”

답이 없자 재석은 물론 PD도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때,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틀림없는 창현의 목소리였다. 혹시 없을 수도 있단 가능성을 제기하던 재석은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밝은 표정을 지은 채 말한다.

“어, 창현아. 나야, 나. 재석이 형.”

-어라, 재석이 형? 형이 무슨 일로…….

놀란 기색이 역력한 창현의 목소리에 재석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멤버들을 둘러본다. 창현과 자신을 모르는 사이로 취급하던 멤버들에게 지어 보이는 득의만만한 미소였다.

‘봤지? 나 이런 사람이야.’

“무한도전 촬영 때문에 상의할 게 있어서 왔어. 잠시 문 좀 열어줄래?”

작가가 아닌 재석이 직접 찾아온다는 것도 이상했고, 회사가 아닌 작업실에 찾아온 것 또한 의외였다.

충분히 이상한 점이 많았지만 창현은 별다른 의심을 보이지 않은 채 순순히 문을 열어준다.

-그래요? 네, 알겠어요.

덜컹!

대답과 함께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재석이 문을 활짝 연다. 그러자 재석만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앞으로 나와 있던 창현은 수많은 카메라들은 물론, 무한도전 멤버들까지 서 있자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그 모습을 보고는 웃음을 지은 재석이 손을 번쩍 들며 외친다.

“자, 돌격!”

우르르! 무한도전 멤버들과 촬영진이 작업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갑작스러운 사람들의 난입에 당황한 것일까.

창현의 입에서 당혹스러운 어조의 말이 흘러나온다.

재석이 간단하게 이야기할 것이 있다 하여 열어준 것인데 갑자기 수십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우르르 밀려들어오니 어찌 당혹스럽지 않겠는가.

사실 의문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재석이 찾아왔다는 것 자체가 의아함을 심어주고 있었으니까.

MC 중에서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그가 미팅을 위해 직접 찾아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차라리 무한도전 촬영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려 사적으로 찾아왔다면 어느 정도 납득이라도 되지.

어찌 되었든 우르르 들이닥치며 자신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스태프들을 보면서 창현은 자신이 완전히 속아넘어갔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재석은 창현 앞에 서서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열 손가락을 펼쳐보인다.

“무한도전 깜짝 방문이었습니다. 무한~ 도전!”

“무한~ 도전!”

다른 멤버들도 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을 펼쳐든다.

졸지에 낚여버린 창현으로서는 멋쩍은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담담하게 웃음을 짓는 창현을 보며 무한도전 멤버들은 나직이 감탄사를 흘린다. 놀랄 만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창현의 반응은 마치 평범한 일상을 겪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던 것이다.

수만 명의 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라 그런지 담량이 보통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화들짝 놀라거나 했을 텐데 창현의 반응은 미미했으니까.

오히려 놀래키려 온 사람들이 어안이 벙벙할 정도.

혹 촬영진이 미리 방문하는 걸 말한 게 아닐까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놀랐죠? 놀랐을 겁니다. 그걸 의도하고 왔거든요.”

재석의 말에 창현은 고개를 끄덕인다.

“네, 정말 놀랐네요. 언제 촬영할지 감을 못잡고 있었는데 설마 이렇게 찾아오실 줄이야.”

하지만 담담하게 웃어 보인 그의 모습은 그리 놀란 것 같지가 않았다.

홍철이 앞으로 나서며 스윽 창현을 바라보더니 의구심 섞인 눈으로 창현에게 묻는다.

“혹시 제작진에게 먼저 연락을 받은 건 아니고요?”

“연락이요? 연락이 없어서 이렇게 놀라는 건데…….”

“저와 눈을 마주치면 모든 것이 밝혀질 것입니다.”

마치 자신이 아이큐 430이 되는 누군가가 된 것처럼 눈을 마주치면 모든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말하는 홍철. 창현은 거리낄 것이 없었기에 홍철과 눈을 마주쳐나간다.

투명하게 비치는 창현의 눈동자.

거짓 하나 섞이지 않은 듯, 잔잔한 바다와도 같은 그의 눈은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주었다.

그의 속내를 낱낱이 읽어 들이려던 홍철은 오히려 자신의 속내가 읽히는 듯한 느낌을 받아야 했다.

그윽한 눈으로 창현을 응시하던 그는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숨을 들이쉬었다.

“허억! 이분은 결백해요! 절대 제작진이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역시 월드 스타!

열일곱이라는 나이게 무색해질 정도로 대단한 눈빛이었다.

단숨에 홍철을 제압한 창현의 위용에 모든 멤버들이 감탄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본다.

“우리가 무슨 이유로 찾아온 건지 알고 계시지요?”

재석의 물음에 창현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한 것은 모르고 있는데.”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저희가 여름을 맞이하여 여름 가요제를 개최하려고 합니다. 그곳에 현 씨의 곡과 프로듀싱을 받아 작은 콘서트를 열고자 하는데 말이죠. 그곳에서 나오는 수익 전액은 좋은 일에 기부하려 합니다. 어떻습니까?”

“좋은 일이라… 좋은 일 좋죠. 하지만…….”

말끝을 흐린 창현이 무어라 말을 하려 할 때, 명수가 앞으로 나섰다.

번뜩이는 그의 눈은 창현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미 눈치 챈 상태였다.

“필요 경비는 제작진에서 모두 해결해줄 겁니다.”

그러자 카메라가 순식간에 PD를 비춘다. PD는 당황하여 재석에게 무언가 신호를 보냈고, 그 신호를 받은 재석이 창현을 바라보며 묻는다.

“저기, 현 씨가 제작한 곡의 비용이 어느 정도 되는지?”

이 부분에 대해서 어느 정도 합의가 되었지만 아무 언급도 없이 지나가게 되면 창현이 얼마나 뜻 깊은 행동을 하려는 것인지 알려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었다.

“곡 비라면… 저번에 1억 정도로 제의가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어요.”

모두가 놀라 자빠질 만한 금액이었다.

곡 하나에 1억이라니! 그냥 정규 앨범 하나 제작해주면 강남 아파트를 사고도 남을 금액이 아닌가?

무한도전 멤버들 입에서 경악성이 흘러나왔다.

“어, 억! 억이라니!”

“우리가 개개인만 해도 여섯 명이니까… 총 6억!”

“허억! 6억이라니!”

많은 돈을 버는 사람들에게조차 쉬운 금액이 아니었다. 그만큼 창현의 입에서 나온 곡 비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것을 무료로 제공해주겠다니. 새삼 AA엔터테인먼트와 현이 큰 결심을 내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걸 제작진에서 해결했다고?”

명수는 이미 합의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기에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아무리 큰 프로젝트라고 하나 무한도전 측에서 6억을 들일 것이라는 걸 믿지 않는 듯했다.

그걸 지켜보던 재석이 나서서 사태 진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게 아니라 현 씨가 모두 기부하는 의미에서 제공을 해주신다는 거잖아요.”

“6억을 기부해? 이러면 내 기부가 무색해지잖아!”

굳이 언급하자면 억지 기부였지만 다른 멤버들은 토를 달지 않았다.

그만큼 6억이라는 금액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단한 금액이었다.

“좋은 일에 사용하는 것이니 만큼 굳이 액수로 책정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다 같이 함께 해서 좋은 결과를 내 불우한 이웃을 도울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뜻 깊은 일이 될 것 같으니까요.”

명언을 남기는 그의 말에 모든 멤버들이 감탄사를 흘린다.

그것은 재석 또한 마찬가지. 그는 자신의 친분을 과시하려는 듯 입에 침을 튀기며 창현을 칭찬한다.

“캬아! 역시 현 씨! 사실 이 자리에서 언급하지만 이 친구가 세계적인 스타답지 않게 무척 털털해요. 성격도 좋고. 그래서 이번 여름 가요제에 특별히 초빙된 것이죠. 그래서 제가 아끼는 친구이기도 하고요.”

마치 자신과 절친한 사이인 것처럼 말하는 그의 모습에 다른 멤버들이 반발한다.

홍철이 앞으로 나서서 음흉한 기색이 감도는 얼굴로 재석에게 말한다.

“무척 잘 아는 듯 말씀하시네요? 하지만 지금 둘 사이에 존재하는 알 수 없는 어색함은 뭘까요?”

“맞아맞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데 뭔가 어색해.”

“친한 척 하는 거 아냐?”

“아니야! 나랑 현 씨랑 친하다니까. 그렇지 창현아? 응? 아니, 현 씨.”

멤버들의 공세에 당황했는지 평소에 꼬이지 않는 말이 꼬여나오는 재석이었다.

그 모습에 창현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친하죠. 재석이 형한테는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자주 만나 뵙지는 못하지만 저는 항상 친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편을 들어주자 재석이 얼굴에 화색을 띠고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감탄사를 흘린다.

“그렇지! 나도 친하다 생각하고 있어. 역시 우리는 나이를 떠나 무언가 잘 맞는다니까!”

호들갑을 떨며 자신과 파장이 잘 맞는다며 좋아하는 재석의 모습에 배알이 꼴린 멤버들의 의구심 섞인 시선으로 재석과 창현을 번갈아 바라본다.

“뭔가 수상한데.”

“무언가 흑막이 있는 것 같아.”

하지만 겉으로 증명할 수가 없으니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창현과 재석이 합작한 이상 사실이 아니더라도 인정하는 수밖에.

그렇게 수군거리고 있을 때, 창현이 본론으로 돌아와 재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럼 제가 곡과 프로듀싱을 맡아야 한다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사실 제가 만드는 곡은 컨셉이 잡혀있고, 기본 중심이 존재하면 만드는 것은 어렵지가 않습니다. 일단은 컨셉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중요하겠네요. 그렇게 한 뒤 곡의 테마를 정하고, 가사를 작사하면 될 테니까요. 작사는 제가 아닌, 각자 작성하는 것으로 하면 되고요.”

“저희가 작사를요?”

직접 작사를 하란 말에 적잖게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언제 작사를 해본 적이 있던가. 더군다나 곡을 쓰는 것은 다름 아닌 현이다. 자칫 가사를 잘못 쓸 경우 고스란히 욕을 얻어먹을 수 있는 상황이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되요. 최종 검열은 제가 할 테니 그것에 맞춰주시면 되니까요.”

무섭게 생긴 사람이 아닌, 아직 어리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창현이 하는 말이었기에 무한도전 멤버들은 적잖게 한시름을 놓는 표정이었다.

자신이 그렇게 편안한 감정을 느끼는 원인조차 모르고 있는 듯했다.

편안한 표정을 짓는 멤버들을 보며 창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우선 작업실을 둘러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잠깐만요.”

손을 들고 앞으로 나선 것은 명수였다.

창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 명수를 바라보자, 그는 PD와 멤버들을 번갈아 둘러보며 입을 열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이분이… 침체된 음반계에서 100만장 이상을 팔아치우는 그분이라는 이야기죠?”

“물론이죠! 100만장이 아니라, 200만장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재석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명수가 눈을 빛내더니 다시 한 번 묻는다.

“이분이 지나가던 강아지에게 노래를 시켜도 음원 차트 1위에 올려놓는다는 분이군요.”

“그건 좀… 아니, 그렇지요.”

실제로 강아지에게 부르게 한 적이 없기에 이것은 상당히 대답하기 난감했다. 하지만 아니라고 하기 뭐했기에 결국 수긍을 하는 재석이었다.

“그렇군. 잠시 나 좀 봅시다.”

“네?”

의아함이 가득한 목소리를 흘린 창현이었지만 명수는 막무가내로 창현을 끌고 탁자가 놓인 곳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그의 손에 무언가를 묻히더니 그대로 종이 위에 찍으려 든다.

자신의 손이 향하는 곳에 적힌 글자를 본 창현이 의아함이 가득한 목소리를 흘린다.

“으응? 계약서?”

명수가 창현의 엄지 손가락에 인주를 묻히고 찍으려는 곳은 바로 계약서-계약서라 적혀있고, 향후 박명수 앨범의 모든 곡을 책임지겠다는 노에 계약서-가 자리하고 있었다.

씨익.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마침내 성사 단계에 놓인 명수는 입가에 악마의 웃음을 지어보였다.


악마 명수의 계략으로 인주가 묻은 손이 계약서에 향하고 있지만 창현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서 있었다.

아니, 오히려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성공이야!”

창현이 그런 반응을 보이건 말건 명수는 신경 쓰지 않은 채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해 있었다.

이 계약서를 완성하면 앞으로 자신은 월드 스타의 든든한 후원을 받아 곡을 내리라!

치밀한(?) 준비가 마침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마침내 창현의 손이 계약서를 꾸욱 찍는 순간, 명수의 입가에 악마의 미소가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

여유만만한 그의 모습에 무언가 일이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느낀 명수.

지장을 찍었지만 오히려 엉거주춤하여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창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휴지를 뽑아 손가락에 묻은 인주를 닦아내고 있었다.

그 사이 슬그머니 다가와 계약서를 본 재석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명수에게 말한다.

“아니, 지금 뭐하는 거예요?”

“뭐긴 뭐겠어. 앞으로 모든 앨범의 곡을 책임지겠다는 합법적인 계약서지.”

“이게 합법적인 계약서라고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는 재석. 그러면서 계약서를 빠르게 읽더니, 멤버들에게 건네주었다.

계약서를 받아든 멤버들 또한 눈으로 빠르게 읽다가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짓는다.

요즘 합법적인 계약서의 기준이 많이 변했나 싶었기에 그렇다.

명수가 작성한 계약서의 내용은 이러하다.


1.개그맨이자 가수인 박명수(이하 갑이라 칭함)와 작곡가 현(이하 을이라 칭함)은 대가를 지불하고 곡의 판권을 받아온다.

2.을은 갑이 원할 경우 곡을 만들어주어야 하며, 매년 정규 앨범에 해당하는 열두 곡 이상의 곡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3.모든 판권은 갑에게 귀속되며, 앨범이 나와 판매량에 따라 을에게 대가를 지불한다.

4.신체적인 문제나 정신적 문제가 아닌 이상 계약 파기는 불가능하며, 부득이 파기할 경우 계약금 1000억을 지불해야 한다.


“…….”

장난인지 진심인지.

독소 조항이란 독소 조항은 다 들어 있고, 창현에게 있어 하나도 유익할 것 없는 백해무익한 계약이 바로 지금의 것이다.

설마 차에서 작성한 것이 이것일 줄이야.

글씨 또한 완전 코미디여서 용케 내용을 알아본 재석이었다.

재석은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으며 명수에게 말한다.

“합법적인 계약서가 아니라 노예 계약서인데요? 현 씨에게 하나도 좋은 게 없지 않습니까.”

“파는 만큼 주겠다는데 뭐가 노예 계약서야!”

창현을 힐끔 보면서 말을 하는 명수의 목소리에는 큰 힘이 실려 있지 않았다.

“이게 노예 계약서가 아니라고요? 이게?”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짓는 재석. 다른 멤버들도 어처구니없다는 식으로 명수를 바라보자, 그 기세에 압도당한 명수가 차츰 뒤로 물러난다.

주춤주춤 물러나는 명수의 모습이 안쓰러워서일까?

입가에 미소만 지은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창현이 입을 연다.

“괜찮아요.”

“괜찮다니! 이런 노예 계약서에 지장을 찍어놓고 괜찮다는 거야?”

어차피 명수도 반쯤 장난으로 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때 아닌 즉석 상황극에 몰입하는 재석. 진심으로 따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 말에 창현은 대수롭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한다.

“어차피 무효인데요, 뭘.”

“…….”

순간 할 말을 잃은 재석. 다른 멤버들도 멍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런, 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거지.’

애초에 반쯤 진담, 반쯤 장난으로 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미 지장을 찍어버린 계약서가 왜 무효인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듯했다.

그 모습에 창현은 입맛이 쓴 것을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황당한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자신을 성숙하게 여기는 건지.

창현은 입가에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무한도전 멤버들과 스태프들을 한 차례 스윽 둘러보다가 명수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말한다.

“전 미성년자라서 뭐든지 계약할 때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하거든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계약은 무효고요.”

“아!”

그의 말을 듣자, 사람들은 모두 감탄사를 흘렸다.

그러고 보니 창현은 이제 열일곱 된 파릇파릇한 소년이 아닌가? 겉에서 느껴지는 톱스타로의 아우라와 더불어 성숙한 이미지가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던 것이다.

“그렇지, 미성년자는 부모님 동의가 없으면 계약을 못하지. 그럼 이 계약서는…….”

“무효라는 거죠.”

명수를 보며 싱긋 미소를 짓는 창현.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아 발끈하려던 그는 재석의 말이 먼저 흘러 나오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어떻게 하죠? 박명수 씨 방송 나가면 큰일 나겠는 걸요?”

“왜 큰일이야?”

회심의 강제 계약이 실패로 끝나서일까? 명수의 심기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는 무척 심각한 상황에 당면해 있었다. 다만 스스로가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

“정말 모르시는 거예요? 만약 박명수 씨가 현 씨의 곡을 강제로 얻어내려 했다는 게 방송으로 나가면 테러를 당할 수도 있어요. 당장 팬 사이트만 해도 80만에 육박하는 현 씨입니다. 게다가 음반 판매량만 봐도 최소 100만 명에 가까운 골수팬들이 있다는 거죠. 만약 현 씨 팬 분들이 방송을 보면 어떻게 될까요?”

“…….”

골수팬이 100만 명이라는 말에 명수의 안색이 헬쓱하게 변하고 있었다.

이거 많아도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이어진 재석의 말은 더욱 더 강력한 것이었다.

“단지 골수팬만 집계하면 100만 명이지, 드라마 방영과, 국위선양 등등을 따지면 이번 일로 들고 일어날 팬들이 최소 500만 명은 되지 않겠습니까? 만약 방송이 세계적으로 나가면… 박명수 씨는 세계 최초 억대 안티를 지닌 안티 부자가 되실 수도 있어요.”

“500만… 억…….”

이거 무슨 돈 세는 단위도 아니고.

가뿐하게 백만 단위를 넘어서 억까지 가버리자 명수의 입에서 비명과도 비슷한 신음 소리가 흘러나온다.

웃음을 유발하고자, 운이 좋으면 곡 하나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나선 것인데 설마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이야.

상상을 초월하는 단위였기에 명수는 자칫 잘못하면 생매장을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고, 황급히 창현에게 시선을 옮겼다.

강제 계약을 당했던 창현이었지만 그는 지극히 평온한 모습으로 명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가는 명수.

“재석이… 아니, 재석 씨 말이 모두 사, 사실입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거짓은 아닌 것 같은데요.”

긍정도 부정도 아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면서 명수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재석의 말은 모두 사실이고, 자칫 잘못하면 자신은 테러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을.

황급히 손을 내민 명수는 자신의 행동을 사과한다.

“이거, 미안합니다.”

창현은 기꺼이 그 손을 마주 잡으며 웃음을 흘렸다.

“장난으로 하신 걸 다 알고 있는 걸요. 함께 좋은 앨범을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그래주실 거죠?”

“물론입니다.”

고분고분해진 명수 옹이었다. 창현의 파워가 어느 정도인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기에 대적불가, 라는 푯말이 그의 머릿속 깊이 각인된 상태였다.

본디 자신의 입으로 떠드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입에서 듣는 말이 더욱 신뢰가 가기 마련. 재석의 입에서 흘러 나온 말들이 사실이란 걸 그 스스로 알고 있었기에 창현에게 결국 백기를 내밀며 투항할 수밖에 없었다.

해프닝이 일어났지만 그것 모두 웃고자 했던 일들.

간단하게 분위기를 전환 시킨 창현은 무한도전 멤버들을 모두 탁자 주변에 앉게 하고는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그들에게 물론, 스태프들에게까지 하나하나 나누어준다.

“그런데 이곳을 혼자서 쓰는 건가요?”

음악적 조예가 깊은(?) 형돈의 물음에 창현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겠죠? 라샤 누나들이 녹음을 할 때 이곳에서 하기는 하지만 지금 일본에 있으니 아무래도 저 혼자 있을 수밖에요. 종종 알고 지내는 연예인들도 방문하고요.”

“아는 연예인들이라면…….”

“대표적으로 슈퍼주니어와 소녀시대랄까요? 아무래도 회사간에 친하기도 하니까요. 동방신기는 일본에서 주로 활동하고요.”

“아아…….”

창현이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들과 친하다는 정보는 이미 널리 퍼진 것이기에 순순히 납득한다.

“일단 컨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야겠네요. 앨범을 만들려면 가장 기초가 되는 중심 소재가 있어야 하거든요. 이번에 하려는 컨셉이 무엇인지 잡아야 할 듯 싶네요.”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나가는 창현. MC인 재석이 있지만 앨범 제작에 있어서 창현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무한도전 최초로 재석이 아닌 창현이 주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신감 있게 임하면서 간간히 위트 있는 말로 멤버들과 적절하게 융화되는 모습을 보여주니,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 어떻게 편집을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지고 있었다.

편집하기에는 장면들 하나하나가 아까울 지경이었으니까.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던 창현은 굵직한 컨셉을 잡는데 성공한다.

“그럼 가장 기본 컨셉은 여름이고, 뜨거움이 작렬하는 여름에 열정을 불사를 수 있는 것을 원하신다는 거네요. 음! 그러면 전체적으로 뜨거운 느낌이 주는 곡을 만들면 되겠네요.”

“으으! 날씨도 더운데 곡의 느낌도 뜨겁게 해야 하는 건가?”

“컨셉이 그렇게 잡혔는데 어쩌겠어요.”

여름이란 컨셉은 시원함을 주는 것도 있지만 이열치열이라 하여 뜨거움을 이겨내는 또 다른 방법도 존재한다. 아무래도 각자 하고 싶은 방향으로 컨셉을 잡다 보니 시원한 종류보다는 열정을 불사를 수 있는 것으로 선택이 되었다.

“컨셉 이야기는 다 나누었으니 이제 작업실로 가볼까요?”

각자 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 했으니 초반 작업 구상은 어느 정도 완료한 상태.

이번 무한도전의 테마는 가요제를 하는 것이지만 달리 자신의 작업 환경 같은 것을 촬영하고 싶다고 말했기에 작업실을 공개할 생각이었다.

창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무한도전 멤버들은 물론 스태프들 또한 2층으로 올라간다.

“와아…….”

작업실 위로 올라간 무한도전 멤버들은 모두 떡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2층 작업실은 널찍하고 한적하게 보이던 1층과 달리 빼곡한 느낌이 절로 들었던 것이다. 빼곡하다고 해서 좁은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정돈이 되어 공간이 있으면서도 무언가 꽉 들어찬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있었다.

가수 활동을 하는 전진은 앞으로 나가 기계들을 보더니 감탄을 연발하고 있었다.

“이거 장비들 모두 최신 거예요. 장난 아닌데요?”

가격이 어느 정도 할지… 머릿속으로 주판알을 튕겨보니 가격이 상당하여 단번에 견적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이곳에서 바로 곡들이 나오는 거였군요!”

감탄을 터뜨리며 재석 또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카메라 감독들도 연신 주변을 촬영하며 최초로 공개되는 현의 작업실을 정신없이 담아내고 있었다.

“여기서 작업을 많이 하시나요?”

“네, 작업실이 생긴 이후 줄곧 이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벽 한쪽에 CD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그것을 보며 무언가 주워들은 것이 있는지 재석이 눈을 빛내며 창현에게 묻는다.

“와… 보통 작곡가들은 곡을 미리미리 준비해두는 성향이 있다고 하던데 현 씨도 예비곡들을 준비해두는지?”

“예, 있죠. 생각날 때마다 써두는 곡이 있거든요.”

유비무환이라, 미리미리 준비를 해두는 자만이 미래를 개척할 수 있으며, 자신에게 다가올 기회를 붙잡을 수 있다. 창현은 데뷔하기 전부터 꾸준하게 곡들을 써왔기에 예비 곡이 상당히 많았다.

“어느 정도로 있는지…….”

“음!”

잠시 생각에 잠기는 창현. 빼곡하게 꽂혀있는 CD들을 보면서 도대체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가지 않아 무한도전 멤버들이 모두 창현의 입에서 흘러나올 말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도 잠시, 대충 곡의 숫자를 떠올린 창현은 자신이 써둔 예비 곡의 숫자를 말한다.

“약 500여 예비 곡들이 있네요.”

“……”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에 모두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돌아가는 주판알.

짧은 시간에 계산을 마친 명수가 경악이 담긴 어조로 외친다.

“500억!”

모두가 1억씩 받는다는 보장이 절대 없지만 그래도 500개면 무려 500억이다.

“그렇게 돈으로 환산하시면 조금 난감한데…….”

바로 돈으로 환산하며 놀라움을 표시하자 창현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어쨌든 대단하네요. 500개의 예비 곡이라니. 전진 씨! 이 정도면 대단한 건가요?”

“일단 예비 곡이라는 점에서 모두 쓸 만한 곡이라는 뜻일 텐데 쓸 만한 곡을 500개나 쟁여두고 있다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죠.”

전직 아이돌이자, 지금은 솔로로 활동하고 있는 전진의 말에 모두가 경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만큼 예비 곡이 500개라는 것은 대단한 것이리라.

“그럼 그 예비 곡들 중에서 하나를 주시는 건가요?”

“일단 곡 테마에 맞는 것을 찾아서 본인에게 어울리게 가다듬는 작업이 필요하죠. 각자 정한 컨셉이 있잖아요? 그걸 바탕으로 곡 분위기를 어울리게 가다듬고, 가사를 접목시켜서 곡을 완성하면 될 거라 생각해요.”

“곡을 가다듬는 것도 보통 작업이 아니라 들었는데…….”

재석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묻자, 창현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좋은 일을 하는 일인 걸요. 생각보다 고된 것도 아니고요.”

“그렇게 말씀하셔도 힘든 작업이란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거듭 감사합니다.”

곡을 준다는 것. 상업 논리에 치우친 지금 같은 현실에서 선뜻 곡을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특별히 얻을 것을 바라고 주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현의 네임벨류가 들어간 곡이니 만큼 그 파급 효과는 충분할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하고 잠시 카메라가 꺼진다.

곡을 준다는 것을 끝으로 작업실을 둘러보는 것으로 촬영을 끝마칠 예정인 것이다.

“오늘은 이만하고 작업실을 구경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다음 일정은 언제죠?”

“시간만 맞으면 내일모레로 하고 싶은데…….”

“내일모레요? 흐음! 내일모레이라…….”

조만간 재석이 결혼식을 올린다는 걸 알고 있기에 가급적 빠르게 끝을 내고 싶나보다. 아니, 빠르게 끝내고 싶다기보다는 일정을 바짝 당기고 있는 중이겠지.

내일모레 스케줄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창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했다.

“그렇게 하도록 해요. 저도 내일 시간이 되니까요.”

“그래, 그럼 멤버들 정식으로 소개시켜줄게. 같이 촬영하면 아무래도 서로 편해질 필요가 있을 테니까.”

그렇게 재석의 중재 하에 창현은 무한도전 멤버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모두 세계적인 스타인 현과 제대로 인사를 나눈다는 것 때문인지 얼떨떨한 기색으로 인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나이는 어리지만 창현에게는 사람을 쉽게 대할 수 없는 아우라가 풍기고 있어 무한도전 멤버들은 무척 어렵다는 걸 느껴야만 했다.

편안함을 심어주지만 쉽게 대할 수 없다랄까.

특히 명수의 경우 자칫 잘못 대하면 억 단위의 안티가 생길 수 있다는 말에 극도로 조심하는 모습을 보여 창현으로 하여금 실소를 짓게 하였다.

인사를 나누고 어느 정도 이야기를 나누며 호칭을 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을 무렵, 촬영은 다시 재개되었다. 오늘 촬영은 작업실을 둘러보는 것으로 끝을 낼 예정인 듯 싶었다.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선 형돈은 한쪽에 고이 모셔져 있는 음반들을 보면서 감탄을 터뜨렸다.

“우와! 이것 봐! 미국 팝 가수들 싸인 앨범이야!”

다른 한쪽에서 화보집을 뒤적거리던 홍철은 무언가 우르르 쏟아지는 걸 보고는 감탄을 터뜨린다.

“영화배우 싸인도 있어! 완전 짱이야.”

책장 한곳 전체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미국 톱스타들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역시 사는 세계가 다르다 생각하면서 그들은 연신 감탄사를 흘리기에 바빴다.

그 모습을 보며 창현은 입가에 미소를 짓고는 무한도전 멤버들이 질문을 할 때면 친절하게 대답해주며 촬영에 임했다.

그렇게 오늘 촬영을 끝마친 창현은 밖으로 나서는 멤버들을 배웅하고는 1층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다름이 아니라 무한도전 촬영과 맞물려 자신의 앨범 작업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

“나 혼자서 하면 굉장히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시간이 문제였다. 부지런히 준비를 하여 곡을 완성한다 하더라도 중간중간에 겹친 공백이 있어서 이런저런 스케줄을 이행하기가 무척이나 까다롭다.

“후우! 아버지는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짠 건지.”

한숨이 나왔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촬영은 시작했고, 끝을 봐야 함이 옳지 않은가?

그래도 시간이 촉박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가만… 나 혼자서 힘들면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면 되지 않을까?”

순간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창현이 눈을 빛낸다. 지금의 난감한 상황을 타파할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혼자서 해내기 힘들다면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린다. 아주 간단한 방법이지 않은가? 더군다나 지금 자신이 촬영하고 있는 것은 시청률로 감히 파급력을 설명하기 힘든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웬만한 연예인이라면 모두 나오고 싶어 하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될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찔러보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 옳으리라.

핸드폰을 펼친 창현이 곧장 석규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

컬러링이 이어지고, 잠시 후 석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아버지 저예요, 창현이.”

-무슨 일이냐? 아, 무한도전 팀이 다녀갔나?

무심한 말에 순간 창현은 부아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무한도전 촬영이 겹치게 되면서 자신이 얼마나 일정에 쫓기게 되었는데 저런 말을 하다니!

“왜 저한테 비밀로 하신 거죠?”

-PD의 요청이 있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고… 그것 때문에 전화한 것이냐? 네 성격상 그 일로 전화를 할 거라 생각되지 않는데…….

창현의 성격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는 석규였다. 어차피 촬영이 이어졌고, 촬영 팀에서 딱히 피해 같은 것을 끼치지 않은 이상 그의 성격이라면 무난하게 넘어갈 테니까.

“무한도전 촬영 때문에 연락을 드렸어요.”

-그들이 폐라도 끼친 것이냐?

석규의 목소리가 차갑게 들린다. 그의 입장에서 무한도전 측이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었는데 창현에게 폐를 끼쳤다면 당사자를 볼 면목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무슨 피해를 끼쳤더라면 가만두지 않을 태세였다.

“그런 건 아니고요. 다만 촬영을 함에 있어 일정이 상당히 촉박해질 것 같아서요. 모든 준비를 하는데 제가 일일이 참여하면 제 앨범 일정도 늦어질 것 같아요.”

-안 그래도 그 부분 때문에 전화를 하려 했는데 잘 됐구나.

빈틈이 없는 석규였다. 창현이 염려하던 부분을 먼저 알아내고는 묻고 있었으니까.

그가 미리 알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창현은 적잖게 마음이 놓이는 것을 느꼈다.

-우선 네가 생각하고 있는 부분을 말해봐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요. 그래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흐음! 도와줄 사람이라. 누구를 생각하고 있는데 그러느냐?

이미 석규의 머릿속에 여러 후보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보들은 창현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으리라.

작업실을 알고 있으면서 요즘 스케줄이 바쁘지 않은 사람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아버지도 알고 계시면서 그러세요. 섭외 요청이 필요해서요. 아무래도 무한도전에 등장한다는 것은 상당한 메리트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오히려 내보내지 못해서 안달이겠지. 인지도를 상당 부분 끌어올릴 수 있을 테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안 그래도 네게 허락을 받고 섭외 요청을 하려 했으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게 맡기도록 하여라.

석규가 말해주니 든든하다 생각하는 창현이었다.

적잖게 마음이 놓인 창현은 석규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네, 그럼 그렇게 믿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오히려 멋대로 진행해서 미안하게 여기고 있는데. 그 부분은 PD 측의 의견이 워낙 강경해서 밀어붙였지만 악의는 없는 듯하니 그렇게 알도록 하고. 그리고 내일은 시간을 비워두도록 해라.

“시간이요? 시간이 남을지 잘 모르겠는데…….”

내일이라면 6월 28일, 다름 아닌 주현의 생일이다.

거창한 선물 같은 것은 준비해주지 못하더라도 SM엔터테인먼트 자체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할까 싶었는데 갑자기 시간을 비워두라니. 창현으로서는 상당히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네게 손해가 되지 않는 일이니 비워두도록 해라.

“으음! 급한 일인가요?”

-급하다면 급한 일이지.

급하다고 하니 별 수 있겠는가. 주현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움직이려던 창현은 결국 그의 말에 납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요.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할게요.”

-그래. 그럼 이만 끊도록 하마.

“네…….”

그렇게 석규와 통화가 끊어졌다. 핸드폰에 귀를 뗀 창현은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가 핸드폰 버튼을 조작하더니, 주현에게 연락을 하기 시작한다.

♩♪♬

컬러링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잠시 후, 통화가 연결되는 소리와 함께 컬러링이 끊기며 주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네, 누나. 저 창현이에요.”

-응, 갑자기 무슨 일이야?

저녁 시간이 지나 연락을 한 적은 드물었기에 주현의 음성에는 의외라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아, 다름이 아니라 내일 스케줄이 생겨서요. 누나 내일 생일이어서 선물이라도 드릴까 싶었는데 내일은 드리지 못할 것 같아서요.”

자신의 생일을 챙겨준 그녀였기에 가급적 당일 날 챙겨주고 싶었는데 그 부분이 무척 아쉬운 창현이었다.

게다가 주현 본인 또한 무척 섭섭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의외의 것이었다.

뒤이어 들려온 그녀의 음성에는 전혀 실망의 기색이 서려 있지 않았던 것이다.

-내일? 아아, 그럴 수도 있지. 어쩔 수 없지.

“음! 다음에 만날 때 드릴게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하고요.”

-미안하긴, 늘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고맙긴. 바쁜 걸 가지고 뭐라 할 수는 없잖아? 오히려 챙겨준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우니 부담 갖지 않아도 돼.

“네, 그럼 다음에 만날 때 예쁜 선물 드리도록 할게요. 그럼 다음에 만나도록 해요.”

-응, 그럼 내일 봐.

그 말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주현의 마지막 말을 들은 창현은 멀뚱한 시선으로 핸드폰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내일 보자고?”

의미심장한 그녀의 말에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는 창현이었다.




제72장 서로로, 도약을 꿈꾸다




세상에 완벽하게 감출 수 있는 진실은 없는 법이다.

하지만 그 진실을 완벽에 가깝게 감출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완벽한 것이 아닌, 완벽에 가깝게 말이다.

완벽 범죄를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를 필요로 한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꾸욱.

“…….”

창현과 통화를 끝낸 주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눈을 빛낸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진 것과 같다. 남은 것은 그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일 뿐. 결과가 나오기 위해서는 하루란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 동안 거미손을 연상시키는 탄탄한 방어를 펼쳐야 한다.

‘이번에야 말로 반드시…….’

기회를 붙잡는 것은 차근차근 미래를 위해 준비해온 자뿐이다.

주현은 미래를 위해 차근차근 준비에 준비를 거듭해왔고, 마침내 그 기회를 살릴 찬스를 붙잡게 되었다. 이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단숨에 한 걸음 전진하는 것뿐.

“주현아, 뭐해?”

굳은 결의를 다지는 주현의 뒤에서 한 줄기 목소리가 들려온다. 흠칫한 주현은 슬그머니 시선을 뒤로 돌린다. 그러자 생글생글 눈웃음을 지으며 친근한 포스를 흘려주고 있는 미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더없이 친근하고, 사람들이 열광하는 눈웃음이었지만 주현은 마음을 풀지 않았다.

예전 같았더라면 저 웃음에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풀려 극비 정보들을 술술 풀어놓았겠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랐으니까. 그녀의 저 웃음에 넘어가 기밀 정보를 유출했던 걸 떠올리면 지금도 등골이 서늘하게 변한다.

‘언니의 웃음에 이젠 속지 않아요.’

스스로 굳게 다짐을 하면서 주현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은 채 미영에게 미소 짓는다.

“친구에게 전화를 좀 했어요. 숙제가 있었는데 제가 조퇴를 해서 미처 듣지 못했거든요.”

자연스럽게 술술 거짓말을 하는 주현은 순진무구함으로 수많은 남성 팬들을 양성한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세상 편지풍파에 휩쓸려 스스로 살아남고자 진화한 서로로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

고개를 갸우뚱하는 미영이다. 여전히 눈은 반달을 그리고 있었는데, 그 속에는 수많은 계산이 숨어 있었다.

졸업식 이후 미영은 주현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창현을 좋아하게 된 이후 그의 행보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는 입장에서 주현만큼 효율적인 정보통은 없었던 것이다.

그의 선배라는 명목 하에 흘러나오는 수많은 정보들은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미영으로 하여금 상위권으로 올려놓을 수 있게 만드는 발판이 되어줄 것임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은근슬쩍 주현을 긁어 정보를 얻어내려 하는데 쉽게 걸려들지 않는 모습이다.

피해자인 주현이 그것을 깨닫지 못할 리 없다.

원래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그 사실을 더욱 절절하게 느끼고 있는 법. 미영은 주현을 만만하게 보고 정보통이라 여기고 있지만 주현은 이미 미영을 눈웃음 속에 꼬리 아홉 개를 감추고 있는 구미호라 단정 짓고 있었다.

당연히 단단히 대비를 해두고 있는 상태였기에 쉽사리 넘어올 리가 없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세요? 여긴 언니 방이 아니잖아요?”

강렬한 일격. 자신의 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영이 왜 이곳에 왔는지 묻는 주현이다.

정곡을 찔린 미영은 움찔 뒤로 물러나더니 어색하게 웃음을 짓는다.

“으응? 아, 아하하! 주현이 네게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설마 내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라도 했던 거야?”

궁지에 몰렸지만 와룡 파니의 내공은 녹록한 것이 아니다.

짐짓 뒤로 한 걸음 물러나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면서 은근슬쩍 주현에게 정보를 얻어내기 위한 질문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대비하지 않고 있었다면 자칫 넘어갈 뻔한 은근한 물음.

주현은 하마터면 ‘당연하죠!’ 라고 대답할 뻔한 걸 간신히 참아내며 고개를 젓는다.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언니가 갑자기 들어온 게 의아해서요.”

“그렇구나. 난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서 그랬던 거야. 설마 폐가 된 거야?”

우울한 표정을 짓는 미영의 모습을 보면서 주현은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와룡 파니의 모습만 없으면 더없이 정감이 가는 언니인데 전에 당한 게 있다 보니 자신이 쓸데없이 날을 세운 게 아닐까 싶었으니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주현은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건 아니에요. 언니가 걱정해주시는 게 왜 폐가 되겠어요.”

“그럼 다행이야. 내일 생일이지? 생일 축하해, 주현아!”

“고마워요, 언니.”

그렇게 음모를 계획하던 서로로는 무사히 와룡파니의 마수에 넘어갈 수 있었다.


“아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밤늦게 귀가한 석규는 가족과 단란한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배가 서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지선을 배려하여 밖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지선이 먹고 싶은 음식을 사온 석규는 소파에 앉아 TV를 시청하면서 지영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비록 자신의 친딸은 아니지만 성격이 활달하고 애교가 많은 지영이었기에 석규는 창현과 차별없이 대하려 본인 스스로 애쓰고 있었다.

행여 지영이 그 부분에 대해 섭섭하게 느끼고 삐뚤어진 길로 나아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으니까.

다행히도 지영은 그 부분에 다른 느낌을 받지 않는 듯 활달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아니, 오히려 자신을 친 아버지와 다름없이 대해주니, 누가 누구를 배려하는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가족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대화.

석규는 공부하는 척하다 은근슬쩍 거실로 나와 TV를 시청하고 있는 지영에게 내일 계획을 이야기하다가 귀청이 떨어질 뻔하였다.

옆에 앉아있던 지선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는 곧장 지영을 타박한다.

“버릇없이 그렇게 말하는 건 무슨 모습이니!”

“하, 하지만! 어떻게…….”

지선에게 혼나고 있는 지영이었지만 공황 상태에 빠진 상태여서 무어라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들은 말이 사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어찌하여! 어떻게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이란 말인가!

자신의 예상과 전혀 다른 전개에 그녀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어가고 있었다.

석규는 그러한 지영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끼고 있었다.

‘필요 이상으로 놀라고 있는데? 무언가 내막이라도 있는 건가?’

지영이 창현을 필요 이상으로 아끼고 있는 것은 그 또한 잘 알고 있는 바. 오죽하면 창현에게 지영을 장난스레 극성팬 1호라 소개하겠는가.

그만큼 지영이 창현을 각별하게 여기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가 보인 반응은 필요 이상의 것이었다.

“왜 그렇게 놀라는 거냐?”

“아무리 오빠의 선배라 해도… 어떻게 아빠랑 함께 식사를…….”

“하하! 그 부분에 대해서 말하는 거였구나.”

웃음을 터뜨리는 석규. 아직 주현과 창현의 사이를 잘 모르는 것 같아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창현과 주현은 서로 연인 사이가 아니다. 게다가 자신의 이성 관계를 밝힐 타입도 아니기에 지영으로서는 감감 무소식이겠지.

하지만 지영은 모를 것이다.

연인 사이는 아니지만 주현은 창현이 집으로 들일 만큼 각별한 사이라는 것을 말이다.

창현과 그 정도 고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주현뿐이었기에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석규였지만 그 자체만으로 주현에게 호기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 부인하지 않는 이상 석규에게 있어 주현은 창현과 연인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여인이었다.

착각도 이런 착각이 없지만.

특히 당사자인 수연이 알게 되면 펄쩍 뛸 내용이리라.

“선배는 선배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할 이유는 없는 거잖아요!”

여자의 직감이란 걸까.

지영은 자신의 위험 감지 센서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느끼고는 즉각 반대에 나섰다.

만약 석규가 협조적인 태도로 주현을 밀어주면 상황은 대번혁을 맞이하게 될 것임이 분명했다.

회식에서 소녀시대를 본 지영이었기에 주현이 누구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얌전하고 조신해서, 한마디로 순둥이 같이 생긴 여자.

조목조목 논리적인 주현은 얼핏 보면 만만하게 느껴지지만 직접 대면하게 되면 보통이 아닌 인물이라는 것을 단숨에 파악할 수 있게 한다.

그뿐인가. 길지는 않지만 지영의 인생 경험에 의하면 그런 여자들이 보이지 않게 은밀한 준비를 곧잘 갖추고는 한다.

보이지 않는 칼날을 은밀하게 들이민다는 뜻이다.

그런 종류의 접근이 더욱 예리하고 무섭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지영으로서는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써니 언니를 밀어줘야 하는데 주현 언니라니! 안 돼!’

창현에게 호감을 갖지 않고 있는 순규를 이용하여 다른 경쟁자들을 떨궈놓을 생각이었는데 이런 위기가 발생하다니.

안된다고 말하며 무언가 말을 하려는 지영이었지만 선뜻 뭐라 말할지 떠오르는 게 없었다.

“하하, 확실히 그렇게 할 이유는 없지.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 겸하여 이야기를 전할 게 있거든.”

처음부터 지영이 반대를 할 것은 어느 정도 예상을 한 상태였기에 준비성이 철저한 석규는 이미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은 상황이었다.

“겸해서요?”

“그래, 주현 양에게 방송 출연을 제의할 예정이거든. 이미 소속사 측에도 제안서를 넣어둔 상황이고, 본인에게도 의중을 물어볼 예정이지. 게다가 지영이 너는 잘 알지 못하지만 주현 양은 창현이에게 여러 가지 추억을 안겨준 인물이다. 그러니 이번 결정은 내 뜻에 따라주었으면 좋겠구나.”

강경한 표정과 강경한 어조.

절대 흔들리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며 지영은 더 이상 우기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든 반대를 하고 싶었지만 흔들림 없는 석규의 표정은 그것마저도 용납하지 않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우우우우!”

설득할 말이 떠오르지 않자 이내 울상을 짓는 지영이었다.

아직 어린 그녀가 노련하디 노련한 석규를 설득하기에는 어휘력 구사와 임기응변이 너무나 부족하였다.

그것은 명백한 경험치 차이.

자신의 뜻대로 일을 관철하는데 성공한 석규는 슬쩍 웃음을 짓더니 지영에게 말한다.

“그렇게 걱정이 되면 내일 저녁 식사에 너도 참여하여라. 그렇게 하면 되겠지?”

최소한 자리에 참석할 권한을 주겠다는 말.

자신이 참석하면 주현이 어떤 수작을 부려도 창현을 수호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지영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요?”

“그래. 시간이 맞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아뇨! 저 시간 많아요. 반드시 참석하도록 할게요! 참석하게 해주세요!”

자신이 참석해야 최소한 주현의 마수(?)에서 창현을 지켜낼 수 있으리라.

그런 기미를 보이지 않았지만 여기저기 강렬한 페로몬을 뿌리고 다니는(?) 창현과 가장 오랫동안 접촉한 주현이라면 이미 그에게 넘어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지영이었다.

그렇기에 보이지 않는 마수에서 오빠를 수호하고자 지영은 자신이 나서기로 마음을 먹었다.

둔감한 오빠이기에 정식 절차를 밟는 유혹에는 끄떡도 하지 않지만 비공식적인 유혹에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넘어올 수 있으니까.

“그래,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해라. 내일 저녁이니까 보컬 트레이닝이 끝난 직후 돌아가지 말고 함께 있도록 하고.”

“네, 알겠어요!”

힘차게 외치는 지영의 모습이 무척 귀엽게 느껴진다.

피식 웃음을 지은 석규는 계속해서 TV에 시선을 고정한다.

그에 반해 지선은 계속해서 석규에게 따지고 드는 지영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가 이야기가 끝나자 지영을 데리고 방안에 들어가 야단을 쳤다.

입이 댓발이나 튀어나온 지영이었지만 내일 자리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에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지영의 눈에는 굳은 의욕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두고 봐, 반드시 오빠를 지켜낼 테니까.’

잘난 오빠를 수호하는 얄미운 시누이(?)였다.


무난하게 하루가 흘렀다.

적어도 음모를 꾸미고 있는 주현에게는 그러하였다.

다른 멤버들이 알지 못하는 상상초월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음에도 들키지 않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으니까.

계획을 세우는 주현은 끊임없이 속으로 속삭이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잘 넘어가야 해.’

누구도 알지 못하는 자신의 비밀. 분명 이상 기류를 눈치 챌 멤버들이 있지만 그것은 다 자신의 수양 부족에서 오는 결과물이라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특별히 자각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야 말로 무념무상. 오늘 창현과 만난다는 것을 자각하지 않으려 애쓰며 그녀는 그 사실 자체를 머릿속에서 비우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였다.

알지 못하는 이상 기류가 형성되면서 멤버들의 눈치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자칫 잘못해서 자신의 계획이 들키기라도 한다면 쉽게 넘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것이 설혹 자신의 생일이라 하여도 말이다.

무사히 하루가 흐르고, 아침이 되자 주현을 맞이한 것은 따뜻한 미역국이었다.

힐끗 시간을 보니 아침 7시. 오늘은 행사 스케줄이 두 개밖에 없는 날인 걸 감안하면 아직 일어날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모든 멤버들이 깨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은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미역국을 바라보다가 주현이 방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는 축하 인사를 건네주었다.

“주현아 생일 축하해!”

6월 28일인 오늘은 주현이 세상에서 태어난 날이다.

단 하루만큼은 누구에게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날.

“…….”

한 점 사심 없이 자신을 축하해주는 언니들의 모습에 주현은 순간 울컥했다.

사춘기 대부분을 함께 한 언니들은 서로가 서로를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럴수록 서로에 대한 마음이 깊어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걸 모를 주현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순간 목이 매이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잠도 덜 깼지만 머리가 차갑게 식어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밀려오는 감동의 크기는 컸으면 컸지 적지 않았다.

“…고마워요, 언니들.”

“고맙긴. 부랴부랴 준비해서 미흡할지 모르지만 맛있게 먹도록 해.”

물기 어린 주현의 목소리에 대수롭지 않은 듯 수영이 손을 절레절레 젓는다.

그러자 본격적으로 요리에 참전하여, 절정에 달한 비커의 활용으로 미역국 제조에 일조한 수연이 날카로운 눈으로 수영을 바라본다. 자신은 옆에서 미역국을 만드느라 온갖 고생을 다했지만 저렇게 말하는 수영이 한 것이라고는 상을 피는 것과 옆에서 잔소리를 한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꼈는지 수영은 기세가 깃든 눈으로 수연과 대치하다가 한 발자국 물러선다.

그 사이 주현은 감동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네. 고마워요.”

“오늘 생일이니 평소에 하지 못한 부탁이 있으면 마음껏 하도록 해! 그리고 오늘 행사 스케줄 이후 오후에 회사에서 파티하는 거 알고 있지?”

활동이 많지 않기에 SM엔터테인먼트에서는 팬 사이트 회원들과 함께 갖는 조촐한 생일 파티를 갖기로 예정한 상태였다. 이날 만큼은 회사에서 편의를 봐주는 것이기에 모든 멤버들이 다소 들뜬 표정을 짓는다.

“네.”

주현도 알고 있는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미역국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는다.

“…….”

그 모습을 보며 바짝 긴장하는 수연. 평소 차가운 표정을 풀풀 날리는 그녀였지만 수정의 세뇌(?)에 의해 요리는 여자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요리를 매진하는 그녀였다.

자신에게는 신급 아이템인 비커(!!!)가 있지만 그것만으로 커버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녀의 얼굴에는 잔뜩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다른 멤버들도 긴장한 표정으로 주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래 미역국을 만들려고 했던 것은 소녀시대 내 요리짱인 태연. 하지만 그녀보다 한 발 앞서 자리에서 일어난 수연이 먼저 주방을 점거하고 미역국을 만들었기에 그녀가 미처 끼어들 틈이 없었다.

수연의 요리 실력이 얼마나 극악한지 알고 있는 멤버들로서는 차마 미역국을 선뜻 맛보기가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 그렇기에 부득이하지만 주현이 수연의 미역국 맛을 판가름할 실험체가 되어버렸다.

생일은 생일이고, 고통은 고통이었다.

매정한 언니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현은 언니들의 모습에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미역국에 대한 평가를 한다.

“맛있는데요?”

“정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환희가 깃든 목소리로 묻는 수연.

그 말을 들은 다른 멤버들은 믿기지 않는 듯 주현을 바라보며 진실을 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짓이라 말하기에는 주현의 표정이 너무나 평온하였고, 얼굴에 은은한 감탄사가 서려 있었다.

그렇다는 건 저 반응이 거짓이 아니라는 뜻!

경악스러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미영과 함께 요리 폭탄 제조 랭킹 1,2위를 다투던 수연이 설마 인간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제조할 줄이야.

그야 말로 경악스러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주현의 칭찬에 콧대가 높아진 수연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자신의 미역국에 대해 염려를 표한 멤버들을 둘러보더니 말한다.

“봤지? 내가 이 정도라고.”

‘비커만 있으면 난 최고야!’

다시 한 번 신급(?) 아이템 비커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느끼며 수연은 속으로 미소를 짓는다. 이렇게 자신의 실력이 일취월장할수록 나중에 창현에게 점수를 딸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리라.

의기양양한 수연의 모습에 멤버들의 얼굴이 미약하게 일그러졌지만 이어진 주현의 말에 더 이상 무어라 말하기가 뭐했다.

“언니들도 드세요.”

“으응.”

그 말과 함께 어렵사리 수저를 든 멤버들도 하나둘씩 미역국을 맛보다가 이내 감탄을 하더니 미역국을 떠먹기 시작하였다.

절재 된 간은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황금 비율을 자랑하고 있었으며, 적절하게 둥둥 떠 있는 기름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고기가 함유된 미역국에 밥 한 그릇 말아먹으면 그야 말로 준비 완료!

멤버들은 어느새 수연의 요리 실력을 폄하하던 것조차 잊은 채 맛있게 한 끼 식사를 해치운다.

수영의 감탄사가 이어진다. 평소 수연의 요리 실력을 곧잘 무시하던 그녀였지만 지금 선보인 요리 실력을 보면 결코 무시할 것이 못된다.

“수연이 너 실력 많이 늘었네?”

“완전 동감. 요리 테러리스트가 언제 저렇게 실력이 는 거지?”

효연도 동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오랫동안 수연을 보아온 그녀들이니 만큼 충격도 컸다.

그녀들의 칭찬에 수연의 콧대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 정도쯤은 나한테 보통이라고. 내가 안 해서 그런 거지,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탱구쯤이야…….”

“뭐시라?”

소녀시대 내 요리 랭킹 1위라는 타이틀을 차지하고 있던 챔피언 태연이 막강한 도전자의 등장에 긴장하고 있다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레프트 훅을 얻어맞자 눈 꼬리가 서서히 치켜 올라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수연은 물러서지 않는다. 종종 요리를 해주는 것 가지고 무기 삼아 멤버들을 농락(?)하던 태연이었기에 그쪽으로 상당한 감정이 쌓여있는 상태였다.

“마음만 먹으면 이길 수 있다고 했어. 볶음밥만 할 줄 아는 탱구의 요리 독재는 이제 끝났단 이야기지.”

“감히 은혜도 모르고…….”

태연은 자신의 패시브 스킬인 보모 스킬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느끼며 분노에 몸을 떤다.

여태까지 멤버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볶음밥을 만들었던가!

그런데 돌아온 결과물은 멤버들의 차가운 눈초리와 요리 테러리스트 수연의 정면 도전이었다.

치욕도 이런 치욕이 없다.

이건 마치 피파 세계 랭킹 1위 스페인이 랭킹조차 알 수 없는 최하위 랭커 파푸아 뉴기니에게 모욕을 받은 것과 같지 않은가!

하지만 그 파푸아 뉴기니가 수연이라면 이야기의 방향은 달라진다.

“흥!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고.”

“크윽!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어.”

자신이 나서기에는 멤버들의 원조가 만만치 않음을 느낀 태연이 패배감 짙은 목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무너진다.

“…….”

그 모습을 보며 주현은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다. 마치 가족과도 같은 분위기는 그녀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요리로 독재 정권을 구축하던 탱구 천하가 수연의 반란으로 허물어지면서 숙소는 한 차례 대 변화를 겪게 되었고, 리더의 권위가 무너진 태연을 대신하여 수연의 진두지휘로 멤버들은 행사 스케줄을 이행하기 위해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헤어샵에 도착하여 머리를 한 뒤 곧장 스케줄을 해나간 그녀들이 모든 스케줄을 끝냈을 때는 오후 5시.

이제 SM엔터테인먼트로 향해서 그곳에서 주최되는 파티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팬들이 직접 참여하는 파티였기에 주현은 감사의 의미가 담긴 인사와 함께 약 3시간여 동안 즐거운 파티를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8시까지 파티가 이어지고, 숙소로 돌아오자, 주현은 시계를 보더니 황급히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어디 가는 거야?”

거실에 자리하고 있던 수영의 물음에 다른 멤버들의 시선이 주현에게 향한다. 옷을 차려입은 주현은 화려하지 않지만 딱 보면 예쁘다는 느낌이 절로 들 정도의 여인으로 변모해 있었다.

“밖에요. 친구들하고 약속이 있거든요. 늦게 들어오지 않을게요.”

“그래, 조심하고. 괜히 정체 들키지 않도록 해.”

“네. 그럼…….”

고개를 꾸벅 숙인 주현은 옆 동으로 이동하여 전하게 아파트 밖으로 나와 택시 승강장으로 향한다.

택시에 탑승한 주현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택시 기사의 모습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목적지를 말한다.

“청담동 한식 전문점으로요.”


“갑자기 여긴 무슨 일로 오라는 건지.”

한식 전문점으로 찾아오라는 석규의 말에 창현은 얼굴이 보이지 않게 잘 변장을 하고는 택시를 타고 곧장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석규의 이름을 대고 곧장 방에 도착한 그는 안으로 들어서자, 석규와 지영을 볼 수 있었다.

“어서 와라.”

“어서 와요, 오빠.”

두 사람의 인사를 받으며 마주 인사한 창현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석규에게 묻는다.

“네, 그런데 이곳에는 무슨 일이에요, 아버지?”

“음! 친목을 도모해볼까 싶어서 말이다.”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석규에 반해 지영의 표정은 불퉁하였다. 그녀가 왜 그러는 것인지 모르는 창현으로서는 여전히 의문투성이인 얼굴로 자리에 앉는다. 석규와 지영이 나란히 앉아 있었기에 창현은 비어있는 자리에 앉은 상태다.

그러자 지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쪼르르 창현에게 다가오더니 그의 귀에 작게 속삭인다.

“오빠, 오늘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해.”

지영의 말에 영문을 알지 못한 창현이 고개를 갸웃한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니, 무슨 뜻으로 말하는 것이란 말인가?

“뭘?”

되묻는 창현이었지만 지영은 대답할 겨를도 없이 자리로 돌아간다.

무슨 뜻인지 몰라 연신 고개를 갸웃하는 창현과 초조한 안색으로 안절부절 못하는 지영. 그리고 두 사람과 달리 태평한 석규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밖에 한 사람의 실루엣이 나타나더니 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장님…….”

“오! 왔나? 어서 안으로 들어와라.”

반가운 표정을 지은 석규가 허락하자 문이 드르륵 열리며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완벽하게 변장을 갖춘 여인은 얼핏 보면 누구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

하지만 눈썰미가 남다른 창현은 익숙한 체형과 익숙한 얼굴 형태를 보고는 누구인지 단숨에 알아차리고는 놀란 표정을 짓는다.

“누나가 왜 여기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주현이었던 것이다.

평소 그녀답지 않게 썬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주현은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일견하기에는 무척 여유로워 보이는 미소였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주현의 가슴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두근두근 뛰고 있던 것이다.

자신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고 있는 석규부터 시작하여 무엇이 그리 못마땅한지 불퉁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지영, 그리고 자신의 최종 목적지(?)에 해당하는 창현까지.

마치 상견례 자리에 온 새색시마냥 그녀의 가슴은 걷잡을 수 없이 뛰고 있었다.

“아…….”

안으로 들어서던 주현의 입에서 나직이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그 이유는 비어있는 자리가 창현의 옆자리 밖에 없었기 때문. 그것이 석규의 배려라는 것을 알아차리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고, 그녀의 얼굴이 알게 모르게 붉어졌다.

순진한 그녀의 반응에 석규는 진한 웃음을 지으며 주현에게 자리를 권유했다.

“어서 앉지 않고?”

“네…….”

수줍게 대답한 주현이 조심스럽게 창현의 옆자리에 앉는다. 나란히 앉은 그 모습이 마치 다정한 커플과도 같아 지영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을 짓는다.

둔감남 창현은 모르겠지만 예리한 눈을 가진 지영의 눈에는 주현의 감정 상태가 훤하게 들여다보이고 있었다.

분명 그녀 또한 창현에게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있으리라.

그녀의 머릿속에 쉴 틈없이 경종이 울리고 있었다.

‘내가 좀 더 써니 언니를 도와줘야겠어.’

창현 본인이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점점 각도를 늘려가는 관계에 자신이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 생각하는 지영이었다.

“그래,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오늘 생일이라고?”

“네.”

조심스럽게 대답하는 그녀의 모습은 요즘 아이답지 않은 침착함이 담겨 있다.

석규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생일을 축하해준다.

“그래, 생일 축하하고.”

“감사합니다.”

“생일 축하드려요.”

옆에 앉아있던 지영도 주현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서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석규가 주현을 대하는 모습을 보니 완벽하게 넘어간 것처럼 보였던 탓이다.

‘언제 아빠를 설득한 거지? 아빠가 지원해줄 정도면 정말 장난이 아니라는 건데…….’

창현도 곁에 있는 주현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생일 축하드려요, 누나. 오늘 이 약속 때문에 만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여기 초대 받으신 거네요?”

“으응… 그렇지.”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게, 아버지가 언제부터 주현 누나한테 말을 놓으신 거예요?”

고개를 갸우뚱하며 창현이 석규를 바라본다. 둘 사이에 접점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고, 석규는 소녀시대 멤버들을 사적으로 대하기보다는 공적으로 대하는 면이 많았는데 편하게 대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그녀의 생일이라 하여 석규가 이 자리에 초대하는 것이 의아했고.

옆에 앉아있던 주현은 뜨끔했지만 능구렁이 석규는 여유로운 웃음을 짓더니 창현의 말을 받는다.

“하하! 주현이는 네 선배가 아니더냐? 그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편하게 대하게 되었다. 학교에 영 적응하지 못하던 널 잘 이끌어준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을 표하고자 자리에 초대한 것이고.”

“그런가요?”

좀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런대로 납득이 가능한 수준.

만만치 않은 창현을 능수능란하게 구워삶는 석규의 모습에 주현과 지영은 속으로 감탄한다. 나이는 어려도 창현 또한 만만치 않은 화술의 소유자인데 이렇게 어린 아이 취급하다니.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겠죠. 저도 주현 누나 생일이라는데 축하해주지 못해서 미안했거든요. 이렇게라도 자리가 마련되서 다행이네요. 주현 누나는 알고 있던 거죠?”

“응, 놀라게 해주려는 마음에 말을 안한 건데… 미안해.”

어제 통화 내용을 떠올린 창현이 묻자, 주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사과를 한다.

“아니에요. 이 정도 가지고 뭘요. 다만 미리 말해주었으면 선물이라도 준비했을 텐데 그 점이 조금 아쉽네요.”

“선물은 무슨…….”

‘이렇게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

속으로 그렇게 말을 한 주현이 석규를 힐끗 바라보더니 고개를 살짝 숙인다. 이 자리를 마련해준 석규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좋군, 좋아.’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주현의 모습에 석규는 참으로 예의 바른 아이라 생각하면서 주현에 대한 평가를 한 층 샹항 조정하며 그에게 시선을 옮기며 입을 연다.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초대를 한 것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다른 이유라면……?”

확실히 부족하다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생각했기에 다음 말을 기다린다.

기대감을 거는 창현의 모습에 지영은 속으로 안달이 났다.

그녀는 석규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석규가 주현을 이곳으로 초대한 것은 창현과 함께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둔한 오빠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능구렁이 같은 석규의 말에 영락없이 농락(?) 당하고 있었다.

‘이 바보 오빠 같으니라구!’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이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 너무나 답답했기에 그런 말이 절로 흘러나오는 지영이었다.

그러한 심정의 표출을 달리 할 방도가 없어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무한도전 촬영이 있지 않느냐? 네가 홀로 하는 것이 벅찰 것 같아 주현이를 비롯하여 다른 소녀시대 멤버들을 도우미로 참가시키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아, 그 부분에 대해서 말씀하신 거군요. 저야 당연히 좋죠. 안 그래도 제가 요청하려던 부분이기도 하고요.”

부차적인 이유에 불과했지만 창현은 그것이 주된 이유라 생각했다.

그가 생각하는 석규는 사적인 이유로 주현을 이곳에 초대할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다만 아들의 일에 적극적인 도움을 주려는 석규의 마음을 모르는 창현의 단단한 착각일 뿐이지만.

“무한도전이요?”

“그래, 창현이가 이번에 무한도전을 촬영하기로 했다.”

궁금한 듯 묻는 주현의 모습에 석규가 대답하자 그녀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무한도전이 갖고 있는 파급력을 그녀 또한 잘 알고 있으니까. 더군다나 무한도전에 출연하려면 웬만한 인맥이 아니면 인지도가 상당해야 한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다.

그런 만큼 자신이 무한도전에 출연한다는 것이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주현이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 무한도전에 출연한다는 것에 대해서?”

“저는… 도와주시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부분은 주현이 예상하지 못하던 바. 이것이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빠르게 계산을 마치고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다. 토크쇼 같은 개념이 아니기에 무한도전 같은 곳에서 특별히 웃기지 못하더라도 욕을 먹지 않을 것이고, 촬영하여 파급력이 좋게 되면 상당한 인지도 상승을 얻을 수 있으리라.

“그래, 그럼 무한도전에 출연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도록 하마.”

“하지만 소속사에서…….”

그녀는 AA엔터테인먼트가 아닌,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연예인이다. 구두로 출연 약속을 할 수 있지만 소속사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촬영에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염려 섞인 그녀의 말에 석규가 싱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소속사 문제는 걱정하지 말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회장님과 이야기를 해놓았으니. 본인 의지가 있으면 출연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게다.”

석규가 그렇게까지 해놓았다면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다.

주현은 자신에게도 기회가 왔다는 생각을 하며 힘차게 대답한다.

“네 그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멤버들의 의향을 물어봐주면 고맙겠구나. 촬영은 내일 재개된다던데 내일 스케줄은 어떤지?”

순간 멈칫하는 주현. 스케줄을 말하는 것이 괜히 회사의 기밀을 발설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에 그렇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근 시일 내(?) 자신의 시아버지(?)가 될 수 있는 분의 물음이었기에 그녀는 내부 기밀(?)을 실토한다.

“…앨범 활동도 끝이 나서 행사 스케줄이 아니면 숙소에 있는 편이에요.”

“그래? 그럼 촬영하는 것도 무리가 가지 않겠군. 아마 내일 오전 중으로 연락이 갈 테니 함께 참가할 멤버들을 정하면 좋겠구나.”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그래.”

주현의 대답에 흡족한 듯 미소를 짓는 석규. 잠시 후, 그가 주문한 VIP 스페셜 정식이 나오기 시작하였고,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되었다.

고급스러운 음식에 주현과 지영은 살짝 놀란 기색이었지만 그에 반해 창현은 능숙하게 음식을 먹는다.

그러면서 다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주현을 보면서 음식을 먹는 법에 대해 가르쳐주고, 어떤 음식인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기 시작한다.

다정한 그의 모습에 주현은 얼굴을 붉히며 깨작깨작 음식을 먹어나갔다.

“…….”

맞은편에 있던 지영은 표정을 찡그린 채 거칠게 음식을 먹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창현 옆에 있었다면 저 영광(?)을 누리는 건 바로 자신이었을 텐데.

지영은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에 순간 화들짝 놀라면서 스스로를 위로한다.

‘흥! 난 절대 부러워서 그런 게 아니야. 그래, 아직 오빠가 성인의 길(?)로 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러는 거야. 그래, 아주 순수한 걱정. 그런 거야. 절대 나도 저렇게 배려받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던 말던 창현과 주현 사이에 형성된 분위기는 상당히 화기애애한 것이었고, 석규는 그 분위기를 보며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표정이었다.

‘그래, 저 나이가 됐으면 연애도 해보고 그러는 거지.’

어린 나이에 남들이 쥐지 못할 것들을 쥐었지만 포기해야 하는 것도 상당하다. 석규는 창현이 욕심을 갖고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쥐길 바랐다. 그 상대로 주현이 적합하다 여겼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는 것이고.

식사가 끝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어느덧 헤어지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만 일어나도록 하지.”

“네, 그렇게 해야죠.”

시간을 보니 어느덧 밤 10시가 넘어 있었다. 꽤 늦은 시간이었고, 내일 일도 있는 만큼 일어날 준비를 하는 것이 옳으리라.

자리에서 일어서 계산을 마친 석규는 주현을 힐끗 보며 미소를 짓더니 창현에게 말한다.

“창현이 네가 주현이를 바래다주어라.”

“네?”

깜짝 놀라 반문하는 창현을 향해 석규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뭐 놀랄 게 있다고? 그럼 이렇게 밤늦은 시간에 주현이를 혼자 보낼 생각이었더냐?”

“아뇨, 그런 건 아니죠.”

“마침 집도 근처고 하니 바래다주는 게 당연하지.”

“네, 그래야죠.”

단지 밤늦은 시간이고, 석규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와서 살짝 놀랐던 것이다.

괜히 혼자서 엉큼한 상상을 한 것 같아 창현은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 모습을 본 주현도 이상한 상상(?)을 한 건지 얼굴을 살짝 붉히고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석규에게 무한한 감사를 하고 있었다. 야심한 밤 시간에 길지는 않지만 창현을 독점할 시간을 얻게 되었으니까.

“그래, 그럼 잘 들어가도록 하고. 주현이는 멤버들에게 잘 말해보도록 해라.”

“네.”

그 말과 함께 석규는 지영이를 데리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이대로는 안 돼.’

잠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석규를 보며 지영은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단둘이서 돌아가며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랐기에 불안함을 느꼈던 것이다. 게다가 무한도전을 빌미로 주현이 창현과 둘이서 만날 수 있는 빌미가 될 수도 있었고.

당장 둘이서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묘한 상상을 자극해서 머릿속이 온통 불쾌한 상상으로 가득한 지영이었다. 원래 성격이 그런 것 같지만 괜히 석규 앞에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모습도 내숭인 것 같고.

잠시 고민을 하던 지영은 이내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핸드폰을 연다.

그녀가 연락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순규였다.


“…….”

창현과 주현 둘 사이에 아무런 이야기가 오고가지 않았다.

주현은 창현이 곁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가슴이 두근거려 무어라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고, 창현은 이대로 걸어서 돌아갈지, 아니면 택시를 타고 돌아갈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택시를 타기에는 숙소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걸어서 가자니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아 고민이 되었다.

그러다 주현의 의견을 물어봐야 할 것 같아 입을 열었다.

“택시 타고 갈까요?”

“그렇게 멀지 않은 것 같던데…….”

“그렇긴 한데 걸어가면 30분 정도 걸릴 것 같거든요.”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걷는 것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같이 창현과 함께 있는 상황이라면 오래 걸리는 것이 오히려 감지덕지한 상황이다.

주현은 당연히 고개를 저어 부정의 의미를 표했다.

“그냥 걸어가자. 늦게 저녁을 먹어서 살이 찌지 않으려면 소화도 시켜야 하거든. 그러려면 걷는 것이 좋고.”

“아아, 그러네요.”

즉석에서 생각해낸 변명이었지만 그럴 듯했다. 창현도 그 말을 듣더니 순순히 납득하는 기색을 보였으니까. 주현은 자신이 생각해도 괜찮은 변명이라 생각하며 입가에 슬쩍 미소를 띠더니 걸음을 옮긴다.

창현은 자신이 간과하던 부분을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여자 연예인은 몸매 관리가 필수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굳힌 창현은 주현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음을 옮긴다. 어느덧 키가 177cm까지 자란 그였기에 168cm인 주현에 비해 부족하지 않은 신장을 자랑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보면 딱 어울리는 조합이었으니까.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것이 있는지 창현은 주현을 힐끗 보며 묻는다.

“누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뭔데?”

“태연 누나는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태연 언니는 갑자기 왜?”

자신이 있음에도 다른 여자의 이야기가 나와서일까.

살짝 날이 선 듯한 주현의 목소리에 순간 창현은 당황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감정이 그대로 느껴졌기에 행여 자신이 실수한 것이 있지 않나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혹 자신과 태연이 그렇고 저런(?) 것을 했다는 걸 알아차린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주현의 기세에 압도된 창현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게… 그냥요.”

“언니는 그냥 평범하게 지내고 있어. 스케줄 소화하고, 소녀시대 리더로서 활동하고…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거야?”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도 주현이 그때 일어났던 일에 대해 모르는 듯했다. 그러자 창현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핑계거리를 찾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대답한다.

“아, 예전에 태연 누나한테 라디오에 한 번 나와 달라는 제의를 받아서요. 그래서 물어본 거예요.”

“그래? 언니는 잘 지내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창현.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내가 착각한 거였나?’

태연의 도움으로 슬럼프에 벗어나게 된 창현은 혹 그녀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좋아하지 않는 남자에게 뽀뽀도 아닌 입맞춤을… 그것도 혀가 얽히는 깊은 키스를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자신의 첫 키스를 빼앗아간 수연은 미국에서 살다 왔으니 충분히 아메리카식 인사라 할 수 있지만 태연의 경우 전라도 전주에서 올라온 구수한(?) 토종 한국인이다.

혀와 혀가 얽히는 식의 깊은 아메리카식 인사를 토종 한국인이 할 리가 없는 것이다.

그로 인해 상당히 의식하고 있었고, 태연을 다시 볼 때 어떻게 대해야 하나 은연중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녀가 자신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도 하고 있었고.

하지만 주현의 말을 들어보니 별달리 달라진 점이 없나보다.

그렇다는 건 자신이 과민반응 했다는 뜻.

아무래도 태연은 자신을 슬럼프에서 구해주기 위해 큰 출혈을 한 것인가 보다.

‘내가 착각한 거였구나. 그럼 그렇지…….’

그 부분으로 인해 상당히 고민을 했었지만 주현의 말로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한 창현이다.

태연의 입장에서는 한차례 강하게 당겼으니 이제 슬그머니 밀어서 자신을 더욱 더 자각하게 만들려는 속셈이었지만 창현은 당기면 어안이 벙벙하여 따라오고 밀면 그냥 바이바이 해버리는 인물이다.

좀 더 당겨서 완벽하게 자신의 페이스로 가둬 둬야했지만 주변에 방해꾼들이 워낙 많아 살짝 밀어버려 완전히 사정권 밖으로 나가버리게 된 창현이었다.

분위기가 상당히 어색해졌다는 것을 깨달은 창현은 주현에게 묻는다.

“그나저나 무한도전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무한도전이라면 소녀시대 그룹에게 상당한 인지도를 쌓이게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 생각해.”

짐시 생각에 잠기던 주현이 그렇게 말한다.

연예인이란 자고로 관심을 먹고 자라나는 사람들이다. 그런 만큼 이슈를 몰고 다니는 무한도전이라면 반드시 참가하고 싶은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특히 현이 참가한다 하면 최소 30% 이상의 시청률은 보장될 것이고, 그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단할 것임이 분명하다.

그녀의 입장에서 당연히 참가하고 싶다.

“그럼 참가하면 되겠네요.”

“폐가 되지 않을까?”

주현이 염려하는 것은 자신들이 참가함으로 인해 창현에게 폐가 되고, 그의 인기에 편승해 자신들의 인지도를 띄우려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생각을 어렴풋 알아차린 창현은 피식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젓는다.

“절대요. 저 혼자서 일처리가 힘들어서 누나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거예요. 그러니 부담 갖지 말고 참여해주시기 바라요.”

“그래도 돼?”

“물론이죠. 그러길 바라는 마음에 제가 먼저 말했던 건데요.”

진심이 깃든 창현의 말에 주현의 표정도 밝아진다. 그가 그렇게까지 말해준다면 나서는데 부담이 없을 것이라.

“그럼 참가하도록 할게.”

“네. 그렇게 하세요.”

밝아진 주현의 모습에 창현은 웃음 짓는 얼굴로 말한다.

그 사이 그들은 어느덧 아파트 단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에 진입하면서 창현은 오른쪽으로, 주현은 왼쪽으로 갈라져야 하지만 창현은 오른쪽으로 향하지 않은 채 왼쪽으로 향한다. 시간이 벌써 11시를 향해 가고 있기에 야심한 밤에 주현을 혼자 보낼 수 없는 탓이다.

“나 혼자서 갈 수 있는데.”

“아버지 말 못 들었어요? 야심한 밤에 여자 혼자서 다니는 건 위험하데요. 어차피 먼 거리도 아니니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응…….”

내심 그녀도 싫지 않았기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 모습을 본 창현이 피식 웃음을 짓고는 소녀시대 숙소가 자리한 곳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밤이 늦은 탓인지 사생팬들은 물론 기자들도 없는 듯했다.

“그럼 먼저 들어가세요.”

아파트 동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춰 선 창현이 말한다. 마음 같아서는 엘리베이터 앞까지 바래다주고 싶지만 자칫 알아볼 사람들도 있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응, 그럼 들어가도록 해.”

“누나부터 들어가세요.”

“하지만…….”

“동에 들어가면 저도 가도록 할게요. 마음 같아서는 엘리베이터 앞까지 바래다주고 싶은데 혹시 몰라 여기까지 바래다드리는 거예요. 누나 들어가는 거 보면 저도 갈 테니 고집부리지 말고요.”

그 뜻을 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주현은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

“그럼 내일 보도록 해요.”

무한도전 촬영을 말하는 것이리라.

살짝 고개를 끄덕인 주현은 잠시 멈칫거리더니 창현에게 한걸음 다가온다. 그리고는 마음을 굳힌 듯 양손을 뻗어 창현을 껴안는다.

“……?”

머뭇거리며 자신에게 포옹하는 그녀의 모습에 창현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다. 이미 수차례(!!) 키스를 당한 그로서는 포옹으로 당황하지 않는 강철(?) 심장을 지니게 되었다.

한차례 창현을 안았던 주현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나더니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말한다.

“오늘 고마웠어.”

“뭘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는 주현.

“내 생일 잊지 않아준 것도 고맙고 이렇게 바래다준 것도 고맙고… 평소에도 여러 가지 언니들을 돌봐주는 것도 고맙고… 다 고마워.”

진심이 느껴지는 상대방의 인사는 기분을 유쾌하게 만든다.

자신에게 있어서 별 거 아닌 호의였지만 주현에게 있어서 그것은 버팀목이 되어주었고, 행복이었다.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왠지 그 마음은 이해가 되는 것 같아 창현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난 이만 가볼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을 이해해주는 듯한 미소를 보자 주현은 얼굴 가득 부끄러운 표정을 짓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후다닥 걸음을 옮긴다.

빠르게 걸음을 옮긴 그녀가 동안으로 들어선 것을 본 창현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자신의 동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서서히 멀어져가는 그의 모습을 주현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는 바라보고 있었다. 전등에 비춰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토마토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떡해.”

대담한 포옹을 펼친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무척 부끄러웠다. 이미 더욱 더 대담한 행동을 펼친 선구자(?)들이 팀 내에 있었지만 그것도 모른 채 그녀는 내일 창현을 어떻게 볼지 안절부절 못했다.

둔감한 창현이라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넘어갈 테지만 만약 상황이 자신에게 좋게 흘러간다면 조금이라도 의식하게 되리라.

“이걸로 날 좀 의식하겠지?”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었다 생각하며 주현은 불끈 주먹을 움켜쥐었다. 생각을 긍정적으로 하니 내일 창현을 만나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기대가 되고 있었다.

입맞춤을 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사랑한다 고백한 것도 아니다.

단지 포옹, 포옹을 한 것뿐이지만 그것만으로 주현은 크게 의미를 두었다.

포옹한 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충분한 도약이었다.

숙소에 어떠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주현이 탑승한 엘리베이터는 서서히 지옥을 향해 가고 있었다.


순규 양은 오늘도 즐겁게 게임을 즐기시는 중이다.

그녀가 하는 게임은 스타크래프트! 각종 전략이 판을 치는 스타크래프트는 상대방의 심리를 읽어 들이고, 전략을 짜야 하며, 발군의 컨트롤을 필요로 하는 만능 종합(?) 게임이다.

“애들에게 뒤쳐질 수 없어.”

최근 들어 서서히 감소하는 감을 다잡기 위해 게임을 하는 것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가 존재한다.

바로 멤버들의 실력 상승 때문이다.

창현이 스타크래프트를 즐긴다는 걸 알게 된 후 시간이 나면 종종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는 멤버들. 시간이 빌 때마다 게임에 매진하는 그녀들의 실력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녀시대 내 스타 본좌인 순규는 멤버들에게 뒤처질 수 없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

지킬 것이 많은 그녀로서는 멤버들의 급격한 성장이 마음에 걸리고 있었다.

♩♪♬

한 게임을 끝내고 휴식을 취하던 그녀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전화한 사람의 이름을 확인하니 발신자는 다름 아닌 지영.

전란을 종식(?)시키고 자신의 야망을 이루는데 도움을 줄 가장 든든한 지원군 중 한 사람이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연락이 오자 의아함을 느낀 순규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전화를 받아든다.

“여보세요?”

-언니, 저 지영이에요. 늦은 시간에 전화해서 미안해요.

그래도 예의는 알고 있는 듯하다. 적어도 늦은 시간에 폐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아냐, 그런데 무슨 일이야?”

-그게…….

지영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오늘 저녁 식사 자리에 주현이 참석했다는 것과 함께 지금 창현과 같이 집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

생일 축하한다는 의미를 담아 초대된 것이지만 낌새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들은 후였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순규의 눈이 번뜩이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지금… 주현이 고것이 생일 축하해주려는 언니들 품에서 몰래 빠져나와 창현이와 다정하게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이거지?”

사전에 말하고, 단 둘이 데이트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집까지 바래다주는 것이었지만 자체적인 필터링으로 상황을 재창조해낸 순규였다.

-그건 아니지만…….

지영은 순규가 화난 어조로 말을 하자 적잖게 당황하는 듯했다.

단지 주현을 견제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것인데 순규가 심각하게 흥분을 하는 것 같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문득 든 생각은 순규가 필요 이상으로 반응한다는 점이다.

‘언니가 왜 이렇게 흥분하는 거지? 뭔가 이상한데…….’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으며 지영이 말했다.

-전 언니가 걱정할 것 같아서 연락을 드린 거예요.

“걱정? 당연히 하고말고. 알았어. 주현이 일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이만 끊도록 하자.”

걱정 같은 건 당연히 하고 있다.

다만 지영이 생각하고 있는 종류의 걱정이 아닌, 어떻게 주현을 처벌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라는 점이 달랐지만.

황급히 지영과 통화를 끊은 순규는 생각에 잠긴다.

“요 앙큼한 막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감히 다른 언니들에게 말도 하지 않은 채 혼자 선수를 치려하다니.

가뜩이나 지영의 푸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전을 해나가지 못하는 것 같아 이래저래 고민이 많던 순규로서는 배가 아픈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이 노리고 있는 상황은 약 두 달 후부터 재개되는 것이지만 그때까지 다른 멤버들이 선수 치지 못하게 방해할 필요성이 있었다.

“소녀시대를 위하여!”

스스로의 사심을 아주 거창한 대의명분으로 포장하는 순규.

창현이라는 존재로 천하(소녀시대)에 혼란이 찾아오고, 각지에 영웅(소녀시대 멤버)이 등장하여 천하(창현)를 차지하고자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니, 자신이 그 난을 종식하고 난세의 유일한 영웅으로 남고자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선수를 친 앙큼한 막내 서로로를 따끔하게 일침 할 필요성이 있다.

“내가 직접 나설 이유는 없지.”

은근슬쩍 분위기를 만들어놓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순규가 거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마침 도발에 걸려들기 쉬운 수영이 자신의 곁을 지나간다.

요즘 낌새가 심상치 않지만 그녀를 1차 제물로 삼기로 한 순규가 혼자 말하듯 중얼거린다.

“흐음, 창현이가 주현이를 바래다준다고 하던데 괜찮으려나?”

“……!”

식신 이미지를 탈피하고 가냘프며 아리따운 소녀로 환골탈태하고자 노력하기 위해 야식 대신 물로 공복감을 지워나가던 수영의 눈이 크게 커진다.

그녀는 경악이 서린 눈으로 순규를 바라보더니 버럭 소리를 친다.

“이써니! 너 방금 뭐라고 했어? 창현이가 주현이를 바래다주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카랑카랑한 수영의 외침은 숙소에 널리 퍼져 나갔다.

그 목소리는 숙소 안에 있던 멤버들의 귀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한 거야?”

거실에서 소파 두 칸을 차지하고 있는 최종보스가 강렬한 포스를 풍기며 수영에게 묻는다.

요즘 들어 신급 아이템을 손에 넣고 다방면 문어발식 정권 장악을 하고 있는 수연이었기에 수영은 움찔하더니 대답한다.

“나도 몰라! 지금 얘가 그 이야기해서 나도 놀란 거란 말이야.”

“써니야, 무슨 뜻?”

간결하지만 시리도록 차가운 말투.

순규는 단숨에 최종보스까지 낚여버리자 침을 꼴깍 삼키며 자신의 말을 이어나간다.

“별 거 아닌데? 주현이가 창현이랑 AA엔터테인먼트 사장님하고 같이 식사를 했다더라고. 내가 창현이 여동생인 지영이랑 친하잖아. 시간이 늦어서 창현이가 바래다준다고 해서 그냥 중얼거린 건데…….”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는 창현이에게 관심이 없다는 듯.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도 다구리 당하면 결국 무너지기 마련이다.

스타크래프트를 하며 다구리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는 순규는 배후의 암습자로 남고자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한다.

“막내가 창현이의 배웅을 받고……?”

이야기를 듣던 수연을 비롯한 다른 멤버들의 눈에 불똥이 튄다.

창현만 만난 것이 아니라, 석규와 지영까지 만나다니. 미래의 시아버지와 시누이를 만난 격이 아닌가?

그들의 버프를 받게 되면 주현이 얼마나 앞서나갈지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들다.

그녀들의 얼굴이 생겨난 것은 질투의 감정이었다.

설마 주현이 이런 식으로 선수를 칠 줄 몰랐으니까.

최종보스 수연의 질투심은 마침내 한계에 달하여 폭발하였다.

“주의를 줘야겠어.”

자신이 무슨 권리로 주의를 줘야 하는지 그녀는 몰랐다. 하지만 주현에게 주의를 줘야한다는 강력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주현이 절반 이상을 먹고 들어가는 대이변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막 라디오 스케줄을 끝내고 옷을 갈아입던 태연은 수연의 말에 동의한다.

“협력하겠어.”

리더로서 당연히 멤버의 연애 생활에 참견할 권리가 있으리라.

아니, 실제로 태연은 자신이 창현에게 강력한 임팩트를 남겨 슬슬 마무리 과정에 들어가면 된다 생각했는데 주현이 난입하여 물을 흐려놓자 질투심이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소녀시대 양지와 음지의 권력자인 탱싴 라인이 연합전선을 이루자 다른 멤버들도 찬성하고 나서기 시작하였다.

“언니들도 해보지 못하는 연애를 막내가 먼저 하려 하다니! 이것은 명백한 배신행위야. 나도 주의를 주겠어.”

“나도! 나도!”

하나둘씩 선언하는 멤버들의 눈에는 붉은 화염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나도 해보지 못한 걸 막내가 한다는 것에 대한 질투의 감정이었다.

순식간에 절반 이상의 멤버가 지지하자 숙소는 자체적인 청문회-라 칭하고 심문이라 부른다-를 소집하였다.

그 사이 창현에게 기습 포옹을 한 주현이 토마토같이 붉어진 얼굴로 숙소를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자신에게 어떠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 채.


띠띠띡.

비밀번호가 설정된 숙소 문을 연 주현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안으로 들어서던 그녀는 숙소에 집결해있는 멤버들을 보고는 잠시 멈칫하다가 인사를 건넨다.

“다녀왔습니다.”

“데이트는 즐거우셨나, 서주현 양?”

차가움이 감도는 수연의 목소리에 주현이 순간 흠칫한다. 마치 자신이 창현과 만남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낼 수 없었기에 주현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한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건 막내 네가 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알고 있구나.’

주현은 직감적으로 수연을 비롯한 다른 멤버 언니들이 자신의 외출 내역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생각에 빠져든다.

어떤 경로로 정보가 새어나간 것일까?

그러다 생각난 것이 있다. 자신에게 적의를 내뿜던 어린 소녀. 바로 창현의 여동생인 지영의 존재였다.

‘그러고 보니 창현이 동생이 순규 언니랑 친했지.’

그쪽으로 정보가 새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주현.

그렇다는 건 더 이상 숨기려 해봤자 숨길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추궁당하며 처참하게 최후를 맞이하느니, 차라리 진실을 인정하자고 생각을 정리한 주현은 숙였던 고개를 들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사장님하고 창현이랑 같이 저녁 먹은 걸 이야기하신 거예요?”

“…맞아.”

너무나 순순히 인정하는 그녀의 모습에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 수연.

다른 멤버들 또한 순순히 인정하는 주현의 행동을 예상치 못했는지 다소 당황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

“그것 가지고 제가 추궁 받을 일은 아니라 생각하는 걸요.”

방귀 뀐 놈이 성 낸다라는 격의 상황이 아니다. 주현은 당당히 초대를 받아 간 것이고, 충분히 이유를 설명할 수도 있었다.

“우리에게 말하지 않았잖아. 게다가 창현이랑 단 둘이서 먹은 것도 아니고 그런 구성으로… 그건 마치…….”

상견례 같잖아. 라고 말하고 싶은 뒷말을 이어가지 못하는 수연이었다.

폭군인 그녀에게도 역린은 존재하는 법이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불필요한 오해가 있을 것 같아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거예요.”

“무슨 이유로 간 건지 이유를 물어봐도 돼?”

어느 사이엔가 주도권은 주현에게 넘어가 있었다.

여태까지 다른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항상 주도권은 상대방에게 가 있고는 하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주현은 맹점을 파고들어 자신이 주도권을 완벽하게 장악하였다.

마치 점유율 축구를 하는 것 마냥 주현은 서서히 자신의 페이스로 끌어당기기 시작하였다.

“말 그대로 제 생일을 축하하기 위함이에요.”

“생일을 축하하는데 AA엔터테인먼트 사장님하고 같이 만난다고?”

쉽게 설득될 기세가 아니었다.

차라리 창현과 단 둘이서 식사를 한 것이 오히려 더 개연성 있게 납득이 되니까.

그 중간에 시아버지와 시누이가 끼었다는 것은 주현에게 있어 얼마나 큰 기회가 될 수 있는지 알고 있기에 수연을 비롯한 소녀들은 자세한 연유를 알고 싶어하였다.

“간단해요. 아저씨는 제가 창현이의 선배라는 걸 알고 계시고, 그 부분에 대해서 고마워하고 계셨어요. 그래서 절 불러서 축하해주신 거고요.”

그러면서 수연을 한 차례 바라본다.

‘언니 덕분에 그 기회를 붙잡을 수 있게 되었지만요.’

석규는 아직도 창현이 집에 끌어들인 여인을 자신으로 알고 있다. 만약 그가 수연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자신에게 기회가 오지 않았으리라.

수연으로 인해 얻은 기회였지만 주현은 전혀 고마운 감정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설마 도둑 고양이 같이 그렇게 창현에게 다가갔을 줄 몰랐으니까.

몰래한 만큼 자신 또한 그 기회를 잡아 최대한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래……?”

논리적인 주현의 말에 수연은 멈칫한다. 차라리 쉽게 흥분하는 윤아가 더욱 다루기 편한데 차분하게 조목조목 설명하는 그녀를 보니 몰아치기가 힘들었다.

주변에서 더욱 압박해보라는 눈짓을 하고 있지만 이미 주도권은 주현에게 넘어가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더 몰아치면 그것은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명분을 잃은 채 몰아치는 건 억지란 걸 알았기에 수연은 더 이상 나서지 않았다.

그녀가 잠잠해지는 기색을 보이자 주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선다.

“그리고 만난 이유는 하나 더 있어요.”

“하나 더……?”

“네, 다름이 아니라 무한도전에 참여해달라는 제의를 받았거든요.”

“무한도전?”

의아한 기색을 띠는 멤버들에게 주현은 석규에게 들었던 내용을 전달하기 시작한다.

그 이야기를 들을수록 소녀들의 눈에 안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무한도전 촬영에 참가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메리트가 존재하는데 현재 함께 촬영하는 존재가 다름 아닌 창현이라니.

기회도 이런 기회가 없다 생각되었다.

그만큼 무한도전은 인지도를 급상승시키기에 좋은 프로그램이었으니까.

“어떻게 생각하세요?”

“난 하고 싶어.”

“나도나도!”

주현의 물음에 모든 멤버들이 하고 싶다 나서기 시작했다. 심지어 주현을 추궁하는데 가장 앞장 서던 수연 또한 찬성의 표시를 보였으니까.

멤버들 중 스케줄이 가장 바쁜 태연과 윤아 또한 하고 싶어 하였다.

“하는 건 어렵지가 않아요. 그런데 촬영 스케줄이 조금 애매해서…….”

“애매하다니?”

“내일이거든요.”

“내일…….”

내일이라는 말에 신음이 절로 터져 나올 뻔했다. 이건 잡혀도 너무 빨리 잡힌 것이 아닌가. 넉넉 잡고 기간을 둘 줄 알았다가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내일 오전부터 촬영한다 하더라고요. 촬영에 참가하고 싶으시면 내일 아침에 곧장 회사에 소식을 전하고 임하면 된다 하고요.”

“으음! 내일이라…….”

내일이라는 말에 소녀들은 고민에 빠져든다. 어느새 주현이 창현과 단 둘이서 이곳까지 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듯하다.

그때, 침묵을 지키고 있던 순규가 앞으로 나섰다.

“우리가 도우미 역할로 나서는 거랬지?”

“네. 프로듀서를 맡은 창현이가 할 일이 너무 많아 도움을 요청했다고 했어요. 저희는 각각 안무 연습을 도와주거나, 노래 연습을 도와야 한다 했어요.”

“그래, 그렇구나.”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순규.

뒤로 물러서는 그녀는 날카로운 눈으로 주현을 힐끔 바라 보았다.

다른 멤버들은 잊어버린 듯하지만 그녀는 아직 창현과 단 둘이서 온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알아내야 할 텐데…….’

한편, 주현 또한 나름대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창현이가 태연 언니에 대한 걸 물어본 게 수상해.’

창현이 아무 이유없이 태연에 대해 물어보았을 리가 없다.

무언가 내막이 숨어 있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

그는 라디오에 참여해달라 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신의 의문을 태연에게 털어놓았다.

“태연 언니.”

“응, 왜?”

내일 무한도전 촬영에 참여해야 할지 고민하던 태연은 주현의 물음에 대답한다.

“혹시 창현이한테 라디오에 참여해달라 하신 적 있으세요?”

“응? 요즘 바쁜 것 같아서 그렇게 말한 적 없는데? 갑자기 왜?”

“아니에요.”

태연의 대답을 들은 주현의 눈에 순간 기광이 번뜩인다. 창현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창현이가 거짓말을 했어? 게다가 말을 할 때 묘한 멈칫거림까지 있었고… 그렇다면 뭔가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해.’

수연에 이어 태연까지…….

숨어 있는 내막을 하나둘씩 알아갈 때마다 주현은 섬뜩한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창현에게 대쉬를 했을 것이라 생각도 못했으니까.

심상치 않은 일이라 끊임없이 경종을 울리고 있기에 주현은 서서히 알아보기로 하고는 의문을 접어 넣는다.

“그럼 무한도전에 참여하실 분요?”

주현의 말에 각자 계산을 마친 소녀들은 하나둘씩 손을 든다.

그것을 확인한 주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한다.

“그럼 내일 회사에 소식을 전하고 참여하도록 해요.”

“그래, 그럼 부탁할게.”

어느새 리더 같이 모든 이야기를 전달하는 주현이었지만 귀찮은 일을 맡는 것이기에 태연은 별다른 불평을 하지 않고 주현에게 맡긴다.

간단한 이야기를 끝마치고, 수연이 주현에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사과한다.

“괜히 추궁해서 미안해, 주현아.”

별 거 아닌 일 가지고 크게 만든 것 같아 미안한 감정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괜찮아요. 제가 말하지 않고 갔던 게 큰 걸요. 다음에는 언니들에게 반드시 말하고 나가도록 할게요.”

“응. 그래주면 고맙지.”

사과를 받아준 것도 모자라 정보까지 전달하고 나가준다는 주현의 말에 수연이 미소를 지었다.

‘뭔가가 있는데…….’

그때까지 순규는 자신의 내부에서 생겨난 문제가 풀리지 않아 끙끙거리며 사건의 진상을 파해치고자 애를 쓰고 있었다.

그렇게 주현은 지옥을 당당하게 무혈입성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창현과 태연 사이에 모종의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것을 그녀가 알아낼 수 있을지는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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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4화 +7 15.04.24 3,976 89 10쪽
40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3화 +6 15.04.22 4,424 82 10쪽
39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2화 +9 15.04.20 4,514 91 11쪽
38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1화 +10 15.04.17 7,374 95 10쪽
37 ▲▲▲▲▲시즌2 시작!▲▲▲▲▲ +5 15.04.17 5,421 65 1쪽
36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6장-108장 +8 15.04.16 6,410 106 230쪽
35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3장-105장 +1 15.04.16 4,242 82 314쪽
34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0장-102장 +2 15.04.16 4,411 68 229쪽
33 마음을 울리는 음악 97장-99장 +1 15.04.16 4,387 63 264쪽
32 마음을 울리는 음악 94장-96장 +1 15.04.16 4,376 80 230쪽
31 마음을 울리는 음악 91장-93장 +1 15.04.16 5,124 76 268쪽
30 마음을 울리는 음악 88장-90장 +1 15.04.16 4,926 98 332쪽
29 마음을 울리는 음악 85장-87장 +1 15.04.16 4,708 83 270쪽
28 마음을 울리는 음악 82장-84장 +2 15.04.16 4,911 85 261쪽
27 마음을 울리는 음악 79장-81장 +1 15.04.16 4,579 87 241쪽
26 마음을 울리는 음악 76장-78장 +1 15.04.16 4,752 74 244쪽
25 마음을 울리는 음악 73장-75장 +1 15.04.16 4,938 111 327쪽
» 마음을 울리는 음악 70장-72장 +1 15.04.16 4,754 82 200쪽
23 마음을 울리는 음악 67장-69장 +1 15.04.16 4,742 80 210쪽
22 마음을 울리는 음악 64장-66장 +1 15.04.16 4,953 75 282쪽
21 마음을 울리는 음악 61장-63장 +2 15.04.16 5,255 79 316쪽
20 마음을 울리는 음악 58장-60장 +1 15.04.16 5,244 74 186쪽
19 마음을 울리는 음악 55장-57장 +2 15.04.16 5,589 95 215쪽
18 마음을 울리는 음악 52장-54장 +1 15.04.16 6,504 110 349쪽
17 마음을 울리는 음악 49장-51장 +2 15.04.16 6,418 119 2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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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마음을 울리는 음악 40장-42장 +3 15.04.16 8,905 183 320쪽
13 마음을 울리는 음악 37장-39장 +2 15.04.16 9,610 224 397쪽
12 마음을 울리는 음악 34장-36장 +8 15.04.16 9,520 189 322쪽
11 마음을 울리는 음악 31장-33장 +8 15.04.16 10,351 261 345쪽
10 마음을 울리는 음악 28장-30장 +5 15.04.16 10,654 260 277쪽
9 마음을 울리는 음악 25장-27장 +7 15.04.16 11,032 267 233쪽
8 마음을 울리는 음악 22장-24장 +4 15.04.16 10,917 261 198쪽
7 마음을 울리는 음악 19장-21장 +4 15.04.16 11,485 270 216쪽
6 마음을 울리는 음악 16장-18장 +5 15.04.16 11,536 242 163쪽
5 마음을 울리는 음악 13장-15장 +5 15.04.16 14,527 297 237쪽
4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장-12장 +8 15.04.16 13,728 352 171쪽
3 마음을 울리는 음악 7장-9장 +10 15.04.16 14,540 362 142쪽
2 마음을 울리는 음악 4장-6장 +11 15.04.16 16,820 421 120쪽
1 마음을 울리는 음악 프롤로그-3장 +47 15.04.16 29,872 545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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