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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번 님의 서재입니다.

마음을 울리는 음악

웹소설 > 작가연재 > 팬픽·패러디, 현대판타지

김현우
작품등록일 :
2015.04.16 13:27
최근연재일 :
2015.06.0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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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1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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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3쪽

마음을 울리는 음악 25장-27장

DUMMY

제25장 떠나기 위한 준비




음반 판매도 순조롭게 이어지는 가운데 SM엔터테인먼트와 AA엔터테인먼트 사이에 계약이 채결되었다.

현의 프로듀싱을 놓고 두 회사가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은 다른 기획사는 물론이고 언론에도 널리 펴져 나갔다.

이미 라샤의 모든 곡을 작곡하고 프로듀싱을 함으로써 그 실력을 입증한 현이 SM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

단순히 현의 프로듀싱을 받는 것이 아닌, SM엔터테인먼트가 추후 현의 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곧 SM엔터테인먼트와 AA엔터테인먼트의 전략적 제휴를 의미한다.

대한민국에서 SM엔터테인먼트의 기획력과 영업력은 자타공인 최고 수준이다. 그들이 현의 곡을 받고 프로듀싱을 받게 된다면 사십만이 넘는 다크 스타의 절대적 지지도 함께 받게 된다. 사십만 다크 스타 회원 중 절반이 순수하게 현의 노래를 좋아하여 모인 만큼 그 응집력이나 활동력은 다른 팬 사이트와 비교를 거부할 정도로 대단했다.

물론 이번 계약은 표면적으로 SM엔터테인먼트가 얻는 것이 더 많아 보였지만 실익은 AA엔터테인먼트에서 더 많이 챙겼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SM엔터테인먼트가, 일본에서는 쟈니스라는 거대 기획사의 후광을 받게 됨으로써 기존의 중소 기획사란 이미지를 벗어던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알게 모르게 거대 기획사의 영업 방식이나 사업 노하우를 습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들은 처음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점점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 그때에는 돈 주고도 구할 수 없는 무궁한 가치를 발휘하게 된다.

그 사이 현으로 활동하는 창현은 부지런히 음악 활동을 하면서 각종 CF나 화보 촬영, 인터뷰를 소화해내고 있었다.

예능 프로그램을 출연하지 않았기에 창현은 한결 여유롭게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는데, 그가 촬영한 CF와 화보가 정식으로 발매되자 다시 한 번 현의 인기가 하늘 높이 치솟기 시작하였다. 푸켓에서 촬영했던 화보가 발매된 것이다.

특히 화보에 작게 적혀있는 인터뷰 내용이 화제가 되었는데, 인터뷰 당시 그동안 현에 대해 알 수 없었던 여러 가지 사실을 담아내고 있었기에 현의 팬들이 더욱 열광하였다.

그 외에도 다양한 컨셉의 사진이 있음에 따라 화보 판매가 폭발적으로 이어짐으로써 현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CF도 마찬가지였는데, 현이 촬영한 초콜릿 광고는 여성의 마음도 달콤하게 녹여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판매량의 수직 곡선을 연일 그려주고 있었다.

그 사이 개학을 하고 창현은 3학년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창현은 1반이 되었는데, 주현이 작년에 1반이었으니 정말로 학교 선후배 사이가 된 셈이다.

개학식 날 등교하던 창현은 엄청난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톱스타가 어찌 걸어서 등교를 하느냐는 석규의 지론 아래 아침에 벤을 타고 등교를 했더니 엄청난 숫자의 학생들이 벤을 둘러싼 채 창현의 모습을 보고 와-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보면서 창현은 자신의 생각에 짧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벤을 보면 대부분 연예인이 타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 그가 다니는 학교에 연예인은 자신 밖에 없으니 말 그대로 자신이 왔다고 광고하는 격이었던 것이다. 설마 이것도 석규가 의도한 게 아닐까 생각하니 절로 혈압이 치솟았다.

어찌 되었건 간에 교문 앞에서 창현을 둘러싼 학생들은 대부분 신입생이었는데, 자신의 학교 선배가 현이라는 사실에 열광하면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싸인을 부탁하였다.

난데없이 교문 앞에서 싸인을 해주기 된 창현. 더 웃긴 건 개학식에 참여한 학부모들도 창현에게 싸인을 부탁했다는 것이다.

뒤늦게 교문 앞에 나온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학교에 들어서게 되었고,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또 다시 모여드는 학우들.

다행히 2학년 때 같은반 친구들이 있었기에 무난하게 친해질 수 있었다.

연예인은 성격이 안 좋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학우들도 창현의 성격에 생각보다 담담하고 괜찮은 걸 알게 되자 빠른 시간 안에 친해질 수 있었다.

‘내가 학교를 나올 때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오히려 학교 측에서 좋지 않을 텐데.’

당연히 학교에서도 연예인인 현의 존재가 홍보가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출석 문제를 어느 정도 합의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학교에 나올 때마다 소란이 일어난다면 결코 좋다고 볼 수 없었다.

물론 학교에서도 현을 대하는 여러 가지 교육을 시켰지만 그것은 애초에 무용지물이었다. 일반인에게 있어 연예인은 선망의 대상이고, 한 번쯤 만나고 싶은 존재가 아니던가?

애초에 그냥 인지도가 낮은 연예인이면 상관없겠지만 현은 현재 가요 차트란 차트는 모조리 휩쓸고 있으며, 광고계에서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있는 최고의 인기 연예인이다. 그런 인기 연예인을 앞에 두고 담담하게 대하라는 것은 마음에 드는 이성을 발견했는데 그냥 순순히 보내주라는 말하고 다를 바가 없다.

그리하여 파란의 개학식이 끝나고, 창현은 벤에 탑승하여 AA엔터테인먼트로 향했다.

거침없이 사장실로 들어간 창현은 불량한 포즈로 석규를 보며 다짜고짜 용건을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홉 마리 야수(?)들에게 자신을 풀어놓았고, 학교에서도 곤욕을 치르게 했으니 얄미울 수밖에 없었다.

“왜 불렀어요, 아버지.”

“험, 왔느냐.”

창현의 기세가 심상치 않자 석규는 헛기침을 하였다. 자신의 만행을 알고 있으니 강력하게 나오는 창현의 모습에 압도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용건만 말해주세요. 어떤 분 때문에 학교에 가면서 아주 연예인이 왔다고 광고를 하고 다녔다가 곤욕을 치렀거든여.”

그 말과 함께 빠드득! 하는 이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창현의 모습에 석규는 고개를 돌려 애써 외면하면서 말했다.

“흠흠! 내가 널 부른 것은 아주 좋은 소식이 있어서 그렇다. 그러니 화를 풀어라.”

좋은 소식이란 것이 일에 관련된 것일 게 분명했다. 창현은 응어리 진 마음을 우선 풀어내며 석규에게 물었다.

“후!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좋은 소식이 뭔데요?”

창현의 물음에 석규의 입가에 씨익 미소가 맺혔다.

“기뻐해라, 창현아. 드디어 네가 미국으로 진출할 발판이 생겨났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창현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미국이요?”

석규가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Sony BMG 알고 있지?”

“물론이죠.”

수많은 회사가 소속되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미국에서 하는 아메리칸 아이돌에 우승, 혹은 준우승을 할 경우 이 회사와 계약을 맺지 않던가? 창현이 이 회사를 모를 리가 없다.

창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석규가 말을 이어나갔다.

“네 음반이 꾸준히 발매 되고 다양한 장르를 모두 소화하자 이곳 소속 여러 기획사에서 네게 관심을 보였다. 미국 진출을 할 생각이 없냐는 일종의 제의지. 너도 알다시피 우리 회사에서 아직 해외 확장을 할 여유가 없지 않느냐? 이 기회를 발판 삼아 네가 미국으로 진출한다면 엄청난 기회가 될 것이 분명하다.”

미국에서 창현이 성공한 모습이 그려졌던 것일까? 석규의 얼굴이 붉어지며 창현에게 말했다.

하지만 창현의 반응은 의외로 회의적이었다.

“제가 성공할 수 있을까요?”

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미국 내에서 인종 간의 차별은 아직도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동양인은 미국 내에서 흑인보다 못한 취급을 받고 있었기에 창현으로서는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창현의 말에 석규가 피식 웃음을 짓더니 물었다.

“창현아, 네가 언제부터 성공 여부를 따졌느냐? 너는 네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 되는 것이다. 이왕이면 더 넓은 무대에서 너의 음악을 세상에 입증하고 싶지 않느냐? 남자라면 더 큰 배포를 가질 줄도 알아야지. 고작 그런 것에 고민하는 게 말이 되냐?”

진지한 석규의 충고.

창현은 석규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일렁이는 것은 감동이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전혀 다른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럴 때만 사장님 같다고…….’

아들 괴롭히는 것만 뺀다면 참으로 멋진 아버지일 텐데 말이다.

창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힘이 나긴 하는데 저 혼자서 가는 건 좀 힘들 것 같아요. 미국은 가본 적도 없고 영어가 된다고 해도 직접 회화를 해보는 거랑도 좀 다르니까요…….”

그 말에 손을 들어 보인 석규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라. 나도 같이 갈 생각이니까.”

“아, 아버지도요?”

황당한 표정을 짓는 창현.

석규가 미국으로 가면 회사는 누가 경영한단 말인가?

그런 걱정은 곧장 말로 이어졌다.

“회사는 어쩌시고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무심한 넌 모르겠지만 그동안 알게 모르게 사원을 충원 시켜놨으니까. 게다가 솔직히 우리 회사는 너랑 라샤밖에 없지 않느냐? 넌 내가 맡고 회사에서 라샤를 맡게 하면 될 게다.”

“그럼 프로듀싱은요?”

“전문가한테 의뢰를 해놓으면 된다. 네가 하는 만큼 아니겠지만 라샤 아이들도 나름대로 잘할 게다.”

그렇게까지 석규가 말하니 창현이 더 할 말이 없었다.

가볍게 숨을 몰아쉰 창현이 석규를 보며 말했다.

“제게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조금 갑작스러워서 판단을 내릴 수가 없네요.”

“그렇게 하여라.”

석규는 창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럽게 미국 이야기가 나왔으니 충분히 당혹스러울 것이다.

고개를 숙여 보인 창현이 사장실을 벗어난다.

머리가 복잡했다.


“후우!”

집으로 돌아온 창현은 교복 마이를 벗으면서 소파에 몸을 묻었다.

미국 진출.

참으로 가슴 떨리는 단어가 아닐 수 없었다.

모든 가수가 그러하듯이 미국 진출은 꿈에도 그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 시장이 곧 세계 시장을 의미하였고, 그곳에서 얻는 모든 인지도나 인기가 세계적인 인기를 의미하였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자신 있게 곡을 작곡하고 1위를 하며 화려한 길을 걷고 있는 창현이었지만 그의 곡이 미국에서까지 먹혀든다는 보장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정서와 미국의 정서는 판이한 차이를 보인다. 자라온 사회 환경이 다른 만큼 창현의 곡이 미국에서 인기를 얻을 수 있을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게다가 세계 정상의 가수들이 즐비한 곳이니 만큼 경쟁도 엄청날 것이다.

그런 시장에서 자신이 버틸 수 있을까? 그것이 바로 창현이 염려하는 바였다.

비록 이른 나이에 음반을 내고 사회 활동을 했다고 하지만 아직 자신은 실패한 경험이 없다. 흔히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는데, 아직까지 실패한 적이 없는 자신이 실패에서 오는 충격을 어떻게 견뎌낼지 고민이 되었다. 머리는 자각하고 있지만 가슴이 느끼는 것은 다른 법이다. 미국에서 실패를 겪고 자칫 좌절을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미국 진출에 대해 두려움이 생겨났다.

“어떻게 하지.”

창현이 걱정하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미국으로 진출할 경우 자신은 어떤 식으로든 소기의 성과를 내야만 했다. 이미 국내에서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미국에 진출하게 되면 자신은 한국을 대표해서 미국에 가게 된다. 한민족이라는 자존심으로 뭉친 한국인들의 자존심은 무척 드높아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돌아올 경우 냉정하게 자신에게 등을 돌릴 수도 있다.

자신이 과연 그것을 견뎌낼 수 있을까?

아니,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천재적인 싱어송라이터라 치켜세워 주지만 마음 같은 것은 아직 어린 소년이었다. 그런 상황이 되면 견디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미국 진출을 하게 되면 장기간 머물게 될 것이 분명했다.

성과를 내야하는 만큼 최선을 다해 움직이겠지만 미국 시장이 어떨지 모른다. 하지만 만만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고, 처음부터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고 시작한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그들의 정서를 파악하고,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 있다. 당연히 시간이 걸릴 것이고,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밟고 올라가야 했기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임이 분명했다.

대인관계가 그리 넓지 못한 창현은 알게 모르게 주변 사람들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랬기에 석규에게, 라샤에게, 소녀시대에게 종종 당하면서도 웃으면서 그녀들과의 관계에 알게 모르게 집착하고 있다. 그들은 모르고 있지만 석규는, 라샤는, 소녀시대는 창현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었다.

석규가 함께 있어준다는 말에 한결 마음이 놓이기는 했지만 한국에서의 인연을 이대로 놓고 낯선 곳에 간다는 것이 창현에게 있어서는 큰 결단을 요구하였다.

“후우!”

다시 한 번 한숨을 쉰 창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우유 한잔을 마시면서 TV를 켰다. 이렇게 마음이 착잡한 날에는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기분을 푸는 것이 최고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개학식인 걸 떠올린 창현이 핸드폰을 열어본다.

그러자 선명하게 드러나는 D-7.

일정 확인을 해보니 태연의 생일이 일주일 남았다.

폭 넓지 못한 창현의 대인관계. 그에게 있어 소녀시대 멤버들은 외동 아들인 그에게 마치 친누나와 같은 존재였다.

태연의 생일이 다가왔으니 당연히 챙겨줘야겠다고 생각하던 창현은 생각을 바꾸었다. 기분이 우울한 지금,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불과 일주일 전이다. 이미 일정이 다 잡혀있을지도 모르는 상황.

“누나가 시간이 되려나 모르겠네.”

창현이 그대로 태연의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

컬러링과 함께 잠시 후, 태연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누나, 저에요, 창현이. 연습 중이세요?”

창현은 자신의 목소리에서 울적함이 묻어나올까 싶어 밝은 목소리를 연출하며 태연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안무 연습 끝내고 점심 먹으려고 하던 중이였어.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로 전화를 한 거야?

저번에 저지른 창현의 만행(?)은 간지럼 형벌과 점심을 사줌으로써 해소된 상태였기에 태연의 목소리에는 이렇다 할 감정이 묻어나오지 않고 있었다.

의외로 태연의 뒤끝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고 있는 창현은 태연이 그 사건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은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누나 다음 주에 생일이잖아요. 그래서 축하드리려고요.”

-내 생일 알고 있네? 고마워.

자신의 생일을 알고 있자 조금 의외라는 목소리로 말하던 태연이 고마움을 표한다.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 소소한 것이라도 알아주면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이다. 태연의 음색도 처음에 비해 상당히 밝아졌다.

창현은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니에요. 뭐 이런 걸 가지고요. 제가 누나 생일 축하해주려고 하는데, 다음 주 주말에 시간 되시는 날 있나요?”

상당히 넉넉하게 스케줄을 소화하는 창현은 다음 주 주말에 이렇다 할 스케줄이 없었다. 그리고 태연 또한 평일을 제외한 주말 밖에 시간이 없을 것 같았기에 물어본 것이다.

갑작스러운 창현의 물음이 의외였던 것일까?

태연의 당혹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자, 잠깐만… 이, 일요일에 아무 약속이 없긴 한데…….

“그래요? 그럼 잘 됐네요. 일요일에 만나요. 제가 밥도 사드리고 영화도 보여드릴게요.”

-지금 데이트 신청하는 거야?

상당히 떨리는 음성으로 물어보는 태연.

곰곰이 생각해보던 창현은 그렇데 들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데이트요? 음! 데이트라면 데이트네요. 뭐 데이트라고 치죠! 매우 동안인 누님. 저를 위해 일요일에 데이트를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동안에 키 작은 누님이라고 하려다가 키 작다는 이야기를 하다가는 후에 닥쳐올 후환이 두려웠기에 동안만 언급하는 창현.

그런 창현의 노림수가 먹혔는지 태연은 화내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태연은 도도하게 대답했다.

-좋아. 만나고 싶다고 하니 만나줄게.

콧대를 높이고 만나고 하자니 어쩔 수 없이 만나줄게, 라고 하는 듯한 태연의 모습이 떠오르는 듯하여 창현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요일 11시에 장소는 아시죠?”

-분수대광장?

“네, 거기에서 만나요.”

-알았어. 너 정체 들키지 않게 변장 잘 하고 와. 들키면 난감해지니까. 알았지?

“물론입니다요. 믿어주세요.”

장난스럽게 대답하는 창현. 그러자 태연도 장난스럽게 대답한다.

-믿어보게쓰.

“그럼 그때 뵈요.”

-응.

그 말과 함께 통화가 끊어졌다.

창현은 통화가 끊긴 핸드폰을 보면서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아버지에게도 연락을 해야겠군.”

석규에게 전화를 한 창현은 다음 주 주말까지 고민을 해보겠다고 말한다. 워낙 중대한 사항이었기에 석규도 창현의 말에 순순히 동의해준다.

“다음 주라…….”

뭔가 자신의 인생에 분기점이 될 것 같은 느낌에 창현이 다시 소파에 몸을 묻으며 TV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딸칵.

전화를 끝낸 태연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녀의 가슴은 콩닥거리고 있었다. 창현이 먼저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데이트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창현이가 내게 데이트를…….’

애써 두근거리는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태연.

그녀는 자신의 생일을 알고 연락을 준 창현이 고마웠다. 다른 멤버의 생일을 챙겨주는 모습을 보고 설마? 하기는 했지만 알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그녀였다. 그런데 창현이 자신의 생일을 알고, 만나서 축하해주겠다는 말을 하자 뛸 듯이 기뻤다.

“그런데 목소리가 조금 잠긴 것 같았는데.”

창현이 일부러 밝게 목소리를 냈지만 억지로 바꾼 목소리의 한계는 존재했다.

태연은 창현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가 무슨 우울한 일이 있었는데 애써 밝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설마 그때 우리가 때린 것들 때문에?”

창현이 프로듀싱을 할 때 괴롭혔던 기억을 떠올리며 태연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날 조금 과하게 응징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아니겠지. 하지만 창현인 사춘기고 여러 고민이 많을 거야. 걱정거리는 있겠지.”

언제나 늘 성숙한 모습만 보여주었기에 동생이 아닌 오빠처럼 느껴지던 창현의 모습을 상기하며 태연은 그가 이제 열여섯 된 소년이란 걸 인지한다.

데뷔도 하고 그랬으니 나름대로 걱정이 많으리라.

“다음 주에 만나면 창현이도 즐겁게 놀게 도와줘야겠다.”

두 손을 불끈 쥐며 각오를 다지는 태연의 귀에 주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연 언니 빨리 나오세요. 밥 먹으러 가야죠. 언니들이 늦는다고 아우성이에요.”

“응? 어, 응. 지금 갈게.”

허겁지겁 소지품을 챙기며 태연이 연습실을 벗어났다.


미국 진출 이야기를 두고 고민하는 동안 창현의 일상은 흘러갔다. 그중 창현을 놀라게 만든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다크 스타에서 AA엔터테인먼트에게 팬 미팅을 하면 안 되겠냐고 제안을 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다크 스타가 생겨난 지 일 년이 넘었고, 그동안 공식적인 활동은 현의 앨범이 나올 때 구매를 촉구하는 내용의 것밖에 없었다.

다크 스타 측에서는 좀 더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동안 AA엔터테인먼트와 현이 워낙 잘해왔기에 다크 스타가 이렇다 할 활동을 할 명분이 없었다. 말 그대로 현의 팬 카페 그 자체로만 존재하고 있던 것이다.

석규는 현의 팬 중에서 다크 스타 회원들이야 말로 그의 인기를 지탱해주는 근원적인 존재라 생각하였기에 팬 미팅 제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였고, 곧장 창현에게 자신의 의중을 전달하였다. 석규의 말을 들은 창현은 한동안 고민을 하다가 승낙하였다. 미국으로 가는 것이 결정된다면 팬 미팅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말이 나온 지금 이 시점에 한 번쯤 팬 미팅을 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였다. 창현도 팬 미팅이라는 것을 한 번 해보고 싶었고 말이다.

현의 미니 앨범이 나온 지 3주가 되었지만 아직도 그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감성을 자극하는 슬픈 멜로디에 매료되어 음원 차트 1위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었고, 앨범에 수록된 곡들 또한 상위권을 지키면서 현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

음악 활동을 위주로 하면서 창현은 학교도 열심히 다녔는데, CF나 화보 촬영은 2월 달에 대부분 끝을 냈기에 몇몇 추가로 들어온 것들을 검토하는 과정이어서 평일에는 학교에 나가 성실하게 수업을 들었다.

당연히 현의 인기는 폭발적이어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심지어 방과 후까지 창현은 마치 가시방석을 걷는 듯한 느낌으로 학교 생활을 해야만 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그가 유일하게 편하게 여기는 시간은 다름 아닌 점심시간이었다.

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교실을 벗어나는 창현은 학교 뒤에 마련된 정자에 나아가 휴식을 취하곤 했기 때문이다.

적막한 정자를 둘러보면서 창현이 몸을 기댔다.

“이제 여기에 와줄 주현 누나도 없구나. 지금은 몰랐는데 혼자가 되니 조금 쓸쓸하네.”

고기를 먹어보지 않은 승려와 고기를 먹어본 승려는 그 입장 차이가 확연하다. 한 번 고기 맛을 본 승려는 고기를 먹고 싶은 충동에 시도 때도 없이 시달리게 된다.

어찌 보면 창현이 고기 맛을 알아버린 승려와도 같았다. 철저하게 혼자일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지만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을 알아버린 지금 학교에서 혼자인 자신의 모습이 씁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 친구가 있다고 하여도 자신과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고 있었다. 연예인과 일반인이란 차이가 확실한 순간, 자신은 학교에서 외톨이나 다름없었다.

그랬기에 연예인 지망생이자 친한 누나인 주현의 존재가 그리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별 생각을 다하네.”

학교 점심시간에 정자에서 지내는 것이 일반화가 되었기에 창현은 싸온 도시락을 열고 점심을 해결한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끝나기 약 5분 전에 매점에 들려 포도주스를 마시면서 교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정규수업이 모두 끝나면 회사에서 온 벤이 학교 앞에 대기한다. 부잣집 도련님이 따로 없었다.

금요일 방송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한 창현. 요즘은 현이 대세라는 말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토요일 음악방송도 끝내고, 검토 끝에 받아들인 화보 촬영만 남았기에 간단한 미팅 후 집으로 복귀한 창현이 물 한컵을 마시며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네.”

내일이면 3월 10일. 태연과 만나기로 한 날이 다가온 셈이다. 어제가 바로 태연의 생일이었기에 전화로 생일 축하 인사를 건넨 창현은 내일 약속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밖에 나가 논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였던 것이다.

“에구, 벌써 밤이네. 일찍 자야지. 아직 키가 크려면.”

시간을 확인한 창현은 이른 밤이었지만 잠자리에 들었다.

아직은 한창 클 나이였기에 키가 작은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자 밤이 되면 일찍 자는 버릇을 들여놓은 창현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아침이 되자 일찍 일어난 창현은 아침부터 해결한 뒤 샤워를 하였다. 그리고 머리를 말리면서 입을 만한 옷을 고르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티. 예전을 생각나게 해주는 옷이었다.

“에이, 설마 이걸 입고 오겠어? 그럼 이걸로 하자.”

무난한 옷을 고른 창현은 머리를 말린 뒤 옷을 입고 안경과 모자를 썼다. 아무래도 연예인이 되었으니 주변 사람이 알아볼 것을 염려하여 변장을 해야 했는데, 썬글라스는 나 수상한 사람이오, 하는 기색이 강했기에 창현은 모자를 눌러 쓰고 안경을 쓰는 변장을 주로 하였다. 그것만으로 변장이 되는 까닭은 창현의 머리 스타일이 방송에서는 주로 얼굴을 돋보기이게 하는 헤어 스타일이었기에 모자를 눌러 쓰면 긴 머리가 눈을 가리기에 섣불리 얼굴을 식별하기가 어려워진다.

옷을 모두 입고 거울을 보니 방송에서의 모습과 전혀 다른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성공적인 변장에 창현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이걸로 변장은 완료.”

시간을 확인하니 열시가 되었다. 아침을 먹고 샤워를 한 뒤 옷까지 고르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흐른 것이다. 게다가 약속 시간에 철저한 편이다 보니 지금 시간에 나가면 딱이다.

“늦을 리는 없을 테니 오랜만에 걸어보자.”

연예인이 된 후 이렇게 해볼 시간이 거의 없었기에 지금 이 순간이 유난히 즐거운 창현이었다.

휘바람을 불며 창현이 약속 장소로 나섰다.


태연도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현과 데이트를 한다는 사실이 그녀로 하여금 아침 일찍 일어나게 만든 것이다.

일어나서 시간을 확인하니 여덟시 반이다. 평소 주말에는 아홉시나 열시쯤에 일어나니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셈이다.

“너무 일찍 일어났나?”

고개를 갸웃해보지만 이리저리 준비를 해야 하니 그리 일찍 일어난 것은 아니다.

사뿐하게 자리에서 일어선 태연은 그대로 화장실로 향한다. 우선 세면을 해서 잠을 쫓아버린 뒤 본격적으로 씻기 시작한다.

머리를 감고 나온 태연은 소파에 앉아 TV 시청을 하고 있는 효연과 주현을 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어째 주말에도 일찍 일어나냐.”

멤버들 중에서 가장 부지런한 것이 바로 두 소녀였다. 그것은 휴일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아침에 방영되는 프로그램을 보며 웃음을 짓고 있었다.

“언니도 일찍 일어나시는 편이잖아요. 그런데 벌써 씻으시네요? 아, 오늘 약속 있다고 하셨죠?”

소녀시대 내에서 가장 먼저 태어난 사람답게 태연은 준비성이 철저하였다. 누구처럼 몰래 외출을 하다가는 호기심이 왕성한 멤버들 중 누군가가 미행할 확률이 높았기에 태연은 창현과 약속을 잡은 직후 오늘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고 먼저 선수를 친 것이다. 때마침 태연의 생일 시즌이었고,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친구들과 만난다는 말에 멤버들은 의심없이 태연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랬기에 이렇게 당당하게 씻고 준비할 수 있던 것이다.

머리를 말리며 그녀도 옷 선정에 고민을 한다.

그러다가 그녀의 눈에 티 하나가 들어온다.

그것을 본 태연이 눈을 빛내며 그것을 고른다.

그리고 순간 고개를 갸웃하다가 피식 웃음을 짓는다.

“에이, 설마 이걸 입고 오겠어? 그럼 이걸로 하자.”

근거 없이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며 옷을 고르는 태연.

옷 선정이 모두 끝나자 곧장 옷을 입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하니 아홉시 삼십분이었다.

‘아침이나 먹고 가야겠다.’

처음부터 제대로 놀려면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

주방으로 간 태연은 찌개가 있는 것을 보고는 거실에 있는 소녀들을 향해 물었다.

“얘들아! 찌개 이거 누가 한 거야?”

“미영 언니요.”

그러자 곧장 들려오는 주현의 대답.

“…아침은 거르자.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사먹으면 되겠지.”

미영이 찌개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침 식사를 깔끔하게 포기하는 태연. 차라리 밖에서 간단한 삼각김밥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는 TV 시청 대열에 합류하여 한동안 깔깔거리다가 열시가 조금 넘자 자리에서 일어난다.

“얘들아 난 나갔다올게.”

“그래, 너무 늦지 않도록 해.”

“언니, 일찍 오셔야 해요.”

“알았어.”

간단하게 대답을 한 태연이 집밖으로 나온다.

하지만 그녀는 곧장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가지 않았다.

약 오 분여 동안 복도에 서 있던 태연.

그러자 닫혀있던 집안 문이 스르륵 열리면서 유리와 순규가 밖으로 나오려 한다.

그 모습을 본 태연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집밖으로 나오려던 유리와 순규가 자신들을 보고 웃음을 짓고 있는 태연의 모습에 움찔한다.

태연이 가소롭다는 듯, 두 사람을 보면서 말했다.

“내가 수연이를 미행하자고 주모했는데 너희에게 당할 것 같아? 친구들이랑 만나러 가는 거니까 미행할 생각은 일찌감치 접어두시지.”

“쳇!”

“태연이가 제법이네.”

자신들의 생각을 꿰고 있자 유리와 순규가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집안으로 들어간다.

보아하니 다시 나올 것 같지 않았기에 태연은 그제야 엘리베이터를 타고 약속 장소로 향한다.

분수대광장에 도착하니 열시 사십 분 정도가 되었다. 이십 분 정도 일찍 왔지만 약속 시간 전에 오는 창현이었기에 태연이 두리번거리며 창현을 찾았다.

그러다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한 사람.

그 모습을 본 태연의 표정이 급변한다. 그녀의 눈에 너무나 익숙한 옷차림이 들어온 것이다.

“서, 설마.”

그러면서 다가가는 태연.

저쪽에 서 있던 창현도 누군가의 접근을 느꼈는지 시선을 태연 쪽으로 옮긴다.

순간 마주치는 두 사람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서린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손을 들어 서로를 가리키는 두 사람.

놀라움이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차, 창현이 네가…….”

“누, 누나도…….”

두 사람이 놀라는 이유.

그것은 다름 아닌 둘이 첫 데이트를 했을 때 입었던 분홍색 후드티를 같이 입고 왔던 것이다.

졸지에 커플티를 입게 된 두 사람이었다./

창현과 태연의 얼굴에 황당함이 서렸다.

“에구! 설마 누나도 이 티를 입고 나올 줄이야.”

“나도 네가 이 옷을 입고 나올 줄 몰랐다고.”

나란히 분홍색 후드티를 입은 두 사람은 절로 시선이 집중시킬 만큼 강렬한 마력을 풍기고 있었다. 모자와 안경을 쓴 탓에 얼굴이 자세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드러난 얼굴만으로도 상당히 잘생긴 창현과 하얀 얼굴에 작은 체구를 지닌 태연은 무척 귀여운 외모를 하고 있던 것이다.

자신들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느끼고는 창현이 태연에게 말했다.

“이크! 일단 안으로 들어가죠, 누나.”

“그, 그래.”

태연도 자신과 창현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느꼈기에 멀리 떨어지지 않은 CGV안으로 들어갔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두 사람은 한눈에 보아도 영락없는 커플이었기에 시선이 절로 집중되고 있었다.

창현은 태연을 보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누나가 그 옷을 입고 나올 줄은 몰랐어요.”

“나도 네가 그 옷을 입고 나올 줄 몰랐다고.”

서로에게 뭐라 말해봤자 피차일반이었다. 두 사람 모두 옷을 고를 때 아이러니하게도 옷을 고르다가 분홍색 후드티가 눈에 띄었고,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이 이걸 입고 나올까 싶어 옷을 골랐던 것이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같은 옷을 입고 나오게 되자 황당해하는 한편, 뭔가 알 수 없는 끈으로 이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영화표를 구매할 층으로 올라가면서 창현이 태연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누나, 저번년도에 받았던 그 커플 이용권 잘 사용하셨어요?”

창현의 물음에 태연이 무언가가 떠오른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후! 사용하긴 했는데… 그때 내가 너랑 괴물 봤잖아? 그것 때문에 멤버들한테 얼마나 시달렸는데. 막 누구랑 봤냐고 윽박질러서 한동안 고생했어. 그래도 커플 이용권 마음껏 사용하라고 하니까 간신히 조용해지더라.”

“쿡쿡! 고생 좀 하셨겠네요.”

소녀들이 태연을 향해 윽박지르는 모습을 떠올린 창현이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태연의 눈 꼬리가 확 치켜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본 창현은 재빨리 웃음을 멈추었다.

“흠흠! 그런데 뭘 볼까요?”

영화 목록을 보며 묻는 창현. 영화 종류가 무척 많았기에 고르는데 시간이 걸릴 듯했다.

한동안 영화 선정을 하던 태연은 무언가를 발견한 듯 눈을 빛내며 영화 포스터를 가리켰다.

“저거 보자. 저거 어때?”

“저거요?”

태연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옮긴 창현은 영화 포스터를 보고는 웃음을 지었다.

“누나 코미디물 좋아했어요?”

“난 저런 거 보면 안 돼?”

창현의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새초롬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창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냥 의외여서요. 그럼 저걸로 보도록 하죠.”

매표소 앞으로 간 창현이 티켓을 주문했다.

“복면달호 청소년 두 표요.”

태연이 고른 영화는 다름 아닌 복면달호였다. 상당히 인기가 많은 영화였기에 오후 두 시에 하는 표를 구할 수 있었다.

창현은 태연에게 표를 건네면서 말했다.

“아직 열한시 전이니까 세 시간이나 죽여야 되네요. 어떻게 할까요?”

창현의 말에 태연이 잘됐다, 라는 표정을 짓더니 창현에게 말했다.

“그럼 우리 오락실 가자. 저번에 너에게 패배했던 걸 복수하기 위해 내가 수련에 수련을 거듭했다. 오늘 네 눈에서 피눈물을 뽑아주겠어!”

“절 이기려고 수련을 했다고요?”

자신만만한 태연의 모습에 창현의 입가에 가소롭다는 미소가 맺혔다.

저번에 오락실에서 게임을 했을 때 결과가 어떠했던가! 창현의 전승이 아니었던가.

그런 창현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태연이 도끼눈을 하며 말했다.

“게이머는 게임으로 말하는 거야! 어서 오락실로 가자. 오늘 너에게 패배의 쓴잔을 들이키게 해주지.”

“누나의 생일이라고 해도 제가 봐주는 일은 없을 겁니다.”

“바라던 바야.”

창현과 태연은 보무당당하게 오락실로 향했다.


오락실에 도착한 두 사람은 먼저 동전을 바꾼 뒤 곧장 게임에 돌입하였다.

두 사람이 먼저 한 게임은 킹오브파이터97이었다. 태연이 창현에게 가장 먼저 패배의 쓴잔을 들이켜야만 했던 게임이었던 것이다.

태연이 앉아서 창현에게 손을 까딱이자 창현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동전을 놓고 게임에 임했다. 그의 캐릭터 구성은 저번에 그러했던 것처럼 유리, 마이, 아테나를 골랐다.

그런데 태연은 아무 캐릭터도 고르지 않는 것이 아닌가?

창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태연을 바라보았는데, 그 순간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태연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창현의 시선을 느낀 태연의 입가에 맺힌 미소는 더욱 짙어졌고, 창현이 무언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그녀의 놀라운 플레이가 선보여지기 시작했다.

1p 버튼을 꾹 누른 태연이 조이스틱을 좌우로 네 번 흔들더니 A버튼과 C버튼을 동시에 클릭했던 것이다.

동시에 화면이 뒤집히면서 새로 등장하는 캐릭터. 그것은 바로 초 이오리였다.

창현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져나갔다. 초 이오리는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일명 사기 캐릭터가 아니던가?

태연의 놀라운 플레이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창현의 놀란 표정을 즐기듯 바라보던 그녀는 다시 1p 버튼을 누른 뒤 조이스틱을 위아래로 네 번 흔들더니 B버튼과 D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다시 뒤집히는 화면. 이번에 등장한 캐릭터는 바로 초 레오나였다.

설마하니 이 초월 캐릭터들을 고르는 방법을 알고 있을 줄이야.

초 이오리와 초 레오나는 빠른 스피드를 지니고 있었기에 상대하기 무척 까다로운 캐릭터들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태연은 다시 한 번 1p 버튼을 누르더니 조이스틱을 ↓→↑←↓→↑↓로 움직이더니 B와 C버튼을 동시에 누른 것이다.

다시 한 번 뒤집히는 화면. 놀랍게도 태연은 마지막 초월 캐릭터인 초 야시로, 초 셀미, 초 크리스까지 고를 줄 알았던 것이다.

“후후후! 절망에 빠져보라고.”

태연은 얼빠진 창현의 표정을 힐끗 보더니 아주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베니마루와 초 이오리, 초 크리스를 골랐다. 킹오브파이터97 최강의 엔트리가 구축되는 순간이었다.

‘쉽지 않겠는걸.’

하나하나가 모두 사기 캐릭터였기에 창현은 긴장하면서 게임을 임했다.

게임은 아주 치열했다. 그리고 창현은 태연이 정말 엄청난 연습을 쌓아왔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저번 게임 때 창현은 아테나 하나로 태연을 올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판은 세 번째 캐릭터인 마이까지 나왔고, 치열한 접전 끝에 마지막 필살기를 먹임으로써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이다.

“말도 안 돼!”

거의 반칙에 가까운 수법으로 초호화 캐릭터를 고른 자신이 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지 머리를 움켜쥐며 절망하는 태연.

그 모습을 보며 창현은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후우! 정말 실력이 늘긴 늘었군요. 하지만 아직 역부족입니다. 흐흐!”

“이익!”

그런 창현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태연은 동전을 넣고 재대결을 신청하였고, 또 다시 사기 캐릭터를 골라 게임을 진행하였다.

이번에도 창현의 승리. 하지만 그것이 태연의 승부욕을 더욱 불사르게 했는지 태연은 다시 재대결을 신청했고, 그런 태연의 파이팅에 압도되고 말았는지 결국 창현이 패배하고 만다.

“윽, 졌다.”

“아싸! 내가 이겼다!”

자신이 승리하자 매우 기뻐하는 태연.

그런 태연의 모습을 힐끗 본 창현은 재대결을 신청하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자 태연이 당황한 얼굴로 창현을 바라본다.

“뭐, 뭐야? 재대결 안 해?”

창현이 히죽 웃음을 지었다.

“누나가 너무 잘해서 재대결 할 의욕이 안나네요. 열심히 하세요.”

분명 자신이 한판 이기기는 이겼는데 승리의 기쁨보다 뭐랄까, 먹튀를 당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분을 내색하기 싫었는지 그녀가 고개를 홱 돌린다.

“흥! 그래봤자 내가 이겼다고.”

그러면서 컴퓨터랑 투닥거리다가 재미가 없었는지 구경하던 사람에게 양도하고는 창현이 하는 게임에 도전을 한다.

결과적으로 연습한 태연이 연습한 것은 킹오브파이터97이 전부였나보다. 다른 게임은 전과 다름없이 창현이 압도적인 승리를 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승부욕을 가지고 게임을 했지만 나중에는 순수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한바탕 오락실에서 게임을 한 창현이 태연에게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펌프도 하고 싶지만 그러다가는 들킬 수 있으니 이만 점심 먹으러 가는 게 어때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그래, 점심 먹으러 가자.”

오락실에서 묵은 스트레스를 상당히 풀었기에 태연의 안색은 밝았다. 창현도 오랜만에 사람들 많은 곳에서 마음껏 게임을 하다 보니 상당히 스트레스가 풀린 상태였다.

“돈까스 전문점 있던데 돈까스나 먹으러 갈까요?”

“응! 돈까스 먹으러 가자, 그럼.”

미영이 찌개를 했다는 말에 아침을 거른 태연은 창현의 말에 눈을 반짝이며 찬성을 한다.

“예이! 그럼 돈까스로 하시지요.”

태연의 열렬한 지지 하에 돈까스 전문점으로 향했고, 점심을 먹은 뒤 영화를 즐겁게 관람할 수 있었다. 코미디 영화였기에 웃음을 지으며 일상속의 묵은 지루함을 해소시킬 수 있었다.

영화를 본 뒤 두 사람은 보드 게임방으로 가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여러 보드 게임을 즐기다가 저녁도 먹자는 창현의 말에 조금 이른 저녁식사를 함께 하였다. 그리고 저녁식사 후 두 사람은 거리를 걷게 되었다.

태연은 오늘 무척 즐거웠다. 창현과 함께 즐겁게 놀아서 그런지 몰라도 연습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버린 듯했다.

‘오늘 무척 즐거웠는데. 고마움의 인사라도…….’

창현에게 인사를 건네려던 태연은 순간 멈칫하였다. 자신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을 거란 생각과 달리 창현의 표정이 흐릿했던 것이다.

태연은 직감적으로 창현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홉 소녀 중 리더로 뽑힌 것은 단순히 그녀가 생일이 빨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멤버의 이상 변화를 금방 알아낼 만큼 관찰력이 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에 리더로 뽑힌 것이다.

그녀는 창현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창현아,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거야?”

태연의 물음에 길을 걷던 창현은 순간 움찔했다. 그리고 태연을 바라보자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창현은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너무 티가 났나.’

그런 창현의 모습을 보면서 태연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커피숍을 발견하고는 창현에게 말했다.

“무슨 걱정이 있는 것 같은데 이야기 해보지 않을래? 저기 커피숍에서 이야기 좀 하자.”

태연의 말에 창현이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커피숍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계산을 하겠다는 창현의 말을 물리친 태연은 생과일 딸기주스 두 잔을 시키고, 창현에게 딸기주스를 내민다.

창현을 한차례 본 태연은 딸기주스 한모금을 마시며 말했다.

“무슨 걱정이 있는 것 같아. 저번에 통화할 때 목소리도 어두웠고. 고민이 있으면 내게 털어놓지 않을래? 내가 체구는 작아도 소녀시대의 리더고, 멤버들의 고민을 곧잘 상담해주곤 했거든. 어렵지 않으면 내게 이야기해봐.”

여태까지 보여주던 모습과 달리 성숙한 누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태연이었다.

그런 태연의 말에 창현은 한동안 침묵을 한 채 조용히 딸기주스를 마실 뿐이었다. 그러자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 침묵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딸기주스를 한 모금 마신 창현이 입을 열었다.

“저… 미국 갈지도 몰라요.”

“…….”

창현의 말에 태연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방금 전 흘러나온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일순간 이해가 되질 않았던 것이다.

“미, 미국? 미국은 왜?”

“미국 대형 기획사에서 제의가 왔어요. 미국에 진출할 생각이 없냐고요.”

“미국 기획사에서?”

미국 기획사에서 제의를 했다는 말에 태연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공개 데뷔를 한 것이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었는데 벌써 미국 기획사에서 러브 콜이 오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놀라는 태연의 모습에 창현이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갈지 안 갈지 잘 모르겠어요. 미국이란 곳이 워낙 만만치 않은 곳이잖아요.”

“그거야…….”

창현의 말에 대꾸해주려던 태연이 말끝을 흐렸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게 떠오른 것이다.

솔직히 아직 데뷔도 못한 자신이 무어라 창현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단 말인가?

순간 태연은 자신과 창현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자신은 이제 데뷔를 위해 준비하는 연습생 신분… 그리고 창현은 이미 한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는 가수이자 미국 진출까지 노리고 있는 톱스타였다.

태연이 말끝을 흐렸지만 창현은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한 듯,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누나도 아시겠지만 제가 소속사 사장님이 바로 저희 아버지세요. 아버지는 제게 결정권을 맡기셨어요. 미국의 진출 여부를 놓고. 세계적이라 불리는 미국 시장의 진출을 놓고 말이에요.”

그러면서 다시 딸기주스를 잡고 마시는 창현.

태연은 딸기주스를 잡고 부들부들 떨리는 창현의 손을 볼 수 있었다.

그녀가 창현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불안한 거야?”

태연의 말에 창현의 눈이 떨렸다. 그리고 시선을 아래로 내린다. 떨리는 자신의 손이 보인다. 하,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몸이 반응을 보인 것이다.

창현은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네. 너무 불안해요. 전 자신할 수 없어요. 아버지의 말처럼 이것은 엄청난 기회라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가서 제가 성공할 수 있을까요? 실패하게 되면? 실패하게 되면 전 어떻게 될까요?”

태연은 창현의 말을 들으면서 그가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누구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법이다. 하지만 창현처럼 예민하게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 톱스타로서 팬들이 가지는 기대감 때문에 가지는 감정일까? 아니다. 태연이 보기에는 창현은 아직 톱스타로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자각이 부족한 편이다. 그렇다는 건 지금 창현이 불안해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왜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제가 여태까지 모두 성공을 해왔으니까요. 전 사람들의 기대가 두려워요. 누나도 이 말 알죠?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고. 제가 미국으로 간다고 하면 사람들은 기대를 하게 될 거예요. 현이 미국에 가서 뭔가를 할 거다. 아니, 뭔가를 해야만 한다. 이런 식으로요.”

이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로서 성장했기에 그의 말은 틀린 것이 없다.

하지만 태연은 창현이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한다는 걸 느꼈다.

그렇다는 건 창현에게 무엇인가가 있다는 뜻이 된다.

태연은 딸기주스를 한모금 마시면서 창현에게 물었다.

“창현아, 너는 음악을 좋아해?”

창현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물론이에요. 노래를 구상하면서, 노래를 작곡하면서, 노래를 작사하면서, 노래를 부르면서 전 제가 살아있다는 걸 느껴요. 노래가 없는 제 삶은 상상하기 싫을 정도로요.”

“그래…….”

창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태연은 대략적으로 그가 왜 이런 반응을 보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노래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다. 단순히 좋아서 하는 것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창현은 노래에 자신의 존재 자체를 걸고 있고, 성공의 여부가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음악을 너무 좋아하고, 주변 인물 없이 철저하게 외톨이였다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노래에 모든 걸 걸었다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건 정말 심각한 모습이었다.

평소 든든하고, 마치 오빠 같으면서 동생 같았던 창현이 지금은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모습으로 보였다.

태연이 창현에게 말했다.

“창현아. 네 음악 실력은 이미 대한민국에서 최고라고 볼 수 있어.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결정을 내리면 되지 않을까?”

자신보다 어리지만 창현의 실력은 정말 대단했다. 작곡 실력과 작가, 프로듀싱, 가창력까지. 노래에 관련된 모든 것들에 있어 부족함이 없었다.

이런 실력이라면 미국에 가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실패한다면?

지금 상태로 보아서는 유리처럼 깨질 것이 분명했다.

미국에 가지 않고 지금의 인기를 더욱 살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그러기엔 지금 온 기회가 너무나 좋았다. AA엔터테인먼트에서도, 창현으로서도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창현은 태연의 말에 딸기주스로 목을 축이며 말했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누나. 하지만 자신감을 갖기에는 세계란 곳이 너무나 넓고 실력자들도 너무나 많아요. 게다가 전 한국인이에요. 인종 차별이 적어졌다고 하지만 동양인인 제가 차별받지 않고 성공할 확률은 적겠죠. 제가 지금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실패를 하게 되면 사람들은 모두 절 외면할 거예요. 그렇게 되면 전 또 혼자가 되겠죠…….”

창현의 손이 눈에 띄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태연이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넌 혼자가 아니야!”

“……!”

태연의 외침에 카페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순간 집중되었다.

그런 시선에 신경 쓰지 않은 채 태연이 말했다.

“왜 너 스스로 혼자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도 있고, 네 선배인 주현이도 있어. 그리고 우리 멤버 하나하나가 널 지켜보고 있어. 걱정 하지마, 창현아. 다른 사람이 너를 봐주지 않아도 우리는 너를 봐줄게. 그러니 겁 먹지마. 평상시 창현이 너는 자신감에 넘치고 모든 일을 잘하던 엄친아잖아.”

태연의 말은 창현에게 있어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언제나 자신은 혼자라고 생각했다. 소녀시대 멤버들과 친하지만 자신이 실패를 하고, 밑바닥에 가라앉게 되면 그 인연도 끊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착각이었다. 위로 차원인지 모르지만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그 말은 창현에게 엄청난 힘이 되어주었다.

문득 창현은 자신 앞에 있는 태연을 바라보았다.

첫 감상을 말하면 하얗고 무척 귀엽다는 느낌이다. 올해 열아홉 살이라는 걸 누가 믿을까. 당장 자신과 동갑 혹은 동생으로 보일 정도였다.

키도 작고…….

이런 사람에게서 다른 여덟 명을 이끄는 리더쉽이 존재하다니. 게다가 방금 전 말은 자신에게 용기를 복 돋아주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나 고마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다.

한순간 자신의 옛 모습을 보인 것 같아서. 공식 데뷔를 하고 성공적인 무대를 치르면서 옛날의 모습을 모두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나보다.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창현은 태연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슥슥 머리를 쓰다듬었다.

태연은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창현의 모습에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너, 너 지금 뭐하는 거여.”

당황했는지 전라도 억양의 말투가 그대로 묻어나온다.

창현은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지으며 손을 떼었다.

“이렇게 작은 체구에서 어찌 그리 훌륭한 말이 나오는가 싶어서요. 하하.”

“뭐라고?”

태연이 눈을 치켜뜨려던 찰나, 창현이 자세를 바로하고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조언을 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누나.”

“흐음! 흠! 알겠어.”

창현의 말 때문에 화낼 타이밍을 놓쳤다.

“그럼 일어날까요.”

“그래.”

창현의 표정이 밝아진 것 같아서 태연은 한결 후련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숍을 나오고, 창현은 태연을 보며 말했다.

“잠시 저기로 가요.”

창현이 이끌자, 태연이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첫 만남이 이루어졌던 펫샵이었다.

펫샵에 도착한 창현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더니, 고양이를 가지고 나온다.

태연이 고양이를 보며 눈을 빛낸다.

“설마… 야옹이?”

“알아보시네요. 맞아요. 제가 스케줄 때문에 잘 돌봐주지를 못해서 여기에 종종 부탁을 하거든요.”

그렇게 말하면서 창현은 태연에게 고양이를 내밀었다.

태연은 그런 창현의 행동에 의아해하면서도 고양이를 받아들었다. 이제 더 이상 아기 고양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큰 고양이는 태연의 품에 안겨들었다.

“하! 부드러워. 컸는데도 여전히 귀엽네.”

그러면서 고양이 털을 쓰다듬는 태연의 모습을 보면서 창현이 말했다.

“이제 그 고양이는 누나 거예요.”

고양이를 연신 쓰다듬던 태연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

“누나의 말을 듣고 결심을 굳혔어요. 미국으로 가기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지켜봐주신다고 하셨죠? 그걸 믿고 미국으로 가보려고요.”

“…….”

태연이 할 말을 잃었다. 설마 자신의 말 때문에 결심을 굳혔을 줄이야. 지금 창현의 결심은 자신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스케일이었다. 그런 스케일의 결정을 자신 때문에 굳혔다고 하니 뭔가 부담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이 고양이는 제가 누나에게 드리는 선물이자 제가 한국에 남기는 증표에요. 설마 고양이 키우기가 어려운가요?”

“…으응? 아니, 딱히 어렵지는 않은데…….”

오히려 좋아할 멤버들이 수두룩했다.

그에 창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행이네요. 고양이를 키우는데 모든 필요한 장비는 제가 보내드릴게요.”

이렇게까지 말하니 거절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태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하고야 말았다.

“알았어. 네가 돌아올 때까지 잘 키우도록 할게. 너무 늦지 않도록 하고. 안 그럼 고양이가 주인의 얼굴을 잊어먹잖아.”

“그것도 그러네요. 하하!”

웃음을 짓는 창현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음일까.

입술을 삐죽이던 태연이 좋은 생각이 난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키우게 되었으니 이름도 지어야겠지? 야옹아, 네 이름은 앞으로 현이란다. 현!”

현이라는 글자에 유난히 악센트를 주는 그녀였다.

창현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고양이 이름을 현으로 하겠다고요?”

“창현으로 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 그거야 그렇지만…….”

확실히 그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그런 차원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태연은 그 이름이 마음에 드는 듯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아이구, 우리 현이 이름이 맘에 들었어요? 그렇고 말고. 우리 현이 참 귀엽네. 누구랑 다르게 말이야.”

“…윽!”

창현은 연신 현을 언급하는 태연의 모습에 신음을 흘렸다.

‘저건 분명 뒤끝이야. 내가 카페에서 머리 쓰다듬은 거 가지고 저러는 거야.’

자신을 보며 사악한 미소를 짓는 태연의 모습에 아까 전 일을 떠올리고는 씁쓸한 미소를 짓는 창현. 뒤끝이 제대로 작렬한 듯했다.

저번에 불량배를 만난 사건도 있었기에 창현은 태연을 숙소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아파트 앞까지 도착하자 창현이 태연을 보면서 말했다.

“우리… 현이 잘 부탁드리고요. 오늘 즐거웠어요.”

창현의 말에 태연이 빙긋 웃음을 지어보였다.

“나도 오늘 즐거웠어. 창현아, 잠깐 가까이 와볼래?”

“네? 네.”

태연의 부름에 가까이 가는 창현. 그 사이 태연이 창현에게 다가오면서 까치발을 살짝 들고는 그의 볼에 입을 맞춘다.

창현이 놀라 뒤로 한발자국 물러났다.

“누, 누나! 이, 이게 무슨?”

“미국 가게 되면 한동안 못 볼 거 아냐? 오늘 재미있게 놀아줘서 고맙고, 미국에서 성공하라는 부적이야. 그럼 잘 가.”

당당하게 일을 저질렀지만 부끄러운 감정은 어쩔 수 없었는지 태연이 고개를 푹 숙이고는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혼자 남게 된 창현은 자신도 모르게 손이 볼에 향했다.

어찌된 게 수연에게도 당하고 태연에게도 당한다.

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이런 부적이라면… 잊어버릴래야 잊어버릴 수 없겠네요.”

볼을 매만지는 창현의 입가에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AA엔터테인먼트로 향한 창현은 석규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저 미국 진출 해볼게요.”

창현의 말에 석규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흠! 미국은 여태까지 네가 상대해왔던 시장과는 다른 곳이다. 게다가 동양인이기에 차별까지 당할 수 있을 터. 괜찮겠느냐?”

“죽이 되던 밥이 되던 해보려고요. 이번에 제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어요.”

“흐음…….”

석규는 자신의 의견을 소신 있게 말하는 창현의 모습에 그의 안에서 무언가가 바뀌었다는 것을 느꼈다.

데뷔를 함으로써 창현이 자신의 약점을 극복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창현의 데뷔는 가뜩이나 예리한 그의 약점을 더욱 날카롭게 벼려놓은 꼴이 되었다.

검이 날카로우면 날카로울수록 그 강도는 약해지게 된다.

창현은 약점을 극복한 게 아닌 더욱 더 약점을 키워놓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석규는 미국 진출 여부를 놓고 결정권을 창현에게 맡겼다. 고민을 하게 만들고, 그의 내면에서 뭔가가 결정이 되기를 기다린 것이다.

사실 석규의 입장에서 미국 진출 여부를 놓고 보면 당연히 OK였다. 창현은 충분히 미국에서도 통할 재목이고, 실력 면에서도 부족함이 없다.

다만 걱정되는 건 실력에 비해 유리 같은 정신력이 문제였다.

처음부터 창현이 미국에서 잘 나갈 확률은 희박했다. 아시아 각국에서 인기를 얻었다고 하나 미국은 아시아 시장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방대하며 철저한 그들만의 음악이 있다.

천천히 밑에서부터 쌓고 올라가면서 정상의 자리를 노려야만 한다. 당장 빌보드 차트에서 동양 출신 가수의 존재가 없는 상황에, 당장 성과를 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미국 진출이 자칫 절회의 기회가 아닌 타초경사의 우를 범하는 수가 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창현이 확실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시간을 넉넉하게 줄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결정을 내리고 온 것이다.

그것도 그의 가장 큰 결점을 극복한 채로.

늘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혔던 창현의 모습을 석규가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결점을 극복하고 오니 석규로서는 환영하는 바였다.

“좋다, 해보자. 미국에서도 네 가능성을 보고 제안을 한 것이겠지. 사업적인 면은 내게 맡기고 너는 지금부터 미국 진출 준비를 하면 된다.”

창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석규에게 말했다.

“가급적이면 빨리 미국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제 결심이, 제 의지가 최고조로 타오른 지금 이 순간을 유지하면서요.”

이렇듯 의욕을 보이니 석규로서는 나쁠 것이 없었다.

당장 창현의 스케줄 표를 열어본 석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럼 최대한 빠르게 일정을 잡아보마. 미국 진출은 네게 무척 힘든 일이 될 게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임한다면 분명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일단 한국에서의 일정을 모두 잡아놓은 상태니 그것을 마친 뒤 곧장 미국으로 가자.”

“스케줄이 언제까지 잡혀 있죠?”

“3월말까지 잡혀있는 상태다. 팬 미팅과 CF촬영, 화보 촬영도 남아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준비하도록 할게요.”

창현의 눈은 의욕으로 가득했다. 석규는 그런 창현의 변화가 흡족한 한편, 조언 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혹여 친한 사람이 있다면 미리 말해놓도록 하여라. 미국에 가면 아무리 못해도 최소 반년은 있어야 해. 설마 한국에서 인연을 다 끊어버릴 생각은 아니겠지?”

석규의 말을 들은 창현이 뜨끔했다. 생각해보니 자신이 의욕에 불탄 나머지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있던 것이다.

그래봤자 자신이 아는 사람이라고는 학교 친구 몇 명하고 소녀시대 멤버들이 끝이다.

내심 자신의 대인관계를 한 번 돌아본 창현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좁은 대인관계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아니죠. 말해놓도록 해야겠네요.”

“그래. 그것은 네가 알아서 하도록 하고. 일단 미국 측과 접촉을 해서 일정을 짜도록 할 테니 네 활동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라.”

“알겠습니다.”

석규와 대화를 마친 창현은 집으로 돌아온 뒤 핸드폰을 들고 한동엔 고민에 빠졌다.

태연이 자신과 했던 대화를 흘렸을 확률은 없다.

만약 말했더라면 당장 문자와 전화가 쇄도했을 테니까.

그렇다는 건 결국 자신이 말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누구에게 먼저 연락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던 것이다.

가장 무난한 것은 주현이었다. 학교 선배였고, 연락도 자주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가 잔소리를 들을 것 같았다. 평소에는 무척 조용하지만 한 번 잔소리가 시작되면 무척 무서웠기에 창현은 주현에게 전화하는 것이 꺼려졌다.

그렇다면 수연에게? 이것은 애초에 처음부터 제외였다.

왜냐고? 그냥 무서워서 그렇다.

태연은 이미 말해놓은 상태였고, 미영은 뭐랄까, 조금 순수(?)하기에 이야기를 해도 파급 효과가 이상해질 수도 있다.

유리한테 말하면 왠지 약점을 잡히는 꼴이 되는 것 같았고, 순규도 최근 게임하면서 처참하게 발라주었기에 무서웠다. 수영과 효연은 알고 지낸 지가 불과 한 달밖에 되지 않았기에 중대사항을 먼저 털어놓기가 뭐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윤아 누나인데…….”

털털하고 뒤끝도 없으며 가장 무난할 듯한 사람이었다.

순간 머릿속으로 ‘윤아 너로 정했어!’ 라는 추억의 포켓 몬스터 대사가 겹치면서 창현의 핸드폰에 윤아 번호가 입력되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문자는 종종하곤 하는데 전화를 하는 것은 무척 오랜만인 듯했다.

막상 전화를 하려니 머뭇거려진다.

한동안 통화 버튼을 누를까 말까 고민하던 창현이 이내 결심을 굳힌 듯, 눈을 질끈 감고는 통화 버튼을 꾹 눌러버린다.

♩♪♬

컬러링이 아직도 <Go&Stop>이었다.

창현은 오랜만에 듣는 자신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윤아가 전화 받기를 기다렸다.

컬러링이 이어지기를 잠시.

약 삼십여 초가 흘렀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창현은 시간을 확인하고는, 지금 낮이라는 걸 깨달았다.

낮이면 연습을 하고 있겠지.

여태까지 전화하는 족족 통화가 이어졌기에 제법 자신이 있었는데 오늘 그 기록이 깨지는 듯했다.

왠지 모르게 아쉽다랄까.

“연습 중인가보네.”

나중에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창현이 막 전화를 끊으려 할 때, 갑자기 딸칵! 하는 소리와 음성이 들려왔다.

-헉! 헉! 여, 여보세요?

“어라, 받으셨네. 여보세요? 윤아 누나인가요?”

-후욱! 후! 응. 나 윤아 맞아. 전화 한 거 창현이지?

전화를 받는데 숨소리가 거칠다. 창현은 혹여 자신이 연습을 방해한 게 아닐까 염려되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맞아요. 그런데 숨소리가 거친 걸 보니 연습하시다가 도중에 받으신 거예요?”

-응? 아… 연습 방금 끝나서 휴식 시간 된 거야. 막 연습 끝나자마자 받아서 숨소리가 거칠었던 거고.

“아,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연습 방해한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한 거야?

간단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창현이 전화한 용건을 묻는 윤아. 그도 그럴 것이 여태까지 특별한 용건이 없는 한 문자로 연락을 하곤 했기에 창현의 갑작스러운 연락이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창현은 다소 긴장하며 윤아에게 말했다.

“아, 제가 연락한 이유는요. 누나에게 할 말이 있어서 그래요.”

-나한테? 뭔데?

묘하게 기대감이 서린 목소리였다.

창현은 그런 윤아의 목소리에 점점 간이 쪼그라드는 걸 느꼈다. 항상 그가 하는 말처럼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기 때문이다.

‘후우!’

최대한 숨을 몰아쉬면서 창현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게 사실은… 저 조만간 미국에 갈 것 같아서요. 미국 가기 전에 연락드리려고…….”

창현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갑자기 쾅! 하는 소리가 그의 귀를 강타했던 것이다.

그 소리에 창현은 귀가 아픈 것도 잊은 채 핸드폰을 잡고 소리쳤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하지만 대답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미, 미국이라고?”

창현의 말을 듣는 순간 너무 놀란 나머지 핸드폰을 쥔 손아귀에 힘이 풀려버린 윤아는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진 것도 모르는 채 한동안 충격에 빠져 있었다.

그런 윤아를 충격에서 헤어 나오게 한 것은 태연이었다.

뒤이어 들어온 태연이 윤아를 보고는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윤아야, 갑자기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야?”

“아!”

태연의 부름에 충격에서 헤어 나온 윤아는 그제야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발견한다. 그리고 핸드폰을 집어 들고 확인하니 통화는 끊겨 있었다. 다만 떨어진 충격 때문인지 액정은 깨지지 않았지만 겉 유리는 깨진 상태였다.

윤아는 태연을 보면서 말했다.

“언니, 방금 창현이가 전화 왔어요.”

창현의 이름이 나오자 태연의 표정이 바뀐다. 직감적으로 창현이 전화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어보았다.

“뭐라고 전화가 왔는데?”

“그, 그게… 창현이가 미국에 간데요.”

그렇게 말하면서 윤아는 태연을 힐끗 바라보았다. 자신도 듣는 순간 큰 충격을 받았으니 태연도 많이 놀라리라.

“그래?”

하지만 그런 윤아의 생각과 달리 태연의 표정은 담담했다.

너무나 담담한 태연의 모습에 윤아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려 할 때, 태연이 말했다.

“그나저나 핸드폰은 왜 떨어뜨린 거야?”

“창현이랑 통화하다가… 아!”

이야기를 하다가 그제야 도중에 전화가 끊겼다는 걸 알아차린 윤아.

태연은 윤아의 핸드폰 화면이 깨진 걸 알았기에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아무래도 창현이가 네게 말해서 우리들이 알게 하려고 한 것 같네. 내 걸로 전화해봐.”

“네, 고마워요, 언니.”

태연의 핸드폰을 받아든 윤아가 창현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컬러링과 함께 창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창현아 나야, 윤아. 핸드폰을 떨어뜨려서 통화가 강제로 끊어졌어. 그런데 미국 간다는 거 정말이야?”

내심 아니길 바라면서 묻는 윤아.

그러나 신은 현실을 그대로 인지 시켜주었다.

-…네. 자세한 건 모르지만 조만간 일정이 잡히면 미국으로 갈 것 같아요. 제가 이렇게 연락드린 것도 미국에 간다는 걸 말씀드리려고 그런 거예요.

“미국에는 왜 가는 거야?”

미국에 간다고 말하는 순간 왜 가는지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윤아였지만 창현에게 이유를 듣고 싶었다. 단순한 화보 촬영이라면, CF촬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창현의 대답은 그런 윤아의 기대를 말끔하게 종식 시켰다.

-미국 기획사에서 제의가 와서요. 제게 좋은 기회이기에 놓치고 싶지 않아서요.

“가면 얼마나 있을 건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이거였다. 미국에 가서 이것저것을 하게 되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 아닌가? 자칫하면 몇 년 동안 미국에서 머물게 될 경우가 있었다.

윤아의 질문에 창현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대답했다.

-잘은 모르지만 최소 반년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성과가 안 난다면 더 있어야 할지도요.

반년.

짧다고 보면 짧을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길게 보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다. 게다가 최소라는 말이 붙어있는 만큼 더욱 길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 그래? 그렇구나…….”

윤아의 목소리가 축 늘어졌다.

반년 동안 창현을 보지 못하게 되다니.

SM엔터테인먼트와 정식 계약을 한 이유로 가끔씩 들리며 간식을 사주던 창현이었다. 함께 웃고 떠들면서 여러 가지 조언도 듣고 노래도 부르는 그 시간이 무척 즐거웠는데 그것도 어려워지는 것이다.

윤아의 목소리가 기운을 잃어서 그럴까.

창현은 짐짓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도 무척 아쉬웠어요. 게다가… 누구에게 먼저 연락을 해야 할지도 고민을 많이 했고요. 여러 기준을 적용시키니 윤아 누나밖에 없더라고요. 못해도 반년… 무척 보고 싶겠지만 참아보려고요. 제가 한국에 돌아오면 누나들도 데뷔를 하겠죠? 기대할게요.

자신밖에 없다고 한다. 게다가 무척 보고 싶을 거라고 말해준다.

연인에게 해주는 의미가 아님에도 이미 창현을 보는 눈에 콩깍지가 씐 윤아의 귀에는 그 말이 마치 초콜릿처럼 달콤하게 들려왔다.

그러자 엄습해오던 막막한 기분이 조금은 가시는 느낌이었다.

“응. 나도 그래. 많이 아쉬울 것 같아. 다른 멤버들에게는 말했어?”

-아뇨. 아, 태연 누나는 알고 있을 거예요. 제대로 알려준 건 누나가 처음이고요.

처음이라는 말이 왜 이렇게 좋게 들릴까. 태연이 알고 있다고 하지만 안 좋은 이야기는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는 게 예의다.

“그럼 내가 다른 멤버들에게 말해줄까……?”

그것이 은연중 창현이 바라는 것 같기도 했고, 윤아도 다른 멤버와 창현이 전화하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았기에 자청하여 나섰다.

그러자 창현의 목소리가 한결 밝아진다.

-그래주시면 좋죠.

“응. 그럼 내가 말하도록 할게. 하지만 미국 가기 전에 한 번 들려서 얼굴 좀 비춰줘. 그래야 언니들이 덜 화날 거야. 그냥 가면 돌아올 때 단단히 각오해야 할 걸?”

-쿠, 쿨럭! 알았어요. 그렇게 하도록 할게요. 그럼 부탁할게요, 누나.

윤아의 위협이 적절하게 먹혔는지 창현이 기침을 터뜨리며 대답한다. 왠지 그 모습이 녹음실에서 관광(?) 당하던 창현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어서 윤아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맺히게 하였다.

처음에는 어두웠지만 한결 밝아진 얼굴로 윤아는 통화를 끝마칠 수 있었다.

전화를 마친 윤아는 태연에게 핸드폰을 건네면서 말했다.

“다른 언니들이랑 주현이는 모르죠?”

“응. 아직은 비밀인 것 같아서 말하지 않았어.”

“그럼 말해야겠네요.”

윤아의 말에 태연이 미소를 짓더니 묻는다.

“왜? 창현이가 잘 좀 말해달라 그래?”

“쿡쿡! 아주 겁에 질려 있더라고요.”

“걔가 솔직히 우리한테 장난치다가 좀 많이 혼났잖아? 알고 보면 우리가 얼마나 상냥하고 착한데.”

“그건 맞아요! 창현이가 코털만 뽑지 않으면 되는데 말이에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멤버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두 사람. 공통된 주제에 같은 비밀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한결 가깝게 느껴졌다.


3월은 창현에게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다.

미국 진출을 위해 일정을 타이트하게 조이다 보니 학교에 나갈 시간도 없이 부지런히 스케줄을 소화하기 바빴던 것이다.

석규가 미국 기획사 중 하나인 Jive 레코드와 계약을 채결하였고, 창현의 바람대로 최대한 빠른 시기로 앞당겨 3월말에 모든 활동을 끝낸 뒤 미국으로 가기로 결정을 보았다.

이에 따라 굿바이 무대도 3월 중하순으로 잡았고, 시청자들과 방송국 관계자들은 한창 폭풍가도를 달리고 있는 현이 음반 발매 한 달만에 굿바이 무대를 가진다고 하자 의아한 시선을 보낸다.

음악방송 게시판과 다크 스타 질문란에는 연일 현의 활동에 대해 묻는 질문이 쇄도하였고, 다크 스타를 잠시 둘러보던 석규는 창현을 보면서 말했다.

“창현아, 내일 오전에 다크 스타에다가 미국 진출 사실을 올리도록 해라.”

“그래도 될까요?”

아직 굿바이 무대도 치르지 않은 상태였기에 창현은 조금 이른 게 아닐까 싶어 의문을 표했다.

석규가 그런 창현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너무 감추는 것도 좋지가 않다. 이미 네 팬이나 여러 사람들이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있어. 게다가 네가 미국에 가기 직전에 사실을 알린다면 네 팬들이 일말의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다. 때마침 궁금증이 최고조로 증폭되고 있으니 내일쯤 터뜨리는 것이 좋을 듯 싶구나.”

창현에게 있어 석규는 아버지이자 가장 든든한 조언자였다. 그의 말을 들어서 손해본 경우가 없었고, 자신을 가장 걱정해주는 사람이었기에 순순히 조언을 받아들였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할게요.”

“아마 다크 스타에 올리면 곧장 기사란을 도배하게 될 거다. 그리고 내일 아는 감독의 결혼식에 가기로 하지 않았더냐? 아마 취재진이 몰려들 게다. 큭큭큭!”

내일은 평소 석규가 알고 지내던 젊은 감독이 결혼하던 날인데, 그 감독의 부탁으로 창현이 축가를 불러주기로 한 상태였다.

당연히 오전에 퍼진 정보로 인해 결혼식장에 취재진이 몰려들 것이고, 사람 모이는 걸 좋아하는 감독이니 만큼 취재진이 몰려드는 걸 좋아할 것이다. 아마도 말이다.

“뭐 굿바이 무대 이후로는 일주일 정도 휴식이니 그렇게 알도록 하고.”

한국에서 마지막 휴식이란 말이 된다. 창현은 생각보다 길게 휴식이 주어지자 미소를 지었다.

“네, 알겠습니다.”

“편안하게 휴식을 취해라. 미국에 가면 매일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테니까.”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어요. 최고가 되기 위해 쉼없이 전진할 거니까요.”

“너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창현과 석규는 서로를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들의 재능을 인정해주고, 용기를 복돋아주며 배려해주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변함없이 믿고 신뢰하는 아들의 모습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다음 날, 창현은 이른 아침에 일어나 다크 스타에 자신의 미국 진출 이야기를 올리고 결혼식에 참석하였다.

이른 아침에 올려진 게시글이었지만 그로 인해 언론은 난리가 났다.

게시글이 올라온지 채 삼십 분도 되지 않아 각종 포탈 사이트 뉴스란에 현의 미국 진출 이야기가 1순위로 떠오르며 기사 상위 댓글, 조회수 등에서 압도적인 면을 보이며 연예 뉴스란을 도배하였고, 몇몇 정보가 빠른 기자들은 오늘 현이 모 감독의 결혼식에 축가를 부르러 간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결혼식장으로 출동하였다.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라는 타이틀답게 축가를 성공리에 끝마친 창현은 결혼식이 끝난 뒤 기자들에게 붙잡히다시피 하여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인터뷰는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에 할 예정이었기에 창현은 석규가 당부한대로 미국 진출 여부만 이야기한 채 석규와 함께 결혼식장을 벗어났다.

짧은 인터뷰였고, 간단하게 인정하는 것밖에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대형 특종이었다.

현의 미국 진출이 사실상 인정되면서 그가 어디와 계약을 했는지, 현이 미국에 진출하면 어느 정도 치고 올라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되었고, 기사 중에는 여태껏 보이지 않았던 현의 부정적인 기사도 보였다.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팬층을 확고하게 다지지 못한 상태에서 미국 진출은 시기상조라는 식의 내용이었다.

굿바이 무대를 끝으로 창현은 짧은 휴식기에 돌입할 수 있었다. 일본에 있던 라샤도 창현의 미국 진출 이야기를 놓고 전화를 해왔기에 지금에야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우선 소녀시대 누나들을 한 번 만나보고… 방송 출연하면서 만났던 분들에게도 인사를 해야겠지.”

스케줄도 없었기에 돌아다니면서 일일이 인사를 하며 창현은 과거의 인연을 단순히 스쳐가는 것이 아닌 확고한 것으로 만들어나갔다. 특히 SM 엔터테인먼트에 들려 소녀시대 누나들을 만나던 순간, 창현은 왜 윤아에게 먼저 전화했냐고 엄청나게 구박을 받아야만 했고, 고양이를 싫어하는 누나들에게는 고양이를 맡겼다고 구박을 받아야 했다. 결국 고생 끝에 창현이 구박에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간식이 도착하고 나서였다. 새삼 간식의 위력을 실감하면서 한편으로는 간식보다 못한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인사를 끝마친 창현이 마침내 출국할 날이 다가왔다.

출국 전 기자 회견을 열었다.

수많은 질문에 대답을 한 창현이 마지막 남긴 말은 이러했다.

“그동안 성공 가도를 달려왔지만 미국이라는 세계적 시장을 상대하는 지금, 결과보다는 도전하는 자세를 취하고 싶습니다.”

결과에 집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날리는 말이 되었고, 미국으로 향하는 현의 태도를 사람들에게 인식 시켜주는 말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기자회견은 끝이 났고, 그가 미국으로 향하는 날, 다크 스타에서는 세계를 향해 날갯짓을 하는 현의 도전기라는 소개글로 그의 귀환을 기다렸다.

어둠 속에서도 찬란하게 빛났던 그의 노래가 세계를 향해 빛을 발하길 바라며.


Chapter. Zero. 외톨이.


내 어머니는 무척 상냥하셨다.

많지 않은 월급을 가지고 오시는 아버지를 늘 웃는 얼굴로 맞아주셨으며,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하신다고 말해도 웃음을 지으며 아버지의 성공을 응원해주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주변에서 잉꼬부부라고 부를 정도로 사이가 좋았고, 나는 그런 집안에서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연예계에 종사하는 아버지가 너무나 멋있어 보여 어릴 때부터 가수가 되겠다고 말하며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나갔다. 내가 잘하면 잘할수록 아버지는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셨고, 어머니는 늘 날 응원해주시며 부족함이 없게 나의 뒷바라지를 해주셨다.

너무나 행복한 나날이었다. 나의 꿈을 위해 전진할 수 있었기에 즐거웠고, 늘 웃음을 지어주시며 나를 맞아주시는 어머니와 얼굴에 피곤이 존재함에도 날 상대해주시는 아버지가 있어서 행복했다.

하지만 인생지사 새옹지마란 말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이 너무나 싫었다.

행복했던 순간이 깨지는 것은 찰나였다.

교통사고였다. 사람들이 늘 뉴스에서 접하는 소식이자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잊어버리는 그런 흔한 교통사고.

그러나 그 교통사고의 당사자가 된 입장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내 나이 열 살, 어머니가 음주운전을 한 차에 치여 돌아가셨다.

그 후 늘 웃음이 끊이지 않고 화목하던 가정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피곤하지만 어머니와 나를 볼 때마다 웃음을 짓던 아버지는 새벽 깊이, 아침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기 일쑤였고, 매일 전해주던 따뜻한 말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어머니의 빈자리가 컸기 때문일까.

아버지는 날이 가면 갈수록 사업에만 몰두하셨다. 그로 인해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항상 불규칙했고, 나와 아버지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극히 줄어만 갔다.

나는 언제나 피곤을 달고 사는 아버지에게 웃음을 되찾아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평범한 가정이라면 공부를 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했다. 그렇다면? 자신이 한 것은 음악이다. 악기를 연주하고, 작곡하는 법을 배웠다. 그래, 이것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선망하는 최고의 싱어송라이터가 되어보자.

그것이 내 결심의 시작이었다.

평소 하던 보컬 트레이닝을 하면서 작곡을 배우고 간간히 곡을 써서 나만의 곡을 만들어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대 실망이었다.

냉정하게 들어봤을 때 절대 만족스러운 곡이 아니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중독성 있게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부족했고 반복되는 리듬도 엉망이었다.

한마디로 모든 게 엉망이라는 소리였다.

나는 그 결과에 실망하지 않았다. 모두 처음에 할 때는 실패를 하는 법이니까. 실패할수록 더욱 더 작곡에 몰두하였고, 보컬 트레이닝에도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나는 내 노력이 헛된 것이 아니었을까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노래 실력은 늘지 않았고, 작곡 또한 뻔한 느낌의 것만 만들어졌다.

이것이 내 한계란 말인가? 아니다. 조금 더 노력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이를 악 물며 해온 시간이 삼 년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는데 반해 내 노래 실력과 작곡 실력은 답보에 답보를 거듭하고 있었다.

나는 지쳐갔다. 갈수록 아버지와의 대화는 단절되어만 갔고, 서로 얼굴 보는 것도 한 달에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노래 실력도, 작곡 실력도 늘지 않자 난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이대로 내 존재가 잊혀지는 게 아닐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난 철저하게 혼자였다.

활발하게 아이들과 어울리던 성격에서 오직 노래에 내 모든 걸 걸겠다는 생각으로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타인이 나의 영역에 들어오지 못하게 폐쇄 영역을 만들어 둠으로써 오로지 노래, 작곡, 노래, 작곡만을 거듭했다.

하지만… 하지만 삼 년 동안 발전이 없다. 주변 사람들도 지치고, 오로지 나만이,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조금 더 하면 한계치를 넘을 수 있을 거라고 위로하던 나조차도 스스로에게 지쳐갔다.

내가 노래를 버리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한 달에 보는 숫자라고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아버지. 지금 나의 존재를 기억이라도 하고 계실까?

내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노래였다.

처음 아버지에게 내가 만든 곡을 들려드리고, 노래를 부르던 순간을 떠올려보았다.

기뻐하시던 아버지의 모습. 흐뭇함과 대견함이 섞여 있던 그 시선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것이 미화되고 미화되어 나의 이상향이 되었다. 좋은 노래로, 좋은 곡으로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아야 만이 나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삼 년간의 답보였다. 내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았다. 하지만 그 한계를 벗어던지기란 요원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하다가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이 얼마나 절실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하릴없이 시간은 흘러가는데 내 실력은 늘어나지 않았다.

절망스러웠다. 그리고 세상이 미웠다.

왜 세상은 나에게 이 정도 재능밖에 내려주지 않은 것일까.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나의 존재를 입증할 실력을 왜 내게 내려주지 않은 것일까.

나도 내가 추구하는 것이 이상향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다. 기교 위주의 기계음이 난무하는 현재 음악계에서 사람의 마음에 진한 파문을 일으킬 음악을 만들겠다니. 강자가 하는 억지는 정의가 되지만 패자의 억지는 핑계에 불과하다. 자신은 패자였다. 기교도 따라주지 않고, 사람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킬 만한 작곡 실력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학교에서 나는 조용한 학생이었다. 아름다우셨던 어머니를 닮아 잘생긴 축에 속한 나는 여학생들에게 무척 관심을 많이 받았지만 내가 구축해놓은 영역에 발을 들이는 아이는 없었다.

성적은 누구보다 잘 나왔다. 아버지에게 나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 관리는 필수적이었기에. 하지만 여전히 내게 주가 되는 것은 공부가 아닌 작곡이었다.

곡의 콘티를 짜면 그 곡의 느낌을 살려줄 작사를 학교에서 한다.

내가 곡을 만들면서 유일하게 자신 있는 것은 작사 부분이었다. 곡을 만드는 실력이 늘지 않고, 노래 실력이 늘지 않아도, 그런 좌절과 슬픔은 나의 감수성을 더욱 예민하게 만들어주었고 그것은 가사로 승화가 되었기에 작가 실력은 날이 갈수록 늘어갔다.

여느 날처럼 평범하게 공책에 가사를 끄적거리던 시간이었다.

내 뒤에 누군가가 나타나더니 가사를 적던 공책을 낚아챘다.

갑작스러운 순간이었기에 나는 당황하며 뒤를 돌아보았고, 내 뒤에는 키가 무척 큰 녀석이 웃음을 지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의 이름은 윤민혁. 우리 반 동급생으로 소위 애들이 말하는 1학년 일짱이라는 녀석이었다. 덩치가 무척 커서 애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이 녀석은 자신이 일짱이라는 것을 이용해서 애들을 업신여기고 여기저기 참견을 안하는 곳이 없을 정도로 개차반인 녀석이었다. 다만 학급에서 창현은 무척 조용한 학생이었기에 부딪칠 순간이 없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나를 평소 고깝게 보았나보다. 낚아챈 내 공책을 팔랑팔랑 흔들더니 시비를 걸은 것이다.

“야, 강창현. 넌 맨날 뭐하는 거냐, 촌스럽게. 이건 뭐야. 나의 실패는 성공을 위한 나침반. 지금의 실패에 실망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 푸하하! 너 무슨 시 쓰냐?”

단단히 망신을 주기로 했는지 공책에 적힌 가사를 읽으면서 놀리는 어조로 말한다.

그 모습에 치밀어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공책 내놔. 그럼 조용히 넘어가겠어.”

하지만 그 말이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일짱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늘 애들의 두려움 가득한 시선을 받으며 왕처럼 군림하던 녀석에게 명령투의 말은 심기를 자극하는 것이었나보다.

윤민혁은 피식 웃음을 짓더니 공책을 보다가 글자가 적힌 첫 페이지와 마지막 페이지까지 체크하더니 그것을 손으로 쭉 잡아 찢어버린다. 그리고 그것을 구겨 던졌다.

탁!

얼굴에 닿은 구겨진 종이가 아프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왜 마음이 아프고 피가 끓는 걸까.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윤민혁이 말한다.

“그딴 말투 한 번만 더 쓰면 죽여 버릴 줄 알아. 어디서 계집애 같이 시 놀음이나 하고 있는 주제에 나한테 명령조로 말하는 거야.”

그것이 마지막 이성을 끊어지게 만들었다.

지금 이 녀석은 알고 있을까? 내 노래를, 내가 지난 시간 모든 노력을 기울인 것을 쓰레기 취급했다는 것을 말이다.

윤민혁의 말이 끝나는 순간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잡았고, 팔 힘을 이용하여 머리를 아래로 당기며 무릎으로 배를 찍어버렸다. 타고난 힘만 있다면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커헉! 컥!”

갑작스러운 공격에 윤민혁이 허리를 굽히고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그 공격이 끝이 아니었다. 여전히 머리를 부여잡은 채로 다시 한 번 무릎으로 배를 찍어버린다. 호흡이 곤란한지 기침을 터뜨리는 녀석을 바닥에 던져버린 뒤 발로 배를 강하게 밟아버린다.

그러자 축 늘어지는 녀석. 갑작스러운 싸움에 학우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내가 윤민혁을 개처럼 밟아버리자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본다.

멍청한 녀석들. 싸움은 깡이다. 깡만 있으면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데 지레짐작 겁을 먹고 저렇게 깨갱하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이 일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윤민혁이란 녀석이 워낙 문제를 많이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내가 학교에서 모범생이라는 것, 그리고 학우들의 증언이 있었기에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하아! 모든 걸 포기해야 하나.”

사 년간의 노력. 하지만 더 이상의 진전은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나도 지쳤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사업에만 몰두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내 안의 상처는 더욱 곪아만 갔고, 이제는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 나이가 이제 열넷. 아직 많은 걸 도전할 수 있는 나이였다.

하지만 이 나이가 되면 한 번쯤 자아정체성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

나는 노래에 모든 걸 걸었다. 내 존재의 입증을 놓고. 좋은 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내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몇 년째 답보 상태인 노래 실력과 작곡 실력.

회의감이 들었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포기란 곧 내 존재 입증을 포기하겠다는 말.

노래가 없는 나는 상상할 수 없었고, 포기하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자살까지 생각을 하였다.

먼저 떠나가신 어머니. 그리고 사업에만 몰두하시는 아버지.

예전의 화기애애한 집안이 미치도록 그리웠고, 서글펐다. 신이 내게서 행복을 앗아간 것 같아 원망스러웠고, 남들보다 조금 나은 정도에 멈춰버린 내 재능에 절망했다.

지독히도 우울한 나날의 연속이었고, 포기와 노력 사이에서 펼쳐지는 갈등의 연속이었다.

우울한 기분을 어떻게든 다스려보고자 배우던 악기가 금이었다. 그리고 부주의한 관리로 인하여 새 금을 사기 위해 악기점에 들르는 순간, 나는 강렬한 끌림을 느꼈다.

그 끌림의 끝에는 낡고 먼지가 뒤덮여 만지면 부서질 듯한 금이었다. 하지만 뭐랄까, 강렬한 끌임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무의식 중에 그 금을 향해 손을 뻗었고, 만져보게 되었다.

그러자 한순간 가슴이 상쾌해지며 지독하게 괴롭히던 우울한 감정이 말끔하게 사라지는 걸 느꼈다.

그것은 운명이었다. 나는 이 낡은 금에서 운명을 느꼈다.

망설임은 없었다. 운명이라 느끼는 순간, 나는 어느새 이 금을 들고 있었고, 계산을 하고 있었다.

이것이 음향총서와 나의 만남이었다.

금에서 흘러나온 세 권이 서적은 내게 새로운 음악의 지평을 열어주었고, 나에게 새로운 삶을 부여해주었다.

음악은 내 모든 것이었다. 나는 음향총서로 인하여 내 자신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음향총서의 존재로 나는 점점 밝아질 수 있었고, 사 년 동안 노력해온 것들을 모두 내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었다.

그동안 노력해온 것을 보상받고 내 존재 가치를 입증시킬 수 있게 도와준 음향총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운명임이 틀림없다.

나는 노래를 작곡함으로써 마침내 아버지에게 내 가치를 증명할 수 있었고, 얼굴 없는 가수로서 성공을 할 수 있었다.

내가 만든 노래는 대한민국을 뒤덮고 아시아 각국으로 퍼져 나가 거대한 폭풍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누나들을 얻을 수 있었다.



“하아!”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과거를 회상하다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치열했던 나날이었고, 회상할 때마다 웃음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안 자냐?”

옆에 앉아계신 아버지가 묻는다. 긴 비행시간인 만큼 내가 눈 붙이길 바라는 듯하다.

언제나 관심과 배려를 해주시는 아버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냥 하늘 보는 게 즐거워서요. 다시 돌아올 때도 저 하늘은 변함이 없겠죠.”

내 말이 두서가 없어서 아버지는 조금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셨다.

“무슨 뜬금없는 말이냐? 헛소리는 그만하고 자라.”

그러면서 아버지도 눈을 감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다시 밖으로 시선을 옮긴다.

푸른 하늘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내가 지금 갈 곳은 나라도, 사는 사람도 다른 새로운 세계다.

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음악이 아닌, 나의 가능성을, 나의 꿈을 위한 도전이었다.

나를 믿고 지켜봐주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내 모든 것을 불사른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기에.

더 이상 결과에 집착하던 내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만 있다면 실패도 두렵지 않다.

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푸른 하늘을 감상하며 서서히 눈을 감는다. 눈을 다시 뜨는 순간 나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될 것이다.




제26장 미국 진출




미국으로 진출한 창현은 모든 것이 낯설었다. 도시, 사람, 그리고 음식. 모든 것이 새로웠고,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서 보기 힘들었던 엄청난 높이의 빌딩들이 겹겹이 세워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창현은 자신이 미국에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초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곳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힘이 내심 얼마나 대단한지 느낄 수 있었다.

미국에 도착한 창현은 가장 먼저 계약을 채결한 Jive로 향했다. 그리고 회사에 들려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창현은 한국어를 포함하여 일본어와 중국어, 영어까지 4개 국어가 가능했다. 발음은 어설펐지만 듣는 능력은 문제가 없었기에 통역사 없이 대화가 가능했다. 석규도 어느 정도 영어 회화가 가능했다.

이미 계약을 채결했지만 세세한 것은 정하지 않았기에 이야기를 나누면서 앞으로 창현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설정을 하였는데, 우선 가수 현은 작곡과 작사부터 시작하여 직접 녹음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까지 가능한 일명 싱어송라이터였기에 자신의 곡을 자신이 부르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우선 미국에 거주하는 아시아계 사람들을 공략하면서 차츰 영역을 넓혀가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Jive에서는 염려하는 바가 있었다.

바로 창현이 싱어송라이터라는 문제가 그것이다.

미국의 거대 기획사인 만큼 Jive의 힘은 대단한 편이어서, 작정하고 지원을 해준다면 어느 정도 선까지 올라가는 것은 가능하다. 그 다음부터는 실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들이 대한민국에서 선풍적인 인기 몰이를 하고 있던 현을 지목한 것이다.

그들이 본 현은 찬란한 빛을 발하는 다이아몬드다.

그러나 그 다이아몬드도 가치를 발하는 사람에게나 고귀한 것이 되지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저 반짝이는 돌맹이에 지나지 않는다.

현의 작곡 능력이나 가창력은 분명 대단하다. 하지만 이곳은 미국이다. 이곳만의 장르가 있으며, 이곳 사람에게 맞는 음악이 존재한다.

대한민국에서 연달아 히트를 치며 좋은 곡들을 작곡한 현이지만 그의 노래는 미국이라는 곳에는 맞지 않는다.

그래서 곡을 기획사에서 구해주며 그것을 현이 부르는 식으로 하려고 했지만 역시나, 여태까지 성공가도를 달려온 탓에 그 부분을 타협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결국 타협을 본 것은 한 번씩 번갈아가면서 음반을 내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세부 일정까지 모두 짠 뒤 시차적응을 위해 며칠간 휴식을 취한 뒤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미국에 진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창현은 미국의 히트곡들을 연구하고 있었다.

정말 운빨로 성공한 히트곡을 제외한 다른 히트곡들은 깊게 들어보면 왜 성공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진국이랄까?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드는 그런 곡들이 많았다.

그것을 나름대로 듣고 연구하면서 창현은 자신이 미국으로 진출할 때 쓸 몇 가지 곡의 콘티를 짜놓았다. 그리고 본격적인 활동 준비를 하게 되면서 몇가지 조언을 받으며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발음 교정에 들어갔다. 창현의 영어 회화 능력은 미국 사람들에게 의미를 전달하는데 무리가 없었지만 미국인처럼 능숙하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 몇몇 발음은 한국에 없는 것들이었기에 중국어와 비슷하게 묘하게 어려웠다. 의미 전달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스페셜리스트하게는 안 되었던 것이다.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부지런히 곡을 준비한 결과, 4월 초중순에 모든 준비를 끝마치게 된다. 그리고 본격적인 녹음에 들어감과 동시에 PR을 시작했다.

우선 현이 동양인 출신이었기에 LA를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창현이 한국인이라는 것에, 동양인이라는 것에 한국인들과 중국인, 일본인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착실하게 인지도를 쌓아나갈 수 있었고, 4월 중순에 본격적으로 음반을 발매하며 활동을 시작하였다.

반응?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첫 음반 발매는 창현에게 많은 것을 깨우치게 해주었다.

창현의 곡은 미국에 거주하는 동양인들에게 가히 폭발적이라 할 수 있는 반응을 샀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히스패닉계 사람들과 백인, 흑인들에게 크게 어필을 하는데 실패했던 것이다.

이것은 딱히 곡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홍보의 부족함 때문이었다. 동양인들을 중심으로 홍보하다보니 다른 방면에는 소홀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번 곡은 Jive에서도 적정선에서만 지원을 해줬다.

이로 인해 창현은 홍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이미 라샤의 존재로, 전에 존재하던 히트곡의 존재로 인하여 홍보가 필요없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면서 데뷔를 할 수 있었지만 이곳은 미국이었다. 한국보다 수십 배 넓은 영토와 다섯 배가 넘는 인구가 살고 있는 곳이었다. 당연히 홍보가 부족하니 아는 사람이 적을 것이고, 아는 사람이 적으니 곡을 찾으려는 사람이 없다. 패배의 요인이 제대로 있던 것이다.

항상 창현의 옆에서 조언을 해주던 석규도 예상보다 낮은 반응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당초 계획했던대로 동양인들에게 어필하는데 성공했지만 미국의 주류라 할 수 있는 인물들에게는 어필하는데 실패했던 것이다. 동양인에게 너무 역량을 집중했던 나머지 생긴 실수였다.

빌보드 장르별 차트에 이름을 올리기는 했지만 빌보드 메인 Top 100에 이름을 올리는 데는 실패했다. 어쩌면 올라갔을 수도 있다. 거의 Top 100에 근접했었고, 그 다음 주에 충분히 진입이 가능할 수 있었지만 창현이 활동을 접었던 것이다.

창현은 자신의 실패를 인정했다. 첫 도전 치고 나쁘지 않은 성과였지만 늘 1위를 해오며 차트를 휩쓸던 그에게는 씁쓸한 실패였다.

한국에서는 창현의 첫 앨범이 빌보드 장르 차트에 오른 것을 보도했지만 그것마저도 자신의 실패를 알리는 것으로 여겼다. 결과보다는 도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내심 결과가 좋길 바랐는데 조금 아쉬웠다.

첫 싱글 앨범 활동을 접으면서 창현은 곧장 두 번째 앨범 작업에 착수했다. 아니, 싱글 앨범 활동 중에 두 번째 앨범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음 앨범은 창현이 작곡하는 것이 아닌, 미국 작곡가가 만든 곡으로 준비를 하는 것이기에 준비 기간이 짧았다.

5월 초중순에 첫 싱글 앨범 활동을 접자마자 새로운 곡을 들고 현은 다시 컴백했다. 이번 앨범 활동은 Jive에서도 적극적으로 밀어주었기에 홍보도 충분했고, 처음보다 발음도 크게 나아져 호평에 호평을 받았고, 컴백 2주만에 빌보드 차트 Top 67위에 이름을 올리는데 성공한다. 3주째에는 Top 56위를 기록했으며, 4주째 Top 35위까지 오른다.

Jive의 적극적인 지원과 창현의 노력, 그리고 미국인 정서에 맞는 곡이 어우러진 효과로 기인한 것이다. 첫 창현의 싱글 앨범으로 미국 내 동양인들의 지지가 밑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성과이기도 했다.

한국인으로서 빌보드 메인 차트 최고 등수였기에 한국에 대대적으로 보도가 나갔다.

현의 팬들에게 있어서는 정말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3월말에 떠난 그가 불과 두 달만에 이런 성과를 이룩하였으니 말이다.

엄청난 성과에 기뻐해야 하겠지만 창현은 기뻐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우울증에 가까운 우울함에 시달려야 했다.

지금의 성공 여세를 몰아 다음 곡도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던 것이다.

여태까지 창현이 성공가도를 달려오면서 그 성공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곡으로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성공은 자신의 곡이 아닌 Jive 소속의 작곡가가 작곡한 곡이다.

창현이 예상보다 더 성공을 하자 Jive에서는 당초 이야기와 달리 자신들의 곡을 받아 창현이 활동하길 바랐다. 이미 창현의 곡은 한차례 실패를 겪었지만 Jive에서 준 곡으로 성공을 했으니 그들로서는 이런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러나 창현은 완강했다. 그는 자신의 곡으로 미국에서 성공하고 싶었다. 그래서 쏟아져 나오는 곡들을 모두 체크하면서 보는 눈을 넓혀나갔고, 좀 더 자신의 기량을 키워나가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미국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면서 창현의 보는 눈은 점차 넓어져 갔다.

5월 중순.

빌보드 Top 100위 안쪽에 들면서 창현은 마침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자신은 정말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이다.

미국은 세계의 음악을 주도한다. 미국의 음악은 세계 곳곳에 퍼져 나가 각국의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데, 그것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창현은 여태까지 너무나 좁은 시야로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우를 범하고 있었다.

바로 한국에서 익힌 자신의 음악 틀로 미국의 음악을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간단하게 예로 설명하면 명품 나이키 신발을 짝퉁 나이스 신발을 보고 이해하려 든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자 창현의 보는 눈이 한층 더 넓어졌다. 미국의 음악을 들으면서 들리지 않던 부분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창현은 그동안 쓸데없이 고집하던 자신의 고집을 버려야 했다. 새것을 채워 넣기 위해 기존의 낡고 오래된 것들을 버려내는 과정을 그도 겪고 있던 것이다.

세계 그 어느 국가보다 다양함이 공존하고 있는 곳이 바로 미국이었다. 창현은 자신의 첫 싱글 앨범이 너무나 매니아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곡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너무 동양인들의 정서에 맞춰진 곡이었다.

그에 반해 뭐랄까, 그 다음 싱글 앨범은 미국의 주류라 할 수 있는 백인, 흑인들을 만족시키는 곡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 곡도 매니아적이라 할 수 있으나 미국의 주류는 엄연히 그들이었기에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리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렇게 되자 창현은 다소 오기가 발동했다. 동양인에 편중된 곡은 실패하고 백인, 흑인들에게 편중된 곡은 성공을 했다. 어찌 보면 방향 설정은 둘 다 같다. 단지 왼쪽이냐 오른쪽이냐에 따라 결과가 이렇게 달라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창현은 두 부류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곡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창현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동양인으로서 빌보드 차트 중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그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커져가면서 Dark Star(현의 미국 예명)를 찾는 방송이 부쩍 많아졌다. 창현은 그런 방송에 출연을 하면서 밤잠을 쪼개가며, 정말 이동 중에 수면을 취하고 밤새도록 곡의 콘티를 짜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때만큼 열정적으로 곡을 만든 적은 없는 것 같았다.

두 부류를 만족시키는 것은 마치 모순과도 같았다. 모든 것을 꿰뚫는 창과 모든 것을 막아내는 방패를 하나로 조합시켜야 하는 작업과도 같았다. 중간에서 타협을 이끌어내자니 그것은 어중간한 곡이 될 것이 분명하였고, 장점들을 추려내자니 이상한 곡이 되어버린다.

그럴 때 창현이 도움을 받은 것이 바로 Jive 소속 가수들이었다. Jive는 미국 대형기획사답게 미국에서 톱을 다투는 가수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팝의 요정이라 불리던 Britney Spears와 Backstreet boys같은 기라성 같은 가수들을 보유하고 있는데, 창현은 그들과 친분을 다지면서 자신의 음악성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후배인 창현에게 그들은 자신들의 노하우 몇 가지를 가르쳐주었고, 그것을 들으면서 창현은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게 됨으로써 한단계 도약의 발판을 딛게 된다.

그렇게 삼주간의 노력 끝에 마침내 창현은 하나의 곡을 만들게 된다. 만드는 기간은 삼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여태까지 음악을 배워온 자신의 모든 정수를 담아낸 곡이었다.

창현은 이 곡에 무척 만족을 했다. 이 곡이라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창현에게 한 가지 난관이 존재하게 된다. 바로 Jive에서 창현의 곡을 쓸 수 없다고 완강하게 나선 것이다.

창현의 가창력은 이미 Jive에서 인정하는 바였다. 동양인임에도 미국 내에서 그의 가창력을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지 않던가? 이 여세를 몰아나가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곡을 후속곡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Jive의 의지였다.

결국 창현과 Jive 사이에서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Jive에서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된다.

바로 Jive 소속 가수들에게 인정을 받으라고 한 것이다.

이는 창현이 만든 곡을 Jive 소속 가수들에게 들려주고, 그들에게서 시장성을 인정받으라는 뜻이었는데, 이는 창현을 무시하는 처사로서 그렇게 해서라도 창현의 성공가도를 이어나가게 하려는 Jive의 의도였다.

하지만 창현은 그 제안에 응하였다. 창현은 정말 이번 곡에 자신이 있었고, 충분히 미국에서도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서로가 끝까지 의견을 굽히지 않게 되자 결국 Jive에서는 심사를 위해 소속 가수들을 불러들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R.Kelly와 Britney Spears, Backstreet boys와 Usher, N'Sync 등 어마어마한 거물들이 창현의 노래를 심사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그들은 한창 떠오르는 Dark Star의 곡을 자신들이 평가해달라는 말에 호기심을 드러내며 기꺼이 심사위원의 자격에 응했다.

기라성 같은 가수들이 모인 자리.

그곳에서 창현은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발휘하여 노래를 시작했다.

밝음, 어둠, 기쁨, 슬픔, 상반된 소재들을 매끄럽게 이끌어낸 창현의 노래는 이미 톱 가수들에 비해 부족하지 않았고, 그의 곡은 미국인들의 정서에 아니, 국가가 아닌 한 사람의 정서에 무엇보다 접근성 있게 다가왔다.

노래를 들은 가수들은 하나같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칭찬하기 바빴다. 창현의 곡을 줄곧 반대하던 Jive 직원들도 감탄사를 연발하기 바빴다. 곡을, 노래를 들어보니 창현이 왜 그토록 자신했는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다른 가수들의 축복 속에, Jive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창현은 <Shield&Spear>라는, 모순을 그대로 영어로 번역한 곡을 준비하게 된다.

Jive에서는 이번 창현의 곡이 대박이라는 것을 직감하고서는 그야 말로 전폭적인 지원을 하게 된다.

기획사의 힘을 활용하여 발매되지도 않은 <Shield&Spear>에 사람들의 관심이 유도되게끔 마케팅을 하였고, 과연 대박이 일어날 징조가 보임으로써 지금 활동하는 싱글 앨범의 활동을 서서히 접으며 <Shield&Spear>로의 데뷔 무대 초읽기에 들어간다.

상반된 분위기와 상반된 감정을 담아낸 <Shield&Spear>는 엄청난 관심 몰이를 하기 시작하였고, 이윽고 음반이 발매되자 폭주하는 관심 속에 창현이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음반이 발매된 지 첫주가 되는 날. 창현은 미국은 물론 세계가 술렁일 만한 기록을 세운다.

불과 첫주만에 빌보드 차트 Top 100안에 들어선 것이다. 그것도 하위권도 아닌 중위권도 아니었다.

첫주만에 그가 진입한 것은 Top 10안쪽! 바로 9위를 기록한 것이다.

엄청난 기록에 창현은 물론 Jive조차 어안이 벙벙한 반응이었다. 초기부터 반응이 엄청나게 뜨겁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쾌거를 이룩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지금 <Shield&Spear>는 꺼지는 불이 아닌 타오르는 불이었다. 아직 제대로 타오르지도 않았음에 불구하고 이 정도 기록이라면 정말 사고 한 번 칠 수 있는 기세였다.

전에 두 싱글 앨범으로 활동할 때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관심 속에 창현의 비주얼도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고, 창현이 직접 <Shield&Spear>를 작곡 작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에서는 Genius Artist라는 별명을 지어줌과 동시에 귀여우면서 스타일 변화에 따라 여러 가지 컨셉이 소화 가능한 창현에게 엄청난 여성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한다.

미국도 가수의 비주얼이 필요했던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곡도 좋고, 비주얼도 받쳐주자 창현의 인기는 전과 비교가 불가능 할 정도로 치솟았다. 각종 방송 제의와 CF촬영 제의가 물밀 듯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Shield&Spear>를 발표한지 2주째가 되었다.

마침내 빌보드 차트가 공개되는 날이 찾아왔다.

빌보드 메인 차트가 공개되는 순간, 창현은 대형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바로 빌보드 차트 가장 상위에 자신의 곡과 이름이 자리하고 있던 것이다.

무슨 말이냐고?

간단하다. 바로 창현의 <Shield&Spear>가 불과 2주만에 빌보드 차트 정상을 차지한 것이다.

믿기지 않는 쾌거였다.

창현 스스로도 믿지 못했다. 자신이 빌보드 차트의 정상을 차지하다니.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있지만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빌보드 차트 1위는 기폭제였다.

그것을 시발점으로 미국 내에서 Dark Star의 인기는 폭발하기 시작했다.

동양인 출신으로, 그것도 일본이나 중국이 아닌 한국 출신의 가수가 빌보드 차트에 진입했다는 것만으로도 대 이변이 일어난 셈인데 중위권을 넘어서 상위권, 그리고 마침내 Top 10안에 들더니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미국의 언론은 본격적으로 창현을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으며, 미국 사람들은 이국적인(미국인들이 보기에는 이국적) 미남 Dark Star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면서 그 인지도가 단번에 월드 스타급으로 상승하였다.

창현은 자신의 성공이 너무나 기뻤다. 자신의 노래가 세계인들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 한편 이것이 현실인가 꿈인가 혼동이 일어날 정도였다.

색다른 매력을 담은 <Shield&Spear>는 발매 2주만에 빌보드 차트 정상을 석권함과 동시에 판매 백만 장을 돌파하였다. 지금도 음반 판매가 꾸준하다고 하니, 이 기세라면 삼백 만장까지 노려봄직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각종 CF와 방송 출연 섭외가 쇄도했고,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는 창현의 인지도에 그의 몸값도 껑충 뛰어갔다.

겹경사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런 상승세 속에서 그동안 창현이 방송에 임할 때마다 예의바른 모습을 보였던 것이 다시 한 번 화제가 되면서 동방예의지국 청년이란 타이틀과 함께 한층 호감을 더해주는 일을 하였다.

끊임없는 고공행진의 연속.

미국에서 Dark Star 신드롬을 일으키며 창현은 대성공을 하고 있었다.


한편, 창현의 빌보드 차트 1위 소식은 예고 없는 태풍처럼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창현의 1위 소식은 대한민국을 뒤집어지게 만들었다. 그 여파는 마치 대한민국이 2002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한 감동 비슷할 정도로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한국 출신으로서 그 음악성 하나로 세계 정상에 우뚝 선 현. 이 얼마나 대단하단 말인가.

처음 현이 미국에 진출할 때 사람들의 반응은 반반이었다. 현의 실력이 미국에서도 통할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아직 인종 차별이 남아있고, 동양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한 미국에서 현이 고전을 할 거란 생각을 가진 부정적 인식을 가진 사람이 반이었다. 그리고 의견의 타당성은 부정적 인식을 하는 사람들이 더 지니고 있었다.

미국이 세계 최대 음반시장을 조성하고 있고, 기라성 같은 가수들이 우글거린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인종차별은 근대사회에서부터 이어져온, 아직까지 극복되지 않은 성질의 문제였다. 현의 음악적 실력은 인정하는 바이지만 그가 성공할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들은 현이 미국에서 빌보드 차트 중하위권에만 들어도 대 성공이라고 말하곤 하였다. 그들 나름대로 전문적인 지식을 동원하여 내린 판단이었다. 미국 음반 시장 구조와 현의 음악성이 먹힐 범위, 그리고 Jive에서 지원해줄 것들을 다각도로 고려한 끝에 내린 결론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미 최고라고 생각하던 현의 음악성은 미국의 광활한 음악 시장을 보고 한단계 업그레이드를 이루었다는 것을 말이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자존심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족속이 뮤지션이었기에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었다.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실을 때 사람들은 과연 현이라고 하며 그의 행보에 집중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 싱글 앨범에서 중상위권까지 치고 올라오자, 한국 사람들은 더욱 더 기대하게 된다.

현이라면 할 수 있을 것이다. 여태까지 실망을 끼치지 않은 그였기에. 그라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이 어느새 전반적으로 퍼져 나가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현은 세계 최고라 불리는 빌보드 차트의 정상에 서고야 말았다.

그의 빌보드 차트 1위 소식은 한국 모든 신문 제1면을 가득 채웠으며, 뉴스에서도 현의 이야기로 가득 차게 되었다. 개인이 이룩한 업적 치고 너무나 대단한 성과였다.

몇몇 연예 언론은 이 소식을 듣는 순간, 곧장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향했다. 이미 그 존재 자체만으로 특종이 된 현과 인터뷰라고 할 수 있다면 기자의 입장에서 승진은 따놓은 당상이라 할 정도로 현의 위상이 급격하게 상승한 것이다.

현이 빌보드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순간,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공식 팬 사이트인 다크 스타에 몰려들기 시작하였고, 43만이던 팬 사이트 회원은 불과 일주일 사이에 50만을 돌파하게 된다. 하루 평균 가입자가 1만 명이 넘은 것이다.

몇몇 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업적을 이룩한 현에게 군대 면제를 해줘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앞으로 그 가능성이 무한대로 뻗어나갈 그를 2년 동안 군대에 머물게 한다는 것은 국가적 손실을 넘어서 세계적 손실이라는 말이 그 근거였다.

이에 한동안 말이 오고가긴 했지만 현의 나이가 이제 열여섯이고, 아직까지 군대에 갈 날은 멀었기에 곧 수그러들었다.

창현의 이러한 소식을 소녀시대 맴버들이 못 들었을 리 없다.

그녀들은 창현의 성공에 진심으로 기뻐하며 열광했다.

“창현이가 드디어 세계 최고가 된 거네? 정말 대단하다.”

“이제 월드스타네. 와! 월드스타라니. 상상해 봐도 실감이 안난다.”

“그건 그래. 근데 참 대단하다. 미국에 간지 세 달도 안 돼서 빌보드 차트 석권이라니. 인간이 아닌 가벼.”

“한국의 엄친아가 세계적 엄친아가 되었군. World Mother Friend Son인가?”

“저질 영어 좀 하지마!”

“그래도 맞긴 맞네. 세계적 엄친아!”

창현이 미국에서 활동을 하는 동안 소녀들도 데뷔 초읽기에 나섰다.

6월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소녀시대란 그룹 이름을 달고 비방 무대에 서면서 무대 감각을 익혀나가고 있던 것이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는 소녀시대를 여자 슈퍼주니어라 칭하며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었다. 아직 데뷔를 하지 않았지만 각종 뮤직 비디오와 CF에서 여러 활동을 해왔기에 그녀들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았다.

게다가 이번에 그녀들의 데뷔 전 모습을 담은 프로그램을 케이블 방송국인 Mnet에서 [소녀 학교에 가다]라는 것을 기획하여 그녀들의 연습하는 모습이나 활동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고 있었다.

한동안 창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문득 윤아가 떠오른 듯 말했다.

“우리 이럴 게 아니라 창현이한테 축하 전화를 하는 게 어때요?”

윤아의 말에 소녀들이 반응을 보였다. 막상 창현의 쾌거에 좋아하기만 했지, 그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수연이 그런 윤아의 말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였다.

“축하 전화? 그것도 좋겠네. 그런데 창현이가 우리 전화를 받을까?”

빌보드 차트 1위를 한 만큼 그에게 연락이 폭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위치가 위치인 만큼 전화 연결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희박했다.

그런 수연의 말에 윤아가 승자의 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흐흐! 언니는 모르셨겠지만 저는 창현이의 새 핸드폰 번호를 알고 있단 말씀! 출국하기 전에 저한테 번호를 가르쳐줬어요.”

윤아의 말에 여덟 소녀의 시선이 순식간에 집중된다.

특히 수연은 도끼 눈을 뜨며 윤아에게 말했다.

“뭐라고? 그걸 여태까지 너만 알고 있던 거야?”

그녀의 전매특허인 얼음 레이저가 윤아에게 뿜어졌다.

그 시선에 윤아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마치 게임 속에서 스턴 걸린 캐릭터마냥 안절부절 못하더니 대답했다.

“그, 그게… 알려주려고 했는데 그만 깜빡했어요.”

핑계를 대는 윤아였지만 다른 소녀들은 알 수 있었다.

윤아가 혼자 알고 킥킥거리다가 오늘 창현의 소식을 듣고 들뜬 나머지 무심결에 내뱉어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수연은 그런 윤아를 도끼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얼음 레이저를 거두며 말했다.

“좋아. 그럼 연락해보자. 지금 오전 10시니까… 미국은 오후겠네. 늦은 시간은 아닐 거야.”

“그래, 해보자.”

그렇게 소녀들이 결정을 내리고 전화를 하려는 순간, 끼어드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소녀 학교에 가다]를 연출하고 있는 PD였다.

잠시 촬영을 중단하고 아침을 먹고 온 PD는 소녀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끼어든 것이다.

“창현이라면 설마… 미국에 있는 현을 말하는 건가?”

PD의 물음에 태연이 대표로 대답했다.

“네, 그 현이에요. 저희 모두 현이랑 아는 사이거든요.”

태연의 대답에 PD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래? 그럼 이건 어떨까? 너희와 현의 통화 장면을 촬영하는 거야.”/

그 말이 의외였을까?

PD의 말에 소녀들이 움찔하며 되물었다.

“네?”

“현재 빌보드 차트 정상을 차지한 현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 지 알아? 지금 축구가 월드컵 16강에 진출한 거랑 비슷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워. 그런 현이 통화상이라도 등장을 한다면? 시청률은 단번에 오르겠지. 그렇게 되면 너희들의 인지도도 한단계 더 올라갈 수도 있고. 어때?”

지금 시점에서 현이라는 존재는 대박 시청률을 보장해줄 수 있는 존재였다. 직접 출연하지 않고 목소리 상으로 출연하는 것이라 해도 말이다. 그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는 PD였고, 그로 인해 소녀시대가 얻을 수 있는 이득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얼핏 듣기에는 무척 달콤한 말이었지만 소녀시대에서는 안티에게 제대로 시달려본 수연이 있었다.

수연은 그런 PD의 말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분명 시청률은 보장되겠지만 저희의 인지도는 노이즈 마케팅식으로 될 것 같은데요?”

그도 그럴 것이 데뷔 전 현의 팬층은 주로 그의 음악성에 감동한 사람들 위주로 구성이 되어 있었지만 공식 데뷔 후, 최고의 비주얼을 지닌 현의 외모에 반한 여학생들 팬층이 두텁게 형성 되면서 소위 말하는 빠순이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고 있었다.

이미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맴버들과 루머에 휩싸인 적이 있는 수연은 빠순이란 존재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다. 분명 현과 통화를 하게 되면 시청률은 분명이 상승할 것이다. 소녀시대의 인지도도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좋게 작용할지 나쁘게 작용할지 생각해보면 너무나 간단하게 무게추가 기운다.

“그, 그건…….”

수연의 논리정연한 말에 PD가 반박하지 못한 채 말끝을 흐린다.

그러나 이내 무언가를 생각한 듯 말한다.

“혹시 개인적 친분 말고 다른 친분은 없나? 그것만 있으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PD로서는 어떻게든 이번 기회를 잡고 싶었다.

현재 촬영하고 있는 [소녀 학교에 가다]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 야심차게 밀어주고 있는 소녀시대인 만큼 그 시청률이 확실하게 보장될 것임이 분명했다. 물론 방영은 상당히 뒤늦게 하지만 이제 막 월드스타의 반열에 오른 만큼 나중 가서는 더욱 대단해지지 않을까? 그것이 PD의 생각이었다.

“…….”

PD의 말에 소녀시대 멤버들도 생각에 잠겼다. 그녀들은 그다지 내키는 표정이 아니었다. 왠지 현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인지도를 높이려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렇다.

하지만 PD의 말을 대놓고 거절하자니 그것도 힘들었다. 아직 그녀들은 신인이어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힘든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PD의 의견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그녀들의 입장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소녀들 중 입을 연 것인 태연이었다.

그녀는 PD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현이 저희 회사와 계약을 맺었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말인가, 태연 양?

태연의 말에 PD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 눈빛이 부담스러웠기에 태연이 살짝 시선을 외면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현이 SM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로 계약을 했거든요. 실제로 저희 노래를 봐준 적도 있고요.”

그 말에 PD가 딱! 하고 손을 튕겼다. 현이 SM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었다면 충분히 이유가 설명되기 때문이다.

“그거면 되겠군. 그럼 연결고리가 충분하지. 평소 현이 노래를 봐줬고, 그에 대한 고마움으로 인사를 하면 될 듯하군.”

그렇게 해서 현과 통화를 하는 것으로 결정 되었고, 소녀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다가 한차례 한숨을 내쉬고는 전화를 걸었다.

♩♪♬♩♪♬

전화를 걸자 창현의 이번 곡인 <Shield&Spear>가 흘러나왔다.

통화 연결이 제법 길게 이어졌고, 그에 따라 PD의 표정이 여러 차례 변하였다. 안받을 수도 있다는 걸 느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의심을 종식시키라기도 하듯,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컬러링이 꺼지며 창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전화가 연결되자 소녀들은 물론 PD의 표정까지 환하게 변했다.

태연이 소녀들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둘, 셋.”

셋을 외치는 순간 소녀들이 동시에 외쳤다.

“안녕하세요, 소녀시대입니다!”

-……

소녀들의 인사에 한순간 침묵하는 창현.

그러다 창현이 조심스럽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현입니다…….

평상시와 다르다는 걸 느낀 걸까? 존댓말로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에 태연이 대표로 나서서 말했다.

“이번에 빌보드 차트 1위하신 거 정말 축하드려요. 그 인사를 선생님께 드리고 싶어서 전화를 한 거예요.”

서슴없이 창현을 선생님이라고 하는 태연이었다. 그 호칭에 다른 소녀들은 입을 쩍 벌리고 눈을 휘둥그레 뜨며 태연을 바라본다. 당장 녹음을 할 때 가장 앞장 서서 창현을 토벌(?)하던 태연이 창현에게 이렇게 예의 바르고 조신하게 말하니 순간 어이를 상실한 것이다.

그 충격은 창현에게도 어김없이 전해졌다.

태연의 말에 창현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태연… 씨. 머리가 아프신가요?

창현의 말에 순간 태연의 이마에 빠직하며 혈관 마크가 도드라졌지만 방송이기에 최대한 릴렉스를 하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제가 왜 아파요. 그저 선생님이 1위를 하셔서 축하 인사를 드린 것뿐이에요.”

태연의 모습이 상당히 위태위태했기에 제시카가 구원 투수로 뛰어들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소녀시대의 제시카입니다. 우선 빌보드 차트 1위 축하드려요.”

평소 반말과 함께 온갖 험한(?) 말들을 난무하던 누나들이 갑자기 조신하고 예의바르게 나오자 전화를 받던 창현은 얼떨떨하면서도 무언가 내막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는 장난조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거 감사 인사를 받으니 힘이 나네요. 그런데 제시카씨도 어디 아프신가요? 평소와 사뭇 다르네요.

당황한 감정이 아닌 놀림이 가득한 창현의 말에 제시카의 이마에도 빠직하며 혈관마크가 도드라졌다.

뒤이어 다른 소녀들도 한 명씩 나서면서 창현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태연과 수연, 두 사람에게 임상(?) 실험을 한 창현은 소녀들이 지금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소녀들의 인사를 받으며 은근하게, 다른 사람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놀린다.

그럴 때마다 소녀들의 머리에는 혈관 마크가 도드라졌고, 마지막 주현의 인사를 끝으로 소녀들의 인사가 모두 끝났다.

그러자 리더인 태연이 창현에게 말했다.

“선생님 빌보드 차트 1위 정말 축하드리고요. 나중에 한국에 오시면 저희 무대 꼭 보러 와주세요.”

-하하 물론입니다. 무대 반드시 보러 갈 테니 오늘처럼 아프시지 마세요. 가수는 건강이 생명이니까요. 그럼 몸조리 잘하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에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소녀들을 빠짐없이 놀려주었기에 창현의 목소리는 무척 유쾌해져 있었다.

창현의 말을 끝으로 통화는 끊어졌다.

통화가 끝난 자리에는 이를 갈고 있는 맹수 아홉 마리가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미국에 가더니 간덩이가 부었구나. 다시 한 번 교육(?)이 필요하겠어.’

‘이제는 막가자고 하네. 한국에 오기만 해봐.’

‘방송을 무기로 이런 식으로 나오다니. 두고보자.’

소녀들의 눈은 마치 수연의 얼음 레이저마냥 섬뜩한 한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눈빛에 촬영진 스텝들은 전신에 엄습하는 오한 때문에 몸을 부르르 떨어야했다.

그날 창현과 통화를 종용했던 PD는 알게 모르게 소녀들에게 엄청나게 구박을 당해야만 했다. 분노 앞에서는 신인이고 뭐고 계급장 다 떼어버리고 달려드는 광폭한 소녀들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준 날이었다.


소녀들이 창현에게 전화했을 때는 저녁 무렵이었다.

스케줄을 위해 차를 타고 이동하던 창현은 소녀들과 통화를 끝내고는 웃음을 지었다.

“쿡쿡쿡! 아, 속 시원해라.”

처음 통화가 연결되었을 때 단체로 자신에게 인사하는 모습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창현.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몇마디 나누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누나들이 방송에 임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무래도 전화 연결 설정을 사적으로 아는 동생이 아니라 SM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한 프로듀서로 소개한 듯했다.

그러자 창현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프로듀서와 신인의 관계. 당연히 프로듀서의 신분이 더 높지 않은가?

영상 통화도 아니건만 통화를 하는 내내 창현의 뇌리에서는 혈관 마크를 드러낸 채 화를 삭이느라 고생할 누나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장 찾아와서 자신에게 응징을 하고 싶겠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은 미국에 있는 것을.

창현의 표정은 정말 유쾌했다.

“크크! 다음에 또 전화하면 더 놀려줘야지. 아, 덕분에 기분이 한결 편해졌네.”

빌보드 차트 1위라는 엄청난 성과를 이룩한 창현이었지만 마냥 좋아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 기세를 빌린다면 몇주간 더 순위권을 지킬 수 있을 듯하지만 1위를 유지하는 것은 어려워보였기 때문이다. 뒤늦게 Dark Star 신드롬이 일어나고 있지만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곡들도 만만치가 않았다. Jive에서 냉정하게 분석하길, 창현의 빌보드 차트 1위는 다음주 혹은 다다음주까지 유지될 거라 보고 있었고, 그때까지 이 여세를 최대한 몰아 다음 싱글 음반을 발매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굳어지고 있었다.

Jive에서는 이미 창현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놀라울 정도의 발전을 보여준 창현은 미국 음악을 완전히 파악했다고 판단했고, 다음 음반 준비를 해달라고 먼저 부탁을 할 정도였다.

그런 Jive의 부탁이 없어도 창현은 이미 다음 곡을 준비 중에 있었다. 창현도 나름대로 인기의 흐름을 알고 있었고, 지금 곡이 성공함에 따라 그 여세를 몰아 인기를 굳히기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것이다.

곡은 아직 작곡 중이기에 완성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느낌이 무척 좋았다.

<Shield&Spear>가 상반된 느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면 이번 곡은 친근함이 컨셉이었다.

말 그대로 한 번쯤 일어날 수 있는 일. 그리고 노래에 재미를 넣어 듣는 사람이 즐겁고, 들으면서 절로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를 만드는 것이 이번 목표였다.

창현의 이번 곡 제목은 바로 <My Nurse>란 곡이었다. 직역하면 나의 간호사란 뜻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칫 잘못 들으면 착각할 수 있는 점을 장난스럽게 버무려 놓은 것이었다.

영어 중에는 비슷한 발음이면서 상반된 뜻을 지닌 것들이 있다.

창현이 한국에서 영어를 배우면서 무척 인상적이었던 것이 바로 Minus와 My Nurse였다. Minus를 과도하게 굴리는 발음으로 할 경우 Minus를 My Nurse로 잘못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점을 착안한 노래가 바로 <Minus>다.

노래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한국에 전라도 방언, 경상도 방언, 강원도 방언 등 각 지역마다 미묘하게 말이 다르듯이 미국에도 그러한 차이가 존재한다.

배경은 미국이되 사람이 몇 살지 않는 시골.

그곳에 살고 있는 순박한 소녀는 어느 날 대도시에서 전학온 잘생긴 소년를 보게 된다.

소녀는 그런 소년을 보고 한눈에 반했고, 멀찍이서 지켜보다가 힘겹게 고백을 한다.

그러나 소녀에게 흥미가 없었던 소년은 그 고백을 거절한다. 그러면서 소녀에게 넌 Minus라고 말을 한다.

그것을 My Nurse라고 들은 소녀.

소년의 집안은 병원을 하고 있었고, 소녀는 자신이 고백을 거절 당했지만 My Nurse란 말을 듣고 자신을 보조해주는 간호사가 된다면 생각해보겠다는 말로 해석하였다.

그때부터 소녀의 도전은 시작되었고, 소년은 의사가, 소녀는 간호사가 되어 다시 만남을 가지게 된다.

열심히 공부한 소녀는 더없이 훌륭한 간호사가 되었고, 다시 한 번 소년에게 고백을 한다.

소년은 자신의 말을 착각하고 간호사가 되어 자신에게 다시 고백하는 소녀의 모습에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감동을 하여 그 고백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산다.

이 노래는 비슷한 발음을 가진 말장난이 있지만 사람의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소녀의 감수성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곡은 어느새 미국의 대중성을 파악한 창현의 정수가 스며들고 있었다.

<Shield&Spear>를 한창 활동하면서 창현은 <Minus>란 곡을 완성하고, Jive에게 들려줌으로써 다시 한 번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 이번에 뮤직비디오는 창현이 소년의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안경을 써서 지적인 미지와 이국적인 느낌으로 다시 한 번 미국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Jive와 창현이 예상했던 것처럼 <Shield&Spear>는 빌보드 차트에서 3주 동안 1위를 지키다가 밀려나게 된다.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바로 <Minus>였다.

간단한 발음 차이로 만들어내는 언어의 마력과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쉬운 멜로디, 그리고 뮤직비디오의 삼중주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Dark Star의 폭풍은 미국 전역을 휩쓸었던 것이다.

특히 곡이 전해주는 교훈이 너무나 간단하게 이해가 되었기에 사람들은 더욱 열광하였다. 아무리 심오하고 깊은 뜻을 함축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파악하지 못하면 말짱 꽝이다. 그에 반해 창현의 곡은 쉽게 들을 수 있고, 쉽게 의미를 파악할 수 있기에 사람들에게 친근감 있게 다가왔다.

연이은 빌보드 차트 석권에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난리가 났다. 단순히 노래를 부르고 빌보드 차트를 석권한 것이 아닌, 직접 곡을 작곡하고 작사한 것을 불러서 1위를 차지한 것이기에 더욱 그 의미가 컸다. 이제 그의 나이가 열여섯. 미국 나이로 열다섯에 불과한 싱어송라이터가 세계를 제패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란 말인가. 게다가 창현이 찍은 CF가 본격적으로 방영되고, 화보도 발매 되면서 인기를 한층 더 높게 만들었다. 이국적이면서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을 간직한 창현은 노래에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연기에서도 상당한 두각을 보였기에 몇몇 영화 관계자들은 벌써부터 창현을 캐스팅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었다.

밀려드는 CF 광고를 하루하루 촬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며 창현은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면서 창현은 이동 중 간간히 인터넷으로 자신의 지인들 활동을 확인하곤 했는데, 라샤는 한국에서 성공적인 무대를 치른 뒤 일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고, 소녀시대도 본격적인 데뷔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여자 슈퍼주니어라는 이름으로 활동, 비방 무대에 몇 번 섬으로써 서서히 무대 감각을 익혀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녀시대는 아직 데뷔를 하지 않았음에도 팬 카페가 개설 된 상태였고, 창현은 그 카페에 가입을 한 뒤 제법 고난이도(?) 문제를 쉽게 품으로써 단번에 정회원으로 등업을 하게 된다. 그리고 몇몇 레어급(?) 정보를 흘림으로써 팬 카페 내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미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함에 따라 창현의 대인관계도 자연히 늘어가기 시작했고, 예의 바르고 착하며 잘생기기까지 한 창현은 미국 여자 톱스타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얻게 된다. 몇몇 적극적인 여배우들과 여가수들은 창현과 사귀자고 고백을 하기도 했지만 정중히 거절, 친한 누나 동생 관계로 지내자고 하였다.

끊임없는 고공행진의 연속이었다. <Minus>는 곡을 발매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 몰이를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인기가 수그러들기는커녕 점점 그 인기가 눈두덩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아직까지 창현이 동양인이라 하여 폄하하는 마음을 가졌던 미국인들 상당수가 <Shield&Spear>에 이어 후속곡 <Minus>마저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자 도대체 어떤 곡이기에 사람들이 이리도 열광할까 하는 마음에 들어보았다가 서서히 빠져든 케이스였다.

새로 합류하는 팬들의 숫자도 숫자지만 다른 국가에서 유입되는 팬들의 숫자도 엄청났다. 미국 시장은 유럽 시장과도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유럽 각국의 사람들도 동양인으로서 빌보드를 석권한 Dark Star의 음악에 관심을 가졌고, 그것은 그대로 인기로 승화되어 갔다. 이미 현으로서 아시아를 휩쓸고 있었고, Dark Star로서 유럽과 미국을 휩쓰니 정말 월드스타가 된 셈이다.

“후우!”

빠듯한 스케줄을 소화한 창현은 길게 숨을 내쉬며 창문을 열고 의자를 한껏 뒤로 젖힌 채 몸을 묻는다. 오늘은 그나마 스케줄이 적은 편이었기에 밤 10시가 되자 모든 스케줄이 끝났다.

창문에 흘러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창현이 눈을 감았다.

워낙 바쁘게 움직이기에 창현은 식사 세 번을 모두 차와 방송국에서 해결하였고, 곡 활동과 각종 방송 촬영으로 인해 많이 지쳤다.

지이이잉.

오랜만에 즐기는 휴식을 한껏 만끽하던 창현은 핸드폰 진동이 울리자 눈을 살며시 뜬다. 그리고 전화를 건 사람의 이름을 확인한다./

전화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미영이었다.

첫 통화 이후 창현은 종종 소녀들과 연락을 하곤 했는데, 국제 전화이기에 길게 통화를 하지 못했지만 제법 자주 연락을 하는 편이었다. 그 때문에 소녀들 하나하나와는 제법 긴 텀이 있게 연락을 하는 편이지만 아홉 소녀가 번갈아가며 전화를 해주는 편이기에 창현은 심심치 않게 소녀들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휴식을 방해 받았기에 살짝 언짢은 기분이 들었는데 미영이라는 걸 확인하자 기분이 한결 풀어지는 창현이었다. 요즘 번호를 교환한 여자 가수와 배우들이 워낙 창현을 귀찮게 하기에 핸드폰을 바꿀지 망설일 정도여서 그렇다.

창현은 핸드폰을 열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미영 누나? 네. 오, 정말요? 그럼 데뷔하는 거네요. 정말 축하드려요. 음, 그건 확신하지 못할 것 같네요. 네. 어쩔 수 없죠. 그래도 데뷔라니 정말 축하합니다. 가서 보고 막 지적해줘야 하는데. 선생님이잖아요. 하하하! 네, 알겠어요. 데뷔 정말 축하드리고요. 네. 헉! 태연 누나요? 누나 그럼 끊어요!”

한참동안 통화를 즐겁게 하던 창현은 태연이 다가온다는 미영의 말에 서둘러 통화를 끝냈다.

그때 방송의 힘을 빌려 용감하게 소녀시대 전체에게 강렬한 일격을 선사한 적이 있는데, 그때 창현은 정말 용감하게도 태연에게 머리가 다쳤냐는 말을 했다.

태연은 그걸 아주 뇌리 깊숙한 곳에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게 기억을 해둔 뒤 창현을 협박했는데, 그때마다 창현은 식은땀을 한 바가지씩 흘려야만 했다. 태연의 뒤끝은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른 소녀들도 마찬가지였고, 현재 창현은 태연과 수연 두 투톱에 의해 한국으로 돌아가다가는 자칫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에까지 처하게 되었다.

전화 내용은 소녀시대 데뷔에 관한 것이었다. 여러 번의 실험적인 비방 무대 끝에 마침내 데뷔가 결정되었다는 것.

창현은 의자에 몸을 묻으며 중얼거렸다.

“드디어 누나들도 데뷔를 하는구나. 데뷔 전이지만 팬 층도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고 연습 기간도 길었으니까 잘 해내겠지. 근데… 왠지 보고 싶네.”

눈을 감으며 중얼거리는 창현.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그에게 그 중얼거림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아버지.”

7월 중하순.

창현이 석규에게 꺼낸 말이었다.

석규는 미국에서 창현의 매니저 노릇을 하면서 미국에서의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었다.

“한국으로 말이냐?”

갑작스런 창현의 말에 당황할 법도 하지만 석규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 또한 요즘 창현이 부쩍 지쳐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알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창현의 스케줄 소화는 인간이 해낼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창현이 미국에 온지 어언 다섯 달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음반 활동 위주로 스케줄을 소화해냈지만 <Shield&Spear>가 빌보드 차트 1위를 하면서 창현의 스케줄은 살인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당장 <Shield&Spear>가 히트를 친 뒤 창현이 Jive에서 마련해준 숙소에 들어간 게 한달 중 한두 번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잠을 이동 중에 해결했으며, 그것마저도 토막잠이었고 다 합쳐봤자 채 3시간에서 4시간 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에서 확실한 인지도를 얻기 위해, 음반 활동을 위해 그런 강행군을 해왔던 것이다.

그 시간을 쪼개고 쪼개고 쪼개서 만들게 된 것이 <Minus>였다. 창현이 어떻게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Jive에서는 당연히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제 몸 추스르기도 힘든 상황일 것이 분명한데 신곡까지 만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평소 어느 정도 운동을 해주고, 무공으로 인해 남들보다 체력이 좋았기에 버텼던 것이지, 일반인이었으면 한참 전에 탈진했을 것이다.

물론 아직 창현에게 체력적인 면에서 여력은 남아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지쳤다. 지난 다섯 달 동안 정말 쉼없이 달려왔고, 모든 것을 스케줄 소화에 바쳐왔다. 바짝 긴장을 조이고 달릴 때는 상관이 없지만 그 긴장이 풀려버리니 더 이상 의욕이 서질 않았다.

“후! 한 번 긴장이 풀리니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지네요. 한국이 너무 그립기도 하고요. 빌보드 차트를 석권했으니 목표가 사라져서 허망하기도 하고요.”

미국의 낯선 것들이 신기한 것은 처음 뿐이다. 차츰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한국 생활이 그리워지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지금은 당장 스케줄 소화가 힘들 정도로 늘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 목표였던 빌보드 차트도 연달아 1위를 차지하다 보니 목표를 상실한 상태였다. 한 번이면 운이라 치부하겠지만 두 번 연속, 그것도 현재 2주 연속 1위를 하고 있고 지금 추세로 보아 몇주 더 1위를 할 기세였으니 말이다.

창현의 말에 석규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런 이야기는 내가 진즉에 네게 해줬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욕심이 많았구나. 좋다. 나도 네가 더 이상 혹사하길 바라지 않는다. 네 말대로 하도록 하자.”

석규의 말에 창현의 표정이 급격히 밝아졌다.

“정말인가요?”

“물론이다. 네가 너무 잘나가는 바람에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린 것이다. 후! 네게는 정말 미안하구나.”

미국에서 얻는 인맥 하나하나가 결코 무시할 것이 못 되었다. 석규는 창현이 방송을 출연함에 따라 인맥을 차곡하게 쌓아나갔고, 그로 인해 조금씩 욕심을 부리다보니 결국 이러한 상황까지 가게 된 것이다.

석규의 사과에 창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제가 말하지 않았어도 아버지가 알아서 해주셨겠죠. 그럼 스케줄은 어떻게 해야 되죠?”

“일단 잡아놓은 스케줄들은 다 소화를 해야겠지. 어차피 Jive와의 계약 내용도 음반 발매니까 상관이 없을 테고. 한국에서 음반을 제작하고 발매를 해도 되니 말이다. 스케줄은… 음! 8월 중순까지 해야겠는 걸?”

석규의 말에 창현의 표정이 살짝 찡그려지더니 물었다.

“그 스케줄… 7월 안으로 모두 끝낼 수 없을까요?”

“7월 안으로? 그렇게야 할 수 있지만 엄청 힘들 텐데?”

8월 중순까지 스케줄을 소화해야겠다고 말한 것은 창현의 체력 상태를 고려하여 말한 것이다. 바짝 조여서 스케줄을 소화한다면 충분히 7월내로 소화가 가능하지만 그렇게 되면 창현이 겪었던 것보다 더욱 타이트한 일정이 이어질 것이다.

된다는 석규의 말에 창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된다니 다행이네요.”

창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미영과 통화를 나누면서 데뷔 무대를 8월초에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이왕 한국에 갈 거면 스케줄을 모두 소화한 뒤 데뷔 무대를 보고 싶어서 이야기를 꺼냈는데 석규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남은 나날이 괴롭기는 하겠지만 그거야 지금 같은 생활이 조금 더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 번 늘어진 긴장의 끈을 다시 잡기 힘들지만 창현은 평범한 사람과 다르다. 집중력도 뛰어나고, 자기를 컨트롤 하는 능력도 뛰어났기에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약 열흘이다. 열흘 동안 눈 딱 감고 고생하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

목표가 있으면 의욕이 생긴다. 그리고 의욕이 생기면 없던 체력도 생긴다.

창현은 한결 밝아진 얼굴로 석규를 보며 말했다.

“그럼 스케줄 하러 가죠. 지금부터 많이 움직여야 조금이라도 편해질 테니까요.”

“어이구! 네 말이 맞지만 스케줄 조정부터 해야 된다. 이거 넉넉하게 스케줄 소화하면 될 걸 가지고 왜 타이트하게 조이려고 하는지 모르겠구나. 마치 한국에 뭘 보러가야 하는 것처럼. 어쨌든 스케줄 조정부터 하도록 할 테니 각오해야 할 게다.”

순간 자신의 목적이 들킨 줄 알고 뜨끔했던 창현이었지만 석규가 눈치를 채지 못한 듯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가는 건가? 후아! 그립네. 음식도. 아는 사람도. 그리고 집도.’

마음은 벌써 한국에 가 있는 창현의 입가에는 미소가 맺혀 있었다.




제27장 소녀시대 데뷔




숨 가쁜 나날의 연속이었다.

미국에서 창현이 빌보드 차트 1위를 하며 고공행진을 거듭, 월드스타로 우뚝 올라설 무렵 소녀들도 본격적인 데뷔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소녀 학교에 가다]라는 프로그램을 찍으면서 SM엔터테인먼트에서는 본격적으로 숙소를 배정해주었다. 좁았던 전 숙소와 달리 아홉 명이 편하게 머물 수 있는 큰 곳으로 옮긴 것이다.

숙소를 옮긴 그녀들은 비방 무대에 서면서 착실하게 경험을 쌓아나갔다. 아직 데뷔를 하지 않았지만 각종 CF와 뮤직비디오 활동으로 인하여 그녀들의 인지도는 상당한 편이었고, 벌써 팬 카페가 생길 정도로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다.

[소녀 학교에 가다]라는 프로그램을 촬영하면서 소녀들은 착실하게 경험을 쌓아나갈 수 있었고, 때로는 호평을, 때로는 혹평을 받으며 차근차근 데뷔 준비를 해나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7월 27일, [소녀 학교에 가다]가 첫 방영이 되었고, 소녀들의 일상이 공개 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특히 그녀들을 알리게 해준 것에는 현과의 통화 장면이 톡톡히 효자 노릇을 하였다. 먼 미국에서 들려오는 소식과 한국에서 현을 취재하기 위해 간 기자들이 힘겹게 가지고 온 정보가 전부였던 상황에서 목소리라도 나마 현이 출연한다는 사실은 현의 팬들에게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 때문에 소녀시대란 그룹은 한층 더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었고, 현이 SM엔터테인먼트와 공식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과 현이 AA엔터테인먼트 이사직을 겸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

녹화 당시 현은 <Shield&Spear>란 곡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Minus>란 곡으로 미국을 휩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에 잠깐이지만 현이 등장하는 부분은 방송의 주옥과도 같은 부분이었다.

일각에서는 SM엔터테인먼트가 소녀시대란 그룹을 알리기 위해 현을 이용한 게 아니냐는 말이 있었지만 그것은 곧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취급받게 된다.

분명 SM엔터테인먼트가 국내 굴지의 대형 기획사이긴 하지만 빌보드 차트를 석권한 현과 한국, 일본에서 절대적으로 군림하고 있는 여성 아이돌 라샤가 있는 AA엔터테인먼트가 SM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을 홍보해줄 이유가 없다.

오히려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음에도 소탈하고 친근감이 느껴지는 말투로 인해 보는 사람들의 호감을 더욱 끌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좋은 호응 속에서 [소녀 학교에 가다]는 첫 방영을 성공리에 끝마칠 수 있었고, 하루하루가 흘러감에 따라 소녀들의 데뷔도 본격적인 D-Day를 맞이하게 된다.

소녀들의 첫 데뷔무대는 S본부에서 갖기로 하였다. 생방송이 아닌 녹화 무대였기에 첫 데뷔무대를 갖는 날짜는 8월 2일이었고, 방송으로 방영되는 것은 8월 5일이다. 즉, 공식 데뷔는 8월 5일이 되는 셈이다.

7월이 끝나고 8월이 되었다.

8월 1일. 이 날은 소녀시대가 데뷔 무대를 갖기 하루 전날이기도 하지만 소녀시대 맴버인 티파니(미영)의 생일이기도 하다.

간략하게 생일 축하를 한 뒤 내일 무대를 위해 연습을 하는 소녀들은 미영을 위해 깜짝 파티를 준비하게 해서 감동하게 만든다.

가족도 없이 먼 한국에 와서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느끼던 미영에게는 더없이 갚진 파티였다.

그리고 대망의 데뷔 날.

미영에게 하나의 소포가 도착한다.

소포는 AA엔터테인먼트에서 SM엔터테인먼트로 보낸 걸로 되어 있는데, 물품의 용도가 미영의 선물이란 것이 조금 뒤늦게 처리가 되어 데뷔 당일 날 미영에게 도착한 것이다.

데뷔 무대를 갖게 된다는 두근거림으로 인해 밤잠을 설치다시피 한 소녀들은 이른 아침에 소포가 도착하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거실에 모여든다. 아직 정식 데뷔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선물이 오다니 의아했던 것이다.

선물은 무척 작은 상자에 담겨져 있었다.

소녀들은 미영에게 온 선물이 무엇인지 궁금했기에 독촉했다.

“미영아, 어서 선물 좀 개봉해봐, 궁금하다.”

“그나저나 누가 보낸 거지? 데뷔도 하지 않았는데 선물이라니. 미영이는 좋겠다.”

“정말 부럽네. 뭔지 궁금하니 열어봐, 미영아.”

“아, 알았어.”

소녀들의 성화에 아직도 자신에게 선물이 왔다는 것이 얼떨떨하던 미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선물을 뜯어보았다.

포장지를 모두 뜯자 밋밋한 푸른색 상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미영이 그 상자의 뚜껑을 열자, 아홉 쌍의 시선이 상자 안의 내용물을 향했다.

그리고 그녀들은 탄성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어어! 이거 창현이 앨범이잖아!”

상자 안에는 조금 큰 케이스와 조화 몇송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케이스는 창현의 이번 앨범인 <Minus>가 들어 있었다.

수연이 놀란 눈으로 앨범을 훑어보다가 감탄이 깃든 목소리로 말한다.

“이거… 한정판 앨범인데? 화보집이 들어 있는 레어급이야.”

다크 스타 특별회원이라는 상위층에 존재하는 그녀는 창현의 정보에 대해 여러 가지를 자세히 꿰고 있었다. 근래 들어 창현이 앨범을 발매하면서 화제가 되었던 것이 바로 한정판 앨범 안에 있는 화보였는데, 딱 천 개가 제작된 이 앨범 안에는 미국 전역을 휩쓸었던 <Minus> 컨셉의 화보가 들어 있었다.

“화보집이라고? 정말 그거야?”

미영도 창현에 대한 정보를 종종 찾아보기에 한정판 앨범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수연의 말을 듣는 순간 케이스를 열어보는 미영. 케이스 안에는 수연의 말처럼 화보집과 CD, 그리고 카드가 있었다.

미영은 우선 카드를 펼쳐들었다. 그 사이 화보집은 수연의 손에 넘어가 있었다.

카드 안에는 오밀조밀한 한글로 적혀 있었다.

미영은 카드 안에 적힌 내용을 소리내서 읽었다.

“날짜에 맞게 잘 도착했을지 모르겠네요. 데뷔가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요. 데뷔 축하드리고 생일도 축하드립니다. 부디 훌륭한 데뷔 무대를 치르시길. 미국에서 창현이가. 이거 창현이가 보낸…… 에?”

다른 소녀들에게 말하던 미영은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한쪽으로 시선을 옮기니, 여덟 소녀들이 우르르 몰려서 화보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미영은 저도 모르는 사이 화보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화보 안에는 미국 사람 같이 평상복을 입고 있는 창현의 모습이 보였는데, 평범한 옷임에도 그가 입으니 무언가 스타일이 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곁에는 금발 푸른 눈을 한 소녀가 서 있었는데, 옷을 촌스럽게 입고 있었지만 그 외모는 무척 아름다웠다. 바로 화제가 되었던 <Minus>의 여주인공을 맡았던 여자였다.

여러 가지 옷을 입은 창현과 금발 미녀의 모습이 화보에 담겨 있었는데, 잘생긴 창현과 아름다운 금발 미녀는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의사 복장을 한 창현과 간호복을 입고 있는 금발 미녀의 모습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몇 년 후의 모습을 묘사하다 보니 화장을 해서 나이에 비해 성숙함을 보이게 했는데, 정말 십대 후반의 엘리트 의사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고, 금발 미녀 또한 촌스러운 옷에서 육감적인 몸매를 돋보이게 하는 잘록한 간호복과 하얀색 밴드 스타킹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넋을 잃게 할 정도로 대단했다.

그런 두 사람이 포옹을 하면서 화보 사진은 끝이 나는데, 만약 한 장이 더 있었다면 다음 장면은 키스하는 장면이었을 게 분명하리라.

처음에는 와! 하면서 화보를 보던 소녀들은 한장한장 넘어감에 따라 점차 눈에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장을 남겨둔 순간, 고백하는 듯한 모습의 장면이 보이자 유리가 불안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러다가 마지막에 키스하는 장면 나오는 거 아냐?”

유리의 말에 소녀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진다. 그녀들이 봐도 금발 미녀와 창현은 놀라울 정도로 잘 어울렸고, 같은 여자가 봐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게다가 금발 미녀의 모습은 정말 사랑에 빠진 듯한 모습이었기에 소녀들의 불안한 마음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화보 페이지를 넘기던 수연은 자신도 모르게 손이 덜덜덜 떨리는 걸 느꼈다.

그러면서 힘겹게 마지막 페이지로 가는 순간, 서로 포옹하는 장면에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다행이다.’

“……!”

자신도 모르게 다행이라고 여기는 소녀들은 한순간 움찔한다. 그리고는 슬쩍 눈치를 살피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는다.

한참동안 포옹하는 사진을 보던 태연이 입을 열었다. 표정은 평온했지만 그녀의 어조는 스산했다.

“이 녀석이 미국에서 노래는 안 하고 포옹질이나 하러 다닌 거 아니야?”

머리 다쳤냐는 말로 인하여 상당한 한을 품고 있던 태연은 포옹하는 모습에 알 수 없는 감정의 기복을 화를 느낀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창현이 태연과 사귀는 사이가 아니기에 그것 가지고 결코 무슨 소리를 들어야 하는 입장이 아니다.

하지만 소녀들은 그런 태연의 말에 모두 동의하는 기색을 보였다.

수연이 그런 태연의 말을 받쳐주었다.

“아무래도 미국에서 인기가 많다보니 대시도 많이 받는 것 같아. 우리는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미국에서 이렇게 므흣한 짓이나 하고 다니다니.”

타국의 말을 배우면 먼저 욕부터 배운다는 말처럼 수연은 몇몇 전문가들이 쓸 법한 용어를 사용하였다.

“한국에 돌아오면 집중적인 관리가 필요하겠는데요?”

태연과 수연이 창현에게 투톱으로 이를 갈고 있지만 그에 못지 않은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윤아였다. 창현은 저번 방송 통화 때 태연과 수연에게 머리가 다쳤냐는 식으로 말했지만 윤아에게 요즘은 사슴이 (참)이슬을 먹고 다니냐고 놀린 것이다.

직접적인 원한은 표출하지 않았지만 창현을 좋아하는 윤아는 이 화보를 보고 분노 게이지가 한계에 이르렀다.

누구는 한국에서 고무신 꺾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건만 누구는 미국에서 엄청난 미녀들의 귀여움을 받으며 지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미녀들의 귀여움은 포옹을 본 윤아의 100% 순수 추리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놀랍게도 사실이었다.

집중적인 관리란 말에 몇몇 소녀들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대부분이 알아들은 눈치였다.

몇몇 소녀들은 창현이 단순히 친한 동생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상당수는 동생과 남자의 경계선에서 애매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미국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이 순수하게 기뻤지만, 화보를 보고 난 뒤 그녀들의 인식은 상당히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미국은 개방적인 국가였던 것이다.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런 곳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창현이라면 당연히 수많은 여자들에게 대시를 받을 것이 분명했다.

한국 남자들 상당수가 금발 미녀에게 환상을 품고 있다는 믿을 만한 근거(?)가 있었기에 화보집을 보는 순간 마음 속에 불안감이 싹 텄다. 타지에서 쓸쓸하게 있는 남자에게 자신을 위로해주는 여자는 엄청난 위안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점점 친해지는 것이고, 연인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수연이 그런 윤아의 말에 반박했다. 그녀도 내심 윤아와 같은 심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집중적인 관리라. 필요하긴 하지만 미국에 있는데 어떻게 할 건데?”

상당한 위기의식을 느꼈지만 말 그대로 창현은 미국에 있다. 그것도 언제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 사실에 소녀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집중관리를 꺼낸 윤아도 그 말에 한숨을 내쉰다. 미국에 있는 한 집중관리는커녕 만나기조차 힘들 것이다.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죠. 한국에 돌아오게 되면… 그때부터 하면 되요.”

“좋아, 그건 나도 협력하겠어.”

멤버들 상당수가 창현에게 호감을 갖고 있기에 연적 관계로 발전할 수 있겠지만 일단 그것은 외부에서 흘러들어오는 모든 여인들을 차단했을 때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우선은 주변관리가 필요했다.

수연을 시작으로 다른 소녀들도 잇달아 협력 의사를 밝혔다.

창현의 선물로 인하여 소녀들은 비장한 표정을 지은 채 데뷔 무대를 위해 집을 나섰다.

의도하지 않게 창현이 소녀들에게 의욕을 가득 불어넣어주게 되었다.

창현이 한국에서 돌아오는 날.

그는 소녀시대의 집중 관리를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녀들이 그런 결심을 굳힐 무렵, 창현은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8월 2일.

“드디어 한국인가.”

창현은 들뜬 마음으로 공항에 발을 들이며 감회에 젖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려 네 달만에 돌아오는 한국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기간임에도 미국에서는 어찌나 길게 느껴졌던가.

결코 좋지 않은 공기임에도 창현은 모든 것이 좋았다. 익숙하게 들리는 한국말과 곳곳에 보이는 한국인들. 그리고 한국의 특산물들을 파는 모습을 보며 정말 한국에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던 창현은 이윽고 자신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느끼고는 살며시 고개를 숙인 채 발걸음을 옮겼다. 공항에는 그를 보러 온 사람도, 취재하러 온 기자도 없는 상태였다.

왜냐하면 창현의 귀국 자체가 은밀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대부분의 사람들도, 한국 대부분의 사람들도 창현이 미국에 있는 것으로 안다.

이는 창현이 한국에 머무는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은 것도 있지만 이번에 한국에 온 것은 휴식을 취하기 위한 것에 의미를 두고 있어서 그렇다. 사실 휴식이라기보다는 향수병에 걸린 창현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라고 함이 옳다.

창현이 많이 지쳤고,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석규는 그 길로 곧장 Jive에게 창현과 나눈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러자 Jive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도 그럴 것이 한창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창현이 모든 활동을 중단한 채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Jive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명분은 창현과 석규가 쥐고 있었다. 당장 계약 내용만 하더라도 Jive와 창현은 음반에 대한 것만 계약을 하였기에 창현이 활동을 접고 한국에서 음반만 보내준다고 말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었다.

다만 계약서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란 것이 존재하고, 창현이 미국에서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Jive가 적극적으로 도와준 것도 있기에 그 부분은 창현과 석규도 충분히 공감하는 내용이었다.

그랬기에 석규는 가능한 한 Jive와 좋은 선에서 타협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을 했고, Jive에서도 지난 네 달 동안 창현이 얼마나 강행군을 해왔는지 알고 있었기에 결국 적정선에서 타협하는 방안을 택했다.

우선 그들이 나눈 타협안은 이러했다.

당장 한국을 너무 그리워하는 창현에게 약 일주일 동안 휴식을 준다. 그리고 미국으로 복귀하여 추가된 스케줄들을 모두 소화한 뒤 한 달 동안 유럽 투어를 떠나는 것이다. 그리고 유럽 투어가 끝나면 정규 1집 앨범을 제작하여 9월말까지 활동해달라는 것이 Jive의 요구였다.

그 요구에 석규는 창현의 의중을 물었고, 창현은 예상 외로 Jive가 자신을 이해해주는 면모를 보이자 그 타협안을 받아들인다. 자신에게 부족한 조항이 없었고, Jive의 요구조건을 들어줌으로써 나쁜 이미지가 아닌, 좋게 웃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서 그러했다.

창현이 당장 한국에 간다고 하면 난리가 날 것이 분명했기에 Jive에서는 창현이 정규 1집 앨범을 위해 준비기간에 들어간 것으로 처리하였고, 석규는 남아있는 스케줄 중에 미루기 용이한 것들은 뒤로 미루기 위해 협상에 들어갔다.

원래 석규와 같이 한국에 돌아가려고 했던 창현은 석규보다 하루 먼저 서울로 돌아오게 된다. 같이 돌아오고 싶었지만 오늘이 소녀시대 데뷔 무대를 갖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먼저 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 창현의 모습에 석규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창현은 슬쩍 시선을 외면함으로써 의심을 피했다.

현재 한국은 한 여름. 그것도 한창 휴가철이었기에 무척 더웠다.

창현은 외국에서 바캉스를 즐기다 온 청년처럼 회색 칠부 바지에 검은색 민소매 티에 하얀색 민소매 후드티를 걸치고 있었다. 모자를 쓰고 후드를 쓴 뒤 얼굴의 절반 이상을 가려주는 썬글라스를 썼기에 창현을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솔직히 누가 월드스타의 영역에 다다른 창현이 앨범 준비한다는 말을 하고 몰래 한국에 귀환할 거란 걸 알까. 돗자리를 펴지 않는 이상 눈치 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최대한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은 채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공항 밖으로 간 창현은 택시에 타고 집으로 향한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공항에서 집까지 오는데 택시비가 장난이 아니다.

오랜만에 집에 왔지만 집은 깨끗했다. 미국에 가기 전 석규가 일주일에 한 번 집을 치워줄 사람을 고용했다고 하더니 먼지도 얼마 없었고,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자신의 방에 있는 침대에 누워보는 창현. 솔직히 지금 이 집에서 산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자취의 매력을 알아버린 창현은 지금의 집에 돌아온 것 그 자체만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는 느낌이었다.

한동안 침대에 누워 휴식을 만끽하던 창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크! 이럴 때가 아니지.”

자신이 한국에 돌아온 이유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

바로 소녀시대의 데뷔 무대가 오늘이 아닌가?

창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를 하면서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윤실장님. 저 창현이요. 지금 한국이에요. 네. 엊그제 말했던 것처럼 제가 방송국 갈 일이 있으니 로드 매니저 한분 좀 오게 해주시겠어요? 그럼 부탁드릴게요.”

방송국까지 가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가다가 정체를 들킬 수도 있는 노릇이었기에 회사의 벤을 타고 갈 생각이었다. 굳이 쉬운 방법을 놔두고 어려운 방법을 택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약 이십 분 정도를 기다리자 로드 매니저가 집 앞으로 차를 몰고 왔고, 창현은 공항에서 자신을 완벽하게 변장해주던 복장을 다시 갖추고는 집을 나섰다. 그리고 벤에 탑승하여 S본부로 향했다.

창현이 만약 혼자 방송국에 갔으면 이런저런 절차를 거쳐야 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개인 자격으로 참여를 한 것이기에 일반 팬의 자격으로 참가를 해야 할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특혜를 받자니 자신의 정체를 밝혀야 하는데, 그렇게 하다가는 자칫 귀찮은 일에 휩싸일 수 있었기에 회사의 힘을 한 번 빌리기로 마음먹었다. AA엔터테인먼트 정도의 인지도라면 무난하게 처리가 될 테니 말이다.

과연 무난하게 방송국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출입증이 있었기에 막을 사람이 없었다.

일찍 도착했고, AA엔터테인먼트의 힘을 빌려 창현은 인기가요 프로그램 관중석 좋은 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무대 메인에 서서 눈높이를 약간 높이면 마주칠 수 있는 그런 자리랄까? 어쨌든 좋은 자리를 잡은 창현은 리허설을 하는 가수들을 지켜보았다.

뭐랄까. 얼마 전만 해도 자신이 저 무대 위에 서서 함께 노래를 불렀는데 지금은 여유롭게 구경을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지는 창현이었다.

“불과 네 달 전인데 벌써 옛날 같이 느껴지다니. 후!”

한국에 돌아오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면 다시 서게 될 무대였다. 하지만 이렇듯 구경하는 입장이 되니 조금 다른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가수들 하나하나가 리허설을 하고 있었고, 어느새 자리를 채워나가는 관객들은 그런 가수들을 보며 환호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창현은 소녀시대를 응원하기 위해 피켓을 준비해온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오늘 데뷔를 함에도 상당한 팬 층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뭐, 숫자도 숫자인 만큼 개성도 다양하니 팬 층도 넓게 포괄 할 수 있겠지.”

아직 어리지만 시장을 일찍 경험했기에 소녀시대가 지닌 강점을 알고 있는 창현. 그의 눈에 소녀시대가 리허설 무대를 하기 위해 위로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노래. 데뷔 곡은 <다시 만난 세계>란 이름의 곡인데, 상당히 힘이 있고, 멜로디도 좋아서 듣는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노래였다. 특히 신인의 열정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것 같아 그동안 노력한 그녀들의 땀방울이 느껴지는 곡이었다.

리허설 무대를 하는 그녀들은 아무래도 창현의 눈에 상당히 여러 부분이 밟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인가보다. 비방 무대 경험을 쌓았다고 하지만 정식 무대는 처음 경험일 테니 말이다. 안무도 중간에 틀리는 경우가 있었고, 과도한 긴장으로 인해 노래가 조금 딱딱하게 들리는 경우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녀들을 힘들게 한 것은 관중들의 무관심이었을 것이다. 팬 층을 확보했다고 하나 그녀들은 이제 갓 데뷔한 신인이었다. 당연히 보는 관객들은 예쁜 소녀들이 데뷔했구나, 라는 정도로 밖에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서일까?

리허설 무대가 끝나고 시무룩한 얼굴로 내려가는 모습이 창현의 마음에 걸렸다.

‘어쩔 수 없지.’

원래는 깜짝 놀래켜 줄 심산이었던 창현은 자신과 친한 소녀들의 시무룩한 모습에 잠시 갈등을 하다가 핸드폰을 연다.


대기실로 돌아온 소녀들의 반응은 침울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최고의 무대를 치러보자고 결의를 다지던 소녀들이었다. 하지만 막상 무대 위에 서게 되자 그런 결심은 희미해져만 갔다.

비방 무대에 여러 번 서봤지만 이런 정식 무대는 처음이었기에 무대 위에 올라서는 순간 소녀들의 머리는 텅 비어갔다. 정식 무대가 주는 중압감은 상상을 초월했던 것이다. 그 뒤 노래가 흘러나오고 어떻게 했는지 제대로 자각조차 못할 정도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하지만 노래가 끝나는 순간 그녀들은 알 수 있었다.

지금 리허설 무대는 망했다는 것을.

그동안 죽을 각오로 노력하고 연습해왔기에 그녀들은 느낄 수 있었다. 자신들이 어디가 틀리고 어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곧장 관객들의 반응으로 이어졌다.

무관심.

차라리 야유를 보냈으면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관심은 그런 야유보다 더욱 무서웠다.

이것은 자신들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그녀들이 원하던 것. 그것은 무대 위에서 최고의 무대를 선보이고 관객들의 호응을 받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고, 관객들은 신인인 그녀들에게 무서울 정도로 냉정한 모습을 보였다.

태연은 이런 침울한 분위기를 리더인 자신이 타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 또한 만족스럽지 못한 무대로 인해 기분이 우울했지만 이럴 때 분위기를 전환하고 다시 의욕을 갖게 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곧 난관에 봉착했다.

어떻게 분위기를 전환한단 말인가?

본 무대에서 잘할 수 있으니 그때 잘하자?

이렇게 말해봤자 말뿐이란 것을 알아차릴 것이 분명했다.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것이 헛되지 않게 힘을 내자?

이것도 무덤을 파는 격이다. 현재 소녀시대의 평균 연습 기간은 육 년이다. 연습생으로서 오랜 기간 보내왔기에 대다수 멤버들이 연습기간이 헛되지 않게 보낸 걸 증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상당한 중압감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말을 꺼내보려고 하지만 자칫 분위기를 더 심각하게 만들 수도 있었기에 태연은 섣불리 나서지를 못했다.

“…….”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는 대기실은 적막했고, 그것은 영원히 깨지지 않을 침묵처럼 무거운 적막감이 대기실을 휘감고 있었다.

얼마나 그런 침묵이 자리하고 있었을까.

지이이잉!

그 침묵을 깬 것은 핸드폰 진동음이었다.

갑작스러운 핸드폰 진동음에 모두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했다. 그곳에는 태연의 핸드폰이 있었다.

“미, 미안.”

태연은 자신의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는 것을 깨닫고는 소녀들에게 사과를 한 뒤 살짝 표정을 찡그린 채 핸드폰에 향한다. 가뜩이나 분위기가 좋지 않은데 그걸 깨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핸드폰을 펼친 태연은 문자가 온 걸 볼 수 있었고, 문자 내용을 열람한다. 그리고 문자 내용을 본 태연의 눈이 왕눈이처럼 커졌다.

태연은 소녀들을 보며 소리쳤다.

“얘들아! 창현이가 문자 보냈어. 그, 그런데… 에잇! 너희들이 봐봐!”

소녀들은 창현이 문자를 보냈다는 말에 눈을 빛냈고, 태연의 핸드폰으로 다가가려는 순간, 그녀들은 멈칫했다.

동시다발적으로 소녀들의 핸드폰에 문자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래도 창현이 전체 문자를 보낸 모양.

각자 핸드폰을 펼친 소녀들.

이윽고 그녀들도 태연의 표정과 비슷하게 놀라움과 어이없음이 생겨났다.

그런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는 내용의 문자가 왔던 것이다.

문자의 내용은 이러했다.

[나는 잘 보이는 곳에서 너희들을 지켜보고 있다. 흐흐!]/

“…….”

문자를 본 소녀들은 할 말을 잃은 상태였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혹시나 잘못 온 게 아닐까 싶어 번호를 확인해보고, 멤버들의 문자도 확인도 해보았지만 틀림없이 창현의 번호로 온 문자였다.

소녀들의 대기실에는 다시 한 번 침묵이 자리했다.

그러나 침묵의 근원은 조금 전의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조금 전은 리허설 무대 실패로 인한 낭패감과 본방 무대를 잘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어깨를 짓눌렀다면 지금은 갑작스러운 창현의 문자로 인한 황당함이었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상황 파악을 위해 애쓰던 소녀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그 침묵을 깬 것은 태연이었다.

창현이 보낸 문자를 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태연이 입을 열었다.

“저기 얘들아. 이거 혹시 창현이가 여기 있다는 거 아닐까?”

“……!”

태연의 말에 소녀들이 흠칫한다. 그도 그럴 것이 태연이 꺼낸 말은 그녀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지켜보고 있다는 것, 그것은 방금 전 무대를 봤다는 것이 아닐까?

그럴 수도 있다는 추측이 팽배해져갔다.

그때, 으드득!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를 가는 소리였다.

갑작스러운 이 가는 소리에 소녀들이 흠칫하며 소리의 진원지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윤아가 핸드폰을 보며 이를 갈고 있었다.

윤아는 자신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느꼈는지 흠칫하다가 말했다.

“태연 언니 말 듣고 문자를 보내봤거든요? 그런데 답장이 뭐라고 온 줄 아세요?”

“뭐라고 왔는데?”

윤아가 물어봤다는 말에 소녀들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어떻게 보면 깊게 고민할 필요도 없이 문자로 물어보면 될 것을 워낙 어안이 벙벙하였기에 미처 물어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게… 나 참! 그냥 언니들이 보세요.”

뭐라 말하려던 윤아는 소녀들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그러자 핸드폰을 받아들고는 창현이 보낸 답장을 본 소녀들. 그녀들의 얼굴에는 다시 한 번 어이없다는 표정이 떠오른다.

수연이 윤아를 보며 물었다.

“윤아야, 뭐라고 문자를 보냈는데?”

“창현아, 너 한국 왔어? 라고 보냈어요.”

윤아의 대답에 수연은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핸드폰에는 창현이 온 답장이 있었다.

창현이 보낸 답장은 이러했다.

[^▽^]

웃고 있는 이모티콘이 끝이었다. 그러니 윤아가 이를 갈 수밖에. 놀리려는 의도가 명백했다.

잠시 생각하는 듯하던 수연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아무래도 창현이가 한국에 온 것 같아.”

주변의 시선이 수연에게 집중되었다. 수연은 그 시선을 받으며 침착하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이미 창현이 정체를 숨길 때 그가 현이라는 것을 밝혀낸 막강한 추리력을 입증한 바 있었기에 수연은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생각해봐. 창현이가 한국에 돌아왔어. 그 이유가 우리 데뷔 무대를 보러왔든 아니면 미국에서 활동이 끝났던 간에 일단 한국에 돌아왔다고 가정해봐. 이미 세계적인 스타가 된 창현이가 한국에 돌아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난리가 나겠지? 창현이는 조용히 입국을 했을 거야. 그리고 우리 데뷔 무대를 보러왔겠지. 그러다가 우리가 리허설 무대에서 실수를 많이 하고 의욕이 없어 보이니까 이런 문자를 보낸 걸 거야.”

수연의 말은 말 그대로 하나의 추측이었다.

하지만 창현이 한국에 왔다는 가정 하에 이렇게 저렇게 끼워 맞춰보면 제법 그럴싸한 말이 된다. 안 그렇다면 자신들이 무대를 망쳐 의기소침하고 있을 때 이런 문자가 올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타이밍도 공교롭고 심증도 간다. 즉, 창현이 한국에 돌아왔을 가능성도 높다는 이야기다.

그럴 듯한 말이지만 소녀들은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믿기 힘들 테지.

“수연이의 말이 맞는 것 같아. 아무래도 창현이 그 녀석이 한국에 몰래 돌아온 것 같아.”

그때 나선 것이 태연이었다.

태연이 수연의 말에 동조하고 나섰다. 사실 그녀도 반신반의하고 있지만 창현의 한국 귀환설(?)은 지금 상황을 타개하는데 있어 무척 큰 도움이 될 것임이 분명했다.

그녀 또한 창현이 정말 한국으로 온 것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장 눈앞에 닥친 데뷔 무대였다.

“창현이가 와 있다면 우리의 무대를 봤을 거야. 너희들도 느끼고 있겠지? 방금 전 우리 무대가 실패였다는 걸.”

태연의 말에 분위기가 다시 침울하게 변한다. 망한 무대를 창현이 봤을 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울적해진 것이다.

그 모습에 태연이 고개를 푹 떨구고 있는 주현을 보며 물었다.

“주현아, 너는 여기서 주저앉을 생각이야? 창현이가 보고 있는데도? 그동안 노력한 것들은? 그것도 다 발휘해보지도 못한 채 이대로 무너질 거야?”

태연의 말에 주현이 움찔한다. 그리고 태연의 말에 강렬한 자극을 받게 된다.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연습을 해왔던가. 초등학생 시절부터 중학생 시절까지 오로지 가수가 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여기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그리고 창현한테 못난 모습을 보여줄 수 없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자 주현의 눈에는 강렬한 의욕이 생겨났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방금 전 무대가 망한 거라면 그것에 절망하지 않고 양분을 삼으면 된다. 아직 본방은 하지도 않지 않았던가. 지금이라도 최선을 다하면 된다.

주현이 제 모습을 되찾자 태연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주변을 스윽 둘러보니 자신의 말을 듣고, 주현의 변한 모습을 보고 어느새 의욕을 되찾아가는 멤버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직한 현상이었다. 첫 무대가 실망이어서 자칫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렇게 의욕을 되찾았으니 말이다.

주현은 양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열심히 할게요. 최선을 다해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겠어요.”

“그래, 주현이 네 말이 맞아. 우리 모두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자.”

“응!”

어느새 의욕을 되찾은 소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 멤버들의 모습에 태연이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그리고 무대 위에 오르면 창현이를 찾는 거야. 왔는지 확인을 해야 하니까. 녹화 무대여서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카메라를 보는 척하면서 찾아보자. 알았지?”

“오케이!”

태연의 말에 활기차게 대답하는 소녀들. 이미 몇몇은 암암리에 문자를 보내 창현의 한국 귀환 여부를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윤아에게 왔던 예의 [^▽^]라는 문자밖에 안 왔기에 약이 바짝 오른 상태였다.

덕분에 의욕을 되찾게 되었지만 창현은 독 오른 암고양이 아홉 마리를 적으로 만든 셈이었다. 미국에서 놀리고 느꼈던 그 달콤함을 아직도 잊지 못한 듯했다.

“일단 안무를 간단하게 맞춰보자. 틀리면 안 되니까.”

멤버들이 의욕을 되찾자 태연은 아까 전 리허설 무대를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안무를 맞춰보길 제안했고, 소녀들은 흔쾌히 승낙을 표하며 안무를 맞춰보기 시작했다.

그 사이 녹화 방송은 시작되었고, 소녀들이 안무를 맞춰보는 가운데 어느새 소녀들의 순서가 찾아왔다.

자신들의 순서가 찾아오자 잔뜩 긴장한 소녀들.

태연도 떨리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자신이 리더였기에 속으로 길게 심호흡을 하며 멤버들에게 말한다.

“자, 우리 순서가 되었어. 연습실에서 하는 것처럼 아니, 창현이한테 보여준다고 생각하고 하자. 만약 우리가 못하면 창현이가 얼마나 놀릴지 생각해봐.”

“……!”

그 말에 소녀들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태연의 말처럼 만약 자신들이 무대에서 버벅댄다면?

아마 창현은 건수를 잡았다고 해서 두고두고 놀릴 것임이 분명했다.

당장 무대를 망치게 되면 그보다 더 큰 후폭풍이 몰려오겠지만 소녀들은 창현을 매개체로 의욕을 되찾았기에 당장 그가 자신들의 무대를 본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소녀 학교에 가다]에서 방송 때문에 창현의 놀림을 그대로 감수해야 하지 않았던가! 그런 놀림은 두 번 다시 당하고 싶지 않았다.

소녀들의 눈에는 어느새 의욕을 넘어서 전의가 충만해졌다.

태연은 그런 소녀들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창현이한테 우리의 실력을 보여주자고.”

그 말과 함께 손을 내미는 태연. 다른 소녀들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차리고는 차곡차곡 손위에 손을 포갠다.

아홉 개의 손이 모여들었다.

태연이 소녀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구호 외치고 가자. 지금은!”

“소녀시대!”

소녀시대가 가수로서 본격적인 첫 걸음을 내딛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크크크!”

본격적으로 녹화가 시작되고, 가수들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느긋하게 감상하며 창현은 소리 주경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문자로 제법 두둑한 한방을 연이어 날려준 것이다.

대충 자신이 보낸 문자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건지 서울에 왔냐는 질문을 던지는 문자를 사뿐하게 웃는 얼굴로 대체한 창현은 당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소녀들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리허설 무대가 실패로 끝나 의기소침해 있을 소녀들을 위로해주기 위해 문자를 보내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턴가 놀리기 위해 보내버리게 된 창현.

그래도 자신이 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리고, 자신에게 놀림을 당함으로써 치솟아 오르는 분노 게이지를 바탕으로 잘되길 바라는 창현이었다. 후환이야 뭐… 슬쩍 만났다가 낌새가 이상하면 도망치면 되니 걱정하지 않았다. 이제 자신의 키가 173cm!! 소녀시대 내에서 가장 큰 수영을 제친 만큼 거칠 것이 없었다.

키가 클수록 겁이 없어진다는 속설(?)이 사실인 듯했다.

그렇게 무대 앞에서 가수들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지켜보던 창현. 행여 다른 가수들이 자신을 알아볼까 싶어 모자를 쓴 채 무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무대가 하나씩 끝나가고, 마침내 소녀시대의 차례가 되었다.

조명이 꺼진 무대 위로 등장하는 소녀들. 유리가 가장 앞에 서고 그 뒤에 소녀들이 하나둘씩 일렬로 자리한다.

잠시 후, MR이 흘러나오면서 소녀들이 좌우로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낸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유리는 MR이 흘러나오자 고개를 들었다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바로 정면에 창현이 형광 막대기를 흔들며 유리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던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지만 정말로 온 것이다.

음악에 몸을 맡겨 열심히 안무를 추는 소녀들. 마침내 그녀들의 타이틀 곡 <다시 만난 세계>가 시작 된다.

가장 먼저 오프닝을 끊는 것은 태연이었다.

무대 중앙으로 온 그녀는 창현을 발견한다. 그의 위치가 무대 중앙에서 살짝 시선을 내리면 바로 보이는 위치였던 것이다.

씨익.

창현을 보자 미소를 짓는 태연.

그런데 그 웃음이 워낙 불길한 느낌이 들었던 나머지 창현은 움찔한다. 그리고 재빨리 준비했던 피켓을 들어 태연에게 흔들어보인다.

그 피켓을 본 태연의 이마에 빠직 혈관 마크가 생겨난다.

피켓에는 『SNSD♡ 꼬꼬마 리더 태연☆』라고 쓰여 있던 것이다. 피켓은 마음에 드는데 꼬꼬마 리더는 마음에 들지 않는 태연이었다.

하지만 노래는 이미 시작되었기에 그녀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자신의 파트를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뒤이어 나오는 것은 주현이었다. 자연히 주현과 창현이 시선을 마주하였고, 창현은 웃음을 지으며 『SNSD♡ 개구리 중사 서로로☆』라고 적인 피켓을 흔든다.

주현의 뒤를 이어 나온 것은 수연. 창현은 역시나 이번에도 준비한 『SNSD♡ 얼음공주 제시카☆』라고 적힌 피켓을 준비해서 흔든다.

창현의 피켓에 빠직하며 이마에 혈관 마크가 생겨나는 멤버가 있는가 하면, 만족하는 멤버도 있었다.

아홉 멤버가 한차례씩 나오자 창현은 『少女時代♡사랑해요』라고 적힌 피켓을 한손으로 든 채 흔들며 환호한다.

각자 맡은 파트를 훌륭하게 소화해내며 성공적인 라이브를 펼치는 소녀시대. 아직 무대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무대 위치 잡는 것이나 안무 동작이 틀리고는 하였지만 리허설보다 훨씬 완성도 높은 무대였다.

막 형광 막대기와 피켓을 흔들며 어느새 귀에 익어버린 <다시 만난 세계>를 흥얼거리던 창현은 순간 움찔하며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다가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카메라 여러 대가 자신을 찍고 있던 것이다.

이런 젠장 맞을. 아무래도 소녀시대가 신인 그룹이고, 인지도가 낮다 보니 관객들이 어느 정도 호응해주는 정도의 모습만 보이고 있었는데 자신이 가장 열심히 형광 막대기도 흔들고 피켓도 흔들고 있으니 카메라에서 자신을 잡은 듯했다. 그리고 대충 자신이 누군지 파악을 한 듯하자 카메라로 자신의 모습을 잡은 거겠지.

낭패였다. 젠장.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이건 녹화 방송일 테니까. 기자들이 냄새를 맡고 오는 것도 시간이 걸릴 뿐더러 주변 사람들은 가장 앞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를 상황이 있을 수 있었기에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가수들 무대도 보고 싶었는데 못 보게 되어 조금 아쉬웠지만 소녀시대의 데뷔 무대를 보게 되었으니 당초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카메라가 창현을 잡고 있는 사이 약 4분여에 달하는 무대를 성공리에 끝마친 소녀들. 격렬한 안무와 긴장으로 인해 땀을 흠뻑 흘린 듯한 모습이었지만 표정만큼은 밝았다.

공손하게 인사를 한 뒤 내려가는 소녀들. 마지막에 내려가던 태연은 창현에게 슬쩍 눈짓을 준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뻔했다. 잠시 들리고 가라는 뜻.

창현 또한 한 번 만나고 갈 생각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만나보지 못하고 가는 건 조금 아쉬웠다.

준비해온 피켓들을 모두 챙겨든 창현은 모자를 쓰고 후드 티를 뒤집어 쓴 뒤 관객들을 해쳐나가며 빠져나간다.

카메라로 자신의 모습을 잡았기에 몇몇 스태프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미 복장을 봐서 그런지 변장을 해도 알아보는 눈치였다.

‘에이, 변장 효과를 못 보겠네.’

모자 쓰는 거랑 후드 티를 뒤집어 쓰는 게 번거로웠기에 창현은 어차피 들킨 거, 다 벗어 버리고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오늘은 볼 일이 있어서… 저 본 거 가급적이면 비밀로 해주세요!”

그 말과 함께 창현은 후다닥 달려간다. 어차피 자신을 본 게 가려지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았지만 뭐, 몰래 온 사람으로서 할 말을 했을 뿐이다.

그렇게 무대를 벗어난 창현은 대기실로 들어서자 조금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너무나 당당한 창현의 발걸음과, 이미 세계적인 스타가 된 그의 분위기는 곳곳에 자리하던 경비들이 함부로 다가서지 못하게 하는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 창현이 이곳에 있는 것이 의아하기는 했지만 방송 관계자였기에 딱히 제지할 것도 안 되었지만 말이다.

대기실이 있는 곳으로 간 창현은 소녀시대 이름이 붙어있는 대기실에 도착한다.

우선 예의상 노크를 하는 창현.

똑똑똑! 하는 선명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리고 조용히 문을 연 창현은 조용히 대기실 안으로 들어서며 안에 있는 소녀들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누나들?”

“…….”

하지만 소녀들의 반응은 창현의 예상과 사뭇 달랐다. 웃으면서 자신을 맞이해줄 줄 알았는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던 것이다. 게다가 심상치 않은 기운마저 풍기고 있었다.

“왜 그런 거예요? 무섭게…….”

그 기세에 창현이 주춤하며 방밖으로 뒤로 물러나려 한다.

그러나 창현은 차마 뜻을 이루지 못했다. 창현이 들어오고, 소녀들의 모습을 확인하며 뒤로 물러나려는 순간에 양옆에서 창현을 붙드는 손길이 있던 것이다.

갑자기 자신의 양팔을 붙드는 손에 창현은 당황한 얼굴로 양옆을 보았다. 그곳에는 태연과 수연이 아주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창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먼저 태연을 바라보니, 상큼하게 웃음을 지으며.

“안녕, 창현아? 너무 반가워!”

얼굴은 웃고 있지만 하는 말에서는 살기가 풀풀 풍겼다.

그런 태연의 모습에 창현이 반대쪽으로 시선을 옮기니 수연이 싱긋 웃음을 짓는다.

“반가워, 창현이 네가 걱정해줘서 머리가 다 나았어.”

“…아!”

창현은 그제야 소녀들이 왜 그런 모습을 보이는지 이해한 표정이었다.

윤아가 앞으로 나서면서 스산한 표정을 지은 채 창현에게 말한다.

“안녕, 창현아. 이슬 먹고 사는 사슴 윤아란다. 오늘의 만남을 내가… 아니, 우리 언니들과 나, 그리고 주현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고 있니?”

“일단 생포했으니 천천히 심문하도록 하자고. 후후후!”

태연이 눈짓을 하자 윤아가 문을 쿵! 닫으며 문쪽을 지키고 섰으며, 창현은 태연과 수연의 손길에 이끌려 대기실 한복판에 놓이게 된다.

졸지에 소녀들에게 포위된 창현. 그 형세가 예전 녹음실에서 벌어졌던 풍경과 사뭇 비슷했다.

아니나 다를까, 태연이 앞으로 나서면서 불량한 모습으로 창현을 바라본다.

태연은 창현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한다.

“자, 이제 본격적인 심문에 들어가도록 하지.”

그녀를 비롯한 다른 소녀들의 입가에는 회심의 미소가 맺혀 있었다. 창현은 다잡은 물고기였던 것이다. 이제 요리만 하면 되는 셈이다.

“전 누나들 데뷔 무대를 보기 위해 미국에서 스케줄 조정까지 하면서 응원을 왔는데, 왜 저한테 이러시는 거죠? 멀리서 응원하러 온 것도 잘못된 건가요?”

하지만 창현의 반응은 그녀들의 예상과 판이하게 달랐다. 돌연 표정을 굳힌 창현이 딱딱한 목소리로 소녀들에게 일침을 가한 것이다.

여태까지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창현의 시크한 모습에 소녀들이 흠칫하며 주춤거린다.

예상치 못한 창현의 시크한 모습의 등장. 그로 인하여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창현의 반응에 소녀들은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들은 여태까지 창현의 이러한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백기를 들고 투항을 할 거라 예상을 했는데 화를 내다니.

소녀들이 당황한 표정을 짓자, 창현은 재차 말했다.

“전 누나들 데뷔 무대 보려고 스케줄도 모두 조정해서 온 거란 말이에요. 제가 오늘 시간을 내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제가 장난 조금 쳤다고 이러시는 건 조금 심하신 거 아니에요?”

그러면서 창현이 태연을 쏘아보았다.

그 시선에 움찔하는 태연. 자연스레 어깨가 움츠러든다.

“그, 그게…….”

자신을 노려보는 창현의 눈에 태연은 말을 잇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자신들 생각만 하고 창현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았다.

창현이 누군가. 한국인 아니, 동양인으로서 세계 최초로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한 천재가 아닌가? 게다가 현재 그의 네 번째 싱글 앨범인 <Minus>는 최고의 주가를 달리며 빌보드 차트 3주 연속 1위라는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만큼 당연히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을 터. 그런 그가 한국에 왔다는 건 당연히 스케줄을 어떻게든 조정하고 왔다는 것이 되고, 그 이유는 자신들의 데뷔 무대를 보러 오기 위함이란다.

감격스러운 한편 창현에게 미안함이 물밀듯 몰려왔다. 자신들을 위해 미국에서 힘겹게 온 창현을 핍박한 것이 너무나 미안했다. 따지고 보면 사적으로 알고 지내던 누나 동생 사이가 아니었다면 자신들이 감히 쳐다보기도 힘든 것이 창현인데 말이다.

그것은 비단 태연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니었다.

다른 소녀들도 창현의 말에 숙연한 표정이었다. 그녀들 또한 창현의 말을 듣고 그가 얼마나 대단한 스타인지,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온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 수 있던 것이다. 특히 창현이 자신들의 데뷔 무대를 보기 위해 스케줄 조정했다는 부분은 그가 얼마나 자신들을 생각해주는지 알 수 있었다.

풀 죽은 그녀들의 모습을 보며 창현은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이거 먹히는데? 흐흐흐!’

그렇다. 지금 보인 창현의 행동은 모두 연기였던 것이다.

대기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짐작하지 못했지만 창현은 소녀들에게 포박 당한 뒤 문까지 점거당한 채 포위당하는 형국에 처하게 되자 자신의 목숨이 지금 경각에 달렸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짧은 시간 머리를 굴리던 창현은 한 가지 방안을 떠올리게 되었고, 곧바로 연기에 돌입하게 된다.

창현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바로 ‘방귀 뀐 놈이 성낸다.’라는 속담의 응용이었다.

분명 소녀들이 자신에게 사랑(?)의 집단 다구리를 행하려 하는 이유는 미국에서 가했던 놀림과 방금 전 문자 장난으로 인하여 그런 것일 터. 한건도 아니고 두건이나 겹치는 만큼 온전하게 돌아갈 확률이 적다는 걸 알았기에 도리어 화를 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마침 자신에게는 머나먼 미국에서 왔다는 명분과 살인적인 스케줄을 조정했다는 것이 있었다.

실제로 자신이 한국에 돌아오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소녀들의 데뷔를 보기 위해 스케줄을 조정한 것도 있기에 거짓말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즉, 진실을 말함으로써 거짓 여부를 의심할 여지를 차단하고, 자신의 말이 정말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 것이다. 진실 99%에 거짓 1%가 섞였으니 당연히 진실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화를 내자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소녀들의 반응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자신에게 미안한 표정을 짓는 모습에 창현은 마음이 약해지려는 걸 느꼈지만 애써 그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서 무너지면 안 돼! 연기한 거 걸리다간 난 죽는다.’

이미 기호지세였다. 살기 위해 역으로 화를 낸 격이었으니 연기를 성공적으로 끝내야 한다. 그래야 자신도 살고 앞으로 소녀시대에게서 자신이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다.

창현은 마음을 다잡으며 냉정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한다.

“후! 화를 내서 미안해요. 제가 미국에서 온 다음 바로 와서 조금 예민했네요. 머리 좀 식혀야겠네요.”

그러면서 문 쪽으로 향하는 창현. 그곳에는 윤아가 있었지만 창현이 워낙 냉정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윤아는 저도 모르게 옆으로 비켜선다.

미국에서 온 다음 바로 방송국에 왔다는 창현의 말은 소녀들의 미안한 마음을 더욱 증폭시켰다.

미안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몇몇 소녀들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창현에게 너무 미안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크한 모습으로 소녀들을 모두 제압한 창현이 문을 열 무렵이었다. 이대로 탈출구를 확보했으니 조금 있다가 화가 풀린 척하면서 다시 등장한다면 앞으로 자신에게 더욱 잘하겠지.

구박 받고 늘 당하던 모습과 달리 소녀들도 함부로 하지 못할 정도로 격상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니 창현의 입꼬리가 절로 말려 올라갔다.

그것이 창현이 범한 결정적인 실수였다.

다른 소녀들은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지만 문에 있던 윤아만은 창현의 표정을 살피고 있던 것이다.

윤아는 창현의 말려 올라간 입 꼬리를 보며 소리쳤다.

“창현이 너 왜 웃고 있는 거야! 너, 너 설마!”

경악이 담긴 윤아의 외침은 대기실 안을 울렸다.

그리고 경악 어린 윤아의 외침은 다른 소녀들의 귀에도 들려왔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소녀들이 창현을 바라보았다.

“……!”

윤아의 외침을 들은 창현이 황급히 표정을 수습했지만 그녀들은 볼 수 있었다.

약간 어색하게 씰룩거리는 창현의 입매를 말이다.

그것은 윤아의 외침이 사실이라는 것에 상당한 타당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순간 자신에게 집중되는 소녀들의 불신감 어린 시선에 창현은 당황했지만 티를 내지 않으며 말했다.

“제가 언제 웃었다는 거죠? 정말 너무하네요, 누나.”

하지만 이미 사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창현이 웃는 모습을 윤아가 본 상태였고, 부자연스러운 그의 표정을 다른 소녀들도 본 상태였다.

연기로 치면 NG를 낸 셈이다.

게다가 한 번 무너진 긴장의 끈을 다시 부여잡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표정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분명 음성 컨트롤은 완벽했는데 표정은 매치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분위기가 급변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창현의 말에 미안함으로 가득했다면 지금은 복잡, 분노, 괘씸이라는 단어가 한데 뒤섞여 강렬한 오오라를 피우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소녀들의 모습에 창현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수연은 그런 창현을 보며 말했다.

“이미 다 들통 났어, 창현아. 감히… 우리에게 거짓말을 해? 전화로 장난을 치고, 문자로 장난까지. 무엇보다 용서할 수 없는 건…….”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드는 수연. 그것은 잡지 같은 것이었는데, 어느 페이지를 펼치더니 창현이 있는 곳을 향해 내민다.

“이런 것도 찍고!”

“헉!”

수연이 내민 것을 확인한 창현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녀가 내민 것은 다름 아닌 창현의 곡 <Minus> 한정판에 동봉되어 있는 화보집이었던 것이다. 수연이 펼친 페이지는 창현과 미모의 금발 미녀가 포옹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수연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창현을 보며 말했다.

“우리를 놀린 것도 그렇고, 미국에서 이런 짓을 한 것까지. 용서할 수 없어.”

그 말과 함께 소녀들이 창현에게 한걸음씩 접근한다.

심신을 옥죄는 그녀들의 모습에 창현이 침을 꿀꺽 삼키더니 악을 쓰듯 외쳤다.

“좋아요! 다 인정 한다 쳐도, 그 화보집은 어째서죠? 제가 어떤 화보집을 찍던 간에 상관없잖아요?”

“…….”

창현의 반박에 수연은 물론 다른 소녀들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그의 말처럼 그가 금발 미녀와 화보집을 찍던 은발 미녀와 방송에 출연하건 그녀들이 간섭할 영역이 아니었던 것이다.

연기가 들켜 자칫 밀릴 수도 있었지만 반전의 기회를 잡은 창현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한 반전의 기회란 것은 너무나 허망했다.

수연이 돌연 무대포로 나온 것이다.

“그런 것은 필요없어! 중요한 건 네가 지금 우리에게 연기를 했단 거야! 넌 우리를 농락했어! 잡아!”

수연의 외침과 함께 근처에 있던 윤아가 창현에게 달려들었다.

회심의 한 수라 여겼던 것이 먹히지 않자 창현이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이대로 잡힌다면 최소 사망일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허무하게 잡혀서 지옥을 볼 수는 없는 노릇.

창현의 뇌리에 수십 가지 생각이 떠오르며 교차했다.

그리고 그의 머리에 떠오른 한 가지 방법. 이 방법만이 살 길이다!

그가 택한 것.

그것은 바로…….

후다닥!

창현이 선택한 것은 바로 도망이었다.

줄행랑. 그것이야 말로 그가 택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었다.

소녀들은 창현이 도망칠 거라 생각하지 못했는지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자, 잡아!”

수연의 외침이 대기실을 뒤흔듬과 동시에 소녀들이 대기실을 뛰쳐나와 창현을 뒤쫓는다.

숨 막히는 추격전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추격전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도주한지 불과 오 분만에 창현이 체포됨으로써 상황이 막을 내린 것이다.

소녀들의 달리기 속도로 창현을 붙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100m를 12초에 주파하는 창현의 달리기 속도는 웬만큼 달리기가 빠른 사람이 아니고서는 따라잡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녀들의 숫자는 다수였고, 창현은 혼자였다.

창현이 도주하는 즉시 소녀들은 대기실에서 나와 흩어졌다. 그리고 미로 같은 대기실 곳곳에 퍼져 길목을 막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 창현을 붙잡을 수 없었다. 창현이 워낙 빠르게 대기실을 빠져나와서 그렇다.

결국 소녀들이 동원한 최후의 방법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었다.

가수답게 엄청난 성량으로 ‘현이 나타났어요!’ 라고 외쳤고, 그 목소리에 빠르게 질주하던 사람이 현이란 것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달리던 현을 뒤쫓기 시작했다.

한참 정신없이 달리던 창현은 어느 순간부턴가 자신의 뒤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쫓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그 사람들을 따돌리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로드 매니저가 있는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것이 함정이었을 줄이야.

계속해서 달리느라 지칠대로 지친 창현은 지하 주차장에서 한숨을 돌릴 때, 붙잡히고 만 것이다. 지하 주차장에 몇몇 소녀들이 잠복하고 있었던 것을 모르고 있다가 잡힌 것이다.

갑자기 소녀들이 지하 주차장에 나타나자 창현은 필사적으로 도망쳤지만 지하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윤아와 수연에게 앞뒤를 점거 당한 채 결국 붙잡히고 말았다.

힘이 떨어진 창현은 필사의 도주를 감행했지만 춤으로 다져진 소녀들을 따돌릴 만큼의 힘이 닿지 못했다.

결국 억세게 느껴지는 윤아의 손에 뒷덜미가 붙잡힌 창현은 고개를 떨구고 만다.

“부, 분하다!”

“그 이야기는 일단 돌아간 뒤에 하자고, 창현 군.”

생긋.

천사표 웃음을 짓는 윤아의 미소는 스산한 어둠을 동반하고 있었다.

창현은 죽지 않았다. 그렇다고 맞은 것도 아니었다.

마치 죄인처럼 대기실로 끌려간 창현이었지만 아까 전 창현이 말했던 것 때문인지 소녀들은 폭력을 동반하지 않았다.

차가운 도시 남자를 흉내 내다 걸린 터라 오늘이 자신의 최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창현에게는 의외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소녀들은 대기실까지 끌려온 창현을 잠시 노려보더니 이내 일렬로 서서 창현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오늘 저희들의 데뷔 무대를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홉 명의 소녀가 마치 합창을 하듯 창현에게 말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소녀들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 창현.

어리둥절하는 창현의 반응에 태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세계적인 스타인 현이 우리 데뷔 무대를 보기 위해 와준 것은 엄청 영광으로 알고 있다고. 그런데 정말 스케줄 조정을 한 거야?”

은근하게 묻는 태연. 창현이 정말 스케줄 조정을 하고 왔는지 궁금했나보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미국 내에서 창현의 활동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각종 방송은 물론 수많은 화보와 CF의뢰가 물밀듯이 몰려오고 있었기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것이 현재 상황이었다.

그런 그가 왕복 하루가 꼬박 걸리는 한국에 오기 위해서는 빠듯한 스케줄을 소화했을 터.

톱스타가 하루라는 시간을 비우기 위해 다른 날 동안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소녀들로서는 창현의 말이 귀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태연의 물음에 창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실 99%와 거짓 1%가 섞이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사실이었다.

“맞아요. 하루에 세 시간 정도 자면서 스케줄을 소화했어요. 한 달에 집에 들어간 게 한두 번 정도? 정말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오죽하면 한국 올 때 비행기에서 잤던 게 요 근래 취했던 수면 중 가장 편하게 느껴졌을까요, 하하!”

창현이 웃음을 짓자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하루 세 시간이라니. 그것도 한달 동안 집에 들어간 게 한두 번이란 것은 그가 얼마나 바쁘게 살아왔는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노력이 모두 자신들의 데뷔 무대를 보러 오기 위해 그랬다는 것에 울컥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열심히, 조금 더 완벽한 무대를 보여줬어야 했는데.

분위기가 어두워지려고 하자 태연은 분위기를 전환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

멤버들과 창현을 힐끗 본 태연이 외친다.

“에잇! 모두 침울해하지 말자! 어쨌건 이미 모든 일은 벌어진 거잖아! 창현이가 우리를 위해 먼 길을 와줬으니 특별히 창현이가 쏘는 밥을 먹으러 가자!”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무협 소설로 치면 자기 집 뒷동산 동굴에 천하제일고수의 비급과 만년 묵은 영약이 있는 듯한 어이없는 개연성을 갖춘 태연의 말에 창현이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그, 그게 뭐죠? 먼 길을 온 건 전데 왜 제가 밥을 쏴야하는…….”

창현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혼신의 힘을 다한 무대를 한 후였고, 창현을 붙잡기 위해 뛰어다녔던 소녀들은 밥 이야기가 나오자 허기를 느낀 것이다.

수영이 창현의 말을 끊고 나섰다.

“오늘 우리가 데뷔했잖아! 선배로서, SM엔터테인먼트에 고용된 프로듀서로서 우리를 축하해줘야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에 반박하려고 했지만 또 끊기고 말았다.

윤아가 주먹을 들어보이며 창현에게 말한 것이다.

“우리를 속였지만 살아 있잖아! 그러니까 사줘, 그냥.”

‘아니, 누나들 속이면 원래 다 죽는 겁니까?’

소녀시대는 개뿔. 소녀폭력단이지!

그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창현은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그 단어를 삼키며 현실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주지 않으면 당장 목숨이 경각에 달할 처지였다.

창현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떨구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 알았어요. 대신 너무 비…….”

너무 비싼 건 안 돼요! 라고 하려던 창현.

그러나 알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소녀들은 환호하며 소리친다.

“아싸! 그럼 꽃등심이다!”

“꽃등심! 브라보!”

“꽃등심! 꽃등심!”

순식간에 창현이 사주는 것을 꽃등심으로 몰아버리는 소녀들.

아홉 소녀가 연달아 파바박! 하고 몰아붙이니 창현은 뭐라 말도 하지 못한 채 졸지에 꽃등심을 사주게 되었다.

창현은 연신 꽃등심을 외치며 환호하는 소녀들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누나들 오늘 데뷔했으니 SM엔터테인먼트에서 축하 파티 안하나요?”

어떻게든 꽃등심만은 피해 가야돼! 라고 생각하던 창현은 회심의 한 수를 썼다.

하지만 그 기대는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지고 만다.

태연이 정말, 정말 아쉽다는 표정으로 창현에게 말한 것이다.

“오늘 선배 가수님들이 스케줄이 되지 않아서 다음에 하기로 했어. 그래서 숙소에서 조촐하게 파티를 하려고 했는데… 마음씨 착한 선배님이 마침 파티를 해주신다고 하잖아.”

그러면서 창현을 보는데 입 꼬리가 부들거리는 태연의 모습을 본 창현이 몸을 가늘게 떨었다.

단순히 밥을 사겠다고 했건만 어느새 꽃등심에서 파티로 격상된 것이다.

소녀들은 그런 태연의 말을 도와주었다.

“그러게! 참 고마운 선배님이시지.”

“그렇고 말고! 꽃등심에다가 후식까지…….”

어느새 후식까지 책임지게 되려 하자 창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 누나들이 지금 짜고 자신을 압박하고 있던 것이다.

‘소녀폭력단은 소녀공갈단도 겸하고 있었구나!’

등 뒤로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며 창현이 외친다.

이대로 가다가는 미국에서 벌어들인 감히 세기도 힘든 돈들이 소녀들을 먹이느라 동날 지경이었다.

“아, 알았어요! 꽃등심입니다. 후.배.님.들을 위해 그 정도는 해야지요. 자, 갑시다. 가요.”

꽃등심을 사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마음 속에 깃든 이 당했다! 라는 감정은 창현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건 참으로 쉬운 일이었다.

소녀들과 함께 벤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창현의 뒷모습이 그렇게 왜소해 보일 수 없었다.

예전 녹음실에서 창현이 몸을 털렸다면 오늘은 철저하게 지갑이 털린 날이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소녀들을 만나니 그동안 쌓였던 갈증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었다.

바보가 되었다는 충격이 더욱 크기는 했지만.

어쨌든 한국으로 돌아온 창현은 첫날부터 호되게 신고식을 치르게 되었다.


현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8월 3일 한국을 강타한 소식이었다.

3일 뒤 방송되는 S본부 ‘인기가요’ 녹화 중 우연하게 현의 모습을 잡힌 것이 그 시발점이었다.

당시 카메라에 잡힌 현은 관객들이 운집한 곳에서 피켓을 들고 있었다. 다름 아닌 소녀시대 데뷔 무대에 그가 직접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미국에 가면서 한층 더 빛나는 그의 외모는 오히려 사람들의 눈에 더욱 띌 정도로 대단해져 있었다.

S본부 카메라에 찍힌 창현의 모습은 기자들에게 유출되어 1면에 도배되다시피 하여 전국에 알려졌다.

갑작스러운 현의 귀환. 그것은 수많은 억측을 낳을 수 있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천재 싱어송라이터로 대한민국의 가요계를 뒤흔든 현의 위상은 불과 네 달 전과 비교를 거부할 정도로 거대해져 있었다.

한국인으로서 아니, 동양인으로서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빌보드 차트 1위라는 전대미문의 고지에 우뚝 선 그는 이 시대 최고의 천재 싱어송라이터라고 불릴 정도였으며, 미국 내에서 이국적인 미남으로 수많은 헐리웃 여자 스타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가장 사귀고 싶은, 가장 친하게 지내고 싶은 가수 1위로 꼽힐 정도로 현의 이미지는 미국 내에서도 정상을 달리고 있었고, 깍듯한 매너와 행동으로 미국 사람들에게 색다른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당장 그가 발매한 <Minus>란 곡은 미국 내에서 삼백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이룩하였으며, 3주 연속 빌보드 차트 1위라는 무시무시한 위업을 달성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보면 눈이 부시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외모와 날이 갈수록 빼어나게 변하는 현은 각종 광고와 화보에서도 엄청난 영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미국의 모든 달러를 쓸어 담는다고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고, 존재 자체 하나만으로 엄청난 파워를 발휘하는 존재가 현이었다.

당연히 그의 한국 방문 소식은 기자들에게 있어 특종 중 특종이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그가 미국의 스케줄을 감당하지 못하여 한국으로 휴식 차 돌아왔다고 생각하였고,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언론에서는 갓 데뷔한 소녀시대와 현이 모종의 연관이 있을 거라 추측하였다. 하지만 나쁜 의미로 기사를 적지 못한 것이, 그만큼 현의 위치가 대단하여 기자들조차 감히 현에 대한 예상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음악으로 한국인의 자존심을 우뚝 세운 현은 이미 스타의 단계를 넘어서 영웅으로 취급받고 있어서 그렇다.

8월 3일은 석규가 한국에 귀환한 날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에 돌아온 즉시 회사로 향했는데, 연예 기사란을 가득 채우는 창현의 기사를 보고는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 녀석 또 한탕 해버렸군.”

너무 급격하게 인기를 얻은 탓일까?

창현은 가끔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지 못하고 행동할 때가 종종 있었다.

물론 창현 자체가 워낙 반듯한 소년이었기에 모난 짓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그의 행동들이 이따금 이슈를 일으켰다. 가령 미국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 할머니를 차로 태워준 적이 있는데, 이걸 본 사람들은 창현의 행동을 한동안 무척 의아하게 여긴 적이 있었다.

나중이 되어서야 그것이 한국에서는 예의이고, 착한 일이란 것을 알았기에 이미지를 좋게 하는데 일조를 했지만, 어디로 튀어나갈지 예측을 할 수 없었기에 석규의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미국에서의 성공으로 창현이 자신감 있는 모습을 되찾고, 톱스타로서의 행동을 익혀나가고 있지만, 창현의 성격상 몇가지는 극복하기가 힘들어보였다.

“다른 톱스타들과 다르니 그 점들이 재미있겠지만 말이지.”

소위 말하는 톱스타들은 인기를 얻게 되면 그 후 신비주의 컨셉으로 사람들이 환상을 갖게 한다. 이로 인해 인기가 더욱 상승하고 몸값을 높이려는 몇몇 목적이 동반되는데, 석규는 굳이 창현에게 이러한 것들을 권유할 생각이 없었다.

믿기가 힘들지만 이제 열여섯 살이 된 창현이었다. 그가 벌써부터 신비주의 컨셉을 바탕으로 외부 활동도 자제한다면 너무나 힘들 것이다.

석규는 창현 스스로가 원하는대로 활동하길 바랐다. 이미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그에게 이 정도 사치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단지 자신이 옆에서 빗나가지 않게 잡아주기만 하면 될 뿐.

기사를 보고 창현이 왜 한국으로 돌아가고자 했는지 알아차린 석규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소녀시대. 익숙한 이름이 아닌가.

아홉 소녀로 이루어진 9인조 그룹. 창현이 누나처럼 따르는 아이돌 그룹이었다.

“말하기 싫어하더니 꿍꿍이가 이거였군. 큭큭! 뭐, 친한 사람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하지만 아홉 명은 좀 많은데? 이 녀석이 나랑 달리 바람둥이였나?”

은근하게 창현을 바람둥이로 만들어버리는 석규.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사장실 안으로 한 사람이 들어서면서 석규에게 말한다.

“뭔 바람둥이요? 설마 절 말한 건가요?”

사장실 안으로 들어선 것은 다름 아닌 창현이었다.

갑작스러운 창현의 등장에 석규는 움찔하더니 창현에게 말했다.

“험! 왔느냐? 난 네가 오지 않기에 아버지를 버리고 놀러간 줄 알았다.”

방금 한 말이 찔렸기에 화제를 돌리려는 석규.

그러나 창현도 만만치 않았다.

“도대체 제가 왜 바람둥이란 건데요?”

“음! 그건 네가 알고 있지 않느냐?”

음흉하게 미소를 짓고 물어보는 석규의 모습에 창현이 고개를 갸웃한다.

“뭔데요?”

‘허! 이것 참! 아직 쑥맥이구나. 하기야 음악 공부를 하느라 그런 쪽으로는 경험이 없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창현의 모습에 혀를 차며 고개를 젓는 석규. 조금 놀려보려고 했지만 불현듯 창현이 여태까지 모든 시간을 음악에 할애해 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석규 또한 부인이 교통사고로 죽은 뒤 창현이 얼마나 힘들게 시간을 보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당시는 자신 또한 슬픔을 잊기 위해 다른 것에 눈을 돌리지 않은 채 오로지 일에만 전념을 하였고, 그로 인해 혼자가 된 창현은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음악에만 빠져들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창현의 표정은 어두워져만 갔고, 석규는 그런 창현의 모습을 보고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함부로 창현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그러기엔 감정의 골이 너무 깊어졌고, 창현이 너무나 우울해 보였기 때문이다. 잘못 다가가다가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창현의 표정이 밝아졌다.

행동 하나하나에 자신감이 묻어나오기 시작했고, 자신보다 먼저 한 발 다가와 이야기를 건넸다.

그로 인해 오랫동안 서먹했던 부자관계가 한층 나아질 수 있었고, 그 해 창현의 첫 미니 앨범 <Go&Stop>을 발매하게 되었다.

창현이 학교에 간 사이 문득 그의 방에 들어가게 된 석규는 노래 가사만 열권 넘게 쌓여있는 창현의 공책을 보고 마음이 뭉클했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이 진심으로 행복하게 활동하길 바랐다.

“아니다. 모르면 됐다. 그나저나 Jive에서 아주 난리를 치더구나. 네가 가급적이면 미국 활동을 지속해달라고 말이다.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을 듯한 모습에 아주 고생을 했다니까?”

너스레를 떠는 석규의 모습에 창현이 미소를 지었다.

“Jive에서도 강수를 뒀나보네요. 어떻게 하셨어요?”

“어떻게랄 것도 있겠냐? 그냥 네가 너무 지쳤고, 유럽 콘서트와 정규 1집 앨범 발매 이후 휴식기를 갖겠다고 했지. 하지만 내가 보기엔 네가 굳이 미국에서 활동을 지속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사실 이것은 소속사 사장으로서의 입장과 전혀 다른 속내였다.

소속사 사장의 입장에서 창현이 미국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해준다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돈과 명예를 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쉽게 정을 붙이지 못하고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는 창현에게 미국 생활은 회사 입장에서 득이 될지언정 정작 본인에게는 독이 될 확률이 높았다.

한국에서는 자신의 입김이 닿을 수 있지만 미국은 그것이 힘들기에.

굳이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한국에서 꾸준하게 음반을 발매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 석규의 생각이었다.

물론 중간중간에 미국에 한 번씩 가서 인기 관리를 해줘야겠지만 이미 빌보드 차트를 제패한 지금 시점에서 미국에 목을 매달 이유가 없다.

창현은 석규의 말이 아버지로서 해주는 조언이란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석규의 업무에 동참하면서 창현은 기획사의 입장과 가수의 입장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소속사 사장의 입장이라면 자신이 미국에서 활동하는 것이 훨씬 큰 이득이 될 터. 하지만 석규는 자신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찌 보면 이 정도는 석규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소속사 사장과 아버지의 입장에서 창현을 최대한 배려해준 것이랄까?

창현도 그걸 느꼈기에 피식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히 미국 활동을 해주면 되겠죠? 아버지가 생각한 것도 그 정도 선일 테고요. 배려해주셔서 고마워요.”

“뭘, 그런 걸 가지고. 네가 귀국하겠다니 Jive만 똥줄이 타는 거지. 사람이 너무 열심히만 하면 바보취급 받는 게 현실이다. 적당히 튕겨줄 줄도 알아야 해. 그 점에서 네가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

“좋게 되어서 다행이네요. 그럼 아버지는 이제 미국으로 안 가시는 건가요?”

창현의 물음에 석규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게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될 것 같다. 이제 곧 라샤가 귀국할 테고, 동남아시아를 돌면서 콘서트를 해야 할 것 같거든. 그리고 미국에서 만든 인맥으로 미국 진출도 꾀할 생각이다.”

“잘되면 좋겠네요. 아버지가 같이 안 가시는 게 아쉽긴 하지만 뭐, 좋게 생각하죠. 저 혼자 유럽 여행 즐기는 걸로 말이에요.”

창현의 말에 석규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진다.

“그렇게 말하니 아쉬워지는데? 나도 그냥 같이 갈까.”

“진정하시길. 아버지는 사장님이라고요. 일하셔야지요. 하하!”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석규가 일침을 놓았다.

“그러는 너는 가수이지 않느냐? 뭘 놀 생각이야.”

“노는 게 아니라 일한 뒤 잠시 취하는 휴식이에요.. 아버지도 지치시면 숭례문 보러 가시면 되죠.”

“끄응! 내가 졌다, 졌어.”

창현의 말에 백기를 드는 석규였다.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창현은 시간을 확인하더니 석규에게 말했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일이 있어서요.”

“벌써? 조금 있다가 점심이라도 같이 먹지 그러냐?”

시간은 아홉시 반. 아침이라기엔 조금 늦었고 점심이라기엔 시간이 상당히 남은 시간이었다.

같이 점심을 먹자는 석규의 말에 창현은 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그러고 싶지만 할 일이 있어서요. 어차피 8월 9일까지 머물 생각이니 날 잡아서 같이 먹으면 되잖아요. 어차피 남은 6일 동안은 백수인데요, 뭐.”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어차피 두 사람은 부자관계였으니 같이 식사를 먹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석규는 창현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뭐하러 가는 거냐?”

“잘못된 걸 좀 고쳐주러요.”

씨익 웃음을 짓는 창현이었다.


AA엔터테인먼트를 나선 창현이 향한 곳은 SM엔터테인먼트였다.

어제와 비슷하게 모자를 눌러 쓰고 알이 큰 썬글라스를 쓴 창현은 택시를 타고 SM엔터테인먼트에 도착했다.

건물 입구로 들어서면서 쿨하게 SM엔터테인먼트에서 발행한 출입증을 보여준 창현은 거침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망설임 없는 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뒤 연습실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창현. 연습실 앞에 도착하고는 미소를 짓는다.

‘오늘 다 죽었으.’

회심의 미소를 짓는 창현이었다.


10시.

소녀시대 멤버들은 아침이지만 SM엔터테인먼트에 마련된 연습실에 모여들었다.

전날 제법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치렀지만 아직까지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았다.

안무가 어긋나거나 틀리는 경우도 있었고, 격렬한 안무와 함께 노래를 소화해야했기에 문제점이 무척 많았다. 호흡을 잘못 조절하면 안무는 물론 노래까지 틀려버리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데뷔는 축하할 일이지만 부족한 부분은 지적받아야 마땅하다.

연습실에는 소녀시대 멤버 아홉 소녀들과 수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심혈을 기울인 소녀시대인 만큼 그가 직접 조언을 하곤 한다. 이는 동방신기나 슈퍼주니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소녀들을 집결시킨 그는 이렇다 할 말이 없었다.

당연히 지적이 들어올 것이라 예상했기에 소녀들은 수만의 침묵에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혹시 자신들이 더 큰 잘못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소녀들이 모이고 약 십여 분 정도가 흘렀을까.

문득 핸드폰을 쳐다본 수만이 입을 연다.

“어제 너희들의 데뷔 무대를 우선 축하한다. 하지만 고쳐야 할 점이 있다는 건 알고 있겠지?”

“네…….”

수만의 입이 열리자 소녀들은 잔뜩 긴장한 채 대답한다.

그런 소녀들의 모습을 보며 수만이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여러 가지 지적을 해주고 싶지만 마침 나보다 더 나은 분이 너희들을 봐주시겠다는 말을 하셨기에 그분에게 너희들을 맡기기로 하였다.”

수만의 말에 소녀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수만이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수만은 그런 소녀들의 의문을 풀어주지 않은 채 자신의 할 말을 이어나갔다.

“너희들의 성격에 대해 아주 잘 알고, 노래와 안무에 대해서도 잘 아는 분이니 충실하게 따르도록 하여라. 어렵게 시간을 내주셨으니 내일은 오늘과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그 말을 할 때 밖에서 똑똑똑!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온 것이다.

“왔군. 그럼 잘하도록.”

수만은 연습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잠시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연습실 문이 열린다.

아홉 소녀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

호기심으로 점철된 소녀들의 눈에는 놀라움이 번져나간다.

“어떻게 네가 여기에…….”

연습실 안으로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창현이었다.

창현은 놀라며 자신을 가리키는 소녀들을 보며 인사를 했다.

“오늘 하루 소녀시대 안무와 노래를 맡게 된 강창현입니다. 저를 부르실 땐 강 선생님이라고 부르십시오.”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는 창현.

하지만 소녀들은 느낄 수 있었다.

웃음을 짓는 창현의 모습이 자신들과 일정한 선을 그어놓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창현이 오늘 소녀시대의 안무와 노래를 봐주겠다고 한 것은 스스로 지원한 것도 있지만 SM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한 이후 자신이 한 일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도 있었다.

그리고 어제 무대를 보고 스스로 아쉬웠던 점도 있었기에 자신이 직접 나서서 손을 봐주고 싶었다.

“우선 어제 무대를 본 제 소감을 말하겠습니다. 안무나 노래를 무리없이 소화해냈지만 딱 신인 그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몇몇 분은 노래에 신경을 쓴 나머지 안무에서 아쉬운 부분을 보였고, 몇몇 분은 안무에 신경을 쓴 나머지 노래에서 아쉬운 면을 보였습니다. 저는 SM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한 프로듀서로서 이 부분을 무척 안타깝게 여기고 있기에 오늘 이수만 회장님에게 부탁을 해서 여러분의 선생님을 자청하고 나선 것입니다.”

“…….”

창현의 말에 소녀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이 조금 황당한 것도 있지만 그의 말이 사실이어서 그렇다. 무대를 치른 그녀들 스스로조차 아쉬움이 느껴졌으니 말은 다한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말하는 창현의 모습에서 그녀들은 평소 자신들과 장난을 치는 창현이 아닌, 정말 세계 탑 아티스트의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자신들을 보는 눈빛, 행동 하나에서 압도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제가 온 이유를 말했으니 이제 본격적인 연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잘하시면 그만큼 연습은 빨리 끝날 테니 최선을 다해주시길. 그럼 <다시 만난 세계> 준비를 해주세요.”

창현이 MR을 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소녀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빠르게 일렬로 선다. 그리고 MR이 흘러나오자 본격적인 안무를 시작한다.

의자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는 창현.

소녀들의 안무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앞에 거울이 있어서 그런지 소녀들의 안무는 딱딱 맞아떨어졌다. 당장 어제 무대보다 훨씬 훌륭한 안무였다.

노래가 끝이 나자 소녀들은 이마에 땀을 송골송골 맺힌 채 미소를 짓는다. 자신들이 생각해도 제법 만족스러운 안무였던 것이다.

하지만 창현은 여전히 무표정.

그는 MR을 끄고는 다음 주문을 한다.

“그럼 이번에는 MR없이 노래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무도 없이요.”

소녀들은 안무가 끝났음에도 이렇다 할 말이 없는 창현의 모습에 내심 당황했지만 그의 주문에 응한다.

태연을 시작으로 시작된 <다시 만난 세계>의 노래.

MR이 없어도 기본기가 탄탄했기에 소녀들은 <다시 만난 세계>의 노래를 무리없이 소화했다. 신인의 패기가 느껴지는 힘 있는 음성은 어제의 무대보다 훨씬 훌륭했다.

안무도 훌륭했고 노래도 훌륭했다.

그러나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성공적으로 노래가 끝나자 창현이 다시 주문을 한다.

“그럼 이번에는 안무와 노래를 동시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창현은 MR을 틀었다.

호흡을 가다듬은 소녀들은 다시 일렬로 선 뒤, 안무와 함께 노래를 시작한다.

안무와 노래를 병행하자 순식간에 드러나는 결점들.

격렬한 안무와 힘찬 목소리로 노래를 하려고 하니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게 되어 목소리 처리가 불안정해지기 시작했고, 안무 또한 굼떠지게 된다.

아홉 명인 만큼 일체감을 주면서 라이브를 소화해내야 하는데 당장 목소리 처리가 힘들게 되니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사라지게 되고, 그로 인해 각자 어느 정도 안무와 노래를 소화하지만 일체감은 깨진 상태였다.

노래가 모두 끝나자 숨을 몰아쉬는 소녀들.

방금 전 라이브가 실패였다는 것을 느꼈기에 그녀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그런 소녀들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 창현.

창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소녀들이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을 짓는다.

자신들이 부족하다는 걸 느낀 만큼 창현에게서 어떠한 혹평이 나올지 불안했던 것이다.

잠시 침묵하던 창현은 소녀들을 보더니 말한다.

“여러분들도 느꼈겠지만 안무나 노래를 따로 떼어놓고 한다면 무리없이 소화가 가능하다는 걸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 가지를 함께 하게 되면 힘에 부치게 되어 노래도, 안무도 결점이 드러나게 되죠. 이것은 노래와 안무 난이도가 상당히 높아서 그렇습니다. 우선 태연 씨.”

공적인 일이었기에 창현은 누나란 호칭을 버리고 씨라는 호칭을 붙였다.

“네?”

갑작스러운 창현의 호명에 태연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평소 같으면 어디서 감히! 라는 말과 함께 주먹을 들었을 테지만 지금 창현의 모습은 무척 진지했고, 함부로 할 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 그의 신분은 자신들을 가르치러 온 선생님이었다. 자연히 몸이 뻣뻣해지고 무서운 안무 선생님이 앞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게 되었다.

창현은 그런 태연을 보며 잘못된 점을 지적해주었다.

“처음 노래 오프닝을 여는 것인 만큼 태연 씨의 노래에 따라 전체의 분위기를 좌지우지 할 수 있습니다. 제일 먼저 스타트를 끊는다는 중압감을 받아 메인에 나서는 안무가 조금 과할 때가 있는데 이 점을 유의하시고 마지막 클라이막스 부분을 할 때는 안무를 최소화 하고 노래에 집중해주셨으면 합니다. 부족한 부분을 다른 멤버분들이 퍼포먼스로 커버를 해주실 수 있을 테니까요. 전체적인 완성도는 무척 좋아요. 조금씩 조정해나가면 완벽하게 소화가 가능할 것 같으니 말이죠.”

그렇게 태연의 부족한 점을 콕콕 짚어주며 말하는 창현. 그렇다고 무작정 단점만 지적하는 것이 아닌, 잘하는 점을 말해줘서 채찍과 당근을 적절하게 이용하였다.

태연에게 조언을 해준 창현은 차례차례 다른 멤버들의 단점을 지적해준다. 물론 장점도 부각시켜줘서 용기를 잃지 않게 하였다.

처음에는 평소 자신들과 장난이나 치던 창현의 모습이 매치되어 적응을 못하던 소녀들이었지만 정말로 자신들의 부족한 점을 잡아주며 조언을 해주는 창현의 모습에 소녀들도 덩달아 진지하게 임하기 시작한다.

약 십여 분 정도를 조언해준 뒤 다시 라이브를 해보는 소녀들.

전보다 확연하게 나아진 점이 눈에 띄었다.

그에 만족하는 표정을 짓는 소녀들.

그러나 창현의 눈에는 아직 차지 않는 듯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창현이 소녀들을 보며 말했다.

“티파니 씨. 그 부분은 그렇게 하시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미영이 있는 자리로 온 창현은 지적하고자 하는 부분의 안무를 스스로 춰 보인다. 그리고 미영의 파트를 동시에 병행한다.

훨씬 힘차고 스무스하게 안무와 노래가 소화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자신들의 안무를 완벽하게 소화해내자 소녀들이 놀란 눈으로 창현을 바라본다.

창현은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미영에게 말한다.

“여기서 이렇게 하면 노래를 소화하기 힘들어져요. 그리고 노래를 하는데 호흡이 짧아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부분을 이렇게 하시고.”

어제 처음 들은 노래였지만 창현은 오늘 소녀들을 봐주기 위해 안무와 노래를 수차례 연습하고 나왔다. 그랬기에 안무나 노래를 상당히 자세하게 알고 있었고, 어떻게 하면 최적의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연구를 한 상태였다.

시범을 보인 창현이 미영을 보며 말했다.

“자, 그럼 제가 한대로 한 번 해보세요.”

창현의 말에 미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무와 노래를 시작한다.

그러자 한눈에 봐도 전보다 확연하게 나아진 모습에 눈에 띄었다.

놀라운 발전. 마치 보컬 트레이닝을 할 때처럼 마술을 부린 것 같았다.

무리 없이 자신의 파트를 모두 소화해내는 미영의 모습에 다른 소녀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고, 창현을 향해 경외의 시선을 보냈다.

정말 그가 최고의 가수란 것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창현은 그런 소녀들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럼 다시 한 번 맞춰보도록 할게요.”

그 말과 함께 창현은 다시 MR을 틀었고, 소녀들의 안무를 보면서 라이브가 끝난 뒤 문제점을 지적해준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부분은 창현이 직접 안무와 노래를 보여주었고, 그럴수록 소녀들의 놀라움은 더욱 커져만 갔다.

분명 자신들의 노래를 접한 게 어제가 처음일 텐데 자신들보다 더 안무와 노래를 잘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렇다.

창현이 지적해줄수록 소녀들의 안무와 노래는 한층 더 나아져갔고, 점심시간이 되자 창현이 연습 중단을 선언한다.

“점심을 먹고 하도록 할게요.”

그 말과 함께 연이은 연습으로 지친 소녀들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약 두 시간 정도 쉬지 않고 연습을 했던 터라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창현은 그런 소녀들이 보이지 않게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잠시 후, 창현이 주문한 치킨과 피자가 배달 왔다.

“한 시에 연습 다시 시작할 거니깐 그때까지 모두 해결하도록 하세요. 그럼 점심 맛있게 드세요.”

그렇게 말하며 창현은 연습실을 나섰다. 소녀들이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 것이다.

“…….”

창현이 연습실을 벗어나자 한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태연이 연습실 문 쪽을 힐끗 보더니 입을 열었다.

“난 몰랐는데 연습할 때 창현이 진짜 박력 있다. 정말 선생님 같아서 막 긴장하게 되는데?”

옆에서 치킨 상자를 열고 있던 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야. 순간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

틀린 부분을 예리하게 지적해줄 때 창현의 눈빛에 압도되던 것을 떠올리며 수영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효연은 아까 전 창현이 보여주었던 안무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런데 창현이 춤 진짜 잘 추더라. 중간에 개인 파트 지적해줄 때 완전 장난 아니던데. 난 여태까지 창현이가 별로 춤을 안 춰서 잘 못 추는 줄 알았거든.”

미영이 그런 효연의 말에 맞장구치며 주현을 바라보았다.

“정말 잘 추긴 잘 추더라. 게다가 우리 안무까지 다 알고 있고. 놀이공원에서 조금 보긴 했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거든. 주현아, 넌 창현이가 춤 잘 추는 거 알고 있었어?”

“아니오, 저도 처음 봤어요. 그냥 노래만 잘하는 줄 알았거든요. 창현이가 음악에 관련되면 진지해진다는 건 알았지만 제대로 본 적은 없거든요.”

“응. 노래랑 안무 이야기 나오니까 정말 진지해지더라. 그리고 지적해줄 때 막 소름이 돋던데? 진짜 창현이가 톱 가수인 걸 알겠더라.”

“우린 엄청난 행운을 얻고 있는 거라고! 열심히 해야지.”

소녀들은 늘 자신들에게 당해주던 창현이 아닌, 카리스마 넘치는 선생님 같은 모습에 충격을 받았는지 창현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치킨과 피자를 먹었다.

그렇게 점심 식사를 마치고 뒷정리까지 모두 끝내자, 창현이 다시 연습실 안으로 들어왔다.

창현의 등장에 소녀들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빳빳하게 긴장시켰다.

그걸 알아차린 창현이 소녀들을 보며 말했다.

“점심을 먹은 직후니까 삼십 분 정도 자율 연습을 하도록 하세요. 소화를 시킨 뒤에 연습을 재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창현의 말에 소녀들은 각자 몸을 풀면서 소화를 시키기 위해 가벼운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각자 운동을 할 때, 창현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수연이었다.

수연은 창현을 보며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저기 강 선생님. 질문이 있는데요.”

“네, 질문하세요.”

창현은 수연의 질문을 들어주었고, 망설임없이 조언을 해주며 직접 시범까지 보여주었다.

그러자 다른 소녀들도 궁금한 점이 있으면 창현에게 질문을 하였고, 그렇게 삼십 분이 흐르자 다시 본격적인 연습에 돌입하였다.

확실히 전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는 소녀들이었다.

전보다 훨씬 나아졌기에 소녀들은 무척 만족한 눈치였지만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에 창현은 소녀들에게 끊임없이 지적을 하고 조언을 해주며 하나하나 보완에 보완을 거듭해나갔다.

그리고 약 다섯 시가 되었을 무렵.

마침내 소녀들은 창현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모습을 보인다.

창현이 짝짝! 박수를 치며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 정도면 완벽하네요. 연습은 이걸로 끝이에요. 모두 수고하셨어요.”

“끄, 끝이야? 만세!”

“드디어 끝이다! 만세!”

“헉헉! 근래 한 연습 중에서 제일 힘들었어.”

“으으! 내 다리!”

끝났다는 창현의 말에 엄살을 피우는 소녀들.

그 모습을 보며 창현이 피식 웃음을 짓고는 말한다.

“땀을 많이 흘리셨으니까 씻고 오세요. 제가 저녁 사드릴게요.”

자신의 가르침에 충실히 따라주었으니 저녁을 사는 정도야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어제도 사주긴 했지만 그것은 반 강제적이었으니까.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주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저, 정말요?”

창현의 말에 지친 얼굴에 급격히 화색이 도는 소녀들.

아직도 존댓말을 쓰는 소녀들의 말투에 창현이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제가 가르쳐주는 시간은 끝났으니 평소처럼 해도 되요.”

“으응. 오늘 정말 고마웠어, 창현아.”

“그러게. 창현이 덕에 훨씬 나아진 게 몸으로 느껴질 정도야. 고마워.”

“나도 고마워!”

바로 말을 놓기는 하지만 무언가 어색함이 느껴졌다.

그 모습에 창현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고맙긴요. 계약을 했으니 도움을 드린 것뿐인데요. 누나들이 더 잘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고요. 전 잠시 회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올 테니 문에서 기다려주세요.”

그 말과 함께 창현이 연습실을 나섰고, 소녀들도 씻기 위해 샤워실로 향했다.

곧장 회장실로 향한 창현.

서류 처리를 하고 있던 수만은 창현이 방문했다는 소식에 보던 서류를 정리하고는 창현을 맞이한다.

“어서 오게나.”

창현을 맞이하는 수만의 태도는 지극히 정중했다.

상대는 세계 최고의 스타였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그 나이의 한계를 극복하고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선 존재였다. 그가 자신을 만나서 영광이 아닌, 자신이 그를 만나서 영광인 처지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정말 감사합니다.”

창현은 수만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오늘 소녀들이 스케줄 없이 연습에 몰두 할 수 있었던 것은 창현의 부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SM엔터테인먼트 자체적으로 소녀시대의 결점 극복을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이 있었지만 선뜻 창현에게 맡겨주었고, 창현은 그 점을 고마워하는 것이다.

창현의 인사에 수만이 미소를 짓더니 말한다.

“그것 가지고 감사할 필요는 없지. 오히려 자네가 해준다는 말에 기뻤으니 말이야. 어떤가, 아이들은?”

“상당히 괜찮아졌습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요. 아무래도 기본이 탄탄하다 보니까 뭐랄까, 지적을 해주면 금방 보완이 된다랄까요?”

“그거야 우리 SM엔터테인먼트에서 체계적인 단계를 통해 연습생을 선발하기 때문이지.”

창현의 말에 수만이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소녀시대를 칭찬하는 창현의 말은 SM엔터테인먼트를 칭찬하는 말과 같았다.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창현과 수만은 이런저런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묻는 것은 수만이었는데, 아무래도 미국 시장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보니 미국 시장의 전반적 상황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물론 나름대로 정보통이 있지만 아무래도 현지에서 직접 겪어본 창현의 말을 듣고 싶은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창현은 그런 수만의 물음에 성심성의껏 대답해주었다.

“아무래도 인종차별이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어요. 예전에는 백인이 흑인들을 차별했다면 이제는 뭐랄까, 백인과 흑인이 동양계 사람들과 히스패닉계 사람들을 무시한다랄까요?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아직 그런 게 조금 남긴 남았지. 직접 겪어보았다고 하니 여전한가 보군.”

창현은 모르는 듯했다. 그의 존재가 기존에 미국에서 존재하던 인종 차별을 타파할 수 있는 역할을 했다는 것을 말이다.

동양인 최초로 빌보드 차트를 석권한 창현의 존재로 인해 미국에서 활동하는 실력파 동양인 가수들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다 창현의 존재로 인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미국에서 제 매니저를 해주셨거든요. 그래서 미국 쪽에 관련된 것은 아버지와 상의를 하시면 될 듯 싶네요.”

“음, 강 사장이라면… 괜찮을 듯 싶군.”

AA엔터테인먼트와 SM엔터테인먼트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는 상황이니 나쁘지 않을 듯 싶었다. SM엔터테인먼트가 AA엔터테인먼트에 미국 쪽으로 도움을 받고, 국내 쪽으로 도움을 준다면 서로가 이로운 방향으로 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한 사항은 회사의 경영자로서 이야기를 할 거리였기에 수만은 창현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슬쩍 묻는다.

“그럼 국내로는 언제 돌아올 생각인가?”

창현이 국내에 돌아오는 시기가 무척 중요했다. 만약 창현이 한국에 돌아오고 컴백을 하게 될 때 공교롭게 그 시기가 겹쳐버리면 엄청난 손해를 볼 수 있었기에 수만으로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잘 모르겠네요. 일단 유럽 공연을 갈 생각이고 이리저리 활동하다 보면 9월말쯤에 돌아올 것 같아요. 그 뒤로 구체적인 계획은 잡혀 있지 않고요.”

“흐음! 9월말이라는 거구만. 생각보다 일찍 돌아오는군.”

내년 초나 중순까지 활동하여 인기를 굳히고 돌아올 줄 알았던 수만은 창현의 말에 턱을 잡고 생각에 잠겼다. 예상보다 이른 창현의 국내 귀환 소식에 여러 가지 생각에 겹쳤다. 돌아온다고 해서 곧장 컴백할 것도 아닐 테니 말이다. 이것저것 계산을 해봐야 했다.

창현은 그런 수만을 보며 물었다.

“저기, 오늘 누나들 저녁 사주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상관없겠지. 곧 미국에 간다고 했지? 그럼 만나기 힘들 테니 이야기를 나누게나. 로드 매니저에게는 내가 일러둘 테니. 천천히 즐기게.”

아무래도 데뷔를 한 이상 소녀시대도 공인이라 할 수 있었기에 예전 같이 넓게 활동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단체 생활인 만큼 소속사에서 통제하는 면이 강했기에 오늘 같이 이야기해주는 것은 수만의 배려라고 할 수 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의 인사와 함께 창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용건이 모두 끝났고, 수만이 혼자 생각할 것이 있어 보였다.

“음, 그러게나.”

그렇게 수만과 일별한 창현이 아래로 내려가니 어느새 씻고 내려온 주현이 보였다. 가장 먼저 씻고 내려온 듯했다.

갓 샤워를 끝내서 그런지 주현은 무척 촉촉한 머릿결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샴푸향이 은은하게 풍기는 것이,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주현 누나,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니, 막 끝나고 나왔어. 언니들도 곧 내려올 거야. 오늘 정말 고마웠어.”

안무와 노래를 봐준 걸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주현의 감사에 창현이 미소를 지었다.

“고맙긴요. SM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어서 도움을 드린 건데요.”

“그래도 고마워. 아마 창현이 넌 계약을 맺지 않았더라도 도움을 줬을 거잖아? 안 그래?”

“…글쎄요?”

씨익 웃음을 짓는 창현. 그 모습에 워낙 신비로워서 주현의 안색이 가볍게 붉어진다.

그 모습을 본 창현이 묻는다.

“어라, 주현 누나 얼굴이 빨간데요? 아픈 거 아니에요?”

“응? 아, 아니야.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해서 그런가봐.”

“흠? 그래요? 잠시…….”

주현은 창현이 알아차릴까봐 화들짝 놀라며 대답하자 창현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자신의 손을 주현의 이마에 대면서 자신의 이마에도 손을 댄다.

그러자 주현이 움찔하지만 창현을 딱히 제지하지 않는다.

이마에 올려진 창현의 손 감촉이 너무 좋았던 것이다.

주현은 저도 모르게 창현의 손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남자면서 손이 너무 부드럽네. 차가운 게 기분이 좋아……. 손이 차가우면 마음이 따뜻하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 걸까?’

오만가지 생각이 주현의 뇌리에 스쳐갈 무렵, 주현이 딱히 열이 없다는 걸 알아차린 창현이 손을 떼며 말했다.

“열은 없는 것 같네요. 오늘 너무 열심히 연습해서 그런가 봐요.”

“으응.”

주현이 여전히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소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창현은 모습을 드러낸 소녀들을 보고는 말했다.

“오셨어요? 오늘 수고하셨어요, 누나들. 뭐 먹고 싶으세요?”

저녁 메뉴를 묻자 소녀들은 마치 그 물음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외친다.

“꽃등심!”

“어제 먹은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었어!”

“그 육즙을 떠올리는 순간 나는… 흑흑!”

“매일 먹어도 질릴 것 같지 않더라.”

어제 창현이 강제로 샀던 꽃등심을 떠올리며 눈이 몽롱하게 풀리는 소녀들이었다.

그런 소녀들의 모습에 창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휴! 뭐 좋아요. 꽃등심 먹으러 가요.”

창현이 수락하자 소녀들의 입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창현이 최고!”

“저 현 팬이에요!”

“에휴! 너무 비싼 말이네요. 꽃등심 사고 이런 말이라니. 일단 가도록 하죠. 회장님이 로드 매니저분에게 말해주신다고 하셨으니까요.”

그래도 예상한 범주였기에 창현은 웃음을 지으며 소녀들을 이끌고 소녀시대 전용 벤을 얻어 타며 어제 갔던 고기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꽃등심을 아주 왕창 시키며 구워먹는 소녀들. 창현도 그 대열에 합류하여 즐겁게 고기를 먹는다.

글라스에 콜라를 따른 창현은 그것을 치켜 들며 말한다.

“미성년자라서 술은 안 되지만 콜라로 건배를 해요. 자, 앞으로 소녀시대가 잘 되길 바랍니다. 건배!”

“건배!”

그렇게 즐겁게 저녁 식사를 하는 창현과 소녀들.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창현이 그래도 선배이기에 여러 가지 조언을 해준다. 오늘 안무와 노래를 지적받고 배우면서 느꼈지만 창현이 진지한 모습을 보일 때는 자신도 모르게 그에 끌려가는 모습을 발견하곤 하는 소녀들이었다.

창현은 자신도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방송 경험 같은 것을 떠올리며 소녀들에게 조언을 해주었고, 행동거지나 방송 태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었다.

안티가 유난히 적은 가수 현.

그것은 그의 예의바른 모습에 기인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녁 식사는 그렇게 창현이 조언을 해주고, 여러 가지 사적인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즐겁게 끝을 맺을 수 있었다.

내일부터 소녀들은 본격적인 스케줄이 있었기에 창현이 소녀들과 만나는 것은 9월말 혹은 10월초쯤이 될 것이다.

창현은 소녀들과 헤어지기 전에 말했다.

“제가 한국에 왔을 때 좀 더 높은 위치에 올라서 있을 누나들의 모습을 기대할게요.”

“응. 우리도 열심히 할 테니 창현이 너도 열심히 해.”

창현과 소녀들은 그렇게 훈훈하게 헤어질 수 있었다.

소녀들은 오늘의 만남으로 인해 창현이 정말 높은 위치에 있는 톱스타란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창현 본인이 말해서 그런 것이 아닌, 그의 모습과 행동거지에서 소녀들이 스스로 느낀 것이다.

창현의 새로운 면을 느낄 수 있는 날이었다.


일주일이란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동안 창현은 나날이 발전해가는 변장술로 인해 영화도 보고 길거리를 쏘아 다니기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즐겨나갔다. 그러다가 정체를 들켜 죽도록 뛴 적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운 나날이었고,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풀어나갈 수 있었다.

AA엔터테인먼트에서는 창현이 한국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일주일 동안 한국에 귀국한 것이라고 말했고, 창현이 머무는 일주일 중 이틀을 할애하여 게릴라성 콘서트를 열어 길거리를 걷던 여러 사람들이 뜻밖의 행운을 얻게 된다.

창현도 갑자기 길거리를 걷다가 모습을 드러내고 콘서트를 여는 것이 무척 새롭고 재미있어 했는데, 즉석에서 앨범을 판매하며 싸인을 해주다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고생을 하기도 했다.

몇몇 극성 팬들은 창현을 끌어안기도 했고 해서 무척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지척에서 인기를 실감하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창현도 무척 즐거워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창현의 출국 날이 되었을 때, 공항은 일대 장관을 만들어내고야 만다.

무려 삼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공항에 몰려든 것이었다.

어느 정도 모일 거라고 했지만 무려 삼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들 줄 몰랐기에 창현과 AA엔터테인먼트는 당황하여 경호시설에게 부탁을 하여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이동을 해야 했다.

특히 마지막에 창현이 게이트로 들어서기 전에 한 인사가 화제가 되었다.

팬들을 향해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대한민국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고 오겠습니다! 팬분들의 성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라고 한 것이다.

그런 창현의 모습에 공항에 모인 팬들은 감동을 받았고, 연예 언론에서는 이러한 창현의 발언을 특종으로 다루게 된다.

그로 인해 국내에서 현이란 이름은 정상에 우뚝 서게 되고, 국민 MC 유재석과 같은, 무조건적인 지지를 받게 된다.

그것이 8월 10일에 벌어진 일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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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15화 +50 15.06.01 7,723 123 11쪽
51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14화 +10 15.05.20 3,771 95 8쪽
50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13화 +18 15.05.13 3,574 71 10쪽
49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12화 +8 15.05.11 3,676 90 10쪽
48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11화 +9 15.05.08 3,778 86 10쪽
47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10화 +21 15.05.06 3,748 86 10쪽
46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9화 +10 15.05.04 3,692 94 10쪽
45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8화 +17 15.05.02 4,030 92 10쪽
44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7화 +10 15.05.01 4,128 92 10쪽
43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6화 +7 15.04.29 3,695 89 10쪽
42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5화 +15 15.04.27 3,713 97 9쪽
41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4화 +7 15.04.24 3,978 89 10쪽
40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3화 +6 15.04.22 4,425 82 10쪽
39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2화 +9 15.04.20 4,515 91 11쪽
38 마음을 울리는 음악 시즌2 제1화 +10 15.04.17 7,375 95 10쪽
37 ▲▲▲▲▲시즌2 시작!▲▲▲▲▲ +5 15.04.17 5,423 65 1쪽
36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6장-108장 +8 15.04.16 6,411 106 230쪽
35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3장-105장 +1 15.04.16 4,242 82 314쪽
34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0장-102장 +2 15.04.16 4,411 68 229쪽
33 마음을 울리는 음악 97장-99장 +1 15.04.16 4,387 63 264쪽
32 마음을 울리는 음악 94장-96장 +1 15.04.16 4,377 80 230쪽
31 마음을 울리는 음악 91장-93장 +1 15.04.16 5,125 76 268쪽
30 마음을 울리는 음악 88장-90장 +1 15.04.16 4,927 98 332쪽
29 마음을 울리는 음악 85장-87장 +1 15.04.16 4,709 83 270쪽
28 마음을 울리는 음악 82장-84장 +2 15.04.16 4,913 85 261쪽
27 마음을 울리는 음악 79장-81장 +1 15.04.16 4,579 87 241쪽
26 마음을 울리는 음악 76장-78장 +1 15.04.16 4,752 74 244쪽
25 마음을 울리는 음악 73장-75장 +1 15.04.16 4,939 111 327쪽
24 마음을 울리는 음악 70장-72장 +1 15.04.16 4,755 82 200쪽
23 마음을 울리는 음악 67장-69장 +1 15.04.16 4,742 80 210쪽
22 마음을 울리는 음악 64장-66장 +1 15.04.16 4,955 75 282쪽
21 마음을 울리는 음악 61장-63장 +2 15.04.16 5,256 79 316쪽
20 마음을 울리는 음악 58장-60장 +1 15.04.16 5,246 74 186쪽
19 마음을 울리는 음악 55장-57장 +2 15.04.16 5,590 95 215쪽
18 마음을 울리는 음악 52장-54장 +1 15.04.16 6,506 110 349쪽
17 마음을 울리는 음악 49장-51장 +2 15.04.16 6,418 119 283쪽
16 마음을 울리는 음악 46장-48장 +3 15.04.16 7,156 149 347쪽
15 마음을 울리는 음악 43장-45장 +1 15.04.16 7,120 129 198쪽
14 마음을 울리는 음악 40장-42장 +3 15.04.16 8,907 183 320쪽
13 마음을 울리는 음악 37장-39장 +2 15.04.16 9,611 224 397쪽
12 마음을 울리는 음악 34장-36장 +8 15.04.16 9,520 189 322쪽
11 마음을 울리는 음악 31장-33장 +8 15.04.16 10,351 261 345쪽
10 마음을 울리는 음악 28장-30장 +5 15.04.16 10,656 260 277쪽
» 마음을 울리는 음악 25장-27장 +7 15.04.16 11,033 267 233쪽
8 마음을 울리는 음악 22장-24장 +4 15.04.16 10,919 261 198쪽
7 마음을 울리는 음악 19장-21장 +4 15.04.16 11,489 270 216쪽
6 마음을 울리는 음악 16장-18장 +5 15.04.16 11,539 242 163쪽
5 마음을 울리는 음악 13장-15장 +5 15.04.16 14,530 297 237쪽
4 마음을 울리는 음악 10장-12장 +8 15.04.16 13,733 352 171쪽
3 마음을 울리는 음악 7장-9장 +10 15.04.16 14,547 362 142쪽
2 마음을 울리는 음악 4장-6장 +11 15.04.16 16,831 421 120쪽
1 마음을 울리는 음악 프롤로그-3장 +47 15.04.16 29,889 545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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